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중앙영광교회

사랑과 징계

이용규목사, 2010-04-19 17:36:0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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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무리 좋은 것이라도 그것이 부분적인 것에만 치우치면 많은 문제를 야기하게 됩니다.
전도가 중요하지만, 가정도 학업도 일도 팽개치고 전도만 하게 하는 것은 심각한 일입니다. 이단 중에서 전도를 열심히 안 하는 이단은 없습니다. 전도가 문제가 아니라 치우친 것이 문제입니다. 주님의 재림이 정말 중요합니다만, 재림만 강조할 때에 어떤 심각한 사회 문제가 일어났는지 우리는 이미 과거에 경험한 바 있습니다. 신유가 중요하지만 신유만 강조하면 믿음의 기형현상이 일어나서 결국은 어려움을 당하게 됩니다. 건강의 비밀은 골고루 균형을 잡아가는 것입니다. 밸런스를 유지해 가는 것입니다.
전체적인 밸런스를 잃어버리면 결국은 침몰하거나 추락하게 됩니다. 몸의 한 부분만 급성장해도 그것은 결국 암이 되어 몸 전체의 건강을 헤치게 되고, 음식을 자신이 좋아하는 것만 먹으면 몸은 건강을 잃어 버리게 됩니다. 비행기도 아무리 한쪽 날개가 튼튼해도 다른 쪽 날개가 온전하지 못하면 날지 못하는 법입니다. 사랑에도 이 다른 쪽 날개가 있습니다. 사랑에도 반드시 균형이 필요합니다. 그렇지 않으면 아무리 좋은 사랑도 결국은 상대방을 추락하게 만들어 버립니다. 사랑의 균형은 무엇일까요?

1.        사랑의 두 날개
사랑에도 반드시 두 날개가 있습니다. 그것은 자상한 사랑과 엄한 사랑입니다. 간단히 말해서 사랑과 징계입니다. 징계 없는 사랑은 그 사람을 추락하게 만들고, 사랑 없는 징계는 그 사람을 침몰하게 만듭니다. 이 두 날개가 잘 발달되지 않으면 날지 못하게 됩니다. 요즘 많은 사람들은 한 쪽 날개에만 집중하다가 결국은 자식들을 망치기도 합니다. 사랑에 대한 오해를 빨리 바로 잡아야 합니다. 무조건 잘 해 주는 것, 해 달라는 것 다 해 주는 것, 해 주고 싶은 것 다 해 주는 것이 과연 사랑일까요? 절대로 그렇지 않습니다. 이것은 오히려 상대방(아이)에게 맹독이 될 수 있습니다. 성경에서 말하는 사랑은 ‘잘 해 주는 것’이 아니라, ‘잘 되게 해 주는 것’입니다. 사랑은 본인의 요구를 잘 들어 주는 것이 아니라, 그 사람이 바르게 잘 자라게 해 주는 것입니다.
하나님의 사랑은 완벽한 사랑입니다. 우리가 사랑을 바로 실천하기 위해서는 하나님의 사랑 실천 법을 따르면 됩니다. 하나님은 한없는 긍휼을 가지고 계셨지만, 또한 한없는 엄격함도 가지고 계셨습니다. 하나님은 늘 사랑과 공의를 함께 가지고 계셨습니다. 여기서 공의는 징계입니다. 징계는 사랑의 또 다른 표현 방식입니다. 그래서 하나님은 말씀했습니다. ‘내 아들아 여호와의 징계를 경히 여기지 말라 그 꾸지람을 싫어하지 말라 대저 여호와께서 그 사랑하시는 자를 징계하시기를 마치 아비가 그 기뻐하는 아들을 징계함 같이 하시느니라’(잠3:11-12)  지혜로운 아비는 자식이 예쁘기 때문에 징계하는 것이고, 하나님은 우리를 사랑하기 때문에 징계하시는 것입니다. 징계는 사랑에서 나오기 때문에  귀한 것입니다. 그래서 징계는 감사로 받아야 합니다. 경히 여기거나 싫어하거나 낙심하지 말아야 하는 것입니다. 징계 속에는 하나님의 사랑의 참 보배가 숨겨져 있기 때문입니다.  
자식을 진짜 사랑하십니까? 그러면 꼭 징계하십시오. 징계의 채찍을 드십시오. 그러면 당신의 자식이 잘 될 것입니다. ‘채찍과 꾸지람이 지혜를 주거늘 임의로 행하게 버려둔 자식은 어미를 욕되게 하느니라’(잠29:15) 자식을 미워하십니까? 그러면 징계하지 마세요. 자기 맘대로 하게 내 버려 두세요. 그러면 자식은 당신을 더욱 욕되게 해 줄 것입니다. 그런데 더 심각한 문제가 있습니다. 부모가 어리석어서 자식에게 징계를 하지 않는 경우가 많습니다. 징계하지 않는 것이 진정한 사랑이라고 착각하고 있는 것입니다.
정채봉 시인의 ‘콩씨네 자녀 교육’이 우리에게 일침을 가해 주고 있습니다.
‘광야로 내 보낸 자식은 콩나무가 되었고  
온실로 들여보낸 자식은 콩나물이 되었고’
똑 같은 콩이지만 어떻게 키웠는가에 따라 나무가 될 수도 있고, 나물이 될 수도 있습니다. 콩나물은 주인이 늘 필요한 물을 공급해 주고 따뜻한 곳에 있기 때문에 아무 것도 할 필요가 없습니다. 그래서 콩나물에는 뿌리가 없습니다. 뿌리는 곧 자생력입니다. 콩나물로 자란 자식은 자생력이 전혀 없습니다. 그래서 꽃도 피우지 못하고 열매도 맺지 못합니다. 생산성 제로입니다. 겨우 주는 것만 받아 먹다가 식탁에서 한끼 식사로 일생을 마감하고 맙니다. 그러나 콩나무는 다릅니다. 스스로 세파를 맞아가면서 물을 찾아야 하기 때문에 자연히 뿌리가 잘 발달하게 됩니다. 엄청난 자생 능력을 가지게 됩니다. 훌륭한 부모는 자식들에게 뿌리를 잘 내리게 하는 부모입니다. 그러기 위해서는 자식을 광야로 내 보내야 합니다. 그것이 바로 징계입니다. 징계는 뿌리 내리기의 비법입니다.
엄하게 키운 자식은 효자가 되고, 오냐 오냐 키운 자식은 불효자가 되기 쉽습니다.
귀하게 키운 자식은 천하게 되고, 천하게 키운 자식은 귀하게 됩니다.
너무 방관해도 안되지만, 오늘날 자식교육에는 과잉 보호가 심각한 문제입니다. 그런데 그 심각성을 모르는 부모의 무지가 더 심각합니다. ‘아이를 훈계(징계)하지 아니하려고 하지 말라 채찍으로 그를 때릴지라도 그가 죽지 아니하리라’(잠23:13) 자식은 부모의 손에 있습니다. 부모가 자식을 망칠 수도 있고, 잘 되게 할 수도 있습니다.
‘아이의 마음에는 미련한 것이 얽혔으나 징계하는 채찍이 이를 멀리 쫓아내리라’(잠22:15) 지혜로운 부모는 아이 속에 있는 미련한 것을 빼내 주는 부모입니다.

