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중앙영광교회

채움

이용규목사, 2009-03-09 15:40:1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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채움

말씀//엡5:18

1.        채움의 중요성
성도는 비우기도 잘 해야 하지만, 채우기도 잘 해야 한다.
세상 것을 미련 없이 비울 수 있고, 주님 것을 망설임 없이 채울 수 있는 성도가 건강한 성도요, 지혜로운 성도요, 안전한 성도다.
예수님께서 채움의 중요성을 이렇게 말씀하고 계신다.(눅11:24-26)
더러운 귀신이 어떤 사람에게서 나갔다. 그는 머물 곳을 찾았지만 찾지 못하고, 결국 자신이 나온 사람에게로 돌아갔다. ‘내가 나온 집으로 되돌아 가겠다.’ 와서 보니 집은 말끔히 치워져 있고, 잘 정돈되어 있었다. 그런데 아무도 살고 있지 않았다. 빈 집으로 남아 있었던 것이다. 그래서 그는 나가서 자기보다 더 악한 귀신 일곱을 데리고 들어와서 자리를 잡고 산다. ‘그러면 그 사람의 나중 형편이 처음보다 더 비참하게 된다.’(눅11:26)는 이야기다.
왜 나중 형편이 처음보다 더 비참하게 될까? 처음에는 더러운 귀신이 하나만 살았지만, 나중은 더 악한 귀신 일곱이 더 와서 살았기 때문이다. 그러면 왜 일곱 귀신이 더 왔을까? 비워졌을 때에 채우지 않았기 때문이다. 바로 채워야 하는데, 빈집 그대로 놓아 두었기 때문에 귀신의 밥이 되어 버린 것이다.
예수님은 사람의 몸을 영의 집으로 비유하고 있다. 영의 집에는 3가지 집이 있다.
귀신 집이 있고 빈집이 있고, 성령 집이 있다.
당신의 몸은 지금 어떤 집이라고 생각하는가? 가장 위험한 집이 빈 집이다. 악한 귀신 일곱이 제일 잘 들어 올 수 있는 집이기 때문이다. 가능하면 빨리 채워야 한다. 하나님의 영으로 채워야 한다. 그래야만 악령이 넘보지 못할 것이다. 악령이 와서 보고 성령의 능력에 눌려서 기겁을 하고 일곱 길로 도망가게 해야 한다. 그 길은 오직 성령 충만의 집으로 바꾸는 것이다.
능력 있는 성도는 확실한 채움이 있는 성도다. 성령으로 충만한 성도는 하나님의 능력이 늘 함께 하기 때문이다. 귀신은 사람을 무서워하는 것이 아니라, 성령을 무서워한다.
‘너희가 하나님의 성전인 것과 성령이 너희 안에 계시는 것을 알지 못하느냐’(고전3:16)
믿음의 위인들은 하나님의 것으로 채우는 것을 간절히 사모했다.
예수님이 가르쳐 주신 주기도문도 그렇다. 하나님의 이름과 하나님의 나라와 하나님의 뜻으로 채움 받도록 먼저 기도하라고 했다.
다윗은 생명까지도 비워야 될 위태로운 상황에서도, 사망의 음침한 골짜기에서도 주님의 채우심을 믿음으로 간절히 사모했다.
‘주님께서 내 원수의 목전에서 내게 상을 차려 주시고, 기름을 내 머리에 부으셨으니 내 잔이 넘치나이다.’(시23:5)
그는 하나님의 채우심을 미리 선포했다. 하나님의 은혜의 기름을 미리 선포했다.
믿음은 곧 선포다. 지금 받은 것을 말하는 것이 아니라, 앞으로 받을 것을 믿음으로 선언하는 것이다. 그래서 믿음만큼만 선포하게 된다. 받은 만큼 선포하는 것은 믿음의 선포가 아니다. 믿음이 있는가? 선포하라. 하나님의 은혜를 선포하라. 하나님의 은혜의 기름이 당신뿐만 아니라, 당신의 후손들에게까지 흘러 넘칠 것이다. 다윗의 후손들처럼.
믿음의 선포는 역사를 일으킨다. 다 같이 선포해 보자.
‘주께서 기름을 내 머리에 부으셨으니 내 잔이 넘치나이다!’    
‘주께서 성령을 내 머리에 부으셨으니 내 잔이 넘치나이다!’    
‘주께서 능력을 내 머리에 부으셨으니 내 잔이 넘치나이다!’    

