Skip to content

중앙영광교회

두 눈

이용규목사, 2005-12-06 23:47:01

閲覧数
583
推奨数
10
두 눈

말씀//행7:54-60

1. 믿음의 사람의 참 능력
믿음의 사람은 세상 사람과 구별되어야 한다.
믿음이 있다고 하면서 세상과 다른 것이 전혀 없다면 그의 믿음은 헛것이다.
오늘 본문은 스데반이라는 사람의 죽어가는 모습을 잘 보여 주고 있는데, 그의 모습은 세상과 전혀 달랐다. 죽음 앞에서의 그의 모습은 정말 위대했다. 세상은 도저히 흉내 낼 수 없는 모습이었다. 사람은 누구나 죽음 앞에서 자신의 진실한 모습을 나타낸다. 우리의 신앙도 죽음 앞에서는 거짓말을 할 수 없다.
믿음의 사람은 세상이 감당할 수 없는 힘을 가지고 있다. 그래서 세상에서 가장 무서운 죽음의 권세도 그를 이길 수 없다. 이 모습이 바로 십자가의 예수님의 모습이요, 돌에 맞아 죽어가던 스데반의 모습이다.
진실한 능력은 외부에서 역사하는 힘이 아니라 속에서 역사하는 힘이다.
예수님이 십자가에 달렸을 때, 예수님을 십자가에서 내리는 힘이 위대한 것이 아니라(만약 있었다면), 우리를 대신해서 십자가를 끝까지 지시는 예수님의 내적인 힘이 위대한 것이었고,
스데반이 돌에 맞아 죽어갈 때, 그 돌을 던진 사람에게 되돌아가게 하는 힘이 위대한 것이 아니라(실제로는 없었지만 만약 있었다면), 그 돌을 끝까지 맞으며 천사같이 죽음을 맞이했던 스데반의 내적인 힘이 위대한 것이었다.
죽음이 감당치 못할 이 능력은 어디에서 오는 것일까?
‘스데반이 성령이 충만하여’(행7:55)
스데반도 세상 사람과 똑 같은 사람이었지만, 단지 다른 점이 있다면 그는 세상 사람은 갖지 못한 성령으로 충만한 사람이었다. 이것이 그를 세상과 전혀 다른 사람으로 바꾸어 놓은 것이다. 세상사람을 천국사람으로 바꾸는 가장 위대한 힘은 ‘성령’이다.
그래서 예수님도 ‘성령이 너희에게 임하면 너희가 권능을 받는다’고 하셨다.

2. 볼 줄 아는 능력
성령이 충만한 사람은 구체적으로 어떤 능력을 입게 될까?
성령은 우리에게 ‘두 눈’의 축복을 주신다. 스데반도 이 복을 받은 사람이다.
세상이 볼 수 없는 것을 볼 수 있는 눈을 열어 주신다.
성령이 충만한 사람은 어떤 사람일까?
남이 보지 못하는 것을 볼 수 있는 사람이다.
영안이 열리게 되는 것이다.
인간이 ‘하나님의 눈’으로 볼 수 있다는 것은 놀라운 축복이다.
볼 수 있다는 것은 능력 중의 능력이다.
보는 것보다 더 큰 확신을 주는 것은 없다.
사람은 자기 눈으로 본 것은 반드시 믿게 된다. 따라서 보는 것보다 더 큰 능력은 없다.
본 사람을 흔들 사람은 없다. 본 사람을 유혹할 사람도 없다. 그는 결코 흔들리지 않는다.
예수님의 제자들도 부활하신 주님을 직접 보았기 때문에 다시 모이게 되었고, 성령의 불 같은 역사와 방언의 역사를 눈으로 보았기 때문에 죽음 앞에서도 두려워하지 않고 순교의 길을 걸어가게 되었던 것이다. 보는 것의 힘은 이처럼 대단하다. 사람을 완전히 딴 사람으로 바꾸는 능력이 있다.
성령이 우리에게 역사하시면 성령은 우리에게 두 가지를 볼 수 있는 권세의 눈을 주신다. 그 두 눈이 무엇인지 스데반이 본 것을 통해서 알아보도록 하자.

