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중앙영광교회

노아의 실수

이용규목사, 2007-10-22 16:44:0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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노아의 실수

말씀//창9:18-21

노아는 믿음의 영웅이었다.
당대의 의인이요, 완전한 자였다. 하나님의 마음에 제일 드는 사람이었다.
그런데 오늘 본문의 말씀은 이런 노아에게는 전혀 어울리지가 않는다. 어찌 술을 마시고 발가벗고 자다가 자식에게 저주하며 행패(?)를 부리는 추한 늙은이의 모습을 보일 수 있단 말인가? 이 모습은 지금까지 간직해 온 노아의 이미지에 큰 손실을 가져 올 수도 있다. 그런데도 불구하고 하나님은 왜 이런 추한 일을 성경에 기록해 놓았을까? 성경은 노아를 위하여 기록된 책이 아니다. 성경은 위대한 사람들의 전기가 아니다. 성경은 우리를 위한 책이다. 지금 우리를 교훈하고 훈계하고 바르게 하고 의로 교육하기 위한 책이다.(딤후3:16) 성경은 우리를 온전케 하기 위해서 기록한 책이다.
노아를 생각하면 이런 이야기는 빼고 싶었겠지만 우리를 위해서는 도저히 뺄 수가 없었다. 노아보다 더 약한 우리가, 얼마나 넘어지기 쉬운 존재인지 잘 알고 계시기 때문이다. 그래서 우리에게 거울로 보여 주며 경계로 삼기 위해서는 반드시 기록해야만 했던 것이다.(고전10:11) 하나님은 과거의 노아도 사랑하셨지만 지금 우리는 더 사랑하신다. 노아의 부끄러움을 드러내면서까지 우리를 교훈하시니 말이다. 모든 성경은 우리의 잠든 영혼을 깨워준다.  

1. 노아의 실수
노아의 실수는 무엇이었을까? 술 마시고 취한 것일까? 이것은 육적으로 나타난 현상에 불과하다. 노아의 실수의 본질은 다른데 있다. 그것이 무엇일까? 노아는 하나님의 은혜로 자손도 번창했고(창9:19) 생활도 풍성했다. 땅에 씨앗을 뿌렸는데 하나님이 풍성한 열매를 주셨다. 그러면 귀한 열매를 주신 하나님께 먼저 ‘감사제사’를 드리는 것이 상식인데, 오늘 본문에는 노아가 예배나 제사를 드렸다는 말이 단 한번도 나오지 않는다. 노아가 치명적인 실수를 했음을 시사하고 있다. 방주에서 나왔을 때처럼 하나님께 정성의 제사를 드렸다면 하나님이 언급을 하지 않을 리가 없다.
노아의 진짜 실수는 ‘추수에 대한 감사예배’가 없었던 것이다. 노아는 ‘추수감사예배’에 실패한 사람이었다. 그래서 그는 스스로를 부끄럽게 하고 죄까지 짓게 된다. 당신은 추수감사예배를 어떻게 드리고 있는가? 먼저 모든 인생의 열매를 주신 하나님께 진실한 감사가 있어야 한다. 노아의 실패를 보시고 하나님은 아예 추수감사예배를 법령으로 선포하신다. 그것이 바로 이스라엘의 3대 절기이다. 물론 다른 의미도 포함되어 있지만, 이 3대 절기는 모두 곡물이나 과일의 수확기이다. 그리고 첫 열매의 복을 강하게 말씀하셨다. ‘네 재물과 네 소산물의 처음 익은 열매로 여호와를 공경하라 그리하면 네 창고가 가득 차고 네 즙틀에 새 포도즙이 넘치리라’(잠3:9-10)  
노아는 풍성한 열매를 거두자 하나님께 감사할 생각은 안하고 포도주 담글 생각만 했다. 이것은 바로 하나님의 기쁨이 아니라 자기의 기쁨만을 생각한 처사이다. ‘어떻게 하면 나를 기쁘게 할 수 있을까?’ 이것이 바로 타락의 지름길이다. ‘육신의 생각은 사망이요 영의 생각은 생명과 평안이다’(롬8:6) 술 취함은 자신의 육신을 즐겁게 하고자 하는 대표적인 것이다. 노아는 이 육신의 생각에 붙잡혀 버린 것이다.
하나님은 술 때문에 노아에게 크게 당하셨다. 그래서 그런지 성경에서는 술에 대한 경계를 엄하게 많이 하고 있다.
‘술 취하지 말라 이는 방탕(패가망신)한 것이니 오직 성령의 충만을 받으라(엡5:18)
‘르무엘(솔로몬)왕아 포도주를 마시는 것이 왕에게 마땅치 아니하고 왕에게 마땅치 아니하며 독주를 찾는 것이 주권자에게 마땅치 않도다(잠31:4)
‘너는 그것(술)을 보지도 말지어다(잠23:31)
처음에는 내가 술을 마시지만 나중에는 술이 나를 삼켜 버린다고 했다.
‘너희가 육신대로 살면 반드시 죽을 것이로되 영으로써 몸의 행실을 죽이면 살리니(롬8:13)
당신은 포도열매를 수확했을 때, 그것으로 먼저 자신을 위해서 포도주를 담그는가? 아니면 그 첫 열매를 하나님께 감사로 제사를 드리는가? 당신도 노아의 실수를 아무렇지도 않게 반복하고 있지는 않은가? 그것이 당신 인생의 결정적인 실수인지도 모르고 말이다.

