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중앙영광교회

제자의 길

이용규목사, 2011-03-15 00:15:5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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예수님은 자신이 원하는 사람들을 택하여 12명을 세웠습니다.
이 사람들을 우리는 12제자라고 부릅니다. 이들은 어쩌면 오늘날 믿음의 사람들의 모델이요, 선망의 대상일 수 있습니다. 그들은 예수님께 직접 훈련을 받은 처음이자 마지막 제자들이었기 때문입니다.
예수님이 왜 이들을 부르셨을까요? 일부 제자들의 생각처럼 높은 자리에 앉혀 주려고 했을까요? 자신의 심복을 만들기 위해서 일까요? 아닙니다. 예수님은 3가지 일 때문에 그들을 부르셨습니다. 오늘날 크리스천들은 그 어떤 일보다 이 3가지 일에 전문가가 되어야 합니다. 제자의 사명은 어제나 오늘이나 영원토록 동일하기 때문입니다.
나는 예수님의 제자로 무엇을 해야 할까요? 예수님은 우리가 뭘 하시길 원하실까요?
진정한 크리스천은 자신이 하고 싶은 것만 하고 사는 사람이 아니라, 주님이 하라고 하시는 것을 열심히 하는 사람입니다.

1. ‘함께’
‘자기와 함께 있게 하시고’
인생은 누구와 함께 하는가가 중요합니다. 세상에서 훌륭한 사람과 함께 하는 것도 큰 복이지만, 예수님과 함께 하는 것은 인생 최고의 복입니다. 많은 사람들은 이 복의 귀함을 잘 모르기 때문에 ‘함께 함’의 복을 잘 누리지 못합니다. 심지어 어떤 사람들은 귀찮아 하고 힘들어 하기도 합니다. 예수 믿는 사람의 가장 큰 복은 주님이 함께 하는 복입니다. ‘네 평생에 너를 능히 대적할 자가 없으리니 내가 모세와 함께 있었던 것 같이 너와 함께 있을 것임이니라 내가 너를 떠나지 아니하며 버리지 아니하리니’(수1:5) 그렇습니다. 모세와 함께 했던 하나님, 여호수아와 함께 했던 하나님이 지금 당신과 함께 하십니다.
예수님이 제자들을 부르신 첫 번째 목적은 바로 그들과 함께 하시기 위해서입니다.
예수님은 우리와 함께 계시는 것을 간절히 원하십니다. 함께 하는 복을 주시길 원하십니다.우리와 교제하길 원하십니다. 사랑의 교제 말입니다. 일상 생활에서 늘 함께 하시길 원합니다. 주님을 따돌리고 자기들끼리만 있는 것을 주님은 결코 기뻐하지 않습니다. 우리가 세상과 벗하여 사는 것을 정말 싫어합니다. 오죽했으면 이런 사람을 ‘간음하는 여인’에 비유했을까요? ‘간음한 여인들아 세상과 벗된 것이 하나님과 원수됨을 알지 못하느냐’(약4:4)
프랭크 루박은 ‘하나님 또한 우리 모두의 사랑을 애타게 기다린다’고 했습니다.
하나님은 우리와 사랑의 대화를 나누길 원하십니다. 하나님이 각종 짐승과 각종 새를 만드시고 아담에게 이름을 지으라고 하시며 끊임없이 대화를 나누었듯이, 주님은 오늘도 우리와 대화하기 원합니다.
