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중앙영광교회

교회와 나

이용규목사, 2008-10-06 23:22:5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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교회와 나

말씀//롬12:5

1.        나는 교회를 어떻게 보는가?
‘나’와 ‘교회’는 어떤 관계일까?
내 인생에 있어서 교회는 어떤 존재일까? 교회는 내게 어떤 의미를 주는 것일까?
어떤 사람에게는 아주 ‘귀찮은 존재’로써 마치 도살장에 끌려가는 양 같은 심정으로 어쩔 수 없이 눈 도장만 겨우 찍는 곳일 수도 있을 것이고, 또 어떤 사람에게는 ‘아무 의미 없는 존재’로써 형편 따라서, 마음이 내키면 오고, 싫으면 아무렇지도 않게 팽개쳐 버리는 곳일 수도 있고, 또 어떤 사람에게는 ‘대단히 소중한 존재’로써 자신의 인생의 그 무엇과도 바꿀 수 없는 곳일 수 있다.
믿음의 사람에게 생명같이 중요한 가치관이 있는데, 그것은 물질관도, 결혼관도 아닌 교회관이다. ‘교회를 어떻게 보는가?’가 그 사람의 신앙 뿐만 아니라, 인생을 좌우하기 때문이다. 남이 말하는 교회관은 의미가 없다. 자신이 마음으로 믿고 행하는 교회관만이 살아 있는 교회관이다.
교회관은 우리가 만들어 내는 것이 아니라, 하나님이 주신 것이다. 교회는 주님의 교회요, 주님이 세우신 것이기 때문이다.
그러면 하나님이 말씀하시는 교회관은 무엇일까? 그것을 알아야 교회관을 바로 정립할 수 있을 것이다. 성경적 교회관은 축복된 인생의 근원이다. 이 교회관을 한 문장으로 잘 표현해 주는 말씀이 바로 오늘 본문의 말씀이다,
‘이와 같이 우리 많은 사람이 그리스도 안에서
한 몸이 되어 서로 지체가 되었느니라’(롬12:5)
나는 지체(기관)이고 교회는 지체가 붙어 있어야 할 몸이다.
교회는 지체인 나의 몸이다. 지체들이 아무리 잘 났다고 하더라도, 능력이 있다고 하더라도 몸을 떠나서 어찌 살 수가 있겠는가? 당신의 몸은 교회인 줄을 알아야 한다. 교회를 떠난 성도는 몸에서 잘려나간 지체와 같다. 그래서 살 수 없을 뿐만 아니라, 존재가치도 없어진다.
교회를 어떻게 보아야 하는가?
‘교회는 내 몸이다.’ 이것이 교회관의 정답이다.
성도는 교회를 자신의 몸같이 귀하게 여기고, 사랑하고, 헌신해야 한다. 그것이 바로 자신을 최고로 귀하게 여기고, 사랑하고, 헌신하는 길이다. 교회는 바로 자신의 몸이기 때문이다.
  
2.        나는 어떤 가문의 자손인가?
하나님이 우리에게 주신 인생의 목적 가운데, 그 두 번째는 ‘하나님의 가족으로 사는 것’이다. 이것은 분명 놀라운 특권이요, 축복이다.
‘영접하는 자 그 이름을 믿는 자들에게는 하나님의 자녀가 되는 권세(특권)를 주셨으니’(요1:12)
하나님은 우리에게 분명히, ‘하나님의 자녀’의 특권을 주셨다. 그런데 수많은 크리스천들이 이 놀라운 권세를 스스로 포기하고, 고아로 살기를 자원하고 있다. 믿는 사람들 중에 이런 영적 고아가 너무나 많다. 스스로 영적 가정인 교회를 뛰쳐 나와 버렸기 때문이다. 아무리 좋은 집안에서 태어나도 스스로 가출을 해 버리면 그 집안으로부터 오는 복을 누릴 수가 없다. 믿음의 사람은 교회에서 스스로 잠적하거나 가출하는 어리석음을 범하지 말아야 한다. 스스로 복을 차는 행위이기 때문이다.
세상에는 4종류의 가족이 있다.
첫째는 평가이다. 그야말로 평범한 가문의 가족이다.
두 번째는 명가이다. 명문 가문의 가족이다. 경제, 정치 등 세상 각 분야에 명문가들이 있다. 명문가의 가족만 되어도 이미 수 많은 특혜가 주어진다. 명예, 물질, 결혼 등의 놀라운 특권이 자연히 부여된다. 그들의 선택보다는 명가의 가족으로 태어난 것 때문에 주어지는, 어떤 면에서 운명적인 특권이다.
세 번째는 왕가이다. 왕의 가족이다. 영어로 표현하면 로이얄 페밀리이다. 이 가족은 혁명이 일어나서 왕이 바뀌지 않는 한, 몇 백년이고 왕손으로서의 권세를 자손 대대로 누리게 된다.
그런데 로이얄 페밀리와는 비교도 안 되는 놀라운 가문이 있다. 그것은 바로 ‘신가’이다. 신의 가문의 가족이다. 다시 말해서 ‘하나님의 가족’을 말한다. 그들이 누구인가? 바로 우리들이다. 우리는 명문가의 아들도 아니요, 왕의 아들도 아니요, 신의 아들들이다. 만 왕의 왕 되신 하나님의 아들들이다. 이 신분은 이 땅에서 끝나는 것이 아니라, 영생까지 간다. 예수님은 분명히 말씀하셨다. ‘내 아버지께서 내게 왕권을 주신 것과 같이, 나도 너희에게 왕권을 준다.’(눅22:29-새번역)
우리는 얼마나 감격적인 인물들인지 모른다. 세상의 왕족과 비교가 안 되는 최고로 잘 난 사람들이다.
스스로 이렇게 한 번 고백해 보자. ‘내가 신의 아들이었구나!’ ‘내가 만 왕의 왕 되신 하나님의 아들이었구나!’
어떤 힘 있는 사람도 당신의 이 신분을 바꿀 수 없다. 혁명이 일어나도 안 바뀐다. 하나님이 당신을 ‘하나님의 자녀’로 정해 놓았기 때문이다. 축복된 운명이기 때문이다. 받아 들이라. 누리라. 증거하라. 이것이 ‘하나님의 자녀’된 우리가 해야 할 일이다.
      
3.        내가 있어야 할 곳은 어디인가?
그런데 생각보다 많은 하나님의 가족들이, 무리를 떠난 양같이, 가족이 없는 아이같이, 몸에서 잘려 나간 손가락같이 비참한 삶을 살고 있다는 사실을 알고 있는가?
왜 하나님의 가족인데도 불구하고, 이런 비참한 삶을 살아야 한단 말인가? 해답은 간단하다. 무리를 떠났기 때문에 길 잃은 양이 된 것이고, 가족을 떠났기 때문에 고아가 된 것이요, 몸에서 떠났기 때문에 잘린 손가락의 신세가 된 것이다.
떠나지 말아야 한다. 있어야 할 곳에 있어야 한다. 그래야만 복을 누릴 수 있다. 물고기는 물을 떠나지 말아야 하고, 양은 무리를 떠나지 말아야 하고, 성도는 주님의 몸을 떠나지 말아야 한다. 그것이 전부이다. 떠나지 않고 잘 붙어 있는 것이 복 중의 복이다. 여기서 하나님이 말씀하시는 몸은 ‘교회’이다.
‘여러분은 그리스도의 몸이요, 따로 따로는 지체들입니다. 하나님께서 교회 안에 몇몇 일꾼을 세우셨습니다.’(고전12:27-28)
‘교회는 그리스도의 몸이요’(엡1:23)
‘이와 같이 우리 많은 사람이 그리스도 안에서
한 몸이 되어 서로 지체가 되었느니라’(롬12:5)
우리는 그리스도의 몸의 지체들이다.
그러면 내가 붙어 있어야 몸은 어디인가? 학교나 직장인가? 아니다. 지체로서 나의 몸은 다름 아닌 교회이다. 교회는 나의 몸이다. 몸보다 더 중요한 게 어디 있겠는가? 성도에게 제일 중요한 곳은 교회이다. 교회에는 성도의 존재 이유와 생사 문제가 걸려 있다. 몸을 떠난 지체는 살 수 없기 때문이다. 하나님은 교회를 통해서 그의 자녀를 지켜 주시고, 교회를 통해서 채워 주시고, 교회를 통해서 사명을 주시고, 교회를 통해서 삶의 의미를 부여해 주신다.
‘물고기가 물을 떠나서 살 수 없듯이 교인은 교회를 떠나서 살 수 없다.’
‘지체가 몸을 떠나서 살 수 없듯이 교인은 교회를 떠나서 살 수 없다.’
나는 지체이고, 교회는 몸이다.
교인은 반드시 교회에 연결되어야 한다. 교회의 한 부분이 되어야 한다. 그것만이 정상적인 ‘신의 아들’의 모습이요, 능력 있는 ‘하나님의 자녀’의 모습이다.
‘우리 각자는 주님의 몸인 교회에서 우리의 기능과 존재 의미를 찾아야 한다.
잘린 손가락이나 발가락이 된다면 우리가 무슨 가치가 있겠는가?’(롬12:4-5;Msg)
영적으로 지금 내 모습은 어떤가?
잘린 손가락인가? 아니면 겨우 붙어 있는 상처투성이 손가락인가? 아니면 잘 붙어 있는 능력의 손가락인가?
겨우 예배만 드리고 가는 예배꾼만 많은 교회는 희망이 없다.
건강한 교회, 힘 있는 교회는 예배꾼이 아니라, 지체들이 많다.
교회 일에 늘 ‘방’관자의 입장에서 ‘수’동적인 모습을 보이는 ‘방수’ 교인의 삶을 청산해야 한다. ‘후탁’ 교인의 모습도 마찬가지이다.(후탁교인 : 주일날 교회 올 때에 먼지 쌓인 성경책을 입으로 ‘후-‘ 불고, 그리고 남은 먼지를 손으로 ‘탁’ 틀고 오는 교인)
지체들이 많은 교회가 소망이 있는 교회이다.  
‘출석 교인’만 되지 말고 ‘지체 교인’이 되어야 한다.
왜냐하면 우리의 본 모습은 교회의 지체(기관)이기 때문이다.
‘내가 어떻게 하면 교회에 지체처럼 붙어 있을 수 있을까?’
‘내가 어떻게 하면 교회와 지체처럼 하나가 될 수 있을까?’
‘내가 어떻게 하면 교회를 내 몸처럼 사랑할 수 있을까?’
‘물고기가 물을 떠나서 살 수 없듯이 교인은 교회를 떠나서 살 수 없다.’
‘지체가 몸을 떠나서 살 수 없듯이 교인은 교회를 떠나서 살 수 없다.’

