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중앙영광교회

부활과 전도

이용규목사, 2009-04-13 16:05:4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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부활과 전도

말씀//요21:17-19

1.        부활하신 예수님
기독교의 대표적인 두 가지 사건은 십자가와 부활이다.
십자가는 하나님의 절대적인 사랑을 의미한다. 그래서 기독교는 참 사랑의 종교이다. 그리고 예수님의 부활은 하나님의 절대 능력, 참 생명을 나타내고 있다. 그래서 기독교는 참 생명의 종교, 참 능력의 종교이다. 자신이 죽음으로까지 사랑을 증명하고, 자신이 부활함으로 능력을 보여 주는 다른 종교는 없다. 십자가와 부활이 있기 때문에 기독교는 참 종교이다. 기독교 외에는 구원이 없는 것이다. 교회 밖에는 구원이 없다.
‘예수께서 그에게 말씀하셨다. 나는 길이요, 진리요, 생명이다. 나를 거치지 않고서는 아무도 아버지께로 갈 사람이 없다.’(요14:6)
예수님께서 우리 죄를 위하여 죽으셨다가 성경대로 3일만에 다시 살아나신 날이 부활절이다. 예수님의 부활 사건은 역사적인 확실한 사건이다. 최소한 500명이 넘는 확실한 증인이 있는 사건이다.(고전15:6)
예수님의 부활은 주님의 능력을 과시하기 위한 사건이 아니다. 우리에게 참 소망을 주기 위한, 우리를 위한 사건이다.
‘그리스도 안에서 우리가 바라는 것이 이 세상에만 해당되는 것이라면, 우리는 모든 사람 가운데서 가장 불쌍한 사람일 것입니다. 그러나 이제 그리스도께서는 죽은 사람들 가운데서 살아나셔서, 죽은 사람들의 첫 열매가 되셨습니다.’(고전15:19-20)
초대 교회 시대의 부활을 믿는 사람들은 세상을 너무 당당하게, 힘있게 살았다.
그들은 고문을 당하면서도 더 좋은 부활의 삶을 얻고자 하여 구태여 석방되기를 바라지 않았다.(히11:35) 부활은 어떤 고문도, 고난도 넉넉히 이길 수 있는 하늘의 능력이었던 것이다.
예수님의 부활은 우리 인생의 부활을 보장하는 하나님의 약속이다.
부활하신 주님을 바라보며 함께 외쳐 보자!
‘내 인생도 반드시 부활한다! 뭘 의심하는가? 예수님의 부활이 그것을 확실히 증명하고 있지 않은가!’    

2.        신앙 부활
요한복음에서, 부활하신 예수님이 3번 제자들에게 나타나셨다. 그 중에서 첫 두 번은 부활에 대한 믿음을 제자들이 갖기를 원했다. 여기에는 유명한 도마의 불신앙 이야기가 나온다. 예수님은 도마의 믿음 없음을 꾸짖으셨다. 왜 믿음이 없다고 했을까? 도마의 불신앙은 무엇이었을까? 도마의 불신앙은 예수님을 못 믿는다는 것이 아니다. 예수님은 믿는데, 부활은 못 믿는다는 말이다. 이것이 도마의 불신앙의 모습이다. 그렇다 이것은 확실히 불신앙이다. 부활은 예수님이 이미 말씀으로 예언하신 것이고, 또 예수님은 전능하신 하나님이시고, 생명과 부활이신데, 예수님이 부활하신 것을 못 믿는다면 말이 안 된다. 예수님을 믿는다면 부활을 믿는 것은 당연한 이치이다.
예수님은 도마에게 친히 나타나셔서, 손으로 만져 보고, 옆구리에 넣어보고, 의심을 떨쳐 버리고 믿으라고 했다. 그리고 예수님은 도마에게 따끔하게 충고했다. ‘너는 나를 보았기 때문에 믿느냐? 나를 보지 못하고도 믿는 사람은 복이 있다.’(요20:29)
예수님이 귀하게 여기는 믿음은, 보아야 믿는 ‘현상믿음’이 아니라, 듣기만 해도 믿을 수 있는 ‘말씀믿음’이다. 마가복음에서 예수님께서 제자들이 믿음이 없는 것을 꾸짖은 것도, 부활의 증인의 말을 믿지 않았기 때문이다.(막16:14)
혼나고 믿지 말고, 먼저 믿고 칭찬받자.
부활하신 예수님은 지금도 우리의 믿음이 부활하기를 원하신다.
예수님의 죽음과 함께 죽었던 제자들의 믿음이 부활하기를 원하셨듯이, 사망권세를 이기고 부활하신 주님의 능력을 믿는, 부활 신앙이 우리 속에 부활되기를 간절히 원하신다.  
‘나는 예수님의 부활을 성경을 통해서 확실히 믿습니다.’    

