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중앙영광교회

믿음의 길

이용규목사, 2009-06-16 17:14:1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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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 의인의 길
하나님은 의인을 사랑하신다. 의인을 붙들어 크게 쓰신다.
노아는 당대의 의인이었다.(창6:9) 그래서 하나님은 노아를 통해서 구원의 방주를 지으시고 인류를 보전하셨다.
의인의 간구는 역사하는 힘이 크다.(약5:16) 그래서 의인인 엘리야가 기도했더니 3년 6개월 동안 비가 내리지 않았고, 다시 기도했더니 하늘이 비를 내리고, 땅은 그 열매를 맺었다.(약5:17-18)
소돔과 고모라가 불로 멸망한 것은 의인 10명이 없었기 때문이고, 이스라엘이 나라를 잃은 것도 의인이 없었기 때문이다. 하나님은 의인을 귀하게 여기신다. 지금도 의인을 찾으신다.
‘주의 눈은 의인을 향하시고, 그의 귀는 의인의 간구에 기울이시되 주의 얼굴은 악행하는 자들을 대하시느니라(외면한다)’(벧전3:12)
의인 중의 의인은, 노아도, 아브라함도, 엘리야도 아니다. 온전한 의인은 예수님이시다.
‘그리스도께서도 단번에 죄를 위하여 죽으사 의인으로서 불의한 자를 대신하셨으니
이는 우리를 하나님 앞으로 인도하려 하심이라’(벧전3:18)
예수 믿는 사람들은 예수님을 따라야 한다. 그래야만 제자다운 제자가 될 것이다.
제자의 길은 의인의 길이다. 예수님처럼 의인의 길을 걸어가야 한다.
그러면 의인의 길이란 무엇일까? 의인은 어떤 길을 걸어갈까?
‘나의 의인은 믿음으로 말미암아 살리라(live by faith)’(히10:38)
의인의 길은 믿음의 길이다. 믿음으로 사는 것이 의인의 삶이다. 세상에서 나쁜 짓 안하고 사는 것이 의인의 삶이 아니라, 오직 믿음으로 사는 것이 의인의 삶이다.
그러면 믿음으로 산다는 것은 구체적으로 어떤 삶을 말하는 것일까?

