Skip to content

중앙영광교회

여호와를 위하여

이용규목사, 2007-10-15 16:40:45

閲覧数
1021
推奨数
13
여호와를 위하여

말씀//창세기8:20

1.        주님의 심정
자신이 손수 만든 사람들을 모두 자신의 손으로 죽이지 않으면 안되었던 하나님의 심정을 생각해 보았는가? 비록 인간의 타락과 부패로, 하나님이 사람 지으신 것을 후회하고 한탄하셨지만, 홍수를 통해서 모든 인류를 멸망시킬 때에는 얼마나 마음이 아팠을까? 어쩌면 자기 아들 예수를 십자가에 내 주어 죽게 한 것보다 더 고통스러웠을 것이다. 인류를 멸하실 때에 하나님이 당해야 했던 고통은 그야말로 우리의 상상을 초월하는 고통이었을 것이다. 한 사람도 아니고 모든 인류를 자신의 손으로 죽였어야 했으니 이것은 하나님 자신에게 제일 잔인한 일이었을 것임이 분명하다.
부모가 자식을 매질할 때 누가 더 아프겠는가?
당연히 부모가 더 아프다. 자식은 다리로 매를 맞지만, 때리는 부모는 가슴으로 매를 맞기 때문이다. 자식은 눈으로 울지만 부모는 가슴으로 울기 때문이다. 죄악으로 멸망 당하는 사람들보다 멸망시켜야 했던 하나님이 훨씬 더 괴로웠을 것이다.
노아는 하나님과 동행하는 사람이었다. 그래서 이런 하나님의 마음을 헤아릴 줄 아는 사람이었다. 그는 하나님께 위로가 되고 싶었다. 미약하나마 힘이 되어 드리고 싶었다. 그래서 방주에서 내리자 마자 정성을 다해서 제물을 준비해서 하나님 앞에 가지고 간다. 그리고 이렇게 말한다. ‘하나님 얼마나 마음이 아프세요. 말씀하지 않아도 저는 다 알아요. 그런 힘든 와중에도 이 못난 놈을 살려 주시려고 세심하게 신경까지 써 주신 것도 알아요. 하나님 감사해요. 하나님 제 마음이에요. 받아 주세요. 힘 네세요. 하나님 사랑해요. I love you god!’
이것이 바로 노아가 하나님께 드린 최초의 예배의 모습이다.
얼마나 순수하고 아름다운 예배의 모습인가?
여기에는 자신의 탐욕이나 속셈 같은 것은 찾아 볼 수가 없다.
그는 ‘자기를 위하여’ 위하여 예배를 드린 것이 아니라 오직 ‘하나님을 위하여’ 예배를 드렸던 것이다.
당신은 지금까지 누구를 위하여 예배를 드려 왔던가?  

2.        여호와를 위하여
무엇을 하는가도 중요하지만, 그것보다 더 중요한 것은 그것을 하는 동기와 목적이다. 예배를 드리는 것보다 더 중요한 것은 예배의 동기와 목적이다. 예배의 목적은 오직 한가지 밖에 없다. 하나님의 기쁨이 되는 것이다. 하나님의 만족이 되는 것이다. 예배는 ‘하나님을 위해’ ‘하나님께’ 드리는 것이다. 그래서 노아도 ‘여호와를 위하여’ 단을 쌓았다고 했다.(창8:20)
만약에 복을 받을 속셈으로 예배를 드린다거나, 칭찬받을 속셈으로 드린다면 그것은 결국 자신을 위해서 드리는 예배인 셈이다. 이런 예배는 이미 예배가 아니다. 인간의 욕심을 채우는 타락한 도구에 불과하다. 뭘 받아내려고 드리는 예배는 타락한 예배요, 사기성 예배이다. 100점짜리 예배를 드리고 싶은가? 자신을 보지 말고 하나님만 바라보라. 자신의 만족을 구하지 말고 오직 하나님의 만족을 구하라. 어떻게 하면 하나님의 기쁨과 만족이 될까? 이 일에만 계속 집중하라. 예배에서 내가 무언가를 받으려고 해서는 안된다. 예배는 받는 것이 아니라, 드리는 것이다. 내가 하나님을 위해 마음을 드리고, 정성을 드리는 것이다. 물론 예배는 보는 것도 아니다. 도대체 뭘 본다는 말인가? 강대상을 본다는 말인가? 설교자를 본다는 말인가? 성가대를 본다는 말인가? 사람들을 본단 말인가? ‘예배를 본다’는 말은 교회 용어 중에서 제일 용납할 수 없는 말이다. 예배에 참석한 어떤 사람도 구경꾼으로 전락하면 안 된다. 모두가 예배의 선수가 되어야 한다. 하나님의 기쁨이 되기 위해서 모두가 뛰어야 한다.
‘나는 어떤 일이 있어도 이 예배를 통해서 하나님을 기쁘시게 할 거야!’
내가 만족하는 예배가 아니라, 하나님이 만족하시는 예배가 살아 역사하는 예배임을 잊지 말아야 할 것이다. 하나님을 기쁘시게 하는 가장 탁월한 방법은 바로 ‘예배’이다. 노아 할아버지 때부터 지금까지 하나님은 진정한 예배를 찾고 계신다. ‘아버지께서는 이렇게 자기에게 예배하는 자들을 찾고 계시느니라’(요4:23)      

3.     너를 위하여-여호와를 위하여
창6:14의 ‘너를 위하여’와 창8:20의 ‘여호와를 위하여’는 귀한 말씀의 쌍을 이루고 있다. 이것은 노아와 하나님이 서로 어떤 관계인지를 잘 말해 주고 있다. 하나님은 노아를 ‘위해서’ 구원의 복을 주시고(창6:14) 노아는 하나님을 ‘위해서’ 감사의 제사를 드렸다.
모든 만물은 들어 오는 것이 있고 나가는 것이 있을 때 건강하다.
관계도 마찬가지이다. ‘나는 너를 위하고, 너는 나를 위하고’ 이보다 더 건강한 관계는 없다. 건강한 그리스도인이 되기를 원하는가? 노아처럼 이렇게 살면 된다. ‘하나님은 나를 위하여 나는 하나님을 위하여’
이런 이야기가 있다. 어떤 사람이 천국과 지옥을 가서 보니까 음식은 똑 같은데 천국에 있는 사람들은 모두가 혈색이 좋고 건강한데, 지옥에 있는 사람들은 하나같이 굶어 죽어가고 있더라는 것이다. 그 원인을 알아 본 바에 의하면 숟가락에 해답이 있었다. 천국과 지옥의 숟가락은 모두가 길이가 3미터 정도되는 큰 숟가락인데, 뜨거워서 중간 부분은 절대로 잡을 수가 없고 맨 끝에만 잡을 수 있게 만들어져 있었다. 그래서 지옥에 있는 사람들은 그 숟가락으로 자기 입에만 음식을 집어 넣으려고 하니 도저히 먹을 수가 없었다. 그런데 천국에 있는 사람들은 달랐다. 원래부터 남을 섬기는 훈련이 잘 되어 있어서 그들은 그 큰 숟가락으로 멀리 있는 사람까지 음식을 먹여 주었다. 그러니 또 그들은 자기에게 음식을 먹여 주었다. 그래서 천국은 모두가 배불리 건강하게 잘 살고 있었던 것이다. 환경이 천국을 만드는 것이 아니라, 남을 배려하는 마음이 천국을 만든다. 서로가 서로를 먼저 챙겨주고, 걱정해 주고 신경 써 주고, 위로해 줄 때, 그 곳이 가정이든, 교회든, 회사든, 학교든 천국으로 화한다.
당신이 지금 신경 써야 할 것은 ‘그가 나를 위하여’가 아니라, ‘내가 그를 위하여’이다. ‘그가 나를 위하여’는 그의 몫이고, ‘내가 그를 위하여’만 내 몫이기 때문이다. 모든 문제는 내가 내 몫을 잘 할 때부터 풀리기 시작하는 법이다. 미국의 유명한 정치인의 말처럼 ‘그 사람이 나를 위해서 뭘 해 줄 것인가를 생각하지 말고, 내가 그 사람을 위해서 뭘 해 줄 것인가’를 늘 생각하는 사람이 건강한 관계의 리더가 되고, 주인공이 된다.
노아는 방주에서 내리자 마자, ‘하나님이 이제 자신을 위해 뭘 해 주실까’ 생각하지 않고, ‘내가 하나님을 위해 무엇을 할 수 있을까?’를 먼저 생각한 사람이었다. 이것이 노아의 위대함이요, 능력이요, 하나님이 감동하신 일이다.
‘나는 하나님을 위해 무엇을 할 수 있을까?’
‘나는 가족을 위해 무엇을 할 수 있을까?’
‘나는 교회를 위해 무엇을 할 수 있을까?’
‘나는 이웃을 위해 무엇을 할 수 있을까?’
이 고민이 당신을 위대한 인물로 만들 것이다.
노아의 이 위대한 고민이 지금 당신의 최고의 고민이 되길 축복한다.

4.    노아의 예배
마지막으로 노아가 하나님께 드린 예배의 모습을 살펴 보자.
1) 자원 예배
노아는 누가 시킨 것이 아니라 자원하여 스스로 하나님께 예배를 드렸다. 이것에 대해서는 지난 번에 상세히 나눈 적이 있다.
2) 제단 예배
노아는 예배를 드리기 전에 먼저 제물을 드릴 제단을 건축하였다고 했다.(창8:20) 뉴욕에 가면 일본 관광객들도 많이 방문한다는 유명한 교회가 있다. Times square church라는 교회이다.
우리가 주일 예배에 도착한 것은 찬양 부르기 30분 전이었는데도, 이미 사람들이 줄을 서서 기다리고 있었다. 안내자의 안내로 자리를 배정받아 앉아서 보니 많은 사람들이 와서 기도로 예배를 준비하고 있었다. 목회자들은 제단 위에서 열심히 기도하고 있고, 성도들은 제단 밑에서 제단을 붙들고 기도하고 있었다. 정말 은혜롭고 아름다운 모습이었다. 그들은 예배를 위해서 일찍 나와서 먼저 열심히 기도의 제단을 쌓고 있었던 것이다. 당신의 기도 제단은 어떤가? 부실 공사인가? 아니면 아예 기초도 놓을 생각도 하지 않는가?
3) 정결 예배
노아는 모든 정결한 짐승 중에서 또 골라서 하나님께 드렸다. 그야말로 최고의 정성이 들어 있는 예배이다. 하나님은 우리가 육과 혼과 영을 다 드려 예배할 때 최고로 기뻐하신다.(마22:37) 이것이 산 예배이다. 몸은 와 있는데 생각은 딴 데 가 있는 예배는 껍데기 예배에 불과하다. 정신 똑 바로 차리고 예배를 드려야 한다.
4) 번제 예배
노아는 제물을 모두 다 태워서 하나님께 드렸다. 최초의 번제는 노아에 의해서 드려졌다. 번제 예배는 노아가 개발(?)한 예배 법이다.

이 4가지 예배를 한마디로 말하자면 ‘여호와를 위하여’ 드린 예배이다.
노아의 예배가 당신의 예배로 전이되기를 축복한다.
예배를 무시하는 사람은 하나님을 무시하는 사람이다.
예배가 살아야 인생이 산다.

60 コメント

Comment Page Navigation

최수연

2007-10-15 19:33:55

예배가 살아야 인생이 산다...
이것이 명언이다...
나의 삶속에서 예배가 얼마나 중요했던가?
노아 할아버지처럼 자원예배를 드리고 싶었던가?
하나님을 위해 얼마나 나의것을 드렸는가?
하나님의 기쁨이 되기 위해 난 얼마나 노력했던가?

* 주님의 심정
주일날 나는 대연이를 데리고 편의점에 갔다.
요즘 대연이가 사달라고 하는것들이 있으면 다 사주고 싶은 마음이
있어서 기쁜마음으로 편의점에 갔는데, 사탕 하나, 과자 하나, 쥬스하나
이렇게 사고 나오려고 하는데 갑자기 나오다 말고 저번주에도 샀던
사탕 또하나를 집었다.
근데 그 사탕은 저번주에 사고 남은것도 있을뿐더러 잘 먹지도 않는
사탕이었다. 나는 그 사탕을 못사게 했다. 근데 대연이의 모습은
갑자기 다른건 다 필요 없다는듯 땅에 없드려서 울기 시작했다..
그 사탕도 잘 먹으면 모를까 남은 사탕을 또 사달라고 하니깐
안된다고 했는데 대연이는 너무 서럽게 다른건 다 팽겨치면서 울기
시작했다.. 나는 너무 난감했다..
결국 그 사탕을 사주지 않자 편의점에서 나와서도 계속 우는것을 보고
내가 대연아 이러면 안돼 하면서 대연이 엉덩이를 때렸다..
그러자 대연이는 더 울었다... 나는 속으로 이 상황을 어떻게 하지?
걱정했다.. 그리고 내가 때려서 아팠으면 어쩌지? 내가 때려서
내마음이 더 아프기 시작했다....

하나님의 마음도 나와 똑같으실것이다..
나를 단련하시기 위해 또 나를 더욱 잘되게 하시기 위해
내가 구하는것에 응답치 않으실때도 있는데
나는 꼭 대연이처럼 다 그만두고 싶은 마음이 들때가 있었다..
얼마나 안타까우셨을까? 얼마나 마음이 아프셨을까?

이젠 나의 촛점을 바꿔야 한다는 강한 생각을 가져야 겠다..
이젠 나를 위해 무엇을 달라고 요구하는 신앙이 아닌
하나님을 위해 나의 무엇을 내어 드리는 자로 서고 싶다..

매일 사람들에게 또 하나님께 무엇을 받음으로써
내가 사랑받고 있음을 확인할때에서 벗어나
내가 먼저 사랑을 주고 섬김으로써,
천국인생을 만들어 가고 싶다..

나의 생각을 바꾸는게 제일 먼저 내가 적용해야 할 과제인 것 같다..
노아 할아버지처럼 하나님을 위해 가장 귀한것을 내어 드리며
하나님께 드릴때 가장 기쁜 사람으로 영원히 살고 싶다..
그리고 리플도 제자훈련 숙제때문에 억지로 했던 적도 있다..
하지만, 이젠 그런 억지 숙제가 아니라 하지말라고 해도
먼저 사모하는 마음을 가져야 하겠다..
자원 순종, 자원 예배.....
앞으로 그렇게 조금씩 변화된 모습을 기대해본다..
아자아자 화이팅!!!!!!!!!!!!

김장호

2007-10-15 19:49:06

지금까지의 난 주일 예배에 나가는 것은 내가 필요한것이 있으면 부모님에게
때를 쓰고 또 한쪽으론 거짓말까지도 서슴없이 해서 얻는 그런 마음으로
오늘 예배에선 어떤걸 주실까, 오늘 아니면 다음주에 주시겠지 그런 마음으로
주일예배에 참석한 내 모습에 참으로 부끄럽고 주님께 고개을 들수가 없다.
주님은 죄인중에 죄인인 나를 구원하신 것에만 그치시지 안으시고 아껴주시고 먹여주시고 부끄럽지 않게 보호하여 주심에도 욕심많은 나는 달라고만 한다.
제자훈련까지 받는 내가...
목사님의 노아 할아버지의 반복적인 설교말씀 속에서 난 항상 내가 잘못된
생각을 가지고 있구나 내 잘못이 크다는걸 깨달으면서도 앞으로는 어떻게
해야지 하는 것이 없었다.
하지만 이번주 목사님 설교말씀을 통해 내가 어떻게 해야하는지 알게 됐다.
예배는 날 위한것이 아니고 주님께 기쁜 마음으로 예배[자원]를 드리는 것이며 주님을 부끄럽게 만드는 내가 돼서는 않되고 항상 주님를 의식하며 올바로 살아 가는 삶이 될수 있도록 해야 한다는 것이다.

김은하

2007-10-15 20:03:22

아주 가끔 있던 일이 어제 설교시간에 생겼습니다.
설교 말씀을 듣다가 어떤 한 말씀에 시간이 멈추는 것입니다.
(목사님께서 옆사람과 인사하라는 어색한 문장을 안 던져주셨더라면
제 시간은 계속 멈춰버렸을지도..)
‘여호와를 위하여’
아마도 말씀 중간쯤에 이 말씀이 등장 했지요..?
앞에서 하신 말씀을 확~ 잊게 하시고 뒤에서 들려오는 말씀조차 귀를
멍~하게 하였습니다.
가슴이 떨리고 설레기도 하고 죄송스러워 몸둘바도 모르겠고 무언가
말하고 싶고 듣기도 하고 싶고..
엄청 복잡한 심정 이었습니다.
저는 제 삶을 책임질 것처럼 내 삶의 주인은 나라고 하며 저주아래
스스로 머리를 내밀때가 얼마나 많았는지..
나의 주인은 주님이시다라고 고백하는 것은 성령께서 주신것인데,
은사또한 성령께서 주신 것인데..
성령께서 주신 모든 것은 하나님을 위해서 그나라를 위해서 사용해야
하는 것인데..
정녕 나는 그분을 위하여 무엇을 했는지..
나 자신을 다시 점검하여야 했습니다.
모순 투성이 이고, 허물 투성이에다가, 죄된 본성은 왜 자꾸..
나를 치고 올라오는지..
하나님께 드리는 예배조차도 나의 감성 충만을 위한 의식이었는지,
종교적 의무였는지..
뒤죽박죽 되어버려 스스로를 감추려는 저를 다시 정리하고 그분 앞에
온전함을 재정비해야 함을 느끼며 탄식해야 하는 시간 이었습니다.
다시한번..
나의 신앙의 동기와 목적을 진솔하게 점검하는 이 주간이 되기를 소망합니다.
여호와를 위하여..
살아도 그분을 위하여..
죽어도 그분을 위하여..