24 コメント

박종희

2008-10-07 01:22:38

‘이와 같이 우리 많은 사람이 그리스도 안에서
한 몸이 되어 서로 지체가 되었느니라’(롬12:5)

‘물고기가 물을 떠나서 살 수 없듯이 교인은 교회를 떠나서 살 수 없다.’
‘지체가 몸을 떠나서 살 수 없듯이 교인은 교회를 떠나서 살 수 없다.’

교회는 예수그리스도의 몸이라 한다, 우리는 그 몸에 붙어 있는 지체라고 하였다.
지체가 몸에서 떨어져 나가면 그 생명력을 잃어버리듯이
우리성도들도 교회에서 떨어져 나가게 되면 그 생명력을 잃어버리게 된다.

어제는 나와 내 아내에게 있어서 조금은 뜻깊은 날이 되지 않았나 싶다.
속회가 끝나고 집으로 돌아가기전, 우리 제자반도 전도지를 손에 들고 거리에 나가게 되었다.
물론 내 아내도 함께 따라 나서게 되었다.

우리 부부가 중앙영광교회교인으로 등록한지는 5개월 째가 되어간다.
하지만, 지금까지 우리 부부는 이렇다하게 교회에서 봉사를 한다거나 다른 활동을 통해 섬기지 않아왔고, 예배 끝나면 밥먹고 집으로 돌아오는 사람들이었다.
교회라는 몸에서 떨어지지는 않았지만, 지체로서의 그역활을 하지 못하고 단지 몸에 덜렁덜렁 붙어 있는 아무런 쓸모 없는 지체같았다.
어떤땐 이 교회가 내교회가 아니고 다른 사람의 교회같이 느껴졌고, 이 교횐 우리에가 잘 안맞으니, 다른 교회로 가야 하나 하고 생각이 들 때도 있었다.
설교말씀에서, "방수교인이 되지말자" 라고 말씀하시는것을 듣게 되었다.
방관자, 수동적인 교인이 되지 말자라는 의미이다.
우리부부는 되지 말아야 할 것을 향해 달려오고 있었던듯 싶었다.
교회일에 대해서 방관자였으며, 수동적이었던것 같다.

교회는 우리에게 에너지를 공급하며 우리를 우리답게 한다라는 것을...
그러므로 우리는 교회를 떠나서는 살수 없다라는 것을,
선포되어진 말씀을 통해 깨닫게 된다.

어제의 전도를 통해서, 우리부부도 교회의 한지체로서 무엇인가 제역활을 해냈다라는 마음이 들게 되었다.
집에 돌아오는길, 사실, 많이 피곤하고 지치지만, 어제는 마냥 기쁘고 힘이 넘쳐났다.

내가 나에게 목적을 둔 일을 하는것이, 내가 해야 할 일이 아니라,
내가 하나님께 목적을 두는 일이 내가 해야 할 일이 되길 소망한다..
앞으로는 좀더 적극적으로 교회일에 참여해야 하겠고, 방관하지 않아야 하겠다라고 결심한다.

조상만

2008-10-07 04:29:38

오우~ 세상에 !! 석간 돌리자 마자 힘차게 달렸는데~ 2등입니다.
담주는 더달려야지 라는 다짐과 함께 오늘의 리플 시작하겠습니다.
저는 언제나 그랬듯이 "쌍 10000" 입니다. 어제 목사님 설교의 타이틀은 "교회와 나 (Church & me)입니다. 세계 어느나라 사람이라도, 크리스챤이 아닌 사람이라도 "교회" 하면 뭔가 특별한 장소 , 혹은 공간으로써 인식 되어 지고 있는 것은 사실입니다. 참 희한한 것이 절에서도 욕이나 상스런 언어나 좋지못한 행위를 하던 사람들도 교회에서는 그런 행동들을 자제하는 그런 현상들을 많이 볼 수있는 것이 그 증거이겠죠. 참 희한한 일이죠. 세상적 표현으로는 딴 건물과 다를바 없는 집한채에 십자가 하나 꼽혔을 뿐인데 어찌해서 사람들은 교회라는 장소를 딴 장소와 다르게 여기게 되는 걸까요? 우리같은 크리스챤 들이야 당연 그렇게 느껴야 하겠지만 믿지 않는 저들은 어찌 된 것일까요? 저도 모르겠습니다. 담에 그런 사람들 만나면 한번 물어봐야겠습니다. 교회와 나~ 그저 장소와 인간이라는 의미로도 받아들여 질 수있을 것입니다. 그 옛날 카톨릭의 타락으로 인해 성서 본연의 자세로 돌아 가자는 외침과 함께 많은 신교 들이 생겨 나면서 지금까지 그 명맥이 유지 되고있는 기독 감리교~ 그러면서 카톨릭의 성당(Sanctuary)에서 교회(Church)라는 개념의 아이템이 나오게 되는걸루 알고 있는데요. 교회란 어떤 장소 일까요? 예배를 드리는 공간, 기도를 하는 공간, 잠자는 공간, 밥 먹는 공간, 교제의 공간 등등.....
여러의미의 장소가 될 수도 있겠지만, 우리 크리스챤들은 이 교회란 아이템을 장소이상 으로써 생각을 해야 되지 않을까요? 예배드리고, 기도하고~ 다 좋지만 교회를 나의 영적인 본체로써 느끼고 살아가야 되지 않을까요? 컴퓨터에는 본체, 모니터, 프린터, 마우스, 자판 등등 이럽 기기들을 합쳐서 컴퓨터라 표현하지요. 그중에 제일 중요 한것은 역시나 본체입니다. 모든 PC 작업의 중요 요소는 역시나 본체죠. 교회가 우리의 본체인 것입니다. 본체가 빠져서야 그외의 다른 기기들이 작동할 수 있을까요? 전원을 꼽으면 전원이 들어가는 표시는 가능해도 그 기능은 제대로 작동되지 않을 것입니다. 인터넷 전화기도 컴퓨터 본체에 인터넷이 되어야 작동 가능하며, 모니터도 본체에 꽂아야 영상이 올바로 나오며, 마우스와 자판도 본체에 꽂아야 비로소 커서가 맘먹은데로 움직여 지는 것이겠죠. 그렇습니다. 우리의 본체는 교회인 것입니다. 교회의 문은 우리의 작동을 위한 USB 케이블 단자 정도 될까요? 그럼 저와 동완이는 음악 공부하니깐 컴퓨터에 연결되는 미디 장비나 인터페이스 정도 되겠군요. 우리는 그 주변 기기 인것입니다. 그런 의미에서 우리는 교회를 항상 소중히 하고 교회를 위해 기도 하며 교회를 내 인생의 중심이 되는 그런 장소로 생각해야 할 것입니다. 오늘도 나의 본체안에서 저는 열심히 리플 달고 있습니다. 우리 제자반 동료 여러분 우리 모두 우리들의 본체인 교회가 우리 신앙 생활의 중심이 되는 아이템이라고 힘차게 다짐해봅시다.
지금 까지 쌍 10000 이었습니다.

-G.att-

인선정

2008-10-07 05:41:59

얼만 전에 한국의 최고의 여배우 최진실 자매님이 자살을 해서 죽었습니다. 배우 최진실씨가 개신교 신자라는 것을 고인이 죽고 처음 알게 되었습니다. 고인이 최후의 남긴 말 중에 하나는 단 한명의 친구가 있었다면... 라는 말이었다고 합니다.
본질적으로 인생은 고해고, 외롭다고 생각합니다. 그 고독과 고통을 견디느냐, 승화하느냐 져주느냐는 결국은 개인의 선택이고 책임입니다.
하지만, 고인의 말을 접하고... 문득 나는 얼마나 교회의 지체들의 행복에 행복해하며, 지체들의 고통에 얼마나 아파하며, 도대체 지체들의 고민에 대해, 아니 지체들에 대해 정말로 알고나 있는 한가에 대해 생각해보게 되었습니다.
무려 5년이나 일주일에 한 번 마주친 교회지체들에 대해 얼마나 아는 걸까?
심지어 2년간의 훈련을 같이 하고, 매주 설교를 듣는 목사님에 대해서도 그다지 알고 있는 것이 없다는 것을 알게 되었습니다.(죄송합니다.)
교회는 물론 하나님을 만나러 오는 곳입니다. 하지만, 하나님께서는 나뿐만 아니라 다른 지체도 나 만큼 소중히 여기고 있다고 생각합니다. 그래서 "사람"을 나처럼 사랑하고 소중히 하는 것, 그것이 하나님께 대한 또 하나의 예배라고 생각하게 되었습니다. 이제부터 지체들에 대해 불만이 생기더라도 더 이상 불만을 갖지 않기로, 마음에 안 들어도 태클 걸지 않기를, 마음에 안들어도 상냥하게 대하기, 그리고 사소한 일이라고 진지하게, 그리고 진심으로 다가가기를 다짐합니다!

최수진

2008-10-07 07:26:01

‘이와 같이 우리 많은 사람이 그리스도 안에서
한 몸이 되어 서로 지체가 되었느니라’(롬12:5)

지난 주 내내 2번째 목적인 교제에 대해 배우고 또 설교 말씀까지도 몸된 교회와 또 각 지체에 대한 말씀이었기 때문에 2가지 결심을 했다.