2.        믿음의 길
성경에서 믿음의 길을 걸어간 사람들을 살펴보면 믿음의 길이 선명하게 나타난다.
믿음의 삶은 현상대로 사는 것이 아니라, 말씀(진리)대로 사는 것이다.
보이는 것을 믿고 사는 것이 아니라, 보이지 않는 진리를 믿고 사는 것이다.
보이니까 믿는 것이 아니라, 믿으니까 보이는 것이다.
믿음이 없는 사람은 보이지 않는 것은 믿지 않지만, 믿음의 사람들은 말씀을 통해서 보이지 않는 것을 미리 보는 사람이다.
노아는 홍수를 보고 배를 만든 것이 아니다. 홍수는 고사하고, 비도 본 적이 없었지만, 그는 오직 말씀대로 배를 만들었다. 바다도 본 적이 없었지만, 그는 오직 말씀을 믿고 그대로 행동하였다. 이것이 의인의 모습이다. 보이는 환경대로의 삶이 아닌, 보이지 않는 말씀의 삶을 살아간 것이다.
예수님은 나사로의 죽음 앞에서 마르다에게 분명히 말씀하셨다.
‘나는 부활이요 생명이니 나를 믿는 자는 나를 믿는 자는 죽어도 살겠고, 무릇 살아서 나를 믿는 자는 영원히 죽지 아니하리니 이것을 네가 믿느냐?’(요11:25)
믿음의 길이 얼마나 능력이 있는 길인지를 미리 말씀해 주셨다. 그러나 마르다는 정작 나사로의 무덤 앞에서 전혀 엉뚱한 말을 했다.
마르다의 앞에는 오라비 나사로의 죽음과 예수님의 말씀이 있었다.
나사로의 죽음은 눈에 보이는 엄연한 현실이었다. 누구도 부정할 수 없는 사실이었다.
그러나 예수님의 말씀은 아직 눈에 보이지는 않았다. 믿음이 없으면 받아들일 수 없는 내용이다. 당신이라면 이 때에 무엇을 택하겠는가? 눈에 보이는 나사로의 죽음인가? 눈에 보이지 않는 예수님의 말씀인가? 마르다는 아무 생각 없이 나사로의 죽음을 택했다. 예수님께서 무덤을 막고 있는 돌을 옮겨 놓으라고 말씀하시자 마르다는 이렇게 말했다.
‘주여 죽은 지가 나흘이 되었으매 벌써 냄새가 나나이다.’(요11:39)
마르다는 생명과 부활의 말씀에는 관심 조차 없었다. 오직 눈에 보이는 죽음 앞에만 민감한 반응을 했던 것이다. 그래서 예수님은 화를 내시면서 ‘내 말이 네가 믿으면 하나님의 영광을 보리라 하지 아니하였느냐’(요11:40)라고 하셨다.
믿으면 보이는 것이지, 보이면 믿는 것이 아니다. 믿음은 보이지 않는 것들의 증거다.(히11:1)
마르다는 눈에 보이는 현상대로의 삶에 충실한 사람이었다. 죽은 지 4일이나 지났고, 냄새까지 난다면 희망이 전혀 없는 것도 틀린 말은 아니다. 그러나 생명과 부활의 주님 앞에서는 오답 중의 오답이다. 마르다는 믿음의 삶이 아닌, 현실에 충실한 삶을 산 대표적인 인물이었다. 믿음의 사람은 말을 조심해야 한다. 눈에 보이는 현상 묘사꾼이 되면 안 된다. 믿음의 사람의 말은 늘, 말씀을 묘사해야 한다. 그럴 때에 비로소 힘든 환경들이 말씀의 모습으로 변하게 된다. 죽었던 나사로가 주님의 말씀 앞에서 살아났듯이 말이다.
우리의 삶을 돌아보자. 우리는 과연 의인의 삶, 믿음의 삶을 살아 왔는가? 아니면 늘 환경에 휘둘려 환경의 노예로 지금까지 끌려 오지나 않았는가?
내 입은 과연 주님의 대변인인가? 아니면 눈에 보이는 현상의 대변인인가?
‘선조들은 이 믿음으로 살았기 때문에 훌륭한 사람으로 증언되었다.’(히11:2)
믿음의 사람은 현상의 대변인이 아니라, 말씀의 대변인이다.
‘사람이 마음으로 믿어 의에 이르고, 입으로 시인하여 구원에 이르느니라’(롬10:10)
믿음과 입은 직결되어 있다. 사람은 믿는대로 말하게 되어 있다. 마르다가 진짜 예수님의 능력을 믿었다면 그렇게 말하지 않았을 것이다. 말은 마음을 대변한다. ‘사람은 마음에 가득 찬 것을 입으로 말하기 때문’이다.(눅6:45)
성경에서 최고의 능력의 말, 믿음의 말, 긍정의 말은 ‘예수님을 자신의 주님으로 시인’하는 것이다.(롬10:9) 그 길이 바로 구원의 길이기 때문이다.
생명을 사랑하고 좋은 날 보기를 원하는가?
성경은 그 해답을 정확히 말해 주고 있다.
‘혀를 금하여 악한 말을 그치며, 그 입술로 거짓을 말하지 말고’(벧전3:10)
악한 말, 거짓 말이 무엇일까? 그 앞 절에 나와 있다. 악을 악으로, 욕을 욕으로 갚지 말고 축복의 말을 해 주는 것이다.(벧전3:9) 내 눈에 보이는 환경은 악과 욕으로 갚아 주라고 유혹을 하지만, 거기에 지지 않고, 선으로 복으로 갚아 주는 것이다. 이것은 바로 보이는 것으로 반응하는 것이 아니라, 보이지 않는 것으로 반응하는 것이다. 세상 것으로 반응하는 것이 아니라, 주님의 말씀으로 반응하는 것이다. 이런 사람은 생명이 넘치고, 행복한 나날을 보내게 된다고 성경은 약속하고 있다.
말이 중요하다. 믿음의 사람은 말이 세상 사람과 다르다. 복 받을 사람은 입이 세상 사람과다르다. 그들은 세상 말을 하지 않고 천국 방언을 하는 사람들이다. 발은 세상을 딛고 있지만, 입은 늘 천국에 있다. 믿음의 사람은, 말이 환경에 민감하지 않고 늘 주님께 민감하다. 세상의 환경은 우리의 입술을 저주로 인도하지만, 주님의 말씀은 우리의 입술을 축복으로 인도한다. 주님 닮은 입술을 가져야 한다.
악은 악을 부르고 복은 복을 부른다.
축복을 말하는 사람은 복의 상속자가 된다고 성경은 약속하고 있다.(벧전3:9)
믿음의 사람은 믿음의 말을 하는 사람이요, 복의 말을 하는 사람이다.

