Skip to content

중앙영광교회

예수님은 어떤 삶을 사셨는가?

이용규목사, 2009-11-30 21:53:17

閲覧数
678
推奨数
0

크리스천이라면 누구나 한가지 소원을 가지고 있습니다.
예수님을 닮고 싶은 것입니다. ‘마귀를 닮았다’는 것보다 더 큰 욕이 없듯이 ‘예수님을 닮았다’는 것보다 더 좋은 칭찬도 없을 것입니다. 예수님을 많이 닮은 사람을 영적으로 성숙한 사람이라고도 합니다. 또 이런 사람을 예수님은 본문을 통해서 제자라고 말씀하고 계십니다. 우리가 예수님의 제자가 되기 위해서는, 먼저 예수님이 어떤 삶을 사셨는지를 알아야 할 것입니다. 예수님께서 무리에게 하신 말씀 속에, 예수님의 삶의 모습 3가지가 잘 나타나 있습니다. 이 모습들을, 제자의 길을 걷고 있는 우리에게 오버랩시켜서 보는 시간을 갖도록 하겠습니다.

1.        무리와 제자
예수님이 가시는 곳에는 언제나 수많은 무리들이 따라 다녔습니다. 어느 날 예수님은 그 무리를 돌아보시며 참 제자의 길에 대해서 가르쳐 주셨습니다. 주님은 무리 속에서 제자들을 찾기 원했습니다.  예수님께는 함께 일할 제자들이 필요했기 때문입니다. 무리와 제자는 다릅니다. 무리는 구원의 대상은 되었지만, 함께 구원을 시키는 동역자는 되지 못했습니다. 무리는 병고침을 받고 떡을 얻어 먹는, 도움이 필요한 연약한 사람들이지만, 제자는 예수님과 함께 무리에게 도움을 줄 수 있는 강한 자들이었습니다. 무리는 자기 중심적이고 헌신이 없습니다. 이익이 없으면 떠나는 것이 무리의 심리입니다. 그러나 제자는 다릅니다. 그들은 주님 중심적이고 헌신도가 대단히 높습니다. 그래서 그들은 이익이 아닌 사명을 따라 움직이는 사람들입니다. 큰 무리가 세상을 바꾸는 것이 아니라, 소수의 제자들이 세상을 변화시켜 왔습니다.
그러면 어떻게 하면 무리에서 탈출해서 제자의 반열에 올라설 수가 있을까요?
제자훈련을 받으면 자동으로 제자가 될까요? 절대로 그렇지 않습니다. 훈련을 받지 않은 사람보다 가능성만 조금 높을 뿐이지 반드시 제자가 되는 것은 아닙니다. 이것은 우리 주위에서도 쉽게 확인할 수 있는 사실입니다. 졸업장이나 코스가 그 사람을 목적지까지 안내해 주는 것이 아닙니다. 훈련을 위한 훈련은 쓸모가 없습니다. 오히려 시간 낭비일 수도 있습니다. 훈련 전문가인 대니 레만은 그의 책에서 이렇게 말하고 있습니다. ‘우리 주위에는 훈련은 매우 잘 받았으나 경건한 제자의 모습과는 거리가 먼 사람들이 있다.’
훈련은 도구에 불과합니다. 목적은 훈련이 아닌 참된 제자가 되는 것임을 늘 잊지 말아야 할 것입니다.
어떻게 하면 예수님의 제자가 될 수 있을까요?
예수님은 친히 3가지 길을 말씀해 주시고 계십니다. ‘-능히 내 제자가 되지 못하리라’ 이 3가지 장애물과 유혹에 승리할 때에 비로소 제자의 길이 열린다는 말입니다. 예수님의 삶은 이 3가지 유혹에서 자유로운 삶이었습니다. 그래서 그는 당당하게, 아주 강한 어조로 무리에게 제자의 길을 선포할 수 있었습니다.
우리가 그렇게 닮고 싶었던 예수님의 3가지 삶의 모습에 대해서, 지금부터 살펴 보도록 하겠습니다.

