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중앙영광교회

십자가에 못박힌 그리스도

이용규목사, 2007-04-03 22:49:3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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십자가에 못박힌 그리스도

말씀//고린도전서1:22-25

1.        사람들이 좋아하는 것 2가지
‘유대인은 표적을 구하고 헬라인은 지혜를 찾으나’(22)
세상 사람들이 좋아하는 것 2가지가 있다. 그것이 무엇인지 아는가?
그것은 바로 기적(표적)과 지혜이다. 유대인 같이 종교성이 강한 사람은 늘 신비로운 기적을 좇아 다닌다. 심지어 오늘날 그리스도인들 중에서도 기적을 좇아 다니는 사람들이 적지 않다. 그리고 그리스인 같이 예술과 철학적인 면에 뛰어난 사람들은 새로운 지혜들을 찾아 다닌다. 자고로 기적(초능력)과 지혜(소피아)가 있는 곳에는 사람의 발길이 끊이지 않는다.  
그런데 바울과 그 일행은 달랐다. 그들은 사람들이 그렇게 사모하던 세상의 기적과 지혜에는 전혀 관심이 없었다.
‘또한 모든 것을 해로 여김은 내 주 그리스도 예수를 아는 지식이 가장 고상함을 인함이라 내가 그를 위하여 모든 것을 잃어버리고 배설물로 여김은 그리스도를 얻기 위함이라.’(빌3:8)
그들은 세상 무엇과도 비교할 수 없는 최고의 능력과 지혜를 발견했기 때문이다. 그것은 과연 무엇일까? ‘우리는 십자가에 못박힌 그리스도를 전하니’(23) 그것은 바로 ‘십자가에 못박힌 그리스도’였다. 바울은 ‘십자가에 못박힌 그리스도’를 발견하고 그 능력을 누려 보니 너무 너무 좋아서 그 귀한 것을 다른 사람들에게 전하지 않으면 안될 정도였다. 그래서 그는 이 일에 자신의 전 인생을 바치게 된다.
그런데 참으로 안타까운 사실이 있다.
바울과 그 동료들에게는 전 인생을 다 드려도 전혀 아깝지 않는 ‘십자가에 못박힌 그리스도’가 유대인에게는 걸려 넘어지는 돌이요, 이방인에게는 어리석은 것이 되어 버렸다. 전혀 받아 들이지 못한다는 것이다. 오늘날도 마찬가지다. 우리 중에도 ‘십자가에 못박힌 그리스도’가 별로 와 닿지 않고, 자신과 거리가 너무 멀리 느껴지고, 무관심, 무감각, 무기력감에 빠져 있는 사람들이 있다. 특히 일본을 보면 너무나 답답할 뿐이다. 예수를 좀 열심히 믿는다 싶으면, 부러워하는 것이 아니라, 어리석은 자, 이상한 자로 색안경을 끼고 본다. ‘십자가에 못박힌 그리스도’가 가치가 없어진 것이 아니라, 그들이 그 가치를 모르기 때문이다. 돼지가 진주나 보석의 가치를 전혀 모르듯이 말이다. 가치는 아는 만큼만 누리게 된다. 믿음은 가치관이다. 가치관이 바뀌지 않은 믿음의 사람은 없다. 예수님은 3년 동안이나 집중적으로 제자들을 훈련시켰다. 훈련 받은 그들에게 바뀐 것이 무엇인가? 환경인가? 지식인가? 아니다. 오직 그들의 가치관이 바뀌었을 뿐이다. 세상 중심의 가치관에서 예수 중심의 가치관으로 바뀌었다. 그래서 그들은, 비록 예수님이 이 땅에 안 계시지만, 그들만 남겨져 있었지만, 전혀 요동치 않고 예수 한 분으로 만족한 삶을 살았고, 예수 한 분을 위해 목숨까지도 아까워하지 않는, 세상을 이기는 삶을 살게 되었다. ‘십자가에 못박히신 그리스도’는 어제나 오늘이나, 유대인이나 헬라인이나, 일본인이나 한국인이나 동일하신 분이시다. (히13:8) 동일한 은혜와 능력을 가지신 분이다. 변함이 없으신 분이다.
냉정하게 자신을 한번 돌아보자. 당신에게 있어서 ‘십자가에 못박힌 그리스도’는 어떤 분인가? 유대인이나 이방인들처럼 거리끼는 것, 미련한 것인가? 아니면 바울처럼 ‘십자가에 못박힌 그리스도’는 ‘하나님의 능력’이요, ‘하나님의 지혜’라고 다른 사람에게 전할 수 있겠는가? ‘십자가에 못박힌 그리스도에 대한 가치관이 당신의 믿음의 현주소를 잘 말해 주고 있다.
‘십자가에 못박힌 그리스도’는 [세상]의 능력이나 지혜가 아니라, [하나님]의 능력이요, 지혜이다.(고전1:24)
하나님의 능력과 하나님의 지혜로 살기를 원하는가? 간단하다. ‘십자가에 못박힌 그리스도’를 모시고 살면 된다.(갈2:20) 그러면 하늘의 능력과 지혜가 당신의 인생에서 흘러 넘치게 될 것이다.
‘십자가에 못박힌 그리스도’는 과일에 비유한다면 완전히 익은 과일이다. 즉, 구원의 완성의 모습이다. 돼지가 진주를 발로 밟아 무시하더라도 진주는 진주이듯이, ‘십자가에 못박힌 그리스도’는 사람들이 미련하게 보더라도 사람의 지혜보다 지혜롭고, 약하게 보더라도 그것은 사람보다 강하다.(25)
  
2.        하나님의 능력과 지혜
그러면 어떻게 해서 ‘십자가에 못박힌 그리스도’가 하나님의 능력과 지혜가 될 수 있을까? 이것은 당신의 죄와 사망의 문제를 해결해 줄 수 있는 유일한 능력이기 때문이다.
1)        아담의 죄-원죄(原罪)
당신은 죄가 없다고 생각하는가? 누가 당신에게 ‘당신은 죄인입니다.’라고 말하면 어떤 기분이 드는가? 당신이 기분이 나쁘건 좋건 상관없이 당신은 죄인이다. 심지어 당신이 죄를 지었건, 안 지었건 당신은 확실한 죄인이다. 이것은 당신의 지금의 삶의 모습 때문이 아니라, 아담의 원죄(original sin) 때문이다. 당신과 상관없이 당신은 엄연한 죄인이다.
‘이러므로 한 사람(아담)으로 말미암아 죄가 세상에 들어오고 죄로 말미암아 사망이 왔나니 이와 같이 모든 사람(나)이 죄를 지었으므로 사망이 모든 사람(나)에게 이르렀느니라’(롬5:12)
당신이 죄인인 것은 당신 때문이 아니라 아담 때문이다.
당신의 의지와 상관없이 당신은 아담과 동일한 죄인이다. 이것이 원죄이다.
하나님은 천지를 만드시고, 특별히 사람(아담)을 위하여 동산을 만들었다. 에덴이라고 하는 동산이다. 에덴이란 뜻이 기쁨과 즐거움이기 때문에, 에덴 동산은 그야말로 ‘행복 동산’ ‘천국 동산’이었다. 그런데 아담과 하와는 하나님께 범죄하여 그만 ‘에덴 동산’에서 쫓겨나고 만다. 그들이 범한 죄는 하나님께 불순종한 죄이다. 하나님은 에덴 동산을 만들어 주면서 딱 한가지만 말씀했다. ‘선악을 알게 하는 나무의 실과는 먹지 말라 네가 먹는 날에는 정녕 죽으리라’(창2:17) 이 말씀에 불순종한 것이 아담의 죄요, 온 인류의 원죄가 되어 버렸다. 에덴 동산의 삶은 999(동산)를 얻고 1(선악과)을 얻지 못한 모습과 다를 바 없다. 그렇다면 충분히 감사하며 살아갈 수도 있었는데, 사탄은 이 1을 가지고 아담을 무너뜨려 버렸다. 받은 복만 생각하는 사람은 죄를 물리치지만, 잃은 복만 생각하는 사람은 죄를 자초하게 된다. 오늘날도 자신이 받지 못한 복만 생각하는 사람은 사탄에게 자신의 인생의 대문을 열어 놓고 있는 자다. 늘 사탄에 이끌려서 징징거리며 신세타령만 늘어 놓는다. 불평과 원망이 그의 주식이요, 걱정과 한숨은 그의 간식이다. 그러니 날마다 허기진 모습으로 기진 맥진한 삶을 살 수 밖에 없는 것이다. 건강 하려면 식단부터 바꾸어야 한다. 감사와 찬양의 식단으로 메뉴를 바꿔 보라. 인생이 놀랍도록 풍성해지고 건강해질 것이다!
2)        당신이 죄인인 증거
이제부터 당신이 왜 죄인인지를 확인해 보도록 하자.
아담이 죄를 짓고 나서 달라진 것이 무엇일까?
창3:1-6이 죄를 짓는 과정이므로, 죄를 짓기 직전의 모습은 창2:25에, 그리고 죄를 짓고 난 직후의 모습은 창3:7에 잘 나타나 있다. 죄를 짓기 전에는 ‘아담과 그 아내 두 사람이 벌거벗었으나 부끄러워 아니하니라’(창2:25)라고 했는데, 죄를 짓자 마자 ‘자기들의 몸이 벗은 줄을 알고 무화과 나무 잎을 엮어 치마를 하였더라’(창3:7)고 했다. 무엇이 달라졌는가? 원죄의 결과가 무엇인가? 죄를 짓기 전에는 옷을 전혀 입지 않던 그들이 죄를 짓자 마자 스스로 얼른 옷을 만들어 입게 된 것이다. 사람은 원죄의 결과로 옷을 입게 되었다. 원죄가 없었다면 당연히 옷도 없었을 것이다. 옷은 죄 때문에 만들어진 것이다. 옷의 기원은 원죄에 있다. 인류 최초의 옷은 무화과 나무 잎으로 만든 미니 스카트(치마)였다. 옷은 멋으로나, 몸을 따뜻하게 하기 위해서 입은 것이 아니라, 오직 한가지 이유 즉, 죄(부끄러움)를 가리기 위해서 입었다. 그러면 지금 당신의 모습을 한번 보라. 옷을 입고 있는가? 벗고 있는가? 당신에게도 분명히 원죄의 더러운 피가 흐르고 있다. 당신도 똑같이 옷을 입고 있지 않는가? 따라서 당신도 당연히 죄인이다. 옷 벋고는 살지 못하지 않는가! 죄인이 아니라고 하는 사람이 있는가? 옷을 다 벗고 살아 보라고 해 보라. 그러면 금방 깨닫게 될 것이다. 옷은 우리 모두가 다 원죄를 입은 죄인임을 말해 주고 있는 증거이다.
또 한가지 분명한 증거는 죽음이다. 창2:17의 ‘네가 먹는 날에는 정녕 죽어리라’고 하신 대로, 원죄의 결과로 모든 사람에게 죽음이란 것이 왔다. ‘한번 죽는 것은 사람에게 정하신 것이요’(히9:27) 세상에 태어나서 죽지 않는 사람은 없다. 따라서 모든 사람은 원죄를 그대로 가지고 있는 것이다.
우리 모두에게는 원죄의 확실한 증거가 있다. 누구나 부끄러움을 가리기 위해서 옷을 입고 있고, 누구나 반드시 죽는다는 증거가 있는데, 어찌 자신 속에 흐르는 아담의 원죄의 피를 부정할 수 있단 말인가?
먼저 자신이 죄인임을 고백할 수 있어야 예수님의 십자가의 보혈의 능력을 체험할 수 있다. 죄를 모르는 사람은 십자가의 은혜도 알 수가 없다.
‘나도 아담과 동일한 죄인이다!’  
3)        예수님의 의-원의(原義)
이 세상의 어떤 능력 있는 사람도 해결할 수 없는, 인류 공동의 문제가 있다. 그것은 바로 아담으로부터 물려 받은 원죄이다. 우리 모두는 이 죄 때문에 죽을 수 밖에 없는 비운의 운명의 소유자들이 되었다. 이 문제는 하나님이 풀어 주셔야만 풀린다. '그리스도께서 우리를 위하여 저주를 받은 바 되사 율법의 저주에서 우리를 속량하셨으니 기록된 바 나무에 달린 자마다 저주 아래 있는 자라 하였음이라'(갈3:13) 드디어 하나님은 이 문제를 풀어 주는 기간을 정하셨다. 고난 주간인 이번 주간이다. 아담의 불순종으로 사망의 저주를 받은 우리를, 예수님의 십자가 순종으로 생명의 축복을 받게 하셨다. 이 인류의 난제를 풀어 주신 열쇠는 바로 십자가와 예수님을 합친 것이다. 합치려면 못을 박아야 한다. 그래서 ‘십자가에 못박힌 그리스도’가 된 것이다. 이것만이 온 인류의 구원의 참 열쇠이다. 죄가 없으신 예수님이 우리를 대신해서 십자가에서 죽으심으로 죄값을 다 치렀기 때문이다. 그래서 ‘십자가에 못박힌 그리스도’는 하나님의 능력이요, 하나님의 지혜가 아닐 수 없다. 당신은 인생에 어떤 열쇠를 갖고 있는가? 앞으로 어떤 열쇠를 갖고 싶은가? ‘십자가에 못박힌 그리스도’가 당신의 인생의 마스터 키가 되기를 바란다. 이 키는 분명히 당신에게 참 자유와 생명을 줄 것이요, 하나님의 능력과 지혜를 누리게 할 것이다.
‘십자가에 못박힌 그리스도’는 당신을
‘나는 아담과 동일한 죄인이다.’에서 ‘나는 예수님과 동일한 의인이다.’로 바꾸어 주는 하나님의 유일한 능력이다.
특히 고난 주간에는 금식하며 ‘십자가에 못박힌 그리스도’를 묵상하는 삶을 지켜가길 축원한다.

