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중앙영광교회

두 이름

이용규목사, 2007-01-15 19:04:0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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두 이름

말씀//사도행전19:13-17

1.        누구든지 주의 이름을 부르는 자는
‘누구든지 주의 이름을 부르는 자는 구원을 얻으리라’(롬10:13)
이 말씀에 의지하여 2007년에는 ‘무엇을 하든지 말에나 일에나 다 주 예수의 이름으로 하자’고 했다. 그 구체적인 실천 사항으로 매일 ‘예수님의 이름’을 100번 이상 영혼으로부터 부를 것을 권면하였다. 그리고 벌써 2주가 지났다. 과연 예수님의 이름은, 말씀대로 우리에게 구원의 감격을 주고, 풍성한 은혜와 응답을 주었을까?
하나님의 말씀은 곧, 하나님께서 우리에게 주신 약속이다. 사람은 약속을 어길지 모르지만, 하나님은 결코 약속을 어기는 법이 없다. 하나님의 말씀은 일점 일획도 거짓이 없다. 하나님의 약속대로 ‘예수 이름’의 풍성한 은혜가, 많은 성도들을 통해서 계속 흘러 나오고 있음에 얼마나 감사한지 모른다.
2주 전, 처음 제단에서 ‘예수의 이름’이 선포되던 날, 교회에 두 가지 큰 아픔이 있었다.
한 성도님은 가게에 불이 났고, 설상가상으로 손까지 베여서 병원에 갔지만 치료에 시간이 걸려서 피를 많이 흘렸다. 그리고 또 한 성도님은 송구영신 예배에 오다가 그만, 지갑을 택시에 두고 내려 버렸다. 물론 지갑 속에는 많은 돈과 각종 중요한 것들이 다 들어 있었다. 두 분다 얼마나 힘들었을까? 생각만 해도 목사인 내 가슴도 무너져 내렸다. 솔직히 말해서 육적으로는 설교하고 싶은 마음이 사라져 버렸다. 성도의 아픔은 곧 목사의 아픔이기 때문이다. 그것도 다른 때가 아니고, 두 번 다 예배 직전에 들었기 때문이다. (주일 예배와 송구영신 예배) ‘하나님! 왜 하필이면 이 때에 우리 교회 성도입니까?’ 그러나 곧 성령의 음성을 들었다. ‘예수의 이름’을 간절히 부를 수 있는 천혜의 기회가 주어진 것이다. 예배 때에 선포하며 기도했다. ‘예수님! 꼭 도와 주세요. 예수님의 이름으로 지갑을 찾게 해 주세요. 예수님의 이름으로 치유해 주시고, 예수님의 이름으로 더 좋은 일이 일어나게 해 주세요.’ 본인들 뿐 아니라 많은 사람들이 기도했다. 드디어 예수님의 이름으로 응답이 왔다. 얼마나 기뻤는지, 감사했는지 모른다. 불이 나고 손이 다친 성도님은, 그 전부터 밤에 잠을 자지 못할 정도로 아프던 팔이, 사고 후에 더러운 피가 흘러나감으로, 씻은 듯이 나았고, 지갑을 잃어버린 성도님은, 없어진 것 하나 없이, 그대로 돌아왔다. 하나님께서 절묘하게 두 사건을 통해서 ‘예수 이름’의 권세를 증명해 주신 것이다.
할렐루야! ‘누구든지 주의 이름을 부르는 자는 구원을 얻는다’    
그 외에도 하나님은 예수 이름을 통해서 너무나 풍성한 선물들을 주셨다. 예수 이름으로 병이 나은 이야기, 예수 이름으로 장학금 받은 이야기, 예수 이름으로 애기의 습관이 바뀐 이야기, 예수의 이름으로, 힘들었던 마음에 평강과 감사를 얻은 이야기…
이처럼 ‘예수의 이름’은 우리 인생에 아름다운 이야기들을 만들어 준다.
올해는 무엇보다 ‘예수님의 이름’으로 빛을 발하고, 세상의 참 빛이 되는 해가 되기를 축원한다. 간증의 마지막으로 어느 목사님의 고백을 소개하고자 한다.

(K 목사의 고백)
------ 당신은 하루에 예수님 생각을 얼마나 많이 하고 있는가? 예수님의 이름을 얼마나 많이 부르고 있는가? 이것이 당신의 건강지수요, 능력지수요, 행복지수임을 알고 있는가? ------

지난 주 말씀을 받으면서 올해에는 하루에 예수님의 이름을 백번 이상 부르고 백번 이상 사용하기로 결단했었습니다. 그리고 그 결단대로 살았던 한 주간이었습니다. 운전하면서도 예수님의 이름을 부르고, 찬양을 부르면서 예수님의 이름이 나오면 더욱 간절하게 부르고, 마음에 걱정과 염려가 밀려오면 예수님의 이름으로 부르고, 악한 생각이 찾아오면 예수님의 이름으로 물리쳤습니다. 그렇게 예수님의 이름을 부르고, 그 이름을 의지하며 일주일을 지냈습니다. 놀라운 것은 이것 하나만으로 내 심령에 얼마나 크신 주님의 은혜가 임했는지 모릅니다.

지난 주일아침, 강단에 무릎을 꿇고 예수님의 이름을 부르자 주님의 은혜가 내 메마른 심령을 가득 채우기 시작했습니다. 오직 예수님의 이름만 불렀을 뿐인데 내 눈에서 뜨거운 눈물이 흘러내렸습니다. 회개의 눈물도 아니고, 주님의 도우심을 절실히 구하는 눈물도 아니고, 그냥 예수님의 이름만을 불렀을 뿐인데. 그렇게 뜨거운 눈물을 흘려본 일이 얼마만인지요. 예수님의 생각을 얼마나 많이 하고 있느냐가, 예수님의 이름을 얼마나 많이 부르고 있느냐가, 바로 내 신앙의 건강지수요, 능력지수임을 체험했던 한 주간이었습니다. 내 인생의 행복이 오직 예수님의 이름에 있다는 것을 다시 한 번 확인하고 또 확인했던 한 주간이었습니다. 어린 아이가 오직 엄마만 생각하고, 오직 엄마의 이름만 부르는 것처럼, 그렇게 어린 아이와 같은 마음으로 오직 예수님만 생각만하고, 오직 예수님의 이름만을 부르며 살고 싶습니다.

------ 우리를 통해 세상에 흘러가야 하는 것은 예수의 이름 밖에 없다. 이 사명을 위해서 우리는 택함 받은 주님의 그릇이다. ------

왜 주님께서 나를 부르셨는지, 내가 주님을 위해서 무엇을 해야 하는지 너무나 분명합니다. 예수님의 이름을 증거하는 것입니다. 언제, 어느 자리에서, 누구를 만나든지 예수님의 이름을 전할 것입니다. 더욱 시급한 것은, 예수님을 믿고 있으나 예수이름의 능력과 권세와 그 행복을 모르고 신앙생활을 하고 있는 성도들에게, 시간마다 순간마다 예수님의 이름을 부르는 자들에게 약속하신 축복을 누리게 하는 것입니다. 예수님의 이름으로 평안과 형통을 체험하게 하는 것입니다. 지난 한 주간 예수님의 이름을 부르면서 내가 맛보았던 은혜와 행복을 성도들로 하여금 맛보게 하는 것입니다. 그리고 예수님의 이름에 붙잡힌 한 사람 한 사람이 그들의 가정에서, 그들의 학교에서, 그들의 직장에서, 예수님의 이름으로 천국을 만들어가는 작은 예수로 살게 하는 것입니다. 2007년은 우리 모두가 예수님의 이름에 취해 사는 건강하고 능력 있고 행복한 한 해가 될 것을 기대합니다. 예수님, 오직 예수님의 이름에 붙잡혀 살게 하소서! 오직 예수님, 오직 예수님으로만 살게 하소서!  
    
2.        바울이 부른 ‘예수 이름’
사도 바울은 우리 모두의 믿음의 모델이다. 우리는 그 분의 모습을 본받아야 한다.(고전11:1) 그러면 바울은 예수님의 이름을 어떻게 불렀을까? 바울은 예수님의 이름을 얼마나 불렀을까? 그는 예수님의 이름을 부르는 것을 꺼려했을까? 이상하게 생각했을까? 부끄러워했을까? 체면 때문에 주저했을까? 절대로 아니다. 그는 늘 기뻐하며 자랑스럽게 당연하게 수시로 예수 이름을 불렀다. 따라서 우리도 예수님의 이름을 자주 불러야 한다. 예수님의 이름을 자주 부르는 것이 이상한 것이 아니라, 예수님의 이름을 못 부르게 하는 것이 크게 잘못된 것이다.
‘그들을 불러 경계하여 도무지 예수의 이름으로 말하지도 말고 가르치지도 말라’ (행4:18)
초대교회의 핍박자들의 이 말과 이상한 분위기가 오늘날 많은 교회들을 누르고 있는 느낌들이 있다. 이 분위기들을 하루 빨리 거두어 내야 한다. 예수님의 이름이 성도들의 삶과 입에서 늘 춤을 추어야 한다. 예수 이름을 감옥에 가두지 말아야 한다. 진정한 믿음은 예수 이름의 자유에서 시작이 된다.
‘누구든지 [주의 이름]을 부르는 자는 구원을 얻으리라’(롬10:13)
‘무엇을 하든지 말에나 일에나 다 [주 예수의 이름]으로 하라’(골3:17)
‘[예수 그리스도의 이름]으로 내가 네게 명하노니 그에게서 나오라 하니 귀신이 즉시 나오니라’(행16:18)
이 모두가 다 바울을 통해서 불려진 ‘예수의 이름’들이다. 그는 말을 할 때도 ‘예수’, 일을 할 때도 ‘예수’, 길을 갈 때도 ‘예수’, 밥을 먹을 때도 ‘예수’, 귀신을 만났을 때도 ‘예수’…
모든 삶이 오직 ‘예수의 이름’으로 충만한 사람이었다. 그래서 그는 늘 풍성한 사람이었고, 승리의 사람이었고, 기쁨의 사람이었다. 믿음의 사람은 예수의 이름의 부자가 되어야 한다.
바울이 얼마나 예수님의 이름을 많이 불렀던지, 예수님을 믿지 않는 자, 반대자들도 바울이 없는 곳에서 ‘바울이 전파하는 예수를 빙자하여 너희를 명하노라’(행19:13)고 하면서 시험삼아 예수의 이름을 부를 정도였다. 이처럼 바울이 부른 예수의 이름이 반대파들에게도 엄청난 호기심을 불러 일어킬 정도였으니까, 그 당시 바울을 통해서 예수의 이름이 얼마나 유행했고, 또 역사했는지를 짐작할 수 있다. 이 귀한 예수 이름을 다시 유행시키자! 일본인들(예수 안 믿는)도 몰래 불러 볼 수 있을 정도로 유행시키는 해를 만들자.
올해는 일본 땅에도 존귀하신 예수님의 이름이 유행하는 해가 되기를 기도한다.
  
3.        두 이름
사도 바울이 부른 ‘예수의 이름’과 제사장 스게와의 7아들들이 부른 ‘예수의 이름’은 똑 같았지만 전혀 달랐다. 능력이 달랐다. 역사가 달랐다. 결과가 정반대로 나타났다. 바울이 예수님의 이름으로 명령했을 때에는 귀신이 즉시 도망을 갔지만, 스게와의 7아들들이 예수의 이름으로 명령했을 때에는, 오히려 귀신이 심하게 달려들어 발가벗고 자신들이 도망가는 신세가 되었다.
같은 이름을 불렀는데, 왜 전혀 다른 결과가 나왔을까?
같은 칼이더라도 일류 요리사 손에 있으면, 몸에 좋은 맛있는 요리를 만들어 내지만, 흉악범의 손에 있으면 생명을 위협하는 흉기로 돌변하듯이, 예수님의 이름도 누가 부르는가에 따라 전혀 다른 결과를 가져 온다.
모든 결과는 연장과 사용하는 사람의 합작으로 만들어진다.
‘일 못하는 사람이 연장 탓만 한다.’는 말이 있다. 예수님의 이름을 탓하지 말아야 한다. 예수님의 이름을 바꾸려고 하지 말아야 한다. 문제는 내 자신에게 있다. 자신을 바꾸어야 한다. ‘나만 바뀌면 우리 집안 문제 없다.’ ‘나만 바뀌면 우리 교회 문제 없다.’
올해는 ‘자기를 바꾸는 해’로 정하자.
조용히 눈을 감아보자.
남의 문제점을 생각하지 말라.(아내, 남편, 자녀, 부모, 이웃, 목회자, 성도…) 오직 자신만 생각하라. 그리고 조용히 영으로 기도하자.
‘올해는 예수님의 이름으로 제가 바뀌기를 원합니다. 예수님! 제발 도와 주세요.
제가 안 바뀌면 저희 가정에 희망이 없습니다.
제가 안 바뀌면 저희 교회에 희망이 없습니다.
제가 안 바뀌면 무엇보다 제 인생에 소망이 없습니다.
존귀하신 예수님의 이름으로 제가 꼭 바뀌게 해 주세요.’
사람은 남이 바꾸는 것이 아니다. 하나님의 은혜로 스스로 바뀔 뿐이다.
미련한 사람은 남을 바꾸려고 애를 쓰지만, 지혜로운 사람은 자신을 바꾸려고 노력한다.
예수님의 이름을 바꾸려고 하지 말고, 예수님의 이름을 부르는 자신을 바꿀 때, 예수 이름의 역사는 일어난다.
스와게의 7아들들의 모습을 벗어 버리고 바울의 모습의 새 옷을 입어야 한다.
바울은 예수님의 이름을 부를 때마다, 예수님이 바로 개입해 주셨다. 예수님과 상관없는 예수의 이름은 아무런 능력도, 의미도 없다. ‘예수님의 이름’ 자체가 능력이 있는 것이 아니라, 예수님을 믿는 믿음이 능력이다. 그 믿음의 표현으로 예수님을 부를 뿐이다. 믿음 없이 부르는 예수의 이름은 공허한 메아리에 불과하다. 믿음이란 곧 예수님을 내 속에 영접한 상태를 말한다.(요1:12) 내 속에 예수님이 계실 때, 예수님의 이름은 구원의 능력을 나타낸다. 스게와의 아들들의 속사람에는 예수님이 계시지 않았다. 그들은 단지 바울의 예수를 훔쳐 왔을 뿐이다.
‘바울이 전파하는 예수’는 나와 상관없는 예수다. ‘내 예수’가 아니다. 내 예수, 내 구주가 되어야 한다. 목사가 전파하는 예수, 성경이 전하는 예수는 스게와의 아들들의 예수일 뿐이다. 남의 예수이지, 결코 자신의 예수는 될 수 없다.
‘바울이 전파하는 예수’를 ‘내가 믿는 예수’ ‘내 속에 계시는 예수’ ‘나의 예수님’으로 바꾸어야 한다. 그리고 나서 그 예수님의 이름을 불러보라. 바울의 예수님이 ‘나의 예수님’이 되신 것을 체험하게 될 것이다.    

46 コメント

이정미

2007-01-15 23:47:18

세상 어느것과 바꿀수 없는 예수님 이름....
예수님의 이름이 계시기에 지금 내가 존재하고 우리가 있지 않을까요?
영원히 죽을수 밖에 없는 나를 당신의 자녀가 된 특권으로 주님의 이름을
부르니 감사 또 감사를 드립니다.

저번 토요일 오전 한통의 전화를 받았다.
목사님 따님이 동경에 신혼집을 차리려고 모든준비가 다끝나 오늘 오후1시경
나리타 공항에 도착한다는 소식이다.
늘항상 바쁜 남편은 분주하게 준비하여 그들을 공항에서 부터 그 많은 짐 또
일본은 처음이라 언어도 되지 않고 아무것도 모르는 그들 부부에게 처음부터
끝까지 주소도 물어겨우 도착했다. 난 그가운데 이런 생각을 했다.
정말 아무도 없는 나선땅에 얼마나 두려울까?
또 그목사님은 따님을 위해 얼마나 기도 했을까?
모든 서류까지 완벽하게 정리하고 집에 오니 저녁 8시가 되었다 그들 부부가
주님의 사랑안에 얼마나 감사해 하는지 고마워 어쩔줄 모르는 그들에게 이건
우리가 하는것이 아니라 예수님의 이름으로 주님께서 미리예비하시고 우리를
사용 하신것이라고 했다.
그날 남편이 없으다면 아찔한것이 한두개가 아니였다, 일본사회는 서류가 왜
이리 복잡한지 여기저기 전화하고 난 돌아오는길에 주님 당신은 언제나 정확
하고 섬세하시고 미리 예비하시는 분이십니다. 아침일찍 다까우 산에 가려고
준비했는데 좀늦게 움직였는데 참으로 다행이 우리가 그들에게 도움이 된다는
것과 만약 우리 선아가 멀리 이국땅에 시작하면 정말 딸같은 마음으로 도와주고
싶었다.
무엇을 하든 모든일에 예수의 이름으로 나를 나타내지 않고 오직 주님의
이름만 나타내는 한해가 되게 하옵소서...
미련한 사람은 남을 바꾸려고 애를 쓰지만
지혜로운 사람은 자신을 바꾸려고 노력한다.
주님 안에서 나때문에 은혜가 넘치고
나때문에 가정이 바뀌고 나때문에 기쁨이 넘치는 교회가 되길 진심으로
원합니다.

