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중앙영광교회

예수님의 제자훈련

이용규목사, 2005-09-19 18:14:3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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예수님의 제자훈련

마4:35-41

제자훈련의 효시는 당연히 예수님이시다.
예수님은 3년 동안 집중적으로 제자들을 훈련시켰다.
제자를 만들지 못하면 인류에 소망이 없음을 누구보다 잘 아셨기 때문이다.
예수님은 과연 제자들을 어떻게 훈련시켰을까?
예수님은 무엇을 집중적으로 훈련시켰을까?
예수님은 왜 이렇게 훈련을 시키지 않으면 안되었을까?
마가복음 4장이 이 모든 것을 잘 설명해 주고 있다.
고린도전서 13장을 사랑장, 히브리서 11장을 믿음장이라고 하듯이 마가복음 4장은 ‘제자훈련장’이라고 이름을 붙여도 손색이 없을 듯하다.
1. 제자훈련의 방법
1)이론 교육(막4:1-34)
먼저 예수님은 사람들을 바닷가에 모아 놓고 배에 올라 무리들을 열심히 가르쳤다.
씨뿌리는 자의 비유, 천국의 비유 등을 통해서 말씀의 역사, 천국의 역사 등을 가르치면서 믿음의 힘(100배 열매, 겨자씨가 큰 나무가 되는 역사)이 얼마나 위대한지를 깨우쳐 주셨다. 이것을 오늘날의 익숙한 용어로 말하자면 예배의 ‘설교’이다. 설교는 많은 사람을 대상으로 하는 것이 가능하다. 그래서 예수님은 큰 무리에게 말씀을 가르친 것이다. 교육적 용어로 바꾼다면 먼저 ‘이론 교육’을 시키신 것이다.
2)현장 실습(막4:35-41)
여기서 우리는 중요한 것을 발견하게 된다.
예수님께서 말씀으로 이론을 가르치실 때에는 큰 무리를 택하셨지만, 현장 실습에 들어갈 때에는 ‘무리를 떠나’ 소수의 제자들만 데리고 가셨다는 사실이다. 이것이 오늘날로 치면 소그룹 제자훈련인 셈이다. 제자훈련의 핵심은 ‘가르쳐 지키게’ 하는데 있다.
(참고 : ‘내가 너희에게 분부한 모든 것을 가르쳐 지키게 하라’마28:20)
가르치는 것은 대그룹도 가능하지만, 지키게 하는 것은 대그룹에서는 무리가 있음을 시사해 주고 있다. 설교를 아무리 많이 들어도 사람들이 변하지 않는 것이 이 때문이다. 사람은 그것을 지켜 행할 때에 비로소 변하기 시작한다. 듣는 것만으로 변한다는 것은 계란으로 바위치기와 같은 무모한 짓에 불과하다.
이것은 수영을 보면 잘 알 수 있다. 수영도 이론만으로는 절대로 잘 할 수가 없다. 오직 수많은 실습(연습)을 통해서만 잘 할 수 있듯이, 변화는 실습을 통해서 일어나는데, 실습은 소그룹이 훨씬 효과적이다.
여기서 말하는 실습이란 말씀 적용, 말씀 실천, 말씀 순종 훈련을 말한다.

예수님의 제자훈련 방법은 대그룹에 대한 설교와 소그룹에 대한 적용훈련이었음을 다시 한번 확인할 수 있다.


2. 예수님은 과연 무슨 훈련을 시켰을까?
결론부터 말하자면
‘제자’ 훈련은 ‘믿음’훈련이다.
예수님은 실습(적용)현장에서 제자들에게 엄청 실망하신다.
‘너희가 어찌 아직도 믿음이 없느냐?’(막4:40)고 하시며 심하게 책망을 하셨다.
제자들의 멋진 믿음의 모습을 보길 원했는데, 불신의 모습만 보시게 되었던 것이다.
주님은 어디서나 믿음이 있는 자는, 비록 그가 이방 여인이더라도 ‘딸아 네 믿음이 크도다. 네 믿음이 너를 구원하였다’고 하시며 칭찬과 축복을 아끼지 않으셨다.
반면에 비록 그들이 사랑하는 제자라고 하더라도 믿음이 없는 자에게는 ‘믿음이 없는 자여 내가 얼마나 너를 참으리요’(막9:19) 하시며 늘 심하게 야단을 치셨다.
예수님의 훈련의 목적은 제자들이 제자들다운 믿음의 모습을 보이도록 하는 것이었다. 그것이 바로 예수님을 쏙 빼닮은 유일한 모습이기 때문이다.
주님의 믿음훈련의 모습을 본문을 통해서 살펴보도록 하자.
1)        환경설정(4:35-38)
예수님은 실습장의 환경설정을 아주 리얼하게 잘 하셨다.
도저히 가식적인 믿음의 표현을 할 수 없는 환경을 만들어 놓으셨다.  
‘저물 때’였으므로 시간적으로는 ‘밤이었고, 장소적으로는 ‘바다’였다.
그리고 ‘큰 광풍’이 일어났으므로 상황은 최악이었다.
그 와중에 주님마저 주무시고 계시니 얼마나 두려웠을까?
이것은 오늘날 우리의 암담한 고난의 때를 잘 표현해 주기도 한다. 사면초가와 같은 어렵고 힘든 상황에서 아무리 기도해도 주님은 내게 아무 관심도 없는 분 같이 느껴질 때가 있다. 세상적으로 보면 정말 미칠 지경이다.
그러나 믿음의 거장 욥은 그렇지 않았다.
‘내가 동으로 가도 그가 아니 계시고, 서로 가도 보이지 아니하며,
그가 남에서 일하나 내가 만날 수 없고, 그가 북으로 돌이키나 뵈올 수 없구나.
그러나 나의 가는 길을 오직 그가 아시나니
그가 나를 단련하신 후에는
내가 정금같이 나오리라’(욥23:8-10)
예수님은 동서남북이 다 막힌 제자들로부터 이런 멋진 믿음의 고백을 기대했던 것이다.
그런데 제자들은 어떤 고백을 했을까?
그리고 그 자리에 내가 있었다면 나는 과연 어떤 고백을 했을까?  
2)        제자들의 고백
‘선생님이여 우리의 죽게 된 것을 돌아 보지 아니하시나이까?’(38)
제자들은 주님께 대한 믿음을 고백했던 것이 아니라, 광풍에 대한 두려움만 고백했던 것이다.  
(38)절의 말을 쉽게 다시 표현하자면
‘우리는 다 죽게 되었는데 당신은 팔자 좋게 잠만 자고 있느냐? 해도 너무하지 않느냐? (나이도 어린 것이)’ 대충 이런 말이다. 이 얼마나 믿음 없는 말인가! 그야말로 막가파 믿음이다. ‘잘가파’ 믿음은 아니더라도 중도파 믿음은 보였어야 하는데...
게다가 광풍에 혼비백산한 제자들은 예수님을 깨울 때 ‘주님’이라고 하지 않고 ‘선생님’이라고 부르며 깨웠다. 불과 얼마 전까지만 해도 주여! 주여! 하던 그들이 왜 갑자기 ‘선생님’이라고 했을까? 사람은 급할 때에는 속에 있는 것이 걸러지지 않고 그대로 나오게 되어 있다. 제자들의 잠재의식 속에는 예수님이 아직도 ‘선생님’에 불과했던 것이다. 잠재의식 속의 예수님이 ‘나의 하나님, 나의 주님’이 되어야 하는데... 이것이 제대로 된 제자의 모습인데...
좋을 땐 ‘주님’, 나쁠 땐 ‘선생님’, 위험할 땐 ‘저주’(베드로)하는 것은 믿음이 아니다.
정금 같은 믿음은 상황에 따라서 변하지 않는다.
환경 따라 주님의 모습이 달라지는 것이 아니라, 주님 따라 환경이 달라지는 것이다.
이런 점에서 예수님의 믿음은 참으로 귀하다.
예수님은 평소에는 하나님을 ‘아버지’라고 즐겨 불렀다. 그러나 십자가의 죽음 앞에서는 오히려 ‘하나님’이라고 부르며 하나님을 더 높이며 요동치 않는 믿음을 우리에게 보여 주셨던 것이다. 어려울 때 의심하고 부정하는 우리와 너무나 잘 대조가 된다.
3)        두가지 책망
예수님은 두가지 책망을 하셨다.
먼저 바람과 바다를 향하여 강하게 꾸짖어신다. ‘잠잠해! 조용히 해!’
하늘과 땅의 모든 권세를 가지신 예수님(마28:18)의 말씀 한마디에 바람과 바다가 즉시 순종하여 광풍과 풍랑이 없어져 버렸다.
예수님의 믿음의 선포는 환경을 변화시켰다.  
그리고 두번째 책망은 제자들에게 하신다.
‘어찌하여 이렇게 무서워하느냐 너희가 어찌 믿음이 없느냐’(40)
이 말씀을 현실감 있게 다시 표현한다면
‘우째 이런 일이! 우째 이런 일이 있을 수 있단 말이냐! 도저히 믿을 수가 없구나.
아직도 너희가 믿음이 없느냐? 정말 한심한지고’ 대충 이런 내용이었을 것이다.
예수님의 이 꾸중을 듣고 제자들이 심히 두려워했다는 말을 통해서 예수님이 얼마나 심하게 책망하셨는지를 짐작할 수가 있다.
예수님의 믿음의 꾸중이 제자들의 마음을 변화시켰다.
예수님이 바다를 책망하셨을 때에는 파도가 잔잔했고
제자들을 책망했을 때에는 제자들의 마음 속에 있던 불신의 파도가 쥐 죽은 듯이 고요하게 되었다.
오늘 주님의 이 책망이 내 속에 임할 때, 먼저 내 속에 있던 불신과 두려움의 파도가 잔잔해지기를 축원한다.

