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중앙영광교회

말이 없으신 예수님

이용규목사, 2008-03-31 14:49:5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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말이 없으신 예수님

말씀//이사야53:5-7

1.        예수님의 인내
‘예수님은 굴욕을 당하고 고문을 당하였으나,
아무 말도 하지 않았다. 마치 도살장으로 끌려가는 어린 양처럼,
끌려가기만 할 뿐 아무 말을 하지 않았다.’(사53:7)
이 말씀은 십자가의 예수님의 모습을 미리 예언한 부분이다.
예수님은 아무 죄도 없으셨지만, 십자가에서 온갖 누명을 덮어쓰고 죽어가고 있었지만 끝까지 입을 열지 않았다. 유대 지도자들과, 병사들, 심지어 함께 십자가 처형을 받고 있던 흉악한 죄수까지도 예수님을 모독하고 조롱하였다.(눅23) ‘네가 진짜 죄가 없다면 너희 결백을 밝히기 위해서 거기서 내려와 보라. 그러면 네가 그리스도인 줄 믿겠다.’ 예수님은 진짜 그리스도이시지만, 진짜 죄가 없으시지만, 충분히 해명하고 십자가의 죽음에서 내려 올 수 있었지만 끝까지 아무 말이 없으셨다.
보통 사람들 같았으면, 너무나 억울하고 분해서 해명하지 않으면 도저히 눈을 감지 못했을 것이다. 그러나 주님은 끝까지 침묵하셨다. 구약에 예언된 말씀 그대로 예수님은 말없이 죽어 갔다.
십자가의 주님은 말이 없었다. 죽음의 누명을 덮어 썼지만, 해명하는 것 대신에 그는 죽음을 택했다. 이것이 그 분의 위대함이요, 그 분의 사랑의 모습이다.
당신의 인생에 억울하고 분한 일이 있는가? 도저히 참을 수 없는 일이 있는가? 누가 당신에게 말도 안 되는 누명을 덮어 씌워서 당신을 죽이려고 하는가?
이 때, 하나님은 말씀하신다.
‘믿음의 주요 온전케 하시는 이인 예수를 바라보라.
그는 부끄러움을 마음에 두지 않으시고, 십자가를 참으셨다. 그리하여 그는 하나님 보좌 오른쪽에 앉으셨느니라.’(히12:2)
‘참으면 또한 주님과 함께 왕노릇할 것이요(딤후2:12)
아무리 억울하고 분해도 십자가의 주님만큼 힘들겠는가? 십자가의 주님을 묵상해 보라. 그러면 낙심하여 지치는 일이 없을 것이다. 마음의 한이 눈 녹듯이 말끔히 녹아 없어질 것이다. 십자가의 인내 뒤의 왕노릇함의 영광이 반드시 반드시 반드시 당신을 기다리고 있기 때문이다.
‘갈보리산 올라간 주를 생각할 때에
나의 받는 괴롬을 비교할 수 없으리
십자가를 지고서 주를 따라 갑니다.’(찬457)

2.        예수님의 사랑
누가 예수님을 십자가에 못 박았습니까? 로마 병정들입니까? 제사장들입니까?
아닙니다. 예수님을 십자가에서 못 박은 사람은 바로 당신 자신입니다. 예수님이 억울했던 것은 당신 때문입니다. 당신 죄를 송두리째 예수님께 덮어 씌웠기 때문입니다. 예수님은 바로 당신 때문에 누명을 쓰고 죽으셨습니다.
그런데 왜 예수님은 죽어가면서도 말이 없으셨을까요? 예수님이 왜 입을 꼭 다물고 있었을까요? 그것 또한 바로 당신을 위해서입니다. 예수님이 입을 열면 당신이 다치기 때문입니다. 당신이 범인인 것이 밝혀 지기 때문입니다. 예수님은 자신을 위해서는 자신의 결백을 골백번도 더 말하고 싶었지만, 당신을 지키기 위해서 끝까지 입을 열지 않았던 것입니다. 이것이 바로 예수님의 십자가 사랑입니다. 당신은 이 사랑을 얼마나 깨닫고 감사하고 있습니까?
작년 8월에 한국에서 끔찍한 살인 사건이 있었습니다.
부모님, 누나 둘, 본인 이렇게 5명이 살고 있는 가정에 어느 날 밤에 복면을 한 강도가 들어 왔습니다. 그런데 그 복면 강도는 다름 아닌 그 집안의 외아들이었습니다. 아버지는 금방 자기 아들임을 알았습니다. 그래서 달래려 했지만, 외아들은 모르는 척하면서 아버지를 찌르고, 어머니를 찌르고 두 누나를 무자비하게 찔렀습니다. 어머니와 아버지는 죽었고, 두 누나는 중상을 입었습니다. 얼마나 비참한 사건인지 모릅니다. 그런데 아버지는 죽어 가면서 두 딸들에게 신신 당부를 합니다. ‘절대로 너희 동생이 범인이라고 말하지 말라’ 그리고 응급실에서 범인에 대해 묻는 경찰의 질문에도 끝까지 고개만 가로 젓다가 죽었습니다.
비록 패륜아였지만, 자신의 자식의 칼에 맞아 죽어가지만, 그 자식을 지켜 주고 싶은 것이, 살리고 싶은 것이 부모의 마음입니다. 이 아버지의 사랑에 감복한 판사는 이렇게 판결을 내렸습니다. ‘극형의 선고가 불가피하지만, 죽어가면서도 피고의 범행을 덮어 주려고 한 아버지의 사랑을 참작해 무기 징역을 선고한다.’ 아버지의 그 사랑이 아들을 사형에서 살려낸 것입니다.
이것이 바로 십자가의 주님의 사랑입니다.
주님을 죽인 범인은 바로 우리 입니다. 우리의 죄악의 칼과 허물의 칼로 우리는 예수님을 무자비하게 찔러 죽였습니다. ‘그가 찔림은 우리의 허물을 인함이요, 그가 상함은 우리의 좌악을 인함이라’(사53:5)
그런데 우리 칼에 죽어가던 예수님은 절대로 입을 열지 않았습니다. 패륜아의 아버지처럼. 예수님이 입을 열면 우리가 다치기 때문입니다. 우리가 죽기 때문입니다. 예수님은 우리 때문에 끝까지 그 모든 억울함을 가슴에 묻고 떠나셨습니다. 이것이 바로 주님의 마음입니다. 우리네 부모님은 다 그렇습니다. ‘나는 죽더라도 내 자식만은 무슨 수를 써서라도 살려야 한다.’ 이것이 십자가의 예수님의 마음이었습니다. 예수님은 나 때문에 당한 어떤 억울함 앞에서도 끝까지 입을 열지 않았습니다. 살인자인 나를 지켜 줄려고 말입니다.
하나님 앞에서의 나는 패륜아보다 더 큰 죄인이고, 십자가 주님의 사랑은 이 아버지의 사랑보다 훨씬 깊고 넓습니다.
우리는 바로 이 사랑을 받은 사람들입니다. 이 사랑을 깨달아야 합니다.
아버지가 끝까지 입을 닫고 있었던 것은, 자신을 위해서가 아니라, 자식을 위해서 였습니다. 이것이 바로 십자가의 사랑입니다. 나는 그 분을 칼로 찔렀는데, 그 분은 오히려 내가 다칠까 봐, 혹시 누군가 눈치 챌까 봐 비명 한번 못 지르고 입술을 꼭 깨물고 죽으셨습니다. 그 분이 입을 열면 범인이 금방 밝혀지기 때문입니다. 내 죄가 금방 쏟아져 나오기 때문입니다. 그래서 그 분은 입을 열 수가 없었던 것입니다.
그 분은 우리 때문에 끝까지 입을 열지 않았습니다. 패륜아의 아버지처럼.
        
3.        예수님의 침묵
침묵은 사람이 할 수 있는 최고의 사랑의 표현입니다. 침묵이 있는 사람은 어떤 사람의 죄도 용서할 수 있습니다. 침묵이 있는 침묵은 사람이 가질 수 있는 최고의 능력이다. 침묵이 있는 사람은 무엇이든지 할 수 있다. 침묵이 있는 사람은 어떤 억울한 십자가도 기쁨으로 질 수 있다. 침묵은 구원의 마지막 능력이었다. 예수님의 십자가의 마지막 사랑의 모습은 ‘침묵’이었다. 침묵은 사랑의 최고의 표현이다.
침묵은 자기를 위해서 묵비권을 행사하는 것이 아니다. 침묵은 남을 위해서 그 사람의 허물을 말하지 않는 것이다. ‘사랑은 모든 허물을 덮어 준다.’(잠10:12)
사랑하면 할수록 허물에 대해서는 말이 없어진다.
믿음의 사람은 남의 허물에 대해서 말을 하지 말아야 한다.
남을 위해서 입을 닫아야 한다. 그래야 당신 때문에 그 사람이 안 다치기 때문이다. 침묵은 죄인을 보호해 주는 최고의 방패막이다.
내가 말이 없으면 없을수록 사랑의 십자가는 커지지만, 말이 많으면 많을수록 사랑의 십자가는 초라해진다.
십자가는 예수님이 두 손을 펴서 온 몸으로 당신의 허물을 덮어 주신 곳이다. 창이 날아오면 몸으로 창을 대신 맞아 주셨고, 대못을 손바닥으로 대신 맞아 주신 곳이다. 그런 분에 어떻게 우리의 죄악을 자신의 입으로 말할 수가 있었겠는가?
침묵은 십자가 사랑의 완성이다.
‘허물을 덮어 주면 사랑을 받고, 허물을 거듭 말하면 친구를 이간시킨다.’(잠17:9)
‘허물을 덮어 주는 것은 그의 영광이다.’(잠19:11)고 했다.
허물을 덮어 준다는 것은 말을 하지 않는다는 말이다. 곧 침묵을 말한다.
그러니 곧 침묵은 그 사람의 영광이란 말이다. 침묵하는 사람에게는 반드시 영광이온다. 예수님이 십자가에서 침묵하여 하나님의 보좌 우편에 앉으셨듯이, 주님은, 억울한 일에 침묵하는 사람을 귀하게 대접하신다.
침묵은 금이 아니라 침묵은 영광입니다.  
워싱턴에 가면 링컨 기념관이 있다. 거기에 링컨의 행동 규칙이란, 액자에 넣을 수 있는 종이 한 장을 판다. 거기에 보면 링컨의 행동규칙의 첫 번째가 이렇게 적혀 있다.
‘Better to remain silent and be thought a fool
Than to speak out and remove all doubt.’
(오해나 누명을 벗기 위해서 열심히 해명하는 것보다
비록 바보 취급을 받더라도 침묵하는 것이 훨씬 낫다.)
링컨은 ‘침묵’을 자신의 행동 수칙의 첫 번째로 삼았다. 어떤 억울한 일이 있어도 차라리 바보 취급을 받더라도 ‘침묵’하는 것을 귀한 것으로 여겼다. 말을 해서 누명이 벗겨지는 것보다 침묵해서 나쁜 사람으로 매도되는 것을 더 좋게 여겼다. 그래서 그는 세계 최고의 인물이 된 것이다. 침묵은 바로 그 사람의 ‘영광의 지수’이기 때문이다.
평범한 사람들은 자신의 죄에 대해서는 감추려고 하고, 남의 허물에 대해서는 나팔을 불려고 하지만,
위대한 사람은 자신의 죄에 대해서는 정직하려 하고, 남에 허물에 대해서는 침묵하려고 한다.
위대한 인물이 될 사람은 남의 허물에 대해서 말이 없다.
‘remain silent’
험담은 상처를 남기지만, 침묵은 영광을 남긴다.
험담에 대한 침묵의 에너지를, 주님의 사랑을 전하는 전도에 폭발시키자!