김성섭

2007-01-16 01:44:18

------ 그는 말을 할 때도 ‘예수’, 일을 할 때도 ‘예수’, 길을 갈 때도 ‘예수’, 밥을 먹을 때도 ‘예수’, 귀신을 만났을 때도 ‘예수’…모든 삶이 오직 ‘예수의 이름’으로 충만한 사람이었다. 그래서 그는 늘 풍성한 사람이었고, 승리의 사람이었고, 기쁨의 사람이었다. 믿음의 사람은 예수의 이름의 부자가 되어야 한다.------

예수님의 이름을 열심히 부른다고 하지만 사도 바울의 모습을 보니 나는 아직 멀어도 한참 멀었다는 생각이 듭니다. 그러나 2007년을 시작하면서 그 어느 때보다 예수님의 이름을 붙잡고 살게 되었으니 얼마나 다행이고 감사한일인지 모릅니다. 지금부터라도 말을 할 때도, 일을 할 때도, 길을 갈 때도, 밥을 먹을 때도, 귀신을 만났을 때도, 예수님의 이름을 부르며 산다면 어느 날인가는 사도 바울처럼 완전히 예수님의 이름에 붙잡힌 사람이 될 것을 믿습니다.

오늘 심방을 하고 함께 점심을 나누면서 식사대접을 하시던 집사님께서 자신이 일하고 있는 가게의 주인을 칭찬했습니다. 그렇게 손님을 잘 관리할 수 없다고, 그렇게 가게 일에 열심일 수 없다고, 손님들이 그 주인 하는 것 때문에 가게를 찾아온다고, 정말 배워야 한다고, 그런 말을 했습니다. 제가 집사님의 말을 들으면서 이런 생각이 들었습니다. 나는 음식을 파는 것이 아니라 예수님의 이름을 증거 하는 사람들인데 왜 더 정성스럽게, 더 멋지게, 더 맛깔스럽게 예수님의 이름을 전하지 못할까? 육신의 양식을 파는 사람도 그렇게 최선을 다하는데, 왜 생명의 양식이요, 구원의 이름인 예수님의 이름을 증거 하는 나는 최선을 다하지 않을까? 돈을 위해서 그렇게 입에 미소를 띄워가며 청바지 무릎에 구멍이 날 정도로 손님들을 깍듯이 대하는데, 예수님을 위해 사는 나는 왜 그렇게 기쁨과 감격으로 살지 못할까? 그러면서, 내가 예수님의 이름으로 충만하지 못했기 때문에 사도 바울이 누렸던 풍성함과 승리와 기쁨을 누리지 못한다는 것을 다시 한 번 깨닫게 되었습니다.

믿는 성도들끼리 이야기 할 때도 예수님의 이름으로 하지 않으니 말을 하다가 서로 시험에 들고, 교회 일을 하면서도 예수님의 이름으로 하지 않으니 지치고 짜증이 나고, 시간을 드리고 물질을 드리고 몸을 드리면서도 예수님의 이름이 앞서지 못하니 아무런 역사도 나타나지 않고...

사실 얼마 전까지만 해도 똑같은 일들이 바로 나에게 일어났었습니다. 아니 지금도 예수님의 이름을 놓쳐버리면 어느새 똑같은 실수를 저지르고 있는 나를 보게 됩니다. 주님을 섬기고 교회를 섬기면서도 예수님의 이름이 주인 되지 못할 때에는 쉽게 지치고 낙심합니다. 성도들을 섬길 때에도 예수님의 이름으로 하지 못할 때에는 사람들을 향해 헛된 기대를 하기도 하고, 반대로 실망하기도 합니다. 예수님의 이름으로 하지 않는 일에는 사람의 욕심이 들어가기도 하고, 때로는 두려움이 앞서기도 합니다. 정말 예수님의 이름이 아니고서는 모든 사역에 승리할 수 없다는 것을 고백합니다. 설령 예수님의 이름 없이 성공했다 할지라도 그 성공은 무슨 유익이 있겠습니까? 마지막 순간 예수님 앞에 섰을 때, “내가 너희를 도무지 알지 못하니 불법을 행하는 자들아 내게서 떠나가라.”고 예수님께서 말씀하신다면 도대체 그 부끄러움과 후회를 어찌 감당할 수 있겠습니까?

올해에는 예수님의 이름을 유행시키는 한 해가 될 것입니다. 그러기 위해서는 먼저 내가, 바울의 예수님이 나의 예수님이 되는 것을 체험해야합니다. 그래서 내 가정과 사역이 예수님의 이름으로 충만하고, 우리 성도들과 교회가 예수님의 이름으로 충만하여, 가는 곳곳마다 예수님의 이름을 유행시켜야겠습니다.

전한나

2007-01-16 04:32:17

일 못하는 사람이 연장 탓만 한다.’는 말이 있다. 예수님의 이름을 탓하지 말아야 한다. 예수님의 이름을 바꾸려고 하지 말아야 한다. 문제는 내 자신에게 있다. 자신을 바꾸어야 한다. ‘나만 바뀌면 우리 집안 문제 없다.’ ‘나만 바뀌면 우리 교회 문제 없다.’
올해는 ‘자기를 바꾸는 해’로 정하자.
조용히 눈을 감아보자.
남의 문제점을 생각하지 말라.(아내, 남편, 자녀, 부모, 이웃, 목회자, 성도…) 오직 자신만 생각하라. 그리고 조용히 영으로 기도하자.
어제 주일 오랫만에 목사님의 설교를 듣으면서 또오 내 이야기를 하시는구나 하고 생각을 했습니다.
내가 먼저 변하자.그리고 예수의 이름 예수의 이름을 믿는자 복이있고 예수이름앞에 나오는자 새힘을 얻을줄 믿습니다.
며칠전 또오 역시나 같이사는 형제와 싸움을 했습니다.
사건의 발달은 저녁을 준비하면서 국에다 조개를 넣었는데 본인은 조개껍질을 골라먹기가 싫다면서 다음부터는 넣지말거나 넣더라도 껍질을 빼고 달라고 합니다.
전 주는데로 먹을것이지 말이많다면서 짜증을 냈고 그렇게 넘어 갔습니다.
그런데 그사람은 제가 자기를 무시한다고 생각을 했던모양입니다.
그냥 주는데로 먹을것이지 말이많다... 그냥 밥차려주는것도 감사히 먹어라 그렇게 받아 들을법도 합니다.나이가 저보다 8살이나 많고 그래도 남편인데 제가 저희집 강아지 순돌이 다루듯이 자기를 무시했다고 생각할수도 있을듯 합니다.내가 남편에게 섬김을 받을려고만 했지 섬기지 않았고 그리고 그를 입으로만 사랑한다고했지 제가 생각해도 넘 심하다 싶을때가 넘많아 반성합니다.
제가 변해야 하는데 그러지 못해 정말 부끄럽고 한심합니다.
목사님말씀을 진작에 듣고 예수이름으로 모든일을 할때 기쁨과 평안이 넘쳐야 하는데 그러지 못해 후회스럽고 이렇게 매번 싸우면서 제가 역시 하나님을 떠나서는 살수가 없다 목사님의 설교를 통해서 하나님께서 나를 깨뜨려 주시는구나 생각하니 너무나 감사합니다.
이번기회를 통해서 내가 변하는 해로 삼을수 있길 기도합니다.

신왕수

2007-01-16 08:54:28

"오직 예수님의 이름만 불렀을 뿐인데 내 눈에서 뜨거운 눈물이 흘러내렸습니다. "
→ 제자훈련 숙제로서 했던 '주기도문으로 기도하기'가 생각이 났습니다. 솔직히 방학을 하면서 방학 전보다 헤이해진 제 자신이 보였습니다. 긍정의 힘도 거의 몰아서 읽고 있는 상황이고...ㅠ.ㅠ 그런 와중에 K목사님의 고백에 나온 말이 도전이 되었습니다. '주기도문으로 기도하기'를 했을 때 느꼈던 그 느낌, 그 감격을 되찾아야 되겠다라는 생각을 했습니다. 물론 힘들거 같습니다. 며칠전 스포츠 뉴스를 보던중, 싱크로나이즈 선수는 1달 쉬고 나면 적어도 6달이 걸려야 복귀가 가능하다고 합니다. 방학 전에 타이트한 일정(40일 새벽기도)가운데서도 지켜왔던 것들은 시간의 여유가 생기면서 지키지 못하는 것들이 생겨버린 제 자신을 보면서 회개합니다~

"바울이 얼마나 예수님의 이름을 많이 불렀던지, 예수님을 믿지 않는 자, 반대자들도 바울이 없는 곳에서 ‘바울이 전파하는 예수를 빙자하여 너희를 명하노라’(행19:13)고 하면서 시험삼아 예수의 이름을 부를 정도였다."
→ 정말로 유행되었으면 좋겠다라는 생각이 듭니다. 유행되어서 단순히 입버릇처럼 되다가 예수님을 영접하는 사람이 수도 없이 생겼으면 좋겠습니다. 바울의 시대에는 반대자들 마저도 예수님을 불렀다하니 가능하리라 믿습니다.

"같은 칼이더라도 일류 요리사 손에 있으면, 몸에 좋은 맛있는 요리를 만들어 내지만, 흉악범의 손에 있으면 생명을 위협하는 흉기로 돌변하듯이, 예수님의 이름도 누가 부르는가에 따라 전혀 다른 결과를 가져 온다."&"‘바울이 전파하는 예수’는 나와 상관없는 예수다. ‘내 예수’가 아니다. 내 예수, 내 구주가 되어야 한다."
→ 예수님의 이름을 온전히 부르길 소망합니다. 바울이 전파하는 예수님이 아닌, 목사님이 강대상에서 전파하는 예수님이 아닌 오직 나의 예수님을 진심으로 부르며 살기를 소망합니다. 이거는 단순히 예수님의 이름을 부른다고만 해서 되는것이 아니라는 사실을 압니다. 예수님이 이름 자체가 스게와의 7아들들을 헤친것이 아니라는 것을 압니다. 스게와의 7아들들이 온전히 예수님을 믿고 의지했더라면 좋은 결과가 있었을 것입니다. 내가 변화되길 원합니다. 스게와의 7아들들처럼 큰 일을 당하기 전에 먼저 변화되길 소망합니다.

박유진

2007-01-16 10:04:17

"‘일 못하는 사람이 연장 탓만 한다.’는 말이 있다. 예수님의 이름을 탓하지 말아야 한다. 예수님의 이름을 바꾸려고 하지 말아야 한다. 문제는 내 자신에게 있다. 자신을 바꾸어야 한다. ‘나만 바뀌면 우리 집안 문제 없다.’ ‘나만 바뀌면 우리 교회 문제 없다.’올해는 ‘자기를 바꾸는 해’로 정하자."

어제부터 남편과 조금씩 다툼이 있었습니다. 교회에서 돌아오는 차안에서부터 시작된 다툼은 오늘 저녁까지 이어지고 말았습니다.
지금 다니는 선호의 보육원이 시설이 별로 좋지 않아서, 시설 좋은 시립으로 옮기려고 하는데, 그 마감이 바로 이번주입니다. 그런데, 저는 까맣게 잊어버리고 있었고, 어제 남편이 이야기해주어서야 생각났습니다. 남편은, 여러번 얘기했었는데, 신경 안쓴다며 화를 내었고, 저는 저대로 안좋은 소리를 들어서 기분이 좋지 않았습니다. 오늘, 학교에서 수업을 하고 돌아와서 좀 피곤해서 (어젯밤에 밤을 새워버렸거든요...) 선호를 재우다가 그만 잠이 들었습니다. 남편은 오늘 회사일이 바빠서 거의 10시경에 퇴근했는데, 제가 저녁도 안 차려주고 잠들어있는 모습을 보고 좀 화가 났던 것 같습니다. 부랴 부랴 저녁을 차려주었는데, 반찬을 가지고 뭐라고 얘기를 들었습니다. (위의 한나 자매님 리플을 보면서 크게 공감...) 저는 속으로, 왜 그냥 안 먹고 꼬투리를 잡나...하는 불편한 마음이 들었고, 또 선호의 보육원 서류 문제와, 제가 갱신하는 것을 잊어버린 여권 문제등이 불거져나와서 다시 기분이 안 좋아졌습니다. 남편은 제가 잊어버리고 있는 것을 기억나게 해 주었으므로 오히려 고마워해야 하는데, 저는 남편의 그 말들이 참 기분이 안좋았습니다. 그 외에도 사소한 여러 부분에서 계속해서 마찰이 일어났고 (한번 꼬이기 시작하니까, 정말 날 잡은 것 처럼 모든 문제들이 꼬였습니다.) 저는 예수님의 이름으로 둘 사이에 평강을 주세요...라고 기도하면서도, 남편에 대한 화를 삭이기가 힘들었습니다. 그래서 마음속으로 계속 남편에 대한 불평을 하고 있었습니다.
그런데, 설교 말씀을 읽으면서, 망치로 얻어맞은 듯한 느낌을 받았습니다. 남편에 대해 불평하는 것이 아니라, 바로 내가 문제임을 알았습니다.
"남의 문제점을 생각하지 말라.(아내, 남편, 자녀, 부모, 이웃, 목회자, 성도…) 오직 자신만 생각하라. 그리고 조용히 영으로 기도하자."
바로 내가 문제였는데....
남편의 저런 모습을 바꿔달라고 기도했다가, 설교 말씀을 읽고 회개의 눈물 기도를 드렸습니다.
올 한해는 예수님의 이름으로 제가 변화되길 원합니다.

이용규목사

2007-01-16 13:23:35

간증이 너무 은혜로와서 혼자보기 아까워
본인의 허락도 없이 올립니다.
은혜는 나눌수록 배가가 됩니다.
읽는 모든 분들에게 '예수님의 이름'의 동일한 은혜가 임하길 기도합니다.

(간증 내용)

제목:주 예수의 이름으로


목사님께 다시한번 감사드립니다.

안녕하세요. 신정은입니다.

몇일전에 목사님의 귀중한 안수기도로 논문을 무사히 투고하였고, 목사님의 기도덕분에 장학금 면접을 잘 치루고 왔습니다.

목사님도 아시고계실지 모르겠습니다만,
제가 보고온 면접은 국제적으로 유명한 로타리 장학금입니다.

이 장학금 면접은, 다른 학교, 다른회사에서 주는 장학금과는 달리 경제적인 문제보다는, 학업, 커뮤니케이션능력, 그리고 제일 중요한것은 로타리에대한 지식과, 로타리에 대한 자부심을 얼마나 가지고있는지 그능력을 테스트하는 면접이었습니다.

걱정이되었습니다. 일이 바빠서 면접당일 하루 전날 오후부터
준비를 시작해야했거든요.

먼저 기도를 하였습니다.
제가 아무리 준비를 완벽하게 해도, 우리 예수님이 함께하지 않는 준비는 소용없다구요.

목사님이 그러셨죠?
"천국은 침노하는 자의 것이라"
제가 이 말씀을 목사님께 받고, 면접준비 직전에 바로 네이버 검색을 하였답니다. 그랬더니 이런 구절을 발견하였습니다.
--------------------------------------------------
"천국은 침노하는 자의 것이라
그렇게 말하였거늘
어찌하여 낙망하며 쓰러졌느냐
너희의 힘으로 일어설 수 있으리라 생각하였느냐
아니니라
내가 너희와 함께 함으로 이룰 수 있느니라"
--------------------------------------------------
제 힘으로만은 일어설수 없다는 것, 우리 주님이 함께해야 이룰수 있다는 마지막 구절이.면접준비를 시작하려는 제게 어찌나 큰 감명이 왔던지요.

그래서 바로 기도하였습니다.
이 준비가. 예수님의 이름으로하는 함께하는 완벽한 준비가 되게하시고,
제가 면접관 한사람 한사람의 마음을 움직이고, 감화시킬수 있는 스피치를 할수있도록, 예수님이 제 입과 함께 움직여 달라고 기도하였습니다.

준비하였습니다. 예상질문을 준비하고 답을 정리하다보니,
4시간이 흘렀고, 워드로 8장이나 나오더군요..
이걸 언제 다 외우나..한숨이 나오더라구요.

더욱이, 주일에 면접이라 주일예배 참석못하니
새벽예배가자..하고 작정했던 마음이.
흔들리기 시작했습니다.
새벽까지 준비하고 면접을 가야하지 않을까.
새벽예배 가려면 시간이 너무 없네..
하구요.

그래서. 바로 적용했습니다.
주 예수이름으로 사탄아 물러가라.
예수이름으로 예수이름으로 승리를 하겠네.

새벽예배를 참석하여,
주 예수이름으로 승리할수있도록,
주 예수이름으로 면접관들을 휘어잡을수 있도록,
기도 드렸습니다.

새벽예배를 마치고 면접장에 도착하니,
면접시간보다 3시간이나 일찍왔습니다.
3시간동안 준비한 자료를 보고나니 줄줄 외워졌습니다.

면접시간이 되었습니다.
10분 제한 면접입니다.

들어가기 직전까지 우리 예수님의 이름으로 시작된 저의
준비가. 정말 상상할수 없는 은혜를 체험하게 하였습니다.

면접관의 질문에 대한 저의 스피치가 50세이상의 무서운 인상을 가진 일본인 아저씨 한사람 한사람이 칭찬의 가득한 말들을 어찌나 퍼부어 주시던지요.
제한시간 10분을 넘기고 20분을 훨씬 넘긴 면접시간을 갖았습니다.