2. 열매 맺을 때를 조심하라
노아는 언제 이 큰 실수를 저질렀을까?
배고플 때보다 배 부를 때가 더 위험하다. 배 부를 때를 조심해야 한다.
노아의 가장 배고픈 시절은 방주에서 나올 때였다. 그 때는 사는 게 말이 아니었을 것이다. 그런데도 노아는 방주에서 내리자 마자 하나님을 위해서 번제로 감사예배를 드렸다. 그런데 오늘 본문의 사건이 일어난 때는 하나님께 복을 받아 부족함이 없었던 때이다. 방주 시절에는 포도주는 고사하고 먹을 포도도 없었지만, 지금은 포도가 너무 많아서 포도주까지 담글 수 있었으니 그 풍성함이 짐작이 갈 것이다. 어쩌면 이 때 하나님께 더 감사할 것 같은데, 노아는 바로 이 때에 인생의 큰 실수를 범하게 된다.
열매 맺을 때를 조심해야 한다. 풍성할 때를 조심해야 한다. 배 고플 때보다 배 부를 때를 조심해야 한다. 사람은 어려울 때보다 잘 될 때 잘 넘어진다.
‘선 줄로 생각하는 자는 넘어질까 조심하라’(고전10:12)
그렇다. 앉아 있거나 누워 있는 자는 잘 넘어지지 않는다. 반면에 서 있는 사람은 언제 넘어질 지 모른다. 누가 뒤에서 밀면 금방 넘어지고 만다. 그래서 늘 조심해야 한다. 깨어 있어야 한다. 경계를 늦추지 말아야 한다.
다윗도 보면 그렇다. 그가 넘어진 것은 생사가 왔다갔다하는 전쟁터가 아니라, 모든 것이 풍성하고 편안한 궁정에서 일어났다. 그 때에 성적인 강한 유혹에 인생을 송두리째 뽑히고 말았다.
‘안전하다고 생각될 때가 제일 위험하다’
방심(마음의 무장해제)하고 있기 때문이다.
‘위험하다고 생각될 때가 가장 안전하다.’
마음에 이미 완전 무장을 하고 있기 때문이다.
세상의 위험 요소보다 더 무서운 것은 마음의 위험 요소이다.
강한 적이 당신을 무너뜨리는 것이 아니라, 마음의 방심이 당신을 무너뜨린다.
풍성하고 편안할 때 깨어 있는 사람이 진짜 지혜로운 사람이다.
미국에 가면 곳곳에 ‘애미쉬 마을’이라는 특별한 동네가 있다.
그들은 하나님이 원하는 경건한 삶을 살기 위해서, 스스로 문명의 이기를 거부하고 자연의 삶을 고집하는 거룩한 무리들이다.
그들은 전기를 거부한다. 전기는 삶의 리듬을 망치기 때문이다. 하나님이 밤을 주신 것은 잠을 자라고 주셨는데, 인간은 전기를 만들어서 밤을 낮으로 바꾸어 버렸다. 그래서 인생이 쉼이 없고 계속 혼란에 빠져간다.
그리고 그들의 집에는 TV나 컴퓨터가 없다. 하나님은 사람과 사람 사이에 뜨거운 사랑의 대화와 섬김이 있도록 창조하셨는데, TV나 컴퓨터가 가정에 들어옴으로, 가족들이 서로의 얼굴을 보면서 사랑의 대화를 하는 것이 아니라 모두 TV만 바라보고 있다. 그러니 가족의 대화는 점점 사라지게 된다. 그리고 무엇보다 무서운 것은 자녀들이 부모의 말을 듣지 않는다는 것이다. TV나 인터넷에서 본 것이 그들의 인생의 모델이 되고 판단 기준이 되어버린다. 부모나 선생님의 말씀은 인생의 판단기준(진리)이 아니라 잔소리로 전락하고 만다. 하버드 대학이 20년간 연구한 바에 의하면 사회에서의 성공지수는 ‘감성지수’라고 했다. 그런데 오늘날은 인간 관계에서 오는 감성지수는 거의 제로 상태이고, 기계지수만 높아지고 있다. 사람들이 점점 인간미를 잃어가고 있다. 인간이 파괴되어 가고 있다는 것이다. 그래서 그들은 문명보다 자연을 더 선호하고 있는 것이다.
애미쉬 마을 사람들은 자신들이 문명의 이기 속에 들어가면 죄짓고 파괴된다는 것을 알고 있다. 그래서 더 이상의 문명을 원하지 않는 것이다. 조금 불편한 것은 있을 지 모르지만 그 삶이 자신들을 주님 안에서 지켜 주기 때문이다. 애미쉬 사람들처럼 죄와 타락에서 자신을 보호하기 위해서 늘 절제된 삶을 살 수 있는 것이 참 행복을 지키는 삶이 아닐까 한다.

