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중앙영광교회

세족과 십자가와 전도

이용규목사, 2008-03-17 21:13:2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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세족과 십자가와 전도

말씀//요13:12-17

1.        인류 최고의 주간
인류 역사상 가장 위대한 일, 가장 복된 일이 일어났던 한 주간이 있다.
만약 이 한 주간이 없었다면 모든 인류는 절망과 암흑에 묻혀 버렸을 것이다. 이 한 주간으로 인하여 인류의 운명은 사형수에서 자유자로 바뀌게 되었다. 인류 최고의 주간인 이 주간이 바로 ‘고난 주간’이다. 하나님께서, 아무도 해결해 줄 수 없는 우리의 죄의 문제를 해결해 주기 위해서, 목숨까지 잃어가면서 구원의 일을 해 주신 주간이기 때문이다. 하나님은 하나 밖에 없는 독생자 예수님을 죽이심으로, 우리를 살리는 십자가를 높이 세우셨다. 모세의 놋뱀을 바라본 이스라엘 백성들을 살리셨듯이, 예수님의 십자가를 믿음으로 바라보는 인류를 살리시기 위해서였다.
인류를 위한 하나님의 최고의 대작은 천지를 만드신 것이 아니라, 십자가를 세우신 것이다. 십자가에는 하나님의 모든 것(독생자까지)이 다 투자되었기 때문이다. 우리는 우리를 위한 하나님의 대역사 앞에 구경꾼으로 남지 말고, 십자가의 주인공으로 들어가서 감사하고 감격하며 헌신할 수 있어야 한다. 왜냐하면 십자가의 모든 일은 하나님을 위한 일도 아니요, 다른 사람을 위한 일도 아니요, 오직 당신 자신을 위한 일이기 때문이다. 고난주간의 구경꾼이 되지 말고, 믿음으로 함께 십자가를 세워보자. 고난에 동참해 보자. 그러면 남다른 주님의 은혜가 당신을 충만케 하실 것이다.
예수님은 목숨까지 바쳐가며 우리를 위해서 구원의 십자가를 세워 주셨는데, 가만히 있을 수는 없지 않은가? 믿음으로 십자가를 내 것으로 만들어야 한다. 내 중심에 주님의 십자가를 세워야 한다.
믿음의 사람은 마음에 십자가가 있는 사람이다. 믿음의 사람은 십자가를 통해서 자신을 보는 사람이다. 그래서 어떤 죄인도 의인으로 보이는 것이다. 십자가는 우리를 의인으로 만드는 신비의 능력이다.

2.        십자가의 두 가지 모형
예수님은 자신이 곧 십자가에 못박혀 고난을 당하며 죽을 것을 이미 알고 계셨다.(눅22:15,16) 그래서 예수님은 마지막 식사를 하는 자리에서 두 가지 일을 직접 제자들에게 행하셨다. 그것은 바로 성찬식과 세족식이다. 왜 예수님은 이 중요한 때에 성찬식을 하시고 제자들의 발을 씻어 주셨을까? 성찬식과 세족식은 주님의 십자가 사건의 모형이기 때문이다. 예수님은 이 두 의식을 통해서 십자가의 진정한 의미와 은혜, 능력을 제자들에게 미리 보여주기를 원하셨다. 그래서 주님은 이렇게 말씀하셨던 것이다. ‘내가 하는 것을 네가 지금은 알지 못하나 이후에는 알리라’(요13:7) 이 말씀은, 예수님이 십자가를 지시고 나면 그 뜻을 밝히 깨닫게 되리라는 말씀이다. 성찬식은 우리를 위해서 십자가에서 죽으실 것을 미리 보여 주셨다. 떡은 십자가에서 우리를 위해 주시는 예수님의 몸을, 잔은 십자가에서 우리를 위해 흘리실 주님의 보혈을 상징하고 있다.
떡을 가져 감사 기도하시고 ‘받아 먹어라 이것은 너희를 위하여 주는 내 몸이다.’
잔도 그와 같이 하여 ‘받아 마셔라 이것은 너희를 위한 내 피다.’(눅22:19,20)
마태, 마가, 누가는 성찬식을 통해서 십자가의 은혜를 강하게 표현했는데, 가장 영적인 복음서라고 불려지는 요한복음에서는 성찬식이 빠져 있고 그 자리에 세족식이 들어 있다. 요한에게는 영적으로 볼 때 도저히 뺄 수 없었던 것이 바로 세족식이었던 것이 분명하다. 세족식의 핵심적 의미는 십자가로 죄를 씻는 것이다.
성찬식이 우리를 ‘위해서’ 해 주신 십자가의 ‘은혜’를 잘 보여 준다면,
세족식은 우리에게 임한 십자가의 ‘능력’을 보여주고 있다고 할 수 있다.
예수님은 성찬식과 세족식을 통해서, 영적인 십자가를 육적으로 잘 와 닿도록 형상화해 주셨다. 하지만 잊지 말아야 할 것은 이 두 의식의 본질은 주님의 십자가라는 사실이다. 의식이 본질을 앞서면 모양만 있고 능력은 없게 된다. 의식은 본질을 나타내기 위한 도구에 불과한 것이다. 껍질은 알맹이를 보호하기 위한 수단에 불과하기 때문에 기꺼이 벗겨짐을 당할 수 있어야 한다. 본질 중의 본질은 십자가이다. 모든 것은 십자가를 나타내기 위한 도구여야 한다.

3.        발을 씻기시는 예수님
1) 세족의 의미
세족식에 대해서 좀 더 자세히 살펴 보도록 하자.
예수님이 이 땅에 오신 목적은 이 세상을 구원하시기 위해서이다. 그래서 예수님은 우리의 구세주가 되신다. 이 구원을 완성하신 곳이 바로 ‘십자가’이다. 십자가야말로 완전하고 생생한 살아 있는 복음의 현장이다.
세족식은 십자가의 구원의 자세와 능력을 구체적으로 잘 보여 주고 있다.
예수님께서는 자신이 하나님께로 돌아갈 때가 된 것을 아시고 마지막 식사를 끝내고, 갑자기 제자들의 발을 씻기시기 시작하셨다.(요13:3,4) 이 때 베드로가 너무나 황송하여 주님이 이러실 수는 없다(내 발을 절대로 씻기지 못하리이다)고 하자, 예수님은 베드로에게 이 한마디를 하신다. ‘내가 너를 씻어 주지 아니하면 네가 나와 상관이 없느니라.’(요13:8)
그렇다. 예수님이 나를 씻어 주지 않으면 절대로 안 된다. 예수님이 씻어 주시지 않으면 깨끗함을 받지 못한다. 더러운 죄가 해결 받을 수 없다. 예수님이 나를 씻어 주심으로 예수님은 우리의 구세주가 되신다. 여기서 ‘씻어 준다’는 것이 육의 발을 의미하는 것일까? 아니다. 영의 발인 죄를 말한다.
‘예수의 피가 우리를 모든 죄에서 깨끗하게 해 주십니다.’(요일1:7)
죄가 없으신 주님의 보혈이 나를 씻겨 주지 않으면 나는 구세주 예수님과 상관이 없게 된다. 세족은 내 죄를 주님께서 씻어 주시는 ‘십자가의 모형’이다. 그래서 예수님은 ‘내가 하는 일을 지금은 네가 알지 못하나, 나중에는 알게 될 것이라’고까지 하셨던 것이다.(요13:7)  
‘나의 죄를 씻기는 예수의 피 밖에 없네 나는 공로 없도다 예수의 피 밖에 없네’
2) 섬기는 자세
예수님이 왜 ‘발’을 씻어 주었을까? 이것은 예수님의 ‘십자가의 구원’은 섬김의 극치임을 말해 주고 있다. 그 시대에 주인이나 손님의 발을 씻어 주는 사람은 종 밖에 없었다. 심지어 제자들이 예수님의 발을 씻어 주지 않는 것도 당연시 되어 있는 시대였다. 그래서 예수님은 베드로에게 이렇게 말하였다. ‘내가 네 집에 들어 왔을 때에, 너는 내게 발 씻을 물도 주지 않았다.’(눅7:44) 이 말씀은 베드로를 비판하는 말이라기 보다는 시대상의 잘 표현해 주는 내용이라 할 수 있다. 제자들도 예수님의 발을 씻어 주지 않던 이 시대에, 예수님께서 제자들의 발을 씻어 준다는 것은 천지가 개벽할 일이다. 그래서 제자들이 펄쩍 뛰면서 거절했던 것이다. 예수님은 굴림하는 왕으로서가 아니라, 섬기는 자의 모습으로 우리의 죄를 씻어 주시기를 원하셨다. 이것이 진정으로 용서하는 자의 모습일 것이다.
그러면 세족과 십자가를 비교해 보자. 나를 위해서 발을 씻어 주는 것이 더 고마울까? 나를 살리기 위해서 대신 십자가에서 죽어 주신 것이 더 고마울까? 세족식에는 감동을 받는데, 십자가에는 무감각한 사람들이 많다.
예수님은 죄인인 한 여자가 향유로 예수님의 발을 씻어 주었을 때에 크게 감동하셔서 칭찬과 함께, 큰 복을 주셨다.
세족식은 예수님이 물로 나를 씻어 주는 것이지만, 십자가는 예수님이 자신의 피로 나를 씻어 주는 것이다. 그런데 어찌 십자가를 대할 때에 감동이 없을 수 있겠는가?
물로 씻어 주는 것보다는 값비싼 향유로 씻어 주는 것이 더 귀하고, 아무리 비싼 향유보다도 보혈로 씻어 주는 것이 더 귀하다. 보혈에는 주님의 생명이 담겨 있기 때문이다. 십자가는 주님의 보혈이 친히 우리를 씻어 주신 장소이다. 우리가 진정 감격의 눈물을 흘려야 할 곳은 세족식이 아니라, 주님의 십자가이다. 세족식은 십자가의 작은 모형일 뿐이다. 세족식의 본질은 십자가이다. 예수님은 종의 마음으로 십자가에서 보혈로 우리를 깨끗케 해 주셨다.
‘나 십자가 대할 때에 그 일이 고마워…몸 밖에 드릴 것 없어 이 몸 바칩니다.’(새찬송143)
믿음의 사람은 십자가에 늘 감동하고 감격하고 눈물 흘리는 사람이다.
3) ‘발을 씻기라’의 의미
예수님께서는 제자들의 발을 다 씻기신 다음에, 그들도 발을 씻기는 자가 될 것을 3번이나 강조하며 말씀하고 있다.(14,15,17) 그러면 발을 씻긴다는 것은 무엇을 의미할까? 물론 겉으로 나타나는 모습은 ‘섬김’이다. 그러면 그 본질은 무엇일까? 섬김을 그릇이라고 한다면, 그것에 담겨야 할 내용물은 무엇일까? 그것은 바로 십자가요, 복음이다. 우리는 섬김의 그릇에 십자가의 복음을 담아서 사람들에게 전해 주어야 한다. 그러면 십자가의 보혈이 그들을 깨끗케 해 줄 것이다. 이것이 그들의 발을 씻어 주는 진정한 의미이다. 그래서 예수님은 말씀하신다. ‘아버지께서 나를 세상에 보내신 것과 같이 나도 그들을 세상으로 보냈습니다.’(요17:18)
‘내가 진실로 진실로 너희에게 이르노니
내가 보낸 자를 영접하는 자는 나를 영접하는 것이요’(요13:20)
우리는 세상으로 보냄 받은 예수님의 제자들이다.
‘너희는 온 천하에 다니며 만민에게 복음을 전파하라’(막16:15)
내가 십자가에서 진짜 죽는 것이 아니라, 예수님이 지신 십자가를 전하기만 하면 된다. 그러면 동일한 죄 씻음, 구원의 역사가 일어난다.
‘발을 씻겨 주는 것’은 종의 마음을 가지고, 다른 사람의 죄를 복음으로 씻어 주는 것이다. 지금도 주님은, 우리가 십자가의 복음을 전하기를 간절히 원하신다.
‘십자가의 도가 멸망하는 자들에게는 미련한 것이요
구원을 받는 우리에게는 하나님의 능력이라’(고전1:18)      