2.        무엇으로 채울 것인가?
이것에 대해서 성경은 분명히 말하고 있다.
‘술 취하지 말라 이는 방탕한 것이니 오직 성령으로 충만함을 받으라’(엡5:18)
술로 충만하지 말고, 오직 성령으로 충만해야 한다.
인생의 그릇을 술로 채우지 말고, 오직 성령으로 채워야 한다.
세상 쾌락에 취하지 말고, 오직 성령에 취해야 한다.
바울은 다음과 같은 위대한 고백을 했다.
‘그런즉 이제는 내가 사는 것이 아니요, 오직 내 안에 그리스도께서 사시는 것이라.’(갈2:20)
자신의 육은 다 죽었고, 오직 그리스도의 영이, 자신의 속 사람을 채우고 계신다고 했다. 귀신이나, 자신이 살고 있는 것이 아니라, 성령이 들어와서 살고 계신다는 말이다.
성경은 믿음의 사람을 이렇게 표현하고 있다.
‘우리가 이 보배를 질그릇에 가졌으니’(고후4:7)
우리는 원래 흙으로 만든 보잘 것 없는 그릇과 같은 존재인데, 우리가 가치 있는 존재가 된 것은, 그 질그릇 속에 놀라운 보배를 담았기 때문이다. 그래서 크리스천은 누구나 귀한 보배다. 우리는 보잘 것 없지만, 우리 속에는 돈으로 살 수 없는 하나님의 아들 예수님이, 성령님이 계시기 때문이다.
보배는 채우지 않고 빈 그릇만 가지고 있다면 얼마나 어리석은 사람인지 모른다.
크리스천의 정체성은 그릇에 있지 않고 그 안에 담고 있는 보배에 있다.  
그릇을 채워야 한다. 보배로 채워야 한다. 그리스도로 채워야 한다. 성령님으로 채워야 한다. 그럴 때에 우리는 질그릇으로 버려지지 않고, 보배를 담은 값진 그릇으로 대접받을 것이다.
앤디 앤드루스는 세계적인 작가요, 방송인이다. 그는 미국의 4명의 대통령 앞에서 수차례 연설을 한 인물이기도 하다. 그는 19세에 부모를 잃고 너무나 힘든 삶을 살았다. 다리 밑에서 홈리스의 삶을 살면서 자신의 인생을 원망하며 자살을 생각하기도 했다. 그는 인생의 최고 밑바닥까지 갔다. 비움으로 생각하면 모든 것이 다 비워진 인생인 셈이다. 가족도, 집도, 돈도 없는 인생이었다.
그때 그는 위대한 삶을 산 위인들에게 관심을 갖게 되었다. ‘성공한 인생을 산 사람들은 어떤 삶을 살았을까?’ 그는 무료 도서관에 가서 위인들의 전기를 읽기 시작했다. 몇 백권의 위인전을 읽고 또 읽었다. 거기서 그는 위대한 사람들의 삶을 통해서 위대한 원칙들을 발견했다. 그는 그 원칙들을 자신의 삶 속으로 가져왔다. 그대로의 삶을 살았다. 그래서 그는 지금 홈리스에서 대통령 앞에 서는 사람이 되었다.
그가 위대한 사람이 된 것은 위대한 채움이 있었기 때문이다.
사람은 채움만큼의 사람만 될 수 있다.
성공한 삶을 살기 원하는가? 위대한 인생을 꿈꾸고 있는가?  
위대한 것을 당신의 인생에 먼저 채우라. 그리고 그런 삶을 계속 살아보라.
가장 위대한 분은 성령님이다. 당신의 속 사람을 성령님으로 채우라. 그리고 성령의 삶을 살아라. 그러면 반드시 하나님의 위대한 역사, 천지를 만드신 그 역사가 당신의 손을 통해서 다시 재현될 것이다. 분명히!!!

3.        어떻게 채울 것인가?

1)        깨끗함으로 채운다.
우리의 속 사람이 성령님으로 채움 받기 위해서는 먼저 깨끗한 삶을 살아야 한다.
‘누구든지 이러한 것들로부터 자신을 깨끗하게 하면…그는 성별된 귀한 그릇이 될것입니다.’(딤후2:21)
자신을 깨끗하게 한 그릇은 주인 되시는 하나님이 성령을 담아 역사하시는 귀한 그릇으로 삼아 주신다.
하나님의 성전은 거룩하다. 성령은 거룩한 영이다. 우리는 그 성령이 거하는 성전이다. 따라서 우리가 성령으로 채움 받기 위해서는 깨끗해야 한다.
말다툼이나, 속된 잡담, 불의, 정욕으로부터 자신을 깨끗하게 해야 할 것이다.(딤후2장)  
귀신은 더러운 영이지만, 성령은 깨끗한 영이다.

2)        기도로 채운다.
‘너희가 악할지라도 좋은 것을 자식에게 줄줄 알거든 하물며 너희 하늘 아버지께서 구하는 자에게 성령을 주시지 않겠느냐?’(눅11:13)
누가 이 말씀을 하셨는가? 예수님이시다. 성령을 구하는 자에게는 반드시 성령을 주신다는 천고 불변의 약속이다.
성령은 하나님의 영이시다. 하나님이 주시지 않으면 우리는 받을 길이 없다. 그래서 하나님께 달라고 기도하는 것은 당연한 것이다. 구해야 얻는다. 단, 정욕으로 쓰려고 구하면 안 된다.(약4:3)

3)        바른 선택으로 채운다.
성령님이 우리 마음 속에 계시면, 성령은 우리를 인도하신다. 반드시 바른 길을 가르쳐 주신다. 그런데 문제는 우리의 선택이다. 우리가 성령의 인도하심을 따라 행할 수도 있고, 반대로 육체의 소욕을 따라 행할 수도 있다. 우리가 성령을 따르지 않으면 내 속에 성령이 계셔도, 성령이 가르쳐 주어도 아무 소용이 없다. 오히려 갈등으로 더 괴로울 뿐이다.
성령이 계시는 것이 능력이 아니다. 성령의 인도에 따르는 것이 능력이다.
성령의 존재의 유무보다 성령께 순종의 유무가 절대적으로 중요하다.
성령을 따라 선택할 때에 비로소 성령의 은혜를 체험하게 된다. 성령은 장식품이 아니라, 인생의 능력이다.
‘내가 이르노니 너희는 성령의 인도를 따라 행하라 그리하면 육체의 욕심을 이루지 아니하리라’(갈5:16)
베드로가 예수님의 수제자의 은혜를 입은 것은, 그가 예수님을 따르기로 선택했기 때문이다,
‘베드로가 모든 것을 버려 두고 예수를 따르니라’(눅5:11)
인생은 선택의 결과이다. 선택을 잘 해야 한다. 예수님을 따르기로, 성령님을 따르기로 결단해야 한다.
예수님은 말씀하셨다.
‘나는 세상의 빛이다. 나를 따르는 사람은 어둠 속에 다니지 아니하고, 생명의 빛을 얻을 것이다.’(요8:12)
예수님은 생명의 빛이신데, 그 빛을 얻을 수 있는 사람이 있다. 그 사람은 다름 아닌 ‘예수님을 따르는 사람’이다. 따르는 사람은 얻는다. 예수님을 따르면 생명의 빛을 얻고, 성령님을 따르면 성령 충만을 얻는다.
충만의 비결은 그 분을 따르면(순종) 된다.
성령의 인도함을 따라 행하는 만큼 성령의 역사가 임하고,
성령의 인도함을 따라 행하는 만큼 성령의 열매는 자라게 되고,
성령의 인도함을 따라 행하는 만큼 성령으로 채워지게 된다.
성령의 인도하심을 거부하지 말라. 성령 충만을 받지 못한다.  