이성훈

2007-10-15 21:35:51

여호와를 위하여..
예배의 주인공은 하나님이라는 정말 단순하고 명쾌한 진리를 이번 노아의 설교를 통해서 계속 깨닫고 있습니다. 내 개인적인 문제들, 요즘 생각하고 있던 고민들, 꼭 해야만 하는 것등을 생각하며 머리가 꽉 차있는 상황에서 예배를 드리고 찬양을 할 때 하나님께서 나를 단순하게 만드시고 하나님의 크고 위대하심을 느끼게 되면 내 문제들이 아무것도 아니게 느껴지고 너무 평안해지는 경험이 많이 있었습니다. 지금 돌아보아 생각해 보면, 내 문제나 내 일같이 `나에게 있던 시선`이 하나님께 이동 됨으로써 자연스럽게 `하나님이 주인 되시는 예배`를 드리게 되고, 고작 내 문제에 대한 해결이 아닌 하나님의 영광을 맛보게 되는 더 높은 수준의 영적인 평안을 느낄 수 있던 것 같습니다.
그런데 이것이 그렇게 쉽지는 않은 것 같습니다. 예배의 본질 상 매번 예배 때마다 하나님의 영광을 맛보고, 그 결과로 나도 힘을 얻고 다시 성령님과 함께 일주일을 살아나가야 하는게 정상일텐데, 막상 그렇게 보내지 못하는 예배가 너무 많습니다. 내가 하나님을 위하여 하나님의 높고 위대함을 예배해야 하는데, 종교적 의무감 속에서 예배에 나오고 별다른 기대감 없이 나오고 내 문제가 머리 속에 가득 찬 상태에서 나오고 그랬던 것 같습니다. 내가 정말 하나님을 위하여 예배를 드린다면 어떻게 감히 이런 마음 상태로 나올 수 있었을까 반성하게 됩니다. 흔히 하는 예로 대통령이 시간 약속 가지자고 하면 과연 얼마나 준비해서 갈껀가, 근데 그보다 더 높고 위대하신 하나님과의 만남에 어떤 마음으로 나갈 것인가를 자주 말하는데, 이 이야기를 들을 때마다 별다른 생각없이 나는 예배를 기대하면서 예배의 소중함을 알고 있어라고 받아들였던 나의 교만을 너무 반성하게 됩니다. 내가 아는 지식을 진짜 내 상태라고 착각하고 있었습니다.
하나님. 이제 진정한 예배를 드리기 위해 노력할께요. 하나님을 높이는 예배 드릴 수 있도록 내가 마음으로 더 준비하고 실제로 행동으로 준비하는 예배 드리겠습니다.

조정현

2007-10-15 23:35:33

....노아는 하나님과 동행하는 사람이었다. 그래서 이런 하나님의 마음을 헤아릴 줄 아는 사람이었다. 그는 하나님께 위로가 되고 싶었다. 미약하나마 힘이 되어 드리고 싶었다....

하나님의 마음을 알고 하나님의 마음을 헤아리며 그 마음의 슬픔을 위로하고 힘이 되는 자...생각만 해도 너무나 아름답고 아름다운것 같습니다...누군가 내가 아픔이 있을때 "당신의 아픔을 알고 나도 느끼며 그래서 당신의 아픔을 위로하고 싶다"고 누군가 말해준다면 정말 고맙고 감사할것이다.. 그런데 그 아픔을 나의 아픔과 같이 느끼기 위해서는 그 사람을 사랑하는 만큼만 가능한것 같다.나랑은 전혀 상관없는 사람이 힘든일을 당한다면 "안됐구나..불쌍하다" 라고 여길수는 있겠지만 그것이 나의 아픔과 같이 느껴지진 않을 것이다. 하지만 노아는 그런 하나님의 마음을 헤아릴수 있었고 그리고 하나님의 가슴아프심이 자신의 아픔과 같이 느껴졌기에 하나님의 마음을 위로하고 힘이 되어드리고 싶었을것이다..정말 노아와 같이 하나님을 사랑해서 하나님의 안타까움이 나의 안타까움이 되고 하나님의 가슴 아프심이 나의 가슴아픔이 되어 노아와 같이 하나님께 위로가 되고 정말 미약하나마 힘이 되는 자로 살고 싶다...

.......무엇을 하는가도 중요하지만, 그것보다 더 중요한 것은 그것을 하는 동기와 목적이다. 예배를 드리는 것보다 더 중요한 것은 예배의 동기와 목적이다. 예배의 목적은 오직 한가지 밖에 없다. 하나님의 기쁨이 되는 것이다. 하나님의 만족이 되는 것이다. 예배는 ‘하나님을 위해’ ‘하나님께’ 드리는 것이다. 그래서 노아도 ‘여호와를 위하여’ 단을 쌓았다고 했다..........

우리 교회는 토요일 마다 중보기도모임이 있는데 이번주는 제가 기도인도를 맡게 되었습니다.. 여러가지 기도 제목등을 나누고 기도를 드리고 또 주일 예배를 위하여 기도를 드리는데 이런 기도를 주님께 드리게 하셨습니다. "주님 내일은 주님의 날입니다. 그런데 우리는 무엇을 하러 주님께 나아옵니까? 정말 주님을 만나려는 마음으로 오는것입니까? 그냥 단지 설교를 듣고 은혜를 받으려 복을 받으려 나아오는것 입니까? 내일은 우리들이 주님의 기쁨이 되고 무언가를 받기위해 나아오는 예배가 아닌 주님께 찬양과 감사와 사랑만을 마음껏 올려드릴수 있는 예배가 되기를 소원합니다. 모든것을 다 주셨는데 또 받으러 나아오는 예배가 아니라 우리들의 마음을 사랑을 주님께 풍성히 올려드리는 예배가 되기를 소원합니다..."라고 기도하게 하셨습니다. 정말 주님만을 바라는 기쁜 마음으로 기도를 드렸습니다. 그리고 주일을 맞았는데 성도님들이 별로 오시지 못했습니다. 그러자 제 마음엔 또 조금은 실망스런 마음이 생겼지만 어제 나의 올려드린 기도를 생각하며 '내가 내 마음을 사랑을 하나님께 올려드리는 예배인데 누가 얼마나 온들 그것이 무엇이 중요한가!' 하는 깨달음과 함께 제 마음을 지킬수 있었습니다. 물론 모든 성도님들과 함께 예배를 드리지 못한 안타까움이야 크지만 그것으로 나의 예배까지 빼앗기지 않아서 너무나 감사했습니다. 오늘 말씀을 받으며 어제 나의 예배를 하나님께서 기쁘게 받으셨다고 말씀하시는것 같아 너무나 감사합니다. 이 마음이 언제나 변치않기를 소원합니다. 노아와 같이 하나님의 마음 헤아릴줄 알고 또 늘 그 분을 위해서 살기를 소원합니다. 주님 사랑합니다..늘 그렇게 살게 하소서....

황미

2007-10-16 01:10:53

우리 온 영광의 식구들 사랑 합니다.
그리고, 제 곁에 있는 모든 믿음의 가족들 감사합니다.

우리의 사랑이시며 사랑이신 그 분의 큰 사랑을 입은 저이기에
오늘도 저의 입술에 그 분의 사랑을 담아봅니다.
늘, 삶 속에서 그 분의 향기가 차고 넘치기를 기도 합니다.
너를 위하여 명령 하셨고 그 명령에 순종으로 답 하는 ,그래서
그 분의 기쁨이 되는 자녀이고 싶습니다.
그 분은 나를 위해, 나는 그 분 을위해 사는 삶 이야말로 감사와
은혜의 통로로 , 은혜의 줄이 끊어지지 않을것입니다.
"노아"는 그런 주님의 마음을 아는 효자 아들 인것입니다.
아버지의 마음으로 자식을 죽일 수 밖에 없는 그 아픈 마음을 알아
오직 아버지를 위해 스스로,준비하고,깨끗한(육,영,혼) 아들의 정성을
아버지께 보였던 것입니다.
힘 내세요! 사랑합니다! 하며 오로지 그 분 만을 위하여.
"노아"의 이런 모습에 나는 초라할 수 밖에 없습니다.
고백 합니다 주님!
내 진정 주님을 위한, 주님께 만족한 예배를 몇 번 이나 드렸는지....
내 형편대로, 내 감정대로, 내만족으로 드렸던 모습들을 주여!!!
용서하옵소서.
온 정성과,마음과,뜻을 다하여 오직 주님의 기쁨되는 예배를
그 분 만 을 위한 예배를 약속 드립니다.항상 준비하며......

노재훈

2007-10-16 06:46:32

무엇을 하는가도 중요하지만, 그것보다 더 중요한 것은 그것을 하는 동기와 목적이다. 예배를 드리는 것보다 더 중요한 것은 예배의 동기와 목적이다.

모태신앙으로 이세상에 태어나기전부터 나를 예비하신 하나님.
예배를 하나님께 드리는게 언제부터인가 매일 밥을 먹듯이 습관처럼 되어 버렸다.
언제부터인가 동기와 목적을 잃어버린것이 아닌가 라는 생각이 들었은때도 있었다.
예배의 목적은 하나님의 기쁨이 되는것이다라고 하는 말이 나의 가슴을 울렸다.
하나님의 기쁨이 되기위해 만족이 되기위해 하나님께 단을 쌓았던 노아처럼 예배의 중요성을 한번더 생각하게 되었다.
늘언제나 예배는 일찍가지만 하나님께 드리는것이 아닌 습관적인것에서 진정으로 하나님께 예배를 드릴수 있는 동기와 목적을 더욱더 깊이 새기는 시간이 되었다.

습관적인 예배에서 여호와를 위하여 단을 쌓은 예배로....

이동훈

2007-10-16 07:23:15

당신은 지금까지 누구를 위하여 예배를 드려 왔던가?

이 말은 정말 나를 뒤돌아 보게 한다. 고1때 부터 본격적으로 교회를 다닌 난 생각해보면 거의 교회를 빠지지 않고 예배는 꼭 드린다는 개념을 가지고 있었다.
그래서 멀리 타 지방에 가더라도 교회를 찾아 예배를 드린다던지 예배시간이 맞지 않았다면 들어가서 기도라고 하고 나오곤 했었다.
하지만 과연 그건 누구를 위한 예배 였던가? 난 과연 주님을 기쁘게 하기 위해서 예배를 드렸던가를 생각해 보면 사실 부끄럽기만 하다.
제자훈련 하기전에 난 아침 예배를 드리며 항상 지각을 버릇처럼 했다. 어떤때는
설교 마치기 10분전에 가서 축복기도만 받으면 예배를 드렸다는 간사한 생각을 했었던것 같다. 꼭 일수 도장 받는 사람처럼 어쩔수 없이 예배를 드리지 않았나 하는 생각이 든다. 그런 예배는 주님을 기쁘게 하는게 아니라 단지 내가 교회를 갔다왔다는 만족만 얻기 위해서 드린 예배가 아닌가 싶다. 이런 나를 반성하며 정말 하나님이 기뻐하실 예배를 드려야겠다는 생각을 한다. 하나님이 기뻐하시게 아침 일찍
일어나 설래는 마음으로 교회에 가서 기도로 예배를 준비하고 찬양하며 하나님께 영광 돌리는 예배가 하나님을 기쁘게 하는 예배인것 같고 제자로써 마땅히 그래야 한다는 생각을 했다.

김헌규

2007-10-16 07:45:46

내가 만족하는 예배가 아니라, 하나님이 만족하시는 예배가 살아 역사하는 예배임을 잊지 말아야 할 것이다. 하나님을 기쁘시게 하는 가장 탁월한 방법은 바로 ‘예배’이다. 노아 할아버지 때부터 지금까지 하나님은 진정한 예배를 찾고 계신다. ‘아버지께서는 이렇게 자기에게 예배하는 자들을 찾고 계시느니라’(요4:23)

태어나서 지금까지 예배를 드린 횟수를 세어본다면 몇천번은 될 것 같습니다.
그런데, 예배를 드렸나고 묻는 목사님의 질문에는 대답을 할 수 없을 것 같았습니다.
왜냐하면, 나는 예배를 드렸다기보다는 예배를 본 적이 많이 있기 때문입니다.
예배를 드리는 사람이 아니라 예배를 구경하는 관객의 입장이었을 때가 많았기 때문입니다.
하나님께서 예배하는 사람들을 찾으신다면, 그 사람들안에 나는 들어가지 못할 경우가 많았을 것입니다.
다시한번 나를 말씀으로 깨우쳐 주셔서, 진정한 예배자의 모습을 되찾게 하심을 감사드립니다.
예배에 참여하면서도 몸만 참석하는 예배도 많았음을 고백합니다.
세상일에 휩싸여서, 시험걱정, 회사걱정, 일걱정, 가족걱정, 형편걱정 등 많은 고민거리들속에서 마음은 헤매이고 있고, 몸만 와서 의무적으로, 앉아 있었던 예배가 많았었습니다.
하나님은 다시한번 나를 돌아보게 하십니다.
진정한 예배를 드리도록 나를 이끌어주고 계십니다.
예배에 와서 참석하는 것으로 나의 의무를 다한 것으로 생각했습니다.
마치 자식이 마지못해 부모님의 말에 순종(복종?)하고서도 제 딴에는 무슨 대단한 효도(?)라도 한 듯 으스대는 것처럼 제 모습이 그러했습니다.
하나님앞에 의무적으로, 또는 습관적으로 와서 앉아 있으면서 하나님께 무슨 대단한 순종이라도 한 듯, 또는 무슨 대단한 봉사라도 한 듯 그러했습니다.
그러나, 그것은 나의 착각이요, 나의 교만이었습니다.
내가 만족하는 예배를 하고서도 하나님께서 기뻐받으신다고 혼자 생각했었습니다.
오늘 말씀으로 인해 저의 예배의 수준을 알게 되었고, 저의 신앙수준을 알게 되었습니다.
이제부터 진정한 예배자의 모습을 되찾도록 노력해야겠습니다.

창6:14의 ‘너를 위하여’와 창8:20의 ‘여호와를 위하여’는 귀한 말씀의 쌍을 이루고 있다. 이것은 노아와 하나님이 서로 어떤 관계인지를 잘 말해 주고 있다. 하나님은 노아를 ‘위해서’ 구원의 복을 주시고(창6:14) 노아는 하나님을 ‘위해서’ 감사의 제사를 드렸다.

제 기도의 내용을 보면, 항상 무엇을 달라는 것입니다.
하나님께 무엇을 드리겠다는, 하나님을 위해 무엇을 하겠다는 내용은 아무리 찾아 보려고 노력해도 찾을 수가 없습니다.
언제나 하나님은 저를 위해 계시는 분일 뿐입니다.
하나님을 위한 저는 어느 곳에도 없었습니다.
사람사이의 관계에서도 받는 것이 있으면 주는 것이 있는 법인데, 저는 항상 하나 님께 받을려고만 했지, 하나님께 무엇을 드릴 생각은 안했습니다.
마지못해 무엇을 하면서도, 대단한 봉사라도 하듯, 대단한 순종이라도 하듯 그러했습니다.
하나님께 감사의 제사는 고사하고, 감사의 기도조차 제대로 드리지 못했습니다.
조르고 졸라서, 하나님께서 무언가를 주시면, 선심쓰듯 고맙다는, 감사하다는 기도를 했습니다.
태어나서 지금까지의 일을 생각해 보면, 좋은 부모님을 주셨고, 신앙을 유산으로 받았으며, 몸건강히 지금까지 살아왔고, 하나님의 인도하심으로 일본에까지 와서, 직장을 다니고 있고, 믿음의 좋은 반려자를 만나, 예쁘고 건강한 아이까지 얻었음에도, 진정한 감사의 예배를 드린적이 별로 없습니다.
제가 하나님께 무엇을 해드리지 못했음에도 불구하고, 이렇게 좋은 선물들을 많이 받았는데, 저는 하나님께 해 드린 것이 거의 없었습니다.
예배를 통해 저의 모습을 돌아봅니다.
그리고, 예배자의 모습을 회복할 수 있기를 기도해 봅니다.
아직 어린아이같은 신앙수준이지만, 그래서 노아처럼 예배의 단을 쌓지는 못하지만, 조금씩 나아지는 모습을 하나님께 나아가기를 소원합니다.
하나님이 기뻐하시는 하나님이 만족하시는 예배를 드리기를 소원합니다.