3. 참 제자의 모습
주님이 제자들에게 그토록 원하셨던 것이 무엇일까?
‘너희가 어찌 돈이 없느냐?’ 주님은 돈 때문에 제자들을 꾸짖지 않았다.
‘너희가 어찌 학벌이 없느냐?’ 주님은 학벌 때문에 제자들을 꾸짖지 않았다.
‘너희가 어찌 미모가 없느냐?’ 주님은 외모 때문에 제자들을 꾸짖지 않았다.
‘너희가 어찌 능력이 없느냐?’ 주님은 능력 때문에 제자들을 꾸짖지 않았다.

‘너희가 어찌 믿음이 없느냐?’ 주님은 오직 믿음 때문에 제자들을 강하게 꾸짖으셨다.

세상의 제자는 스승의 지식과 기술을 전수받기를 원한다. 세상 스승이 가진 것은 지식과 기술이기 때문이다. 예수님이 제자들에게 물려 주기를 원하셨던 것은 지식도 아니요, 기술도 아니었다. 예수님이 그렇게도 원하셨던 것은 ‘오직 믿음’이었다. 광풍 앞에서도 끄떡없는 그런 믿음이다. 예수님이 가지고 계신 것은 ‘오직 믿음’이기 때문이다. 예수님이 가지고 계신 그 보배를 제자인 우리가 전수 받아야 한다.
진정 주님의 제자라고 할 수 있는가?
그렇다면 주님의 그 믿음이 자신 속에 있음을 광풍 앞에서 증명해 보라.
제자들은 광풍 앞에서 두려워 떨었지만 예수님은 같은 광풍 앞에서 제자들이 흔들어 깨울 때까지 평안히 잘 수 있었다.
제자들은 광풍 앞에 패자의 모습으로 죽음을 생각했지만 예수님은 같은 광풍 앞에서 완전한 승자의 모습으로 바다를 순종시키셨다.
왜 일까?
예수님은 하나님과 하나된 믿음을 가지고 계셨지만
제자들은 믿음은 간데 없고, 광풍과 하나된 두려움만 가지고 있었기 때문이었다.
광풍 앞에 두려워 떠는 우리에게 주시는 주님의 음성에 다시 한번 귀를 기울여 보자!
‘우째 이런 일이! 너희가 아직도 믿음이 없느냐?’

주여! 내가 여기 있나이다.
나의 믿음 없음을 용서하소서!
내가 이제 주님을 확실히 믿나이다!
내 믿음을 받아 주옵소서!

28 コメント

이소진

2005-09-19 22:03:44

이번 설교로 인한 은혜가 너무나도 넘쳐서 이렇게 글로는 다 표현을 못 할 정도였습니다. 예수님의 제자훈련을 주제로 한 설교를 통해 우리 중앙영광교회의 표어가 오직주님!오직 믿음!인 이유를 다시 한번 깊게 깨닫고 너무나도 멋지다고 생각했습니다.
예수님께서는 무리를 통한 이론교육과 소수를 통한 현장실습으로 제자훈련을 하셨습니다. 저는 이를 통해 제가 교회의 제자훈련을 통한 현장실습을 받을 수 있게 된 것에 대한 선택받은 감사함을 느꼈습니다. 그리하여 이 믿음훈련을 통해 배우고 지키는 진정한 그리스도인이 되려고 끈임없이 노력해야 하겠다고 생각했습니다.
예수님께서 환경설정을 통해 제자들을 훈련시켰던 것과 같이, 내 인생에 어두운 길이 펼쳐지고 희망이 보이지 않는 암흑같은 때에도 내가 먼저 믿음을 가지고 담대히 나아가야겠다고 다짐했습니다. 그리고 그러한 암흑같은 때도 하나님께서 우리를 너무나도 사랑하셔서 시험이 아니라 단련을 통해 멋진 제자를 만들기 위해 허락하신 축복임을 느꼈습니다.
욥의 고백처럼 나도 제자훈련을 받으면서 그리고 받고난 후 늘 업그레이드 된 진정한 믿음고백을 하길 간절하게 기도합니다.
상황이나 환경에 변하지 않는 믿음, 예수님꼐서 십자가의 죽음 앞에 하나님이라 부르는 그 믿음의 십분의 일이라도 가질 수 있도록 늘 믿음훈련에 열심이길 원합니다. 오직 믿음!! 정말 진정한 그리스도인만이 품을 수 있는 말입니다.

이미령

2005-09-20 02:02:56

성경말씀을 배울땐...
적당히 내 생활에 인용하며 주일날 교회 안가면 맘이 불편하고...
세상 일을 즐길땐 배운말씀이 날 구속하는것같고...
교회 다니는 사람은 물귀신 이라는 생각도....
자기나...성경말씀대로 잘살면되지....
전도라는 명목으로 잡으면 놓아주지 않는다고...
그러면서....
성경의 비유 말씀의 주인공이 되어가고 있었습니다
돌아온탕자....우물가 사마리아 여인...가릇유다...
주님을 부인하는 베드로가....
바로 내모습이였습니다...믿음없이 교회만 다녔기에.....

나를 위해 십자가을 지신....
나를 위해 기도하시는 주님을 만나고 난 후부터...
죄에서 자유함을얻고....예수믿지 않는 사람을보면..
우리를 사랑하고 계시는 주님의 아퍼하심을 ....
전해 주고싶어 견딜수가 없는것은 왜 일까요...
더욱더 머리로 이해할수 없는것은...
네 이웃을 내 몸같이 사랑하라...너을 십자가에 못박아라..
원수를 사랑하라...항상 기뻐하라 쉬지말고 기도하라...
늘 감사하라 땅에서 풀면 하늘에서도 풀리라...
이런 상상도 할수없는 일을....
내가...할수있다는 겁니다...
기적 이란 믿음으로만 가능 하다는걸....
어찌....믿지 않을수가.....

내 안에서 아무 염려 말아라...두려워 말라...
세상 끝날 때까지 항상 너와 함께 하라라고...
속삭여주시는 주의음성 듣고 ...
난..담대히 세상을 향해 살아 계신 하나님을 말할겁니다..
숨 질때 까지....주님 사랑합니다...

정승은

2005-09-20 06:01:16

리플을 달기에 앞서 오늘도 나를 내어놓는 다는 사실이 아직까진 좀 어렵다.
성격상 그렇기도 하고,또 창피하기도 하고,날마다 부끄럽고,죄만 짓는 탓에 더 그런지도 모른다.그래도 시간이 지나고,사람이 아닌,주님만 생각하다보면,좀더 편안해 질수 있을거라 믿는다.

