운동회
어릴 때의 추억 중에서 가장 기억에 많이 남아 있는 것은 아마 초등학교 운동회가 아닌가 생각합니다. 시골에서의 운동회는 학교 행사일 뿐 아니라, 그 주변 온 동네의 잔칫날입니다. 가족들이 맛있는 음식을 만들어 모두 학교에 옵니다. 그래서 함께 달리며, 함께 웃고 함께 먹으면서 즐거운 시간을 보냅니다. 역시 운동회 중에서 클라이막스는 달리기라고 할 수 있습니다. 청군과 백군으로 나누어 서로를 응원하면서 다들 열심히 달립니다. 청군과 백군이 나누어지면 길가에 피어 있던 코스모스도 수난을 당하곤 했습니다. 빨간 코스모스와 흰 코스모스를 서로 반대편이라고 따 버리는 개구장이들도 많았습니다. 어떻게 해서든지 자기 팀이 이기기를 원하는 마음에서 그랬던 것 같습니다.
풍경은 좀 다르지만 요즘도 운동회는 건재합니다.
얼마 전에 마음을 훈훈하게 하는 용인의 한 초등학교의 운동회가 있었습니다. 초등학교 6학년의 한 반에서의 일입니다. 그 반에는 장애를 가지고 있는 어린이가 한명 있습니다. 다리의 장애를 가지고 있었기 때문에 그에게는 달리기가 제일 힘들었습니다. 그는 달리기만 하면 항상 꼴찌를 했습니다. 그러니 그 어린이에게는 운동회날이 즐거운 날이 될 수가 없었습니다. 드디어 초등학교의 마지막 운동회날이 다가왔습니다. 그는 아버지에게 몇번이나 부탁합니다. '아빠, 안달리면 안될까요?' 그러나 아버지는 단호히 거절합니다. 아들이 앞으로 자기 삶을 스스로 이겨 나가야 하는데 벌써부터 작은 것 하나에서 포기를 한다고 하면, 앞으로 이겨내지 못할 것 같았기 때문입니다. 그래서 아버지는 아들에게 말했습니다. “떳떳하게 지는 게 처음부터 포기하는 것보다 훨씬 나은 거니까 끝까지 달려라” 아들이 몇 번이나 달리기 싫다고 했을 때에 아버지는 마음이 굉장히 아팠다고 했습니다.
한편 학교에서는 담임선생님과 친구들이 그 아이를 위해서 머리를 맞대었습니다. 마지막 운동회까지 그 아이에게 꼴찌의 아픔을 줄 수는 없었기 때문입니다. 드디어 운동회날이 되었습니다. 6학년의 달리기 시간이 되었습니다. 장애를 가지고 있는 그 아이도 출발선에 섰습니다. 그들은 달렸습니다. 골인지점 조금 전에 먼저 달리던 아이들이 모두 섰습니다. 잠시 후에 그 아이가 달려 왔습니다. 그들은 모두 손을 잡았습니다. 그들은 나란히 결승점을 통과했습니다. 모두가 일등의 도장을 받았습니다. 그래서 그 아이는 꼴찌의 아픔에서 벗어나게 되었습니다. 이 모습을 지켜 보던 모든 사람들이 펑펑 울고야 말았습니다. 부모들도, 선생님들도, 아이들도 모두 감동의 울음으로 하나가 되었습니다. 그 아이는 말했습니다. '친구들이 그렇게 손을 잡아 준 것이 너무 고맙고 감사하고 미안하기도 해서 펑펑 울었다'고 말입니다.
