Skip to content

중앙영광교회

겸손과 순종

이용규목사, 2010-04-26 20:32:56

閲覧数
680
推奨数
0


‘겸손과 여호와를 경외함의 보상은 재물과 영광과 생명이니라’(잠22:4)
하나님은 사랑이십니다.
하지만 하나님도 좋아하는 사람이 있고 싫어하는 사람이 있습니다.
하나님은 과연 어떤 사람을 좋아하실까요? 물론 하나님을 닮은 사람입니다. 하나님은 마귀를 닮은 사람은 싫어합니다. 하나님의 모습은 예수님을 통해서 우리에게 잘 보여집니다. ‘예수께서 이르시되 빌립아 내가 이렇게 오래 너희와 함께 있으되 네가 나를 알지 못하느냐 나를 본 자는 아버지를 보았거늘 어찌하여 아버지를 보이라 하느냐’(요14:9)
하나님이 특별히 좋아하는 사람이 있습니다. 그 사람은 겸손한 사람입니다. 하나님은 겸손한 사람을 세상에서 최고로 높이십니다. 예수님께서 이 모든 사실을 증명해 주셨습니다. 그러면 예수님의 겸손의 모습은 무엇일까요? 예수님은 어디에서 무슨 사건을 통해서 겸손을 보여 주셨을까요?

1. 겸손의 축복
하나님은 겸손을 모든 축복의 통로로 주셨습니다.
‘하나님은 교만한 자를 대적하시되 겸손한 자들에게는 은혜를 주시느니라’(벧전5:5)
‘겸손과 여호와를 경외함의 보상은 재물과 영광과 생명이니라’(잠22:4)
‘하나님을 경외하는 것은 지혜의 훈계라 겸손은 존귀의 길잡이니라’(잠15:33)
‘사람의 마음의 교만은 멸망의 선봉이요 겸손은 존귀의 길잡이니라’(잠18:12)
존귀와 재물, 영광, 생명의 열매는 겸손한 자를 통해서 꽃이 피고 열매를 맺습니다.
하나님께서 예수님께 모든 이름 위에 뛰어난 이름을 주시고, 모든 입으로 예수를 주라 시인하게 하신 이유도 결국은 십자가의 겸손 때문이었습니다.(빌2:2-11)
겸손한 사람은 은혜를 입습니다.
겸손한 사람은 높임을 받습니다.
겸손한 사람은 부족함이 없습니다.(시22:26)
겸손한 사람은 만인의 사랑을 받습니다.(잠24:9)
반대로 교만한 사람은 하나님의 원수가 됩니다.
교만한 사람은 낮춤을 받습니다.
교만한 사람은 늘 부족합니다.
교만한 사람은 만인의 미움을 받습니다.
하나님은 믿음의 사람이 겸손한 사람이 되길 원합니다.
지금 당신의 모습은 어떻습니까?
이스라엘 백성들을 멸망시키기 전에, 하나님께서 선지자들을 통해서 계속 경고하신 말씀이 무엇인지 아십니까? 바로 교만입니다.
‘여호와께서 이와 같이 말씀하시니라 내가 유다의 교만과 예루살렘의 큰 교만을 이같이 썩게 하리라’(렘13:9)
‘대저 만군의 여호와의 날이 모든 교만한 자와 거만한 자와 자고한 자에게 임하리니’(사2:12)
교만하면 하나님의 사람도 반드시 망합니다. 교만한 사람들의 불행은 하나님의 강한 경고의 음성을 들을 수 없다는 것입니다. 그들은 그 교만으로 인하여 스스로 미련해지기 때문입니다. ‘미련한 자의 귀에 말하지 말지니 이는 그가 네 지혜로운 말을 업신여길 것임이니라’(잠23:9)
사람은 언제 교만해지기 쉽습니까?
배부를 때입니다. 잘 났을 때입니다. 부족함이 없을 때입니다.
‘네 큰 지혜와 네 무역으로 재물을 더하고 그 재물로 말미암아 네 마음이 교만하였도다.’(겔28:5)
‘네가 먹어서 배부르고 아름다운 집을 짓고 거주하게 되며 또 네 소와 양이 번성하게 되며 네 은금이 증식되며 네 소유가 다 풍부하게 될 때에 네 마음이 교만하여 네 하나님 여호와를 잊어버릴까 염려하노라’(신8:12-14)
‘네가 아름다우므로 마음이 교만하였으며’(겔28:17)
재물이 많을 때에 조심해야 합니다. 교만의 영이 우리를 꼭 방문하기 때문입니다.
많이 배웠을 때에 조심해야 합니다. 교만의 영이 우리를 꼭 유혹하기 때문입니다.
남들보다 외모가 뛰어날 때에 조심해야 합니다. 교만의 영이 우리를 꼭 찾아오기 때문입니다.
그리스도인은 겸손해야 합니다. 높은 자리에 있을수록 겸손해야 합니다. 서울의 큰 교회에는 장로님들 중에 국회의원, 장군, 장관들이 많다고 합니다. 사회에서 높은 자리에 있는 그들이 교회에서 설거지를 하고, 음식 봉사를 하며 가장 낮은 자리에서 섬길 때에 십자가의 능력이 강하게 나타나고 많은 사람들은 감동을 받게 된다고 합니다.
자신이 선 줄로 생각합니까? 잘 났다고 생각합니까? 잘 안다고 생각합니까? 부자라고 생각하십니까? 그 때야말로 정말 심각한 때입니다. 위기의 때입니다. 교만에 넘어가기 가장 쉬운 때이기 때문입니다.
‘그런즉 선 줄로 생각하는 자는 넘어질까 조심하라’(고전10:12)  