3. 두 눈
1) 천국을 보는 눈이 열린다.
‘하나님의 영광과 및 예수께서 하나님 우편에 서신 것을 보고’(55)
수많은 핍박자들은 공포와 살벌한 분위기로 스데반을 위협했다.
이 때 스데반의 눈에는 또 다른 모습이 보였다.
핍박하는 무리들이 아니라 그들 위에 계시는 ‘주님과 천국’을 보게 된 것이다.
얼마나 감격하고 흥분했으면 그는 군중들에게 자기가 보고 있는 천국을 큰 소리로 자랑했다. 그 때 그의 모습은 마치 천국에 마취된 사람 같았을 것이다.
그래서 그에게는 세상 아픔이 느껴질 수가 없었을 것이다. 너무 취하거나 마취 상태에 있으면 육의 아픔을 느끼지 못하듯이 말이다. 그는 마냥 행복했던 것이다. 어떤 핍박도 어떤 아픔도 그의 이 행복을 빼앗아 갈 수는 없었다. 그의 눈이 이미 천국의 포로가 되었기 때문이다.
그에게는 세상 어떤 것도 이보다 더 좋을 수는 없었다. 그런데 안타까운 것은, 그의 눈에는 선명하게 보이는 천국이 세상 사람의 눈에는 전혀 보이지 않는다는 것이다.
천국은 아무에게나 보이는 것이 아니다. 오직 성령의 눈을 가진 사람에게만 보이는 오아시스가 있는 신기루다.
그러면 오늘날 믿음의 사람은 어떤가?
그들은 천국을 보는 것보다 훨씬 더 귀한 은혜를 입은 사람들이다.
‘성령이 영원토록 너희와 함께 있을 것이요, 너희 속에 계시겠음이니라’(요14:16,17)
믿는 사람 속에는 성령님이 함께 살고 계신다. 성령은 바로 하나님이시다. 그래서 우리는 하나님을 간혹 보는 그런 사람이 아니라 늘 성령이 내 속에 함께 계시는 축복을 받은 사람들이다. 스데반이 일시적으로 천국을 보고 행복해 했다면, 성령과 늘 함께 살고 있는 우리들은 늘 황홀경에 빠져서 사는 것이 당연할 것이다. 믿음의 사람은 그래서 행복한 사람들이다. 그리고 예수님이 우리에게 기도에 대해서 기르치실 때 ‘오직 너희는 그의 나라를 구하라’고 하셨다.(눅12:31) 그리고 주님이 가르쳐 주신 기도문에도 ‘하나님의 나라가 임하게 하옵소서’라고 기도하라고 하셨다. 이 말씀은 천국이 우리에게 얼마나 중요한가를 말해 줄 뿐만 아니라, 이 천국을 구하는 자에게 반드시 주시겠다는 응답의 약속이 들어 있다. 따라서 세상 무엇보다도 소중한 천국은 우리가 기도할 때 우리 가운데 임하게 되어 있다. 그러므로 기도하는 사람들에게는 천국이 항상 임해 있다. 이 얼마나 감동적인 일인가!
참 믿음의 사람은 늘 천국과 주님을 마음 속에 모시고 살고 있다.
그런데 어찌 천국을 볼 수 없겠는가! 날마다 이 감격과 확신이 우리 속에 넘쳐야 한다.
늘 천국을 보는 사람이 참 천국백성이다. 그에게는 세상의 어떤 권세도 힘을 쓸 수 없다.
2) 사람을 보는 눈이 달라진다.    
성령으로 충만함을 받으면 천국을 보는 눈이 열리지만, 세상과 사람을 보는 눈도 달라진다.
스데반은, 돌로 쳐서 자기를 죽이는 사람들을 미워하지도, 저주하지도 않았다. 그들을 진정으로 불쌍히 여겼다. 그리고 자신은 그들에 의해서 죽어가고 있었지만, 그들을 살리고 싶어했다. 그래서 스데반은 마지막에 이 기도를 하고 죽는다.
‘주여 이 죄를 저들에게 돌리지 마옵소서!’(60)
‘주여 이 죄를 제가 대신 지게 하옵소서!’    
‘주여 저희를 사하여 주옵소서!’
십자가에 계신 예수님이 우리를 살리기 위해서 하나님께 드렸던 바로 그 기도를 드렸던 것이다. 이것은 절대로 억지의 기도가 아니었다.
죄인들을 진정으로 사랑하는 마음의 절규였던 것이다.
성령이 충만하면 나의 속 사람이 변하는 것은 당연하다. 성령은 변화의 영이다.
사람을 미워하던 마음이 사라진다.
복수심은 축복심으로 바뀌고, 원수는 친구로 변한다.
사람을 보는 눈이 예수님을 닮아가게 된다. 이것이 바로 성령이 주시는 능력이다.
‘주여! 사람을 보는 눈이 주님처럼 바뀌게 하옵소서!’
성령의 충만함을 받으면 사람을 진실로 사랑하게 된다.
죄인일수록 더욱 사랑하게 된다. 죄인에게는 그만큼 더 큰 사랑이 필요하기 때문이다.
얼마 전엔 가슴 아픈 기사가, 많은 사람들을 안타깝게 했다.
한국 최고 기업의 귀한 딸로 태어나, 2천억원이나 되는 재산을 가지고 있고, 한국과 미국의 명문 대학을 다닌 꽃다운 나이의 젊은이가 전깃줄로 자살을 했다는 비보가 있었다.
물론 나름대로 힘든 사정이 있었겠지만 그것이 과연 목숨을 버려야 할 만큼 중요했을까?
세상에는 자신 한 사람도 사랑하지 못하는 사람들이 많다.
그들은 삶의 어려움이 오면 자신을 쉽게 포기하려고 한다.
그러나 성령에 붙들려 있는 사람은 분명히 다르다.
세상 사람들은 자신도 포기하려고 들지만, 성령의 사람은 죽을 수 밖에 없는 죄인도 포기하지 않는다. 스데반이 자신은 죽어 가면서도 자신을 죽이려고 했던 사람들은 살리려고 했듯이 말이다.
그래서 그의 죽음은 그야말로 가슴 벅찬 죽음이었다. 죄인들을 살리는 죽음이었기 때문이다.  성령의 사람은 죽어도 살지만, 세상 사람은 살아도 죽은 자와 같다.
성령의 사람은 모든 사람을 사랑으로 볼 수 있는 눈을 가진 사람이다.
그래서 성령의 사람은 모든 사람을 행복하게 한다.
천국을 보는 눈은 자신을 행복하게 하지만
사람을 사랑으로 보는 눈은 이웃을 행복하게 만든다는 것이다.
스데반은 비록 죽어 갔지만 스스로 행복한 사람이었고, 죄인을 행복케 하는 사람이었다.
천국을 볼 수 있는 눈을 가졌고, 사람을 볼 수 있는 눈을 가졌기 때문이다.
세상에서 진짜 복되고 능력 있는 사람은 돈 많이 가진 사람도, 권력 있는 사람도 아니다.
세상에서 진짜 행복하고 능력 있는 사람은 성령의 두 눈을 가진 사람이다.
스데반의 모습이 이 사실을 증명해 주고 있다.
세상에서 사람을 구분하는 귀한 방법을 말해 달라면
‘그가 성령 충만한 사람인가? 아닌가?’이다.