2.        징계를 보는 눈을 바꾸는 방법
믿음의 사람들에게도 고난과 환란이 옵니다. 중요한 것은 이것을 보는 눈을 바꾸는 것입니다. 예수님께도 엄청난 십자가의 징계가 왔습니다. 그것은 멸망을 위한 징계가 아니라, 인류 구원을 위한 하나님의 최고 사랑의 징계였습니다. 믿음의 사람의 징계는 철저히 하나님의 사랑에서 오는 징계요, 그 후에는 하나님의 놀라운 영광이 나타납니다. 어리석은 사람은 징계를 가볍게 보고, 싫어하고 낙심합니다만, 지혜로운 사람은 징계를 당할 때에, 하나님이 자신을 사생자가 아닌 친아들로 대우해 주심을 깨닫고 감사하며 잘 인내합니다.
그러면 어떻게 하면 징계를 감사로 바꿀 수가 있을까요?
1)        예수님을 바라보라
고난의 때에는 우리의 마음의 눈이 무엇을 바라보는가가 중요합니다. 무엇을 보는가에 따라 생각이 달라집니다. 징계의 때에 우리가 제일 먼저 집중하며 보아야 할 것은 십자가의 예수님입니다. ‘믿음의 주요 또 온전하게 하시는 이인 예수를 바라보자(히12:2) 예수님은 고난 승리의 모델이십니다. 믿음 안에서의 고난은, 비록 그것이 십자가의 죽음 같은 큰 징계일지라도 절대로 잘못되지 않음을 주님은 친히 증명해 주고 계십니다. 주님이 고난 당하신 것은 온 인류에 큰 유익이 되었습니다. 그러면 예수님은 어떻게 이 엄청난 징계를 이겨 내셨을까요? 예수님은 징계의 좋은 결과를 미리 믿음의 눈으로 바라보았기 때문입니다. ‘그는 그 앞에 있는 기쁨을 위하여 십자가를 참으사’(히12:2) 징계의 뜻은 ‘바르게 함’, ‘훈련’입니다. 그렇기 때문에 징계 후에는 삐뚤어 졌던 것이 바로 펴지고, 서툴던 것이 능숙하게 됩니다. 고난의 때에는 그 너머에 있는 주님이 주실 축복을 미리 바라보십시오. 슬픔 대신에 입가에 미소가 머금게 될 것입니다.
2)        말씀을 바라보라
하나님의 말씀은 거짓이 없습니다. 천지가 없어질지라도 말씀은 그대로 이루어진다고 했습니다. 힘들 때에는 하나님의 말씀을 믿음으로 꼭 붙들어야 합니다. 그래서 성경은 다시 한번 상기시킵니다. ‘아들들에게 권하는 것 같이 너희에게 권면하신 말씀도 잊었도다 일렀으되 내 아들아 주의 징계하심을 경히 여기지 말며 그에게 꾸지람을 받을 때에 낙심하지 말라 주께서 그 사랑하시는 자를 징계하시고 그가 받아들이시는 아들마다 채찍질하심이라 하였으니’(히12:5,6) 고난의 때에는 하나님이 이미 약속하신 말씀을 잊지 말아야 합니다. 그 말씀이 우리에게 큰 힘이 됩니다. 말씀을 묵상하고 암송하는 것은 세상이 줄 수 없는 힘을 줍니다. ‘하나님이 아들과 같이 너희를 대우하시나니 어찌 아버지가 징계하지 않는 아들이 있으리요’(히12:7) 징계는 하나님의 특별대우입니다. 아들과 동격대우입니다. 그렇기 때문에 징계는 하나님의 사랑의 최고 표현입니다. 그래서 우리는 징계가 왔을 때에 하나님께 진심으로 감사해야 하는 것입니다. ‘내가 하나님의 참 아들이구나!’
3)        아버지를 바라보라
아버지를 보면 하나님이 보입니다. 아버지는 하나님의 그림자입니다. 아버지가 징계하지 않는 자식은 없다고 했습니다. 어릴 때에 부모님께 꾸중 듣지 않고 자란 자식은 없을 것입니다. 자식을 사랑하기 때문에 그 사랑의 표현으로 꾸중도하고 매도 들었던 것입니다. ‘그들은 잠시 자기의 뜻대로 우리를 징계하였거니와 오직 하나님은 우리의 유익을 위하여 그의 거룩하심에 참여하게 하시느니라’(히12:10) 하나님은 육의 부모보다 우리를 더 사랑하시고, 우리가 잘 되기를 바랍니다. 그렇기 때문에 하나님은 우리에게 사랑의 징계를 하지 않을 수 없는 것입니다. 하나님은 우리를 이름만 아들로 삼지 않고 참 아들로 키우기를 원합니다.  
4)        열매를 바라보라
성경에는 징계의 특징이 잘 표현되어 있습니다. ‘무릇 징계가 당시에는 즐거워 보이지 않고 슬퍼 보이나 후에 그로 말미암아 연단 받은 자들은 의와 평강의 열매를 맺느니라’(히12:11) 만약 징계의 모습이 즐거워 보인다면 누가 징계를 싫어하겠습니까? 모두가 사모할 것입니다. 서로 징계 받기 위해서 경쟁이 치열할 것입니다. 비싼 돈을 주고 징계를 사려고 할 것입니다. 그러나 징계의 당시 모습은 슬퍼 보이고, 힘들어 보이고, 낙심과 절망까지 안겨 줍니다. 할 수만 있으면 피하고 싶습니다. 그래서 많은 사람들은 징계를 싫어합니다. 그런데 징계의 나중 모습은 전혀 다릅니다. 의와 평강의 최고의 열매를 맺어 줍니다. 이 열매를 바라보는 자는 징계를 귀하게 받아들일 수 있습니다. 징계가 옵니까? 앞 모습을 보지 말고 뒷모습을 바라 보세요. 그 귀함을 금방 깨닫게 될 것입니다.
씨를 뿌리는 것은 힘이 듭니다. 그러나 열매를 거둘 때에는 정말 행복합니다. ‘울며 씨를 뿌리러 나가는 자는 반드시 기쁨으로 그 곡식 단을 가지고 돌아오리로다’(시126:6)