하나님은 말로써 대화가 안 될 때에는 고난으로 흔들기도 합니다. 배 부를 때보다 배 고플 때가 하나님의 음성은 더 선명하게 들립니다. 배가 부르면 영의 귀가 잘 들리지 않는 경우가 많습니다. 믿음의 사람은 고난이 왔을 때에 외형적인 재난에만 초점을 맞추면 안됩니다. 모든 고난에는 하나님이 하시고자 하는 말씀이 있습니다. 이 말씀을 놓치면 고난은 고통으로 끝나버릴 수 있지만, 하나님의 음성을 듣게 되면 고난은 반드시 축복으로 환산됩니다. ‘고난 당한 것이 내게 유익이라 이로 말미암아 내가 주의 율례들을 배우게 되었나이다.’(시119:71) 고난은 하나님의 음성의 확성기입니다. 고난의 때에는 이상하리만큼 주의 음성을 잘 들을 수 있습니다. 이것이 고난의 때에 받을 수 있는 최고의 복입니다.
어느 선교단체에서 오랜 경험 끝에 배운 백만불짜리 질문을 소개하고자 합니다. ‘하나님, 지금 이 상황을 통해 제게 무엇을 가르치고자 하십니까?’입니다. 무슨 일이 있을 때에는 하나님의 뜻이 무엇인지? 하나님이 무엇을 말씀하시길 원하시는지 여쭈어야 합니다. 습관 중에 정말 귀한 습관은 하나님께 여쭙는 습관입니다. 하나님께는 자주 여쭐수록 좋습니다. 하나님은 우리와 대화하기를 원하기 때문입니다.
예수님이 성령님을 우리에게 보내 주신 목적이 무엇인지 아십니까? 우리와 함께 하기 위함입니다. 그것도 아예 우리 속에서 사시기를 원하셨기 때문입니다. ‘내가 아버지께 구하겠으니 그가 또 다른 보혜사를 너희에게 주사 영원토록 너희와 함께 있게 하시리니…그는 너희와 함께 거하심이요 또 너희 속에 계시겠음이라’(요14:16:17)  
주님은 이렇게 우리와 함께 있는 것을 기뻐하시는데, 과연 우리는 어떨까요? 주님과 교제하는 것이 혹시 힘들거나 부담스럽지는 않은지요?
예수님은 반드시 재림하십니다. 성경은 종말에 대해서 300번 이상이나 언급하고 있습니다. ‘내가 진실로 속히 오리라 하시거늘 아멘 주 예수여 오시옵소서’(계22:20)
그런데 왜 예수님이 재림하시는지 아십니까? 이것 또한 우리와 항상 함께 하시기 위해서입니다. 처음에 예수님은 육으로 일시적으로만 한정된 곳에서만 믿음의 사람들과 함께 했습니다. 그러다가 성령으로 모든 믿는 자들과 평생 함께 하십니다. 그리고 마지막에는 친히 재림하셔서 우리들을 데리고 가서 영원토록 함께 하시는 것입니다. ‘주께서 호령과 천사장의 소리와 하나님의 나팔소리로 친히 하늘로부터 강림하시리니 그리스도 안에서 죽은 자들이 먼저 일어나고 그 후에 우리 살아남은 자들도 그들과 함께 구름 속으로 끌어 올려 공중에서 주를 영접하게 하시리니 그리하여 우리가 항상 주와 함께 있으리라’(살전4:16,17)
믿음의 사람들은 주님과 함께 하는 삶이 무엇보다 중요합니다. 어디서 무엇을 하든지 늘 주님께 여쭤보며 대화하는 삶, 기도와 말씀으로 교제하는 삶이야말로 영적으로 깨어 있는 삶이요, 살아있는 삶이요, 능력의 삶인 것입니다. 믿음의 사람은 이것이 늘 삶의 첫 번째가 되어야 합니다.    