심지어 마지막에 한 면접관은 나이쇼라고 하면서,
제가 준비해 온 자료들(사실 면접때 준비해올 자료는 없었습니다. 제가 연구설명을 위해 준비한 자료를 그들에게 나누어줬습니다)은 「우리들 한사람 한사람의 마음을 당신이 다 빼앗았다」라는 저의 기도 그대로의 표현까지 해주었으며, 제가 면접이 끝나고 나갈때는 나중에 만날사람들이 여기에 몇분 있을지도 모르겠네. 라는 발언까지 들었습니다.

주 예수이름으로 면접관 한사람 한사람의 마음을 움직이게 하시고, 주 예수이름으로 저의 준비가 완벽하게 도와달라고 기도가.
현실로 그대로. 어쩜 그렇게 그대로 제가 응답되었는지요.

그날 준비하면서, 예수님의 이름을 얼마나 불렀는지요.
준비를 마치고 돌아가는 발걸음속에서도 예수님.
새벽예배때에 외쳤던 예수님.
면접 들어가기 직전에 속삭였던 예수님.

우리 예수님이 이 부족한 제게 이런 역사를 체험하게 하셨습니다.

목사님 말씀대로, 이런 저의 마음 변하지 않도록, 한결같은 마음으로 주님을 섬기기위해 기도하고있습니다. 제가 받은 많은 은혜들로 하여금 제가 자만하지 않도록 기도하고있습니다.

사실은 너무 부끄러운 이야기인줄 알지만, 너무 은혜로워서 목사님과 함께 나눕니다..
목사님의 기도 감사합니다!!!

-신정은 올림-



박순애

2007-01-16 17:32:23

매주 말씀을 통해 자신을 돌아보면서 내 믿음이 이 정도였나, 이 정도 밖에 예수님을 모르고 있었나 하고 자신을 많이 돌아보게 된다. 새해가 되어 예수의 이름을 부르기로 작정하고 어느덧 두 주가 지났다. 그 이름은 그 동안 내게 많은 것을 선물로 주었고 내 안에 많은 변화를 느낄 수 있게 했다. 예수의 이름은 있으나 능력이 없는 내 믿음의 그릇에 무엇인가가 조금씩 채워져 가는 느낌이다. 자다가 뒤척일 때도 예수의 이름이 있고 조그만 사람의 생각이 고개를 내밀 때도 보혈의 찬송이 내 입술에 있게 되었다. 환경도 변한 것이 없고 더 좋아진 것이라곤 없는 것 같은데 분명 변화는 있다. 소망이 있다. 그리고 감사가 있다. 이 모든 것이 예수 이름의 능력이리라. 감사하다.
‘올해는 예수님의 이름으로 제가 바뀌기를 원합니다. 예수님! 제발 도와 주세요.
제가 안 바뀌면 저희 가정에 희망이 없습니다.
제가 안 바뀌면 저희 교회에 희망이 없습니다.
제가 안 바뀌면 무엇보다 제 인생에 소망이 없습니다.
존귀하신 예수님의 이름으로 제가 꼭 바뀌게 해 주세요.’
예수의 이름을 부르기로 작정하고 가장 큰 기도의 제목이다. 부끄럽게도 나는 다른 사람 탓하는 일에 바빴고 내가 바뀌어야 한다는 생각은 하지 않았다. 자아가 너무 강해서 예수님 조차도 나를 바꿀 수 없었을 것이다. 도덕 선생이 되어 이론상으로 너무 옳은 말들을 하였지만 그 이론들로 인한 결과가 모두 아름다운 것이나 덕스러운 것들이 아니었기에 나는 항상 옳았으나 항상 아무것도 없었다. 그것이 이해가 되지 않았고 그러면서 소망이 없다고 힘들다고 앉아있었으니 내게는 아무런 변화도 기적도 나타나지 않았던 것이다. 예수님 때문에 죽었다고 했던 나는 버젓이 살아서 여전히 나의 주인 노릇을 하고 있었던 것이다. 내 못난 자아가 바뀌지 않으면 내 가정에 소망이 없고 내 교회에 소망이 없고 내 인생에 소망이 없음을 너무 절실히 느낀다. 정말 주님의 이름이 아니고는 변화란 있을 수 없다. 그래서 나는 더 예수의 이름을 붙잡게 된다. "예수 가장 귀한 그 이름" 그 이름만이 나를 살게 할 것이다. 오늘도 그 이름만 의지하고 승리하리라. 주님 도와주세요...

" 이 귀한 예수 이름을 다시 유행시키자! 일본인들(예수 안 믿는)도 몰래 불러 볼 수 있을 정도로 유행시키는 해를 만들자.
올해는 일본 땅에도 존귀하신 예수님의 이름이 유행하는 해가 되기를 기도한다."

예수의 이름이 유행하는 해, 듣기만 해도 너무 가슴이 벅차 오른다. 모든 사람의 입술에서 예수의 이름이 불리워 진다..... 생각만 해도 눈물이 날것 같다. 유행이라는 것을 나는 잘 모르지만 어느 한 사람이 자신감을 가지고 그것을 드러내고 자랑하게 되면 점점 번져가면서 자리를 잡아가게 되는 것 같다. 그 사람이 영향력있는 사람이라면 더 빠를 것이다. 먼저 내 가정에 그리고 교회에 예수의 이름을 유행시켜야겠다. 우리 교회에서 식사시간이나 남는 시간에 무슨 이야기를 하나 들어 보면 세상이야기가 전부인 경우가 많다. 성도들과 개인적으로 이야기를 하게되어도 사는 이야기, 아이들이야기를 하게 된다. 이제는 예수의 이름을 말하여야겠다. 예수님의 하신 일, 그리고 예수님이 하실 일을 자랑하고 나누어야겠다. 내게 작은 불씨가 있다면 그것이 큰불이 될 수 있을 것이다. 예수를 믿지 않는 사람들도 불러보고 싶은 이름이 되도록.... 너무 멋진 일이다.

이용준

2007-01-16 18:58:29

올해는 예수님의 이름으로 제가 바뀌기를 원합니다.

늘 긍정의 힘을 읽을 때마다 대단한 책이라고 느꼈는데
오늘 기독교 신문에 저자인 조엘 오스틴이 미국에서
가장 영향력있는 목사로 1위가 됐다는 뉴스를 접했습니다

예수의 이름을 모두가 부른다 하여도
사람마다 분명 차이가 있을 거라 생각됩니다
늘 슬픔의 순간에 부르는 사람, 위기의 순간에 부르는 사람
걱정거리가 생길 때 찾는 사람... 나도 여기에서 벗어나지 못했지만
하지만 오스틴 목사가 부르는 예수의 이름은 확실히
남다르다는 느낌니다.
문제(걱정,슬픔,위기)를 중심에 놓고 예수님의 이름을 호명하지 않습니다
바로 나를 중심에 놓고 있습니다

나는 소중한 존재이고
나는 사랑을 받고 있으며
하나님은 내 삶을 위해 원대한 계획을 세우셨어.
나는 어디를 가든 은혜를 입을 거야
차고 넘치는 하나님의복이 나를 따르고 있어
나는 뭘하든 번영하고 성공할 거야 !!
멋진 미래가 나를 기다리고 있어 !!! -긍정의 힘중에서-

읽을 때마다 흥분됩니다 그리고 자신감이 생기고
내가 얼마나 중요한 존재인지 깨닫게 됩니다

나는 위기가 오면 나는 떨지 않으며 예수님을 찾겠습니다
당신은 나를 위해 원대한 계획을 세우셨지요~라고
걱정거리가 생기거나 슬픔 일이 생기거든 예수님을 찾겠습니다
최소한 당신은 나를 사랑하고 계시지 않습니까~
나를 소중한 존재로 만들어 주시지 않았습니까~
내가 왜 슬퍼해야 합니까? 내가 걱정해야 할 이유가 없습니다

제자훈련중 받은 가장 좋은 선물중에 하나인 것같습니다.

예수님
나는 세상에서 가장 소중한 존재입니다
당신의 은혜가 나에게 늘 임하며
끊임없는 당신의 힘이 나를 이끌고 있습니다.
어떤 힘든 것이 있더라도 뛰어 넘겠습니다
사랑합니다 예수님

강정임

2007-01-17 00:49:48

존귀하신 예수님의 이름으로 제가 꼭 바뀌게 해 주세요.’
사람은 남이 바꾸는 것이 아니다. 하나님의 은혜로 스스로 바뀔 뿐이다.
미련한 사람은 남을 바꾸려고 애를 쓰지만, 지혜로운 사람은 자신을 바꾸려고 노력한다.
예수님의 이름을 바꾸려고 하지 말고, 예수님의 이름을 부르는 자신을 바꿀 때, 예수 이름의 역사는 일어난다.

깐깐한 나의 성격 탓으로 지영이에게 있어서 나는 무서운 엄마, 오니마마이다.
지금 껏 아이들을 위해 심여를 귀울여 노력해 왔건만, 지영이와의 관계는 점점 더 멀어져 가는 것을 느낀다.
야단 보다는 칭찬으로 키우라는데, 좀 처럼 어려운 것이 아니다.
때로는 감정을 억누르지 못하고 아이에게 심한 말을 하는 내 자신을 보면서 스스로 깜짝 놀라기도 한다.
아이의 기를 죽이고 마음에 상처를 주는 말을 하면서 지영이가 착하고 곱게 자라기를 바라고 있으니 얼마나 모순 된 이야기인가.
가끔 지영이가 동생 호나미를 야단 칠 때를 보면 그대로 나의 모습을 보는 느낌이다.
정말 냉정하다 .그래서 또 야단을 맞고,
자상한 말로 탓일러 보기도 하고, 때로는 칭찬으로,
언성 높여 야단치고, 매를 들기도 하고,
여러가지의 방법을 써 보았지만 별 효과가 없었다.
말씀을 들으면서 내가 변해야 함을 깨달았다.
내가 변하지 않고서는 지영이에게 변화가 있을 수 없음을.
지금에 결과가 잘 말해주고 있다.
목사님 칼럼에서 아이들은 가르침 받은대로 배우는 것이 아니라 자신이 스스로 느낀대로 배운다라고 하셨다.
아이들에게 좋은 거울이 되도록
올해는 내가 변화될 수 있도록 예수님 도와 주세요.
그리고 예수 이름의 역사가 일어나게 하소서. 아멘

김태우

2007-01-17 02:19:40

‘무엇을 하든지 말에나 일에나 다 주 예수의 이름으로"

제가 2006년에 제자훈련을 통해서 잃어버렸던 예수님을 다시 찾은거 같아서 너무

감사했고 비록 몸은 힘들고 지칠지라도 마음만은 너무 행복했습니다.

그런데 2007년은 저에게 어떤진로를 주실지 모르지만 정말 큰 은혜와 복을 주실

거 같아서 벌써부터 설레입니다.

제게있어서 올해2007년은 진로를 결정해야하는 중요한 해입니다.

제게 예수님이란 이름을 어느때보다 많이 그리고 간절히 부르게 해주시는지

너무 감사하고 행복한줄 모릅니다. 물론 아직 하루에100번은 부르지 못하지

만 항상 함께 하심을 느끼때면 날개가 있었다면 날아다닐지도 모를정도입니

다.

그리고 올해가 2007년인데 제가 태어난날이 2월7일입니다.

올해는 뭔가 숫자로만 봐도 무슨 좋은일이 많이 일어나지않을까 생각합니다.

다만 스와게의 7아들들의 모습이 아닌 바울이 전파하는 예수’를 ‘내가 믿는 예수’

‘내 속에 계시는 예수’ ‘나의 예수님’으로 모실것을 간절히 기도합니다.

예수님 사랑합니다.

安間チョウコ

2007-01-17 18:45:19

12月31日に故郷の実家に電話をしたとき、弟の奥さんとけんかになった。
悪には、強い信仰心でと思って、송구영신예배 の1年間の祈祷題目というのに「此の世の悪と対決する強い信仰心を下さい。」と書いた。悪には悪を持って、悪に対する強い信仰心を持って、と思って書いたが、なぜかすっきりしない、いやな気分が心の奥にあって過ぎていた。
日曜日にこの説教を聞いたことや、「근정의 힘」 を読んで
「 문제는 내 자신에게 있다.자신을 바꾸어야 한다.그리고 영으로 기도 하자. 」
が鮮明に私の心を捉えた。
今年は、いやこれからは、まず自分の出来てないところを自分で変えることを、まず一番にしていこうと思っている。そしてお祈りに具体的に表しながら、もっと、もっとお祈りをしたいと思う。
今日で、さっぱり過去の悪意、敵意は捨てた。
大きな感謝です。

김은하

2007-01-18 02:05:42

지난 두 주에 걸쳐 ‘예수의 이름으로’ 라는 말씀을 받으며,
어려운 적용이 아니니
잘 할수 있겠다고 생각했습니다.
그리고 열심히 예수님의 이름을 불렀습니다.
때로는 무의식 중에 때로는 일부러 의식하면서
열심히 불렀고 부르려 했습니다.
그러던 어느 날, 별다른 의미도 뜻도 없이 중언부언 하듯
예수님의 이름을 함부로 하는 것은 아닌가 하는 정죄의식이
내 안에서 고개를 들기 시작했습니다.

그러면서 지난 수요일 4주만에 우리 속원이 한자리에 모여서
나눔을 가졌습니다.
두주간은 교회 행사등에 미루어 졌던 속회가 그 후 두주간은
속원들의 각자 사정으로 모일수가 없었습니다.

한 주가 지나고 두 주째에는 덜컥하고 겁이 났습니다.
속원들이 모일수 없고 그만한 이유가 만들어 진다는 것은
제게는 아주 견디기에 어려운 상태였습니다.
지난 주일에는 영적으로 상당히 곤함을 느끼며 함께 계셨던
몇몇분에게 습관처럼 그냥 하는 말이 아닌 간절한 심정으로
중보를 해주십사 부탁을 드리기도 했었습니다.
저 또한 속을 처음 맡았을때 심정으로 간절한 마음으로
예수님께 구했습니다.

습관처럼, 종교행위처럼, 하나님 아닌 또 다른 누군가를
의식해서가 아닌, 오직 상한심령으로 나를 위함이 아닌
주님을 위한 주님의 이름을 찾았습니다.
아니, 그렇게 되도록 예수님의 이름으로 간절히 간구했습니다.
저희 속을 위해 중보해주신 분들의 기도가 땅에 떨어지지
않았음을 이자리를 빌어 감사드립니다.

그 날, 저희는 성령하나님의 임재를 서로 충분히 느낄 수가
있었습니다.
지금까지 속회를 함께 나누면서 많은 은혜가 있었지만 지난
수요일처럼 속원 한사람 한사람이 사랑이 넘치는 것은
처음이었던 같았습니다.
말에서나 행동에서나 서로를 섬기려 하고 부족한 것을 품고
안으려하는 모습에, 충만하신 은혜를 알기에 넉넉했기
때문입니다.

이런 갈등과 은혜 가운데 이번주에 ‘두 이름’이라는 말씀을
받았습니다.
이 말씀은 저를 위해 준비하시고 허락하신 말씀이었습니다.
바울 사도께서 부른 ‘예수의 이름’과 스게와의 아들들이 부른
‘예수의 이름’은 제가 깊이 묵상해볼 내용이었습니다.

우리의 멘토께서는 이 말씀을 통해 올해는 주님의 이름으로
'나 자신이 바뀌는 해'로 적용 해보자는 방법을 제시하셨습니다.
그 제시하신 방법에 순종 하려고 마음에 새겨봅니다.

지금까지 저와 함께하신 예수님은 어떤 무엇 보다도 제게 관심이
많으신 분이시기에 그 분의 관심에 기쁨을 드리고 싶습니다.
그분의 기쁨은 나의 변화 일것입니다.
주님 안에서의 아버지의 뜻에 따라 순종하는 그 변화 일것입니다.
내게 있는 가장 소중한 예수님의 이름, 그리고 그분이 주신
구원의 기쁨을 나누는 변화일것입니다..
나 자신, 나에게로만 향하던 관심을 이제는
예수님의 사랑으로 그 사랑을 누군가에게 향하도록…..
발전하는 변화를 소망 해봅니다.







황은영

2007-01-18 16:21:15

" 무엇을 하든지 주예수 이름으로하라
올해는 무엇보다 내자신이 바뀌는 해가 되고 싶다"

이번주도 난 악한것에 치이고 넘어지고
죄를 지어 누구를 볼 낫도 없다
죄송하다는 말도 회개한다는 말도
매일 시도 때도 없이하고 분초마다
죄를 짓는 날 용서 하실까

가끔은 예수이름으로 살려고 노력도 해도보고
또 진짜 힘들땐 그냥 당하기만 하며 살았다
또 다 포기 하고 싶은생각외엔 아무생각이
없다 뭔가 발전이 없다 분초마다 괴로운 절
용서하세요
올해 신령과 진정으로예배를 드리고 싶다

마준철목사

2007-01-18 17:29:37

"올해는 자기를 바꾸는 해’로 정하자. 조용히 눈을 감아보자. 남의 문제점을 생각하지 말라.오직 자신만 생각하라. 그리고 조용히 영으로 기도하자. ‘올해는 예수님의 이름으로 제가 바뀌기를 원합니다. 예수님! 제발 도와 주세요. 제가 안 바뀌면 저희 가정에 희망이 없습니다. 제가 안 바뀌면 저희 교회에 희망이 없습니다. 제가 안 바뀌면 무엇보다 제 인생에 소망이 없습니다. 존귀하신 예수님의 이름으로 제가 꼭 바뀌게 해 주세요! 사람은 남이 바꾸는 것이 아니다. 하나님의 은혜로 스스로 바뀔 뿐이다. 미련한 사람은 남을 바꾸려고 애를 쓰지만, 지혜로운 사람은 자신을 바꾸려고 노력한다."