3.        열매의 길
믿음의 길을 걷고 있는 사람에게 하나님은 반드시 그 열매를 예비해 놓으셨다. 주님은 그들에게 큰 상을 약속하고 있다. 그러면 어떤 사람들이 그 열매를 맛볼 수 있을까?
‘그러므로 너희 담대함을 버리지 말라
이것이 큰 상을 얻게 하느니라
너희에게 인내가 필요함은
너희가 하나님의 뜻을 행한 후에 약속하신 것을 받기 위함이라’(히10:35-36)
믿음의 길에는 반드시 담대함과 인내가 있어야 한다.
담대함은 확신과 같은 말이다. 자신이 걷는 길에 대한 확신이 있으면 당연히 담대함이 나타난다. 확신이 속 사람의 모습이라면, 담대함은 겉 사람의 모습이라고 할 수 있다. 담대함이 있는 사람은 큰 상을 얻게 된다. 여호수아를 잠깐 보자. 그는 참으로 담대한 사람이었다. 그 담대함은 환경이 주는 담대함이 아니었다. 오히려 환경은 그 반대였다. 견고한 여리고 성이 그들의 눈 앞에 있었다. 그러나 그는 담대했다. 왜? 하나님의 말씀 때문이었다. ‘내가 네게 명령한 것이 아니냐 강하고 담대하라 두려워하지 말며 놀라지 말라 네가 어디로 가든지 네 하나님 여호와가 너와 함께 하는니라’(수1:9) 그래서 여호수아는 가나안 땅을 다 얻는 큰 상을 받았다.
그리고 인내가 반드시 필요하다. 한 두 번만 믿음의 길을 걸어갈 것이 아니라, 끝까지 걸어가야 한다. 그래야만 하나님이 약속하신 것을 받을 수 있다. 수 많은 사람들이 여기서 무너진다. 인내하지 못하는 것은 많은 크리스천들의 무덤이다. 여기서 많은 사람들이 그만 두고 만다. 믿음의 길은 끝까지 걸어가야 한다. 결코 중도에 포기해서는 안 된다. 광야의 이스라엘 백성들이 중도에 포기했기 때문에 결국 그들은 가나안 땅에 들어가지 못하고 광야에서 죽고 말았지 않는가?
당신은 광야에서 고생만 하다가 죽기를 원하는가?
아니면 끝까지 인내하여 젖과 꿀이 흐르는 가나안의 주인공이 되길 원하는가?
비록 그 길이 지금은 광야의 길이더라도, 확신과 인내로 믿음의 길을 찬송하며 끝까지 걸어가는 무리들이 일어나길 축복한다.

15 コメント

조상만

2009-06-17 07:04:19

의인의 길을 걷는 다는 것은 참으로 힘들 꺼 같습니다. 그 만큼의 버릴 것이 많아 지고 지켜야 할 것들이 많아 지기 때문이죠. 물론 그 만큼 하나님께써는 모두 채워 주심을 우리는 알 고 있으나 현상의 지배와 유혹이라는 사탄의 꾐에 우리들은 결국 쓰러지고 마는 것이죠. 그리고 그 뒤에는 욕과 한탄으로 연결 되는 거겠지요. 저는 제자 훈련을 마치고 어제 수련회를 무사히 다녀 왔습니다. 그리고 예전보다 신앙적으로 많이 업그레이된 저 자신을 느낄 수가 있었는데 아직 저의 행동에는 현상에 치우쳐진 옛 습관들이 쓴 뿌리로 남아 아직 저의 신앙에 영향을 미치고 있군요. 역시나 그리스도를 닮아 가는 의인의 삶은 멀고도 험한 듯 싶습니다. 아니, 쉬울 수 있고 우리 모두 그 해답을 알고는 있으나 행하지 못한다는 종이 한장 차이의 한계를 넘어서지 못하고 있습니다. 아직 저에게 험담을 하는 사람들이 미워 집니다. 예수님은 이런 사람들을 더더욱 용서 해 주라고 했는데 왜 자꾸 이 사람이 미워 질까요? 일 할때 마다 쓸데 없는 걸로 트집잡고 생색 내고 때리려고 하고 ...
자기가 나보다 윗 사람이믄 윗 사람이지 자꾸 말도 안되는 걸로 뭐라하는 주위 근처의 아저씨들 땜에 화가 많이 납니다. 그런데 화가 나는 저 자신이 더더욱 싫어 집니다. 왜 화가 나야 하는지 나는 제자 훈련을 통해 변화가 되었는데 그 변화가 아무 것도 아닌게 되어 버린 것은 아닌 건지, 훈련의 결과를 나 자신이 볼품없게 만든 것은 아닌지, 하나님과 목사님께 한 없이 죄송해 지더군요. 좀더 예수님을 닮기 위한 노력이 많이 필요합니다. 그러기에 입 단속, 마음 단속이 꼭 필요 하군요. 또 넘어지기 전에 저 자신에 대한 신앙적 관리가 필요 할 것 같습니다. 앞으로 사역 훈련이 저를 기다리고 있습니다. 사역 훈련을 위해 남은 기간 저자신에 대해 더한 관리 로써 훈련을 준비하겠습니다.


-A men-

박유진

2009-06-17 09:22:24

"악한 말, 거짓 말이 무엇일까? 그 앞 절에 나와 있다. 악을 악으로, 욕을 욕으로 갚지 말고 축복의 말을 해 주는 것이다.(벧전3:9) 내 눈에 보이는 환경은 악과 욕으로 갚아 주라고 유혹을 하지만, 거기에 지지 않고, 선으로 복으로 갚아 주는 것이다."
"당신은 광야에서 고생만 하다가 죽기를 원하는가?
아니면 끝까지 인내하여 젖과 꿀이 흐르는 가나안의 주인공이 되길 원하는가?"