3.        사명 부활
예수님은 제자들에게 3번째 다시 나타나셨다. 이 사건이 요한복음 마지막 장(21장)을 다 차지하고 있다. 그 만큼 중요하기 때문일 것이다.
두 번째 나타나심까지는 제자들의 믿음을 부활시켜 주셨다. 부활 신앙이 없으면 사람들은 세상에 대해서 두려움을 갖게 된다. 그래서 예수님의 제자들도 처음에는 모두들 문을 꼭꼭 잠그고 살았다. 두려워서 바깥 출입을 못하고 방 안에 숨어 살았다. 세상이 두려워서 바깥에 나갈 수가 없었던 것이다. 그런데 그들 속에 부활 신앙이 회복되자 그들에게서 두려움은 사라졌다. 부활의 빛이 있는 곳에 두려움의 어둠은 도망가게 되어 있다. 그들은 드디어 바깥으로 나왔다.
그런데 예수님이 그들을 다시 만나지 않으면 안 되는 중요한 이유가 한 가지 생겼다. ‘시몬 베드로가 그들에게 말하기를 ‘나는 고기를 잡으러 가겠소’ 하니 그들이 ‘우리도 함께 가겠소’하고 말하였다.’(요21:3)  
심각한 문제가 여기에 있었다. 제자들에게 두려움은 없어졌지만, 그들은 인생의 목적을 상실해 버렸다. 그들은 무엇을 해야 할지를 몰랐다. 그래서 그들은 예수님을 만나기 전 상태로 돌아가 버렸다. 예수님이 사람을 낚는 어부로 바꾸어 주셨는데, 그들은 다시 고기를 낚는 어부로 돌아가 버렸다. 예수님이 주신 사명을 잃어 버렸던 것이다. 예수님은 이 사명을 다시 부활시키기를 원하셨다. 그래서 먼저 밤새도록 고기 한 마리 못 잡은 그들에게 만선의 복을 주시고, 또 그들을 배불리 먹이신 후에, 조용히 베드로를 부르셨다.
예수님은 베드로에게 3번이나 같은 질문으로 물으셨다.
‘요한의 아들 시몬아, 네가 이 사람들보다 나를 더 사랑하느냐?’  
‘요한의 아들 시몬아, 네가 나를 사랑하느냐?’  
‘요한의 아들 시몬아, 네가 나를 사랑하느냐?’  
사람은 같은 질문을 3번이나 받으면 심각해진다. 한 번 묻는 것과 3번 묻는 것은 효과가 전혀 다르다. 삼고초려라는 4자 성어도 있지 않은가? 만약 예수님이 한번만 말씀하셨다면 아마 베드로는 또 넘어졌을 것이다. 3번을 통해서 주님은 다짐에 다짐을 시키셨다.
그러면 예수님은 베드로에게 무슨 다짐을 받기를 원하셨던 것일까?
베드로가 정말 자신을 사랑하는지를 확인 받는 것이 목적이었을까? 아니다.
주님은 ‘사랑 확인’이 목적이 아니었다. 핵심은 ‘내 양을 치라’(요21:16)였다.
베드로가 정말 누구보다 예수님을 사랑한다면, 거기에 어울리는 삶을 붙들라는 것이다. 그것은 자신의 고기를 잡는 것이 아니라, 주님의 양을 치는 일이다. 예수님의 목적은 ‘사랑 확인’이 아니라, ‘사명 확신’이었다. 예수님은 사명을 부활시키기를 원하셨다. 사명을 잃으면 아무 일도 못한다. 그저 인생을 부평초같이 방황하다가 끝낸다.
4복음서 전체에서 부활하신 예수님은 제자들에게 한결같이 사명을 깨워주고 계신다.
마태복음에서는 ‘너희는 가서 모든 민족을 제자로 삼아라’(마28:19)고 하셨고,
마가복음에서는 ‘너희는 온 천하에 다니며 만민에게 복음을 전파하라 믿고 세례를 받는 사람은 구원을 얻을 것이요 믿지 않는 사람은 정죄를 받으리라’(막16:15-16) 하셨고,
누가복음에서는 ‘또 그의 이름(예수님의 이름)으로 죄 사함을 받게 하는 회개가 예루살렘에서 시작하여 모든 족속에게 전파될 것이 기록되었으니 너희는 이 모든 일의 증인이라’(눅24:47-48)라고 하셨다.
모든 복음서의 마지막 결론은 복음의 증인, 즉 예수님의 증인 되는 것임을 알 수 있다. 부활하신 예수님은 제자들이 증인의 사명을 부활시키기를 원하셨다.
예수님은 천국에 올라가시면서 이런 말씀을 하셨다.
‘볼지어다 내가 내 아버지께서 약속하신 것을 너희에게 보내리니 너희는 위로부터 능력으로 입혀질 때까지 이 성에 머물라’(눅24:49)
위로부터의 능력은 성령을 말한다. 성령을 받으면 어떻게 될까? 땅끝까지 예수님의 증인이 된다.(행1:8) 성령은 증인의 삶의 능력이기 때문이다.
부활하신 예수님은 제자들에게 사명을 회복시키기 위해서 찾아 오셨다.
복음을 땅끝까지 전하는 것, 전도의 사명은 부활하신 예수님이 성도들에게 주신 사명 중의 사명이다.
전도는 주님의 부활을 세상의 부활로 바꾸는 위대한 능력이다. 주님의 부활을 전함으로 그것을 받는 사람에게 부활의 생명이 번져가기 때문이다. 부활의 생명을 전해 주는 일은 결코 피해를 주는 것이 아니다. 그들을 살려주는 것이므로 그들에게 해 줄 수 있는 가장 큰 섬김의 행위이다.  
부활하신 주님이 당신에게 무어라고 말씀하시고 있나?
주님의 음성에 귀를 기울여 보자. 그리고 ‘나를 따르라’고 하신 주님의 말씀대로 부활하신 주님을 따라가자 세상 바다에 기웃거리지 말고 말이다.

주님의 부활은 곧, 나의 부활이다.
내 신앙의 부활과 내 사명의 부활이 곧, 내게 있어서 주님의 부활이다.
내게 이 부활이 없으면 우리는 부활하신 예수님을 다시 무덤 속으로 몰라 넣게 된다. 주님은 나를 부활시키기 위해서 부활하셨다.
우리 함께 주님의 부활의 능력으로 다시 부활의 날개를 펴자.

17 コメント

문인우

2009-04-14 01:10:02

부활하신 예수님은 제자들에게 사명을 회복시키기 위해서 찾아 오셨다.
복음을 땅끝까지 전하는 것, 전도의 사명은 부활하신 예수님이 성도들에게
주신 사명 중의 사명이다.
전도는 주님의 부활을 세상의 부활로 바꾸는 위대한 능력이다.
주님의 부활을 전함으로 그것을 받는 사람에게 부활의 생명이 번져가기
때문이다. 부활의 생명을 전해 주는 일은 결코 피해를 주는 것이 아니다.
그들을 살려주는 것이므로 그들에게 해 줄 수 있는 가장 큰 섬김의 행위이다.

