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중앙영광교회

언약궤 앞의 다윗

이용규목사, 2009-07-06 16:27:3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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언약궤와 인생은 직결된다.
언약궤(말씀)를 귀히 여기는 사람은 귀한 인생을 살게 되었고, 언약궤를 천히 여겼던 사람은 천한 인생을 살았다. 우리 인생의 주관자는 하나님이시기 때문이다.
‘하나님이 이르시되 그가 나를 사랑한즉 내가 그를 건지리라 그가 내 이름을 안즉 내가 그를 높이리라’(시91:14)
늘 언약궤를 가까이 한 사무엘과 언약궤과는 별개의 삶을 산 엘리의 아들들의 인생의 결말을 우리는 너무나 잘 안다. 이제 다윗과 사울의 인생의 극명한 차이에 대해서 말씀을 통해서 알아 보도록 하겠다.

1.        다윗이 귀하게 여겼던 것
사울은 철저히 하나님의 은혜로 기름부음을 받아, 이스라엘의 왕이 되었다. 그러나 그는 왕이 되자 언약궤 중심의 삶을 전혀 살지 않았다. 그는 한번도 언약궤를 찾지도 않았고, 언약궤가 어디에 있는지 관심조차 갖지 않았다. 그와 그의 가문은 결국 하나님께 버림 받게 된다. 그가 먼저 언약궤를 버렸기 때문이다. ‘사울 시대에는 우리가 궤 앞에서 하나님의 뜻을 여쭈어 볼 수가 없지 않았습니까!’(대상13:3)
그러나 다윗은 전혀 달랐다. 그는 왕이 되자 마자 하나님의 언약궤를 다윗성으로 모셔오는 것을 무엇보다 먼저 했다.
‘우리가 우리 하나님의 궤를 우리에게로 옮겨오자’(대상13:3)
다윗은 육적으로는 사울보다 못했던 것 같다. 사울은 요새 말로 하면 그야말로 얼짱 몸짱이었다. 그는 이스라엘 사람들 가운데서 가장 잘 생겼고, 키도 보통사람보다 어깨 위만큼은 더 컸다.(삼상9:2) 그런데 다윗은 어떠했을까? 사무엘이 이새의 집에서 하나님이 택하신 사람을 찾을 때에 하나님은 그에게 이렇게 말했다. ‘너는 그의 준수한 겉모습과 큰 키만을 보아서는 안 된다…사람은 겉모습만을 따라 판단하지만, 나 주는 중심을 본다.’(삼상16:7) 이 말씀을 달리 표현한다면, 다윗은 외모가 그 형제 중에서도 좀 떨어졌다는 말이다. 그런데도 하나님은 이스라엘 최고의 얼짱은 버리시고, 다윗을 최고로 높이셨다. 다윗의 인생은 늘 말씀을 귀하게 여겼기 때문이다. ‘복 있는 사람은 …오직 여호와의 율법을 즐거워하여 그의 율법을 주야로 묵상하는도다’(시1:1-2)
다윗은 이스라엘에 언약궤를 통해서 말씀을 회복시킨 인물이다. 그래서 그는 하나님의 기쁨의 인물이 되었다.
그는 정병 3만명을 동원하여 하나님의 언약궤를 모셔 올 준비를 하였다. 한번 실패했지만, 3개월 후에 다시 시도하여 어렵게 어렵게 언약궤를 모셔 왔다. 그 후에 그는 또 다른 근심에 빠진다. 자기는 백향목 왕궁에 사는데, 하나님의 언약궤는 아직도 휘장 안에 있는 것이 너무 마음이 아팠다.(삼하7:2) 그래서 그는 성전을 건축할 것을 계획한다. 하나님의 궤를 잘 모시기 위해서이다. 언약궤를 정성을 다해 모시고 오는 것도 얼마나 귀한 일인데, 사람이 사는 집도 아닌 언약궤를 모실 집을 짓겠다고 하니 하나님이 감동할 수 밖에 없지 않는가? 이 때 하나님은 너무나 기뻐서 다윗에게 놀라운 두 가지 약속의 선물을 주셨다. 첫째는 이름의 축복이다. ‘나는 이제 네 이름을 세상에서 위대한 사람들의 이름과 같이 빛나게 해주겠다’(삼하7:9) 둘째는 가문의 축복이다. ‘그 뿐만 아니라, 나 주가 너의 집안을 한 왕조로 만들겠다는 것을 이제 나 주가 너에게 선언한다’(삼하7:11)
귀한 것을 귀한 줄 아는 사람이 귀한 사람이다. 세상에서 진짜 귀한 것은 하나님께서 귀하게 여기는 것이다. 그 중의 하나가 바로 말씀이다. 다윗의 인생은 언약궤의 인생이었다. 다윗은 언약궤 때문에 복 받은 사람이다. 언약궤를 위해서 최선의 삶을 산 그를 하나님은 최고로 높이셨다.
하나님은 지금도 우리에게 말씀하신다.
‘이 율법책을 네 입에서 떠나지 말게 하며 주야로 그것을 묵상하여 그 안에 기록된 대로 다 지켜 행하라 그리하면 네 길이 평탄하게 될 것이며 네가 형통하리라’(수1:8)
    