‘그렇다면 나는 과연 성령 충만한 사람이라 할 수 있을까?’
'나는 과연 성령의 두 눈을 가지고 있는가?'
주님 앞에서 자신에게 진지하게 꼭 물어 보아야 할 중대한 인생의 질문이다.

27 コメント

유광옥

2005-12-07 00:58:32

주님 앞에 나아가 기도 할 때마다 성령 충만함을 달라고 기도하고
있지만 늘 부족한 나를 발견한다. 스데반이 성령충만으로 죽음 앞에서도
담대하며,남이 볼 수 없는 것을 확인 했듯이..그리고 자기를 죽이려 했던
사람들을 살리려는 마음을 가질 수 있었듯이 성령의 능력은 참으로 위대하나
‘성령이 영원토록 너희와 함께 있을 것이요, 너희 속에 계시겠음이니라’ 라는
믿음으로 내가 간구하면 나에게도 똑같은 성령이 임해 주신다고 생각하니
감사하며 구하지 않을 수 없다. 천국을 보는 눈과,사람을 보는 눈이 달라지기를
기도하고 싶다. 성령의 두 눈을 가지고 진짜 행복하고 능력있는 사람이 되고 싶다.

최수연

2005-12-07 02:11:50

성령충만이란 성령의 지배를 받아 성령의 능력으로 사는것입니다..
제가 하는것은 하나도 없습니다..
나를 온전히 죽였노라고 생각하지만, 아직도 남아 있는 나의 자아가
너무 크다는 것을 깨닫습니다..
오직 성령의 능력으로 이루어진 일들을 보며~
내가 한것 마냥 칭찬받기 원했습니다..
세상사람들의 손가락질을
속상해했습니다...
그렇게 한없이 나약한 저를 .....
주님께선 따뜻히 맞아주십니다....
아직도 주님 성품 닮아가기에 먼 저지만,
또 주님의 눈으로 보기에 너무 먼 저지만,
그래도 내안의 성령님을 놓치지 않을것 입니다..
예수님의 인격에 도달할때 까지~
더욱 성령님을 의지하고 싶습니다..

또 반대의 하나님을 잊지 않겠습니다..
세상에선 내가 진 것같지만, 주님앞에선 이긴 경우가 많더라구여~!!
주님만 생각하고 싶습니다..

오직 기도에 깨어있어 이 땅에 소망을 두기 보다 하늘에 것에 소망을
두게 하옵시고~
어떠한 상황 속에서도 예수님의 마음으로 사람들을 사랑하게
하옵소서..
예수님이름으로 기도드립니다.. 아멘

박유진

2005-12-07 02:39:19

오늘 아침 새벽기도 때, 목사님께서 하신 말씀이 마음에 찔렸습니다.
"만약 예수님이 이 자리에 와 계신다면 어떤 기도를 드리셨을까?"
예수님은 하나님의 영광과 하나님의 나라를 위하는 기도를 드리시고, 이웃 사람들을 위한 기도를 드리셨을거라고 하셨습니다. 자신의 유익을 구하는 제 기도와 너무나 비교되는 말씀이었습니다.
그래서 오늘은 나의 기도 보다는, 다른 사람을 위한 기도를 더욱 열심히 하게 되었습니다. 그리고, 제 눈이 예수님처럼 사람들을 볼 수 있게 해달라고 기도했습니다. 나에게 가시와 같은 사람을 주신 이유를, 더 사랑을 배우라고 주신건데 그 사람을 원망하고 싫어한 걸 회개했습니다. 나의 죄된 모습이 아니라, 주님의 눈으로 사람을 볼 수 있길 간절히 원합니다.
이미 내 마음속에는 성령님이 계시는데, 왜 난 그 천국에 깊이 빠지지 못할까...더 깊은 천국을 보는 기도를 드리지 못할까...라는 생각을 했습니다.
내일 새벽기도 때는...더욱더 간절히 하나님 나라와 천국을 구하는 기도를 드리고싶습니다.

최현숙

2005-12-07 03:57:09

이 말씀을 묵상하면서 내게 세상사람이 가지지 못한 한가지가 있다는 사실이 이렇게 나를 행복하게 할줄은 몰랐습니다. 내속에 계신 성령님을 통해 내가 세상을 감당하지 못한 삶이 아니라, 세상이 나를 감당하지 못한 삶을 살수 있다는 것을 확신과 더불어 감사하게 되었습니다. 세상사람이 가장 두려워 하는 것은 죽음이라고 생각합니다. 가장 두렵기에 생각조차 하지 않을려고 하는 사람들을 저는 많이 봤습니다. 그런 두려운 존재인 죽음조차도 감사함으로 받을수 있다는 생각의 변화는 내가 스스로 변한다고 해서 변해지는 것이 아님을 절실히 깨닫게 되었습니다. 스데반의 죽음을 통해 나의 죽어가는 모습을 상상해 보았지요. 나는 어떤 모습으로 죽음을 맞이할수 있을까?....
이 세상이 전부라면 죽음은 당연히 억울하고 두렵고 생각하기 싫은 존재이겠지요. 스데반이 돌에 맞아 죽어가면서도 예수님처럼 자신에게 죽음을 준 그들을 원망하는 마음이 아니라 죄인들의 죄를 용서해 달라는 기도를 드릴수 있는 힘이 바로 그안에 역사하시는 성령의 능력이라고 했습니다.

