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중앙영광교회

은혜 받은 자의 모습

이용규목사, 2005-08-13 22:45:1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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은혜 받은 자의 모습

말씀//마태복음18:21-35

인생을 살다가 보면 도저히 용서할 수 없는 사람을 만나는 경우가 있다.
내 인생을 송두리째 빼앗아 갔거나, 내 사업을 망하게 했거나, 심지어 내 가족을 죽인 사람을 만나면 제 정신으로는 도저히 용서를 할 수가 없다.
지난번에 일본에서도 어떤 남자가 길에서 놀고 있던 3, 4살의 두 어린이를 강에 던져 죽인 사건이 있었는데, 재판관이 내린 판결이 부당하니 더 중한 형벌을 내려야 한다고 항의를 하는 뉴스를 보았다. 복수가 인생의 목표이고, 복수심이 인생의 원동력인 사람들도 간혹 있다.
그러나 믿음의 사람은, 용서가 인생의 목적이 되고, 하나님의 은혜가 그 원동력이 되어야 한다.
끓어 오르는 복수의 에너지를 용서의 에너지로 바꾸어 주는 능력은 '하나님의 은혜' 밖에 없다.
오늘 본문을 통해서 예수님께서는 용서에 대해서 납득하기 어려운 말씀을 하신다.
‘형제가 내게 죄를 범하면 몇 번이나 용서하여 주면 됩니까?’라는 베드로의 질문에
‘70번씩 7번이라도 용서할지니라’ 고 대답하셨다.
한두 번도 용서하는 것이 그리 쉽지 않은데 어떻게 490번이나 용서를 할 수 있을까?
이것은 예수님과 같은 훌륭한 사람에게나 해당이 되지, 우리 같은 범인에게는 상관없는 일이 아닐까? 예수님께서는 이 용서가 바로 우리에게 직결되는 삶임을 예화를 통해서 너무나 실감나게 잘 말씀해 주고 계신다.
왜 그리스도인들은 용서하며 살아야 할까?
용서하지 않으면 안될 분명한 이유가 있다.
예화의 내용을 통해서 알아보도록 하자.
1만달란트(약 6조원)를 빚진 한 종이 왕에게 끌려 온다. 왕이 몸과 처와 자식까지 다 팔아서라도 빚을 다 갚으라고 호령을 내린다. 그 종은 도저히 갚을 길이 없어서 간절히 애원하며 살려달라고 용서를 빈다. 왕은 그가 너무도 불쌍하여 다 용서해 주고 모든 빚도 탕감해 준다. 너무나 감사한 그는 이제 자유의 몸으로 나오게 된다. 그런데 그는 길에서 자기에게 백데나리온(약 천만원) 빚진 한 친구를 만난다. 만나자 마자 그의 멱살을 잡고 빌린 돈을 갚으라고 다그친다. 그 친구는 미안하다고 제발 조금만 기다려 달라고 사정한다. 그러나 그는 자기에게 빚진 사람을 인정사정없이 감옥에 집어 넣어 버린다. 이 말을 들은 왕은 1만달란트 빚진 종을 당장 붙잡아 오게 해서 ‘괘씸한 지고. 너도 네 친구의 빚을 탕감해 주지 않으니 나도 탕감해 주지 않겠다’고 하시면서 감옥에 다시 집어 넣어 버린다는 이야기다.  
용서받은 자는 반드시 용서받은 자의 모습을 보여야 한다. 그것은 바로 남도 용서해 주는 것이다.
자신은 이미 너무나 큰 용서를 받았으면서, 남의 작은 죄는 절대로 용서하지 않는 성도의 모순된 삶을 너무나 적나라하게 잘 말씀해 주고 있다.
내가 용서를 받았으면 용서하는 사람이 되어야 하고,
내가 은혜를 받았으면 은혜를 주는 사람이 되는 것이 양심 있는 사람의 바른 모습이다.