먼저 내가 절대로 교회를 떠나지 않아야한다는 것을 절실히 느꼈다.
아니 절대 교회를 떠나지 않을 것이라 결심했다.

내가 교회를 다니게 된 계기는 주위에 친구가 아무도 없었기 때문이었다.
아주 어릴적 잠시 우리 가족은 동네와 떨어진 산에 살고 있었다.
그때 살던 집에서 민가도 멀리 떨어져있었고 그 시골에서 내 또래의 친구를 찾기는 더욱 어려웠다.
게다가 취학 전이었기 때문에 학교에도 갈 수 없었던 나를 위해 아빠가 주일마다 자전거에 나를 태워 교회에 데려다 준것이 계기였다.
그렇게 4~5살부터 교회를 다니고 이후 산에서 동네로 내려와 살게 되면서 홍근이와 같이 다니고 그 이후에는 부모님도 함께 교회를 다니게 되었다.
어느샌가 교회에 다니는 것이 당연하게 되어버렸는데 중고등학교때는 교회에 다니는 것이 너무나도 싫었다. 교회를 다니는 것 때문에 할 수 없는 일도 많았고 교회에서 나에게 주어지는 일도 너무나도 싫었다.
그래서 나는 대학을 일부로 멀리 갔다. 내가 갈 수 있는 한 멀리.
그런데 계속 한 교회만 다니던 내가 새로운 교회를 찾는 것도 어려웠고 새로운 교회를 가도 적응하기 어려워 점점 멀어지게 되었다. 사실 귀찮기도 했었던 것 같다.그렇게 몸에서 손가락이 떨어져나갔다.
물론 그 당시의 내 생활을 되돌아보면 방황 방탕 그 자체였던 것 같다.
지금 생각하면 부끄러운 일이 너무나도 많았다.
하지만 졸업 후 경주로 다시 돌아오게 되면서 자의반 타의반으로 꾸준히 교회를 다니게 되었다. 그리고 일본에 오게 되었는데 그 때도 초반에 많이 방황해서 잘 못나올 때가 많았다. 그 때 나를 잡아준게 속회가 아닌가 생각을 한다. 그리고 제자훈련.그렇게 제자훈련 사역훈련을 통해 떨어져 나갔던 손가락은 수술 성공하고 회복하고 다시 움직일 수 있게 된 것 같다.
다시는 손가락이 짤려 나가는 어리석음을 범하고 싶지 않다.

또 하나 느낀 것은 나 혼자만이 아니라 교회안에 있는 다른 지체에 대한 생각을 했다. 우리는 모두가 가족이다.
내가 교회에서 떠나지 않는 것도 중요하지만 다른 가족들도 떠나지 않아야한다.
지체가 잘려나가면 그 지체도 죽지만 그 몸도 무지하게 아플 것이다.
오늘 새벽에 교회에서 기도를 하는데 갑자기 지금 훈련을 받는 훈련생들의 얼굴이 떠오르는 것이었다. 같이 훈련을 받는 사역훈련생들 뿐만이 아니라 제자훈련생들 생각도 나서 기도를 했다.
정말 훈련 중에 그만 두는 일이 없도록 하나님께서 모두의 환경과 마음을 다스려주시길 간절히 바랬다.
우연히 생각나서 하는 기도가 아니라 지금부터 훈련끝날때까지 계속 기도해야지
기도가 힘이다!

박재훈

2008-10-07 09:02:47

한국에 있을 때 정말 심각하게 교회를 옮기는 일에 대해서 생각한 적이 있었다.
어딘가 새로운 교회를 찾는 것도 쉬운 일만은 아니며 어릴 때부터 다녀서 내 집같이 느껴지는 곳을 떠나고 유치부 아이서부터 늙으신 권사님들까지 너무 눈에 밟힐 것 같은 두려움과 또 귀찮음에 생각을 보류했다.
그 땐 내 신앙을 위해 옮기려다 인간의 정에 이끌려 결단을 못 내리는 나의 자신없음에 한숨을 쉬었었지만, 돌이켜 생각하니 단칼에 결정내리지 않게 하셨던 하나님의 섭리였다.

일본에 오게 되면서 본의 아니게 '외도'를 처음 해보게 되었다.
6년 전에 1년 교환학생으로 일본에 왔을 때, 처음으로 다른 교회를 섬겨본다는 설렘과 호기심에 살짝 부풀었었다. 친구랑 같이 교회를 선택해서 적응해 갔기 때문에 혼자만큼의 어려움은 아니었지만, 그 공동체를 내 밥으로 만들기까지 적지 않은 시간과 적극성의 에너지를 필요로 했다. 성도다운 성도로 신앙생활 하기 위해 성가대에 뛰어 들었고, 어느 날부턴가는 일본인 예배에 반주자로 나를 사용해주시면서, 점점 그 교회가 내 몸처럼 너무 소중한 것을 느끼게 되었다. 다시 한국으로 돌아가야 할 때, 그 교회를 떠나는 게 너무 마음이 아팠었다. 오죽 그리웠으면 다음에 다시 일본에 체재하게 되면 교회 근처에서 살아야지 마음 먹을 정도였다.
물론 제작년에 우리 교회에 나오게 되었을 때도 구경꾼이 아닌 '나의' 교회로 만들기까지 마음의 노력, 행동의 노력을 다하지 않을 수 없었다.
한국에서 3,4개 봉사를 했었기 때문에 조금 편해지자는 마음에 그래 일본에 가서는 당분간 예배생활만 하자고 은연 중에 결심을 했었다. 몇 달동안은 그냥 예배만 드렸는데, 또 몸이 근질거리기 시작했다. 교회라는 곳에 가면 어색함이 없어야 하는데, 이건 새신자도 아닌 내가 교회에 가서 안절부절을 못하게 되니 정말 참을 수 없었다. 어차피 계속 섬길 교회라면 참 지체가 되고 싶었던 것이다. 속회 모임 하나만 가지고는 내 안의 지체욕구가 채워지지 않았다. 계속 방관자 성도로 지내면 어떻게 될지 눈앞에 너무 뻔히 보였고 무서운 마음이 들었다. 예전에도 그랬듯 또 내 발로 성가대에 뛰어 들었다. 성가대를 하기 전에는 주방에 들어갈 때마다 남의 집 주방을 손대는 것 같아서 설거지 하나 하기가 너무 마음이 불편했는데, 교회에 봉사를 하기 시작하면서 가스에 불을 켜는 것도 설거지를 하는 것도 행주를 빨아널어두는 것도 너무 자연스러워졌다. 봉사하면서 교회를 사랑하게 되고 지체들이 사랑스러워 보이는 그 최고의 행복의 맛을 나는 안다. 자만일지도 모르지만, 교회가 몸이고 내가 절대로 교회를 떠날 수 없다는 것을 안다. 그래서 나는 교회를 떠나는 것을 얼마나 두려워하는지 모른다.
예전에는 '어차피 동일한 하나님이 역사하시니까 다른 교회로 옮길 수도 있겠지'라고 생각했었는데, 주일날 목사님 설교를 들으며 일본에 와서 두 교회에 익숙해지기까지의 나의 생생한 일들이 생각났다. 아무리 성격이 좋고 믿음이 좋은 사람이라도 일단 몸에서 떨어져 나온 지체가 다른 몸에 적응하기까지, 시간도 많이 소비되고 에너지도 많이 소비된다. 다른 지체들에게 탄력받은 한 지체로서의 모습이 아닌 새신자의 모습으로, 한동안은 어쩔 수 없는 외로운 이방인으로 다시 시작해야 한다.
우리의 몸된 교회를 사랑하기 원하고 또 하나님나라에 들어가기까지 떨어지고 싶지 않다면, 의도적인 봉사를 하시기를 감히 권하고 싶다. 나에게 주신 것으로 하나님과 다른 지체들을 섬길 때에 진정 떳떳한 지체가 됨을 모두가 느꼈으면 좋겠다.

한진경

2008-10-07 17:51:33

‘이와 같이 우리 많은 사람이 그리스도 안에서
한 몸이 되어 서로 지체가 되었느니라’(롬12:5)

몇년전까지만 해도 나에게 있어 교회라는 존재는 학교와 같았다.
가기싫어도 집안식구들이 다 가니까 안가면 엄마한테 몇분정도는 꾸증을 들어야하니까 난 의무적으로 가야만했다. 일부에서는 교회친구들과 어울리는 것을 목적으로 교회에 다니는 아이들도 있었지만 나는 굳이 교회에서까지 친구들을 만들 생각도 없었다. 모태신앙인데 불구하고 이제까지 수련회를 가본적이 한번도 없다. 친하지도 않은 이들과 어울리는걸 꺼려하는 성격도 한몫을 한것 같다. 교회에 헌신하는 형제자매들을 보면 무엇때문에 하는 것일까라고 의문을 갖을때도 많았다.

하지만, 내가 일본에 와서 후쿠오카에서 단기선교를 마치고 중앙영광교회에 와서
찬양으로 봉사하면서 교회가 나에게 있어 부모님의 품처럼 편안하고 따뜻한 곳이라는 것을 알게되었다. 주님에게 찬양드리는 그 시간, 그 장소가 나에게는 큰 위로와 기쁨을 줬고, 우리 멋진 JOY팀과 어울리는게 나의 가족처럼 여겨지고 너무 편안하다. 사람의 꾸중이 무서워서가 아니라 정말 내 안에서 품어져나오는 그 기쁨을 느끼는 것이 중요한것 같다. 기쁨이 뿜어져나오는 온도차는 사람마다 다르다.
나같은 경우는 아직 어린아이와 같은 성격이 남아있는지 강요가 심하게 되면 점점 하기가 싫어진다. 무슨 일이던지 내가 하고싶어서 기쁨으로 자진해서 해야한다고 생각하고 또 그런한 일들은 다 성공으로 연결된다.
다른사람이 나를 어떻게 평가하던지간에 내가 하나님앞에서만 떳떳하면 되는거 아닌가 라고 요즘 생각해본다. 손가락을 움직여야만 몸이 건강해지는 건 당연하다. 하지만 대전제가 되는것은 주님이 보시기에 기쁜일을 하기 위해서 움직여야하는 것이다. 누구한테 보여주기위해서 손을 움직이는 것은 바람직하지 않은것같다. 단지 분주할뿐 그런 움직임은 손을 지치게 하고 피곤은 세포를 악하게 하며, 나쁜세포로 가득찬 몸은 아파질것이다.