40 コメント

최현숙

2008-03-17 21:43:39

어제의 말씀에 하나님의 귀한 은혜의 비밀을 깨닫게 됨을 하나님께 진심으로 감사를 드립니다.
내가 처음 세족식을 접해 본 사건은 어느 모임에서이다. 세족식을 통해 많은 지체들이 감동하며 눈물을 흘렸다. 하지만, 나는 맹숭맹숭했던 기억이 있다. 세족식 그자체가 내겐 성경속의 한 사건을 이야기 하고 있다는 것만 깨닫았기 때문에 그랬는지도 모르겠다. 어제 말씀을 통해서 이 세족식은 십자가의 모형으로써 예수님께서 보여주신 것을 깨닫게 되 내 속에선 탄성이 나왔다. 십자가의 모형으로 발을 씻어 주신 예수님의 모습을 통해서 세족식의 의미를 완전히 다르게 해석했던 어리석음을 보게 된 것이다. 주님께서 친히 물로 내 발을 씻어준다면, 나는 참 몸 둘 바를 모를 정도로 감격 할 것이다. 그런데 물 보다 더 귀한 피로 내 죄를 씻어 주신 부분에 대해선 어떻게 생각했나? 이 두가지 사건을 비교할 때 나는 전자에 더 많은 감동을 하고 있었던 것이다. 참으로 귀한 것을 볼 수 있다는 것은 영의 눈이 열리지 않으면 볼 수 없다는 것을 다시 경험하게 되었다. 이렇게 생각하니 십자가의 보혈이 이번 고난주간엔 더욱 새롭게 내 영혼을 적시고 있는 것 같다. 참으로 감사할 뿐이다. 하나님의 은혜가 그리고 예수님의 순종이 이처럼 철저히 죄인인 나를 위해서 계획된 사실이란 사실을 전에 느껴 보지 못했던 감격을 느낀다. 내 감정에 그치지 말고 주님께서 내게 부탁하신 대로 보혈의 피로 내 죄를 씻어 주듯이 다른 사람의 죄도 그 피로 씻어 주라고 제자들에게 부탁했던 그 말씀이 바로 나에게 그렇게 하라신 말씀으로 들려서 그렇게 살지 못했던 내 모습의 죄가 오늘은 더욱더 크게 보인다. 내가 세상 사람들의 죄를 어떻게 씻어 줄수 있겠는가? 주님께서 발을 씻어 주듯이 나도 섬김을 통해 그들에게 다가가 진정한 본질인 구원을 전하여 그들이 죄의 고통 속에 들어가지 않고 영생의 축복에 들어가 행복해 하는 것임이 나의 사명임을 다시 자각해 본다.
'종의 마음으로 다른 사람의 죄를 복음으로 씻어 주리라'

이정미

2008-03-18 04:14:30

발을 씻기라는 의미는?
겉으로 나타나는 섬김이다.
그본질은 섬김을 그릇이라고 한다면,그것이 담겨야 할 내용물이 무엇인가?
그것이 십자가의 복음을 담아 다른 사람에게 전해 주어야 한다.

이번주간은 고난주간으로 말씀이 더 마음에 은혜로 느껴진다.
세족식과 십자가의 사건을 너무도 잘 표현하여 주셨다.
다른 사람을 섬김으로 우리에게 본을 보여주신 예수님,십자가에
죽기 까지 나를 위해 보혈의 피를 흘리신 예수님 그 사랑에 늘~
감격 할뿐입니다.
예수님께서 친히 종의 마음으로 가장 낮은자세로 섬김의 본을
보여 주신것 처럼 다른 사람을 귀하게 여기며 섬김의 자세로
살아야 함을 다시한번 느낀다.
이번주 찬양으로 섬김을 보여준 선교사님의 가정을 보면서
너무나 감동을 받았다 남편은 그 찬양하는 모습속에 진한 전율을
느끼며 정말 저 모습이 진정한 선교, 섬김의 모습이 아닌가 하며
은혜를 받았다.
"나는 너희가 무엇이 진정 중요한지 알기 원한다" 빌1:10
하나님이 가장 기뻐 하시는 자녀다운 삶이 무엇일까?
발을 씻어 주는것은 종의 마음으로 다른사람을 죄를 복음으로
씻어 주는 것이다.

주님! 너무도 죄인입니다. 알면서도 전하지 못한죄 나는 전하기만
하면 되는데 ~~그것도 할수없으니 참으로 죄송합니다
사순절을 맞이하여 예수님의 사랑과 그 보혈의 피를 다른 사람들에게
전해야 하는 마음 그리고 섬김으로 본을 보여주신 예수님 처럼 나도
섬김으로 고난주긴을 맞이해야 함을 느낌니다

황미

2008-03-18 05:10:36

멸시, 천대, 조롱, 치욕, 고통........의 십자가
그 십자가 위에 우리 주 예수님 나를 위하여
못 박혀 죽으셨다. 나의 지은 죄로 인하여...
주님의 그 귀한 사랑이 날 구원 하셨다. 그 사랑!!!
무슨 말 로 우리 주님께 감사를 드려야 하는지.
보잘것 없는 나를 주의 것 으로 삼으셔서 오직 주님만
사랑하며 살게 하소서.
주님의 그 귀한 사랑 본 받아 세상에 나가 그 사랑 전하련다.
날마다 십자가를 묵상 하노라면 부족 하기만 한 내가 더 작아
지기만 한다. 넓고 큰 은혜에 때론 타엽하는 나의 생각들.....
예수님! 보혈의 피로 깨끗이 씻어 거룩한 주님의 자녀이고 싶다.
나를 낮추고 겸손과 사랑으로 섬겨주고, 생명의 말씀을 나누며
진정 하늘의 나라를 함께 이루어 나가는 내가 되고 싶다.
"고난 주간"을 날마다 삶으로 살아가는 우리의 예배가 되길 소원하며.

김 정숙

2008-03-18 05:57:59

오직 주님 만을 바라보려 합니다.
세상의 누가 나를 물도 아닌 향유도 아닌
자신의 피로 발을 씻어 주며 목숨과 바꾸는 사랑을
나누어 주겠는 가?

물로 나의 발만 씻어 주어도 감사한 마음에
무어라 표현 할수없을 것을....
목숨과 바꾸시기 까지 사랑하신 주님을.............
세족식의 모습을 십자가의 사건으로 말씀주신 목사님!
처음듣는 설교말씀의 뜻에
마음에 감사와 소망과 은혜로
나 자신을 돌아 보며
더 낮아 지라는 말씀으로 깊이 감사 합니다.

씻김 받는 자보다 낮아 져야 할수 있는 세족식의 의미
마음깊이 세겨 두며
오직 주님을 바라보며 감사 하며
생명 다 하는 날 까지
어디에 있어도 어떤 자리에서도
더 낮아 지기를 소망 하며 노력 하겠읍니다.

찬양 하신 선교사님의 간증 에
처절한 양의 죽음의 모습에서 보여준
죽는 순간 까지도 주인 앞에 작은 몸에 떨림도 보이지
않는 철저한 순종을 섬김의 모습으로
또 배우고 또 배우는
그래서 하나님이 기뻐 하시는 모습으로
나의 영에 모습이 자라 가려 합니다.

이 복된 소식을 입으로 전하며
삶에 모습이 복음의 소식이 되기를 기도 합니다.

김헌규

2008-03-18 16:00:56

믿음의 사람은 마음에 십자가가 있는 사람이다. 『믿음의 사람은 십자가를 통해서 자신을 보는 사람』이다.
세족식의 핵심적 의미는 십자가로 죄를 씻는 것이다.
성찬식이 우리를 ‘위해서’ 해 주신 십자가의 ‘은혜’를 잘 보여 준다면,
세족식은 우리에게 임한 십자가의 ‘능력’을 보여주고 있다고 할 수 있다.
예수님이 왜 ‘발’을 씻어 주었을까? 이것은 예수님의 ‘십자가의 구원’은 섬김의 극치임을 말해 주고 있다.
발을 씻긴다는 것은 무엇을 의미할까? 물론 겉으로 나타나는 모습은 ‘섬김’이다. 그러면 그 본질은 무엇일까? 그것은 바로 십자가요, 복음이다. 우리는 섬김의 그릇에 십자가의 복음을 담아서 사람들에게 전해 주어야 한다. 그러면 십자가의 보혈이 그들을 깨끗케 해 줄 것이다. 이것이 그들의 발을 씻어 주는 진정한 의미이다.

지금까지 저는 세족식을 읽으면서도 그냥 섬김의 뜻으로만 알고 있었는데, 목사님의 설교말씀을 들으면서, 그런 뜻이 있음을 깨닫고 무언가 하늘나라의 커다란 비밀을 알게 된 듯한 느낌을 받았습니다.
말씀을 듣고도 깨닫는 사람과 깨닫지 못하는 사람은 그 삶에 있어서 차이가 있을 수 밖에 없을텐데, 깨달음을 주신 은혜또한 감사하는 시간이 되었습니다.
예전에 찬양팀에서 내 발을 씻기신 예수라는 찬양을 했었는데, 그 찬양의 가사중에
『죽음 앞둔 그분은 나의 발을 씻기셨다네 내 영원히 잊지 못할 사랑 그 모습 바로 내가 해야 할 소명
주여 나를 보내주소서 당신이 아파하는 곳으로 주여 나를 보내주소서 당신 손길 필요한 곳에』
라는 구절이 있었는데, 당시 그냥 찬양이 좋아서 불렀을 뿐인데, 목사님의 말씀을 듣고서 다시 찾아보니, 그 가사가 목사님의 설교말씀과 너무 닮아 있어서 놀랐습니다.
예수님께서 발을 씻겨주신 것 안에 전도의 뜻이 숨어 있었다는 것에…
목사님의 말씀중에 믿음의 사람은 십자가를 통해서 자신을 보는 사람이다라고 하셨는데, 제자훈련시간에도 그런 다짐의 시간을 가졌지만, 십자가를 통해서 저 자신을 보는 것이 때때로 힘들때가 있습니다.
제자훈련시간에 누군가도 이야기했지만, 제 자신의 모습이 너무 추하고 부족하게 느껴지기 때문입니다.
그렇기에 더욱 주님의 은혜를 생각해서 십자가를 향해 나아가야 하겠지요.
목사님께서 말씀해 주셨던 여인의 모습, 주님앞에서 나아와 눈물로 주님의 발을 적시고, 자신의 머릿결로 주님의 발을 닦고, 그 발에 향유를 발라드린 여인의 모습을 생각하게 되었고, 주님의 은혜에 자신의 죄를 회개하고, 자신의 가장 좋은 것으로 주님께 드리던 그 여인의 모습이 헌신의 모습이 아닐까하고 생각하게 되었습니다.
과연 저는 주님앞에서 제가 가진 어떤 것을 내어 놓고 있는지를 생각해 보게 되었습니다.
주님의 말씀앞에 어떤 자세를 보이고 있는지를 생각해보자, 섬기는 종의 모습이 아니라 왕같은 주인같은 모습의 제 자신의 모습을 보게 되었습니다.
제가 가진 것은 아까워서 주님께 바치지도 못하고, 주님께서 말씀하시는 것을 앞에 두고는 근심하면서 망설이고 있는 것이 바로 지금의 저의 모습입니다.
죽음을 앞두고도 제 발을 씻겨주신 주님께서 저를 보내시는데, 저는 그런 주님앞에서 이리저리 핑계를 대면서 빠져나갈 궁리만 하고 있습니다.
주님의 말씀앞에서, 주님앞에서 저를 보내주세요, 제가 여기 있습니다라고 말할 수 있는 주님의 제자가 될 수 있도록 노력해야겠습니다.
주님의 말씀앞에 순종할 수 있는 믿음의 소유자가 될 수 있도록 더욱 힘써야겠습니다.

조정현

2008-03-18 20:32:46

......인류 역사상 가장 위대한 일, 가장 복된 일이 일어났던 한 주간이 있다.
만약 이 한 주간이 없었다면 모든 인류는 절망과 암흑에 묻혀 버렸을 것이다. 이 한 주간으로 인하여 인류의 운명은 사형수에서 자유자로 바뀌게 되었다.....믿음의 사람은 마음에 십자가가 있는 사람이다. 믿음의 사람은 십자가를 통해서 자신을 보는 사람이다. 그래서 어떤 죄인도 의인으로 보이는 것이다. 십자가는 우리를 의인으로 만드는 신비의 능력이다.......

