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중앙영광교회

두 가지 떡

이용규목사, 2009-04-27 17:33:0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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두 가지 떡

말씀//요6:47-51

1.        생명의 떡
‘내가 곧 생명의 떡이니라’(요6:48)
예수님은 누구신가? ‘예수님은 내 인생의 참 생명의 떡이다.’ 이 믿음의 고백이 중요하다. 왜냐하면 이 믿음이 있으면 그 사람은 이미 영생을 가졌기 때문이다.(요6:47)
예수님은 당신의 무엇인가? 생명의 떡이라고 자신 있게 고백할 수 있는가?
여기 믿음의 한 할머니를 소개하고자 한다,
호도과자의 원조의 주인공인 ‘할머니 학화 호도과자’의 주인공인 심 할머니이다.
이 할머니는 호도과자 설명서의 한 면에 ‘예수님을 영접하십시오’라는 난을 만들었다.
‘저희가 75년간 호도과자를 만들어 왔지만, 이 빵 역시 삶 자체를 풍성하게 하는 ‘생명의 빵’은 아닙니다. 저희는 호도과자보다 더 맛이 있고, 한 번 먹으면 배고프지 않는 생명의 빵, 생활을 풍요롭게 하는 생명의 빵을 소개하고자 합니다. 그것은 바로 하나님께서 우리에게 보내 주신 ‘예수 그리스도’이십니다. 우리의 생명의 빵이 되시는 예수 그리스도를 만나 보시지 않으시겠습니까? 가까운 교회에 나가십시오. 이전보다 훨씬 행복하고 평안한 나날이 되실 것입니다.’  
자신이 만든 호도과자를 통해서, 하나님이 주신 참 생명의 빵을 알려 주고 싶었던 것이다.  
인생의 참 생명의 떡은 예수님 밖에 안 계신다. 진리는 복잡하지 않다. 예수님을 믿는 사람에게는 영생이 있고, 영접하지 않는 사람에게는 영생이 없다.
‘이는 그(예수 그리스도)를 믿는 자마다 멸망하지 않고 영생을 얻게 하려 하심이라.’(요3:16)
‘’아들을 믿는 자에게는 영생이 있고 아들에게 순종하지 아니하는 자는 영생을 보지 못하고 도리어 하나님의 진노가 그 위에 머물러 있느니라.’(요3:36)
예수께서 이르시되 ‘내가 곧 길이요 진리요 생명이니 나로 말미암지 않고는 아버지께로 올 자가 없느니라.’(요14:6)
예수님은 이 생명의 진리를 깨닫게 하시기 위해서 먼저 ‘오병이어’의 기적을 행하신다. 예수님이 어린 아이의 도시락에 담겨 있는 떡 5개와 물고기 2마리로 5000명을 풍성히 먹이시는 일을 행하심으로, 자신이 우리의 참 생명의 떡이심을 직접 보여 주시며, 증명해 주셨다. 그러나 많은 사람들은, 심지어 제자들까지도, 육의 떡은 감탄을 했지만, 영의 참 떡이신 예수님에 대해서는 이해조차도 하지 못했다. 오병이어의 기적을 일으킨 것은, 겨우 5000명을 먹이시기 위해서가 온 인류를 먹이기 위한 예수님의 큰 뜻이 계셨는데도 말이다.  
예수님은 육의 떡을 통해서 영의 떡을 줄려고 했는데, 사람들은 육의 떡에만 관심이 있고, 영의 떡에는 전혀 관심이 없었던 것이다. 그래서 예수님은 그 안타까움을 이렇게 표현했다.
‘내가 진실로 진실로 너희에게 이르노니 너희가 나를 찾는 것은, 나를 통해서 하나님을 보았기 때문(영의 떡)이 아니라, 내가 공짜로 너희의 배를 채워 주었기 때문(육의 떡)이다.’(요6:26-영어 의역)
육적인 사람은 늘 육의 떡에만 머물러 있다. 육의 떡은 그림자에 불과하다. 먹고 또 먹어도 계속 배고프게 되어 있다. 그러나 영의 떡은 그렇지가 않다. 영의 떡은 그림자가 아닌, 실체이기 때문이다. 한번 먹으면 결코 주리는 법이 없다. ‘예수께서 이르시되 나는 생명의 떡이니 내게 오는 자는 결코 주리지 아니할 터이요 나를 믿는 자는 영원히 목마르지 아니하리라.’(요6:35)