2.        말씀에 대한 실제 모습
예나 지금이나 하나님의 말씀에 대한 우리의 태도에는 많은 문제들이 있다.
말씀을 진정으로 사모하며 받아들이는 것이 성도들에게는 정상적인 모습인데도, 이 모습을 보기가 쉽지 않은 경향이 있다.
하나님의 언약궤가 블레셋에 빼앗겼다가 두 암소의 헌신으로 겨우 이스라엘에 다시 돌아왔지만, 그 당시 언약궤는 별로 인기가 없었다. 아니, 어떤 면에서는 천덕꾸러기로 전락하고 말았다고나 할까?
당신에게는 하나님의 말씀이 어떤 존재로 있는가? 혹시 귀찮은 존재, 부담 주는 존재, 의미 없는 존재, 버림 받은 지 오래된 존재는 아닌가?
세상에서 설교는 별로 좋은 이미지를 갖고 있지 않다. ‘설교하지 말라’는 말은 ‘잔소리하지 말라’는 뜻으로 전략한지 오래다. 홈페이지에도 말씀은 은근히 피하면서 사진이나, 자유 게시판만 보고 또 보는 사람들이 적지 않다.
예배 시간은 어떤가? 교제, 식사시간뿐만 아니라, 찬양, 기도시간까지도 멀쩡하던 사람이, 설교시간만 되면 갑자기 졸거나 이상한 짓을 하는 사람들도 있지 않은가? 무엇보다 말씀을 귀하게 여겨야 하는데도 말이다.
언약궤가 벳세메스에 도착했을 때에 한꺼번에 50070명이나 죽고 말았다. 그래서 이스라엘 사람들은 아무도 언약궤를 모시려고 하지 않았다. 그들은 할 수 없이 그들 속에 살고 있던 기브온 족속인 기럇여아림 사람들에게 와서 가져 가라고 했다. 그래서 그 때부터 하나님의 언약궤는 이방민족의 한 개인 집에서 거하게 된다. 그야말로 버림 받은 말씀궤였던 것이다. 이것을 다윗이 다시 찾아 왔으니 이 때 하나님이 얼마나 기뻐하셨을까?
지금 당신의 언약궤는 어디에 보관되어 있는가? 혹시 창고에 쳐 박혀 있는지는 않은가? 아니면 어디에 두었는지도 모르고 살고 있는가? 지금 우리 모두에게 시급한 일은 언약궤를 회복하는 일이다. 그 언약궤를 성전에 모시는 것이다. 우리 몸에 모시는 것이다. 말씀이 육신이 되신 예수님처럼, 말씀이 삶에 베어 있는 제자들이 되어야 할 것이다.