아무리 예수님 곁에서 말씀을 듣고, 훈련을 받아도 그분이 진정 주님이신지, 메시아인지에 대한 진정한 확신이 없었던 제자들의 모습을 보게 되었다.
어떤 환경도, 광풍도 다스릴 수 있으신 능력의 주님이 함께 배에 타고 계심에도 불구하고, 갑작스런 광풍에 놀라고 두려움에 대해 도움을 구할 수는 있다 하더라도, 믿음 없이 원망 섞인 어투로 표현했었던 모습을 보면서,
지금까지의 내 모습과 오버랩 되어 내 가슴을 찌르고 있음을 고백한다.
이번 주도 말씀 앞에선 어떤 형식적이거나, 가식적인 믿음은 발가벗겨 질 수 밖에 없음을 깨닫는다.ㅜㅜ

주일마다 예배 보고, 말씀 듣고, 소그룹을 통해 제자훈련까지 받기 시작했지만,
난 얼마나 예수님을 이해하고, 깨닫고 있는가? 그분만이 진정한 메시아요, 하나님이 당시에 예수님을 통해 일하신 것처럼, 지금도 동일하게 성령을 통해 우리 안에서 일하신다는 사실을 얼마나 믿고 있는가? 그분이 말씀 하신 것처럼 [내가 네 안에 네가 내 안에 있다]는 사실을 정말 어떤 상황에서도 믿고 있는가?
내가 말씀 듣고, 제자훈련 받는 것 그 이유는 예수님 닮기 위해서가 아닌가?
그렇다면 난 그분을 얼마나 소유하고 있나, 그분에 대한 믿음이 얼마나 있나?!!!
오늘 주님은 제자들에게 하셨던 그 책망을 바로 내게 하고 계신것이다.

주님 곁에 있다고 내 인생 고난이 사라지는 것은 분명 아닐 것이다.
인생의 광풍은 때때로 작게도, 크게도 몰아쳐 왔다,그리고 올것이다.
그때마다 난 환경 때문에, 상황, 상처 때문에 주님을 놓아버렸다.
주님이 내 곁에서 떠나신 것만 같았다.
아니, 너무나 가만히 상황을 지켜보고만 계시는 주님을 기다리지 못했던 것 같다.
원망도 했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주님은 나를 떠나지 않으셨는데,
난 주님을 떠났던 때가 한번 있었음을 고백한다.
믿음을 시험하시는 것일지도 모른다는 생각조차 해보지 못했다.
나를 위해서 그러신 것이라는 생각은 해보지 못했다.
그럴 생각할 겨를조차 없이, 안절부절, 노심초사,비관,좌절,격분,분노,눈물까지
모든 감정의 바닥을 드러내면서, 주여!주여!이젠 제 안에 계시지 않으신가요?
계시면 당장 제 마음에 평안을 주시고,상황을 정리해 주세요!!
부르짖고, 또 부르짖으며 그 상황에서 벗어날 때만 기다렸다.
그래도 아무런 대답도 안하신다고 느껴졌던 그때,내 겨자씨보다 적은 믿음은
이미 날아가고 없었다.

그러다가 몇 년 전에 주님 때문에 어떤 위기의 상황을 벗어나야 했던 적이 있었다.
주님 때문에 힘겹게나마 바른 선택을 해야 했던 적이 있었다.
그것도 나 혼자만의 믿음 때문은 아니였고! 기도를 해주는 몇 분이 함께 있었기 때문에
선택할 수 있었다 .[다른 사람들에겐 이보다 더 큰 상황,환난도 있다는 것 알기에 절대 쉽게 말할 수 없지만,믿음을 갖은지 얼마 안된 나에겐 큰 일이 였음을 말해두고 싶다.]
아무튼 그때 깨달은 것은 그런 상황도 주님께서 허락하실 때 가능하단 것,
그리고 그 순간에도 주님은 함께 하신다는 것, 또 한가지, 그때 견딜 수 있는 믿음 또한 주님은 주신다는 것이다.
아주 적은 믿음이라도, 그 믿음이 진짜라면, 이겨낼 수 있다는 것을 가르쳐 주신다는 것,
그런 적은 믿음을 통해서라도 내가 좀더 단단해지고, 성숙된 믿음으로 견고하게 다져가길 원하신다는 사실을 깨닫게 해주셨다.
참,그때는 그 선택 후에, 바로 죽은 자 가운데서 나사로를 살리시던 예수님을 통해서
내 믿음이 없었음을 질책 하셨었다. 마르다와 마리아의 믿음을 통해서..지금 생각이 난다.

내 스스로 어리석고 믿음이 정말 없다고 생각되는 것은
그 상황을 넘어서자 마자, 바로 세상적인 부와 상황이나, 환경적인 큰 변화는 아직 주시지 않았지만, 그보다 먼저 마음의 평안과 안식을 주셨고, 무엇보다! 주님을 알게 하셨고, 처음으로 주님을 만나게 하셨었는데,
그럼에도 불구하고,그때 깨달았던 주님의 사랑과 어떤 상황에서도 주님을 믿고,의지해야 한다는 것을 난 종종 잊어버린다는 것이다!
그래서 환경에 의한 고난이나, 아픔 ,질병, 열등감 등등 수많은 광풍이 내 인생에 휘몰아 칠 때 마다 또다시 허둥대면서 주님을 믿고,기다리며 인내하지 못한다는 것이다.
아마 예전보다 더 큰 고난이나 아픔이 다가오면 [지금의 믿음의 분량을 가진 나라면..]어쩌면 주님과 함께 배에 올라탔던 제자들의 모습을 보일지도 모른다는 경고의 싸인이 내게 울리고 있다.

얼마나 주님 보시기에 안타까운 모습인가?

난 절대 주님을 잃어버리는 실수는 다시 하고 싶지 않다.
난 절대 믿음을 잃어버리는 잘못은 더 이상 저지르고 싶지 않다.
돈을 잃어버린 것을, 명예를 잃어버린 것을,자존심을 다치게 된 것을,
편안했던 환경을 잃어버린 것을 슬퍼하고,괴로워만 하기 보다,
내 안에 계신 주님을! 바로 믿음!을 잃어버린 것이 더 큰 아픔이란 사실을 난 가슴에 꼭 간직하고 살 것이다!
이 번주 과제를 하다가도 동일하게 이 마음을 갖게 하셨다.너무나 감사하게도..

주님!
고난 앞엔 장사 없다고 하셨는데,정말 그런 것 같습니다.
하지만 지금보다 더 큰 힘겨움이 있다 하더라도, 고난이 다가온다 하더라고,
그때마다 지금 제가 깨달은 오늘의 책망의 말씀이 기억났으면 좋겠습니다.
그래서 주님을 다시는 잃어버리지 않고 싶습니다.
광풍을 말씀으로 잠잠하게 하실 수 있는 그 주님이 바로 제 안에서 살아계심을 잊지 않고 싶습니다.
그리고 주님께서 제 고난을 끝나게 해 주실 때까지 인내하면서,
제 뜻,제 바램,제 의지로 인해 주님의 뜻이 가리워지지 않도록 겸손하게 훈련에 임할 수 있도록 더 많이 노력하겠습니다.
오늘의 이 책망! 감사 드리며, 예수님 이름으로 기도 드리옵나이다.아멘~

유광옥

2005-09-20 07:59:13

내가 주님께 요구하고 바라는 것은 너무도 많다.그러나 주님은 오직
한가지 나에게 믿음만을 바라신다.그럼에도 불구하고 내 믿음은 지금
어느 정도 훈련되고 어느 정도 채워져 있는가? 생각하게 한다.
심한 강풍이 나에게 닥쳐 올때 요동치지 않을 믿음의 확신이 몇%나 될까?
나는 모른다. 하지만 내가 알고 있는 것은 지금 부터라도 떨지 않고 맞서기
위해 믿음으로 훈련되어 지고 싶다는 소망이 있다는 것이다.