39 コメント

최현숙

2008-03-31 17:08:06

어제 설교는 분명한 목소리로 내게 말씀하신 하나님의 음성으로 들렸다.
토요일 날 나름대로 여러가지 생각 속에 빠져 들다 보니 누군가와 이야기를 나누고 싶은 마음이 들었다.
누군가와 이야기를 나누면 마음이 시원해 질 것 같은 느낌! 이 느낌이 가끔 날 속이기도 하지만,,,,,
그래서 여러 사람들의 얼굴을 떠올려 봤다. 내 형편을 알고 있는 사람이 누가 있을까? 이런 저런 생각을 하다가 말씀을 읽게 되었고 말씀을 읽으면서 마음에 안정을 찾게 되었다. 그러면서 기도를 드렸다. 하나님! 주일 말씀을 통해서 분명하게 이야기 해 주셔요!
하나님의 말씀은 침묵하길 원하셨던 것을 나는 알게 되었다. 어리석은 나는 누군가에게 내 심정을 털어 놓으면 위로를 받을 것 같은 그리고 나의 사정에 동정을 해 줄 것이란 기대를 가졌던 것이다. 예수님의 침묵의 모습은 올 들어 말씀을 읽으면서 내게 많은 도전을 주는 부분이기도 하다. 죽음앞에서도 자신을 변명하기 보단 침묵으로써 순종하는 모습이 내게 감동으로 다가왔기 때문이다.
내가 살아가면서 가장 힘든 것이 침묵하는 것이란 생각이 든다. 특별히 억울한 일을 당했을 땐 정말로 그런 것 같다. 내가 지은 죄의 결과로 얻어지는 사건 앞에선 그래도 잠잠할 수 있지만,( 이것조차도 힘들 때도 있어서 변명하지만) 분하고 억울한 일은 육신의 감정으론 정말로 감당하기 힘든 일이다. 이런 내 모습을 돌아 보니 너무도 부끄러운 사건들이 많다. 비난과 비양과 조롱하는 소리에 잠잠히 입을 열지 않으신 예수님을 더 깊이 묵상했다면 그 때 그 일들이 줄어 들지 않았을까….하는 부끄럽지만 뒤늦은 후회를 해 본다.
나를 위해 침묵하시는 예수님의 사랑이 오늘은 정말로 크게 크게 내 영혼을 가득채운다.
이제 내가 더 깊은 교훈을 깨닫는다.
그 사랑을 갚기 위해선 나도 그리하리라.
사랑은 모든 허물을 덮어 준다고 했는데, 나도 그리하리라 다짐 해 본다.
주님! 나의 연약함을 도우사 나로 승리하게 하소서!

김 정숙

2008-03-31 20:43:46

3번이나 모욕성 저주성 질문에도 입을 열지 않으셨던 예수님
그렇게 하실것을 예언하여 놓은 이사야서 53장 의 말씀을
오늘 목사님을 통하여 나에게 물어 보신다.
너는 어떤 모습이냐?
너는 죄 없는가?
말해라고 주님이 질문 하실때
나는 없어요 할 수 있는 사람은 한사람도없을 것이다.
나는 더 큰 죄인 입니다. 고백 합니다. 하나님 앞에서 예수님 앞에셔,
그런데 오늘 목사님을 통하여 가르쳐 주신 말씀은
"침묵 해라, 말 하지 말아라" 하심니다

나에게 주신 하나님의 말씀이셨읍니다.
그러나 나는 아직도 어린 양이라 또 부족하고 연약하여
나에게 불편한 말에 반응을 합니다.
말씀을 통하여 인내 하며 침묵하기에는
참 많이 힘든 시간들이 였지만 예수님의 모습을 보자 마음에 다짐하고
기도와 말씀에 승리 하려 하는 시간에
나를 이기지 못한 내 자아는 내 건강에 신호를 보내며
기도와 말씀의 시간을 빼았아 가려 하였읍니다.

그러나 지금은 건강도 마음도 하나님이 예수님의 이름으로
승리 하게 하셨읍니다.
누구를 위한 것이 아닌 나 자신을 위 하여 오늘 말씀은
꼭 필요한 말씀이였읍니다.
감사합니다 예수님 !
승리 하여 오직 주님 한분 으로 천국에 소망을 가진 자녀로
복음을 위하여 쓰임 받는 도구가 되고 싶읍니다.
참 사랑으로 만들어 져 가는 하나님이 기뻐 하시는 자녀가
되기를 소망 합니다.

최승우

2008-03-31 21:54:02

이번주 나에게 말씀하시는 하나님의 음성을 나는 확실히 들을 수 있었다.
나의 연약한 부분을 주님께서 깨달고 고치기를 간절히 바라셨다.
나는 누명을 쓰거나 오해를 받는 일이 참 많다.
그럴 때에 나는 어떻게 하면 그 누명을 벗을 수 있을까를 노심초사 하면서 안절 부절 못하기도 하고 너무 억울해서 잠을 제대로 잘 수가 없을 때도 있었다.
막상 문제가 발생하면 어쩔 때는 그분의 십자기보다 나의 고통이 더 크다고 착각 할 때가 있다.그럴 때마다 나의 죄로 인해 죽음 당하시고 끝까지 침묵하시는 주님을 바라보기 원한다.
지금부터라도 침묵의 인내를 가지고 정말 하나님이 나에게 보여 주신 위대한 사랑에 보답하는 자가 되고 싶다.
이런 면에서 나는 어떤 사람이 너무 존경스럽다.
다른 사람에 대한 얘기를 안하신다.정말 남의 허물을 덮어 주신다.오히려 나는 다른 사람을 통해 얘기를 듣고 그분이 힘들었을텐데 아무런 말씀 없으시고 그렇게 침묵하시는 모습에 감동할 때가 많다.또 내가 누구에게 당한 일이나 하소연을 할라 하면 덮어 주고 잊어 버리라 하신다.이런 모습 속에 예수님의 형상이 담겨 있지는 않은지 생각하게 된다.
이제부터는 이런 모습을 부러워만할것이 아니라 나의 모습으로 만들어가야할 것이다.
링컨의 행동 수칙이 나를 더욱 부끄럽게 한다.
이제부터 침묵으로 인해 나를 바보취급하는 사람들이 있다면 그들을 의식하지 말고 하나님만 의식함으로 그렇게 억울할 일도 잠 못 잘 일도 없을 것이다.
그리고 그 일로 머리를 싸매고 걱정하고 나의 마음을 빼앗기지 말고 그 문제를 털어 버리고 그 힘을 하나님께 쓰는 자가 되기를 원한다.그래서 누명이 벗겨지거나 안 벗겨지거나 상관치 말고 그저 주님을 향한 열정을 품고 전도에 힘쓰고 주님을 위해 일하는 것에 내 마음을 돌린다면 그 문제의 모든 것은 주님이 결제 하실 줄 믿는다.
헛된 것에 시간을 낭비하는 자 되지 않기를 기도한다.
나는 이제부터 이런 일을 또 당하게 된다면 화장실에 가서 거울을 보고 크게 웃으면서 감사해야겠다.
그 문제만을 바라 보는 시선에서 하나님을 바라보는 것으로 시선을 하늘로 돌려 버린다면 어떤 문제도 나를 힘들게 하지 못할 것이다.
이런 해답을 머리로만 이해하고 깨달는 미련한 자가 되지 말고 바로 바로 행동으로 옮길 수 있는 자가 되게 해 달라고 하나님께 간절히 기도하고 기도한다.


탁성아

2008-03-31 22:56:21

예수님은 나 때문에 당한 어떤 억울함 앞에서도 끝까지 입을 열지 않았습니다.
살인자인 나를 지켜 줄려고 말입니다.
하나님 앞에서의 나는 패륜아보다 더 큰 죄인이고,
십자가 주님의 사랑은 이 아버지의 사랑보다 훨씬 깊고 넓습니다.

그 동안 내 마음이 너무 식어버려서
예수님의 사랑을 알면서도 모른다고 부인하고
느끼면서도 느껴지지 않는다고 거짓말 해 왔습니다 .
그랬던 제가 요즘 들어서는 왜 이렇게
예수님 생각만 하면 눈물이 나는지요 ..
너무도 죄송하고 부끄러운 마음에 고개를 차마 들 수가 없습니다 .
나의 죄를 대신하여 십자가에 못 박히신 주님의 사랑을
그 동안 왜 ,어떻게 외면하면 살아왔는지 ..
예수님께서는 얼마나 마음이 아프시고 속상하셨을까를 생각하면,,
길을 걷다가도 눈물이 멈추질 않습니다 .
동생의 잘못 때문에 부모님께 내가 혼나게 될 때면
그 작은 것도 얼마나 분하고 억울하던지 ..
그런데 예수님께서는 나 때문에 약간의 잔소리를 들으신 것도
꾸중을 들은 것도 아닌
십자가 못박혀 돌아가신 것입니다 ,..
그 은혜에 감사하고 보답하기 위해서 최선을 다하진 못할 망정
은혜를 모른척 하고 당연하게 생각해 왔던 한없이 부족한 제가
이렇게 다시 용서를 비네요 ..

예수님의 십자가의 마지막 사랑의 모습은 ‘침묵’이었다.
침묵은 사랑의 최고의 표현이다.

이번 주 설교 말씀을 듣는 내내
예수님의 침묵 사랑에 푹 빠져 헤어나올 수가 없었습니다 .
그 침묵 속에서 어찌나 그런 큰 사랑이 느껴질 수 있는지 ..
아무래도 정말 예수님은 날 많이 사랑하시는가봐요 ..
이 못난 저도 느낄 수 있을 만큼
큰 사랑도 주시고 ..
이제 제가 그 사랑에 보답할 수 있는 자가 되게 해 달라고 기도합니다 .

유광옥

2008-04-01 00:15:58

어제 설교를 은혜롭게 듣고 집으로 돌아와서 쉬고 있는데
친구에게 전화가 걸려왔다.
예전에는 많이 친해서 서로 없어서는 안될 사이 같은 그런
친구였는데 친구는 내가 교회에 나오라고 하는게 정말 싫다면서
자꾸 나를 피했고 약속을 해도 주일만 약속을 하니 내가 제대로
시간이 안나서 늘 지키지
못하는 여러가지 이유상 지금은 우리가 정말 친구 맞나 할 정도로
연락을 안하고 사는 친구로 부터 전화가 걸려와서 받아보니
오해도 아주 큰 오해로 인하여 나에게 정말인지 아닌지 확인
전화를 한 것이다. 나는 받는 순간 화가 나고 억울했지만
그 오해를 불러 일으킨 사람과 연락도 안하는 사이라
어디서 전화번호를 알아내서라도 꼭 왜 그랬느냐고
따지고 싶은 심정에 전화번호를 찾던 중에 오늘 설교 말씀이
머리를 확 스치고 지나가는 것이었다.
설교를 들을때는 나도 이제 부터 억울한 일을 당하더라도
침묵하고 예수님처럼 행동해야지 다짐 했는데 막상 억울한
누명을 쓰고 나니 바로 무너지고 있는 나를 발견하고
회개 하면서 나를 다스리고 있는데 다시 친구에게
전화가 걸려왔다. 사실은 내가 절대로 그렇게 말하지 않았을
거라고 확신했지만 왠지 확인하고 싶었고 요며칠 들은
이야기도 아니고 조금 시간이 지난 이야기 인데 오늘 문득
화가나서 전화를 했다고 고백을 했다.
그러면서 내가 자기가 아닌 또다른 그 친구와는 잘 만나는 것
같은데 자기랑은 멀어진 것 같아서 그냥 그것이 알고 싶다고 했다.
내가 만약 참지 않고 오해를 불러 일으킨 친구에게 전화를 해서
따지고 물었으면 또 다른 면에서 싸움이 나고 오해가 생길 만한
사건이 오늘 말씀으로 인하여 은혜롭게 지나가 버렸다.
오해를 받으면 그 순간은 억울하고 분하지만 침묵하고
참다보면 그리 억울하고 분한 사건도 아닌 것이 참 많은 것 같다.