2. 겸손이란?
그러면 겸손이란 무엇일까요? 어떤 사람이 겸손한 사람일까요?
얌전한 사람이 겸손한 사람일까요? 말이 없는 사람이 겸손한 사람일까요? 부드러운 사람이 겸손한 사람일까요? 어른이 말할 때에 고개 숙이고 예의 바르게 듣는 사람이 겸손한 사람일까요? 성경에서 말하는 겸손, 예수님이 보여 주신 겸손은 그런 것이 아닙니다.
예수님의 겸손은 바로 순종이었습니다.
겸손한 사람은 순종하는 사람입니다. ‘너희 안에 이 마음을 품으라 곧 그리스도 예수의 마음이니’(빌2:5) 여기서 예수님의 마음은 겸손의 마음입니다. 예수님은 우리에게 십자가 사건을 통해서 겸손이 어떤 것인지를 보여 구체적으로 보여 주셨습니다. 그것은 다름 아닌 ‘순종의 모습’이었습니다. 정말 겸손한 사람은 순종을 잘 합니다. 겸손하다고 하면서 전혀 순종하지 않는다면 그것은 가짜입니다. 진짜 겸손은 반드시 순종이 따르게 되어 있습니다. 예수님은 하나님 앞에서 참으로 겸손하신 분입니다. 그래서 그는 자기를 낮추어(겸손) 죽기까지 복종하신 것입니다.(빌2:8)
예수님의 겸손은 죽음의 순종으로 나타났습니다.
자신이 주님 앞에 겸손하다고 생각합니까? 예수님의 겸손의 성품을 가지고 있다고 생각합니까? 그렇다면 십자가의 순종의 모습을 보이십시오. 주님이 죽으라면 도망가지 말고 죽으십시오. 그것이 예수님의 겸손의 본체입니다. 그래서 하나님은 예수님을 만왕의 왕으로 높이셨습니다.
진심으로 하나님을 경외할 때에 하나님께 겸손의 모습이 나타납니다.(잠22:4)
그런데 사람에 대해서는 ‘각각 자기보다 남을 낫게 여길 때에’ 진정한 겸손이 나타납니다. 상대가 나보다 못하다고 생각할 때에는 그 사람을 무시할 뿐만 아니라, 절대로 그 사람의 말에 따르지 않습니다. 정말 상대를 나보다 나은 사람으로 믿는다면 순종은 저절로 나오게 되어 있습니다. 그래서 겸손은 순종의 열매를 맺게 되는 것입니다.
그런데 교만한 사람은 절대로 순종하지 않습니다. 왜 사람들이 순종을 잘 안 할까요? 하나님이 틀렸기 때문이 아니라, 자신이 교만하기 때문입니다. 그 사람이 틀렸기 때문이 아니라 자신이 교만하기 때문입니다. 이스라엘 백성들의 불순종은 철저히 그들의 교만에서 비롯되었습니다. ‘그들이 교만하고 완악한 마음으로 말하기를 벽돌이 무너졌으나 우리는 다듬은 돌로 쌓고 뽕나무들이 찍혔으나 우리는 백향목으로 그것을 대신하리라 하는도다’(사9:9-10)
교만하면 절대로 순종할 수 없습니다. 순종은 겸손의 열매이기 때문입니다.