2.        두 가지 떡
예수님이 갈리리 바닷가에 계실 때 큰 무리가 예수님께 몰려 들었다.
그 때 예수님께서 빌립에게 물어셨다. ‘우리가 어디에서 떡을 사서 이 사람들을 먹이겠느냐’ 만약에 빌립이 예수님이 참 생명의 떡이심을 믿었더라면 이렇게 대답했을 것이 분명하다. ‘예수님이 바로 생명의 떡입니다. 우리를 다 먹여 주실 분은 주님 밖에 없습니다.’ 만약 이렇게 말했다면 예수님이 빌립을 엄청 칭찬했을 것이다. ‘빌립아 네 믿음이 참으로 귀하도다.’ 그러나 빌립은 엉뚱한 대답을 하고 말았다. 그의 대답은 지극히 세상적이었고, 매우 부정적이었다. ‘각 사람으로 조금씩 받게 할지라도 이백 데나리온의 떡이 부족하리이다.’(요6:7)
과연 예수님이 이것을 몰라서 질문을 했을까? 절대로 아니다. 예수님이 질문을 한 의도는 세상적인 해결 방안이나, 문제의 분석을 구한 것이 아니라, 믿음의 목소리를 듣기 원하셨다. 문제가 앞에 놓여 있을 때에, 과연 예수님은 어떤 분이신가?에 대한 고백을 듣기를 원하셨던 것이다. 빌립이 답을 못하자, 예수님은 친히 그 문제를 해결(오병이어의 기적)해 주면서 문제 앞에서의 예수님이 어떤 분이신지를 직접 보여 주고 계신다.
당신의 경우는 어떤가?
당신의 문제 앞에서의 예수님은 어떤 분이신가?
평소에는 괜찮다가도 문제가 닥치면 예수님이 갑자가 점점 작아지지는 않는가? 아니면 문제 앞에서 예수님은 전혀 생각조차도 나지 않는가?
진정한 믿음은, 좋을 때가 아닌, ‘문제 앞에서의 예수님이 어떤 분이신가’에서 나타난다.
믿음의 사람은 문제가 있을 때마다 예수님이 더 두각을 나타낸다. 그러나 믿음이 연약한 사람은 문제 때문에 예수님이 안 보인다. 주님은 간데 없고 문제만 크게 보인다.
문제로 인하여 예수님이 사라질 것인가? 예수님으로 인하여 문제가 사라질 것인가?는 당신의 믿음에 달려 있다.
망치로 칼날을 무디게도 할 수 있고, 날을 세울 수도 있다.
옆을 치면 날은 세움 받지만, 정면을 치면 망가져 버린다.
문제나 고난은 똑 같을 지라도, 내가 어떻게 보고, 어떻게 대처하는가에 따라서 결과는 전혀 다르게 나온다.
믿음의 사람은 어떤 문제 앞에서도, 비록 그것이 불가능한 것 같이 보일지라도, 낙심하지 않는다. 왜냐하면 우리는 해답을 가지고 있기 때문이다. 인생의 해답은 예수 그리스도다. 그 분은 인생의 길이요, 진리요, 생명이다. 예수님은 하나님의 능력이요, 하나님의 지혜이시다.(고전1:24)
예수님은 보리떡 5개와 물고기 2마리로 오천명을 먹이셨다. 그리고 남은 것이 조각이 12 바구니에 가득 찼다. 이것은 상징적인 이야기가 아니라, 엄연한 실제 사건이다. 그래서 군중들은 예수님을 모셔다가 왕으로 세우려고까지 했던 것이다.(요6:15)
믿음은 머리에서 오지 않는다. 머리가 좋은 사람이 공부는 잘 할지 모르지만 믿음이 좋은 사람이 되는 것은 결코 아니다. 머리가 좋은 사람은 스스로 불신의 늪에 빠지기 쉽다.
어찌 어린 아이 도시락 하나로 5000명을 먹인단 말인가? 이것은 어떻게 가능했다고 하더라도, 도시락 하나로 먹고 남은 것이 12 도시락도 아니요, 12 바구니에 가득 찼다니 과학적으로는 너무나 황당한 이야기이다.
기적은 과학으로는 풀 수가 없다. 기적은 과학의 윗 단계이기 때문이다.
과학적으로 분석하여 예수님을 믿으려 하는 사람은 불신의 늪에서 빠져 나올 수 없다.
예수님은 과학의 지배를 받는 분이 아니라, 과학을 지배하시는 분이다.
과학에 의해서 예수님이 만들어지는 것이 아니라, 예수님에 의해서 과학(자연의 법칙)이 만들어졌다는 사실을 알아야 한다.
‘만물이 그로 말미암아 지은 바 되었으니 지은 것이 하나도 그가 없이는 된 것이 없느니라. 그 안에 생명이 있었으니’(요1:3,4)    
예수님이 오병이어의 기적을 일으킨 것은, 예수님 자신이 참 생명의 떡임을 알리기 위해서였다. 5천명을 먹인 육의 떡으로, 인류를 살리는 영의 떡을 가르쳐 주기 위해서였다. 그래서 예수님은 ‘너희는 썩어 없어질 양식을 얻으려고 일하지 말고, 영생에 이르도록 남아 있을 양식을 얻으려고 일하여라 이 양식은 인자가 너희에게 줄 것이다.’(요6:27)라고 하시며 믿음으로 이 양식을 받을 수 있다고 했다. 그리고 자신이 바로 생명의 떡임을 소개했다.(요6:35)
마지막으로 예수님은 구약의 떡과 신약의 떡을 비교하며 설명해 주셨다.
구약의 떡은 만나이다. 만나는 이스라엘 백성들이 광야에서 40년간 먹은 떡이다. 그들이 40년간 먹고 산 양식이었다. 하나님이 주신 대단한 떡이었다. 그러나 이 떡도 결국은 그들을 영원히 살게 하지는 못했다. 그들은 모두 죽었다. 하나님은 신약시대에 죽지 않고 영원히 사는 떡을 내려 주셨다. 이름하여 영생하는 떡, 생명의 떡이다. 이 떡이 바로 예수 그리스도이다. 하나님은 예수님이라는 생명의 떡을 십자가에서 믿음의 사람들에게 주셨다.
‘나는 하늘에서 내려온 살아 있는 떡이니 사람이 이 떡을 먹으면 영생하리라.’ (요6:51)
오병이어의 기적의 떡은 5000명의 한끼를 배부르게 했고,
광야의 만나는 이스라엘 온 백성을 40년간 배부르게 했지만,
십자가의 예수님의 떡은 온 인류를 영원토록 배부르게 하는 생명의 떡이요, 영의 떡이다.
당장 눈에 보이는 기적의 떡에만 눈이 멀지 말고, 십자가의 생명의 떡에 눈이 열리는 영적인 사람들이 되는 것이 믿음의 사람이 되는 것이다.