(실천 사항)
찬송가 141장을 찬송하면서 매일 10분 이상 ‘십자가에 못박힌 그리스도’를 영혼으로 묵상하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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최현숙

2007-04-04 00:29:00

매년 동일하게 고난 주간은 찾아오지만, 내 마음은 해 마다 다르다는 것을 느낀다.나의 바램은 나이가 먹어감 만큼 내 영적 성숙도 숫자만큼 성장되었으면 하는 바램으로 고난주간을 맞고자 한다.
예수님을 알면 알수록 내 죄가 더 크게 보이는 은혜를 주시니 감사할 뿐이다. 내가 죄인임을 늘 말씀으로 깨우쳐 주시니 이 또한 얼마나 감사한가!
고난주간이 시작되면서 새벽재단에 목사님께서 주신 말씀이 이전에 느껴보지 못한 새로운 감동으로 내게 다가왔다. 예수님께서 사역하신 장소는 주로 갈릴리 지역이였는데 종려 주일을 맞이하여 이제 본격적인 십자가의 길을 가기 위해서 예루살렘으로 입성을 하는 장면이였다. 평화의 왕 겸손의 왕으로 오신 예수님의 모습을 말씀 속에서 하나 하나 짚어가면서 가르쳐 주신 목사님을 통한 성령의 음성을 듣게 된 것이다.
나귀를 타고 오신 예수님! 말과 대조를 이룬 나귀의 모습은 바로 '겸손의 모습'을 상징한다고 했고, 또 나귀에 오르기 전 무리들이 겉옷을 벗어 나귀 등에 얹고, 지나는 길에 펴고 또 옷이 없는 이들은 종려나무 가지를 길 바닥에 펴고서 호산나 ! 다윗의 자손이여…하면서 환호성을 울린 무리들과 함께 예루살렘으로 오신 예수님의 모습을 환영하는 장면을 말씀으로 보게 하셨다. 목사님께서 겉옷을 벗어 예수님을 환영하는 모습을 주의해서 보라고 했다. [그 당시 겉옷은 그들에게 있어서 재산 목록 1위라 하셨다] 그것은 예수님을 맞이하는 태도라고 했는데 나를 보니 참 부끄러워서 눈물이 났다. 고난주간이 시작되면서 나는 어떤 태도로 예수님을 생각하고 맞이하고자 했는가?
예수님이 내 속에 중심이 되어 있는가? 한끼 금식으로써 내 할 일에 대해서 다 했다고 스스로 자만하고 있지는 않는가? 새벽기도에 열심을 다함으로써 내 사역에 최선을 다하고 있다고 생각하고 있는지 않는가?
기도시간에 예루살렘에 입성하신 예수님을 맞이하는 무리 중에 한 사람이 되어 그 상황에 나를 설정해 놓고 기도를 하니 나의 위선과 교만이 보이기 시작했다. 눈물이 흘러 내렸다. 그리고 나의 죄가 이전 보다 더 크게 보이기 시작했다.
사도 바울이 고백한 말씀처럼 내 주 그리스도 예수를 아는 지식이 가장 고상함이라' 세상 무엇과도 비교할 수 없는 최고의 능력과 지혜가 바로 예수님을 아는 것이라고 했다.아직도 바울과 같은 고백이 나오지 않고 있다.
이 고난 주간을 통해 예루살렘에 입성하신 예수님을 위해서 자신의 겉옷을 벗어 나귀등에 얹어주는 사람, 또한 길바닥에 펴는 사람들처럼 나도 내 자신이 가장 소중하다고 여기는 무엇인가를 주님앞에 드리는 귀한 시간으로 채우고 싶다.

이정미

2007-04-04 00:32:50

하나님의 능력과 지혜로 살길 원하는가?
십자가에 못박힌 그리스도를 모시고 사는 사람이다.
그러면 하늘의 능려과 지혜가 당신의 인생에서 흘러 넘치게 된다

십자가 앞에 주님을 묵상합니다.
십자가의 예수님을 생각하면 용서하지 못할 그어떤것도 없으며..
십자가 앞에 날 내려 놓으면 난 더이상 욕심부릴것이 없어지며
십자가 앞에 예수님을 생각하면 사랑 그 자체 입니다
나때문에...

전한나

2007-04-04 00:52:24

세상 중심의 가치관에서 예수 중심의 가치관으로 바뀌었다. 그래서 그들은, 비록 예수님이 이 땅에 안 계시지만, 그들만 남겨져 있었지만, 전혀 요동치 않고 예수 한 분으로 만족한 삶을 살았고, 예수 한 분을 위해 목숨까지도 아까워하지 않는, 세상을 이기는 삶을 살게 되었다. ‘십자가에 못박히신 그리스도’는 어제나 오늘이나, 유대인이나 헬라인이나, 일본인이나 한국인이나 동일하신 분이시다. (히13:8) 동일한 은혜와 능력을 가지신 분이다. 변함이 없으신 분이다.
지난주 속회시간의 나눔내용중 예수님의 이름을 10번이상 소리내어 부르고 묵상하는 내용이 있었다.
집에와서 적용을 하기로 하고 10번이상 예수님의 이름을 소리내어 불러보았다.
예수님의 이름을 소리내어 불렀는데 내마음속의 무언가가 움직이는 것이 느껴졌다.내가 지난 일주일동안 지은 나쁜 행동들이 나의 마음속의 있어 기도할때나 생활할때 항상 죄의식에 잡혀 있어서 괴로웠는데 갑자기 나의 마음속의 내가 너한테 그렇게 가르쳤니?내가 예수믿는 사람이 그런행동을 하면 되겠니?하는 마음을 주셨고 바로 그래도 내가 너를 위해서 이렇게 대신 고통을 당하니깐 너는 이제 죄가 없다 그런데 다시는 너가 그런죄들을 짓지 않았으면 좋겠다 너가 그런죄를 그런행동과 말을 하면 내가 너무 아프단다 하는 마음의 소리가 들려왔다.
갑자기 눈물이 멈출수가 없었고 계속 죄송해요 미안해요 예수님의 마음을 아프게 했을까요 이제 누구도 내가 먼저 남을 판단하거나 그를 정죄하거나 괴롭히지 않을께요 하면서 기도를 했다.그리고는 마음속의 예수님이 나를 품에 안아주시는듯한 따뜻한 마음이 들었다. 예전같으면 세상걱정의 세상의 죄로 인해서 오히려 태만해지고 죄의 무뎌지고 했을나인데 말이다.
세상의 중심의 가치관을 예수중심의 가치관으로 바꾸고 예수님께서 아파하시는일 속상의 하시는일은 하지 않도록 오직 예수님의 기쁨이 될수있는일 십자가의 못막히신 예수님을 늘 생각하는 이번주 일주일이 되길 기도한다.

신왕수

2007-04-04 01:14:32

"바울과 그 동료들에게는 전 인생을 다 드려도 전혀 아깝지 않는 ‘십자가에 못박힌 그리스도’가 유대인에게는 걸려 넘어지는 돌이요, 이방인에게는 어리석은 것이 되어 버렸다."
→ 바울은 자신이 가지고 있는 것을 다 잃어버리고 배설물로 여기는 것이 바로 그리도를 얻기 위함이라고 하였다. 바울의 인생 중에서 기적은 찾아볼수 없다는 말에 살짝 놀라면서 나도 기적을 바라는 유대인의 성향이 있구나 하는 생각이 들었다. 정말 예수님 그 한분만으로 행복하고 만족하게 되길 소망한다.

"에덴 동산의 삶은 999(동산)를 얻고 1(선악과)을 얻지 못한 모습과 다를 바 없다. 그렇다면 충분히 감사하며 살아갈 수도 있었는데, 사탄은 이 1을 가지고 아담을 무너뜨려 버렸다."
→ 나에게 있어서 선악과와 같은 1이 무엇일까? 사탄이 가장 열심히 공격하고 있는 그 1이 무엇일까? 나에게 이미 주어진 999에 대해서 왜 감사를 하지 못할까? 내가 받지 못한 1에 집착하기 보다는 내가 받은 999를 주님 앞에서 어떻게 잘 사용할수 있을지를 항상 생각하는 삶을 살아야하겠다.

"‘십자가에 못박힌 그리스도’는 당신을 ‘나는 아담과 동일한 죄인이다.’에서 ‘나는 예수님과 동일한 의인이다.’로 바꾸어 주는 하나님의 유일한 능력이다."
→ 원의되신 나의 주 예수님!! 나를 의인으로 만들수 있는 유일한 길, 십자가의 예수님을 사랑합니다.

김 정숙

2007-04-04 04:29:20

하나님이 우리를 사랑하사 인류구원의 큰 댐 공사를 예수님을 댐 공사의
재료 삼아서 대 공사를 시작하신 주간.
주일예배시간 “예수님이 나를 위하여 하신 일이 무엇이지 보여주시겠습니다”
화면에 보여진 그 처절하신 모습에,
손으로 눈을 가려야만 했습니다.
심장이 너무 심하게 뛰고 아파서 바로쳐다볼수가 없는 골고다의 십자가,

그 모습을 바라보는 여인의 모습,
어머니 마리아의 모습,
내가 있어야 하는 자리, 우리아들이 있어야 하는 자리,
손과 발에 박힌 대 못,
내 심장이 터져 버릴 것 같은 모습,
몇 번 다시 본 장면 인데도 주일에 본 그 모습이 오래 머릿속에 마음속에 남아서……

서로 사랑 하라 하신 말씀
많은 사람들 에게 사랑을 받았지만,
주님의 십자가의 이 큰 사랑보다 더 큰 선물은 없었습니다.
고백합니다. 고백 합니다. 주님을 사랑합니다.
주님의 고난이 내 심령 속에 채워 지기를 간절히 간절히 소망합니다.


찬송가 141장을 반복하여 찬양 합니다.
“늘 울어도 눈물로서 못갚을줄 알아 몸 밖에 드릴 것 없어 이 몸 바칩니다”


십자가의 예수님을 내 가슴에 품고 참 자유를 얻어,
찬송 속에 역사하는 주님을 사모합니다.
십자가의 고난을 금식으로 기도로 동참 해보려 합니다.
주님의 참사랑을 가슴 가득히 담아보려 합니다.
하나님 도와 주세요.
죄인을 불쌍히 여겨 주세요.

유광옥

2007-04-04 04:31:31

우리 중에도 ‘십자가에 못박힌 그리스도’가 별로 와 닿지 않고, 자신과 거리가 너무 멀리 느껴지고, 무관심, 무감각, 무기력감에 빠져 있는 사람들이 있다. 특히 일본을 보면 너무나 답답할 뿐이다. 예수를 좀 열심히 믿는다 싶으면, 부러워하는 것이 아니라, 어리석은 자, 이상한 자로 색안경을 끼고 본다.

고난주간이다... 매년 지내는 고난주간 이지만 올해는 더욱
특별한 고난주간을 보내고 있다.
2틀째 새벽예배 때 너무나도 큰 은혜로 함께 하고 있다.
이번 고난주간에는 십자가에 못박힌 예수님을 마음속 깊이
묵상하고 만나야지 하는 마음으로 새벽예배에 참석했다.
그리고 계속 예수님 다른 사람이 아닌 저를 위해서
십자가에 매달려 돌아 가셨지요??
감사해요...십자가 위에 예수님을 온전히 깨닫게
도와주세요.. 하고 반복적인 기도를 드리기 시작했다.
정말 십자가 위의 예수님은 고통 가운데에서도
나를 사랑한다고 고백해 주셨고...십자가의 보혈로
나의 죄를 씻어 주었노라고 말씀해 주시는 것을
2틀 모두 체험을 강하게 하고 멈추지 않는 눈물에
감격과 감동과 슬픔을 동시에 체험 할 수 있었다.

정말 예수님의 죽음은 값진 것이다.
이런 값진 것을 일본 사람들은 모른다.
예수님을 전혀 모르기 때문에 무감각, 무관심, 무기력에
빠진다고 생각한다.
이런 일본 사람들을 방관하지 말고 포기하지 말고
전해야 하는 사명을 위해 더욱 기도하고 싶다.
왜냐하면 예수님이 나를 너무 사랑해 주시고 있기
때문에 꼭 보답을 해드리고 싶다.
남은 고난주간 동안도 금식과 기도로 예수님을
온전히 묵상하는 시간이 되었으면 하고 기도한다.

김태우

2007-04-04 06:09:14

이번 고난주간은 저에겐 너무특별한 기간인거같습니다.
아직 화요일이지만 새벽기도 이틀을 하고 하루한끼의 금식이지만 지키고있습니다. 제자훈련생이라서가 아니라 이번만은 도저히 이렇게 예수님의 아픔을 그냥 지나가기가 죄송하고 미안할거 같았습니다.십자가의 은혜를 너무많이 입었기때문입니다.

제가 3월에 많은일들이 있었습니다.
전문학교를가려고 힘들게 모았던 학비를 한국의 어머니에게 송금을 하지않으면 안되었습니다. 금전관계로 좋지않은 일로 돈이 급하게 필요했어요.

그돈을 보내고 저는 이제 학교를 갈수없음으로 한국에 가야했습니다.
그래서 3/25 주일날은 사탄의 마음으로 교회가서 뭐해 ?? 제자훈련 받아서뭐해?

이런마음을 사탄에게 빼앗겨서 주일을 빠지게 되었습니다.
몸이 아파서 교회를 못오나 걱정하는 제자훈련생들과 속장님의 전화와 메일이
와있었어요. 정말 그때 미안하고 마음이 아팠답니다.

주일저녁부터 기도를 했고 월요일날 주일제자반의 j집사님과 커피한잔하려고했는데 집에 와서 저녁을 먹고 가라고 하더군요..
그냥 저녁이아니라 저에겐 무엇과도 바꿀수없는 예수님의 사랑을 먹는듯했습니다

그런데 전혀 생각안했던 오사카에있는 친구가 입학이 언제냐??
저는 말이 안나와서 나 돈없어서 학교못가.... 그친구가 얼마가 모자라냐??
돈이없어서 학교못가면 불싸하잖어.. 내가빌려줄께 !

그땐 제가 모자라는금액을 20만엔만 얘기했었습니다.
빌릴 생각도 전혀 하지않았거든요.
자기도 돈은없지만 일본인 친구가 오카네모찌가 있으니까 빌려볼께!!
이렇게 해서 학비의 반도 안되지만 한가닥의 희망과 말할수없는 용기가 생겼습니다.
하지만 이제더이상 방법이 없었습니다.
그러던중 학교가라고 응원하고 기도해주던 y속장님께 얘기를 하게되었어요.
말을 안한게 정말미안하고 죄송스러워서 망설였지만 사실대로 얘기를 했습니다.

학비납부연장을 세번이나하고 마지막 4/2 이였습니다.
속장님께서 저를대신해서 여기저기서 알아보시고 결국 그돈을 구해서
저는 월요일 오전에 학비를 낼수있었습니다.
학비내러가는 전철안에서 하나님과 속장님의 은혜를 생각하니까 눈물이 눈에 고였습니다.

속장님의사랑과 예수님의 사랑을 잊지않고 세상의 빛이 될수있는
진정한 제자가되기위해 노력하겠습니다.
주일제자반에게 다말하지 못해서 죄송했습니다.

지금까지 느껴보지못한 고난주간 인거같습니다.
항상 십자가에 못박힌 예수님을 마음에 품고 생활하도록 노력하겠습니다.

하나님,예수님,목사님,속장님,주일제자반 모두사랑합니다.

강정임

2007-04-04 09:46:55

가치관이 바뀌지 않는 믿음의 사람은 없다

고난 주간이기에 예수님을 생각하며 경건하게 지내려고 했지만 솔직히 그다지 마음에 와 닿지 않는다. 금식하고, 놀러가는 것 취소하고, 행동으로는 경건하게 지내려고 했다. 그렇지만 정말 중요한 것은 예수님의 고난과 고통을 마음으로 느끼고 감사하는 마음을 갖는것인데…예수님의 보시면 얼마나 한심해할까
내 믿음의 현주소
고난 주간만이라도 아침에 일찍 일어나서 묵상하고 기도하고 해야지 생각을 했는데 나약하고 게을러 이것도 실천하지 못하고,
제자훈련을 받으면서도 세상 중심의 가치관에서 벗어나지 못하는 내가
주님을 위해 무엇을 할 수 있을지 의문스럽다.
예수님을 영접했다는 말이 그저 부끄러울 뿐이다.
예수님의 진정한 사랑, 참된 사랑을 모르는 어리석은 유대인, 이방인
믿음은 가치관의 변해야 하는 것이다. 세상 중심에서 예수님 중심으로 …
진실로 영의 눈을 뜨기를 원한다.
내 삶 속에 십자가에 못박힌 주님을 모시고 살 수 있기를…

김영희

2007-04-04 11:09:59

우리는 '십자가에 못박힌 그리스도'를 전하니(고전1:23)
바울은 '십자가에 못박힌 그리스도를 발견하고 그 능력을 누려보니
너무너무 좋아서 그 귀한것을 다른 사람에게 전하지 않으면 안될
정도였다.그래서 그는 이 일에 전인생을 바치게 된다.