2.        예수님의 3가지 삶
1)        가족을 미워하는 삶
‘무릇 내게 오는 자가 자기 부모와 처자와 형제와 자매와 더욱이 자기 목숨까지 미워하지 아니하면 능히 내 제자가 되지 못하고’(눅14:26)
예수님은 실제로 잠시 부모 형제를 떠났고, 자기 목숨까지도 십자가에서 버렸습니다. 왜 일까요? 첫째는 하나님을 사랑했기 때문이고, 둘째는 가족을 사랑했기 때문입니다.
제자가 되는 첫 번째 길은, 자기 가족과 목숨을 미워해야 한다는 것입니다. 어떻게 보면 아주 매몰찬 말씀인 것 같지만 사실은 사랑이 넘치는 말씀입니다. 표면적으로는 가족을 미워하라는 말씀으로 들릴 지 모르지만, 이면적으로는 가족을 최고로 사랑하는 법을 깨우쳐 줍니다.
이 말씀은 부모와 형제를 미워하라는 말씀이 아닙니다. 성경의 다른 곳에서 예수님은 부모와 형제를 사랑하라는 말씀을 수도 없이 했기 때문입니다.(마22:39,요13:34)
‘누구든지 하나님을 사랑하노라 하고 그 형제를 미워하면 거짓말하는 자’(요일4:20)라고 했습니다.
본문을 긍정적 표현으로 다시 쓴다면 ‘하나님을 최고로 사랑하라’는 말입니다. 예수님은 자신이 말씀하신 위대한 계명의 첫째 계명을 스스로 100% 지키고 있음을 잘 말해 주고 있습니다. 그는 형식이 아닌, 마음과 목숨과 뜻과 힘을 다하여 하나님을 사랑하고 있었습니다.
성경은 진정한 사랑의 흐름도에 대해서 우리에게 정확히 말해 주고 있습니다.
‘그가 우리를 위하여 목숨을 버리셨나니 우리가 이로써 사랑을 알고, 우리도 형제들을 위하여 목숨을 버리는 것이 마땅하니라’(요일3:16)
온전한 사랑은 하나님으로부터 옵니다. 우리는 하나님의 사랑의 통로입니다. 제자들은 하나님의 사랑의 전선입니다. 전선을 통해서 천국으로부터 사랑의 전류가 세상에 흐를 때에 세상은 주님의 사랑에 감전되어 살아나게 되는 것입니다.
하나님을 사랑하는 사람이 가족을 더 사랑할까요? 아니면 하나님을 사랑하지 않는 사람이 가족을 더 사랑할까요? 당연히 하나님을 사랑하는 사람이 가족을 더 사랑합니다. 왜냐고요? 하나님을 사랑하지 않는 사람은 아무리 애를 써도 겨우 자기 속에 있는 세상적 사랑(감정, 육, 이익에 붙들린) 밖에 표현할 수 없지만, 하나님을 진짜 사랑하는 사람은 하나님의 십자가의 사랑이 그를 통해서 흘러나와서 그의 손이 닿는 곳마다 세상을 하나님의 초강력 사랑으로 감전시킬 수 있기 때문입니다. 하나님의 사랑의 볼트 수와 세상의 사랑의 볼트 수는 비교를 할 수 없습니다.
하나님을 사랑하는 사람은 하나님의 사랑을 흘러 보내지만, 하나님을 사랑하지 않는 사람은 세상의 제한된 사랑이 전부입니다.
예수님은 자신의 가족이나 자신의 목숨에 얽매인 삶을 살 지 않았습니다. 하나님을사랑하는데, 하나님의 뜻을 이루는데 가족으로 인해 방해를 받지 않았습니다. 어느 날 예수님의 어머니와 동생들이 예수님을 찾아왔을 때에 둘러 앉은 자들을 보시며 ‘누구든지 하나님의 뜻대로 행하는 자가 내 형제요 자매요 어머니이니라’(막3:35)고까지 하셨습니다. 그러나 예수님은 자기 가족들을 엄청 사랑했습니다. 예수님은 십자가에 메달려 죽어가면서도 제자들에게 어머니를 부탁할 정도로 자신의 어머니를 사랑했습니다. 사랑의 표현 방법이 세상과 달랐을 뿐입니다. 그는 주님 안에서 자기 가족과 자기 목숨을 사랑했습니다. 그것이 최고로 사랑할 수 있는 비법이었기 때문입니다. 그래서 예수님이 천국 가신 후에 어머니는 성모 마리아가 되었고, 동생들은 초대 교회의 기둥들이 되었습니다.    
주 안에서 가족과 자기 목숨을 미워하는 삶이 진정 가족과 목숨을 사랑하는 삶입니다.
2)        자기 십자가를 지신 삶
‘누구든지 자기 십자가를 지고 나를 따르지 않는 자도 능히 내 제자가 되지 못하리라’(눅14:27)
예수님 하면, 교회 하면 제일 먼저 떠 오르는 것이 무엇입니까? 십자가입니다.
십자가가 없는 교회는 없습니다. 십자가는 교회의 존재 근거입니다. 예수님은 이 땅에 왜 오셨을까요? 십자가를 지시기 위해서 오셨습니다. 예수님은 십자가를 지심으로 이 땅에서의 사역을 완성하셨습니다.
십자가는 죄값을 치르는 곳입니다. 흉악한 죄값으로 처형을 당하는 곳입니다.
그런데 세상 십자가와 주님의 십자가는 다릅니다. 세상 십자가는 자기 죄 때문에 지는 십자가이지만, 주님의 십자가는 남의 죄값을 대신 치르는 십자가입니다. 제자의 십자가는 주님의 십자가와 같은 종류의 십자가입니다. 남 때문에 지는 십자가입니다. 어쩌면 자기와는 전혀 상관없는 억울한 십자가일 수 있습니다. 하나님은 제자들에게 이 십자가를 하나씩 주셨습니다. 예수님이 십자가를 지심으로 세상을 살리셨듯이, 우리가 그 십자가를 지심으로 다른 사람을 살리기 위해서입니다. 하나님은 우리에게 주신 십자가를 통해서 일을 하십니다. 십자가가 큰 사람은 큰 하나님의 역사를 감당하게 됩니다.
당신의 십자가가 무겁다고 생각됩니까?
예수님의 십자가와 비교해 보십시오. 예수님의 십자가는 세상 죄의 무게였습니다(요1:29) 즉 세상 모든 사람의 죄를 지신 것입니다. 그러면 당신의 십자가의 무게는 어느 정도될까요? 한 사람의 죄, 두 사람의 죄, 아니면 10사람의 죄입니까? 하지만 예수님의 십자가에 비하면 얼마나 가벼운지 모릅니다. 그렇기 때문에 우리는 자기 십자가에 대해서 생색내거나 엄살부리지 말아야 합니다. 우리의 십자가는 예수님의 십자가에 비하면 너무나 초라할 뿐입니다. 감사와 찬양으로 지고 갈 수 밖에 없는 것입니다.
분명히 아십시오. ‘자기 십자가’는 사실은 자기 십자가가 아닌 ‘남의 십자가’입니다.
하나님은, 작은 예수로서 우리에게도 자기 십자가를 하나씩 주셨습니다. 정확하게 말하면 ‘남의 십자가’입니다. 나와 전혀 상관없는 짐, 고난, 문제의 십자가입니다. 지금 당신이 지고 있는 십자가는 무엇입니까? 많이 힘드십니까? 하나님은 그 십자가를 통해서 일하시길 원합니다. 엄청난 구원의 일을 말입니다. 인류 구원의 역사는 오직 ‘주님의 십자가’를 통해서 이루어졌음을 잊지 마십시오.  
‘현재의 고난은 장차 우리에게 나타날 영광과 비교할 수 없도다.’(롬8:18)