* 말씀으로 다시 한번 나를 가르쳐주시는 주님...
요즘 내 마음의 상태는 참 엉망이었다. 나를 힘들게 하는 사람, 내게 상처가 되는 말을 하는 사람에 대해서, 악을 악으로, 욕을 욕으로 갚는 모습이었다. 그렇지만, 주님은 그러지 말라고 하신다. 오히려 그런 사람에게 축복의 말을 하라고 하신다. 어떻게?? 내 마음을 그렇게 아프게 하고 상처 주고 힘들게 하는 사람에게 축복의 말을 할 수가 있을까? 어떻게 그런 사람을 웃으면서 대할 수가 있을까? 어떻게??
늘 말씀으로 들어서 머리로는 알고 있었지만...내가 그런 상황에 처하자, 그동안 배웠던 말씀을 모두 잊어버리고, 그냥 마음 가는대로 행동했었다.
그렇지만, 이제부터는 말씀대로, 그 사람을 향해서 웃으면서 축복의 말을 해주어야 겠다. 내 마음은 그렇지 않지만, 그렇게 하고 싶지 않지만, 주님께서 그렇게 하라고 말씀하셨으므로. 하나님의 말씀에 순종하기 위해.
그래서, 끝까지 인내함으로 광야에서 고생만 하다가 죽는 게 아니라, 하나님이 예비해두신 가나안의 주인공이 되길 원한다.

주님, 그동안 제가 하나님이 바라시는 모습과 정 반대의 모습으로 생활한 것 용서해주세요. 저를 붙들어주시고 도와주세요...

** 어제 이 리플을 올리고 나서, 주님께서는 바로 이 말씀을 실천할 환경을 만들어주셨다. 말씀에 순종함으로 내 마음에 평안이 왔고, 기쁨을 가질 수 있었다. 그동안 걱정하고 근심하던 것들에 대한 기도의 응답을 받을 수 있었다.
주님, 감사해요.

홍은미

2009-06-18 19:23:51

내 눈에 보이는 환경은 악과 욕으로 갚아 주라고 유혹을 하지만, 거기에 지지 않고, 선으로 복으로 갚아 주는 것이다. 이것은 바로 보이는 것으로 반응하는 것이 아니라, 보이지 않는 것으로 반응하는 것이다. 세상 것으로 반응하는 것이 아니라, 주님의 말씀으로 반응하는 것이다. 이런 사람은 생명이 넘치고, 행복한 나날을 보내게 된다고 성경은 약속하고 있다.

이런 건 인정하고 싶지 않지만, 가만히 보면 정말 여자들이 많은 곳에는 오해와 텃새가 항상 존재하는 것 같다. 뒤에서 남의 말을 좋아하는 사람들... 아무 말도 안하고 가만히 있으면 가만히 있는대로 '저런 사람이 더 무섭다느니.. 속을 알 수 없다느니...'그런 말까지 해 가면서....
한동안 나도 이런 말들(?)때문에 함께 일하는 동료들과 오해와 감정대립이 있었다. 정말 하루하루가 너무 속이 상했다. 나의 마음이나 생각을 제대로 알지도 못하면서 내 말을 왜곡시켜 전하는 사람들이 정말 너무 싫고 미웠다. 풀어야겠다고 생각하면서도 마음이 따라주지 않으니 더욱 괴로웠다.
정말 예수님은 그 많은 원수들을 어떻게 사랑하신 것인지~! 나는 이렇게 힘들고 안되는데...
정말 마음이 풀리지 않았다. 정말이지 마음같아서는 그들과 똑같이 해서라도 그들이 곤경에 처하는 모습을 보고 싶었다.
하지만 나는 그것마저도 회개할 수밖에 없었다. 하나님의 뜻은 '서로 사랑하라'였으니까....'예수님께서 나를 사랑해 주신 것 같이 사랑해야했으니까...' 또, 나에게 말씀하시는 것처럼 그 기간에 여기저기서 모든 말씀들이 다 '사랑'에 관한 것이었다. 그리고 기도로 내 마음속의 응어리들을 풀어가려고 노력했다.
한동안은 하나님께 기댄 복수의 마음도 품고 있었다. '주님이 대신 갚아주실거야..'라는... 그런데 이때 제자훈련 때 들었던 말씀들이 생각났다. 하나님은 나도 사랑하시지만 저들도 사랑하신다는....
그런데 어느 날, 참 내가 너무도 사소한 것에 매여서 스스로를 힘들게 하고 있다는 생각이 들었다. 아예 생각도 하지 않고 반응도 하지 않으면 시간이 해결해 주지 않을까하는..... 마음이 한 결 가벼워졌다.
그리고 그들을 위해 기도했다. 서로 오해가 풀리고 나의 진심을 전하고 서로 사랑할 수 있게 해 주세요..라고... 정말 하나님의 뜻은 놀라웠다. 그들이 내게 사과를 했고 서로 대화를 통해 누구의 잘잘못도 아니고 작은 오해에서 비롯되었다는 것을 알게 되었다. 정말 나를 그렇게 힘들게 했던 것이 이렇게 사소한 것이었던가라는 생각이 들정도로.... 정말 위의 말씀 그대로인 것 같다. 내 눈에 보이는 것들은 악과 욕으로 반응하라고 나를 유혹해 왔다. 하지만 이럴 때에 세상 것으로 반응해 버리면 그 피해와 상처는 내가 받는 것이다. 그러나 주님의 말씀과 선과 사랑으로, 보이지 않는 것으로 반응하면 그것이 내게 진정한 승리와 행복을 가져다 주는 것 같다.
이런 귀한 것을 날마다 깨닫게 해 주시는 나의 주님,, 그리고 목사님께 항상 감사드립니다.