정향연

2007-10-16 08:13:58

******100점짜리 예배를 드리고 싶은가? 자신을 보지 말고 하나님만 바라보라. 자신의 만족을 구하지 말고 오직 하나님의 만족을 구하라. 어떻게 하면 하나님의 기쁨과 만족이 될까? 이 일에만 계속 집중하라. 예배에서 내가 무언가를 받으려고 해서는 안된다.******

주일날 아침이 되면 바쁘고 ,맘이 설레기도 합니다...예배30분전,지난주부터는 40분전부터라고 결심을 하고 그 시간에 늦지 않도록 하기위해 아주 바쁘게 교회안에 들어갑니다...목사님의 설교말씀을 듣고 가장먼저 제자신이 변한것이 예배에대한 태도인것같습니다..예전*몇년전*에는 먼저가서 기도를 하는것이 좀 어색하기도했었는데,이젠 당연히 기도드리는것부터 시작하는 예배로 점점 자리매김을 해나가는것 같아 감사를 드립니다...찬양을 하면서도 영이 집중하지 않을때는 딴생각을 할때가 많고.축복에 관한 찬양을 부를떄는 축복을 기대한적도 많았는데,요즘엔 축복에 관심이 있는것이 아니라,촛점을 하나님에게 맞추려고 노력하고 있습니다.
특히,이번주 찬양에..내가 너를 잘아노라,,내게 축복더하노라,,,라는 대사에서는 축복은 안주셔도 좋습니다..다만 내가 하나님께 충실한자,,신실한자.위선적이지않은자 되게 하여주소서.라고 찬양하게 되었습니다..
지난주의 자원순종을 이번주에 실천하게 됨으로써 내맘에 기쁨을 얻었고,이번주에 하나님의 기쁨이 되는 예배를 드리라는 것을 또 실천함으로써 토기쟁이이신 그분의 손에 만들어져가는 작품이 될것을 기대하니,마음이 많이 설레지네요....
형식에 얽매이는것이 아니라,그것을 사모할수있는 마음을 주시고,넘쳐나게 하심에 감사를 드립니다...

김 정숙

2007-10-16 17:57:12

노아가 드린 예배의 마음을 그모두를 닮고 싶읍니다.
이번주도 노아의 말씀에 은혜가 차고도 넘치게 하신 하나님!
감사 감사 합니다.

하나님의 기쁨과 만족을 위해드려지는 예배,
무엇을 얻기위함이 아니요,
목적이 없이 드려지는 예배요,
이것이 곧 거짖 없는 예배 라고 가르치시는 말씀의 은혜!
감사 감사 합니다.

예배에 참예함으로 하나님을 만나고
만남으로 위로와 힘을 얻고
고백 가운데서 채워지는 내 영혼에 충만함 얻고
그래서 세상을 이길 힘을 얻읍니다.
감사 감사 합니다.

왜 이제야 깨닫고 마음깊은 곳에서 뼈 저리게 깊은 이 사랑을 알게 되었는지...
지금도 조금씩 모자라는...
하나님 보시기에 많이 모자란 내 모습을 돌아봅니다.
그러나 감사 감사 합니다.

하나님의 자녀임을,
중앙 영광 교인 임을 ,
이땅에 보내주심을,
감사 감사 합니다.
이제 부터라도 하나님 마음에 기뻐하심을 입은 자 이고 싶읍니다.

마준철

2007-10-16 17:58:40

"‘나는 어떤 일이 있어도 이 예배를 통해서 하나님을 기쁘시게 할 거야!’ 내가 만족하는 예배가 아니라, 하나님이 만족하시는 예배가 살아 역사하는 예배임을 잊지 말아야 할 것이다. 하나님을 기쁘시게 하는 가장 탁월한 방법은 바로 ‘예배’이다. 노아 할아버지 때부터 지금까지 하나님은 진정한 예배를 찾고 계신다. ‘아버지께서는 이렇게 자기에게 예배하는 자들을 찾고 계시느니라’(요4:23)"

대부분의 목사님들이 그러시겠지만 저에게도 역시 일주일의 모든 시간은 주일예배 한 시간을 위해 존재한다고 해도 과언이 아닐 듯 싶습니다. 그러나 오늘 말씀을 묵상하면서 혹시 그 분주함이 직업정신(?)의 투철함은 아니었나 돌아보게 됩니다. 한 주일 내내 설교준비를 위해 시간을 보내고 토요일 오후에 주보 인쇄까지 끝나면, "야~ 이제 주일예배 준비는 다 됐지?" 스스로 만족해 하는 모습을 보게 됩니다.

그러나 이것은 철저하게 목사 중심의, 그리고 사람 중심으로 디자인 된 예배의 모습임을 깨닫게 되었습니다. 그것은 주일예배를 마치고 난 후에 예배를 평가하는 내 태도와 관점속에 그대로 묻어 나오는 것입니다. 제게 있어서 예배의 성공은 하나님과 상관없이 얼마나 많은 성도님들이 출석했나, 설교 시간에 성도님들이 은혜받는 모습이 역력했나, 성도님들의 물질 헌신은 충분했나 등등 .... 이와 같은 조건들이 충족이 되면 그 주일 저녁 밥은 꿀맛(?)이었고, 그렇지 못한 경우에는 밥 맛은 커녕 짜증충만이 되버리고 마는 것입니다.

사실 지난 주일예배 때도 참 부끄러운 실수를 또 하나 저질렀습니다. 저희 교회에 이제 다음 주일이면 한국으로 귀국하게 되는 자매님 한 분이 있습니다. 제 딴에는 성도님들에게 인사도 시킬 겸 주보에도 광고를 올려 놓고 기다리고 있는데 세상에 예배에 안 오는 것입니다. 처음에는 귀국 준비 때문에 조금 늦겠지? 하면서 기다리고 있었는데 결국 오지 않았습니다. 주인공 없는 광고를 하려니 얼마나 뻘쭘하던지 화가 머리 끝까지 치밀어 올랐습니다. "아니, 세상에! 지금 누구를 위해 준비한 시간인데 안 와?" 예배가 끝난 후 결국 정을 절제하지 못하고 성도님들 앞에서 화를 내고 말았습니다.

성도들 앞에서 못난 모습 보이기 싫어서 잠시 방안에 들어가서 기도를 하는데 세미한 주님의 음성이 들려오기 시작했습니다. "마 목사, 너 이 예배가 사람을 위해 준비한 예배라고 생각하느냐? 너 입으로는 나를 위한 예배라고 말은 잘하더라? 오늘 너의 말과 얼굴 표정이 정말 나를 위한 것이드냐? 나는 오늘 너의 예배를 받기 원했었는데....." 안타까워 하시는 주님의 음성을 듣고 너무 부끄러워서 주님께 아무 대답도 드릴 수가 없었습니다.

감사한 것은 제 못난 모습을 오후 예배 때 바로 주님과 성도님들 앞에 고백하며 회개할 수 있었던 것입니다. 그리고 그 자매님에게 잠시라도 미워하고 서운했던 감정을 가졌던 것을 공개적으로 용서를 구했습니다. "아! 나는 언제 하나님만 의식하며 예배할 수 있는 사람이 될수 있을까...."

그러고 보니 오늘 또 임재하시는 하나님을 놓쳤던 것입니다. 지난번 형제교회 목사님들과의 모임 때 함께 나누었던 핵심 내용이 하나님의 임재 연습이었는데, 하나님의 임재하심을 오늘 나의 인간적인 계산과 감정 때문에 놓치고 말았던 것입니다. 그 날 이후로 계속해서 나의 생각과 나의 말과 나의 표정과 나의 행동 속에 하나님의 임재하심을 강력하게 체험하고 느끼게 하옵소서! 라고 기도했지만 순간 순간 그것을 놓쳐버리는 연약함을 보게 됩니다. 그런 연약함을 갖고 있기에 이 순간에도 임재하시는 하나님을 놓치지 않기 위하여 안간힘을 쓰게 됩니다. 그래서 정말 주님과 교통할 수 있는, 주님이 기뻐하실 수 있는 예배자의 자리로 나아가기 소원합니다~

최현숙

2007-10-16 18:21:48

모든 만물은 들어 오는 것이 있고 나가는 것이 있을 때 건강하다.
관계도 마찬가지이다. ‘나는 너를 위하고, 너는 나를 위하고’ 이보다 더 건강한 관계는 없다. 건강한 그리스도인이 되기를 원하는가? 노아처럼 이렇게 살면 된다. ‘하나님은 나를 위하여 나는 하나님을 위하여’]
하나님께서 예배의 말씀을 주시려고 이번주일엔 여러가지 사건을 경험하게 하셨나 보다.
결론은 그 어떤 것에도 예배와 또한 하나님의 임재를 방해하는 것과는 타협할 수 없다는 것을 다시 한번 절실히 느꼈다. 예수님! 깨달을 수 있는 영적인 눈을 주심 감사합니다.

주일이 오기전 토요일을 나는 늘 긴장된 감정으로 보내고 있다. 예전에 내 모습과 비교하면 있을 수 없는 일이지만… 이런 긴장감을 갖는다는 것이 부담스럽고 힘들 때도 있다. 그래서 어느날인가는 이런 느낌 갖고 싶지 않다고 주님께 솔직히 고백을 한 적이 있었다. 하지만, 그것은 내 육의 사람의 감정이라고 주님께서 말씀을 하셨다. [육신의 생각은 사망이라…] 주일 예배를 위해서 제일 치열하게 영적 전쟁을 치르고 계시는 분이 바로 목사님이기에 목사님을 위해서 그리고 예배를 방해하는 사탄의 권세에 무너지지 않게 해 달라고 기도의 제단을 쌓게 됨을 본다. 기도로 준비하는 주일예배와 그렇지 못한 예배의 차이를 내 스스로가 느끼게 되었고 보게 됨이 하나님께 감사할 뿐이다. 예배는 내가 하나님 만나려 가는 것이 아니라 하나님 됨을 진심으로 찬양하는 것이라고 했다.
말씀을 통해서 예배의 귀함을 다시 한번 묵상케 하고, 귀한 것을 더욱 사모할 수 있는 마음 주심 감사합니다. 진심으로 하나님께 감사드립니다.

유광옥

2007-10-16 19:10:33

자신을 보지 말고 하나님만 바라보라. 자신의 만족을 구하지 말고
오직 하나님의 만족을 구하라. 어떻게 하면 하나님의 기쁨과 만족이 될까?
이 일에만 계속 집중하라. 예배에서 내가 무언가를 받으려고 해서는 안된다.
예배는 받는 것이 아니라, 드리는 것이다. 내가 하나님을 위해
마음을 드리고, 정성을 드리는 것이다.

언제 부터인가 예배에 대한 나의 인식이 바뀌게 되었다.
예전에는 예배 잘 드리면 하나님이 복을 주시겠지
예배를 안 드리면 괜시리 찜찜하고 벌을 주실 것 같아
그래도 빠지지 않고 나가려고 노력했던 적이 있었다.
지금은 목사님께서 늘 예배에 대해 설교 해 주셔서
예배는 나를 위한 것이 아니라 하나님을 위해 드려야
한다는 생각으로 임하게 된다.
그래서 토요일은 특별한 것이 아니면 스케줄을
잡지 않는다. 주일 보다 토요일 날 더 많이 사탄의
방해가 있는 것을 자주 느낄 때가 많았다.
토요일을 잘 보내지 않으면 주일을 온전히 드리지 못하는
경우가 많은 것 같다.
주일 예배도 내가 온전히 준비하고 신령과 진정으로
드리면 은혜가 배가 되는데 피곤하고 지킨 상태에서
예배에 임하면 정말 예배당만 차지하고 있다가
오는 경우도 있었다.
물론 축복에도 관심이 있다.
하지만 온전히 주님을 높여 드리고 온전히 예배를
드리고 주님의 기쁨 되려고 노력 한다면 그 축복은
저절로 따라 온다는 것을 알기에 감사하다.
앞으로도 나를 위한 예배가 아니라 하나님을 위한
온전한 예배자가 되기 위하여 여러가지로 더욱
노력하고 예배를 위해 기도하며 나아가는
내가 되기를 소망한다.

이정미

2007-10-16 19:19:38

너를 위하여 - 여호와를 위하여
당신이 지금 신경써야할것은 그가 나를 위허여가 아니라
내가 그를 위햐여이다 그가 나를 위하여는 그의 몫이고
내가 그를 위하여야만 내 몫이기 때문이다.

하나님의 마음
선아가 초등하교 다닐때 담임 선생님의로 부터 한통의 전화를 받았다.
오늘 학교에 오지 않았다는것이다. 깜깍놀라 어찌된 영문인지 아이에게 물어
보았드니 등교길에 친구랑 놀다보니 늦어 지각했는데 교실에 아이들이 아무도
보이지 않았다는 것이다 그때는 오전 오후반 나누어 공부 했는데 그날 오후반 수업은 과학실에서 공부하는데 늦게가서 보니 아무도 없었어 그시간 이후 마냥
친구와 함께 놀다온거지요.
그날 남편이 그렇게 무섭게 혼내는 모습을 처음 봤어요
선아는 대나무 막대기로 종아리를 30대를 때리는데 소리가 조금이라도 나면
다시 또 다시 이렇게 해서 얼마나 심했는지 무밖에서 그만 하시라고 해도
도무지 멈추지 않았다
중간에 성민이가 아빠 용서해주세요 제가 대신 10대만이라도 맞을께요
간신히 10대를 맞았다,
그리고 아이의 다리를 보고난다음 기절하는줄알았다
피멍과 얼마나 많이 부어올랐는지 손이떨리고 가슴이 저미어 올랐다
그것보다 그 가슴아픈것은 침대뒤에 숨죽여 우는 남편의 모습이디
선아의 다리 상처보다 남편의 신음소리가 더 눈물이 났다
하나님께서도 우리를 진정으로 사랑하시기에 아픔을 통하여 깨닫기
원하시고 노아가 방주에서 내리자 먼저 정성껏 예물을 준비하여
예배를 드리는 모습이 임을 알수 있습니다,
예배의 목적을 알기에...
하나님의 기쁨이 되기 위해서
진정과 신령으로 드리는 살아있는 예배
하나님을 위해 마음을 드리고 정성을 드린예배를 통하여 더가까이
하나님의 기쁨이 되길 원합니다

백인화

2007-10-16 21:06:34

“무엇을 하는가도 중요하지만, 그것보다 더 중요한 것은 그것을 하는 동기와 목적이다. 예배를 드리는 것보다 더 중요한 것은 예배의 동기와 목적이다. 예배의 목적은 오직 한가지 밖에 없다. 하나님의 기쁨이 되는 것이다. 하나님의 만족이 되는 것이다. 예배는 ‘하나님을 위해’ ‘하나님께’ 드리는 것이다.”

아이들을 키우면서 예배를 하나님께 드려지는 시간으로 생각하지 못하고 저의 사라진 기쁨을 회복하고 고갈된 만족을 채우는 시간으로 여길 때가 많았습니다. 아이들이 저를 힘들게 하거나 귀찮게 하지 않고 혼자서 잘 놀아주고 유아실 분위기도 차분해서 성가대의 찬양이나 설교말씀을 잘 들은 날은 기분도 좋고 영의 양식도 잘 먹어서 배가 부르다며 하나님도 좋아 하실꺼야 라고 생각했고 아이들이 떼를 쓰거나 들락날락 거려서 신경을 쓰고 시끄러워서 말씀을 전혀 듣지 못한 날은 어수선한 아이들을 향해 예배시간에 짜증을 내거나 혼을 낼 때도 있었습니다. 하나님을 위해, 하나님께 마땅히 드려야 할 기쁨의 감사대신 제 마음의 상태에 따라 예배드리는 환경 때문이라면서 불평의 한숨을 지을 때가 있었습니다. 제 안에 성령의 충만하심이 있을 때는 하나님을 바라보며 비좁은 유아실에서 옹기종기 모여 있는 아이들이 한없이 예쁘기만 한데 제 안에 하나님을 바라보는 영적인 눈이 어두워 있을 때는 저 자신밖에 보지 못하는 연약함만을 드러내는 예배시간이었습니다.

“환경이 천국을 만드는 것이 아니라, 남을 배려하는 마음이 천국을 만든다. 서로가 서로를 먼저 챙겨주고, 걱정해 주고 신경 써 주고, 위로해 줄 때, 그 곳이 가정이든, 교회든, 회사든, 학교든 천국으로 화한다.”

주선이가 저와 떨어지지 않기 때문에 힘들고 아이들만의 공간이 없어서 힘들고 분리된 공간이 없어서 예배의 분위기가 잡히지 않아서 힘들다고 핑계 대며 여기까지 왔는데 이제는 더 이상 핑계거리가 없어졌습니다. 주선이도 저와 떨어지고 넓고 분리된 공간 활용이 가능한 새로운 성전으로 드디어 이전했기 때문입니다. 더 이상 제 입에서 환경 때문에 예배드리기 힘들다는 말이 나올 수 없는 상황입니다. 정말 이제까지 하나님은 저를 위해 너무도 많은 것을 해주셨는데 감사한 것을 세어보지 못하고 환경만을, 다른 사람들만을 탓하며 살았습니다. 세상에서 힘들어 하던 저를 방주에 태워주셨고 새로운 땅으로 인도해 주셨고 먹을 것과 입을 것과 남편과 자녀들과 하나님의 기쁨이 되어 섬길 수 있는 교회와 지역사회를 허락해 주셨습니다. 남은 것은 제 안에 ‘순수하고 아름다운 예배의 모습’이 회복되는 것뿐입니다. 문제는 하나님께로 부터만 공급받는 천국의 마음이었음을 깨닫습니다.

“나는 하나님을 위해 무엇을 할 수 있을까?”