3)        자기의 모든 소유를 버리신 삶
‘너희 중의 누구든지 자기의 모든 소유를 버리지 아니하면 능히 내 제자가 되지 못하리라’(눅14:33)
어느 날 예수님이 길을 가실 때에 어떤 사람이 ‘어디로 가시든지 나는 따르리이다’라고 말했습니다. 이 때 예수께서는 자신을 다음과 같이 소개했습니다. ‘여우도 굴이 있고 공중의 새도 집이 있으되 인자는 머리 둘 곳이 없도다’(눅9:58) ‘나는 홈리스야.’라고 말씀하신 것입니다.
제자는 가난하게 살아야 한다는 말이 아닙니다. 예수님이 오신 것은 양으로 생명을 얻게 하고 더 풍성히 얻게 하려는 것입니다.(요10:10) 재물의 유혹에 넘어가서 하나님을 섬기는데 방해가 되어서는 안 된다는 말씀입니다.
‘너희가 하나님과 재물을 겸하여 섬기지 못하느니라’(마6:24)
재물을 붙잡는 사람은 하나님을 놓게 됩니다. 이런 사람이 예수님의 제자가 될 수 없는 것은 당연합니다. 하나님보다 재물을 더 사랑하지 말아야 합니다. 그러면 당신은 주님의 제자가 아니라, 재물의 제물이 되어 버립니다.
하나님이 귀할까요? 재물이 귀할까요? 하나님이 능력이 있을까요? 재물이 능력이 있을까요? 하나님이 재물 손안에 있을까요? 재물이 하나님 손안에 있을까요?  
‘정함이 없는 재물에 소망을 두지 말고 오직 우리에게 모든 것을 후히 주사 누리게 하시는 하나님께 두며’(딤전6:17)
가족이나 고난, 재물에 발목 잡히지 않으면, 우리에게 좋은 제자의 길이 열린다고 예수님은 분명히 말씀해 주고 있습니다.

17 コメント

방재철

2009-11-30 22:32:55

무리는 자기 중심적이고 헌신이 없습니다. 이익이 없으면 떠나는 것이 무리의 심리입니다.
그러나 제자는 다릅니다. 그들은 주님 중심적이고 헌신도가 대단히 높습니다.
그래서 그들은 이익이 아닌 사명을 따라 움직이는 사람들입니다.
큰 무리가 세상을 바꾸는 것이 아니라, 소수의 제자들이 세상을 변화시켜 왔습니다.

지지난주의 청지기비유의 설교와 이번주 예수님의 삶~의 설교는 목사님 말씀처럼
시험에 쏙쏙 빠지기 너무 쉬웠던 구절이었습니다.
예수님이 일부러 시험들라고 하신 말씀이 아니라는 것을 설교를 통해서 알게되어서 우선 감사~^^

하나님을 최고로 사랑하라,
자기 십자가는 사실은 자기 십자가가 아닌 남의 십자가입니다.
재물을 붙잡는 사람은 하나님을 놓게 됩니다.

특별히 그동안 머리속을 계속 곤란하게 만들었던 것이 2번째의 자기 십자가~~에 대한 것이였는데
예수님이 맡겨주신 십자가가 내가 절대로 지지못하는 막무가내 십자가가 아니라
내가 딱 감당할 만큼의 십자가를 주셨다라는 것을 잊어버리지않도록 하겠습니다.

광야에서 십자가를 지면 2배로 힘들겠지만, 오히려 평탄할 때 십자가를 지면
상대적으로 십자가가 더 힘들게 느껴질거같고, 힘들 때 조금 더 힘든 것은 어차피 힘든거~ 견디자~~라고
배짱도 생기지 않겠습니까?

예수님의 삶이 결국은 영광의 길이었던 것처럼 예수님을 닮으려는 모습이라도 열심을 부려야겠습니다.
그러다보면 예수님의 모습에 아주아주 작은 부분이라도 닮을 수 있지않을까요?

이현정

2009-12-01 04:28:47

‘그가 우리를 위하여 목숨을 버리셨나니 우리가 이로써 사랑을 알고,
우리도 형제들을 위하여 목숨을 버리는 것이 마땅하니라’(요일3:16)
온전한 사랑은 하나님으로부터 옵니다. 우리는 하나님의 사랑의 통로입니다.
제자들은 하나님의 사랑의 전선입니다. 전선을 통해서 천국으로부터 사랑의 전류가 세상에 흐를 때에 세상은 주님의 사랑에 감전되어 살아나게 되는 것입니다. 하나님을 사랑하지 않는 사람은 아무리 애를 써도 겨우 자기 속에 있는 세상적 사랑(감정, 육, 이익에 붙들린) 밖에 표현할 수 없지만, 하나님을 진짜 사랑하는 사람은 하나님의 십자가의 사랑이 그를 통해서 흘러나와서 그의 손이 닿는 곳마다 세상을 하나님의 초강력 사랑으로 감전시킬 수 있기 때문입니다. 하나님의 사랑의 볼트 수와 세상의 사랑의 볼트 수는 비교를 할 수 없습니다.

위로부터의 사랑이 막히면 우리는 사랑할 수가 없다는 말씀이 와닿았습니다. 과거에는 본문말씀을 읽을때 이해할 수가 없었습니다. 사랑의 하나님께서 육의 부모에게 효도하는 것을 싫어할만큼 '질투하시는 하나님'인가 의심했던 적이 있었습니다. 하지만, 설교말씀을 들으면서 내가 하나님으로부터의 사랑을 세상에 흘려보내야 하는 전선임을 깨닫게 되었습니다. 내가 할 수 있는 사랑, 내 감정에 겨워서, 이 사람을 사랑하면 나한테 유익이 있기 때문에 하는 세상적 사랑이 아닌, 하나님의 사랑에 붙들려 세상을 감전시킬 수 있는 사랑을 전하는 제자가 되고 싶습니다. 평소에 별 느낌없이 불렀던 아래의 찬양가사가 절절히 다가옴을 느낍니다.