Better to remain silent and be thought a fool
Than to speak out and remove all doubt.’
(오해나 누명을 벗기 위해서 열심히 해명하는 것보다
비록 바보 취급을 받더라도 침묵하는 것이 훨씬 낫다.)
이것을 지키기란 참 어려운 것 같지만 지금 부터라도
그렇게 하기 위해서 기도하고 노력하고 싶다.
그리고 남의 허물에 침묵하는 예수님의 복음에는
침묵하지 않는 나로 점점 변화하고 싶다. 그리고
그렇게 되기를 기도한다.

김헌규

2008-04-01 03:03:58

십자가의 주님은 말이 없었다. 죽음의 누명을 덮어 썼지만, 해명하는 것 대신에 그는 죽음을 택했다. 이것이 그 분의 위대함이요, 그 분의 사랑의 모습이다.
당신의 인생에 억울하고 분한 일이 있는가? 도저히 참을 수 없는 일이 있는가? 누가 당신에게 말도 안 되는 누명을 덮어 씌워서 당신을 죽이려고 하는가?
이 때, 하나님은 말씀하신다.
‘믿음의 주요 온전케 하시는 이인 예수를 바라보라.
그는 부끄러움을 마음에 두지 않으시고, 십자가를 참으셨다. 그리하여 그는 하나님 보좌 오른쪽에 앉으셨느니라.’(히12:2)
아무리 억울하고 분해도 십자가의 주님만큼 힘들겠는가? 십자가의 주님을 묵상해 보라. 그러면 낙심하여 지치는 일이 없을 것이다. 마음의 한이 눈 녹듯이 말끔히 녹아 없어질 것이다.

저는 성격상 저의 일을 누군가에게 일일히 이야기하는 성격이 아니라고 생각했었습니다.
혼자서 속으로 꿍하고 담아놓는 성격인데, 한국에서라면 혼자서 참다가 참다가 정 못참겠으면 부모님이나 형제들에게 이야기를 하겠지만, 일본에서는 누구에게 이야기할 사람도 없기에 더욱이 속으로 삭히는 경우가 많았었습니다.
그러다가 결혼을 하고서는 아내에게 이야기를 하는 경우가 생겼는데, 주일날 설교말씀을 듣는 내내 찔림이 있었습니다.
토요일날 회사에서 花見가 있었는데, 花見가 끝난 후에 회사 사장님께서 개인적으로 할 이야기가 있다고 하더니, 약간 저를 무시하는 듯한 이야기를 하였기 때문입니다.
따지고 보면 별것 아닐수도 있지만, 그것이 마음에 분함으로 사무쳐서 아내에게 이야기하고, 그러고도 분함이 풀리지 않아서 밤새 속으로 끙끙앓았기 때문에, 목사님의 설교말씀을 듣는 내내 저를 두고 하시는 하나님의 음성같아서 찔림을 받았기 때문입니다.
주일날 설교말씀을 듣고, 제자훈련을 받고, 속회를 하면서는 내내 찔림이 있었는데, 바로 집에 돌아와서부터 다시금 마음에 갈등이 일어나 흔들림이 생겼습니다.
아무리 십자가의 주님을 생각하려고 해도 이것은 주님의 십자가와는 별개의 일이라고 생각이 되는 것이었습니다.
그래도 주일이라는 이유에서 감정을 억누르고 억눌러서 참았습니다.
날이 밝아 월요일이 되었고, 회사에 출근을 했는데, 회사에서 걸려온 전화를 받자, 다시금 토요일의 일이 생각나서 감정을 다스리기가 쉽지 않았습니다.
결국에 극심한 스트레스에 호흡까지 힘들어질 정도에 이르자 도저히 이대로는 안 될 것 같다는 생각이 들어서, 바깥에 나가서 찬 바람을 쐬면 나아질까 싶어 밖에 나갔습니다.
그 때, 이번주의 제자훈련 과제물이 생각났습니다.
하루에 한번씩 하늘을 쳐다보면서 오늘이 주님의 재림이 있다는 마음으로 살아보기라는 생활숙제였는데, 하늘을 한번 쳐다보면서 오늘 주님께서 재림을 하신다는 생각을 하자, 갑자기 제 안의 분함이 우습게 느껴지는 것이었습니다.
주님께서 재림하셔서 지금의 제 모습을 보신다면 뭐라고 말씀을 하실까?
잘 하였도다 착하고 충성된 종이라고 하실까, 악하고 게으른 종이라고 하실까를 생각하자 참으로 주님 앞에서 별 것 아닌 것으로 혼자서 감정에 사로잡혔던 것들이 얼마나 회개가 되던지요…
이 한주간 십자가의 주님을 묵상하면서 모든 일에 승리할 수 있기를 기도합니다.
또 다시 감정에 사로잡히지 않으리라고는 확언할 수 없지만, 감정에 사로잡힐 때에는 십자가의 주님을 생각하면서 감정을 다스릴 수 있도록, 감정과의 싸움에서 승리할 수 있기를 소원합니다.
주님을 위해서, 세상을 이기는 믿음의 소유자가 될 수 있도록 최선을 다해야겠습니다.

서조은

2008-04-01 06:57:22

허물을 덮어 주면 사랑을 받고, 허물을 거듭 말하면 친구를 이간시킨다.’(잠17:9)
‘허물을 덮어 주는 것은 그의 영광이다.’(잠19:11)고 했다.
허물을 덮어 준다는 것은 말을 하지 않는다는 말이다. 곧 침묵을 말한다.

말을 많이 하고 난 날은 항상 후회가 밀려 옵니다.
아마 부족한 저의 모습이 말로도 나타나기 떄문인듯 합니다.

교회에서 가장 시험에 드는 것이 바로 이 말인듯 합니다.
예배가 끝나고 모여 앉아 은혜를 나누기 보다는 세상적인 말이나
누군가를 비방하는 말을 많이 하기 때문인 듯 합니다.

가장 더럽고 추한 사람이 바로 나인데...
누구를 정죄하고 누구를 탓하려고 그랬는지....
셀수없이.. 비교할 수 없이.. 많은 죄를 지은 나를
말없이 감춰주시는 예수님을 잊고 감히 제가 말을 함부로
하며 살았습니다.

바보 취급을 당하고, 억울한 누명을 당해도 예수님의 침묵을
생각하며 저도 예수님처럼 침묵할 수 있는 성숙한 믿음을
간구해 봅니다.

김수영

2008-04-01 07:26:56

믿음의 사람은 남의 허물에 대해서 말하지 말아야 한다.
남을 위해서 입을 닫아야 한다. 그래야 당신 때문에 그 사람이 안 다치기
때문이다.

이 말씀이 옳은 줄 알면서 내 마음에서는
주님! 저는 언제까지 당하고 있어야 합니까? 너무 화가 납니다.
라는 기도가 나온다.
내용을 적나라하게 쓰고 싶지만 좋은 일이 아니어서 쓸 수 는 없다
환경이 잘 하고 있는 나를 시기 하면서 나를 힘들게 하고 있다.
여기서 도피를 해야 하나 아니면 당하고만 있어야 하는지 아니면
될대로 되라는 식으로 저질러야 하는지 지혜가 생기지 않는다.
내가 할 수 있는 영역이 아닌가 보다.
이 모든 것을 성령님이 알아서 해주실거라고 믿는다.

安間チョウコ

2008-04-01 08:33:13

親の愛
親とはどんなに子供を愛するものか、自分の分身として子供に希望を持ち、期待する。出来の悪い子供なら,なおさらいとおしくかばう気持ちに溢れるだろう。親と子の関係は本当に深い。子供は親の気持ちを到底理解することが出来ず,愚かなことを繰り返している。説教の中の、신왕수씨がコミュニティで紹介された話は、まさに聖書の放蕩息子を地で行く話しであった。人間は人をかばうことで成長すると思う。神は私たち人間を限りなくかばってくださっておられる。私も人を限りなくかばうことで成長できるようになりますように神様にお祈りいたします。

신정은

2008-04-01 09:53:17

예수님의 인내와 사랑 그리고 침묵이야 말로, 인간에게 있어서 가장 어려운 과제이지 않을까 생각한다.
주일 말씀을 들으면서 100프로 찔림을 받고, 내가 먼저 인내하고 먼저 사랑하고 먼저 내 입단속부터 해야한다고 다시금 깨달았지만, 하루가 지난 오늘 이 문제의 말로 인해 죄를 또 짓고 말았다.
오늘 나는 별로 화가 날 일도 아니었는데, 친구에게 화를 표현하고 동시에 차가운 말 한마디를 던져버리고 말았다. 그런데 그렇게 말해버리고 난 순간 내 마음이 너무나 아팠다. 성령님께서 내 마음속에 예수님을 떠올리게 하셨기 때문이다.
사실 내가 친구에게 그렇게 말하고 행동하기 직전에, 나는 내 안에 예수님을 떠올렸었고, 그리고 제자훈련 숙제를 상기시켰음에도 불구하고 내 생각과 의지가 먼저 솟구쳐나와 죄를 지어버렸기 때문에 마음이 불편하고 아팠던 것이다.
그러면 안되는 것을 알면서도, 인내하지 못하고, 사랑하지 못하고, 침묵하지 못한 내 자신에게 실망하면서 결코 쉬운일이 아니라는 것을 다시한번 몸으로 체험했다.
회개하면서 말씀을 다시 한번 읽고, 예수님의 십자가의 사랑과 인내, 침묵을 묵상하면서 글을 올린다...
사실 내가 인내해야하고 침묵해야 한다는 것을 뻔히 알고는 있지만, 정작 실제로 이런 어려운 상황이 닥쳐왔을때 발휘하지 못한다. 이때 나의 말과 행동을 보면 내가 얼마나 예수님의 성품을 닮았는지 철저하게 볼 수 있다. 오늘처럼 말이다..
예수님의 이런 귀한 성품을 닮으려면 하루 이틀 노력해서 될 일이 아니다. 매일매일 말씀과 기도로 무장하고 실전에서 예수님과 같은 성품이 나올 수 있도록 매일매일 훈련이 되어야 한다.
같은 실수를 되풀이 하지 않는 제자, 예수님의 성품을 닮은 제자가 되길 간절히 소망한다.