기쁨과 감사가 넘치는 삶으로 드리는 예배가 회복되어야 함을 절감합니다. 제 안에서부터 그리고 가정에서 아이들과 함께 드리는 예배를 회복하는 것이 요즘의 간절한 기도제목입니다. 성전만 새로운 곳으로 이전하는 것이 아니라 제 마음과 생각과 행동도 새롭게 되길 원합니다.
‘하나님 얼마나 마음이 아프세요. 말씀하지 않아도 저는 다 알아요. 그런 힘든 와중에도 이 못난 놈을 살려 주시려고 세심하게 신경까지 써 주신 것도 알아요. 하나님 감사해요. 하나님 제 마음이에요. 받아 주세요. 힘내세요. 하나님 사랑해요. I love you God!’ 목사님의 말씀처럼 정말 끊이지 않는 감사의 고백이 기쁨으로 언제나 흘러넘치는 그런 복된 예배가 날마다 숨 쉬는 순간마다 오직 하나님만을 위해서 드려지기를 간절히 소망합니다.

박유진

2007-10-16 23:24:00

* 주님의 심정
지금까지, 노아의 홍수와 인류의 멸망 이야기를 들으면서, 주님의 심정에 대해서 생각해본 적이 한번도 없었다. 그냥 무미건조하게 성경을 읽으며 지나쳤고, 마치, 옛날이야기가 씌여진 것처럼 창세기를 읽곤 했다. 그런데, 부모와 아이에 대한 비유를 통해 하나님의 그 심정을 조금이나마 알게 되었다. 1살짜리 선호가 말을 안 들을 때, 가끔 손등을 찰싹 소리가 나게 아프게 때릴 때가 있다. 아기 손이라 약해서 어떤 때는 빨갛게 붓기도 한다. 그럴때면 가슴이 미어진다. 어떻하나..아팠을텐데...어쩌자구 아가를 저렇게 세게 때렸을까..하며...아기 손등 하나 때린 것도 이렇게 속이 상한데, 하물며 손수 지으신 사람을 한두명도 아니고 전부 멸망시키려고 하셨을 때, 주님의 심정은 어떠셨을까. 얼마나 고통스러우셨을까 상상도 할 수 없다. 그런데, 노아는 그런 주님의 심정을 알아서 위로해드린 사람이었다니...나는 하루에 하나님 생각을 얼마나 하는지...나의 창조주, 나의 아버지, 나의 구원자인 하나님을 위해서 나는 얼마나 내 자신을 드리고 있는지...

* "‘나는 하나님을 위해 무엇을 할 수 있을까?’
‘나는 가족을 위해 무엇을 할 수 있을까?’
‘나는 교회를 위해 무엇을 할 수 있을까?’
‘나는 이웃을 위해 무엇을 할 수 있을까?’
이 고민이 당신을 위대한 인물로 만들 것이다."

지난 토요일날, 나흘간의 출장지에서 돌아온 남편이 몹시 앓았다. 감기 몸살이었는데, 오늘까지도 낫지 않는 지독한 감기에 걸렸었다. 그렇게 아픈데도, 나의 지난 생일 선물을 사주겠다고 쇼핑센터까지 나갔다왔었다. 그런데, 나는, 남편이 아파서 누워있어서 아기 돌보는 것, 빨래, 청소, 요리, 설겆이 등등을 모두 혼자 해야 하는 것에 상당히 불만을 가지고 있었다. 이렇게 바쁜데, 잠시만이라도 아기를 봐주면 얼마나 좋을까, 하는 생각에 사로잡혀서, 남편을 위해서 뭐 해준 것도 없으면서, 마음은 계속 원망을 하고 있었다 (이럴 때일 수록 선호는 왜 더 집안을 어질러 놓는 것인지...). 이런 엉망인 마음 상태로 토요일을 보내니, 주일날 하나님께 온전한 예배를 드릴 수가 없었다. 지금 생각해보면, 기쁘게 감당해야할 그 모든 일들이, 나 자신이 힘들고 불편하다는 이유로 사탄에게 내 마음을 모두 내 주었던 것이다. 나보다는 주님을 먼저, 가족을 먼저, 남을 먼저 생각하는 내가 되도록, 마음을 지키도록 기도해야 겠다.

* 노아의 예배
내가 여태껏 드린 예배 중에서 하나님께서 기쁘시게 받으셨던 예배가 도대체 얼마나 있었을까.
지난 속장 세미나 때, 어떤 집사님께서 주일을 위해 토요일 늦게까지 하던 일을 금요일날 모든 일을 마쳐놓으셨다는 나눔을 듣고 큰 찔림이 있었다. 나도 이번주 부터는 금요일까지 모든 일을 마치고, 온전하게 주일을 위해 토요일을 예배를 위한 기도로 준비해야 겠다고 결심했다. 토요일을 지키지 못하면, 그 영향이 주일까지 미치기 때문에, 예배에 온전히 집중할 수 없기 때문이다.
기도의 제단으로, 정결한 예배를, 미리 준비한 예배를, 하나님의 기쁨만을 생각하는 예배를 드리도록, 예배에 승리하도록 결단한다.

주님, 저의 힘 만으로 될 수 없사오니, 온전히 승리하도록 붙들어주세요...

서조은

2007-10-17 00:01:41

한 사람도 아니고 모든 인류를 자신의 손으로 죽였어야 했으니 이것은 하나님 자신에게 제일 잔인한 일이었을 것임이 분명하다.


이번주 주일 예배때에 이곳저곳에서 눈물을 닦는 소리가 들렸습니다.
저도 순간 콧끝이 찡~해졌었죠..
부모님의 그 크신 사랑.. 그 사랑을 모르는 사람은 아마 없을 겁니다.
하지만 '부모가 되지 않으면 그 마음을 모른다' 는 말처럼 우리가 알고
느끼는 것은 부모님의 마음의 극히 작은 일부라는 생각이 듭니다.

예전에 저희 엄마가 전화 통화중에 조심스레 제게 이야기를 꺼내셨습니다.
" 지난번에 병원에 갔더니 명신이 피검사 결과가 이상하다고 해서 재검사를
하고 왔어.. 그날 부터 혹시 명신이가 큰병이 있는건 아닌지 두려운 생각이
들어서 아빠 저녁도 못차려드렸지 뭐야.. 근데 오늘 재검사 결과가 나와서 가서 보니 정상이라고 하네^^ "

저는 그 얘길 듣자 마자 " 엄마는 그런일 있었으면 빨리 말했어야지
왜 이제야 말해??"라고 소리 쳤습니다.

하지만 저도 압니다.
명신이가 아플까 걱정되었던 마음 한편엔 제가 그 소식을 듣고 속상해할 것이
더 걱정되어서 말못하고 혼자 숨기고 맘조렸을 엄마의 심정을요..

목사님께서 하나님의 마음을 알라고 보낸것이 세상의 부모님이라는 말이
갑자기 떠오릅니다.

우리 하나님도 이러시겠죠??
저보다 절 더 걱정하시고 염려 하셔서 늘 노심초사 하시겠죠..
이제 그런 하나님의 마음을 헤아리며 생활을 하고 싶습니다.

예배때에 나의 아픔과 삶을 위로 받으려고만 했지,
하나님의 마음엔 전혀 관심이 없었던것 같아요..

노아할아버지 처럼 하나님을 위한 예배를 드리고 싶네요.

홍은미

2007-10-17 01:39:20

100점짜리 예배를 드리고 싶은가? 자신을 보지 말고 하나님만 바라보라. 자신의 만족을 구하지 말고 오직 하나님의 만족을 구하라. 어떻게 하면 하나님의 기쁨과 만족이 될까? 이 일에만 계속 집중하라. 예배에서 내가 무언가를 받으려고 해서는 안된다. 예배는 받는 것이 아니라, 드리는 것이다. 내가 하나님을 위해 마음을 드리고, 정성을 드리는 것이다.

그 동안의 나의 예배는 참으로 형식적이었다는 생각이 듭니다. 당연히 주일이니까.. 언제부터인지는 모르겠으나 그렇게 주일이면 당연히 교회 가야하니까, 예배를 드려야 하는 거니까, 예배를 빼 먹으면 나의 생활이, 일주일의 모든것이 편치 않으니까, 또는 사람들을 만나러... 이런식으로 내 마음의 평안을 위해, 나 편하고자 예배를 드렸던 것 같습니다.

하지만 이것은 진정한 예배가 아니었습니다. 하나님을 기쁘시게 하는 예배가 아닌 제 만족을 위한 예배였으니까요.. 하나님이 주인공이 아닌 제가 주인공이 되어 예배를 드렸으니까요.. 제가 예배를 드리지 않으면 하나님께 복을 받을 수 없을 거 같아 눈치보는 예배를 드렸으니까요...

학교는 늦지 않으려고 기를 쓰고 가면서도 교회는 늦어도 느긋하게 갔던 제 모습이 너무 부끄럽습니다. 어릴 때는 헌금도 미리 준비해서 갔었는데.. 언제 부턴가 그냥 지갑에서 허름한 돈을 꺼내 드린 것이 너무 부끄럽습니다. 말씀 시간에 집중하지 못하고 세상 고민, 걱정 혼자 다 하며 말씀을 들었던 제 자신이 너무 부끄럽습니다.

하나님, 이런 저의 모습이 너무 안타까우셨죠? 그래도 한 번도 저를 채찍질 하지 않으시고 변함없이 사랑해주시고 위로해 주시고 함께 해 주셔서 감사합니다. 이제는 제가 하나님께 위로를 드리고 기쁨이 되고 싶습니다. 마음과 정성을 다하는 저의 예배 기대해 주세요. 하나님 사랑합니다.

신정은

2007-10-17 01:55:36

★부모가 자식을 매질할 때 누가 더 아프겠는가?
당연히 부모가 더 아프다. 자식은 다리로 매를 맞지만, 때리는 부모는 가슴으로 매를 맞기 때문이다. 자식은 눈으로 울지만 부모는 가슴으로 울기 때문이다. 죄악으로 멸망 당하는 사람들보다 멸망시켜야 했던 하나님이 훨씬 더 괴로웠을 것이다.

내가 대학생 때, 한참 사춘기인 여동생의 이해할 수 없는 태도에 화가 나서 나름대로 참고 또 참다가 뺨을 한 대 때린 적이 있다. 그런데, 내 손바닥이 동생 뺨에 닿는 순간, 내 마음이 어찌나 찢어질 듯 아픈지 돌아서서 펑펑 울었다..지금까지 그 순간이 잊히지 않고, 그 후로는 다시는 때리지 않을게 하고 동생에게 선포한 후에도, 마음은 계속 아팠다. 그리고 바로 그때, 아..날 때린 부모님 마음이 이러했겠구나…. 하고 부모님의 심정을 이해했던 것 같다.
그런데 하물며 자신이 만드신 인류를 물로 쓸어버리신 우리 하나님의 마음은…
지금도 이해한다고 생각하고 있지만, 부모가 되어보지 않고서야 부모님의 마음을 헤아릴 수 없듯이, 내가 어찌 주님의 심정을 가슴깊이 이해할 수 있을까.
사실 노아의 이야기에서, 노아는 은혜를 입은, 구원받은 축복의 사람으로서, 하나님이 타락과 부패로 썩어가고 있는 인류를 멸망시키기 위해 노아를 선택하시고 방주를 만드시게 했다는 것까지만 생각했지, 그때 하나님의 심정에 대해서는 미처 생각하지 못한 것이 참으로 부끄럽다.
그럼에도, 아직도 나는 끊임없이 죄를 짓고, 또 죄인지 알면서도 반복적으로 죄를 짓는다. 이런 나를 보면서 또 하나님은 얼마나 가슴 아파하시고 슬피 우시고 계실지, 너무나 죄송스럽다...하나님의 마음을 아프게 하지 않는, 슬프게 하지 않는 딸이 되도록 노력하고 싶다.

★예배는 받는 것이 아니라, 드리는 것이다. 내가 하나님을 위해 마음을 드리고, 정성을 드리는 것이다.

나는 항상 주일 예배 시간이 되면, 습관적으로 이렇게 기도한다.
“오늘 예배가 하나님을 기쁘시게 하는 예배가 될 수 있도록 제 마음이 온통 하나님께만 집중하여 하나님께만 영광 돌리는 예배가 되게 하여 주세요!”
하지만 예배가 시작되면, 이런 내 기도와는 달리, “오늘 목사님은 어떤 말씀을 주실까. 지금 내 심정에 딱 맞는 말씀을 주셨으면.., 오늘은 하나님이 내게 어떤 은혜를 주실까!” 라는 그저 받으려고만 하는 생각으로 예배에 임하게 된다. 그러나 말씀을 통해 많은 찔림을 받았다. 나의 상황을 변화시켜 주십사, 나의 고난을 축복으로 변화시켜 주십사 하나님의 눈치를 보면서 드린 예배였던 것이다. 진심으로 회개합니다.
정말 나의 어떤 목적이 있어서 하나님께 가식적인 예배를 드리는 것이 아닌, 온몸과 마음으로 우러나서, 기쁜 마음으로 하나님이 만족 하시는 100점짜리 예배를 드릴 수 있도록, 정신 똑바로 차리고 예배의 매순간 깨어있어야 함을 깨닫습니다.
나의 마음을 만져달라고 애원하기 전에, 먼저 하나님의 마음을 헤아리고 예배 드리는 예쁜 딸이 되도록 노력하겠습니다. I love you my GOD!!

지영민

2007-10-17 02:13:09

--- 예배에서 내가 무언가를 받으려고 해서는 안된다. 예배는 받는 것이 아니라,
드리는 것이다. 내가 하나님을 위해 마음을 드리고, 정성을 드리는 것이다.
‘나는 어떤 일이 있어도 이 예배를 통해서 하나님을 기쁘시게 할 거야!’
내가 만족하는 예배가 아니라, 하나님이 만족하시는 예배가 살아 역사하는 예배임을 잊지 말아야 할 것이다. 하나님을 기쁘시게 하는 가장 탁월한 방법은 바로 ‘예배’이다. ---

지금까지 나의 예배를 드리는 자세는 말그대로 '드리는' 이 아니라 '받으려는' 자세였습니다. 하나님 말씀 하소서 제가 받겠습니다. 이런 식이였습니다. 내가 이렇게 정성을 다해 준비하고 갔으니 하나님 그에 맞게 부어 주세요... 이것이 맞는 줄 알았습니다. 그래서 몸과 마음을 다하여 라는 것은 내가 그렇게 드릴 때만 하나님께서 그에 맞게 주시는 것이라는 '주고 받기 식' 로 여기게 되었습니다. 이렇게 잘못된 모습이였기에 오늘 영 은혜를 못 받았네... 오늘의 예배는 만족스러워 또 오늘 예배는 그렇지 않았어...하고 내 나름대로 하나님의 예배를 평가하기도 했습니다. 이런 나의 모습을 보시고 하나님께선 얼마나 편치 않은 예배를 받으셨을까 생각하니 너무 죄송스러울 따름 입니다. 잘못된 예배자의 모습을 통해 많은 어려움도 있었지만 이젠 예배의 중심이 오직 하나님임을 알기에 이젠 어떤 모습이나 형상을 따라가는 것이 아닌 오직 하나님만을 생각하며 예배에 임하게 되었습니다. 하나님을 위하여 어떻게 할까? 오늘 이 예배를 통해 하나님께 무엇을 드릴까?
노아처럼 귀한 고민을 하는 모습이 내 안에도 동일하길 원합니다. 예배 가운데 임재하신 하나님을 바라보며 노아처럼 하나님의 뜻을 헤아리는 올바른 예배자의 모습이 내 안에 항상 넘쳐나기를 기도합니다.

이지영

2007-10-17 02:13:56

자신이 손수 만든 사람들을 모두 자신의 손으로 죽이지 않으면 안되었던 하나님의 심정을 생각해 보았는가?

목사님의 입에서 나온 이 말씀...들은 순간..눈물이 나오지 않을 수가 없었다..마음이 아프지 않을 수가 없었고....
그렇구나..그래서 이제까지 ..하나님이 참으시는거구나....라는..깨달음이 왔습니다.
저는 아직 결혼을 하지 않고, 아이가 없기때문에 아이에대한 부모의 사랑을 안다고 말할 수 없습니다...
비유가 적절할지 모르겠지만....강아지등 애완동물은 키워본적이 꽤 있습니다...그 강아지를 할 수 없이 죽여야한다는것을 상상해보니..너무 마음이 아팠습니다...자기가 키운 동물이라도, 이렇게 마음이 아픈데...손수 만든 사람들을 직접 죽이지 않으면 안되는 하나님의 심정이라.....아...마음이 아픕니다...
우리 하나님..얼마나 많이 슬퍼하시며 우셨을까.....
그리고 나또한 하나님아버지의 마음을 얼마나 많이..아프게 했을까...
가슴이 저려왔습니다.

오늘도 하나님아버지의 은혜에 감격하지 않을 수 없네요...아버지를 사랑합니다.

김정아

2007-10-17 02:58:05

나는 하나님을 위해 무엇을 할 수 있을까?’
‘나는 가족을 위해 무엇을 할 수 있을까?’
‘나는 교회를 위해 무엇을 할 수 있을까?’
‘나는 이웃을 위해 무엇을 할 수 있을까?’
이 고민이 당신을 위대한 인물로 만들 것이다.


