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중앙영광교회

3개의 십자가(2004.2.1)

이용규목사, 2004-02-03 05:00:1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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3개의 십자가(2004.2.1)

말씀// 눅23:32-33(암송구절:33절)
32절 또 다른 두 행악자도 사형을 받게 되어 예수와 함께 끌려 가니라
33절 해골이라 하는 곳에 이르러 거기서 예수를 십자가에 못박고 두 행악자도 그렇게 하니
     하나는 우편에 하나는 좌편에 있더라.

골고다(해골) 언덕에 세 개의 십자가가 섰습니다. 예수님께서 이 땅의 삶을 정리하실 때 하나님께서 만드신 마지막 장면입니다. 하나님께서는 이 세 개의 십자가를 통해서 우리에게 세 가지 종류의 인생의 모습을 보여 주시고 계십니다.
사람은 죽을 때 자신의 인생을 결산하게 됩니다. 죽을 때 비로소 자신의 인생의 성적표를 받습니다. 하나님께서는 우리 인생의 성적표를 A,B,C가 아니라 세 개의 십자가로 구분해 주셨습니다.
사람은 죽을 때 반드시 이 세 개의 십자가(죽음) 중에서 하나를 짊어져야 합니다.
세 개의 십자가는 육의 눈으로 볼 때는 죽음이라는 단어로 동일하게 보이지만, 주님의 눈으로 볼 때에는 전혀 다른 의미를 가지고 있습니다.
세 개의 십자가, 그것은 바로 예수님이 지신 십자가이신 구원의 십자가와, 낙원에 간 강도가 진 구원받은 십자가, 그리고 다른 한 강도가 진 저주받은 십자가입니다.
‘마지막에 내가 지고 가는 십자가는 어떤 십자가일까?’
궁금하지 않습니까? 궁금할 필요 없습니다. 자기 십자가는 자기가 만드니까요.