당신 앞에 징계가 있습니까?
주님의 사랑을 믿으십시오. 그리고 주님의 말씀에 귀를 기울이십시오,
주님은 분명히 말씀하십니다.
‘그러므로 피곤한 손과 연약한 무릎을 일으켜 세우고
…저는 다리로 하여금 어그러지지 않고 고침을 받게 하라’(히12:12-13)

16 コメント

방재철

2010-04-19 19:22:24

하나님은 늘 사랑과 공의를 함께 가지고 계셨습니다.
여기서 공의는 징계입니다. 징계는 사랑의 또 다른 표현 방식입니다.

아이들을 혼내는 경우가 있습니다. 야단치고 그럴 때 느끼는 것은 나도 똑같았겠구나..라는 것입니다.
내가 맞다고 하는 길이 부모님 보시기에 아니라서 내 고집을 꺾으셨을 때도 있고.
그래서 반발심으로 삐딱선 타고 싶었던 맘도 있었지만..

지금 생각해보면 오히려 좋은 예방주사가 되었던 것 같습니다. 지금도 예방주사는 전혀 안맞는 것도 아니지만.

하나님에게도 몇대 맞았다는 경험 누구나 있다고 봅니다.
한번도 안맞았다면 오히려 어라??? 나 하나님 자녀?? 이런 생각들어야하는 것이 성경의 말씀이고

사랑의 하나님이자 공의의 하나님이 그래도 많이 봐주셨기 때문에 몇대맞고 정신차린 것이지
그렇지 않았다면 아마도 맞는 것으로 끝나지는 않았을 것입니다.

공의의 하나님에게 징계를 받는 것이 지금 나에게 힘들고 속상하지만

예수님께서 십자가너머의 영광을 미리 보셨던 것처럼

하나님의 사랑의 또다른 모습인 징계너머의 따스함을 믿습니다.

문인우

2010-04-19 21:05:55

당신 앞에 징계가 있습니까?
주님의 사랑을 믿으십시오. 그리고 주님의 말씀에 귀를 기울이십시오,
주님은 분명히 말씀하십니다.
‘그러므로 피곤한 손과 연약한 무릎을 일으켜 세우고
…저는 다리로 하여금 어그러지지 않고 고침을 받게 하라’(히12:12-13)

하나님의 징계 앞에 주님의 사랑을 믿고 주님의 말씀에 귀 기울이기 보다
왜 항상 나에게 고난만 주시냐며 하나님께 불평했던 일이 더 많았었다.
잘 해주는 것이 사랑이라고만 생각하며 그럼 하나님께서는 날 덜 사랑하시는 건가?
하는 생각을 하기도 했다.
하지만 잘 해주는 것이 사랑이 아니라 잘 되게 하는 것이 사랑이라는
이번 주 설교 말씀을 통해 하나님께서 나에게 징계를 주시는 것은
나를 괴롭히시려고 그러는 것이 아니라 날 사랑하셔서
잘 되게 하게 하시려는 것임을 깨닫게 되었다.
나를 위해 징계를 주신 하나님의 사랑에 감사하며,
징계를 통해 내가 더욱 성장하길 소망한다.