3. 광야 훈련은 무슨 훈련이었을까?
하나님께서 이스라엘 백성을 애굽에서 인도해 내신 후에 바로 가나안 땅으로 들여 보내지 않았습니다. 하나님은 그들을 40년 동안이나 광야 길을 걷게 했습니다. 왜 40년 동안이나 광야에서 고생을 시켰을까요?
‘네 하나님 여호와께서 이 사십 년 동안에 네게 광야 길을 걷게 하신 것을 기억하라 이는 너를 낮추시며 너를 시험하사 네 마음이 어떠한지 그 명령을 지키는지 지키지 않는지 알려 하심이라’(신8:2)
(Remember how the LORD your God led you all the way in the desert these forty years, to humble you and to test you in order to know what was in your heart, whether or not you would keep his commands.)
하나님께서 그토록 사랑하는 이스라엘 백성들을 광야에서 40년 동안이나 살게 하신 것은 그들에게 겸손훈련, 순종훈련을 시키기 위해서였습니다. 이것은 그 시대 많은 사람들에게 평생훈련이었습니다. 왜 이처럼 40년 동안이나 훈련을 시켜야만 했을까요? 이유는 간단합니다. 이처럼 겸손과 순종이 믿음의 사람에게는 중요하기 때문입니다. 당신은 지금까지 겸손훈련을 얼마나 받았다고 생각합니까? 겸손훈련에 얼마나 투자했습니까? 겸손 훈련에 인생을 투자하는 사람은 결코 후회하지 않습니다. 겸손 훈련의 좋은 장소는 광야입니다. 혹시 지금 당신이 서 있는 곳이 광야가 아닙니까? 겸손과 순종의 근육이 발달하는 좋은 기회가 될 것입니다. 바로 거기서 재물, 영광, 생명의 열매가 맺어진다는 사실을 잊지 마세요.

14 コメント

문인우

2010-04-26 21:47:45

교만하면 하나님의 사람도 반드시 망합니다.
교만한 사람들의 불행은 하나님의 강한 경고의 음성을 들을 수 없다는 것입니다.
그들은 그 교만으로 인하여 스스로 미련해지기 때문입니다.

지난 주 목요일. 사역 훈련이 끝나고 목사님과의 상담이 있었는데
새벽 예배를 나가지 못하고 목사님과 약속한 시간인 7시 반까지 교회에 갔다.
목사님께서는 새벽 예배에 나오지 않고 상담하러 온 나한테 굉장히 실망하셨고
다음 주 화요일날 다시 하자고 하시며
24일 토요일 새신자 환영회를 위해 기도하라고 말씀하셨다.
하지만 나는 그 말을 듣고도 금요일 새벽 예배에 나가지 못했다.
새신자 환영회를 위해 기도하는 마음 보다 피곤한 몸이 더 먼저였고,
기도를 하지 않아도 준비만 잘 하면 무사히 다녀올 수 있다는 생각때문이었다.
결국 이 일로 목사님께 크게 혼나고 눈물을 쏙 빼야만 했다.
모든 일은 기도로 준비하지 않으면 안된다는 사실을 몰랐던 것도 아닌데
왜 이런 실수를 했는지..
내가 잘 준비하면 잘 될것이라는 교만함이 나를 미련하게 만든것 같다.
하지만 이렇게 뒤늦게라도 나의 교만함을 깨트려주신 목사님께 감사드린다.
아마 전 주의 징계의 말씀과 이번 주 겸손에 대한 말씀을 듣지 않았더라면
목사님께 혼난 것이 억울하고 속상해 시험에 들었을 지도 모른다.

‘미련한 자의 귀에 말하지 말지니 이는 그가 네 지혜로운 말을 업신여길 것임이니라’(잠23:9)

이 말씀처럼 교만함으로 미련한 자가 되어 지혜로운 말을 업신여기는
그런 사람이 되지 않도록 늘 깨어 기도해야겠다.

황후연

2010-04-27 02:26:08

"왜 40년 동안이나 광야에서 고생을 시켰을까?"

처음 광야로 달아난 모세를 보면서 떠올린 것은 '전장의 피아니스트'였습니다.

파라오의 아들로서 그가 가진 막강한 권력을 잃은 후
광야로 도망간 모세, 그는 과연 무엇일 수 있을까?
예술이 소비되는 콘서트홀과 자신의 가치를 인정받는 시스템이 붕괴된 후
전장에 남겨진 피아니스트, 그는 과연 무엇일 수 있을까?

우리는 어떤 특정한 시대와 공간 속에서 자신의 가치를 창출하기 위해 많은 노력을 합니다.
수렵시대에는 날렵한 몸놀림과 거친 근육을 키웠을 것이고
산업시대에는 생산수단을 소유하기 위해 애썼을 것이고
지식정보시대에는 한발 빠른 정보와 한차원 높은 지식을 쌓고자 했겠지요.
그것이 각 시대의 부의 원천이자 자기실현의 수단이었으니까요.

그런데 어느 순간 자신이 쌓아올린 모든 것이 무의미해지는 공간에 내동댕이쳐진다면...

광야가 바로 그런 공간이었습니다.
한 인간이 자신의 가치를 만들어간 모든 탑이 허물어지는 공간.
스스로 구축한 자신의 세계 속에서 보장받던 익숙함이 사라지는 공간.
그래서 낯선 세계에 대한 두려움으로 불안해할 수 밖에 없는 공간.