죄인으로 살아가면서 어떤 자세로 죄와 싸워야 할지.....
바울을 통해 귀한 깨달음의 시간...
내죄를 대신하여 십자가를 지신 예수님...
바로 나를 위하여...! 말로써는 표현할수 없는 은혜...
지금은 눈물밖엔 드릴것이 없으나..내인생 내한몸 다 바칠 각오.....

고난주간 을 맞으며 지난주일 그만 깜박하고 교회에서 아침을
먹고마는..점심을 대신해서 금식을 하게됩니다.
다음날 아침부터 오후3시까지 금식을하며 틈틈이 기도하는
시간을 가져봅니다. 단 이틀에 눈에서 별이 반짝반짝...
그나마 물이라도 마실수 있어 얼마나 다행한 일인지...
이제겨우 이틀인데 안절부절...배고파 라고 입에서 절로 나오려는
말을 행여 주님께서 들으실까..조심조심 입안으로 되삼켜 봅니다.
앞으로 남은주간을 생각하니 벌써 포기하고 싶은 마음 간절한데...

우리 예수님은 얼마나 허기진 목마름에 타들어 감을 느끼셨을까!.
십자가에서 가시기 직전 다 이룬줄 아시고 비로소 한마디.
'내가 목마르다' 이 한말씀 하실때까지 고난과 고통속에 구원사역
완성....."다 이루었다"하시고 머리를 떨구신 예수님...
이제 주님의 그 피어린 고통의 은혜에 보답하여 드리기 위해
노력 또 노력 할것입니다,

예수님 중심으로 사는 가치관..예수님을 늘 마음에 모시고 사는 성도..
'내가 너희를 사랑하듯이 너희도 서로 사랑하라'는 말씀...
예수님을 만나는 그날까지 고이고이 간직 하겠습니다.
사랑합니다..! 예수님..! 죄많은 제가 예수님을 사랑합니다.......

김준근

2007-04-04 11:16:19

제가 우리 주 예수님을 경외하여, 주님의 뜻으로 살며, 그로 인해 기쁘고,
예수님을 즐거이 이야기 하며, 찬양하는 삶을 허락하소서.
죄인된 제게 큰 기쁨과 은혜를 허락해 주신 주님.
전 작은 아픔에도 힘들어하고, 하루의 금식에도 투정하며,
주님을 두려워 하면서, 망설이고 있는 약한 자입니다.

제가 고난주간에 금식의 그 의미를 헛되지 않게 도와주옵시고,
이로써 주님께 무엇을 바라는 것이 아닌, 온전히 주님께 드리는 삶이 되게 하소서
그리고 늘 주님의 은혜를 감사하며, 바울처럼 주님의 그 구원만을 즐거이 전하는
작은 예수가 되게 하소서.

홍인철

2007-04-04 19:04:37

저는 늘 지혜를 달라고 하나님께 간구합니다. 좋은 논문을 쓰고 좋은 성적을 얻는 것이 인생에 있어 많은 영향을 끼친다는 것을 알기 때문입니다. 일면 맞는 말이기는 합니다. 좋은 직장을 얻기 위해 좀다 나은 삶을 살기 위해 높은 자리에 앉기 위해 이러한 지혜가 필요할 지도 모르겠습니다.
하지만 이러한 종류의 지혜가 나의 죽음과 삶의 문제를 해결할 수 없습니다. 설교말씀을 통해 십자가 못박힌 예수님 만이 진정한 능력과 지혜이며 그 이유가 이를 통해서만 죽음과 삶의 문제를 해결할 수 있기 때문이라는 것을 알게 되었습니다. 바울은 이러한 사실을 다메섹에서 예수님을 만나면서 깨우쳤습니다. 로마의 시민권자로 법학박사로 세상의 모든 영광과 지혜를 가진 그였지만 삶과 죽음의 문제에 있어서는 예수님을 통해 구원받지 않고는 절대 해결될 수 없다는 것을 알게 된 것입니다. 저는 지혜와 능력의 근본이신 예수님을 내 마음속에 회복하지 않고는 그 인생과 삶이 결코 나아질 수 없음을 다시 한 번 깨닫게 되었습니다.
이번 고난주간에 십자가에 못박히신 예수님을 생각하며 그분께 감사하는 마음으로 지내야했는데 나의 형편을 따지고 방종함으로 산 것을 반성합니다. 나의 원죄를 사하여 주신 예수님이시고 내가 그분을 사랑한다고 입으로 말하면서도 지켜 행하는 것에는 소홀하였습니다. 남은 고난주간 마음먹은 바를 잘 지키며 예수님의 십자가를 생각하며 감사함으로 지내도록 하겠습니다.

김성섭

2007-04-04 20:00:37

------ 예수님은 3년 동안이나 집중적으로 제자들을 훈련시켰다. 훈련 받은 그들에게 바뀐 것이 무엇인가? 환경인가? 지식인가? 아니다. 오직 그들의 가치관이 바뀌었을 뿐이다. 세상 중심의 가치관에서 예수 중심의 가치관으로 바뀌었다. 그래서 그들은, 비록 예수님이 이 땅에 안 계시지만, 그들만 남겨져 있었지만, 전혀 요동치 않고 예수 한 분으로 만족한 삶을 살았고, 예수 한 분을 위해 목숨까지도 아까워하지 않는, 세상을 이기는 삶을 살게 되었다. ------

제자훈련을 받으면서 내 자신에게 일어났던 가장 큰 변화가 있다면 가치관의 변화라고 말할 수 있습니다. 예수님을 만나고 나서부터, 목사가 되어서도, 십자가에 못 박히신 예수님, 그 예수님 한 분만을 사랑하고 그 예수님 한 분만으로 만족하는 삶을 살기를 기도했었습니다. 때로는 정말 내가 그런 사람이 되었다고 스스로 착각했던 적도 있었습니다. 만약 내가 예수님 한 분만으로 만족하는 삶을 살았다면 어느 상황, 어느 형편에서도 기쁨과 감사로 살았을 것입니다. 무슨 일을 만나도 자족하는 삶을 살았을 것입니다. 그러나 현실은 그렇지 못했습니다. 목사가 되기 전에는 목표한 일의 성공과 실패에 따라 행복과 불행이 좌우되었습니다. 목사가 되어서는 주일날 교회에 오는 성도들 수에 따라 희비가 교차했습니다. 입으로는 예수님 한 분이면 충분하다고 고백하면서도, 여전히 나는 환경의 변화에 따라 마음도 함께 변하는 사람이었습니다. 제자훈련을 받기 전까지도 십자가에 못 박히신 예수님 한 분을 구하기보다는 큰 교회와 많은 성도들을 구했던 것이 바로 나의 모습이었습니다. 그러니 예수님의 십자가를 믿으면서도 세상을 이길 수 있는 능력(어떤 문제를 만나도 하나님을 찬양하고, 하나님이 원하시는 삶의 태도를 유지하는 일)이 나타나지 않았던 것입니다.

그러다가 제자훈련을 받으면서 나의 가치관이 변하기 시작했습니다. 정말 예수님 한 분으로 만족하는 사람이 되어갔습니다. 예수님의 이름을 부르는 것만으로도 마음이 꽉 차고, 예수님의 십자가로 인하여 내 모든 죄가 용서받았다는 그 사실이 기쁨이 되고 소망이 되었습니다. 십자가 없는 내 삶이 얼마나 추하고 악한지를, 그 십자가가 아니면 하나님 앞에도 성도들 앞에도 그리고 사랑하는 아내와 아이들 앞에도 설 수 없는 존재가 바로 나라는 사실을 절감하게 되었습니다. 이 사실을 깨달으면 깨달을수록 예수님의 십자가가 얼마나 소중한지, 예수님의 십자가 얼마나 귀한지, 예수님의 십자가 얼마나 능력 있는 지를, 진실한 마음으로 고백하게 되었습니다.

오늘 말씀을 읽으면서 제자훈련이 바로 세상 중심의 가치관에서 예수님 중심의 가치관으로 바꾸는 훈련이라는 것을 다시 한 번 가슴 깊이 새기게 되었습니다. 어떤 문제를 만나도 요동치 않는 믿음의 사람, 세상의 모든 것을 다 잃어버려도 예수님 한 분만으로 만족하는 사람, 아니 세상의 모든 것을 다 가지고 있어도 예수님 한 분만으로 만족하는 사람, 예수님을 위해서라면 재산이 아니라 명예가 아니라 목숨까지도 아까워하지 않는 사람, 그래서 세상을 넉넉히 이기는 사람, 바로 십자가의 사람이 되기를 결단합니다. 죄인인 나를 의인으로 바꾸어주신 그 놀라운 십자가의 능력을 찬양하며, 고난주간의 남은 시간들을 십자가에 못 박힌 예수님을 깊이 묵상하겠습니다.

라문진

2007-04-04 20:54:51

“우리 중에도 ‘십자가에 못박힌 그리스도’가 별로 와 닿지 않고, 자신과 거리가 너무 멀리 느껴지고, 무관심, 무감각, 무기력감에 빠져 있는 사람들이 있다. 냉정하게 자신을 한번 돌아보자. 당신에게 있어서 ‘십자가에 못박힌 그리스도’는 어떤 분인가?십자가에 못박힌 그리스도’는 [세상]의 능력이나 지혜가 아니라, [하나님]의 능력이요, 지혜이다”

한 두주전에 속회에서 십자가의 예수님에 대한 나눔이 있었습니다. 제가 작년제자훈련 생활숙제중에 ‘십자가에 못박히신 예수님을 묵상하며 울어보기. 만약에 울지못하면 완악한 자신의 모습을 불쌍히 여기며 울기’가 있었는데 잘 되지않아 하루는 교회에 와서 십자가앞에 앉아 기도하며 묵상했었던 것을 나눴었습니다. 그 당시에 나는 후자에 속했었다고..그때 한 속원은 자신은 십자가의 예수님만 생각하면 울음이 나온다며 자기를 위해 돌아가신 예수님만 생각하면 복받치는 울음을 어쩔 수없다며 그 순간에도 울음을 터트리는 자매님을 보며 감사했었습니다. 또 감사한 것은 저도 이제 예수님을 십자가의 못 박히신 예수님과 떼어 놓고 생각하지 않는다는 것입니다. 또 부족한 속장을 세우셔서 속원들을 통해 많은 은혜를 체험케 하시는 주님께도 감사드렸습니다.
남은 고난주간 더더욱 제가 예수님을 알기 원합니다.
십자가의 못박히신 예수님을 묵상하기를 원합니다.

어제 저희 부부의 결혼기념일이었습니다.
고난주간이었기에 또한 저녁금식중이어서 저녁에 작은 춧불예배를 드렸습니다. 두 손 마주 잡고 하는 남편의 기도중에..
“저희 결혼기념일이 고난주간임을 감사드립니다.
예수님이 십자가에서 죽으심으로 저희가 부부가 됨을 감사드립니다.
제 아내를 주심을 감사드립니다.(저도 따라했습니다. 제 남편을 주심을 감사드립니다)........ 아멘”

정말로 남편의 기도처럼 결혼기념일이 고난주간인것이 너무나도 감사했습니다. 더 많이 묵상할 수 있는 시간을 주심을 감사드립니다. 십자가에 못박히신 예수님을 생각하면 할수록 얼마나 감사한지요..더깊이 십자가의 예수님을 묵상하면 할수록 더 큰 감사가 나옵니다. 그 예수님덕분에 남편이 더더욱 소중함으로 다가옵니다. 부부의 연을 맺어주신 예수님을 생각하니 사소한 문제거리로 다투는 것은 예수님께 정말로 죄송한 마음이 들어야 정상적인것이라는 생각이 듭니다.
새벽기도때 말씀하신것처럼 예수님이 예루살렘에 들어오셔서 제일 먼저하신 성전청소를 저도 하기를 원합니다. 성령이 거하시는 제 몸의 성전을 깨끗이 치우는 한주가 되길 원합니다. 고난주간을 통해 깨끗해진 제 몸의 성전에 다시 부활하실수 있도록 말입니다.

김기웅

2007-04-05 00:15:37

‘십자가에 못박힌 그리스도’는 당신을
‘나는 아담과 동일한 죄인이다.’에서 ‘나는 예수님과 동일한 의인이다.’로 바꾸어 주는 하나님의 유일한 능력이다.

아담과 동일한 죄인이다라는 부분에서는 동감이랄까 인정하며 느끼는 것이 많은데
예수님과 동일한 의인이다라는 부분에서는 웬지모를 막연함이 있습니다.
고난주간이라는 시간을 지내며 집사람과 요즘우리 부부의 영적 상태를 나눠봤습
니다. 많은 분들의 은혜넘치는 고백을 읽으며 도전이랄까 깨달음을 얻습니다.
어제저녁에도 고난주간과는 거리가 먼 좌석에서 세상사람들과 세상얘기를 하며
한시간 가량의 시간을 보냈습니다.
집으로 돌아오는 차에서 가슴이 휑하니 뚤린듯한 느낌이 들었습니다.
3년의 시간을 집중적으로 제자들을 훈련하신 예수님..
예수님과 동일한 의인이 되어가고 있는가...
찬송 141장을 들으면서 음미하면서 태연이는 계속 장난을 칩니다.
허나 나와 집사람은 태연이의 장난의 방해를 무릅쓰고서 십자가의 예수님을
상상해봅니다.
아직 끝나지 않은 고난주간을 좀더 의미깊게 보내겠습니다.

김은하

2007-04-05 00:31:49

이 주간 나는 나의 완전한 무력함을 보았다.
아무것도 할 수 없는, 허공에 손짓하고 스스로 만든 죄의 굴레에 갇혀 당황하는 한 벌레가 있었는데, 나였다.
손에든 사탕을 놓치지 않으려 울부짖는 어린아이가 아빠를 바라 보았으나 그 아이의 아빠는 아무말 없는 미소만 보내셨다.
주라시면 줄것이고 안 줘도 된다고 말씀하시면 그 아이는 참 편할텐데 그 아이 아빠는 아무말씀을 안하신다.
..
예수님을 생각하며, 아니 그 분을 묵상하며 그 분으로 인하여 ‘또한 모든 것을 해로 여김은 내 주 그리스도 예수를 아는 지식이 가장 고상함을 인함이라 내가 그를 위하여 모든 것을 잃어버리고 배설물로 여김은 그리스도를 얻기 위함이라.’ 고 고백한 사도를 또한 생각해 보았다.
사도는 최고가 무엇인지 알았고 발견한 사실을 전하고 또 전하기에 힘을 다했다.
소위 최고의 학자라고 할 수 있는 아리스토텔레스는 최고의 선을 사람의 덕이라고 정의한다.
즉 이성적 활동에 따른 삶이라고 주장했다.
그는 하나님을 몰랐다.
알아도 그에게는 그 분의 사랑을 볼 수있는 눈이 감겨져 있었다.
최고의 선은 사랑이다.
최고의 사랑은 십자가였다.
그리고 그 십자가의 사랑은 이성적으로는 풀수가 없다.
나를 살리신,
나를 살리시려 거친 십자가에 못 박히시는 것을 선택하신 우리 예수님..!!
그 사랑을 무엇으로 풀것인지..
..
내 손의 수고가
주의 법의 요구를 채울수 없고
쉼 없는 나의 열심
늘 흐르는 나의 눈물도
죄를 사할수 없도다.
주여 구원하소서..
주께만 구원이 있나이다..


