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중앙영광교회

변함없는 사랑

이용규목사, 2009-04-20 16:27:4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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변함없는 사랑

말씀//다니엘3:15:-18

1.        주님이 바라는 것?
‘하나님은 당신을 사랑하신다.’
이것이 성경 전체에 흐르고 있는 메시지다. 당신을 위해서 십자가에서 자기 아들을 내어 줄 정도로, 하나님은 당신을 사랑하신다. 이것이 성경이 가르쳐 주는 진리다.
사람은 환경에 따라, 감정에 따라 그 사랑이 변할 수 있지만, 하나님의 사랑은 늘 변함이 없다. 하나님은 그 사랑을 호세아서를 통해서 이렇게 표현하고 있다.
‘너는 다시 가서, 다른 남자의 사랑을 받고 음녀가 된 그 여인을 사랑하여라
이스라엘 자손이 다른 신들에게로 돌아가서 건포도를 넣은 빵을 좋아하더라도, 나 주가 그들을 사랑하는 것처럼 너도 그 여인을 사랑하여라.’(호3:1)
이 사랑이 바로 하나님이 우리를 사랑하시는 모습이다. 우리가 아무리 못된 짓을 해도, 그 아들 예수를 팔아 먹어도, 하나님은 변함없이 우리를 사랑하고 계신다.
십자가의 예수님은 우리를 사랑하시되 죽기까지 사랑하셨다. 죽음 앞에서도 우리를 향한 사랑의 줄을 놓지 않았다. 예수님은 자기 사람들을 사랑하시되 ‘끝까지’ 사랑하셨다고 했다.(요13:1)
그런데 주님을 향한 우리의 사랑은 어떤가? 세상 사랑보다도 못한 경우가 얼마나 많은지 모른다. 가족을 향한 사랑의 절반도 미치지 못하는 경우가 많다.
하나님은 우리의 이 사랑을 다음과 같이 말씀하고 계신다.
‘유다야 내가 너를 어떻게 하면 좋겠느냐? 나를 사랑하는 너희의 마음은 아침 안개와 같고, 덧없이 사라지는 이슬과 같구나.’(호6:4)
아침 안개와 같은 사랑, 아침 이슬 같은 사랑은 변함 없는 주님의 사랑과는 너무나 대조가 된다. 처음에는 뭔가 대단한 것 같은데, 아침 먹고 나오니 흔적도 찾아 볼 수 없는 사랑이다. 금방 변하는 우리의 사랑을 너무나 잘 표현하고 있다.
주님이 바라는 것이 있다. 제사보다 더 바라는 것이 있다. 태워서 드리는 번제보다 더 바라는 것이 있다. 그것이 무엇인지 아는가? ‘사랑’이다. 주님이 우리를 사랑하신 것 같이, 주님도 우리의 사랑을 받기를 원한다. ‘네 사랑을 받고 싶구나.’ 어떤 사랑일까? ‘아침 안개’같은 사랑이 아니라, ‘변함 없는 사랑’을 받기를 원하신다.
‘내가 바라는 것은 변함 없는 사랑이지, 제사가 아니다.’(호6:6)
제사는 종교의식을 말한다. 물론 예배도 중요하고, 봉사도 중요하고, 기도회도 중요하다. 그런데 이런 것들은 그릇에 불과 한 것이요, 그 속에 알맹이는 따로 있다는 사실을 알아야 한다. 그 알맹이가 바로 ‘하나님에 대한 사랑’이다. 예배 자체가 중요한 것이 아니라, 예배 속에 담긴 사랑이 중요하다. 하나님에 대한 사랑이 있기 때문에 예배가 중요한 것이다. ‘하나님, 제가 하나님을 이처럼 사랑합니다. 제 사랑을 받아 주시옵소서’ 하나님에 대한 사랑의 표현으로써의 예배가 진정한 예배요, 하나님에 대한 사랑의 표현으로써의 봉사가 진정한 봉사다. 예배의 모양은 있는데 예배의 능력이 없으면 형식적인 예배, 죽은 예배에 불과하다.
‘경건의 모양은 있으나 경건의 능력은 부인하니 이 같은 자들에게서 네가 돌아서라’(딤후3:5)
‘이 백성이 입술로는 나를 공경하되 마음은 내게서 멀도다.’(마15:8)  
입술보다 중요한 것은 마음이다. 입술은 그릇이지만, 마음은 그 내용물이다. 내용물이 없는 빈 그릇은 의미가 없다.
주님은 그릇을 원하는 것이 아니라, 그 그릇에 담긴 ‘사랑’을 원하신다. ‘주님 내가, 예배의 그릇에, 봉사의 그릇에, 찬양의 그릇에, 기도의 그릇에, 전도의 그릇에… 내 사랑을 담아 드립니다. 내 사랑을 받아 주옵소서.’
주님께 절대로 빈 그릇을 올려 드리지 말자. ‘주님을 향한 사랑’이 없는 그릇이 빈 그릇이다.  
예수님이 친히 가르쳐 주신 가장 큰 계명이 무엇인가?
‘네 마음을 다하고 목숨을 다하고 뜻을 다하여 주 너의 하나님을 사랑하라 하셨으니
이것이 크고 첫째 되는 계명이요’(마22:37-38)
마음을 다해 하나님을 사랑하는 것이다.
바울은 이렇게 기도하고 있다.
‘우리 주 예수 그리스도를 ‘변함 없이 사랑’하는 모든 사람에게 은혜가 있기를 빕니다.’(엡6:24)

2.        사랑이 흔들릴 때
믿음의 큰 역사를 일으킨 사람들의 공통점은, 모두가 주를 향한 ‘변함 없는 사랑’을 가진 사람들이었다. 그 대표적인 인물들이 다니엘서에 대거 등장한다. 4명이나 등장하는데, 이름하여 다니엘과 3친구(사드락, 메삭, 아벳느고)이다. 이 4 사람은 어떤 환경에도 굴하지 않고, 변함 없이 하나님을 사랑한 인물들이다. 이들의 삶을 통해서, 우리의 사랑이 언제 흔들리기 쉬운지를 알아보고, 또 그들은 어떻게 승리했고, 하나님은 이들의 변함 없는 사랑을 어떻게 축복하셨는지 알아 보도록 하겠다.
  