제자훈련을 시작하고 나서 예수님의 참 제자에 대해 생각해 본 적이
있다.내가 과연 될 수 있을까 하는 의심이 앞섰다. 이것 또한 믿음의
부족 이었지만 나를 만드시는 분은 주님 이신 것을 내가 아닌 것을..
.
내가 동으로 가도 그가 아니 계시고, 서로 가도 보이지 아니하며,
그가 남에서 일하나 내가 만날 수 없고, 그가 북으로 돌이키나 뵈올 수 없구나.
그러나 나의 가는 길을 오직 그가 아시나니 그가 나를 단련하신 후에는
내가 정금같이 나오리라’는 욥과 같이, 평소에는 하나님을 ‘아버지’라고 불렀
지만 십자가의 죽음 앞에서는 오히려 ‘하나님’이라고 부르며 하나님을 더
높이며 요동치 않는 믿음을 우리에게 보여 주셨던 주님의 참된 믿음이
내안에 가득 차기를 기도 해 본다.



이용규목사

2005-09-20 12:46:20

여러분들의 깊이 있는 말씀 묵상과 적용에 늘 감사합니다.
많은 분들의 리플을 통한 나눔을 통해서 저도 은혜의 지경을 넓혀가고 있음을 고백합니다.
수정을 하다보니 벌써 약 2시간이나 지나가 버렸네요.
표시가 안날지도 모르지만 여러분이 은혜받는데 조금이라도 보탬이 되었으면 하는 마음에 조금 수정 보완을 했습니다.
주님의 생수의 강이 여러분 속에 더 많이 흘러 넘치길 기도합니다.

이용준

2005-09-20 17:44:56

이번 제자훈련 일지에 가장 앞에 선아후주라 크게 써놨습니다
선아후주 선아후주 잊어버리고 싶지 않기 때문에
말씀에 은혜를 받고 그것을 실천하려면
의외로 상당한 집중력이 필요한 것을 느끼게 됩니다
몸에 익숙해 질때까지 실패를 거듭하는 인내도 필요하고...
그래도 실패하고 또 실패해도 주님께서는 나를 사랑하시고
붙잡아 주실것을 믿고 도전하겠습니다

최수연

2005-09-20 20:36:42

제자훈련의 뜨거운 열기가 여기까지 생생하게 느껴지면서..
한편으론, 일본에서 같이 제자훈련을 받지 못하는 상황이
너무나 안타까울 따름입니다..
리플의 나눔이 이렇게 은혜로운지~ 세삼 깨닫습니다..
또 이용규 목사님의 리얼하신 설교말씀..직접 설교를 듣고 있는것 같습니다..
이렇게 귀한 말씀이 또 어디 있을찌?? 하는 생각도 들면서..

저도 욥의 믿음처럼 정말 하나님이 나와 함께함이 느껴지지 않을때에도
그분만 신뢰하길 원합니다..
나를 단련시키시고, 나를 더욱 성장시키시기 위해서라면..
그 어떠한 상황에서도 강한 믿음으로 나아가길 원합니다..
그리고, 상황에 따라 흔들리는 간사한 믿음이 아니길 원합니다..

'이유를 묻고 싶지도 않습니다. 그분이 나보다 지혜로우니까요'
요셉이 했던 말처럼
나의 주관자이신 그분을 완전히 믿고, 완전히 나의 삶을 맡기는 제가
되고 싶습니다..

갈수록 그 은혜가 더 해지는 제자훈련~
주님이 함께 하심이 오늘따라 더욱 뜨겁게 느껴집니다..
할렐루야~!!!

최현경

2005-09-20 22:23:37

주님은 지금도 나의 생활 속에서 나를 훈련시키시고 단련시키신다.
그래서 정말 주님의 참 제자가 되길 원하신다.
지금 나의 믿음은 주님 보시기에 어떤 믿음일까?
내 인생에 광풍이 불어닥쳤을 때 나는 어떤 모습으로 대처했던가?
일단 인간적인 내 얄팍한 지식을 다 동원해서 있는 거 없는 거 다 해보고, 그제서야 안되면 "주님! 제가 왔습니다. 저를 도와주세요."하며 돌아왔던 나...
지금까지의 나의 믿음 생활을 돌아 보았을 때 나는 늘 이렇게 바보짓을 반복해 왔다.
그러기에 꼬이고 얽히고 답답하기만 했던 내 모습들... 예전 같았으면 이런 내 모습을 돌아보며, 자책하고 한탄하느라 또 허송세월을 보냈을지도 모른다.
이제는 그런 어리석은 인생을 살지 않을 것이다. 지금까지 나의 모습은 너무나도 어리석고 연약하고 나약했지만, 그런 나의 모습도 주님께서 들어 쓰신다면 너무나도 귀한 존재로 바뀜을 깨달았기 때문이다.
나는 어렸을 때부터 두려움이 생기면 그 두려움에 사로잡혀 더 걱정하고 최악의 경우를 떠올리곤 하였다. 그렇게 하면 나중의 결과는 내가 생각했던 것 보다는 나았기 때문에... 이제는 두려움이 밀려올때마다 그 두려움과 하나되는 것이 아니라, 주님의 말씀을 붙잡고 두려움을 몰아내고 앞으로 일어날 승리의 일들을 기대하기로 했다.
앞으로 내 인생에 여러 모양의 광풍이 불어닥칠 것이다. 그때마다 그 광풍을 꾸짖으셨던 주님을 믿고 의지하고 싶다.

주님! 이제는 저의 믿음이 흔들리지 않는, 변질됨이 없는 정금과 같은 믿음이 되길 소망합니다. 아직도 저는 훈련을 많이 받아야 하지만, 그것들을 기쁨으로 받아서 주님이 원하시는 믿음의 모습으로 변하길 원합니다. 그래서 잘했다 칭찬받는 주님의 딸이 되길 기도합니다. 주님, 날마다 주님을 사모하며, 주님의 임재속에 거하여 주님의 평안함에 잠길 수 있도록 도와주세요. 예수님의 이름으로 기도합니다. 아멘...

장수미

2005-09-20 22:39:41

정말 어려운 상황이 오고 고난이 오면 난 주님 이것만 지나가게 해주고 잘 해결해 주시면 주님 더 잘 믿고 열심히 봉사 할께요라고 기도 한 적이 많다.우선 이 상황만 벗어나고 싶고 그럼 진짜로 잘 할꺼 같기도 해서 주님께 그렇게 기도 했었다.먼저 믿음을 보이기 전에 주님이 보여 주시기만 바란 내가 너무 챙피하고 마가복음에 나온 제자들에서 내 모습이 비춰져 너무 뜨끔했다.고난이 없을때 힘들지 않을때는 난 어떤 고난이 와도 변하지 않을꺼야 주님이 지켜주시니까 그러면서 조금이라도 작은 시련이 오면 금방 무너져버린 내 모습이다.이번 제자 훈련을 통해서 많이 단련되기를 바란다.아무리 큰 고난이 와도 주님 감사합니다.절 단련 시키실려고 또 고난 주셨군요.이번은 주님 어떻게 훈련 시키셔서 절 크게 해주실껀가요 감사 기도 드릴수 있는 제가 될수 있도록 훈련 시켜주십시요.

김기웅

2005-09-20 23:25:33

제자훈련의 어떠한 과제물보다 제일 중요한것은 주일 말씀을
잘 이해하는것이란 말이 떠오릅니다. 그리고, 실천하는 것일
텐데, 그러니까, 곧 청종이란 것일텐데...세번을 읽어 내려갔습니다.
100%의 내 무능과 100%의 내 부패속에서 오직 하나님의 믿기지
않는 은혜로 내가 구원받음을 깨닫는것만이 내가 죽는 그날까지의
인간도리더군여...사람구실할날 올지... 하나님 불쌍이 여기소서...
훈련을 통하여서라도 사람구실하게 해주십시요...