1. 구원의 십자가-구원을 주도하는 인생
   이 십자가는 예수님의 십자가입니다.
예수님처럼 세상을 구원하고 살리는 인생입니다.
예수님께서는 이 땅에서도 늘 하나님과 함께 하는 인생을 사셨습니다.
예수님은 하나님의 나라를 이 땅에 전하시면서 하나님의 뜻을 이루어 가셨습니다.
예수님께서 인생의 마지막에 하신 일을 기억하십니까? 그것은 바로 십자가의 고통 속에서도 옆에 있는 강도를 구원하신 일입니다. 어떻게 이런 일이 가능할까요?
자신은 고통 속에서 죽어가고 있는 대도 그는 천국을 부르짖었습니다.
예수님의 소망은 죽음 전에 있는 것이 아니라, 죽음 후에 있었기 때문입니다.
그래서 예수님께는 죽음이 아무렇지도 않았습니다. 왜냐하면, 온전한 소망은 죽음 후의 천국에서 이루어지기 때문입니다. 그래서 예수님께서는 이 땅의 죽음의 고통 앞에서도 천국을 기쁨으로 넓혀 갈 수가 있었습니다. 예수님의 이 복음의 열정은 천국에 대한 소망에서 나온 것입니다.
예수님을 닮아가는 주님의 제자라면 이 땅에서의 소망보다 천국에서의 소망이 더 큰 사람이 되어야 할 것입니다. 죽음 전에만 소망을 둔 인생은 성경적 소망이 전혀 없는 사람입니다.
참 소망은 죽음 뒤에 소망을 둔 사람에게만 존재합니다.
  예수님께서는 자신의 죽음을 이렇게 말씀하셨습니다. “내가 진실로 진실로 너희에게 이르노니 한 알의 밀이 땅에 떨어져 죽지 아니하면 한 알 그대로 있고 죽으면 많은 열매를 맺느니라(요12:24)” 예수님은 믿음의 사람의 죽음을 결코 죽음으로 말씀하지 않았습니다. 믿음의 사람의 죽음은 밀과 같이 땅에 뿌려지는 것이라고 하셨습니다. 밀의 죽음을 아십니까? 그것은 죽음이 아니라 30배 60배 100배로 더 많은 열매를 맺기 위한 부활의 과정입니다.
믿음의 사람에게는 죽음이 끝이 아닙니다. 믿음의 사람에게는 죽음은 곧 새로운 시작입니다.
믿음의 사람에게는 죽음은 없어지는 것이 아닙니다. 믿음의 사람에게는 죽음이란 더 많은 열매로 부활되어지는 과정입니다.
믿음의 사람에게 죽음은 곧 씨앗이요, 새 출발입니다.
예수님의 십자가의 죽음을 다시 한번 생각해 보십시오. 예수님이 돌아가심으로 모든 것이 끝이 났습니까? 아닙니다. 예수님은 죽음 전보다 죽음 후에 이 땅에 훨씬 더 많은 일을 하셨고 지금도 영과 육으로 귀한 일들을 해 나가시고 계십니다.
하버드 대학의 이름의 유래에 대해서 함께 은혜를 나누길 원합니다.
하버드는 사람의 이름입니다. 젊은 부목사님의 이름입니다. 그는 31세로 일찍 죽은 사람입니다. 하버드 대학은 처음 150년간은 신학교로 운영이 되었습니다. 하버드라는 이 젊은 목사님은 세상을 떠날 때 자기 재산과 책의 절반을 학교에 기증할 것을 유언했습니다.
그의 유언에 따라서 재산의 반인 800파운드와 책 260권이, 생긴지 얼마 안 되는 근처의 조그마한 학교에 기증이 되었습니다. 그 후에 이 학교는 하버드씨의 기부금으로 유지가 되었습니다.
학교 관계자들은 그의 이 귀한 마음을 기념하기 위하여 그 학교 이름을 하버드 대학으로 바꾸었답니다. 그래서 지금도 하버드 대학에 가면 하버드씨의 동상이 세워져 있다고 합니다.
그가 죽을 때 심은 씨앗은 보잘 것 없었습니다만, 260권의 책이 지금은 1천만권으로 늘어나 하버드 대학의 도서관은 미국에서 가장 큰 도서관이 되었고, 그가 심었던 800파운드의 기부금은 미국 대통령을 6명이나 배출하는 세계최고의 대학으로 성장하게 되었습니다.
만약, 하버드씨가 죽을 때 이런 기부를 전혀 하지 않았다면, 하버드 대학도, 자신의 이름도, 자신의 영향력도 세상에서는 찾아 볼 수가 없었을 겁니다. 그는 죽기 전보다 죽은 후에 더 큰 일을 했습니다. 그는 죽음으로 모든 소망이 끝나지 않음을 알고 있었습니다.
그래서, 그의 마지막 가지고 있는 것으로 세상에 사망이 아닌 새로운 시작의 씨를 뿌렸던 것입니다.
사람이 이렇게 자기 재산의 반을 좋은 곳에 남겨도 큰 역사가 일어나는데 우리의 구세주이신 예수님은 재산의 반이 아니라, 생명의 반이 아니라, 자신의 생명의 전부를 우리에게 주셨습니다. 그 역사가 기대되지 않습니까? 그래서 이 땅에는 지금도 구원의 풍성한 열매들이 맺어져 가고 있습니다.
믿음의 사람들은 죽음에 대한 생각을 바꿔야만 합니다.
예수님의 십자가는 예수님의 죽음입니다. 예수님은 자신의 죽음을 통해서 수 많은 사람들을 살리시고 계십니다. 우리의 인생의 마지막 결산의 모습은 주님의 십자가의 모습이 되어야 될 줄을 믿습니다. 그러면 우리의 이 땅의 삶이 마지막을 장식할 때 우리를 통해 나타나는  영향력은 30배 60배 100배로 나타나게 될 것입니다. 이것이 바로 예수님의 제자들의 삶의 결과요 예수님의 제자들의 마지막 모습이요 예수님의 제자들이 짊어져야 할 참 십자가의 모습인 줄 믿습니다.