♪ 나의 힘으로 당신을 사랑할 수 없네
내가 가진 작은 것으로 당신을 축복할 수 없지만
주님이 주신 크고도 놀라우신 그 사랑으로 당신을 사랑합니다 ♬

최현숙

2009-12-01 20:05:56

제자의 삶은 멀고 험하다는 생각을 말씀을 들으면서 느꼈습니다.
“차라리 제자의 삶을 그만 두고 그냥 평범하게 살까” 이런 생각을 많이 하는 요즘
그만큼 힘든 일이 내게 많다는 뜻이겠지요.
하지만, 지난주에도 그랬고 지금도 여전히 나는 되돌아 갈 수 있는 길을 벗어 났다는 것입니다. 물론 내 자신의 의지를 사용하여 되돌아 갈 수 있겠지만, 그러나 제자의 삶이 세상에서 안락한 삶과는 비교할 수 없다는 것을 알기 때문에 되돌아 갈 수도 없습니다.
어느 책에서 읽은 구절이 생각나네요. “예수님을 믿는 순간 우리는 되돌아 갈 수 있는 배를 태워버렸다.” 정말 맞는 말입니다. 되돌아 가서 행복해 질 수 있다면 많은 사람이 되돌아 갔을 것입니다. 그러나 참 행복과 가장 가치 있는 삶이 여기 제자의 삶이기에 무리 속으로 적당하게 숨어서 자신의 이익을 추구하면서 사는 삶은 제자의 삶을 맛본 나에겐 결코 용납될 수 없다는 것을 누구보다도 내가 잘 알기 때문입니다.
잠시 죄악의 낙을 누리는 것보다 , 애굽의 모든 보화보다 광야의 삶을 선택했던 모세를 묵상하면서 다시금 새 힘을 얻습니다. 어찌 영원과 지금을 비교할 수 있겠습니까?

십자가! 예수님께서 지신 십자가를 묵상할 때마다 나는 초라해진 내 모습을 봅니다.
누구에게나 십자가는 있습니다. 내 주위를 둘러봐도 십자가 없는 인생은 한 사람도 없는 것 같습니다. 다만, 그 무게의 차이일 뿐! 그렇다면 내가 생각하는 십자가의 무게는 얼마나 될까? 요즘 나는 이 무게에 짖눌려 움직이지 못한 내 상한 심령을 봅니다. 무게가 나를 압도하니 아무런 의욕도 사라진 듯 합니다. 주일 속장세미나 때 목사님께서 기다림의 인내가 필요한 때가 있다고 했듯이, 기도보다도 어쩜 지금은 기다림이 절실히 필요한 때가 아닌가 생각해봅니다.
부흥회때 들었던 말씀이 생각나네요. “등에 십자가 바짝 지고 감사함으로 그 길을 가라”
엉성하게 지고 가는 십자가는 어쩜 더 나를 힘들게 만들지도 모릅니다.
십자가와 내가 일체가 되어 당당하게 이 고난의 길을 잘 통과하길 바랄뿐입니다.
십자가를 질 수 있는 힘의 근원도 결국은 내 속에서 나오는 것이 아닌 주님이 주신 능력임을 고백합니다. 예수님이 승리를 했듯이 나 또한 승리자입니다.
주님의 사랑의 능력이 나를 붙들기에 내가 십자가를 지고 제자의 삶을 걸어갑니다.

문원희

2009-12-01 21:24:01

‘그가 우리를 위하여 목숨을 버리셨나니 우리가 이로써 사랑을 알고,
우리도 형제들을 위하여 목숨을 버리는 것이 마땅하니라’(요일3:16)

온전한 사랑은 하나님으로부터 옵니다. 우리는 하나님의 사랑의 통로입니다.
제자들은 하나님의 사랑의 전선입니다. 전선을 통해서 천국으로부터 사랑의 전류가
세상에 흐를 때에 세상은 주님의 사랑에 감전되어 살아나게 되는 것입니다.

하나님을 사랑하는 한 사람으로써, 내가 과연 하나님의 사랑의 통로가 되고 있는지
곰곰이 생각해보았다. 하나님을 사랑한다고 하면서 나로인해 하나님의 사랑이 막혀
있는건 아닌지, 내가 막고 있지는 않은지,, 하나님을 사랑하듯, 예수님을 사랑하듯
누군가를 사랑하는건 언뜻 생각해보면 참 쉬운것 같지만, 또 그렇게 간단하지만도
않은것 같다. 하나님을 사랑하지 않는 사람과 같이 자기 속에 있는 세상적 사랑만을
표현하고 있지는 않았는지, 내 감정으로만, 나의 이익에 붙들려 사람들을 대하지는
않았는지 이번 말씀을 통해서 반성하는 좋은 시간이었다.
하나님을 사랑하는 사람으로써, 하나님의 십자가의 사랑을 생각하면서, 나를 통해서
사랑이 흘러나와 내가 만나는 사람들이 하나님의 사랑을 알게 되고, 하나님의 사랑에
감전이 된다면 그만큼 감사하고, 복된 일이 없을 것 같다.
아직은 많이 부족하지만, 하나님의 사랑을 막는 사람이 아니라, 하나님의 사랑의 통로
축복의 통로가 되는 훈련생이 되도록 소망한다.

문인우

2009-12-02 00:19:07

훈련을 위한 훈련은 쓸모가 없습니다. 오히려 시간 낭비일 수도 있습니다.
훈련 전문가인 대니 레만은 그의 책에서 이렇게 말하고 있습니다.
‘우리 주위에는 훈련은 매우 잘 받았으나 경건한 제자의 모습과는 거리가 먼 사람들이 있다.’
훈련은 도구에 불과합니다. 목적은 훈련이 아닌 참된 제자가 되는 것임을 늘 잊지 말아야 할 것입니다.

이번 설교 말씀을 통해 나 역시 훈련을 위한 훈련을 하고 있지는 않은지
나의 훈련을 되돌아 보는 시간을 가졌다.
제자 훈련 때는 말씀 읽기, 성경구절 암송, 새벽 기도, 기타 과제물 등
정말 정성을 다해 했지만 사역 훈련을 하는 지금은 꾀만 늘었음을 고백한다.
훈련을 하는 것 자체에만 의미를 두고 정말 예수님의 제자가 되기 위해 노력하지는 않았다.
훈련의 목적이 참된 제자가 되는 것이 아니라 무사히 졸업하는 것이 되버린 것은 아닌지..
하지만 훈련은 단지 도구에 불과할 뿐이다.
진정한 예수님이 제자가 되기 위해 하나님을 제일로 사랑하고,
십자가를 두려워 하지 않고 당당히 메고, 하나님을 위해 재물을 다 버릴 수 있기를 소망한다.