17 コメント

문원희

2009-03-09 18:11:25

‘나는 세상의 빛이다. 나를 따르는 사람은 어둠 속에 다니지 아니하고, 생명의 빛을 얻을 것이다.’(요8:12)

욕심을 버리고, 게으름을 버리고, 화를 버리고, 짜증을 버리고,, 나쁜 귀신을 제자훈련을 통해 버리기 시작하였지만, 채우는 것의 중요성은 잘 몰랐다. 버리기는 했는데, 그 버린것을 채우기 위해 노력하지 못했다. 늘 말씀을 읽고 기도를 하지만, 의무적일 때도 있었고, 의무적이다보니 말씀의 감동을 받은 적도 적었다. 또, 많이 비웠다고 생각하지만, 그래도 버리지 못한 나쁜 귀신들도 있을 것이다.
작은 예수가 되기 위해 제자 훈련을 받으면서도 온전히 예수님을 따르지 못하고 있다. 예수님은 나의 생명이시고, 나의 빛이시고, 나의 길임을 알면서도, 나는 늘 세상것에 발을 담군채 비워져 가기 시작한 나를 성령으로 채우지 못하고 있다. 나는 남의 이야기를 하는 습관이 있다. 남의 험담을 하려고 하고, 남의 나쁜점을 나 혼자 생각해도 나쁜데, 꼭 그것을 남과 나누고 싶어 한다. 하지만, 이제 이런 나의 더러움을 깨끗한 것으로 채우기 위해 노력할 것이다. 말다툼, 속된 잡담등을 버리고, 주님의 깨끗한 영으로 채워나갈 것이다. 그리고 이제껏 나의 필요를 위해서만 기도했지만, 이제는 정말 나의 나쁜 점들을 고치게 해달라고, 주님의 제자로 걸맞은 훈련생이 되게 해달라고 기도할 것이다.

‘내가 이르노니 너희는 성령의 인도를 따라 행하라 그리하면 육체의 욕심을 이루지 아니하리라’(갈5:16)

성령의 인도를 따르는 내가 되고 싶다. 늘 육체의 욕심을 위하여 기도하고 무언가를 선택하는 내가 아니라, 정말 하나님의 것, 천국에 소망을 두고 주님의 것을 선택하고 기도하는 내가 되기를 소망하고 기도한다.

한진경

2009-03-10 07:53:01

‘내가 이르노니 너희는 성령의 인도를 따라 행하라 그리하면 육체의 욕심을 이루지 아니하리라’(갈5:16)

인생을 살아가면서 선택은 참 중요하다. 그리고 타이밍도 잘 잡아야한다.
성령님이 내 안에 계시고 아무리 성령님이 나를 선한 길로 인도할려고 해도 내 자신이 이상한 길을 선택하면 이제까지 채움의 시간들이 헛되이 될 수가 있다는것.

선한것이라는 것이라는 것을 머릿속에서는 수백번 생각하지만, 막상 눈앞에 이익이 되는 것이 보이면 지고 마는게 지금의 나의 현재모습이다.
이론으로 끝나는 것이 아니라 실천으로 이어져야하는 법.
눈앞에 보이는 것을 쫓아가는 삶이 아닌 더 넓은 시야로 올바른 선택을 하기를 원한다.

박유진

2009-03-10 21:13:30

"믿음은 곧 선포다. 지금 받은 것을 말하는 것이 아니라, 앞으로 받을 것을 믿음으로 선언하는 것이다. 그래서 믿음만큼만 선포하게 된다. 받은 만큼 선포하는 것은 믿음의 선포가 아니다. 믿음이 있는가? 선포하라. 하나님의 은혜를 선포하라. 하나님의 은혜의 기름이 당신뿐만 아니라, 당신의 후손들에게까지 흘러 넘칠 것이다. 다윗의 후손들처럼. "