우리는 GOD FAMILY!! 주님을 기쁘게 하는 자녀가 되는것이 우리의 의무이다.

김 정숙

2008-10-07 23:49:13

우리는 그리스도 예수 안에서 한 몸이되었고 우리 각자는
몸에 지체들입니다!
말씀을 듣는 순간
나는 날마다 이렇게 생각하며 신앙 생활을 하고 있었던가 하는
아픈, 마음속 깊이, 느낌되는 회개가 있었고
솔직히 양심에 찔림도 있었습니다.

교회는 나의 인생에서 가장 소중한곳이며, 내 존재의 의미이고,
내 생명과 같은곳, 이었나....
돌아보며 다시 회개하게 되었습니다.
지금까지의 내 게 있었던 교회에 대한 가치관을 내려놓기를 원합니다.
성경의 말씀의 가치관으로 바꾸어
예수님이 나를 (우리를) 위해 십자가의 보혈로 세우신 교회!
교회안에서 다시 만들어 한몸으로 주신 영에 형제 들에게
한 몸의 소중함으로 한사람 한사람을 내 가족과 같이
사랑으로 섬기며 한몸이 아프지 않게 노력하며
나를 죽이기를 소원하며 성령의 도움심을 구합니다.

내몸이 소중하듯이 같이 살아서 움직이는
그래서 하나님이 기뻐 하시는 귀하고 복된자녀가 되어
나에게 주신 사명과 직분을 최선을 다하여 노력하여
나와같은 몸에 있는 지체들이 아파 하지 않고 힘들어 하지 않는
모두 모두 하나되는 일 에
마음을 다하고 뜻을 다하고 힘을 다하고 목숨을 다 하기를
소원합니다.

영원한 중앙 영광 교인이 되고 싶습니다!

박빛나

2008-10-08 02:48:49

성도에게 제일 중요한 곳은 교회이다.

매일 같이 새벽을 깨우게 해주신 주님께 너무나 감사를 드렸다. 새벽에 말씀으로 단련받지 않았으면, 정말로 시험들뻔했기 때문이다.
아빠는 장로님이다. 교회를 너무나 사랑하시고, 아빠의 최우선 순위는 교회다.
회사보다도 교회가 우선, 건강보다도 교회가 우선인 아빠를 보면서,
아부지... 좀... 걱정되네요. 그런 생각이 드는 날이 하루 이틀이 아니었다.
오죽하면, 오랫만에 한국에 가서도 주일이면 실업인 선교회 사무실에서
아빠를 기다리면서 선교회 분들과 식사를 하니 말이다.
못 말리는 아빠를 가진 딸의 마음이 가끔은 섭섭함으로 오기도 했다.
지금은 아빠의 그런 모습이 웃음이나도록 즐겁다고 생각했는데,
그런 모습들이 이번 주 말씀을 듣는 내내 마음을 괴롭혔다.
너 그거 때문에 힘들었잖아. 아빠 기다린다고, 친구들도 못 만났잖아!
사탄은 계속 머릿 속에 잡생각을 집어 넣었다.
이해 할 수 없으면, 그냥 믿어라!!
그 말씀대로 내 생각을 괴롭히는 것들로부터 지켜주시길 기도했다.
한 이틀은 걸린 것 같다. ^^;;
내 마음에 상처가 치유되는데는 성령님의 손길이 닿자 겨우 이틀만에 해결된것이다. 내가 이해하기위해 발버둥 쳤다면, 아마도 매우 힘든 시간이 되었을 것 같다.

울 아버지 명언이 있다.
"교회에서 하라면 그냥 다 해라!" 이유는 없다. 울 아부지는 이런 식이다.
바로 아버지의 경험담이기 때문이다. 그 이유가 알고 싶다면 해 보는 수밖에 없게끔 만드는 울 아부지의 화법을 떠올리면, 우리 목사님이 많이 생각난다.
좋은 것을 나누고 싶고, 나누고 싶기 때문에 간절하고, 그렇기에 화가나는 느낌.
나는 중앙 영광교회에와서 너무나 많은 것을 배워가는 것 같다.

사랑의 주님이 이곳에 보내신 이유가 조금씩 보일때마다,
주여! 용서하세요. 감사합니다.. 라고 밖에는 할 말이 없다.
주님의 교회는 곧 제 교회입니다. 주님 말씀하시면, 저는 예스맨이 될 수 밖에 없네요. 제가 감사를 표현할 수 있는 방법이 그것 뿐이라면, 저는 예스맨이 되겠습니다. 주님 사랑하니까요.

장미경

2008-10-08 09:35:28

교회에는 성도의 존재 이유와 생사 문제가 걸려 있다. 하나님은 교회를 통해서 그의 자녀를 지켜 주시고, 교회를 통해서 채워 주시고, 교회를 통해서 사명을 주시고, 교회를 통해서 삶의 의미를 부여해 주신다.

설교문을 계속해서 읽으면서 한 지체라는 것에 대해 생각해 보게 되었다. 제자훈련을 받기 전 나를 망설이게 하는 것 중 하나는 교회 속으로 내가 너무 들어가게 되어 교회 안에서 일어나는 안 좋은 것들까지 모두 내가 알게 되면 어떡하나 라는 것이었다. 교회와 더욱 친해짐으로 인해 목사님의 설교에만 집중할 수 있었던 주일이, 극히 인간적인 많은 일에까지 내 신경을 넓혀가야 함을 알기 때문에…. 한국교회에서 많은 봉사를 하며 때론 주일이 예배보단 예배 아닌 다른것에 더 힘을쏟아 마르다 같은 모습에 나 스스로가 지쳐가던 때가 있었기에… 작년에 왔을 때 주일날 오로지 예배에만 집중할 수 있어 참 좋았었다. 그저 예배가운데 은혜받고 속원들과 나누는 정도로 교제도 하고 그러고 돌아가는 것이 분명 뭔가 허한점도 있었지만 그냥 편하니 좋았다. 때문에 교회 안으로 더욱 깊이 들어가는 것이 두려웠다. 분명 그러다 보면 내가 의도하지 않은 상처들을 받게되거나 알게 될 것을 알기에…
하지만 정말 같은 한 지체라면 …. 저 멀리 새끼발가락에 작은 상처만 나도 난 아프다고 느낀다. 내 얼굴이 아무리 이쁘게 웃고만 있고 싶어도 느껴져 오는 아픔을 아닌척 할 수는 없는 것이다. 그건 내가 아닌척 하자고 할 수 있는것이 아닌것이다. 아픈걸!!! 그렇게 생각하고 보니 한 지체로서의 중앙영광교회 교인으로서의 내가 예배만 드리고 가는 것은 반신마비된 상태의 지체라는 생각이 들었다. 발가락 상처의 아픔은 안 느껴도 되는 편리함은 있을지 모르지만 그건 분명 건강치 못한 상태인 것이다. 때론 아픔도 같이 느껴야 하지만 분명 발가락이 있어서 내가 휠체어를 타지 않고 걷고 뛸 수 있음을 알아야 한다.
건강한 교인으로 자유롭게 걷고 뛰길 원한다면 한 지체된것을 인식하고 지체로서 내가 해야할 것 들을 피하지 말고 감사히 해야 할 것이다.
결코 방수교인, 후탁교인으로서는 누릴수 없는 주님 준비하고 계시는 많은 은혜들을 중앙영광교회의 한 지체로서 깨달아 알아가는 사람이 되었음 한다.

서진

2008-10-08 19:27:35

‘이와 같이 우리 많은 사람이 그리스도 안에서
한 몸이 되어 서로 지체가 되었느니라’(롬12:5)

우리는 그리스도안에서 서로 지체 이므로 서로 몸에 붙어살아야 한다. 교회는 우리의 몸이고 우리는 그몸의 지체이다. 그래서 우리는 물고기가 물을 떠나서 살수 없듯이 우리도 교회를 떠나서는 살수 없다. 교회는 우리의 집이고 교인은 가족이다. 하지만 나는 교회 형제 자매들을 가족처럼 관심을 두고 사랑해오지 못한 것에 대해 후회를 느낀다.

우리는 가족으로서 서로를 의지하여야 서로 협력하여 주님의 뜻을 이루어야 한다. 이 설교를 들으면서 나는 어떤 시험이 올찌라도 절때로 교회를 떠나지 않겠다고 결심했다.

"하나님 아버지,제자훈련중에서도 제자훈련생들이 아무도 시험때문에 교회를 떠나는 일이 없도록 하나님께서 저희들을 사랑해주시고 인도해주십시요. 그리고 저 자신이 방수교인이 아닌 후탁교인이 아닌 지체교인이 되도록 인도해주십시요."

‘내가 신의 아들이었구나!’ ‘내가 만 왕의 왕 되신 하나님의 아들이었구나!’

최홍근`

2008-10-08 22:12:01

교회를 어떻게 보아야 하는가?
‘교회는 내 몸이다.’ 이것이 교회관의 정답이다.
성도는 교회를 자신의 몸같이 귀하게 여기고, 사랑하고, 헌신해야 한다. 그것이 바로 자신을 최고로 귀하게 여기고, 사랑하고, 헌신하는 길이다. 교회는 바로 자신의 몸이기 때문이다.