박유진

2010-04-20 00:36:24

"무조건 잘 해 주는 것, 해 달라는 것 다 해 주는 것, 해 주고 싶은 것 다 해 주는 것이 과연 사랑일까요? 절대로 그렇지 않습니다. 이것은 오히려 상대방(아이)에게 맹독이 될 수 있습니다. 성경에서 말하는 사랑은 ‘잘 해 주는 것’이 아니라, ‘잘 되게 해 주는 것’입니다. 사랑은 본인의 요구를 잘 들어 주는 것이 아니라, 그 사람이 바르게 잘 자라게 해 주는 것입니다."

오늘의 말씀은 제게 정말로 너무나 필요한 말씀이었습니다.
일본에 와서 가장 힘들었던 게, 아기들이 적응이 안되어서 너무 많이 울고 떼쓰고 보채고 하는 것이었습니다. 저는 거의 아이들이 해달라는대로 들어주는 편이어서, 아이에게 엄하게 대하지 못했던 것 같습니다.
그런데, 오늘 말씀을 듣고 그동안 아이에게 잘못된 교육을 했다는 것을 알게 되었습니다. 엄한 것이 나쁜 것이 아니고, 아이에게 오히려 득이 되는 일인데, 그걸 모르고 아이가 원하는대로 해주는 것이 아이를 위하는 것이라고 생각하고 있었던 것 같습니다. 이 말씀을 받고, 우선 아이들의 과자, 사탕을 끊기로 했습니다. 울고 보채면서 가장 먼저 과자와 사탕을 달라고 졸라대기 때문입니다. 오늘 아침에 눈뜨자마자, 역시나 선민이가 사탕을 달라고 울었는데, '민이야, 어제 목사님이 사탕 먹으면 안된다고 했지? 안돼요~'했더니, 신기하게 많이 보채지 않았습니다. 주님의 말씀대로 지혜롭게 아이를 양육하는 가정이 되길 소망합니다.

‘광야로 내 보낸 자식은 콩나무가 되었고
온실로 들여보낸 자식은 콩나물이 되었고’

지금와서 보니, 저는 아이를 너무 온실속에 넣고 키우고 있는 것 같습니다. 광야에 나갈까봐 일부러 더 붙들고 보호하고, 비바람이라도 맞을까봐 폭 싸고 키우지는 않는지 반성했습니다. 자식을 광야에 내보내려면, 엄마가 먼저 강해져야 할 것 같습니다. 광야에 내보낸 자식이 염려되어서 마음 졸이기 보다는, 하나님께서 이 자녀를 멋지게 성장시켜주시기 위해서 꼭 필요한 환경이 광야라는 믿음으로, 주님께 자식을 맡기고 내려놓는 연습이 많이 필요한 것 같습니다. ('내려놓음'이 왜 이렇게 어려운지!)

때에 따라 꼭 필요한 말씀으로 채워주셔서 감사합니다...

이현정

2010-04-20 05:25:09

‘하나님이 아들과 같이 너희를 대우하시나니 어찌 아버지가 징계하지 않는 아들이 있으리요’(히12:7) 징계는 하나님의 특별대우입니다. 아들과 동격대우입니다. 그렇기 때문에 징계는 하나님의 사랑의 최고 표현입니다. 그래서 우리는 징계가 왔을 때에 하나님께 진심으로 감사해야 하는 것입니다.

하나님의 친딸임의 증거는 징계라 했습니다. 징계는 삐뚤어진 것을 바로 펴주는 것이며, 훈련과 단련이라 했습니다. 나의 삐뚤어진 모습을 바로 잡아주기 위한 주님의 사랑이 징계일진대, 그것을 피하고자 한다면 바로잡을 수 있는 기회를 잃고 말 것입니다. 하나님께서는 징계를 허락하시지만, 그 고난속에 저를 혼자 두시지 않고 함께 넘어주시는 분이심을 믿습니다. 고난의 여러 파도들을 제 손을 잡고 함께 넘어주시는 분이심을 믿습니다. 그렇게 여러 파도들을 넘은 후에는 어떤 큰 파도가 닥칠지라도 두려움이 없을 것입니다. 그 거친 파도 역시 주님이 제 손을 잡아 주실 것이고, 그것을 통과한 후에는 하나님께서 평안을 허락해주실 것이기 때문입니다.

믿음의 주요 또 온전하게 하시는 이인 예수를 바라보자(히12:2)

고난승리의 모델이신 예수님을 바라보길 소망합니다. 어떤 징계를 받더라도 '아, 친딸 맞구나. 감사해요. 하나님' 하면서 걸어가는 단단한 믿음의 딸이 되겠습니다. 말씀을 바라보고, 기쁨으로 거둘 열매를 바라보는 눈을 갖겠습니다.