2007년 새해가 시작한지 벌써 두 주간이 지났습니다. 벌써 새해가 시작되었다는 감격이 식어질 정도가 되버린 것 같습니다. 송구영신예배와 신년예배 드릴때만 해도 정말 올 해는 특별한 변화를 꿈꾸고 기도했었는데 시간이 지나면 지날수록 그 열정과 감격이 식어짐을 느끼게 됩니다. 아! 나라는 인간은 도대체!!!

사람은 어떤 모습이든지 변화되는 것 같습니다. 좋은 의미에서는 "변화"라고 말할 수 있지만 나쁜 의미로는 "변질"이라고 말할 수 있겠죠. 얼마전에 집사람이 유통기한이 한 달이나 넘은 라면을 끓여 먹고 속에 탈이 난 적이 있었습니다. 배가 막 부어오르고 가스가 차는 현상이 반복되는 겁니다. 처음에는 아무리 생각에도 이유를 알 수 없었지만 아무래도 유통기한이 넘은 라면이 주범이었던 것 같습니다.(저는 그 라면 먹고 끄떡없었는데....^^) 결국 변질된 라면을 먹고 며칠동안이나 끙끙 앓면서 보내야만 했었습니다.

이 사건과 오늘 말씀을 통해서 예수님의 이름으로 변화되지 않으면 자칫하면 우리는 라면보다 더 변질되기 쉬운 존재임을 깨닫게 됩니다. "그런즉 누구든지 그리스도 안에 있으면 새로운 피조물이라 이전 것은 지나갔으니 보라 새것이 되었도다"(고후5:17) 제자훈련을 시작하면서 처음으로 외우고 QT 묵상했던 이 말씀이 떠오릅니다.

진정한 변화는 내 의지, 내 노력, 내 계획, 내 결단으로는 도저히 될 수 없음을 오늘 말씀에 통해 깨닫게 됩니다. 내가 예수그리스도 안에 거하는 것, 예수 그리스도 그 분의 이름의 능력이 아니고서는 어찌 온전한 변화가 있을 수 있겠습니까?

감사한 것은 2007년에 들어와서 드려지는 모든 예배 전에 두 손을 들고 예수님의 이름을 온 성도들과 함께 고백하고 예수님의 이름의 능력을 구하는 기도를 꼭 드리고 예배를 드리고 있습니다. 처음이라 많은 분들이 어색하게 느끼거나 귀찮게 여기는 분들도 있을 지 모르겠습니다. 아직은 너무나 부족하지만 조금씩 저와 우리 성도님들 안에 변화가 일어나고 있음을 느낍니다. 물론 이 고백이 오늘 주신 말씀처럼 공허한 메아리가 되지 않기를 기도합니다. 예수님을 부르는 기 고백이 진심으로 우리들의 믿음이 표현이 되기를 원합니다.

2007년 끝까지, 그리고 주님 오실 그 날까지 예수 그리스도의 이름을 부른느 믿음의 고백이 변질되지 말고, 늘 그리스도 예수의 장성한 분량에 이르기까지 자라는 변화의 역사를 이루기를 소원합니다!

조정현

2007-01-18 18:05:05

중앙영광교회의 여러 간증들을 들으며 참으로 귀하고 감사하다는 마음이 들었습니다. 예수님의 이름이 선포되고 교회에 그런 일이 일어났다며 안타까운 마음으로 이야기하시는 사모님의 이야기를 들었을때...'어쨰...그런 일이 일어났을까?' 그런 일이 있으면 일을 당하는 성도도 힘이 들지만 그걸 함께 바라보는 목회자의 마음이 어떤지 느껴졌기에 더욱 안타까웠습니다..하지만 모든걸 선하게 인도하시고 모든 문제를 해결하시는 예수님의 이름의 능력을 다시 볼수 있는 귀한 간증이 되게 하시니 저도 더불어 감사가 됩니다...

이 간증들을 읽으며 저의 토요일이 생각이 났습니다..
저희 교회에도 힘든일을 겪고 계신 성도님이 계십니다.늘 예배를 잘 섬기시는 분인데 양육도 예배도 나오지 않으시고 연락도 않되어 그일에 계속 낙담해 계신것만 같아서 몸이 불편하신 다른 성도님께 부탁을 드려 그 집을 찾아 갔습니다.하지만 찾아갔을때 집엔 아무도 없었고 혹시나 주위에 계실까? 아이가 있을만한 공원이나 슈퍼로 헤매고 다녔습니다. 그러던중 그분께 전화가 왔는데 아파서 누워있다고 아무도 만나고 싶지 않다고 하셨습니다. 결국 사온것을 문앞에 두고 집으로 돌아왔습니다. 물론 가기전에 예수님께 물었다고 생각했습니다. "예수님 가서 제가 무슨이야기를 해야할까요? 어떻게 위로를 해야하나요? 어떤 말씀을 주어야하나요?"
하지만 아무런 결과 없이 돌아오는 길은 2시간을 헤매며 추운데서 떨어서 지친 제 육신과 그 성도님의 거짓말에 무너진 마음으로 예수님을 잃어버리고 말았습니다. 주일날 그분을 뵜는데 인사도 한마디 없이 돌아서는 그분을 보며 어이가 없고, 화가 치밀어 오르는것을 느꼈습니다.더이상 그분을 위해 기도하고 싶지도 않았고 관심을 두고 싶지도 않음을 느꼈습니다..아니..그리하리라고 다짐까지 했던것 같습니다..하지만 말씀을 읽으며 그 날 돌아오면서 내가 예수님의 이름을 불렀더라면 나의 지친 육신과 마음을 예수님의 이름으로 다잡고 그 분의 아픔을 예수님께서 다스려달라고 그 마음을 예수님께서 지배해 달라고 기도했으면 이런 마음을 품지 않았을텐데 하는 생각이 듭니다..어떻게든 예수님꼐서 역사하셨을텐데 하는 후회가 됩니다. 그래서 지금이라도 조용히 눈을 감고 기도합니다..그냥 예수님의 이름을 불러봅니다. 예수님의 이름으로 행하고도 아무런 능력이 없는 스게와의 일곱아들이 아닌 예수님의 이름의 능력을 사용하며 살아가는 바울과 살아가기를 원합니다..

김명화

2007-01-18 20:22:54

예수님의 이름이 성도들의 삶과 입에서 늘 춤을 추어야 한다.
예수 이름을 감옥에 가두지 말아야 한다.
진정한 믿음은 예수 이름의 자유에서 시작이 된다.
말씀읽을때에는 공감하고 맞는 말씀인줄 알면서도
정작 실천에 옮기려할 때에는 잘 안되는것이 아타갑고 죄스러울 따름입니다.
입과 마음이 평행선이 이루질 못하니 몸으로 때우는것 또한
쉬운일은 아닙니다.죄책감을 많이 느낌니다.
‘일 못하는 사람이 연장 탓만 한다.’는 말이 있다. 예수님의 이름을
탓하지 말아야 한다. 예수님의 이름을 바꾸려고 하지 말아야 한다.
문제는 내 자신에게 있다. 자신을 바꾸어야 한다.
‘나만 바뀌면 우리 집안 문제 없다.’ ‘나만 바뀌면 우리 교회 문제 없다.’
올해는 ‘자기를 바꾸는 해’로 정하자.
조용히 눈을 감아보자.
남의 문제점을 생각하지 말라.(아내, 남편, 자녀, 부모, 이웃, 목회자, 성도…)
오직 자신만 생각하라. 그리고 조용히 영으로 기도하자.
나만 바뀌면 제자반 문제 없다.나만 바뀌면 교회다니는 사람욕 않듣는다.
“나만 바꾸면”참으로 지당하신말씀입니다.
저같은경우에는 입따로 마음따로 몸따로 놀고있는 사람입니다.
참 한심스럽고 제자훈련생들께 누가끼치지 않게 마음을 다잡겠습니다.
연속 3주동안 나에게 주시는 말씀을 받고 많은 회게를 했습니다.
뉘우치고 훌-훌 틀고 일어날수 있도록 인도하여 주시옵기를 간절히 소망합니다.
나만 바꾸면은 된다는것을 확신합니다.






김영희

2007-01-18 22:01:20

"누구든지 주 이름을 부르는 자는 구원을 얻으리라" (롬10:3)
올 2007년 한해는 본구절의 말씀을 적용으로 많은 사람들이 구원
받는 풍성한 한해를 예수님께 선사해 드리게 되길 소망 합니다.

강현수 집사님의 이야기를 하시며 가슴이 찢어질둣 아팠다는
목사님 말씀.
우리 교회 한사람이라도 행여 잘못될까 늘 마음 조이시며 몸을
아끼지 않고 기도하시는 일에만 바쁘신 목사님!
제자 훈련이 왜 중요한지 이제 조금 알것 같습니다.
한결 같으신 예수님 닮아가는 과정의 훈련이 아니가 생각합니다.

한쪽 손과 팔이 마비증세가 자주 오는 상태로 인해 수술 날짜까지
잡아 놓고 있었던 강 집사님이 깨진 유리컵에 손을 다치게 되었습니다.
출혈이 멈추질 않아 많은 피를 흘린 끝에 겨우 치료를 받게 되었는데
나쁜 피를 다 쏟아내게 하여 수술하지 않고도 완전히 낫게 되었다는
기쁜소식에 저는 똑똑히 보았습니다.
목사님께서 마음으로 울고 계신것을 ...!
예수님 이름으로....
하나님께서 이같이 기적을 주시는구나 하시며....!

저희 속회에서도 감사 기도를 했습니다.
할렐루야, 주님 감사합니다!!
이번 속회에선 속장인 김 은하 집사님, 강 현수 집사님,
곽 영숙자매님, 그리고 저 김 영희, 모두 하나가 되어 주님께
감사하며 많이 울었습니다.
너무도 은혜롭고 ...
주님 생각만 해도 행복하다는 강 집사님...
올해는 좋은 일만 주실거라 믿으며 예수님 이름으로 기도합니다.

저희 교회 모두가 하나가 되어 마음의 부자의 열매를 가득 채우는
풍성한 한해가 되게 하소서!

이성훈

2007-01-19 02:29:48

나의 예수님. 주님이 정말 만병 통치약임을 느낍니다. 예수님의 이름이 나의 삶을 기쁘게 합니다. 공부하면서 어려울 때도, 식당같은데서 기다릴 때도, 돈이 없어서 마음이 답답할 때도, 사람과의 관계에서도, 나의 마음 속에 기쁨을 주십니다. 물질적으로 필요할 때 각종 방법으로 채워주시고 또 그 전에 나의 마음을 채워주십니다.
앞으로도 정말 예수님의 이름을 더욱 더 부르며 살겠습니다. 내가 잘못 나갈 때도 나쁜 짓을 할 거 같을때도 예수님의 이름으로 누르고, 내 마음이 나쁜 생각을 할 때도 예수님의 이름으로 이겨내고, 예수님의 모습을 향해 예수님의 이름을 부르며 나아가겠습니다. 예수님. 감사해요..

하 경채

2007-01-19 06:04:08

千の風になって

私のお墓の前で 泣かないでください
そこに私はいません 眠ってなんかいません

千の風に
千の風になって
あの大きな空を
吹き渡っています

秋には光になって 畑にふりそそぐ
冬はダイヤのように きらめく雪になる
朝は鳥になって あなたを目覚めさせる
夜は星になって あなたを見守る

私のお墓の前で 泣かないでください
そこに私はいません 死んでなんかいません

千の風に
千の風になって
あの大きな空を
吹き渡っています

あの大きな空を
吹き渡っています

秋川雅史が歌う「千の風になって」という曲の原詩と言われる「A THOUSAND WINDS」は作者不詳の詩です。英国では95年にBBCがIRAのテロの犠牲者となった青年が、自分が死んだ時に開封するよう両親に託した手紙に残されていた詩だと紹介され大きな反響となったり、米国では同時多発テロの追悼式において、テロで亡くなった父親を偲び11歳の少女がこの詩を朗読し、その際においても大きな反響となるなどしています。

木下 

2007-01-19 07:08:44

「人は他人が変えるのではない。神様の恵みによって自らが変わるのである。未熟な人は他人を変えようと頑張るが、知恵ある人は自分を変えようと努める。」
すべての争い、紛争は自分が正しいと感じて、他人や相手を変えようとすることから起こると思います。小さなけんか、大きな戦争など規模は様々です。むしろ、他人や相手がどうして自分と違う主張をしているのか理解しようと努めると和解と平和が招来すると思います。イエス様は御自身の考えが正しいと反対する人々に無理やりに主張されることはなさいませんでした。ただ質問などに対して、神様の御心を伝えるために聖書の御言葉を引用されて用いられました。自分の考えが正しいと思うこと...誰でも自分の考えが正しくなく間違っていると指摘されると不快になり怒ってしまうかも知れません。人は本来、自分がどれだけ正しく大切な存在であるかを他人に認められることを願う存在なのかもしれません。ある日本の有名なお金持ちはこのことを「自己重要度」という定義をしています。私はどれだけ重要な存在であるかを人に認めてもらおうと空しく力を尽くしているのでしょうか。もしくは、神様にとって自分がどれだけ大切な存在であるかを意識して、「神様の栄光」のために、「神様の御心」に従って力を尽くしているのでしょうか。仕える対象を間違えると結果は全く違うと思います。イエス・キリストの御名によって、後者を選択してお祈りをしていきたいです。

한영진

2007-01-19 08:47:18

[사람은 남이 바꾸는 것이 아니다. 하나님의 은혜로 스스로 바뀔 뿐이다.
미련한 사람은 남을 바꾸려고 애를 쓰지만, 지혜로운 사람은 자신을 바꾸려고 노력한다.예수님의 이름을 바꾸려고 하지 말고, 예수님의 이름을 부르는 자신을 바꿀 때, 예수 이름의 역사는 일어난다.]
이번 주 말씀을 받으며 얼마나 신났었는지 모릅니다.
“저 그거 알아요!! 맞아요!!맞아요!!” 외치고 싶었지요.
제가 속해 있는 어떤 모임은 비종교 단체지만 모임이 끝날 때
모두 입을 맞추어 외우는 기도문 비슷한게 있습니다.
神様、私にお与え下さい。自分に変えられないものを受け入れる落ち着きを.
変えられるものは、変えてゆく勇気を.そして、二つのものを見分ける賢さを.
다른 사람이 의아하게 생각하든 말든 저는 얼마 전 부터 예수님으로 바꿔 부르고 있는데, 일주일에 몇 번씩 모임에 갈 때마다 처음엔 타의로 단순히 따라서 외우기만 했던 것이 벌써 한 2년이란 시간이 흘러 가며 그 안의 깊은 뜻을 점점
깨닫게 되어 지금은 실생활의 많은 순간들에도 적용하게 되었습니다.
그게 얼마나 큰 도움이 되는지요.
현관을 들어 서면서 벗은 구두는 제 자리에 올려 놓고, 벗은 옷은 바로 서랍에 넣던지 세탁기에 집어 넣고,먹고난 그릇은 흐르는 물에 몇 번이고 깨끗이 헹구어야 직성이 풀리는 결벽증 비슷한 제가 2년 전부터 어머니와 같이 살게 되면서 진짜 스트레스도 무지하게 받았습니다. 벗어 놓은 신발 제자리에 두지 않을거면 아까 신고 나간 신발이나 다시 신으실 것이지 왜 나갈 때 마다 신발은 갈아 신으시고 안그래도 좁은 현관을 발디딜 틈도 없이 신발로 하나 가득 해 놓으시는지, 왜 바로 옆에 재떨이를 두시고도 밥그릇에 재를 떠시는지, 벗은 옷과 양말은 왜 소파 위에 던지시는지,아침에 가지런히 정리해 놓고 나간 화장대는 어째서 반나절 만에 스킨 병이 어디에 놓여 있는지 모를 상태로 변화되어 있는 것인지….
더 기가막힌 것은 그 전에 둘이 살때는 안그러던 딸이 제 물을 만난 물고기 마냥 똑 같이, 아니 비할바 없이 심하게 지저분하게 된 것입니다. 지금도 딸 방을 치우러 들어갈 때는 문 앞에서 심호흡을 하고 예수님을 열 번은 부른 다음,
먹다 남은 과자 봉지, 만화책의 산을 넘어 행여 방바닥에 널려 있는 CD라도 밟아 깨면 난리가 나므로 발 밑을 조심해서 TV위의 오디오까지 까치발로 갑니다.
찬양을 틀어 놓고 그 찬양을 따라 부르며 우리 주님의 은혜를 생각하지 않으면
매번 45리터 짜리 쓰레기 봉투 하나씩 채워야하는 딸방을 누구라도 짜증내지 않고 치우기란 도저히 불가능하다고 저는 자신있게? 말할 수 있습니다.
처음엔 어머니와 부딪히기도 많이 했습니다. 마치 신혼부부 처럼요.
“왜 이렇게 해 놓는지 모르겠네, 어떻게 해야 이렇게 순식간에 어지럽혀 놔? 안그래도 밖에 나가 일하고 피곤해서 들어오는 사람을 잠시도 못 쉬게 하네..”
신발을 제자리에 올리고 소매가 뒤집어져 나뒹구는 옷을 개키며 무의식 중에 하게 되던 불만에 찬 제 중얼거림이 어머니께도 곱게 들렸을리 없었을 것입니다.
내가 이제와서 뭣 땜에 딸년 시집살이 하면서 살아야 하냐고 당장 찢어져 살자고 하시기도 여러 번,나도 정말 같이 못 살겠다고 따로 살려고 마음 먹은 적도 한두번이 아닙니다.
그러다 지저분한 집을 치우는 것은 어머니나 딸을 위해서가 아니라 순전히 나를 위해서 하는 거라고 마음먹고 했더니 마음에 불만이 없어지고 평안이 왔습니다.
그 다음에는 아예 둘이 바뀔거라고 하는 기대를 버리고,아니 둘을 내 뜻과 생활 습관대로 길들여 지배하려는 욕심을 버리고,아무런 중얼거림 없이 식사 후에 담배에 불을 붙이시면 얼른 밥그릇을 빼내고 재떨이를 놓아 드리고,어머니 안계실 때 집안을 치우고 했더니 이젠 딸년 시집살이 한다는 소리는 안하시게 되었습니다.
이게 좋은 것인지 아닌지 모르겠지만 이젠 저도 머리 맡이 너저분하다고 잠도 못잤던 결벽증 상태에서 벗어나게 되었구요.
그런데.....저희 어머니도 변하시더라구요.
지난 번에 화장실에 붙여 놓았다가 싸움이 날 뻔 했던 록펠러 어머니 십계명을
이번에 집사 임명 기념으로 받았기에 나름 각오를 하고 또 붙였더니 이번엔 암말도 없으십니다.
오늘은 김치를 열다섯 포기나 담그시는데 도와드리지도 못하고 전에부터 교회 가족과 어디를 가기로 약속이 되어 있어서 굉장히 죄송스러운 마음으로 잔소리 들을 각오를 하고 나서는데 “교회 일”이라고 하자 두말도 않고 잘 다녀오라고 하시더군요. “여럿이 어울려서 행여나 다른 사람 흉보거나 하지말고 집사답게 조심하라”고 하시며.
이게 뭐 제가 그동안 잘 해서가 아니라 어머니를 위해 열심히 기도하고, 살았고 운동력 있는 말씀의 능력을 믿기에 효부상을 받은 어머니께 룻기 이야기를 해 드리고, 일부러 암송구절 외는거 봐 달라고 해서 들려 드리고, 했기 때문이 아니겠습니까?! 그러니까 제가 아니라 기도의 주인이시고 말씀의 주인이신 주님께서 변화하시게 만들었다는 소리입니다.
다시 돌아와 괜히 나 혼자 서먹서먹 했던 교회가 이제 이렇게 정겹고 오래 있고만 싶은 곳으로 변한 것도 아마도 제가 변했기 때문일 것입니다.
“어째 넌 요즘 에미보다 예수님을 더 부르냐?!”
어머니께서 말씀하실 정도니 제가 열심히 예수님을 부르고는 있는 것 같습니다.
내가 남을 변하게는 못 하지만 믿음 안에서 내가 변하면 남도(특히 가족) 변할 수 있다는 희망을 갖게 되었습니다.
단지 우리 예수님 안에서 예수님으로 인하여.
내가 계속 부르는 예수님의 이름이 나의 믿음과 비례하여 더욱 큰 권능을 가지게 되리라는 걸 이번 주 말씀으로 다시 깨닫고 소망을 담아 가만히 불러 봅니다.
누구의 예수님도 아닌 “나의 예수님”을…