하나님은 나에게 어릴 때 부터 교회를 위해 헌신해야한다고 가르쳐 주신것 같다.
내가 한국에서 다니던 교회는 시골의 작은 교회이였는데.. 그래서 성도들이 엄청 적었다. 그리고 젊거나.. 어린애들은 더욱더 적었다. 그래서 그런지.. 이런 저런 일손이 부족하였고.. 나는 하기 싫었지만 어떨결에.. 중학교때.. 인가.. 고등학교때 주일학교 교사를 했었다. 그 때 생각으로 한 1년정도만 하고 끝 낼 수 있어서 다행이라고 생각했다. 하지만 지금 생각해보면.. 짧게 한 게 나에게 손해였다는 생각이 든다. 하지만.. 교회에 대한 봉사는 여기에서 끝나지 않았다.. 집이 그렇게 멀지 않았기 때문에 한번씩 교회에 가서 자잘한 일을 하게 되었고.. 어느 때 부터는 매주 주보를 만들어야했다. 그렇게 힘든 것도 아니고 그냥 원본에서 조금만 수정하고 뽑기만 하면 되는 건데.. 그 때 당시 나는 너무나도 하기 싫었다. 그러한 것도 있어서 고등학생때 나는 대학교는 반드시 타지로 가겠다고 생각했다. 그래서 결국 난 타지로 갔었고... 그 때 부터 나의 신앙 생활은.. 무너졌다. 처음에는 몇 번 교회에 나갔지만.. 낯설다는 핑계로 바쁘다는 핑계로 점점 빠지더니 결국엔 가지 않게 되었다. 지금에 와서야 시골의 작은 교회에서 목사님을 도와 이런 저런 일을 할 수 있다는 것이 나에게 얼마나 큰 축복이고 행복한 일였는지 알겠다.
크리스찬이 자기 몸은 엄청 소중히 여기면서 교회를 소중히 여기는 것이 얼마나 잘 못 된 것인지 이번 설교를 통해 깨닫게 되었다.

강민아

2008-10-09 00:52:58

‘이와 같이 우리 많은 사람이 그리스도 안에서 한 몸이 되어 서로 지체가 되었느니라’(롬12:5)

능력있는 하나님의 자녀로 살아가기 위해서는 교회와 연결되어야 하고,교회의 한 부분이 되어야하며, 영적으로 능력의 손가락이 되어야 한다는 이번주 목사님 설교는 흐트러진 나의 마음을 꽉! 붙들어주었다.

지난 주 토요일 게으름으로 새벽예배에 불참하며 개운하지 못한 마음으로 일어났다.토요일은 매주 찬양팀 모임이 있는 날이지만, 그 날따라 너무 가고 싶지가 않았다. 전 날 여러가지 문제들로 고민하다가 새벽까지 잠을 못잔 탓도 있고, 집 밖으로는 나가고 싶지 않은 마음 뿐이었다. 갈까? 말까? 한참을 고민하다 그래도 약속한거니깐 참석해야겠다 싶어 무거운 마음으로 교회에갔다.

그런데 언제나 처럼 예배당에 앉아 기도를 하는데 다른 날과 다르게 마음이 더 평안해짐을 느꼈고, 언제나 처럼 형제자매들과 교제를 나누는데 다른 날과 다르게 더욱더 즐거웠다. 그렇게 시간을 보내느라 전 날 나를 괴롭혔던 세상 고민은 생각조차 나지않았다.
그 날은 그냥 그렇게 '이런 모든 것들 감사합니다. 오늘의 나의 모습을 회개합니다.' 라고 집으로 돌아와 기도로 끝냈지만, 다음 날 목사님의 설교를 들으면서 내가 토요일 날 느꼈던 그 모든 것들이 교회와 연결되어 있기에 가능한 것이며, 내가 교회의 한 부분이기에 가능한 것이라는 것을 깨닫게 되었다.

세상속에서 너무 지쳐서 매 번 잊어버리는 것들.
내가 있어야 할 곳. 그리고 그 곳의 의미. 그 곳에서 내가 해야할 일들.
몸에서 짤려져 나간 손가락은 죽은 손가락이라는 목사님 말씀처럼 내가 교회에서 멀어지는 순간 내 영은 죽어버린다는 것을 다시 한번 가슴에 새기며 능력의 손가락이 되기위해 열심히 봉사하고 무엇보다 다른 지체들을 위해 기도하는 자녀가 되야겠다고 다짐했다. 모두가 건강하고 능력있는 손가락이 되어서, 우리의 몸인 교회가 지금보다 더 하나님의 기쁨이 될 수있도록 . . .

물고기가 물을 떠나서 살 수 없듯이 교인은 교회를 떠나서 살 수 없다.
지체가 몸을 떠나서 살 수 없듯이 교인은 교회를 떠나서 살 수 없다. 아멘!!!

#) 교회와 멀어지게되는 시험이 닥칠때마다 "짤려나간 손가락" 을 떠올리며 마음 붙들겠습니다.^^

문인우

2008-10-09 02:33:58

겨우 예배만 드리고 가는 예배꾼만 많은 교회는 희망이 없다.
건강한 교회, 힘 있는 교회는 예배꾼이 아니라 지체들이 많다.
교회 일에 늘 "방"관자의 입장에서 "수"동적인 모습을 보이는
"방수"교인의 삶을 청산해야 한다.

지체들이 많은 교회가 소망이 있는 교회이다.
"출석 교인"만 되지 말고 "지체 교인"이 되어야 한다.


내가 한국에서 다니던 교회는 개척 교회라 교인이 10명도 채 되지 않았는데 교인이 별로 없다보니 교회 청소나 점심 후 설겆이 그리고 비록 3명밖에 없지만 찬양단까지 할 수 있는 건 전부 내가 해야 했다. 처음엔 교인도 없고 내가 아니면 할 사람이 없으니깐 기쁜 마음으로 했는데 점차 토요일 마다 청소하러 가는것도 점심 먹고 쉬지 못하고 10명분의 설겆이를 하는 것도 짬을 내서 찬양 연습을 하는 것도 내 시간을 빼앗기는 것 같아 싫어지기 시작했다. 그러다 일본을 오게 되었고 중앙 영광 교회는 교인도 많고 사역하시는 분들도 많으니 내가 굳이 교회 봉사는 할 필요가 없다라는 생각에 마음이 편했다.
이렇게 교회 봉사를 멀리하며 예배와 속회만 드리는 교회 생활이 계속 되고 있었을 때 전 속장님이신 문진 속장님께서 평일로 시간을 옮기는 주목자 예배의 마지막 주일 예배 때 도시락 싸는걸 돕자고 하셨다. 내키지 않았지만 마지막으로 한번 해보는 것도 좋은 경험이 될꺼같아 흔쾌히 하겠다고 했다.
주목자 예배 당일 평소보다 일찍 교회에 나와 여러 집사님들과 봉사하시는 분과 함께 도시락을 싸기 시작했다. 밥푸는 조, 반찬 담는 조, 우메보시 넣는 조, 뚜껑 닫는 조, 마지막으로 미소시루와 젓가락과 함께 도시락을 포장하는 조..
이렇게 역할 분담을 맡아 마치 도시락 공장에서 일을 하듯 일사 분란하게 봉사하시는 분들과 교제를 나누며 도시락을 싸기 시작했다. 반찬을 만드시는 집사님들 보다 힘들지는 않았지만 100여명 분의 도시락을 싸는 일이 만만치 않았다. 하지만 그 봉사하는 시간이 어찌나 즐겁던지 정말 시간 가는줄 몰랐고 도시락을 다 싼 뒤 먹는 아침은 정말 꿀맛 이었다.
예배가 끝나고 돌아가시는 분들께 축복합니다 라는 한마디와 함께 도시락을 건낼때는 코 끝이 찡해지면서 눈물이 날 정도로 감동적이었다. 이래서 사람들이 선행을 하는구나! 싶을 정도였다. 하지만 이날 이후 평일로 옮겼다는 핑계로 한번도 참여하지 못하다가 오늘 목사새를 마치고 함께 교제를 나누던 언니들과 도와드리게 되었다. 회사 시간 때문에 끝까지 도와드리지는 못했지만 역시나 은혜스러웠다. 포장까지 마친 도시락은 대연이가 정해진 장소로 앙팡만을 부르며 차곡차곡 쌓았는데 그 모습을 보고 여태까지 교회의 봉사를 부담스러워 하며 피해왔던 내 자신이 부끄러워졌고 또 반성하게 되었다.
저렇게 어린 대연이도 즐겁게 봉사하는데 내가 아니라도 봉사할 사람은 많아!! 라는 생각으로 방관적이고 수동적인 태도로 교회를 다니고 있었다니..
그래서 이제 부터라도 교회의 한 지체로서 매주 수요일 새벽 예배 후 시간이 될 때까지 봉사를 해야겠다고 다짐했다.
교회에 나오기만 하는 출석 교인에서 잘 붙어있는 능력의 손가락같은 지체 교인이 되기 위해!!

김명엽

2008-10-09 03:07:29

‘이와 같이 우리 많은 사람이 그리스도 안에서

한 몸이 되어 서로 지체가 되었느니라’(롬12:5)

칼을든사람이 나를 위험하면 나를 보호하는 행동을하고 내 손을 잡고 손가락을자르려하는 행동에 손에 힘을 주듯 내몸에 붙어있는 것 하나하나가 소중하고 없어지면 그만큼 고통이 필요합니다.교회에 교인또한 그렇다는 것을 성경구절을 통하여
다시한번 깨닫습니다.제자교육하면서 한 사람이 뒤쳐지거나 힘들어하는 것또한 내몸 일부가 아프거나 힘들어하는것도 한 머리로 깨달았습니다.마음으로 깨닫는 은혜가 있길 기도합니다.이미 마음은 알고있지만 제가 느끼지못할수도있습니다.어렵게 씁니다만..한국교회에서 봉사을 하다가 힘들고 주저앉아있을 때 그 누구도 안잡아줬던 일이 너무 가슴이 아픕니다.하나님의 은혜로 다시 일어났지만,...그일이 생각나 많이 안타깝습니다.지금도 저같이 힘들어하며 교회에서 멀어진 동생이있어 더욱 마음이 아픕니다..하나님은 저를 너무 사랑하신지 그때그때 시험기도를주시는것같습니다..하나같이 저혼자 할수없는것을 많이 느낍니다.하나님의 은혜만큼이나 여러 교인들의 기도와 사랑으로 살아가고있는걸 느끼며..이번 설교에 많이 슬프기도합니다..