중앙영광교회 홈페이지에 들어왔다가 이번 주일 저희 목사님 설교 말씀과 말씀이 너무나 동일해 깜짝 놀랐습니다...하나님의 말씀은 역시 정확하시다는 생각을 했습니다. 저도 이때까지만 해도 세족식은 섬김의 큰 본이 되는것이라고만 생각했는데 주일 말씀을 통해 그리고 오늘 말씀을 통해 예수님의 보혈로 씻어주심에 대한 놀라운 예수님의 증표였다는것을 다시 마음에 새기는 시간이 되었습니다. 고난주간이다 보니 세상에서 즐기던 것들도 줄이고 금식을 하니 자연히 말씀과 예수님의 십자가를 더 가까이 하게 되는것 같습니다. 예수님을 처음 믿고는 고난주간이니까 무조건 금식해야해...절제해야해...하는것 때문에 그렇게 하기는 했지만 힘들게 겨우겨우 해온적이 더 많은것 같습니다. 하지만 정말 이 한주가 없었다면 나는 여전히 사형을 기다리는 죄인으로만 남아있었을 것입니다. 하지만 이 일로 예수님의 십자가가 내 속에 세워지고 이제는 그 십자가의 보혈의 능력으로 내가 감히 하나님앞에서 의인이라 칭함을 받게 되었습니다.
저희 교회는 성도님들이 그리 많지 않아 주일날 세족식을 행했습니다. 저희 교회는 목사님께서 모든 직분자들의 발을 닦으시고 속장들에게 각 속원들의 발을 닦아주도록 하셨습니다. 저는 자매들의 발을 닦아주었는데 예수님이 당신이 이 일후에 잡히실것을 이미 아시고도 그들의 발을 닦이셨던 그 마음이 느껴져 뭐라 표현하기 어려운 마음이 제속에 들었습니다.내 속에 십자가가 서고 그 위에서 내가 죽었다고 하면서도 또 다시 환경과 상황속에선 예수님을 따라 살지 못하는 내 모습이 느껴져 다시 실망하기도 했지만 오늘 말씀을 통해 다시 예수님은 저를 세워주심을 느낍니다. 저를 다시 붙들어 세우시고 또 넘어져도 가서 전하라고 다시 사랑을 표현하라 하시는 그 분의 십자가의 사랑을 붙들고 나가서 주의 종된 삶을 살기를 원합니다.

이지영

2008-03-18 22:20:54

내가 십자가에서 진짜 죽는 것이 아니라, 예수님이 지신 십자가를 전하기만 하면 된다. 그러면 동일한 죄 씻음, 구원의 역사가 일어난다.

여기서는 오늘부터 고난주간이 시작되었어요.
고난주간동안 저녁을 금식하면서, 그 시간동안 예수님의 사랑에 감사하며
오늘은 룸메이트의 저녁을 준비해줄 수 있어, 더욱 감사드려요.
지난번 사역훈련시간을 통해
전도가 나의 사명이고, 전도가 하나님을 기쁘게 하는 가장 큰 것임을
배우면서,
전도하는데, 나의 전력을 다하기로 마음을 먹었어요.
예전에는 내가 하기 싫으면, 하지 않고, 원하지 않으면, 실천에
옮기지 않았었는데,
전도를 위한것이라면, 하기 싫더라도 실천에 옮기려고 조금씩
노력해가고 있어요.
오늘, 집에서 예배를 드리며, 십자가를 지신 예수님의
그 사랑에대해 생각해보았어요.
약하고 약한 나이지만, 예수님의 그 사랑을
늘 느낄 수 있게 하심이 너무 기뻐요.
감사합니다. ^.^

김영희

2008-03-19 01:03:46

^ ^ 지영아 너는 잘 해낼수 있을거라 확신한다.^ ^
--------------------------------
'성찬식 이 우리를 '위해서' 십자가의 은혜를 잘 보여 준다면,
세족식 은 우리에게 임한 십자가의 '능력' 을 보여주고 있다고 할수있다.'

사실 성찬식 은 예수님의 몸과 보혈 로 우리 죄를 씻어 주신다는 뜻으로
그 본질은 십자가 라는 사실을 너무도 잘 알고 있다.
그러나 세족식 에 대해 잘못 알고 있었던 부분을 이번 말씀을 통해 그 본질
(십자가)을 깨닫게 해 주신일에 크게 감사드린다.
물이 아닌 예수님의 '피' 로 미리 제자들의 발을 씻기셨을 거라는 심정을
조금은 헤아릴수 있을것 같은 또 하나의 깨달음의 시간을 가지며,
세상 모든 이 에게 종된 마음과 섬김의 모습으로 진정한 본질인 십자가와
복음을 전하는 일에 소홀했던 부끄러운 나 자신을 돌아보게 된다.
이제 그 부끄러운 죄를 조금이나마 만회하기 위해,
내 죄를 사해주신 그분의 뒤를 따르는 길이 나의 소명임을 하루도 잊지않고
늘 가슴에 주님의 십자가를 품고, 내 중심에 주님의 십자가를 세우고,
예수님이 아버지를 증거하기 위해 십자가의 고난을 기꺼이 택하신 그 분.....
이제 내가 그 주님의 증인이 되어 세상에 나갈것을 새롭게 다지며, 고난주간
을 맞이하여 다시 태어난 마음가짐으로 십자가를 묵상하며 경건한 시간과
함께 주님을 맞이할 마음의 준비를 해 본다.

'십자가의 은혜'와 '십자가의 능력' 을 또다시 깨달음을 주시기 위해 열변 을
토하시며, 죄 없다는 사람이 가장 큰 죄인이다. 우리는 다 죄인이다.
그 죄를 누가!! 주님이 씻어주지 않으면 아무도 그 죄를 대신하여 씻어주지
못한다!!!!!!!
꽉 막혀 있던 가슴을 펑 하고 뚫리게 해 주신 목사님께 감사드립니다.
이제 주님의 뒤를이어 종된 마음으로 많은 사람들의 발을 씻겨주는 제자로써
십자가의 은혜와 소망을 저버리지 않는 진정한 의인이 되길.....
감히 제가 소원 하는 바입니다.

박유진

2008-03-19 02:06:55

"세족과 십자가를 비교해 보자. 나를 위해서 발을 씻어 주는 것이 더 고마울까? 나를 살리기 위해서 대신 십자가에서 죽어 주신 것이 더 고마울까? 세족식에는 감동을 받는데, 십자가에는 무감각한 사람들이 많다."
"믿음의 사람은 십자가에 늘 감동하고 감격하고 눈물 흘리는 사람이다."

*어렸을 적부터 믿어왔음에도, 꽤 오랜 시간 동안, 내게는 십자가의 사건이 나와는 관계가 없는 일이었다. 즉, 십자가의 일을 들어도, 감동과 감격이 없었다. 하지만, 제자훈련을 받으면서, 나를 살리시기 위해 그 귀한 아들 예수님을 십자가에서 죽게 하신 하나님의 사랑과, 나를 살리시기 위해 십자가의 고통을 참으시고 죽기까지 하신 예수님의 십자가 사건이, 언젠가부터 눈물로 대하게 되었다. 하지만, 시간이 지나면 또 "망각"해버리는 나의 이 바보같은 어리석음을, 이번 고난 주간을 통해서 다시 한번 일깨워주심에 감사드린다.
사실, 세족식에 대해서 지금까지 섬김의 모습 이상의 것을 생각해 본 적이 없었는데, 이 안에 이렇게 깊은 의미가 들어 있는 줄 처음 알게 되었다. 영적인 것을 깨닫지 못하는 우리를 (아니 나를) 위해, 예수님께서 십자가의 모형을 직접 보여주신 것이 세족식이라는 것은 놀라운 사실이었다. 그리고, 섬김의 모습은 단지 그릇에 지나지 않고, 그것을 통해서 그 안에 '십자가의 복음'이라는 내용물을 담아서 전해야 한다는 것도 새롭게 알게 되었다. 주일 설교를 듣고, 월요일날 설교 말씀을 읽어도 깊이 깨닫지 못했는데, 오늘 새벽 예배 설교를 듣고 (3번이나 들은 후에 겨우) 마음에 세족식의 의미가 와 닿았다. (깨우쳐 주시기 위해 반복해서 들려주신 주님과 목사님께 너무 너무 감사하다.) 매년 다가오는 고난주간, 부활절을 통해서만 십자가를 되새기는 것이 아니라, 매일 매일, 늘 십자가를 묵상하며 사는 크리스챤이 되기를 소망한다.

*선호 보육원에서 한 아이가 내일까지만 다니고 다른 보육원으로 가게 되었다는 이야기를 그 아이의 보호자에게서 듣게 되었다. 처음부터 이것 저것 말도 많이 걸어주고 친절하게 대해주신 그 할머니 (그 아이는 늘 할머니가 엄마 대신에 데려온다)에게 감사의 마음을 전하고 싶어서, 어떻게 할까 하다가, 마지막 날인 내일, 부활절 달걀을 예쁘게 꾸며서 전도지와 함께 전해주기로 했다. 집 주변에는 마땅히 포장할 만한 재료를 파는 곳이 없어서, 시간을 들여 여러 군데를 돌아다녀야했다. 처음에는 즐거운 마음으로 다니기 시작했는데, 마음에 드는 재료를 구하지 못해서 이리 저리 가게 되자, 조금씩 회의가 들기 시작했다. 설교 번역도 마무리 해서 올려야 하고, 집안 청소도 해야 하고, 이것 저것 밀려있는 일들이 많은데, 이런 포장지 하나 사려고 온종일 시간을 허비한 것 같아서 속상하기도 했다. 그렇지만, 막상 마음에 드는 재료를 사고 집에 오자, 내일 그 분께 복음을 전해줄 수 있는 준비가 된 것 같아서, 아까 잠시 불평하던 마음을 후회하게 되었다. 오늘 열이 나서 중간에 그 아이는 할머니와 함께 집에 돌아간 것 같은데, 내일 꼭 다시 나와서 달걀과 함께 복음을 전할 수 있기를 기도한다.

*3월부터 승진하게 된 남편은, 거의 매일같이 밤 12시가 지나서야 귀가를 하게되었다. 처음에는 승진했다고 좋아했는데, 그게 아니였다. 서로 힘드니까, 서로에게 짜증을 부리게 되고, 감정이 상하고 하는 일들이 자주 일어나게 되었다. 지난주부터, 고난주간은 남편이 일찍 와서 온전히 새벽예배를 드리게 해달라고 기도했는데, 어제는, 새벽 1시반에 들어왔다. (거의 최고기록인 것 같다.) 도저히 남편을 깨울 수가 없어서, 선호와 함께 놔두고 혼자 새벽기도를 다녀오면서 기도드렸다. 제발, 집에 돌아올때까지 남편과 선호가 깨지 않게 해주세요..하고. 새벽에 내가 없으면 선호가 꼭 깨고, 그러면 남편도 같이 깨버리기 때문이다. 집에 돌아오니, 남편이 일어나있어서 조마조마 하는 마음으로 '선호는?'하고 물어보니, 감사하게도 새벽에 깼다가 금방 다시 잠이 들었다는 것이다. 그리고, 나는 남편이 화를 낼 줄 알았는데, 오히려 왜 안깨웠냐고 그래서 너무나 감사했다. 더군다나, 선호가 깨더니, '엄마, 교회 혼자 가지 마.' 그러는 것이었다. 정말 깜짝 놀랐다. 이런 말을 할만큼 선호가 자랐구나...내일은 정말 가족 모두가 함께 새벽을 깨우길 소망한다. 귀한 고난주간이, 나 혼자만 은혜받는 시간이 아니라, 가족 모두가 함께 은혜를 받고 주님의 십자가를 알게 되는 시간이 되길 기도한다.