예전에 나에게 있어 고난 주간은 나와 상관없는 그냥 평범한 한 주였고
부활절 역시 삶은 계란 나누어 주는 보통 주일보다 조금 더 특별한 주일일
뿐이었다. 하지만 이번 고난 주간은 제자 훈련생이니까 예전과는 다르게
보내보자 라는 마음으로 점심 금식을 하면서 성경책을 읽는 시간을 가졌다.
또 봄학기 전도대회와 겹쳐 토요일과 주일에 전도를 하면서 전보다 뜻깊은
고난 주간을 보냈다.
그래서 나름 만족을 했고 이제 전도 대회도 끝나고 고난 주간도 끝났으니까
전도를 안해도 된다는 생각을 가지고 있었는데 이번 목사님의 설교 말씀을
듣고 얼마나 뜨끔했는지 모른다. 단지 전도 기간이니까, 고난 주간이니까
제자 훈련생이니까 뜻깊게 보내보자 라며 나의 만족을 위해 금식을 하고
전도를 해온건 아닌가 반성하게 되었다.
예수님께서 십자가를 지시고 삼일만에 부활 하신 것은 예수님의 능력을
세상 사람들에게 보여주기 위해서가 아니라 제자들에게 사명을 회복시키기
위해서다. 그 사명은 예수님의 부활의 복음을 믿지 않는 사람들에게 전하는
것인데 나는 단지 나의 만족을 위해 전도하는 시늉만 해 왔던 것 같다.
고난 주간이 끝이 아니라 고난 주간을 시작으로 더욱 예수님의 부활을 전하며
전도를 통해 믿지 않는 사람들을 섬기는 내가 되고싶다.

강민아

2009-04-14 01:27:28

그들은 인생의 목적을 상실해 버렸다. 그들은 무엇을 해야 할지를 몰랐다. 그래서 그들은 예수님을 만나기 전 상태로 돌아가 버렸다. 예수님이 사람을 낚는 어부로 바꾸어 주셨는데, 그들은 다시 고기를 낚는 어부로 돌아가 버렸다. 예수님이 주신 사명을 잃어 버렸던 것이다.

이번 부활절을 보내면서 내가 그동안 이 날을 얼마나 쉽게 생각하며 살아왔는지 되돌아 보며 회개하게 되었다. 예수님이 나를 위해 십자가에 못박혀 돌아가시고 또 다시 살아나신 가장 귀하고 영광스러운 날을 나는 그저 행사가 있는 날로 형식적으로 생각해왔었다. 이번 부활절을 준비하며 내가 성인이 되고 처음으로 가장 뜻 깊은 고난 주간을 보냈던 것같다. 비록 새벽기도를 다 지켜내지 못했지만, 전도대회 기간을 보내면서 예수님께서 너무도 귀하게 여기셨던 사명을 내가 동참할 수 있었고 무사히 마칠 수 있었음을 감사했다.

만약, 내가 한국에 있었다면 아마도 나는 예전처럼 고난 주간을 또 부활절을 보냈을 것이다. 제자들처럼 예수님께서 주신 사명을 잃어버린 채 또 세상 속에서 나의 일을 더 중요시하며 시간을 보냈을 것이다. 그렇게 생각하니, 나를 다시 일본으로 보내신 하나님의 계획이 너무 감사하고 또 앞으로 보여주실 수 많은 일들을 기대하게 되었다.

목사님의 말씀처럼 어디를 가더라도 무엇을 하더라도 예수님께서 주신 사명을 잃지 않고 그 사명을 마땅히 감당해 낼 수 있는 제자로 성장하기 위해 일본에서의 남은 3개월의 시간을 소중히 보내야 겠다고 다짐한다.

나의 인생의 목적은 온전히 주님 안에서 행해질 수 있도록 기도를 게을리 하지 않는 내가 되기를 소망한다.

조상만

2009-04-14 06:57:05

우리 예수님은 부활 하셨습니다. 우리 모두를 부활 시키게 위해서 이죠. 신앙 부활이라는 거 우리모두 신앙이 있다고는 하지만 과연 우리의 행동과 평소의 마음가짐들은 그렇다고 할 수있을까요? 저 또한 매주 아니 매일 교회나오고는 있지만, 교회 내에서 큰 은혜와 하나님의 가르침을 받고는 세상에서는 속세의 여러 요소들과 죄악과 함께 하는 생활에 익숙해져 버려서는 저들과 잠시 동화 되었다가 다시 교회에서는 아닌 것 처럼 행동 하고, 그리고 하나님께 용서 받길 바라고 있죠. 물로 하나님께서는 용서해주십니다 만은, 이래서는 인생의 목적을 지닌 하나님의 음악가라고 할 수있을까요? 그것도 모자라서 게으름이라고 하는 거대한 적이 저를 누르고 있습니다. 다시 부활해야 합니다. 처음 신앙이 생겼을 때의 기쁨을 다시 기억 해내고 그때 하나님과 나와 했던 다짐들 그리고 약속들... 모두 다시 떠올려서 부활 해야 합니다. 하나님께서 저를 이 일본 땅에 그리고 이 곳 동경 중앙 영광 교회에 보내신 이유가 있을 터인데 저는 그것을 잠시 잊고 있었던건 아닌지, 저의 마음가짐을 다시 재조명 해봅니다. 고난주간이었죠. 예수님이 저와 모두를 위해 세상을 바꾸기 위해 십자가를 지시고 가셨습니다. 우리가 져야했던 십자가, 그리고 우리가 죽어야 했던 그 죽음~ 그 모든 것을 지시고 예수님은 돌아가셨습니다. 인제 부터라도 나의 신앙은 다시 부활 해야 겠죠. 그 부활을 위해 나는 오늘도 기도 하고 내일도 그리고 그뒤에도 주욱 기도 하고 그리고 그 답을 찾기위해 노력하겠습니다. 나를 위해 그렇게 처절한 고통을 선택하신 나의 예수님이시여, 저와 항상 함께 하시어 저의 새로운 신앙을 위해 기름을 부어 주소서. 그리고 제가 항상 당신을 위해 노래하게 하소서