정향연

2007-04-05 01:43:37

**************또한 모든 것을 해로 여김은 내 주 그리스도 예수를 아는 지식이 가장 고상함을 인함이라 내가 그를 위하여 모든 것을 잃어버리고 배설물로 여김은 그리스도를 얻기 위함이라.’(빌3:8)*************
중앙영광교회에서 첫 믿음생활을 시작한지 7년이 되어갑니다.
그 사이 고난주는 어김없이 찾아왔었건만, 이제야 고난주가 1년의 365일중에 가장 중요한 시기라고 인정했음을 부ㅡ끄럽게 고백합니다.
잠깐 다른 교회에 바람을 쐬고 와서 맞는 첫 고난주인데 , 목사님이 그사이 많이 바뀌셨구나 하는것을 느꼈고,내 안에서도 많은 변화가 일어나 그동안 내속에 있던 말씀들이 지금까지는 진주알 한알한알같이 여기저기 흩어져있었는데
제자훈련을 *중요*통해 지금은 진주목걸이로 엮어지고 있음을 고백합니다.
제자훈련을 통해 가장 귀하게 얻은것은 바로 바울이 얻은 그것이었습니다.
****예수님****내가 곧 길이요,진리요,생명이니,나로 말미암지않고는 아버지께로 올자가 없느니라....(요14.6) 십자가의 죽음과 그 부활로만이 가능하게 한
진리... 십자가를 지기위해 자신을 온전하게 내려놓고 예루살렘으로 입성하시고,
곧 자신이 십자가에 매달릴것을 알면서 온전히 순종하기위해 땀방울이 핏방울이 되도록
기도하셨던 그 예수님......내가 매달릴곳에 나되신 매달리셔 내가 *예수님*이되길원하셨던 예수님.. 그 진리를 알게해준 제자훈련과 훈련에 사명을 가지신 목사님께 감사드립니다.

***********하나님의 능력과 하나님의 지혜로 살기를 원하는가? 간단하다. ‘십자가에 못박힌 그리스도’를 모시고 살면 된다.(갈2:20) 그러면 하늘의 능력과 지혜가 당신의 인생에서 흘러 넘치게 될 것이다. ***************
이번 고난주의 십자가를 묵상하면서 십자가에 나타난 사랑과 공의에대해 묵상해보게 되었습니다...그러면서 내가 현재 처해있는 모든것에 감사할수밖에 없음을 시인하며,,아침에 간단하게 밥을 먹을때도 감사합니다...예수님의 고통때,전 이렇게 먹습니다...아무리 반찬이 없더라고 너무 감사합니다,..잘 안풀린 일이 있더라고 ..감사합니다..의지적이 아니라,본능적으로 ,아니 당연히 감사할수밖에 없었습니다..
결국 예수님이 십자가에서 고개를 떨구시고 부활하신것은 우리에게 하나님의 자녀되게 떳떳하게 ,능력있게 살아가라고 라는 마지막메세지를 주기위해서.였기에,,
갈보리 언덕위에 세워진 십자가의 예수님을 이젠 내 심령이 갈보리언덕이 되어 십자가의 예수님을 모시고,또 내 사업장이 ,남편의 사업장이 갈보리 언덕이 되어 예수님의 십자가를 모시는 축복의 은혜를 받기를 사모하게되었습니다

이미령

2007-04-05 04:59:51

얼마나...
계산적이고 이성적이며약삭 빠른 내가...
찬송가 141장이 내 입술의 나의 노래가 될줄 몰랐습니다...
이것이 내게는 기적입니다...
예수님의 찔림으로 내가 나음을 받았으니...
아파도 참을수있습니다..
억울한 소릴 들어도 웃을수있습니다
힘들어도 이길수있습니다..
외로워도 기도할수있습니다..
가난해도 나눌수있습니다
박수받지 못해도 십자가를 질수있습니다...
그럴수있다는것이...
내게는 십자가의 능력입니다.....

십자가의 사랑을 전하기 위해 날마다....
세상속으로 향해 나가길 소원합니다....

박순애

2007-04-05 05:06:10



‘십자가에 못박힌 그리스도’가 당신의 인생의 마스터 키가 되기를 바란다. 이 키는 분명히 당신에게 참 자유와 생명을 줄 것이요, 하나님의 능력과 지혜를 누리게 할 것이다.


고난 주간이 되면서 인터넷을 통해 예수님의 죽음에 대한 여러 가지 영상물을 보게 되었다. 군병들의 채찍에 살이 찢기시는 모습에, 너무 현실감 있게 못박는 모습까지 너무 생생해서 정말 내가 현장에 있는 것 같은 착각을 하게 할 정도였다. 특히 군병이 자기 얼굴에 튄 피를 훔쳐내며 비웃는 그 모습에 내 가슴이 터질 것 같았다. 그 피가 어떤 피인데, 그 피가 누구의 피인데...

그 가운데 이런 구절이 있었다.
"내가 만지지 말아야할 것을 만지므로 그 손이 못 박혔고
내가 가지 말아야할 곳에 가므로 그 발이 못 박혔고
내가 생각하지 말아야할 것을 생각하므로 그 머리에 가시관이 박혔다..."

나는 병사가 주님을 못박았다고 그에게 순간적으로 미운 감정이 생겼지만 사실은 병사가 망치질한 것이 아니라 내가 예수님의 손과 발과 머리에 피를 흘리게 한 것임을 안다. 그래서 그 속에 나의 모습이 투영되어 그가 밉게만 보였던 것이다. 내 죄를 위한 희생제물이 되셔야했던 예수님이시다. 내가 원죄로부터 시작하여 지금까지도 얼마나 많은 죄 가운데 살아가고 있는지 주님은 아신다. 이 고난주간에 조차도 죄의 행진은 계속되고 있는 것 같다. 그러나 주님 만날 그 날까지 내가 죄 속에 거할지라도 주님께서 나를 위해 지신 그 십자가를 인해 나는 멸망치 않음을 확신한다.
이 한 주간을 통해 주님의 십자가에 대한 은혜를 회복하고 싶다. 십자가를 보아도 아무런 감각이 없고 그것이 문제로 여겨지지 않는 이 식어버린 가슴을 십자가상의 주님을 만나므로 주의 보혈로 채우리라. 내가 달려야했던 그 곳에 주님이 달리셔서 물과 피를 다 쏟으셨다. 내가 지금 할 수 있는 일은 오직 그분을 사랑하고 순종하고 감사하는 것뿐인 줄 믿는다. 이 사랑이 너무 커서 나는 다 이해하지 못하고 다 알지 못하지만 십자가상의 주님이 나의 모든 것이 되심을 고백한다. 십자가 위에 주님이 계시다. 그 분은 내려오실 수 있었으나 달려 죽으셨다. 그 사랑으로 나는 참 자유와 새 생명을 얻었고 하나님의 자녀로서 살아가고 있다. 그리고 이 고난이 지나고 내게 올 능력, 그것은 나를 더 행복하게 만들 것을 믿는다. 할렐루야!!

이지영

2007-04-05 05:28:41

그러면 어떻게 해서 ‘십자가에 못박힌 그리스도’가 하나님의 능력과 지혜가 될 수 있을까? 이것은 당신의 죄와 사망의 문제를 해결해 줄 수 있는 유일한 능력이기 때문이다.

이번고난주간, 예수님을 생각하며, 참으로 나의연약함을 더욱 느낄 수 있었습니다.
,제자훈련때 배운 덕분으로 감사와 미소를 잃지 않으려고 노력할 수 있었지만...평안대신, 막 밀려오는 답답함으로 힘을 점점 잃어가는 제 자신을 발견했습니다..왜 이렇지?..의문을 품으면서도, 기도를 해도 며칠전까지 느꼈던 , 차고 넘치는 평안보다, 무언가 꽉막힌 답답함이 느껴졌을 뿐이였습니다. 그런데,,오늘에서야 알고 말았습니다. 제가 아직도 십자가에 놓지 못한것이 있었습니다.
수업료 준비..금식..십일조 등등 내가 하려고 했던것입니다. 온전히 하나님을 의뢰하지 못함으로 오는 불편함이였습니다.
다시 하나님앞에 내려놓을때, 비로소 예수님의 사랑의 평안함이 내 가슴속에 스며들기 시작했습니다.
예수님의 십자가가 없었다면...그 사랑이 없었다면..하나님앞에 내려놓을 수 있는 은혜도 없을 뿐더러, 참 평안도 가질 수 없었을것입니다.
십자가에 못박힌 그리스도를 사랑합니다. 그리고 그 그리스도를 아직 믿지 않는 우리 이모와 사랑하는 사람들에게 전해야겠습니다.

한영진

2007-04-05 06:21:50

[먼저 자신이 죄인임을 고백할 수 있어야 예수님의 십자가의 보혈의 능력을
체험할 수 있다. 죄를 모르는 사람은 십자가의 은혜도 알 수가 없다.
‘나도 아담과 동일한 죄인이다!’ ]
이틀 전에 어떤 분 때문에 크게 자존심 상하는 일이 있었습니다.
뭐 이렇게 몰상식하냐….분하고 억울해서 당장 맞 받아치고 따지고 들어
내가 당한 것의 두 배로 되갚아 주고 싶었습니다.
교활한 교양의 탈을 쓰고 얼마든지 멋지게 복수할 자신도 있었습니다.
그러나 그 순간에 떠오른 것은 십자가의 예수님이었습니다.
십자가의 예수님께서 나때문에 당하시고 기꺼이 감수하신 일이 떠올랐습니다.
조롱과 침뱉음의 모욕과 수치와 대못이 몸을 뚫는 끔찍한 고통을
이 나 때문에….
덕분에 그 순간을 조용히 넘겼지만 그 날 바쁜 일상 중에도 틈만나면 아까의
억울함과 분함이 떠올라 나는 자꾸만 십자가의 예수님을 떠올려야 했습니다.
의식하지 않고 내버려두면 나는 이 생각으로
걷잡을 수 없는 죄의 길로 치닫고맙니다.
그래도 행동으로 옮기진 않았다는 사실이 위로가 되진 않았습니다.
이미 지은 생각의 죄, 잠시만 방심하면 자꾸만 짓게 되는 생각의 죄 때문에
예수님께 참 많이 부끄럽습니다.
교회에 다닌지 몇 년인데 처음으로 나와 연관있는 의미있는 고난주일을 섬깁니다.
전에는 내가 이렇게 죄인이 아니었는데 우리 예수님을 알고 나서
이 내가 그야말로 ‘죄인 중의 괴수’임을 알게 되었습니다.
처음 제자훈련을 받기 시작한 때보다 지금 나는 더 큰 죄인이 되었음을 느낍니다.
전에는 죄가 아니었던 일이 이젠 제게 죄가 되는 일이 너무나 많습니다.
그렇지만 내 죄를 깨닫게 되는 일이 더 이상 두렵지 않습니다.
내가 죄인임을 알게 될수록 십자가의 예수님이 그래서 더욱 감사하고,
그 사랑에 목이 매입니다. 예수님을 더욱 사랑하지 않을 수 없게 됩니다.
십자가의 예수님을 30분 묵상하고 있는 덕분에 불완전하나마
일상의 많은 순간들에 예수님의 사랑과 인내를 적용할 수 있어서
이 고난주간이 또한 더욱 감사하기만 합니다…..

서조은

2007-04-05 07:22:21

다른 분들의 리플을 보니 다들 고난주간을 예수님과 함께 하고 계신것 같습니다.
저는 이번주도 역시 세상과 함께하네요..;;

기쁠때보다 아파할때 함께 해준 사람들이 더 고맙고 잊혀지지 않은듯...
예수님도 예수님이 아파하실때 함께 아파하는 제자들이 더 사랑스럽겠지요?
저도 예수님과 함께 해야 하는데....
예수님께 너무너무 죄송하네요...
남은 며칠만이라도 나때문에 고난 당하신 예수님과 함께하고 싶습니다.
예수님... 정말 죄송해요...ㅜ.,ㅠ

木下 

2007-04-05 07:41:56

神様の能力と知恵によって生きたいのだろうか?簡単である。「十字架に架かったキリスト」をお迎えして生きればよい。そして、天の知恵があなたの人生に流れあふれるようになるだろう。

十字架に架かったキリストの姿を目を閉じて黙想するとき、自然とイエス・キリストに感謝の気持ちが湧き、神様の愛を感じます。 私たちの罪のために死に渡され、私たちの救いのために3日目に復活された偉大な主イエス・キリスト...神様は私たちを深く愛してくださっている...
人生を生きていく上で価値観は重要であると思います。しかし、何も生きていく上で価値を見出せず苦しんでいる人が多いと思います。私は幸せであると思います。なぜなら、お金など状況によってすぐに変わり行く価値観でなく、過去も現在も未来も変わらず、私たちの救い主となられたイエス・キリストへの不動の価値観を持つことが出来るからです。このことに気づくことができたことが幸せだと思います。目に見えるから信じるのではなく、奇跡が起きるから信じるのではなく、ただイエス・キリストの十字架によって、救いが与えられたという聖書が教えてくださる真実です。
イエス・キリストの十字架の姿をこれからも黙想していきたいです。

박유진

2007-04-05 08:46:07

"‘십자가에 못박힌 그리스도’는 당신을 ‘나는 아담과 동일한 죄인이다.’에서 ‘나는 예수님과 동일한 의인이다.’로 바꾸어 주는 하나님의 유일한 능력이다.
특히 고난 주간에는 금식하며 ‘십자가에 못박힌 그리스도’를 묵상하는 삶을 지켜가길 축원한다."

이번 고난 주간은, '몸'으로 고난을 직접 겪고 있는 것 같다.
특히 남편은 늦게 끝나는 회사일 때문에 몸이 많이 힘든 것 같다. 고난주간 특별 새벽기도가 시작된 월요일, 밤 10시30분에 퇴근하더니, 그 다음날은 11시에 왔다. 오늘은 아직 집에 오지 않고 있다. 거의 12시 15분쯤 되야 집에 올 것 같다. 너무 늦게 끝나니, 새벽기도에 대한 마음을 지키기가 힘들었다. 첫날은 갔는데, 둘째날은 일어나지를 못했다. 오늘 새벽은 다행히(!) 선호가 새벽에 일어나서 깨우는 바람에 갈 수 있었다. 내일은 중요한 세족식의 날인데, 지금 마음 같아서는, 남편은 잠을 재우고 나 혼자 새벽기도를 다녀올까 하는 마음도 든다.
저번주까지는 회사에서 이렇게 늦게 끝나지 않았는데, 고난주간에 우리에게 '몸'으로써 주님의 고난을 체험하게 하시는 것도 주님의 뜻인 것 같다. 예수님이 나를 위해서 해 주신 일을 생각하면, 잠 좀 못자고, 몸이 피곤하다고 한들 기쁜 마음으로 새벽에 달려가야 하는데, 육신을 먼저 생각하게 되는 나 자신의 모습을 보고 가슴을 친다. 예수님께 감사하지 못하고, 나 자신만을 생각하는 교만한 나의 모습을 보게 되었다. 문득, 찬송가 141장의 4절 가사로 이 가정이 몸을 드리게 이끌어주신 주님께 감사를 드리게 된다. 며칠 남지 않은 고난 주간을 온전히 승리하도록 기도드린다. 그리고, 십자가의 예수님을 더 깊이 묵상하며 감사하는 시간들이 되길 원한다.