3. 추수감사예배의 축복
하나님이 주신 풍성한 포도열매로 술을 담아 마신 노아는 어떻게 되었을까? 과연 행복했을까? 그 반대이다. 술을 마신 순간에는 알코올이 주는 황홀경에 잠시 빠졌는지는 모르지만 그는 곧 자기 옷을 다 벗어버리고 하체를 더러내 놓고 잠을 자야 하는 부끄러운 짓을 스스로 자초하고 만다.
자기 즐거움, 쾌락을 먼저 구하는 사람은 반드시 스스로 부끄러움을 자초한다. 노아가 그 증인이다. 노아가 얼마나 부끄러웠으면 술에서 깨어 일어나자 그 부끄러움을 조금이라도 가려 보려고 죄 없는(?) 자기 아들까지 저주했을까?
하지만 좋은 일이 있을 때, 먼저 하나님의 기쁨, 만족을 구하는 사람은 결코 부끄러움을 당하지 않는다.
‘너희는 먼저 그(하나님)의 나라와 그(하나님)의 의를 구하라 그리하면 이 모든 것을 너희에게 더하시리라(풍성의 복)’(마6:33)
‘누구든지 저를 믿는 자는 부끄러움을 당하지 아니하리라’( 롬10:11)  
노아의 후반부 인생은 아름답지 못했다.
그는 추수감사예배에 실패했다. 풍성할 때 무너졌다.
그래서 그의 후반 350년 인생은 단 두 줄로 막을 내려 버린다.
‘홍수 후에 노아가 350년을 지내었고
향년이 950세에 죽었더라’(창9:28,29)
이 외의 기록은 없다.
편할 때에는 하나님을 생각하기보다 자신을 먼저 생각하기 쉽다.
하나님의 기쁨보다 자기의 기쁨에 관심이 더 많다.
잘 익은 포도를 보고 하나님께 드릴 생각보다 술 담글 생각을 먼저 한다.
이것이 바로 노아의 실수한 모습이었다.
당신은 어떻게 할 것인가?
하나님이 주신 올해의 첫 열매로 당신을 위해 술을 담글 것인가? 아니면 하나님께 감사의 예물로 드리고 싶은가? 선택이 당신의 인생의 운명을 결정한다.
올 추수감사예배는 내 기쁨이 아니라, 오직 그 분의 기쁨을 위해서 온전히 드려지는 천국잔치가 되기를 기도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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최현경

2007-10-27 12:38:58

성경은 우리를 위한 책이다. 지금 우리를 교훈하고 훈계하고 바르게 하고 의로 교육하기 위한 책이다.(딤후3:16) 성경은 우리를 온전케 하기 위해서 기록한 책이다.
노아를 생각하면 이런 이야기는 빼고 싶었겠지만 우리를 위해서는 도저히 뺄 수가 없었다. 노아보다 더 약한 우리가, 얼마나 넘어지기 쉬운 존재인지 잘 알고 계시기 때문이다. 그래서 우리에게 거울로 보여 주며 경계로 삼기 위해서는 반드시 기록해야만 했던 것이다.(고전10:11) 하나님은 과거의 노아도 사랑하셨지만 지금 우리는 더 사랑하신다. 노아의 부끄러움을 드러내면서까지 우리를 교훈하시니 말이다. 모든 성경은 우리의 잠든 영혼을 깨워준다

