큰 그릇
사람들은 큰 그릇이 되기를 원합니다. 자녀들을 큰 그릇으로 키우자는 캠패인도 있습니다. 종재기로 키우지 말고 항아리같이 큰 그릇을 만들자고 합니다. 종재기같은 작은 그릇은 아무리 부어 주어도 절대로 많이 담을 수가 없습니다. 그러나 항아리같은 그릇은 많은 물을 담을 수가 있습니다. 그러면 항아리는 많은 물을 담아서 무엇을 합니까? 만약에 항아리가 물을 아구까지 채워서 평생 그대로 둔다면 적잖은 문제를 일으킬 수 있습니다. 정말 물이 필요한 사람들에게는 불편을 줄 뿐만 아니라, 항아리 속은 그냥 고여만 있는 물로 인하여 썩어서 악취가 나고 벌레도 생길 것입니다. 항아리가 필요한 이유는 물을 필요한 사람에게 나누어 주기 위한 것입니다.
댐도 마찬가지입니다. 막혀 있는 댐을 본 적이 있습니까? 모든 댐에는 반드시 그 스케일에 맞는 수문이 있습니다. 물을 흘려 보내지 않는 댐은 댐이 아닙니다. 만일 댐이 물을 흘려 보낼 수 없고 저장만 한다면 밑에 있는 동네는, 댐으로 인하여 물이 없는 기근의 아픔을 겪어야 하고, 댐은 오래지 않아 물의 압력을 견디지 못하여 무너지게 될 것입니다. 댐이 존재하는 이유는 물이 많을 때에 저장해 두었다가 가물 때에 흘러 보내는 것입니다. 그래서 사람들은 댐으로 인해 홍수 때에는 안전하게 되고, 가뭄 때에는 물을 잘 공급받을 수가 있는 것입니다.
모든 그릇의 목적은 흘려 보내는 것에 있습니다. 그런 의미에서 과연 큰 그릇은 어떤 그릇일까요?
물론 항아리도 댐도 다 큰 그릇들입니다. 많은 양의 물을 담을 수 있습니다. 그러나 댐과는 비교도 안되는 진짜 큰 그릇이 있습니다. 그 그릇은 다름 아닌 '통로'라는 그릇입니다. 이 그릇은 물을 무한대로 부을 수 있는 그릇이기 때문입니다. 비록 댐이라고 하더라도 한계가 있지만, 통로는 아무리 부어도 계속 받을 수 있습니다. 통로는 들어오는 즉시 그대로 흘러 보내기 때문입니다. 그렇기 때문에 그릇 중에 가장 큰 그릇은 '통로' 그릇입니다.
성경에서 주님은 바울을 '나의 그릇'이라고 했습니다. 주님은 바울의 그릇에 끊임없이 성령의 생수를 부어 주셨고, 바울은 그것을 그대로 세상에 흘려 보냈습니다. 그런 의미에서 바울은 그릇 중에서도 통로같은 그릇이었습니다.
사람을 큰 그릇으로 키운다는 것은 항아리도 댐도 아닌, 통로같은 사람으로 키워야 한다는 것입니다. 받기만 하는 사람이 아닌 흘려 보내는 사람으로 키워야 하기 때문입니다. 그럴 때에 그 사람이 있는 곳에는 그를 통해서 생수가 흘러나가기 때문에 세상이 살아나게 되는 것입니다. 예수님은 이땅에 통로로 오셨습니다. 하늘의 생명을 받아 자신의 피를 통해서 이땅에 다 흘러 보내셨습니다. 그래서 예수님과 믿음으로 연결된 사람은 누구나 그 피를 공급받아 영원한 생명을 얻게 되는 것입니다.
그런데 여기에는 하나님의 사랑의 엔진이 있었습니다. '하나님이 세상을 이처럼 사랑하사 독생자를 주셨으니 이는 저를 믿는 자마다 멸망하지 않고 영생을 얻게 하려 하심이라'(요한복음 3:16) 사랑의 사역은 주는 사역입니다. 통로의 사역도 주는 사역입니다. 통로는 받을 뿐 아니라 반드시 받은 만큼 주어야 합니다. 이 때 사랑은 줄 수 있는 원동력이 되어 줍니다.사랑이 없으면 통로는 막히고 맙니다. 결국 큰 그릇이 되는 것은 그릇의 크기를 넓히는 것이 아니라, 사랑의 엔진을 달아 주는 것입니다. 사랑이 큰 그릇을 만들어 줍니다.