거기서 과거 자신을 덮고 있던 허상이 벗겨지고
하나님 앞에 홀로 선 자신을 발견하게 됩니다.
그런 의미에서 광야는 '버림'의 땅입니다.
떨기나무에서 '네 신을 벗으라'고 말씀하신 것도 바로 '버림'을 의미하는 것입니다.

그리고 모세가 바로 그 '버림'에 성공했을 때
하나님은 모세를 통해서 이스라엘 백성들을 '구원'의 공간으로 부르셨습니다.
이스라엘 백성들이 그 '버림'에 성공했을 때
하나님은 이스라엘 백성들을 통해서 온 열방과 민족을 '구원'의 공간으로 부르셨습니다.

'버림'은 '부르심'으로 가는 길목입니다.
우리가 무언가를 버릴 때 하나님은 우리를 통해 누군가를 부르실 것입니다.

서미란

2010-04-27 08:40:49

그런데 사람에 대해서는 ‘각각 자기보다 남을 낫게 여길 때에’ 진정한 겸손이 나타납니다. 상대가 나보다 못하다고 생각할 때에는 그 사람을 무시할 뿐만 아니라, 절대로 그 사람의 말에 따르지 않습니다. 정말 상대를 나보다 나은 사람으로 믿는다면 순종은 저절로 나오게 되어 있습니다. 그래서 겸손은 순종의 열매를 맺게 되는 것입니다.

저에게는 두려움이 있습니다. 관계에서 오는 두려움입니다.
다시 일을 시작하면서 더욱더 그런 두려움에 하나님을 찾지 않을 수 없게됩니다.
제 안에는 교만한 마음이 있었습니다.
지금껏 느끼지 못했지만 누군가 새로운 사람을 만나면 나보다 나은지 못한지, 내가 배울게 많은지 아닌지, 일을 열심히 하는 사람인지 대충하는 사람인지, 성격이 좋은지 안좋은지, 예의가 있는지 없는지 순식간에 판단하고 있었음을 깨닫게 되었습니다.
제가 먼저 버려야 할 태도는 바로 판단하는 마음 입니다.
제 교만의 시작은 남을 판단하는 것에 있었습니다.

겸손한 자를 사랑하시는 주님! 주님께 사랑받는 딸이 되고 싶습니다.
늘 넘치는 자가 되고 싶습니다. 사람들에게 따뜻한 사람으로 기억되고 싶습니다.
저와의 대화에서 사람들이 깊은 위로와 힘을 얻었으면 좋겠습니다.

매주 목사님의 말씀을 받으며 제 영적 상태를 확인하고 제 마음속 깊은 곳의 보이지 않던 곳들을
조금씩 보게 됩니다. 참 감사합니다.

한주간 이 말씀을 실천하기 위해 노력하겠습니다. 우선 서울에 있는 간사님 두분에 대한 제 마음을 바꾸려 노력하겠습니다. 몇 차례의 전화통화에서 무시 하는 듯한 말투와 따지는 듯한 말투로 기분상하게 했던 적이 있어 인상이 좋지 않았는데 이번주 만나게 되면 장점과 배울점을 찾아 인간적으로 다가가 보려 노력해야 겠습니다.

이상민

2010-04-27 23:35:03

겸손한 사람은 순종하는 사람입니다.
참 소중하고도 행하기 어려운 말씀이다. 순종한다는 것은 나를 위하는 것은 하나도 없이 오직 상대를 위하는 것이기 때문이다. 인간관계에 있어 순종이란 정말 중요한 듯 하다. 서로가 서로를 존중하고 내키지 않지만 상대를 나보다 먼저 배려하고 따라 가는 행동은 참으로 많은 노력이 필요한듯하다. 기도할때 마다 주님의 말씀에 순종하며 주님이 가신길을 따라 가겠노라라고 다짐하지만 참 어려울때가 많다. 하지만 주님의 겸손의 모습, 십자가를 보면서 나를 낮추지 않고서는 겸손이 나올수 없음을 잘 알고 노력해야 한다. 내안에 계신 성령님의 도움을 받아서 순종의 길을 가려한다. 직장에서나 가정에서나 교회에서나 섬기고 순종하는 모습으로 진정한 크리스챤으로 자라는 자신이 되길 소망한다.

박유진

2010-04-28 00:30:37

"겸손한 사람은 순종하는 사람입니다. ‘너희 안에 이 마음을 품으라 곧 그리스도 예수의 마음이니’(빌2:5) "