이성훈

2007-04-05 10:33:12

오직 그들의 가치관이 바뀌었을 뿐이다. 세상 중심의 가치관에서 예수 중심의 가치관으로 바뀌었다. 그래서 그들은, 비록 예수님이 이 땅에 안 계시지만, 그들만 남겨져 있었지만, 전혀 요동치 않고 예수 한 분으로 만족한 삶을 살았고, 예수 한 분을 위해 목숨까지도 아까워하지 않는, 세상을 이기는 삶을 살게 되었다.
- 저의 모습을 돌아봅니다. 예수님을 정말로 나의 가치관으로 여기고 있는지 반성합니다. 입술로 세상의 가치관이 아닌 예수님을 나의 가치관으로 모시고 있다고 고백하지만, 과연 저의 삶의 모습에서 세상이 나를 어떻게 대하든지 나에게 어떠한 일이 있던지 '전혀 요동치 않고 예수 한 분으로 만족한 삶을 살았고, 예수 한 분을 위해 목숨까지도 아까워하지 않는, 세상을 이기는 삶'을 살게 되었는지 반성합니다. 부끄럽습니다. 더욱 더 진지하게 제자훈련 받으며 저를 바꾸어 나가겠습니다.

마준철

2007-04-05 17:37:06

"당신은 죄가 없다고 생각하는가? 누가 당신에게 ‘당신은 죄인입니다.’라고 말하면 어떤 기분이 드는가? 당신이 기분이 나쁘건 좋건 상관없이 당신은 죄인이다. 심지어 당신이 죄를 지었건, 안 지었건 당신은 확실한 죄인이다. 이것은 당신의 지금의 삶의 모습 때문이 아니라, 아담의 원죄(original sin) 때문이다. 당신과 상관없이 당신은 엄연한 죄인이다. ‘이러므로 한 사람(아담)으로 말미암아 죄가 세상에 들어오고 죄로 말미암아 사망이 왔나니 이와 같이 모든 사람(나)이 죄를 지었으므로 사망이 모든 사람(나)에게 이르렀느니라’(롬5:12) 당신이 죄인인 것은 당신 때문이 아니라 아담 때문이다. 당신의 의지와 상관없이 당신은 아담과 동일한 죄인이다. 이것이 원죄이다."

신앙생활을 하는 사람이면 누구나 한번쯤 생각해 보았을만한 문제중의 하나가 "왜 아담의 죄가 내 죄가 된다는 것인가?"하는 문제라고 생각합니다. 성인이 되고 나서 죄 가운데 있는 나를 보고 내가 아담의 후손인 것을 인정할 수 있었지만 이제 막 태어난 갓난아기도 죄인이라는 사실이 도저히 이해가 되지 않았었습니다. 아니, 사실은 조금 억울하다는 생각도 좀 있었습니다. 죄는 분명히 아담 한 사람이 지었는데 그 죄가 왜 내 죄가 되느냐 말입니다. 한동안은 이 모든 고민과 질문때문에 쓸데없는(?) 방황을 한 적도 있었습니다.

그러나 이 모든 고민과 질문은 예수님의 십자가에서 해답을 얻게 되었습니다. 아담 한 사람으로 인하여 모든 인간이 죄인이 된 것과 예수 그리스도 한 분으로 인하여 모든 사람이 구원을 받게 되었다는 진리가 그렇게 연결이 된다는 것을 깨닫게 되었습니다.

오늘 말씀 중에 우리가 죄인인 증거로 인간이 그 수치를 가리기 위해 옷을 입게 되었다는 표현이 있었습니다. 처음에는 "아! 이런 기가막힌 해석이 또 있구나!"하면서 한참을 웃었습니다. 그리고 창세기 3장을 다시한번 살펴보았습니다. 말씀을 읽는 중에 21절에 가서 우리를 향하신 하나님의 사랑을 볼 수 있었습니다. "여호와 하나님이 아담과 그 아내를 위하여 가죽옷을 지어 입히시니라"

인간이 스스로 죄와 수치를 깨닫는 것으로만 하나님은 만족하지 않으셨던 모양입니다. 그래서 가죽옷을 입히셨다고 하셨는데 그것은 죄 없는 어느 짐승의 죽음을 말하는 것이 아니겠습니까? 그것은 그대로 예수 그리스도의 죽음을 상징한다고 믿습니다. 나의 수치를 가려주시기 위해서 예수님은 죽으셨습니다. 엄밀히 말하면 그것은 하나님의 선택이었습니다.

내 안에 흐르고 있는 철저한 인간중심의 죄성을 날마다 보게 됩니다. "아! 나는 이것 밖에 안 되는 인간인가?" 내 자신에 대한 철저한 절망, 그것이야말로 내 자신이 아담의 후손인 것을 증거한다고 믿습니다. 그러나 이 사실이 감사한 것은 그렇기 때문에 내가 예수님의 십자가를 붙들 이유가 있다는 것입니다. 내가 죄인인 것을 인정하지 않는다면 예수님의 십자가가 더이상 무슨 의미가 있겠습니까?

가죽 옷을 지으셔서 아담과 하와의 수치를 가려주셨던 그 하나님이 예수님을 십자가에 대신 못 박게 하심으로 내 죄와 수치를 가려주신 십자가의 사건이 있었던 고난주간 한 복판에 와 있습니다. 내 딴에는 금식을 한다고 하지만 우리가 몇 끼를 금식한다고 그 크신 하나님의 사랑과 예수님의 십자가를 이해할 수 있겠습니까? "십자가에 못 박힌 그리스도" 그 분을 놓쳐버리면 고난주간이 나에게 무슨 의미가 있겠습니까?

정말 이번 한 주간, 아니 내 일생에 예수님의 십자가만 붙들고 살고 싶습니다. 예수님의 십자가를 묵상할 때 오늘은 눈물이 나지 않는다면 그렇게 안타까워하셨던 스펄전 목사님의 애통함이 너무나 부럽습니다. 그 애통함이 진심으로 나의 애통함이 되기를 소원합니다.....

양미옥

2007-04-05 17:51:20

‘십자가에 못박힌 그리스도’는 사람들이 미련하게 보더라도 사람의 지혜보다 지혜롭고, 약하게 보더라도 그것은 사람보다 강하다

오늘은 세족식이있는날 다행히도 참석할수있어서 감사했습니다. 4월부터 목요일만 8시출근 평일은9시로 바뀌어서 세족식에 참석못하거 아닌가하는생각이 들었지만 은혜가운데 참석할수있었습니다.그리고 하나님은 제게 새벽에 큰 맘의 은혜와 감사와 감동을 주셔서 감사했습니다.
예수님을 생각하면서 숨을 깊이 들이쉬고 예수님을 몇번이고 부르니 갑자기 눈물이 났습니다.. 그리고 목요일 밤이 지나고 금요일에 잡히셨다는것을 생각하면서 내가 잡혀야하는 날..그리고 내가 그 십자가에 달려야하는데..라는생각 하지만 날 대신해서 잡히시고 십자가에 못 박히셨다라고 생각하니 가슴이 뭉클해졌습니다. 매년다가오는 고난주간 부활절이지만 이번만큼 깊이 생각해본것은 또 첨이었던것같습니다.. 감사하고 가슴이 아팠습니다. 십자가에 못박힌 그리스도.. 사람들에게 미련하게 보일지라도 그것은 강한거였습니다.. 정말 그렇습니다..어느누가 대신할수없는 능력입니다.. 오늘 저도 회사에서 저희 동료들을 위해 기도하면서 발은 못 싯기지만 손이라도 싯겨주면서 섬김의 모습을 보여야겠다라고 맘 먹으면서 왔습니다. 꼭 실천해서 놀라운신 예수님의 사랑을 몸소 전하는자가 되어야겠습니다.

이용준

2007-04-05 17:55:15

‘십자가에 못박힌 그리스도’는 [세상]의 능력이나 지혜가 아니라,
[하나님]의 능력이요, 지혜이다

그는 죽었다 그리고 그의 죽음으로 나는 이런 사람이 되었다고 하신다
Being a person of Excellence and integrity !!
이런 사람은 어떤 사람일까??
He goes the extra mile to do what's right
He keeps his word even when it's difficult
He arrive at work on time
He gives his employers a full day's work
He doesn't leave early or call in sick when they are not.

오늘 세족식을 하면서 예수님의 십자가의 못박힘으로
나 자신의 자존감을 회복하는 기회가 되었다.
그렇게 힘들게 돌아가셨는데 내가 남들과 같은 삶을 살수는 없지 않은가

황은영

2007-04-06 00:05:53

이번주는 다들 엄숙한 분위기에 우는데
난 눈물이 나오지 않았다 아직도 난 내가 당한
고통에 내아픔 뿐이 모르고 있는것 같다

한국에서 집회때도 많은 사람들이 십자가만 생각하면
울고 오열을 하는데 나만 예수님피와 살을 먹어도
눈물이 나오지 않았다 아직도 난 멀었는지
어제는 가게에서 내손에다 자해를 했다
칼로 하지 않고 정말 눈물이 날정도로 하고 난뒤에
조금은 예수님의 고통을 알수 있어 다행이었다
이렿게 내가 꼭 고통을 당해야 예수님의 고통도 느낄수
있었다
예수님을 위해서 할수 있는게
무엇인지 알면 정말로 순종하며 그렇게 살것이다
조금은 알것 같기도 하다 하나님은 내게 마침표를
찍었다고 했다 더이상 물어보지 말라고 헀다
이젠 내가 예수님이 우리를 위해 죽으신
것을 증거하고 우리를 사랑해 천지를 만드신 하나님의
아들 예수님이 죽었답니다 하며 증거를 해야겠다
내가 조금 이라도 예수님의 사랑을 안다면
순종해야 할것이다 난 내 고집대로 하지않고
순종만 하면 된다
상담을하고 나니 마음이 가볍다
많이 괴로워었는데 감사합니다

김정아

2007-04-06 01:58:16

십자가에 못박힌 그리스도’가 당신의 인생의 마스터 키가 되기를 바란다. 이 키는 분명히 당신에게 참 자유와 생명을 줄 것이요, 하나님의 능력과 지혜를 누리게 할 것이다.


종려주일을 맞이하여, 지난주에는 아이들과 함께 죄고백의 시간을
가졌습니다.십자가의 예수님, 나 때문에 돌아가신 예수님,
나 때문에 고통당하고, 나 때문에 갖은 치욕과 아픔을 당하신
예수님을 떠올리며 하나님앞에 죄를 고백했습니다.
그런데 아이들 앞에 십자가를 세우고 죄목을 하나하나
써 내려가면서... 내가 죄인임을 알면서도 주님앞에 진실로 고백하지 못했고,
진실로 하나님 앞에 회개하지 못하고 있음을 발견하게 되었습니다.
정말 하나님 앞에서, 예수님 앞에서 땅을 치고 회개할 일이었습니다.
하나님의 사랑과 예수님의 고난이 나와 관계된 일인데...
마치 내 옆의 사람과 관계된 일인 마냥...
어쩌면 행사로서 예수님을 묵상하고 연간 치뤄지는 행사로서
금식하고 있는 것은 아닌가 .. 라는 생각이 들었습니다.
예수님의 십자가를 묵상하고 그 은혜를 생각하면
정말 천하에 나같은 죄인도 없는데, 진실로 하나님 앞에 나아가지 못했고,
진실로 하나님을 섬기지 못했고, 훈련 받으면서도 훈련받는 사람답지 않은
삶의 모습을 바라볼 때, 모든 것이 주님앞에 늘 죄스럽습니다.
잘해야지 잘해야지... 하면서도 뒤 돌아보면 이것저것 핑계뿐입니다.
남은 한주간, 십자가의 예수님의 형상이 내 마음판에 새겨질 때까지,
아니 사진이 박힐 때까지 그렇게 묵상하기를 스스로 다짐하며,
이번 한 주 예수님의 그 은혜와 사랑이 더 없이 충만한 한 주가 될 수
있도록 노력할 것입니다.

박빛나

2007-04-06 05:39:43

받은 복만 생각하는 사람은 죄를 물리치지만, 잃은 복만 생각하는 사람은 죄를 자초하게 된다.

예수님이 십자가에 돌아가심으로 나는 죄에서 자유함을 얻었다...
나는 이 사실이 얼마 전 까지만해도, 마음속에..
단지 하나의 사실에 지나지 않았다.
부끄러운 고백이지만...
나는 마음으로 예수님의 십자가를 생각해 본 적이 없었던 것이다.
제자 훈련 속에서...
나는 .... 매일 새로운 주님과 만난다.

생활 속에서...
매일 매일 잃은 복만 생각하고 있지는 않은가..
5시 인생을 살면서, 받은 복은 생각지 못하고있지는 않는가..
지금, 내 표정은 누구를 닮아 있는가...

하루 하루 도전과 실천의 과제로 훈련 중이지만..
바쁜 일상이 나를 좀먹어 가는게 아는가.. 가슴이 아프다.
기껏 자유케 해줬더니....
주님 한탄하시진 않을까...

고난주간...
예수님의 십자가의 순종으로 나의 불순종을 사하신 하나님의 사랑의 주간...
호흡 한번에 주님의 십자가를 깊이 묵상합니다.

십자가에 달리신 예수님...
주님...
죄송해요....감사해요.... 사랑해요....

박정선

2007-04-06 07:38:54

"십자가에 못박히신 그리스도"-"세상 무엇과도 비교할 수 없는 최고의 능력과 지혜"
"가치는 아는 만큼만 누리게 된다. 믿음은 가치관이다. 가치관이 바뀌지 않은 믿음의 사람은 없다."
"먼저 자신이 죄인임을 고백할 수 있어야 예수님의 십자가의 보혈의 능력을 체험할 수 있다. 죄를 모르는 사람은 십자가의 은혜도 알 수가 없다."

나는 죄인입니다. 매일매일 하나님의 은혜가 필요한 죄인입니다.
조금만 방심하면 내 의가 머리를 쳐들어 나를 포장해 버립니다.
다른 사람의 모습에서 내 모습을 발견하기 보다 판단하고자 하는 유혹과 혈기가 나를 사로잡아 버립니다.
사실은 내 속의 가치관이 바뀌지 않았음을 깨닫습니다.
이번 고난주간 새벽예배 때 오직 중보기도만을 드리자고 하는 말씀을 듣고 이것은 정말 하나님의 뜻이구나 하고 느꼈습니다.
친구중 가정이 너무나 어려운 가운데 있는 친구가 있습니다.
그 어려움을 통해 기도하고 예전 모습과는 비교할 수 없을 정도로 지혜롭게 바뀐 친구가 있습니다.
그 친구를 위해 열심으로 기도할 기회를 주시는구나 하고 감사했습니다.
내가 편한만큼 그 친구가 어렵다고 생각하니 너무나 아픈 마음과 간절한 소망을 가지게 됩니다.
울 교회 아픈 분들을 위해서도 간절한 맘으로 기도합니다.
이번 고난주간에 중보기도의 축복을 주신 하나님께 감사드립니다.
부활절날 우리모두 함께 승리할 것을 믿습니다.