3.        말씀 앞에서의 다윗
다윗은 언약궤를 어떤 모습으로 영접했을까?
먼저 실패한 벧세메스 사람들의 모습을 살펴 보도록 하자.
언약궤를 맞이한 벧세메스 사람들이 왜 갑자기 50070명이나 죽었을까? 성경은 그 이유를 정확히 말해 주고 있다. ‘벧세메스 사람들이 여호와의 궤를 들여다 본 까닭에 그들을 치사 오만 칠십 명을 죽이신지라’(삼상6:19) 하나님의 말씀을 받을 때에는 절대로 구경꾼의 입장에서 받지 말아야 한다. 예배 때이건, 말씀을 읽을 때이건 구경 삼아 말씀을 받아서는 안 된다.
그러면 하나님의 말씀을 어떻게 받아야 할까?
자신의 인생의 어깨에 메어야 한다.
‘지난 번에는 여러분이 메지 않았으므로 주 우리 하나님께서 우리를 치셨습니다. 우리가 그분께 규례대로 하지 않아서 그렇게 된 것입니다’(대상15:13)
말씀은 구경의 대상이 아니다. 직접 자신의 인생에 걸어야 한다. 오늘날 말씀을 구경하는 사람은 많지만, 말씀을 직접 메고 가는 사람은 드물다. 예수님은 말씀을 그 육신에 담아서 이 땅에 오셨다. 예수님의 몸은 말씀의 그릇이었다. 바로 이것이 성육신의 사건인 것이다. 우리도 말씀을 눈요기 용으로만 생각하지 말고, 몸에 담아야 한다.
성전은 원래 말씀을 두기 위해서 존재하는 것이다. 우리 몸은 영의 성전이기 때문에 말씀을 몸에 담는 것은 당연한 이치이다. 그 때에 비로소 말씀의 축복된 역사는 점화되기 시작한다. 말씀을 꼭 인생의 어깨에 메고 다니자. 그 때 말씀은 인생의 짐이 아니라, 큰 힘이 된다는 사실을 깨닫자.
언약궤 앞에서의 다윗의 모습은 어떠했는가?
그는 영혼 속에서 우러나오는 감사와 기쁨으로 온 힘을 다해서 춤을 주었다.(삼하6:14) 이 때 미갈은 다윗의 이 모습을 아주 안 좋게 여겼다.
‘오늘 왕이 건달패들이 맨살을 드러내고 춤을 추듯이, 신하들의 아내가 보는 앞에서 몸을 드러내며 춤을 추셨으니, 왕의 체통이 어떻게 되겠습니까?’(삼하6:20)
그야말로 온갖 추태와 망신을 부렸다는 말이다. 미갈은 다윗의 이 모습을 대단히 부끄럽게 여겼다. 그녀는 사람 앞에서의 다윗의 모습만을 생각했던 것이다. 그러나 다윗은 달랐다. 그는 하나님 앞에서의 자신의 모습이 얼마나 아름다운지를 보았다. 그래서 그는 이렇게 대답했다. ‘내가 스스로를 보아도 천한 사람처럼 보이지만, 주님을 찬양하는 일 때문이라면, 이보다 더 낮아지고 싶소.’(삼하6:22)
사람 앞에서의 내 모습보다 중요한 것은 하나님 앞에서의 내 모습이다. 믿음의 사람은 늘 하나님 앞에서의 자신의 모습에 신경을 쓴다.
미갈은 사람 앞에서의 다윗의 모습을 위해서 왕으로서의 체통을 지키라고 했다.
세상의 체통보다 중요한 것은 하나님의 기쁨이 되는 것이다.
세상에서 높을수록 말씀 앞에서는 더 낮아지는 것이 좋다.
말씀 앞에서의 가장 큰 장애물은, 체면이다. 세상 속의 자신의 높은 모습이 하나님 앞에서 낮아지지 못하게 한다.
‘내가 왕인데 왕의 체면이 있지. 내가 사장인데 사장의 체면이 있지. 내가 교수인데 교수의 체면이 있지. 내가 00인데 00의 체면이 있지.’
사람 앞에 체면을 중시하는 사람은 하나님 앞에서 절대로 높은 점수를 얻을 수 없다. 목의 기부스를 다 풀어야 한다. 하나님 앞에는 왕도, 사장도, 교수도 없다. 오직 성도만 있을 뿐이다. 세상의 직위를 하나님 앞에 갖다 대는 어리석음을 범하지 말아야 한다. 아버지 앞에는 아들, 딸 밖에 없다. 그래서 하나님 앞의 최고의 모습은 어린 아이가 되는 것이다. 언약궤 앞에서 다윗의 모습이 바로 이 모습이었다. 다윗은 어린 아이 같이 순수하게 말씀을 받았다.
지금 말씀 앞에 선 당신의 모습은 어떤가? 다윗형?(겸손형) 미갈형?(체통형) 사울형?(무시형)
지금 하나님은 당신의 모습을 보고 무어라고 하실까?
말씀 앞에서의 자신의 모습을 회복해야 할 때이다.

14 コメント

이용규목사

2009-07-06 16:35:55

그 동안 리플로 설교와 함께 해 주신 여러분께 감사드립니다.
여러분의 진솔한 나눔으로 주님의 은혜가 더욱 풍성했음을 고백합니다.
제자훈련 방학과 함께 홈페이지 설교도 쉼의 시간을 갖도록 하겠습니다.
개학 후에 뵙겠습니다. 감사합니다.

유광옥

2009-07-06 16:44:01

귀한 것을 귀한 줄 아는 사람이 귀한 사람이다. 세상에서 진짜 귀한 것은
하나님께서 귀하게 여기는 것이다. 그 중의 하나가 바로 말씀이다.
다윗의 인생은 언약궤의 인생이었다. 다윗은 언약궤 때문에 복 받은 사람이다.
언약궤를 위해서 최선의 삶을 산 그를 하나님은 최고로 높이셨다.