아참, 다음 주 집사 임명식때 나는 꽃다발 줄 사람도 없다고 일부러 구슬프게
중얼거렸더니 자식 불쌍한 꼴은 절대 못보는 우리 어머니께서 제 계산대로
오시겠다고 하셨습니다. 그러니까 제가 이 리플에 쓴 내용, 청소만 잘하시고
정리가 안되는 어머니 이야기는 절대 비밀입니다.....행여라도, 큰일납니다...ㅎㅎ

유광옥

2007-01-19 09:11:02

1.‘누구든지 [주의 이름]을 부르는 자는 구원을 얻으리라’(롬10:13)
‘무엇을 하든지 말에나 일에나 다 [주 예수의 이름]으로 하라’(골3:17)
‘[예수 그리스도의 이름]으로 내가 네게 명하노니 그에게서 나오라 하니 귀신이 즉시 나오니라’(행16:18)
이 모두가 다 바울을 통해서 불려진 ‘예수의 이름’들이다. 그는 말을 할 때도 ‘예수’, 일을 할 때도 ‘예수’, 길을 갈 때도 ‘예수’, 밥을 먹을 때도 ‘예수’, 귀신을 만났을 때도 ‘예수’…
모든 삶이 오직 ‘예수의 이름’으로 충만한 사람이었다. 그래서 그는 늘 풍성한 사람이었고, 승리의 사람이었고, 기쁨의 사람이었다. 믿음의 사람은 예수의 이름의 부자가 되어야 한다.

목사님 말씀처럼 올해는 무엇을 하든지 예수님의 이름을 많이
부르려고 노력을 하고 있다.
올해의 나의 목표가 우리 엄마를 교회에 한 번 이라도 모시고 가서
예배를 같이 드리는 것이다.
절대 남에게 피해 안주시고 ,남 욕 안하시고, 어려운 사람 잘 도와 주시고
, 정직하게 사시려고
노력하시는 분이라 배울점이 많으신 우리 엄마 이시지만
교회라고 하면 늘 편견이 있으시고 거부를 하시는 것이 안타깝다.

엄마가 예수의 이름으로 구원 받기를 원하지만 예전 보다도 엄마를
위해서 기도하는 시간이 그리고 간절함이 자꾸 없어지는 나를 발견하면서
회개를 하였다. 설교를 읽으면서 예수 그리스도의 이름으로 다시 우리
엄마를 위해 기도하고 싶다고 느꼈다.
예수님의 이름 안에서는 안될일이 없는데 내가 어쩌면 포기를 하고
있는 것은 아닌지 하는 생각에 올해는 식사 기도를 할 때도, 아침을
시작 하면서도 길을 갈 때도 일을 할 때도 예수님의 이름을 부르면서
구원 받지 못하고 있는 불쌍한 우리 엄마를 위해서 기도를 간절히 해야
겠다고 다짐을 해 보았다.
꼭 예수의 이름으로 우리 엄마가 구원 받을 수 있도록 기도하고 싶다.

양미옥

2007-01-19 18:10:19

올해는 예수님의 이름으로 제가 바뀌기를 원합니다. 예수님! 제발 도와 주세요.
제가 안 바뀌면 저희 가정에 희망이 없습니다.
제가 안 바뀌면 저희 교회에 희망이 없습니다.
제가 안 바뀌면 무엇보다 제 인생에 소망이 없습니다.
존귀하신 예수님의 이름으로 제가 꼭 바뀌게 해 주세요.’
사람은 남이 바꾸는 것이 아니다. 하나님의 은혜로 스스로 바뀔 뿐이다.

예배시간에 잠시 눈을 감고 다함께 기도했을때 마음속 깊은곳에서 부터 기도가 나왔습니다. 하나님 올해뿐만 아니라 내 평생 하나님을 사랑하게 하시고 늘 예수님 닮아가는 모습을 변화되게해주세요..
나 무엇과도 주님을 바꾸지 않으리..
주님 사랑해요..온 맘과 정성다해.. 하나님의 신실한 제자 되길 원합니다..
존귀하신 예수님의 이름을 오늘도 힘껏 불러봅니다...그리고 제안에 또다른 변화를 위해 기도합니다..

정승은

2007-01-19 18:19:52

1.‘[예수 그리스도의 이름]으로 내가 네게 명하노니 그에게서 나오라 하니
귀신이 즉시 나오니라’(행16:18)
이 모두가 다 바울을 통해서 불려진 ‘예수의 이름’들이다. 그는 말을 할 때도
‘예수’, 일을 할 때도 ‘예수’, 길을 갈 때도 ‘예수’, 밥을 먹을 때도 ‘예수’,
귀신을 만났을 때도 예수’,모든 삶이 오직 ‘예수의 이름’으로 충만한 사람이었다.

말씀을 듣고 예수의 이름으로 기도하기 시작한지 몇주가 지난것 같다.
예수님의 이름으로 시작해서,예수님의 이름으로 마치는 하루가 된 것
그 자체만으로도 은혜임을 믿는다.예수의 이름으로 충만하게 살았던 바울과
몇몇 분들의 은혜로운 간증을 들으며 나도 더 열심히 예수의 이름으로 나를
채워야 겠다 다짐하며,월요일 올려진 말씀을 읽고 묵상하고는 예수의 이름을
부르며 잠들었는데,그날 새벽 사단과 싸우는 꿈을 꾸게 되었다.
얼마나 사단의 얼굴이 생생하게 기억이 나던지..아는 얼굴,모르는 얼굴 등
얼마나 많은 얼굴로 뒤바뀌며 내게 달려들던지..
그런데 희안하게 비록 꿈이지만 나도 모르게 즉시 적용을 하고 있었다.
예수의 이름으로 명하노니,나가라!그러다 너무 순식간에 달려드는 사단의
얼굴들에 겁이났다.그럼에도 계속 예수님의 이름만을 불렀고,그러다가
잠에서 깼다.꿈 인것을 알고 밀려드는 안도감과 함께 꿈에서도 예수님의
이름으로 역사 하시는 구나,꿈에서도 적용이 가능하구나..를 알게 되었다.^^
그리고 목사님께서 올려놓으신 은혜로운 간증의 주인공 정은 자매와
메신저로 대화 하면서 토요일에 얘기듣고 함께 기도하며,대화 나눈대로
주일날 새벽예배에 참석했다는 소식과 면접을 훌륭하게 마쳤다는 소식을
듣게 되었다.짧게나마 같이 기도했던 제목들이 응답 되었음에 감사했고,
기뻤다.그리고 접수했던 아파트가 떨어졌다는 소식을 뒤늦게 알게 되었다.
안되었을거라는 예상을 할 수 밖에 없는 상황 이였음에도 기다렸던 모양이다.
저녁 내내 아니라고 하면서도 마음속에 낙심이 밀려들었다.
그러다가 즉시 예님의 이름을 외치면서 기도했다.
예상했던 4월이 아닌,7월까지 기숙사를 연기해 주신 이유가 분명히 있을
것이며,그전에 새로 이사갈 집,약속의 땅으로 인도해 주실것임을 믿는다고
기도했다.다른 무엇보다 내가 기도한 대로 바로 응답되지 않았음에도 감사할
수 있다는 그 사실에 크게 감사하다.바로 예수님의 이름으로 기도했기 때문에
마음에서 우러나와 드릴 수 있는 감사였다.
예수님의 이름으로 기도했기 때문에 평안을 얻기도 했지만,그만큼 사단은
작은 틈이라도 이용해서 기도를 못하게 하고,이름을 부르지 못할 만한 상황도
만드는 것 같다.그럴때 더 많이,더 자주,더 깊이 예수님의 이름으로 기도해야
함을 깨닫는 한주였다.

2. ‘예수님의 이름’ 자체가 능력이 있는 것이 아니라, 예수님을 믿는 믿음이
능력이다.
‘바울이 전파하는 예수’를 ‘내가 믿는 예수’ ‘내 속에 계시는 예수’
‘나의 예수님’으로 바꾸어야 한다. 그리고 나서 그 예수님의 이름을 불러보라.
바울의 예수님이 ‘나의 예수님’이 되신 것을 체험하게 될 것이다.

정말 올해는 내가 전파하는 예수,내가 믿는 예수,내 속에 계시는 나의 진정한
주인 예수로 확실하게 바뀌기를 소원한다.
가끔 성경속의 인물들이 부르는 예수에 만족하고 싶을때가 있다.
멋진 간증을 남기는 분들이 외치는 예수를 듣고 나와는 별 상관없이
듣고 그치는 경우도 있었다.그분들은 특별히 쓰임받기 위해
택하신 분이라는 생각 말이다.난 그럴만한 그릇이 안된다는 부정적인
생각들도 할때가 있었다.
또 늘 예수님의 이름을 부르며,주여 삼창까지 외치기는 했지만,
진정 내 안에 예수님의 이름에 대한 믿음,예수님을 믿는 믿음에서 나오는
능력은 어느 정도였는지 생각하니,저절로 고개가 숙여진다.
그래도 조금씩 요즘 말씀을 통해 바뀌고 있음을 느낀다.
예수님의 이름으로 계속 구하며 나갈 것이다.
너무 쉽게 현실을 받아들여 믿음을 포기했던 것 같다.
믿음을 포기했기 때문에 저절로 내 주인이 예수님이 아닌,나일 수 밖에
없었던 것 같다.특별히 힘들때,혹은 너무 좋을때 말이다.
아무리 예수여,주여 외쳐도 내가 가진 물질의 주인이,
내 환경의 주인이,미래의 주인이 바로 나의 주인임을..
이젠 안다.예수의 이름으로 기도하면서 이 사실을 확실히 깨달을 수
있었고,감사하다.
물질 때문에,좋고,나쁜 환경,자리 때문에,혹은 불안한 미래로 인해 예수님의
이름을 잃고 싶지 않다. 나의 믿음을 땅에 떨어뜨리고 싶지 않다.
예수님의 이름으로,예수님에 대한 믿음으로 나의 주인을 언.제.나 바로
나의 예수님이라고 고백할 수 있는 믿음으로 바로 서길 기도한다.
무엇보다 이젠 다른 누구의 예수님도 아닌, 바로 나의 예수님!나의
주님이심을 체험하고 고백하게 될 것을 믿고 소원한다.
내 안에 계시는 예수님의 능력이 언제든지 역사하실 수 있도록 다른 누가
아닌 나 자신을 변화시키기 위해 힘쓰며,예수의 이름으로 날마다 나를 말씀
위에 세우기 위해 힘써야 할 것이다.

최현숙

2007-01-19 19:40:04

월요일 말씀을 올리신 목사님께서 어김없이 내게 리플을 달 것을 종용하신다.
마음을 가다듬고 말씀을 읽고 예수님의 이름을 불러 보면서 글을 쓸려고 했지만 도무지 생각이 정리 되지 않아서 중간에 썼던 글을 다시 지우고 방으로 들어왔다. 목사님께서 썼냐고 물어 보시지만, 궁색한 변명을 늘어 놨다. 도무지 정리가 안돼서 ...... 주일날 말씀을 받았으닌까 몇일이라도 적용을 해보고 써야 하는거 아니냐고 했다....
목요일 다가왔지만 나에겐 예수님의 이름으로 별다른 사건이 일어 나지 않았다. 말씀을 읽고 성도님들이 나눈 은혜로운 간증과 삶의 변화들이 너무 아름다워서 나에게도 이런 아름다운 일들이 일어 나지 않을까...하는 기대심이 내게 있었나 보다. 목요일 저녁이 왔는데 생각지도 않았던 전화를 받았다. 어느 집사님께서 개인적으로 아주 기쁜 일이 생겼다고 전화를 해 오신 것이다. 그 일을 놓고 중보기도 하신 여러분들이 계신데 그중에 한 사람이 나였기 때문에 나도 덩달이 기뻤다. 그리고 또 생각나는 분이 계셔서 기도결과를 물었더니 응답의 결과를 오늘 받아서 전화를 할려고 했는데 기억하고 전화를 주셔서 감사하다는 것이다. 예수님의 이름으로 기도를 하고 응답을 받게 되니 성경에 말씀하신 것처럼 너희가 내안에 거하고 내 말이 너희 안에 거하면 무엇이든지 구하라 그리하면 받으리니 너희 기쁨이 충만하리라...하신 말씀에서 하나님께서는 정말로 내 안에 기쁨을 충만히 주셨다. 리플을 달기전에 몇일이라도 적용하고픈 내 마음을 예수님께서 아신 듯 해서 더 기뻤다. 새해부터 지금까지 예수님의 이름을 부르면서 지내고 있다. 너무나 분명한 것은 그 이름을 부르면 부를수록 내게 임한다는 것이다. 기도응답이 좋게 나와서 그 능력이 임하는 것이 아니라 그 이름의 능력 그자체로 내겐 힘이 되고 있음을 새삼 체험하고 있다는 것이다.
예수님의 이름으로 기도하고 있는 학교 후배가 있다.
주일 저녁에 후배가 생각이 나서 전화를 했다. 우리는 믿음에 대해서 약 40분 정도 이야기를 나눴다. 1/21일 주일에 교회에 가기로 약속을 받고서 전화를 끊었다. 몇일동안 이 일을 놓고 난 계속 예수님의 이름을 부르면서 기도하고 있다. 그 후배가 믿음을 가지길 진심으로 바라고 있다. 지금 그 후배에겐 믿음이 필요한 시기이기 때문이다.

오늘 새벽재단에서 목사님께서 지혜로운 자는 타이밍을 잘 맞추는 사람이라고 했다.
새해 첫 날부터 예수님의 이름을 부르면서 살자고 재단에서 선포되어질때 이 말씀을 진심으로 내것으로 받고 적용한 사람은 이런 능력의 삶을 사는 지혜로운 사람이란 생각이 들었다. 자신이 먼저 변화되어야 내 속에 역사하는 힘이 커진다는 것을 다시 깨닫는다. 예수님의 능력은 변하지 않는다. 단지 그 이름을 사용하는 내 믿음이 문제인것이다. 온전한 믿음으로 예수님의 이름을 부르면서 단 5분이라도 주님을 놓치지 않도록 예수님께 성령님께 구한 시간 시간이 되길 기도해 본다.