문원희

2009-06-20 03:00:48

의인의 길은 믿음의 길이다. 믿음으로 사는 것이 의인의 삶이다.
세상에서 나쁜 짓 안하고 사는 것이 의인의 삶이 아니라,
오직 믿음으로 사는 것이 의인의 삶이다.

그동안 의인은 나쁜 짓을 안하고 착한 일만 하는 사람이 의인이라고 생각해왔었다.
하지만 의인은 보이지 않는 하나님의 말씀을 믿고, 믿음으로 사는 것이 바로 의인이다.
노아는 비라는 것을 보지도 못했지만, 하나님의 말씀을 붙들고, 세상 사람들이 미쳤다고
손가락질을 해도 방주를 만들었다. 나는 노아처럼 할수 있을까, 곰곰히 생각해 보았다.
제자 훈련을 마치고도, 아직 나는 보이는 것을 믿으려고 하지는 않는지도 생각해 보았다.
눈에 보이는 것이 진정 전부가 아닌 것을 알면서도, 왜 자꾸 눈에 보이는 것을 믿으려
하는지,, 마르다처럼 현상을 묘사하는 현상 묘사꾼이 되어서는 안되겠다고 다짐하였다.
하나님의 말씀을 의심하고 눈에 보이는 것을 믿는 사람은 의인이 아니다. 오로지 믿음으로
사는 것이 의인이다. 훈련을 마친 훈련생으로써 예수님을 닮아가는 작은 예수로써 오로지
하나님의 말씀을 붙들고, 흔들리지 않는 믿음의 길을 걷는 내가 되고싶다.

김수영

2009-06-20 09:45:46

자연은 하나님의 작은 소산물이라 했던가요.
고땡바의 하룻밤은 은혜의 밤이었습니다.
참 아름다워라 저 솔로몬의 화려한 옷보다 더
고운 백홥화 라는 찬송가 구절이 저의 입에서 떠나지 않았고
저의 복잡한 상황들을 다 정리하게 하시고 편안함을 주셨습니다.

꼭 하나님의 마지막 테스트를 통과한 꿈에 부푼 젊은 용사의
마음을 주셨는데요 그것은 참 이해하기 힘든 상황을 하나님의 은혜로
잘 참아 왔기 때문입니다.
모든 만물이 다 아름답도다.
모든 은혜의 물이 넘치도다.
이 모든 것을 만드신 경이로운 하나님을 저는 찬양과
영광을 드릴 수밖에 없네요.
제가 서 있는 이곳이 가나안 땅인가 봅니다.

하나님 은혜의 감사드리고 사랑합니다.

최민정

2009-06-20 22:42:50

‘사람이 마음으로 믿어 의에 이르고, 입으로 시인하여 구원에 이르느니라’(롬10:10)
믿음과 입은 직결되어 있다. 사람은 믿는대로 말하게 되어 있다. 마르다가 진짜 예수님의 능력을 믿었다면 그렇게 말하지 않았을 것이다. 말은 마음을 대변한다. ‘사람은 마음에 가득 찬 것을 입으로 말하기 때문’이다.(눅6:45)
성경에서 최고의 능력의 말, 믿음의 말, 긍정의 말은 ‘예수님을 자신의 주님으로 시인’하는 것이다.(롬10:9) 그 길이 바로 구원의 길이기 때문이다.

나는 매사에 예수님을 나의 주님으로 시인하고 있었는지
저번주 말씀을 통해 돌아보게 되었다. 사람은 믿는대로
말한다고 하는데 혹시나 내가 부정적인 말들을 하지는 않았었는지
내 모든 짐을 주님께 맡기면 대신 감당해 주실것을 조금이라도
의심하고 있지는 않았는지 내 믿음의 크기를 생각해 보는 계기가되었다.
예수님과 함께 있으면서도 현상만을 보고 낙심하던 마르다 처럼 되지
않기 위해 비록 내 눈에 보이지 않는 예수님 이시지만 보이지 않는 그분의
함께하심과 능력을 믿고 따라가야 하겠다.
그 믿음의 확신을 먼저 입으로 시인하는 지혜로운 제자가 되어야 하겠다.