서진

2009-12-02 06:29:46

‘누구든지 하나님을 사랑하노라 하고 그 형제를 미워하면 거짓말하는 자’(요일4:20)
‘정함이 없는 재물에 소망을 두지 말고 오직 우리에게 모든 것을 후히 주사 누리게 하시는 하나님께 두며’(딤전6:17)
‘너희 중의 누구든지 자기의 모든 소유를 버리지 아니하면 능히 내 제자가 되지 못하리라’(눅14:33)

이번주의 설교말씀을 듣고 깊게 생각하는 시간이 되었다. 과연 나는 무리인가 아니면 제자인가.
제자훈련을 받고 지금은 사역훈련을 받으면서도 하나님의 제자라고 사람들앞에서 자랑하지
못하는 내 자신이 있다. 그것은 내가 하나님의 제자로써 제자다운 삶을 살고 있지 않기때문이다.

‘그가 우리를 위하여 목숨을 버리셨나니 우리가 이로써 사랑을 알고,
우리도 형제들을 위하여 목숨을 버리는 것이 마땅하니라’(요일3:16)

하나님의 제자로써 예수님처럼 형제들을 위하여 목숨도 바쳐야 하는데
그게 잘 안되는 것같다. 하나님의 나라를 위하여 전도도 열심히 안하고
봉사도 열심히 안 해왔었다. 요즘은 예수님의 십자가의 은혜도 잊고 살고 있는것 같다.
하나님은 우리를 사랑하시고 우리를 위해 자기 아들도 아끼지 않이 하시고 우리들의
죄로 말미암아 우리대신 십자가에서 돌아가게 하셨다.
진정한 하나님의 제자가 되기 위해 하나님의 제자다운 삶을 살려고 한다.
그러기 위해 하나님의 말씀을 더욱더 열심히 배우고 기도도 열심히 하며
생활속에서 하나님의 말씀을 실천해 나가려고 한다.
또한 하나님안에서 형제들을 사랑하고 성도들을 섬기는 삶을 살려고 한다.

‘정함이 없는 재물에 소망을 두지 말고 오직 우리에게 모든 것을 후히 주사 누리게 하시는 하나님께 두며’(딤전6:17)

장미경

2009-12-02 06:37:05

무리와 제자는 다릅니다.
무리는 구원의 대상은 되었지만, 함께 구원을 시키는 동역자는 되지 못했습니다.
무리는 병고침을 받고 떡을 얻어 먹는, 도움이 필요한 연약한 사람들이지만,
제자는 예수님과 함께 무리에게 도움을 줄 수 있는 강한 자들이었습니다.
제자는 이익이 아닌 사명을 따라 움직이는 사람들입니다.
큰 무리가 세상을 바꾸는 것이 아니라, 소수의 제자들이 세상을 변화시켜 왔습니다.

나는 무리인가. 제자인가에 대해 내 모습을 다시 돌아보는 시간이었습니다. 모태신앙으로 내 전 삶에 있어 언제나 주님과 함께 하는 삶이었다. 예배의 자리, 은혜의 자리, 기적의 자리에 내가 항상 서 있었지만
난 과연 예수의 동역자로서 능력을 나타내는 자였는가! 세상을 변화시키는 사람이었는가!
나 자신에게 물어보지 않을 수 없었다.
이 물음에 사실 고개를 들 수 없었다.
아마 그 시대 예수님을 따르는 무리들도 열두제자와 같이 예수님곁에 보다 가까이 있고 싶었을 것이다.
내가 그렇듯. 하지만 그들이 못한 가족을 미워하는 삶! 십자가를 지는 삶! 자신의 모든 소유를 버리는 삶!
이 세가지! 난 할 수 있는 사람이 되어 진정 주의 제자가 되었음 좋겠다.
지금은 고개를 들기가 어려운 내 모습이지만 선한욕심! 내보려 한다.
좀 더 예수님이라면~~ 의 생각으로 행동하는 자가 되도록 해야겠다.
제자훈련에 이어 사역훈련까지 받고 있는 자로서 훈련에 그치고 마는 자가 아니라 경건한 제자의 모습으로
예수님을 닮은 자라는 최고의 칭찬을 받을 수 있기를...

이상민

2009-12-02 06:50:37

온전한 사랑은 하나님으로부터 옵니다. 우리는 하나님의 사랑의 통로입니다. 제자들은 하나님의 사랑의 전선입니다. 전선을 통해서 천국으로부터 사랑의 전류가 세상에 흐를 때에 세상은 주님의 사랑에 감전되어 살아나게 되는 것입니다.

진정 크리스챤으로 살아가는 것은 사랑을 전하는 것이라고 생각된다. 가까운 가족을 사랑하는 것은 가족에게 복음을 전하는 일로 시작되는 것 같다. 하나님을 멀리 하고 세상적인 삶속에서 가족을 사랑하는 것은 진정한 사랑이 될 수가 없었다. 내 자신이 하나님을 믿고 그 믿음위에서 가족에게 그 크신 사랑을 전하는 전선의역할을 제대로 수행하는 것 자체가 가족을 사랑하는 것이리라. 하루를 기도로 시작하며 가족을 위해 기도하고 집으로 돌아와 하루를 지켜주신 주님에게 감사의 기도를 드리는 것 이것으로 전해지는 가족에 대한 사랑이 예전에 몰랐던 기쁨과 감사로 나타난다.
앞으로 살아갈 많은 날들을 주님의 사랑을 전하는 전선으로 살아가길 바라며..