木下 

2005-09-21 00:35:19

「純金」のような信仰について考えました。以前聞いたことですが、「純金」と「合金」には大きな違いがあるそうです
「純金」は100%「金」でしなやかで丈夫であり、不純物の入っている「合金」は、一見して「純金」のように見えますが「純金」より硬くて壊れやすいそうです。
 私はこの弟子たちのように 見た目には「信仰」を持っているように見えても、試練があるとき、簡単に、つまづいてしまうことがあります。「信仰」を「金」と考えたなら、まさしく私の「信仰」は後者の「合金」であるでしょう。
 しかし、私は次のように考えたいと思います。「合金」であっても高温の炉で温めると、「不純物」が表面に浮き出てきて、それを除去する作業を繰り返していけば「純金」を作ることができるでしょう。私のような「合金」に等しい「信仰」であっても、「純金」のような「信仰」を作ることができるという希望があると思います。 私の「信仰」から日々「不純物」が除去してくださいますように。

박유진

2005-09-21 01:00:36

이번주 말씀을 읽으면서, 제 믿음의 모습을 되돌아보게 되었습니다.
광풍은 커녕, 작은 산들바람 앞에서도 무너지는 모습을 보면서,
주님이 얼마나 많이 실망하셨을까...하는 생각이 듭니다.

아침에 일찍 일어나서 큐티를 해야지..하며 항상 시계를 맞춰 놓습니다.
그런데, 이번주는 거의 일어나지 못했습니다.
어젯밤에 늦게 잤으니까, 어쩔수 없지, 뭐...
오후에 해도 되겠지...시간이 갈수록, 점점 제 자신에게 핑계가 생깁니다.

상황에 따라 변하지 않는 것이 정금같은 믿음이라고 했는데,
수시로 상황에 맞춰 내가 좋을 대로 하고 있었습니다.

"믿음의 선포는 환경을 변화시킨다"고 하셨습니다.
우선 작은 것부터-아침에 큐티하기-실천해보려고 합니다.
밤에 늦게 자서 아침에 못 일어나는 것이 아니라,
주님께 그러한 환경에서라도 제 믿음의 모습을 보여드리고 싶습니다.
작은 바람에서부터 승리하기 시작하면,
나중에 광풍이 불어올 때, 반드시 믿음의 모습을 주님께 보여드릴 수
있을 것 같습니다.

사랑의 주님이심에도 불구하고, 믿음에 관하여서는 "심하게" 책망하셨다고
합니다. 그만큼 믿음이 중요하다는 것이겠지요.
야단맞는 걸 싫어하지 않고, 그 책망으로 인해서 오히려 더 큰 은혜를
깨닫게 되길 원합니다.

주님...지금까지의 제 믿음을 용서해주세요.
그리고, 작은 것에서부터 믿음의 모습을 보여드리는 제가 되도록
붙들어주세요. 욥처럼, 사면이 보이지 않는 환경에 처하더라도,
정금같이 나올 것을 믿고 나갈 수 있도록 인도해주세요...

박은주

2005-09-21 01:41:42

주님은 우리가 그분의 참 제자로 삼기 위해서 마가복음 4장을 통해서 제자훈련의 모습들을 보여주신줄 믿습니다. 두려움이 없는 삶, 참 믿음의 제자로서의 삶이 어떤 것인지를 너무도 잘 보여주시고 계시는데 
말씀을 배워도 흘려 들어버리고 적용과 실천은 정말 엄청난 믿음을 요하는 것 마냥 엄살부리며 행동해 왔습니다.
그러니 시험이 오면 백전백패 할 수 밖에 없는 것이 당연하고 믿음의 담대함이 아니라 두려움의 고백으로 떨 수 밖에 없었던 것 같습니다.
담대하고 능력있게 그리스도의 제자로서 주님의 일 하라고 부르셨는데 날마다 조금씩 연단되고 바뀌어서 주님이 책망하는 제자가 아니라 칭찬받는 제자로 쓰임받기 원합니다.
  

박정선

2005-09-21 02:08:35

하나님이 말씀을 주시고 고난가운데 밀어넣어 실습을 시키는 것은 정금같은 믿음의 소유자로 성장시키기 위해서다.
두려움 걱정 근심이 있다는 것은 믿음이 없다는 증거라고 했는데
설사 두려움과 걱정의 생각이 와도 주님을 담대히 고백하고 털어버리는 것이 믿음이라 생각하는데 나는 종종 두려움과 근심걱정의 생각들을 키우고 있는 자신을 발견한다.
하나님은 말씀을 통해 믿음의 씨앗을 우리 맘에 주셨다. 이 믿음의 씨앗이 잘 심겨져 풍성한 열매맺는것이 하나님 뜻인데
사탄이 주는 생각에 이 씨앗을 지키지 못하고 뺐겨 버리던가, 어떨때는 무지하게도 그 씨앗의 소중함을 모르고 스스로 버려버리기도 한다.
하나님은 제자들을 실습의 현장에 데려가셨던 것 처럼 우리도 그 현장으로 데려가 믿음을 보시고자 하실 것이다.
내가 그 때 주님께 어떤 모습을 보여드릴수 있을까 두렵고 떨리는 맘으로 늘 주님이 곁에 계심을 고백하고 주님을 찾아야 한다.
내 믿음의 씨앗은 이제 겨우 심겨졌는지 이제 겨우 싹이 나기 시작했는지 모른다.
하지만 내 생각과 내 마음을 빼앗기지 아니하면 자라고 열매맺게 하시는 분은 주님이신것을 믿기에 내 믿음없음을 주님께 간구한다.

김부영

2005-09-21 03:33:30

인간은 너무나 연약하고 악해서 그런 첨담한 상항이 닥칠때
목사님께서 위에서 설명했듯이 '가식적인 믿음의 표현을 할수 없는 환경'
그런 동서남북 꽉막힌 상황에서 누가 주님만 온전히 의지할것이라 장담
할수 있을까 우리 주위에 정금같은 믿음을 가진사람이 누가 있을까?
나의 믿음은 많고 적음을 떠나 진짜일까 가짜일까?
많은 생각을 해 봤다

믿음이란 맡기는 것이라고 목사님께서 예전에 말씀하셨는데
정금같은 믿음은 100%맡기는 것이고 100%맡기는건 온전히 맡기는것인데
그 온전한 믿음을 갖기 위해서는 욥기에서는 나를 단련하신 후에 내가 정금
같은 믿음을 가질수 있다고 했는데 나는 요즘 단련을 받고 있다
단련, 훈련 그냥 집에서 놀고 있었더라면 훈련이란 단어를 내가 쓸수 있었을까
제자훈련 시작한 날, 그 다음날 부터 난 새로운 직장에서 시간을 쪼개가며
아침마다 회사에 조금 일찍가서 조금이라고 숙제를 해야한다는 생각에
난장판을 치르고 회사에 와서 조금 숙제하고나면 금방 10가 되서 청소를 하고
그리고 내가 할 일이 없는 시간에도 다른사람 눈치채지 못하게
성경암송하고 성경구절로 워드연습하고 하루가 어떻게 지나가는지!
나의 가는 길을 말씀대로 주님께서 아시고 또 준비해 주신것을 믿고
지금 이 제자훈련이 나를 단련
시키시려는 주님의 뜻을 깨닫고 오직믿음으로 향해 달려 나갈것을
오늘 이시간 다짐합니다.

라문진

2005-09-21 04:09:31

제자훈련의 핵심은 '가르쳐 지키게 하는것'이고, 그것은 실습만을 통해서 이루어진다. 그 실습은 말씀적용, 말씀실천, 말씀순종훈련이다. 지난 제자훈련시간에 내믿음의 약함을 얘기했었다. 솔직한 모습이었지만 부끄러운 모습이기도 했다. 언제까지고 내 믿음없음을 고백하고 있을수만은 없다. 이번 훈련을 통해서 말씀의 적용과 실천과 순종을 통해서 내가 믿음의 제자가 되기를 바란다. 그래서 주님에게 '딸아~ 네 믿음이 크도다 '하는 칭찬을 받는 제자가 되고싶다.

최현숙

2005-09-21 04:34:49

이번주도 나눔의 리플이 말씀과 더불어 내 마음을 감동시키는 군요.
이 모두가 제자훈련의 한 과정이라고 생각하니 저도 더 열심히 훈련에 임해야
겠다는 각오가 다져집니다. 진솔한 삶의 나눔이 저로 하여금 눈물을 글썽이게도
하고, 행복한 마음을 갖게도 만들어서 너무 좋아요.