요즘 40일 특새와 말씀을 통해서 저의 생각의 변화를 경험하게 되었습니다.
타락한 본성을 인식하고 생각을 변화시킨다는 것은 정말로 자신의 힘으론 불가능함을 깨닫게 된 것이지요. 논리와 이성과 상식으로 생각한다고 하면서 그 오류에 빠져서 자신이 옳다고 주장했던 사건들이 말씀앞에 허무하게 무너져 가는 일들을 하나님은 내게 보게 하셨습니다. 내가 아무리 옳다고 생각한들 타락한 본성에서 나오는 생각들이 옳으면 얼마나 옳을까요?...
하나님께 감사드립니다. 깨닫게 해 주셔서,,,,
하나님께 감사드립니다. 볼수 있는 영의 눈을 열어주셔서,,,,,,

박정선

2005-12-07 04:41:35

사탄도 보이는 것으로 유혹한다는 것, 전의 설교 말씀을 들으면서 왜 그럴까 생각했습니다.
하나님은 믿음의 사람들에게 보이지 않는 것을 보는 '눈'을 허락하여 주셨지요.
하나님의 것을 믿음의 눈으로 바라보고 계속 달려 나아간다면 현상으로 나타나게 된다는 것 분명한 성경 말씀입니다. 그러기에 사탄이 세상의 것들을 즐기는 눈으로 믿음의 눈으로 바라보는 거룩한 상상을 빼앗는 것이 아닌지..
성령은 우리에게 ‘두 눈’의 축복을 주시며 스데반은 이 복을 받은 사람이었다는 것.
죽음 앞에서 세상이 볼 수 없는 것을 보았던 스테반처럼 나와 사랑하는 사람들은 죽는 순간에 과연 무엇을 보게 될까요?
그 하나님의 나라를 매일 매일 꿈꾸며 바라보며 말씀을 통해 상상하는 거룩한 성령의 군사가 되길 기도합니다.
하나님 나의 영안을 열어 주옵소서. 그래서 하나님의 사랑으로 다른 사람을 사랑하고 하나님이 주시는 말씀으로 말하고 하나님이 주시는 마음으로 축복할 수 있는 권세를 주옵소서.
나를 버려두지 마시고 주님의 사람으로 불러주셔서 사막에 오아시스와 같은 역할을 감당하는 자가 되게 하옵소서.

木下 

2005-12-07 05:09:37

聖霊様で満たされた人には、2つの目の祝福を与えてくだるということに恵みを受けました。
特に、愛の力によって人の見方が変わり、人を幸せにするようにするということに対して自分は
どれだけ実践できているのかと考えてみると、十分ではなく不足していると考えられます。
自分自身の状況、感情、心の態度によって自分自身の中に他人に与えるほどの愛が残っていないと感じることがあるからです。また、自分が無意識的に人と接するときに、固定観念や他人からの情報などの色眼鏡という歪んだフイルターで判断してしまうこともあるように感じます。目に見えない神を信仰しているというのに、目で見えるもの、見た目によってのみ判断してしまうことを
繰り返してしまうのかもしれません。聖霊様が弱い私に力と導きを日々与えていただくことを願います。

이미령

2005-12-07 05:12:51

수도없이 예수를 팔아먹은 사람입니다...
스데반 처럼 순교하고 싶지만....
주님보다 나를 더 사랑하기에 그럴수 없는 인간입니다..

그럼에도...이세상에서 믿음으로 구별된 삶을....
살수있게 해주시는 은혜가 감사합니다
내눈에 주의 영광을 볼수있게 해주시는 은혜가 감사합니다
나를 귀히여기시는 주님의 사랑 때문에...
어떤경우에도 주님을 찬양하며 최후 승리를 얻기를 갈망합니다...

박은주

2005-12-07 06:28:15

성령이 충만하면 하나님을 보는 눈(천국을 보는 눈)과 모든 사람을 사랑하는 눈을 가지게 된다고 말씀하셨다.
스데반은 십자가의 마지막 예수님과 똑같은 모습으로 이 세상의 생을 마감한 것을 볼 때 그 속에 성령으로 충만하게 채워져 있었구나를 알 수 있다.
주님은 지금, 나에게 말씀하고 계신다.
은주야 너의 십자가를 지고 내가 갔던 그 길을 너도 따라 오라고
이제 방관자의 모습이 아니라 멸시,천대,고난을 받더라도 잠시 괴로움에 지지말고 용기잃지 말고 당신이 걸어가신 그 길을 따라 오라고 하신다. 그래야만 영원한 영광의 하나님 아버지의 나라에서 함께 할 수 있다고 말씀하신다.
진정으로 나를 힘들고 아프게 했던 사람들의 구원을 하나님께 빌고, 잠시 세상의 것에 맘을 빼앗기지 말고 십자가를 사랑하라고 달게 지라고 말씀하신다.
이 모든 것이 내 혼자만의 의지로 한다면 엄청나게 힘들어 보이지 모르지만 주께서 먼저 본을 보이셨고 성령이 함께 도우신다고 성경에 약속하신다.
충만케 하소서, 충만케 하소서, 오직 내 속에 성령이 충만하여 늘 천국을 보고 그리스도의 눈으로 형제, 자매를 대할 수 있기를 간절히 원합니다.

김철중

2005-12-07 07:11:25

스데반이 죽을때의 모습과 예수님이 돌아가실때의 모습이 비슷했다는 사실에 도전을 받았다. 그동안 예수님께서 돌아가시면서 죽이는 그들을 축복하신것은 하나님의 아들이니까 가능했으리라는 생각에 나와는 좀 거리가있는것이라 생각했는데 평신도인 스데반이 예수님과 비슷한 상황에서 같은 축복을 했다는것에 동일하신 성령님을 느낄 수 있었다. 동일하신 성령님 저에게도 임하여 주셔서 주님의 마음을 품게 하여 주세요.