1)        유혹 앞에서
사람들은 유혹 앞에서 사랑이 변하기 쉽다. 이 유혹은 어떤 의미에서 좋은 환경이다. 나에게 큰 즐거움을 줄 것 같고, 큰 유익을 줄 것 같은 유혹이다. 우리는 서 있을 때에 넘어질까 조심해야 한다.(고전10:12)
이것은 우리의 탐욕을 자극한다. 욕심에 붙들린 사람은 여지 없이 여기에 넘어가고 만다. 그 중의 하나가 먹는 즐거움이다. 아담과 하와의 원죄가 바로 여기에서 나왔다. 하나님이 먹지 말라고 한 선악과를 보니, 먹음직도 하고 보암직도 하고, 지혜롭게 할 만큼 탐스럽기까지 하여 따 먹고 말았다.(창3:6) 이것이 아담 개인 뿐만 아니라, 인류의 비극을 초래하게 되었다.
다니엘과 3친구는 이 산해진미의 유혹에서 자신을 잘 지켰다. 그들은 왕이 내린 음식과 포도주로 자기를 더럽히지 않겠다고 결심했다.(단1:8) 그들은 우상에 드려졌던 맛있는 음식을 먹고 입을 즐겁게 하는 것보다, 비록 채소와 물만 먹더라도 하나님을 즐겁게 하는 것을 택했던 것이다. 하나님에 대한 사랑의 결단 뒤에는 반드시 하나님의 사랑의 역사가 동반한다. 하나님께서는 바로 그 다음 절에서 다니엘과 3친구들이 환관장에게 호의와 동정을 받도록 조치하셨다. 그리고 그들이 채와 물만 계속 먹을 수 있었을 때에 하나님은, 다른 사람들의 10배의 지식과 지혜를 주셨고, 다니엘에게는 꿈을 해석하는 능력까지 주셨다.(단1:17,20)
환경의 유혹에 ‘변함 없는 사랑’을 지키는 사람을 하님이 얼마나 기뻐하시는지 잘 알 수 있다.
좋은 환경을 조심해야 한다. 유혹은 언제나 달콤한 것을 가지고 온다. 그래서 그 사탕으로, 우리에게서 하나님의 사랑을 강탈해 가 버린다.
세상에 아무리 좋은 것이 있더라도, 그것이 하나님의 사랑을 빼앗는다면, 그것은 사실은 가장 나쁜 것이다.
good을 가지고 와서 best(하나님의 사랑)를 빼앗으려고 하는 것이 사탄의 계략이다.
속지 않는 사람, 유혹에 넘어가지 않는 사람이 ‘변함 없는 사랑’을 지킬 수 있다.    

2)        두려움 앞에서
두 번째는 나쁜 환경이다. 사람은 어렵고 힘든 환경에 처하면 변하기 쉽다. 변절하기 쉽다.
금이 귀한 것은 어떤 환경에도 변하지 않기 때문이다. ‘금보다 귀한 믿음은 참 보배 되도다 이 진리 믿는 사람들 다 복을 받겠네’(찬450)
바벨로니아의 느부갓네살왕은 30m나 되는 금 신상을 만들어서 모두 거기에 절하도록 했다. 절하지 않는 사람은 모두 풀무불에 던져 넣어서 죽이라는 명령을 내렸다. 이 환경은 곧, 살고 싶으면 하나님을 버리라는 것이다. 과연 이런 상황 가운데서도 하나님에 대한 ‘변함 없는 사랑’을 가질 수가 있을까? 보통 사람에게는 쉽지 않은 일이다. 그래서 ‘변함 없는 사랑’은 금보다 귀한 것이다.
다니엘의 3친구는 ‘하나님에 대한 사랑’을 ‘자기의 생명’과 바꾸지 않았다.
그들은 당연히 금 신상에 절하지 않았다. 그래서 왕은 그들을 불러 다시 한번 기회를 주었다. 지금이라도 절을 한다면 모든 것을 없던 것으로 하겠다고 했다. 이것은 어쩌면 살 수 있는 좋은 기회일 수 있다. 그러나 다른 한 면에서는 하나님을 배반할 수 있는 기회이기도 하다. 이 때 그들은 단호히 거절했다. ‘이 일을 두고서는, 우리가 임금님께 대답할 필요가 없는 줄 압니다. 불 속에 던져져도 하나님이 우리를 활활 타는 풀무불 속에서 구해 주시고, 왕의 손에서도 구해 주실 것입니다. 비록 그렇게 되지 않더라도(but even if he does not), 우리는 왕의 금 신상에 절대로 절하지 않을 것입니다.’(단3:16-17)
그들은 사랑을 목숨과 바꾸지 않았다. 살기 위해서 사랑을 버리지 않았다. 반면에, 하나님에 대한 사랑을 지키기 위해서 기꺼이 목숨을 내 놓았다. 사랑이 그 만큼 귀했기 때문이다. 그들은 ‘변함 없는 사랑’의 모델이었다. 그들은 ‘네 목숨을 다하여 네 하나님을 사랑하라’는 계명을 끝까지 지킨 사람들이었다. 죽음 앞에서도 변함 없는 사랑이 그들의 사랑이었다.
하나님은 ‘변함 없는 사랑’은 항상 ‘변함 없는 사랑’으로 응답하신다.
다니엘의 3친구는 7배나 뜨거운 풀무불에서 머리털 하나 상하지 않고 보호 받았다.
하나님의 사랑이 있는 곳에는, 세상 어떤 권세도 우리의 머리털 하나도 손대지 못한다.  
하나님은 ‘변함 없는 사랑’을 당신을 통해서도 받기를 원하신다.
오늘날 세상에는 이 사랑이 메말라 가고 있다.
‘주님, 세상 무엇보다 주님을 더 사랑하기 원합니다.’
‘주님, 죽음 앞에서도 변함 없는 사랑 드리기 원합니다.’
호세아는 돈을 주고 자기 아내를 사서 다시 데리고 왔지만(호3:2), 하나님은 외아들 예수의 목숨을 주고 우리를 사서 데리고 왔다. 주님의 그 사랑에 보답하는 길은, 우리도 일마다 때마다 ‘변함 없는 사랑’을 주님께 올려 주리는 것이다. 다니엘의 3친구처럼 말이다.