지난주에 소그룹 모임에서 하나님에 대해서 함께 나눴었는데, 다윗이
찬양하시는 하나님의 모습과, 욥이 주님을 찬양하는 하나님의
모습을 말씀으로 보여주셨다.
두분다, 어떤 환경에서든지 하나님을 찬양하는 믿음의 거장들이다.
그런데, 다윗이 찬양하는 하나님보다는 내게는 모든것을 다 잃고 절망
가운데서도 생명, 소유물 모두가 내것이 아니라고 고백하면서
하나님의 주인되심을 고백하며 여호와의 이름을 찬송할뿐이라고 한
욥의 고백을 묵상하면서 이전에 가져보지 못한 새로운 사실을 깨닫게 되었다.
욥의 고난이 끝나고 하나님은 욥의 말년에 처음보다 더 많은 복을 주셨다고
했다. 그의 소유물이 엄청났으며 일곱아들과 세 딸은 아름다운 여인이였다고 했다. 그후 욥이 140년을 살면서 자손을 4대까지 보았다는 말씀에 나는
은혜롭지 못한 생각을 했었다. 모든 것을 다 잃고 주님께서 다시 회복시켜
주셨지만 이전의 죽은 자식들의 대한 상처는 어떡하라고.....
그런데 난 욥의 고백을 통해서 하나님의 비밀과 흔들리지 않는 욥의 믿음을 보게 된것이다.
과거의 아픈상처는 이미 주님의 손으로 닦아 주셨고, 과거보다는 지금의 이모습으로 주님을 찬양하는 그 아름다운 욥의 모습이 바로 하나님이 귀히 여기는 믿음의 모습이 아닐까 생각을 하게 된것이다.
과거에 매여 있었다면, 욥은 주님을 찬양할수 없었을 것이다.
그러나 너무나 감사하게 하나님은 우리의 상처를 치유해주실땐 과거의 아픈
상처도 치유해 주셔서 자유케 해 주신다는 사실을 알게 되니 내가 어찌 주님을
찬양하지 않을수 있을까?

이야기 주제가 잠시 옆으로 빗나갔지만, 오늘 제자들이 회복해야 될 모습이
바로 욥의 모습이 아닌가 하는 생각을 하면서, 내게도 적용됨을 보게 된다.
제자 훈련장은 마가복음 4장이라는 목사님 말씀에 무릎을 치게 했다.
예수님은 제자들의 믿음을 테스트 해보고 싶은 마음에 광풍이란 환경을
설정해 놓고 그들의 대처 하는 모습을 통해 믿음을 보고자 했지만,
모두가 낙방하고 말았다.
[아마도 예수님은 제자들이 바다를 잘 알았기에 테스트의 환경이 제자들에게
어렵지 않을 것 이라고 생각했을 것이다.]
사실, 제자들에게 있어 바다는 그들의 경험상 그렇게 어려운 환경은 아니였다.
그들이 바다에서 고기를 잡을때에 어쩌면 몇번은 만났을 환경이였는지도
모르겠지만, 오늘밤 바다는 그들이 경험한 바다와 많이 달랐다는 판단과
자신의 목숨이 위태함에 이전에 주님께 듣고, 배웠던 말씀은 송두리채
사라져 버렸고, 주님의 권능의 능력조차 기억할수 없었던 모양이다.
그래서, 주님 주님 하면서 따랐던, 그들이 다급해지자 선생님이라고 호칭
한 것을 보면,,,,
이 모습을 보면서 내가 제자들과 별반 다르지 않다는 생각을 해 봤다.
내가 그 현장에 있었다면 나는 더 심하지 않았을까.....
믿음없이 요동치는 바다위에 떠 있는 배 처럼,,,,

주님이 제자들에게 전수해주고 싶은 것이 무엇이었나?
믿음이다.!! 믿음!!
이 믿음이 없어서 내가 처한 환경속에 푹 빠져 버려 헤어나질 못했고.
이 믿음이 없어서 주님의 말씀에 순종함이 없었고.
이 믿음이 없어서 주님의 능력을 의심한 적이 얼마나 많았나?
주님! 그러나 넘어져도 다시 일어날수 있는 자비를 주심이 또한
얼마나 큰 감사함인지.....

이제 제자훈련을 통해 믿음을 확실히 전수받아 이 믿음 전하는
주님의 확실한 제자의 삶을 기쁨으로 감당하겠습니다.
겁쟁이 제자들이 변화되어 모두가 복음들고 세상에 나가 담대히 주님을 증거했던
그 모습이 내게도 소망으로 다가옵니다

김정아

2005-09-21 05:51:06

제자들의 모습과 나의 모습을 떠올려 보았습니다.
광픙에 혼비백산한 제자들.. 주님이 그 배에 계심에도 불구하고.... 그들이 두려워 한 것은 다름아닌 오직 광풍만이 눈에 들어왔기 때문일 것입니다.. 삶 속에서 아주 작은 일이나 문제들은 스스로 해결합니다... 그러나 때때로 내가 감당하기 힘든 일은 그제서야 주님앞에 내어옵니다...그럼에도 불구하고 그 문제를 생각할 때마다.. 늘 내 맘속에 걱정과 근심 두려움이 가득합니다..
이게 저의 일상 신앙생활이었던것 같습니다... 전적으로 주님을 의지하지 않았기에... 두려움이 가득했겠지요..
전적으로 의지하지 않았기에 내 스스로 해결하려고 했지요... 그러면서 주께서 응답주시지 않으면 그저 제자들처럼 혼비백산하며 문제와 현상을 보며 두려워했지요... 왜그리 광풍이 커 보이는지... 우리 주님이 더 커보이는 것이 아니라 당장 눈에 보이는 문제가 크게 보이고 힘들게 느껴졌어요.. 지금도 주님은 말씀하고 계십니다.. 믿음이 적은 자여.. 어찌 무서워 하느냐....
정금 같은 믿음은 상황에 따라서 변하지 않는다고 말씀하셨는데....

이제는 정금같은 믿음으로 나아오기 위해 삶의 현장에서 믿음의 훈련을.......
가르쳐 지키게 하는 믿음의 훈련을........열심히 받을것입니다.....
아직은 시작단계로 조금의 기복은 있지만 ... 다시 힘을 내어 봅니다... 화팅 !!

인선정

2005-09-21 13:10:50

우선 이번주 1시예배 참석하지 못한거 목사님께 개인적으로 사과드립니다. 언제부터인지 모르겠지만 불규칙한 라이프 싸이클이 일상이 되어 버려 주말엔 정말로 정말로 게을러져 버리게 되었습니다. 정말로 창피합니다. ㅠ.ㅠ
광풍에 동요하는 제자와 꾸짖는 예수님의 일화는 3시 예배에서 말씀을 들어 적을 수 있을거 같습니다. ^^;
이 예화를 통해 예수님은 제자들의 믿음 없을 통해 인간적인 실망감을 보여주시고, 또 쉽게 흔들리는 보통사람들의 믿음에 대해 우리들을 꾸짓고 참 된 예수님의 제자의 길을 가르쳐주고 계시다고 생각합니다.
그런데 그 믿음이라는게 정확히 무엇을 의미하는 걸까요?
예수님께서 말씀하신 진리를 믿고 따르는 것과 제자들이 광풍에 동요하는 것과 얼뜻 상관없어 보입니다. 예수님의 말씀을 배우고 따라도 살면서 힘든 일이 있는 것은 당연합니다. 어쩌면 예수님의 말씀을 따르며 사는 것이 세상 살기 더 어려운 거처럼 생각되어 질 수 있습니다. 고난과 역경이 있으면 그 때마다 좌절도 하고 화도 나지만, 믿음이 있는자는 왜 그러면 안되는지, 그러한 마음이 왜 예수님을 실망시키는 마음인지는 그 이유는 세상 사람들처럼 하나님을 의지하지 않고 눈에 보이는 것에 의지해서가 아닌가 생각합니다. 하나님께서 자비하셔서 히브리서 11장에 믿음에 대해 직접 설명해 주시기도 하셨습니다. 믿음은 아파도 병원에 안 가고, 성적이 나빠도 공부도 안 하면서 하나님께서 다 해주신다는 게으름이 아니고, 고난이 닥칠때(아프거나 성적이 나쁘거나, 지금의 저처럼 일본어가 전혀 나아질 기미가 안 보일때 -_-;;) 주께서 함께 하시면 그 위기를 극복 할 수 있다는 용기라고 생각합니다. 지금 저에게 믿음이 너무나 절실함을 고백합니다.