하나님께서는 지금 이 순간에도 성경을 통해 나를 향한 하나님의 뜻을 알게 하신다는 것을 깨닫습니다.
몇 주 전 속회 나눔을 통해 하루에 한 가지씩 하기 싫은 일을 하겠다고 말한 적이 있습니다. 매일 반복되는 가사와 육아이지만 하루에 기본적으로 꼭 해야 할 일들 외에는 자꾸 미루는 일이 생겨 속원들에게 선포(?)를 하고 지켜 나가야 겠다고 생각했습니다. 그 일이 있은 후 몇 주가 지났음에도 계획했던 일들을 제대로 하지 못하고 또다시 차일 피일 미루고 있었습니다. 그러다 며칠 전에 밧세바가 그의 아들 솔로몬에게 남긴 ‘현숙한 아내’에 대한 말씀을 읽고 나서, 가정에서 아내로서 엄마로서 무엇을 어떻게 해야 할 지 맥이 잡혔고, 제게 주어진 일들을 성실하게 최선을 다하지 않으면 안되겠다는 동기 부여가 되었습니다. 말씀으로 도전을 받고 나니 다시 ‘하기 싫은 일’을 하는데 힘이 생겼고, 하나 하나 실천해 볼 수 있게 되었습니다.
또 하나님께서는 저에게 영적 지도자를 통해 말씀하고 계십니다.
매 주일 설교 말씀을 통해 은혜를 받지만 유아실에서 예배를 드리다 보면 예배에 집중하기가 어렵습니다. 그러다 보니 홈페이지를 통해 목사님께서 다시 몇 시간의 공을 들여 올려 주시는 말씀은 같은 내용이지만 주일 예배 때 와는 또 다른 은혜가 됩니다. 많은 분들이 말씀을 통해 귀한 나눔을 주십니다. 저도 당연히 그 나눔에 동참해야지 하면서도 때로는 선포되어지는 말씀이 꼭 나를 보고 하시는 것만 같아 많은 찔림때문에 많이 부끄러워 저의 나눔이 없었음을 고백합니다. 저의 심령과 골수를 쪼개는 말씀에 아직도 깨닫기만 하고 결단하고 실천하지 못했음에 회개가 됩니다.
이렇게 하나님께서는 지금도 ‘나를 위해’ 성경과 지도자를 통해 말씀해 주시니 얼마나 감사한 일인지 모릅니다.
늘 말씀에 나를 비추어 보고 나를 바르게 하는데 경계를 늦추지 말아야겠습니다.

‘네 재물과 네 소산물의 처음 익은 열매로 여호와를 공경하라 그리하면 네 창고가 가득 차고 네 즙틀에 새 포도즙이 넘치리라’(잠3:9-10)
당신은 추수감사예배를 어떻게 드리고 있는가? 먼저 모든 인생의 열매를 주신 하나님께 진실한 감사가 있어야 한다.

나의 모든 소유권은 주님께 있다고, 주신 분도 주님이고 거두시는 분도 주님이시니 하나님께 다 맡기겠노라고 입술로는 말하지만 그 고백이 내 삶의 고백이 되었나 돌아보니 그렇지 못했습니다.
지금 내게 있는 시간, 물질, 사람, 환경… 이 모든 것이 주님이 허락하신 것이라는 것은 너무나도 잘 알고 있습니다. 지난 한 해 동안의 감사할 일들을 생각해 보니 정말 눈물이 날 정도로 저는 많은 것을 하나님께 받았습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제가 분에 넘치도록 받은 것에 대한 하나님께 감사의 표현을 하는데 있어서는 너무 인색합니다.
저에게 허락하신 첫 시간을 하나님께 드리겠다던 약속도, 주님께서 허락하신 배필과 주님 뜻대로 살겠다고 기도한 것도, 우리 가정에 선물로 주신 자녀들을 주님 안에서 바르게 키우겠다던 다짐도, 작년 추수 감사 예배때 온전히 감사를 드리지 못했던 것에 대한 아쉬움들도… 저의 욕심과 게으름과 세상적 염려들로 하나님을 기쁘시게 해드리지 못했습니다.
지난 한 해 하나님께 대한 저의 모습들을 돌아보니 회개할 것 뿐이고 안타깝기만 합니다.
너무 부족한 모습이지만 그 안에서 정성과 최선을 다해 하나님의 기쁨이 되는 추수 감사 예배가 되길 소망합니다.