김부영

2007-01-20 00:36:42

바울은 예수님의 이름을 부를 때마다, 예수님이 바로 개입해 주셨다. 예수님과 상관없는 예수의 이름은 아무런 능력도, 의미도 없다. ‘예수님의 이름’ 자체가 능력이 있는 것이 아니라, 예수님을 믿는 믿음이 능력이다. 그 믿음의 표현으로 예수님을 부를 뿐이다.

요즘 내 생활을 보면 일에 지쳐있다. 그럴싸한 일도 아니고 남들도 다 하는
집안일이다. 집안일은 정말 해도해도 끝이 없다 더군다나 저번주 내내
한국에 외사촌동생이 온 관계로 내 맘적 부담은 커져서 집안일에 동생
관광에 거의 극에 다달았던거 같다
오랜만에 사람들의 리플을 읽으면서 다들 예수의 이름으로 은혜받고
능력받은 얘기를 읽다보니깐 나는 지금 뭐하나 하는 생각과
왜 나에게는 멋있는 간증이 없을까 내심 챙피한 생각이 듭니다

밤중에 수호가 잠을 못자고 울을때면 난 주술을 외듯 예수이름을 부르고
한다 예수님께서 정말 지금 나를 도와주리라는 확신이 없는 외침이기 때문에
아이는 눈을 말똥말똥거리고 나는 포기를 하고야 만다
거의 한시도 나의 생활이 없는 요즘 변화무상한 우리 수호
언제나 눈을 동글동글 굴리며 장난칠거리없나 생각하는 민호
그런 민호와 언제나 깔깔거리며 잘 노는 태연이
집안일, 육아일로 몸은 여기저기 아프고 수면부족에 나의 시간이 단30분도
없어도 예수님을 믿는 믿음으로 감사함이 넘치기에
기도를 하면 눈물이 나오고 찬송을 부르면 눈물이 납니다
내가 지금 힘들지만 항상 즐거운것은 정말 항상 예수님을 부르기 때문이
아닐까 생각이 듭니다.

홍인철

2007-01-20 01:58:13

올해 들어서 예수님을 확실히 많이 부르고 있습니다. 많은 일들이 예수님의 힘으로 이루어 질 줄 믿습니다. 아직 눈에 보이는 확실한 결과는 없지만 조금 씩 나아지는 게 느껴지고 있습니다. 학업에 있어서는 길을 열어주시고 생활에 있어서는 일용할 양식과 마음의 평안을 주십니다. 이전에 경험하지 못한 평안함과 하나님께서 반드시 나를 지켜주시고 키워주실 것이라는 믿음이 제 마음속에 있습니다.

예수님께서 저의 근심과 걱정을 가져가시고 평안을 주신 후, 저에게 나태와 교만이라는 못된 마음이 들어오려고 하는 것 같습니다. 이 녀석들이 점점 커져서 결국 하나님께서 주신 평안의 복을 가져가 버릴수도 있겠지요.
“저를 바꾸겠습니다.”
저의 힘으로는 할 수 없지만 예수님의 이름으로 하겠습니다. 저의 못된 습관이나 행동, 삶의 태도를 바꾸겠습니다. 하나님께서 주시는 복을 저의 잘못으로 내던져버리는 우를 범하지 않겠습니다. 하나님께서 주시는 놀라운 은혜를 소중히 간직해 올 한해는 제 인생에 있어 많은 역사가 이루어질 수 있도록 기도하고 노력하겠습니다.
“예수님 믿습니다!!”

라문진

2007-01-20 03:28:00

“이처럼 예수의 이름은 우리 인생에 아름다운 이야기를 만들어 준다.”

지난 연말부터 지금까지 마음속에 남아서 나를 힘들게 한 문제가 있었다 집사직분을 받기로 결정하는데에도 쉽게 순종하지 못한 이유이기도했다.
속장들끼리 모여 올해 여선교회에 대한 회의를 지난 연말에 했었는데, 그때 나의 모습을 거짓없이 보았기 때문이다.
물론 주님은 알고 계시겠지만, 누구보다도 나의 믿음의 상태를 내가 잘 알기에..
제자훈련과 사역훈련을 받으면서 속회에서 속장으로서의 섬김만으로 나의 믿음의 상태가 보여지는것 같아서.. 보여지는 모습보다 훨씬 힘겹게 따라가고 있는 나인데..
여선교와 집사는 먼저 부담으로 다가왔던 것은 사실이다.
물론 많은 부분을 이제는 기쁨으로, 나와 하나님과의 관계에 초첨을 맞추며 정상 궤도에 올려놨다고 생각했는데, 또 다시 한 단계 업그레이드된 궤도에 올라야한다니 솔직히 기쁨보다는 부담이 먼저였다. 그런데 그 회의에서 다른 속장님들의 헌신된 모습에서 내가 지금 집사직분을 받아도 되나..하는 의문에 빠져버렸다.
하지만, 제자훈련과 사역훈련, 속장으로서의 섬김이 지금의 나를 있게 있게 해주었고, 그런 훈련이 없었다면, 믿음을 이만큼이나 성장시키지 못했을 것이다 라는것에도 의심의 여지가 없다.
정말 기도하며 주님께 물었었다. 정말 저 집사직분 받아도 되나요? …

하지만 순종하며 집사교육을 받았고, 이번주 집사직분 임명을 준비하며 이제는 또다시 주님이 나를 얼마나 성장시키실지 기대하게 된다. 기쁨보다는 부담이 먼저였던것은 예수님의 이름이 아니라 내 이름으로 모든것을 하려 했던 것에서 시작되었을 것이다.
올 한해는 정말로 예수의 이름으로 내 인생에 아름다운 이야기가 많아지기를 기대해본다.

이지영

2007-01-20 06:37:21

‘올해는 예수님의 이름으로 제가 바뀌기를 원합니다. 예수님! 제발 도와 주세요.
제가 안 바뀌면 저희 가정에 희망이 없습니다.
제가 안 바뀌면 저희 교회에 희망이 없습니다.
제가 안 바뀌면 무엇보다 제 인생에 소망이 없습니다.
존귀하신 예수님의 이름으로 제가 꼭 바뀌게 해 주세요.’
사람은 남이 바꾸는 것이 아니다. 하나님의 은혜로 스스로 바뀔 뿐이다.

2007년도는 예수님의 이름을 붙잡고 한층 더 변화하는 해가 되기를 소망한다.
내 자신이 바뀌지 않으면, 2007년도를 새롭게 맞이하는 의미가 없다
작년에도, 재작년에도, 주위 환경이나, 사람들이 바뀌었을때가 아니라,
내가 바뀌었을때, 환경을 보는 눈이 바뀌어졌고, 사람들을 대하는 마음자세가
틀려질 수 있었음을 체험하며, 나 자신의 변화의 중요성에대해 알 수 있었다.

" 왜 저 사람은 저래야만 할까.." 이해할 수 없었던 마음이 변화하자, 이해하지 못해도 사랑의 눈으로 볼 수 있게 되었고, " 나는 왜 이래야하나.."라는 환경에 대한
불만의 태도가 변화하자, 똑같은 환경이어도, 평안과 행복을 누릴 수 있었고, 하나님께 대한 감사가 나올 수 있었다...

예전에는 아버지에게 사랑을 표현하고 싶어도, 어머니께 사랑을 표현하는만큼
잘 안되는 내 자신에 대해 속상해 했지만 실천도 안하면서, 속상해하기만하면, 안되겠다싶어 ,어느 날 용기를 내어, ' 아빠 사랑해요'라는 말을 힘들게 한적이 있다.그리고, 그후 부터는 '사랑합니다'라는 5글자가 입 밖으로 보다 쉽게 나올 수 있었고,아버지도 나에게 사랑한다는 표현을 말로써 하기 시작하셨다..ㅋㅋ

올해에는 더욱 더 예수님의 이름을 품고, 내 자신의 변화를 통해, 이웃과 환경을 변화시키는 인물이 될 것이다.

홍인기

2007-01-20 08:51:09

"예수이름의 능력과 권세와 그 행복을 모르고 신앙생활을 하고 있는 성도들에게"

말씀을 듣기 전까지... 저 자신은 예수님의 이름의 능력과 권세.. 그 행복을 제대로 알고 있었나 되돌아봅니다.
내안에 자리잡은 예수의 이름이 얼마나 습관적인 이름일 뿐이였나 회개하게 됩니다. 주변에 많은 사람들이 예수의 이름을 선포하고 얼마나 행복해하고 또 그 능력을 체험하고 있는지를 보면 내심 부럽기도 합니다. 제가 부르는 예수의 이름은 스게와의 아들들과 같은 부르짖음이 아니였나 .... 조심스레 되돌아 보게 됩니다.

"예수님의 이름도 누가 부르는가에 따라 전혀 다른 결과를 가져 온다.
모든 결과는 연장과 사용하는 사람의 합작으로 만들어진다.
‘일 못하는 사람이 연장 탓만 한다.’는 말이 있다. 예수님의 이름을 탓하지 말아야 한다. 예수님의 이름을 바꾸려고 하지 말아야 한다"

이말씀... 묵상하며 귀하게 받겠습니다. 마음속에 새겨넣도록 하겠습니다.

"왜 주님께서 나를 부르셨는지, 내가 주님을 위해서 무엇을 해야 하는지 너무나 분명합니다. 예수님의 이름을 증거하는 것입니다"

예수의 이름을 선포함으로..... 남들에게 그 이름의 능력과 권세, 그리고 행복을 간증할 수 있는제가 되도록... 부지런히 그리고 성심으로 부를수 있도록 기도합니다.

김정아

2007-01-20 09:22:55

‘예수의 이름’을 간절히 부를 수 있는 천혜의 기회가 주어진 것이다.
예수님의 이름이 성도들의 삶과 입에서 늘 춤을 추어야 한다.

삶속에서 크고 작은 문제들을 만날 때, 우리마음에 먼저 근심과 염려가
생기게 됩니다. 물론 성경적 이론상으로는 염려하지 말라,
근심하지 말라 이지만... ,
실제로 그런 상황이 된다면 누구나가 힘들어하기 마련입니다.
하지만 오늘 말씀에서는 예수의 이름을 간절히 부를 수 있는
천혜의 기회라고 했습니다. 위기는 기회라고 했지요....
즉 예수의 이름을 부를 수 있는 기회인것이지요.
힘든 환경, 어려움들을 만났을 때 기회라고 표현하고 싶습니다.
미처 환경에 붙들려 있을 때는 기회가 아니라 절망인 경우가 많습니다.
예수의 이름을 부를수 있는 기회라고 생각하기 보다, "어떡하지" 가
더 앞섰던 것 같습니다.
그러나 기회라고 표현한다면 마음가짐도 달라지겠죠.
오히려 이것을 통해 하나님이 어떤 복을 주실려나,,
좀더 긍정적으로 생각할 수 도 있고...
문제는 그 상황들을 어떻게 대처하느냐이겠죠.
그것은 곧 예수의 이름으로 쏘는것......
문제를 예수의 이름으로 격파시키는 것....
하나님께서 주신 귀한 이름, 그 능력 곧 예수의 이름의 사용권을 주셨기에
예수의 이름을 사용함으로, 늘 예수의 이름이 내입에서 삶속에서
춤을 추는 삶이 되길 소망한다. 그리고 문제들을 예수의 이름을 부를 수
있는 기회들로 생각하며 늘 예수의 이름이 내 입에서 끊이지 않기를.....

김경환

2007-01-20 10:44:06

##바울은 예수님의 이름을 부를 때마다, 예수님이 바로 개입해 주셨다. 예수님과 상관없는 예수의 이름은 아무런 능력도, 의미도 없다. ‘예수님의 이름’ 자체가 능력이 있는 것이 아니라, 예수님을 믿는 믿음이 능력이다.##

지난 금요일에 있었던 일입니다. 새해가 되면 저와 형제교회 목회자님들은 일본으로 초청 해 주신 일본교회 목사님께 인사드리는 날이 있는데 바로 그날이였습니다. 예년과 마친가지로 작은 선물을 들고 시간에 맟추어서 전철을 타고 20여분 가고 있던 순간이였습니다. 교회 성도님으로부터 걸려 온 전화였는데 암으로 투병하고 있는 남편이 위독해서 오전을 넘기기 어렵다는 전화였습니다. 병원에서는 3일을 넘기기 어려운데 오늘이 3일째였습니다. 인사보다 더 급한일이였기에 목사님들께 연락을 하고 다시 내려서 병원으로 향했습니다. 병원에 도착했더니 초등학교 4학년인 아들과 어머니인 집사님이 서로 창문을 바라보면서 울고 있었습니다. 급히 병실로 들어갔더니 환자인 남편분은 제가 보기에도 몇시간 못 넘길 것 같은 상황이였습니다. 마음의 준비를 단단히 하고 병실을 지켰습니다. 2시간 정도는 점점 혈압과 맥박수도 떨어지면서 눈의 촛점은 완전히 잃어버렸습니다. 죽음의 수순을 서서히 밟고 있었던 겁니다. 그런 순간에는 마음속으로 계속 기도밖에 할게 없었습니다. 하나님, 예수님 이름을 불러 가면서 그동안 교회 전체가 함께 매일 기도했는데 이렇게 데려 가실겁니까? 어떻게 좀 살려 주실 수 없습니까? 이런 기도를 하면서 후에 오신 집사님들과 간절한 마음으로 눈으로 대화하면서 주님께 맡겨 버렸습니다. 마지막으로 할말이 있으면 아들에게 하라고 해도 할말 없다는 머리 흔드는 것만 있을뿐 말은 하지 못하는 상황이 거듭됐습니다. 참으로 힘들어하는 모습이였습니다. 3시간이 지났을 무렵 희망이 없어 보이던 분이 일어 날려고 애를 쓰는 것이였습니다. 우리는 깜짝 놀라서 일으켜 드렸더니 의식이 조금 들어 오는것을 느꼈습니다. 그리고서는 牧師先生!ごめんなさい!이러는 것이였습니다. 저와 함께 있었던 분들 모두가 깜짝 놀랐습니다. 그러던 순간 이제 됐다! 라는 안도의 숨이 나오면서 예수님의 이름으로 승리했음을 확신했습니다. 침대 위에 편안하게 앉아 있는 그분의 머리에 안수기도를 해 드리고 저는 돌아왔습니다. 그런 그분은 어제도 병실에서 편안하게 지내고 있다는 소식을 들었습니다. 그분은 야쿠자 출신이였고 아내를 만나서 돈으로 무엇이든 해 주고 아내가 교회 가자고 하면 할 수 없이 따라 다니는 믿음 없이 억지로 예배만 드리는 생활이였습니다. 그런 분이 2일이 지난 주일에 여보! 왜 나를 더 일찍 예수님을 만나게 해 주지! 그랬어! 그러더랍니다. 이제 주님을 온전히 영접하였습니다. 하나님께서 그분을 언제 데려 가실지는 아무도 모릅니다. 그러나 언제 데려 가시더라도 이젠 그분의 삶에 예수님의 이름이 그분을 구원하셨음을 믿게 되었습니다. 이전엔 그분에게는 예수님의 이름이 아무런 능력이 없었지만 이제는 가장 큰 능력의 이름이 되었습니다. 매일 교회로 달려와 눈물로 기도하시는 부인 집사님을 보면서 예수님의 이름이 한 영혼을 살리는 무한한 힘의 능력과 은혜에 감사했습니다. 혹시 리플을 읽으시는 분이 있으시면 우키베 시로우(浮辺史朗) 성도님을 위해 예수님의 이름으로 기도 해 주시기 바랍니다. 간암인데 당뇨합병증까지 있습니다. 부탁드립니다.

위의 일을 겪으면서 저는 예수님의 이름을 그렇게 부르자고 했는데도 순간 잃어 버렸던 시간이 있었음을 고백드립니다. 예수님의 이름을 부르면 바로 개입 해 주시는데도 주님이 끝내시기도 전에 이미 끝났다는 종지부를 먼저 찍으려는 과오를 범할뻔 했습니다. 이런 급박한 상황이 제게 얼마나 더 있을지 모릅니다. 그렇지만 이럴때일수록 더 많이 예수님의 이름을 부르기를 원합니다. 부르기만 하면 능력의 이름되신 주님께서 인도하시고 책임져 주실 줄 믿습니다. 2007년 일명 예수이름 부르기 운동에 적극적으로 동참하는 훈련생이 되겠습니다. 아멘!

박빛나

2007-01-20 16:47:34

올해는 예수님의 이름으로 제가 바뀌기를 원합니다. 예수님! 제발 도와 주세요.
제가 안 바뀌면 저희 가정에 희망이 없습니다.
제가 안 바뀌면 저희 교회에 희망이 없습니다.
제가 안 바뀌면 무엇보다 제 인생에 소망이 없습니다.
존귀하신 예수님의 이름으로 제가 꼭 바뀌게 해 주세요.’

나는, 내 고집으로 내 삶을 힘들게 살고 있었다.
내 안에는 무엇이든지 내가 다 할 수 있다는 자신감이 너무나 충만했다.
하나님은 이런 나를 일본으로 보내주셨고,
내가 태어나서 가장 힘든 시간을 내게 주셨다.
나는 수도 없이 울었고, 너무나 낙심해서 마음이 무너지는 경험들로
하루 하루를 채워나가고 있었다.

이런 나를 보듬어주신 하나님...
그리고 비젼을 보여주신 하나님은 내게 말씀 하셨다.
[너 자신이 바뀌지 않으면, 아무 일도 일어나지 않아.
생각을 바꿔보렴.]