전재식

2009-12-02 19:10:14

제자훈련을 받으면 자동으로 제자가 될까요? 절대로 그렇지 않습니다. 훈련을 받지 않은 사람보다 가능성만 조금 높을 뿐이지 반드시 제자가 되는 것은 아닙니다. 이것은 우리 주위에서도 쉽게 확인할 수 있는 사실입니다. 졸업장이나 코스가 그 사람을 목적지까지 안내해 주는 것이 아닙니다. 훈련을 위한 훈련은 쓸모가 없습니다. 오히려 시간 낭비일 수도 있습니다. 훈련 전문가인 대니 레만은 그의 책에서 이렇게 말하고 있습니다. ‘우리 주위에는 훈련은 매우 잘 받았으나 경건한 제자의 모습과는 거리가 먼 사람들이 있다.’

아무래도 저를 두고 하는 말이 아닌가 생각해봅니다.
저는 제대로된 제자가 되기위해 제자훈련에 들어갔지만,정작 들어가서는 제대로된 제자가 되어가고 있지 못하는것 같습니다.
훈련을 위한 훈련은 쓸모가 없다는 것을 알면서도 정말 훈련을 위한 훈련을 받고있는것도 같습니다.
졸업장을 받기위한 제자훈련이 아닌 나자신을 위한 예수님을 닮기 위한 훈련이 되지않고서는 쓸모가 없다는 것을깨닫습니다.

내가 잡고있는것을 모두 놓지 않고서는 예수님의 제자가 될수없다는것을 알았습니다.
세상에 내것이라고 생각하고 있는 모든것 나의 욕심 나의 집착을 모두버리고 예수님의 말씀대로 살아갈수있도록 다짐을 해봅니다..

김대근

2009-12-03 03:53:40

주님은 무리속에서 제자를 찾기 원했습니다. 예수님께서는 함께 일할 제자들이 필요했기 때문입니다.무리는 구원의 대상은 되었지만, 함께 구원을 시키는 동역자는 되지 못했습니다.제자는 예수님과 함께 무리에게 도움을 줄수 있는 강한 자들이었습니다.......
그러면 어떻게 하면 무리에서 탈출해서 제자의 반열에 올라설 수가 있을까요?
'누구든지 자기 십자가를 지고 나를 따르지 않는 자도 능히 내 제자가 되지 못하리라'(눅14:27)
'너희 중의 누구든지 자기의 모든 소유를 버리지 아니하면 능히 내 제자가 되지 못하리라'(눅14:33)

이번 말씀은 여러가지로 저를 반성하도록 만들고 있습니다. 참된 제자의 길을 걷지않고 무리속에서 안주 하며 구원만 되기를 원하고 있으니까요.
제자훈련을 받고 있는 지금 이순간도 무리속에서 재물에 소망을 두고 있는 저 자신을 보게 됩니다.
훈련은 도구에 불과 하다고 말씀하셨습니다.
이번 훈련이 훈련을 위한 훈련이 아니라 하나님께 소망을 두는 훈련으로 거듭 태어나기를 소망해 봅니다.

지동욱

2009-12-03 05:30:59

"자신의 가족을 미워하고 모든 소유를 버리라"
목사님 말씀대로 어찌보면 정말 시험들기 쉬운 말씀이라는 생각이 듭니다.
(지금까지는 시험들며 살아왔습니다)
예수님을 따르는 삶이란, 자신의 가족과 소유를 버리는 삶이 아닌,
가족과 소유보다 하나님을 더 사랑하는 삶이라는 진리를
아직도 잘 깨닫지 못하고 있었습니다.
주일 설교말씀을 들으면서
성경말씀을 제대로 읽고 바르게 아는 것이 믿음의 기초가 아닐까 생각했습니다.

"하나님의 나라가 가까이 왔으니 회개하라"는 성경 말씀도
지금까지는 죄로 인한 인간세상의 종말이 가까이 왔으니 회개하라는 의미로 생각하고 있었습니다.
예수님이 계시는 곳이 바로 하나님의 나라이니,
마음속에 믿음을 키워 하나님을 마음으로 영접하기 위해
라이프 스타일을 바꾸라는 말씀인 것도 새벽예배를 통해 알았습니다.

예배를 드리고 성경을 한땀 한땀 읽어가며 그 심오함을 느낍니다.
바르게 알려주시는, 바르게 알아가는 은혜에 감사한 나날입니다.

전혜진

2009-12-03 06:28:01

‘우리 주위에는 훈련은 매우 잘 받았으나 경건한 제자의 모습과는 거리가 먼 사람들이 있다.’
훈련은 도구에 불과합니다. 목적은 훈련이 아닌 참된 제자가 되는 것임을 늘 잊지 말아야 할 것입니다.
어떻게 하면 예수님의 제자가 될 수 있을까요?

내가 제자의 모습을 제대로 갖추기 위해 온전한 훈련을 하고 있는가? 돌아보는 시간이 되었습니다.
훈련을 사모 하며 기다려왔던 모습도 내가 진정 하나님의 제자가 되기 위해 갈망 했던것인가?
지금 받고있는 훈련이 경건한 제자의 모습으로 제대로 하고 있는 것인가?
많은 생각에 빠졌습니다. 훈련이 시작되고 제 모습에는 아무런 변화도 없고
오히려 형식에 빠져 헤메이고 있음을 고백합니다.
훈련생들과 목사님을 의식한 과제와 겉 모습만 멋지게 장식된(열심히 하는 척만 하는)
속은 비어있는 열매 없는 모습의 내가 아니였나 반성해 봅니다.
과제를 위한 과제는 아무런 유익도 없고 의미도 없다고 늘 목사님께서 말씀 하시지만
지금껏 저는 과제를 위한 과제 ,훈련을 위한 훈련만을 해왔음을 반성합니다.
그렇기에 특별한 은혜도 체험하지 못하고 늘 형식적이고 의미없이 시간을 보내 왔던것 같습니다.
참된 제자가 되기를 갈망하며 남은 훈련 무의미한 시간이 되지 않도록
진정으로 하나님의 은혜를 갈망하며 세상을 변화시키는 제자의 모습을 만들어 가고 싶습니다.