하나님을 사랑하고 이웃을 사랑하라는 가장 크고 첫째, 둘째 되는
계명이 여기에 다 포함되어 있음을 봅니다. 그리고 지금 내가 서
있는 이 자리 이 위치에서 내가 할 수있는 일들을 떠올려 봅니다.
하루 동안 살면서 어쩌면 내가 아닌 다른 누군가를 위해서라기 보다
나의 이익과 나의 관점에서 살아가는 이기적인 모습이 더 많지는
않았는가 반성하고 뒤돌아 보게 되었습니다.
하루동안 얼마나 하나님을 위해서 살았으며 ,
가족을 위해 무엇을 했으며, 이웃과 교회를 위해 내가 한 일은...
하루 24시간 안에 과연 얼마나 차지할까...
우리가 죽든지 살든지 주를 위해서라고... 찬양할 때는 정말
은혜롭게 찬양하지만 세상으로 나가 세상 속에서 살아갈 때는
주님은 온데 간데 없고 시간의 주인공은 내가 되어 버린 채 나를
위해서 시간을 쓰고 선택하고 행동하고....
그래서 늘 하나님을 의식하며 하나님의 임재를 느끼며 살아가는
것이 중요하다는 생각이 듭니다.
하나님을 사랑하고 이웃을 사랑하며 교회와 가족을 섬기는 주의
종된 모습으로, 낮은 자의 모습으로 설 수 있는 내가 되길 소망합니다.

박은주

2007-10-17 03:57:15

나는 하나님을 위해 무엇을 할 수 있을까?’
‘나는 가족을 위해 무엇을 할 수 있을까?’
‘나는 교회를 위해 무엇을 할 수 있을까?’
‘나는 이웃을 위해 무엇을 할 수 있을까?’
이 고민이 당신을 위대한 인물로 만들 것이다.
노아의 이 위대한 고민이 지금 당신의 최고의 고민이 되길 축복한다.
주일날 예배시간이면 진수때매 정신이 하나도 없습니다. 찬양에도 기도에도 말씀에도 온전히 집중할 수가 없습니다. 정말 어떤 날은 집으로 돌아오면 허무한 마음까지 듭니다. 그렇게 먼거리를 예배드리러 갔다왔건만 몸에 피로만 남아 있을 뿐이었으니깐요.
교회에 아이들이 많이 늘어나는 것은 참으로 감사한 일중의 하나입니다. 하지만 애기엄마들이 예배에 더 집중해서 잘 드릴 수 있도록 기도로 준비하고 지혜를 구해야 할 것을 많이 깨닫습니다.
진수때매라고 핑게대면서 하나님께 대충 드렸던 예배, 회개합니다.
이번주에는 김모집사님이 애들 장남감을 많이 가지고 오셔서 애들이 장난감에 집중하면서 저도 좀더 예배에 집중할 수 있었습니다. 역시 지혜로우신 집사님께 감사했고 한수 배웠습니다.
아침에 남편이 성가대를 하기 때문에 오전10시면 교회에 도착합니다. 아침에 교회와서 보면 주목자분들의 도시락을 만드시는 분들, 성가대로 봉사사하는 분들, 예배당을 청소하시는 분들, 주일학교선생님들, 어른들 예배시간에 아이들을 봐주시는 분들, 점심식사를 준비하시는 분들, 또 주일날 뿐만이 아니지요.
토요일은 찬양팀연습, 교회꽃꽃이, 청소, 주일학교선생님들과 행사를 준비하시는 어머님 등등
저는 이분들에게서 참예배자의 모습들을 봅니다. 하나님께 부단히 뭔가를 드릴려고 하는 모습이 너무 은혜스럽고 아릅다웠고 제 자신이 많이 회개가 되었습니다.
예배, 내 삶가운데 살아나길 원합니다.

정승은

2007-10-17 04:43:29

1.주님의 심정.
부모가 자식을 매질할 때 누가 더 아프겠는가?
당연히 부모가 더 아프다. 자식은 다리로 매를 맞지만, 때리는 부모는
가슴으로 매를 맞기 때문이다. 자식은 눈으로 울지만 부모는 가슴으로 울기
때문이다.

이 부분에 대해서는 자식을 기르고 있기 때문에 아주 조금은 이해할 수 있을
것 같다.현재 진욱이에게는 형제가 없기 때문에 조금더 엄하게 키우려
하다보니, 생각보다 자주 내 손에 매가 들려있고는 한다.
사실 때리는 그 순간보다, 때리고 나서 한참을 울고 있는 모습을 볼 때,
<물론 억울하다는 표정을 지을 때는 더 엄하게 하기는 하지만..>
나에게 미안한 마음은 있지만 표현하지 못해서 울기만 하고 있는 모습을
볼 때, 혹은 이렇게 밖에 키우지 못하는 나의 지혜 없음이 스스로의 마음을
찌르며 한참 동안 그 여운이 남아 마음속으로 울고는 했던 것 같다.
그러던 얼마 전, 기도하는 가운데, 우는 것은 분명 나인 것 같은데, 마음속
깊은 곳에서 복받쳐 올라오는 울음에 스스로 놀랐던 적이 있었는데,
그때 성령님께서 내 안에서 울고 계시다는 사실을 처음으로 느꼈다.
밖으로 눈물을 흘리며 우는 것은 나이지만,나보다 더 마음 아프게 가슴을
적시며 울고 계신 분이 바로 주님이심을 깨닫게 된 그 순간, 나의 죄와
상처와 쓴뿌리를 꺼내어 내려놓고 더 오랫동안 회개하며 통곡할 수 밖에
없었다.

그러나 이런 주님의 심정을 아주 조금이지만 마음으로 느낄 수 있었음에도
불구하고, 그 일을 통해 주님의 한없는 사랑에 엎드려져 노아와 같이
온전히 주님만을 위하여 감사와 찬양으로 예배하기 보다는,
여전히 나는 나를 지금까지 지켜주시고,택하여 구원하여 주시고,세워주신
주님께 감정적인,의식적인 감사를 드리면서 주님의 심정보다 내 마음에 더
많이 집중했음을 깨닫는다.얼마나 못되먹은 인간인가?!
이런 내 모습을 순간순간 깨달을 때마다 주님의 마음을 의식적으로 구하고
있다.주님의 마음 보다는 내 간구가 우선이였던 나를 완전히 내려놓기 위해
주님의 마음을 깨닫게 해달라고 기도했었는데,주님께서는 나의 이기적인
마음이나,내욕심 때문이 아닌,또 내가 듣기 원하는 어떤 말씀이나
기도 응답 때문만이 아닌,온전히 주님께만 집중하여 영혼육 전부를 주님께
드리는 예배를 원하신다고 주일말씀을 통해 깨닫게 해주신다.
얼굴이 뜨겁고, 화끈화끈거린다.
하나님을 하나님 되게 해드리지 못한 내 모습이 한없이 부끄럽고,
죄송할 뿐이다.

2.여호와를 위하여
만약에 복을 받을 속셈으로 예배를 드린다거나, 칭찬받을 속셈으로
드린다면 그것은 결국 자신을 위해서 드리는 예배인 셈이다.
이런 예배는 이미 예배가 아니다. 인간의 욕심을 채우는 타락한 도구에
불과하다. 뭘 받아내려고 드리는 예배는 타락한 예배요, 사기성 예배이다.
100점짜리 예배를 드리고 싶은가?
자신을 보지 말고 하나님만 바라보라. 자신의 만족을 구하지 말고 오직
하나님의 만족을 구하라. 어떻게 하면 하나님의 기쁨과 만족이 될까?
이 일에만 계속 집중하라

토요일 밤이 되면 주일을 생각하며 마음으로는 기대하고,기뻐하지만,
영적으로 많은 긴장을 하고는 한다. 또 주일날은 예배를 드리는것 외에
큰 움직임이 없어도 영적으로는 충만한 반면,육적으로는 쉽게 지쳐버리기
때문에 토요일 밤에는 가능한 가사일도 쉬려고 애쓴다.
그러나 이것은 내가 드릴 예배, 그 중에서도 주일 예배 말씀을 통해 내가
은혜 받지 못하면 안된다는 사실 때문에,입으로는 주님을 향한 감사와
찬양을 위한 예배라고 말하면서도 마음 한구석엔 언제나 나를 위한 예배를
위해 준비하는 긴장과 기도였음을 깨닫게 되었다.
주일에 받은 말씀이 한 주간 내 삶의 주축이 된다는 사실 때문에 이번 주는
어떤 말씀을 주실까?내가 주님께 간구했던 기도제목들, 혹은 의문점들을
어떤 말씀으로 풀어주실까.등등 받을 말씀에 대해서만 많은 집중을 했음을
깨닫게 되었다.비수처럼 꽂히는 주님의 음성..이미 예배가 아니다.
타락한,빵점짜리 예배.가짜예배.모순덩어리 종교인의 모습!

주님의 마음을 시원하게 해드리고 싶다고 고백해놓고는 내가 정작하고 있는
행동은 주님의 마음을 싸늘하게? 만들고 있었다는 사실에 민망스럽다.
비단 주일 예배만이 아니다! 내 삶의 예배는 또 어떠한가? 청소를 하나
하더라도 청소 자체는 재물이 될 수 없으나, 찬양과 감사를 실어 기도와
함께 한다면 그것이 바로 영적 재물이 될 수 있다는 사실을 이미 제자훈련
중에 듣고 깨닫고 적용했었던 부분이였는데, 여전히 나는 주님을 위한,
주님과 동행하는 삶이기 보다는 내 감정과 내 생각,내가 우선인 삶의 예배를
드리고 있었던 것이다.주님께 드리는 삶의 영적 재물은 제대로 준비조차
못했는지도 모른다.
삶의 예배도 온전히 드리지 못한채,겨우 주일 한시간 예배만 그것도
일부만 주님께 드리려고 했던 내 모습을 주님은 참으로 오랫동안 참으셨구나,
얼마나 가슴 아프셨을까..
아무리 내 생각으로,내 의지로,내 이성으로 주님을 위한 삶으로 바꾸려 해도
혈육의 믿음으로는 너무나 쉽게 변할 수 있음을 깨닫는다.
오직 성령께서 내 전부를 주관하시는 삶으로 나를 포기하고 내려놓는 삶을
살때, 주일 예배도,삶의 예배도 매일매일 주님의 나라를 꿈꾸며,주님만을
위한 감사와 찬양으로 드려질 수 있음을 깨닫게 해주심을 감사드린다.

[오늘은 친정 아버지의 생신이시다.사정상 어젯밤에 생신축하 전화를 미리
드렸다. 쌀쌀해지는 날씨를 생각하며 따뜻한 외투 한번 사드리지 못한 것,
식사라도 함께하고,축하해 드릴 형제도 없이 쓸쓸하게 엄마와 단둘이 생신을
맞이하게 해드려서 마음이 아팠다.
이런 마음을 전하자,친정아버지께서는 후일을 기약하시면서 그 마음에
고마워 하셨다.바로 그때 진욱이가 전화를 이어 받고는
[할아버지! 생일 축하드립니다.건강하세요.[연습한대로 말씀드린 뒤에,]
근데 할아버지! 할아버지 생일 끝난 다음에,이제 내 생일이예요.알지요?]
라고 하는 것이였다.
의미는 할아버지 생신은 이미 축하해드렸고, 이제는 곧 본인의 생일이
돌아오는데, 할아버지가 올해는 나에게 무슨 선물을 사줄건가?! 하는
기대감을 표현한 것이다.
다같이 웃으면서 전화를 끊었지만, 나는 바로 3살짜리 진욱이의 모습이
내 모습이라는 사실을 순간 깨닫게 되었다.
[저는 이렇게 주님께 감사함으로 예배드리고 있어요.
이렇게 보잘 것 없는 저와 가족을 지켜주시고, 말씀과 기도를 통하여
은혜 주시고,끊임없이 제게 말씀과 기도로 동행해 주시길 원하시는 주님
감사합니다. >>그런데요,주님! 저는 오늘 이런이런 고난이 있으니,
이 문제 해결해 주세요.이거저거 꼭 응답받고 싶은데 꼭 응답해 주세요!]
라고, 끝에는 나의 문제와 간구를 빼먹지 않는 나의 모습이….
오늘은 차마 말로 표현하기조차 힘들만큼 죄송할뿐이다.
주님!
이젠 정말 하나님을 하나님되게 해드리고 싶습니다.
이런 제 모습..용서해주세요…
그럼에도 이런 저에게 예전보다,어제보다 오늘 더 주님을 사랑하는
맘 주셔서 정말 감사드립니다.주님께만 집중할 수 있길 기도합니다.]

양미옥

2007-10-17 05:19:38

노아는 방주에서 내리자 마자, ‘하나님이 이제 자신을 위해 뭘 해 주실까’ 생각하지 않고, ‘내가 하나님을 위해 무엇을 할 수 있을까?’를 먼저 생각한 사람이었다. 이것이 노아의 위대함이요, 능력이요, 하나님이 감동하신 일이다.

노아 할아버지의 위대한 일 하나님을 감동시킨일.. 여호와를 위하여..
주일날 예배드리면서 은혜를 많이 받았고 저의 예배 자세에 대해 다시 돌아보게 되는 귀한시간이었습니다. 노아는 하나님을 위해 그가 가졌던 것중에 최고의것으로 하나님께 드리고 내가 하나님을 위해 무엇을 할수있을까를 먼저 생각하였던것 자체가 도전이됩니다. 과연 나와 비교해볼때 나는 하나님을 위해 라는 생각을하면서 사는지.. 하나님을 위하기보다는 솔직히 나를 위한 삶이 더 많았다고 하는것이 답인것입니다. 매순간 힘든일이라든지 어려운일이 닦치면 급하게 하나님을 찾고 평소에 내가 편안할때 하나님을 찾기 보단 내 방식대로 해결해보려는 일들이 많았던것같습니다. 작은 일은 이정도쯤이야..하는교만한 마음..이런 마음을 갖고 있는데 어찌 하나님을 생각할수있겠습니까.. 회개합니다.. 노아가 하나님의 명령의 순종하고 또한 무명령으로 하나님께 영광 돌리며 하나님의 마음을 흡족하게 하였듯이 저의 모습도 그렇게 되길 소망합니다. 현재의 위치에서 내가 있는 그곳에서 하나님을 위해 무엇을 할수있을지를 생각하고 영의 일을 생각하므로 하나님의 기쁨이 되는자가 되길 소망합니다.

하제란

2007-10-17 05:19:43

예배의 목적은 오직 한가지 밖에 없다. 하나님의 기쁨이 되는 것이다. 하나님의 만족이 되는 것이다.

창 8:20 이 한 구절에서 너무나 심오하게 예배는 이렇게 드려야 하는 것이라는 것을 풀어 말씀하시는 것을 듣고 한층 더 예배를 드리고 있는 내 모습을 돌아보게 됩니다. 하나님의 기쁨이 곧 나의 기쁨이 되는 예배가 될 것이고 하나님의 만족이 나의 더할 수 없는 삶의 풍성함으로 거듭나는 예배가 될 것입니다. 이 말씀의 들음이 내 안에서 하나님께 온전하게 드리는 예배의 모습으로 새롭게 되기를 바랍니다. 온전히 나를 드릴 수 있는 예배를 드리는 내가 되기를 기도 합니다.

이용준

2007-10-17 05:22:34

당신은 지금까지 누구를 위하여 예배를 드려 왔던가?

오직 온유한 자는 땅을 차지하며 풍부한 화평으로 즐기리로다.
악인이 의인 치기를 꾀하고 향하여 그 이를 가는도다.
주께서 저를 웃으시리니 그날의 이름을 보심이로다.
악인이 칼을 빼고 활을 당기어 가난하고 궁핍한 자를 엎드러뜨리며
행위가 정직한 자를 죽이고자 하나
그 칼은 자기의 마음을 찌르고 그 활은 부러지리로다.
의인은 여호와께서 붙드시는 도다
여호와께서 완전한 자의 날을 아시니
저희 기업은 영원하리로다.