(3가지 나의 모습)
예화를 통해서 우리는 나 자신의 3가지 모습을 볼 수 있다.
1.        빚진 자로서의 나
하나님 앞에서 내 모습은 어떤 모습일까?  죽을 수 밖에 없는 죄인이다. 내 힘으로는 도저히 이 문제를 해결할 수가 없다. 예수님은 이것을 돈으로 환산하여 ‘일만 달란트 빚진 자’라고 현실감 있게 표현해 주셨다. 일만 달란트는 약 6조원 정도되는 상상을 초월하는 돈이다. 우리가 6000만년을 하루도 쉬지 않고 일해야만 모을 수 있는 돈이기 때문이다. 평생을 100년으로 계산하더라도 60만 번을 다시 살아야 겨우 갚을까 말까 한 돈이다. 다시 말해서 누구도 갚을 수 없는 빚을 진 사람이라는 것이다.
그런데 이 빚더미가 하루 아침에 깨끗이 청산이 된다. 누가 갚아 주었을까? 사람은 아무도 할 수 없다. 바로 우리의 왕 되신 하나님께서 깨끗이 청산해 주신 것이다. 왜? 이유는 간단하다. ‘불쌍히 여겨 놓아 보내며 그 빚을 탕감하여 주었더니’(27) 내가 무엇을 한 것이 아니라 하나님의 전적인 은혜에 의해서 우리는 용서와 탕감을 받았다. 하나님은 하나 밖에 없는 아들을 팔아서 내 사망의 빚 6조원을 갚아 주신 것이다. 사실은 6조원보다 훨씬 더 비쌀 것이다. 6조원으로 어떻게 사람의 생명을 살 수 있겠는가?
그래서 믿음의 사람은 늘 이 감격과 은혜에 취해서 살아야 한다.
‘너희가 그 은혜를 인하여 믿음으로 말미암아 구원을 얻었나니 이것이 너희에게서 난 것이 아니요 하나님의 선물이니라(엡2:8)’
2.        빌려준 자로서의 나
세상 가운데서 내 모습은 어떤 모습일까? 우리는 모두 죄인이기 때문에 우리 주위에는 우리에게 죄지은 자, 빚진 자들이 늘 있다. 예수님은 이 환경을 ‘제게 백데나리온(100만엔) 빚진 동관(동료)’으로 표현하셨다. 세상에는 반드시 우리에게 백데나리온 빚진 사람들이 있다. 여러분 중에 만일 100만 엔을 빚지고 안 갚는 사람이 있다면 어떻게 하겠는가? 감옥에 집어넣어서라도 꼭 받아 내고 싶은가? 아니면 용서하면서 탕감해 주고 싶은가? 물론 우리에게 백만엔은 작은 돈이 아니다. 내가 얼마나 못먹고, 못자고, 피땀흘려 모은 돈인데, 정말 피 같은 돈이 아닌가! 그것을 받지 않고는 잠도 오지 않을지 모른다. 그러나 하나님은 우리가 이 악한 종처럼 행동하는 것을 원치 않으신다.  정죄하며 감옥 보내는 것보다 훨씬 내게 유익되고 아름다운 모습을 가르쳐 주시고자 한다. 그것이 바로 용서 받은 자의 모습이다. 우리 믿음의 사람은 용서의 선배다. 이미 하나님께 너무나 큰 은혜를 받았기 때문이다.
그래서 후배들에게 용서를 가르쳐야 한다. 오직 그들을 용서함으로!
3.        용서하는 자로서의 나
도저히 용서가 안 되는 사람을 만났을 때 나는 과연 어떤 모습을 보여야 한단 말인가?
예수님의 이 한 말씀이 우리에게 시원한 해답을 주고 있다.
‘악한 종아 네가 빌기에 내가 네 빚을 전부 탕감하여 주었거늘
내가 너를 불쌍히 여김과 같이 너도 네 동관을 불쌍히 여김이 마땅치 아니하냐(32,33)’
여기에 중요한 핵심이 있다.
관점을 바꾸야 한다.
나를 억울하게 했던 그 사람을 보던 ‘내 중심의 관점’에서, 6조원이나 빚진, 나 같은 죄인을 용서해 주신 ‘하나님 중심의 관점’으로 ‘관점의 전환’을 해야 한다.
내 통장엔, 하나님께 이미 받은 6000만엔의 현금이 쌓여 있는데, 친구한테 빌려 준 겨우 100엔 때문에 친구를 때리고 감옥에 넣는다는 것은 너무나 치사한 짓이기 때문이다.
내가 세상 친구를 용서하지 못하는 모습이 하나님 앞에는 이렇게 얼마나 유치한 일인지 모른다는 것이다. 자기 통장에 은혜의 6000만엔이 있는 것을 믿는 사람은 절대로 친구에게 빌려 준 100엔 때문에 힘들어 하지 않는다.
문제는 하나님의 이 놀라우신 은혜를 깨닫고 믿는 것이다.
하나님을 믿는 우리는 하나님의 한없는 은혜를 받은 자들이다. 그래서 세상 사람들과 스케일도 다르다. 그들은 하루에 겨우 1엔씩 벌어서 살아가기 때문에 100엔은 큰 돈이다. 그러나 성도는 이미 6000만엔의 통장을 선물로 받아 가지고 있는 사람이다. 믿음의 사람은 늘 이런 마음의 여유를 가져야 한다.
절대로 세상 사람과 같은 수준으로 놀아서는 안된다. 6조원의 은혜받은 자답게 살아야 한다.
이것은 주님의 명령이다. 그 모습은 바로 ‘불쌍히 여기며, 용서하며’ 사는 모습이다.