2. 구원 받은 강도의 십자가-구원만 받은 인생
   이 강도는 세상과 함께 한 죄 많은 인생을 살아왔습니다. 그는 죄인중의 괴수였고 세상에서 대표적인 행악자였습니다. 세상에서는 구제가 불가능한 인간이었습니다. 그래서 그는 사형집행대인 십자가위에 있었습니다.
그러나 그는 예수님과 함께 천국에 간 사람입니다. 어떻게 보면 운이 좋은 사람처럼 보입니다. 강도가 천국 백성이 되었으니 말입니다. 그러나 그것은 그의 믿음의 작품이었습니다.
성경에서는 그가 어떻게 하여 천국 백성이 될 수 있었던 지를 잘 설명해 주고 있습니다.
(눅23:40-42)의 말씀을 보면 그는
첫째, 하나님을 두려워하는 사람이었습니다.(40절)
그 마음에 하나님을 두려워하는 마음이 있는 사람은  천국을 향해서 마음이 열려 있는 사람입니다.
두 번째, 자기 죄를 인정한 사람이었습니다.(41절)
그는 자신이 사형당하는 것은 당연한 일이라고 고백했습니다.
우리는 원래 다 행악자요 강도요 죽어 마땅한 자임을 알아야 합니다.
오직 예수님의 은혜로 이 모든 죄목에서 자유함을 얻을 수가 있습니다.
세 번째, 그는 천국을 인정한 사람이었습니다. 십자가에서 예수님께 말했습니다.
‘당신의 나라의 임하실 때’ (42)라고...‘당신의 나라’라고 하는 것은 천국을 말합니다.
그는 지금 죽어가고 있습니다마는 세상 사람들처럼 죽음을 끝으로 보지 않고 그 다음 세상인 천국이 있음을 인정하고 있습니다. 천국에 대한 가치관이 확실히 선 사람만이 천국에 갈수 있습니다.
네 번째, 그는 예수님을 구세주로 인정한 사람이었습니다. ‘예수여 나를 생각하소서’(42절)
예수님께서 천국에 가 있을 때 천국의 주인 되신 예수님께 자신의 영혼을 부탁한 것입니다.
그 때 예수님은 그에게 천국 입장권을 허락하셨습니다.
그는 비록 십자가상에서 막차를 탔지만 구원은 받았습니다.

3. 저주받은 강도의 십자가-구원을 버린 인생
   이 십자가는 할 수 만 있으면 지지 말아야 될 십자가입니다.
이 강도는 마지막까지 구원의 줄이 그의 바로 옆에 있었지만 깨닫지 못하여 스스로 버린 불쌍한 인생입니다.
그는 죽음을 인생의 끝으로 본 사람이었습니다. 세상은 잘 볼 수 있었습니다만 천국을 볼 수 없는 천국 맹인이었습니다. 그래서 그 마음속에는 하나님도 천국도 구세주도 아무것도 보이지 않았던 것입니다. 그래서 그는 하나님도 두려워하지 않았고 예수님을 비방하며 무시했습니다. 그는 결국 구원받지 못했습니다.

  세 개의 십자가의 모습을 다시 한번 마음속에 그려 봅시다.
예수님의 십자가가 가운데 세워져 있습니다. 그리고 그 좌우에 두 강도의 십자가가 세워져 있습니다. 왜 하필이면 주님의 십자가가 가운데 일까요? 주님의 말씀엔 우연이란 없습니다. 그것은 바로 두 강도에게 동일한 구원의 기회를 주셨음을 말씀해 주시고 계십니다. 이와같이 하나님은  누구에게나 동일한 구원의 기회와 길을 열어주시고 계십니다. 우리는 가운데 계신 주님의 십자가를 통해서 마지막까지 우리 곁에서 우리를 동일하게 사랑하시며 구원하시길 원하시는 하나님의 크신 은혜를 깨달을 수가 있습니다.
‘내가 강도로 살았느냐? 아니냐?’ 그것은 절대로 구원의 조건이 될 수 없습니다.
주님 좌우편의 강도는 똑 같이 사형에 처해진 강도였습니다. 그러나 한 강도는 천국을 갔고 한 강도는 지옥을 갔습니다. 무엇이 이 두 강도를 천국과 지옥으로 나눴을까요? 그것은 주님이 나누신 것이 아닙니다. 주님을 바라보는 자신의 태도가 천국과 지옥을 나눠버린 것입니다. 세상에서 내가 어떻게 살았는가는 구원의 조건이 될 수 없습니다. 지금 내가 주님을 어떻게 바라보는가가 구원의 조건입니다. 하나님에게는 구원에 필요한 시간의 양도 중요하지 않습니다. 두 강도는 인생을 살대로 다 살았습니다. 이제 숨을 거두기 직전까지 왔습니다. 불가 얼마 남지 않는 인생이었습니다만, 하나님은 그 때에도 그 악한 인생에게 기회를 주십니다.
“나를 바라보라 자신을 보라 .천국을 바라보라 예수를 바라보라”
하나님을 바라보는 사람은 하나님을 두려워하게 되고
자신의 인생을 바라보는 사람은 자신의 죄와 허물을 고백하게 됩니다.
천국을 바라보는 사람은 죽음이 두렵지 않고
예수를 바라보는 사람은 구세주를 만나게 됩니다.
슬픈 일입니다마는 이 두 번째 강도는 하나님도 자신도 천국도 예수님도 볼 수 없는 색맹이었습니다. 그래서 그는 천국도 부인하고 하나님도 무시하고 자신의 죄도 인정하지 않고 예수님도 비방했습니다.
간단합니다.
예수님은 그 사람이 보는 그대로만 나타납니다.
예수님을 구세주로 보는 사람에게는 예수님도 반드시 구세주로 나타납니다.
그러나 예수님을 죄인으로 보는 사람에게는 예수님도 십자가에서 죄인으로만 나타나십니다.
그래서 구원받은 강도에게는 십자가의 주님이 구세주로 역사하셨고,
저주받은 강도에게는 십자가의 주님이 사형수로 아무 일을 할 수가 없었습니다.