나로 하여금, 나를 다시 보게 하시고,
나를 다시 보게하사, 내 주변을 사랑하게 하시고,
회복시켜주신 주님...

나는 아직도 변화되기를 소망합니다.
아직 내 안에서 남아있는 아픔과 좌절이 주 예수의 이름으로
긍정과 희망으로 완전히 변화되길 소망합니다.

주님만이 아십니다. 바늘로 가슴을 찔러대는 듯이 아팠던 내 하루하루가
기쁨이 되기 시작한 날은.. 바로 주님이 나를 다시금 불러주시고,
내 마음을 보듬어 주신 그날부터 입니다.
내가 변화되고자 할때, 가장 중요한 이 시기에 예수님의 이름이라는
귀중한 보배를 내게 주셔서 감사합니다.
몇 주간... 설교 말씀을 듣고, 읽으면서 얼마나 많은 예수님의 이름을
부르게 되는지 모르겠습니다.

다른 분들의 리플에서 얼마나 은혜를 받는지 모르겠습니다.
하루.. 하루...
홈페이지에와서 만나는 예수님의 이름이 얼마나 힘이 되는지...

사랑의 주님... 감사합니다.
이 부족한 딸에게 예수님의 이름을 주셔서 감사합니다...

김 정숙

2007-01-20 18:09:05

누구든지 주님의 이름 “예수”를 부르는 자는 구원을 얻으리라!
가슴에 말씀으로 충만한 부자,
육의 창고를 채우는 부자보다 세상을 마음에 채우는 부자,
참 영적 부자가 되고 싶다.
내 인생을 보고 세상 모든 사람들이 에수님을 아는
그런 인생을 마무리하고 싶다.
예수 이름으로 기도하오니 에수님 도와주세요!
오늘도 새벽제단에서 우리 목사님의 기도 모습을 닮아
예수 이름으로 모든 기도하는 이들 이름 앞에
그리고 끝나는 부분에서 예수님 이름으로 부르게 하셔서 감사합니다.
기도하게 해 준 모든 이들에게 먼저 감사하고 싶습니다.
예수 이름을 똑 같이 불러도 믿는 자와 믿지 않는 자에게
예수 이름의 능력과 권세가 다르게 나타난다는 말씀.
예수님을 믿는 믿음이 능력이고
예수 이름의 선포가 능력으로 나타난다 하신 말씀.
빌려 온 예수가 아닌 내 안에 계신 예수를 선포하며
내 속에 계신 예수가 그 이름으로 선포할 때 모든 악한 것이 떠나가고
충만함으로 하루가 시작되어
예수님! 같이 계셔서 오늘 하루도 외롭지 않고 행복합니다.

지난 주일 예배 후 같이 서로 기도하는 성도님 한 분이
너무 기쁘고 감사한 은혜의 간증을 제게 들려 주었습니다.
새벽 기도 시간마다 예수 이름으로
“세상에서 버려야할 것을 버리게 하시고
오직 성령의 충만함으로 세상을 이길 힘을 주시고
앞길에 예수님이 인도하시어 평탄하게 하시고 이 성전에서
하나님이 쓰실 기드온의 300용사가 되게 해 주세요.”
날마다 기도하는 그 성도 분이
“집사님! 저 담배 끊었어요!” 하는 말에 저도 모르게 “할렐루야!”대답하며
내 일보다 더 반갑고 고마웠었습니다.
어느 날 새벽 화장실에 담배를 들고 들어 갔는데
불의불식 간에 음성으로 들리는 소리가 “끊어!!”하는
처음 들어보는 강한 느낌의 목소리에 본인도 깜짝 놀랐다면서
그 순간 담배를 피울 수 없었다고 합니다.
그 날부터 누군가 곁에서 담배를 피우면 가슴이 답답해지며
그 냄새가 역겹게 싫어 졌다고 합니다.
그렇게 끊고 싶어도 자신의 의지로는 힘들고 어려웠는데
예수 이름으로 기도하는 시간에 예수 이름의 능력이 “끊어!”하시는,
강하고 두렵고 처음 들어보는 음성으로 말씀하시고
예수님의 능력과 크신 힘으로 간단히 끊게 하셨다고 합니다.
예수 이름으로 하나님께 영광을 돌립니다!
하나님께서는 올해에는 더 좋은 것을 응답하시어 예수 이름을 날마다 불러
항상 성령의 충만함으로 아름답고 행복한 하루하루가 되기를 기도합니다.

요즈음은 시간이 너무 빨리 빨리 지나가는 느낌입니다.
요즈음 새벽 말씀이 잠언으로 목사님을 통해
하나님이 주시는 말씀이 꿀송이 같습니다.
하나님이 우리에게 주신 오늘 만의 시간이 내 것이며
내일은 하나님의 것이요 주님의 것이기에
지혜로운 자는 내일을 생각하지 않고 오늘 주어진 시간에 최선을 다 하며
지금 현실의 일에 예수님 이름으로 최선을 다 할 수 있어야 한다고
하루살이 처럼 오늘만 내게 있다면
지금 주어진 모든 일에 최선을 다 하며 살 수 있을까?
힘들고 어려운 시간시간 마다 예수님 이름을 부르며 최선을 다 해보리라,
다짐하며 그래서 2007년 한 해는 에수 이름의 크신 능력과 권세와
충만함으로 내가 변화되어 보리라.

예수님!
“사람이 마음으로 자기 길을 계획할 지라도
그 걸음을 인도하시는 자는 여호와시라”(잠언16:9)
혼자 걷지 않음을 믿습니다. 항상 동행하심도 믿습니다.
예수님 이름을 유행시키는 자 되게 하시며 중인되게 하시기를 원합니다.
예수님! 도와주세요!

하제란

2007-01-20 19:14:26

올해는 예수님의 이름으로 제가 바뀌기를 원합니다!!

교회의 모든 성도님들이 예수님의 이름을 부르기에 능력이 그리스도의 향기가 우리에게 전해져 오듯 능력이 전해져 오는 것 같습니다. 새로운 해가 시작되고 예수님의 이름이 내 입을 떠나지 않으니 독수리가 날개치며 올라가듯 힘이 솟습니다. 예수님께서 다시 복학의 길을 열어 주시니 한번의 쓰러짐이 있었기에 많은 두려움이 내 안에 있습니다. 하지만 나에게 있어서의 그 쓰러짐의 경험은 두려움을 이길 수 있는 지혜의 담대한 믿음의 소망또한 강하게 주십니다. 하나님은 항상 기억하고 있기를 바랍니다. 이스라엘민족을 애굽땅에서 가나안으로 인도하며 가는 동안에 내려주신 은혜들을 현재의 나의 삶의 과정에 똑같이 역사하고 계시는 하나님을 내가 항상 기억함으로 온맘을 다하고 성품을 다하고 힘을 다하여 여호와를 기억하며 구하기를 바라십니다. 주님의 성전에서 말씀이 선포되어짐과 함께하여 내안에 우리 교회 모든 성도님들 안에 예수님을 통하여야 만이 만날 수 있는 전능하신 하나님을 전심으로 구함으로 복을 받는 한해가 될 것을 믿습니다. 오직 한 길 예수 그리스도의 이름으로..

박성옥 선교사

2007-01-20 21:31:17

바울은 말을 할 때도 ‘예수’, 일을 할 때도 ‘예수’, 길을 갈 때도 ‘예수’, 밥을 먹을 때도 ‘예수’, 귀신을 만났을 때도 ‘예수’…
모든 삶이 오직 ‘예수의 이름’으로 충만한 사람이었다. 그래서 그는 늘 풍성한 사람이었고, 승리의 사람이었고, 기쁨의 사람이었다. 믿음의 사람은 예수의 이름의 부자가 되어야 한다.

어제 아침을 먹는데 현경이에게서 전화가 왔다. 개미소리만큼 작은 목소리로 "엄마, 어지러워서 그런데 오늘 올 수 없어요?"라고 하는데 옆에서는 동연이가 우는 소리가 들렸다. “그래. 빨리 갈게.” 하고는 허둥지둥 집을 나와 목사님께 전화를 걸고 전철을 탔다. 아무 생각 없이 마음만 바쁘고 걱정이 되어서 목사님께 기도해 달라는 부탁도 못하고 전철을 갈아타려고 하는데 문득 예수님을 불러야 한다는 생각이 들었다. 그래서 현경이에게 전화를 했다. “현경아! 예수님의 이름을 불러라.” 했다. 집으로 가서 벨을 눌렀는데 바로 나오지 않자 가슴이 콩닥콩닥 뛰었다. 조금 후 나온 현경이는 엄마가 예수의 이름을 부르라 해서 불렀더니 동연이의 울음도 그치고 어지러움도 많이 나아졌다고 했다. 집에 들어가자마자 현경이를 붙들고 “예수의 이름으로 명하노니 어지럽게 하고 혼란케하는 것들아 떠나가라!”고 소리높여 기도를 해 주었다. 그랬더니 잠을 좀 푹 자고 일어나서는 괜찮은지 돌아다닐 수 있게 되었다. 토할 것 같고 조금 어지럽긴 하지만 괜찮다고 했다. 예수의 이름을 부르는 것을 잊어버리고 무방비상태에 있으면 마귀게 당하는 것을 체험했다. 무엇을 하든지 말에나 일에나 주 예수의 이름으로 하라는 말씀을 올해는 실행해야 되겠다.
또 집으로 돌아오면서 회개한 것도 있다. 오래 전에 어떤 성도가 마귀가 보이고 소리가 들린다면서 자기 사업장으로 와 달라고 한 적이 있었다. 일본 지리도 잘 모르는 터라 어떻게 가야 하는지도 모르고 두렵기도 한 마음에 가지 못했다. 내 자식이라면 어떻게 해서라도 가지 않았을까 생각하니 하나님과 그 성도에게 죄송한 마음이 들고 회개가 되었다. 모든 성도들을 내 자식처럼 돌봐야 하는데 그러지 못했던 것을 회개하며 다시는 그런 죄를 범하지 않기로 결단했다. 올해는 말에나 일에나 무엇이든지 예수의 이름으로 행하고 어디든지 주님께서 가라하시면 가고 멈추라 하시면 멈출 수 있는 한 해가 되길 기도한다.

최현경

2007-01-20 22:10:08

믿음의 사람은 예수의 이름의 부자가 되어야 한다.
‘바울이 전파하는 예수’를 ‘내가 믿는 예수’ ‘내 속에 계시는 예수’ ‘나의 예수님’으로 바꾸어야 한다. 그리고 나서 그 예수님의 이름을 불러보라. 바울의 예수님이 ‘나의 예수님’이 되신 것을 체험하게 될 것이다.

나의 삶이 예수님의 이름으로 풍성하여지고 내가 예수님의 이름만으로 부자가 되길 기도한다.
지난 한 주 동안 예수님의 이름의 능력을 체험할 수 있게 하심에 감사드린다.
지난 월요일 동연이 여권신청 때문에 영사관에 다녀왔다. 아기 둘을 데리고 먼 길을 다녀오는 것이 많이 걱정스러워서 예수님의 이름으로 기도했다. 오가는 전철 속에서 대연이가 많이 지루해 하지 않기를, 동연이가 울지 않고 잠을 잘 잘 수 있기를… 무사히 영사관에 도착해서 준비된 서류를 안내원에게 보여줬더니 아기 사진이 고개가 비뚤게 찍힌 거라 안 될것 같다고 했다. 지난주에도 사진 배경이 흰색이나 아이보리가 아니면 안된다며 퇴짜를 맞아 사진을 수정해서 다시 간 터라 이번에도 안되면 어떡하나 걱정이 앞섰다. 서류를 내려면 한 시간이 넘도록 기다려야 했다. 기다리는 동안 예수의 이름을 부르기로 하고 여권신청 서류가 잘 통과되길 계속 예수님의 이름을 부르며 기도했다. 내 차례가 되어 서류를 냈는데, 담당자가 사진에 대해서는 한 마디도 없이 바로 접수가 되었다. 돌아오는 길에도 동연이가 계속 자 주었고 대연이도 얌전히 있어 주어서 감사했다. 오는 길에 남편에게 메일이 왔다. 어제부터 계속 기도했다고… 예수님의 이름으로 내가 걱정했던 모든 일들이 잘 풀렸음을 느낄 수 있었다. 그날 밤 잠을 자는데 낮에 아기를 띠로 오래 업고 있었던 탓인지 어깨가 뭉쳐 눈이 아파오고 편두통까지 생겼다. 계속 예수의 이름을 부르다 잠이들었고 새벽에 일어나서 너무 아파 약을 먹고 다시 예수의 이름을 부르며 잠들었다. 아침에 일어났더니 편두통이 사라졌다. 이제는 몸이 아프면 예수님을 먼저 찾게 되었다. 어제도 많이 어지러웠는데 예수님의 이름으로 어지러운것도 많이 없어졌다. 밤에 동연이를 안고 재우려 해도 계속 울길래 “예수의 이름으로 뚝!” 했더니 울던 아기가 까르르 웃었다. 계속해서 예수의 이름을 불렀더니 아가가 계속해서 웃다가 잠들었다. 할렐루야! 한 주동안 예수의 이름의 능력을 몸소 체험할 수 있어서 너무 감사했다. 앞으로도 예수님의 이름으로 많은 간증과 고백이 일어날 줄 믿습니다…

김민정

2007-01-21 05:24:01

‘예수님의 이름’ 자체가 능력이 있는 것이 아니라, 예수님을 믿는 믿음이 능력이다. 그 믿음의 표현으로 예수님을 부를 뿐이다. 믿음 없이 부르는 예수의 이름은 공허한 메아리에 불과하다. 믿음이란 곧 예수님을 내 속에 영접한 상태를 말한다.(요1:12)

훈련에서 배우고 말씀에서 배운 내용들을 삶속에 나타내려고 늘 적용을 생각합니다. 영적으로 건강하고 좋은 버릇이 길러져서 좋지만 한편으로는 내 속에 욕심과 끊임없이 싸워야하는 고통이 따르기도 합니다.
그 가운데 가장 능력이 예수이름. 이것만 붙들고 살고있습니다.
처음엔 사실... 예수님의 이름이 능력이 잘 나타나고 있는지 잘 모를때도 있었습니다. 하지만 부르면 부를수록 내 안에 예수님의 그 이름의 능력이 나타나는 것 같습니다.
믿음밖에 없습니다. 정말 믿음이 모든 것을 가능하게 합니다.
온전한 믿음을 가지려고 더 노력해야겠습니다.
예수님에 대한 온전한 믿음. 오늘 또 도전해야 할 과제입니다.

박정선

2007-01-21 05:42:38

"예수님을 믿고 있으나 예수이름의 능력과 권세와 그 행복을 모르고 신앙생활을 하고 있는 성도들에게, 시간마다 순간마다 예수님의 이름을 부르는 자들에게 약속하신 축복을 누리게 하는 것입니다."
예수님을 믿지만 하루하루 고통과 어려움 가운데 있는 사람들이 너무나 많습니다. 나 자신도 어려울 때 오히려 예수님의 이름을 부르는 것을 잊어버립니다.
사탄은 예수의 이름을 망각하게 만들지만 나는 더욱 예수의 이름을 외쳐야 겠다는 생각이 듭니다. 지난 일주일간 목요일까지는 열심히 예수의 이름을 부르다가 점점 예수의 이름을 부르는 것이 잦아드는 저를 발견했습니다.
예수의 이름을 부르는 나로 인해 나와 가족들 주변 사람들이 축복을 누리길 원합니다.
"예수님의 이름을 바꾸려고 하지 말고, 예수님의 이름을 부르는 자신을 바꿀 때, 예수 이름의 역사는 일어난다."
이혼의 어려움 가운데 있는 친구가 있습니다. 그 친구는 이 일로 하나님을 붙들게 되었고 아버지와의 사이도 회복을 하게 되었습니다. 이 친구에게 법원에서 이혼하라는 판결이 나왔습니다. 울면서 전화해서 하는 말이 " 정선아 나 정말 변하고 싶다."는 말이었습니다. 마음이 너무 아팠지만 감사했습니다.
그 친구에게 예수님의 이름의 권세가 나타날 줄을 믿습니다.
교회를 위해 학교와 남편과 가족 친구와 모든 일 가운데 예수의 이름으로 기도하고 축복하는 것이 몸에 습관처럼 배이길 기도합니다.
예수님의 이름을 높입니다.

최정민

2007-01-21 07:36:33

{오직 예수님의 이름만 불렀을 뿐인데 내 눈에서 뜨거운 눈물이 흘러내렸습니다.
회개의 눈물도 아니고, 주님의 도우심을 절실히 구하는 눈물도 아니고,
그냥 예수님의 이름만을 불렀을 뿐인데.

‘올해는 예수님의 이름으로 제가 바뀌기를 원합니다. 예수님! 제발 도와 주세요.}

위의 말씀을 들었을 때 아.. 나 뿐만이 아니라 정말 인간은 예수님 없이 살 수 없고
예수님 만으로 기쁨의 눈물 , 감사의 눈물을 흘릴 수 있구나 라고 느꼈습니다.