3.        참 생명의 떡에 대한 반응
기적의 떡에 대한 반응은 대단했다. 모두 깜짝 놀라면서, 예수님을 억지로 모셔다가 왕으로까지 삼으려고 했다.(요6:15) 하지만 영의 양식인 생명의 떡에 관해서는 무지와 무관심 그 자체였다. 그래서 많은 제자들은 ‘이 말씀이 이렇게 어려우니 누가 알아 들을 수 있겠는가?’하면서(요6:60) 예수님의 곁을 떠나 버렸다. 육의 양식 앞에는 구름 떼같이 모여 드는데, 영의 양식 앞에는 모두 떠나 버린 것이다. 이것은 마치 돼지가 꿀꿀이 죽 앞에는 모여 드는데, 진주 앞에서는 떠나는 것과 같다. 진주가 얼마나 갚진 것인지 모르기 때문이다.
영에 속한 일들은 영적으로만 분별할 수 있다고 했다. 그래서 육에 속한 사람은 영에 속한 일들을 받아들이지 못할 뿐만 아니라, 오히려 어리석게 여긴다고 했다.(고전2:14)
예수님께서, 육은 아무 소용이 없다고 했다. 오직 생명을 주는 것은 영이라고 했다.(요6:63)
인생의 가장 큰 축복은 생명의 떡을 받아 누리는 것이다.
이것을 위해서는 육의 옷을 벗고 영의 사람이 되어야 한다.
‘시몬 베드로가 대답하여 가로되 주여 영생의 말씀이 주께 있사오니 우리가 누구에게로 가오리이까’(요6:68)