정승은

2005-12-07 10:41:18

나는 과연 성령충만하여 천국을 보는 눈과 모든 사람을,특별히 원수까지도
사랑하는 눈을 가졌는가..하는 질문을 해보았다.
나의 영적인 눈을 굳이 표현한다면,가끔은 반쯤 감은 게슴츠레한 눈일때도
있었고,또 가끔은 충혈되어 혈기를 품은 눈이 될 때도 있었고,어쩔땐
한쪽눈은 아예 감고 다닐때도 있었던 것 같다.아니,아주 가끔은 두눈을 뜨지
않고 세상을 바라보고 있을때도 있었던 것 같다.부끄러울 뿐이다.
평신도였던 스데반이 성령충만 하여 죽음의 순간에도 예수님처럼..돌로
자신을 치고 있는 자들을 용서해달라고 했다는 그 부분에서..
난 고개가 숙여졌다.
물론 스데반이 영적인 눈이 열리지 않고,천국을 보지 못했다면,
성령충만으로 그를 채우지 않았었다면 그도 자신을 향하는 돌들을 기꺼이
맞으며,그들을 위한 용서의 기도를 하지는 못했을 것이다.
이런 판단을 하고 있는 내가 선택해야 할 믿음이 분명해 지는 것 같다.
성령충만을 위해 날마다 기도해야 하고,혹여 성령충만 하게 된다 해도
그것을 지키기 위해 애써야 할 것이다.천국을 바라보고,하나님을 향하여
영적인 두 눈을 부릅뜨고 세상과 맞선다면,나를 아프게 하고,힘들게 하는
사람들을 미워만하기 보단,불쌍하게,궁휼하게 여기는 마음이 앞서게 되지
않을까 싶다.
나도 아기처럼 할 수 없다고만 말하는 신앙이 아닌,이젠 조금씩 스스로
해나가는 믿음을 갖고 싶다는 생각을 했다.
쉬운길만 찾아다니고,편안한 사람만 만나고,행복지수만 높이기 위하기만 하는
삶이 아닌,내가 다른 이들을 위한 축복의 통로가 되기 위해 노력해보자..
하는 마음을 갖게 해주시니 감사하다.
그래도 아직 내겐 미움과 분노에 대한 회개가 부족하고,
주님의 은혜에 대한 감사가 부족하다!

김경희

2005-12-07 16:27:58

스데반의 모습속에서 주님의 모습을 발견할수 있었다.
자신의 아픔과 고통은 상관치않고 자신을 핍박하는 사람들을 위해 기도하는 모습.
내자신은 어떠한가 내입장만 생각하고 상대방에 입장은 생각지 않는 이기적인 모습.
주여! 오늘도 주님의 성품에 10분에 1일라도 닮아가는 하루가 되게 하소서.

김부영

2005-12-07 16:51:33

우리는 간혹 물건을 찾을때 나는 여전히 줄곧 열심히 찾고 있는데 찾지
못하고 상대방에게 너무 쉽게 찾을때가 있다
그 물건은 보고도 보지 못할때가 있다
우리와 하나님도 마찬가지 인거 같다 하나님은 항상 우리와 함께
계신데 그 하나님을 보고 느끼는 사람과 전혀 못느끼는사람

요즘 우리의 주위를 보면 너무나 멋진 단풍들이 세상을 얼마나 아름답게
만드는지 모른다 그 단풍나무를 보며, 하늘을보며 내 주위의 사람들을
보며 우리는 하나님을 만나게 된다
내가 좋아하는 사람과 햇빛따뜻한 공원에서 단풍나무에 바람이 불어
단풍들이 눈처럼 떨어지는것을 보고 있으면 천국과 같다는 생각을 한다

내가 사람들을 보는 눈도 예수그리스도를 닮기를 원합니다.
그리고 내 안에 성령 충만해서 세상이 나에게 주는 아픔으로 자유하길
소원합니다.
내 두눈이 육의 껍데기 1.0 1.0의 시력이 아니라 성령의 두 눈
영의 눈으로 세상을 볼 줄아는 그래서 나에게 필요없는 죄를 유혹하는
것을 보게 하지 마옵시고
불쌍한 이웃들 보게 하여 주시고 그리고 무엇보다 항상 나와 함께
계시는 주님을 볼수 있게 하옵소서

이용준

2005-12-07 17:28:49

믿음의 사람은 세상 사람과 구별되어야 한다.
믿음의 사람은 세상이 감당할 수 없는 힘을 가지고 있다.
그는 세상 사람은 갖지 못한 성령으로 충만한 사람이었다.
세상사람을 천국사람으로 바꾸는 가장 위대한 힘은 ‘성령’이다.

한국에서는 성령을 체험하기란 그리 어렵지 않다고 생각됩니다
하지만 불같이 타오른 성령을 항상 가지고 있기란 쉽지가 않습니다

스테반에 성령의 충만한 모습은 늘 말씀을 붙들고
수많은 사탄의 유혹에 견딘 오랜 노력과 인내의 결과로 보입니다
제가 보는 스테반은 꾸준히 인내하며 노력한 사림이 아닌가
생각이 됩니다

이지영

2005-12-08 06:38:45

성경에 나오는 인물중에..훌륭하신 믿음의 선배님들이 많지만,,, 그들중
저에게 가장 영향력을 끼치신분이..예레미야 선지자와 바로 본문 말씀의 주인공인 스데반집사님 이십니다...