오늘도 아침에 일어나 말씀을 묵상했다.
하나님께서 말씀을 귀하게 여기고 지키는 자에게는 복을 준다고 하셨는데
매일매일 읽는 말씀이 의무가 아니라 진정 사모하고 귀하게 여기는 말씀이
되기를 기도한다. 언약궤 앞에서 다윗은 영혼 속에서 우러나오는 감사와 기쁨으로
온 힘을 다해서 춤을 추었다. 얼마나 말씀에 심취를 했으면 바지가 흘러내려가
맨살이 보이는 것도 몰랐을까? 나또한 하나님 말씀을 묵상할 때 다윗처럼
심취하고 싶다. 어제 속회를 나누면서 오늘의 설교에서 느낀점을 서로 나누는
시간이 있었다. 한사람이 천국은 어린 아이와 같은 마음을 품지 않고서는
들어가지 못한다고 하면서 바지가 흘러 내려가는 것도 모를 정도로 말씀에
심취한 다윗에게서 어린아이와 같은 마음을 느꼈다고 했다.
미갈은 사람 앞에서의 다윗의 모습을 위해서 왕으로서의 체통을 지키라고 했지만
다윗은 세상의 체통보다 하나님의 기쁨이 되는 것을 우선순위로 뽑았기에
하나님께서 다윗을 높여 주신 것 같다.
나또한 세상의 체통보다 하나님의 기쁨이 되는 것을
우선시 하고 말씀 앞에서는 더 낮아지는 자로 매일매일의
말씀을 통해서 온전히 실천할 수 있도록 기도한다.


조상만

2009-07-07 07:11:21

말씀과 나의 생활은 언제나 일체화 되려고 노력중인 형태라고 할 수 있습니다. 현재 그 형태가 불완전 하다면 완전 할 수 있도록 노력이라도 해야지요. 설교 시간에 많이 졸던 제가 성가대를 함으로써 조는 횟수가 줄어 가고 있으며 이래저래 신앙 교육과 훈련으로 인해 나의 생활 속에서의 신앙과 말씀이라는 것 들이 새롭게 제 마음과 행동 패턴에 각인이 되고 있는 이 순간이 제게는 일체화 되어 가고 있는 현재 진행형인 것이죠. 제 주위 다른 신앙인 들 처럼 저의 신앙이 아직 성장 하지도 그리고 여물지도 못했지만 제자 훈련을 졸업한 상태인 지금 저의 신앙은 커가고 있음에 틀림없습니다. 그 와 동시에 말씀이라는 매체를 제 생활속에 입력 시키기 위해 언제나 노력 하고 있습니다. 그러나 항상 실패하고 실수하고 넘어지고 그리고 좌절을 맛보기도 하지만 "인간이 넘어지는 이유는 다시 일어서는 법을 배우기 위한 것" 이라는 말을 마음 속에 새기며 오늘도 저는 포기 하지 않았습니다. 이런 저의 노력을 하나님이 아시리라 믿기 때문에 내일도 그리고 모래도 그리고 글피도 그 다음날도 그 다음 다음날도 항상 노력 하면서 조금씩 변화 시키겠습니다. 귀한 것을 위하게 여길 줄 알아야 한다는 말이 어제의 설교 속에 나타있습니다.귀한 것은 알 고 있으나 그것을 마음 속에 각인 시키지 못하고 실천치 못한다면 쓸데없는 귀함 이겠지요. 언제나 새로워 지는 상만이가 되기 위해 저는 계속 해서 지속적인 노력을 아끼지 않겠습니다.

목사님 그 간 수고 하셨습니다. 못난 제자 이지만 좋은 가르침 항상 감사합니다. 즐거운 휴가 되시고 사역 훈련때에도 잘 부탁드립니다. 그럼 사랑합니다. 목사님

박유진

2009-07-07 09:37:01

"말씀은 구경의 대상이 아니다. 직접 자신의 인생에 걸어야 한다. 오늘날 말씀을 구경하는 사람은 많지만, 말씀을 직접 메고 가는 사람은 드물다. 예수님은 말씀을 그 육신에 담아서 이 땅에 오셨다. 예수님의 몸은 말씀의 그릇이었다. 바로 이것이 성육신의 사건인 것이다. 우리도 말씀을 눈요기 용으로만 생각하지 말고, 몸에 담아야 한다. "