노재훈

2005-09-22 04:13:59

로마서 10:17 에 "그러므로 믿음은 들음에서 나며 들음은 그리스도의 말씀으로 말미암았느니라" 라고 적혀있습니다.
위의 내용중에 "설교를 아무리 많이 들어도 사람들이 변하지 않는 것이 이 때문이다. 사람은 그것을 지켜 행할 때에 비로소 변하기 시작한다. 듣는 것만으로 변한다는 것은 계란으로 바위치기와 같은 무모한 짓에 불과하다." 라는 구절이 있습니다.

"하나님의 말씀은 살았고 운동력이 있어 좌우에 날선 어떤 검보다도 예리하여 혼과 영과 및 관절과 골수를 찔러 쪼개기까지 하며 또 마음의 생각과 뜻을 감찰하나니" 라는 성경의 내용을 볼때 말씀은 정적이 아니라 동적인것이 아닌가요 .....목사님께서 제자훈련에 관한부분을 너무 강조하신것이 아닌가라는 생각이 듭니다.
말씀을 듣고 행하고 변화된 사람도 많이 있다고 생각됩니다.
말씀을 보면서 조금 의문이 나는 개인적인 생각을 적어보았습니다.
QT----
제자훈련을 통해서 정말 욥과 같은 정금같은 믿음의 소유자로 어떤 어려운 환경에서도 예수님처럼 믿음으로 달려나가는 사람으로 다시태어납니다.
["환경 따라 주님의 모습이 달라지는 것이 아니라, 주님 따라 환경이 달라지는 것이다.이런 점에서 예수님의 믿음은 참으로 귀하다.예수님은 평소에는 하나님을 ‘아버지’라고 즐겨 불렀다. 그러나 십자가의 죽음 앞에서는 오히려 ‘하나님’이라고 부르며 하나님을 더 높이며 요동치 않는 믿음을 우리에게 보여 주셨던 것이다. 어려울 때 의심하고 부정하는 우리와 너무나 잘 대조가 된다."]
환경에 따라 변하는 나의 믿음을 볼때 참 안타깝다.강한부분은 대쪽같이 강한데 약한부분은 언제나 넘어지고 만다. 환경에 변하지 않았던 예수님의 모습을 보면서 이번 제자훈련을 통해서 내삶이 믿음이 바뀌어질것이다.
정말 날마다 예수님을 닮아갈려고 시간마다 순간마다 깨어있을려고 노력하고 있지만 약한부분에서 넘어지고 만다.
이번 제자훈련을 통해서 예수님께서 보여주셨던 요동치 않는 믿음을 우리에게 보여주신건 같이 환경에 굴하지 않는 믿음으로 업그레이드를 시키고 말겠다.
죽음앞에서도 두려움이 없었든 재암리교회의 성도님들처럼 나의 신앙과 믿음, 예수그리스도를 바꾸지않는 온전한 믿음의 소유자로 바뀔것이다.

김경희

2005-09-22 07:32:18

설교를 아무리 많이 들어도 사람들이 변하지 않는 이유는 그것을 지켜 행하지 않기 때문이라는 말씀에 큰은혜를 받았다.
모태신앙인 나는 주일날 설교를 들었어도 몇만번은 더들었을것이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나의 고집과 나쁜성격은 여전히 변하지 않고, 실제의 삶속에서 말씀에 실천이 되지를 않았었다.
믿음은 환경이 주는것이 아니라,주님따라서 환경이 달라져야 한다는 목사님의 말씀을 본받아,하루에 한가지씩 말씀실천을 하며,조금씩 변화되는 삶을 살고싶다.
아직은 너무나도 미흡하지만 이번 제자훈련을 통해 주님을 더욱사랑하며,말씀과 기도에 힘쓰는 모습으로 변화된 일년뒤에 나의 모습을 생각하니,벌써부터 가슴이 설레인다.
주님 좋은일은 제가 먼저 행하게 하옵시고,끝까지 할수있도록 인내와 지혜를 주옵소서!!!

홍인기

2005-09-22 07:47:07

바쁘다는 핑계로 리플이 늦어졌습니다.죄송합니다.
믿음에 관해 질책하신다면 정말이지...할말 없구나..하는 생각이 앞서는건 왜인지...
설교를 아무리 많이 들어도 사람들이 변하지 않는 것 그것이 행함이 없어서라는걸 이번 제자훈련을 통해서 절실히 느끼고 있습니다. 몇십년 교회에 다니면서 수도없이 설교를 듣고 많은 훈련을 받고 봉사하고......그런일들을 통해서도 이제껏 신앙지수가 우리나라 주가지수랑 반대로 흘러가고 있었음을 고백합니다.

그동안 제 삶 곳곳에 주님의 은혜가 넘치고 있는걸 알면서도 이는 필 내 주위에 있는 사람들...내가족들....이 날위해 기도해주고 있으니까...하며 당연스럽게 여겼을뿐 진작 내 스스로 기도하고 하나님께 매달린건 어려운 난관에 부딪쳤을때...뿐이였습니다.

가끔 사랑과 은혜가 충만하신 하나님이 무섭다 느낄때가 있었습니다. 물론 은혜가 아닌 죄와 탐욕에 충성할때였습니다. 꼭 그럴때마다 회개케하시고 용서를 구하게 하시는것도 하나님이셨습니다.
가끔 욥의 얘기를 떠올리며....무섭다...조심해야지...생각만했지....그의 믿음을 닮아보자...이런생각은 별로 안했던것 같습니다.

하나님의 전능하심...예수님의 권세....
한치의 의심없는...그런 절대적인 믿음을 가져야 하는데....
하잘것 없는 지진따위에 쫄아있던 제 자신의 어리석음을...이번설교를 통해 깨닫게 되었습니다.

훈련-실습 이 두단어를.....이제부터 하나의 단어로 기억하도록 노력하겠습니다.

김철중

2005-09-22 10:11:37

이전까지는 폭풍을 잔잔하게 하신 예수님의 구절을 읽으며 역시 조물주로서의 능력이 십분 발휘되는 극적인 장면이라고만 생각했었다.
폭풍을 잠잠케하신 성과에만 집착한 나머지 전후 배경과 예수님의 심중은 전혀 읽지를 못했다. 목사님 설교를 통해 그것이 제자들을 보호하기위한 조치가 아니라 제자들을 훈련시키시려는 예수님의 마음을 느낄 수 있었다. 또한 4복음서를 제자훈련이라는 맥락에서 다시한번 생각해 보게 되니 앞뒤가 연결이 됨을 알 수 있었다.

마태복음 15장 31절에 다시한번 바다에서 베드로를 시험하시고 물에빠진 베드로를 건지시며 "믿음이 적은자여 왜 의심하였느냐 "라고 안타까와 하시는 구절이 연결이 된다. 풍랑을 잔잔하게 하신 이후 병자들을 고치는 기적을 보이시고 오병이어의 기적이 일어난 직후 예수님은 다시한번 제자들을 반복 훈련시키신 것이다. 물론 이때에도 예수님의 기대에는 미치지 못했지만 전과는 다른 태도를 보이며 예수님처럼 물위도 따라서 걸어보려는 시도를 한것으로 보아 상당한 제자 훈련의 성과를 거두신것 같다.

지금은 폭풍에 여지없이 휩사이는 부족한 모습이지만 6개월이 지난 나의 모습을 기대해 본다.