양미옥

2009-06-21 00:20:00

일주일이 훌쩍 지나갔다. 이번 한 주간은 하루하루을 어떻게 보냈는지도 모르게 지난것 같다. 하지만 안타깝게도 회사에서 매일 조례를 하는데 얼굴을 밝게 웃으면 시작을 해보지 않은것 같다. 사원들의 시선을 느끼면서도 아침에는 왜 그렇게도 인상펴는것이 힘들었을까.. 혼자 일에 집중하고 싶은 맘도 강했던것 같다. 새로운일에 임무를 맡겨진 책임감 때문이었을까? 하지만 곰곰히 생각해보면 나의 영적 상태를 점검해보면 그 정답을 알수있을것같기도 했다. 마르다의 삶과 나의 삶을 비추어보면서 맘에 찔림을 많이 받았다. 어쩌면 믿음이 부족했던 탓에 환경을 보고 나의 맘대로 정해버리는 미숙한 신앙은 아니었는지... 눈에 보이는 현상 믿음을 나는 어쩌면 더 가지고 있었는지도 모른다. 회사에서 하는 일들은 거의 그렇다. 바로바로 눈에 보여져만이 왠지 일을하고 있는것 같고, 눈에 보여지는 성적수로 인해 사람들을 평가하게 되어버리는 것이다. 한 사람 한 사람들을 돌보고 키워야하는 입장에서 오히려 그렇지못하고 나의 일에만 몰두하고 나만을 생각하는 이기적인것을 보면서 부끄러웠다.
믿음의 길. 어떤 환경속에서도 믿음의 길을 걸어가야하는데 나의 환경과 나의 마음으로 좌우지하는 신앙이 아닌 성숙한 신앙인이 되길원한다.

문인우

2009-06-21 01:07:15

그리고 인내가 반드시 필요하다.
한 두 번만 믿음의 길을 걸어갈 것이 아니라, 끝까지 걸어가야 한다.
그래야만 하나님이 약속하신 것을 받을 수 있다. 수 많은 사람들이 여기서 무너진다.
인내하지 못하는 것은 많은 크리스천들의 무덤이다. 여기서 많은 사람들이 그만 두고 만다.
믿음의 길은 끝까지 걸어가야 한다. 결코 중도에 포기해서는 안 된다.

나는 정말 인내심과 참을성이 제로다. 사고싶은 물건이 있으면 하루도 참지 못하고 당장 사야 하고,
놀이 동산에서 줄 서서 기다리거나 유명한 음식점에서 기다리는 것은 나에게 힘든 일이다.
그래서인지 기도를 할 때에도 당장 눈앞에 보이는 응답이 없으면 답답해하고 초조해했다.
하나님이 내 기도를 듣고는 계신건지, 내가 기도한 대로 응답은 해주실 건지 불안해하기도 하고..
이스라엘 백성들은 인내하지 못해서 결국 젖과 꿀이 흐르는 가나안 땅으로 들어가지 못했는데
지금까지 내 모습이 딱 이스라엘 백성들과 같은 모습이다.
하나님은 내가 기도한다고 바로바로 응답해주시는 자판기가 아니신데 훈련을 받은 훈련생으로써
끝까지 믿음의 길을 걷지 못한것 같아 많이 부끄럽다.
앞으로는 인내하며 담대하게 믿음의 길을 걷는 내가 되길 소망한다.

‘그러므로 너희 담대함을 버리지 말라
이것이 큰 상을 얻게 하느니라
너희에게 인내가 필요함은
너희가 하나님의 뜻을 행한 후에 약속하신 것을 받기 위함이라’(히10:35-36)

서진

2009-06-21 06:42:49

의인의 길은 믿음의 길이다. 믿음으로 사는 것이 의인의 삶이다.
세상에서 나쁜 짓 안하고 사는 것이 의인의 삶이 아니라,
오직 믿음으로 사는 것이 의인의 삶이다.

나는 여태껏 의인은 세상에서 죄를 안 짓고 선한 일은 하면서 사는
사람을 의인이라고생각했었다. 그래서 나름 의인이 되고 싶어서 선한
일은 못할 지언정 사람들에게 피해를 주지 말면서 살려고 노력했었다.

하지만 나의 생각은 잘 못되였던것이다. 의인은 오직 믿음으로 하나
님만 의지 하면서 살아가는 것이다.

과연 나는 의인의 삶을 살고 있는가?
나는 제자훈련졸업생으로써 다른 사람들 보다 더욱더 의인의 삶을 살려
고 노력하겠다. 또한 모든 일에 인내하며 모든일에 담대하게 나아가며
하나님께 영광을 드리느 삶을 살기 위해 노력하겠다.