권유미

2007-10-27 23:09:58


먼저 모든 인생의 열매를 주신 하나님께 진실한 감사가 있어야 한다.
비단 물질 뿐만이 아니라, 하나님이 인생에서 주신 모든 것에 대해 진심으로 감사할줄 아는 사람이 되었으면 한다. 인생의 열매를 맺도록, 나에게 허락하신 물질과 환경, 사람들, 그리고 문제들, 이 모든것이 거름이 되어 열매를 맺도록 하신 것임을 깨닫고, 입술로만 하는 감사가 아니라, 정말 내가 가진 시간과 물질과 봉사를 통해 진실한 감사를 드려야 겠다고 느꼈다. 지난주 예배시간때, 찬송가 185장의 가사로 참 큰 은혜를 받은것이 생각난다. 가사중, (………..) 부분에서 정말 하나님은 이렇게 나에게 당신의 가장 소중한 것을 주셨는데, 나는 얼마나 하나님 것을 가지고 내것인 마냥, 짜게 굴었던지.. 이번 추수감사절때는 정말 정성으로 준비하여, 하나님이 진정 기쁘게 받으실 감사를 드리고 싶다.

노아가 추수감사예배에 실패하게 된 이유로서, 그가 육신의 생각을 따랐기 때문이다. 당장 내 눈앞에 보이는 육신의 즐거움을 쫓아, 하나님의 자녀됨을 잊고 행동하게 되는 경우가 종종 있는 나로서는 이번주 설교시간내내 정말 많이 부끄러웠고 회개되었다. 하지만 한편으로는 강한 메시지를 통해, 회개하게 하심을 감사드린다. 믿음의 영웅인 노아도 술 때문에 하나님께 실수를 하고, 부끄러운 일을 당했는데, 성숙된 크리스챤으로의 훈련의 길을 밟고 있는 나는 얼마나 유혹과 시험에 나약하며, 정말 내가 스스로 깨어 지키고, 또 하나님께 이길수 있는 능력과 의지를 간절히 간구하지 않으면 안되는지를 깨달았다. 강한 결단과 또 그 결단을 강행해 나갈수 있도록, 더욱더 하나님께 기도로 매달려야 하겠다고 다짐했다.



황후연

2007-10-28 01:08:38

대학 졸업 후 일본 땅을 밟았을 때 나는 빈손이었다. 유학을 위해 과외로 번 돈은 비행기표와 학비, 부동산비를 내고 나니 달랑 천엔이 남았다. 창문 틈사이로 바람이 새어들어오고 비가 창문을 두드리던 방에서 처음 보낸 밤, 여행용 가방에서 꺼낸 옷가지로 몸을 덮고 추위와 싸우던 그 밤을 '내 방에서의 노숙'이라고 이름붙였다.

그 다음날부터 대학원수업을 들으면서 틈틈이 아르바이트를 찾아다녔다. 물을 사먹는 사치는 생각할 수도 없었고 그렇다고 끓여먹을 살림도 아직 준비되지 않았기에 목이 마르면 길 건너편에 있는 마트에 가서 물을 마시고 돌아왔다. 그 무렵 깊은 한밤중에 갈증을 이기지 못해 잠이 깨버렸다. 목이 타들어가는 갈증에 소스라치게 놀라 물을 찾았지만 마트는 문을 닫을 시간이었고 그렇다고 수도물을 마시기에는 일본에 온지 며칠되지 않은 탓인지 거부감이 심했다. 그래도 지금 뭔가를 마시지 않으면 나는 죽는다..그런 느낌으로 그 때부터 온 집안을 뒤지기 시작했다. 여행용 가방과 옷가지, 다다미 틈사이 등 동전이 떨어져 있을 만한 곳은 다 뒤졌다. 그렇게 찾은 몇십엔을 손에 쥐고 이번에는 온 동네의 길목길목 혹시나 떨어져 있을지 모를 동전을 찾기 위해 다녔다. 결국 실패하고 돌아왔지만 죽기살기로 방을 처음부터 다시 뒤집는다는 각오로 헤집은 후 결국 오십엔짜리 동전 하나를 기어이 찾아냈고 그대로 집 앞 자판기로 달려갔다. 그 때의 그 달콤한 맛을 지금도 잊지 못한다.

돌이켜보면 꿈 하나만을 믿고 앞뒤없이 바다를 건넌 젊은날의 무모함이 치러야할 당연한 댓가였지만 현실로 맞딱뜨린 물리적인 고통은 겪는 그 순간만큼은 인간이면 누구에게나 동일한 가혹함이다. 그래서 지금도 방바닥에 동전이 떨어지면 굳이 줍지 않는다. 가구 밑으로 굴러 들어가도 굳이 찾지 않는다. 지금은 있어도 그만, 없어도 그만인 작은 동전일지 몰라도 언제 그것이 목숨처럼 소중한 것으로 돌아올지 모르기 때문이다.