사람의 인생은 반드시 세 가지 중에 하나로 나타나게 되어 있습니다. 왜냐면, 하나님께서는 예수님의 마지막 인생을 통해서 세 가지 십자가를 보여 주셨기 때문입니다.
우리의 인생은 하나님과 천국 그리고 예수님을 바라보는 마음의 태도에서 결정되어집니다. 예수님처럼 날마다 하나님과 동행하는 인생에게는 구원의 십자가가 세워질 것이요 구원받은 강도처럼 인생의 마지막 때라도 주님을 만나는 자는 구원받은 십자가로 인생을 마칠게 될 것이지만 인생이 끝날 때까지 하나님에 대해서  천국에 대해서 예수님께 대해서 색맹인 인생은 저주받은 사망의 십자가를 그 인생에 세우게 될 것입니다.
우리는 예수님의 제자들입니다.
따라서 이에 합당한 인생의 마지막 십자가를 세워야 할 것입니다.
‘내 인생의 십자가는 어떤 십자가일까?’

10 コメント

이용규목사

2004-02-03 05:03:16

오늘 말씀은 천천히 생각하면서 읽어주시면 은혜가 깊어지리라 믿습니다.
많은 내용을 한 주제에 담으려고 하니 좀 한계가 있군요.
성령의 도우심이 함께 하길 기도합니다.

신왕수

2004-02-03 05:08:10

내가 진실로 진실로 너희에게 이르노니 한 알의 밀이 땅에 떨어져 죽지 아니하면 한 알 그대로 있고 죽으면 많은 열매를 맺느니라(요12:24)
죽음(death)이 죽음(end)이 아님을 깨닫습니다...
죽음은 단지 하나의 과정에 불과하다는 것과 그 과정을 통해서 엄청난 일이 일어나진다는 것을 믿습니다...

과연...나의 십자가의 위치는 어디에 있을까??
제 십자가의 위치를 저주받은 십자가에서 구원받은 십자가로...
구원받은 십자가에서 구원의 십자가로 바뀌어 나아가기를 원합니다...

예수 그리스도의 믿음 분량까지 성장하라고 명하신 주님의 말씀을 붙잡고 더욱더 정진해 나아가길 원합니다

최현숙

2004-02-03 05:45:57

말씀을 받으면서 참 많이 놀랬습니다. 저가 얼마나 성경말씀을 피상적으로 읽었었는가를 생각하는 시간이기도 했습니다. 3개의 십자가가 우뚝선 갈보리 언덕을 상상합니다. 그곳에서 자신의 생명이 다하는 날까지 생명을 구원코자 하는 예수님의 모습을 그려 봅니다. 그 십자가가 오늘 따라 유난히 제 가슴속에 각인되어 옴은 예수님의 최후 승리는 죽음 그 자체가 아니라 그 후의 부활이였기에 죽어가는 강도에게도 구원의 생명을 줌이였습니다. 3개의 십자가가는 현재 이시간 저가 서 있는 위치를 말해주는듯 합니다. 주님처럼 구원을 주도하는 인생을 살아갈것을 다시 한번 다짐해 봅니다.
목사님! 혹시 성경말씀 쓰실때 옆에 계신것 아니신가요? 말씀 해석이 너무도 탁월하십니다.

이지영

2004-02-03 07:20:42

세상일로 얼굴이 찡그러질때가..많았음을 고백합니다....
이번주에 받은 말씀...
구원의 십자가를 생각하며 ..
죽음 후 나에게 주어질 천국의 삶을 상상하며..
찡그러진 얼굴을 밝게 피며 행복이 넘치도록 노력할겁니다.
그리고 우리 대학교 친구들 ...알바친구들..
우리 모두 함께 천국에 갈 수 있도록
올해 한해도 힘있게 구원의 십자가를 전하는 자가 될 겁니다..