세상이 어려운 것은 없어서가 아니라, 막혀 있기 때문입니다. 없어서 부족한 것이 아니라 흐르지 않기 때문에 부족한 것입니다. 막히면 죽고 흐르면 삽니다. 많은 사람이 항아리같은 사람은 되고 싶어 하는데, 통로같은 사람이 되는 것은 꺼려 합니다. 받는 것은 좋아하는데, 흘려 보내는 것은 싫어합니다. 항아리의 구멍을 뚫어야 합니다.
오늘날은 통로가 없어서 갈한 시대입니다. 주님은 지금도 사람을 찾으십니다. 누가 나를 위한 통로가 되어 줄꼬.
'구제를 좋아하는 자는 풍족하여질 것이요 남을 윤택하게 하는 자는 자기도 윤택하여지리라'(잠11:25)
남에게 흘려 보내는 사람을 하나님은 절대로 그냥 두시지 않습니다. 하나님은 통로를 마르게 하는 법이 없습니다. 통로를 풍족하고 윤택하게 하십니다.
그릇 중의 가장 큰 그릇은 '통로'그릇입니다. '사랑'그릇입니다.
사람들은 큰 그릇이 되기를 원합니다. 자녀들을 큰 그릇으로 키우자는 캠패인도 있습니다. 종재기로 키우지 말고 항아리같이 큰 그릇을 만들자고 합니다. 종재기같은 작은 그릇은 아무리 부어 주어도 절대로 많이 담을 수가 없습니다. 그러나 항아리같은 그릇은 많은 물을 담을 수가 있습니다. 그러면 항아리는 많은 물을 담아서 무엇을 합니까? 만약에 항아리가 물을 아구까지 채워서 평생 그대로 둔다면 적잖은 문제를 일으킬 수 있습니다. 정말 물이 필요한 사람들에게는 불편을 줄 뿐만 아니라, 항아리 속은 그냥 고여만 있는 물로 인하여 썩어서 악취가 나고 벌레도 생길 것입니다. 항아리가 필요한 이유는 물을 필요한 사람에게 나누어 주기 위한 것입니다.
댐도 마찬가지입니다. 막혀 있는 댐을 본 적이 있습니까? 모든 댐에는 반드시 그 스케일에 맞는 수문이 있습니다. 물을 흘려 보내지 않는 댐은 댐이 아닙니다. 만일 댐이 물을 흘려 보낼 수 없고 저장만 한다면 밑에 있는 동네는, 댐으로 인하여 물이 없는 기근의 아픔을 겪어야 하고, 댐은 오래지 않아 물의 압력을 견디지 못하여 무너지게 될 것입니다. 댐이 존재하는 이유는 물이 많을 때에 저장해 두었다가 가물 때에 흘러 보내는 것입니다. 그래서 사람들은 댐으로 인해 홍수 때에는 안전하게 되고, 가뭄 때에는 물을 잘 공급받을 수가 있는 것입니다.
모든 그릇의 목적은 흘려 보내는 것에 있습니다. 그런 의미에서 과연 큰 그릇은 어떤 그릇일까요?
물론 항아리도 댐도 다 큰 그릇들입니다. 많은 양의 물을 담을 수 있습니다. 그러나 댐과는 비교도 안되는 진짜 큰 그릇이 있습니다. 그 그릇은 다름 아닌 '통로'라는 그릇입니다. 이 그릇은 물을 무한대로 부을 수 있는 그릇이기 때문입니다. 비록 댐이라고 하더라도 한계가 있지만, 통로는 아무리 부어도 계속 받을 수 있습니다. 통로는 들어오는 즉시 그대로 흘러 보내기 때문입니다. 그렇기 때문에 그릇 중에 가장 큰 그릇은 '통로' 그릇입니다.
성경에서 주님은 바울을 '나의 그릇'이라고 했습니다. 주님은 바울의 그릇에 끊임없이 성령의 생수를 부어 주셨고, 바울은 그것을 그대로 세상에 흘려 보냈습니다. 그런 의미에서 바울은 그릇 중에서도 통로같은 그릇이었습니다.