매일 매일 아이들하고 집에서 씨름하며, 외출이라곤 주일날 교회 가는 거랑 아기들이 아플 때 병원 가는 게 전부이고 늘 집에만 있으니 있다 보니, 몸과 마음이 많이 지칠 때가 많았다. 한번 나가려면 세명을 데리고 나가야 하니, 그 준비도 만만치 않은데다, 어른이 셋은 있어야 움직일 수 있기 때문이다. 주일날 예배도 집중해서 못 들을 때가 많아서, 말씀이 채워지지 않는 허전함이 있었다. 그래서, 봄부터 시작되는 화요성경공부에 엄마가 등록을 하신다고 해서, 같이 아기들을 데리고 가기로 했다. (그냥 무작정 저질러본 것이다.) 지난주, 첫 강의를 들으러 갔는데, 마침 비가 내렸다. 엄마와 둘이서 선호와 쌍둥이들을 데리고 교회에 갔는데, 처음부터 세 녀석을 데리고 강의를 들으러 간 것이 무리였던 것 같다. 몇백명이 앉아있는 조용한 강의실에 아기들이 보채기 시작하니까, 엄마와 함께 아기들을 데리고 밖에 나갔다 들어왔다 달랬다 하다보니까, 제대로 듣지 못하고 끝나버리게 되었다. 선호는 선호대로 칭얼대고, 비가 와서 주차장까지 아기들을 데리고 가는 것도 큰 일이었다. 첫날 너무나 고생을 해서 앞으로 성경공부를 하러 갈 수 있을지 의문이었다. 그래서, 주님, 제발 교회에서 자모실을 열어서 그곳에서 영상으로 아기들을 데리고 성경공부를 할 수 있게 해주세요...하고 기도했다. (첫날가니 자모실을 열지 않는다고 했었다.) 오늘도 화요일이 다가왔고, 교회에 갈까 말까 망설이는데, 시어머니께서 아기들이 고생한다고 가지말라고 하셨다. 내가 아니라, '아기들'이 고생한다고 하는 말에, 그만 가려던 생각을 접고 엄마 혼자서 다녀오시게 되었다. 그런데, 교회에 도착하신 엄마한테 전화가 왔는데, 이번주부터 자모실에서 영상으로 성경공부를 하도록 했다고 한다. 그 전화를 받은 후 얼마나 회개했는지 모른다. 난 하나님을 두려워하지 않고, 사람을 먼저 두려워했고, 기도해놓고도 믿음이 부족해서 주님께서 이렇게 좋은 것으로 예비해두고 계신데도, 믿지 못하고 환경이 충분히 되지 못하다고 몸을 사리고 있었던 것이다. 기도한 것은 받은 줄로 믿으라고 하셨는데...나는 말씀을 믿지 못했다.
앞으로, 기도한 것은 받은 줄로 믿고 나가는, 사람과 환경을 두려워하지 않는 내가 되길 바란다. 성령님의 음성을 선택하고, 나의 인간적인 판단을 선택하지 않는 내가 되길 원한다.

문인우

2009-03-10 23:08:01

베드로가 예수님의 수제자의 은혜를 입은 것은,
그가 예수님을 따르기로 선택했기 때문이다,
‘베드로가 모든 것을 버려 두고 예수를 따르니라’(눅5:11)
인생은 선택의 결과이다. 선택을 잘 해야 한다.
예수님을 따르기로, 성령님을 따르기로 결단해야 한다.

제자 훈련을 하기로 결정하고 목사님과의 면담까지 하고
훈련이 시작하기를 기다리고 있었을때 갑자기 개인적으로 힘든 일이 생겨
제자 훈련을 포기하려고 했던 적이 있었다.
눈 앞에 닥친 문제에 좌절하고 제자 훈련도 포기하고 싶었지만
나는 제자 훈련을 하기로 선택했다.
제자 훈련을 선택 한 결과는 문제의 해결을 시작으로
믿음의 성장, 좋은 훈련생들과의 만남, 기도의 응답 등등
글로는 다 적지 못할 정도의 많은 복을 받게 되었다.
만약 그 때 제자 훈련을 포기하고 문제에 졌다면
어떻게 되었을지 생각만 해도 끔찍하다.
내가 제자 훈련을 선택해서 얼마나 감사한지..

지금 나는 제자 훈련을 통해 내 안에 세상적인 것들을
하나 하나 비워 가고 있는 중이다.
비운 자리에는 말다툼이나, 속된 잡담, 불의, 정욕을 버리고
깨끗함과 기도로 채워 나가고 싶다.
그리고 성령님을 따르는 바른 선택으로 예수님의 생명의 빛을 얻고 싶다.

성령의 인도함을 따라 행하는 만큼 성령의 역사가 임하고,
성령의 인도함을 따라 행하는 만큼 성령의 열매는 자라게 되고,
성령의 인도함을 따라 행하는 만큼 성령으로 채워지게 된다.
성령의 인도하심을 거부하지 말라. 성령 충만을 받지 못한다.

최홍근`

2009-03-11 23:54:42

‘베드로가 모든 것을 버려 두고 예수를 따르니라’(눅5:11)

베드로는 자기가 가지고 있는 모든 것을 버리고 예수님을 따라가서 은혜로은 것들로 새로 채웠다. 나도 베드로 처럼 해야 하는데 나는 아직도 내가 가지고 있는 것들을 제대로 버리지 못하고 있다. 세상에서 내가 해야하는 것에 얼매여 하나님을 위해 해야하는 것들을 뒤로 제쳐놓곤 했다. 이번 주 설교 말씀을 들으면서 이제 제대로 비우고 제대로 채워야겠다고 생각했다. 세상 것들을 비우고 다시 세상 것들로 채우는 내가 아니라 예수님의 것으로 성령님으로 가득 채우는 더이상 틈이 없을 정도로 내가 밥먹는 양보다 더 많이 채우도록 하여야겠다.