겸손=순종.
얼마전에 '주님은 나의 최고봉'에서 이러한 귀절을 읽었다.
'하나님께 순종하려고 하면 우리에게도 희생이 요구되지만, 동시에 다른 사람도 우리 때문에 희생을 치르게 됩니다.'
이 책에서는 다른 사람에게 피해를 주지 않으려고 하나님께 불순종하지 말고, 이러한 고통을 피하지 말라고 쓰여 있었다. 난 이 부분에서 많이 갈등을 했다. 지난 수요예배 때, 이단세미나에 가고 싶었지만 새벽에 세아이들을 데리고 다녀오는 게 쉽지 않았고, 출근해야 하는 남편이 왕복 2시간반 가까이를 운전하면 힘들어해서 많이 망설였다. 마음은 정말 가고 싶은데, 내가 간다고 하면 가족들이 희생해야 했다. 이렇게까지 가야할까. 그런데 책의 마지막 부분에 이렇게 씌여 있었다. '하나님께 순종하면, 우리의 순종으로 인해 마음에 부담을 느끼는 사람들을 주님께서 친히 돌보실 것입니다.'
이 글을 읽고 수요예배에 다녀오기로 했다.
다녀와서는 상황이 더 안좋았다. 아침에 피곤한 선호가 보육원에 가기 전에 1시간 가까이를 떼를 쓰며 울어댔고, 남편은 신경이 날카로와졌고, 여러가지 상황으로 인해 너무 힘들었다.
'주님, 이게 뭐에요...너무 힘들어요...순종했는데, 상황이 더 나빠졌고, 더 안좋아졌어요...'

금요일이 되었는데, 비가 많이 오는데 전날 내가 차의 라이트를 켜놔서 그만 차가 방전이 되어버렸다.
남편이 출장을 가야 해서 남편과 선호를 역과 보육원으로 데려다주려고 했는데, 차가 방전되어서
정말 난감한 상황이었다. 그런데, 바로 그 때 아파트에서 그나마 제일 말을 많이 나누었던(!) 일본인엄마를 만나게 되었다. 그 차를 빌려서 차 배터리를 충전하고, 남편은 아슬아슬하게 역에 도착했고, 기름이 다 떨어졌는데 주유소까지 무사히 갈 수 있었고, 선호도 보육원에 잘 데려다주었다.
하나님께서 은혜로 일사천리로 모든 일을 형통하게 해주셨다.
아직도 지난 수요일의 순종으로 인한 내 마음의 아픔은 남아있지만, 하나님께서 순종을 기뻐하셨으리라 믿는다. 그리고 치유하시고 만져주시고 선한 길로 이끌어주실 것을 믿는다.

용환웅목사

2010-04-28 01:36:12

‘겸손과 여호와를 경외함의 보상은 재물과 영광과 생명이니라’(잠 22:4)

겸손과 순종으로 이런 목회자가 되길 원합니다.
1. 거룩한 사람
2. 믿음이 있는 사람
3. 사랑이 있는 사람
4. 겸손한 사람
목회자로서 무엇보다 하나님께서 맡겨주신 양들을 가장 귀하게 여겨서 하나님의 사람이 되길 원합니다.
요한 웨슬리 목사가 당대에 자신의 감리교 목회자들이 무식하고 배우지 못한 사람이라는 비난을 주교에게 지적받았을 때... “주교님, 하나님 앞에 거룩한 것보다 나은 것이 무엇입니까? 지식이 무엇이 그렇게 중요합니까?”라고 질문했습니다.
미국 감리교의 역사를 보면 감리교가 결정적으로 세계적인 교파가 된 기초는 바로 순회설교자들입니다. 이들의 전기를 보면 가난, 고통, 비난, 희생, 등 온갖 고난을 다 당하면서도 한사람의 영혼을 얻기 위해 복음을 들고 광대한 대륙을 이잡듯이 뒤지면서 다녔다는 기록이 있습니다.
눈덮힌 1월의 추운날씨에 보이는 것은 까마귀 한 마리와 순회설교자라는 말이 있을 정도입니다...

'돈키호테'를 쓴 에스파냐의 문호 세르반테스는 작가가 되기까지 파란만장한 생을 보냈다.
가난한 집안에서 태어난 탓에 교육도 제대로 못 받은 그는 군인이 되어 스물 네 살 때레판토 해전에 참전했지만 왼팔에 부상을 입고 불구가 되었다.
그리고 고국으로 돌아가던 도중에는 해적들의 습격을 받아 포로가 되어 알제리에서 5년간 노예생활을 하기도 했다. 그러면서도 그는 문학에의 열정을 키우며 꾸준히 소설을 썼다.
서른 여덟 살 때 비로소 처녀작 <라 갈라테아>를 내놓았지만 빛을 발하지 못한다. 그 후 그는 생활고 때문에 세금징수원이 되었는데 그때 부정 협의를 받아 억울한 옥살이를 했다.
그렇지만 소설에 대한 열정은 식을 줄 몰랐고, 쉰여덟살에야 비로소 감옥에서 <돈키호테>를 완성하여 세상의 갈채를 받게 되었다. 평생 힘든 나날을 보내면서도 고난에 굴하지 않고 세계적인 걸작을 써낸 것이다.