지난 2주동안, 내 마음은 말씀과 멀어져 있었다.
마음에 온통 불평과 미움이 가득해서, 입술과 마음이 범죄했었다.
2주전에, 시누이의 아기가 돌잔치를 해서 아기들을 데리고 참석을 했다.
그런데, 그 아기가 수족구병이었다. 한참 병이 왕성할 때여서,
온 몸에 발진이 가득했다.
난 수족구병에 대한 지식이 없었기 때문에, 처음에는 별로 대수롭지 않게
여겼는데, 며칠이 지나자, 선호, 선민, 선진이의 몸에서 발진이 나기 시작했다.
2주동안, 세 녀석들을 데리고 병원에 다니면서, 나의 마음은 불만과 불평
투성이었다. 도대체 왜, 그렇게 전염성이 강한 수족구병을 걸린 아기를 데리고
돌잔치를 해서 세아이에게 다 옮겼는지, 세 녀석을 데리고 병원 가는게
장난이 아니고, 입안까지 물집이 돋아서 제대로 잘 못먹고 울고 보채는
아기들 데리고 지내는 것도 힘들고...전염성이 강한 병이라 주일날 교회도 못가고...
그렇게 계속, 나의 마음은 원망 투성이었다.
말씀이 내 안에 담겨 있지 않았기 때문에, 남을 판단하고 정죄하고 미워하고 불평하고...주님이 원치 않는 모습으로 2주를 지내다보니, 나의 마음밭은 너무나 황폐해져버렸다. 신경이 날카롭고, 조그만 일에도 화내고, 주변 사람들이 싫고...
설교말씀을 읽으면서 깨달았다.
내가 말씀을 가까이 하지 않아서 이런 모든 죄를 저질렀다는 것을.
말씀에서 떠나지 말아야겠다.
그래서, 나의 마음에 더러운 것들을 모두 떼어내야 겠다.

"사람 앞에서의 내 모습보다 중요한 것은 하나님 앞에서의 내 모습이다. 믿음의 사람은 늘 하나님 앞에서의 자신의 모습에 신경을 쓴다.
미갈은 사람 앞에서의 다윗의 모습을 위해서 왕으로서의 체통을 지키라고 했다.
세상의 체통보다 중요한 것은 하나님의 기쁨이 되는 것이다.
세상에서 높을수록 말씀 앞에서는 더 낮아지는 것이 좋다."

아멘...이 말씀을 실천할 기회가 생겼다.
나의 체면, 나의 것만 생각하지 않고, 주님을 위해서 말씀앞에서 낮아지는 내가 되길 원한다.

사랑하는 목사님, 사모님...한국에서 편한 쉼 쉬시고 좋은 시간 보내시길 기도드려요. 언제나 귀한 말씀 감사드립니다...

(조태호집사님, 홈페이지 때문에 많이 수고하세요...
죄송하지만, 제가 비밀번호를 잊어버려서, 이메일로 알리기 신청을 했는데
메일이 안왔더라구요. 로그인이 안되는데...비밀번호를 다시 새로 할 수 는 없나요? 번거롭게 해드려서 죄송해요...)

박은주

2009-07-08 05:35:39

그 언약궤를 성전에 모시는 것이다. 우리 몸에 모시는 것이다. 말씀이 육신이 되신 예수님처럼, 말씀이 삶에 베어 있는 제자들이 되어야 할 것이다
말씀을 꼭 인생의 어깨에 메고 다니자. 그 때 말씀은 인생의 짐이 아니라, 큰 힘이 된다는 사실을 깨닫자.
말씀은 세상법과 다르고 또 육의 많은 욕심들을 억제해야 된다. 그래서 주님의 제자가 되겠다고는 하나 실제로 삶속에서 나의 욕심들을 버리고 세상법을 따르지 않고 주님 말씀대로 사는 것이 짐처럼, 발목의 족쇄처럼 느껴질 때가 많다.
나는 예수님 믿고 천국은 가고 싶고 영생의 복도 누리고 싶고 또 이 땅에서의 부자로 살고 싶고, 높아지고 싶고, 남들한데 인기도 얻고 싶을 때도 많다. 솔찍히….
누구나 잘 알듯이 말씀에 예수님께서 공생애를 시작하시기 전 40일금식을 하시고 마귀에게서 시험을 받으시며 물리치시는 모습을 볼 수 있다.
말씀을 붙잡지 않으면 하루에도 수십번씩 마귀의 공격속에 산다.
말씀은 썩어질 나의 육의 욕심들과 세상의 법을 이기는 정말 큰 힘이 된다.
다윗처럼 오직 주님한분으로 만족하며 말씀되신 주님을 늘 가까이하며 찬양하는 인생이 되도록 노력해야겠다.

박정선

2009-07-08 09:36:04

'성전은 원래 말씀을 두기 위해서 존재하는 것이다. 우리 몸은 영의 성전이기 때문에 말씀을 몸에 담는 것은 당연한 이치이다.'
'세상의 체통보다 중요한 것은 하나님의 기쁨이 되는 것이다.'