노재훈

2007-04-06 07:55:10

‘십자가에 못박힌 그리스도’는 당신을
‘나는 아담과 동일한 죄인이다.’에서 ‘나는 예수님과 동일한 의인이다.’로 바꾸어 주는 하나님의 유일한 능력이다.
특히 고난 주간에는 금식하며 ‘십자가에 못박힌 그리스도’를 묵상하는 삶을 지켜가길 축원한다.

고난 주간이라 십자가에 못박힌 예수님을 묵상하는 시간들을 가졌다.
날 위해서 돌아가신것이 나를 위해서 돌아 가신걸 더욱더 생각하며 시간을 보낼려고 했지만 회사 그리고 일 .....그리고 사람.....
다른시간속에 만남속에 예수님이 파묻혀 버리는 일들이 많이 생긴다.
그러나 세족식때 정말 나와 나의 속원들이 예수님과 동일한 의인임을 느끼고 속원들을 축복하는 기도를 통해 내 마음이 더 정화된것 같다.
회사를 다녀서 금식하기가 너무 힘이든다. 아직도 금식을 하지 못했다.
그러나 나를 아담의 죄에서 의인으로 바꾸어 주신 예수님을 생각할때 감사의 생각들이 넘친다.
나를 위해지신 십자가를 생각하며 .....

김철중

2007-04-06 08:05:45

받은 복만 생각하는 사람은 죄를 물리치지만, 잃은 복만 생각하는 사람은 죄를 자초하게 된다. 오늘날도 자신이 받지 못한 복만 생각하는 사람은 사탄에게 자신의 인생의 대문을 열어 놓고 있는 자다. 늘 사탄에 이끌려서 징징거리며 신세타령만 늘어 놓는다.
고난에 동참하려는 자세로 한주일을 임하고 있는데 왠지 주님주신 십자가의 은혜에 감사하기보다는 짜증이 앞선다. 왜그럴까 금식, 새벽기도, TV보지않기, 성경읽기등 할만한것은 다 하고 있는데... 아무래도 고난주간에 대한 나의 생각이 감사쪽보다는 너무 고난쪽에 초점이 맞추어져 있기 때문이라는 생각이 들었다. 이 고난주간이 나를 대신하셔서 고난받으신 것에 대한 감사로 채워야 함에도 고난에 대한 동참과 그에대한 부담감으로 채우고 있던 나를 돌아보게 되었다.
즉 이 고난으로 얻을 복을 생각한것이 아니라 현재의 고난에 집중하여 지쳐버리는 것을 알게 되었다. 받을 복을 생각하자..

지영민

2007-04-06 09:13:51

--- 에덴 동산의 삶은 999(동산)를 얻고 1(선악과)을 얻지 못한 모습과 다를 바 없다. 그렇다면 충분히 감사하며 살아갈 수도 있었는데, 사탄은 이 1을 가지고 아담을 무너뜨려 버렸다. 받은 복만 생각하는 사람은 죄를 물리치지만, 잃은 복만 생각하는 사람은 죄를 자초하게 하게 된다.

999를 가진 사람이 1에게 졌다 라는 이야기가 있다면 그 이야기를 읽는 사람들은 누구나가 그의 어리석음에 답답해 할 것입니다. 그런데 때로는 그 답답한 주인공이 내가 될 때가 참 많이 있습니다. 하나님께서 주신 999의 복보다는 1에 얼마나 많이 시험들고 넘어지는지 모르겠습니다.
'자기 아들을 아끼지 아니하시고 우리 모든 사람을 위하여 내어주신 이가 어찌 그 아들과 함께 모든 것을 우리에게 주시지 아니하시겠느냐' 이런 은혜는 없을 거라 생각합니다. 작은 친절에도 감사함을 느낄 때가 참 많습니다. 그런데 그 보다 더 큰 사랑에는 무딘 경우가 있습니다. 받은 복보다는 없어진 복, 그것도 매우 작은 것에 연연해 하며 그 끈을 놓지 못하고 안타까워 하는 현실에 제가 있습니다.
이번 고난 주간에 예수님의 십자가에 대해 많이 말씀으로 듣고 혼자 생각도 해 봅니다. 만일 내가 예수님과 같은 일을 감당해야 하는 경우가 있다면 저는 순순히 아멘 하고 그 일을 감당했을까 하는 생각도 해 보았습니다. 도저히 감당 못한 그 일을 예수님의 감당해 주셨고 그래서 제가 이렇게 하나님의 깨끗한 자녀의 모습을 갖게 되었는데 그 사랑에 빠져 기뻐하기 보다는 엉뚱하게도 작은 것에 삐져 있습니다. 받은 은혜만으로도 평생을 기뻐할 수 있는 예수님의 십자가.
1에 무너져 죄를 자초하는 사람이 아닌 999의 복을 생각하며 죄를 물리치는 은혜를 아는 믿음의 사람이 되고 싶습니다. 1의 그 틈을 통해 엄습해 오는 사단의 유혹에 무너지는 어리석은 사람이 되지 않기 위해서라도 오늘도 십자가만 생각하렵니다. 그래서 내가 받은 복이 얼마나 큰 능력인가를 믿음으로 무장하고 싶습니다.
예수님의 십자가로 제 영이 거듭난 것처럼 제 육신도 그 영과 더불어 믿음에 서 있는 믿음의 사람이 되고 싶습니다.

김명화

2007-04-06 16:09:22

건강하려면 식단부터 바꾸어야 한다.
감사와 찬양의 식단으로 메뉴를 바꿔 보라.
인생이 놀랍도록 풍성해 지고 건강해질 것이다!
십자가에 못박히신 그리스도를 사모하면서
나는 내 스스로에게 약속을 하였습니다.
고난주간전 마음과 정성을 다해 준비하노라고 …
그래서 일단은 새벽을 깨우는 사람이 되어야 한다고 새벽기도를 참석했습니다.
그러나 하루밤도 못가고 그 약속을 어기고 말았습니다.
일어나서 “아 ! 오늘은 춥고 몸도 않좋으니 내일부터 가자!하면서 나의 마음을 달래고 다시 잠자리에 누웠습니다.
그리고 나서 언제 그랬냐듯이
나는 오전 11시에 일어나서 아침은 금식했다고 하면서 나 스스로를 인정했습니다.
점심준비를 하면서 나는 배가 터지게 밥을 먹고 고난주간에 대해서
같이 사는 동생들에게 이야기를 해주었습니다.
이런 나이지만 나는 그래도 비자받고 또 다시 하나님의 사랑은 무한한
“일편단심 민들레”라고 하면서 예수님의 사라에 대해서 동생에게 이야기 해주었습니다.
이렇게 하루를 보내고 이튿날에는 새벽기도에 참석해서 감사의 기도와 고백의 회개를 하고 돌아왔습니다.
3일이 되든날 나는 결심했습니다.
나의 부정적인 이야기와 생각이 나를 더 궁죄에 몰아 넣는 다는 것을 나는 깨달았습니다.
그래서 나는 생각을 바꾸기로 결심했습니다.
나는 하나님의 알곡제자가 될수 있다.
나는 하나님의 작품이다.
나는 하나님의 일을 위해 쓰임받고 그러기 위해서 나는 중국따에서 부터
하나님의 부르심을 받고 이 일본땅에 까지 불러주셨다.
원죄로 나는 태여나면서 울음으로 세상을 맞이하게 되었고
원의로 즉 고난주간이다.
예수님의 십자가의 순종으로 생명의 축복을 받게 되었습니다.
이렇게 좋은 날고 앞날 그리고 영원의 길을 허띿하신 하나님께 감사합니다 말로 표현하는것이 아니라
진정한 신령과 마음에서 우러나는 행동으로 세상사람에게 본을 보여주어야 한다는 것을 확실히 느꼈습니다.
“십자가에 못박힌 그리스도”로 나의 행동이나 말의 복을 지키고 행할수 있어서 감사드립니다.
나를 대신하여 십자가에 못박혀 돌아가신 예수님을 알기원합니다.
나도 나를 십자가에 못박고 나를 버리고 하기싫은 일 하기싫은 순종을 하기로 하였습니다.
세상것보다 하나님의 것을 더 찬송하면서 세상의 빛과 소금이 되겠습니다.
아 – 멘




최현경

2007-04-06 16:30:27

매 년 고난 주간이 되면 예수님의 고난을 묵상하며 한 주 동안 자신의 욕구를 절제하는 일에 동참합니다. 하지만 이런 것들이 그저 의무적이거나 형식적인 것에 그치는 것만 같아 늘 고민이었습니다. 예수님의 고난을 묵상하기 이전에 나 자신의 배고픔, 잠 못잠, 하고 싶은 것을 못하는 데 대한 불편함에 조금은 버거워하는 내 자신이 부끄러웠습니다.
이번 고난 주간에는 예수님의 고난을 묵상하는 것에 집중할 수 있기를, 조금이나마 예수님의 고통과 사랑을 몸소 느낄 수 있게 해 달라고 기도했습니다.
하루는 요리를 하다가 칼에 손가락을 조금 베었습니다. (손 베었을 때의 느낌을 생각하면 지금도 섬뜩합니다.) 그 때 문득 주일에 보았던 예수님께서 십자가에 못 박히신 장면이 떠올랐습니다. '내 손이 조금 베인 것 만으로도 이렇게 섬뜩하고 아픈데 온갖 고초를 당하시고 손과 발이 대 못에 박혀 십자가에 매달리신 예수님은 나의 아픔과는 비교가 안 될 만큼 아프고 괴로우셨겠구나.'라는 생각이 들었습니다.
예수님께서 십자가에 달려 돌아가실 때는 당신이 죽기 위해 예루살렘 성에 입성하실때의 마음에 비하면 오히려 덜 괴로우셨을거라고 목사님께서 새벽예배시간에 말씀하신 적이 있습니다. 아무런 죄가 없으신 그 분이 십자가를 지시기로 결단하셨을 때의 마음이 어떠셨을까 생각하면서 한편으로 내가 져야 될 십자가를 생각해 보게 되었습니다.
저는 제가 져야 될 십자가를 예수님처럼 무조건 순종하며 지지 못함을 고백합니다. 엊그제 조금 힘이 빠지는 일이 있었습니다. 그 일로 내 감정을 절제하지 못하고 제가 꼭 했어야 하는 일을 어제 안하고 말았습니다. 다시 주일 말씀을 묵상하는 가운데 전 날과는 다르게 눈에 들어오는 구절이 있습니다. '받은 복만 생각하는 사람은 죄를 물리치지만, 잃은 복만 생각하는 사람은 죄를 자초하게 된다.' 이 말씀을 통해 제 모습을 발견할 수 있었고 잠시 마귀에게 빼앗겼던 마음을 다시 예수님께로 촛점을 맞출 수 있게 되었습니다.
하루 동안 십자가의 예수님을 묵상하니 예수님의 십자가를 통한 그 사랑에 감사하지 않을 수 없었습니다. '십자가에 못 박힌 그리스도'를 내 맘에 모시고 났더니 정말 저의 마음이 변화됨을 느낍니다. 예수님께서 예루살렘에 입성하셔서 제일 먼저 하신 일이 성전을 깨끗하게 하신 것이고, 돌아가시기 전에 제자들에게 마지막으로 남기신 말씀이 깨어있으라는 말씀이었습니다. 그것의 의미는 '기도하라'는 메세지라고 목사님께서 말씀해 주셨습니다. 문제는 나의 기도부족이었음을 이번 일을 통해 깨닫습니다. 내가 힘 빠졌던 일이 더 이상 문제가 되지 않음을 느낍니다.
나는 타락한 본성을 가진 죄인임을, 이런 내겐 십자가에 못 박히신 그리스도만이 유일한 구원자 이심을 고백합니다.
예수님, 감사합니다... 이 못난 죄인을 사랑하시고 구원해 주시니 저는 무엇으로 보답해야 할까요... '늘 울어도 눈물로써 못 갚을 줄 알아 몸 밖에 드릴 것 없어 이 몸 바칩니다.' 내 인생을 주님을 위하여 바칠 수 있도록 기도합니다. 주님 한 분 만으로 만족하며 주님의 뜻에 순종하며 승리하도록 도와주세요.

인선정

2007-04-06 17:59:57

오늘 성찬식이 있었습니다. 늘 성찬예식을 받는 입장이었지만, 오늘은 속원들에게 성찬예식을 베풀어야 했습니다. 어제 세족식도 마찮가지였지만, 예수님이 행하신 의식을 타인에게 한다는 것은 과연 스스로 자격이 있을까 하는 자문과 함께, 나같이 부족한 사람도 예수님이 행하신 일들을 똑같이 할 수 있는 기회를 주신 것에 감사함을 느꼈습니다.
목사님 주일설교 말씀과 오늘 아침 새벽 말씀을 접하면서 과연 나 스스로 예수님께 바라는 것이 무었이었는가를 생각해보게 되었습니다.
예수님께서는 제 죄를 사해주셨고, 정말로 전 정말 큰 죄인인데도, 그럼에도 죽어서 천국으로 구원해주십니다.
교회에 오래??다니게 되면서 자신도 모르는 사이에 십자가의 예수님의 구원은 어쩌면 넘버투였던 것같습니다. 성경에 나와 있는 그리스인들처럼 예수님으로부터 인생의 지혜를 구했는지도 모릅니다.
하지만, 예수님께서 저에게 주신 가장 소중한 선물은 십자가의 예수님의 몸과 보혈이라는 것을 다시 한번 깨닫고, 가슴에 품고 살아가기를 기도합니다.

탁성아

2007-04-06 23:27:25

‘십자가에 못박힌 그리스도’는 [세상]의 능력이나 지혜가 아니라,
[하나님]의 능력이요, 지혜이다.(고전1:24)

고난주간이다 ...
나를 위해 십자가에 못 박히신 예수님 ..
나를 너무 사랑하셔서 큰 고통을 참으시고 견디시는 예수님 ..
이번 한주간 예수님의 고통을 함께하고 , 느끼며 살아가야 하는 한주인데..
아직도 너무나 부족하고 연약한 나의 모습을 회개하고 반성합니다..
이 못난 나를 왜 그리도 사랑하시는지 ..
그 사랑에 내 자신은 더 부끄러워만 하게 되네요 ..

예수님 사랑합니다 ...