2. ‘전도’와 ‘권능’
‘보내사 전도도 하며 귀신을 내쫓는 권능도 가지게 하려 하심이러라’(막3:14,15)
제자가 해야 할 첫 번째 일은 주님과 교제하는 일이고, 두 번째 일은 전도하는 일이고 세 번째 일은 영적인 권능을 사용하는 일입니다.
예수님이 처음 제자들을 부르실 때에 어떻게 부르셨습니까? ‘나를 따라오라 내가 너희로 사람을 낚는 어부가 되게 하리라’(막1:17)라고 하셨습니다. 전도가 얼마나 축복된 일인지 모릅니다. 고기를 낚던 어부를, 사람을 낚는 어부로 바꾸어 주는 것이기 때문입니다. 고기 한 마리 낚아 보아야 한끼 식사 밖에 안 되는데, 한 사람을 전도한다면 그 사람에게 영원한 생명을 주는 엄청난 일이 되기 때문입니다. 죽어가는 한 사람을 유명한 의사가 일시적으로(길어야 평생) 살리는 것도 대단한 일인데, 전도로 영생을 주는 것이 어찌 위대한 일이 아니겠습니까?
예수님이 70인을 또 세우셨습니다. 둘 씩 복음을 전하러 보냈습니다. 그 때나 지금이나 전도할 사람이 부족했습니다. 그래서 ‘추수할 일꾼들을 보내 주소서’라고 기도하라고 예수님이 친히 먼저 말씀하셨습니다. 우리 모두는 늘 이 기도를 쉬지 말아야 할 것입니다. 특별히 일본은 추수할 일꾼들이 많이 모자라기 때문입니다.
‘주여! 이곳에 추수할 일꾼들을 보내 주소서!’  
‘주여! 이곳에 추수할 일꾼들을 보내 주소서!’  
‘주여! 이곳에 추수할 일꾼들을 보내 주소서!’  
칠십 인이 전도하러 갔다가 기뻐하며 돌아와서 이렇게 보고했습니다.
‘주여 주의 이름이면 귀신들도 우리에게 항복하더이다.’(눅10:17) 정말 놀라운 일입니다. 세상의 어떤 무기로도 귀신을 항복시킬 수는 없습니다. 귀신은 권총도, 폭탄도 지진도 무서워하지 않습니다. 그런데 귀신이 금방 항복하는 무기가 있습니다. 귀신은 영적 존재이기 때문에 영적인 무기가 있어야 합니다. 영적인 무기는 주님이 주셔야 합니다. 그래서 예수님은 제자들에게 귀신을 내쫓는 권능을 주셨습니다. 그것이 무엇인지 아십니까? ‘예수님의 이름’입니다. ‘예수님의 보혈’입니다. 예수님께서는 우리가 마음껏 이 두 무기를 사용할 수 있는 권한을 주셨습니다. 바울이 귀신을 쫓아낸 것도 ‘예수님의 이름’이었고, 베드로가 앉은뱅이를 고친 것도 ‘예수님의 이름’이었고, 70명의 제자들이 귀신들을 항복시킨 것도 ‘예수님의 이름’이었습니다. 초대교회 때에 제사장들이 금지령을 내렸던 것도 ‘예수님의 이름’이었습니다. 우리의 모든 기도도 ‘예수님의 이름’으로 드려지는 것입니다. 이처럼 예수님의 이름은 권세가 있습니다. 세상의 어떤 권세도 예수님의 이름을 대적할 수는 없습니다. 그런데 문제는 오늘날 크리스천들이 예수님의 이름을 대수롭지 않게 여긴다는 것입니다. 어쩌면 자기의 이름을 더 능력 있다고 믿는지도 모릅니다. 그래서 예수님의 이름을 잘 사용하지 않습니다. 기도의 끝에만 겨우 남아서 명맥만 유지하는 성도들도 있습니다. 참 믿음의 사람은 예수님의 이름을 최고의 능력으로, 무기로 삼습니다. 그리고 자주 사용합니다. 그런 사람에게는 당연히 하나님의 역사하심이 나타납니다.
믿음으로 당당히 예수님의 이름을 선포하십시오. 마귀를 향하여 선포하십시오.
‘예수 그리스도 이름으로 명하노니 마귀는 내 마음에서 잠잠할지어다!’
‘예수 그리스도 이름으로 명하노니 마귀는 저 사람에게서 떠나갈지어다!’
‘예수 그리스도 이름으로 명하노니 마귀는 이 장소에서 떠나갈지어다!’
‘너희는 하나님께 복종할지어다 마귀를 대적하라 그리하면 너희를 피하리라’(약4:7)
믿음의 사람이 떠나는 것이 아닙니다. 마귀를 도망치게 해야 합니다. 예수님의 이름으로! 이것이 믿음의 사람의 권세요, 복인 것입니다.
제자들의 흥분된 보고에 예수님은 정말 귀하고 소중한 것이 무엇인지 말씀해 주셨습니다.
‘그러나 귀신들이 너희에게 항복하는 것으로 기뻐하지 말고 너희 이름이 하늘에 기록된 것으로 기뻐하라’(눅10:20)
귀신들이 항복하는 것은 이 땅 최고의 승리입니다. 제자들의 입장에서는 정말 큰 기쁨이요 감격입니다. 그러나 예수님은 그렇지 않았습니다. 진짜 기뻐해야 할 일은 따로 있었기 때문입니다. 그것은 다름 아닌 천국에 우리 이름이 기록되어 있는 것입니다. 영생을 얻은 것입니다. 천국 백성이 된 것입니다. 이 땅에서의 승리도 귀하지만, 한 영혼이 구원받는 일은 무엇과도 바꿀 수 없는 영원한 기쁨입니다. 세상의 어떤 큰 승리보다 영혼이 구원받는 것이 주님의 입장에서는 진짜 기뻐할 일인 것입니다.
바울은 우리를 복음의 제사장이라고 했습니다. 그래서 최고의 제사는 전도요, 최고의 제물은 구원 받은 영혼인 것입니다. ‘이 은혜는 곧 나로 이방인을 위하여 그리스도 예수의 일꾼이 되어 하나님의 복음의 제사장 직분을 하게 하사 이방인을 제물로 드리는 것이 성령 안에서 거룩하게 되어 받으실 만하게 하려 하심이라’(롬15:16)
전도보다 좋은 일은 없습니다. 전도보다 기쁜 일은 없습니다. 전도보다 가치 있는 일은 없습니다. 우리를 통해서 한 영혼이 영생을 얻는 일보다 보람된 일은 없습니다.