최승우

2008-03-19 04:24:15

지난주는 나의 시선을 끈 기사가 있었다.
원래 인터넷으로 많은 시간을 보내거나 하지 않는 나는 며칠 전에 무엇인가를 체크하기 위해 인터넷을 켰는데 나의 눈에 확 들어 오는 문구를 볼 수 있었다.
“000이혼” 으로 시작되는 문구를 들어다보며 가슴이 철컥 내려 앉았다.
그 동생은 이름만 되면 아는 연예인으로 잉코 부부로 소문난 가정에 겸업으로 하는 사업이 하루 1억원이 될 정도로 세상의 성공과 행복을 누리고 있었던 아이였기 때문이다.나는 그 아이와 친분이 있어서 가끔 그 아이의 얘기를 듣게 되는데 이번에는 상황이 달랐다.아니 어떻게 이런 일이…자세히 내용을 들어가 보니 무엇가 아주 힘들었던 일이 있었음을 짐작 할 수 있었다.
나는 그 자리에서 기도를 하지 않을 수 없었다.
그 아이는 너무나 똑똑하고 착하고 이쁘고 세상에 부러운 것이 없는 아이였지만 하나님을 알지 못하는 안타까움이 있었던지라 나는 그 아이가 하나도 부럽지 않았고, 오히려 불쌍한 마음이 가득 했었다. 내가 어떻게든 이 아이에게 하나님의 사랑을 전해 주고 싶은 마음이 컸지만 너무나 바쁘고 세상 일에 쫒겨 다니는 아이에게 예수님의 십자가를 얘기 해 줄 수 없었다.
나는 지금 그 아이가 겪는 고통이 얼마나 클지 짐작이 간다.이 때에 복음을 전해 줄 수 있으면 그 아이의 삶이 바뀔텐데 그 정답을 몰라서 지금쯤 방황하지는 않는지... 하나님의 방법은 고난을 기회로 삼게 하시고 축복의 통로라는 사실을 알기 때문에 기도하면 이 기도에 하나님이 반드시 구원하실 것을 믿는다.
내 평생 바울 선생님처럼 복음 전하다가 세상을 이별하는 자 되기를 기도한다.
요즘은 그렇게 기도 할 사람이 많은지 모르겠다.이 사람이 생각나면 또 저 사람도 기도해야 하고 정말 생각지 못한 사람들 마저도 성령님의 지혜로 간구하게 된다. 정말 하나님의 은혜를 구하지 않으면 안되고 하나님의 능력으로 받는 구원의 현장을 때와 장소를 가리지 않고 어디서나 복음만 전했던 바울 선생님의 삶이 내 삶에 많은 기준이 되는 것은 사실이며, 나 또한 그를 닮고 싶음 마음이 간절하다.
나 역시 주님의 역사를 수시로 느끼고 있기에 주님 밖에 자랑거리가 없음을 고백한다.
어떤 일을 하든 하나님이 보시기에만 아름다운 자로 남고 싶다. 오늘도 내가 한 것은 아무 것도 없음을 고백하고, 또 어떤 일을 했던 그것 또한 하나님이 주신 힘으로 했기에 나를 내세울 수가 없는 것 같다.
예수님의 보혈의 피로 내 죄가 사함을 받았으니 이 어찌 감격하고 기쁜 일이 있겠는가?나는 그래서 십자가의 사랑만 생각하면 가슴이 뜨거워지고 눈물이 나오게 된다
그 때의 하나님 마음은 어떠했을까?
그때 예수님 심정은 어떠했을까?
나같이 벌레 만도 못한 죄인을 위해 아낌없이 돌아가신 그 분을 생각할때 나는 그 보혈의 십자가를 전하지 않고는 참을 수 없음 또한 사실이다. 이번 고난 주간에 예수님의 고난을 생각하며 그분의 위해 내가 할 수 있는 정성을 담아 더 많은 사람에게 생명을 선물하는 자가 되어야겠다.
인생의 목적은 복음 전하는 일임을 알기에 나는 진정 행복한 자가 아닐까 싶다.

인선정

2008-03-19 06:50:36

아버지가 메일을 보내셨습니다.
뮤직비디오였습니다!!!
아버지께서 퇴직후 마을 문화센터에서 컴퓨터부터 중국어까지 ㅎㅎ 완전히 본전을 뽑으시는 상황을 대충은 짐작하고는 있었지만....
제가 어릴때, 동생들이 어릴때와, 지금 어느새 10명이 되버린 우리 가족의 모습이 담겨져 있었습니다. 배경음악이 마음에는 안 들었지만... 옛날 영화에서나 나올법한 섹소폰이었습니다. ㅜ.ㅜ- 나름 완성도가 있는 작품이었습니다. 뮤직비디오 제목은 "행복"입니다. 왠지 짠했습니다.
얼마전에 3주전에 조카보러간 3박 4일 동안의 일들을 모두 출력해서 앨범으로 만들어서 서울에 보냈습니다.(이런 괴이한 취미가 있습니다. -_-;;) 저는 무슨 바람이 불었는지 앨범끝에 사랑한다고, 가족들 덕분에 난 행복하다고 적었습니다. 75년생에게는 사랑한다는 말은 특수한 상황에 직면하는 경우?가 아니면 평생에 한 두번 이상 쓸 일이 없는 말입니다.
그 한편, 지난주 속회때(사무얼엄마가 이끌어주셨습니다!!) 서울집에 가기 싫다고 ... 부모님에 대해 불만을 털어 놓은 적이 있습니다. ---참으로 아이러니합니다.
어쩌면 가족이란 사랑과 미움이 색깔별 모양별로 있는 코코블록 같다는 생각이 듭니다. 어떤 가족은 증오의 코코블록만을 모아 괴물을 만들어 버리기도 하고, 어떤 가족은 사랑의 코코블록만을 모아 에덴동산을 만들기도 한다고 생각합니다. 잘은 모르겠지만, 우리 가족을 포함해서 대부분의 가족은 이도저도 아닌 괴물이 에덴동산에 얼쩡거리는 ... 가끔은 에덴동산이 난장판되었다가 복구되었다가 하는 괴이한 형태를 띠는게 아닌가 생각합니다.
오늘, 아버지의 메일을 보고... 예수님의 십자자가가 떠올랐습니다. 언제부터인지 모르겠지만, 예수님께서는 서먹서먹하고 어수선한 우리 가족을 조금씩 조금씩 하나님의 사랑으로 이끌어 주셨습니다. 그리고 그 댓가는 이미 오래전 2000년전에 예수님께서 치루어주신게 아닌가 하는 생각이 들었습니다.
이 기적의 십자가를 널리 널리 알리는 삶을 살고 싶습니다. ^-^

박빛나

2008-03-19 07:44:19

우리는 세상으로 보냄 받은 예수님의 제자들이다.

오늘은 홈페이지에 들어오면 리플만 빨리 달고 나가서 일찍 자려고 맘을 먹고
있었는데, 여러분의 글이 너무나 감동이 되서 여기까지 와버렸습니다.
세족식에 관해서, 십자가에 관해서 무지했던 것은 나 뿐만이 아니었구나...
가슴이 아팠습니다.
실은 지난 월요일 속회 식구들에게 메일을 보내면서 지난 세족식에 제가 얼마나
감동을 했었는지를 적었었기 때문입니다. 바로 전날 설교 말씀을 들었으면서,
십자가의 감동보다 세족식의 감동을 생각했던 제 자신의 모습에 에휴~ 하는
한숨이 나왔습니다.

부끄러운 고백이지만, 고난 주간 중에는 하루 휴일이 있습니다.
춘분. 봄으로 들어가는 날이죠. 저는 그날 회사 직원들과 온천 여행을 갈까를 생각했었답니다. 지난 주일 말씀 속에서 고난주간에 대해 회개하고, 여행을 취소하긴 했지만, 아쉬운 마음이 남아있었던 것이 사실이었습니다.
오늘 회사에서 잠깐동안 아르바이트를 다시 하게된 녀석에게 이번 여행이 취소되었고, 그 이유는 고난 주간이기 때문에 경건하게 보내고 싶어서 였다고 말했습니다. 그 친구는 자기가 다니고 있는 교회는 새벽 5시에 예배가 있어서 집이 먼 자신은 참석 할 수가 없노라고 말하면서 많이 부러운 눈빛이었습니다. 에고..주님...
이렇게 좋은 환경에서 예배하게 하시고, 사랑해 주시는데, 딸네미가 참 못나서 죄송해요. 남은 특새는 꼭 쥐고 달려가겠습니다. 하고 결심했습니다.
쉬는 날도 있었는데, 여행 못간 아쉬움만 있었고, 특새를 잘 감당했으면, 기쁜 마음으로 진정한 휴일을 보낼 수 있었을것을 이제사 후회하지만, 지난 일 보다는 앞으로의 일을 사모하겠습니다.

아빠, 아버지.
아빠, 아버지의 사랑이 우리안에 가득 넘쳐나서 전하지 않고는 견딜 수 없는 우리가 되게 하옵소서. 우리가 예수님의 제자됨을 잊지 않고, 나는 그리스도인이라고 자랑스럽게 말하며, 행하는 사람이 되게 하옵소서. 주님 기도합니다.

서조은

2008-03-19 08:03:50

‘너희는 온 천하에 다니며 만민에게 복음을 전파하라’(막16:15)

'세족식'이라 하면, 섬김과 겸손이 떠올랐었는데,
이번주 목사님의 설교를 통해서 예수님의 십자가와 예수님의 증인되는 삶이란
또다른 이미지를 갖게 되었습니다.

예수님께서 제자들의 발을 하나하나 닦아주실때에 마음을
미천하고 어리석은 제가 감히 상상해 보았습니다.

자신의 죽음을 앞두고, 십자가를 짊어지시기 전에 얼마나 두려우섰을까요?
아마 저 같았으면 하나님께 그 고난을 제게서 영원히 거두어 달라고 끝까지
소리쳤을 겁니다.
하지만 예수님은 역시 그러지 않으셨습니다.
분명 예수님은 당신보다 죄악된 세상에서 헤메며 살고 있는 우리를
불쌍히 여기시며 우리를 위해 끝까지 애쓰셨습니다.

제자들에게 장엄한 설교보다 몸소 자신이 행함으로써 깨닫게 하시고
보혈로 인한 죄씻음과 그것을 다른 영혼들에게 전해야 한다는
우리들의 사명을 일깨워주시기 위해서 몸소 허리를 굽히시고
당신의 손으로 미천한 우리들의 더러움을 깨끗게 해 주셨습니다.

요즘 사역훈련을 받으면서, 주일 예배를 드리면서 가장 크게 느끼는 것이
있는데, 바로 내가 똑바로 살지 못하고 인생을 허비하고 있다는 생각입니다.

예수님께서 날 위해 주신것은 예수님의 전부인데, 전 예수님을 위해서
저의 10분의 1도 드리지 못하며 살아 갑니다.

예수님의 그 사랑을 전하라고 지음받았는데,전 제 목구멍의 기름칠
할것만 생각하며 살았습니다.

예수님의 십자가를 따라 살아가야 하는데, 세상 욕심에 눈이 가리워져
돈만 쫓아 살았습니다.

인생의 목적과 나의 사명을 잘 감당하며 사고 싶습니다.
예수님의 그 피를 헛되게 쓰고 싶지 않습니다.
십자가의 능력과 예수님의 사랑을 전하며 살고 싶습니다.

신왕수

2008-03-19 16:43:21

“인류 역사상 가장 위대한 일, 가장 복된 일이 일어났던 한 주간이 있다. 만약 이 한 주간이 없었다면 모든 인류는 절망과 암흑에 묻혀 버렸을 것이다. 이 한 주간으로 인하여 인류의 운명은 사형수에서 자유자로 바뀌게 되었다. 인류 최고의 주간인 이 주간이 바로 ‘고난 주간’이다.”
⇒ 가장 복된 일이 일어나고 있는 요번 주간에 나의 삶을 돌아보고자 한다. 과연 나는 사형수에서 자유자로 바뀐 그 은혜로운 사실을 얼마나 기억하고 있을까? 오늘 새벽 예배 말씀 중에 사람이 은혜를 너무 잘 잊어버린다는 말이 딱 나를 향한 말씀이라는 생각이 들었다. 어느 순간 난 원래 자유자였어 라는 말도 안 되는 생각을 하고 있는 자신을 발견하게 되었다. 감사하지 못하고 당연한 일로 받아들이고 있는 나는 과연 하나님이 보시기에 아름다우실까? 절대 아닐 것이다. 은혜를 알자!! 지혜를 지니자!! 요번 고난주간을 통해서 다시 한번 그 은혜를 되새기는 기회로 삼아야겠다.

“성찬식이 우리를 ‘위해서’ 해 주신 십자가의 ‘은혜’를 잘 보여 준다면, 세족식은 우리에게 임한 십자가의 ‘능력’을 보여주고 있다고 할 수 있다. 예수님은 성찬식과 세족식을 통해서, 영적인 십자가를 육적으로 잘 와 닿도록 형상화해 주셨다. 하지만 잊지 말아야 할 것은 이 두 의식의 본질은 주님의 십자가라는 사실이다.”
⇒ 본질을 파악하는 길이 사는 길이다. 성찬식도 세족식도 전부 십자가가 본질이다. 이 본질을 잊는 순간 나는 중얼거리는 주둥이에 지나지 않을 것이다. 우리 주님께서는 나를 위해서 십자가를 지셨다. 그 부끄러운 모욕의 십자가를 지셨다. 그 힘들고 힘든 십자가를 아무 흠도 없으신 주님께서 나를 위하여 지셨다. 나를 얼마나 사랑하셨으면 그러셨을까 하는 생각이 든다. 예수님의 능력은 참으로 대단하다. 예수님 이전의 시대까지는 십자가가 가장 경멸의 대상이었다고 하지만, 지금은 십자가가 가장 많이 사용되어지는 목걸이 팬던트라고 한다. 이런 단순한 것만으로도 예수님의 능력을 알 수 있지만, 나의 삶은 그렇지 못한 거 같아서 반성이 된다.