김영희

2008-04-01 16:52:02

지난 주일은 너 다리 수술도 했고, 잘 걷지도 못하고, 또 통증도 심하니 그냥
이번 주일은 교회 나가지 말고 하루 쉬어라. 이렇게 속삭이는 사단의 유혹에
잠시 흔들리고 있었다. 갈등하고 있을때 성령님께서 이 희돈 박사님의 간증을
떠올리게 하시며 교회로 나가야 한다는 생각을 굳히게 하셨다.
예배 시간을 기다리며 잠시 쉬고 있을때 사모님이 걱정 해 주시며 안으로
들어와 앉으라고 하시는데 다리를 구브리고 의자에 앉을수가 없을것 같아
밖에서 다리를 뻗고 앉아 모니터로 예배 드리겠다고 말하고 기다리고 있을때
마치 꼭 오늘 말씀은 나를 위한 말씀으로 집중해서 들어야 한다는 예언을
주시는것 같은 느낌을 받았다. 서령님이 또 인도를 해 주신다.
맨뒤에 목사님이 잘 보이는 곳으로 택해 바닥에 두다리를 뻗고 앉았다.
목사님 말씀을 귀담아 들으면서 주님께 감사드리며 고개를 떨구고 말게 된다.
밖에서 예배를 드렸더라면 애뜻하게 설교를 하시는 목사님 말씀에 집중하지
못했을테고, 나를 위한 말씀에 깊은 참회의 홰개를 하는 시간을 가지지 못했
을거라는 생각에 감사의 감사를 거듭하지 않을수 없었다.
진심으로 주님께 사죄 드리고 용서를 구하는 기도를 속으로 드리면서 훌쩍
거리며 눈물을 머금으려 애를 썼지만 어느새 안경 밑으로 눈물이 뚝뚝
떨어지고 있었다. 내 죄를 송두리채 예수님께 덮어 쉬우고 예수님을 십자가에
못 박은 사람이 바로 나인데,내가 예수님을 죽였는데, 내가 다칠까봐 나를
보호 하시기 위해 끝까지 누명을 뒤집어쓰고 비명 한번 못지르고 입술을 꼭
깨물고 입 한번 열지 않고 죽게 한것도 부족하여 나는 또다시 예수님을 죽이
는 죄를 범하고 있었다는 사실에 변명할 여지없이 용서하소서 만을 되풀이
하며 소리라도 떠나가라 크게 지르고 싶었던 심정을 가라앉히며 조용히 훌쩍
일수 밖에 없었다.
사역훈련 보충을 들어가기 위해 교회에서 기다리려니 시간이 너무 많은것
같아 집으로 와서 잠시 쉬고 나가려고 들어와 교회 홈피를 열게 된다.
쪽지가 왔다고 확인하라는 순간 읽어보고 싶지 않았지만 누군가 궁금증에
읽게된다. 으아아악 끈질긴 귀신아!!! 제발 나를 좀 가만 내버려둬 주렴,하고
집이 떠나가라 소리를 쳤다. 받은 은혜와 회개한 기도가 다 헛사가 되고 말았
다는 생각에 억울하고 분해서 견딜수가 없었다. 다 참을수 있지만 협박은
못 참겠다. 두번 다시 내게 쪽지 보내지 말라는 경고로 답변을 보내면서 내가
또 예수님을 죽이는 범죄자가 되고 말았구나.그 사이를 참지 못하고,
침묵하지 못하고,

'아무리 억울해도 주님만큼 힘들겠는가'?
인내,인내,인내,인내하자.십자가의 주님의 사랑을 매일 묵상하며 인내하자.
나는 주님께 물려받은 왕 노릇을 해야하는 제사장이 되어야 한다.
그 영광을 하나님께 돌려 드려야 한다.
주님 ! 허망한 곳 에 에너지를 소비하지 말게 하시고,
주님의 사랑의 십자가를 전하는 전도에 전에너지를 쏱아붓는 능력을 주소서,

홍은미

2008-04-02 00:23:09

우리는 바로 이 사랑을 받은 사람들입니다. 이 사랑을 깨달아야 합니다.
아버지가 끝까지 입을 닫고 있었던 것은, 자신을 위해서가 아니라, 자식을 위해서 였습니다. 이것이 바로 십자가의 사랑입니다. 나는 그 분을 칼로 찔렀는데, 그 분은 오히려 내가 다칠까 봐, 혹시 누군가 눈치 챌까 봐 비명 한번 못 지르고 입술을 꼭 깨물고 죽으셨습니다. 그 분이 입을 열면 범인이 금방 밝혀지기 때문입니다. 내 죄가 금방 쏟아져 나오기 때문입니다. 그래서 그 분은 입을 열 수가 없었던 것입니다.
그 분은 우리 때문에 끝까지 입을 열지 않았습니다. 패륜아의 아버지처럼

사람들에게는 차분하고 얌전하게 보인다는 말을 자주 듣곤 하지만 나는 반대로 덜렁대고 감정을 속이지 못해 흥분하거나 하면 그 자리에서 바로 터트려버린다.
특히, 내가 딱히 해를 끼치지 않은 사람으로부터 부당한 대우를 받거나 나쁜 말을 듣거나 하면 받은 상처보다도 더 크게 상처를 내 반 야수로 돌변해버리곤 한다.
이런 걸 사람들은 마음이 여리다고 말해주지만....
어쩌면 그동안 예수님께서 나를 위해 십자가를 져 주신 걸 당연한 것으로 받아들여왔었는지도 모른다는 생각이 들었다. 만약 내 아버지가 내가 찌른 칼에 돌아가셨고 끝까지 내가 죄인이라고 말씀하시지 않으시고 그 죄를 다 뒤집어 쓰셨다면 나는 그 아버지를 생각할 때마다 눈물을 흘리며 반성하고 감사해야하는 건데...
매일 보는 십자가앞에서 아무 느낌없이 멍했던 내 모습은 과연 뭘까!
목사님께서 말씀하신 그 기사를 인터넷에서 보았을 때는 아버지 사랑을 생각하기에 앞서 '뭐 이런 자식이 다 있나!'라고 생각했었는데... 참 그게 내 모습이었다니...
목사님께서 판결문을 읽어주실 때는 정말 마음이 울컥해 참을 수가 없었다. 그런데 참 이게 현실에서 일이 생기면 예수님처럼 침묵하지 못하고 내가 억울한 것을 모조리 말해야 속이 시원함을 느낀다. 해결되는 것은 하나도 없는데...
남친의 형의 결혼식, 청첩장도 받지 못한 울 엄마는 금식 3일째라 힘드신데도 불구하고 축의금을 들고 일부러 가서 축하인사까지 하셨다는데... 도대체 남친의 엄마는 뭐가 그리 불만이신지..울 엄마한테는 내색은 안 하셨겠지만 남자 친구에게는 또 안 좋은 말만 하셨던 것 같다... 순간 ' 이렇게 돌처럼 딱딱한 분을 내가 정말 어디까지 노력해야하나..! '시간낭비 아닐까' '다 포기하자'라는 생각에 남자친구에게 '어차피 너희 어머니가 그런 마음이시면 우리집이랑 상관없으니 우리 엄마가 낸 축의금 돌려 달라고..'해 버리고 말았다. 물론 목사님이 하신 설교와 제자 훈련 때 받은 모든 것들이 내 머리속에 있었지만 마음으론 참을 수가 없었다. '아! 왜 내가 이런 일로 자꾸만 무너지는건지....' '정말 하나님의 뜻이 아닌 사람을 만난건가'라는 생각이 들기 시작했다. '속 시원히 하나님께서 말씀해 주시면 좋을텐데..'
예수님은 어떻게 이 모든 걸 침묵하셨는지.... 하나님 침묵할 수 있게 해 주세요.

최수진

2008-04-02 02:10:54

평소에 감정의 변화가 잦은 나는 금새 우울해지곤 한다
나는 그것을 참지 못하고 혼자 견디지 못하고 금방 누군가에게 전화를 하거나 해서 내 마음을 알아주길 바라곤한다
그렇게 이야기를 하고 나면 후련하기도 하지만
마음 한 구석에는 내가 뭘 한 건가 라는 생각이 들기도 한다
더 많이 침묵하라는 하나님의 말씀인것 같다
말을 많이 하는 건 나를 너무 많이 드러내는 것 같다
계속 나를 많이 드러내는 것에 대해 후회가 많았다
사람에게 의지하는게 아니라 하나님께 더 의지해야지...

어제 조금 속이 상한 일이 있었다
사촌 동생이 일본에 왔다. 1년간 홍근이랑 같이 살게 되었다
홍근이도 내 동생이고 어제 온 사촌동생도 내 동생이지만
아무래도 홍근이는 친동생이라서 그런지 대하는 기분이 다르다
홍근이가 그 아이 때문에 힘들어 질 것 같다는 생각이 들어서 마음이 계속 편하지 않았다 그 아이에게 살갑게 대하지 못했다
그리고는 너무 속상해서 친구들한테 막 말을 해버렸다
홍근이한테도 짜증을 내 버렸다
설교를 들었을때는 침묵해야하는데 알고 있었으면서 왜 그렇게 못했는지...
더 침묵해야지 그리고 미워하지 말아야지

인선정

2008-04-02 05:57:56

고난주간에 틀어주신 패션오브크라이스라는 영화를 보면, 영화 곳곳에 악마가 예수님을 십자가 못지게 유혹하는 장면이 나옵니다. 예수님께서 십자가에 매달려 돌아가시기 전에 로마병사들에게 가혹한 태형을 당합니다. 영화에서 예수님을 담당하던 장교가 그의 부하에게 명령을 하는데, 가볍게? 때리는 정도로 지시했는데, 그들의 부하들은 어처구니 없게 짧은 시간 안에 예수님을 피투성이로 만듭니다. 다시 돌아온 장교는 물론이고, 빌라도 총독도 피투성이가 된 예수님을 보고 당황하는 장면이 나옵니다. 빌라도 입장에서 상상해 보면, 당시 예수님은 흉악범도 아니고, 반란을 일으키는 정치범도 아님은 물론 로마의 특정한 법을 어겨서 기소된 것이 아니라, 로마가 통치하는 식민지 영토내에 식민지인들 사이의 독특한 종교의 한 내부분쟁에 연유해서, 식민지인들이 기소한 것인데... 상황이 터무니 없고, 억지로 죄를 만들고 있는 좀 어처구니 없는 상황이었는데... 자신의 병사들이 이 죄없는! 식민지인을 아무런 원한이 없음에도 너무 가혹하게 처벌했으니 얼마나 당황스럽.. 자신이 뭔가 잘못한거 같고... 그 괴로운 상황을 빨리 벗어나고 싶은 마음 뿐이라는 상상을 했습니다.(그는 정말로 빨리 재사장과 무리들과 합의하고 얼릉 손딱고 도망치더군요 -_-;; ) 영화에서도 끔찍한 태형을 받으시는 예수님께서는 이사야서의 예언처럼 아무 말씀이 없으셨습니다. 그런데, 성경에는 나와 있지 않지만, 그 영화에서는 그 끔찍한 태형을 받는 가운데, 악마가 태형장을 배회합니다. 악마가 병사들이 좀더 잔인해 지도록 유혹하고, 예수님이 십자가를 포기하도록 유혹하는 것을 상징한다고 생각합니다. 예수님께서 당하신 그 고통의 한가운데 저의 죄가 있음 고백합니다.
주님의 은총으로 인해 아직까지 살면서 누명을 쓰거나 억울한 일을 당하거나, 남들 입에 오르내리는 스켄들의 한가운데 있어본 경험은 없습니다. 하지만, 저의 벗들이, 저의 가족이 저의 심각한 허물들!!!!!을 침묵으로 감싸 준 경험은 수차례 있습니다. 마치 예수님처럼요. 그럼에도 불구하고, 생각해보면, 남을 용서하거나 허물을 덮어주는 것에 제가 얼마나 인색하지... 타인의 허물을 훤히 잘 보이게 얼마나 까발리고 다녔는지 부끄럽습니다. 예수님의 닮는다는 것은 타인의 잘못을 안타까워하는 마음, 즉 그를 위해 기도하는 마음이라는 것을 알게 되었습니다. 그리고 그것은 자신의 "정의"가 죽고, 예수님의 사랑이 자신을 채우는 과정이라는 생각을 하게 되었습니다. 따뜻하게 사랑으로 감싸주고, 내 허물이 누구의 잘못보다 크다는 것을 알고 기도하는 하나님의 자녀가 되고 싶습니다.

김명화

2008-04-02 08:37:30

‘사랑은 모든 허물을 덮어 준다.’(잠10:12)

‘허물을 덮어 주면 사랑을 받고, 허물을 거듭 말하면 친구를 이간시킨다.’(잠17:9)

허물을 덮어 주는 것은 그의 영광이다.’(잠19:11)고 했다.