주여 내가 오직 당신을 바라보며 매일 아침 예배를 드립니다.
오직 당신만을 바라보겠나이다.
당신의 말씀이 오직 진리이오니 오직 이 책만을 붙들고 살겠나이다.
사랑합니다 주님

인선정

2007-10-17 06:15:32

지난주 속회때 예배 준비에 대해 서로 나누게 되었습니다.
저까지 세명 모두 우연치 않게 지난주 토요일 기도모임에 참석한 멤버였습니다.
얘기를 나누다가 주일예배 전날 토요일 밤에 예배를 준비하는 기도모임이 참 소중하다는 것을 새삼 더 알게 되었습니다.
(교회와 집이 가까움에도 토요일 기도모임 매번 참석하지는 못합니다.)
작년에 주일이가 주최한 기도 모임에 처음 참석했을때 깜짝 놀랐던 기억이 납니다. 놀기 좋은 토요일밤에 어디 놀러가지도 않고, 20대 젊은이들이 교회에 모여서 우리교회와 일본 바다건너 조국과 심지어 전세계를 위해 기도를 하는 모습은 놀랍기도 하고, 부끄럽기도 했습니다.
주일예배에 오면 일주일에 한번 만나는 "사람"들로 인해 사실 하나님께만 집중하기란 불가능한것 같습니다. (일주일이 기다려지고, 정말로 반갑거든요 ^^;)
하지만, 보다 더 온전히 주님께 집중하려는 노력은 필요하다고 생각합니다.
주일학교에서 선생님 봉사활동 할때는 몰랐는데, 예배시간 30분전의 찬양시간은 하나님께 기쁨의 사랑 고백하는 시간이라는 것을 최근에 알게 되었습니다.
그리고 딱히 아무런 봉사도 하지 않으면서도 교회에 일찍와서 빈둥거리면? 좋은 좌석을 확보?함은 물론 성도들간의 수다!를 여유있게 즐길 수 있다는 것을 알게 되었습니다. ^-^;
예배를 "예배시간"이라는 어쩌면 종교적 형식에 지나지 않는 형식적인 시간을 보내는 것은 시간 낭비라고 생각합니다. 예배를 드리는 쪽도 고역이고, 예배를 받는 분도 불쾌하리라 생각합니다. 차라리 집에서 잠을 자거나 어디 놀러가는 편이 낫다고 생각합니다.
주일예배를 온전히 드리기 위해 평일에는 지난 시간보다 하루 하루 좀 더 나은 삶을 살고 싶습니다. 또 예배를 기도로 준비하는데 부지런하고 싶습니다. 그리고 설레는 마음으로 "예배시간" 훨씬 전에 교회에 오는 주책도 계속 유지하고 싶습니다. ^^;

최정민

2007-10-17 06:35:41

예배를 드리는 것보다 더 중요한 것은 예배의 동기와 목적이다. 예배의 목적은 오직 한가지 밖에 없다. 하나님의 기쁨이 되는 것이다. 하나님의 만족이 되는 것이다. 예배는 ‘하나님을 위해’ ‘하나님께’ 드리는 것이다. 그래서 노아도 ‘여호와를 위하여’ 단을 쌓았다고 했다.(창8:20)

자신의 만족을 구하지 말고 오직 하나님의 만족을 구하라. 어떻게 하면 하나님의 기쁨과 만족이 될까? 이 일에만 계속 집중하라. 예배에서 내가 무언가를 받으려고 해서는 안된다. 예배는 받는 것이 아니라, 드리는 것이다. 내가 하나님을 위해 마음을 드리고, 정성을 드리는 것이다.

이번 설교말씀을 들으면서 나는 누구을 위해 예배를 드렸었나… 생각하게 되었습니다.
토요일에 찬양연습과 주일예배는 내 생활에서 빠질 수 없는 부분입니다.
갓난아이 일적 부터 매주 매주 일요일에 교회이외에 곳에 있었던 적은 거의 없었습니다.
이렇듯 주일을 지키는 일에는 자신이 있었습니다. 그런데 나는 과연 예배를 어떻게 드렸는가,
누구를 위한 예배였는가 라는 질문에는 자신이 없습니다…. 습관처럼 드릴 때도 있었고
멍하니 몸만 성전에 있었던 적도 있었기 때문이다. 또한 나의 기쁨을 위해서 내가 은혜받기 위해서 라는 자기중심적 예배가 거의 대부분 이기 때문이다.
이번 설교말씀을 통해서 많이 반성하게 되었습니다. 내가 이제것 무엇을 했던 것인가! 하나님을 기쁘게 해드리는 귀한 시간을 내가 어떻게 그렇게 보낼 수 있었는가! 부끄럽고 또 부끄럽습니다. 이제는 정말 하나님을 높여드리고 하나님을 기쁘게 해 드리는 예배를 드리고 싶습니다. 찬양단에 설때에도 성도들 앞에 서는 것이 아닌, 하나님앞에 서서 하나님에게 기쁨을 주기위해 설것이며, 예배를 드릴때에도 하나님..하나님을 위해 이 예배를 드립니다. 라며 마음속으로 기도드리는 마음으로 예배를 드릴 것입니다. 하나님의 기쁨을 제가 빼앗을려 했습니다…… 저를 용서하게요..
하나님의 기쁨이 되는 예배로 하나님을 기쁘게 하겠습니다! 이제부터 자기중심적 예배가 아닌 주님중심적, 자발적인 예배로 하나님을 기쁨에 되겠습니다!

홍인철

2007-10-17 07:34:54

어린시절 100원씩 받은 용돈으로 열심히 모았던 딱지를 친구와의 내기로 몽땅 잃었을 때 억울해서 눈물을 흘린 적이 있습니다. 비록 어린시절이었지만 그저 하찮은 종이조각에도 그렇게 눈물이 날 만큼 아까운 생각이 들었는데 하물며 하나님께서 직접 공들여 창조하신 인간을 모두 멸하실때 어떤생각이 드셨을까 주일말씀으로 돌아보게 됩니다.

하나뿐인 아들을 인간을 위해 희생하실 만큼 우리를 사랑하시는 분께서 우리를 멸하실 때에는 정말 마음이 아프셨을 것 같습니다. 사랑하는 사람을 내손으로 멸할 때 어떤 생각이 들지 정말 상상이 가지 않습니다. 노아는 이런 하나님의 아픔을 헤아릴 줄 아는 사람이었습니다.

이번 주 사역훈련때 목사님께서 성경을 볼 때 하나님의 생각에서 말씀을 보라고 하셨는데 그 말씀은 우리도 노아와 같이 하나님의 마음을 헤아리는 제자가 되라는 말씀이라고 생각합니다. 하나님께서 나를 보실 때 하나님께서 기뻐하시는 일과 예배를 드리고 있는지 생각해봅니다. 저는 그저 예배를 보러갔던 적이 많았던 것 같습니다. 그냥 해야하는 습관과 같은 마음이 아니었을까요. 앞으론 하나님께 온전히 예배를 드려야겠다고 생각해 봅니다. 하지만 믿음의 사람들과 비교했을때 저는 참 그릇이 작은 사람인 것 같습니다. 당장 이번 주 주일을 지키지 못하는 죄송함과 나의 부족함을 보고 있으니 가슴이 답답해집니다. “알곡제자가 됩시다”라는 말씀이 왜 이렇게 저를 부끄럽게 하는 것인지 모르겠습니다. 저는 제 달란트를 까먹고 사는 못난이가 아닐까요?

그래도 열심히 해서 더 나은 제자가 될 수 있도록 노력하겠습니다.

김준근

2007-10-17 07:41:39

--창세기 8장 20절
노아가 여호와를 위하여 단을 쌓고 모든 졍결한 짐승 중에서와
모든 정결한 새 중에서 취하여 번제로 단에 드렸더니-

설교를 듣고, 자식 한명때문에 고뇌하시는 부모님이 생각 났다.
그 자식이 어떤 사람이건간에 말이다.
하나님은 수없이 많은 사람에 벌하신 것을 질려버린 장난감을 버리듯
버리셨을까? 아니다. 노아의 순종을 보시고, 하신일에 가슴아파하시고,
다시는 홍수때처럼 벌하시지 않는다고 하셨다.
하나님 당신의 모습대로 만든 사람들을 어찌 사랑하지 않을 수 있었을까..
하지만 겉잡을 수 없을 만큼 타락했기 때문이다.
솔찍히 그 맘을 난 알 수 없다. 하지만, 어려서 부터 부모님맘을 곧 잘
썩혀 왔기 때문에 나로 인해 눈물 흘리신 모습을 보며, 자랐기 때문에
설교와 경험으로 알 수 있었고, 가슴이 아팠다.

또 하나님은 본성이 악한 우리를 위해, 예수님을 보내시어 그 몸에
육신의 죄를 정하시고, 죽게 하시고, 다시 살게 하심으로 우리에게
믿게 하심으로 영에 생명을 불어 넣어주시고 영원한 생명을 허락하셨다.
나는 한게 없다. 그저 말씀대로 믿기만 했을 뿐인데
최고의 선물을 받았다. 항상 사랑받고 있는 나란 것을 알게 되었다.
그런데 난 무엇을 따르고, 무엇을 위해 사는가?
근 2년간 하나님을 영접하고, 변해가지만, 온전히 드리지 못하는 나를 쉽게 본다
왜난 노아처럼 기쁨으로 스스로 드리지 못할까?
늘 마음은 드릴께요, 제가 하겠습니다. 사랑합니다라고 하지만
정작 표현은 드리면 쓸게 너무 없어요, 시간이 없어서 못해요.. 라는 핑계를
대고는 미루기 일쑤다. 솔찍히 그런게 아니더라도 할 수 있는 것많은데
생각이 문제다.
이번 사역훈련에 배운 것 중에 모든것에 가장 중요한 것은 생각하고 선택하는
것이라 했다.
이제 부터라도 해 볼 생각이다!? 아낌없이 드리고, 기쁘시게 해드려야겠다.
내 선택은 늘 YES로 주님지시에 따르는 멋진 아들이 되어야 겠다.
또, 후회없는 주님이 설계해주신 인생을 살아야겠다.

탁성아

2007-10-17 07:57:31

내가 만족하는 예배가 아니라,
하나님이 만족하시는 예배가 살아 역사하는 예배임을 잊지 말아야 할 것이다.
하나님을 기쁘시게 하는 가장 탁월한 방법은 바로 ‘예배’이다.
노아 할아버지 때부터 지금까지 하나님은 진정한 예배를 찾고 계신다.
‘아버지께서는 이렇게 자기에게 예배하는 자들을 찾고 계시느니라’(요4:23)

난 특히 요즘 예배시간에 눈만 뜨고 멍하니 딴 생각을 하게된다 ..
적어도 예전에는 하나님 생각하면서 하나님을 높여드리는 예배를 드리려고
노력을 많이 했었는데 , 요즘은 왜 이리 마음도 생각도 잡히질 않는건지 ,
찬양팀 반주를 하면서도 그냥 그 곡의 가락을 즐기고 소리를 즐기는 것 같다 .
가사를 생각하면서 하나님께 감사하는 마음과 사랑하는 마음을 전하지 못하고,
그냥 가벼운 악보가 되어 가는것 같아서 마음이 아프다 ..
나의 그런 마음가짐을 보고 계시는 하나님께선 얼마나 속상하셨을까 ..
찬양 드리는 것도 예배의 한 부분인데 , 그걸 조금 늦게 깨닳은 것 같다 .

나에게 반주 할 수 있는 손과 재능을 주신 것에 감사하면서
그것도 다른 곳에서가 아닌 교회에서 하나님을 찬양하게 하심에 감사하면서
마음속에 오직 주님만을 생각하면서 찬양하겠습니다 ..
제일 앞자리에 앉을 수 있도록 자리를 허락하신 하나님께 감사하면서
그분 한 분만을 위해 온맘과 정성 다하여서 예배 드리겠습니다 ..
나를 이렇게나 아끼고 사랑하시는 주님을 내가 어찌 뿌리치려하고 ,
밀어내려 했을까 .. 다시 한 번 반성한다 ..

나의 진정한 예배를 기다리고 계신 하나님 .,
이제 하나님을 기쁘게 해 드리는 제가 되겠습니다 .
어떤 고난과 환란이 와도 하나님을 위해 견뎌내는 탁성아가 되겠습니다 .,

‘나는 하나님을 위해 무엇을 할 수 있을까?’
‘나는 가족을 위해 무엇을 할 수 있을까?’
‘나는 교회를 위해 무엇을 할 수 있을까?’
‘나는 이웃을 위해 무엇을 할 수 있을까?’
이 고민이 당신을 위대한 인물로 만들 것이다.
노아의 이 위대한 고민이 지금 당신의 최고의 고민이 되길 축복한다.

세상속에서 쓸데없는 고민은 이제 그만하고
주님안에서의 위대한 고민만을 하겠습니다 .
하나님 사랑합니다 ♡

박빛나

2007-10-17 08:01:43

모든 만물은 들어 오는 것이 있고 나가는 것이 있을 때 건강하다.
관계도 마찬가지이다. ‘나는 너를 위하고, 너는 나를 위하고’ 이보다 더 건강한 관계는 없다. 건강한 그리스도인이 되기를 원하는가? 노아처럼 이렇게 살면 된다. ‘하나님은 나를 위하여 나는 하나님을 위하여’

하나님을 기쁘시게 하는 예배.
항상 입으로는 하나님을 기쁘시게 하는 예배를 드리겠다고 하면서, 마음은 그렇지 못했던 시간들이 주마등처럼 스쳐 지나간다.
그 동안의 예배는 나를 위해서 행한 단지 행위에 불과했구나 싶은 생각에 마음이 무거워 진다. 그리고 지난 설교 시간에 하나님께서 내 오만한 마음에 한 줄기 빛을 뿌려주셨음에 감사할 뿐이다.

“누구를 위하여! “
이 질문에 꼭!
하나님을 위해서라고 말 할 수 있는 사람이 되고 싶다는 소망이 생겼다.
하나님이 내 일을 해주시고, 내가 기쁨으로 예배하는 자의 모습으로 하나님의 일을 할 수 있도록 영의 생각으로 무장하리라 다짐한다.

남철

2007-10-17 08:32:24

예배의 목적은 오직 한가지 밖에 없다. 하나님의 기쁨이 되는 것이다. 하나님의 만족이 되는 것이다. 예배는 ‘하나님을 위해’ ‘하나님께’ 드리는 것이다. 그래서 노아도 ‘여호와를 위하여’ 단을 쌓았다고 했다.(창8:20)

나자신을 위해서 예배를 드리고 나자신의 유익을 위해서 하나님께 시간을 드리며 예배를 드린적이 많았던것 같다 .
세상속에서 시간을 낭비하기 보다는 하나님안에서 하나님께서 기뻐하시는 곳에 시간을 드리며 하나님께서 말씀 하시기 전에 먼저 행동에 옴기는 자가 되고 싶다
세상속에서 고민 하기보다는 하나님 안에서 고민하고 행동하는 나자신이 되게 하여 주옵시고 오직 주님의 기쁨이 되는 행동만을 하는 나자신이 되게...
하나님안에서 항상 웃고 항상 기뻐하며 고난을 기쁨으로 감사히 받을 수 있는 자가 되길 원한다

박재훈

2007-10-17 09:01:58

어릴 때 뭔가 잘못을 해서 엄마한테 종아리를 맞았었다. 잠결에 보니 아파서 바로 눕지 못하고 엎드려 자는 나에게 엄마는 눈물을 글썽이면서 내 종아리에 약을 발라주고 있었다. 잠결이기도 하고 괜히 눈을 마주치면 어색할 거 같아서 (아까 나를 혼내던 엄마말고 진짜 우리엄마가 약 발라준다고 생각하면서) 다시 눈을 꼭 감고 잤던 기억이 난다.
[죄악으로 멸망 당하는 사람들보다 멸망시켜야 했던 하나님이 훨씬 더 괴로웠을 것이다.] 때린 상처에 가슴 아파서 약을 발라줬던 엄마의 마음처럼 하나님도 때때로 내가 겪어야하는 고난 속에서의 나를 보시고 가슴 아프실 거고, 하나님의 뜻을 헤아리지 못하고 불만만 털어놓는 나 때문에 속상하실 거다. 노아처럼 나는 그런 하나님의 마음을 헤아리지도 못하고 예배에 나아가서 힘들어요, 속상해요, 못 견디겠어요라고 불평만 늘어놓고 찡찡거리기만 했다.
나를 지으신 하나님을 찬양하고 높여드리기에도 부족한 상황에, 나만 위로해달라고 내 상황을 좋게 만들어달라고 어리광만 부린 철없는 자식이다. 언제까지 유아기 신앙을 가질 것인가? 물론 신앙의 년수와 신앙의 격이 비례할 순 없지만, 좀 해도해도 너무했다.
지금껏 수천 번의 예배를 드려왔는데 진정 하나님이 흠향하여 주셨던 예배는 몇 번이나 될까? 하나님이 껄껄거리시면서 참 잘했어요 도장을 찍어주셨던 예배는 과연 있었을까? 주일이면 으레 교회에 가서 예배시간에 한 자리 차지하고 앉는 게 너무나 당연했던 삶이었다.

예배가 살아야 인생이 산다.

예배 뿐 아니라 내 삶의 예배도 하나님께 드려야겠다. 나로 인해 하나님이 웃으실 수 있는, 어리광이 아닌 재롱 피워서 그간의 이미지쇄신 좀 해야겠다. 나 말고도 속 썩이는 자녀들이 많을텐데 하나님 근심하나 흰 머리 하나, 주름 하나 덜어드리는 예쁜 자녀가 되자.

김선아

2007-10-17 09:27:53

예배의 목적은 오직 한가지 밖에 없다. 하나님의 기쁨이 되는 것이다.
예배는 ‘하나님을 위해’ ‘하나님께’ 드리는 것이다.
100점짜리 예배를 드리고 싶은가? 자신을 보지 말고 하나님만 바라보라. 자신의 만족을 구하지 말고 오직 하나님의 만족을 구하라.

어렸을때부터 주일날이 되면 빠짐없이 교회에 나왔다.
하지만 진정한 예배를 드린적은 몇번 없는거 같다....
하나님께 예배를 드리는 것이 아니라 구경꾼이 되어 예배를 본적이 더 많은거 같다.
예배중에도 하나님의 기쁨이 되어야 된다는 생각으로 예배드리기 보다
내가 원하는 거 이뤄주세요! 한주간 지은 죄 용서해주세요
그리고 한주간 세상속에서 잘 지내게 해주세요 하고 짧게 기도하고 돌아오고 예배를 다 드런거 처럼 생각한 적이 많은거 같다.
하나님이 나를 만드신 목적이 나를 통해 기쁨을 받으시려는 거인데…
나에게 맞춰진 예배에서 하나님을 바라보고 하나님이 무엇을 기뻐하실까 생각하고 하루하루 하나님을 만나는 예배를 사모해야겠다.