우리는 예수님의 제자들입니다. 제자는 3가지 길을 꼭 걸어가야 합니다.
‘늘 주님과 함께 교제하기, 생명의 복음 전하기, 예수님의 이름을 믿음으로 사용하기’입니다.
이  3가지가 바로 건강한 성도, 건강한 제자의 모습입니다.    

8 コメント

이 은미

2011-03-15 19:03:03

믿음의 사람은 고난이 왔을 때에 외형적인 재난에만 초점을 맞추면 안됩니다. 모든 고난에는 하나님이 하시고자 하는 말씀이 있습니다.
‘하나님, 지금 이 상황을 통해 제게 무엇을 가르치고자 하십니까?’ 무슨 일이 있을 때에는 하나님의 뜻이 무엇인지? 하나님이 무엇을 말씀하시길 원하시는지 여쭈어야 합니다.
믿음의 사람들은 주님과 함께 하는 삶이 무엇보다 중요합니다. 어디서 무엇을 하든지 늘 주님께 여쭤보며 대화하는 삶, 기도와 말씀으로 교제하는 삶이야말로 영적으로 깨어 있는 삶이요, 살아있는 삶이요, 능력의 삶인 것입니다. 믿음의 사람은 이것이 늘 삶의 첫 번째가 되어야 합니다.

이번 지진을 겪으며 이 자연재해 속에 분명 하나님의 뜻이 있을거란 생각이 들었습니다. 그래서 이번 상황을 통해 하나님께서 내게 가르치길 원하시는 것이 무엇인지 조용히 묵상하며 기도했습니다. 하나님은 이번 지진을 통해 내게 먼저 회개할 마음을 주셨습니다. 일본의 많은 영혼을 위해 깨어 기도하라는 마음을 주셨습니다. 솔직히 일본 땅에 있으면서도 일본 영혼을 위해 그들의 구원을 위해 그다지 열심히 기도하지 않은 게 생각이 나면서 정신이 번쩍 들었습니다. 앞으로는 일본을 위해 책임감을 가지고 기도하는 자가 되겠습니다. 그리고 사람의 목숨을 비롯해 세상 모든 것이 하나님 손 안에 있으며 구원받고 하나님의 자녀가 된 것이 얼마나 큰 축복인지 느끼게 하셨고 하나님의 자녀가 되어 영생을 얻는 일보다 가치있는 일은 없다는 걸 깨달았습니다. 이런 사실을 모르는 믿지 않는 사람들이 떠오르며 가슴이 너무 아팠습니다. 적어도 하나님께서 만나게 하시는 사람들에게 하나님을 알리는 일을 대충해서는 안되겠다는 생각이 들었고 사명감을 가지고 그들에게 하나님을 전해야 한다는 생각을 주셨습니다. 일본 땅에 하나님의 복음을 알리는 일에 게으름을 피우는 자가 되지 않겠습니다.