나는 룸 메들과 삶의 방식 생활 습관이 다 다릅니다.
그래서 많은 때에는 입이 간지러워서 말이 목에까지 가득 차 올라왔지만
그 같은 일들을 참느라고 참 많이 힘들었든 시간들이 있었습니다.
나는 비로서 제자훈련을 받으면서 나에게는 인내가 제일 급성 무라는 것을 … …
동생들과 같이 살면서 내가 해결하지 못했든 이런 부분들을 결국은
피해가지 못하고
주님께서는 또 다시 기회를 주시면서 나로 하여금 이겨내길 원하셔서
동생들과 똑 같은 성격의 소유자를 나의 룸 메로 붙여주신 것을 감사하고
나는 이런 나와의 다른 사람들을 이겨나가기 위해서 침묵을 깨달았다.
비로서 나는 이제 서야
“내가 말이 없으면 없을수록 사랑의 십자가는 커지지만,
말이 많으면 많을수록 사랑의 십자가는 초라해진다.”
나에게는 침묵을 통해 인내를 가르쳐 주시고자 하시는
주님의 깊은 뜻을 깨 닿게 되어서 얼마나 감사한지요!
나의 주님 나의 목자 나의 길을 예비해주시는 주님께 영광 돌리기 원합니다.

김선아

2008-04-02 08:52:29

평범한 사람들은 자신의 죄에 대해서는 감추려고 하고, 남의 허물에 대해서는 나팔을 불려고 하지만,
위대한 사람은 자신의 죄에 대해서는 정직하려 하고, 남에 허물에 대해서는 침묵하려고 한다.
위대한 인물이 될 사람은 남의 허물에 대해서 말이 없다.

'침묵하라'는 이번주 말씀에 너무나 찔림을 받았다.
나는 평상시 누군가 나에 대해 오해를 하고 있는 거 같으면 당사자에겐 말은 못해도 다른사람에게 나의 억울한 것을 이야기해서 위로를 받고싶어하는 마음이 강하다. 그렇게 이야기를 하다보면 나의 억울한 이야기만 하다보니 객관적으로 전달하지 못할 때도 종종있다...;;;
또 하나 요즘 느끼는 것은 사람들과 대화를 하다보면 이야기를 하고 있는 나와 상대방의 둘의 이야기가 아닌 제삼자의 이야기를 많이 하게 된다. 그러다 어느새 그사람의 잘못된 점을 이야기할 때가 많다.
진짜 죄인은 나이고 나 또한 고칠점이 너무나 많은데.... 내 자신을 보지못한 채 다른사람의 허물만 보고 정죄 했던점에 반성한다..
이번주 말씀을 통해 나의 부족한 점을 다시 알게되었다.
예수님의 작은제자가 되기위해 더욱 노력해야겠다.

전수희

2008-04-02 09:19:34

아무리 억울하고 분해도 십자가의 주님만큼 힘들겠는가? 십자가의 주님을 묵상해 보라. 그러면 낙심하여 지치는 일이 없을 것이다. 마음의 한이 눈 녹듯이 말끔히 녹아 없어질 것이다. 십자가의 인내 뒤의 왕노릇함의 영광이 반드시 반드시 반드시 당신을 기다리고 있기 때문이다.

엄마의 사랑으로 산 아이라는 생각이 있어서인지 즐거운 일이든 슬픈 일이든 무슨 일이든지 쪼르르 달려가 모든 하루의 일과를 엄마에게 쫑알쫑알 떠들어 대곤 했다. 어렸을 적 친구들과 다투거나 신경질 나는 일을 당해서 혼자 분을 삭이지 못하면 나의 가장 든든한 사람은 엄마는 언제나 나의 수다 대상이 되어주시곤 했다. 즐거운 일이나 기쁜 일은 맞장구를 쳐주시며 함께 기뻐해주셨지만 친구들의 험담을 하거나 분을 삭이지 못해 씩씩거릴 때 돌아오는 대답은 언제나 “너가 참아야하는거야”였다. 그럼 울면서 소리를 지르곤 했다. 그래도 학교에서 친구들과 다투거나 친구들의 신경질 풀이 대상이 되면 언제 말도 못하고 참아버리곤 했다. 그게 당연하다는 듯이… 아무 말도 하지 못하고… 하지 말고 참으라 했기에 울기만 했다. 그래서 초등학교 때 얻는 나의 유일한 별명은 울보였다.
그런데 대학을 졸업하고 일본에 와서 생활을 하면서 근 몇 년 만에 변했다. 많이 변했다. 현장에서 함께 일하다 보면 사람들이 하는 일들이기에 일이 터지곤 한다. 그럼 말없이 참고 있는 사람이 대부분 뒤집어 쓰는 일이 많다. 앞뒤 없이 너가 잘못했으니 참던지 나가라는 반응을 보이는 때가 많다. 그래서 말도 많아지고 잘못될 것 같으면 따지고 나의 잘못이 있어도 그들과 대화를 하면서 나의 입장을 합당화 시키고 나의 잘못 만이 아니라는 것을 그들에게 인식시키기에 바빠졌다.
예수님의 제자로써의 삶을 살겠다고 배우고 있는 사람이 예수님의 침묵보다 잇속을 차리는 사람의 삶을 더 많이 닮아 있는 모습에서 스스로에게 안타까움이 느껴졌다.
예수님의 그 침묵의 영광을 좀 더 배우고 따라야겠다. 바로 내일이 예수님의 재림의 날이라는 생각으로 오늘도 침묵을 배우며 살아야겠다.

신왕수

2008-04-02 11:09:44

"하나님 앞에서의 나는 패륜아보다 더 큰 죄인이고, 십자가 주님의 사랑은 이 아버지의 사랑보다 훨씬 깊고 넓습니다. 우리는 바로 이 사랑을 받은 사람들입니다. 이 사랑을 깨달아야 합니다. 아버지가 끝까지 입을 닫고 있었던 것은, 자신을 위해서가 아니라, 자식을 위해서 였습니다. 이것이 바로 십자가의 사랑입니다. 나는 그 분을 칼로 찔렀는데, 그 분은 오히려 내가 다칠까 봐, 혹시 누군가 눈치 챌까 봐 비명 한번 못 지르고 입술을 꼭 깨물고 죽으셨습니다. 그 분이 입을 열면 범인이 금방 밝혀지기 때문입니다. 내 죄가 금방 쏟아져 나오기 때문입니다. 그래서 그 분은 입을 열 수가 없었던 것입니다.그 분은 우리 때문에 끝까지 입을 열지 않았습니다. 패륜아의 아버지처럼."
⇒ 우선 처음 이 부분을 접했을 때에는 반발감이 생기지 않은 점이 신기했다. 예전같으면 '패륜아까지는 아닐텐데...'라는 생각이 앞섰지만 이번에는 정말 '차라리 패륜아 정도면 다행이지...' 라는 생각이 들었다. 나의 구세주이신 예수님! 그 분은 자신이 억울하게 죽어가는 상황에서조차 나를 위해서 입을 굳게 닫으신 분이시다. 스파이 영화를 보면, 포로로 잡힌 사람을 고문을 한다. 입을 열게 하려고 고통을 줄 뿐이고, 대게의 경우(영화의 주인공이 아닌 이상 )에서 자신의 안위를 위해서 말해서는 안되는 기밀을 말해버린다. 우리 주님은 그보다 더 큰 고통, 십자가에서의 육적인 고통 뿐만이 아닌 모욕을 당해가면서도 나때문에 돌아가셨다는 사실을 깨달아서인지 '패륜아'라는 단어에 오히려 부끄러웠다.

"평범한 사람들은 자신의 죄에 대해서는 감추려고 하고, 남의 허물에 대해서는 나팔을 불려고 하지만, 위대한 사람은 자신의 죄에 대해서는 정직하려 하고, 남에 허물에 대해서는 침묵하려고 한다. 위대한 인물이 될 사람은 남의 허물에 대해서 말이 없다. ‘remain silent’ 험담은 상처를 남기지만, 침묵은 영광을 남긴다."
⇒ 어느 때인가 부터인지 나는 말을 많이 하게 되는 위치에 서게 되었다. 더불어서 역시 많은 여러사람으로부터 많은 말을 들어야하는 위치에 있게 되었다. 예전, 내가 스스로 말은 적게하고 적은 특정사람으로부터 적은 말을 들었을 때도 있었다. 확실히 내가 하는 말에 대해서는 잘했는지 어쨌는지 아직은 잘 모르겠다. 많은 말을 하게 되면서 분명히 실수도 있었을 것이다. 그부분에 대해서는 항상 회개 기도를 하고 있다. 내가 알고 내뱉은 잘못된 말, 실수로 내뱉은 잘못된 말, 그리고 모르고 내뱉은 잘못된 말에 대한 회개기도이다. 하지만, 요즘 나는 많은 사람으로부터 듣게 되는 많은 말들에서 '험담은 상처를 남기지만, 침묵은 영광을 남긴다' 라는 말이 깨달아졌다. 지금 내가 많은 사람으로부터 많이 듣게 되면서 시험에 들어 상당히 힘들어 하고 있는 것은 사실이다. 그렇지만 앞으로 나는 예수님의 사랑의 최대 표현인 침묵을 사용함으로써 사랑으로 덮어나가고 싶다. 왜냐하면 『나의 삶의 목적은 사랑을 실천하는 것이다.』가 나의 삶의 목전 선언이기 때문이다. 아직 믿음이 많이 연약하여 성경의 모든 것을 그대로 지켜내지 못하고 있다. 우선, 그리스도의 장성한 분량의 첫 단계로 사랑을 실천하자!!

최홍근`

2008-04-02 16:07:26

이번 주는 나에 마음 가짐에 반성 하게 되는 일주일이었다.
제자 훈련 시간에 십일조에 관한 한 훈련생의 간증을 들었었는데, 그 때 나는 속으로 나도 십일조를 잘 내고 있는데... 라고 생각했었다.
그리고 나서 어제 ..
아르바이트를 가서 일을 하고 있는데 갑자기 점장이 말을 걸어왔다.
내용은 교통비에 관한 것이였다. 지금 내가 일하는 곳은 학교까지 가는 정기권안에 있기 때문에 교통비가 않나오는데.. 어제 갑자기 3월 중순부터는 교통비를 준다는 이야기가 나왔다. 순간 나는 하나님께 어찌나 죄송하던지 나의 생각에 반성하게 되었다. 언제나 물질적으로 하나님께 부족한 없이 받아왔건만 나의 욕심은 그것에 만족하지 않고 끊임없이 하나님께 요구해왔다. 앞으로는 물질적인 요구가 아니라 하나님과의 관계가 더 가까와질 수 있도록 기도하겠다.