감동은 주어지는 것이 아니라, 만들어 가는 것입니다. 남들보다 잘하고, 많이 가지고, 이기는 것이 세상에 감동을 주는 것이 결코 아닙니다. 이것은 오히려 반감만 줄 뿐입니다. 어렵고 힘든 사람과 함께 걸어가 주고, 함께 손잡고 뛰어가 주는 소박한 모습이야말로 보는 이에게 진정한 만족과 감동의 눈물샘을 자극합니다. 삭막한 경쟁제일주의가 참으로 안타깝습니다. 강자가 약자를 괴롭히는 세상이 안타깝습니다. 약육강식은 짐승에게나 해당됩니다. 참된 인간 세상은 강한 자가 약한 자의 짐을 함께 져 주는 세상입니다. 이 세상을 인간 세상으로 다시 회복시켜야 합니다. 경쟁 사회에서 감동사회로 바꾸어 나가야 합니다. 운동회에서 일등한 기쁨은 소수에게 국한되지만, 함께 손잡고 들어오며 꼴찌가 없는 세상을 만들면 모든 사람이 기뻐하며 감동할 것입니다. 어려운 사람의 손을 잡고 함께 뛰는 세상이 소망이 있는 세상이고, 살 맛이 나는 세상이 되리라 믿습니다.
성경은 이 점을 분명히 말하고 있습니다.
'수고하고 무거운 짐 진자들아 다 내게로 오라 내가 너희를 쉬게 하리라'(마태복음11:28)
'믿음이 강한 우리는 마땅히 믿음이 약한 자의 약점을 담당하고 자기를 기쁘게 하지 아니할 것이라' (로마서15:1)
'즐거워하는 자들과 함께 즐거워하고 우는 자들과 함께 울라'(로마서12:15)
어릴 때의 추억 중에서 가장 기억에 많이 남아 있는 것은 아마 초등학교 운동회가 아닌가 생각합니다. 시골에서의 운동회는 학교 행사일 뿐 아니라, 그 주변 온 동네의 잔칫날입니다. 가족들이 맛있는 음식을 만들어 모두 학교에 옵니다. 그래서 함께 달리며, 함께 웃고 함께 먹으면서 즐거운 시간을 보냅니다. 역시 운동회 중에서 클라이막스는 달리기라고 할 수 있습니다. 청군과 백군으로 나누어 서로를 응원하면서 다들 열심히 달립니다. 청군과 백군이 나누어지면 길가에 피어 있던 코스모스도 수난을 당하곤 했습니다. 빨간 코스모스와 흰 코스모스를 서로 반대편이라고 따 버리는 개구장이들도 많았습니다. 어떻게 해서든지 자기 팀이 이기기를 원하는 마음에서 그랬던 것 같습니다.
풍경은 좀 다르지만 요즘도 운동회는 건재합니다.
얼마 전에 마음을 훈훈하게 하는 용인의 한 초등학교의 운동회가 있었습니다. 초등학교 6학년의 한 반에서의 일입니다. 그 반에는 장애를 가지고 있는 어린이가 한명 있습니다. 다리의 장애를 가지고 있었기 때문에 그에게는 달리기가 제일 힘들었습니다. 그는 달리기만 하면 항상 꼴찌를 했습니다. 그러니 그 어린이에게는 운동회날이 즐거운 날이 될 수가 없었습니다. 드디어 초등학교의 마지막 운동회날이 다가왔습니다. 그는 아버지에게 몇번이나 부탁합니다. '아빠, 안달리면 안될까요?' 그러나 아버지는 단호히 거절합니다. 아들이 앞으로 자기 삶을 스스로 이겨 나가야 하는데 벌써부터 작은 것 하나에서 포기를 한다고 하면, 앞으로 이겨내지 못할 것 같았기 때문입니다. 그래서 아버지는 아들에게 말했습니다. “떳떳하게 지는 게 처음부터 포기하는 것보다 훨씬 나은 거니까 끝까지 달려라” 아들이 몇 번이나 달리기 싫다고 했을 때에 아버지는 마음이 굉장히 아팠다고 했습니다.
한편 학교에서는 담임선생님과 친구들이 그 아이를 위해서 머리를 맞대었습니다. 마지막 운동회까지 그 아이에게 꼴찌의 아픔을 줄 수는 없었기 때문입니다. 드디어 운동회날이 되었습니다. 6학년의 달리기 시간이 되었습니다. 장애를 가지고 있는 그 아이도 출발선에 섰습니다. 그들은 달렸습니다. 골인지점 조금 전에 먼저 달리던 아이들이 모두 섰습니다. 잠시 후에 그 아이가 달려 왔습니다. 그들은 모두 손을 잡았습니다. 그들은 나란히 결승점을 통과했습니다. 모두가 일등의 도장을 받았습니다. 그래서 그 아이는 꼴찌의 아픔에서 벗어나게 되었습니다. 이 모습을 지켜 보던 모든 사람들이 펑펑 울고야 말았습니다. 부모들도, 선생님들도, 아이들도 모두 감동의 울음으로 하나가 되었습니다. 그 아이는 말했습니다. '친구들이 그렇게 손을 잡아 준 것이 너무 고맙고 감사하고 미안하기도 해서 펑펑 울었다'고 말입니다.