김선아

2008-03-20 00:16:05

인류를 위한 하나님의 최고의 대작은 천지를 만드신 것이 아니라, 십자가를 세우신 것이다. 십자가에는 하나님의 모든 것(독생자까지)이 다 투자되었기 때문이다. 우리는 우리를 위한 하나님의 대역사 앞에 구경꾼으로 남지 말고, 십자가의 주인공으로 들어가서 감사하고 감격하며 헌신할 수 있어야 한다. 왜냐하면 십자가의 모든 일은 하나님을 위한 일도 아니요, 다른 사람을 위한 일도 아니요, 오직 당신 자신을 위한 일이기 때문이다.

나를 위해 독생자 아들을 세상에 보내신 하나님과 그 말씀에 순종하여 모진 핍박과 고난 속에 돌아가신 예수님을 생각하면 너무나 감사해서 나의 삶을 모두 바쳐 따르고 순종해야 함이 마땅한데 나는 부활절 쯤만 다가오면 그 은혜에 잠깐 감동하고 평상시는 그 사랑이 너무나 당연한 듯 지내온 거 같다.
나는 그 분께 해드린 것이 없는데.. 죄인인 나를 사랑하셔서 구원해 주신 것을 생각하면 감사함과 죄송함과 기쁨이 교차하는 마음이 생긴다.
앞으로 부활절만이 아닌 항상 십자가의 은혜를 생각하며 순종하는 삶으로 감사하며 살아야겠다.
이제 내가 육체 가운데 사는 것은 나를 사랑하사 나를 위해여 자기 자신을 버리신 하나님의 아들을 믿는 믿음 안에서 사는 것이라! 아멘!

최홍근`

2008-03-20 00:37:55

내가 십자가에서 진짜 죽는 것이 아니라, 예수님이 지신 십자가를 전하기만 하면 된다. 그러면 동일한 죄 씻음, 구원의 역사가 일어난다.
‘발을 씻겨 주는 것’은 종의 마음을 가지고, 다른 사람의 죄를 복음으로 씻어 주는 것이다. 지금도 주님은, 우리가 십자가의 복음을 전하기를 간절히 원하신다.

예수님께서는 나의 죄를 씻어주기위해 십자가에 못박혀 돌아가셨다.
지금 나는 내 자신을 십자게 못 박을 필요없이 그냥 사람들에게 예수님의 구원의 보혈을 전도하기만 하면 되건만 그런데 나는 그것 하나도 잘 못하고 있다.
예수님과 비교하였을 때 몇배 아니 몇만배 이상 쉬운 일이건만 전도 하나 제대로 못하는 내 모습에 예수님께 죄송하다.
이제 앞으로는 많은 사람들을 전도 할 수 있는 그러한 홍근이가 될 수 있도록 열시미 노력하고 기도하도록 하여야겠다.
하나님 저를 통하여 많은 사람들이 전도받을 수 있길 원합니다..

배준형

2008-03-20 06:02:21

물론 겉으로 나타나는 모습은 ‘섬김’이다. 그러면 그 본질은 무엇일까? 섬김을 그릇이라고 한다면, 그것에 담겨야 할 내용물은 무엇일까? 그것은 바로 십자가요, 복음이다.

섬김이라는 것을 그냥 도와주는 것이라고 생각했던 내 모습을 고백한다. 그런데 정작 가장 중요한 예수님이 보여주신 섬김을 묵상하며 섬기지 못했던 모습을 회개한다. 설교 말씀중에 예수님이 발을 씻기신 것에 대해서 말씀하신 부분이 마음속에 남는다. '내가 너를 씻어 주지 아니하면 네가 나와 상관이 없느니라' 그 때 제자들을 씻기신 예수님은 정말 자신을 하나님의 순종의 도구로 드린 모습이야말로 내가 섬김을 하기위해 기본으로 마음에 품고 있어야 하지는 않을까 생각이 된다.
역시 예수님 처럼 자신을 낮추는 모습이 진정한 섬김을 보이는 재료가 아닐까 생각이 된다. 내 주위에 나를 힘들게 하고 피곤하게하는 사람들이 나를 정말 순종시키며 섬기게 하는 귀한 영혼들인것 같다.
예수님은 나를 위해 모든 것을 주신 분이시다. 고난 주간을 살고 있는 내가 정말 이 은혜를 기억하며 살아가는지 내 모습을 뒤돌아 본다. 나의 환경만 보고 힘든 것을 고난이라고 하는 연약한 모습을 버려야 함을 고백한다. 십자가에 비교할 것은 하나도 없다. 고난을 고난이라 생각하는 것 자체가 십자가를 힘없게 하는 것이라 여기고 모든것을 감사하는 한주가 되어야 겠다.
이 세상을 섬기신 예수님이 나 또한 이 세상을 품고 섬기길 원하신 것을 믿는다.

박은주

2008-03-20 07:25:37

성찬식이 우리를 ‘위해서’ 해 주신 십자가의 ‘은혜’를 잘 보여 준다면,
세족식은 우리에게 임한 십자가의 ‘능력’을 보여주고 있다고 할 수 있다.

이사를 하고 처음으로 새벽예배에 참석했다. 자는 진수를 남편에게 부탁하고 참석한 오늘은 특별히 고난주간 성찬식이 있은 날이다. 매년 두어번 하는 성찬식인데도 때마다 나는 눈물범벅이 된다.
평소에 맹숭맹숭하기만 하던 십자가의 은혜가 포도주를 찍은 조그만 빵조각이긴 하지만 이날만은 그것을 받아 먹을 때 목이 메인다. 잊고 지냈던 십자가의 은혜를 다시 한번 뜨겁게 느꼈다.
그리고 잊지말아야지, 잊지말아야지 하며 또 회개한다.
정말 십자가를 통해서 전부, 다를 주신 주님을 잊지말고 늘 감사할 수 있어야겠다.
내일은 세족식이 있다. 세족식은 내 삶가운에 앞으로 실천해야할 주님의 명령이란 생각이 든다. 가장 낮은 곳에서 참 섬기는 자의 모습을 보여 주신 주님, 발을 씻기고 십자가에 대신 달려 죽으시고,.
나도 섬기며, 십자가의 도를 전하고 실천하며 참 능력의 사람으로 살도록 애써야겠다.

홍은미

2008-03-20 10:36:22

예수님이 나를 씻어 주지 않으면 절대로 안 된다. 예수님이 씻어 주시지 않으면 깨끗함을 받지 못한다. 더러운 죄가 해결 받을 수 없다. 예수님이 나를 씻어 주심으로 예수님은 우리의 구세주가 되신다. 여기서 ‘씻어 준다’는 것이 육의 발을 의미하는 것일까? 아니다. 영의 발인 죄를 말한다.

수요 새벽예배를 마치고 부활절준비를 하느라 제자 훈련반이 잠깐 모였었는데 거시서 총무님이 하신 이야기가 계속 여운이 남아 혼자 아침부터 히죽히죽 웃음이 나왔다. 총무님의 귀여운 아들 대연이의 이야기였다. 총무님이 대연이에게 주일날 뭘 배웠냐고 물으니 예수님이 제자들 발 닦아준 이야기를 배웠다고 하는 것이다. 그래서 총무님이 그럼 대연이는 예수님이 왜 제자들 발을 닦아 주었는지 알아? 하고 물었더니 대연이는 "제자들 발이 지저분해서.."라고 대답했다는 것이다.

너무 귀엽고 천진난만한 아이의 대답이라고 생각해서 아침내내 생각하며 웃었었는데 곰곰히 생각해 보니 그 말이 맞는 것도 같고....목사님 설교를 읽다보니 대연이의 천진난만한 대답이 정답인 것 같다는 생각이 들었다.

맞다. 예수님은 지저분한 발을 깨끗하게 하시려고 씻어주신 것이다. 예수님이 아니시면 깨끗해질 수 없으니까.... 내가 너무 더러워서 내 죄가 너무 지저분해서 예수님은 깨끗하게 해 주시려고 씻어 주신 것이다. 내가 깨끗했다면 내가 죄가 없다면 예수님은 그 귀하신 보혈로 나를 씻어 주지 않으셔도 됐을 텐데... 결코 십자가에서 그렇게 고통스럽게 희생하지 않으셔도 됐을 텐데...
콧물 흘리며 흙투성이, 상처투성이,눈물범벅이 되어 방황하는 나를 따뜻하게 안아 주시고 씻어주시고 사랑으로 안아주신 분이 예수님이시다.
예수님의 그 한없는 사랑을 어떻게 다 갚을 수 있을까.... ! 예수님 늘 예수님의 사랑을 잊지 않게 해 주세요... 예수님이 보여주신 그 사랑으로 복음을 전할 수 있도록 노력하겠습니다.

김헌규

2008-03-21 00:38:30

십자가의 모든 일은 하나님을 위한 일도 아니요, 다른 사람을 위한 일도 아니요, 오직 당신 자신을 위한 일이기 때문이다. 고난주간의 구경꾼이 되지 말고, 믿음으로 함께 십자가를 세워보자. 고난에 동참해 보자. 그러면 남다른 주님의 은혜가 당신을 충만케 하실 것이다.

대연이를 통해 받은 은혜를 함께 나누고 싶어 리플을 다시 올립니다.
아직까지 글씨를 읽을 줄 모르는 대연이지만, 엄마나 아빠가 읽어준 책의 내용들을 그대로 외워서 동생인 동연이를 앞에 앉혀 놓고 책을 읽어 주기도 하는데, 그런 대연이가 가장 소중하게 생각하는 책이 있습니다.
예전에도 제가 한번 이플에 올린 것 같지만, 아장아장 성경이라는 어린이용 성경책입니다.
그런 대연이에게 지난 주말 고난주간을 앞두고 예수님의 십자가에 대해서 같이 성경책을 읽어주는 시간을 가졌습니다.
예수님의 십자가의 사건과 부활의 사건을 대연이를 무릎에 앉혀놓고 성경책을 읽어주었습니다.
제자훈련의 영향이겠지만, 성경책을 읽어주면서 대연이에게 성경책에 나와 있는 내용에 대해서 그 상황에 대연이를 대입하여 생각해 보게 하고, 대연이에게 읽어준 내용에서 깨달은 것을 다짐하게 하는 시간을 갖곤 합니다.
그래서 이번에는 예수님께서 십자가에서 돌아가실 수 밖에 없었던 이유를 설명하면서 대연이가 엄마, 아빠 말씀도 안 듣고, 동생을 때리거나 밀어서 괴롭히고, 주일학교에도 가지 않아서 예수님께서 돌아가셨다고 이야기를 해 주자, 대연이가 이번주부터는 엄마 아빠 없이 친구들과 주일학교에 혼자서 가겠다고 이야기를 하였습니다.
조금 의심스러웠는데 주일날이 되어 교회에 도착하자 대연이가 스스로 2층에 올라가 주일학교에 혼자서 간 것입니다.
거기에 그치지 않고 전도사님으로부터 대연이에게 무슨 일이 있었느냐고 대연이가 주일학교에 혼자서 오더니 앞자리 앉아서 열심히 설교를 들었다는 대연이의 달라진 모습에 대해서 듣고는 흐뭇한 미소를 감출 수 없었습니다.
주님의 십자가는 아무리 어린 아이라 할 지라도 변화시키는 놀라운 생명력이 있습니다.
월요일날 회사가 조금 늦게 끝나 집에 오자 9시정도가 되어 늦은 저녁을 먹게 되었습니다.
아내가 차려주는 음식상을 받으며, 아무 생각없이 평소에 하던대로 테레비리모컨으로 테레비를 켜자 아빠와 같이 밥을 먹겠다고 기다리던 대연이가 갑자기 테레비를 켜면 안된다고 야단을 치는것이었습니다.
이유를 알아보자, 아빠가 출근한 뒤에 대연이와 엄마가 한가지 약속을 정했답니다.
이번주는 예수님께서 우리를 위해서 고난을 당하시고 죽으신 주니까 일주일동안 대연이가 좋아하는 어린이프로를 비롯해서 테레비를 보지 말자고 약속을 정하고, 하루동안 테레비를 켜지도 않고 있었는데, 그런 내막을 모르는 아빠가 테레비를 켜자 아들인 대연이가 우리 집안의 약속을 지키기 위해 나선 것입니다.
아빠도 기꺼이 그 약속에 동참하여 일주일동안 저희 집에서는 테레비를 켜지 않습니다.
그 다음날도 비슷한 시간에 퇴근한 아빠가 대연이를 안고 대화를 하였는데, 대연이에게 대연이는 아빠와 안 닮은 것 같다고 사람들이 말한다고 하자 대연이가 몹시 화를 내면서 대연이는 아빠를 닮았다고 합니다.
그러면서, 대연이는 아빠의 아들이고 싶고 아빠를 닮고 싶다고 말을 하였습니다.
예전에 읽은 책에서 자식은 아버지의 이름을 지키고 밝히는 등대라는 구절을 읽은 적이 있습니다
그래서 예수님은 하나님의 아들로서 그 힘든 십자가의 길을 걸어서 죽기까지 아버지의 뜻에 순종하시고 부활이라는 찬란한 영광으로 아버지께 영광을 돌리지 않았던가 하고 생각을 해 보면서, 과연 저는 하나님의 아들이라는 그 이름에 어떠한 사람인가를 생각하였습니다.
대연이처럼 간절한 마음으로 하나님의 아들이고 싶고, 하나님의 닮고 싶어서 다른 사람들이 뭐라고 하건 하나님만을 바라보고 그분께 나아가고자 얼마나 노력하는 삶을 살았는지를 생각해 보았습니다.
과연 하나님의 이름을 지키고 밝히는 등대로서의 삶을 살았는지를 생각해 보았습니다.
아직까지 부족한 모습투성이지만, 이번주간 하나님의 아들로서 등대의 삶을 살 수 있기를 소원합니다.