조상만

2009-03-12 05:38:15

귀신집, 빈집 그리고 성령집~ 이 세가지 집에는 비움과 채움이라는 원리의 두가지 개념으로 인해 차이가 발생하게 되는 군요. 저는 마음속을 깨끗이 비워내기만 하면 모든게 해결끝인 줄 알았습니다. 그러나 비워낸 만큼 성령님으로써 채워지지 않는 다면 더 사악한 것이 들어와 채워 진다는 거대한 원리가 숨어 있었군요. 이 놈의 악마들은 너무 영악해서 빈틈을 보여서는 안 되는 존재들인가 봅니다. 약간의 방심에 더 사악한 것들이 몰려와 버리니깐요. 그래서 우리는 언제나 기도와 말씀을 통해 항상 성령님의 기름 부음으로써 빈 우리의 마음집안을 꽉꽉 매워 놓아야 하겠군요. 그리고 항상 우리의 집 현관을 노크 하시는 예수님을 문앞에 새워 놓지는 말아야 겠습니다. 아니 우리 자신이 그 노크 소리를 잘 듣고 있는지 알아야 되지는 않을까요? 지금 우리는 예수님의 노크 소리를 잘 듣고 있나요? 아니면 알게 모르게 악마가 마음속에 들어와 조종되면서 그 놈들과 히히덕 거리고 있지는 않나요? 그들의 유혹에 빠져 지금 조종 당하고 있지 않나요? 이 것은 우리의 예수님을 두번 죽이는 행위가 아닐까요? 우리의 예수님은 수백년전 우리때문에 십자가에 달려서 고통을 받으시면서 돌아가신 것은 누구나 알고 있습니다. 그렇습니다. 우리 모두가 그 분을 십자가에 내몬 범인인 거죠. 그런데 어느새 우리 마음을 차지한 악마와 함께 히히낙낙하며 타락한 삶을 산다면 이것은 예수님을 또 한번 죽이는 일이 되지는 않을까요? 그 분이 무슨 죄가 있길래. 한번 죽인 분을 우리가 우리의 손으로 왜 또 죽이려 하는 걸까요? 이 어찌 부끄러운 일이 아니겠습니까? 우리 안에 있는 온갖 좋지 못한 것들을 모두 버려내고 깨끗이 청소를 하고는 개운한 마음으로 성령님의 기름을 붓고는 예수님을 맞이 해야죠. 그래야 진정한 파티가 시작이되는것이 아닐까요? 그 분이 없는 파티는 당연 악마와의 파티가 아닐까요? 이제 우리 그만 속아야죠. 악마는 우릴 속이는 존재이니 그만 속아야죠. 모두 비워내고 다시 예수님을 초대 합시다. 말씀과 기도라는 먹거리로써 식탁을 채우고 찬양을 소리 높여 부르며 오늘의 파티를 우리모두 예수님과 함께 합시다. 그러기 위해선 비움과 동시에 성령의 채움이 함께 있어야 할 때이죠. 저도 확실한 비움과 채움을 위해 노력하겠습니다.

-A men-

박종희

2009-03-12 07:39:01

‘술 취하지 말라 이는 방탕한 것이니 오직 성령으로 충만함을 받으라’(엡5:18)
술로 충만하지 말고, 오직 성령으로 충만해야 한다.
인생의 그릇을 술로 채우지 말고, 오직 성령으로 채워야 한다.
세상 쾌락에 취하지 말고, 오직 성령에 취해야 한다.

믿는 사람들도 술을 마시면서 저 말씀을 간혹 응용하곤 한다.
'술 취하지 말라 이는 방탕한 것이니 오직 성령충만을 받으라.'
주님께서는 술 취하지 말라고 하셨을 뿐이다라고 하면서, 자신은 술에 강하기 때문에 마셔도 취하지 않는다고 하면서...
설교말씀을 통해서 말씀의 본뜻을 다시 한번 깨닫게 되었다.
세상 쾌락을 따라 살지 말고, 성령님을 모시고 성령님의 인도하심에 순종해라는 뜻임을.
나는 물질을 참 좋아했었다. 세상의 명예도 참 중요하다고 생각해왔었다.
내가 일본에 오는 바람에 나와 연락이 잠신 끊겨있었던 대학선배를 일본에서 보게 되었다. 그 형은 날 더러 많이 변했다고 한다. "너! 예전엔 참 순수 했었는데 많이 변했구나?"..
나의 순수했던 면이 사라지고 순수하지 않게 변했다라는 것이었다.
순수했었던 때는 나의 속이 비어져 있었을 때라고 돌이켜 생각해 본다.
순수했었던 그 시절에 성령으로 채우지 않고 세상의 것들로만 채울려고 노력하다보니 나의 순수함은 점차 살아져 가게 되었고, 결국은 그 속이 겉으로 들어나 남에게 까지 들키게 되고 말았던 것이다.
말씀을 통해서 다시한번 확인해 본다. 비우는 것 보다 중요한 것은 채우는 것이다. 무엇을로 채우는 것이 바른 삶일까? 성령으로 내 안을 채우라고 말씀하신다. 세상의 욕심을 따라 살지말고, 성령의 인도하심을 따라 살아라고 말씀하신다. 이제 다시 순수함으로 돌아가 하나님의 거룩한 백성답게 거룩하게 살고 싶다. 거룩한 삶은 세상것을 비우고 하나님의 것으로 채워가는 것, 즉, 하나님을 두려워하는 마음으로 거룩함을 온전히 이루어 육과영의 온갖 더러운 것에서 자신을 깨끗하게 해야 하겠다.

장미경

2009-03-12 08:15:00

성령이 계시는 것이 능력이 아니다. 성령의 인도에 따르는 것이 능력이다.
성령의 존재의 유무보다 성령께 순종의 유무가 절대적으로 중요하다.
성령을 따라 선택할 때에 비로소 성령의 은혜를 체험하게 된다. 성령은 장식품이 아니라, 인생의 능력이다.

오늘은 참 감사한 날이다. 집에 전화를 걸어 동생에게 오늘 비자를 받았다고 전했다. 3년짜리 비자를 받아 왔다고..
처음 올때 3개월짜리 여행비자로 왔었는데..
1년반이나 잘 지내다가
지금은 3년짜리 비자가 나왔으니 감회가 참 새롭고 신기하기도 하고 그랬다.