‘그러므로 너희 담대함을 버리지 말라
이것이 큰 상을 얻게 하느니라
너희에게 인내가 필요함은
너희가 하나님의 뜻을 행한 후에 약속하신 것을 받기 위함이라’(히10:35-36)

박은주

2009-06-21 06:47:03

발은 세상을 딛고 있지만, 입은 늘 천국에 있다. 믿음의 사람은, 말이 환경에 민감하지 않고 늘 주님께 민감하다. 세상의 환경은 우리의 입술을 저주로 인도하지만, 주님의 말씀은 우리의 입술을 축복으로 인도한다. 주님 닮은 입술을 가져야 한다.
악은 악을 부르고 복은 복을 부른다.
축복을 말하는 사람은 복의 상속자가 된다고 성경은 약속하고 있다.(벧전3:9)
믿음의 사람은 믿음의 말을 하는 사람이요, 복의 말을 하는 사람이다

세상사람들도 이 법을 잘 깨달아서 성공한 사례들을 많이 봅니다. 그러면서도 주님을 모신 내 자신은 평소에 실천하지 못하고 자주 무너집니다. 특히 남편에게, 아이들에게, 가족에게 말입니다. 정말 어리석기 짝이없네요.
결국 약한 믿음을 스스로 증명하고 마네요.
졸업여행 때 피그말리온 미팅을 하면서 저를 칭찬해 주는 말들에 너무 부끄러웠습니다. 정말 가장 저를 잘 아는 하나님과 남편과 가족들에게서 그 말을 들을 수 있도록 하여야겠고, 입술이 주님을 닮을 수 있도록 내 속에 주님이 충만할 수 있도록 주님과이 교제의 삶에 게을르지 않도록 노력해야겠습니다.

신정은

2009-06-21 08:19:30

말이 중요하다. 믿음의 사람은 말이 세상 사람과 다르다. 복 받을 사람은 입이 세상 사람과다르다. 그들은 세상 말을 하지 않고 천국 방언을 하는 사람들이다. 발은 세상을 딛고 있지만, 입은 늘 천국에 있다. 믿음의 사람은, 말이 환경에 민감하지 않고 늘 주님께 민감하다. 세상의 환경은 우리의 입술을 저주로 인도하지만, 주님의 말씀은 우리의 입술을 축복으로 인도한다. 주님 닮은 입술을 가져야 한다.

항상 주의해야 하는 부분임을 너무나도 잘 알고 있으면서 내 마음대로 지켜지지 않는 것이 이 "말"인 것 같습니다.
상대방에 의해서, 환경에 의해서 나오는 불평 불만의 말, 부정적인 말, 저주의 말..등 이루 말할 수 없는 말의 죄를 범한 것 같습니다.
말을 하기 전에 주의 할 점이 여러가지 있지만, 복잡하게 생각하지 않아도 단 한가지, 지금 내가 내뱉고 있는 이 말이 과연 주님이 들으시기에 기쁘실까? 를 생각하고 말을 한다면 분명 축복의 길로 인도해 주심을 믿습니다.
지금 생각해보니 참 많은 말의 죄를 짓고 살아온 것 같아 너무나도 부끄러워집니다...
천국 방언 이라는 말이 너무나 가슴에 와 닿네요..
입술에서 그리스도의 아름다운 향기가 나는 그런 주님의 제자가 되고 싶습니다.
지금부터 당장 입술을 주의하면서 언제나 복의 말을 전하도록 실천하고자 합니다!

이진애

2009-06-21 08:49:55

보이니까 믿는 것이 아니라, 믿으니까 보이는 것이다.
이 간단한 진리를 생각하면.. 그저 믿기만 하면 보일 것이므로 두려워할 것이 아무 것도 없다.

그러나.. 나의 모습은..
오빠 나사로의 죽음 앞에서 예수님의 말씀에 관심조차 갖지 못했던 마르다와 다를 바가 없다.
믿음을 가지고 말씀을 읽으며 생활한다 하면서도.. 보이는 현실 앞에 늘 무너지고 마는 내가 아니던가.

지금 내게 가장 필요한 것도 믿음인 것 같다.
현상을 대변하는 말이 아니라 성경 최고의 능력을 말, 긍정의 말, 믿음의 말 즉 예수님을 나의 주님으로 시인하는 말을 해야 할 것이며, 그대로 믿고 의지하며 나아가야 할 것이다.

요즘.. 약한 생각을 많이 하게 된다. 눈에 보이는 현상을 보기 때문에 그러하리라.
이제.. 현상이 아니라 믿음으로 세상을 보며.. 씩씩하게 살아가자!!

장미경

2009-06-21 08:59:50

믿음의 길에는 반드시 담대함과 인내가 있어야 한다.