16 コメント

문인우

2009-04-20 20:53:34

환경의 유혹에 ‘변함 없는 사랑’을 지키는 사람을 하님이 얼마나
기뻐하시는지 잘 알 수 있다. 좋은 환경을 조심해야 한다.
유혹은 언제나 달콤한 것을 가지고 온다. 그래서 그 사탕으로,
우리에게서 하나님의 사랑을 강탈해 가 버린다.

하나님은 어떤 상황이라도 우리에게 변함없는 사랑을 보여주시지만
나는 어떨까. 유혹 앞에서, 환경 앞에서 쉽게 하나님의 사랑을
져버리지는 않았나 하고 이번 설교 말씀을 통해 하나님에 대한
나의 사랑에 대해 돌아보는 시간이 되었다.
나는 하나님이 우리에게 주시는 사랑은 당연하다고 생각하면서
정작 하나님께 사랑을 드리지는 못했던 것 같다.
주일에 친구들과 놀러 가고 싶은 유혹에 흔들려 주일 예배대신
친구들과의 시간을 선택한 적도 많았고 몸이 조금이라도 아프거나
피곤하면 그 핑계로 예배를 드리지 않았다.
사탄이 가져온 좋은 것 때문에 하나님의 사랑을 빼앗겼던 적이
한 두번이 아니다. 다니엘과 세 친구는 산해진미의 유혹 앞에서
흔들리지 않고 하나님을 즐겁게 하는 것을 택해 하나님께서 그들에게
베푸시는 은혜를 받았지만 나는 세상의 유혹에 넘어가 하나님이 주시는
은혜를 받기는 커녕 하나님을 슬프게 한것 같다.
하지만 이제 부터는 좋은 것 때문에 더 좋은 하나님의 사랑을 빼앗기는
바보같은 짓을 하지 않도록 유혹에 지지 않는 늘 깨어있는 삶을 살아야 겠다.

‘주님, 세상 무엇보다 주님을 더 사랑하기 원합니다.’
‘주님, 죽음 앞에서도 변함 없는 사랑 드리기 원합니다.’

조상만

2009-04-21 05:19:10

하나님은 사랑이시군요. 다니엘의 3친구는 하나님에 대한 사랑을 지켜내기 위해 목숨도 내어 놓을 준비를 했는데, 저는 무엇을 했을까요? 악마가 가져다 준 Good 을 획득하기 위해 하나님의 Best 를 놓친 적이 있었을까요? 많았죠. 신앙이 있었을 때에나 없었을 때에나 음악하시는 많은 선배님들 혹은 친구들에게 휩싸여 이래저래 퇴폐적인 분위기에 물들고 그런것들을 즐겼고 찾았고, 결국 하나님의 사랑과 멀어져 버리게 된 그런 결과로 되어 버렸죠. 그 외에도 우리집의 제사 혹은 차례뒤의 차례상과 제사상의 음식을 즐겨 먹게 된 것도 하나님의 사랑과 멀어 지게 된 하나의 요소 인거 같습니다. 신앙이 생겼어도 어머니가 해놓은 맛있는 제사음식을 찾게 되더라구요. 그것이 사탄의 사탕인줄 모르고........ 하나님은 제가 우리집안 사람들을 전도 해서 그 음식이 제사음식이 아닌 하나님께서 내어주신 사랑의 음식으로써 변화 시켜서 하나님의 사랑을 느끼면서 우리 가족 모두 함께 먹기를 원하신거 같지만, 저는 그러지 못했습니다. 그리고 제사상의 산해진미를 뿌리치지도 못했습니다. 맛있다고 먹고 또 먹었습니다. 하나님께서는 얼마나 슬퍼 하셨을까요. 그리고 음복이라고 제사상위의 술도 마셨으니 이것은 하나님을 두번 슬프게 만들었군요. 이걸 알면서도 가족을 전도치 못하고 있고.. 하나님을 여러번 슬프게 만들고 있습니다. 일본에 온 뒤에 여러차례 한국에서의 명절이 다가오면 역시나 먼저 떠오른게 어머니께서 만드신 차례상의 음식들이 먼저 떠오르더군요. 그러면서 군침을 흘렸던 저 자신이 너무 부끄럽습니다. 전부 우상들을 위해 만들어진 제사와 차례라는 의식들. 거기에 쓰여진 맛난 산해진미들. 거기에 눈먼 "나" 자신. 저의 이러한 모습들을 하나님은 원치 않으셨을것입니다. 인제는 우리 가족들을 서서히 전도 시킬 계획을 세워 그런 Good 들로 부터 해방시켜야 하겠습니다. 그리고 좀 더 하나님의 Best를 향해 힘차게 나아가야 겠습니다.