요즈음 나의 고민은 정말 응답받는 기도를 할려면 어떻게 기도해야 하는가 하는 것이었습니다.
시간보다 노력보다 힘을 쏟아 기도하는 것보다 정말 더 중요하고 지혜로운 기도는 무엇인가 하는 것이었습니다.
나의 몸은 하나님의 말씀을 담을때 기도가 응답받는 축복된 삶을 살수 있다는 말씀이 마음에 깊이 다가왔습니다.
내 안에 말씀을 회복시킬 때 하나님의 기쁨의 사람이 될 수 있다는 것도 깨달았습니다.
이 말씀이 내 안에 살아서 움직이고 나의 순종으로, 또 하나님을 인정하는 것이 바깥으로 표현되어 질때 응답받는 축복이 이루어 짐을 믿습니다.
목사님 사모님 기도소리를 못 듣는 것이 몹시 아쉽습니다.
한국에서 건강하게 많은것들 얻으시고 쉼도 많이 얻고 오세요!! ^^

최민정

2009-07-09 03:55:54

지금 당신의 언약궤는 어디에 보관되어 있는가? 혹시 창고에 쳐 박혀 있는지는 않은가? 아니면 어디에 두었는지도 모르고 살고 있는가? 지금 우리 모두에게 시급한 일은 언약궤를 회복하는 일이다. 그 언약궤를 성전에 모시는 것이다. 우리 몸에 모시는 것이다. 말씀이 육신이 되신 예수님처럼, 말씀이 삶에 베어 있는 제자들이 되어야 할 것이다.


지금 나에게 시급한 일은 언약궤를 회복하는 일이다. 그 언약궤를 나의 몸에 모시는것.
말씀이 육신이 되신 예수님처럼, 말씀이 삶에 베어있는 제자가 되어야 할 것이다...
제자훈련을 받고 얼마지나지 않아 그나마 과제로 했던 말씀읽기나 암송을 멀리하게된다.
늘 읽고 묵상하기를 멈추지 않아야 한다는 것을 알면서도 육신의 나약함으로 인해
생각만 할뿐 정작 몸으로 실천하지 못하고 있었던 것에 반성을 하게 되었다.
언약궤를 귀하게 모시는것이 바로 하나님을 귀하게 여기는것이라는 것을 다시금 깨닫게
되었다. 다른 여러 중요한 일들보다 먼저 말씀을 제일 우선시 하는것. 그것을 하나님께서
가장 귀하게 보시고 말씀을 통하여서 지혜와 내가 나아가야 할 길들을 열어주신다는
사실을 느꼈고 이제는 하나님의 언약궤를 쓸쓸하게 방치하지않는 늘 곁에두고 가까이 해야
겠다고 다짐해 본다.

홍은미

2009-07-10 19:54:37

귀한 것을 귀한 줄 아는 사람이 귀한 사람이다. 세상에서 진짜 귀한 것은 하나님께서 귀하게 여기는 것이다. 그 중의 하나가 바로 말씀이다. 다윗의 인생은 언약궤의 인생이었다. 다윗은 언약궤 때문에 복 받은 사람이다. 언약궤를 위해서 최선의 삶을 산 그를 하나님은 최고로 높이셨다.

마음이 콩밭에 가 있다. 콩밭에 가 있더라도 하나님의 말씀 만큼은 내 마음속에 온전하게 심어야 한다는 것을 잘 알면서도 실천이 되지 않는다. 집에서 잘 되지 않아 일하러 나갈 때, '성경책을 가지고 가야지!' 하면서도 늘 잊고 그냥 가버린다. 하나님의 말씀속에서 에너지를 얻고 숨을 쉬고 해야할 텐데... 왠지 지금 내 상태가 연료가 떨어져 바다 위에서 표류하고 있는 배같다. 당장은 뭐 어떻게 되겠지! 하고 있지만 폭풍이 오면... 아! 정말 나는 왜 이렇게 어리석을까! 알면서도 실천을 안 하는 것이 더 나쁘다고 하는데...
'은미야...제발 정신 차리자...' '육의 음식은 줄이고... 영의 양식으로 나를 살찌우자'

신정은

2009-07-11 10:31:22

지금 말씀 앞에 선 당신의 모습은 어떤가? 다윗형?(겸손형) 미갈형?(체통형) 사울형?(무시형)
지금 하나님은 당신의 모습을 보고 무어라고 하실까?
말씀 앞에서의 자신의 모습을 회복해야 할 때이다.

일에 치이고 정신이 다른 곳에 팔려서 말씀이 내 안에서 회복되기 힘든 지금..
제대로 찔림을 받게되는 말씀이었습니다..
진심으로.. 절실하게..말씀 앞에서의 내 자신의 모습을 회복해야 할 때라고 생각합니다.
그런데 그게 쉽게 회복되지 않습니다...
더 심각한 것은.. 정답이 무엇인지, 어떻게 실천하면 회복 되는지도 다 알면서 하지 않는 것이 가장 큰 문제인 것 같습니다..
하나님께서 이런 저를 보시고 무어라고 하실지.. 너무나 부끄럽습니다..