이정미

2008-04-02 20:17:40

침묵은 자기를 위해서 묵비권 행사하는것이 아니다.
침묵은 남을 위해서 그 사람의 허물을 말하지 않는 것이다.
사랑은 모든 허물을 덮어준다 (잠10:12)

내가 아무리 힘들고 어려운 상황일찌라도 십자가의 고통속에서
끝까지 침묵하시는 예수님의 모습에 비교할수 있겠는가...
사람들이 사는곳에서 어느곳이나 말때문에 어려움은 있는것 같다.
이번주 설교 말씀이 나의 눈에 확 들어오는 말씀이
내가 말이 없으면 없을수록 사랑의 십자가는 커지지만 말이 많으면 많을수록
사랑의 십자가는 초라해진다 .
정말 아멘입니다.
그동안 못다한 얘기를 하면서 서로 대화속의 조그마한 오해가 간혹
상황을 불편 하게도 하지만...? 늘 긍정적으로 상대방의 입장에서 이해하려고
노력하고 또 가능한한 침묵 또 침묵이 최고의 약인것 같다.
시간은 모든것을 해결해 주는것은 본다.
침묵은 십자가 사랑의 완성이다.
그리고 내가 가장 좋아하는 방법인 오늘의 말씀 침묵이다.
침묵많큼 큰 효과를 본것이 없다.
허물을 덮어주는것은 그의 영광이다.(잠 19:11)


황미

2008-04-03 01:56:36

한국에 온 지 오개월이 다 되어 간다.
많은 일 들을 경험 하면서 많은 것 들을 잃으면서 아파 했고
많은 것들을 깨달고 내 뜻 대로 인생이 되지 않음을 또 깨달고,
오직 우리 예수님께만 의지 하며 날마다 은혜 가운데 살아 간다.
나를 버리자!..........늘 내가 문제이닌까
얼마전에 있었던 일 이다.
한국에 오면 내가 자주 찿아 뵈는 목사님이 계신다.
전주에 개척을 하셔서 밤 10시 부터 기도 모임이 있다.
여러가지 부족하니 주님께 합심하여 기도하는 시간이다.
우리 부부는 교통이 불편하여 교회에서 자고, 먹고, 청소도 하고......
차량 봉사도 하며 지냈는데 무엇이 잘못인지 알 수 없이 "박전도사님"께
서 우리를 피하며 쳐다보는 눈이 예사롭지 않았다. 우리 부부는 기분이
좋을리 없었다.
남편은 "무시한다, 우리를" 하며 전도사가 "왜 저러냐!" 하며 이해를 못했다.
아직은 자기 표현을 하는 편이라 가끔은 나도 감당이 안될 때 가 있지만 나
역시 이 번 일은 속이 상했다. 하지만 이해가 안 될 때에는 "침묵"이 최고다.
그러면서 기도 했었다.
주님은 아시죠! 인간 관계에 아픔이 많던 우리 부부는 서로를 위로하며
달래며지내었다.
그런데 박전도사가 "미안 합니다 집사님" 하며 사과를 했다는 것이다.
박전도사님도 자신과의 싸움에서 승리 하신 듯 하다.
오늘 그 소식을 접하고 하나님께 감사 드렸다. 그래 ! 내가 침묵 하기를
잘 했다.
주일 설교 말씀이 생각 나 지금 이시간 리플을 단다.
옛 것 은 다 버리고 오직 주님의 사랑을 닮는 내가 되었음, 힘이 들때면
주님의 십자가를 묵상하며 나를 이기는 하나님의 "귀한 딸"이고 싶다.

이지영

2008-04-03 16:16:03

십자가의 주님은 말이 없었다. 죽음의 누명을 덮어 썼지만, 해명하는 것 대신에 그는 죽음을 택했다. 이것이 그 분의 위대함이요, 그 분의 사랑의 모습이다.

사람들은 예수님께 해명하기를 바랬다...
하지만, 예수님이 말해보았던들.., 그들은 들었을까..
오히려 침묵이 가장 힘있는 방법이기에 예수님은 그것을 선택하신것이다.

누구나, 오해나..억울한일들을 말로인해 당하는경우가 많다.
누가 너에게 이러이러 말하더라..라고 말을전해받는경우도 많다.
물론,,나도 사람이기에 위의 일들을 경험한적도 있고,
마음아픈경우도 많았지만..
따지고 싶고, 화내고 싶은마음들도 있었지만...
분한마음과 동시에 생각나는 마음은...
나도 예전에 말로 사람들을 많이 아프게 하지 않았는가..
지금도, 말로 상처를 안주려고 노력하지만, 나도 모르게..
아니면,알면서도, 아직도 말로 상처를 주지 않는가..

하나님이 날 용서하시고,사랑으로 날 용서해준 사람들이 있기에,
나도 그들을 용서하고, 상처를 준이들을 위해 축복의 기도를 드릴 수밖에 없다.
나에대해 여전히 비판과 정죄의 말을 한다한들
나는 침묵과 사랑을 가지고 그들을 받아들일 수 밖에 없다..
같이 정죄해..라는 유혹이 올때도 있지만..
나에게는 그 유혹보다 더 큰 능력되신 성령님이 계시기에,
침묵을 가지고, 기쁨과 마음의 평안을 가질 수 있음을 믿는다.

그리고,무엇보다..침묵하고,,사랑할 수 밖에 없는 가장 큰이유는..
하나님이 나에게 원하시는것이...바로...사랑하라..라는 말씀이기때문이다.
아주 간단하다..사랑하라..
이것저것따지지말고, 사랑하면 된다. ..

판단기준을 사람에게 둔다면, 억울해서 해명하고,,심하면, 재판까지 가고싶지만..

하나님께 판단기준을 둔다면,,
하나님께서 사람을 판단하시기때문에, 하나님께 모든것을 맡기고,
하나님이 원하시는 방법으로, 단지, 침묵하고..사랑하면 된다...

한영진

2008-04-04 07:36:31

겉으론 계속 눈물만 흘렸었지만 실제 마음으론 예배 시간 내내 통곡했다.
주님께 너무나 부끄러워서, 너무나 후회되어서……

‘왜 하필 나’이냐고, 난 이렇게나 억울하다고
만민에게 떠들어댄 내가 심히, 아주 심히 주님께 부끄러웠다.
단 한 사람에게든, 단 몇 사람에게든
나 억울하다고 말했으면 그건 세상 만민에게 떠든 것과 다름 없다는
깨우침과 함께 자신이 더없이 교활하다고 느껴져 통곡할 수 밖에 없었다.
그리고 그 와중에서도 가장 크게 내 마음을 친 것은
‘이렇게나 나를 사랑하시는 주님’이였다.
어떤 죄인보다 가장 큰 죄인인 나를 위해
기꺼이 십자가에서 온 몸으로 대신 형벌을 당하시면서
행여 내가 다칠까, 절대로 입을 열지 않으신 주님의 크신 사랑이
몸서리가 처질 만큼 큰 힘으로 나를 강타했던 것이다.
그 사랑을 입은 나는 도대체 지금 무엇을 하고 있다는 말인가….
이번 주일에 바로 이 말씀을 직접 내게 주신 것도
나를 사랑하심을 보여주시는 큰 증거라고 깨닫고
그것 또한 너무나 감사해서 더욱 눈물이 났다.
그 사랑이 너무나 크기에 자신이 한 없이 작고 부끄러웠다…..

자꾸 그쪽으로만 달리는 생각과 마음을 엎드려 아뢰고 인도하심을 구했을 때
성령님께선 그 문제를 이제 그만 내려놓고 전도에 힘을 쓰라는 응답을
여러 방면으로 보여 주셨다.
하필? 이 시기에 시작된 전도대회가 그렇고, 받는 말씀마다 그것을 요구하고,
진행되는 훈련 과정이 정확히 내 생활과 사건들과 맞물려
진정으로 성장을 원한다면 배움으로 그치지 말고
그것을 적용하고 실천할 것을 계속해서 말씀해 주셨다.
너무나 죄송하고 부끄러운 가운데
그래도 인도하심대로 따르려 노력하고 있다는
미약한 변명을 주님께 말씀 드리며,
두고 보세요, 저 더 잘 할께요, 앞으론 아무리 억울해도 무조건 침묵하고,
복음을 전하는 일에 더욱 최선을 다 할께요, 약속 드렸다.

월요일 낮에 잠깐 시간을 내어 구청에 갔던 일이 떠오른다.
이사한지 한 달이 다 되어 가지만 시간이 없어
주소변경도 못하고 있었던 것을 이제 겨우 하게 된 것이다.
비가와서 자전거는 못타고, 걸어도 되는 거리지만 나는 요즘 가까운 거리는
일부러 택시타는 것을 즐긴다.
전해 주는 전도지를 되돌려 받는 아픔을 겪지 않아도 되는
아주 좋은 전도의 기회가 주어지기 때문이다.
기다리며 기도하고, 타고 나서 기도하고,
내릴 때 “당신을 축복합니다. 이것을 꼭 읽어 보세요.”말하고 전해주고 내린 뒤
멀어져가는 택시를 보며 다시 기도한다.
구청에 도착하니, 이게 왠일인가? 외국인 등록 창구 앞에
엄청나게 많은 사람들이 줄 서 있었다.
그러고 보니 4월 학기가 시작되었구나….
두시간에서 세시간은 기다려야 한다는 팻말을 보고 다음에 다시 올까,
잠시 망설이는데 따로 교회에 모여 노방 전도에 참가하지 못하는 내게
주님께서 아주 좋은 전도의 기회를 주신 것이라는 깨달음이 왔다.
마침 한국어를 하는 담당자도 없어서 통역도 해주고 하면서
가지고 있던 전도지를 전부 다 전해 줄 수 있었다.
아니, 한 장은 남겨 두었다가 의료보험 창구 분에게 전해 주었다.
슬쩍 뒤돌아 보니 그 분이 책상 위의 전도지를 읽고 있어서
얼마나 감사했던지….
요즘 나는 매일 전도지를 접는다.
전해 줄 사람은 아직도 주변에 너무 많기만 한 것이
또한 내게 큰 축복이라는 사실에 새삼 감사하다.

조정현

2008-04-04 08:19:01

..........믿음의 사람은 남의 허물에 대해서 말을 하지 말아야 한다. 남을 위해서 입을 닫아야 한다. 그래야 당신 때문에 그 사람이 안 다치기 때문이다. 침묵은 죄인을 보호해 주는 최고의 방패막이다.내가 말이 없으면 없을수록 사랑의 십자가는 커지지만, 말이 많으면 많을수록 사랑의 십자가는 초라해진다.........

모든 생명있는것이 죽기전에는 발악을 하지만 양만큼은 그렇지 않다는 이야기를 들은적이 있다. 그래서 성경에서 하나님께서는 예수님을 양으로 표현하셨다는것이다. 이 세상에서 아무리 억울한 사람이 있어도 예수님만큼 억울한 죽음을 맞이한 사람이 있을까? 그런데 그렇게 억울한 죽음 앞에서도 예수님은 죽임당하는 어린양처럼 아무런 말이 없으셨다. 비교도 할수 없겠지만 나 같으면 아마 발악을 했을것이다. 내가 아니라고 죽어야 할 사람은 내가 아니라고 억울하다고 세상에 들리게끔 난리를 쳤을것이다. 이제까지 나의 삶도 그러했다. 조금만 내가 억울하다고 생각되면 누군가 나를 알아줄 사람을 찾았고 내게 억울한 일을 당하게 한 사람에게 은근히 뒤통수를 칠 복수극을 상상했다. 그런데 예수님은 이런 내가 다칠까봐 그 죽음을 맞이하는 자리에서도 나를 위해 침묵을 지키셨다...많은 사랑의 표현중 하나로 침묵을 선택하신 나의 예수님...많은 사람의 말을 듣고 또 많은 사람에게 말을 하게 되는 자리에 있는 나에게 동일한 표현(침묵)으로 사랑을 표현하라고 우리주님이 말씀하시는것 같다. 나의 말의 많음으로 죽음으로 감당하신 그 십자가를 초라하게 할수는 없다..
"험담은 상처를 남기지만, 침묵은 영광을 남긴다." 교회안에서는 더더욱 그러함을 절실히 느낀다. 누군가의 험담을 침묵으로 덮을때 모든 문제들이 잠잠해짐을 너무 많이 경험했다. 그것이 바로 예수님의 사랑의 표현 방법이었기 때문이었음을 다시 깨닫는 시간이다...




박재훈

2008-04-04 09:22:54

침묵...
내 죄때문에 굳게 입을 닫아주신 예수님.
전율이 일 정도로 커다란 것을 받은 죄덩어리 나는,
목숨을 구해받은 것도 잊은 채 다른 불평을 하고 산다.
주님 앞에선 먼지도 안되는 게 왜 세상에선 기세등등하려고 하는지.