동생은 "그게 뭐? 당연히 나오는거 아니야?"라며.. 시큰둥한 반응을 보였다.
너가 외국에서 비자 받고 산다는게 어떤건지 몰라서 그런다며 반박을 했지만....
생각해보니 이 모든것이 주님 안에서 아무것도 아닐 수 있겠구나 싶었다.
그 모든것 주님께서 허락하시는 길이기에 나오는 것이지 결코 일본이라는 나라에서 요구한 것들을 내가 갖추고 있기 때문에 나오는 것이 아니라는 생각이 들었다.
동생말처럼.. 주님 안에서 지금 내게 이 길이 열린것은 아주 당연한 일 일지 모른다는 생각이 들었다. 조금 늦게 온 엽서덕분에 살짝 걱정했던 내 자신을 돌아봤다.
주님 안에서 내가 걱정할 것이 무엇인가 말이다.
주신것도 주님의 계획하심과 사랑이요
주시지 않으심도 역시 주님의 계획하심과 사랑이시니...
그저 내가 해야할 일은 !!! 내 인생의 더 큰 능력있는 삶을 원한다면!!!
성령의 인도하심에 감사히 순종하며 그 은혜를 경험하는것!!
그것을 기대하는것!!!
그뿐인것을~~~

최수진

2009-03-12 19:25:48

20대 초반 내 안은 온통 세상 것으로 가득찼었다.
무언가 모르는 해방감으로 그랬던 것 같다.

그리고 대학을 졸업하고 다시 교회를 다니기 시작했다.
그때에도 여전히 한발은 교회에 한발은 세상에 담근채였다.

일본에 와서도 처음에는 그랬던 것 같다.

비우는 것이 무엇인지도, 왜 비워야하는지도, 어떻게 비우는지도 몰랐던 것같다.

그리고 훈련을 시작했다.
훈련을 하면서 내가 행해왔던 좋지 못한 것들을 비우는 작업을 시작했다.

그렇게 비우면 다 되는 것이라고 생각했다.

하지만 이번 주 설교를 듣고 그것이 아니라는 것을 깨달았다.

하나님 것으로 좋은 것으로 채우는 것이 얼마나 중요한 것인지...
깨끗한 것으로, 기도로, 바른 선택으로 채워야 한다.

요즘 힘든일이 많아 흔들릴 때가 너무나 많다.
하지만 이럴 때 일수록 더 하나님만을 의지해야지.
그것이 내가 하나님의 사람이라는 것을 나타내는 것이라고 생각한다.

"성령의 인도함을 따라 행하는 만큼 성령의 역사가 임하고,
성령의 인도함을 따라 행하는 만큼 성령의 열매는 자라게 되고,
성령의 인도함을 따라 행하는 만큼 성령으로 채워지게 된다.
성령의 인도하심을 거부하지 말라. 성령 충만을 받지 못한다"

유광옥

2009-03-12 19:48:28

능력 있는 성도는 확실한 채움이 있는 성도다. 성령으로 충만한 성도는
하나님의 능력이 늘 함께 하기 때문이다.

요며칠 사이 걱정이 되어 왠지 마음이 편안하지 않아서
무엇을 해도 개운함이 없었는데 어제 새벽기도를 다녀와서
몸도 마음도 가벼워 진것 같아서 감사하게 되었다.
다음주에 통역일로 인해서 한국을 가게 되었는데
갑자기 일정중에 한시간 반정도의 강연하는 것을
거의 동시통역을 감행해야 하는 난관이 있어서
그것도 도착하는 첫날 오후부터 바로 일정이 잡혀 있어
왠지 마음의 걱정이 앞섰다. 왜냐하면 원고를 받은 상태도
아니고 철도지식은 전혀 없는터라 심히 걱정이 되었는데
새벽에 기도를 하면서 언제는 내가 내 실력으로 일했나
하나님께서 주신 능력과 사랑으로 했지 하는 마음을
주셔서 함께 해 주실 것을 간절히 기도하고
정말 구하는 자에게는 좋은 것을 주실것을 믿는 것만이
하나님의 능력을 체험하는 것이라고 생각되었다.
통역일을 받을 때 특히 큰 회사나 처음가는 회사 통역을
갈때 나는 틀려도 담대한 마음 가짐을 갖는 습관이 생겨서
일단 통역을 시작하고 나면 떨림이 사라지고 담대해 진다.
이동하는 차안에서나 잠깐의 시간이라도 기도를 하고나서
통역을 하게되면 왠지 모르게 자신감이 생기고 모르는
부분도 당당하게 다시 질문을 하면서 일을 하다보니
내가 실력이 특별히 좋아서가 아니라
나의 당당한 모습에 이끌리어?? 다시 통역을
의뢰받는 경우가 많다. 나의 실력을 믿는것이 아니라
하나님의 능력을 믿게 되니 나의 걱정이 긍정적으로
바뀌게 되었다. 이번에 한국에 가서 철도공사 서울지사장과
대전 KTX 본사를 방문하여 고속철도 지사장을 만나고
부산지하철공사 사장을 만나며
일반인 출입금지인 관제실과 지령실등을 방문하는데
내가 이번 일을 의뢰받지 않았다면 좋은 경험을 해보려고
애써도 할 수 없는 것인데 정말 좋은 기회를 주시는 것이구나!!
하고 기쁜 마음과 긍정적인 마음가짐을 갖게되었다.
여러가지 일정을 하나님의 능력을 믿으며
감사와 기도로 잘 끝낼 수 있기를 기다리는 마음이다.

홍은미

2009-03-13 02:46:08

그릇을 채워야 한다. 보배로 채워야 한다. 그리스도로 채워야 한다. 성령님으로 채워야 한다. 그럴 때에 우리는 질그릇으로 버려지지 않고, 보배를 담은 값진 그릇으로 대접받을 것이다.