"수고하고 무거운 짐 진 자들아 다 내게로 오라.. "
내일은 토요일 입니다.. 육신의 병까지 얻게 되어 푹 쉬고 싶은 날이지만..
오직 주님 한 분만 보고 주님의 성전을 깨끗하게, 나의 마음도 깨끗하게 청소하기 위해
주님께 달려나가려고 합니다..

사랑합니다 나의 아버지, 오직 그것 뿐입니다.
제게 새 힘을 주소서 주님!!
회복시켜주소서!!

문원희

2009-07-14 03:58:53

하나님은 지금도 우리에게 말씀하신다.
‘이 율법책을 네 입에서 떠나지 말게 하며
주야로 그것을 묵상하여 그 안에 기록된 대로 다 지켜 행하라
그리하면 네 길이 평탄하게 될 것이며 네가 형통하리라’(수1:8)

하나님의 말씀이 내게 어떤 존재였었던가, 제자 훈련 숙제로 꼬박 꼬박 읽어야 하는 의무감
이지는 않았나, 하나님의 말씀을 내 마음에 새기고 살았는가,,, 많이 반성하였다.
제자 훈련이 끝나고 나서 영적으로 게을러짐을 느끼면서, 하나님의 말씀을 가까이 했었던
제자 훈련 기간이 그리워졌다. 세상일에 치여, 하나님과의 교제 시간을 멀리하면서, 다시금
나에게 하나님과의 교제가 얼마나 큰지 깨닫게 되었다. 영적으로 게을러 지면서, 내 마음이
다시 메말라지는 느낌을 받았다. 하나님의 말씀을 읽으며 기도 할때에는 늘 기쁨이 넘쳤는데
하나님과 멀어지면서 부터 다시 짜증도 많아지고, 화를 다스리지 못하게 되는 것 같다.
목사님의 말씀에 얼마나 찔리고 반성을 많이 했는지 모른다. 이번 말씀을 듣고 나서 이제 다시
하나님의 말씀앞에서 나의 모습을 다시 회복해야 겠다고 생각했다.
어떻게 하면 나의 모습이 세상에서 좋게 비춰 질까를 고민하고 노력하는 문원희가 아니라,
어떻게 하면 나의 모습이 하나님 앞에서 예쁘고 겸손하게 비춰 질까를 고민하고 노력하는
문원희가 되기를 기도한다. 하나님께서는 하나님의 말씀을 내 입에서 떠나지 않게 하고,
밤낮으로 하나님의 말씀을 묵상하고, 순종할때에 나의 길을 평탄하게 하여 주시고, 나를 모
든일에서 형통하게 해주신다고 약속하셨다. 이제는 정말 하나님의 말씀을 늘 내 마음속에
지니고 살아야 겠다고 다시한번 다짐하였다.

김정아

2009-07-17 19:35:21

그러면 하나님의 말씀을 어떻게 받아야 할까?
자신의 인생의 어깨에 메어야 한다.

말씀은 구경의 대상이 아니다. 직접 자신의 인생에 걸어야 한다.

하나님의 뜻을 구하며 하나님의 뜻대로 살기로 작정하면서도 말씀을 읽지 않고 말씀을 행하지 않고서는 절대로 하나님의 뜻을 따라 살 수 없을 것입니다. 무엇이 옳은 길이고 무엇이 옳은 방법이고 또 무엇이 옳은 행동인지... 결국 그 모든 것이 인간의 눈으로 봤을 때 선한 것이라 할지라도 주님 보시기에도 그러할지는 모를 일입니다. 중요한 것은 사람의 생각보다 말씀의 근거한 생각이라 생각됩니다.

말씀과 기도와 전도생활을 아무리 잘 한다 해도 그것이 성령과 단절된 기도와 말씀, 전도생활이라면 하나님이 기뻐하시지 않을 거란 생각이 듭니다. 본질이 빠진 껍데기만 붙들고 있는 셈이 될 것입니다. 이 땅의 모든 사역은 성령을 통해서 이루어지는데...
요즘 성령에 관한 책을 읽으면서 느껴지는 것입니다. 성령 충만을 받아야 함이 마땅하지만 이 땅의 대부분의 크리스천들이 능력있는 삶을 살아가지 못합니다. 그 이유는 성령을 좇아 살아가지 않고 그저 성령이 빠진 봉사와 기도, 예배생활을 하고 있어서이지 않을까 생각됩니다. 즉 자신의 의지로 신앙생활을 하고 자신의 의지로 예수를 믿는 것입니다. 성령의 충만을 받아야겠다는 생각이 들면서 제 자신 속에 강하게 다가오는 것이 바로 말씀이었습니다. 성령님은 말씀을 순종하는 자를 기뻐하시며 또 그와 함께 하시기를 원하십니다. 성령 충만함을 받기 위해서는 말씀을 부지런히 읽고 행하는 것입니다. 왜냐하면 성령의 역사또한 말씀 속에서 이루어지기 때문입니다. 예전 어느 목사님이 말씀하신 것처럼 성령님은 말씀을 거슬러서 혹은 벗어나서 역사하시는 분이 아니기에 부지런히 먼저는 말씀을 읽고 또 행하기를 쉬지 않는 것...
그것이 바로 말씀을 인생의 어깨에 메는 것이 아닐까... 생각됩니다. 말씀을 읽고 내식대로 내 멋대로 해석하는 것 또한 죄이지 않을까... 그러기에 더욱 더 부지런히 성령님을 의지하며 성령님의 도우심을 간절히 사모해야 겠습니다.