슬며시 흘리며 사는 삶. 적당히 손해보며, 적당히 베풀며 사는 삶. 욕심으로 움켜지지 않는 삶. 너무 팍팍하지 않게 살며 작은 것의 감사함을 아는 삶. 그 때의 기억이 만든 내 삶의 형태이다. 지금의 나는 풍성한 삶을 살고 있고 때론 넘치도록 풍족한 삶을 산다는 느낌마저 들지만 작은 것의 소중함에 대한 깨달음도 늘 나를 지배하고 있다. 그렇게 고난을 통해 가르치시는 하나님께 감사한다. 지금의 여유로움이 나의 넘어지는 이유가 되지 않도록 고난의 때를 기억하고자 한다. 감사함으로.

전한나

2007-10-28 06:53:10

편할 때에는 하나님을 생각하기보다 자신을 먼저 생각하기 쉽다.
하나님의 기쁨보다 자기의 기쁨에 관심이 더 많다.
사무엘을 낳을때 마지막 진통 1시간부터 분만실에 들어가서 아기를 낳을때 정말 하나님 예수님 성령님 수백번 부르짖으면서 그렇게 주님을 부르면서 고통을 이겨낼수가 있었다.
아기를 낳고 병실로 옮기고 병원에서 아기를 보고 있을려면 너무나 귀엽고 사랑스럽고 어떻게 할수 없을 정도로 너무나 좋았다.
그땐 하나님 생각보다는 사무엘이 너무 좋아서 사무짱 생각밖에는 내 머리속에 없었다.
하나님께 감사를 하기 보다는 문병온 사람들에게 관심이 많았고 아기가 아프지는 않는지 내가 몸이 회복이 되고 있는지에만 관심이 있었지 하나님께 진심으로 감사에 마음을 드리지 못했음을 고백한다.
내가 편하므로 내게 이제 아기를 낳을때같은 고통이 사라졌으므로 사랑하는 아들이 내옆에서 새근새근 잠자고 있는 모습을 보면서 난 행복하다고 생각하면서 나의 기쁨을 하나님께 기쁨으로 드리지 못했다.
그런데 하나님께서 어이 사무엘 엄마 사무엘너한테 소중하지? 나도 내 아들 예수가 소중한데 너를 위해서 대신 내아들이 십자가에 죽었는데 너 나를 위해서 사무엘 나한테 줄수 있니? 이런 생각이 들면서 하나님 정말 잘못했어요 저 사무짱 너무 사랑해서 어떻하죠 하나님 사무엘 못드릴것 같아요 하나님 정말 죄송해요 하면서 하나님께 하나님의 사랑을 정말 말로 글로 쓸수 없는 이야기 구나 생각했던 일이 있었다.
내가 힘들때만 주여주여 찾았고 기쁨을 나눌땐 누구세요 했었던 나의 모습을 이번 설교를 통해서 다시한번 생각나게 되었다.

홍인기

2007-10-28 08:54:09

"성경은 우리를 온전케 하기 위해서 기록한 책이다."

현대를 살아가는 우리에게 성경이 가지는 의의를 이번 설교를 통해 확실히 깨우칠 수 있었던것 같다. 먼 옛날을 살았던 사람들의 기록들, 이것들이 그냥 역사서에 지나지 않음은 하나님께서 지금을 사는 우리를 위해 그 내용또한 조절하셨음을 알게되니... 성경이란 지금을 사는 나를 위해 존재하는 것임을 되짚어 볼 수 있게 되었다.

이번 노아의 설교를 통해 노아의 인간성을 볼 수 있었고 어쩌면 지금을 사는 우리들의 모습을 너무도 적나라하게 보여주는 장면들이 많지 않았나 싶다.
방주에서 나왔을 때, 하나님의 위대하심과 무서움을 체험한 노아...그때 드린 정성의 제사를 노아가 풍성해 졌을때 잊게 된것은 바로 인간의 연약함을 잘 드러내는 대목이 아닌가 싶다.

"열매 맺을 때를 조심하라"
"편할 때에는 하나님을 생각하기보다 자신을 먼저 생각하기 쉽다.
하나님의 기쁨보다 자기의 기쁨에 관심이 더 많다.
잘 익은 포도를 보고 하나님께 드릴 생각보다 술 담글 생각을 먼저 한다.
이것이 바로 노아의 실수한 모습이었다."