安間チョウコ

2007-04-06 23:41:51

友人二人と、春の休暇を利用して、フランス旅行をしてきた。
ニース、アルル、プロバンズ、ロレーヌ地方の古城、モンサンミッシェル、パリと8泊9日の旅行だった。
外国に出ると日本との違いに気付く。
特に、精神形成について、大きい違いを感じる。
フランスの人たちは、自分の生活や、自分たちの時間を大切にしている。たとえばお店で閉店6時とすれば、どんなにその店が繁盛していても6時に閉店するし、会社が5時に終わるとすれば、だらだらしないで家に帰り家族との時間を大切にするという。ヨーロッパはどこも夏の休暇が長いらしいがフランスは特にバカンスを1ヶ月くらい取るという。
それに比較すると日本は金銭主義で、お金が儲かることに走る。儲かるなら閉店時間を延ばすし、家族も考えず働き、長期休暇などはもってのほかである。
有名な場所には必ず出店があり、都会は地価が高いからと、郊外や地方に大型店舗を作ったり、大きな看板がけばけばしく立てられたり、儲け根性が丸出しだ。家族を金儲けのためには犠牲にしても許されるお国柄になっている。
今回私が驚いたことは、フランスの郊外、田舎の風景が、印象派のピサロやシスレーが描いた風景と変わっていないということだった。200年以上はたっているのに、それほど環境を大切にし、心なごむ環境に保存しているということだった。
ゴッホの跳ね橋には出店はない、門番もいない。日本では考えられない。
日本人の心の貧しさ、ブランド物あさりは有名だ。
何が人間にとって大切かを良くわかっているのである。それは何千年も昔から培われてきた人間性、環境(土壌)がしっかりしているから、心にも自由があるのだと思う。
それはキリスト教である。ローマ帝国がキリスト教をしっかり根づかせたと思う。
どの町にも、村にもその中心に教会が立ち、その装飾や建物は、人類が今後どんな建築を立てようと、比較は出来ない。それは人類の知恵、芸術の総結集であるからだ。だから見るに値するし、保存をしておかねばならない。キリスト教信者がヨーロッパでも減っているとはいうが、キリスト教の環境の中で暮らしているのだから精神の形成は、キリストの影響がないと、否定することは出来ないではないか。
人類がこの世界に生き続ける限りキリスト教は本当に人間のすばらしく良いもの、知恵として生き続けるということを確信して帰ってきた。

소대섭 전도사

2007-04-07 00:29:11

:: 예수님은 3년 동안이나 집중적으로 제자들을 훈련시켰다.
훈련 받은 그들에게 바뀐 것이 무엇인가? 환경인가? 지식인가?
아니다.
오직 그들의 가치관이 바뀌었을 뿐이다.
세상 중심의 가치관에서 예수 중심의 가치관으로 바뀌었다.

신학대학에 들어가서 목회의 길에 서기까지... 그리고 일본에 와서 더욱 풍성한 목회자의 길을 배우는 지금... 가치관이 서서히 변하고 있는 저의 모습을 봅니다.
물론 아직 완벽하지는 않고 온전하지도 않고 오히려 많은 것이 부족한 것이 사실입니다. 하지만, 점점 나의 가치관이 변하고 있는 것이 느껴지니 감사할 뿐입니다.
신학생이었으면서도.. 전도사였으면서도.. 그리고 아직도 저의 가치관을 이야기할 때 겉으로는 성경적인 가치관이라고... 예수 중심의 가치관이라고 말하고 있지만, 본질적으로 들추어보면 물질적인 가치관이,세상 중심의 가치관이 숨어있는 것을 봅니다. 나의 지식은 학교 수업으로.. 그리고 책들로.. 늘어나고 있지만... 나의 환경은 좋은 인연들을 만나서 점점 윤택해 지고 있지만... 이 두가지 보다 더욱 중요한 나의 가치관은 학교나 책, 나의 환경이 아니라 오로지 예수님의 제자가 되는 것으로만 좋아진다는 것을 깨닫게 됩니다. 특히 이번 고난주간을 지내면서 '나는 과연 무슨 가치관(내면세계)을 가진 사람인가??'하는 생각을 다른 때보다 많이 하게 되었습니다. 무엇을 우선하고 있는가? 무엇을 많이 생각하는가? 역시 아직도 세상 중심의 가치관이 저를 더 많이 흔들고 있는 것 같습니다. 그러나 그나마 지금이 이전보다 나은 것은, 이전에는 이렇게 솔직하게 스스로를 진단하지 않았는데 이제야 스스로를 조금씩 올바르게 진단해 가고 있는 것을 봅니다. 역시 사람은 훈련을 받아야 하는가 봅니다. 제게 이런 훈련의 기회와 함께 훈련받는 인연들을 허락하신 하나님께 감사를 드립니다. 열심히 훈련받아서 세상중심의 가치관에서 예수중심의 가치관으로 온전히 돌아 설 수 있는 사람이 되기를 십자가 예수님을 묵상하면서 ... 기도합니다.

:: 세상에 태어나서 죽지 않는 사람은 없다.
따라서 모든 사람은 원죄를 그대로 가지고 있는 것이다.

가끔 정말 훌륭한 인격과 심성을 가진 사람들 중에 많은 수가 예수님을 믿지 않는 것을 봅니다. 그러나 그렇게 훌륭한 인품과 배경이 있어도 결국은 죽는다는 사실이 인간적으로는 가슴 더욱 아프게 합니다. 지금까지 직접 제 눈앞에서 삶과 죽음의 기로에 있는 사람을 두 번 보았습니다. 처참한 모습을 하지는 않았지만... 참 안타까운 죽음이 한 번, 가슴 아픈 죽음이 한 번이었습니다. 그리고 앞으로 저도 언젠가 그 순간을 맞이 하겠지요.
이전에는 죽음에 대해서 생각할 때, 죽음 이후에 대한 소망 보다는 현실에서의 허무에 대한 생각이 많았던 것이 사실입니다. 하지만 이제 생각을 바꾸게 됩니다. 죽음은 우리의 원죄를 증거하는 것으로 말입니다. 그래서 죽음을 만나게 될 때 더욱 믿음을 키우는 계기로 삼기로 결단합니다. 단지 안타까워하는 것으로만 끝내지 않고, 단지 가슴 아파하는 것으로만 끝내지 않고... 그 죽음은 우리의 원죄를 증거하고있으니 더욱 많은 사람에게 주님의 사랑을, 예수님의 이름을 전해야겠습니다. 원죄의 사슬을 끊어버릴 약속을 주신 하나님의 사랑과 능력을 전해야겠습니다.

:: ‘십자가에 못박힌 그리스도’는 당신을
‘나는 아담과 동일한 죄인이다.’에서
‘나는 예수님과 동일한 의인이다.’로 바꾸어 주는
하나님의 유일한 능력이다.

매년 고난주간이 되면 금식도 하고 경건한 삶을 살기 위해서 여러가지 이벤트를 진행합니다. 한국에서 특별히 전도사라는 위치 때문에 청년들에게, 또 교회학교 학생들과 선생님들에게 많은 것을 요구할 때가 있었습니다. 이것도 하면 안 되고 저것도 하면 안 되고... 때때로 그런 행사나 일주간의 과제 때문에 단순하지만, 직설적인 질문을 받을 때가 많았습니다. 어디까지 해도 되고 어디까지 하면 안 되느냐는... 그럴 때 겉으로는 "행실보다는 그 행실을 있게하는 본인의 믿음이 더욱 중요한 것이다"라고 말해 주고는 하지만... 실제로 고난주간 기도회에 빠지거나, 릴레이 금식 기도표에 이름을 적지 않거나, 혹은 고난주간 행사에 동참하지 않는 청년들이나 학생들을 보면 왠지 마음이 불편해질 때가 많습니다. 행사나 혹은 겉으로 드러나는 것이 전부가 아니라는 것을 알면서도, 그 사람의 사정을 알아보려고는 하지 않고 그저 겉으로 드러나는 행실로 사람을 판단할 때가 있었습니다.
나의 행실도 제대로 챙기지 못하면서.. 남을 판단하다니...
그러고 보면 그런 모습에는 '십자가에 달리신 그리스도'의 능력을 믿지 않고 단지 '절기를 지켜야 하니까...' 하는 바리새인과 같은 마음이 담겨있었던 것 같습니다. 오로지 하나님의 능력을 의지했어야 하는데... 하나님의 능력이 아닌 내가 만들어 낸 고난주간 이벤트에 사람들을 동원하려 했던 어리석은 모습을 깨닫게 됩니다. 아이러니하게도 하나님의 능력을 소개해야 할 사람이 여전히 아담과 동일한 죄인의 모습에서 벗어나지 못한 모습을 갖고 있었던 것입니다. 예수님께서 비유하신대로 시각장애인이 시각장애인을 인도했던 것입니다. 오로지 십자가에 못박힌 그리스도께서 증거하고 계시는 하나님의 유일한 능력을 의지하는 사람이 되기를 진심으로 기도합니다.

정승은

2007-04-07 00:34:24

1. 당신에게 있어서 ‘십자가에 못박힌 그리스도’는 어떤 분인가? 유대인이나 이방인들처럼 거리끼는 것, 미련한 것인가? 아니면 바울처럼 ‘십자가에 못박힌 그리스도’는 ‘하나님의 능력’이요, ‘하나님의 지혜’라고 다른 사람에게 전할 수 있겠는가? ‘십자가에 못박힌 그리스도에 대한 가치관이 당신의 믿음의 현주소를 잘 말해 주고 있다. ‘십자가에 못박힌 그리스도’는 [세상]의 능력이나 지혜가 아니라, [하나님]의 능력이요, 지혜이다.(고전1:24)

믿음을 갖게된 3년이 넘는 시간동안 온전히 하나님의 능력과 지혜만을 쫓아
십자가를 바라보면서 살았던가,혹은 여전히 세상적 기적과 지혜를 조금은
바라고 살았던것은 아닌가 생각해 보았다.고개가 떨구어졌다.
이런 내 자신을 회개하면서, 이번 한주 십자가에 못박힌 예수님을 묵상하면서
조금이라도 주님의 고난에 나의 영혼과 마음으로 느낄 수 있길 기도했다.
그리고 이번 한주동안 어렵고 힘든 일이 생겨도 단 이번 한주간 만이라도
사탄의 주식과 간식이 되지 않고,온전히 십자가의 주님을 바라보면서 감사와
찬양으로 돌릴 수 있길 기도했다.
응답은 생각보다 빨리 찾아왔다.부득이하게 오늘 오후에 한국에서 오신
손님과의 약속으로 금식하며 기도할 수 없게 되어서, 어제는 계속 십자가의
주님만 생각하면서 기도해야 겠다고 생각하던 차였는데,새벽부터 새벽기도를
가는 내내 두통에 시달렸고,급기야 세족식과 기도를 마치는 순간까지 겨우
기도하면서 몸을 추스리다가,집에 돌아오자 마자 구토와 두통으로 몸이
후들거릴 정도로 아파오기 시작했다.
가능하면 약도 먹지않고 기도하면서 주님을 묵상하려고 했으나,밀려오는
구토와 두통은 도저히 진욱이를 하루동안 볼 수 있는 상황이 되지 않아
끝내는 약을 먹고 겨우 잠이 들었다.약을 먹고도 쉽사리 가라앉지 않았다.
사실 몸은 너무 힘이들고 아팠지만,십자가를 계속 생각했다.
이정도로 십자가의 주님의 고난과 견줄 수는 없었다.또 중보기도 하고 계신
분들 생각하니,그분들은 이보다 더 힘드실 때에도 믿음으로 이겨내고 계신데,
이쯤이야 하는 생각을 했고,그분들을 위해 생각 날때 마다
계속 기도해야 겠다는 맘이 들었다.
주님께서 채찍에 맞으심으로 우리가 나음을 입었다고 하시지 않았던가?!
우리의 죄와 고통,가난과 저주,세상의 모든 죄를 짊어지신 어린양 되신
주님의 사랑과 능력으로 분명 우리가 나음을 입었고,자유를 얻었음을
우리가 믿음으로 온전히 회복될 수 있길 소망하며 기도했다.
아픈 몸을 이끌고 진욱이를 데리고 장을 보러 다녀왔다.
도저히 저녁밥을 지을 수 있는 상황이 아니였다.하지만 어제 하루 만큼은
최선을 다해 내가 할 수 있는 최소한의 일을 힘을 들여서라도 하고 싶었다.

하루 한끼 금식으로,새벽기도 참석했다는 것으로 고난 주간을 의미 깊게
보냈다고 생각하지는 않는다.주님께서 나를 위해 죽음의 순간까지 묵묵히
십자가를 지시고,고난을 당하시고 죽으시기까지 하신 것 처럼,내가 힘들고
어려운 순간에,맘이 너무 괴롭고,지치는 순간에도 그분이 내게 하신 것 처럼
나도 내가 져야할 십자가를 짋어지고,그분이 가셨던 그 길을 따라 한걸음
한걸음 묵묵히 나아 갈 수 있길 바란다.
힘들면 힘들수록 십자가의 능력이 오직 나의 능력이 되길 바란다.
손과 발에 박힌 못자국,머리에 쓰여진 가시관,등에 온통 난 채찍 자국,
옆구리에 찔리신 창까지...고난 주간이 끝난 후에도 언제나 내 마음속에
지금과 동일하게 남아 내 믿음과 마음을 지킬 수 있는 능력이 되길 소원한다.

주님의 십자가를 바라보는 동안 자유의 눈물과 평안을 주심에 감사드린다.
약을 먹기는 했지만,육적인 고난 가운데서도 주님을 만나게 해주시니
감사드린다.진정 나를 자유케 하신 분이 주님이심을,내 인생의 영원한 마스터
키를 준비하신 바로 그분 [십자가에 못박히신 예수님]이심을 깨닫게
해주심을 감사드린다.

남철

2007-04-07 06:33:26

세상중심인 생활습관을 버리고 오직 주님 중심의 생활을 해야겠다고 항상 생각은 하는데 마음데로 잘 안되네요
항상 찬양을 흥을 거리기를 좋아하는데 왠지 오늘 새벽기도를 드리고 나니 새벽 기도시간에 불렀던 찬양이 생각이 많이 나더라구요
한마음 구석에서는 이렇게 살면 안되는데 라는 생각이 들면서 일주일 동안 새벽을 깨우지 못한 나자신의 모습을 보며 회계했습니다.
주님 중심의 생활을 실천하며 살아가겠습니다.

김진희

2007-04-07 07:33:46

오래간만에 한국에 갔다는 이유로 고난주일의 예수님의 고난을 생각하며 보내기 보다는 일년만이니까 하면서 친구들과 바쁘게 약속을 잡고 먹으며 즐기며 보내었던 한주였다. 이렇게 지내면서 내 맘은 또 편하지도 않았다. 성경을 봐도 기도를 해도 뭔가 갈피를 못 잡는 것 같은 나 자신을 발견하게 되었다. 그러면서 역시 안 되는 건가 라는 생각까지 하게 되었다. 그런데 토요제자반이 모여서 부활절 준비를 하면서 기도하는데 내가 잘못생각했구나 라고 깨닫게 되었다. 고난과 시험이 오면 늘 그것에 대해 무거운 마음뿐 이것을 믿음으로 이겨내야 겠다는 생각을 못했구나 언제나 여러가지 핑계를 대며 부딪혀볼 생각도 안 했구나 라는 생각이 들었다.

바울과 그 동료들에게는 전 인생을 다 드려도 전혀 아깝지 않는 ‘십자가에 못박힌 그리스도’가 유대인에게는 걸려 넘어지는 돌이요, 이방인에게는 어리석은 것이 되어 버렸다. 전혀 받아 들이지 못한다는 것이다. 오늘날도 마찬가지다. 우리 중에도 ‘십자가에 못박힌 그리스도’가 별로 와 닿지 않고, 자신과 거리가 너무 멀리 느껴지고, 무관심, 무감각, 무기력감에 빠져 있는 사람들이 있다

이 말씀을 보면서 나도 내 맘이 자꾸 굳어져 가고 있다는 걸 깨닫게 되었다. 자꾸 머리로만 생각하고 있다. 예수님이 내 죄 때문에 고난받으시고 십자가에 돌아가셨어 라고 머리로는 알겠는데 내 맘에 가깝게 느껴지지 않는 나를 발견하게 되었다. 얼마 남지 않은 남은 기간 동안 만이라도 내 삶을 절제하며 예수님의 고난을 기억하기를 원한다. 그리고 감사해야 될 일까지도 감사하지 못하고 있는 내 굳어있는 마음도 다시 뜨거워지기를 기도해야 겠다.