우리는 예수님의 제자들입니다. 제자는 3가지 길을 꼭 걸어가야 합니다.
‘늘 주님과 함께 교제하기, 생명의 복음 전하기, 예수님의 이름을 믿음으로 사용하기’입니다.
이 3가지가 바로 건강한 성도, 건강한 제자의 모습입니다.

요즘 매순간 하나님의 임재하심을 생각하려고 노력하고 있습니다. 기도하거나 말씀을 읽는 시간뿐만이 아니라 일상의 작은 일도 하나님께 물으며 교제를 나누려 애쓰지만 아직 생각처럼 잘 되지는 않습니다. 하지만 하나님의 뜻을 물으려 노력하다보니 전과는 다르게 기도하고 싶고 말씀을 읽고 싶어 지고 어려운 상황 속에서도 힘이 생기는 느낌이 듭니다.
하나님께서 바라시는 건강한 제자가 되기 위해 늘 하나님의 뜻을 물으며 살아가려 노력하고 나 자신의 힘을 의지하는 것이 아니라 모든 걸 행하시는 분이 하나님이심을 기억하며 전도에 힘쓰는 자가 되겠습니다.

이현정

2011-03-16 00:59:35

[믿음의 사람들은 주님과 함께 하는 삶이 무엇보다 중요합니다. 어디서 무엇을 하든지 늘 주님께 여쭤보며 대화하는 삶, 기도와 말씀으로 교제하는 삶이야말로 영적으로 깨어 있는 삶이요, 살아있는 삶이요, 능력의 삶인 것입니다. 믿음의 사람은 이것이 늘 삶의 첫 번째가 되어야 합니다.]

오늘 아침 '예수 따라가며'라는 찬송을 불렀습니다. 그 가운데, 2절, 3절 가사가 참 와닿았습니다. '해를 당하거나 우리 고생할 때 주가 곧 없이 하시겠네 주를 의지하며 순종하는 자를 주가 안위해 주시리라. 남의 짐을 지고 슬픔 위로하면 주가 상급을 주시겠네 주를 의지하며 순종하는 자를 항상 축복해 주시겠네'
어느때인던지 주님께 순종하고, 주님을 의지하는 삶을 살길 원합니다. 늘 주님께 여쭤보며 대화하는 삶을 살려고 노력하고 있습니다. 주님께서 말씀을 안하신다고 빨리 단정해버리는 유혹에 빠지기 쉽지만, 조금만 더 기다리면 주님은 꼭 말씀을 해주시는 것 같습니다.

제 주변에 주님의 음성을 들으며 그 음성대로 실천하며 사는 일본인이 계십니다. 어떻게 주님의 음성을 듣게 되었냐고 물었을 때, 20년전쯤부터라고 하시면서... 주님이 주시는 마음이 자신의 계획과는 달랐지만 순종을 했다고 합니다. 순종을 한 뒤로는 또 음성을 주시고, 그에따라 또 순종을 하고... 그렇게 지금까지 이르렀다고 합니다. 제가 지난해 이사를 해야하지만, 이사비용이 부족했을 때가 있었습니다. 그즈음, 이분은 제가 이사를 한다는 것만 알고 있었습니다. 제가 이사비용이 부족한지 아닌지 저의 재정에 대해선 전혀 모르시는 분이셨습니다. 그런데 이분이 기도하다가 하나님께서 저의 집 이사비용을 보태주라는 음성을 들었다고 합니다. 그래서 얼마입니까라고 금액을 물었더니 이분의 생각보다 훨씬 큰 금액을 주라고 했다는 겁니다. 그래서 재차 확인했다고 합니다. 정말이시냐고...^^ 그리고 순종했다고 합니다. 일본에 와서 전혀 예상치 못한 일들로 하나님의 살아계심을 체험한 일들이 한두번이 아닙니다. 기도에 응답하시는 하나님의 사랑을 생생히 경험할 수 있었습니다. 일본에 와서 가장 축복은, 이렇게 좋은 교회와 교역자님, 성도님들을 만날 수 있도록 해주신 것이고, 신실한 믿음의 일본인 크리스천을 만나게 해주신 것입니다. 이분들의 삶처럼 저도 주님과 함께 하는 삶으로 많은 이들에게 주님의 사랑을 흘려보내는 자가 되겠습니다. 주님과 함께, 주님의 말씀을 전하며, 예수이름의 능력을 선포하는 자가 되도록 노력하겠습니다.