-G.att-

장미경

2009-04-21 06:17:03

‘유다야 내가 너를 어떻게 하면 좋겠느냐? 나를 사랑하는 너희의 마음은 아침 안개와 같고, 덧없이 사라지는 이슬과 같구나.’(호6:4)
‘내가 바라는 것은 변함 없는 사랑이지, 제사가 아니다.’(호6:6)
하나님에 대한 사랑의 표현으로써의 예배가 진정한 예배요, 하나님에 대한 사랑의 표현으로써의 봉사가 진정한 봉사다

죽기까지 날 사랑하신 주님의 사랑 앞에서 과연 나는 어떠했는지를 돌아보게 되엇다. 내 마음에 은혜가 충만할때만 그저 주님을 사랑한다고 고백하던 자가 아니었나 싶다. 그야말로 어느새 사라지는 아침 안개처럼 ....
빠짐없이 주일을 지키고 훈련에 임하고 봉사도 하지만 과연 그 안에 얼마나 주를 향한 사랑의 마음이 있었는지 지금 이순간 주님께서 물으신다면 솔직히 자신이 없다. 형식적인 제사 앞에서만 강한 내가 아니었나 싶다. 정말 매 순간 그 사랑에겨워 내 마음이 뜨거워야 했을텐데 십자가 앞에서조차 무덤덤한 내 모습에 그야말로 껍데기뿐인 내 모습이 너무 안타깝다는 생각이 들었다.
이번주 말씀을 통해 정말 그 무엇보다도 내 안에 주를 향한 뜨거운 사랑의 회복과 그 사랑이 정금과 같이 변치 않도록 구하는 것이 먼저라는 깨달음을 갖게 되었다. 그래서 다니엘과 세친구처럼 주를 향한 사랑으로 어떠한 삶속의 유혹속에서도 강하고 담대한 주의 딸이 될 수 있도록 기도해야 함을!!!
텅빈 내 마음이 주를향한 사랑으로 가득하길 소망한다.

한진경

2009-04-21 07:38:22

하나님은 나를 변함없이 영원토록 사랑하여 주신다.
이 진리를 바꾼 사람은 바로 나였다.

매력적인 유혹이 나에게 찾아왔을때, 하나님이 날 사랑하셔서 이와 같은 좋은 환경을 나에게 주셨다고 생각했고, 결국 유혹때문에 내 자신이 망가지게 되었을때 나는 생각했다. 역시 하나님은 날 사랑하시지않아라고..
나쁜환경이 주어졌을때는 처음부터 하나님은 나를 다른 사람보다 사랑하지않으셔서 나에게는 별로 좋지않은 환경만 주신다고 생각하며 하나님의 사랑을 부인했다. 이 모습은 과거의 나의 모습.
하나님에 대한 나의 사랑은 조건부 사랑이었다.
하나님이 내가 원하는 것을 다 해주시면 나 또한 하나님을 사랑해 드리겠습니다라고.. 얼마나 건방졌는지..
그래도 사랑의 하나님은 나를 미워하시지도 꾸짖으시지도 않으셨다.
하나님의 사랑은 무조건적인 사랑이니까

하나님께서는 내가 진정한 하나님의 사랑을 깨닫도록 나의 ㅅㅏㅀ을 통해 보여주셨다.

주 예수보다 더 귀한 것은 없네. 이 세상 부귀와 바꿀 수 없네.
영 죽을 내대신 돌아가신, 그 놀라운 사랑 잊지못해.

그 어떤 것도 대신할 수 없는 하나님의 사랑이 너무나도 귀하다.
그 사랑을 아는 자녀들 또한 너무나도 귀하고 아름답다.

서진

2009-04-21 07:57:12

하나님께서 주신 말씀으로 나는 3가지를 느꼈다.첫번째 하나님께서 우리를 사랑 하시기에 우리도 하나님을 사랑하여야 한다것. 두번째 유혹앞에서 흔들리지 않고 주님과 가까이 하는것 .세번째는 두려움앞에서 무릎꿇지 말고 오직 주님만 의지하는것이다.
1,첫번째 하나님께서 우리를 사랑하신다. 십자가의 사랑이 가장 좋은 증거이다. 하나님께서 우리를 위하여 독생자 예수 그리스도를 아낌없이 십자가에서 고통을 당하게 하시고 죄 많은 우리 대신 죄를 씻어 주시게 하셨다. 하나님아버지께서 우리의 상상을 초월할 정도로 우리를 사랑하고 계신다.

나는 매일 입으로 주여 사랑합니다라고 하지만 과연 내가 얼마나 하나님 아버지를 사랑했을까? 과연 나는 내 목숨을 바쳐서라도 주님을 사랑할수 있을까?
아버지께서 나를 사랑해주신 만큼 나도 내 마음을 다하여 하나님아버지를 사랑하고 하나님의 사랑을 잊지 않고 하루하루를 살아가려고 한다.그 사랑을 잊지 않기 위해 매일 기도로 하나님께 사랑을 고백하려고 한다.