-A men-

장미경

2009-04-14 09:50:08

베드로가 정말 누구보다 예수님을 사랑한다면, 거기에 어울리는 삶을 붙들라는 것이다. 그것은 자신의 고기를 잡는 것이 아니라, 주님의 양을 치는 일이다. 예수님의 목적은 ‘사랑 확인’이 아니라, ‘사명 확신’이었다. 예수님은 사명을 부활시키기를 원하셨다. 사명을 잃으면 아무 일도 못한다. 그저 인생을 부평초같이 방황하다가 끝낸다.

장미경 내가 정말 누구보다 예수님을 사랑한다면,
거기에 어울리는 삶을 붙들어야 할 것이다.
그것은 내가 세상에서 성공하기 위해 애쓰는 삶이 아닌 주님의 양을 치는 일이다.
예수님의 목적은 "사랑확인"이 아니라 "사명확신"이시다.
예수님은 나의 사명을 부활시키시기 원하신다.
사명을 잃으면 아무 일도 못한다.
그저 인생을 부평초같이 방황하다가 끝내고 말것이다.

정말 누구보다 예수님을 사랑하는 자가 되자!

탁성아

2009-04-15 01:58:50

- 제자들에게 두려움은 없어졌지만, 그들은 인생의 목적을 상실해 버렸다.
그들은 무엇을 해야 할지를 몰랐다.
그래서 그들은 예수님을 만나기 전 상태로 돌아가 버렸다.
예수님이 사람을 낚는 어부로 바꾸어 주셨는데,
그들은 다시 고기를 낚는 어부로 돌아가 버렸다.
예수님이 주신 사명을 잃어 버렸던 것이다.
예수님은 이 사명을 다시 부활시키기를 원하셨다.

이번 주 설교 말씀을 들으면서 너무 심하게 찔려서
리플을 안 달수가 없었다 ..
인생의 목적을 상실했던 제자들의 모습이 바로 지금 나의 모습인 것 같았다 .
제자훈련을 받고 사역훈련을 받으며 내가 주님께 했던 잊고 있던 약속들이
이번 주 주일 날 예배 시간에 마음속으로 기도하던 중
하나 둘씩 생각나기 시작했다 .
과연 나는 그 약속들을 지금 지켜나아가고 있는지 ...
가만히 생각 해 보니 지키기는 커녕 노력 조차 하지 않고 있었다.
세상에서 세상 일에 바빠 허우적 대는 요즘 ,
나는 전혀 하나님을 경외하지 않았던 것이다 .
입술로는 내가 쓰임받기 원한다고 나를 사용 해 달라고 고백했지만
진심은 그게 아니었던 것이다 .
교회 일에는 항상 세상 일 핑계로 참여하지 않았고
홈페이지는 한 달에 한 번 들어올까 말까 거들떠 보지도 않았고
훈련을 너무 어린 나이에 받은 것 같다고 투덜투덜 거리며
속원들 챙기기에 너무 지쳐 스트레스 받는 나의 모습들이
너무 부끄럽고 챙피해 고개를 들 수가 없었다 ,.


-주님의 음성에 귀를 기울여 보자.
그리고 ‘나를 따르라’고 하신 주님의 말씀대로 부활하신 주님을 따라가자
세상 바다에 기웃거리지 말고 말이다.
주님의 부활은 곧, 나의 부활이다.
내 신앙의 부활과 내 사명의 부활이 곧, 내게 있어서 주님의 부활이다.

다시 한 번 마음을 바로 먹고 다짐한다 .
'나를 따르라 '고 하시는 주님의 말씀을 이제 놓치지 않고 달려나아가야겠다 .
항상 매사에 감사하며 내가 받은 주님의 사랑을
늘 사람들에게 전하며 살아야겠다 .
세상 사람들의 말에 귀기울이는 것이 아니라
오로지 주님의 음성에 귀기울이는 제자가 되어야겠다 .
세상 일이 바쁘더라도 교회 일에 참여하도록 노력하겠고
될 수 있는한 일주일에 한 번씩은 교회 홈페이지에 들어와
눈팅만 하는 것이 아니라 리플을 달고 은혜를 나누겠고
훈련을 누구보다 먼저 받게 하심에 감사하고
속원들을 내 힘으로 하려는 것이 아니라 주님께서 사용하시도록
나를 내려놓아야겠다 .

아자 ! 예수님이 부활하심 같이 탁성아 나도 부활이다 -

박재훈

2009-04-16 06:20:34

>>위로부터의 능력은 성령을 말한다. 성령을 받으면 어떻게 될까? 땅끝까지 예수님의 증인이 된다.(행1:8) 성령은 증인의 삶의 능력이기 때문이다.