누구든 편하게 대해주려는 내 성격 탓에
가끔 어이없이 나를 막 대하려는 인간님들이 있다.
허허 웃으면서 너 좋은대로 해도 난 괜찮아라고 하기도 하지만
자기들 맘대로 나를 움직이려는 그들 때문에
내 속의 휴화산은 금새 활화산이 되어버린다.

누군가 내 맘을 알아주기라도 하면 다시 화산은 멈추니까
허물없이 털어놓기 좋은 사람들에게
내가 당한 어이 없음을 펼쳐놓는다.
침묵에 대한 설교에 감동하여놓고서도
이번 주에도 몇 건의 털어놓기는 치뤄졌다.
못났다. 진짜 못 참겠는 거다.
주님 당하신 그 억울함에 비하면 정말 비할 수 없는 건데
날 이용하는, 함부로 말하는 상대방에게
그냥 죄다 내어주는 게 나는 매번 참을 수 없는 것이다.
내가 침묵함으로 주님의 마음을 헤아려볼 수 있다면
때로는 기꺼이 침묵하자.
침묵을 연습하자. 주님을 닮아가도록.

김태웅

2008-04-04 09:27:13

침묵은 자기를 위해서 묵비권을 행사하는 것이 아니다. 침묵은 남을 위해서 그 사람의 허물을 말하지 않는 것이다.

침묵이라는 것은 요즘 시대에 너무나도 어려운 능력인거 같다. 나 역시도 침묵이란.. ^^
남의 허물을 하나라도 더 지적해서 자기 위치를 높이려는 것이 지금 세상의 모습이 아닐까 한다.
그 세상 모습중에 하나가 나이기도 할 것이다. 그러나 침묵을 지키지않고 남의 허물을 가지고 그 사람에게
고통을 준다면 나중에는 나의 허물을 가지고 다른 사람이 나의 허물을 가지고 입에 오르내릴 것이다.
요즘 나의 주변의 모습중에 사람들이 모이면 이런저런 이야기를 나누는 중에도 역시 어떤 한사람의 허물을 가지고
대화의 주제가 되어지는것을 흔히 볼 수가있다. 어느덧 나도 그 대화중에 참여하여 같이 즐거워하며 대화를
나눈 기억이 떠로른다. 잘못된 행동임을 알면서도...

나 자신에게 정말로 필요한것중 하나가 침묵을 알고있다.
가끔 생각보다 입이 먼저 열리는 태웅이 조심해야 하는것을 알면서도 실천을 못하는 어려움이 가슴만 아프다.
요번주 설교 말씀을 마음에 두며 작심3일이라도 생활을 해보도록 하겠다.

사랑은 모든 허물을 덮어 준다.’(잠10:12)
사랑하면 할수록 허물에 대해서는 말이 없어진다.
사람 사이에 허물이 벽이 된다면 그건 사랑이 아니다.
사랑을 하게되면 사랑하는 사람의 허물이 보이지 않는것이 아니고 그 허물을 나누는 것이 아닐까..

전한나

2008-04-04 09:27:39

아이들은 대부분 이런행동을 많이 한다.
예를 들어 동생과 장난을 치면서 놀다가 컵에 물을 쏱으면 본인이 했는데도 엄마한테 혼이 날까봐 동생이 했다고 하는 경우가 있다.
아니면 본인이 쏱았다고 정직하게 말하는 경우도 있을것이다.
하지만 동생이 물을 쏱아 놓고서는 엄마 형이 이렇게 했어요 하면서 누명을 씌운다면 가만히 있을 형은 아마도 없을 것이다.
아마 아이들 이니깐 그럴것이다.
하지만 지금 우리가 아니 내가 그런 일들을 당한다면 내가 왜 누명을 하면서 그 상대방을 저주하고 미워할것이다.
어찌보면 난 어린아이와 다를것이 하나도 없다는걸 느낀다.
나에게 조금만 잘못되면 상대방을 억누를러고 하고 상대 안할려고 하는 나쁜습관
이번주 설교말씀을 듣고 내가 조금손해보고 남을 감싸주면 오히려 나에게 더 많은것들이 복이 되서 올줄 믿는다.

박빛나

2008-04-04 09:49:16

사랑하면 할수록 허물에 대해서는 말이 없어진다.
믿음의 사람은 남의 허물에 대해서 말을 하지 말아야 한다.
남을 위해서 입을 닫아야 한다. 그래야 당신 때문에 그 사람이 안 다치기
때문이다. 침묵은 죄인을 보호해 주는 최고의 방패막이다.
내가 말이 없으면 없을수록 사랑의 십자가는 커지지만, 말이 많으면 많을수록 사랑의 십자가는 초라해진다.

사랑하면 할 수록 좋은 것들만 보이고, 미워하면 할 수록 그 사람의 허물만
보이듯 말도 그렇지 싶다. 회사에 부하직원 한 명이 아주 트러블메이커다.
그 친구를 위해 밥도 사주고, 달래도보고 했건만, 다른 모든 사람들이 그 직원과 일을 못하겠다고 한다. 아무리 설득을 해봐도 잠깐 동안만 좋을뿐 다시 악화되는 그 직원의 상황을 보면서, 언제인지 부터 나도 모르게 나도 그 직원을 좋지 않게 생각하고 말았다는 사실을 깨달았다. 그러니 좋은 말이 나오지 않았을 수밖에...

주님은 우리를 위해서 그 고통의 시간 속에서도 침묵의 사랑을 보여주셨건만,
나는 어떤 나쁜일도 당하지 않았으면서도, 한 사람을 위해서 침묵도 하지 못했구나 싶어서 마음이 아팠다.

우리의 모든 상황을 알고 계시는 주님은 그 때문에 침묵으로 사랑해 주셨는데,
나는 요즘 모든 일을 말에 의존하고 있는 것 같다.
카운셀링을 공부하면서 유독 말이 많아진 나를 발견한다. 말에 다른것에 의존하려는 내 모습을 주님은 여러 상황들로 알게 해 주시는 것 같다. 분명 많은 사람들에게도 도움이되고, 나에게도 정말 도움이 많이 된 공부이지만, 또 다른 한 편으로는 주님 이외의 것에 의존하게 만드는 무서운 유혹도 되는 것 같아 무섭다는 생각도 들었다.

침묵의 사랑을 실천 할 수 있는 사람이 되는 길이 얼마나 힘이들면, 홧병이라는 병까지 있을까 싶은 생각이 든다.
인터넷 세상의 무서움은 말 뿐이 아니라 글로도 범죄하게 하는 부분들이 아닐까 싶다. 말은 안했어도, 자신의 블로그에 남겨진 글 때문에 고통을 당하는 사람들이 적지 않기 때문이다. 침묵의 미덕은 이제는 말 뿐만이 아니라 글에서도 지켜져야 하지 않을까하는 생각이 드는 요즘이다.

그러기 위해서는 먼저 사랑하지 않으면 안 될 것 같다.
우리 주님의 마음으로 모든 것들을 사랑하자!! 그리스도를 배우자!!
오늘도 다짐한다.

박유진

2008-04-05 01:46:51

"믿음의 사람은 남의 허물에 대해서 말을 하지 말아야 한다.
남을 위해서 입을 닫아야 한다. 그래야 당신 때문에 그 사람이 안 다치기 때문이다. 침묵은 죄인을 보호해 주는 최고의 방패막이다."


어젯밤에 잠든 선호를 놓고 기도를 하는데, 주님께서 나를 회개시키셨다.
나는 밤에 남편이 돌아오면, 하루종일 선호를 보면서 힘들었던 일들을 얘기하면서, 내가 얼마나 힘들었었나를 자세히 설명해준다. 아무리 어린 아기라도 다 알텐데, 아이 앞에서 오늘은 선호가 이런 장난을 했었고, 집안을 이렇게 어질렀었고, 이렇게 엄마를 힘들게 했었고...한참을 얘기하며 그 힘들었던 수고(!)를 위로받고 싶어했다. 그런데, 어제 선호를 위해 기도하는데, 주님께서 이것을 회개시키셨다. 그래서, 선호에게 엄마가 상처주어서 미안해...이제는 안 그럴게..하고 한참이나 회개하며 울었었다. 만약 내가 억울한 일을 당했더라면, 온 동네방네 다 다니면서 그 억울함을 하소연 했을 것이다. 그런 주제에, 남의 허물은 조금만 작은 것이라도 들추려고 했었던 나의 부끄러운 모습을 보게 되었다. 정말 내가 억울한 일을 당한다면, 예수님처럼 십자가에서 침묵할 수가 있을까. 물론 쉬운 일은 아니겠지만, 예수님의 인내와, 사랑과, 침묵에 대해서 배웠으니, 그러한 상황이 왔을 때 침묵하도록 노력해야 할 것이다.

‘믿음의 주요 온전케 하시는 이인 예수를 바라보라.
그는 부끄러움을 마음에 두지 않으시고, 십자가를 참으셨다. 그리하여 그는 하나님 보좌 오른쪽에 앉으셨느니라.’(히12:2)
‘참으면 또한 주님과 함께 왕노릇할 것이요(딤후2:12)

힘들고 억울한 일을 당했을 때, 이 말씀을 붙들고 힘을 얻는 내가 되길 소망한다.

이진애

2008-04-05 06:00:01

♬ 내 안의 주님이 하시네

나 낙심되어 눈물 흘릴 때
사랑의 주님 생각합니다

나 실패하여 아파할 때도
위로의 주님 생각합니다

나 미움 속에 괴로워할 때
용서의 주님 생각합니다

나 죄에 빠져 헤매일 때도
십자가 주님 생각합니다

나는 할 수 없으나
내 안의 주님이 하시네

나는 이길 힘 없으나
내 안에 이김을 주시네

나는 할 수 없으나
내 안의 주님이 하시네

나는 주님만 의지하리라

*******

내가 낙심되어 눈물 흘릴 때나 실패하여 아파할 때나 미움 때문에 괴로워할 때나 죄에 빠져 헤맬 때나.. 억울한 일 당해 누군가에게 말하고 싶지만 할 수 없을 때, 해서도 안 될 때..
다른 누구도 아닌.. 주님 생각하게 하시니 감사합니다.
내 안에 계셔 주시니 감사합니다. 주님만 의지하게 하시니 감사합니다.

개인적으로 마음 아픈 일, 잠을 이루지 못할 만큼 걱정되는 일이 생겼다. 하지만 이미 그런 것들은 내가 마음 아파한다고 될 일도, 내가 걱정한다고 해결될 일도 아니다.
나는 그저 기도할 뿐이다. 주님만 생각할 뿐이다. 그 분께 맡길 뿐이다. 그 분을 의지할 뿐이다.

내 맘에 평안 주시니 감사..

노재훈

2008-04-05 09:30:20

침묵은 사람이 할 수 있는 최고의 사랑의 표현입니다. 침묵이 있는 사람은 어떤 사람의 죄도 용서할 수 있습니다. 침묵이 있는 침묵은 사람이 가질 수 있는 최고의 능력이다. 침묵이 있는 사람은 무엇이든지 할 수 있다. 침묵이 있는 사람은 어떤 억울한 십자가도 기쁨으로 질 수 있다. 침묵은 구원의 마지막 능력이었다. 예수님의 십자가의 마지막 사랑의 모습은 ‘침묵’이었다. 침묵은 사랑의 최고의 표현이다.
이전에 억울한 일이 있어서 침묵하지 못하고 이야기를 꺼낸적이 있었다.... 아주 큰 싸움이 되었고 걷잡을수 없는 상황으로 흘러간적이 있다.
결국은 나의 결백함으로 이야기는 종결이 되었지만 침묵하였다면 서로에게 상처없이 좋을 결과로 웃으면서 끝났을 일이다....
특히 교회에서는 침묵이 많이 필요한것 같다. 그것이 남의 허물을 덮어주는것이면 사랑임을 한번더 깨닿는다.