2,두번째 유혹앞에서 흔들리지 않고 주를 가까이 하는것. 우리는 세상의 유혹앞에서 넘어지는 경우가 많다. 사탄은 세상의 유혹으로 우리를 아버지와 멀어지게 한다. 그럴수록 우리는 유혹을 물리치고 주와 더욱 가까이 하여야 한다.

나도 유혹을 잘 못 이기는 것 같다. 세상의 유혹때문에 아버지와 멀리 한적도 많은것 같다. 나는 유혹을 이기기 위해 말씀으로 나를 무장하고 유혹을 물리치는 삶을 살려고 노력하겠다.

3,세번쩨는 두려움앞에서 오직 주님만 의지하는것. 다니엘에 세 친구가 금 신상에 절을 안 한것 같이 우리도 두려움앞에서 절대 무릎을 꿇어서는 안된다.

나는 두려움이나 환경의 어려움이 오면 항상 하나님을 의지하려고 하는것이 아니라 항상 나의 힘으로 어떻게 해볼려고 노력한것 같다. 등록금도 그랬었고 취직문제도 그랬던것 같다. 하지만 나의 힘으로 해낸것은 하나도 없다. 하나님만 의지할때 아버지는 다 이루어주셨다. 이제부터도 모든 일에 오직 하나님만 의지하면서 살아가려고 결심한다.

‘네 마음을 다하고 목숨을 다하고 뜻을 다하여 주 너의 하나님을 사랑하라 하셨으니 이것이 크고 첫째 되는 계명이요’(마22:37-38)

박종희

2009-04-21 08:02:38

‘이 일을 두고서는, 우리가 임금님께 대답할 필요가 없는 줄 압니다. 불 속에 던져져도 하나님이 우리를 활활 타는 풀무불 속에서 구해 주시고, 왕의 손에서도 구해 주실 것입니다. 비록 그렇게 되지 않더라도(but even if he does not), 우리는 왕의 금 신상에 절대로 절하지 않을 것입니다.’(단3:16-17)

하나님은 끝까지 우리를 사랑하신다.
사람은 상대방이 자신을 사랑해주면 자신도 상대방을 사랑하겠다라는 조건적인 사랑이 많다. 하나님의 사랑은 부모님이 자식을 사랑하는 사랑보다 깊다. 어떤 부모들은 자식들이 속썩이는 일을 자주 하면 부모임을 아예 포기해 버리는 경우가 있다. 하지만, 하나님께서 우리에게 보이시는 사랑은 그 아들 예수를 십자가에 못 박아 죽이시기까지의 희생의 사랑이시다. 하나님의 사랑은 일방적이다. 우리가 하나님을 찾지 않을때에도 세상에서 방황하고 있을때에도 끊임없이 우리가 돌아오기를 기다리시며, 찾으시는 분이 우리 하나님이시다.
나의 신앙생활을 뒤돌아 생각해 보면, 어려서부터 하나님을 믿어왔다고는 하지만, 늘 사랑이 빠진 빈그릇만 하나님께 드렸었던게 아니었나 생각해본다.
하나님을 진심으로 사랑하고 그분을 그리워했던 때가 얼마나 있었던가.
주일 예배를 드리는 것도 하나님을 향한 진정한 사랑이 빠져 있었던 때가 너무도 많았었다. 마지못해서 드린 예배! 그후에 "이걸로 됐죠?" 라고 동량하는 거지한테 적선하듯 하던 나의 태도. 너무도 부끄럽다.
그런 나를 포기하시지 않으시고, 끝까지 사랑하여주신 주님의 은혜로 나는 제자훈련을 받고 있다. 하루하루 신앙이 자라가고 있다. 이제 내가 주님께 드릴것은 그분이 나를 사랑하시는 것처럼, 나의 마음과 뜻과 목숨을 다하여 하나님을 사랑하는 것이다.

최현숙

2009-04-21 20:00:08

이번주일 말씀을 받으면서 많은 눈물을 흘릴 수 밖에 없었다. 하나님의 변함없는 사랑앞에서 그 사랑을 이용하여 뭔가를 얻을려고 했던 나의 추악하고 더러운 모습을 보게 되었기 때문이다. 내가 살아도 주를 위해 살고 죽어도 주를 위해 죽기 때문에 모든 것이 주님을 위한 것이라고 입술로는 고백을 하며 기도할 때마다 주님의 사랑에 목메어 울었던 적이 셀 수 없을 정도로 많았기 때문이다. 그런데 유혹이 올 때 나의 모습은 어떤가 최선을 선택해서 최고를 놓친 모습을 볼 때마다 우리 주님은 아파하고 계셨던 것이다. 견디기 힘든 환경이 오면 그 속에 함몰되어 어찔 할 줄 몰라하며 주님앞에 원망의 하소연을 하며, 고난뒤에 주님의 숨은 뜻관 상관없이 내가 겪고 있는 그것에 집중하고 있는 모습은 또 얼마나 많았던가? 하나님께서 두루 다니면서 자신을 전심으로 찾고 마음을 다해 사랑하는 한 사람을 찾고 있는데, 주님! 그사람이 저가 되길 원합니다. 저가 그렇게 주님을 마음을 다해 목숨을 다해 사랑할께요. 이렇게 입술론 말을 하지만, 삶에선 늘 도망갈 준비를 하고 있었던 철저히 육의 타락한 본성이 내 속에 가득차 있음을 보았다.
나는 다니엘의 세친구를 보면서 보석과 같은 믿음이 무엇인가를 알게 되었다. 하님을 마음을 다해, 목숨을 다해 사랑했던 세사람을 보면서 주님은 참 행복했을 것 같다. 변함없는 사랑! 하나님은 나를 위해 변함없는 사랑을 주시고 계시는데 내가 주님께 드린 사랑은 아침안개, 아침이슬과 같은 사랑이였다는 것을 보게 하셨다. 그러니 내가 어찌 눈물을 흘리지 않을 수 있겠는가?
주님을 향해 변함 없는 사랑을 회복하길 원합니다.
무화과 나무에 과일이 없고, 포도나무에 열매가 없고, 우리에 양이 없고 외양간에 소가 없을 지라도 나는 주님 안에서 즐거워 하며 그 사랑 받고 있음을 찬양합니다. 이런 고백을 드리길 원합니다. 주님의 변함 없는 사랑에 내 영혼이 드릴 수 있는 마음은 이 고백뿐입니다. 주님! 빈그릇을 주님앞에 올려 드리는 그런 황망한 일들이 내 삶속에서 점점 멀어지고 오직 마음을 가득 담아 드릴수 있는 현숙이가 되게 하소서, 다니엘의 세 친구처럼 진실한 마음, 유혹과 고난속에서도 흔들리지 않는 사랑으로 주님만을 섬기길 원합니다.
주님! 저를 도우소서...