최민정

2008-10-09 03:54:02

‘교회는 내 몸이다.’
성도는 교회를 자신의 몸같이 귀하게 여기고, 사랑하고, 헌신해야 한다. 그것이 바로 자신을 최고로 귀하게 여기고, 사랑하고, 헌신하는 길이다. 교회는 바로 자신의 몸이기 때문이다.


‘이와 같이 우리 많은 사람이 그리스도 안에서
한 몸이 되어 서로 지체가 되었느니라’(롬12:5)


하나님은 교회의 머리되시고 우리는 몸되는 교회의 각 지체들이다.
자신의 몸에서 손가락하나를 잘라도 온전히 살아갈 수 없는것처럼
우리역시 지체들이기에 교회에서 떨어져나가면 온전히
삶을 영위할수없고 영적으로 죽음의 상태가 된다는 말씀에
교회관을 바로 잡는것이 얼마나 중요한것인가를 깨닫게 되었다.

그리고 나역시 손에겨우붙어있는 덜렁거리는 손가락이 아니었나
생각해본다. 성가대를 하고있지만 그동안 연습시간에 제대로
나오지 못하고 한동안 소홀히 해왔기때문이다.
아마도 나하나 없어도 괜찮지 않을까 하면서 말그대로 방관자 적인
생각을 해왔기 때문인것 같다. 겨우 예배시간에 와서 예배만드리고 갈때는
항상 마음이 편치 않았다. 내가 붙어 있어야 할곳에 있지않고 혼자 떨어져
나올려고 했기에 마음적으로 어려움이 왔었던것 같다.
하지만 제자훈련을 통해서 그리고 목적새 를 하면서 교회에 있는 시간이
많아지고 나눔을통해서 많은 지체들과 시간을 보내면서 스스로도
은혜를 받고있고 교회를 사랑하는 마음이 조금씩 싹트고 있음을느낀다.

이제는 움직이지도 못하는 손가락이 될것이 아니라 몸에 꼭 붙어서
필요할때에 유용하게 사용되는 손가락이 되어야 겠다
찬양을통해서 부어주시는 큰 은혜들을 감사함으로 기쁘게 임할것이다

문원희

2008-10-09 05:17:19

'하나님은 교회를 통해서 그의 자녀를 지켜 주시고, 교회를 통해서 채워 주시고,
교회를 통해서 사명을 주시고, 교회를 통해서 삶의 의미를 부여해 주신다.'

나는 지체이고, 교회는 몸이다.
그동안 나는 교회가 내 몸이라는 생각을 해보지 안았다. 교회는 그저 교회일
뿐, 나에게 어떠한 존재인지 생각도 해보지 않았던것 같다. 어렸을때부터 다
닌 교회에서는 찬양단도 하고, 성가대도 하고, 연극도 하고, 친구들과 어울리
는 재미에 여러가지 나름대로의 사역을 했지만, 이사를 가고 난뒤에 교회와
점점 멀어졌다. 예전 교회와 비교해서 너무나 큰 규모의 새로운 교회에 적응
을 하지 못하고 그냥 그렇게 떨어져 나왔다. 그렇게 잘려진 손가락으로 10년
넘게 방황하였고, 일본에 오게 되면서 다시 한번 속회를 통해 교회에 열성을
가지게 되었다. 하지만 속회를 좋아해서 교회를 열심히 다니게 되었던 거지,
교회가 좋아서 열심히 다녔던건 아니었다. 그래서인지 속회시간에 속원 언니
들과는 열심히 교제를 하였지만 정작 중요한 예배시간에 하나님과의 교제는
소홀히 하였다.

그러다 작년쯤부터 성가대를 시작하게 되었다. 처음 시작한 동기는 그때쯤에
성가대의 찬양이 너무나 은혜로왔고, 어렸을때처럼 성가대를 해보고 싶었던
마음에 시작을 하게 되었다. 그리고 또 하나님께서 비슷한 시기에 청년부의
회계라는 자리도 같이 주셨다. 하나님께서는 교회의 한 부분이 되라고 성가대
와 청년부 임원자리를 주셨는데 그때의 나는 깨닫지 못하였다. 어쩌다 다니다
보니 청년부 임원이 되어있었고, 옛 생각을 하며 성가대를 시작하게 되었다고
생각했다. 정말 사모하는 마음으로 섬겼던것이 아니었기 때문이었는지, 아니
면 내안의 무언가 뒤틀렸었는지, 한때 성가대도 청년부 임원도 하기가 싫어졌
었다. 핑계라면 핑계일수도 있지만, 제자훈련이 다가오자 시험이 들었었는지
도 모른다. 정말 교회다니는게 싫어지기 까지 했었다. 교회안에서는 아무런
문제도 없었 는데 말이다. 그때 하필 속회도 방학이었고, 나는 교회에서 겉돌
기 시작했다. 겨우 붙었던 손가락이 다시 덜렁덜렁 잘려져 나가려고 했다.
하지만 하나님은 교회를 통해서 나를 지켜주시고, 교회를 통해서 채워 주셨
다. 흔들리던 나를 잡아주셨고, 허전했던 나의 무언가를 채워 주셨다. 또 다시
나에게 사명감을 주시고, 교회를 통해서 삶의 의미를 부여해 주셨다. 내가 교
회의 의미를 다시 생각해보고 교회를 사모하게 된 가장 커다란 계기는 제자훈
련 이었다. 아마 제자훈련을 하지 않았더라면 지금쯤 나는 성가대도, 청년회
임원도 중도 포기했을지도 모른다. 주님께서 나를 우리 교회에 보내주신것이
우연이라고 생각하지 않는다. 나는 신의 딸이기 때문에 당연히 누려야할 모든
것을 교회를 통해서 누리게 해주셨다고 생각한다. 교회는 주님의 교회이며,
주님이 세우셨기 때문이다.

한영진

2008-10-10 03:24:28

[떠나지 말아야 한다. 있어야 할 곳에 있어야 한다. 그래야만 복을 누릴 수
있다. 물고기는 물을 떠나지 말아야 하고, 양은 무리를 떠나지 말아야 하고,
성도는 주님의 몸을 떠나지 말아야 한다. 그것이 전부이다.
떠나지 않고 잘 붙어 있는 것이 복 중의 복이다. 여기서 하나님이 말씀하시는
몸은 ‘교회’이다.]

‘괜히 한번 가본다고 말을 해가지고, 에구 참 귀찮아라…..’
이런 마음으로, 코가 꿰어 억지로 끌려가는 소처럼
예배 시간을 반도 넘겨 우리 교회에 첫발을 내디딘 저입니다.
이런 제가 믿음으로 구원받고 이젠 우리 교회의 한 가족이 되었으니
이게 바로 기적이지, 딴게 기적이랴 싶어 새삼 참 감사합니다.
어찌보면 당연하지만 저도 처음부터
‘우리 교회’라는 소속감을 가진 것은 아니였습니다.
아직 손님이였던 저를 매 주 예배 후 식사하고 가라고
서둘러 돌아가는 제 발걸음을 잡아 방석깔아 좋은 자리에 앉혀주시고
맛난 반찬 제 앞에 놓아주시고 한 따뜻한 손길들이 있었습니다.
주일예배 빠지는게 아직은 아무렇지도 않았던 시절에 그냥 예배를 빠지고는
“왜 안왔냐”는 전화에 많이 아팠다고 거짓말을 했는데
심방까지 와주시고 뻔한 거짓말 모르는척 해주시는게 고맙기도 하고
죄송스럽기도 해서 다시 교회에 나가기도 했습니다.
아기였던 제게 관심과 애정을 가지고
세심히 돌봐 준 다른 지체들이 아니였다면
이렇게 제가 우리 교회에 자리잡을 수 없었을거라고 생각합니다.
그리고 언젠가 리플에 쓴적이 있지만
전 우리 교회를 한번 떠난적이 있습니다.
다른 모임이 좋아서 그 모임때문에 주일예배를 한두번 빠지다 보니
그게 습관이 되어 처음의 죄책감도 점점 엷어져
아무렇지도 않게 되었습니다.
그런 저를 그래도 사랑하시는 주님께서 자꾸만 그 사랑을 확인시켜 주셔서
겨우 다시 교회에 나가고 싶다는 생각이 들긴 했는데,
한번 스스로 떠난 우리 교회로 돌아가기는 인간적으로 참 어려웠습니다.
교회가 어디 한군데 뿐인가, 예배시간도 내 편리대로 골라 드릴 수 있고
가끔 빠져도 아무도 뭐라고 하지 않을만한 교회를 골라 다니기 시작했는데,
그게 좀 지나니 도리어 너무나 외로워서 견딜수가 없었습니다.
단지 주일에 한시간 예배만 드리고 돌아오는 걸로는
내가 그 교회에 속해 있다는 실감을 느낄 수가 없었습니다.
결국 주일에 예배 안드리고 놀러가는 자유?를 빼앗기더라도
우리 교회로 돌아가고 싶다고 절실히 원하게 되었습니다.
그래서 용기를 내어 돌아오게 되었는데 나중에 알고 보니
그 용기도 거저 생긴게 아니라
떠난 저를 잊지않고 계속 기도해 준 분들이 계셨기 때문이였습니다.
그리고 돌아온 제게 곤란하게 캐묻지 않고
그냥 잘 돌아왔다고 따뜻하게 반겨주고 칭찬해 주신 분들이 계셨기에
오늘 제가 우리 교회에 있을 수 있었다고 생각합니다.
위의 은혜 넘치는 다른 리플의 주인들처럼
저도 다시 돌아온 어색함이 사라지고
우리 교회의 한 일원으로 자리잡기 시작한 것은 이층 설겆이를 하게 되면서,
곧 일을 하기 시작하면서였습니다.
설겆이는 누구나 할수 있는 작은 일이지만
제게 우리 교회에 계속 있을 수 있는
존재가치의 동기부여가 되어 주었다고 생각합니다.
그러니 교회 내의 아무리 작은 일도 작은 일이 아니고 다 귀한 일이라는걸
제가 지금은 경험으로 깨달아압니다.
교회를 떠나게 되는 이유가 또 뭐가 있을까, 생각을 해봤습니다.
목사님께서 내게 별 관심이 없는 것 같다, 다른 사람만 예뻐한다,
심지어는 요즘 나를 미워하시는 것 같다,는 생각이 들기도 하는 모양입니다.
저같은 경우에는 저를 보는 목사님의 눈길이 왠지 차갑다고 느껴질 때에는
틀림없이 제가 영적으로 다운되어 있다거나, 뭔가 떳떳하지 못할 때입니다.
그러니까 자격지심에 그렇게 느끼는거라고 생각합니다.
열손가락 깨물어 안아픈 손가락이 없고,
내 배로 낳은 내 자식도 하는 행동에 따라 예뻤다가 미웠다가 하지만
기본적인 애정은 변함없듯이 우리를 향한 목사님의 사랑도 마찬가지라고,
저는 배짱 두둑하게 그 사랑을 믿습니다.
그리고 처음보다 좀 멀어진듯한 거리감은
제가 성장함으로 인해 믿고 지켜보시는 것이기 때문에 당연하다고
도리어 감사하게도 생각이 됩니다.
교회 내의 인간관계가 어려워지면 참으로 고통스럽습니다.
'ooo사단'이라고 불리고 같이 죽는 시늉까지도 하는
절친한 친구들을 많이 가지고 있었으면서도
철저히 ‘혼자’라고 느끼며 얼마 전에 스스로 생을 마감한
모유명 배우처럼 외로움은 큰 고통을 주긴 하지만
조금만 생각과 시선을 돌리면 피할 수도 있는 문제라고 생각합니다.
괴롭고 힘들다고 아예 다른 교회로 옮기기 보다는
교회 내의 다른 그룹으로 교제 대상을 옮겨 보는 것도
한 방법이라고 생각합니다.
이때도 뭔가 교회 일을 하고 있으면 생각을 사람이 아닌 ‘일’로
분산시켜 주어서 저같은 경우 크게 도움이 되어주었습니다.