인내와 너그러움과, 사람을 품을 줄 아는 스데반 집사님의 모습을 닮고 싶습니다....

성령님의 힘을 입어, 천국을 볼 줄 아는 영안이 열리고, 구별없이 모든 사람을 품을 수 있는 사랑의 눈이 뜨여지고 싶어요~

그러려면, 성령님과 친해져야되겠지요?
말씀읽기를 게을리 하지 말고, 암송을 즐거워하며, 무엇보다도, 모든 행동을 성령님께 맡기고 , 순종하는 삶을 살면, 성령님과 더 친해지겠지요?
성령님과 친해지고 싶습니다...~~

인선정

2005-12-08 12:52:32

믿음의 사람들은 결정적인 순간에 담대하다고 들은바 있습니다. 스테반처럼 예수님을 전하다 죽은 수많은 믿음의 선배들, 선교사들이나, 영화 시오카라토오게에 나오는 주인공처럼 예수님의 가르침대로 타인을 위해 자신을 희생할 수 있는 분들의 용기는 믿음에서 나오고, 그 믿음은 목사님의 설교대로 남이 보지 못 하는 것을 볼 수 있기 때문이라고 생각합니다.

김민정

2005-12-08 17:30:12

요즘 저는 하루에도 몇번씩 '예수님처럼 살자'하며 속으로 마음을 다잡고 있습니다.
예수님께서 나의 죄를 용서해주신 것처럼 나도 내 주위사람들을 용서하고, 예수님께서 나를 사랑하신 것처럼 나도 그들을 사랑하려고 마음을 다해서 노력하고 있습니다.
지난 주일은 시험때문에 주일 예배를 못드려서인지... 말씀의 힘을 받아야하는데 그 힘을 못받아서인지... 한 주 시작이 힘들었습니다.
믿지 않는 우리 룸메이트를 위해 기도할때, 세족과제를 할때 진심으로 그들을 위해 기도해야하는데 제 마음에 하나님 기뻐하시지 못하는 마음을 품게 되었습니다.
'나도 지금 힘든데... 이들까지 섬겨야 하다니...' 하며 한 숨을 쉬기도 했습니다.
하지만, 이 섬김이 하나님을 기뻐하시게하고 영광을 돌리는 일이기 때문에 하나님 앞에서 눈물로 회개를 했습니다.
차마 룸메이트들이 있는데서는 할 수가 없어서 조용히 화장실에 가서 무릎을 꿇고 기도를 시작했습니다. 하나님 앞에서 힘든 모든 마음을 눈물로 내려놓고 나니 마음이 편안해졌습니다. 그리고 그대로 '하나님께서 모두 다 책임져주세요'하고 맡겨버렸습니다.
믿음의 사람의 모습을 지켜나가기가 쉽지 않다는 것을 많이 많이 느낍니다. 하지만 꼭 지켜나가야 한다는 것을 제자훈련을 통해서 배움니다.
제에게는 이 환경이 적용의 최고의 환경인것 같습니다.
아직 스테반의 믿음까지는 아니지만 곧 그렇게 되려고 오늘도 믿음의 성장을 위해서 발버둥(? ^^)치겠습니다.
하나님 아버지, 지금 저와 함께하고 계시죠?
제발, 우리 룸메이트를 하나님 나라의 자녀로 인정해주세요~~ 제발~~제발~~

라문진

2005-12-09 04:20:33

성령이 충만한 사람은 세상사람들과 다른 눈을 가지고 있다.
천국을 보는 눈은 자신을 행복하게 하지만
사람을 사랑으로 보는 눈은 이웃을 행복하게 만든다는 것이다.

얼마나 멋진 일인가?
자신도 행복하고 그 힘으로 이웃까지 행복하게 만들고, 심지어 자신을 죽이는 사람들을 용서하고 그들의 죄까지 자기가 책임지려는 모습 - 분명 세상사람과는 다른 모습이다.
아니, 나와는 진정으로 다른 모습이다.

믿음의 사람으로서 세상의 사람들과 구별되는 것이 없다면, 그 믿음은 헛된것이다.
성령이 충만한 삶을 살기를 원한다.
항상 내안에 계시는 성령님을 느끼며 살고 싶다.
목적삶에서 배운것 처럼 성령의 힘은 우리의 삶에서 조용하고 약하게 나타나기도 하신다고 했다. 성령의 힘을 믿으며 내가 변화되기를 기도한다. 시간이 걸리는 성장일지라도...

홍인기

2005-12-09 12:16:18

예수가 선택한 십자가...... 시간가는줄 모르고 읽다보니 벌써 야심한 새벽이군요. 감동의 은혜가 떨어지기 전에 왔습니다.

믿음이 있다고 하면서 세상과 다른 것이 전혀 없다면 그의 믿음은 헛것이다라는 말씀에 다시한번 뜨끔했습니다. 저한테 하는 말씀이시더군요......
제자훈련 받으면서 세상사람과 구별안되는 제모습을 더욱더 많이 보게 됩니다. 이것이 믿음이 부족해서 오는것임을 다시한번 깨닫고 있구요.
믿음으로 오는 영안..... 천국을 보는 눈과 사람을 보는눈 , 세상사람과 다른 모습으로, 세상사람들에게 모범이 되는 삶을 살게 해달라고 기도하고 노력하고 싶습니다.
삼위일체 하나님의 사랑과 은혜를 더 깊히 깨달을 수록 남들을 대하는 태도도, 하늘 나라를 사모하는 마음도 이전과는 달라지리라 믿습니다.
많은 은혜와 사랑을 주시는 하나님의 은혜를 찬양합니다.