12 コメント

한진경

2009-04-27 18:47:08

이런 기적같은 일이.. 내가 처음이다 ^^

어제 설교를 들을때 말씀이 어려워서 잘 이해가 안됐다.
전체적인 내용은 알겠는데 다른 사람한테 말하려고 하면 제대로 설명할 수 없는 내용이라고 할까.. 아직도 말씀에 관한 이해가 많이 부족함을 느낀다.

학과호두과자의 설명서 뒤에 써있는 글이 참 이상적이었다.
이 호두과자는 맛있지는 하지만, 생명의 빵은 아니라는 것.
우리에게 생명의 빵은 예수 그리스도.
자신의 삶을 통한 진정한 전도의 모습이 참 아름다웠다.

육적인 빵을 먹기위해서 예수님을 믿는 것이 아니라, 영적이고 영원한 빵을 추구하는 자녀가 되자.

문인우

2009-04-27 19:30:55

믿음의 사람은 문제가 있을 때마다 예수님이 더 두각을 나타낸다.
그러나 믿음이 연약한 사람은 문제 때문에 예수님이 안 보인다.
주님은 간데 없고 문제만 크게 보인다.
문제로 인하여 예수님이 사라질 것인가?
예수님으로 인하여 문제가 사라질 것인가?는 당신의 믿음에 달려 있다.

문제 앞에서 나는 예수님이 더 두각을 나타낼까.
아니면 문제가 너무 크게 보여 예수님이 보이지 않게 될까.
제자 훈련 전의 나는 예수님 보다 문제가 더 커서 예수님이 보이지 않았다.
어떻게든 세상적으로, 내 힘으로 해결하려고 아둥바둥 했었다.
문제를 놓고 주님께 기도 해야겠다는 생각나지 않았다.
문제가 너무 커서 예수님이 계시다는 것을 까맣게 잊고 있었던 것 같다.
예수님 보시기에 나의 문제는 문제도 아니었을 텐데 예수님을 믿지 못하고
기도 할 생각조차 못했으니 정말 약한 믿음 이었다.
이렇게 제자 훈련 전의 나는 빌립처럼 세상적이고 부정적으로 문제를 보는
약한 믿음이었지만 이제는 문제 앞에 믿음이 흔들리지 않을 자신이 있다.
오병이어의 기적이 없더라도 생명의 떡 이신 예수님을 믿고
문제 앞에 예수님이 작아 지는 것이 아니라 예수님 앞에 문제가 사라지는
귀한 믿음의 딸이 되고 싶다.