전혜진

2010-04-20 21:01:49

당신 앞에 징계가 있습니까?
주님의 사랑을 믿으십시오. 그리고 주님의 말씀에 귀를 기울이십시오,
주님은 분명히 말씀하십니다.
‘그러므로 피곤한 손과 연약한 무릎을 일으켜 세우고
…저는 다리로 하여금 어그러지지 않고 고침을 받게 하라’(히12:12-13)

삶속에서 작고 작은 일들이 생길 때마다 늘 불평과 불만을 가지고
믿음없는 자의 모습으로 하나님의 일하심을 신뢰하지 못하고 사랑을 느끼지 못했던
내 모습을 돌아보며 회개가 되었습니다.
사랑을 하기때문에 더 잘 되기를 바라고 그렇기 때문에 나의 모습 속에서
부족한 부분을 만지시고 더 잘되도록 징계하시는 하나님의 손길을
내욕심과 내 의지대로 하려고 했던것 같습니다.
내 삶속의 모든 부분들 속에서 하나님이 일하시고 하나님께서 만지시길
기대하고 소망하는 마음으로 말씀에 귀기울이며 깨어있어야 겠습니다.



문원희

2010-04-21 02:24:24

징계가 옵니까? 앞 모습을 보지 말고 뒷모습을 바라 보세요.
그 귀함을 금방 깨닫게 될 것입니다.
씨를 뿌리는 것은 힘이 듭니다. 그러나 열매를 거둘 때에는 정말 행복합니다.
‘울며 씨를 뿌리러 나가는 자는 반드시 기쁨으로 그 곡식 단을 가지고 돌아오리로다’(시126:6)

나는 나쁜 버릇을 가지고 있었다. 무엇이든 가지고 싶은 것은 어떻게든 가져야만 하는 것,
우리 부모님이 나를 잘못 가르치신건 아닐텐데, 우리 엄마는 사달라는것 다 사주시지도
않았는데, 커가면서 나쁜 버릇을 키웠는지, 필요 있든 없든 그때 그 순간 가지고 싶은것은
당장 사지 않으면 큰일이라도 나는 줄 알았다. 그런 상태로 일본에 왔고, 일본에서도 꽤나
풍족하게 살았다. 워킹 할때에는 알바를 많이 해서 늘 수입이 많았고, 그러다보니 길가다가
예쁜 신발이 있으면 샀고, 예쁜 원피스나 화장품이 있으면 바로바로 샀다. 그때는 또 엔화도
쌌기 때문에 내가 다쳐서 수입이 없을때에는 한국에서 돈을 받아 생활을 했다.
그런데 내가 대학교에 입학하고 나서 상황이 180도로 변했다. 정말 180도로 변했다는
말이 맞을 정도로 모든 상황이 반대가 되었다. 2학기부터 엔화가 점점 오르기 시작해서는
학비 받는 것도 힘들 정도로 돈이 올랐고, 그때부터 알바도 하나로 줄이면서 수입이 반으로
뚝 떨어졌다. 정말 야칭을 낼수 없을 정도로 수입이 없었다. 나에게 하나님의 징계가 떨어
진것이었다. 그렇게 돈 귀한줄 모르고 막 쓰더니 나에게 모든 돈줄을 끊으셨다.
처음에는 모든 상황이 너무나 힘들어 하루하루가 짜증과 불만과 화냄의 연속 이었다.
알바짤린것도 화가 났고, 수입이 없는 것도, 한국에서 돈을 받아 쓸수 없는 것도, 돈을
빌려서 인우도 돈이 없는 것도, 남들 다 받고있는 장학금을 받지 못하고 있는 것도, 왜
하나님은 이런 시련을 나에게 주셨는지 왜 그러시는지 하나님을 원망했다.

하지만 그런 상황속에서 나의 나쁜 버릇들이 하나 둘씩 없어졌다. 물건을 살때에는 한
백번 정도 고민해서 사게 되었고, 쓸데없는 지출이 줄어 들었고, 지출을 계획해서 쓰게
되었고, 사치가 줄어들었으며, 무엇보다 부족한 가운데에서도 항상 다른 것들로 채워
주시는 하나님의 사랑을 알게 되었다. 만약에 갑자기 힘들어졌을때 나에게 3학년이
되면 10만엔이라는 장학금을 주신다는 사실을 알고 있었다면, 징계가 징계같지 않았을
것이고, 오히려 나쁜 버릇들을 버리지 못한채 아직도 흥청망청 돈이 새고 있었을지도
모른다. 하지만 지금은, 이런 작은 고난과 징계들 하나에도 하나님의 계획을 기대할수
있게 되었고, 또 그로 인하여 지금 나에게 최고의 것일것만 같던 것들을 주시지 않으셨
을때에도 하나님에 나에게 가장 잘 맞는 최상, 최고의 것을 주실 것이라는 사실을 굳게
믿을수 있게 되었다. 이제는 내가 잘못된 길을 가고 있을때 하나님이 나에게 주시는
징계가 사랑의 매라는 사실을 마음속에 깊게 새기고 살아가는 주님의 사랑스런 자녀가
되기를 소망한다.

