당신의 마음은?
우리 교회가 큰 길가에 있어서 좋은 점도 있지만, 힘든 점도 좀 있습니다. 힘든 점 중의 하나를 꼽으라면 자동차 크락션 소리입니다. 한국에서 온 사람들이 자주 하는 말 중의 하나가 일본에서는 크락션 소리를 듣기 어렵다고 합니다. 한국에 비해서는 정말 크라션 소리가 거의 들리지 않습니다. 왠만하면 서로 양보해 주며 기다려 줍니다. 그런데 꼭 그렇지만은 않은 것같습니다. 교회에 있으면 간혹 내 귀를 의심할 정도로 오랜시간 동안 큰 소리로 크락션을 울리고 있는 차들을 볼 수가 있습니다. 그리고 그 뒤에는 방안에 있는 내 귀에도 확실히 들릴 정도로 'バカヤロウ'라고 고함치는 소리도 함께 들리곤 합니다. 이럴 때에는 나도 신경이 곤두서서 한동안 정말 괴롭습니다. 조금만 더 참아 주면 될텐데... 얌전한 일본 사람들 중에도 양보는 잘하는데, 용서는 잘 못하는 사람들을 간혹 보게 됩니다. 누군가가 잘못을 하여 피해를 입었다고 생각하면 발끈하여 가차없이 분노가 폭발하게 됩니다. 물론 한국 사람들은 용서 뿐만 아니라, 양보도 잘 못하지만 말입니다. 양보는 사람의 미덕이지만, 용서는 하나님의 능력입니다. 그래서 양보는 사람의 힘으로 할 수 있지만, 용서는 하나님이 도와 주시지 않으면 안되는가 봅니다.
내가 다짐한 것이 하나 있습니다. '무슨 일이 있어도 크락션을 울리지 않겠다'입니다.물론 간혹 정말 울리고 싶을 때가 있습니다. 그래도 지금까지는 참고 용서하고 있습니다. 내가 크락션을 울리면 순간 내 속에 차 있던 감정의 가스는 다 빠져 나갈 수 있지만, 상대방 뿐만 아니라 주의에 있는 사람들의 마음은 크락션의 공격으로 수없이 파괴되기 때문입니다.
화를 내고 나서 행복해하는 사람은 한사람도 없습니다. 반드시 후회합니다. '그 때 참았어야 하는 건데...' 이것은 자신이 잘못했다는 것을 스스로 인정하게 되는 것입니다. 다시 말해서 화내는 사람은 자신에게 죄를 짓는 사람입니다. 최고의 자해행위인 것입니다. 그래서 화만 안 내도 훌륭한 사람입니다. 화를 많이 낼수록 후회의 계곡도 깊어집니다.
'화를 내다'의 일본어 표현은 '怒る'입니다. '노를 발하다'나 분노의 '노'(怒)도 같은 한자입니다. 이 한자의 형태는 마음(心)의 왕좌에 종(奴)이 앉아 있습니다. 그래서 화를 잘 내는 사람은 그 화를 통해서 종의 모습이 나타나는 것입니다. 결국 화를 낸다는 것은 '지금 내 마음의 주인은 노예(종)입니다'라고 고백하는 것입니다.
만약에 마음의 왕좌에 주님이 계신다면 절대로 화는 나타날 수가 없습니다. 주님이 마음의 왕좌에 앉아 계시면 반드시 주님의 모습이 나를 통해서 나타날 것입니다. 주님의 사랑, 주님의 기쁨, 주님의 평화, 주님의 용서가 그 사람을 통해서 세상으로 흘러 나올 것입니다. 내가 화를 낸다는 것은 주님이 내 마음의 주인이 되지 않았다는 것을 보여 주는 증거입니다. 나는 주님 앞에서 종입니다. 그래서 나를 내 마음에서 내려 놓아야 합니다. 그 자리에 주님을 모셔야 합니다. 그런 사람은 어떤 상황에서도 화를 낼 수가 없습니다. 나는 없고 나의 주인은 이미 주님인데... 없는 내가 나타난다는 것은 있을 수 없는 일입니다. 화를 낸다는 것은 아직 내가 주인이 되어 살아있다는 증거입니다. 내 마음을 주님이 다스리면 바로 그곳은 천국이 됩니다. 믿음의 사람들이 이 마음의 천국을 바라보며 달려갔으면 합니다.