조상만

2009-04-28 05:34:58

항상 느끼는 거지만 나의 하나님께서는 그 주 그 주의 제 문제를 목사님의 설교 말씀을 통해 도전과 안심과 해결을 주십니다. 이번 주~ 그러니까 오늘 저에게 뭔가 문제가 하나 터졌는데 사실 저는 조금 근심이 생겼습니다. 물론 하나님이 다 해결 해주실것을 알고는 있었으나 연약한 인간인지라 "어쩌지? 어쩌지?" 하는 마음이 앞섰으나 오늘의 말씀중에 "평소에는 괜찮다가도 문제가 닥치면 예수님이 갑자가 점점 작아지지는 않는가? 아니면 문제 앞에서 예수님은 전혀 생각조차도 나지 않는가?" 이 문구에서 상당한 충격을 받았습니다. 하나님을 믿는 자가 하나님이 주실 그 해결책을 받을 생각은 않고 근심 부터 하고 있었으니 한심하기 그지 없습니다. 저의 모든 문제 되는 것들은 우리 주님 앞에서는 아무것도 되지 않을 것 들인데, 왜 그렇게 호들갑을 떨었던지.. 저 자신이 부끄러워 지는 군요. 이제 하나님 께서 주시는 영의 떡을 받아 먹고 영생의 길로 향하는 계단을 향해 힘차게 뻗어 나가겠습니다. 그리고 저는 말할 수 있습니다. 지금의 이 문제들은 결코 아무것도 아니라고..!! 하나님이 계시니까~ 예수님이 계시니까~ 해결이 이미 되었다고 확신할 수 있습니다. 하나님께서 내게 문제를 해결해 주셨으니 나는 이제 부터 하나님의 일을 어떻게 하면 이 곳 중앙영광교회에서 더 잘 할 수 있을지 그것만 생각해야 하겠습니다.

저의 생일을 축하해주신 우리 찬양팀과 제자팀 그리고 손수 선물까지 챙겨주신 우리 빛나누님 , 선물로 스키야에서 카레라이스 사주신 종희형 , 맨날 늦고 속썩이는데도 불구하고 축하해 주신 철이형~!! 그리고 그 외의 모든 우리 교회 가족 여러분께 깊은 감사를 드립니다. 그리고 이 땅에 저를 만들어 주시고 일본 땅에 올 수 있게 해주신 하나님께 감사를 드립니다. 성아야 케잌 진짜 맛있더라. 인우씨 원희씨 케잌이 Nice Choice 였었어요. 근데 나이는 일본 나이로 해주시지 ㅠ,.ㅜ~
모두 감사합니다. 상만이는 앞으로 주욱 이 곳 중앙영광교회를 제2의 모교회로써 열심을 다해 섬기고자 합니다. -A men-

강민아

2009-04-29 00:18:33

믿음의 사람은 문제가 있을 때마다 예수님이 더 두각을 나타낸다. 그러나 믿음이 연약한 사람은 문제 때문에 예수님이 안 보인다. 주님은 간데 없고 문제만 크게 보인다. 문제로 인하여 예수님이 사라질 것인가? 예수님으로 인하여 문제가 사라질 것인가?는 당신의 믿음에 달려 있다.

나는 항상 입으로만 "예수님이 함께계시기에 두려울 것이 없다" 고 얘기하지만, 삶은 그렇지 못했다. 나를 힘들게 하는 문제들 앞에서 나는 언제나 내 힘이로 또는 세상사람들의 도움이로 이겨내고자 바둥거렸었다. 하나님은 나에게 가장 귀한 생명의 떡을 주시며 육신의 떡을 내려놓고 진정으로 귀한 것을 손에 쥐길 원하신다.
하지만, 나는 너무 어릭석고 무지하여 여전히 육신의 떡에 집착하고있다.
세상의 문제로 인하여 나는 얼마나 많이 하나님을 배신하고 살았는가 ?
빌립처럼 예수님의 물음에 부정적으로 반응하지는 않았는지 ?
그리고 그런 나의 모습에 주님은 얼마나 안타까워 하셨을까 ?
요즘은 나의 지난 신앙 생활을 돌아보고 반성하며, 앞으로 내가 어떻게 주님을 섬겨야 하는지 자주 생각하게 된다. 나의 "문제" 마저도 온전히 주님앞에 내려놓지 못하는 믿음으로 어떻게 좋은 것들을 하나님께 내려놓을 수 있을까? 내가 주님을 신뢰하고 세상의 문제들을 내려 놓았을 때, 주님께서는 비로서 나에게 필요한 것들을 채워주실 것이다. 주님, 제가 세상 속에서 빌립처럼 부정적으로 주님에게 반응하지 않도록 강하고 담대하고 굳센 믿음을 허락해주세요.

박종희

2009-04-29 03:46:58

진정한 믿음은, 좋을 때가 아닌, ‘문제 앞에서의 예수님이 어떤 분이신가’에서 나타난다.