이번 한 주... 이유도 없이 내내 기분이 바닥이었다. 말씀을 읽고 보니, 비운 내 마음속을 주님의 것으로 얼른 채우지 못했던, 게으름때문에 온 시험인 것 같다는 생각이 든다. 조금 더 쉬고자 하는 마음으로 예배를 게을리 했고 기도를 게을리 했고 말씀을 멀리 했다. 요 잠시의 틈을 사탄은 그냥 두지 않았다. 내 마음을 더욱 강팍하게 만들어서 더 짜증이 나게 하고 기분은 우울하게 만들고 입에서는 불만 불평을 만들어냈다. 속으로는' 내가 이러면 안되는데...'생각을 하면서도 성경책을 열면 이상하게 한 장도 제대로 읽을 수 없을 만큼 집중이 되지 않았다.
내 마음속이 다시 깨끗하게 되도록 회개기도를 해야겠다. 비워진 마음에 하나님의 것들로 얼른 채워놓아야겠다. 나 자신이 무언가를 하려고 할 게 아니라 늘 기도하는 대로 주님께서 이루어 주실 거라 믿고 좋은 습관을 길러 나가야겠다.
참 남들에게는 감사함으로 기도하라고 늘 말하면서도 나는 왜 이렇게 그것이 힘든지 모르겠다.

박재훈

2009-03-13 10:16:39

가장 위대한 분은 성령님이다. 당신의 속 사람을 성령님으로 채우라. 그리고 성령의 삶을 살아라. 그러면 반드시 하나님의 위대한 역사, 천지를 만드신 그 역사가 당신의 손을 통해서 다시 재현될 것이다. 분명히!!!
--------------------------------------------------------------------
어릴 때 사전에서 우연히 발견한 우스운 속담이 있다.
'길 닦아 놓으니 미친년이 먼저 지나간다.'
처음 발견했을 때는 정말 한참 웃었지만 어린 마음에도 뭔가
가슴이 서늘한 옛말이라고 생각했었고, 그래서 그런지 십수년이 지난
지금도 그 속담이 생생하다.
때때로 나의 인생도 그런 것 같아서 말이다.
깨끗이비우면 사탄이 들어오고 고놈들 내보냈다가 다시 치우고
조금 시간적 공백이 있다 싶으면 먼저 알고 쏙 잘도 들어왔다가
어질러 놓고 간다.
멍청한 사탄은 없는 듯 하다. 하지만 그 사탄이 들어오기 전에
재빠르게 손쓸 수 있는 건 역시 나뿐인 것 같다.
내 의지가 하나님을 기대하고 성령님이 일하시게 한다면,
사탄, 영리한 것도 깨깽하고 꼬리내릴 수 밖에.
하나님의 역사가 너무나 기대되는 요즈음이다.
나는 사실 아무것도 한 게 없다. 처절하게 바닥이 난 나를,
그냥 하나님께 의지했을 뿐인데,
나도 모를 하나님의 은혜와 하나님의 인도를 느끼게 하신다.
그래서 그런지, 의식적으로 하나님 생각을 더 하게 되고,
하나님의 기대에 부응하는 내가 되기를 간절히 소망하게 된다.
외부가 보는 기대감이 아닌, 그분과 나만이 아는 그 기대감을
바라보면서, 조용히 하나님과 교제하고 싶다.
조용히.... 시끄럽게 했다가는 사탄이 먼저 알아버릴테니까.
조용히, 묵묵히 당신만 들어와서 채워주소서.

박은주

2009-03-14 01:59:08

그는 하나님의 채우심을 미리 선포했다. 하나님의 은혜의 기름을 미리 선포했다.
믿음은 곧 선포다. 지금 받은 것을 말하는 것이 아니라, 앞으로 받을 것을 믿음으로 선언하는 것이다. 그래서 믿음만큼만 선포하게 된다. 받은 만큼 선포하는 것은 믿음의 선포가 아니다. 믿음이 있는가? 선포하라. 하나님의 은혜를 선포하라. 하나님의 은혜의 기름이 당신뿐만 아니라, 당신의 후손들에게까지 흘러 넘칠 것이다. 다윗의 후손들처럼.
집에서 아이들과 있는 시간이 대부분이 나는 매일이 아이들과의 전쟁이라고 해도 과언이 아닙니다. 지난주와 이번주는 진수와 진희가 수두에 걸리고 진수와 제가 인푸루엔자에 걸려서 몸과 마음이 지칠대로 지쳐있었습니다. 평소보다 아이들도 저도 많이 예민해져서 아이들에게, 남편에게 소리지르고 짜증을 부렸습니다. 그런날은 저녁에 잠자리에 들기전 묵상을 하면 어김없이 눈물이 났습니다. 내 뱃속으로 낳은 자식인데…엄마 잘못 만나서, 아내 잘못 만나서 고생한다. 얼마나 내 자신이 초라해지고 자아상이 낮아지는지, 아무런 의욕이 생기지 않기도 했습니다. 그래도 있는 힘을 다해 말씀을 묵상하려고 노력했습니다. 읽기 싫었지만 목사님이 읽으라고 한 긍정의 힘도 읽으려고 노력했습니다. 그랬더니 한 구절이 제 눈에 들어 왔습니다. 아버지이신 하나님은 나의 두걸음을 보고 계신다는 것이였습니다. 참 많이 위로가 되었습니다. 요며칠 내가 생각해도 너무 형편없는 내 모습이였지만, 그래서 넌 별수 없어라고 하는 사탄의 음성에 동조하며 자포자기한 날들이 많았지만 다시 힘을 내기로 했습니다. 내 속에 성령의 충만함을 선포하며 한걸음 더 내딛디기로 했습니다.

이진애

2009-03-14 08:33:09

“어떻게 채울 것인가? 깨끗함으로.. 기도로.. 바른 선택으로 채운다.”
“성령이 계시는 것이 능력이 아니다. 성령의 인도에 따르는 것이 능력이다.”