이상민

2010-04-21 05:39:18

씨를 뿌리는 것은 힘이 듭니다. 그러나 열매를 거둘 때에는 정말 행복합니다. ‘울며 씨를 뿌리러 나가는 자는 반드시 기쁨으로 그 곡식 단을 가지고 돌아오리로다’(시126:6)

살아오면서 정말 많은 힘든 일이 있었다. 회사가 부도나서 월급도 못가져다 주고 애기 기저귀도 제대로 사주지 못했던 시절도 있었고 하루 19시간 이상을 일하며 가족을 챙기지 못한 날들이 많은 시절이 있었습니다. 정말 우울했으며 정말 깜깜한 밤 그자체였던 시절이 있었습니다. 하지만 그것에 굴하지 않고 더 나은 내일을 위해 노력했습니다. 지금 생각해보면 주님 오늘과 같은 이렇게 행복한 나날들을 주시기 위해 저를 징계하시고 주님께 돌아오게 하려고 하신 일들이었습니다. 이젠 주님을 떠나지 않으렵니다. 그리고 지금 맺은 작은 열매들이 조금씩 더 커지는 바램을 가지고 이제는 주님안에서 살아가렵니다. 그런 고난 고통을 다 참고 같이 해준 아내에게 너무 감사하고 아내가 주님의 자녀가 되게 해주심에 감사와 찬양을 드립니다. 앞으로 저를 굳건히 세우기 위해 더 많은 징계와 단련의 시간이 오더라도 이제는 혼자가 아닌 주님의 가족이 같이 하므로 행복하게 그리고 기쁨으로 받아 들이렵니다. 사랑하는 나의 주님을 위해 그리고 나의 가족을 위해~

박상민

2010-04-21 08:35:35

‘무릇 징계가 당시에는 즐거워 보이지 않고 슬퍼 보이나 후에 그로 말미암아 연단 받은 자들은 의와 평강의 열매를 맺느니라’(히12:11)

징계를 통해 많은 성숙을 가질 수 있는 기회이지만 늘 그 징계가 외 나인가 하나님께 따지고
원망 한적이 너무나 많았다. 어머님이 죽음과 아버님의 뺑소니 사고 ...........
정말 나에게 이런 일이 일어 나리라 생각하지도 못했다. 그렇게 힘든 생활을 하다
일본에 오게 되였고, 지금의 제자훈련까지 받게 되였다.
제자훈련을 받으며 조금씩 깨닫게 되였다. 예전의 모든일들이 나를 위해 계획하신
일이였다는 것을 이제야 깨닫게 되였습니다.
그 일들은 나를 더욱 강하게 지금의 힘든 생활또한 즐겁게 이겨 낼수 있게 만든것 같습니다.
아직도 더 많은 징계와 고난이 올지도 모릅니다. 그러나 두렵지 않습니다.
나를 사랑하시는 아버지와 예수님이 함께 계시기에......
징계와 고난을 이겨내고 하나님의 참된 아들로 거듭나기를 기도합니다.

용환웅목사

2010-04-21 22:38:12

히 12:5
“주의 징계를 경이 여기지 말며 그에게 꾸지람을 받을 때에 낙심하지 말라”

성령을 소멸시키는 것은 아주 쉬운 거 같습니다. 왜냐하면, 주님의 징계를 무시하거나 주님께 꾸지람을 들을 때 낙심해 버리면 되기 때문입니다. 만일 얕은 차원에서 성화를 체험하였다면 그림자를 실체로 착각하기 쉽습니다. 그래서 하나님의 성령이 견책하기 시작할 때 우리는 “아, 이건 마귀의 일임에 틀림없어”라고 말합니다.

결코 성령을 소멸하지 않으려 합니다. 성령께서 다음과 같이 말씀하실 때 그분을 무시하지 않으려 합니다. – “더 이상 이 점에 눈 감지 마라. 네가 있지 말아야 할 곳에 네가 있다는 사실을 너도 알고 있구나. 지금까지 너에게 그것을 보여줄 수 없었지만 이제 보여준다.” 주께서 이와 같이 징계하실 때 받으려고 합니다. 그분은 나를 하나님 앞에서 올바르게 서도록 하십니다. 그 사랑은 위대하고 권능이 있습니다.

“꾸지람을 받을 때에 낙심하지 말라.” 예전에는 하나님께 볼멘소리를 내며 말했습니다. – “오, 이런. 어쩔 수 없었답니다. 저도 기도했는데 잘 안되었습니다. 이제 포기하렵니다.” 하지만, 이제

저는 하나님께서 그분의 능력으로 저를 주님께서 받으시기에 합당한 사람으로 만드시도록 제 안에서 역사하시는 것을 허락할 준비가 되어 있습니다. 성화는 하나님께서 나를 위하여 뭔가를 해 주시길 원하는 내 나름대로의 생각이 아니라, 오히려 하나님께서 친히 나를 위해 무엇을 하실까에 대한 하나님의 생각이기 때문입니다.

주님은 제가 온전한 성화를 위해 어떠한 희생이라고 감당하겠다는 각오를 하는 자리까지 저를 이끄시고야 마실 것입니다. 주님... 감사합니다... 그 위대한 사랑과 징계로 다스려 주시니 감사합니다.

전재식

2010-04-22 08:39:51

고난의 때에는 우리의 마음의 눈이 무엇을 바라보는가가 중요합니다. 무엇을 보는가에 따라 생각이 달라집니다. 징계의 때에 우리가 제일 먼저 집중하며 보아야 할 것은 십자가의 예수님입니다. ‘믿음의 주요 또 온전하게 하시는 이인 예수를 바라보자(히12:2) 예수님은 고난 승리의 모델이십니다.