예수를 믿고 제자훈련을 받고 있다고는 하지만, 난 아직도 육에 빵에 더 큰 관심을 가져 왔었던 것 같다. 육의 빵에 문제가 발생했을때 영의 빵, 생명의 빵이신 예수님을 찾는 것이 아니라, 그분께 기도하여 육의 빵만을 내놓으라고 하지 않았었나 생각해 본다.
요즘 나는 여러가지로 많은 고민을 하고 있다. 회사에서 계속 일을 하는 것도, 일본에서 계속해서 사는 것도 조금 한계에 이른것 같다라는 생각을 하고 있는 중에 있다. 회사가 돈을 많이 벌어서 나에게도 이득이 생기게 해달라고 기도하지만, 일본땅에서 내가 더 유능해지고 인정받기를 기도하지만, 상황은 여전히 좋아지지 않고 점점 악화 되어져 간다. 나이는 먹어가는데, 뭔가 하나 딱 부러지게 해 놓은 것이 없다. 정말 그렇다. 일본에서의 나는 그저그런 외국인 노동자에 불과하다.
그러나 나는 이번 말씀을 통해서 육의 떡이 아닌, 영의 떡을 구하고 그것을 먹어야 겠다라는 것을 깨닫게 된다. 예수님께서 주시는 떡으로 배불러지는 사람이 되어야 겠다고 생각한다. 5병2어의 사건을 통해서 받았던 육의 빵들도 곧 배가 고파지고 만다. 그래서 나는 만족할수 없는 것이고, 계속해서 나의 빈 배를 채울려고, 육의 빵만을 요구했었던 것이다. 이제는 정말 예수그리스도이신 영의 빵을 통해 배부른 삶을 살아가야겠다라는 마음이 든다. 풍성한 삶을 예수님을 통해 살아야겠다라는 것을 깨닫게 된다.

서진

2009-04-29 06:40:39

믿음의 사람은 어떤 문제 앞에서도, 비록 그것이 불가능한 것 같이 보일지라도, 낙심하지 않는다. 왜냐하면 우리는 해답을 가지고 있기 때문이다. 인생의 해답은 예수 그리스도다. 그 분은 인생의 길이요, 진리요, 생명이다. 예수님은 하나님의 능력이요, 하나님의 지혜이시다.(고전1:24)

이번주 말씀을 통해 나는 아직 믿음의 사람이 아니구나 라는 느낌이 들었다. 믿음의 사람은 어떤 상황에서도 낙심하지 않고 해답을 가지고 있고 믿고 나아가는데
나는 문제 앞에서 항상 주님을 잊어버리고 내 멋대로 해낼려고 하는것 같다.

나는 항상 나의 생각대로 문제를 분석하려고 하고 불가능하다고 느끼면 포기한다.
그건 내가 주님이 해주실거라고 믿지 않았다는 증거이다.나는 여태껏 오래동안 교회를 다녔는데 게다가 지금은 제자훈련을 통해 은혜를 받고 있으면서 아직도 믿음이 적다고 생각하니 막 후회가 된다.

그래서 이제부터는 하나님만 의지하고 내가 원하는 대로 다 이루어 주실것 믿으며 긍적적인 마음을 가지려고 한다.

마지막으로 이제 얼마 남지 않은 제자훈련기간을 소중이 여기고 후회없는 제자훈련이 되로록 노력하고 싶다.

최수진

2009-04-30 07:02:48

이번 주 설교 말씀을 읽고 하나님이 계속 나에게 같은 말씀을 하시는구나 라는 생각을 했다. 한국에 와서 들은 설교 내용과 너무나도 비슷했기 때문이다.

한 두번이 아니라 거의 매일 매일 그 말씀을 듣는 것 같다.

문제를 보지 말고 하나님을 보라는 것.

머리로는 하나님이 해 주실꺼야 라고 그렇게 생각해야해 라고 하지만
나의 잠재적인 행동은 내가 어떻게든 하려고 아둥바둥 했던 것 같다.