아무리 노력해도 결실이 보이지 않는다고 인내를 포기하지 않을 것입니다.
주님이 오시기 전까지 거룩한 꿈도 포기 하지 않을 것입니다. 그 꿈에서 나오는 힘이 너무 커서 아직은 말할 수 없습니다. 결실이 그리 쉽게 손에 잡히는 것이 아님을 인정합니다. 성공의 곡선은 원만한 상승선이 아니라 계단식이라는 사실을 압니다.
계속해서 노력의 끝을 보여야만 한 계단씩 오를 수 있는 기쁨을 찾는 것을 실천합니다.

오직 예수 그리스도, 그 유일하신 분께 철저하게 겸손의 자세로 나를 맡깁니다.
'너희 안에 이 마음을 품으라 곧 그리스도 예수의 마음이니'(빌 2:5)

전재식

2010-04-28 19:08:09

이번주 겸손의 말씀이 가슴에 너무많이 와닿았습니다
저는 나름대로 제가 겸손하다고 생각하고있었습니다. 그러나 이것자테가 바로 교만이었습니다.
저는 제가 언제나 자신을 낮추고 다른사람을 높여주고있다고 생각을 하고 지내왔습니다.그러나 이것자체가 바로 교만이고 자만이었습니다.
그리고 저사람은 왜이렇게 자만하고 자신이 생각하고 있는것들이 다맞다고 생각을 하나 왜저렇게 교만하나 자기가 생각하는게 다맞다고 생각하고 지내는게 너무 교만하다라고 언제나 판단을 하고 마음으로 비판을 하면서 지냈습니다. 이것자체가 제가 교만한 것이었습니다.다른사람의 교만을 판단하며 자신의 엄청난 교만을 보지못하고 어리석게도 생각하면서 지내왔습니다.
제 자신의 교만을 더 깨달아야 했었습니다.

또다른것은 저는 전혀 순종하고 지내지않는다는 것이었습니다.
저는 제자신의 세상적인 이익과 제자신의 생각대로만 움직여오고 힘들때만 의지하며 더 기도하며 더 매달리고 주님을 찾았던게 아닌가 생각합니다 .제자신의 어리석음과 교만이 드러난 말씀이었습니다.

제자신의 어리석음을 인정하고 제자신의 무지함을 인정하고 주님이게 무조건 순종으로 다가가는 제가 되어야겠다고 생각했습니다.
순종이야말로 제대로된 겸손이기때문입니다.

겸손의 재식이로 다시태어나 주님에게 이쁨받아야겠습니다^^

이현정

2010-04-28 21:04:06

‘겸손과 여호와를 경외함의 보상은 재물과 영광과 생명이니라’(잠22:4)

여호와를 경외함과 겸손은 같은 말이라 했습니다. 그 보상은 재물과 영광과 생명이라는 이 말씀을 가슴에 새기겠습니다. 겸손의 모습은 머릿속에 떠올리면, 나도 할 수 있을 것 같다는 생각이 들지만, 현실에 부딪히면 너무 쉽게 잊어버리고 옛습관대로 살고 있는 저를 발견합니다.

제가 존경하는 백남선 월드비전 긴급구호팀장님은 어떤 분들에게나 머리를 깊이 숙여 인사하시고, 어느 곳을 들어가더라도 꼭 뒷사람이 오는지를 살피시며 미닫이문을 그분들을 위해 잡아주십니다. <그 청년 바보의사>에서 구두닦는 아저씨에게도 허리를 굽혀 인사하는 의사는 오직 안수현 그 분밖에 없었다는 이야기를 읽었습니다.

머릿속으로는 그것은 정말 쉬운 일이라는 생각이 듭니다. 하지만, 제 상황일 때 쉽지가 않다는 걸 깨닫습니다. 설교말씀을 듣고 난 다음날, 15개월만에 한국을 방문했습니다. 가장 소중한 가족들과, 친구들, 그리고 어떤 만남을 갖더라도 하나님께서 허락하신 만남을 소홀히 하지 않겠다는 다짐을 했습니다. 어느 누구를 만나더라도 나보다 남을 낫게 여기며, 나의 착한 행실로 하나님을 알 수 있도록, 그분들이 사랑의 예수님을 만날 수 있도록 노력하겠습니다.

최찬미

2010-04-29 00:11:29

사람은 언제 교만해지기 쉽습니까? 배부를 때입니다. 잘 났을 때입니다. 부족함이 없을 때입니다.
그러면 겸손이란 무엇일까요? 어떤 사람이 겸손한 사람일까요?
성경에서 말하는 겸손, 예수님이 보여 주신 겸손은 그런 것이 아닙니다.
예수님의 겸손은 바로 순종이었습니다.