쓰다보니 뭔가 잘난체 한 것 같아 부끄럽습니다.
한번 떠나본 적이 있었던 저이기에 우리 교회가 더욱 소중하고,
다신 떠나고 싶지 않습니다.
저의 경험이 있기에 떠난 분들을 위해 계속 기도하게 되고,
다시 돌아온다면 그저 따뜻하게 웃는 얼굴로
잘 돌아왔다고 말할 수 있습니다.
지금 뭐 별다르게 큰 일을 하고 있는 것도 아니지만
작은 일이라도 내가 할 수 있는 일이 있기에
그것으로 내가 우리 교회의 일원임을 확인하며
있어야 할 곳에 있다는 안도감을 느낍니다.
요즘엔 특히 사랑스럽기 그지없는 새로운 속원들을 섬기게 되어
정말 살 맛이납니다.
우리 속원들이 보고 싶어 한 주가 멀게도 느껴집니다.
매일 새벽 말씀으로 은혜받고, 성령 충만함을 느끼며 기도도 더없이 잘되고,
시간이 허락하는대로 전도에도 참가했더니
제 안에 주님께서 주시는 기쁨과 행복이 넘칩니다.
먹고 살 걱정만 없으면 매일 교회 일만 하고 살았으면 좋겠다고까지
생각하게 되는 요즈음입니다.
끝까지 우리 교회에 있을 수 있는 복 중의 복을 주님께 구합니다….

홍은미

2008-10-11 00:48:15

‘교회를 어떻게 보는가?’가 그 사람의 신앙 뿐만 아니라, 인생을 좌우하기 때문이다. 남이 말하는 교회관은 의미가 없다. 자신이 마음으로 믿고 행하는 교회관만이 살아 있는 교회관이다.
교회관은 우리가 만들어 내는 것이 아니라, 하나님이 주신 것이다. 교회는 주님의 교회요, 주님이 세우신 것이기 때문이다.

언젠가부터 주일은 '교회 가는 날'이 되어버렸다. 물론 예배를 드리기 위함이지만 어디에 있건 무엇을 하건 상황을 불문하고 주일은 내게 있어 교회가는 날이다.
하지만 주일외엔?? 나의 잘못된 교회관중의 하나가 평상시에 교회를 잘 찾지 않는 다는 것이다. 특히 지금 내가 다니는 교회는 왠지 더욱 그렇다. 평상시에는 적막함이 느껴진다고나 할까? 발걸음이 쉽게 닿지 않는다. 왜 그럴까?
그동안 느끼지 못하고 살았었는데 목사님의 말씀을 읽고나니 '이건 아닌데..'라는 생각이 든다. '마음이 가는 곳에서 예배를 드린 나였나!' .... 예배 드리는 곳에 나의 마음을 두지 않았기 때문이란 생각이 든다.

하나님은 교회를 통해서 그의 자녀를 지켜 주시고, 교회를 통해서 채워 주시고, 교회를 통해서 사명을 주시고, 교회를 통해서 삶의 의미를 부여해 주신다.

내게 있어 교회는 따뜻한 부모님 품과 같은 곳이다. 나를 두려움에서 건져주고 위로해주고 일으켜준 포근한 장소이다. 내게 새로운 삶과 바른 삶을 인도하는 등대같은 곳이다. 이런 곳을 찾아주신 하나님께 감사하며 교회구석구석 돌아보며 작은 일이라도 먼저 찾아서 하도록 노력해야겠다.

박은주

2008-10-11 00:59:56

교회는 지체인 나의 몸이다. 지체들이 아무리 잘 났다고 하더라도, 능력이 있다고 하더라도 몸을 떠나서 어찌 살 수가 있겠는가? 당신의 몸은 교회인 줄을 알아야 한다. 교회를 떠난 성도는 몸에서 잘려나간 지체와 같다.
지난 주에 이어 최진실의 죽음이 아직도 충격을 줍니다. 최진실씨가 죽을 때 자신에게 친구 한명만 있어서도…라고 했답니다. 최진실씨가 죽고 나서 인터넷 기사를 보니 최진실씨 주변에는 ‘최진실군단’이라고 할 만큼 친구들이 많이 있더군요. 그런데 그 사람은 왜 죽을 때 외롭다고 했을까요? 표면적인 앝은 사귐만이 있었던게 아니였던가 싶었습니다.
예전에 이 말씀을 접할 때면 그래 잘 붙어 있어야지, 시험에 들지 말도록 깨어 있어야지. 했더랬습니다. 그런데 이번에는 하나님이 또 다른 은혜를 주시네요. 회개를 하게 되었습니다. 저는 항상 늦습니다. 눈치가 없습니다. 남들이 다 아는 걸 제가 맨 나중에서야 압니다. 문득 누구누구 보이지 않네? 하고 물으면 그사람 한국갔잖아 든가, 이런저런 사정이 있어 다른 교회로 옮겼다든가…그런 소리를 들으면 그런가부터 하고 말았습니다. 같은 지체로 오랫동안 함께 믿음 생활해 온 지체가 떨어져 나갔는데 나는 무덤덤 했던 것입니다. 잠시 서운함도 잠깐 나와는 별 상관이 없습니다. 정말 지체로 생각하지 않았던 것입니다. 한 몸이라면 떨어져 나간 사람도 아프겠지만 붙어있는 지체도 아파야함이 당연한 건데 그렇지 못했습니다. 한 교회를 이제껏 섬기고 있지만 내 옆에 당연히 늘 있던 사람이 보이지 않아도 금방 알아채지도 못하고 속에 무슨 아픔과 어려움이 있는 줄도 모르고 얕은 사귐만이 있어던 것 같습니다. 저도 이때까지 표면적인 관계에 힘들어해 하고 외로와 해 하며 교회에서의 성도들과의 관계에 회의를 느낀 적도 많았습니다. 그러나 내가 먼저 마음을 오픈하려고는 많이 노력하지 않았던 거 같습니다. 물론 교회사람 전체에 다 오픈할 수는 없고 할 수도 없겠지만 가까운 주변에 있는 사람에게 먼저 솔직히 오픈하고 정말 참 지체다운 모습으로 먼저 손 내밀어야겠다고 다짐합니다. 모든 사람들이 애타게 찾는 진정한 친구, 참지체로서의 교제가 우리 교회안에 풍성히 넘쳐나길 기도합니다

박유진

2008-10-11 01:19:37

"‘교회는 내 몸이다.’ 이것이 교회관의 정답이다."

우리 부모님은 교회를 참 사랑하신다. 그리고, 교회의 일에 항상 순종하신다. 지난 8월초, 부모님께서 선교여행을 다녀오시게 되었다. 난 임신 말기였고, 조산기가 있어서 아기가 언제 나올지 모를 위험한 상황이었기 때문에, 부모님께서는 처음에 선교여행에 가시는 것을 많이 망설이셨다. 그렇지만, 이미 일정이 다 짜여져 있는 상태였고 매우 중요한 일이었기 때문에, 부모님께서는 가시기로 결정하셨고, 일본에 있는 동생을 한국으로 와서 나와 선호를 돌봐주게 하셨다. 처음에는 좀 서운하기도 했다. 교회일도 중요하지만, 난 산달이고 몸도 안좋은데 꼭 가셔야 하나 하는 마음이 들기도 했다. 이 일 때문에, 주변에서 만삭 된 딸 놔두고 간다고 안좋은 소리도 감수하셔야 했다. 그렇지만, 하나님의 일을 먼저 생각하셨고, 주님께서 나를 지켜주실것이란 믿음으로 기도하고 두분이 그런 결정을 했다고 생각하자, 부모님을 다시 한번 존경하게 되었다. 나도 나중에 자식과 교회의 일이 겹친다면 과감하게 교회의 일을 먼저 우선시 할 수 있을까...자식은 절대 우상이 아니지만, 때로는 어떤 우선순위보다도 먼저하도록 내게 시험거리가 되기 때문이다.