마준철

2008-03-21 01:45:21

"‘발을 씻겨 주는 것’은 종의 마음을 가지고, 다른 사람의 죄를 복음으로 씻어 주는 것이다. 지금도 주님은, 우리가 십자가의 복음을 전하기를 간절히 원하신다. ‘십자가의 도가 멸망하는 자들에게는 미련한 것이요 구원을 받는 우리에게는 하나님의 능력이라’(고전1:18)"

고난 주간 한 복판에서 십자가 보혈의 은혜를 주신 하나님께 감사를 드립니다. 특히 오늘이 세족 목요일이어서 오늘 말씀이 더 깊이 와 닿는 것 같습니다. 지난 주일 예배 때 저희 교회에서도 세족식을 했지만 저는 이제까지 세족식을 고난주간에서는 필수코스(?)로 하는 한 의식으로만 여겼던 것을 솔직히 시인합니다. 세족식에 어떤 깊은 의미를 두지 못했었습니다. 어떤 분위기가 주는 감동만을 추구했다고나 할까요....

오늘 주신 말씀처럼 제자들이 예수님께 씻김을 받는 것과 십자가에서 우리가 예수님의 보혈로 죄 씻김을 받는 것이 얼마나 중요한 연관이 있는 가를 다시금 깨닫게 되었습니다. 죄라고 하는 것을 하나님께서는 얼마나 심각하게 여기셨는가를 세족식과 십자가 사건을 통해서 통렬히 보게 됩니다.

저는 예수님을 영접하고 나서 처음에는 정말 죄도 안 짓는 그런 사람이 될 줄로 알았습니다. 그러나 시간이 지나면서 현실은 전혀 그렇지 않았습니다. 틈만 나면 짓는 것이 죄고, 악이었습니다. 내 안에 예수 그리스도가 실재하신다고 하면서도 죄 안에서 뒹굴고 있는 나는 도대체 뭐란 말인가? 정말 해결할 수 없는 죄 때문에 자기 정죄감에서 얼마나 시달렸는지 모릅니다.

그렇게 죄 문제를 덮어두다가 이제는 더 심각한 상황에 빠져들어가는 내 자신을 보게 되었습니다. 그것은 죄를 너무 가볍게 여기는 것이었습니다. "뭐 나만 죄 짓나? 다른 사람들도 다 똑같던데 뭐, 세상에 어떻게 사람이 죄 안 짓고 살 수 있나?" 이렇게 스스로를 합리화하면서 죄를 지은 것을 뻔히 알면서도 그냥 지나가는 내 자신을 보면서 더 무서운 겁니다.

죄 가운데 스스로 자책감에 빠져 한탄만 하는 것도, 또 죄를 가볍게 여겨 무감각해지는 것도 하나님의 뜻이 아님을 알게 되었습니다. 그래서 사도 바울도 "나는 날마다 죽노라"고 고백했나 봅니다. 그래서 저는 오늘 세족식을 행하여 주신 예수님께 너무나 감사드립니다. 십자가에서 흘려주신 보혈의 은혜는 더더욱 말할 것도 없구요. 세족식 안에는 성결의 은혜가 있음을 알게 되었습니다. 나를 씻겨주는 은혜를 보게 되었습니다. 그래서 저는 내가 회개할 수 있는 것이 얼마나 큰 축복인지 새삼 알게 되었습니다. 왜냐하면 씻기시는 십자가의 은혜를 믿기 때문입니다. 죄 가운데 넘어졌다 하더라도 회개함으로 나아가면 십자가의 예수님은 또 나를 씻겨 주시는 은총을 믿습니다. 회개의 은혜가 진짜 축복임을 믿습니다.

한가지 더 깨닫게 되었던 것은 진정한 회개는 남이 잘못했을 때 용서하는 거라는 사실입니다. 이미 예수님은 곧 제자들이 당신을 버리고 다 떠날 것을 알면서도 제자들의 발을 씻기셨던 것입니다. 이미 용서를 준비하셨던 거죠. 예수님이 친히 제자들의 발을 씻겨주셨던 것은 제자들이 언제가 그들의 잘못을 알게 될 때 세족식을 기억하면서 서로의 잘못을 용서하는 사람이 되기를 기대하셨다는 것을 알게 되었습니다. 오늘 말씀 중에 "다른 사람의 죄를 복음으로 씻어준다"라는 말이 얼마나 가슴에 와 닿는지 모르겠습니다.

최수진

2008-03-21 05:10:54

이번주는 고난주간이다.
하지만 한국에 와 있는 관계로 그다지 고난스럽지는 않다
오히려 일본에 있을때보다 너무 편하게 지내는 것 같아 죄송한 마음이 든다
매일 새벽기도에 나가는게 그나마 고난에 참여한다면 참여한다고 해야하나?!

이 고난 주간에 하나님께서 아무도 해결해 줄 수 없는 우리의 죄의 문제를 해결해 주시기 위해서 목숨까지 잃어 가면서 우리를 아니 나를 구원해주셨다.
한국에 와서 평소보다 더 많이 예배 드리고 더 많이 기도하고 더 많은 주님의 말씀을 읽으면서 나의 마음속의 문제가 하나씩 해결되는 것 같아 많은 감사를 드렸다.

아직 나는 한번도 세족식을 경험 한 적이 없다.
세족식과 별로 인연이 없나?
작년에도 참석하지 못했고 올해도 참석하지 못했다
아직 세족식을 경험하지 못해 어떤 감정인지는 잘 모르겠다.

하지만 곰곰히 생각해볼때 내 발을, 내 지저분한 발을 내 미는 것이 부끄러울 것 같다는 생각을 했다.
그렇지만 그 부끄러움을 참지 않는다면 내 발은 계속 지저분 한 채로 남을 것이다.
우리의 죄도 그런 것 같다.
부끄럽다고 내 죄, 치부를 드러내지 못한다면 예수님께서는 내 죄를 씻어주시지 못할 것이며 그럼 난 계속 죄를 지고 살아 갈 것이다.
해결 받기 위해서는 이야기 해야한다 털어 놓아야 한다.
예수님과 만나는 시간 그 시간이 내 필요를 구하는 것만이 아니라 내 부끄러운 것도 내어놓는 시간이 되어야 한다는 생각이 들었다.

내가 무엇이길래, 이 작은 나를 위하여 예수님께서 목숨까지 내어 놓으며 낮아지셔야 했는가? 이렇게 황송한 대접을 받은 나, 나도 돌려줘야할텐데.. 라는 생각이 들었다.
섬김의 그릇에 십자가의 복음을 담아서 사람들에게 전해 주어야 한다.
내가 받으려고 하는게 아니라 내가 섬기는데 힘쓰는 섬김쟁이가 되고 싶다.
거기에 예수님의 십자가, 그 사랑도 같이 전하는 자가 되어야지..
아직 나는 너무 용기가 없다 하지만 이런 나도 써 주시겠지...

이동훈

2008-03-21 05:38:34

인류 역사상 가장 위대한 일, 가장 복된 일이 일어났던 한 주간이 있다.
만약 이 한 주간이 없었다면 모든 인류는 절망과 암흑에 묻혀 버렸을 것이다. 이 한 주간으로 인하여 인류의 운명은 사형수에서 자유자로 바뀌게 되었다. 인류 최고의 주간인 이 주간이 바로 ‘고난 주간’이다. 하나님께서, 아무도 해결해 줄 수 없는 우리의 죄의 문제를 해결해 주기 위해서, 목숨까지 잃어가면서 구원의 일을 해 주신 주간이기 때문이다. 하나님은 하나 밖에 없는 독생자 예수님을 죽이심으로, 우리를 살리는 십자가를 높이 세우셨다. 모세의 놋뱀을 바라본 이스라엘 백성들을 살리셨듯이, 예수님의 십자가를 믿음으로 바라보는 인류를 살리시기 위해서였다.

예수님이 우릴 위해 돌아가시고 또 부활에 기적을 보이신 고난주간이다. 우릴 위해
인간으로 오셔서 갖은 고통을 받으시고 피로서 번제하셔서 우리의 죄를 씻어 주시고 또 부활이란 기적으로 신으로 돌아가신 사건을 알고있다.
정말 나 같은 생명 또는 주님을 천시하고 박대하던 자들까지도 죄 사하고
하나님의 자녀가 될 기회를 주셨다. 정말 예수님이 생전에 선포하던 말씀들을
몸소 실천하시며 돌아가신 것이다. 너무 놀랍지 않을수 없다.
이런 예수님을 위해 내가 뭘 할 수 있을까 생각해 본다. 아직 많이 미약하고
힘이 없는 나지만 지금은 제자 훈련을 열심히 받으면서 주님께 헌신할 준비를
하는게 내게 가장 중요한 일인것 같다.

한영진

2008-03-21 08:21:49

[내가 십자가에서 진짜 죽는 것이 아니라, 예수님이 지신 십자가를 전하기만
하면 된다. 그러면 동일한 죄 씻음, 구원의 역사가 일어난다.
‘발을 씻겨 주는 것’은 종의 마음을 가지고, 다른 사람의 죄를 복음으로
씻어 주는 것이다. 지금도 주님은, 우리가 십자가의 복음을 전하기를
간절히 원하신다.]
나는 좀 의외였구나….
위의 은혜 넘치는 리플들을 읽고 생각하게 되었다.
성경 속의 예수님께서 제자들의 발을 씻겨 주시는 장면을 읽으면서
처음부터 나는 이 세족식이 예수님께서 십자가에서 돌아가심으로써
우리의 죄가, 나의 죄가 씻어져 깨끗하게 된다는 것을 의미한다고 생각했었다.
그것은 예수님께서 베드로에게 하신 이 말씀으로 인해서이다.
‘내가 너를 씻어 주지 아니하면 네가 나와 상관이 없느니라.’(요13:8)
오히려 섬김보다는 죄사함의 의미가 더 크다고 여겼기에
작년의 세족식 때 나는 그 크신 은혜에 더욱 감동해 눈물을 흘렸던 것이다.

바쁘다는 것이 자랑도 아니고, 자기 관리 소홀이라는 부끄러움도 있지만
나는 1월 중순부터 여태까지 여전히 바쁘게 산다.
욕심은 많아서 받고 있는 훈련에도 더욱 충실하고 싶고,
교회에 무슨 행사만 있다고 하면 하다못해 애 봐주기, 설겆이라도 하러
달려가고 싶은데 그게 맘대로 안되니 주님께 죄송하고 나름 속도 많이 상한다.
인간으로써 살기 위한 최소한의 활동, 즉 수면이나 식사 시간까지도 줄여가며
매일을 살면서 체중은 점점 더 줄어만 가지만
그래도 불평하는 마음은 들지 않았고 감사하며 살고 있다.
훈련 끝나고 언제나 향연이나 승우에게 설겆이를 떠맡기고 밥만 먹고
허둥지둥 교회를 나서면서 뒷덜미가 당기는듯한 느낌으로 미안하고,
어쩌다 교회 식구가 내게 전화를 해도 곧바로 전화 받은 적이 없으니
죄송하고,조금 더 많은 시간을 함께하지 못해 단 한분뿐인
사랑하는 속원님께 죄송하기만 하다.
원래부터 누구랑 차마시며 한가하게 잡담하는 걸 즐기는 성격이 아니기도
하지만 그러나 요 며칠 간은 도리어 이렇게 바쁜 생활을 보내고 있는 것이
감사하다는 생각이 들었다.
적어도 몇 사람은 나의 이런 생활을 알고 있으니
나의 무고함도 알아 주리라고 스스로를 위로할 수 있었다.
그리고 이번 주 고난 주간을 맞아 나는 별것 아닐 수도 있는 일에
억울함을 품고 있는 내가 한 없이 부끄러웠다.
십자가의 예수님께서는 이런 나 때문에, 나의 더럽고 무거운 죄 때문에
결코 죄짓지 않으신 그 순결하신 몸을 고통 속에 희생하셨는데
그걸 아는 내가 어찌 이런 작은 일에 고통스러워 한단 말인가….
적어도 이번 한주일 동안은 오직 십자가에 나의 마음과 생각의 초점을 맞추고
내게 있어 가장 위대하고 복된 일이 일어난 한주간을 보내자고 마음먹고
그렇게 나름 애쓰고 있다.
하나님 아버지의 나에 대한 크신 사랑, 십자가의 예수님의 은혜가 너무 커서
오늘 나는 너무나 행복하고 감사하다고 여긴다.
이 좋은 것을 믿지 않는 다른 이들에게도 전해주고 싶다.
지금보다 더한 열정을 가지고…..