예년보다는 더 감사한 부활주일을 맞이할 수 있어서 행복했다.
새벽예배를 통해서 또 금식을 통해서 전도를 통해서
부활하신 예수님의 희생과 아들을 내어주신 하나님의 사랑이
삶 속에서 느껴져서 감사했다.
부활절이 그냥 절기로만 지나고 말때도 있었고
고난을 당한 예수님의 체험과 부활의 기쁨을 머리로만 알고 넘어간
부활절도 적지 않았는데, 그래도 예전보다는 조금이라도 부활과 함께 한 주였다.
마침 전도주간이기도 하고 속원들이랑 한번도 전도를 못 해서
마음에 아쉬움이 많았는데,
달걀 포장 때문에 주중에 재료를 사러 갔다가,
달걀을 좀 더 사서 전도를 나가야겠다는 생각을 주셨다.
달걀만 주기보다는 부활절의 참 의미와 부활절 달걀의 의미를
적은 종이를 달걀 속에 함께 넣어서 전도지랑 들고 나가기로 했다.
일본 사람들이 그 달걀을 받을 것 같냐고 말씀하시던 분도 계셨지만,
그 말은 그냥 못 들은 걸로 하기로 했다.
그 아이디어를 주시고 내 마음에 기쁨을 주셨기 때문에
그런 걱정쯤은 묻어버리기로 했다.
주일날 속회모임을 마치고 속원들이랑 예쁘게 포장한 달걀을 들고
전도를 나갔는데, 어느 한 사람도 우리의 달걀을
거절하지 않았다. 아, 오늘이 부활절이예요?라며 말도 걸어줬다.
(역시 전도에도 투자가 필요함을 절실히 느꼈다^^)
우리만 아는 부활절이 아니었고
동네 사람들과 함께 나눌 수 있는 부활절을 맞이할 수 있어서
그리고 너무 바빠서 전도 한번 못 했던 속원들도
전도하는 계기가 되어서 너무 뿌듯했다.
하나님도 부활의 주인공인 예수님도 우리와 함께 기뻐하셨기를 바란다.
부활절은 행사가 아니라, 우리에게 주신 하나님의 크신 사랑이다.
그 사랑을 삶 속에서 전하는 합당한 자녀가 되고 싶다.


한진경

2009-04-16 06:34:04

이제까지 나에게 부활절은 단지 예수님께서 다시 살아나신 날이라는 의미밖에는 없었다. 예수님께서 왜 죽으셨다가 다시 살아나셨는지 그 이유를 알려주는 사람도 없었고, 알려고도 하지않았다.

하지만, 올해의 부활절은 이제까지와는 많이 다르다.
왜 부활절이 우리에게 가장 중요한 날인지, 그리고 얼마나 뜻ㄱㅣㅌ은 날인지,
그리고 내가 이 세상에서 살아가는 목적을 다시한번 깨닫게 하는 날인지
알게 되었다.

죽으셨다가 다시 살아나는 능력을 모든 민족에게 보여주시려는 것이 아니라,
예수님의 제자인 우리가 우리의 삶의 목적을 상실하지않게, 다시 깨우쳐주기 위해서 다시 우리앞에 나타나셨다.
나의 사명, 전도.
부활절과 전도과 연관되어있을 줄은 전혀 몰랐다.
예수님의 부활과 함께 나의 사명도 다시 깨어나야지.
언제까지 부화하지않고 보호만 받고 살 것인가.
깨어나서 주님이 주신 나의 사명을 다하도록, 그래서 정말 주님이 보시기에 너무 사랑스런 자녀가 되길 소망한다.

최민정

2009-04-16 08:19:41

전도는 주님의 부활을 세상의 부활로 바꾸는 위대한 능력이다. 주님의 부활을
전함으로 그것을 받는 사람에게 부활의 생명이 번져가기 때문이다. 부활의
생명을 전해 주는 일은 결코 피해를 주는 것이 아니다. 그들을 살려주는
것이므로 그들에게 해 줄 수 있는 가장 큰 섬김의 행위이다.

부활절기간에 전도대회가 겹쳐서 나도 조금이나마 전도를 할 수 있었던
점이 너무 감사했다. 일본에 오면서 전도라는 것을 너무 어렵게 생각해
왔었던 것 같다. 학교 일본친구들 중에는 아멘 이라는 단어도 모를
정도로 기독교에 대해서 무지한 친구들도 보았고 교회가면 돈이 많이
들지 않느냐고 물어보는 친구도 있었다. 그 상황에 적절히 대답할
준비가 안되있었던 나는 복음을 전하는 적절한 기회를 놓쳤던것 같아
나중에 후회 했던 기억이 있다.
내가 사명감을 조금이라도 느꼈었더라도 한번이라도 더 복음을 전할 수
있었을 텐데.. 그랬다면 예수님의 부활의 생명이 그사람에게 번져갔을텐데...
부활의 생명을 전해준다는것은 결코 피해를 주지않는다는 사실을 이번주
말씀을 통해 바로 깨닫게 되었다. 이제는 당당하게 누구에게라도 예수님을
전하는 일이 자연스러워 지고싶다. 그들에게 가장 큰 섬김의 행위가
될 수 있도록 복음의 말들이 준비된 자가 되어야 겠다.

박종희

2009-04-16 08:33:54

복음을 땅끝까지 전하는 것, 전도의 사명은 부활하신 예수님이 성도들에게 주신 사명 중의 사명이다.