성령이 계시니 나는 채움에 대해서도 자유하다고 말하고 싶지만..
그렇다. 성령이 계시는 것이 능력이 아니라 그 인도에 따르는 것이 능력이다!
육체의 소욕이 아닌 성령의 인도하심대로만 살면 근심 걱정도 내 것이 아닐 텐데.. 왜 그리도 순종하지 않고 내멋대로 하려고만 하는 것인지..
성령님이 이끄시는 대로 나는 그저 순종하며 따라가기만 하면 된다. 그리고.. 깨끗함으로 기도로 바른 선택으로 채워나가기만 하면 된다.
무엇이 성령께서 원하시는 길인지, 무엇이 바른 길인지 알면서도 그 길로 가지 않으려고 발버둥치기때문에.. 채우는 일이 엄청나게 어렵게 느껴지는 것임을 안다.

세상 것을 비우고, 나를 비우고 성령을 채움으로서 당당하고 건강한 성도, 지혜롭고 안전한 성도가 되어보자.

신정은

2009-03-14 08:46:51

크리스천의 정체성은 그릇에 있지 않고 그 안에 담고 있는 보배에 있다.
그릇을 채워야 한다. 보배로 채워야 한다. 그리스도로 채워야 한다. 성령님으로 채워야 한다.

졸업이 결정 나면서, 또 취업 활동을 하는 동안, 나는 크리스천의 정체성에 대해서 신중하게 생각하게 되었다. 학위를 따게 되어서 감사하는 마음으로 하나님께 영광을 돌리며 기뻐했지만 무언가 허전했고, 또 취업이 결정 났을 때도 물론 하나님의 은혜이며 영광이었지만 어딘가 모르게 허전함을 느꼈다. 또 그간 적은 액수이지만 채워져 가는 통장을 보면서도 기쁨은 한순간이었다.
결국.. 나는 과연 무엇을 목표로 내 인생의 그릇을 채우고 있는지가 중요하다는 것을 깨달은 것 같다. 돈도 명예도 세상도 아닌 보배로 채워야 함을, 바로 우리 주 그리스도 예수로 채워야 온전한 기쁨과 영원한 만족을 얻을 수 있다는 것을 확실히 깨닫고 있다.. 또 이렇게 말씀으로 가르쳐 주시니 얼마나 감사한지요..
이제부터 내 인생... 오직 주님 한 분만으로 만족하며, 내 영이 성령으로 충만하기를 간절히 간절히.. 기도드립니다.

서진

2009-03-15 09:08:26

‘주님께서 내 원수의 목전에서 내게 상을 차려 주시고, 기름을 내 머리에 부으셨으니 내 잔이 넘치나이다.’(시23:5)

제자훈련을 시작하면서 내 인생이 달라질게 뭐가 있냐고 살펴보니 그렇게도 많이 달라진게 없는것 같다. 주일날에는 교회에 가서 하나님의 말씀을 듣고 제자훈련을 통해 하나님의 말씀을 배우면서 평일에는 세상에 빠져서 사는것 같다. 제자훈련시간 마다 다들 제자훈련을 받으면서 많은 은혜를 받고 많이 삶이 달라졌다고 하는걸 들으면서 엄청 부럽다.
그런데 나는 왜 내 삶이 달라지는것을 못 느낄까?
지난주 말씀을 들으면서 내가 비우지 못하고 채우지를 않았구나. 그리고 특히 채우는 방법을 몰랐고 안 채워왔었다는 것을 깨닫게 되였다.

‘술 취하지 말라 이는 방탕한 것이니 오직 성령으로 충만함을 받으라’(엡5:18)
성령으로 충만함을 받고 성령으로 채우고 깨움으로 채우고 기도로 채우며 바른 선택으로 채워야 한다는 것을 깨달았고 하나님이 가르쳐주시는 방법으로 성령으로 나를 채우려고 한다.

성령의 인도함을 따라 행하는 만큼 성령의 역사가 임하고,
성령의 인도함을 따라 행하는 만큼 성령의 열매는 자라게 되고,
성령의 인도함을 따라 행하는 만큼 성령으로 채워지게 된다.
성령의 인도하심을 거부하지 말라. 성령 충만을 받지 못한다.

최민정

2009-03-15 09:18:01

사람은 채움만큼의 사람만 될 수 있다.
성공한 삶을 살기 원하는가? 위대한 인생을 꿈꾸고 있는가?
위대한 것을 당신의 인생에 먼저 채우라. 그리고 그런 삶을 계속 살아보라.
가장 위대한 분은 성령님이다. 당신의 속 사람을 성령님으로 채우라. 그리고 성령의 삶을 살아라. 그러면 반드시 하나님의 위대한 역사, 천지를 만드신 그 역사가 당신의 손을 통해서 다시 재현될 것이다. 분명히!!!

저번주엔 제자훈련을 통해 훈련전의 내모습과 후의 내모습에 대하여
나눔을가졌었다. 훈련생 모두 눈에 보이지는 않지만 조금씩
많은 변화와 성장이 있었다.
나역시 과제를 하기전까진 내게 성장과 변화가 있었나 싶었지만
하나씩 차근차근 적어나가면서 확실히 훈련을 통해서 나에게
변화와 성장이 있었음을 깨달았다.
이 모든것들은 훈련을 통해서 주님의 말씀으로내 안에 채움이 있었기 때문에
변화와 성장이 가능했다고 생각한다.
주님것으로채운 만큼의 사람. 내 안에 채워지고 있는 말씀과 성령님께 구하는
기도가 조금씩 내 속의 사람을 변화시키고 있다고 느꼈다.
아직도 세상적인것들을 완전히 비우지못한 나이지만 그래서
물질적인 욕심도 속된 잡담 과 육신의 약함을 이기지못하는 게으름
등등 너무너무 버릴 나쁜 습관들이 많지만 그렇기 때문에 하나님께서 나를
제자훈련에 참여하도록 허락하신것 같다.
매일매일의 성장을 통해서 성령의 도우심만 따라서 예수님과같은
순종의 선택을 해가는 삶이 되기를 바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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二つのパン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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변함없는 사랑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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감사를 잊지는 않았는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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私が聞いて、私が見た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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