1년여간의 훈련을 마치는 졸업식날 우리에게 주신 주님의 말씀....
훈련을 받은 자로서 믿음의길을 가야 함에 대한 다짐을 하게 해주신 말씀이었다.
훈련의 끝이 졸업이 아닌 정말 제대로된 삶의 훈련으로의 시작이기에
내가 지금 가져야 할 마음가짐에 대한 정확한 답을 주셨다.

주를 믿는자로서 ... 훈련을 받은 자로서...
그 좁은길을 걸어가기 위해서 담대함과 인내가 필요함을 다시 한번 깨달았다.
주님의 뜻 붙잡고 나아갈 수 있는 담대함!
주님이 아니라 하실때 멈춰 설 수 있는 담대함!
그리고 다시 열어주실 길에 대한 인내!

어려움이 닥칠때마다 참 많이도 넘어지던 부분이 바로 이것이었는데..
내가 믿는 자로서 다시한번 훈련을 마치며
담대함과 인내를 위해 기도하는 자가 되어야 겠다!

박재훈

2009-06-21 10:24:17

>>믿으면 보이는 것이지, 보이면 믿는 것이 아니다. 믿음은 보이지 않는 것들의 증거다.(히11:1)

물흐르는 곳에 몸을 맡기고 싶은 것이 인생이지만,
내 생각과 내 입술과 마음을 컨트롤하지 않으면
어디로 갈지 알 수 없는 먼 곳으로 가는 게
우리네의 인생인 것 같다.
하나님의 생각에 초점을 맞추지 않으면 사탄의 계략에 옳다구나 걸려드는 것이다.
주일 예배 때 말씀을 통하여 졸업여행 때 큐티를 통하여 지인의 응원의 메일을 통하여
하나님은 나에게 두려워하지 말고 담대하라고 계속 말씀하고 계셨다.
말씀을 대할 때면 다시금 마음을 다잡고 생각을 고쳐본다.
허나 세상살이에 지쳐 잠시 모든 생각을 접어둘 때면
현실만 보이고 믿음은 옅어지고 옅어져서 보이지 않는 상태가 되어버리고 만다.

한국에 들어와줬으면 하는 엄마의 무언의 압박이 부쩍 늘어나고 있다.
그런 연유인지 마음이 흔들리고 갈피를 못 잡겠고 좀 멍해진다.
하나님의 뜻에만 초점을 맞추겠다고 했지만 막상 현실에 급하게 반응하고 만다.
인내할 수 있도록, 눈에 보이지 않는 것을 믿는 그 믿음으로
담대해질 수 있도록 기도할 수 밖에 없는 것 같다.

박빛나

2009-06-22 08:23:19

보이니까 믿는 것이 아니라, 믿으니까 보이는 것이다.
---------------------------------------------------------------------------
우리 주님 자랑하기를 게시판에 올릴때의 일이다.
그 주의 말씀이 주님은 주님을 자랑하는 자를 결코 가만히 두지 않으신다는 말씀이었다.
나약한 내 자신에게 선포할 수 있는 기회를 주셨고, 나는 실행했다.
앞에는 아무것도 보이지 않았지만, 주님을 자랑했고, 주님은 여러가지 방법으로 축복으로 부어주셨다.
보이니까 믿는 것이아니라, 믿으니까 보이는 것!
믿으니까 주님이 보여주셨다.
자랑할 일을 끝없이 만들어 주시는 주님은 정말로 못말리는 분이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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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혀를 금하여 악한 말을 그치며, 그 입술로 거짓을 말하지 말고’(벧전3:1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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말씀을 주시는 그 주는 꼭 그 말씀에 딱 맞는 사건들이 터진다.
나는 그렇게만 생각했었다. 마귀가 참 못되먹어서 이렇게도 말씀으로 장난친다고.
하지만, 문득 깨닫고 말았다.
하나님이 사전 교육을 시켜주신거구나!!
지난 주가 딱 그랬다.
회사를 정리하면서, 평소에 친분이 있던 직원들과 점심 식사를 함께 하는 일이 많았던 주였다.
이제 편하게 얘기를 하게 되어서일까...
다른 직원의 나쁜점을 이야기 하는 사람들이 많아졌다.
결코 유쾌하지 않았다. 그때 바로 이 말씀이 떠올랐다. 말은 조심하라 하셨지...
만약 주님이 방어막을 쳐주지 않으셨다면???
(아마도 뒤끝이 좋지 않았을 것이다. 누가 누구더러 뭐라 그랬다며?? 등등등...)
이제 말씀을 사모할 수 밖에 없는 이유가 생겼다. 말씀은 곧 주님의 사랑이니까.
마음 깊이 새겨두고 주님의 큰 그릇이 되어야지 결심했다.
아부지 딸네미가 이정도로 머물순 없죠?? 주님이 날 위해 예비하신 것들을 나는 온전히
받아야 직성이 풀리는 욕심쟁이 딸네미가 되기로 했다. 단! 주님의 방법으로 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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