박재훈

2008-03-21 08:50:45

의식으로서의 의미가 더욱 강했던 성찬식과 세족식.
예수님의 살과 피가 나를 구원해 주시고,
그것도 모자라 나의 더러운 죄마저도 씻어주시었다.
십자가의 사랑과 능력이 나에게 임했다.
모든 것이 나를 위한 인류의 최대 이벤트임을 망각할 때가 얼마나 많은가,
내가 받은 그 사랑을 셀 줄 모르는 욕심쟁이이지 않은가,
또한 내가 받은대로 남에게는 그대로 베풀 줄 모르는 배은망덕한 사람이지 않은가.
십자가의 사랑과 능력을 내 오만함과 죄 때문에
덮어두고 모르는 척 하는 어리석음을 어찌할까.
예수님처럼 섬기겠어요라고 말하지만,
어쩌면 웃으면서 양보하는 척하면서 남에게 군림하기를 원하고
그들이 나를 먼저 섬기어 주길 바라는 모순이 가득하지는 않은 것일까?
십자가의 보혈 덕분에 나는 살아났고 나는 용서함을 받았다.
하나님께 받은 그 사랑을 기억하고
한쪽 엄지발가락이라도 씻어줄 수 있는 섬김의 모습을 섬김의 마음을
매일 내 삶에서 이루어보자.

김수영

2008-03-21 09:41:17

이번 고난주간의 구경꾼이 되지 않고 고난에 동참 할려고 마음 먹고 있었
는데 갑자기 일이 몰려서 생활의 고난을 받고 있다. 내 마음에 들지 않기
때문에 한 디자인 가지고 몇번을 다시 만들고 평소 보다 몇배의 시간이
들었다 그중에 십자가 디자인이 너무 힘들었다.
예수님을 믿는 자로서 거래처 손님과 보이지 않는 자존심니 걸린 문제라서
나 역시도 완벽하게 만들고 싶었는데 하나 하나씩 모양을 만들어 가는데
하는 것마다 틀어졌다
속으로 예수님이 일부러 고난을 주시는 감 아니면 십자가의 중요성을
깨달으라고 하시는가 아무튼 오기로 만들어서 납품을 했는데 통과 되지
못하고, 다시 값을 쳐 줄테니 다시 만들어 달라고 또다시 주문이 들어왔다
아주 사람의 진이 다 빠진다. 예수님께서 너무 쌔게 역사 하셔서 몸도
피곤 하고 고나주간을 톡톡히 치르고 있다.

김정아

2008-03-21 20:50:06

예수님은 성찬식과 세족식을 통해서, 영적인 십자가를 육적으로 잘 와 닿도록 형상화해 주셨다. 하지만 잊지 말아야 할 것은 이 두 의식의 본질은 주님의 십자가라는 사실이다.


새벽기도를 통해서 세족식과 성찬식 그리고 예수님이 십자가를 지심으로 고난을 받으시고 돌아가시는 영상을 통해서 제겐 귀중하고 의미있는 한 주간을 보낼 수 있게 되었습니다. 마음으로 묵상하면서도 거기에 그치는 것이 아니라 실제로 세족식을 통해 주님의 사랑을 몸소 체험하고 느낄 수 있었습니다. 그리고 정말로 생각하게 되었습니다. 십자가의 주님의 이 사랑과 은혜를 안다면 결코 구경꾼이 아닌... 십자가의 주인공이 되어 감사하고 감격하며 헌신에 이르는 삶까지 살아갈수 있을 것입니다. 그럴려면 십자가의 은혜가 이 한 주간이 아닌 내 삶의 모든 부분과 영역에 있어서 늘 내 안에 충만해야 할 것입니다. 내 삶의 영역의 한 가운데에 십자가가 주인이 되어 그 십자가를 묵상하면서 매일매일의 삶을 살아갈 수 있기를 다짐합니다.


내가 십자가에서 진짜 죽는 것이 아니라, 예수님이 지신 십자가를 전하기만 하면 된다. 그러면 동일한 죄 씻음, 구원의 역사가 일어난다.


성경을 보면 예수님께서 세족식과 성찬식을 통해서 정말 하시고자 하시는 말씀은 바로 그 복음의 핵심인 십자가를 전하는 것입니다. 그것은 그 시대 제자들에게만 해당하는 것이 아니라 현재 지금 우리에게도 동일하게 말씀하고 계신 줄 믿습니다. 주님께서 십자가에 못박혀 돌아가시기 전 마지막 기도하시는 장면에서 현 시대를 사는 우리와 앞으로 믿을 믿음의 자손들을 위해서도 중보기도를 하셨는데... 그 기도문 중... 아버지께서 세상에 나를 보내신 것같이 나도 그들을 세상에 보낸다고.. 기도하셨습니다. 또 예수님이 세상에 아버지를 알린 것같이 저들도 아버지를 세상에 알리기를 기도하셨습니다. 핵심은 전도였습니다. 바로 전도하기를 원하셨습니다. 정말 십자가의 비밀을 안다면 전도해야 할 것인데.... 전도에 있어서는 왜그리 소극적인지... 그 십자가의 비밀과 은혜를 알면서도 전하지 않은 죄가 내안에 얼마나 큰지... 또 주님앞에 얼마나 죄스러운지 ...깨닫게 됩니다.
따로 시간을 내어서 전도하러 다니지는 못하더라도 기회있을 때마다, 전도하기를 주저하지 않는 제가 되기를 결심합니다.

이진애

2008-03-22 04:52:05


우리 죄 위해 죽으신 주
십자가 그 사랑 감사하네
날마다 주의 형상대로 변화되리라
십자가 우릴 새롭게 하네
놀라운 사랑 찬양하리라
우리를 위해 생명주셨네
놀라운 사랑 찬양하리라
십자가의 그 능력
십자가의 그 능력

고난주간이다.
일본에 온 이후로 매해 고난주간마다.. 내 나름대로 고난이라 여겨지는 일들이 일어났던 것 같다.
이번 고난주간에는.. 감히 ‘고난’이라 부를 순 없겠지만 한 주 동안 내내 몸이 좋지 않아 애를 먹고 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새벽예배에 참석했다면 더 좋았을 고난주간이 되어가고 있다. 맘이 아프다.

목사님께서 계속 십자가에 대해 말씀하시고 강조하셔서인지.. 이전까지와는 달리 십자가를 자주 묵상하게 되고 십자가와 관련된 찬양을 부르게 된다.
정말로 ‘놀라운 사랑’인데… 그 사랑을, 그 감격을 내가 제대로 누리며 감사하며 살고 있는지 돌아보게 된다. ‘主の愛は、すばらしい’.. 계속 이 소절이 내 입에서, 목에서 흘러 나온다.

그 놀라운 사랑을 받은 내가.. 이렇게 살면 안 되지. 더 열심히 감사하고 더 열심히 기뻐하고 더 열심히 사랑하고 더 열심히 전해야지. 힘을 내자.

신정은

2008-03-22 11:22:37

고난주간의 구경꾼이 되지 말고, 믿음으로 함께 십자가를 세워보자. 고난에 동참해 보자. 그러면 남다른 주님의 은혜가 당신을 충만케 하실 것이다.

고난주간에 동참하면 할 수록 나에게 다가오는 고난의 의미는 더욱 깊어지고 무거워짐을 느낄 수 있다. 십자가의 은혜와 능력이 얼마나 중요하고 큰 지, 작년에 비교해서 올 해 더욱 깊이 깨닫게 되었다.
부끄러운 이야기지만 나는 세족식을 위해서, 이틀전부터 발을 깨끗하게 하겠다고 씻은 발도 한 번 더 보고, 한 번 바를 로션을 두 번씩이나 발랐다. 그리고 속장님이 한국에 가셨으니, 속장님 아닌 다른 분에게 내 발을 맡기는 것이 너무나 민망하고 부끄럽다고 생각하면서 계속해서 걱정만 했다. 이때까지 나는 세족식, 그 의식과 모양에만 신경을 쓰고 있던 것이다. 그러다가 세족식 당일, 나는 세족식의 모양과 의식으로부터 나에게 임하는 십자가의 능력을 깨닫게 되었고, 깨닫는 순간 얼굴을 들 수 없고 눈물을 멈출 수 없을 만큼 나의 어리석음을 깨닫고 큰 은혜를 받았다.
눈을 감고 내 발을 대야에 담그는 순간, 지금 내 발을 씻기시는 분이, 누군가가 아닌, 바로 내가 십자가에 못 박은 예수님이시라는 것, 그분께서 친히 이렇게 죄 많은 나를 위해 자신의 보혈로 나의 죄를 씻어주시고 계신다는 사실을 깨닫고 나니 몸 둘 바를 모를 정도로 감동이 되었고, 감사하지 않을 수 없었으며, 지금까지 잘못 생각했던 나의 어리석음에 회개의 눈물을 흘리지 않을 수 없었다.
그러나 여기서 중요한 것은, 세족식에서 받는 감동에서 그치는 것이 아니라, 내가 받은 은혜와 십자가의 복음을 세상에 전해야 한다는 것이다.
이제 내가 세상에 나아가 발을 씻겨 주는 종의 마음을 가지고, 다른 사람의 죄를 복음으로 씻어 주는 제자가 되길 간절히 소망합니다.

김진희

2008-03-22 13:21:49

예수님은 굴림하는 왕으로서가 아니라, 섬기는 자의 모습으로 우리의 죄를 씻어 주시기를 원하셨다. 이것이 진정으로 용서하는 자의 모습일 것이다.

고난주간이라 다들 금식도 하고 예수님의 고난도 생각하며 감사하며 감격하며 보냈겠지만 나에게 이번주는 정말 내 멋대로였다. 잠은 잘수 있는한 최대한 자고 먹고 싶은 것이 있으면 먹고 짜증내고 싶으면 짜증내고 미워하는 사람은 떠올려가면서 미워하고 쓸데없는 인터넷만 실컷했던 일주였다.
이번주 알바하는 곳에서 한 아이가 계속 눈에 가시 같았다. 그래서 피곤하냐고 묻는 그 아이에게 너랑 일하면 피곤하다고 한 번도 아니고 여러번 말해 버렸다. 그러고 좀 미안해져서 집에 갈 때 미안했다고 내가 말이 너무 심했다고 사과를 했다. 그래놓고 또 만났는데 그 아이가 일본에는 어디 구경하면 좋냐고 물어보는데 나 안 돌아다녀서 그런거 모른다고 하니까 주말에 뭐 하냐고 그래서 교회가면 밤이나 되어서야 돌아온다면서 건성으로 대답하고 묻지 말라고 또 짜증을 내 버렸다. 교회 열심이네 하는데 아차 하고 너무나 부끄러워져 버렸다. 사역훈련 시간에 목사님이 전도 작정자 3명 내라고 하셔서 그 중에 한명으로 써서 냈는데...나를 어떻게 생각했을까? 전하지 못할거면 방해라도 말아야 되는데...
예수님은 정말 아무것도 아닌 나를 위해 목숨까지 내어주면서 까지 섬겨주셨는데, 나는 그 섬김이 조금도 하기 싫어서 짜증내고 내멋대로 굴어서 예수님의 십자가의 보혈을 아무것도 아닌 것 처럼 만들어 버렸다. 이 일주일이 생각할 수록 부끄럽고 죄송스러워서 쥐구멍에라도 숨고 싶은 심정이다.
예수님 죄송합니다. 예수님 얼굴이 먹칠하지 않고 살도록 노력하겠습니다.

양미옥

2008-03-22 21:34:02

믿음의 사람은 십자가에 늘 감동하고 감격하고 눈물 흘리는 사람이다.