조태호

2011-03-17 06:18:38

[하나님은 말로써 대화가 안 될 때에는 고난으로 흔들기도 합니다. 배 부를 때보다 배 고플 때가 하나님의 음성은 더 선명하게 들립니다. 배가 부르면 영의 귀가 잘 들리지 않는 경우가 많습니다. 믿음의 사람은 고난이 왔을 때에 외형적인 재난에만 초점을 맞추면 안됩니다. 모든 고난에는 하나님이 하시고자 하는 말씀이 있습니다. 이 말씀을 놓치면 고난은 고통으로 끝나버릴 수 있지만, 하나님의 음성을 듣게 되면 고난은 반드시 축복으로 환산됩니다. ‘고난 당한 것이 내게 유익이라 이로 말미암아 내가 주의 율례들을 배우게 되었나이다.’(시119:71) 고난은 하나님의 음성의 확성기입니다. 고난의 때에는 이상하리만큼 주의 음성을 잘 들을 수 있습니다. 이것이 고난의 때에 받을 수 있는 최고의 복입니다.]

성령님을 보내시어 우리와 함께 하시길 원하시는 하나님은 우리의 대화의 길이 막힐때 때론 고난을 함께 주신다는 것을 묵상하며, 많은 사람들이 고난을 겪지만, 그 고난이 어디서 오는가에 대해서는 깊이 생각하지 않는 것에 대해 반성해 봅니다. 특히 일본에서 지진으로 인해 많은 피해가 발생했고, 이에 이어 원전에 대한 어려움까지 뒤따르고 있는 지금, 이러한 고난을 통해 말씀하시는 하나님의 뜻이 무엇인지 파악하고, 이 말씀을 통해 고난이 오히려 축복으로 환산되는 과정이 중요하다는 생각을 해 봅니다.
고난의 때에는 오히려 주님의 말씀과 음성을 더 잘 들을 수 있고, 이것이 바로 고난의 때에 받을 수 있는 최고의 복임을 알고, 현재의 고난을 통하여 주님과 대화하며, 이로인해 나의 삶 전체가 계속해서 깨어있고, 살아있으며 생명력 넘치길 바랍니다.
하나님과의 교제가 나의 삶의 첫번째가 되길 소망합니다.

김은혜

2011-03-17 08:06:33

[인생은 누구와 함께 하는가가 중요합니다. 세상에서 훌륭한 사람과 함께 하는 것도 큰 복이지만, 예수님과 함께 하는 것은 인생 최고의 복입니다. 많은 사람들은 이 복의 귀함을 잘 모르기 때문에 ‘함께 함’의 복을 잘 누리지 못합니다. 심지어 어떤 사람들은 귀찮아 하고 힘들어 하기도 합니다. 예수 믿는 사람의 가장 큰 복은 주님이 함께 하는 복입니다. ‘네 평생에 너를 능히 대적할 자가 없으리니 내가 모세와 함께 있었던 것 같이 너와 함께 있을 것임이니라 내가 너를 떠나지 아니하며 버리지 아니하리니’(수1:5) ]

이번 주는 참 혼란이 많은 주였습니다.
이제 수요일이지만 하루하루가 일주일같이 느껴졌습니다.
너무나 불안했습니다.
아침에 눈을 떴는데 문득 외로웠습니다. 혼자가 된 기분이였습니다.
아무도 날 돌봐주지 않아.......라고 말했는데 그 때서야 주님이 생각났습니다.
주님께선 내가 힘들 때나 어려울 때 다른 그 누구보다더 제 옆에서 저를 지켜보고 계십니다.
이번의 고난을 통해서 정말 앞으로 어떻게 될지는 한 시 앞도 내다볼수 없다는 것을 알게되었습니다.
앞으로의 제 길도.. 주님께 모두 맡기고 걸어 가고 싶습니다..

신동범

2011-03-19 10:39:05

'하나님은 말로써 대화가 안 될 때에는 고난으로 흔들기도 합니다. '

읽는 동안 이 말씀이 마음에 와 닿습니다. 고난으로 흔들기도 하시는 하나님, 하나님의 방법으로 자주 등장하는 것 같습니다. 마치 우리의 아버지 같다는 생각이 많이 듭니다. 타이르기도 때론 혼내기도 매도 드시는 나의 아버지와 같은 분이라고 생각합니다.