2주전부터, 한달이 좀 지난 쌍둥이들을 데리고 예배를 드리러 갔다. 다행히 아기들은 예배 시간 내내 잠이 들었고, 선호는 시어머니가 돌봐주셔서 무사히(!) 예배를 마쳤지만, 후다닥 다시 집으로 돌아오는 일정이었다. 지금 다니는 교회는, 어렸을 때부터 다니던 교회지만, 교회에서 예배만 드리고 그냥 집으로 돌아가게 되면, 아무리 오래 다녔어도 교회가 내 교회란 생각이 들기 힘든 것 같다.
자꾸만 일본의 중앙영광교회가 그립고 가고싶은 마음이 크다. 그곳에서 훈련받았고, 양육되었고, 믿음의 지체들과 만났기 때문인 것 같다.
항상 교회는 내 몸이란 생각으로, 교회에 충성하기를 다시 한번 다짐해본다.

양미옥

2008-10-11 05:10:14

성도에게 제일 중요한 곳은 교회이다. 교회에는 성도의 존재 이유와 생사 문제가 걸려 있다. 몸을 떠난 지체는 살 수 없기 때문이다. 하나님은 교회를 통해서 그의 자녀를 지켜 주시고, 교회를 통해서 채워 주시고, 교회를 통해서 사명을 주시고, 교회를 통해서 삶의 의미를 부여해 주신다.

두달 전부터 회사 연수 일정이 결정이 되었고 그날이 바로 내일입니다. 1박 2일의 일정으로 토요일과 주일이 겹치게 되었습니다. 계속 주일이 맘에 걸렸습니다. 그리고 40일 목삶 캠페인이 시작되면서 저는 연수 일정을 놓고 기도하기 시작했습니다. 연수가 연기가 되든지 아님 취소가 되던지.. 둘중의 하나로 하나님께서 인도해주시라고.. 그 기도 제목에 대해 간절한 맘이 생겨서 힘써서 기도했습니다. 그 부르짖음에 하나님은 마음 가운데 평안함을 주셨고 하나님께서 어떻게 인도하실지 기대가 되었습니다. 그리고 이번주 설교 말씀을 통해서 확신이 들었습니다. 내가 무슨일이 있어도 다니엘처럼 사자굴에 던져질지라도 교회는 빼먹지말아야겠다 설마 죽이시겠느냐 라는 생각이 들었습니다. 그리고 월요일이 우연히 사장님과 점심을 같이 먹게 되었습니다. 갑자기 사장님께서 제게 이번에 연수 참가 인원 파악을 하라고 하시는겁니다. 속으로 웃음이 나왔습니다. 기적이 일어난겁니다. 사장님께서 전에는 연수나 회사에서 하는 일들은 반드시 참석해야 한다고 생각했는데 요즘은 생각이 바뀌었다며 강제로 참석 시키고 싶지 않다는 것입니다. 그래서 갈수있는 사람만 가는 걸로 할테니 파악하라는 것입니다.. 오.. 정말 기뻐 뛰었습니다. 하나님께서는 지도자 부터 마음을 어루 만지시고 생각을 바꿔놓으신것입니다.. 그리고 화요일날 연수 때문에 한참 회의가 열리고 끝마치고 나서 퇴근길에 저는 상사에게 말씀을 드렸습니다.
그랬더니 상사는 제가 생각했던 뜻대로 받아 주셨습니다. 완전히 빠질수는 없어서 토요일 하루만 참석하고 저만 토요일 밤에 동경으로 올라오기로 했습니다. 토요일 집합시간도 새벽예배 드리고 가면 딱 좋은 시간대, 그리고 주일도 완전 지킬수있게 되었습니다. 하나님은 이렇게 삶의 의미를 부여해 주시는것같습니다. 부르짖는 자에게 반드시 응답해주시는 하나님.. 하지만 끝까지 믿음의 테스트를 하시는 하나님 그 테스트를 이겨냈을때는 세상에서 얻을수없는 기쁨을 주심을 다시한번 확인해보는 한주간이 된것같습니다.

김수영

2008-10-11 10:18:25

하나님이 당신을 하나님의 자녀로 정해 놓으셨다.

나는 최근까지 평가로 살면서 신앙인과 평민 사이를 이중
스파이처럼 잘 왔다갔다 하면서 두 얼굴을 가지고 살아왔다
양심의 가책도 많이 느꼈지만 세상의 욕구는 달콤했었다
한쪽 발은 세상에 다른 한 발은 하나님께 그러다 다리가
찧어지면서 내가 이렇게 살면 안되겠다는 생각이 들었고
새벽 기도를 다니게 되었다. 많은 은혜를 체험했고 하나님을
더 가까이 하면 할수록 내게 유익함이 오는것을 알게 되었다.
참 많이 은혜를 받았다 아니 진정한 은혜를 받았다고 해야 하나
내 자신이 변해져 가는게 기적처럼 느껴진다.
변화를 가져오기 전까지 많은 의심을 했었다 하나님을 믿음으로써
내 생활에 경제적인 문제는 오지 않을까? 세상 사람들이 나를
어떻게 볼것인가? 많은 갈등을 했었다.
갈등 속에 신가를 선택한 지금은 세포가 춤을 추고, 힘이솟고,
에너지가 넘쳐난다. 나이를 거꾸로 먹어 간다 나이가 먹으면
먹을수록 더 건강해지고 세상이 내 손아귀에 들어오는 느낌이
든다.
내가 이제까지 많은 의심으로 목사님들의 말씀을 이중 잣대로
보았던것을 회개합니다.
신앙을 가졌다면 어차피 가는 인생 진짜 멋있는 신앙인이
돼야겠다.

이진애

2008-10-12 05:49:45

나는 교회를 어떻게 보는가?
내게 있어서 교회가 ‘귀찮은 존재’나 ‘아무 의미 없는 존재’가 아닌 것에 감사한다. ‘대단히 소중한 존재’인 것은 맞는데.. 내가 그에 걸맞게 잘 섬기고 있는지는 잘 모르겠다.
한때는 우리 교회가 무쟈게 낯설고 차갑게 느껴졌던 적도 있었지만.. 지금은 나의 일본생활에서 가장 고마운 존재로 완벽하게 자리잡았다.
교회에 온 지 얼마 안되어서부터 성가대 봉사를 하게 되었지만 내 마음은 아주 한참 동안이나 ‘방수’교인의 모습을 하고 있었다. 제자훈련을 받기 전까지는 ‘후탁’교인의 모습도 내게 있었다.
지금 그렇지 않은 것이 그나마 얼마나 감사한 일인지..

그렇다. 건강한 교회는 예배꾼이 아니라 지체가 많은 교회이다. 지체들이 많은 교회가 소망이 있는 교회이다.
더 이상 예배꾼이 아닌 ‘지체’된 내가 좀 더 꽉 붙어 있어서.. 힘있고, 건강하고 소망 있는 우리 교회를 만들기 위해 노력해야겠다.

신정은

2008-10-13 04:35:56

‘물고기가 물을 떠나서 살 수 없듯이 교인은 교회를 떠나서 살 수 없다.’
‘지체가 몸을 떠나서 살 수 없듯이 교인은 교회를 떠나서 살 수 없다.’

주일부터 학회가 시작되어 토요일 저녁에 싱가폴에 도착한 나는 주일이 걱정되기 시작했다. 싱가폴에서 한인교회를 찾아 가려니 시간도 촉박하고 어디를 가야 할 지도 몰라서 그냥 같은 시간에 나 혼자 예배드려도 되지 않을까.. 하는 마음이 들었다.. 하지만 지체는 몸을 떠나서 살 수 없듯이 성도는, 제자는, 나는 교회를 떠나서 살 수 없다는 말씀과 이전과는 달리 주일성수를 못한다는 것은 너무나 두렵고 떨리는 일이 아닐 수 없다. 그래서 찾아보니.. 싱가폴 "영광"한인교회를 찾았다. 주일 아침..전철을 타고 내려서 사계절이 일본의 그 무시무시한 더위인 싱가폴의 땡볕아래서 20분을 걸어가니 교회가 보였다. 순간 할렐루야!를 외쳤다. 사실 걸어가는 내내 사람은 한 명도 없었고 나무들과 차밖에 없었기 때문에 길이 맞는지 걱정이 되었기 때문이다..역시나 도착해서 보니 버스와 자가용으로 움직이는 곳이었다. (버스타면 금방이었는데..역시 무지하면 몸이 고생함을 다시한번 느꼈다^^)
교회를 찾느라 온 몸이 땀으로 범벅이 되었지만, 그렇기 때문에 드려지는 예배는 더욱 기쁨이 넘쳤고 동경에 있으나 어디에 있으나 동일하신 성령님의 임재를 느끼며 하나님께 영광돌리는 예배를 드리니 기쁨과 은혜가 충만했다.
싱가폴 영광한인교회는 성전이 아직 없는지, YMCA에서 예배를 드린다. 오늘 주일 1부 예배는 15명?정도가 모였는데, 적은 인원이지만 교회를 이루는 지체 하나하나가 모여 예배를 드리는 모습에 은혜를 받았고, 작은 것에도 감사를 드려야 함을 다시한번 깨닫게 되었다.
또한, 내가 지금 소속된 교회에서 얼마나 더 열심히 더 확실히 더 끈끈하게 붙어서 주님이 내게 맡긴 지체로서의 사명을 감당해야 하는지를 깨닫는 시간이 되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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감사와 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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仕えと私

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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섬김과 나

2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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教会と私

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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교회와 나

2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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誘惑に陥らないためには

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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시험에 들지 않으려면

3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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わが人生の羊飼いは?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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내 인생의 목자는?

3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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人生の最小値の板を伸ばしなさい

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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인생의 최소치 막대기를 늘려라

3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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なぜ生きているのか?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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왜 사는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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従順の対象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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순종의 대상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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従順口座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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순종 계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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従順の巨人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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순종의 거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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チームの従順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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