신왕수

2007-10-17 10:53:50

"이것이 바로 노아가 하나님께 드린 최초의 예배의 모습이다. 얼마나 순수하고 아름다운 예배의 모습인가? 여기에는 자신의 탐욕이나 속셈 같은 것은 찾아 볼 수가 없다. 그는 ‘자기를 위하여’ 위하여 예배를 드린 것이 아니라 오직 ‘하나님을 위하여’ 예배를 드렸던 것이다. 당신은 지금까지 누구를 위하여 예배를 드려 왔던가? "

⇒ 자기를 위하여 드려지는 예배...예배를 드리러 올 때의 마음가짐에서 들어날것 같다. 복을 받기위하여 예배를 드린다....이건 아니다. 예배를 안 드리면 벌 받을거 같아서 드린다....역시 아니다. 또한, 단순히 영적인 쉼을 얻으려고 왔다....이거 역시 아니다.
이 설교가 정확하게 2년 전에 있었다면 난 참 편했을 것이다. 2년전 중앙영광교회에 처음으로 제자훈련이 시작 되었을 때, 모든 예배의 내용이 제자훈련이었다. 개인적으로 전 교인이 대상이 되어야 할 주일 12시 예배(당시 1시 예배)에서 조차 제자 훈련의 내용으로만 설교가 행해지다 보니 나는 점점 예배에서 기쁨을 은혜를 느끼지 못하면서, 시험에 빠졌다.
시험에 빠지면 설교말씀의 뾰죡한 부분만 나를 노린다. 그런 상황 속에서 "절이 싫으면 중이 떠난다"라는 말을 설교 중에 듣고, 교회를 옮겨야지 까지 생각하면서 여러 교회를 찾았던 기억이 있다.
그러던 중, 내가 노아와 같이 예배의 목적을 스스로 깨달았다면 좋았겠지만, 난 더 특별하게 알게 되었다. 그렇게 힘든 상황이 3~4개월 지속되던 중에 일이었다. 기도하던 중 불현듯 왜 교회를 가냐고 묻는 음성이 들렸다. 난 당연히 예배드리러요...라고 대답했고 똑같이 3번 물으신후...반문하셨다. "정말로 예배드리러 가니? 은혜 받으러 가는게 아니고?" 정말로 너무 찔리는 한마디였다. 교회를 옳겨야지 라고 생각하게된 결정적인 계기가 예배에서 은혜를 못 받아서 였기 때문이다.
덕분에 그 이후로 예배에 대해 제대로 알게 되었고, 될 수 있는한 노아가 하나님께 드렸던 순수하고 아름다운 예배의 모습으로 예배를 드리기 위해 노력하고 있다.너무나 감사한 일이다.

"자원 예배 + 제단 예배 + 정결 예배 + 번제 예배"
⇒ 노아가 하나님께 드렸던 참 예배의 4가지 모습!! 과연 이 중에서 나에게 있어서 가장 부족한 부분이 무엇이었을까? 내 개인적으로는 이 중에서 제단 예배가 가장 잘 이루어지지 않았다라는 생각이 들었다. 토요일 저녁 청년회 기도회 때에 항상 다음 날 예배를 위해서 다같이 통성 기도를 드린다. 이른바 기도로서 제단을 쌓는다. 하지만, 이것은 전원이 드리는 예배를 위한 제단(중보기도)이고 내가 드릴 예배를 위한 제단(개인기도)이 아니었던 것 같다. 앞으로는 주일날 아침에 10분 이상 그 날 드릴 예배를 위해서 기도로서 내가 드릴 예배를 위한 제단을 정성껏 쌓아야 하겠다.

김명화

2007-10-17 10:58:28

당신은 지금까지 누구를 위하여 예배를 드려 왔던가?
이 글을 읽을 때 나는 아주 과감하게 나를 위해드렸다고 말했습니다.
그리고 많은 후회의 기도와 지금이라도 늦지 않았기에 용기를 내어 이제라도 열심히 예배를 드려야지!

자신을 보지 말고 하나님만 바라보라. 자신의 만족을 구하지 말고 오직 하나님의 만족을 구하라.
어떻게 하면 하나님의 기쁨과 만족이 될까?
이 일에만 계속 집중하라. 예배에서 내가 무언가를 받으려고 해서는 안 된다.
예배는 받는 것이 아니라, 드리는 것이다. 내가 하나님을 위해 마음을 드리고, 정성을 드리는 것이다.
물론 예배는 보는 것도 아니다. 도대체 뭘 본다는 말인가? 강대상을 본다는 말인가?
설교자를 본다는 말인가? 성가대를 본다는 말인가? 사람들을 본단 말인가?
‘예배를 본다’는 말은 교회 용어 중에서 제일 용납할 수 없는 말이다.
예배에 참석한 어떤 사람도 구경꾼으로 전락하면 안 된다.
모두가 예배의 선수가 되어야 한다. 하나님의 기쁨이 되기 위해서 모두가 뛰어야 한다.
이 말씀을 통해서 믿음이 밑바닥을 기고 있는 나에게 또 하나의 경종을 울려주었습니다.
정신차려야 하는 이 시점에서 나는 또 하나의 다짐을 하게 되었습니다.
“하나님께서는 내가 감당할 수 있을 만큼의 시련을 주신다”고 하신
목사님의 설교말씀이 문득 떠올랐습니다.
하나님께서는 내가 어서 빨리 이 방황 속에서 해여 나오게 길잡이와 방향을 가르쳐주고 있다는 것을 나는 알았습니다.
새로운 다짐과 결단으로 사역훈련에 임하기를 약속합니다.
나를 위하여 드리는 예배가 아니라 하나님을 위하여 드리는 예배가 되기위해
기도하고 말씀을 사모하는 자가 되겠습니다.

최홍근`

2007-10-17 16:14:47

당신이 지금 신경 써야 할 것은 ‘그가 나를 위하여’가 아니라, ‘내가 그를 위하여’이다. ‘그가 나를 위하여’는 그의 몫이고, ‘내가 그를 위하여’만 내 몫이기 때문이다.

이번 설교를 통해서 나는 이제껏 나를 위해서 살아왔다는 것을 알게 되었다.
예배를 드려도 나를 위해 드렸고, 무엇을 하던간에 보상 심리를 가지고 해왔었다.
하지만 그것이 잘못 된 행동이라는 것을 나는 이번 설교를 통해서 깨달았다.
언제나 나만 생각하는 이기주의에 빠져 은혜롭지 못한 삶을 살아 왔었었다.
앞으로는 나를 위한 삶을 살지 말고,
하나님을 위한, 상대방을 위한 삶을 살아야겠다.
하나님께서 기뻐하시는 사람이 되도록 힘내야겠다.

김성섭

2007-10-17 16:53:08

------ 노아는 방주에서 내리자마자, ‘하나님이 이제 자신을 위해 뭘 해 주실까’ 생각하지 않고, ‘내가 하나님을 위해 무엇을 할 수 있을까?’를 먼저 생각한 사람이었다. 이것이 노아의 위대함이요, 능력이요, 하나님이 감동하신 일이다. ------

내가 만약 노아라면 방주에서 내린 후에 가장 먼저 무엇을 했을까 생각해 봅니다. 허허벌판을 보고 ‘이제부터 어떻게 살아야 할까’ 라는 생각이 먼저 들었을 것 같습니다. 하나님께서 구원해 주셨다는 감격은 금방 사라지고, ‘하나님, 이게 필요해요. 하나님, 이렇게 해 주세요.’ 하면서 하나님이 나를 위해 무엇을 해 주실까를 먼저 구했을지도 모르겠습니다.

지금 새 성전 내부공사가 한창입니다. 꼭 필요하고 급한 부분만 공사하고 있는데도 공사하다 보니 이것저것 손봐야 할 부분들이 많이 있습니다. 생각했던 것 보다 공사도 지연되고 있습니다. 그러면서 ‘내가 하나님을 위해 무엇을 할 수 있을까?’ ‘우리 교회가 하나님을 위해 무엇을 할 수 있을까?’ 하는 생각보다 ‘이것도 필요하고 저것도 필요한데.’ 하는 생각이 더 많아졌습니다. 오늘새벽기도 내용을 돌아보니 새 성전을 주신 하나님께 감사하는 기도는 짧아졌고,(주님, 감사에 빈약한 이 죄인을 용서하여 주소서!) ‘하나님, 이렇게 해 주세요. 하나님이 이게 필요해요.’ 하는 기도가 더 많았던 것 같습니다. 하나님께서는 오늘 말씀을 통해, 하나님을 위하여 보다 교회를 위하여가 앞서는 내 모습을 돌아보게 하십니다. 하나님을 위하여 수고한다고 하지만, 그 안에 숨어있는 교회를 위한 욕심에서 수고하고 있는 내 모습을 깨닫게 하십니다. 하나님께서는, 방주에서 내리자마자 감사하고 찬양하고 하나님을 예배하는 노아의 모습처럼 나와 우리 교회의 모든 성도들이 더욱 하나님께 감사하고 하나님을 예배하길 원하신다고 말씀하고 계십니다.

이제는 ‘우리 교회를 위해서 무엇이 필요한가?’가 아닌 ‘하나님을 위하여 우리 교회는 어떻게 해야 하는가?’를 가지고 고민해야겠습니다. 눈에 보이는 교회를 아름답게 공사하는 일 보다 눈에 보이지 않는 교회(교회의 본질, 교회의 사명)를 아름답게 공사하는 일을 가지고 더욱 고민해야겠습니다. 오늘 말씀을 통해 무엇이 중요한지, 무엇이 먼저인지를 깨닫게 해 주신 하나님께 감사드립니다. 그리고 늘 귀한 말씀으로 은혜를 전해주시는 이용규 목사님께 감사드립니다.

최승우

2007-10-18 01:03:29

환경이 천국을 만드는 것이 아니라, 남을 배려하는 마음이 천국을 만든다. 서로가 서로를 먼저 챙겨주고, 걱정해 주고 신경 써 주고, 위로해 줄 때, 그 곳이 가정이든, 교회든, 회사든, 학교든 천국으로 화한다.

그런거같다.우리집에도 이런 천사가 있다.바로 우리 둘째 동생현경이다.
어렸을때부터 남을 배려 잘 하기로 소문난 동생은 늘 우리집 칭찬 거리였다.
특히 우리 집에서 손님이 묵고 간 다음에는 꼭 현경이 얘기를 했다.
동생은 그 사람이 무엇이 필요한지를 항상 먼저 생각하고 잘 챙긴다. 현경이는 그렇게 남을 챙겨주면 마음이 기쁘다 했다.
지금도 집에 놀러가면 늘 반찬을 만들어 챙겨주고 여러가지로 나를 감동시키니 얼마나 감사한지 모른다.
이렇게 받는 것에만 익숙해진 내가 그나마 요즘 그런 심정을 조금이나마 알게 된 계기가 있다.
우리 사랑스런 속원들 때문이다.
얼마 전부터 속원 중 한명이 힘든 일을 여러가지로 겪고 있었던지라 나는 너무나 가슴 아픔을 느꼈다. 그래서 정말 내가 도움이 되는 부분이 아무것도 없음에 더 더욱 안타까움으로 그저 기도를 드리는 일 밖에는 없었다. 하루에 한번으론 이 일이 빨리 해결 될것 같지 않아 네번 이상 그 속원을 놓고 간절히 기도하는데 꼭 내 일 같은 맘뿐이었고,빨리 이 어려움이 지나가 주기를 바란다.
열 손가락중에 깨물어서 안 아픈 손가락은 없듯 우리 속원이 아프면 나 또한 가슴이 찢어진다.내 마음도 이러한데 주님은 오죽 아프실까를 생각해 본다.
요즘 또 같이 속회를 드리지 못하는 속원들을 보면서 마음이 찡하다. 주일 오후에 끝나고 돌아가는 길에 보내는 속원들의 메일을 보며 지금은 이산 가족이지만 또 다시 만날날을 기약하면서 기대하고 싶다.

나는 이제 노아 할아버지가 감동 시킨 그 순수한 예배를 회복 시키리라…
나의 욕심 바램 다 내려놓고 그분만을 만족시키고 그것으로 족한 예배를 늘 준비하는 자가 되고 싶다.정말 주님의 마음을 조금이나마 헤아려 보며 그분을 위해 무엇을 하면 좋을까를 먼저 찾아서 행동하는 자로 바꿔 나갈 것이다

박정선

2007-10-18 01:27:48

노아는 하나님과 동행하는 사람이었다. 그래서 이런 하나님의 마음을 헤아릴 줄 아는 사람이었다.
당신은 지금까지 누구를 위하여 예배를 드려 왔던가?
하나님을 기쁘시게 하는 가장 탁월한 방법은 바로 ‘예배’이다. 하나님은 진정한 예배를 찾고 계신다. ‘아버지께서는 이렇게 자기에게 예배하는 자들을 찾고 계시느니라’(요4:23)
모든 만물은 들어 오는 것이 있고 나가는 것이 있을 때 건강하다.

하나님은 정확하시고 실수가 없으신 분입니다.
모든 문제의 원인은 나에게 있습니다.
늘 습관적으로 주변을 바라보고 환경을 바라보았기 때문에 챗바퀴 돌듯 아무런 변화가 없었고, 해결책을 찾지 못했고 무기력함이 나를 사로잡곤 했습니다.
하나님은 내 속에서 일하시고 내가 변화되기 원하셨는데 저는 하나님과 동행하는 훈련이 전혀 되어 있지 않았습니다.
하나님은 사람이 상상못할 사랑으로 나를 사랑하고 계시고 내가 원하는 것보다 더욱 내가 형통의 길을 걷기를 바라시는 분이십니다. 이 가장 기본적인 진리에 대한 믿음이 부족했다는 것을 깨달았습니다.
하나님이 부어주시는 사랑과 은혜를 온몸으로 받아들이고 감사와 예배로 하나님께 영광돌려드리는 건강한 하나님의 자녀가 되길 원하고 선포합니다.
무엇이든 한꺼번에 되어 지는 것은 없습니다. 조급함을 내어놓고 내가 할 수 있는 것을 하나하나 실천해 나가겠습니다.

한영진

2007-10-18 03:05:07

[나는 어떤 일이 있어도 이 예배를 통해서 하나님을 기쁘시게 할 거야!’
내가 만족하는 예배가 아니라, 하나님이 만족하시는 예배가 살아 역사하는
예배임을 잊지 말아야 할 것이다. 하나님을 기쁘시게 하는 가장 탁월한 방법은
바로 ‘예배’이다.]
노아는 정말로 하나님을 사랑했다는 생각이 든다.
누군가를 진심으로 사랑하면 그의 생각과 마음, 기분의 변화를
마치 나의 그것 처럼 민감하게 감지할 수 있게 된다.
때론 그의 아픔이 나의 아픔보다 더 고통스럽게 느껴지는 것이
바로 사랑이라고 생각한다.
어쩌면 노아는1년 10일이라는 방주 안에서의 길고 지루한 시간을
그렇다고 느끼지 못했을지도 모른다는 생각이 잠깐 들었다.
하나님의 아픔을 진정으로 이해했던 노아이기에
극도의 인내심을 필요로 하는 방주 생활의 고통보다
하나님의 고통이 더 고통스러웠을지도 모른다.
그런 그이기에 까마귀 한 번에 비둘기를 세 번씩 날려 보내
땅이 말랐나 확인한 것도 하루 빨리 방주에서 벗어나고픈 생각보다
사랑하는 하나님께 얼른 조그마한 위로라도 드리고 싶어서였는지도 모른다.
이렇게 생각을 달리다 보니 노아의 순종이 더욱 값지고 귀하게 생각되어지는데,
그건 “내가 얼른 방주에서 내려서 예배 드릴려고 해요!”하고
나 같으면 정정당당한? 이유를 앞세워 내리라는 말씀이 계실 때까지
기다려 볼 생각도 않고 훌쩍 맘대로 뛰어 내렸을 것 같기 때문이다.
“이건 나 편하자고가 아니라 어디까지나 하나님을 위해서 라고!”
이렇게 하나님과 자신을 속여 가면서…..
일요일이 주일로 바뀌고, 예배를 보러 가던 내가 이젠 예배를 드린다.
내가, 우리가 드리는 예배를 기뻐 받으시길 바란다는 기도로 시작하는 예배.
하나님께 올려 드리는 예배 중에 하나님께서 말씀을 주시고 나는 받는다.
예배에 나의 진심이 많이 담기면 담길 수록 받는 말씀 또한 더욱 달기만 하니
꿀송이 처럼 달게 하나님의 말씀을 받는 나는 또
하나님께서 더욱 기뻐하시는 예배를 드리는 셈이 된다고 생각한다.
이렇게 예배는 일방통행이 아니라 하나님께 내가 드리고 기쁘게 받음으로써
예배를 통해 그 분과 더욱 친밀하게 교통하게 되는 것일 것이다.
제자훈련 때 배워 지금도 내 기도에 빼놓지 않고 등장하는 것도
바로 이 예배에 관한 것이다.
주일에 교회에서만 드리는 것이 아니라 매일의 나의 삶 전부가
하나님께 드리는 예배가 되길 원한다고….