이젠 집에가야 겠습니다. 좀있으면 모두들 새벽을 깨우러 가시겠네요. 다들 깨우는 새벽을 저만 못깨우는것 같아 죄스럽습니다. 자기전에 꼭 새벽기도 생각하면서 기도하고 자겠습니다.

김기웅

2005-12-10 01:15:54

내 힘으론 안되는거 압니다. 어쩔때는 똑같은 잘못 매번 저지르고, 너무 미안해서
하나님께 회개기도 안하기도 합니다. 매번 저는 똑같은 일을 반복하며, 그냥 똑같
이 그렇게 믿지않는 사람이랑 똑같이 그냥 그냥 삽니다. 그게 접니다.
특새 기간동안 좋은말씀 무지 많이 받고있습니다. 주일말씀또한 정금같습니다.
하지만, 나혼자 힘만으론 안되는거 아시는 하나님... 불쌍히 여겨주셔야 합니다.
삼위일체되신 하나님.. 제 삶속에 늘 성령님이 함께 하시는 그런 기적같은
생활인이 되고 싶습니다. 아시지요..제가 얼마나 불쌍한지여. 도와주세여...

이소진

2005-12-10 02:45:18

성령충만, 그로인한 천국을 보는 눈과 사람을 보는 눈의 변화,
너무 귀하다. 더욱이 그것은 사람의 힘으로 되는것이 아니라 성령충만으로 인해 이루어진다는 것이 은혜롭다.
나를 죽이려는 사람들을 위해 진실로 진실로 기도하는 스데반의 모습
현실의 나와 정말 다르다.
하나님, 성령충만으로 인해 이웃의 기쁨이 되고 그들을 진정으로 사랑하는 자가 되도록 마음을 허락해 주세요.
하나님과 하나님의 그 크고 거룩한 나라를 위해 달리겠습니다..

배미화

2005-12-10 02:54:30

성령의 두눈으로 보길 간절히 기도합니다.
천국을 보는 믿음의 눈과 사람을 사랑으로 보는 눈을 갖길 원합니다.

제자훈련을 받기전 사람을 미워하는 것에 대해 별 죄책감이 없었지만,
지금은 사람을 미워한다는게 너무 힘이 들고 고통스러울수 없습니다.
이렇게 힘든거 하기싫어서 안할려구, 기도하고 노력한 결과 그 사람들을 사랑으로 바라보는 눈이 주셨습니다.
너무 감사합니다.

김정아

2005-12-10 06:01:16

성령의 충만함은 내 생각이 아니라 성령의 의지대로 살아가며 성령의 뜻을 품고 쫓아 살아가는 것이겠죠. 그렇다면 성령의 충만함은 역시 영이기 때문에 내 영을 강하고 담대하게 붙들어 주시는 거죠...
그런데 요즘 육적으로 너무 힘들다 보니 내 영이 약해짐을 참 많이 느낍니다...
쌓인 피로에 풀새 없이 또다시 쌓이는 피로가 나를 참 많이 힘들게 합니다.
이제는 체력이 점점 약해져서 마음까지 약해지니... 암것도 할 의욕조차 생기지 않네요......잠을 못 잔지.... 몇주.... 몸은 피곤한데... 밤만되면 눈이 말똥말똥... 강제로 나 자신을 재워 보지만 잠은오지 않고 이리 뒤척 저리뒤척... 그러다가 새벽기도 가고 .... 학교갔다가 낮에 알바가면 그때부터 또다시 졸음이 쏟아집니다... 겨우겨우 참고 알바 끝나고 집에 가서 잘라 하면 또다시 눈이 말똥말똥 .. 또다시 나를 강제로 재워보지만 눈만 감은 채 잡념으로 둘러싸입니다..이러기를 한달이 다 되어가는것 같습니다..5시간을 자면 2,3시간은 깊히 잘지 몰라도 나머지는 눈만 감고 그저 잘려고 애쓰는 시간입니다...요즘엔 눈이 따가워서 ... 알바하기도 힘들정도입니다...
... 체력이 약해지면 또다시 비염이 좋다하고 나에게서 떠나지 않습니다.. 그래서 그런지 콧물에 콧막힘에 하루종일 코 끙끙거리며 지내다가도 넘넘 화가나서 눈물이 날 때도 있습니다...
몸이 약해짐을 느끼고 힘듦을 느끼면서 내 영이 참 많이 약해지는 것 같습니다...
여전히 성령께서는 내 안에서 일하고 계신데... 난 왜 이렇게 약한지 모르겠습니다

스데반이 죽을 때.. 그리고 예수님이 십자가에 돌아가실 때에도 그들은 외적으로 드러나보이기 보다 내적인 힘이 강했다고 하셨습니다

예수님이 십자가에 달렸을 때, 예수님을 십자가에서 내리는 힘이 위대한 것이 아니라(만약 있었다면), 우리를 대신해서 십자가를 끝까지 지시는 예수님의 내적인 힘이 위대한 것이었고,
스데반이 돌에 맞아 죽어갈 때, 그 돌을 던진 사람에게 되돌아가게 하는 힘이 위대한 것이 아니라(실제로는 없었지만 만약 있었다면), 그 돌을 끝까지 맞으며 천사같이 죽음을 맞이했던 스데반의 내적인 힘이 위대한 것이었다.

그렇다면 나는 육적으로 강하진 못하지만 내적으로는 힘들고 어려워도 포기하지 않고 끝까지 주님의 제자로 성장해 나가며 주의 뜻을 이루어드리며, 그것을 향해 지금도 달려 나갈 것입니다.