강민아

2009-04-22 22:37:00

사람들은 유혹 앞에서 사랑이 변하기 쉽다. 이 유혹은 어떤 의미에서 좋은 환경이다. 나에게 큰 즐거움을 줄 것 같고, 큰 유익을 줄 것 같은 유혹이다. 우리는 서 있을 때에 넘어질까 조심해야 한다.(고전10:12)

나는 지금까지 유혹은 어렵고 힘든 환경 속에서 나를 쓰러트린다고 생각했었다. 그래서 항상 기도할 때도 믿음이 흔들리지 않도록 나의 환경을 주관하여 달라고 구했었다. 하지만, 이번 주 목사님의 설교를 듣고 나의 어리석음에 회개하게 되었다.

어떠한 환경 속에서도 하나님을 향한 사랑은 변함없어야 한다 는 것.
하나님이 우리를 끝없이 변함없이 사랑하셨듯이 나 또한 그런 사랑으로 하나님을 바라봐야한다는 것을 깨닫게 되었다. 어쩌면 나쁜 환경보다 더 무서운 유혹이 좋은 환경속에서 오는 유혹일지도 모른다는 생각에 나의 지난 날들을 뒤돌아 보며 내가 대부분 하나님을 등지고 살아왔던 이유가 세상의 즐거움과 나의 욕심에서 비롯됐다는 것을 알게되었다. 언제나 제일 좋은 것으로 채워주시는 하나님. 나의 환경은 항상 하나님의 사랑으로 충만하고 은혜로웠지만, 그 안에서 내가 하나님앞에 바로 서지 못했기에 내 삶속에서 하나님은 점점 멀어지고 있었던 것 같다.
어떠한 상황 속에서도 하나님을 찬양하고 경배하는 그 사랑을 고백하는 자녀가 될 수 있기를 소망하며 "나의 나 된것은 오로지 주의 은혜" 임을 다시 한번 마음에 새긴다.

홍은미

2009-04-23 04:48:27

주님은 그릇을 원하는 것이 아니라, 그 그릇에 담긴 ‘사랑’을 원하신다. ‘주님 내가, 예배의 그릇에, 봉사의 그릇에, 찬양의 그릇에, 기도의 그릇에, 전도의 그릇에… 내 사랑을 담아 드립니다. 내 사랑을 받아 주옵소서.’

'껍데기 믿음, 껍데기 사랑을 갖고 살아가는 것은 아닌지...!' 아무 생각없이 아니 쓸데없는 고민과 걱정으로 마음의 여유도 없이 잠깐 기도하고 '하나님 다음부터요..'라고 하며 말씀 읽는 것을 미루는 나, '예수님이 우리를 사랑한 것 같이 나도 사랑해야지', '마음에 들지 않아도 기도해 주어야지..'하면서도 그 사람만 보면 짜증이 나고 마음을 닫게 되고... 그렇게 못난 나를 또 정죄하고 회개하고....
이불 속에서 나오기 싫어 눈뜨고 천장만 바라보듯이 그렇게 하루하루 앞으로 나아가지 못하고 게으름만 피우고 있는 나,
하나님은 나를 늘 변함없이 사랑하시는데, 예수님은 늘 변함없이 나를 바라보시는데 나는 늘 굴곡을 그리면서 사랑을 하는 것 같다. 언제는 넘쳤다 언제는 식었다.
아침엔 마음을 다져먹고 신앙서라도 읽으려 했다가 결국 책을 덮어버렸다. 답답했다. 너무 편안한 환경이 되어버려서 그럴까! 편안한 유혹앞에 ko되버어리면 안되는데 요즘의 나는 유혹앞에 금방 엎드려버린다.
"힘내자! 일어서자! 나한테는 하나님이 계시지.. 이런 모습은 좋아하시지 않으실거야..다시금 나의 마음속에 은혜의 물결이, 성령의 감동이 일어서 사탄이 아닌 온전한 성령충만 기쁨 충만한 삶이 되도록 변함없이 주님을 사랑하는 마음이 가득하도록 기도하고 마음을 다잡아야겠다."