매일 올라오는 리플을 읽고 은혜 받는게 큰 즐거움이기에
오늘도 위의 리플들을 읽고 나도 우리 딸 이야기가 좀 하고 싶어졌다.
시원이가 한 일주일 전에 뭘 크게 잘못한 일이 있다.
이젠 매로 혼 낼 시기도 지나서 대화로 잘못을 바로 잡으려고 하는데
요 공주님께서 뭐 뀐 놈이 도리어 어쩐다고 거꾸로 성을 내기에
말을 하다 말았다.
과연 저 아이가 잘못을 아는걸까? 모르면 큰일인데….걱정했는데
얘가 그 날부터 말투가 달라져서 온순해지더니
어젠 내가 시키지도 않았는데 나더러 라면 먹겠냐고 묻더니
손수 라면을 끓여서 주는 것이었다.
난생 처음있는 일이다.
사실은 금식 중이었지만 너무 어리둥절하고 감격해서 금식은 다시 하루 미뤘다.
“역시 쟤가 자기 잘못을 아는거야. 그럼 그럼, 역시 내 딸이야.”
며칠 동안의 나의 걱정이 라면 한 그릇으로 밝은 희망으로 바뀌었다면
과장일까?

김진희

2007-10-18 04:29:02

내 주위에 일어 나는 일들을 크게 의미 없이 당연시 여기며 그래서 감사할 줄도 모르며 그렇게 살아왔었는데,... 그래서 하나님의 마음에 대해서는 헤아려 볼려고 했던 적도 없었던 것 같다. 어릴 적 혼날일이 많았던 나는 엄마에게 회초리를 맞고 자기 전에 자국난 부분에 약을 발라주시던 것이 생각난다. 그 때는 이러실 거 왜 때렸던 거야 라며 원망했던 마음도 있었던 것 같다. 엄마가 어린 다리에 자국이 날 정도로 때릴 때의 그 마음은 안중에도 없고 맞고 억울했던 것 밖에 없었던 어린시절.
그 때처럼 어린아이 같이 하나님이 지으시고 좋아하셨던 특히 사람을 짓고 좋아하셨던 그 사람들을 다 멸망시키셨을 때의 얼마나 아프셨을까 하는 건 생각해 보지 못했었다. 말씀을 듣고 나는 이렇게 언제나 아이 때처럼 하나님 마음도 모른채 살아가고 있는 걸까 하는 반성이 들었다.

무엇을 하는가도 중요하지만, 그것보다 더 중요한 것은 그것을 하는 동기와 목적이다. 예배를 드리는 것보다 더 중요한 것은 예배의 동기와 목적이다. 예배의 목적은 오직 한가지 밖에 없다. 하나님의 기쁨이 되는 것이다. 하나님의 만족이 되는 것이다.

노아 할아버지 처럼 부모님 마음을 잘알아서 위로할 줄 알고 자기 밖에 모르는 아이에서 벗어나서 진짜 하나님의 기쁨이 되고 하나님이 만족하시는 예배드리기를 원합니다.

배준형

2007-10-18 05:09:11

"인류를 멸하실 때에 하나님이 당해야 했던 고통은 그야말로 우리의 상상을 초월하는 고통이었을 것이다."

그렇다.. 사람이 뭘 알까? 믿지 않는 사람도 왜 사람을 창조하고 홍수라는 심판으로 자신이 창조한 사람을 멸하게 되었는지 이해가 되지 않겠지만 나도 홍수라는 것을 그저 인간의 잘못이라는 부분에서만 묵상해왔던 것 같다. 당한 사람은 그 당한 것만 본다고 모든 사람이 그랬을 것이다. 나도 하나님이 삶 가운데 어려움이 생기고 좋지 않은 결과를 맞게 되면 아..내가 잘못한게 있구나 하나님이 나에게 고난을 주시는 구나 라고 생각만 하지 나에게 그런 고난을 주시는 하나님의 마음을 해아려본적은 거의 없었던 것 같다. 목사님 말씀데로 하나님은 나에 영적인 부모님인데 정말 눈에 넣어도 아프지 않을만큼 이쁜 나를 벌하실 때 얼마나 마음이 아프실까..
내가 인간이기에 하나님의 마음을 몰라도 너무 모르는 것 같다. 나를 사랑할수록 나에게 많은 연단과 시험이 다가옴을 설교를 통해 너무나도 깊게 깨달았다. 아직까지 짧은 인생을 살았지만 잠깐 뒤돌아 볼 때 하나님이 나에게 주신 여러가지 어려움 아니 축복의 시험에 글을 쓰면서 감사하다.

"무엇을 하는가도 중요하지만, 그것보다 더 중요한 것은 그것을 하는 동기와 목적이다."

하나님이 인간을 창조하실 때 그리고 나를 창조하실 때 정말 무엇보다 중요한 목적에 준거하여 창조 되었는지 나 자신은 얼마나 깨닫고 그리고 삶에 실천하며 사는가 생각해 본다. 나는 정말 흙과 같은 존재이며 하나님이 이러한 나에게 하나님께 예배하며 영적인 교제를 할 수 있는 사람으로 창조하셨지만 빗나간 화살처럼 인생을 살고 있을때가 많은것 같다. 회사에서도 여러 모습으로 일을 하면서도 하나님의 영광이 될 수 있지만 나에게 함부로하는 사람에게 좋지못한 마음을 갖는게 너무나 많다. 나중에 후회할 일을 왜 반복하는지 한심할 때도 있지만 순간순간 하나님의 음성에 민감하지 못하는 나 자신을 볼 때 아직도 훈련이 많이 부족함을 고백한다.

목적에 맞을때 가장 빛을 바라는것이 상식이듯이 나도 지금 한가지 목적을 향해 나아가고 있다. 아까 고백한 말 처럼 빛나간 화살이 이제는 부르심이라는 관역의 표적을 향해 틀어진 나의 목적이 제자 훈련을 통해 바로 서감을 느낀다. 훈련을 통해 하나님이 원하시는 것이 무엇인지 그리고 뭘 해야 하나님이 기뻐하시는지 알아가는 것이 하루하루 기쁘다. 훈련 안에서 내가 바로 서가고 하나님의 원하시는 뜻을 더 깊이 이해하며 하나님과 교제하는 것이 노아가 하나님께 드린 자발적인 예배처럼 하나님이 기뻐하시며 나에게도 큰 복임을 알고 감사하다. 더 감사함과 기쁨으로 훈련 가운데 임하는 내 자신이 될 것을 주님 앞에서 기도합니다.

배미화

2007-10-18 08:36:27

환경이 천국을 만드는 것이 아니라, 남을 배려하는 마음이 천국을 만든다. 서로가 서로를 먼저 챙겨주고, 걱정해 주고 신경 써 주고, 위로해 줄 때, 그 곳이 가정이든, 교회든, 회사든, 학교든 천국으로 화한다.

나에게 어느 정도의 배려심이 있을까?
원래 이기적이고 개인주의 성격으로 의식하고 하지 않으면 좀처럼 배려하지 않는 편이다. 하나님을 영접하기 전에는 좀 심한 편이였다.
예를 들어, 중학교때 여학생들은 둘,셋이 친한 친구들끼리 짝지어서 화장실엘 자주 갔었다. 난 내가 화장실 가고싶지 않을때 친구가 같이 가자고 하면 귀찮을 것 같아서, 아예 첨부터 혼자 화장실에 갔었다.
그리고, 성인이 되어 학원을 다닐때, 학원에서 가장 친한 친구가 밥먹으러 나가자고 하는데, "나 배 안고파 너 혼자 갔다와" 라고 해서 친구가 상처를 받은 적이 있었다. 이러한 비슷한 일들이 몇번 있었다.

챙겨주고 챙겨받고, 이러한 것들이 귀찮았었다. 너는 너 나는 나였다.
가족들 한테도 그랬었다. 엄마아빠 사이가 안좋았을 때도, 당신들 일이니 알아서 하세요. 동생이 사춘기때 공부안하고, 삐딱하게 나갈려고 할때도 니 인생이니 니가 알아서 해라. 나중에 후회하지 말고 .............지금 생각하면 정말 왕재수다.
왜 그 시기는 그렇게 매말라 있었을까?
지금 생각해 보면 하나님의 그 참 사랑을 몰라서 못 받아서 그런것 같다.

하나님의 사랑을 많이 받은 지금은 어떤가?
유감스럽게도 지금도 여전히 많이 모자르다.
속원들에게도 육아와 가사등 바쁘다는 핑계로 안부전화도 안하고 있다.
집에서는 남편을 배려하지 않고, 내가 유리한대로 말하고 행동해서, 남편에게 말과 행동이 다르다고 핀잔이 받고 있다.
사역훈련 받으면서, 넘 부끄럽다.
남편은 매일 점심때 밥 챙겨먹으라고 꼭 전화한다. 난 귀찮아서 대충 안먹어도 먹었다고 말하고서는 전화 받기 귀찮으니, 전화 자주 하지 말라고 핀잔을 준다.
남을 배려하지도 않고, 배려해주는 사람한테는 신경끄세요. 라는 태도..........
하나님의 자녀 맞나?
두말이 필요없다.
당장 내일부터 적용들어간다.
속원들에게 안부전화하고, 남편전화는 상냥하게 받고, 고맙다고 인사하기.

하나님께 받은 사랑 나눠주기

전수희

2007-10-18 09:53:35

- 홍수를 통해서 모든 인류를 멸망시킬 때에는 얼마나 마음이 아팠을까?
어쩌면 자기 아들 예수를 십자가에 내 주어 죽게 한 것보다 더 고통스러웠을 것이다. 인류를 멸하실 때에 하나님이 당해야 했던 고통은 그야말로 우리의 상상을 초월하는 고통이었을 것이다. -

하나뿐이 아들 예수를 십자가에 내어 주시면서 고개를 돌리셔야했던 그때의 심정보다 더한 심정이었을 것이라는 그 홍수가... 하나님이 손수 지으시고 기뻐하신 이 세상을 노아의 가족만 남기시고 무로 돌리시던 그 심정이 더했다니... 그렇게 생각하니 노아의 예배, 진정 하나님만을 생각하며 위로하던 그 노아의 예배가 얼마나
감사한지 모르겠습니다.

그렇다는 생각을 했습니다. 정말 일수도장 찍듯이 예배를 드리러 가고 드리러 간다는 말도 아닌 예배 보러 간다던 그 어린 시절과 드리러 간다고 말은 바뀌었어도 여전히 변함없는 일수 도장 찍기였던 그 예배가 너무 부끄러워졌습니다.
지금도 그런 예배에서 벗어나지 못한것은 아니었는지...

2주정도 너무 안일한것은 아니었는지 생각됐습니다.
감기가 심해 성가대를 무리겠지 하면서 적당히 가운데 정도 자리를 잡고 예배를 드리면서 "아파도 예배는 드리러 나왔으니까 이정도면 잘한거 아니야?"하는 안일한 생각을 한것 같았습니다. 하나님이 진정 기쁘게 받으셨을지... 나만의 자기 만족이 하나님을 더 슬프게 하지는 않았을지... 예배를 드리면서 말씀을 들으면서도 느끼지 못했던 감정을 이렇게 다시금 설교 말씀을 보면서 죄송한 생각이 들었습니다.

제 몸이 제 몸이 아니라는 생각을 하지 못했네요. 좀더 제 몸 관리를 신경쓰겠습니다. 주일은 건강하게 기쁘게 하나님을 위한 예배를 드리러 가야겠습니다.

김영희

2007-10-18 10:56:23

'예배의 목적은 오직 한가지 밖에 없다'
'하나님의 기쁨이 되는 것이다'.'하나님의 만족이 되는것이다'.
'하나님을 위해' '하나님께' 드리는것이다.

늘 하나님을 위한 예배를 드리고 있었다.라는 잘못된 생각으로 가득차 있었
던 자신을 돌아보는 반성과 은혜로운 귀한 시간과 함께 먼저 머리를 조아린다.
이번 설교 말씀은 내 심장 깊숙히 파고들어 박히는듯한 이 느낌은 말로는
어떻게 표현하기 어려운 뭔가가 마음 한 구석에 자리하고 있는 그것은 나는
하나님께 늘 기쁨이 되기위한 예배를 드리고 있었다...자신을 스스로 억지
인정하고 싶었던 욕심이었음을 깨달으며...진정으로 주님께 드리기 위한
예배가 곧 나자신의 기쁨인것을 동시에 깨닫게 된다.
주님게서 인정 해 주실거야..가 아닌 늘 감사한 마음으로 인정받는 예배를
드릴것을 노력할 것임을 주님께 속삭이듯 약속드리는 시간을 갖는다.

이젠 내가 주님을 위해 할수있는 일, 교회를 위해 할수있는 일,
이웃을 위해 할수있는 일, 가족을 위해 할수있는 일,에 대해 고민 또 고민
할줄아는 한사람으로 설수있길 간절히 소망한다.

자신의 기도에 부실공사 가 없기를 점검,도 제 점검,하며 처음부터 다시
시작하는 마음가짐으로 기초공사부터 튼튼히 세우는일에 전력을 기울여
빈껍데기 같은 예배가 아닌 하나님을 위한 살아있는 예배를 드릴것을
기도한다.
오직 한분이신 우리 여호와를 위한 예배를 드릴것을 기도한다.

권유미

2007-10-18 20:57:28

이번주는 노아 할아버지의 대한 4번째 설교 말씀을 통하여 우리가 가져야할 하나님과의 관계와 예배에 임하는 목적과 자세에 대해서 배우고 생각하게되었다.
"노아는 하나님과 동행하는 사람이었다"
하나님과 동행하는 사람.. 하나님의 큰 은혜와 사랑을 입고 살아가는 정말 작은 우리들이 하나님의 마음을 헤아리고 위로를 드릴수 있다는 것을 노아가 드린 최초의 예배를 통하여 배울수 있었다. 관계에 있어서 give-n-take을 중시하면서, 어찌 하나님과의 관계에서는 하나님께 끊임없이 요구하기만 했지, 하나님께는 나의 시간과 정성조차 성실히 드리지 못했던 내모습을 보고 회개하였다. 입으로만 시인하는 것이 아니라, 진정 내 삶을 "산제사"로 드리고 "여호와를 위하여" 살면 그 가운데 진정 기쁨과 평안을 느낄수 있음을 항상 인식하며 살아야 함을 깨달았다.
예배의 목적은 "하나님의 기쁨과 만족"이 되는 것이어야 한다.
나의 예배의 목적과 태도는 어찌했는지 점검해 보며, 역시 회개뿐이 나오질 않는다.
습관과 의무적인 태도로 예배에 참석하고, 나의 "육과 혼과 영"을 드린 예배가 아니라, 몸만와서 앉아있고 머리로는 딴생각에 빠지기 일수였다. 성령이신 주님이 내가 딴생각 하는걸 모르실리가 없는데, 미련하게 "하나님 예배드리러 왔어요. 다음한주도 인도해주세요"라며 주님을 속이려 든것이다. 예배를 위해 기도로 준비한 적도 없었다. 철저히 나를 위한 예배가 되었던 것이다.
우리는 정성을 다해 예배를 드림으로 하나님을 기쁘시게 해드릴수 있는데, 다른 거창한 방법으로 주님께 감동을 드려야 한다는 어리석은 자가 되지 말아야 겠다고 느꼈다. 제자훈련을 시작하기전에는 주일예배에 종종 지각하는 경우가 많았다. 제자훈련을 시작한 뒤로 지각을 한적은 없지만, 예배시간 정각까지 가기만 하면 괜찮다는 생각을 가지고 있었으나, 앞으로는 최소한 30분전에 도착해서, 기도와 찬양으로 예배를 위해 나의 혼과 영을 준비시켜야 겠다고 다짐했다.

Board Menu

リスト

Page 46 / 55
Status 番号 タイトル 投稿者 日付 閲覧数
  198

目的3-イエス様に似ること

4
이용규목사 2007-12-04 360
  197

목적3-예수님 닮기

41
이용규목사 2007-12-03 1464
  196

目的2- 神様の家族

6
이용규목사 2007-11-28 358
  195

목적2-하나님의 가족

38
이용규목사 2007-11-26 1401
  194

目的1-神様の喜び

8
이용규목사 2007-11-21 477
  193

목적1-하나님의 기쁨

50
이용규목사 2007-11-20 1347
  192

天国を準備する人々

7
이용규목사 2007-11-13 526
  191

천국을 준비하는 사람들

47
이용규목사 2007-11-12 1990
  190

人生の目的を探って

8
이용규목사 2007-11-06 440
  189

인생의 목적을 찾아서

53
이용규목사 2007-11-05 1189
  188

どうすれば、どんなことにも感謝することができるか?

7
이용규목사 2007-10-31 790
  187

어떻게 하면 범사에 감사할 수 있을까?

60
이용규목사 2007-10-29 1791
  186

ノアの過ち

7
이용규목사 2007-10-23 493
  185

노아의 실수

57
이용규목사 2007-10-22 1413
  184

神様のために

8
이용규목사 2007-10-16 430
  183

여호와를 위하여

60
이용규목사 2007-10-15 1021
  182

あなたのために

7
이용규목사 2007-10-08 485
  181

너를 위하여

64
이용규목사 2007-10-08 1031
  180

4番目の従順

7
이용규목사 2007-10-02 695
  179

4번째 순종

67
이용규목사 2007-10-01 1238

   

sketchbook5, 스케치북5

sketchbook5, 스케치북5

나눔글꼴 설치 안내


이 PC에는 나눔글꼴이 설치되어 있지 않습니다.

이 사이트를 나눔글꼴로 보기 위해서는
나눔글꼴을 설치해야 합니다.

설치 취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