‘너희가 각각 중심으로 형제를 용서하지 아니하면
내 천부께서도 너희에게 이와 같이 하시리라(35)’
하나님은 형제를 용서하는 사람에게는 반드시 용서와 자비와 탕감의 은혜를 주시지만
형제를 용서하지 않는 자에게는 절대로 용서하지 않고 그 죄값을 다 받겠다고 하신다.
따라서 세상에서 제일 수지 맞는 일은 ‘용서하며 사는 일’이다.
그러나 세상에서 쪽박차는 지름길이 있다. 그것은 용서하지 않는 삶이다.
세상 용서는 아무리 그 액수가 커 봐야 겨우 100만엔이다. 이것을 용서해 주면
6000억엔이 고스란히 내 통장에 남는다.
100만엔 때문에 6000억엔을 통째로 빼앗기는 어리석음을 범하지 말아야 한다.
다시 말해서 용서하지 않는 사람은 바로 이런 사람이다.
100엔 짜리 아이스크림 하나를 고집하다가 6000만엔 짜리 고급 맨션을 그냥  날려 버리는 사람이다. 얼마나 억울하겠는가! 주님이 주신 이 귀한 맨션을 사수해야 한다. 그러기 위해서는 오직 한가지, 형제를 용서하는 길밖에 없다.
성도의 용서는 자기 의지나 좋은 심성, 또는 부자라서 하는 것이 아니다.
나 때문이 아니라 주님 때문이다.
나를 생각하면 죽어도 용서할 수 없지만, 주님을 생각하면 용서 못할 일이 없다.
내가 받은 은혜가 너무나 커기 때문이다.
은혜가 용서의 원동력이다.
은혜의 지배를 받는 사람은 '용서'의 알곡을 맺지만, 세상의 지배를 받는 사람은 '정죄'의 쭉정이를 맺는다.
지금 내 모습은 과연 어떤 모습일까?
하나님은 은혜받은 자로서의 모습을 회복하기를 원하신다.
그 모습은 바로  형제를 ‘용서하는 모습’이다.
용서하지 않는 자는 은혜를 모르는 자요,
용서하지 않는 자는 복이 없는 자요,
용서하지 않는 자는 하나님의 미움을 사지만,
용서하는 자는 은혜를 아는 자요,
용서하는 자는 복된 자요,
용서하는 자는 하나님의 사랑을 얻는 자다.    

6 コメント

이용규목사

2005-08-13 22:46:32

연합성회로 바쁠 것 같아서 미리 올렸습니다.
미리 예습하셔서 큰 은혜 받으시기 바랍니다.

김태순

2005-08-14 17:18:50

빠쁜신중에도 저희양들을 위해 말씀을 주심을 감사드립니다,주님이 만나자고 저를 3시40분에 깨우셨어 왜주님1시간이나 일찍 깨우세요라고 여쭈었더니 네가 어제네남편과 얘기했잤니 오늘 교회 근처에서 11시에 약속이 있다고 그래서 오늘은 주일이니까 화장을 하고나가니까 화장하는 시간을 계산한거지,그런데주님 오늘은 저희집에서 테이트하면 어때요,이또집사랑셋이서요 제가 지금나가면 이또집사 시가에 쫒기어 그냥 일하러갈것같아서요,오늘 아침은 주님을 저희집으로 초대해 새벽예배와 기도를 드렸읍니다,우리의 가장깊은곳까지 무엇이 왜 필요한지조차세심히 아시는 주님,그주님의 성품을 닮았어 그온유한 모습으로 예수님의 참제자가 되여하나님을 기쁘시게,늘 빚진자의 자세을 잃치않으면 이웃을 성도을 용서하는 우리부부가 되도록 끊임없이 노력하겠읍니다.