그런데 정말로 깊은 고난으로 빠져 보고 싶다는 생각도 듭니다. 그렇게 된다면 하나님 앞에서 완전히 버리지 못했던 것들을 깊은 내면 속에 나도 알지 못했던 것들을 보게 될 것이고 아버지께서 무얼 내게 말씀하시는지 알 것 같다는 생각이 들었습니다. 무얼 더 내려 놓아야 하고 어떻게 올바른 성화의 길을 가야 하는지 궁금합니다. 제가 내려놓고 싶지 않았던 것들이 보이고 하나님과 대화가 성립이 되는 것이라면 고난을 감수 하고 싶습니다. 나와 하나님과의 관계 속에서의 고난이라면 그 고난을 보여 주세요. 알고 싶습니다. 저의 신앙이 똑바르지 않은데 뜨거운 마음이 없는데 어떻게 전도가 되고 하나님과의 임재가 성립이 될지가 답답합니다. 하나님과의 관계에 걸림돌이, 장애요소가 있다면 하나님께서 가르쳐 주세요.




전혜진

2011-03-19 19:48:07

주님은 오늘도 우리와 대화하기 원합니다.
하나님은 말로써 대화가 안 될 때에는 고난으로 흔들기도 합니다. 배 부를 때보다 배 고플 때가 하나님의 음성은 더 선명하게 들립니다. 배가 부르면 영의 귀가 잘 들리지 않는 경우가 많습니다. 믿음의 사람은 고난이 왔을 때에 외형적인 재난에만 초점을 맞추면 안됩니다. 모든 고난에는 하나님이 하시고자 하는 말씀이 있습니다. 이 말씀을 놓치면 고난은 고통으로 끝나버릴 수 있지만, 하나님의 음성을 듣게 되면 고난은 반드시 축복으로 환산됩니다. 고난은 하나님의 음성의 확성기입니다. 고난의 때에는 이상하리만큼 주의 음성을 잘 들을 수 있습니다. 이것이 고난의 때에 받을 수 있는 최고의 복입니다.

하나님께서 저에게 매일 매일 대화 요청을 해오시는데 저는 매일 바쁘다는 핑계로 하나님을 혼자 기다리시게 했던것같습니다. 정말 힘들고 배고플때가 되어서야 "맞다.. 하나님이 기다리고 계시지?"라며
하나님께 다가갑니다. 그러나 그때 하나님을 찾는것도 왜 저를 힘들게하시고 배고프게 하시냐며 따지기 위해서 였지 하나님을 너무 기다리게 했구나 라는 반성과 회개는 별로 없었던 제 삶을 회개 하게 하시는 말씀인것 같습니다. 지금도 하나님은 제게 대화를 요청하고 계신것 같습니다. 더이상 하나님을 기다리게 하는 어리석은 딸이 아니라 하나님께 나아가 하나님이 내게 말씀하고 싶으신것이 무엇인지?
제가 어떻게 하길 원하시는지를 묻는 하나님과 함께 하는 딸이 되어야 겠습니다.

‘고난 당한 것이 내게 유익이라 이로 말미암아 내가 주의 율례들을 배우게 되었나이다.’(시119:71)

이용관

2011-03-20 05:11:52

하나님은 말로써 대화가 안 될 때에는 고난으로 흔들기도 합니다. 배 부를 때보다 배 고플 때가 하나님의 음성은 더 선명하게 들립니다. 배가 부르면 영의 귀가 잘 들리지 않는 경우가 많습니다. 믿음의 사람은 고난이 왔을 때에 외형적인 재난에만 초점을 맞추면 안됩니다. 모든 고난에는 하나님이 하시고자 하는 말씀이 있습니다. 이 말씀을 놓치면 고난은 고통으로 끝나버릴 수 있지만, 하나님의 음성을 듣게 되면 고난은 반드시 축복으로 환산됩니다. ‘고난 당한 것이 내게 유익이라 이로 말미암아 내가 주의 율례들을 배우게 되었나이다.’(시119:71) 고난은 하나님의 음성의 확성기입니다. 고난의 때에는 이상하리만큼 주의 음성을 잘 들을 수 있습니다. 이것이 고난의 때에 받을 수 있는 최고의 복입니다.