감동은 주어지는 것이 아니라, 만들어 가는 것입니다. 남들보다 잘하고, 많이 가지고, 이기는 것이 세상에 감동을 주는 것이 결코 아닙니다. 이것은 오히려 반감만 줄 뿐입니다. 어렵고 힘든 사람과 함께 걸어가 주고, 함께 손잡고 뛰어가 주는 소박한 모습이야말로 보는 이에게 진정한 만족과 감동의 눈물샘을 자극합니다. 삭막한 경쟁제일주의가 참으로 안타깝습니다. 강자가 약자를 괴롭히는 세상이 안타깝습니다. 약육강식은 짐승에게나 해당됩니다. 참된 인간 세상은 강한 자가 약한 자의 짐을 함께 져 주는 세상입니다. 이 세상을 인간 세상으로 다시 회복시켜야 합니다. 경쟁 사회에서 감동사회로 바꾸어 나가야 합니다. 운동회에서 일등한 기쁨은 소수에게 국한되지만, 함께 손잡고 들어오며 꼴찌가 없는 세상을 만들면 모든 사람이 기뻐하며 감동할 것입니다. 어려운 사람의 손을 잡고 함께 뛰는 세상이 소망이 있는 세상이고, 살 맛이 나는 세상이 되리라 믿습니다.
성경은 이 점을 분명히 말하고 있습니다.
'수고하고 무거운 짐 진자들아 다 내게로 오라 내가 너희를 쉬게 하리라'(마태복음11:28)
'믿음이 강한 우리는 마땅히 믿음이 약한 자의 약점을 담당하고 자기를 기쁘게 하지 아니할 것이라' (로마서15:1)
'즐거워하는 자들과 함께 즐거워하고 우는 자들과 함께 울라'(로마서12:15)
リスト
番号 | タイトル | 投稿者 | 日付 | 閲覧数 |
---|---|---|---|---|
381 |
門松1 |
2015-01-09 | 58 | |
380 |
카도마쯔 |
2015-01-03 | 157 | |
379 |
犬1 |
2014-12-31 | 85 | |
378 |
호피 |
2014-12-28 | 117 | |
377 |
예수 |
2014-12-20 | 76 | |
376 |
味覚1 |
2014-12-18 | 70 | |
375 |
학원 |
2014-12-14 | 61 | |
374 |
どのように生きていくだろうか。1 |
2014-12-02 | 123 | |
373 |
졸업식1 |
2014-11-22 | 74 | |
372 |
歩幅1 |
2014-11-22 | 79 | |
371 |
개판 |
2014-11-15 | 64 | |
370 |
어떻게 살 것인가? |
2014-11-08 | 134 | |
369 |
運動会1 |
2014-11-02 | 136 | |
368 |
음식 맛 |
2014-11-01 | 49 | |
367 |
聖書1 |
2014-10-27 | 84 | |
366 |
보폭 |
2014-10-25 | 88 | |
365 |
성경책 |
2014-10-19 | 202 | |
364 |
マラソン1 |
2014-10-13 | 121 | |
363 |
운동회1 |
2014-10-10 | 96 | |
362 |
キリノ1 |
2014-10-07 | 132 |
1 コメント
최현숙
2014-10-14 05:30:15
감동은 또한 내면에 상대를 생각하는 긍휼과 겸손이 없다면 실천하기 힘든 일이기도 합니다.
아이들이 몸 불편한 친구의 마음을 친히 내 일처럼 여겨 약함을 져 주는 모습은 잔잔하지만 큰 감동으로 다가옵니다.
나에게 진정 필요한 마음이 아닐까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