내가 판단 하고 내가 결정하고
이러는 내 안에 하나님의 자리는 없었다.

하나님과 기도를 통해 상의를 하고 나아가야하는데
내 속에는 온통 나, 나, 나 밖에 없고
그 문제를 내 손으로 꾹 움켜지고만 있는 것 같다.

한국에 와서 그런 말씀을 많이 들어
점점 나를 내려놓으려는 연습을 하려고 하지만
생각보다 잘 되지 않는다.

가끔은 그냥 날 내버려두시면 안되나요?
내가 하고 싶은 대로 하면 안되나요?
라는 생각도 많이 들지만
나를 터치하시는 것은 그만큼 하나님이 나를 사랑하시기 때문이겠지

하나님이 날 안아주시면 힘 하나도 안들이고 편하게 갈텐데
내 자신은 온전히 하나님께 내 모든 것을 맡기지 못하고 있기에
이렇게 한걸음 한걸음 걷는 것이 너무나도 힘든 것 같다.

조바심 내지 말고 천천히 하나님과 마음으로 통하는
내가 되는 연습을 해야지

장미경

2009-04-30 07:40:58

망치로 칼날을 무디게도 할 수 있고, 날을 세울 수도 있다.
옆을 치면 날은 세움 받지만, 정면을 치면 망가져 버린다.
문제나 고난은 똑 같을 지라도, 내가 어떻게 보고, 어떻게 대처하는가에 따라서 결과는 전혀 다르게 나온다

생명의 떡에 관한 말씀...
많은 찔림과 도전을 갖게한 말씀이었다.

같은 망치라도 그것의 쓰임을 어떻게 하느냐에 따라 그 결과는 상이하게 다르게 나타남을 말씀하신다.
모든 상황가운데서 그 문제들이 내게 날을 세우는 것이 될지 망가져 버리가 하는 것이 될지... 내게 그 선택권을 주셨다.
주님께서 내게 허락하신 모든 상황속에서 주를 바라보는 자가 되길 소망한다.

또한 그런 내 삶속에서 당당히 주님의 생명의 떡을 전하는 삶을 살기도 소망한다.
그 호두과자 할머니처럼...

최민정

2009-04-30 08:55:36

믿음의 사람은 어떤 문제 앞에서도, 비록 그것이 불가능한 것 같이 보일지라도, 낙심하지 않는다. 왜냐하면 우리는 해답을 가지고 있기 때문이다. 인생의 해답은 예수 그리스도다. 그 분은 인생의 길이요, 진리요, 생명이다. 예수님은 하나님의 능력이요, 하나님의 지혜이시다.(고전1:24)


문제앞에서의 나의 모습을 돌아보게 하는 귀한 말씀이었다.
내 생각으로는당장 불가능한일 처럼 보이더라도 낙심하지않고
의심하지않아야 함을 알게 되었다.

인생의 해답은 예수 그리스도 이심을, 그분만이 내 인생의 길이고
진리이고, 생명되심을 깊이 깨닫게 되었다.
늘상 입술로만 다짐하고 말하는것이 아니라 나의 삶 속에서 그것이
행동으로 옮겨 질 수 있도록 매일매일 주님과 함께하고 싶다.

예수님에게서 오는 하나님의 능력과 지혜로 그 분께 영광돌릴 수 있는
삶이 되고 싶다.

문원희

2009-04-30 17:13:23

망치로 칼날을 무디게도 할 수 있고, 날을 세울 수도 있다.
옆을 치면 날은 세움 받지만, 정면을 치면 망가져 버린다.
문제나 고난은 똑 같을 지라도, 내가 어떻게 보고,
어떻게 대처하는가에 따라서 결과는 전혀 다르게 나온다.