충실한 종인 노아의 모습만을 보다 인간적인 연약함을 통해 하나님을 실망시킨 노아의 모습을 보니 다소 의아스럽기도 하고 낯설기도 하다.
노아의 마지막 모습들이 지금의 나의 모습들과 얼마나 비슷할까라는 생각도 해본다.

어렵고 힘들때 하나님을 외치며 찾는자 보다는, 복되고 풍성할때 더욱 하나님을 찾으며 경외하는 자가 되어야 겠다 다짐해본다. 어쩌면 이것이 더 힘들것이요, 어쩌면 더 바람직한 모습이 아닐까 생각해 본다.

정승은

2007-10-28 10:40:06

-노아는 풍성한 열매를 거두자 하나님께 감사할 생각은 안하고 포도주 담글
생각만 했다. 이것은 바로 하나님의 기쁨이 아니라 자기의 기쁨만을 생각한
처사이다. ‘어떻게 하면 나를 기쁘게 할 수 있을까?’ 이것이 바로 타락의
지름길이다. ‘육신의 생각은 사망이요 영의 생각은 생명과 평안이다’(롬8:6)
술 취함은 자신의 육신을 즐겁게 하고자 하는 대표적인 것이다.
노아는 이 육신의 생각에 붙잡혀 버린 것이다.-

주일 설교말씀에 이어 수요 새벽 예배를 통해 추수 감사 예배를 드리는
자세와 예물을 준비하는 마음가짐에 대한 말씀을 들었다.
얼마전 물질적으로 쉽지만은 않은 마이너스 상황에서, 주님이 마음에
주신 감동으로 평소 우리 가정의 십일조와는 조금이지만 구별된 십일조를
드릴 기회가 있었다. 물론 그때는 말씀으로 인도해 주셨기 때문에 찔림과
동시에 진정 감사함으로 드릴 수 있었다.
그런데 바로 연이어 추수 감사 예배에 드려지는 예물에 관한 주일 말씀으로
주시는 거룩한 부담이 또다시 나를 온통 붙들기 시작했다.
사실 내 형편을 나보다도 더 잘 아시는 주님께서 전혀 풍족하지 않은,
한달한달 어찌될지 알 수 없는 나의 마이너스 통장에 관심을 갖고 계신다는
사실이 좀처럼 잘 이해되지 않았다.
기도를 해도 나의 통장에 관심을 갖고 계신다는 부담감은 사라지지 않았고,
나는 나의 억눌린 생각 때문에,혹은 하나님은 형편이 어려움에도 받길
원하시는 그런 분이시라고 판단하도록 나의 마음을 어지럽게 하려는
사단의 유혹일지도 모른다며 관심을 돌리려고도 했으나,수요 새벽기도
말씀을 통해 다시 한번 마음에 부담을 주셨다.
특별히 어느 장로님의 귀한 간증을 통해 감사 예물을 드렸던 사연과 그분의
믿음에 관한 얘기를 들었는데,그 순간엔 은혜 받은 만큼 도전보다 오히려
그분과는 감히 비교조차 할 수 없는 나의 어린 신앙, 흔들리는 연약한
믿음이 한심해지면서 오히려 낙심이 되었다.
게다가 그래도 그렇지, 우리 형편을 아시는 주님께서 대체 왜 이런 마음에
부담을 주실까 하는 의문도 부끄럽지만 계속 되었다.