역 앞에 내리면 전단지를 나누어 주는 사람들을 쉽게 볼수 있다.
그들은 자신의 가게를 선전하기 위해서, 또는 어떤 이벤트를 알리고자 전단지를 사람들에게 나누어 주고 있다. 그렇게 전단지를 나누어 주는 사람들을 자세히 지켜보고 있으면 그들의 모습이 어찌나 당당한지 모르겠다. 빠찡꼬, 사금융, 귓밥파주는곳 등의 이상한 가게를 위한 전단지도 정말이지 당당하게 돌리는 것을 볼 수 있다.
전도지를 나누어 주는 우리는 어떠한가? 나는 어떠한가?
예수님의 십자가와 부활을 알리는 그 위대한 일임에도 불구하고, 스스로 쑥쓰러워하고, 창피해 한다. 왜 그런가? 이것은, 아무리 생각해도 이상한 일이다. 거꾸로 된게 아닌가? 이상한 가게들을 선전하는 그들이 더 당당해 하고, 이세상에서 가장 위대한 예수십자가의 자비와 복된 부활을 알리는 우리는 부끄러워한다.
세상이 거꾸로 돌아간다고 한다고들 하는데, 정말이다. 세상이 거꾸로 돌아가고 있는 것 같다. 우리 믿는 그리스도인들은 거꾸로 돌아가는 세상을 바르게 돌아갈 수 있게 돌려놓아야 하는 사명을 가지고 있다. 이것은 예수님이 우리에게 명령하신 사명, 곧 예수님 부활의 증인 되는 것이다.
진리는 부끄러운것도 창피한 것도 아니다. 진리를 듣기 싫어하고 멀리하려고 하는 그들이 이상하고 이상하고 이상한 것이다. 부끄럽다고 느끼게하는 것은 사탄의 전략임을 깨달아야한다.
전도라는 것은 하나의 이벤트로 끝나서는 안 됨을 깨닫는다. 늘 생활속에서 예수님의 죽의심과 부활하심을 알리는 증인된 삶을 살아야 하겠다. 예수님은 우리더러 변호사가 되라고 하지 않으신다. 증인이 되라고 말씀하신다. 변호사는 그 사건에 대해 크게 책임감을 느낄 필요가 없다. 책임도 없다. 하지만, 증인은 다르다. 증인은 본 사실을 정확하게 증거할 책임이 있다. 증언을 해도 그만 안해도 그만인 것이 아니다. 우리는 예수님으로 인해 구원받은 사람이 아니겠는가?
거꾸로 가는 이 세상을 올바로 돌려놓기 위해서는 반드시 우리 그리스도인들이 예수님의 증인이 되어서 늘 예수님의 죽으심과 부활하심을 알려야 할 것이다.

박유진

2009-04-16 10:01:31

"전도는 주님의 부활을 세상의 부활로 바꾸는 위대한 능력이다. 주님의 부활을 전함으로 그것을 받는 사람에게 부활의 생명이 번져가기 때문이다. 부활의 생명을 전해 주는 일은 결코 피해를 주는 것이 아니다. 그들을 살려주는 것이므로 그들에게 해 줄 수 있는 가장 큰 섬김의 행위이다."

요즘 한국에서 다니는 교회에서는 '다니엘기도회'란 기도회를 하고 있습니다.
부활절 전후로 3주동안 하는데, 교구별로 일주일씩 돌아가며 자원하는 가정에서 드립니다.
이 기도회는 '전도'를 목적으로 하는 기도회로, 오전에 기도회가 끝나면 오후에는 속별로 노방전도를 나갑니다.
기도회 시작의 첫 일주일은 저의 친정에서 시작하게 되었습니다. 그리고, 이번주부터 다른 가정을 방문해서 하고 있습니다.
전 아기들 때문에 노방전도는 참석 못하고, 엄마와 함께 기도회만 참석하고 있었습니다. 첫주는 친정에서 했기때문에 편했지만, 이번주는 다른 집에서 세 아이들을 데리고 가야 하는 것이어서 만만치 않았습니다. 그래도, 평소에 잘 못하던 기도를 기도회 덕분에 조금은 더 할 수 있어서 좋았습니다. 그런데, 기도회 주제가 전도이다보니, 전도를 나가지 않고 있는 것에 대해 부담감이 느껴지기 시작했습니다. 그래서, 날씨가 좋은 날 엄마와 함께 유모차를 끌고 나가서 아기들과 함께 전도지를 돌리기로 했습니다. '아기들 때문에 난 못해' 하는 생각을, '아이들이 있어서 훨씬 수월하게 할 수 있을거야'란 생각으로 바꿔주시더라구요. (쌍둥이 유모차 끌고 나가면, 지나가는 사람들의 시선 집중이거든요..)
기도회가 끝나기 전에, 전도하러 나가서 열매맺길 소망합니다...

문원희

2009-04-17 06:02:34

예수님은 베드로에게 3번이나 같은 질문으로 물으셨다.
‘요한의 아들 시몬아, 네가 이 사람들보다 나를 더 사랑하느냐?’
‘요한의 아들 시몬아, 네가 나를 사랑하느냐?’
‘요한의 아들 시몬아, 네가 나를 사랑하느냐?’


그동안 부활절과 고난주간에 대해서 감사하는 마음도, 부활절과 고난주간을
대하는 나의 마음 가짐도 없이 정말 아무 생각 없이 보냈었다. 예수님께서 나
를 위해 돌아가시고, 부활하셨는데 나는 이 소중한 것들을 알지 못한채 지냈
다. 하지만 제자 훈련을 받으며, 올해 고난 주간과 부활절은 다르게 지내보자
는 마음으로 때마침 봄학기 전도기간과 겹친 고난주간을 예수님을 알리는 전
도로 보낼수 있었다. 이번 봄학기 전도를 통해 예수님의 증인이 되기 위해 힘
썼던것 같다. 예수님은 나에게 베드로에게 말했던 것 그대로 내게도 말씀하고
계신다. "원희야, 네가 이 사람들 보다 나를 더 사랑하느냐?" "원희야, 네가 나
를 사랑하느냐?" "원희야, 네가 나를 사랑하느냐?" 라고,,
내게는 예수님이 주신 귀한 사명이 있다. 바로 예수님의 증인이 되는 것이다.
그동안 이 사실을, 이 귀한 사명을 얼마나 모른척하며 살았는지, 피하고 살았
는지 반성하게 되었다. 예수님을 사랑한다면 당연히 예수님의 양을 치는 양치
기가 되어야 한다. 말로만 예수님을 전하겠어요 하는 그런 제자가 아니라, 진
심을 다해 예수님을 알리는 제자가 되기를 소망한다.