나는 그동안 망치로 칼을 부러트려 왔는지도 모른다. 망치로 칼날을
세우는 방법을 알고 있으면서도, 늘 정면으로 칼을 쳐서 칼을 부러트렸다.
내가 고난을 대처하는 자세도 똑같다. 나의 문제에 대한 해답이 어디에
있는지 정확히 알면서도 늘 같은 실수를 반복했다. 말로는 늘 예수님만
이 나의 문제를 해결해 주시고, 좋은 길로 인도해 주실 것을 믿는 다고,
고난이 와도 나는 괜찮다고 말하지만, 나는 고난앞에서 망치로 정면을
쳐서 칼을 부러트리는 실수를 반복했다. 예수님을 의지하지 않고, 나의
힘으로 해결하려고 했었다. 이번주 목사님의 말씀을 듣고, 얼마나 찔렸
는지 모른다. 내 인생의 해답은 예수 그리스도 인데, 예수님을 나의 해답
으로 보지 못했다. 나도 예수님의 제자들 처럼 육의 양식만 보고 예수님
을 따르는 제자가 아니었나,, 진정한 영의 양식은 예수님인데 말이다.


그 분은 인생의 길이요, 진리요, 생명이다.
예수님은 하나님의 능력이요, 하나님의 지혜이시다.(고전1:24)

김수영

2009-05-02 22:22:08

믿음의 사람은 어떤 문제 앞에서도 비록 그것이 불가능 한것같이
보일지라도 낙심하지 않는다. 왜냐하면 우리는 해답을 가지고
있기 때문이다. 인생의 해답은 예수 그리스도다. 그분응 인생의
길이요 진리요 생명이다. 예수님은 하나님의 능력이요 하나님의
지혜이시다.

하나님 사랑합니다
내 영혼의 두려움을 없애 주시고 내게 평강을 주시는 여호와여
내가 주를 사랑하나이다. 그러나 저의 부족함으로 저의 본분을
잊어버리고 자주 왔다갔다 하는 저 ....
이것도 죄인것 같습니다. 염치 없지만 다시 한번 용서를 구합니다.
저의 죄를 사하여 주실것을 믿습니다.
평강의 하나님 사랑합니다.그리고 하나님을 찬양합니다.
하나님께서 주신 은혜로 이 세상 살기도 바쁜데 부질없는 세상것에
관심 가지 않도록 조심해야겠다.
가장 귀한것으로 찬양 받기 마땅한 그분을 사랑합니다.
그분은 나의 생명이시기 때문입니다.

이진애

2009-05-03 10:17:54

예전에.. ‘이 밥 먹고 밥이 되어’라는 책을 읽은 적이 있다. 밥퍼 목사님이 쓰신 책이니.. 밥 얘기가 많이 나오는 건 당연한데.. 나는 그리 넉넉한 환경에서 성장하지 않았음에도 불구하고 밥에 대한 절실함이나 소중함을 많이 느끼지 못했었다.

하지만 ‘밥’은 밥 자체.. 그 의미 이상이다.
목사님께서 설교 중에 “밥을 굶으면 죽는다”는 말씀을 하셨을 때.. 하루 금식에도 쩔쩔 매던 얼마 전의 내 모습을 떠올리며, 굶주림 앞에서 그 누구도 의연할 수 없음을, 또 그러하기에 이보다 더 귀한 것이 없음을 또 한 번 깨닫게 되었다.

육의 양식도 이러할진대.. 하물며 영의 양식은 어떠하겠는가.
이 땅에서의 잠시 잠깐을 위한 육의 양식이 아니라.. 영원한 참 생명을 주는 영의 양식을 거부할 수 있는 무식한 용기의 소유자가 되어서는 안 될 것이다.
또한 내 밥그릇만 끼고 나 혼자만 살아보겠다는 이기심이 아니라.. 참 생명의 양식을 한 영혼이라도 더 함께 나누는 삶을 살도록 힘써야겠다.

당장 길에 나가 예수님 믿으라고 큰소리로 외치지 못한다면.. 호두과자 할머니처럼 내가 가진 달란트를 활용하여 세상 사람에게도 어필할 수 있는 뭔가를 생각해봐야겠다.
수많은 크리스찬 중에서 아무도 생각해내지 못한 전도방법으로 하나님을 기쁘게 해드리는 할머니 학화 호도과자 심 할머니도.. 오병이어의 기적으로 수천 명을 먹이신 예수님도.. 내겐 너무 멋진 그대들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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