그러나 나는 진정 이것을 놓고 회개하지 않을 수 없었다.
나는 그간 몇 년 동안 내 형편 만큼 감사함으로 예물을 드렸었다.
풍족하지 않아서 그럴수도 있겠지만,주님께 드리는 어떤 것들에 관해
시험에 뻐질 상황은 감사하게도 없었던 것 같다.
그래서 나는 너무나도 당연하고, 쉽게 나의 주인은 오직 주님 한 분
뿐이라고 생각하며,나와 재물을 겸하여 섬길 수 없다는 주님의 말씀에
고개를 끄덕였다.
그런데 주님은 이번 상황을 통해, 내 마음속에 [진정 너의 통장 주인은
누구냐, 네가 붙들고 있는 것은 도대체 무엇이냐, 네 삶의 진정한 주인은
누구냐?]라는 질문을 던지시는 것 같았다.물론 이때도 당연스럽게
입술로는 즉시 [주님이십니다!]라고 고백했지만,어느 순간 내 마음은
찔림으로 가득했다.
나는 주님께 솔직히 여전히 내 삶은 두주인을 섬길 때가 종종 있었음을
고백하지 않을 수 없었다.하나님께 모든 것을 맡기고 순종하겠다고 말씀
드려놓고,모든 것에 순종이 아닌, 내가 정해놓은 퍼센테이지 까지만
순종하겠다는 나의 얄팍한 믿음의 한계가 아직도 내 안에 남아 있었음을
깨닫게 된 것이다.
모든 것에 완전하시고,풍족하신 주님께서 하찮은 나의 통장에 무슨 관심이
있으시겠는가?!스스로가 한심해서 갑자기 웃음이 나오기 시작했다.
지독하게 나 스스로를 혼란스럽게 하며, 하나님을 완벽히 신뢰하지 못하여
주님의 마음을 아프게 해드렸던 내 자신을 얼마나 더 회개해야 할런지….
오늘 밤을 새도 모자랄지 모른다.
이번 한주간 주님이 내게 원하셨던 것은 나의 모든 것에 주인되길 원하시는
주님의 주권과 통치를 인정하게 하시고, 형편과 상황,내 못난 자신에
붙들려 있던 내 마음을 자유케 해주시고 싶으셨단 사실을 바로 몇시간
전에서야 깨달을 수 있었다.마지막으로 내가 현재 갖고 있는 내가 그렇게나
무거워하는 몇가지 나의 짐 조차도 주님께 내려놓길 원하시는 주님의
사랑을 깨닫게 해주셨다.

-주님!
십자가에 나를 못박지 못하고,제 인생의 주인은 반만 주님께 내려놓은채,
여전히 팔팔하게 살아서 제 스스로를 움직이려 하는 저의 자아가 깨어지길
원합니다.또한 주님앞에 여전히 죄인임을,낮아지지 못함을 회개합니다.
힘든 형편을 불평하며,드리지 못해서 죄송한 마음 뿐인데, 왜 제 마음을
이렇게 아프게 하시냐고 주님께 대들었던 제 못난 모습을 회개합니다.
한순간 방심한 노아의 모습도,마음도 이제 제게 전해져 옵니다.
노아가 풍족할 때 주님을 잊고 자신 스스로의 기쁨에 취하여 살았듯이,
상황은 다르지만 제 자신의 문제와 어려움,상처와 쓴뿌리에 얽매여
주님의 깊으신 뜻과 은혜에 감사함으로 나아가지 못했음을,
무엇보다 주님과의 관계에 대해,제 믿음에 대해 방심했음을 고백하며,
회개합니다.

-주님!
제 마음과 생각이 온전히 주님께 드려지길 원합니다.
추수감사 예배는 오직 주님의 영광과 기쁨을 위해 드려지는 예배이길
진심으로 기도합니다.
겉으로 드러나는 믿음,감사와 예물,순종이 아닌, 진정으로 마음으로
드려지는 감사와 순종이길 원합니다.
제가 묶여 있는 것은 오직 주님 한 분이시길 원하며, 다른 모든 세상적인
생각과 판단과 사람들에게 보여지는 겉모습은 끊어지길 원합니다.
오직 은혜는 하늘로 부터,주님으로부터 부어지는 것,그 외에는 없음을
믿습니다.그래서 제가 구하고,찾고,두드려야 할 곳은 오직 하늘 문, 주님
밖에 없습니다.그것을 믿고 구할 때,주님께서 말씀과 기도,사람들을 통해
부어주시는 은혜와 축복을 믿습니다.
저와 저희 가족이 오직 감사와 은혜 아래 주님을 향한 뜨거운 사랑으로
주님과 동행하길 소원합니다.예수님의 존귀하신 이름으로 기도합니다.
아멘.

-사실 나는 이번 주 말씀을 받고 해결되지 않은 내 자신과 씨름하느라
시간을 보냈다.그리고 너무 형편없고,부끄러운 내 자신을 드러내는 것이
이번주는 특히 힘들었다.내 안에만 담아두고 싶을만큼 창피해서 올리고
싶지 않았지만, 마음을 정리하고,내려놓게 해주시니 감사하다.-

탁성아

2007-11-03 02:54:19

하나님이 주신 올해의 첫 열매로 당신을 위해 술을 담글 것인가?
아니면 하나님께 감사의 예물로 드리고 싶은가?
선택이 당신의 인생의 운명을 결정한다.

추수감사주일 너무 감사하고 행복한 주일이었다 .
추수감사주일이 되어서야 감사하는 내 자신을 보고
죄송하고 부끄러웠다 ..
좀 더 많이 예물하지 못하는 마음에 조금 아쉬움도 있었지만
마음은 가득 채워서 드렸기에 감사하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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