사람을 큰 그릇으로 키운다는 것은 항아리도 댐도 아닌, 통로같은 사람으로 키워야 한다는 것입니다. 받기만 하는 사람이 아닌 흘려 보내는 사람으로 키워야 하기 때문입니다. 그럴 때에 그 사람이 있는 곳에는 그를 통해서 생수가 흘러나가기 때문에 세상이 살아나게 되는 것입니다. 예수님은 이땅에 통로로 오셨습니다. 하늘의 생명을 받아 자신의 피를 통해서 이땅에 다 흘러 보내셨습니다. 그래서 예수님과 믿음으로 연결된 사람은 누구나 그 피를 공급받아 영원한 생명을 얻게 되는 것입니다.
그런데 여기에는 하나님의 사랑의 엔진이 있었습니다. '하나님이 세상을 이처럼 사랑하사 독생자를 주셨으니 이는 저를 믿는 자마다 멸망하지 않고 영생을 얻게 하려 하심이라'(요한복음 3:16) 사랑의 사역은 주는 사역입니다. 통로의 사역도 주는 사역입니다. 통로는 받을 뿐 아니라 반드시 받은 만큼 주어야 합니다. 이 때 사랑은 줄 수 있는 원동력이 되어 줍니다.사랑이 없으면 통로는 막히고 맙니다. 결국 큰 그릇이 되는 것은 그릇의 크기를 넓히는 것이 아니라, 사랑의 엔진을 달아 주는 것입니다. 사랑이 큰 그릇을 만들어 줍니다.
세상이 어려운 것은 없어서가 아니라, 막혀 있기 때문입니다. 없어서 부족한 것이 아니라 흐르지 않기 때문에 부족한 것입니다. 막히면 죽고 흐르면 삽니다. 많은 사람이 항아리같은 사람은 되고 싶어 하는데, 통로같은 사람이 되는 것은 꺼려 합니다. 받는 것은 좋아하는데, 흘려 보내는 것은 싫어합니다. 항아리의 구멍을 뚫어야 합니다.
오늘날은 통로가 없어서 갈한 시대입니다. 주님은 지금도 사람을 찾으십니다. 누가 나를 위한 통로가 되어 줄꼬.
'구제를 좋아하는 자는 풍족하여질 것이요 남을 윤택하게 하는 자는 자기도 윤택하여지리라'(잠11:25)
남에게 흘려 보내는 사람을 하나님은 절대로 그냥 두시지 않습니다. 하나님은 통로를 마르게 하는 법이 없습니다. 통로를 풍족하고 윤택하게 하십니다.
그릇 중의 가장 큰 그릇은 '통로'그릇입니다. '사랑'그릇입니다.
リスト
番号 | タイトル | 投稿者 | 日付 | 閲覧数 |
---|---|---|---|---|
441 |
사상이 운명을 좌우한다 |
2015-09-25 | 60 | |
440 |
唯一な欠点1 |
2015-09-19 | 46 | |
439 |
유일한 결점 |
2015-09-13 | 51 | |
438 |
知っていることが平和1 |
2015-09-13 | 109 | |
437 |
아는 것이 평화 |
2015-09-11 | 101 | |
436 |
空く、満たす、流す1 |
2015-09-05 | 121 | |
435 |
비움 채움 흐름 |
2015-09-04 | 136 | |
434 |
違いと一つになること1 |
2015-08-29 | 124 | |
433 |
다름과 하나됨 |
2015-08-28 | 59 | |
432 |
信頼の知恵1 |
2015-08-22 | 84 | |
431 |
신뢰의 지혜 |
2015-08-20 | 106 | |
430 |
エクストラマイル(EXTRA MILE)1 |
2015-08-14 | 100 | |
429 |
엑스트라 마일 |
2015-08-14 | 309 | |
428 |
1:100000(日本語訳)1 |
2015-08-07 | 68 | |
427 |
1:100000 |
2015-08-07 | 50 | |
426 |
香り1 |
2015-08-01 | 51 | |
425 |
향기 |
2015-07-29 | 65 | |
424 |
大きな器1 |
2015-07-25 | 68 | |
423 |
큰 그릇 |
2015-07-23 | 146 | |
422 |
二つの愛1 |
2015-07-22 | 91 |
0 コメント