홍수영

2004-02-03 18:33:13

3가지 십자를 통해 내삶의 모습은 어떤 십자가의 삶인가 생각해봅니다.
내인생의 십자가는 무엇인가...? 십자가를 짐에 있어서 다소 두려움이 있었던것 같습니다.
하지만 설교말씀을 통해 십자가는 신앙안에서 강건하기위해 반드시 필요한 요소임을 깨달아
받았습니다. 속사람이 강건한 사람이 되기위해 하나님을 두려워하는 삶속에서 예수님 앞에서
인정받기를원합니다. 내인생의 십자가를 알고 의미있는 삶속에서 예수님의 십자가의 삶을
본받길 기도합니다.

마준철목사

2004-02-04 22:15:15

십자가를 바라볼 때 감동이 오지 않는다고 울며 기도했던 스펄전 목사님의 고백이 생각납니다. 오늘날 많은 사람들이 십자가를 기독교의 상징내지는 악세사리에 불과하다고 여기는 생각에 경종을 울리는 말씀인 줄 믿습니다.
그래서 저주받은 사람들에게는 십자가가 미련한 것처럼 보이는 것이고, 구원을 얻는 우리에게는 하나님의 능력이 되겠죠....
이제 다음주 11일(성회 수요일이라고 합니다)부터는 2004년도 사순절이 시작됩니다.
올 사순절 동안은 우리 모두가 예수님의 십자가를 늘 묵상하며 승리할 수 있는 믿음의 자녀들이 되기를 소원합니다!

김동철

2004-02-06 18:33:48

내 삶의 십자가...정말 천국에 갈 그날이 오면 나는 어떤식으로 하나님을 만나뵐까...내가 지금 하고있는 일들...그리고 지내고 있는 매 하루를 돌이켜 봅니다.세가지중에서 어떤것인지 생각해봅니다.시간은 하루하루 지나고 있지만 믿음은 지나는 시간만큼 쌓아가지를 못하고 이 말씀을 보고서야 십자가에 대해서 그리고 하나님의 구원의 십자가에 대해서도 알게 되였습니다.언제나 주님의 말씀을 묵상하고 주님의 십자가를 묵상하는 자가 되기를 원합니다.

장경옥

2004-02-11 15:49:58

이글을 읽고 약간의 희망을 가져도 될까요?왜냐면 난 주님과예수님,글구 천국에 대해서는 색맹이 아니라는걸~늘 제게는 주님이 함께 하시고 계시다는걸 ~이 약한믿음이 더욱 강건해지길 바랍니다.

최현숙

2004-02-13 23:46:18

오늘 함께 공부하는 학생에게 예수님에 대해서 이야기를 할 기회가 잠시 잠깐 있었습니다.
이 땅의 삶은 너가 잠시 여행을 온 한 나라에 불과한 것이라고,,,,,만약 너가 세계일주를 위해 몇달을 집을 떠나 여정을 마치고 집으로 돌아오듯, 지금 너가 이곳에 있는 것도 같다고 했지요.
육신의 70-80년의 삶은 영원한 삶을 향한 너의 결정에 달렸다고 이야기 했더니 "무서워요" 하더군요. 아무것도 모르고 아무것도 알지 못한 그 학생을 보면서 당연히 복음에 대해 들어 봤을 거라는 저의 선입감을 완전히 무너지게 만들었답니다. 옛 속담에 엎은 애기 3년 찾는다는 말이 있지요. 일테면 등잔밑이 어둡다는 것이지요. 저가 그랬던 것 같습니다. 일주일은 5일동안 저와 함께 공부하고 이야기 하는 그 학생이 당연히 알고 있을 거라고 믿어였고, 또한 그 친구도 교회를 다니고 있기 때문에 당연히 알고선 스스로 판단해서 신앙을 갖지 않았다고 생각했던 것입니다.
문득, 멀리 보단 내 가까이 있는 사람들을 바라봅니다. 그리고 그들에게 복음에 대해서 자연스럽게 이야기 할수 있게 해야겠다는 생각을 해 봅니다. 모두들 그렇게 하고 있는데 저만 못했나 봅니다.

신왕수

2004-04-03 09:48:25

주님과 동일한 거리를 떨어져 있는 두 강도의 십자가..
그러나 믿음에 의한 거리는 상상을 할 수 없을 정도로 차이가 남을 보고 깨닫습니다..
주님과 우리와의 거리...
우리가 주님에 더욱더 가까워져야만 한다는 사실을...
그리고 주님을 신뢰하여야만 함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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