고난을 받는 것은 하나님이 그 사람과 더욱 가까이 하고 싶어서 그런 고난 주는 것이라면 고난이 꼭 나쁜 것만은 아니라고 생각합니다. 하지만 그 고난을 이겨냈을때에는 많은 기쁨을 누리지만 이겨내지 못했을 때에는 좌절 하게나 하나님을 떠나게도 됩니다. 그래서 저는 이 고통이 오는 것을 싫어 합니다. 될 수 있으면 피하고 싶습니다. 이겨낼 자신이 없습니다. 하지만 하나님이 계획하신 뜻을 검손히 받아 들일 수 있는 순종을 배우고 있습니다. 하나님 앞에서 조용히 기도합니다. 하나님 될 수 있으면 고난을 주시지 마세요 하지만 주신다면 이겨낼 수 있는 정도의 고난과 시련만 주세요. 하나님의 길을 쫓아가기 너무 힘들지 않게 도와주세요. 하지만 제가 먼저 고난이 오지 않게 하나님과의 대화가 끊이지 않게 노력하겠습니다. 어떠한 상황에도 믿음을 지켜 나갈 수 있도록 도와주세요. 감사드리오며 예수님의 이름으로 기도 드립니다. 아멘.

문미경

2011-04-03 10:29:04

‘자기와 함께 있게 하시고’
인생은 누구와 함께 하는가가 중요합니다. 세상에서 훌륭한 사람과 함께 하는 것도 큰 복이지만, 예수님과 함께 하는 것은 인생 최고의 복입니다. 많은 사람들은 이 복의 귀함을 잘 모르기 때문에 ‘함께 함’의 복을 잘 누리지 못합니다. 심지어 어떤 사람들은 귀찮아 하고 힘들어 하기도 합니다. 예수 믿는 사람의 가장 큰 복은 주님이 함께 하는 복입니다. ‘네 평생에 너를 능히 대적할 자가 없으리니 내가 모세와 함께 있었던 것 같이 너와 함께 있을 것임이니라 내가 너를 떠나지 아니하며 버리지 아니하리니’(수1:5) 그렇습니다. 모세와 함께 했던 하나님, 여호수아와 함께 했던 하나님이 지금 당신과 함께 하십니다.

어느 선교단체에서 오랜 경험 끝에 배운 백만불짜리 질문을 소개하고자 합니다. ‘하나님, 지금 이 상황을 통해 제게 무엇을 가르치고자 하십니까?’입니다. 무슨 일이 있을 때에는 하나님의 뜻이 무엇인지? 하나님이 무엇을 말씀하시길 원하시는지 여쭈어야 합니다. 습관 중에 정말 귀한 습관은 하나님께 여쭙는 습관입니다. 하나님께는 자주 여쭐수록 좋습니다. 하나님은 우리와 대화하기를 원하기 때문입니다.


제자훈련을 받으면서 저는 진정한 주님의 제자가 되길 소망해왔던것일까 다시한번 생각하게 되었습니다. 이 말씀을 통하여서 진정으로 하나님꼐서 원하시는 삶을 내가 살고 있는지 다시한번 생각하게 됩니다.
하나님께서는 나의 어떤모습을 원하시는 걸까
요즘 한국교회에 있으며 말씀을 들으때면 항상 하나님과 항상 대화하는 것과
하나님께서 함께하심을 통하여 내가 살아가고 기쁨을 얻을수있다는 내용을 듣게 됩니다.
그리고 이번 말씀도 물론 그런이야기를 통해, 하나님께서 나에게 나와함께하고 잇다는것을 알려주고 싶어하시는것은 아닐까 새벽기도도 가끔가지만 , 그동안 내가 너무 기도를 하지않앗던것은 아닐까 반성하게 됩니다.

하나님께서는 이번 일을 통하여 나에게 어떤것을 가리치고자 하시는걸까..
나의 뜻이아닌 온전히 하나님의 뜻으로 모든것을 판단하고 맡기며 나아가고싶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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