박상민

2009-12-03 07:13:57

무리는 자기 중심적이고 헌신이 없습니다. 이익이 없으면 떠나는 것이 무리의 심리입니다. 그러나 제자는 다릅니다. 그들은 주님 중심적이고 헌신도가 대단히 높습니다. 그래서 그들은 이익이 아닌 사명을 따라 움직이는 사람들입니다. 큰 무리가 세상을 바꾸는 것이 아니라, 소수의 제자들이 세상을 변화시켜 왔습니다.

얼마전까지 나도 무리중 한사람 이였다.
지금은 제자훈련을 통해 예수님의 제자로 거듭나고 자 한다.
무리중 한 사람이였을 때와 제자훈련을 받고 있는 지금의 나 ......
훈련을 통해 많은 변화를 체험하고 있다. 그러나 지금의 이 변화된 모습이
참된 그리스도인으로써의 변화 인지 그저 가식적인 변화인지 아직도 잘 모르겠다.
예수님을 닮는 다는 것이 얼마나 힘들고 긴 인내의 길인지 제자훈련을 하면 할수록
조금씩 깨닫게 된다. 처음 제자훈련을 시작했을때 최선을 다해 열심히 해야지 하는 마음
으로 시작했다 그러다 지금은 약간 게을러진 나를 발견하게 되었다.
어쩌면 처음 시작했을때 마음은 제자훈련 1년만 열심히 하자 이런 마음으로 시작했었던것
같다 그러나 지금은 이세상에 사는 동안 제자로써 삶을 살아야 된다는 것을 깨닫고 난 뒤
제자훈련을 받는 참된 의미와 예수님이 바라는 참된 제자로써 바뀌어 나가는 것을 내 평생
훈련이라 생각하고 예수님이 걸으신 고난의 길을 따라 걷는 참된 제자로 거듭길 원합니다.

이 은미

2009-12-03 08:47:31

무리와 제자는 다릅니다. 무리는 구원의 대상은 되었지만, 함께 구원을 시키는 동역자는 되지 못했습니다. 무리는 병고침을 받고 떡을 얻어 먹는, 도움이 필요한 연약한 사람들이지만, 제자는 예수님과 함께 무리에게 도움을 줄 수 있는 강한 자들이었습니다. 그들은 주님 중심적이고 헌신도가 대단히 높습니다. 그래서 그들은 이익이 아닌 사명을 따라 움직이는 사람들입니다.
훈련을 위한 훈련은 쓸모가 없습니다. 오히려 시간 낭비일 수도 있습니다.
훈련은 도구에 불과합니다. 목적은 훈련이 아닌 참된 제자가 되는 것임을 늘 잊지 말아야 할 것입니다.

이번 설교는 지금까지의 내 모습이 과연 무리의 모습이었는지 제자의 모습이었는지를 되새기게 하는 귀한 말씀이었습니다. 꼼꼼히 생각해 보니 내 모습은 제자라기보다는 무리에 가까운 모습이었던 것 같습니다. 그걸 알게 하시려고 하나님은 나에게 제자 훈련을 허락하셨나 봅니다. 제자훈련이 단지 시간낭비의 훈련으로 끝나지 않게 사명감을 가지고 하나님의 참된 제자가 되도록 기도하며 나아가겠습니다. 나는 단지 무리의 한 사람이기보다는 하나님의 동역자가 되길 원합니다.
‘나의 사랑 나의 사랑 나의 어여뿐 자야 일어나 함께 가자’
하나님의 이 음성에 촉각을 곤두세우며 살아가는 자가 되겠습니다.

온전한 사랑은 하나님으로부터 옵니다. 우리는 하나님의 사랑의 통로입니다. 제자들은 하나님의 사랑의 전선입니다. 전선을 통해서 천국으로부터 사랑의 전류가 세상에 흐를 때에 세상은 주님의 사랑에 감전되어 살아나게 되는 것입니다.
하나님을 진짜 사랑하는 사람은 하나님의 십자가의 사랑이 그를 통해서 흘러나와서 그의 손이 닿는 곳마다 세상을 하나님의 초강력 사랑으로 감전시킬 수 있기 때문입니다.

지난 주 제자 훈련시간에 목사님이 들려주신 말씀중에 ‘처음에는 십자가를 보기만 해도 예수님의 사랑이 너무 고마워 눈물을 흘렸는데 지금은 십자가를 봐도 아무런 감동이 없어 눈믈을 흘린다’는 말씀이 있었습니다. 그 말씀이 꼭 내 모습같아서 마음이 많이 아팠습니다.
예수님의 십자가의 사랑을 당연한 것으로 생각하지 않고 깊이 묵상하며 하나님의 사랑의 통로, 사랑의 전선이 되어서 세상을 감전시키는 삶이 되도록 노력하겠습니다.

최찬미

2009-12-03 09:16:27

크리스천이라면 누구나 한가지 소원을 가지고 있습니다. 예수님을 닮고 싶은 것입니다.

너무나도 당연하고, 너무나도 간단명료한 소원임에도 불구하고,
실천하고 이루기는 너무나도 어려운 소원인것 같다.
예수믿고 천국가라, 예수믿고 복받아라, 라고 하면 듣기도 좋고, 기분도 좋은데,
예수의 성품을 닮자, 예수의 다 이룬 인생을 닯자, 라고 하면
갑자기 거칠고 무거운 십자가와, 좁고 좁은 가시밭길이 생각나는 것은 왜일까..

어려서부터 기복신앙에는 의문을 품었고, 결코 추구하고 싶지 않은 신앙의 모습이라고 생각했었다.
그러나 지금까지의 내 신앙의 모습을 돌아보니, 그러한 신앙의 모습들을 깍아내릴대로 깎아내린 주제에,
정작 나는 예수를 닮으려고 희생을 각오하기 보다는
예수믿고 천국가고, 예수믿고 형통하는 일에 더 젖어있었던 것 같다.