어제 환희 팬클럽 창단식에 다녀오며 많은 생각을 하게 되었다. 10여년의 연예계 활동으로 충분히 베테랑인 그가 무대 위에서 보인 열정과 꾸미지 않은 겸허한 모습을 보며, 또한 노래연습을 너무 많이 해서 성대가 망가지는 아픔을 딛고 일어선 모습들을 보며, 정말 好青年을 느꼈다.
충분히 잘났을 때, 충분히 배부를 때, 또한 충분히 영화로울 때에도 자신의 신념과 열정을 일관하는 모습이 감동이 되었다.
세상도 이러한데 구별된 기독인이라 하는 나는, [하나님을 믿는 나. 하나님의 택함을 받은 나.] 라는 한가지 연고로, 왜 그처럼 죽도록 하나님의 의지에 충성할 수 없었나....하고 많은 회개가 되었다. 한시간 가량 악수를 하며 미소를 잃지 않는 모습에, 나도 열심히 살아야겠다. 그에 비하면 내가 뭐가 그리 힘들다고 칭얼대고 있을 수 있겠나 싶었다.
예수님의 겸손은 하나님의 뜻에의 철저한 순종, 복종이었다 하는데, 세상이 성대가 파열되는 아픔을 극복하는 동안 나는 과연 무엇을 하고 있었을까.. 그리스도인의 겸손이란, 과연 그와 같은 모습일까 생각해 보았다.

방재철

2010-04-29 01:30:05

예수님의 겸손은 죽음의 순종으로 나타났습니다.
자신이 주님 앞에 겸손하다고 생각합니까? 예수님의 겸손의 성품을 가지고 있다고 생각합니까?
그렇다면 십자가의 순종의 모습을 보이십시오. 주님이 죽으라면 도망가지 말고 죽으십시오.
그것이 예수님의 겸손의 본체입니다. 그래서 하나님은 예수님을 만왕의 왕으로 높이셨습니다.

순종이라는 단어는 아직도 나에게 고민을 주고 있습니다.
예수님에게는 순종의 최대치가 죽음이었는데 내가 갖고 있는 순종의 최대치는 언제나 '이정도면??'..
그래서 순종하는 것처럼 보이다가도 속마음에 '아직도 부족??' 이라는 불평이 나오곤 합니다.
일을 할 때도 내가 하는 것 이상으로 일하게 되는 경우도 왕왕있는데
맘 한쪽에서는 내가 좀 더 고생하는게 다른 사람한테 좋겠지..이런 생각과
다른 한쪽에서는 언제까지 나만 고생하는거? 이런 두마음이 쌈박질을 하고 있습니다.
때로는 하나님이 기뻐하시는 반응을 보일 때가 있고, 때로는 마귀가 그럼 그렇지. 너는 내거야~이럴 때가..

예수님을 닮아가는 삶이라는 것이 내가 갖고 있는 순종의 최대치가 더 커지는 것을 의미하나봅니다.
그렇게 순종이 자라면서 예수님의 겸손의 모습이 내 삶에 녹아들기를 바랍니다.

김대근

2010-04-30 09:07:52

겸손이란 무엇일까요? 어떤 사람이 겸손한 사람일까요?
얌전한 사람이 겸손한 사람일까요? 말이 없는 사람이 겸손한 사람일까요? 부드러운 사람이 겸손한 사람일까요? 어른이 말할 때에 고개 숙이고 예의 바르게 듣는 사람이 겸손한 사람일까요? 성경에서 말하는 겸손, 예수님이 보여 주신 겸손은 그런것이 아닙니다.
예수님의 겸손은 바로 순종이었습니다.
겸손한 사람은 순종하는 사람입니다.

어릴때부터 겸손이란 얌전하고 예의에 어긋나지 않게 행동하는 것이라고 배워오고 자랐는데 오늘에서야 바른 겸손을 배운것같습니다.
겸손하게 행동하는것이 참으로 어렵습니다. 마음 한 구석에는 교만한 마음이 스물 스물 기어나와 내 의도와는 다르게 말하게 만들고 행동하게 만드니 말입니다. 그러고 돌아서선 후회하게 만듭니다. 인간의 마음은 참으로 간사한것 같습니다. 이렇게 이중적인 마음이 공존하고 있으니 말입니다.
예수님이 하신 겸손을 배워야 하겠습니다. 그렇게 되면 후회할일도 줄어들것이고 그렇게 되면 편안하고 행복하게 살수있을테니까요.
'너희 안에 이 마음을 품으라 곧 그리스도 예수의 마음이니'(빌2:5)
그리스도 예수의 마음을 품기를 성령님께 의지해 보아야 하겠습니다.

박상민

2010-05-11 01:50:52

예수님의 겸손은 바로 순종이었습니다.

나름대로 순종에 익숙해져 있다고 생각했다. 부모님께,사회, 회사, 직장, 그러나 그 순종이
옳지 않은 순종이란 것을 알게 되였다.
거짓순종 , 억지순종, 마음에서 나와서 따르는 순종을 하지 못했다.
아직도 많이 부족하다는 것을 잘안다. 예수님의 십자가 순종에 비하면 지금의 내 순종이
한 없이 작은 것이다. 하지만 조금씩 순종의 삶을 살다 보면 언젠가 예수님이 원하시는 그 만큼 올를수
있을까? 거짓없이 나보다 남을 높이 보는 삶을 살려한다.