김민정

2005-09-22 14:26:31

‘내가 동으로 가도 그가 아니 계시고, 서로 가도 보이지 아니하며,
그가 남에서 일하나 내가 만날 수 없고, 그가 북으로 돌이키나 뵈올 수 없구나.
그러나 나의 가는 길을 오직 그가 아시나니
그가 나를 단련하신 후에는
내가 정금같이 나오리라’(욥23:8-10)

제가 일본에 오기 전이 바로 이런 상황이어서 이 말씀이 더욱 간절하게 마음에 와 닿습니다.
바로 앞인 내일초자 내가 무엇을 해야하는지 알 수 없어 눈물만 흘렸던 시간은 주님께서 저를 더욱 단단하게 하시려고 주신 귀한 시간이었음을 이제와 깨닫고 고백을 합니다.
그 고통스러웠던 시간에 제가 얼마나 주님을 간절히 찾고 주님께 어떠한 기도를 했었는지 다시 생각해보았습니다.
아마도 폭풍속에 두려워만 했던 제자들의 모습이 '바로 나의 모습이구나' 생각이 듭니다.
그런데도 주님, 저를 꾸짖기는커녕 오히려 '그래, 여기 너 갈곳있다'하시고 인도하여주셨습니다.
주님은 정말 화를 잘 참는 분이신것 같습니다. 곧 응답해줄텐데... 잠깐 쉬면서 여유를 가져도 되는데... 그 사이를 못참고 징징거리기만 했던 저를 끝까지 참아주셨습니다.
이제와 생각해보니 조금만 더 징징거리며 졸랐으면 ‘믿음이 없는 자여 내가 얼마나 너를 참으리요’(막9:19) 의 말씀으로 혼났을지도 모르겠습니다.
요즘 기도와 말씀으로 시작하는 하루가 얼마나 은혜롭고 감사한지... 혼자 마음속으로 주님을 찾을때가 많습니다.
주님, 이 모든 것에 감사합니다. 주님, 사랑합니다.

배미화

2005-09-23 06:24:08

힘들고 어려운 고난이 닥쳤을때 왜 난 주님을 먼저 찾는 게 잘 안될까?
세상적인 생각으로 해결해 볼려고 애를 쓰고 발버둥을 쳐도
잘 해결이 되지 않으면 그제서야 주님을 찾은 날 발견했습니다.

더 빨리 해결해 주실것도 내가 믿음이 약하기에
뜸을 들이고 계시다가 늦게 나마 내가 주님을 찾으면 그땐 이렇게 말씀하시는것 같다. "그래 내 딸아! 곧장 나에게 오지않고 어디서 헤매다가 이제서야 온거니 ?"

이런 적이 한두번이 아니다. 부끄러운 고백을 하고자 합니다.
한번은 올초에 우리교회 윤희자매랑 스키장에 놀러간적이 있었다.
우리둘은 보드를 렌탈해서 탔었는데 보드를 세워놓고 잠깐 어디 갔다온 사이에 보드 하나가 없어진 것이다.
난 조금 전 내 옅을 지나간 어떤 사람을 의심했고 분명히 그 사람이 훔쳐갔을거라고 그 스키장 사무실에 신고했다. 그리고 그 보드를 찾지 못할경우 얼마를 지불해야 되는지 물었고. 난 속으로 계산했다. 그쪽에서 얼마를 내라고하던 나는 1만엔까지만 지불해야지.......혼자 각본짜고 연기하고 쇼를 했다.

근데. 결국 보드을 찾았다.
글쎄. 눈위에 세워둔 보드가 미끄러져 밑으로 내려간 것이였다.
난 속으로 1만엔 벌었구나 하며 룰루랄라 좋아했다.
그런데 옅에 있던 윤희의 말에 난 얼굴이 화끈거리고 죄스러웠다.
윤희는 보드를 잃어버린걸 안 그 순간부터 마음속으로 계속 하나님께
기도했다고 한다.
그러면서 내게 물었다. ”언니도 하나님께 기도했죠?”

내 신앙생활과 믿음이 넘 약함을 깨달았다.
주일날 교회만 왔다갔다 하고 말로는 믿니 어쩌니 하면서 주님과 동떨어져서 생활하고 있는 날 발견했다.
그 뒤로 오직 주님 오직 믿음 을 잃어버리지 않을려고 부단히 노력중이다.

얼마전 회사에선 인간관계로 이런 비슷한 경험을 한 적이 있다.
밉고 싫은 사람에게 속으로... 그래 두고보자 누가 이기나....
하지만 전혀 관계회복이 되질않자 비로소 무릎끓고 울면서 기도했다.
내 죄사함과 그 사람을 위해..........
그 뒤 그사람과의 사이는 많이 회복됐고 . 요즘은 좋게 지낸다.

‘내가 동으로 가도 그가 아니 계시고, 서로 가도 보이지 아니하며,
그가 남에서 일하나 내가 만날 수 없고, 그가 북으로 돌이키나 뵈올 수 없구나.
그러나 나의 가는 길을 오직 그가 아시나니

그가 나를 단련하신 후에는
내가 정금같이 나오리라’(욥23:8-10)

그마나 나의 주님은 나와 함께 하며 내 기도에 응답해 주시니 이 얼마나 행복하고 감사한가.....(물론 응답이 없으면 없는대로 감사합니다ー이것도 얼마전에 깨달았음)
난 기도합니다. 과거에 셩격 나쁘고 모나고 믿음 없는 나를 단련시키고 훈련시켜
주님의 도구로 쓰여질것을....

주님. 믿음 하나로 주님께 달려가겠습니다.
제 마음을 제 기도를 받아주십시오.

유광옥

2005-09-23 07:56:51

목사님 말씀 읽고 은혜 받고 형제,자매님들 리플 읽으면서
은혜 받고 전 요즘 설교 리플 읽는 재미가 넘 좋네요.
하루하루 바쁜 생활 속에서 숙제하랴,암송하랴,독서물 읽으랴....
얼마나 힘드시겠어요.
하지만 우리 서로 중보 하면서 격려하고 힘내요.
하나님은 우릴 통해 하실 일을 기대 하십니다~~
꼭 기도 합시다.
제자훈련반 화이팅..

김태순

2005-09-24 10:10:34

믿음의 진가가 나타나는것은 환난이 왔을때 잘알수있다고 풍랑을 만난 제자들의 모습이 내모습처럼 느껴져 부끄럽게 느껴진다 우선 주님을 떠나 주의종들과의 관계을 돌아볼때 어떨때에는 목사님 어떨때에는 ...그런 나를 두고 하시는 말씀같아서 정말 이제 부터는 우직하게 그누가 보아도 진실한 크리스찬이 되어야지 환경에따라 움직이는 얆은 신자를 졸업하고 깊이있는 신자가 되고자 어떤 상황일지라도 주님을 주님이라 부를수 있도록 나의 내면의 신앙을 더욱 다지렵니다.

한영진

2006-07-16 09:54:15

9월에 새롭게 시작되는 제자훈련에 소망을 걸고 있는 지금,
나의 믿음은 어느 만큼일까.

나는 주님과 만난지 얼마되지않아
쌀 한톨 만큼의 크기도 되지 않는 믿음을 가슴에 품은채,
마음 한편으로는 늘 죄의식을 느끼며 교회에서 멀어져 있었습니다.
하지만 멀어져있던 그 시간들 속에서도 우리 주님께서는
겨우 그만한 믿음을 가진 저를 지켜주시고,
매일 새로운 깨달음을 주시고, 절 포기하지 않고 부르시고,
기다려주셨습니다.
저는 온전히 주님께 항복하였습니다.
굴욕의 백기를 든 패배의 항복이 아닌 넘치는 감사와 기쁨의 항복을.
세상에 나의 의지로 하지 못 할일이 없다고 믿었습니다.
세상지식도 어느 누구에게 지지않을 만큼 쌓아 왔다고 믿었습니다.
그러나 그것들은 정작 내 목숨이 위태로운 상황에서
아무런 도움이 되지 않았을 뿐더러, 오히려 나를 더욱 위태롭게 만들었습니다.
그런 나의 나약한 의지와 쓸모없는 고집을 버리고
온전히 주님께 항복하고 맡겼을때
저는 치료하심을 받아 오늘 이렇게 살아있습니다.
왜 나를 이렇게 병들게 하셨냐고 하나님을 삿대질하며 원망도 하였습니다.
하지만 그 암울하고 고통이였던 시간은 이제 제게 가장 큰 보물이 되었습니다.
그 고통의 시간이 있었기에 오늘 저는 더욱 감사드릴 수 있습니다.
이제 저는 쌀한톨만한 믿음을 제자훈련을 통해 우리 하나님께서 기뻐하실 만큼
키워보고자 합니다.
전과 다른 의미로 다가오는 말씀, 그 말씀을 적용하려는 노력과 결과에서
오는 순수한 기쁨.
제자훈련은 준비하는 과정에서 부터 저를 행복하게 합니다.
순종의 결의를 매일 다집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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