이제부터라도 모든것을 내어놓고, 내려놓고, 십자가를 기꺼이 지며 예수님을 따라가는 제자의 모습으로 거듭나길 기도하며 나아가야겠다.


ㅠ.ㅠ 12시 안넘길 수 있었는데...
이너믜 컴터가 말성이네효효효.. ㅡㅡ++

박재훈

2009-12-04 08:58:49

>>하나님은 우리에게 주신 십자가를 통해서 일을 하십니다.
십자가가 큰 사람은 큰 하나님의 역사를 감당하게 됩니다.

십자가의 사용설명서라도 적어서 주셨으면 무엇에 쓰는 물건인지 알았을텐데,
언제쯤 유용하게 쓰일지 귀뜸이라도 해주셨으면 좀 더 참고 짊어질텐데 말이죠.
쉽게 얻어지는 것이 없다는 인생의 이치를 알면서도
내게 주신 무거운 십자가를 생각할 때면 별별 생각이 다 듭니다.
십자가를 버리고 도망치고 싶을 때도 있고 가던 길을 멈추고 주저 앉고 싶을 때도 있습니다.
왜 나랑 상관도 없는 일 때문에 십자가는 점점 무거워지고 커져만 가는 건지
하나님의 의도를 따지고 싶을 때도 있습니다.
하나님이 원하시는 삶을 살아가겠다고 쉽게 고백했지만,
하나님이 주신 의미심장한 십자가는 부담을 느끼고 어려워하기만 합니다.
내게 주신 돈, 가족, 친구, 편안함, 기쁨,......자존심....
하나님의 때에 하나님의 일을 위해서 버리기를 원하십니다.
놓치 않으려고 애쓰지만, 그것들 때문에 십자가가 더욱 무거워짐을 알기에
버리지 않으면 걸을 수 없기에 놓고 놓고 또 내려놓습니다.

십자가를 외면하면 내가 흘렸던 눈물보다 더 많은 눈물을 하나님은 흘리실 것이기 때문에,
이천년 전 지셨던 그 십자가보다 더 무거운 십자가를 예수님께 지게 해야하기 때문에
지금은 참고 또 참으며 내가 지어야 할 그 십자가를 지고 다시금 길을 나섭니다.
어디가 종착지이고 왜 가야하는지 알 수 없지만,
주님의 음성만이 이유인 것 같습니다.

최민정

2009-12-05 10:24:40


하나님은, 작은 예수로서 우리에게도 자기 십자가를 하나씩 주셨습니다. 정확하게 말하면 ‘남의 십자가’입니다. 나와 전혀 상관없는 짐, 고난, 문제의 십자가입니다. 지금 당신이 지고 있는 십자가는 무엇입니까? 많이 힘드십니까? 하나님은 그 십자가를 통해서 일하시길 원합니다. 엄청난 구원의 일을 말입니다. 인류 구원의 역사는 오직 ‘주님의 십자가’를 통해서 이루어졌음을 잊지 마십시오.
‘현재의 고난은 장차 우리에게 나타날 영광과 비교할 수 없도다.’(롬8:18)

요즘들어 제 자신의 십자가의 무게가 점점 커짐을 느낍니다. 영적으로도 게을러지고
육적으로도 많이 지쳐 있었는데 이번주 말씀을 통해서 다시금 지금 나의 상황들을
점검해 볼 수있는 기회가 되었습니다. 저는 이제까지 저의 십자가만을 생각해 왔었는데
정확하게 말하면 남의 십자가를 누구에게나 주셨다는 말씀을듣고 곰곰히 생각해 보게 되었습니다.
억울하고 나만 손해보는것 같은 상황속에서도 남의 십자가를 내가 지고 있다는 말씀을 기억한다면
그 십자가를 통해 하나님이 일하신다는 사실을 깨닫게 되었습니다.
낙심하고 불평불만만 늘어놓기 보다는 지금의 고난이 언젠가는 비교할 수 없는 영광으로 돌아올 것
이라는 확신을 가지고 매일매일을 주님의 십자가를 떠올리며 승리하고 싶습니다.




Board Menu

リスト

Page 38 / 55
Status 番号 タイトル 投稿者 日付 閲覧数
  357

예수님은 어떤 삶을 사셨는가?

17
이용규목사 2009-11-30 678
  356

欲望に騙されないようにしなさい。

4
이용규목사 2009-11-27 343
  355

욕심에 속지 말라

18
이용규목사 2009-11-23 902
  354

忍耐できる信仰

4
이용규목사 2009-11-19 343
  353

기다릴 줄 아는 믿음

18
이용규목사 2009-11-16 1007
  352

管理者が賞賛された理由

3
이용규목사 2009-11-14 265
  351

청지기가 칭찬받은 이유

21
이용규목사 2009-11-09 742
  350

信仰を完全にするには

4
이용규목사 2009-11-07 291
  349

믿음이 온전하게 되려면

17
이용규목사 2009-11-02 652
  348

私は使命を帯びた人である

4
이용규목사 2009-10-31 383
  347

나는 미션을 받은 사람이다

21
이용규목사 2009-10-26 595
  346

私は善い業のために存在する。

4
이용규목사 2009-10-24 280
  345

나는 선한 일을 위해 존재한다

22
이용규목사 2009-10-19 1129
  344

神様は成長を望まれる

4
이용규목사 2009-10-17 605
  343

하나님은 성장을 원한다

20
이용규목사 2009-10-12 857
  342

私は神の家族だ

4
이용규목사 2009-10-10 345
  341

나는 하나님의 가족이다

18
이용규목사 2009-10-05 630
  340

主を喜ばせる者

3
이용규목사 2009-10-04 387
  339

주를 기쁘시게 하는 자

22
이용규목사 2009-09-28 654
  338

目的に導かれる人々

3
이용규목사 2009-09-27 313

   

sketchbook5, 스케치북5

sketchbook5, 스케치북5

나눔글꼴 설치 안내


이 PC에는 나눔글꼴이 설치되어 있지 않습니다.

이 사이트를 나눔글꼴로 보기 위해서는
나눔글꼴을 설치해야 합니다.

설치 취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