오경환

2005-12-11 11:53:38

이목사님, 오랜만에 인사드립니다. 2003년 1월 부터 3월까지 성가대로 섬겼던 오경환 집사입니다. 광주과학기술원에서 저는 주님의 은혜로 잘지내고 있습니다. 목사님의 설교문이 저의 심령을 다시 깨웠습니다. 내가 기도할 때 내게 천국이 임해있다는 사실 깨달음을 주신 것 감사합니다. 자주 들리진 못하지만 가끔 홈페이지에 들려 목사님 말씀과 교우들 사진을 보곤합니다. 중앙영광교회를 위해 또한 기도하겠습니다.

노재훈

2005-12-11 21:24:57

스데반처럼 성령이 충만하여 하나님의 사랑을 온전히 전화고 싶지만 내 자아가 너무 강해 용서가 안될때가 많이 있습니다.
성령이 충만한 하나님의 천국을 보는 내적 외적의 눈을 가진 사람이 되도록 기도하겠습니다.

정한나

2005-12-12 20:39:18

늘 느끼는 것이지만 이런 귀한 말씀을 더 많은 사람들이 들을 수 있다면 얼마나 좋을까하는 안타까움이 있습니다. 오늘도 영적인 두눈의 시력을 위해 하나님앞에 나아가 말씀과 기도로 제 두눈을 새롭게 하길 소원합니다.

이용규목사

2005-12-12 22:40:08

오경환 집사님! 안녕하세요.
바쁘신 중에서 저희 교회 홈페이지를 방문해 주시고 글까지 남겨 주셔서 감사합니다. 잠시 계셨는데도 큰 사랑을 남겨 주셨습니다.
홈페이지를 통해서라도 자주 교제 나누었으면 합니다.
늘 건강하십시오.

정한나 자매님! 감사합니다.
이렇게 늘 말씀의 귀한 나눔을 주셔서
주의 사랑과 은혜가 더 풍성히 넘치게 하심을 감사합니다.
생명의 주님의 역사가 함께 하시길 기도합니다.

한영진

2006-07-30 09:39:52

성령의 사람은 모든 사람을 사랑으로 볼 수 있는 눈을 가진 사람이다.

이 말씀이 또 다시 저를 한없이 부끄럽게 합니다.
저는 이번 주 내내 한사람에게 당한일이 분하여 어떻게 하면 멋지게 그 사람에게
되갚음을 할수 있을지 틈만나면 생각하고 있었습니다.
그 사람의 터무니 없는 독선이 너무나 참을 수 없어서
다시는 그 사람을 이 두눈으로 보지 않게 되기를 바랬습니다.
다른 사람들도 나를 동정하며 그가 옳지않다고 했습니다.
그런데 전과달리 그를 미워하는 제가 그다지 옳다고 생각되어 지지도 않았고
무엇보다 주님께 떳떳하지 못 했습니다. 부끄러웠습니다.
믿음을 가진 제가 그와 조금이라도 달라야 한다고,
온유한 마음을 갖고자 기도드렸습니다.
전과같이 복수심에 내 자신을 내맡기지 않게 된것은 모두 말씀 덕분입니다.
그러나 그 복수를 행동으로 옮기지는 않았다고 해도
자꾸만 내달리는 분노에 브레이크를 걸었다고는 해도
저는 진심으로 그를 용서한 것이 아닙니다.
이 순간도 그를 생각하면 기분이 좋지 않고, 또 이런 제 자신이 슬프게 느껴집니다.
내 자신, 얼마나 죄 많은 사람인지 알면 알수록 남에게 향한 분노, 복수심,
경멸의 크기는 작아집니다.
하지만 그것으론 부족합니다.
저는 성령충만함으로 지금의 이런 제가 변화 받아
진심으로 사람을 용서하고 사랑할 수 있기를 너무나 간절히 바랍니다……

Board Menu

リスト

Page 51 / 55
Status 番号 タイトル 投稿者 日付 閲覧数
  98

구원 받은 자의 모습

17
이용규목사 2006-01-31 635
  97

創造

1
이용규목사 2006-01-19 453
  96

창조

16
이용규목사 2006-01-17 613
  95

家族

이용규목사 2006-01-15 417
  94

가족

22
이용규목사 2006-01-12 616
  93

三つよりの教会

1
이용규목사 2006-01-04 431
  92

삼겹줄 교회

20
이용규목사 2006-01-02 811
  91

プレゼント

4
이용규목사 2005-12-29 485
  90

선물

17
이용규목사 2005-12-27 695
  89

천국 준비

23
이용규목사 2005-12-20 638
  88

건강

23
이용규목사 2005-12-12 765
  87

두 눈

27
이용규목사 2005-12-06 583
  86

5시 인생

24
이용규목사 2005-11-30 681
  85

이웃

22
이용규목사 2005-11-22 582
  84

인생의 파종법

24
이용규목사 2005-11-16 775
  83

방향전환

26
이용규목사 2005-11-08 708
  82

간수를 사랑하신 하나님

24
이용규목사 2005-11-01 724
  81

룻이 가진 보석

23
이용규목사 2005-10-25 905
  80

두가지 부활

29
이용규목사 2005-10-18 704
  79

십자가의 성품

28
이용규목사 2005-10-11 729

   

sketchbook5, 스케치북5

sketchbook5, 스케치북5

나눔글꼴 설치 안내


이 PC에는 나눔글꼴이 설치되어 있지 않습니다.

이 사이트를 나눔글꼴로 보기 위해서는
나눔글꼴을 설치해야 합니다.

설치 취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