올해 들어 유난히 예수님의 이름을 많이 부른 것 같습니다.
설교말씀을 적용해야지 라는 마음도 있었지만
예수님의 이름을 불렀을 때 떨려오는 마음과
정확히 무엇이라고는 말할 수 없지만 마음에 오는 감동..
그리고 흐르는 눈물.. 그러면서 고백되는 감사..
이렇게 하루하루를 감사함으로 살게 하고 기대하게 하는 방법 이라는 것을
깨달았기 때문입니다.
그래서 저번 제자훈련 숙제 할 때처럼 주로 아침에
예수님의 이름을 선포하였습니다. 그렇게 하루를 예수님의 이름으로 시작하니
얼마나 마음에 담대함이 오던지요. 요즘엔 시험기간이라서 마음도 몸도 힘든
시기인데 예수님 이름으로 승리하겠네! 라는 이 선포로 견뎌 내는 것 같습니다.
이런 생활의 습관으로 올 한해 제가 변화되기를 원하고 또한 제 변화로 인해서 친구가
가족이 바뀌어 지길 소망합니다. 이 일이 참 어려운 것임을 알지만, 예수의 이름으로 승리함을 믿고!
하나하나 하루하루 변해 가보려고 합니다!!!

노재훈

2007-01-21 07:41:55

예수의 이름.
모든이름위에 뛰어난 이름.
예수의 이름으로만 구원을 얻을수 있고(다른이로서는 구원이 없나니...)
예수의 이름으로 기도하고(내이름으로 무엇이든지 구하라.)
예수의 이름으로 죄사함을 얻는다.(예수의 이름으로 세례를 받고 죄사함을 얻는다.)
현대를 살아가는 우리들의 삶 속에 모든 일이 자신의 재능과 힘으로 이루어진다고 생각하는 사람이 많다. 나는 어떤생각으로 살고있는지를 한번더 생각하는 시간이 되었다.
나의 삶이 예수님의 도움이 없이 온전히 이루어지는 것은 하나도 없다는 사실을 잘알고 있다. 그러나 가끔 착각하고 살고있는 나를 발견할때가 있다.
기도하지못하고 내힘으로 무얼 이룰려고 하는 나의 모습을 볼때.... 예수님께 매달리는것이 나를 도우시는 예수의 힘으로 하는것이 얼마나 중요한가!
사람의 일에 예수의 이름으로 할때 일이 온전히 이루어지는 것을 깨닳았다.
인간 혼자는 어떠한 일이든 완벽히 해 낼 수 없습니다. 우리 인간이 일을 하면 인간답게 밖에는 할 수 없지만 예수님께서 일을 하시면 예수님답게 일이 해결된다.
잃어버렸던 예수의 이름을 올해는 넘치도록 사용하겠습니다.

김철중

2007-01-21 08:45:42

예수님과 상관없는 예수의 이름은 아무런 능력도, 의미도 없다. ‘예수님의 이름’ 자체가 능력이 있는 것이 아니라, 예수님을 믿는 믿음이 능력이다. 그 믿음의 표현으로 예수님을 부를 뿐이다. 믿음 없이 부르는 예수의 이름은 공허한 메아리에 불과하다.
처음들었던 신년 예수의 이름 설교를 듣고는 예수의 이름을 많이 부르려고 노력했는데 믿음과 연결시키지 못했었다. 사실 깊은 생각 없이 그냥 불렀던것 같다. 그런데 진짜 예수님의 이름의 능력은 그 믿는 믿음에서 온다는 사실에 항상 근본을 생각하지 못하는 나 자신을 돌아보게 되었다. 늘 현상에만 집착해 오던 버릇이 변함없이 나타난 것이다. 육적인 눈이 아닌 영적인 눈으로 보는 훈련을 해야겠다.

백인화

2007-01-21 10:20:00

“예수님과 상관없는 예수의 이름은 아무런 능력도, 의미도 없다. ‘예수님의 이름’ 자체가 능력이 있는 것이 아니라, 예수님을 믿는 믿음이 능력이다. 그 믿음의 표현으로 예수님을 부를 뿐이다. 믿음 없이 부르는 예수의 이름은 공허한 메아리에 불과하다. 믿음이란 곧 예수님을 내 속에 영접한 상태를 말한다.(요1:12) 내 속에 예수님이 계실 때, 예수님의 이름은 구원의 능력을 나타낸다.”

아이들에게 지쳐서 혼자서 쉬고 싶을 때는 아이들을 다른 곳으로 내보내거나 제가 일부러 피해서 혼자 다른 방에 있곤 했습니다. 그런데 이런 제 모습이 예수님께조차도 똑같이 적용하고 있었던 모습을 발견합니다.
제 속에 영원토록 영접한 예수님이신데, 우리에게 성령님으로 와계신데 때로 예수님이 제게 너무 부당한 요구를 하신다고 생각되거나 제가 이해할 수 없는 반응들이 상대편에서 나올 때는 제 안에 계신 예수님도 다른 사람 안에 계신 예수님도 아무런 소용이 없고 제가 생각하기에 합당한, 제게 이상적인 예수님을 그려보는 오직 자아중심적인 생각에 빠져들곤 했습니다.
예수님과 아무런 상관없는 예수님의 이름을 나만이 찾아낸 예수님인 것처럼 착각하느라 저와 다른 생각과 반응을 수용하지 못한 체 우물 안 개구리처럼 점 점 시야가 좁아지는 것을 느낍니다.
두주 전에 혼자서 아주 사소한 일로 남편에게 잠시 실망한 일이 있었는데 마귀가 계속 집요하게 그 일을 제 마음 속에 생각나도록 하면서 자꾸만 마음속에서 비판하는 마음이 일어났습니다. 그런데 마침 금요예배말씀이 교만하지 말고 비판하지 말라는 말씀이라 찔림을 받고 완전히는 아니지만 조금이나마 회개할 기회를 얻었습니다.
그리고 월요일 오전에 회개하는 마음으로 서둘러 설교리플을 달려고 왔더니 남편의 간증과 함께 사도 바울이 부른 ‘예수의 이름’과 제사장 스게와의 7아들들이 부른 ‘예수의 이름’이 남편과 저를 두고 하시는 말씀인 것 같아 완전히 한방에 KO패당하고 말았습니다. 순간 예수님과 저만 알고 있는 사실에 혼자 얼굴을 붉히기도 하고 자존심 상해하기도 했지만 왠지 마음은 갈수록 평안해짐을 느꼈습니다.
예수님의 이름을 수없이 부르는 것만으로는 부족했던 남편은 주일 설교말씀에 아예 ‘주어는 하나님이다’라고 선포하며 ‘나는...’이 아닌 ‘하나님은...’이라고 강조했었습니다. 그리고 오늘 주일예배 준비를 마치고 돌아오면서는 한달에 한번 주중에 가게를 휴업하시던 성도님이 이제부터 첫째, 셋째 주일을 쉬기로 하셨다면서 할렐루야를 외치며 좋아합니다. 그 분의 생명과도 같았던 일인데 그만큼을 내려놓으실 수 있다는 사실이 기도의 응답이라 기쁨을 감출 수 없으면서도 한편으론 조금 아쉽기도 합니다. 제가 조금 더 일찍 회개하고 남편이 부르는 예수님의 이름을 기뻐하고 감사하며 함께 불렀더라면 두 배로 응답하셔서 주일을 모두 쉬기로 작정하실 수도 있지 않았나 하는 생각에......
무슨 일이 있어도 예수님과 상관있는 예수님의 이름만을 부르도록 오직 하나님만이 제 삶의 주어가 되시기를 남편과 일심동체가 되어 외쳐봅니다!

최승우

2007-01-22 03:28:38

나는 지난주에 정말 많은 일이 있었다.테스트가 이틀 연속에 프리젠테이션과 졸업 시험 공부.정말 너무나 많은 과제에 마음이 무거워져 있는터에 갑자기 몸살이 겹쳤다.정말 중요한 시기라 잘못되면 졸업도 안될텐데하면서..그래서 마음이 불편한 채로 침대 신세에 학교도 가지 못하고 누워만 있어야 했다 .너무 기력이 떨어지고 몸이 아프니 공부 엄두는 물론 아무것도 손을 대지 못했고.거기다가 암송과제까지 너무 멋있게 걸쳐 있느니 나는 정말 앞이 깜깜했다.
예수님의 이름을 부르면서도 내안에 있는 걱정이 너무 커져만 있었다.그러다가 무엇이 두럽고 떨리나.예수님이 함께 하시는데.라는 생각을 고쳐 먹은 순간 맘에 평안이 찾아왔다.그리고 그 몸도 가벼워졌다.물론 시험도 무사히 잘 볼수 있었고,암송도 확실히 다잡을수 있었다.이제는 어떠한 어려운 일이 있어도 걱정이 아닌 찬송과 기쁨으로 그것을 감사로 받아들이고 예수님만 붙잡고 나가리라.

올해는 내 자신이 바뀌고 우리 엄마한테 짜증부리지 않고,긍정적인 맘 가짐으로 나에게는 공의로 남에게는 사랑으로 에수님과 동행하는 멋진 한해가 될줄 믿는다.아멘..

서조은

2007-01-23 05:11:53

초등학교시절 읽었던 그리스 신화중에서
키프로스왕의 이야기가 아직도 기억에 남는다.
아름답고 결점없는 여인의 조각상을 만들어 애틋한 사랑을 주었고,
그 사랑의 감동한 신이 그 조각상을 환생시켜 결혼을 했다는 이야기...

이 신화를 바탕으로 '피그말리온 효과'라고 해서
'긍정적인 것을 마음에 품고 바라면 그대로 이루어 진다'라는 뜻으로
지금도 사용되어지고 있다.

예수님의 이름....
이것도 나에게 이렇게 작용하는 것 같다.
세상사람들이 아무 의미 없이 예수님의 이름을 불러봤자
변화는 없을 것이다.

하지만, 나에겐 예수님의 이름을 불렀을때 들어주시리라는
확실한 믿음이 있다.
그 긍정적인 믿음가지고 예수님의 이름을 부르면
들어주시리라..
해결해 주시리라..
치유해 주시리라..

예수님의 이름을 마음에 품고 부르짖을 수 있는 축복 주심에
오늘도 감사합니다.

소대섭 전도사

2007-01-24 05:23:34

:: 매일 ‘예수님의 이름’을 100번 이상 영혼으로부터 부를 것을 권면하였다.
그리고 벌써 2주가 지났다. 과연 예수님의 이름은,
말씀대로 우리에게 구원의 감격을 주고, 풍성한 은혜와 응답을 주었을까?


올해에 들어서면서 예수의 이름을 자꾸 부르는 일을 통해 하나님의 은혜와 사랑, 그리고 역사하심을 체험하게 하시는 것을 보면서 2007년에 하나님께서 우리 교회를 통해서 뭔가 큰 일을 준비하고 그것을 실행하시려나 보다하는 생각을 했습니다. 그런데 정작 제 자신은 그렇게 열심히 예수님의 이름을 부르지 못했던 것이 사실입니다. 남들처럼 학교나 직장을 다녀서 바쁜 것도 아니고, 제자 훈련 방학기간이라 해야 할 과제가 많은 것도 아닌데... 왠지 분주하게 하루 하루를 지내고 있다는 마음이 들었습니다.
매주일 설교 때마다 예수의 이름을 선포하자고... 선포해야 한다는 말씀이 계속되는 이유는 어쩌면 저와 같이 마음이 딱딱한 사람을 위한 하나님의 배려가 아닌가 싶습니다. 그저 감사할 뿐입니다. 그런데 문제는 이렇게 마음이 딱딱한 사람이 예수님께서 주시는 간증의 내용을 말할 수 없다는 것이 너무 너무 가슴시리다는 것입니다. 특별히 간절한 어떤 도전이 내 앞에 있어서.. 매우 중요하게 해결해야 할 문제가 내 앞에 떨어졌거나... 아니면 어떤 뚜렷한 목표가 눈 앞에 있어서 그것을 위해 간절하게 기도해야 할 것이 없기 때문은 아니었을까하는 생각이 들었습니다.
즉... 고난이나 어려움, 괴로움 등에 대해서 맞닥드리고자하는 마음이 없었다는 말입니다. 어려움과 고난에 맞설 용기가 없었기에 예수님의 이름을 부르는데 인색한 것은 아니었을까? 하는 생각을 했습니다. 실은 기도하고 부르짖어 해결해야 할 일들이 많은 것은 사실이지만... 그것을 진심으로 간절하게 부르짖어 해결해야 할 문제로 보고 있지 않은 것입니다. 겉으로는 해야지.. 해야지.. 하지만, 속으로는 그저 되는대로 흘러가는대로 내버려두고 있는 제 모습을 발견했습니다.
참으로 남에게 보여주기 위해서가 아니라.. 내 자신이 변화하기 위해서 나에게 일어날 기적과 응답, 은혜를 기대하고 기다리며 소망합니다.


:: 같은 이름을 불렀는데, 왜 전혀 다른 결과가 나왔을까?

앞서도 말했던 것처럼.. 예수님의 이름을 부르지만 영혼으로 부르지않고 입으로만 불렀던 것을 회개합니다. 어렸을때 학교에서 10번쓰기 혹은 20번쓰기 숙제같은 것을 할 때, 열번 스무번 쓰는 것이 귀찮아서 볼펜이나 연필을 연달아 묶어서 쓰는 것으로 숙제를 했던 기억이 있습니다. 그렇게 해서 숙제를 한다고 해서 나의 학업에 절대 도움이 되지 않는 것을 그 때는 몰랐죠...
예수님의 이름도 마찬가지인 것 같습니다. 그리고 지금도 그저 하루 100번을 채우기 위해서 그냥 아무 생각없이, 간절함을 담지 않고 습관적으로 예수님의 이름을 숫자로 채우는 모습을 회개합니다. 어쩌면 이러한 습관적이고 헛된 이름부르기 때문에 제 삶에 보여지는 은혜와 응답이 없었던 것이라고 생각합니다. 물론 진심으로 부르는 것으로도 하나님의 응답이 늦어질 수 있다는 것을 알지만, 지금 저의 모습을 비춰볼 때는 분명... 영혼으로 부르지않고 겉치레로 부르는 예수님의 이름이 숫자로 기록되고 있는 것을 고백합니다. 내가 해결해야 할 문제를 제대로 보는 눈을 어서 회복하여.. 진심으로 영혼으로 예수님의 이름을 불러서 그 문제를 해결할 수 있는 믿음이 충만한 신앙인이 되고 싶습니다. 그럴때에만 우리 가족의 구원문제도 속히 해결할 수 있음을 믿습니다.


:: 사람은 남이 바꾸는 것이 아니다. 하나님의 은혜로 스스로 바뀔 뿐이다.

지난 주에 집에 다녀오면서 어머니가 자꾸 제게 말을 걸어 오시는 것을 느꼈습니다. 전에는 그런적이 없으셨는데... 아들이 외국에 나가 있는 것을 실감하시고 오랜만에 만나셔서 그런지... 자꾸 사소한 것을 갖고서라도 말을 걸고 싶어 하십니다.
사실.. 어머니가 그런 모습을 보이시는 것이 제게는 조금 어색합니다. 내 기억속의 어머니는 쌀쌀한 모습을 가장 많이 보여주고 계시기 때문입니다. 어머니 스스로도 자신이 많이 바뀌었다는 말씀을 자주 하십니다. 확실이 그전의 모습과 비교해 보면 많이 살가워지셨습니다. 그리고 교회에 대해서도 마음이 확실히 열리셨습니다. 이제 열심히 다니시기만 하면 되는데아직 그런 열심을 내기는 어려운 모양입니다. 아직도 우리 어머니에게는 하나님의 은혜가 더욱 많이 필요한 것 같습니다. 그러고 보니.. 이 세상에서 가장 예수님의 이름이 간절하게 필요한 사람은 우리 어머니였습니다.
어제 통화를 하면서 어머니께 "나는 할 수 있어!!"를 아침마다 세번씩 외쳐보시라고... 권해 드렸습니다. 그리고, 덧붙여 "예수님의 이름으로 화이팅!!"이라고 하루 세번씩 입으로 고백해 보시라고 말씀을 드렸습니다. 평소같으면 사양하시고... 그런거 필요없다고 하셨을 어머니께서...제가 하는대로 따라하셨습니다. '나는 할 수 있어.. 예수님의 이름으로 화이팅...'
설교 댓글을 빨리 달아야 하는데... 지난 주 설교 댓글을 오늘에야 달게 됩니다.
늦었지만... 예수님의 이름을 불러서 제게 기적은 일어나지 않았지만...확실히 사람을 바꾸는 힘은 하나님의 은혜가 아니면 불가능하다는 것을 깨달을수 있었던 지난 한 주였습니다.
아직 교회에 열심히 다니지 않는 어머니께서 예수님의 이름을 선포하기로 결심하시고... 작은 아들이 교회에 대해서 상처받아서 교회다니는 것을 싫어하지 않을까 염려하고 계십니다. 사람은 정말 다른 사람이 억지로 바꿀 수 있는 것이 아님을 확실히 깨닫습니다.
그래서 저도 확신합니다. 저도 더욱 좋은 사람으로 바뀔 것임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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Status 番号 タイトル 投稿者 日付 閲覧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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부활의 증인

4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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過去

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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십자가에 못박힌 그리스도

5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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과거

4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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말 복

5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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말의 힘

5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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考え

2
이용규목사 2007-03-09 42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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생각

5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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自分の価値

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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자기 가치

52
이용규목사 2007-02-26 1156
  148

ダビデの自画像

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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다윗의 자아상

5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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人生の宝探し

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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인생의 보물찾기

5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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예수님의 증인

5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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내가 너를 택한 이유

5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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인생의 목적

48
이용규목사 2007-01-22 1661
  141

두 이름

46
이용규목사 2007-01-15 1112
  140

천국의 통로

51
이용규목사 2007-01-08 1255
  139

예수 이름의 능력

53
이용규목사 2007-01-01 136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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