박빛나

2009-08-31 08:05:16

‘이 율법책을 네 입에서 떠나지 말게 하며 주야로 그것을 묵상하여 그 안에 기록된 대로 다 지켜 행하라 그리하면 네 길이 평탄하게 될 것이며 네가 형통하리라’(수1:8)

오랫만에 설교말씀을 읽으니, 또 많은 반성이 됩니다.
방학이라고, 얼마나 모든 면에서 마음을 풀고 있었던지... 훈련까지 받은 주님의 제자로서 너무나 면목이 없습니다. 이 모든일에 주님께 용서를 구하고, 깨끗한 마음으로 바로 오늘부터 다시 주님 원하시는 길로 걸어가겠습니다.

주님 앞에서는 아무 것도 아닌 것을 체면차리던 모습들, 낮아지지 못했던 모습들...
주님, 용서하세요. 주님 기뻐하시는 모습으로 사는 아버지 딸이 되도록 성령님 도와주시길 기도합니다. 아멘.

양미옥

2009-09-06 02:46:11

언약궤 앞에서의 다윗의 모습은 어떠했는가?
그는 영혼 속에서 우러나오는 감사와 기쁨으로 온 힘을 다해서 춤을 주었다.

언약궤 앞에서의 나의 모습은 어떠하는가?
나의 말씀 생활은 고백하기도 부끄럽다. 다윗이 얼마나 하나님을 사랑하고 하나님 중심 가운데 삶을 살았는가.. 그의 행동 하나 하나가 증명해주는듯것같다. 말씀을 듣고 나면 그래 이번주부터 다시 말씀회복하고 기도도 회복해야지 마음을 먹으면서도 막상 중간지점까지 오다가 마지막에는 흐지부지해져버리는것이 나의 모습이다. 다윗의 삶과 나의 삶은 너무나 다른 모습으로 살아가고있는것같다.. 언약궤앞에서 기뻐뛰며 하나님을 찬양했던 다윗의 모습은 삶에 지쳐서 머리속에서만 맴돌고 실천하지 못하는 나에게 있어서 큰 도전이 된다.. 회복시켜야한다는 목사님의 마지막 말씀과 동시에 가슴에 와 닿는다. 말씀회복이 되면 나도 하나님 앞에서 감사와 기쁨으로 찬양할수있을것인데.. 부정의 생각을 버리고 다시 시작하는자가 되길 스스로에게 외쳐본다. 할수있다! 하면된다! 마치 군대 구호같이 들릴지 모르겠지만 어쩌면 현재 나에게 있어서 필요한 말인지도 모른다.. 지금의 나에게 있어서 회복시켜야할것들 그리고 꼭 필요한것 말씀과 기도를 겸하여 회복시키는자가되도록 노력하자!

류경혜

2009-09-07 08:28:18

속회별 찬양대회를 준비하면서, 혹시라도 아이들이 발표하는 것을 꺼려하면 어떻하나 걱정이 되었었습니다. 만약 그렇다면 '꼭 언약궤 앞에서 춤을 춘 다윗의 이야기를 해주리라!!'고 마음먹고 있었지요. 다른 것은 신경쓰지 않고 오직 하나님만 바라보면 기뻐 춤출 수 있었던 다윗처럼 우리 아이들이 다른 사람들 앞에서가 아니라 하나님 앞에서 기뻐하며 춤출 수 있기를 바랬습니다.
그런데, 역시 하나님과 함께 하는 우리 아이들!! 너무나도 예쁜 모습으로 기뻐하며 (조금 툴툴대기도 했습니다만, 그건 애교겠지요??) 연습하는 모습에 하나님께 감사드렸습니다. ' 하나님 감사합니다. 지금 이 모습 그대로 이 아이들이 또 저희들이 늘 하나님 앞에서 기뻐 찬양하며, 하나님의 이름을 외치길 바랍니다. 아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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契約の箱と牛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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苦難の正しい見方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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고난 바로 보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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