문원희

2009-04-23 08:28:50

‘네 마음을 다하고 목숨을 다하고 뜻을 다하여
주 너의 하나님을 사랑하라 하셨으니
이것이 크고 첫째 되는 계명이요’(마22:37-38)
마음을 다해 하나님을 사랑하는 것이다.
바울은 이렇게 기도하고 있다.
‘우리 주 예수 그리스도를 ‘변함 없이 사랑’하는
모든 사람에게 은혜가 있기를 빕니다.’(엡6:24)

이번 설교 시간은 그동안 하나님에 대한 나의 사랑을 돌아보는
귀한 시간이었다. 예배도 열심히 드리고, 제자훈련도 열심히 하고,
봉사도 열심히 하고 있지만, 정말 마음을 다해 나의 주 하나님을
사랑하고 있었나 반성해 보았다. 입으로는 하나님을 사랑한다고
고백하면서도 내 마음을 다하고 목숨을 다하고 뜻을 다하여 하나님을
사랑했는지, 그동안의 나는 하나님께 그릇만 드렸던 것은 아닌지, ,
하나님은 그릇에 담긴 나의 사랑을 원하시는데, 나는 그동안 빈 그릇
이나, 반만 차있는 그릇을 드렸던것은 아닌지 반성해보는 계기가 되었다.
나를 사랑해 주시는 하나님께,
나의 사랑이 가득 담긴 예배의 그릇, 찬양의 그릇, 봉사의 그릇,
훈련의 그릇을 드리는 내가 되기를 소망한다.

‘주님, 세상 무엇보다 주님을 더 사랑하기 원합니다.’
‘주님, 죽음 앞에서도 변함 없는 사랑 드리기 원합니다.’

최민정

2009-04-24 05:50:59

주님이 바라는 것이 있다. 제사보다 더 바라는 것이 있다. 태워서 드리는 번제보다 더 바라는 것이 있다. 그것이 무엇인지 아는가? ‘사랑’이다. 주님이 우리를 사랑하신 것 같이, 주님도 우리의 사랑을 받기를 원한다. ‘네 사랑을 받고 싶구나.’ 어떤 사랑일까? ‘아침 안개’같은 사랑이 아니라, ‘변함 없는 사랑’을 받기를 원하신다


주님이 우리를 사랑하신것 처럼 똑같이 우리의 사랑을 변함없이 받기
원하신다는 이번주 말씀에 눈물이 날뻔했다. 언제나 받기만 했던
나였기에 그 크기를 알 수 없는 사랑을 미쳐 깨닫지도 못하며 살고 있는데
내가 주님께 드린사랑이 너무 보잘것 없는게 아닌지..
학교과제에 바빠서 주님을 잊고 인터넷을 헤메이다 주님을 잊고. 넋놓고
방송프로그램을 보다가 그렇게 세상속의 것만을 찾다가 어느새 주님
생각을 전혀 안하고 있었던 적도 많았던것 같다.
주일 하루만 겨우 예배드리는 것이 주님 보시기에 얼마나 서운하셨을지
주님은 나를 위해 매일매일을 지켜보고 계시는데 그에 대한 나의 사랑은
이정도 뿐이 었다니.. 이제라도 내 마음을 세상의 유혹이 아닌 하늘에만
두고 하나님께 더 많은 사랑을 드리고 싶다.
더 많이 생각하고 더 많이 주님과 대화하며 소통해 가는 귀한 제자의 삶을
살아가야겠다.

박유진

2009-04-25 09:47:38

"예배 자체가 중요한 것이 아니라, 예배 속에 담긴 사랑이 중요하다. 하나님에 대한 사랑이 있기 때문에 예배가 중요한 것이다. ‘하나님, 제가 하나님을 이처럼 사랑합니다. 제 사랑을 받아 주시옵소서’ 하나님에 대한 사랑의 표현으로써의 예배가 진정한 예배요, 하나님에 대한 사랑의 표현으로써의 봉사가 진정한 봉사다. 예배의 모양은 있는데 예배의 능력이 없으면 형식적인 예배, 죽은 예배에 불과하다. "
"‘이 백성이 입술로는 나를 공경하되 마음은 내게서 멀도다.’(마15:8) "

나는 요즘, 내가 드리는 예배가 '신령과 진정으로' 드리는 예배가 되지 못하고 있다고 늘 주일만 되면 자책하고 있었다. 자모실에서 아기들과 함께 예배를 드리다보면, 예배에 집중할 수가 없고, 설교 말씀을 거의 듣지 못하기 때문이다. 그런데, 오늘 말씀을 통해서, 한가지 더, '하나님에 대한 사랑'까지 빠져있다는 것을 깨달았다. 예배에 집중하지 못하고, 말씀을 듣지 못한다는 자책감만 생각했지, 하나님에 대한 사랑의 표현이 예배라는 생각은 하지 못했었다. 예배의 형식만을 생각했던 것이다. 내가 그 안에 얼마나 잘 참석했나, 하는 나의 의를 드러냈던 것이다.
이번주 예배는, 예배에 집중하지 못한다는 자책감 보다는, 하나님에 대한 나의 사랑을 성심껏 주님께 드리는 예배가 되길 기도한다.

박빛나

2009-04-26 01:38:38

주님의 그 사랑에 보답하는 길은, 우리도 일마다 때마다 ‘변함 없는 사랑’을 주님께 올려 드리는 것이다.

지난 주 금요일부터, 친한 언니가 우리집에서 3일간 머물게 된 일이 있었다.
실은, 그날 회사의 신입사원 환영회가 있는 날이었다. 샤브샤브 먹으러 간다고 얼마나 좋아했었던지 모른다. 하지만, 사람과 샤브샤브를 바꾸는 것을 기뻐하시지 않을 것 같았다. 그래서, 관리부에 죄송하다고 불참을 전달하고 집에와서 너무나 좋은 시간을 보냈다. 조촐하게 라면을 끓여먹고, 이야기를 하고...
그리고, 감사했다. 주님, 역시 샤브샤브보다 주님 말씀처럼 사람이 좋네요. ^^;
그리고, 주일... 주님은 샤브샤브에 스키야키까지! 내 뱃속을 가득 채워주셨다. 더불어 오랫만에 반가운 만남까지 플러스해주셨다.