저는 매번 고난이 올때에 기도를 이렇게 했습니다....
이 고난을 저에게서 거두어 가주시고 저에게 이힘듦을 없애 주시옵소서 라고.
그 고난이 싫어서 였습니다.
그러나 이젠 다릅니다.고난이 없으면 저는 성장할수 없음을 알았습니다.
물론 제가 예수님을 믿기 전에도 고난이 많았다고 생각합니다.
그때는 마냥 힘들어하고 술과 담배에 의존했던 시간이 많았다고 생각합니다.
그러나 지금은 다릅니다.고난이 오면 역시 힘들기는 마찬가지입니다.그러나 나의 마음은 다릅니다.주님께서 나를 단련시키고 있구나 나를 위해서 이고난을 계획하셔서 내가 이고난을 예수님을 믿고 의지하면서 이겨내면 나에게 주실대단한 선물을 준비하고 계시구나라는 것을 알았습니다.

이젠 고난이 와도 저는 담대히 이겨낼것입니다.그리고 저를 단련시킬것입니다.
그리고 그것을 이겨내서 주님이 주실 은혜를 받고 더욱 성장해 나갈것입니다.

김대근

2010-04-22 09:40:02

하나님은 한 없는 긍휼을 가지고 계시지만, 또한 한없는 엄격함도 가지고 계셨습니다.
하나님은 늘 사랑과 공의를 함께 가지고 가지고 계셨습니다. 여기서 공의는 징계입니다.
징계는 사랑의 또다른 표현 방식입니다. 그래서 하나님은 말씀했습니다.
내 아들아 여호와의 징계를 경희 여기지 말라. 그꾸지람을 싫어하지 말라. 대저 여호와께서 그 사랑하시는 자를 징계하기를 마치 아비가 그 기뻐하는 아들을 징계함 같이 하시느니라.(잠3:11~12)

하나님은 저를 너무 사랑 하십니다.
하나님은 능력이 무한하시기에 저를 한순간에 변화 시킬수도 있습니다. 그러나 그렇게 한다면 저에게 자생력의 뿌리는 내리지않고 온실속의 콩나물과 같이 될것입니다. 그렇게 된다면 조그마한 폭풍우에도 지처 쓰러지고 말겠입니다. 하나님은 그렇게 되기를 원하지 않으실것입니다. 또한 저는 한없이 부족하기에 크고 푸르른 콩나무와같이 키우기 위하여 많은 징계를 하고 계십니다.
깊고 큰 뿌리가 내리게 되기를 어제도 오늘도 내일도 기다리고 계십니다.
하나님의 사랑은 끝이없습니다. 그 사랑에 감사드립니다.

최찬미

2010-04-23 07:25:19

믿음의 사람들에게도 고난과 환란이 옵니다.
고난의 때에는 우리의 마음의 눈이 무엇을 바라보는가가 중요합니다. 무엇을 보는가에 따라 생각이 달라집니다.

갈릴리에 폭풍우가 불던 날, 주무시는 예수님을 뒤로 둔 채 두려움에 떨고 있던 제자들이 생각이 난다. 고난이라는 광풍앞에 어찌할 바를 몰라 힘겨워하며 울부짖던 작년을 회상하며, 왜 그때 나는 제자들처럼 분명히 곁에 계시는 예수님께 [주님 우리가 죽게되었나이다]라고 부르짖지 못했던가... 어찌 내 짧은 경험과, 부질없는 견해를 바라보고 주님을 바라보지 못했던가...후회를 한다.
이 믿음이 적은자야.. 라는 주님의 안타까운 음성이 왜 그땐 들리지 않았는지.....

무엇을 보는가에 따라 생각이 달라진다 했는가,,, 그랬다면 생각이 달라짐에 따라 결과 또한 달라졌으리라. 내가 그 고난을 이겨내기를, 힘겹더라도 포기치 않고 한걸음 한걸음을 내딛기를 주님은 손과 발이 찟기는 아픔으로 바라보고 계셨을까 생각하면, 죄송한 마음에 눈물이 난다.
고난이 지나가고 난 자리엔 항상 지혜를 남기고 가는가 보다. 후에 올 고난은 주님을 똑바로 바라봄을 통해 반드시 더 좋은 결과를 낳으리라.
또 한번 귀한 사실을 깨우쳐 주심에 감사드린다.
정말 어리석었던 나의 실수마저도 또 다른 기회로 바꿔주신 주님이 늘 곁에 계시기에, 오는 하루도 감사하며 살아가겠다.

장미경

2010-04-23 09:35:19

‘울며 씨를 뿌리러 나가는 자는 반드시 기쁨으로 그 곡식 단을 가지고 돌아오리로다’(시126:6)

말씀을 읽어 내려가는 내내 참 감사함이 제 마음에 넘치네요.
내가 지금 이 순간 나의 어려움 앞에서 이 세상이 아닌 주님께 나아가고자 하는 마음 허락하신 주님께 말이죠. 내게 이런 어려움 혹은 고민을 주심은 나를 향한 주님의 더 없는 사랑임을 다시 한번 말씀해 주시며 힘을 주시니 감사하지 않을 수 없네요. 때로는 보이지 않는 미래 앞에서 두려움과 불안함이라는 어두움의 세력이 나를 흔들지만 내게 이 어려움의 시간을 주시는 것! 기쁨으로 곡식 단을 거두기를 원하시는 주님의 계획하심이라는 또 한번의 다짐이 다시 힘을 내게 해 줍니다.