최수진

2009-04-19 01:25:55

"주님의 부활은 곧, 나의 부활이다."

올해도 부활절이 왔다.
예전에는 그냥 조금 더 특별한 날이라고만 생각했었다.
물론 고난주간도..
내가 자원해서 고난을 함께 느껴보고자 한 적이 없었던 것 같다.

그렇지만 올해의 고난 주간은
자의반 타의반으로 고난을 조금이나마 느끼게 되었다.
그리고 많이 부끄러웠다.

작은 세상일 하나 때문에 힘들어 하는 나와
생명까지 내어야 하지만 기꺼이 그 고난을 당하신 주님

예수님은 부활하셨지만
아직 내 마음은 고난 주간 그대로이다.

주님이 부활하시면 나도 부활을 해야한다.

조금씩 마음을 다시 다스려야지.

한동안 한국에 가게 되었다.
이것이 고난이라고 생각하지 말고
새로운 찬스라고 생각하려고 한다.

그리고 주님의 부활의 능력으로 부활의 날개를 멋지게 펴고 다시 돌아와야지
갑자기 영화 대사가 생각난다.
I'll be back

웃자. 그리고 주님만 의지하자

홍은미

2009-04-19 01:37:48

예수님은 베드로에게 3번이나 같은 질문으로 물으셨다.
‘요한의 아들 시몬아, 네가 이 사람들보다 나를 더 사랑하느냐?’
‘요한의 아들 시몬아, 네가 나를 사랑하느냐?’
‘요한의 아들 시몬아, 네가 나를 사랑하느냐?’

왠지 마음이 붕 떠 있는 요즘 뭐든지 대충대충이다. 부활 주일에도 마음은, '달걀을 이쁘게 포장해서 말씀까지 같이 적어서 회사동료들에게 주자'고 해 놓고, 병원에 입원한 동생과 함께 있다 오느라 할 수 없이 엄마가 삶아놓은 계란을 몇 개 달라고 했다.
아니 사실 핑계다. 목표을 상실하고 다시 고기를 잡으로 나갔던 제자들처럼 내가 요즘 그런것 같다. 말로만 겉으로만 예수님을 믿는 사람이고 나의 진짜 믿음은 땅속에 묻어두었는지도 모르겠다. 기계적으로 움직이는 믿음.. 절대 안되지!
부활의 예수님처럼 나의 믿음도 부활하기를 기도해야겠다. '은미야 네가 나를 사랑하느냐?'고 물으시는 예수님의 음성을 깊이 묵상해본다.

김수영

2009-04-19 04:03:42

주님의 부활은 곧 나의 부활이다. 내신앙의 부활과 내사명이 곧
내게 있어서 주님의 부활이다. 내게 이 부활이 없으면 우리는
예수님을 다시 무덤 속으로 넣게 된다. 주님은 나를 위해서
부활하셨다. 우리 함께 주님의 부활의 능력으로 다시 부활의
날개를 펴자

이제까지 훈련 받으면서 내 자신이 낮아질때로 낮아지고 엎친데
겹친격으로 여러가지 일들이 나를 링 코너로 몰아부쳐 다운되기
직전이었다 말씀과 훈련을 통해 기술로 잘 참았고 버텨냈다
예전 같으면 쉽게 포기하고 말았일을 잘 이겨냈다.

이번 부활절은 나에게는 특별한 의미가 있는 시기이다.
영적인 경험이 있는데 남들에게 오해를 살 수가있기 때문에
말 할 수가 없습니다.
이번 주님의 부활로 인해 제 인생의 것은 다 풀렸다.
앞으로 하나님의 복을 얼마나 받을지 가늠 할 수 없지만
들뜬 마음과 설래임으로 살아가고 있습니다.
이 모든게 부활하신 주님의 은혜인것 같습니다
주님 감사합니다
주님 사랑합니다

최홍근`

2009-04-19 04:20:16

주님의 부활은 곧, 나의 부활이다.
내 신앙의 부활과 내 사명의 부활이 곧, 내게 있어서 주님의 부활이다.
내게 이 부활이 없으면 우리는 부활하신 예수님을 다시 무덤 속으로 몰라 넣게 된다. 주님은 나를 부활시키기 위해서 부활하셨다.

이번주는 부활이라는 단어에 대해 조금 생각을 해보게 되었다. 부활이라는 단어가 예수님을 위해서 있는 그렇난 단어가 아닐까라고 생각을 해보게 되었다. 이렇게 단어까지 예수님을 위해서 준비되어있는데 나의 신앙, 사명이 부활 하지 못해 예수님을 다시 무덤 속으로 몰아 넣게 된다면 얼마나 예수님께 하나님께 죄송할까 라고 생각하게 되었다. 그렇게 된다면 나중에 아주~ 나중에 하나님 앞에 갔을 때 뭐라고 변명도 하지 못 할 것이라고 생각되었다. 그렇게 되지 않기 위해서 열심히 나의 마음을 신앙을 지켜나가야겠다고 생각했다.
오늘은 교회 왔을 때 우연히 전도팀에서 전도를 나갈려고 해서 전도를 하러 같이 나가게 되었다. 특별히 내가 가고 싶어서 와서 간 것은 아니지만 나는 왠지 모르게 기뻤다. 지금처럼 마음이 심란할 때 하나님께서 기뻐하시는 일을 할 수 있어서 더 없이 기뻤다.

박은주

2009-04-19 07:01:33

전도는 주님의 부활을 세상의 부활로 바꾸는 위대한 능력이다. 주님의 부활을 전함으로 그것을 받는 사람에게 부활의 생명이 번져가기 때문이다. 부활의 생명을 전해 주는 일은 결코 피해를 주는 것이 아니다. 그들을 살려주는 것이므로 그들에게 해 줄 수 있는 가장 큰 섬김의 행위이다.