수요일 저녁부터 두통이 심하게 오더니 목요일 새벽예배가 끝나고 목이 심하게 잠기면서 아파오는 것이다. 집에 갔더니 콧물이 나오기 시작하면서 온 몸이 아파오기 시작하는것이다. 그래서 좀 자면 나아 지겠지 했는데 왠걸 금요일에 회사 출근했는데 도저히 아파서 일이 안되는것이다. 누가 나를 때려서 온몸이 멍이 들어서 꾹꾹 찌르는것 같았다. 몸살인듯한데. 일본와서 두번째로 걸린 몸살인데 몸살 감기는 정말 힘든것 같다. 내가 힘들어하는것을 보시던 상사가 빨리 들어가라는 말에 조퇴를 하게 되었다.
평상시는 한시간만에 집에 도착하게 되는데 어제는 한시간 반을 걸쳐서 천천히 걸오게 되었다. 걸어오면서 예수님의 십자가를 생각하게 되었다.
마침 금요일이고, 이 시간쯤이면 예수님이 십자가에 달리실 시간인데..
나의 몸 아픈것도 이렇게 신경쓰이면서 아프면 금방 그 자리를 피하고 편안한 안식처로 돌아와서 쉴수있지만 우리 예수님은 피할수없는 것이고 결국 그 아픈 고통을 참아내시며 견뎌내시며 생명을 내어 놓으신 일을 감당하실수밖에 없다라는 생각을 하니 가슴이 뭉클해졌다.
예수님은 얼마나 아프셨을까.. 죄없이 죽을수밖에 없었던 십자가.. 나는 지금도 예수님께서 십자가에 달려 돌아가신 전에 고통을 당하시는 영화 장면등이 나오면 고개를 돌린다.. 솔직히 무서운 맘이 더크다.. 보지 않고 소리만 들어도 가슴이 아프다.. 내가 아픈것 보다 수천배는 더 아프셨을텐데 오직 하나님의 뜻을 이루기 위해 그리고 나 같은 죄인을 살리시기 위해 죽으셨다는것에 , 그리고 무서운 장면이 나올때 마다 고개를 돌리는 내가 , 원래는 내가 그곳에 그렇게 고통을 당하면서 달려있어야 하는 그자리에 예수님께서 대신해서 달려주신다는것이 얼마나 감사한지..
이렇게 십자가 사랑을 나에게 주셨는데 나는 예수님을 위해서 아무것도 한것없이 내몸 아프다고 핑계를 삼아 예배도 가지 않은것이 후회가 되고 회개가 된다. 이제는 핑계를 만들지 말고 정말 주님을 위해 한 발자국 한 발자국 걸어가는 자가 되어야겠다. 나의 몸 아픔을 통해 예수님의 십자가를 생각할수있게 하심을 감사한다.
이번 고난 주간 만큼 십자가를 생각해본적은 없었던 것 같다.

전한나

2008-03-23 06:50:14

물론 겉으로 나타나는 모습은 ‘섬김’이다. 그러면 그 본질은 무엇일까? 섬김을 그릇이라고 한다면, 그것에 담겨야 할 내용물은 무엇일까? 그것은 바로 십자가요, 복음이다. 우리는 섬김의 그릇에 십자가의 복음을 담아서 사람들에게 전해 주어야 한다. 그러면 십자가의 보혈이 그들을 깨끗케 해 줄 것이다.
말씀을 읽으면서 진정한 섬김의 자세와 전도에 대해 생각하게 되었다.
내가 그리스도의 향기를 내면서 진실한 그리스도인의 모습으로 살아간다면 주변에 있는 믿지 않는자들이 나의 모습을 보고 예수님을 알수 있을 것이다.
요즘 전도를 하고 싶은 가족들이 있는데 기도 하고 본을 보이면서 주님의 이름을 전하고 싶다.
주님 저로 하여금 그들이 주님을 알수 있도록 내삶이 진정한 그리스도인이 되길 기도 합니다.

홍인철

2008-03-23 07:10:54

고난주일을 맞이하여 예수님께서 십자가에 달려 돌아가신 일을 회상해봅니다. 예수님께서는 나를 위해 십자가에 못박히셨고 우리는 그로 인해 씻김을 받고 구원을 얻었습니다. 일본에 와서 고난주간 동안에 예수님께서 행하신 세족식을 직접 받으며 항상 낮은 곳에서 우리를 섬기시는 그분의 은혜에 다시금 감사하게 됩니다.

예수님께서 낮은 자로 행하시고 자신의 섬김을 받지 아니하면 예수님과 아무런 관계가 없는 자라고 하셨습니다. 예수님께서는 이 세상의 모든 사람들을 보실 때 더 가까워지길 원하시고 사랑하시길 원하실 것입니다. 그래서 모든 사람들을 섬기실 수 있으시고 또 자기의 목숨까지 바쳐 구원하셨을 것 입니다. 오늘 날 제 자신이 섬기는 삶을 살겠다고 다짐은 하고 있지만 그 분처럼 다른 사람들을 자신의 몸처럼 사랑하는 마음으로 섬기기는 쉽지 않을 것입니다. 그래서 길을 가다가 도움을 주고 싶은 사람이 있더라도 나와는 관계없다는 생각에 쉽게 지나치는 것이 아닐까 생각합니다.
섬기는 삶을 살기 위해 주위의 다른 사람들, 특히 어려움에 처해 나의 도움이 필요로 하는 사람들을 아무 상관없는 마음이 아닌, 나와 관계가 있는 사람처럼 생각을 할 때 정말 예수님과 같은 섬김의 자세가 나오지 않을까 생각합니다.

부활주일 저는 예수님의 피로 새로운 생명을 받은 사람입니다. 예수님 덕으로 생명을 얻었으니 예수님의 섬김의 모습을 본을 받아 나도 다른 이들을 진심으로 섬기는 사람이 되도록 하겠습니다.

남철

2008-03-23 07:43:40

예수님께서는 나에게 자신의 전부를 주셨는데 나는 주님께 드린것이 아무것도 없는것 같다
지금 부터라도 예수님께서 나때문에 흘리신 피, 나때문에 지신 십자가를 생각하면서 예수님께서 나에게 주신 사명을 잘 감당하면서 순종의 삶을 살아야겠다
그리고 항상 섬김의 자세로 살아가자

전수희

2008-03-23 08:28:50

십자가는 주님의 보혈이 친히 우리를 씻어 주신 장소이다. 우리가 진정 감격의 눈물을 흘려야 할 곳은 세족식이 아니라, 주님의 십자가이다. 세족식은 십자가의 작은 모형일 뿐이다. 세족식의 본질은 십자가이다. 예수님은 종의 마음으로 십자가에서 보혈로 우리를 깨끗케 해 주셨다.

고난주간… 그리고 부활절…
한 주간 고난 주간을 세상의 고난에 의해 허덕이며 지내고 말은 것이 분함으로 다가왔다. 세상에 치여 고난 주간을 예수님을 바라보는 게 아닌 그저 지내내기에 벅차게… 그냥 죄송하기만 하다.
세족식을 단 한번 해 본적이 있다. 중학교 시절 교회에서 수련회에 참석했을 때.
하지만 이 세족식이라는 것이 이렇게 감사하고 감사한 건지는 이제서야 새삼 알게 되었다. 그런데 그것보다 더한 감동으로 다가 와야 하는 것이 바로 십자가라는 것. 세족식은 하나님이 우리를 향한 사랑을 확인시켜주신 십자가의 모형이라는 것을 목사님의 설교를 통해서 가슴 아프게 와 닿았다.
날 씻어주신 그 십자가의 보혈을 잊지 않고 살아야겠다는 다짐을 다시 한번 해본다.

김철중

2008-03-23 09:04:39

발을 씻긴다는 것은 무엇을 의미할까? 물론 겉으로 나타나는 모습은 ‘섬김’이다. 그러면 그 본질은 무엇일까? 섬김을 그릇이라고 한다면, 그것에 담겨야 할 내용물은 무엇일까? 그것은 바로 십자가요, 복음이다. 우리는 섬김의 그릇에 십자가의 복음을 담아서 사람들에게 전해 주어야 한다.
성경에는 참 인생 처세에 관한 비밀이 많이 숨어있다. 섬기지 않고 전하면 그 효과는 별로 없을것이며 섬기면서 전하면 그 효과는 엄청날 것이다. 얼마전 부인의 소개로 이희돈박사님의 간증을 들은적이 있는데 주님에게 헌신하는 모습도 대단하지만 직장에서도 섬기는 모습에 많이 도전을 받은바 있다. 섬기는 모습을 통해 사람들에게 주님의 영향력을 끼치는 사람이 되고 싶다.

김명화

2008-03-23 10:07:24

예수님이 왜 ‘발’을 씻어 주었을까?
이것은 예수님의 ‘십자가의 구원’은 섬김의 극치임을 말해 주고 있다.

나는 예수님이 발을 씻겨주는 것은 너희도 이렇게 하라는
의미로만 받아들인 것 같습니다.
그런데 그 의미 이외에도 예수님이 보혈로
우리의 죄를 씻겨주는 의식이라는 것을 알았다.
주님의 그 낮은 자세로 절대적인 헌신과 섬김이 없이는
할 수 없는 일이 라는 것을 보여주고 있습니다.

믿음 안에서 서로의 허물을 덮어주고 아픔이 있을 때 함께 슬퍼해 줄줄 아는
제자가 되어야 한다라는 것을 깨달았습니다.
말씀에 은혜 받고 동생에게 전하였습니다.

김준근

2008-03-23 15:48:36

섬긴다는것.. 나또한 주님께서 그러셨던것처럼 다른이들의 발을 씻어주는 때가 오겠지? 라는 생각을 해보았다. 세족식때의 그 아름답고도, 가슴징한 광경들..
사람이 사람앞에 무릎꿇고, 더러운 발을 만진다는것도 힘든일이다. 하지만 사람이 아닌 우리의 주인되시는 분이 우리 발을 닦아주신다는것.. 이것은 전대미문의 사건이라고 할 수 있다.
다시 한번 생각해본다. 과연 내가 나아가서 주님의 뜻을 이룰 수 있을까 하는 것,
솔직히 약간의 부정적인 생각을 하는 내가 나는 겁이난다.
하지만, 한편의 나는 두근거린다. 주님의 제자로서 세상을 밝혀가는 등불이고,
나로 하여금 황폐해진 이 세상의 사람들을 하나둘 깨끗히 할 수 있다는 사실에 말이다.

최정민

2008-03-23 17:11:11

인류 역사상 가장 위대한 일, 가장 복된 일이 일어났던 한 주간이 있다.
만약 이 한 주간이 없었다면 모든 인류는 절망과 암흑에 묻혀 버렸을 것이다. 이 한 주간으로 인하여 인류의 운명은 사형수에서 자유자로 바뀌게 되었다. 인류 최고의 주간인 이 주간이 바로 ‘고난 주간’이다. 하나님께서, 아무도 해결해 줄 수 없는 우리의 죄의 문제를 해결해 주기 위해서, 목숨까지 잃어가면서 구원의 일을 해 주신 주간이기 때문이다.


과연 나는 누군가를 위해 내 자신을 이토록 희생 할 수 있겠는가를 생각해 보면 하지 못 할 것 같다. 정말 십자가의 사건은 예수님께 감사하고 또 감사하지 않으면 안되는 일이 라고 느꼈다.… 그리고 십자가의 사건의 전후 또한 감사해야 하고 배우고 실천해야 하는 일들이 라고 느꼈다.. 난 주위사람 들이나 속원 들에게 얼마나 예수님의 가르침을 실천 하고 있는가를 생각하면 부끄럽다… 내가 예수님의 십자가 사건에 감사하는 마음이 있다면 실 생활에서 실천이 있어야 한다고 느꼈다… 앞으로 예수님의 제자로서 실천하며 살 수 있는 내가 되기를 원한다.

하제란

2008-03-23 19:25:25

보혈에는 주님의 생명이 담겨 있기 때문이다. 십자가는 주님의 보혈이 친히 우리를 씻어 주신 장소이다.

이 시대, 이 시간까지 아직도 주님의 십자가의 역사가 흐르고 있음을 다시금 알게 하신 것에 감사한다. 주님이 값없이 주신 사랑, 그 사랑을 아무런 느낌 없이 받고 있는 나를 보며, 정말 나 같은 괴수가 없다는 생각을 하며, 주님의 보혈로서 내 안의 쓴뿌리들이 깨끗게 떨어져 나가기를 기도한다. 언제쯤이면 주님의 사랑을 그대로 알 수 있을까.. 그 사랑을 알고 있다면, 나는 지금 이대로 있지는 않을 것이다. 주님, 진정한 주님의 그 사랑을 알게 하여 주소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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