오성훈

2007-04-07 10:12:16

#냉정하게 자신을 한번 돌아보자. 당신에게 있어서 ‘십자가에 못박힌 그리스도’는 어떤 분인가? 유대인이나 이방인들처럼 거리끼는 것, 미련한 것인가? 아니면 바울처럼 ‘십자가에 못박힌 그리스도’는 ‘하나님의 능력’이요, ‘하나님의 지혜’라고 다른 사람에게 전할 수 있겠는가? ‘십자가에 못박힌 그리스도에 대한 가치관이 당신의 믿음의 현주소를 잘 말해 주고 있다.#
교회에서 가장 많이 쓰여지는 말이 무엇일까? "십자가"이다. 고난을 의미하기도 하고 남을 위한 헌신과 희생의 뜻으로도 사용된다. 그러나 오늘 이 십자가의 본래의 뜻이 엄청나게 변질되어 가고 있지는 않은지, 바로 내 자신에서부터 찾아야 하겠다.
십자가의 길을 걸어가는 그리스도인은 "이제는 내가 사는 것이 아니라 그리스도가 내 안에 사는 것이다"(빌립보 1:21)는 신앙으로 살아가야 한다. 그러므로 그리스도인된 자의 삶은 그리스도가 사셨던 것처럼 살아야 한다. 그리스도 예수가 지녔던 마음을 지니고 살아야 한다.
금년에도 예수 그리스도께서 당하신 고난주간을 맞이하여 하나님의 어린양을 기억하고 찬양하며 내 자신을 돌아보며 자숙하면서 고난주간을 보내고 있는 이 시간, '누구든지 자기를 버리고 제 십자가를 지고 나를 따르라'는 예수님의 명을 따라 사는 내 모습이 되어야 하겠다.
십자가는 희생과 헌신을 뜻한다. 그러나 그 십자가의 길은, 하나님께서 축복을 약속하신 유일한 길이요, 하나님의 능력을 나타내는 복된 길이다. 세상 사람들은 우습게 보고 어리석게 생각할지라도, 내 삶속에서 날이 갈수록 더욱 귀히 여기는 능력있는 자의 모습으로 살아가기를 오늘도 기도드린다.

백인화

2007-04-08 00:18:21

“바울은 ‘십자가에 못박힌 그리스도’를 발견하고 그 능력을 누려 보니 너무 너무 좋아서 그 귀한 것을 다른 사람들에게 전하지 않으면 안될 정도였다. 그래서 그는 이 일에 자신의 전 인생을 바치게 된다. ”

십자가에 못 박힌 그리스도만을 바라보겠노라고 고난주간동안 한끼를 금식하며 되도록 육신의 즐거움을 자제하며 살아보려고 노력했습니다. 그런데 어느틈엔가 그것이 제 의가 되어버려서 일주일에 5일을 금식하며 기도하는 제 모습과 하루만 금식하며 기도하는 사람을 비교하며 제가 영적으로 아주 우월하다는 바리새인과 같은 생각에 빠지고 말았습니다. 하나님의 능력이요, 하나님의 지혜인 십자가에 못 박힌 그리스도의 의가 아닌 제 자신의 의로움만을 바라보며 주님의 마음을 품은 듯 착각하며 살았습니다. 오히려 비판과 정죄에 더 사로잡히는 모습을 바라보며 아직도 여전히 살아서 크게 숨을 쉬는 제 자신만을 새록새록 발견했습니다. 마지막 금요일에 하루를 금식하면서야 드디어 제 자아가 서서히 사라짐을 보았습니다.
저를 십자가에 못 박고 경멸하며 침을 뱉고 모욕을 준 것도 아닌데 그저 제 생각에 동의해주지 않고 제가 하는 일을 조금 마땅치 않게 여기는 사람을 마주보며 함께 있는 것조차도 견딜 수 없어하는 제 모습을 보면서 십자가에 달리신 예수님의 말씀이 하나씩 떠오릅니다. 말씀이 육신이 되어 오신 예수님도 멸시하는 죄악된 본성을 가진 인간인데, 아직 확신도 없이 논리적이고 구체적으로 말씀이 뒷받침 되어 표현되지도 못하는 제 의견이 무시당했다고 이렇게 혼자서 억울해 하고 분을 내는 제 자신의 모습을 보면서 지금도 하나님 우편에서 ‘아버지여 인화를 사하여 주옵소서. 자기의 하는 것을 알지 못함이니이다’라고 간구하고 계시는 예수님의 기도가 이제야 바로 다른 사람이 아닌 저를 위해 하시는 기도임을 깨닫게 됩니다.
십자가에 못 박힌 그리스도만이 귀하고 그 능력만이 살 길이라고 제 삶을 바치겠다고 하였지만 여전히 조금만 억울한 일을 당해도 십자가를 지네 못 지네 하며 올렸다 내렸다를 반복하는 제 연약함을 보면서 하나님께 버림당하시면서 까지 저를 위해 십자가를 지신 예수님의 크신 사랑과 은혜를 다시 묵상합니다.

웬말인가 날 위하여 주 돌아가셨나 이 벌레같은 날 위해 큰 해 받으셨나

내 지은 죄 다 지시고 못 박히셨으니 웬일인가 웬은혠가 그 사랑 크셔라

주 십자가 못 박힐 때 그 해도 빛 잃고 그 밝은 빛 가리워서 캄캄케 되었네

나 십자가 대할 때에 그 일이 고마워 내 얼굴 감히 못들고 눈물 흘리도다

늘 울어도 눈물로써 못 갚을 줄 알아 몸밖에 드릴 것 없어 이 몸 바칩니다 아멘

홍인기

2007-04-08 10:02:52

"세상사람들이 좋아하는 기적(표적)과 지혜이다"

제 믿음의 현재 위치를 잘 파악 할 수 있게 해주는 설교말씀이였던것 같습니다. 먼저 나또한 그때 사람이였다면 여느 사람들과같이 기적과 지혜를 좋아하고 따랐지 않았을까 하는 생각을 해봅니다. 그런 예수님의 행적들을 보면서도 바울과 그 일행이 깨달았던 세상 무엇과도 비교할 수 없는 최고의 능력과 지혜가 예수님 그 자신임을 발견하고 깨달았을까 자문해 봅니다.

"십자가에 못박힌 그리스도’가 별로 와 닿지 않고, 자신과 거리가 너무 멀리 느껴지고, 무관심, 무감각, 무기력감에 빠져 있는 사람들이 있다."

오랫동안 교회를 다녔으면서도 여느 사람들과 같이 십자가에 달리신 예수님을 보면서 무관심, 무감각, 무기력함을 느꼈던 적도 있었음을 고백합니다. 아마도 위에 언급했지만 예수님의 존재 자체의 기적과 축복을 알지 못하고 단순히 기적과 지혜를 따랐을것 같은 어리석은 저의 자아가 있기에, 그것이 이어져 이런 무감각증에 걸려 살았던게 아닌가 변명아닌 변명을 해봅니다.

이제라도 바울처럼 ‘십자가에 못박힌 그리스도’는 ‘하나님의 능력’이요, ‘하나님의 지혜’라고 다른 사람에게 전할수 있는 예수님의 제자가 되어야 겠다고 다짐해 봅니다. 아니, 그렇게 될 수 있게 도와달라고 기도를 해야겠습니다.

하나님의 놀라우신 능력.....

"‘나는 아담과 동일한 죄인이다.’에서 ‘나는 예수님과 동일한 의인이다.’로 바꾸어 주는 하나님의 유일한 능력이다."

괜히 죄를 지어서 먼 후대에 있는 나까지 고생시킨다고 아담을 원망했던 어리석은 제 모습도 있었습니다. 하지만 그와 같은 맥락으로 예수님이 십자가에 달리셨기에 제가 하나님 앞에서 의인의 대열에 들어갈 수 있음이 놀랍기만 합니다.

고난주간.....

예수님의 고난과 은혜를 마음속 깊이 곱씹어 보는 한주가 되었던것 같습니다.

최정민

2007-04-08 11:12:37

“먼저 자신이 죄인임을 고백할 수 있어야 예수님의 십자가의 보혈의 능력을 체험할 수 있다.
죄를 모르는 사람은 십자가의 은혜도 알 수가 없다. ‘나도 아담과 동일한 죄인이다!’ ”

고난주간 이었던 이번 한 주 간을 살면서 예수님의 십자가를 깊이 생각할 수 있었습니다.
금식을 할 때에는 예수님의 고통과 그리고 나를 대신해 피흘린 것에 대한 감사를 생각했습니다.
그렇지만 가장 많이 은혜가 되고 눈물이 났던건.. 새벽예배 시간에 주님께 저의 죄를 고백하고 회개
하는… 그리고 용서받는 그때가 가장 은혜가 되었습니다… 정말 엉엉 울면서 주먹을 꼭 움켜쥘 정도로 눈물이 나왔습니다. 그렇게 주님께 매달려 회개하고 나니.. 죄송스러워서 고개를 들고 바라 볼 수가 없었던 십자가에 못 박힌 예수님을 바라 볼 수 있었습니다. 전 똑 바로 보았습니다. 나 때문에 모든 수치과 치욕과 뼈와 살이 찢겨지는 고통을 감당하시면서 십자가에 목 박힌 예수님을.. 이번 한 주는 용서받고 예수님을 체험하고 또한 많은 감사를 할 수 있었습니다. 앞으로도 주님의 십자가 보혈을 가슴 속에 그리면서 살고 싶습니다. 이제 새학기가 시작되고 새로운 친구들과 제미 수업에도 참가 합니다. 또한 학외 제미 수업에도 참가하면서 새로운 사람들을 많이 만나게 되는데요 그런 사람들에게 그리스도의 향기를 낼 수 있는 제가 되기를 소망합니다^^

하제란

2007-04-08 17:14:24

십자가에 못박힌 그리스도’는 나를 죄인에서 의인로 바꾸어 주는 하나님의 능력입니다. 나의 노력이 아닌 하나님의 나를 향한 은혜와 긍휼로서입니. 그렇다면 나는 은혜를 입은 사람으로서 당연히 해야 할 것들이 있게지요. 요즘 선택을 한다는 것이 이렇게 힘든 것인가.. 에 대해서 생각해 보았는데 예수님은 하나님에게 십자가사역을 명 받으시고 처음 어떠셨을까 하고.. 순종이기 전에 내면의 선택이 있으셨을 것 같은데.. 어떤 마음으로 지키셨을까 하고 생각해 봅니다. 고난 주간이지만 나에게 있어서는 예수님의 고난이.. 십자가의 사역이.. 있었기에 지금의 내가 이렇게 선택이 어떻고 저렇고 등등의 삶을 한가롭게 살고 있는 것이 겠지요. 은혜를 모르는 사람은 짐승만도 못하다는 말이 있듯이.. 다시 한번 느끼게 되는 주간 입니다.. 내가 짐승만도 못하다는 것을요.. 이런 나를 나의 딸이라는 자녀의 권세를 주신 하나님의 은혜에 조금이라도 영광으로 돌려 드릴 수 있는 내가 되기를 바랄 뿐 입니다.

조정현

2007-04-10 02:33:45

지난 한주간은 저에게도 정말 고난주간이었습니다. 저희 성도님의 문제로 몸과 신경이 피곤할대로 피곤해져서 예수님의 고난을 묵상하기보다 '고난주간이 왜이리 부산하고...나한테 이게 왠 고난인거야...'라고 장난으로 말할정도였습니다.
결국 그 성도님이 목요일날 가시고 금요일 온종일 금식을 하는데 물론 배가 고팠지만 '늘 돌아오는 성금요일이기 때문에.. 예수님 십자가에 달리셨는데 내가 어찌 밥을 먹어...'이런 마음이 아니라 정말 기도하는 마음으로 정말 내 죄가 그 보혈로 정결케 되었다는게...나는 겨우 몇주 그 성도때문에 힘들었다고 불평하고 생색내고 싶어하는데 한마디의 불평도 없이 나를 위해 십자가를 지신 예수님이 너무나도 감사했습니다.
다른 사람을 온전히 섬기지도 못하고 나의 불평이 늘어날수록 나의 죄를 더욱 분명히 볼수 있었던 한주였던것 같습니다. 주의 종이 몇번을 권면하셨는데도 내 나름대로의 핑계를 붙여 순종하지 못했던 것 까지 저의 연약함이 분명해지고 저의 악함이 드러날수록 그런 저를 용납해주시고 받아주셨던 예수님께 더욱 감사하고 면목이 없습니다. 한주내내 집과 교회를 오가며 찬송가 135장이 입에서 떠나지를 않았습니다. 나의 주님이 고난을 받기 위해 세워진 십자가를 주님이 고난을 받은 표를 온 마음을 바쳐 사랑합니다.

박성옥 선교사

2007-04-10 03:51:01

아담의 불순종으로 사망의 저주를 받은 우리를, 예수님의 십자가 순종으로 생명의 축복을 받게 하셨다. 이 인류의 난제를 풀어 주신 열쇠는 바로 십자가와 예수님을 합친 것이다. 합치려면 못을 박아야 한다. 그래서 ‘십자가에 못박힌 그리스도’가 된 것이다. 이것만이 온 인류의 구원의 참 열쇠이다. 죄가 없으신 예수님이 우리를 대신해서 십자가에서 죽으심으로 죄값을 다 치렀기 때문이다. 그래서 ‘십자가에 못박힌 그리스도’는 하나님의 능력이요, 하나님의 지혜가 아닐 수 없다. 당신은 인생에 어떤 열쇠를 갖고 있는가? 앞으로 어떤 열쇠를 갖고 싶은가? ‘십자가에 못박힌 그리스도’가 당신의 인생의 마스터 키가 되기를 바란다. 이 키는 분명히 당신에게 참 자유와 생명을 줄 것이요, 하나님의 능력과 지혜를 누리게 할 것이다.


지난주는 주님의 고난에 동참하라고 날씨까지도 음산하고 춥고 괴로웠다
세족식에 주님께서 내 발을 씼기신다고 생각하니 부끄럽고 죄송했다
주님이 나를 사랑하신다는 말씀에 울음을 참을수가 없었다
주님앞에선 내모습이 교만하고 이기주의 였고 사랑이 매말른 모습을 보게되었다
그뿐아니라 영화를 몇번 보았지만 인류의 구원의역사로만 보았을때와 주님이 나의 허물과 죄와
나의질고 때문에 고난을 당하시는 모습을 보니 견딜수없이 내 마음이 아프고 괴로왔다
나의 죄를 위하여 죽기까지 하신 주님앞에 할말이 없었다
나는 남을위 하여 희생할수있을까
나를 온전히 십자가 앞에 다 내려 놓고 주님이 나를 사랑해 주신것 처럼 사랑을 하고싶다
주여! 형식적이지 아니하고 진정한 주님의 사랑이 내 마음속에 있기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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