수요일날 시댁에 다녀왔습니다.
시아버님이 작년에 돌아가시고 홀로 되신 어머님을 생각하니 마음이 안됐기도 하고 얼마나 외로우실까 생각이 되어 자주 찾아뵈어야지 라고 마음먹었지만 생각만큼 자주 찾아뵙지 못하였습니다.
오랫만에 시댁에서 어머니가 차려주시는 생일상? 받았습니다.
지난번과는 달리 시누이도 건강한 모습이였고 어머님도 한결 평안한 모습이여서 감사했습니다. 어머님과 시누이와의 대화 속에서 오랫동안 제가 기도하고 있었던 일들이 조금씩 시댁에서 일어나고 변화되어가는 모습에 속으로 얼마나 감사했는줄 모릅니다. 어머니에게 저의 기도의 내용들을 말했더니 그저 어머님도 고맙다고 연거푸 말씀하시는 것이였습니다. 저의 기도덕분이라고까지 하면서요. 결국은 어머님과 시누이가 주님을 영접하는 것인데, 그것도 그리 멀지 않음을 믿음으로 확신합니다.

이성훈

2009-04-20 04:03:51

오랜만에 설교 말씀 리플을 달려고 하니 새롭군요. 목사님 건강하시죠? ^^
저는 모태신앙으로 자라, 어렸을 때부터 성경 속 이야기, 또 기독교 적인 환경에서 자랐습니다. 하지만 내 자신의 체험은 부족하였습니다. 내가 믿는 하나님, 나의 하나님이 아니라 부모님의 하나님, 다른 믿음 있는 사람들의 하나님, 또 막연한 하나님에 지나지 않았습니다. 구약시대의 여러 이야기들과 예수님의 기적들을 듣고 알고는 있었지만, 정말로 있었다고 확신하고 있지는 못했습니다. 오히려 마음 속에서는 의심하는 부분이 많았습니다. 확신을 가지고 있지 못했기 때문에, 항상 반쪽짜리 신앙 속에 머물러 있었고, 가끔은 뜨겁지만, 또 자주 식어있는 어중간한 믿음이었습니다. (물론 제자훈련을 시작 하기 전의 이야기입니다!!)
예수님의 부활에 대하여도 그러하였습니다. 저는 솔직히 예수님의 부활을 마음 깊이 믿지 못하였습니다. 입에서는 예수님을 믿고, 부활을 믿고 있었지만, 마음 속에서는 내가 그때 살아있지 않았는데 예수님이 있었는지 없었는지 예수님이 진짜로 부활했는지 어떻게 알아? 라고 의심하고 있었습니다.
그러다가 사도들의 모습들을 묵상하게 되었습니다.
3년이나 예수님을 따라다니며 예수님의 기적들을 옆에서 체험하며 보고 지낸 베드로가 막상 예수님이 붙잡힌 후에 예수님을 부인 하는 장면이 갑자기 사실로 다가왔습니다. 전에부터 들어왔었지만, 그냥 그랬으려니 하고 깊이 생각하지 않았던 부분이었습니다. 예수님의 능력을 몇년 간이나 봐온 베드로가 예수님이 붙잡히자 자신을 잃고 예수님을 부인하는 모습에서 저와 같은 약한 모습을 느꼈습니다. 만약 이 때 예수님의 부활이 없었다면, 베드로와 다른 사도들은 예수님이 자신이 길이라고 자신이 생명이라고 주장했던 내용을 전하지 못하였을 것입니다. 다른 유대인들에게 박해받거나, 로마인들에게 박해받을 때 자신의 목숨을 걸고 전도하지 못하였을것입니다. 예수님이 자기자신을 하나님이라고 주장하였던 사실은 그러그런 해프닝으로 끝났었을 것입니다. 예수님으로 인해 세계 역사가 뒤 바뀌고, 전세계 역사를 AD와 BC로 구분하는 일은 없었을 것입니다.
하지만, 예수님은 부활하셨고, 제자들은 부활하신 예수님을 만났습니다. 사도행전에서의 사도들의 모습에서는 확신과 자신, 당당함을 느낄 수 있었습니다. 예수님께서는 제자들에게 가서 전하라고 명하였습니다. 예수님께서 부활하셨기에, 제자들은 확신하며 나아갈 수 있었을 것입니다. 예수님이 부활하셨기에 제자들은 전도하였고, 그 사실을 확신했던 사람들에 의해, 또 예수님의 명령을 자신의 사명이라 믿고 따른 사람들에 의해 전도의 길이 지금까지 이어져왔고, 전세계 역사가 흘러져왔다는 사실이 너무나 큰 증거로 느껴졌습니다.
저는 비록 직접 예수님의 부활을 직접 보지는 못하였지만, 예수님의 부활하셨다는 사실을 받아들입니다. 이 사실을 단순히 받아들이지 않기 소망합니다. 예수님이 나를 위해 돌아가셨다는 사실을 정말 나에게 일어난 일로 언제나 느끼기 원합니다. 예수님의 부활을 언제나 붙잡고 나아가기 원합니다.
예수님의 명령을 기억하겠습니다. 모든 족속으로 제자삼으라고 명령 한 예수님의 명령을 저의 사명으로 받아들이겠습니다. 예수님을 전하기 위해 언제나 살아있는 신앙인이 되겠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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二つのパン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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두 가지 떡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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변함없는 사랑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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復活と伝道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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부활과 전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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十字架と伝道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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십자가와 전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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誰が口のきけない者か?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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누가 벙어리인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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肯定と勤勉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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긍정과 근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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信仰と肯定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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믿음과 긍정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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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満たすこと」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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채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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空けることと満たすこと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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비움과 채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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感謝を忘れていないか?

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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감사를 잊지는 않았는가?

2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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私が聞いて、私が見た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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