때로는 눈 앞의 샤부샤부가 정말로 좋아보이고, 그 순간이 행복해 보일지 모른다. 하지만, 주님이 예비해주신 더 좋은 것들이 기다리고 있지 않은가!!

주님의 변함없는 사랑에 보답하는 길. 변함없는 사랑이기에 순간의 판단으로는 알 수 없는 그 사랑을 감사하는 길!!
매일 주님께 좀 더 민감해지길 기도한다. 그리고, 매일 매일 감사하고, 주님 더 많이 사랑하길 마음으로 다짐한다.

김수영

2009-04-26 04:24:33

하나님은 끝까지 나를 사랑하신다. 그 사랑하는 아들 예수님의 목숨까지
내놓으셨다. 훈련을 받으면서 회사일과 훈련을 병행하면서 저의 힘의
한계를 알면서 주변 사람들과의 만남을 꺼려왔다
왜냐하면 나는 두가지 일을 병행해본적 거의없다
혼자 너무벅차 남에게 시간 줄 여유가 없어 주변 사람들에게 미안한
마음을 갖고 있었지만 그들은 나의 차가운 모습을 보았을 것이다.
그렇지만 어쩔 수 없었다 가치가 있고 귀중한 것을 얻으려면 세상으로
부터 잠시 왕따도 감안해야 한다고 마음먹었다
이제 훈련도 끝났고 시간의 여유도 생겼다 이제부터 주변 사람들을
챙기고 사랑또한 회복해야겠다
하나님 사랑합니다
예수님 사랑합니다
성령님 사랑합니다.

中森千草

2009-04-26 04:42:57

すべての戒めは、愛から生まれている。
私たちの心の状態によって、時にはその奥にある愛が見えないときがあるかもしれない。
しかしすべての出来事は、愛で始まり愛で終わる。
何より神様を1番に考えること、神様を信じて御言葉に従うこと、その行動は世の中から見たら弱く感じられるかもしれない。
しかし神様にとっては大きな喜びであり、これが祝福の道だと思う。
たくさんの愛を受けているにもかかわらず神様への愛は小さく、神様は私からの愛を忍耐をもって待っておられる。
神様の期待に応えていきたい。そして神様に愛をたくさんお返ししていきたいです。

古郡武志

2009-05-03 16:31:52

「宮廷の肉類と酒で自分を汚すまいと決心し…」(ダニエル書1:8)

神様は変わることのない愛をわたしたちに向けて下さる。
だから、わたしたちも変わらない愛を神様に向けるようにしなければならない。

しかし、誘惑の前でこの愛は崩れやすく、特に誘惑の一つが食べる楽しみであるという。たしかにアダムとエバが誘惑に負けて善悪の木の実を食べてしまったのが人類の悲劇の始まりである。

いやはや、なかなか耳の痛い話しで、説教を聴きながら苦笑いをせざるを得なかった。
ダニエルと3人の友達は山海珍味の誘惑から自分を守ったという。
果たして、自分だったら山海珍味の誘惑から自分を守ることができたのだろうか?
いや、ごちそうに目のない私だったら、自分をまもるどころか、「王様、おかわりを下さいませんか?」などと言って、追加注文していたかもしれない。

私は別に高級な山海珍味が好きなのではなく、例えば、焼きそばとかお好み焼きとかたこ焼きとか庶民的な食べ物の中でもおいしいものを好むいわゆる「B級グルメ」というグループに属するのだと思う。生活の中心的なテーマとして、「B級グルメ」を追及しているわけではないが、やはりよさそうな店を見かけると入りたくなってしまうし、場合によっては「入ろうか入るまいか」迷ったあげくに駅と店を往復してしまうようなこともたまにある。

 たしかに飲む楽しみや食べる楽しみには、人間を中毒にさせて(特にお酒)、時間と経済のすべてを費やさせ、神様のことを完全に忘れさせる危険性がある。
 自分は、今は生活の中で自然に食べることを楽しむという状態ではあるかと思うが、やはり食事を楽しむ際の心理状態を自己分析すると、神様のことが頭から離れてしまうことが多いのではないかと思う。ごちそうを目の前にしたときと食事を楽しんだ後は、感謝の気持ちで神様を思い起こす。しかし、ごちそうを口に運んでいるときは、味わうことに夢中で、神様のことが頭から離れているのではないか?

 「変わらない愛」というのには例外がない。美味しいものを楽しむという営みはやめられそうにないが、「美味しいもの」を楽しむ時に限っては、愛は変わっていいというような都合のよい例外を許すはずもない。神様のせいで美味しいものが食べられることをきちんと考え、その方に感謝を捧げながら楽しむということが重要なのではないか。

 もちろん生活には、食べるときに限らず、各人によって至福の時間は様々であろう。好きな音楽を聴くとき、おもしろい小説を読む時などなど…
 節度をもってその至福のひとときを味わい、その至福のひとときにおいても万物の支配者である主への愛・感謝を忘れないようにしなければならない。
 「至福のひととき」に支配され、エネルギーを注ぎ込むのではなく、「至福のひととき」をきちんと自分なりに生活の中でコントロールし、その中でも主への感謝を忘れない…
 「そのような落ち着いた生活を保つように注意しなさい」
山海珍味の誘惑から自分を守ったダニエルと3人の友達のエピソードからそんなメッセージを聞いたように思う。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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