이미령

2005-08-15 09:39:19

어릴때부터 성경 말씀을 듣고자라서..
자연스럽게 누구을 사랑하면 내모든것을 다 내어 주는편입니다
많이준 만큼 상처가 깊어 얼마나 원망하며 할키며 살았는지...

그런 내 마음을 만져주시는 분은 주님밖에...
명예와 청춘을 앗아간 사람도..
돈과 마음을 뺏어간 친구도....

매일 저녁 그들을 위하여 그들의 자녀까지도....
눈물로 기도하는 내 모습을 볼때....
주님은 사랑으로 나를 찾아와 주셨습니다....
정말...용서하니까....내가 행복해 지더라구요...

이용규목사

2005-08-15 11:56:40

조금 수정 보완했습니다.
이 글을 통해서 여러분 속에 용서의 큰 능력이 임하기를 기도합니다.

그리고 3시예배 내용을 조금 부연하자면
은혜받은 자는 늘 두가지 모습을 간직하고 있습니다.
첫째는 사람들에게 '용서'의 모습을 보이고,
둘째는 하나님께 늘 '예배'를 통한 '감사'의 모습을 보입니다.

박유진

2005-08-15 19:20:50

제게는 고등학교, 대학교를 통해서 용서하지 못했던 한 친구가 있었습니다.
몇번이나 저에게 상처를 주었던 친구이지만, 주일마다 얼굴을 마주할 수 밖에
없어서 정말 껄끄러운 마음으로 늘 대했었습니다.
조금 시간이 지난 뒤, 그 친구가 영적으로 하나님께 큰 선물을 받은 것을
알았습니다. 그 때 얼마나 화가 났던지. 왜 내게 상처를 준 그 아이에게
그렇게 큰 은혜를 부어주시는 걸까, 그 아이는 내게 잘못한 걸 다 잊고
편한 지 모르지만, 나는 이렇게 마음 속에 상처가 남아있는데...
그런 생각을 했습니다.
지금은...제가 그 친구를 용서하지 못해서 오히려 제 안의 상처가
더욱 깊어졌다는 것을 압니다. 물론 시간이 많이 지나 그 친구를 "용서"는
했지만, 아직까지 마음이 껄끄러운 건 남아있습니다.
이렇게 작은 일, 친구가 내게 준 상처에도 용서를 못하는데, 만약 내게
더 큰 잘못을 한 사람이 나타난다면 어떨까...하는 생각을 했습니다.
지금부터라도, 작은 일부터 용서하는 훈련을 늘 해야 겠다는 생각이
들었습니다.
그래서, 나중에 더 넓은 마음으로 더 큰 용서를 할 수 있도록 말이죠...
목사님께서 말씀해주신, 100엔을 지키려고 6000만엔을 버리는 바보가
되어서는 안 되겠다고 생각합니다.
그 100엔이 지금은 커 보여도, 실상은 아무것도 아닌 거란 걸
늘 명심해야 겠습니다...

최수연

2005-08-22 20:18:23

나 때문에 하는것이 아니라 주님때문에 용서하라는 말이 참 마음에 와닿습니다..
저도 회사에서 용서하기 싫은 사람이 있습니다..
너무 밉고, 나에게 상처를 준거 같아서 얼굴도 보기 싫습니다..
하지만, 주님께선 말씀하십니다..
하고 싶은말도 참아야 할때가 있고, 하기 싫은말을 해야할때가 있다고..
그렇게 항상 성령님의 인도하심에 따라 살고 싶습니다..
그래서 오늘도 그분을 뵙고 정말 환하게 웃으렵니다..
남들은, 아니 내자신이 너무 바보같이 보일찌 모르겠지만..
난 주님의 사람이니깐요..
그리고 진정 그분을 위해 기도하는 사람이 되겠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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