이동훈

2008-04-05 11:14:28

‘예수님은 굴욕을 당하고 고문을 당하였으나,
아무 말도 하지 않았다. 마치 도살장으로 끌려가는 어린 양처럼,
끌려가기만 할 뿐 아무 말을 하지 않았다.’(사53:7)

나에 대한 예수님의 사랑이 들어나는 부분이다. 이번주 말씀을 들으면서도
나 같은 죄인을 살리기 위해서 예수님께서 모든걸 희생 하셨구나란 생각을
했었다. 패션오브크라이스트 봤을때 그 고통스런 모습을 보면서 정말 끔찍
하다는 생각을 했었다. 내가 저런 고통을 받았다면 미치지 않았을까 하는
생각을 해본다. 하지만 예수님은 그런 고통을 나를 위해 받으시고 거기에
아무 말도 안하시고 그 모든 걸 감수하셨다. 정말 큰 사랑이다.
내가 그런 사랑을 받을 자격이 있는지는 모르겠지만 주님께서 그런 사랑으로
날 살리셨다. 이런 덤으로 사는 내 인생이 정말 주님의 영광을 비추는데
쓰임받길 원한다.

김진희

2008-04-05 13:13:30

그런데 왜 예수님은 죽어가면서도 말이 없으셨을까요? 예수님이 왜 입을 꼭 다물고 있었을까요? 그것 또한 바로 당신을 위해서입니다. 예수님이 입을 열면 당신이 다치기 때문입니다. 당신이 범인인 것이 밝혀 지기 때문입니다. 예수님은 자신을 위해서는 자신의 결백을 골백번도 더 말하고 싶었지만, 당신을 지키기 위해서 끝까지 입을 열지 않았던 것입니다. 이것이 바로 예수님의 십자가 사랑입니다. 당신은 이 사랑을 얼마나 깨닫고 감사하고 있습니까

알바를 하다보면 별것도 아닌 일에 괜히 억울한 마음이 들 때가 많다. 내가 하지 않은 일에 대해서 말을 들을 때도 있고 내가 할려고 했는데 자꾸 시키는 사람들이 있다. 그런 상황들이 생기면 나도 알고 있다고 할려고 했다고 생각하며 속으로 불평하며 얼굴이 일그러 지기도 한다. 좀 편하다 싶은 사람에게는 다 말해 버릴 때도 있고 다른 사람에게 불평을 얘기해 버릴 때도 있다. 이렇게 무슨 수를 써서라도 내가 범인이 아니라고 표현해 버리고 말았다. 예수님은 나 때문에 죽으시고 그 고통 가운데서도 나를 보호하실려고 침묵을 지키셨는데, 나는 내가 한 일도 나에게 불리한 입장이 되면 어떻게든 다른 사람에게 시선을 돌릴려고 했다. 오늘도 한 마디 내 뱉어 버리고 얼마나 후회가 되고 이렇게 말하는 것이 진짜 억울함이 풀리고 기쁨이 되지 않는 것을 깨닫게 되었다. 나도 예수님이 배풀어 주신 그 사랑을 기억하며 좀 억울한 일이 생겨도 침묵하며 예수님처럼 살아가도록 해야겠다.

남철

2008-04-05 23:58:06

침묵은 자기를 위해서 묵비권을 행사하는 것이 아니다. 침묵은 남을 위해서 그 사람의 허물을 말하지 않는 것이다. ‘사랑은 모든 허물을 덮어 준다.’(잠10:12)

나자신을 생각해볼대 남의 말을 하기 좋아하고 남이 상처를 받는지를 생각 하지 않고 말 할 때가 많다 .
나자신 안에서 생각을 해서 말을 하는 것이 아니라 상대편을 먼저 생각을 하고 말을 해야겠다.
예수님께서 보여 주신 사랑처럼 말이다

최정민

2008-04-06 03:19:29

[허물을 덮어 주면 사랑을 받고, 허물을 거듭 말하면 친구를 이간시킨다.’(잠17:9)
‘허물을 덮어 주는 것은 그의 영광이다.’(잠19:11)고 했다.
허물을 덮어 준다는 것은 말을 하지 않는다는 말이다. 곧 침묵을 말한다.
그러니 곧 침묵은 그 사람의 영광이란 말이다. 침묵하는 사람에게는 반드시 영광이온다. 예수님이 십자가에서 침묵하여 하나님의 보좌 우편에 앉으셨듯이, 주님은, 억울한 일에 침묵하는 사람을 귀하게 대접하신다. 침묵은 금이 아니라 침묵은 영광입니다. ]

한 주 동안 잠언을 읽으면서 설교말씀이 떠올랐습니다. 그리고 말의 힘과 그리고 말의 위험성에 대해서 많이 생각하게 되었습니다. 입으로 사람을 행복하게 하고 힘도 줄 수 있지만 사람을 죽게도 할 수 있는 것이 입이 라는 것을 다시 한번 깨달았습니다. 이런 사실을 알면서도 생활을 할 때 사람에게 상처 주는 말을 하거나 허물을 덮어 주지 못하는 말들을 더 많이 합니다. 그래서 그런지 저에겐 이 번 주 설교 말씀이 주는 교훈과 깨달음을 제 삶 속에 철저히 적용을 해야겠다 라고 다짐했습니다. 남을 위하는 말이나 남의 기분을 상하게 할 것 같고 그 상황의 분위기를 차갑게 만드는 말이라면 침묵을 택해야겠습니다. 때론 억울하고 그러지 못 할 때도 오겠지만 예수님을 떠오르며 그리고 링컨과 예수님이 침묵을 지켜 받은 영광을 생각하며 저도 실천해 지키도록 노력 하고 싶습니다.

하제란

2008-04-06 06:17:55

침묵은 자기를 위해서 묵비권을 행사하는 것이 아니다. 침묵은 남을 위해서 그 사람의 허물을 말하지 않는 것이다. ‘사랑은 모든 허물을 덮어 준다.’(잠10:12)

사랑하면 할수록 허물에 대해서는 말이 없어진다.

한살 한살 나이가 먹어감에 따라 말이 많아짐에 스스로 놀랄 때가 있습니다.
아무렇지 않게 내뱉는 말에 아마도 많은 사람들이 상처를 입었을 것입니다.
어떠한 상황에서도 나를 위해서가 아닌 상대방을 위해서 침묵해 줄 주 아는 사랑,
설교말씀처럼 예수님께서 나에게 보여주신 나를 위한 사랑입니다. 그 침묵과 함께 얼마나 극심한 고통을 참으셨을까 .. 어리석은 내가 극미한 아픔도 참지 못하고 남의 탓을 하며 정죄하고 있는 모습이 보입니다.
'사랑하는 대상의 허물에 대해서 말이 없어진다'.. 주님이 내게 보여 주신 사랑을 나를 통해서 보여줄 수 있으면 바라지만.. 지금은 그저 지금껏 너무나 많은 아픔을 내 입을 통해서 겪었을 많은 지체들을 예수님께서 위로하시고 상처가 남지 않도록 치유해 주시기를 간구할 뿐입니다.

이성훈

2008-04-06 07:15:35

침묵.
침묵을 적용해 보았습니다. 이번주에 너무 침묵하고 싶지 않고, 화난다고 말하고 싶고, 왜 그러냐고 따지고 싶을 때, 설교를 읽었습니다. 마음으로는 솔직히 침묵하고 싶다고 생각하지 않았습니다. 내가 그렇게 한다고 알아주지도 않을거같고, 차라리 말 하는게 오히려 옳은게 아닐까 하는 생각했습니다. 그리고 계속 고민하면서, 막상 만났을때 침묵을 적용했습니다. 허물에 대해 아무말도 하지 않...지는 못하고, 가볍게 지나가는 말로 한마디만 하고 말았습니다. 그러고서 그냥 다른 이야기를 하고 넘어갔습니다. 처음에는 왜 난 손해보며 사는 걸까 하는 생각이 들었지만, 점점 마음이 편해지고, 그사람과도 불편하지 않게 잘 넘어가게 됐습니다.
말씀이 그런 것 같습니다.
적용하려고 하면, 머리론 알고 있던것을 몸이 반항합니다. 내가 손해보는거 같고, 굳이 그렇게 이득보는 거 같지도 않게 느껴집니다. 이번주는 침묵이었고, 훈련을 받으면서는 각종 숙제를 하는것이 그렇습니다. 하지만, 실천해보면, 그 진가를 알수 있습니다. 실천하기 전까지 들었던 생각들이 다 헛생각이었고, 아무것도 아닌 걸로 고민하고 있었다는걸 알게 됩니다.
실천하겠습니다.
실천하는 크리스천이 되겠습니다.

김철중

2008-04-06 09:57:18

위대한 사람은 자신의 죄에 대해서는 정직하려 하고, 남에 허물에 대해서는 침묵하려고 한다. 위대한 인물이 될 사람은 남의 허물에 대해서 말이 없다.
회사생활을 하면서 참 많이 느끼는 부분이다. 자기변호에만 열을 올리는 사람은 결국에는 사람들로부터 인정을 받지 못한다는것을 주변에서 많이 보아왔다. 하지만 직접 조금이라도 억울한 일을 당하면 가만히 있기가 쉽지 않다. 성경에서도 구약에서 대표적인 억울한 사람인 요셉이 하나님에게도 축복받고 세상에서도 인정받는 장면은 우리 직장인들에게 훌륭한 주님의 지혜를 알려주신다.

박은주

2008-04-07 05:29:55

묵은 사람이 할 수 있는 최고의 사랑의 표현입니다. 침묵이 있는 사람은 어떤 사람의 죄도 용서할 수 있습니다. 침묵이 있는 침묵은 사람이 가질 수 있는 최고의 능력이다. 침묵이 있는 사람은 무엇이든지 할 수 있다. 침묵이 있는 사람은 어떤 억울한 십자가도 기쁨으로 질 수 있다. 침묵은 구원의 마지막 능력이었다. 예수님의 십자가의 마지막 사랑의 모습은 ‘침묵’이었다. 침묵은 사랑의 최고의 표현이다.

저에게는 나쁜 버릇이 있습니다. 화가 나면 말을 않는 것입니다. 입은 닫지만 온몸으로 표현합니다. 표정에서, 몸짓에서, 상대방과 눈도 안 맞추고 몸에서는 찬바람이 붑니다. 저의 침묵은 최고의 미움의 표현입니다.
한주간 남편과 한번도 눈을 맞추지 않았고 말도 거의 하지 않았습니다. 사실 눈을 맞출 시간도 말을 할 시간을 갖지 못하기도 했습니다만
지난 토요일날 저녁, 침묵을 깨고 남편과 허심탄회하게 이야기하였습니다. 남편에게 가졌던 불만들과 불평, 미움들이 말끔히 해소가 되었습니다. 그것은 먼저 하나님 앞에서 침묵했더니 하나님께서 저의 억울함을 다 아시고, 힘듬을 다 아신다고 하셨기 때문이었습니다. 그리고 차분이 남편에게 사랑의 말을 할 수 있는 지혜도 주셨습니다.
침묵은 최고의 사랑의 표현이라는데 하나님 앞에서 나는 지금까지 얼마나 침묵했나 회개가 되었습니다. 잠잠히 그분의 음성에 귀를 귀울일 수 있는 제가 되어야함을 깨닫고 결단함니다.
주님, 말씀해 주세요. 주님 앞에서 이제 제가 침묵하겠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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