서미란

2010-04-24 07:49:26

‘아들들에게 권하는 것 같이 너희에게 권면하신 말씀도 잊었도다 일렀으되 내 아들아 주의 징계하심을 경히 여기지 말며 그에게 꾸지람을 받을 때에 낙심하지 말라 주께서 그 사랑하시는 자를 징계하시고 그가 받아들이시는 아들마다 채찍질하심이라 하였으니’(히12:5,6) 고난의 때에는 하나님이 이미 약속하신 말씀을 잊지 말아야 합니다. 그 말씀이 우리에게 큰 힘이 됩니다.

흔히들 인권의 벽은 사랑이라 표현합니다.
잘못된 사랑의 표현이 사람을 잘 되게 하는게 아니라 정말 힘들게 할때가 많은 사회이기 때문입니다.
하나님은 사랑하는 아들들에게 주시는 징계를 저에게도 주십니다.
하나님이 정말 저를 사랑하심을 다시 한번 느낍니다.
예수님이 내 안에 계심에 더없이 감사함을 느끼는 봄입니다.
사회의 억압과 차별속에서 항상 분노가 쌓여 있는 아직은 사회적 약자인 장애가 있는 분들을 만나다 보면
같이 분노를 느끼고 같이 억울하고 같이 화가 날때가 많습니다.
그럴때마다 감사를 주시고 약속의 말씀을 주신 하나님을 떠올리면 다시 힘이 납니다.
다시 웃게 됩니다.

내 아버지! 나를 사랑하시는 분! 나와 함께하시는 분! 을 사랑합니다.

이 은미

2010-04-24 08:29:20

징계는 감사로 받아야 합니다. 경히 여기거나 싫어하거나 낙심하지 말아야 하는 것입니다. 징계 속에는 하나님의 사랑의 참 보배가 숨겨져 있기 때문입니다.
징계 후에는 삐뚤어 졌던 것이 바로 펴지고, 서툴던 것이 능숙하게 됩니다. 고난의 때에는 그 너머에 있는 주님이 주실 축복을 미리 바라보십시오.
고난의 때에는 하나님이 이미 약속하신 말씀을 잊지 말아야 합니다. 그 말씀이 우리에게 큰 힘이 됩니다. 말씀을 묵상하고 암송하는 것은 세상이 줄 수 없는 힘을 줍니다.

그저께부터 누군가에게 두드려 맞은 것처럼 몸이 아프기 시작했습니다. 예전의 내 모습같았으면 바로 하나님께 왜 이러시냐고 불평을 토로하며 따져 물었을 겁니다. 하지만 요즘은 고난속에 있는 하나님의 사랑을 느끼기에 참 감사합니다. 하나님은 몸이 아픈 걸 통해 내게 휴식을 허락하시고 내가 교만하지 않게 하시고 하나님을 의지하게 하십니다. 그리고 고난을 통해 내 부족한 점을 바로 잡아주시고 나를 단련시켜 주십니다.
제자훈련을 받고 말씀을 암송하고 묵상하기 시작하면서 고난에 대한 내 생각이 참 많이 바뀌었습니다. 예전에는 고난이 오면 불만을 품고 어떻게 해서든 내 힘으로 빠져 나가려고 발버둥을 쳤습니다. 하지만 지금은 고난이 오면 그 고난속에 있을 하나님의 뜻을 생각하고 하나님께서는 감당할 수 없는 고난을 주시지 않는다는 말씀을 묵상합니다. 이렇게 조금씩이나마 고난에 대한 내 생각을 변화시켜 주시는 하나님 은혜에 감사합니다.
앞으로도 고난이 올 때면 하나님의 약속의 말씀을 붙잡고 고난 뒤에 주실 하나님의 큰 축복을 바라보며 꿋꿋하게 해쳐나가는 하나님 딸이 되겠습니다.

황후연

2010-04-24 21:53:30

예전 짧은 유학생활을 할 때 교회가 꽤 멀리 있었습니다.
메이다이마에였었는데 자전거를 타고 한시간 정도의 거리였죠.
하루는 예배를 드리고 돌아오는데 한번도 경험한 적 없는 엄청난 복통을 느끼면서
자전거를 길가에 쓰러뜨려놓고 그냥 드러누워 버렸습니다.

이대로 죽을 수도 있겠구나..
혹사시킨 내 몸이 이렇게 나에게 복수를 해오는구나..싶었습니다.
일본의 길거리에서 발견된 낯선 유학생 변사체,
그런 기사제목을 떠올리며 통증이 멎을 때까지 한참을 누워있었습니다.

그러다가 느닷없이 감사함이 밀려오더군요.
내 몸은 나에게 정직했다..
몸이 견디지 못하는 것을 의지와 정신이 강요했을 때
내 몸이 그렇게 정직하게 신호를 보내왔다는 것에 감사했습니다.
돌이킬 수 없는 지경에 이르기 전,
'아픔'이라는 정직한 고백을 해온 내 몸에 감사했습니다.

그러면서 하나님이 나에게 보내주신 모든 고통들에 대해서 감사의 기도를 드렸습니다.
영혼의 죽음에 이르기 전,
하나님은 오늘처럼 '아픔'이라는 신호를 보내주실 것이기에.
그리고 그것이 나를 죽음에 이르는 길로부터 지켜줄 것이기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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