전혜진

2010-05-11 21:51:12

예수님의 겸손은 죽음의 순종으로 나타났습니다.
자신이 주님 앞에 겸손하다고 생각합니까? 예수님의 겸손의 성품을 가지고 있다고 생각합니까?
그렇다면 십자가의 순종의 모습을 보이십시오.
주님이 죽으라면 도망가지 말고 죽으십시오. 그것이 예수님의 겸손의 본체입니다.
그래서 하나님은 예수님을 만왕의 왕으로 높이셨습니다.
진심으로 하나님을 경외할 때에 하나님께 겸손의 모습이 나타납니다.(잠22:4)

순종의 모습을 통해 우리의 겸손함이 나타납니다.
나는 내가 하고 싶은 것에만 순종하고 내가 하기싫은 부분에서는 어떠한 이유를
통해서든 합리화하여 피해가려고 애씁니다.
그것은 결코 겸손한자의 모습이 아님을 회개합니다.
아직도 내안에 교만함의 모습이 있었고 온전히 주님께 순종하는 진정으로 겸손한 자의
모습이 아니였음을 회개합니다.

교만하면 절대로 순종할 수 없습니다. 순종은 겸손의 열매이기 때문입니다.
겸손의 열매를 맺기위해 온전히 순종하기 위해 매일 매일 깨어 기도해야겠습니다.

이 은미

2010-05-15 06:24:51

하나님이 특별히 좋아하는 사람이 있습니다. 그 사람은 겸손한 사람입니다. 하나님은 겸손한 사람을 세상에서 최고로 높이십니다.

하나님은 겸손한 사람을 좋아하신다는 걸 알면서도 겸손하기가 쉽지가 않습니다. 특히나 내 기준으로 납득이 되지 않는 경우는 더욱 그렇습니다. 모든 사람을 나보다 나은 사람으로 여기기란 정말 쉽지가 않습니다. 한 순간 방심하는 사이에 내가 남보다 나은 사람이 돼 버리곤 합니다.
아직도 내게는 겸손훈련이 많이 부족함을 느낍니다. 어쩌면 평생 겸손훈련을 받아야할 지도 모르겠습니다.

하나님은 믿음의 사람이 겸손한 사람이 되길 원합니다.
그리스도인은 겸손해야 합니다.
‘그런즉 선 줄로 생각하는 자는 넘어질까 조심하라’(고전10:12)

하나님께서 믿음의 사람이 겸손한 사람이 되길 원하신다는 걸, 서 있다고 생각할 때 조심해야 한다는 걸 늘 마음에 새기며 깨어 기도하는 자가 되도록 노력하겠습니다.

Board Menu

リスト

Page 36 / 55
Status 番号 タイトル 投稿者 日付 閲覧数
  398

共におられる

1
이용규목사 2010-10-01 131
  397

함께 하심

20
이용규목사 2010-09-27 389
  396

イエス様の40日

1
이용규목사 2010-09-24 178
  395

예수님의 40일

29
이용규목사 2010-09-20 814
  394

1
이용규목사 2010-09-20 152
  393

열매

29
이용규목사 2010-09-13 476
  392

世を立てる人、家庭を立てる人

1
이용규목사 2010-06-05 250
  391

세상을 세우는 사람, 가정을 세우는 사람

5
이용규목사 2010-05-31 545
  390

リーダーと羊の群れ

1
이용규목사 2010-05-21 180
  389

리더와 양 무리

14
이용규목사 2010-05-18 361
  388

子供の教育をどうするべきか?

1
이용규목사 2010-05-14 1707
  387

자녀 교육 어떻게 해야 하나?

17
이용규목사 2010-05-10 532
  386

子供たちよ両親に

1
이용규목사 2010-05-07 347
  385

자녀들아 너희 부모에게

10
이용규목사 2010-05-03 453
  384

謙遜と従順

1
이용규목사 2010-04-30 364
  383

겸손과 순종

14
이용규목사 2010-04-26 680
  382

愛と懲らしめ

1
이용규목사 2010-04-24 317
  381

사랑과 징계

16
이용규목사 2010-04-19 430
  380

伝道と愛

1
이용규목사 2010-04-17 122
  379

전도와 사랑

15
이용규목사 2010-04-12 369

   

sketchbook5, 스케치북5

sketchbook5, 스케치북5

나눔글꼴 설치 안내


이 PC에는 나눔글꼴이 설치되어 있지 않습니다.

이 사이트를 나눔글꼴로 보기 위해서는
나눔글꼴을 설치해야 합니다.

설치 취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