'평안을 너희에게 끼치노니 곧 나의 평안을 너희에게 주노라 내가 너희에게 주는 것은 세상이 주는 것과 같지 아니하니라 너희는 마음에 근심하지도 말고 두려워하지도 말라'(요한복음14:27)
우리 교회가 큰 길가에 있어서 좋은 점도 있지만, 힘든 점도 좀 있습니다. 힘든 점 중의 하나를 꼽으라면 자동차 크락션 소리입니다. 한국에서 온 사람들이 자주 하는 말 중의 하나가 일본에서는 크락션 소리를 듣기 어렵다고 합니다. 한국에 비해서는 정말 크라션 소리가 거의 들리지 않습니다. 왠만하면 서로 양보해 주며 기다려 줍니다. 그런데 꼭 그렇지만은 않은 것같습니다. 교회에 있으면 간혹 내 귀를 의심할 정도로 오랜시간 동안 큰 소리로 크락션을 울리고 있는 차들을 볼 수가 있습니다. 그리고 그 뒤에는 방안에 있는 내 귀에도 확실히 들릴 정도로 'バカヤロウ'라고 고함치는 소리도 함께 들리곤 합니다. 이럴 때에는 나도 신경이 곤두서서 한동안 정말 괴롭습니다. 조금만 더 참아 주면 될텐데... 얌전한 일본 사람들 중에도 양보는 잘하는데, 용서는 잘 못하는 사람들을 간혹 보게 됩니다. 누군가가 잘못을 하여 피해를 입었다고 생각하면 발끈하여 가차없이 분노가 폭발하게 됩니다. 물론 한국 사람들은 용서 뿐만 아니라, 양보도 잘 못하지만 말입니다. 양보는 사람의 미덕이지만, 용서는 하나님의 능력입니다. 그래서 양보는 사람의 힘으로 할 수 있지만, 용서는 하나님이 도와 주시지 않으면 안되는가 봅니다.
내가 다짐한 것이 하나 있습니다. '무슨 일이 있어도 크락션을 울리지 않겠다'입니다.물론 간혹 정말 울리고 싶을 때가 있습니다. 그래도 지금까지는 참고 용서하고 있습니다. 내가 크락션을 울리면 순간 내 속에 차 있던 감정의 가스는 다 빠져 나갈 수 있지만, 상대방 뿐만 아니라 주의에 있는 사람들의 마음은 크락션의 공격으로 수없이 파괴되기 때문입니다.
화를 내고 나서 행복해하는 사람은 한사람도 없습니다. 반드시 후회합니다. '그 때 참았어야 하는 건데...' 이것은 자신이 잘못했다는 것을 스스로 인정하게 되는 것입니다. 다시 말해서 화내는 사람은 자신에게 죄를 짓는 사람입니다. 최고의 자해행위인 것입니다. 그래서 화만 안 내도 훌륭한 사람입니다. 화를 많이 낼수록 후회의 계곡도 깊어집니다.
'화를 내다'의 일본어 표현은 '怒る'입니다. '노를 발하다'나 분노의 '노'(怒)도 같은 한자입니다. 이 한자의 형태는 마음(心)의 왕좌에 종(奴)이 앉아 있습니다. 그래서 화를 잘 내는 사람은 그 화를 통해서 종의 모습이 나타나는 것입니다. 결국 화를 낸다는 것은 '지금 내 마음의 주인은 노예(종)입니다'라고 고백하는 것입니다.
만약에 마음의 왕좌에 주님이 계신다면 절대로 화는 나타날 수가 없습니다. 주님이 마음의 왕좌에 앉아 계시면 반드시 주님의 모습이 나를 통해서 나타날 것입니다. 주님의 사랑, 주님의 기쁨, 주님의 평화, 주님의 용서가 그 사람을 통해서 세상으로 흘러 나올 것입니다. 내가 화를 낸다는 것은 주님이 내 마음의 주인이 되지 않았다는 것을 보여 주는 증거입니다. 나는 주님 앞에서 종입니다. 그래서 나를 내 마음에서 내려 놓아야 합니다. 그 자리에 주님을 모셔야 합니다. 그런 사람은 어떤 상황에서도 화를 낼 수가 없습니다. 나는 없고 나의 주인은 이미 주님인데... 없는 내가 나타난다는 것은 있을 수 없는 일입니다. 화를 낸다는 것은 아직 내가 주인이 되어 살아있다는 증거입니다. 내 마음을 주님이 다스리면 바로 그곳은 천국이 됩니다. 믿음의 사람들이 이 마음의 천국을 바라보며 달려갔으면 합니다.
'평안을 너희에게 끼치노니 곧 나의 평안을 너희에게 주노라 내가 너희에게 주는 것은 세상이 주는 것과 같지 아니하니라 너희는 마음에 근심하지도 말고 두려워하지도 말라'(요한복음14:2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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