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중앙영광교회

받는 믿음, 드리는 믿음

이용규목사, 2008-03-10 16:44:0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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받는 믿음, 드리는 믿음

말씀//창22:15:-18

믿음의 아버지인 아브라함을 통해서, 우리는 두 가지 믿음을 배울 수 있다.
아브라함의 믿음은 이삭이 태어나기 전과 이삭이 태어난 후의 믿음으로 나눌 수 있다. 이삭이 태어나기 전의 믿음을 한마디로 말하자면 ‘받는 믿음’이요, 이삭이 태어난 후의 믿음은 ‘드리는 믿음’이다.

1.        받는 믿음
아브라함을 부르신 하나님은, 그에게 큰 민족을 이루게 하시겠다고 약속했다.(창12:2) 그 때 아브라함의 나이는 75세였다. 그 때부터 아브라함은 하나님이 주신 말씀 길을 출발하게 된다. 그가 얼마나 기다려서 이 말씀의 열매를 거두게 되었을까? 그는 25년을 기다려 이삭을 얻게 된다. 25년 동안이나 오래 참아 약속을 받았던 것이다.(히6:15) 말씀의 약속이 있어도 그 열매를 맺기 위해서는 기다리는 기간이 필요하다. 왜냐하면 말씀은 열매가 아니라 씨앗이기 때문이다. 씨앗이 심어지면 그것이 싹이 나고 자라서 열매를 맺는 데는 반드시 일정 양의 기간이 필요하기 때문이다.
오늘날 믿음의 사람들에게 큰 문제는 인내하지 못하는 것이다. 기다리지 못하는 것이다. 참고 기다릴 줄 아는 사람만이 열매의 주인이 될 수 있다. 참지 못하여 중간에 파 엎어 버리는 사람은 결코 그 씨앗의 열매를 거둘 수 없다.
아브라함이 이삭의 큰 열매를 거둘 수 있었던 것은 25년이나 꾹 참고 기다렸기 때문이다. 아들을 얻기 위해서는 ‘말씀대로 될 줄 믿고 기다리는 인내심’이 필요했던 것이다. 아들 이삭을 받은 믿음은 한마디로 ‘인내의 믿음’이었다. 이 믿음이 없으면 중간에 포기하거나 도망간다. 시험에 들기도 한다.
스스로 인내의 한계를 정하지 말라. 여기까지 참아 보고 아니면 그만둔다고 하는 사람은 반드시 실패하게 되어 있다. 이것은 사탄의 단수 높은 계략이기 때문이다. 예수님을 보라. 예수님은 어디까지 인내했던가? 마지막 한 방울의 피가 다 흘러 나올 때까지, 목숨이 끊어질 때까지 인내하지 않았는가? 그래서 예수님께는 부활의 영광의 열매가 맺어졌던 것이다. 참는데도 한계가 있다? 아니다. 인내에는 한계가 없다. 말씀의 열매가 맺어질 때까지 끝까지 인내하는 것이다. ‘받는 믿음’은 ‘인내의 믿음’을 말한다. 참는 자에게는 복이 오게 되어 있다.
광야의 이스라엘 백성과 모세를 비교해 보자. 같은 환경 속에서 이스라엘 백성들은 틈만 나면 불평과 원망을 하면서 이집트로 다시 돌아가자고 했지만, 모세는 물이 없어도, 먹을 게 없어도 아무렇지도 않았다. 왜 일까? 왜 이런 차이를 가져 왔을까? 모세는 변함없이 하나님을 믿었지만, 백성들은 벌써 인내심의 한계가 와서 하나님을 믿지 못했기 때문이다.
당신이 혹시 인생의 광야 시대를 맞이하였는가?  
물이 없는 광야를 두려워하지 말고, 믿음이 없는 광야를 두려워해야 한다.
물이 없는 광야는, 믿음의 사람들에게는 바위에서 생수가 터지는 기적의 현장으로 바뀌지만, 믿음이 없는 광야는 결국 죽음의 현장으로 버림받기 때문이다.
광야 길을 걷고 있는가? 물을 찾으려고 하지 말고, 믿음을 찾아라, 하나님을 간절히 찾아라. 그러면 광야가 기적의 현장으로 바뀔 것이다.
‘주여! 믿음의 오아시스가 보이게 하소서! 믿음의 샘이 터지게 하소서!’

2.        드리는 믿음
받는 믿음이 ‘인내의 믿음’이라면, 드리는 믿음은 ‘순종의 믿음’이라 할 수 있다.(창22:18) 받는 믿음보다 드리는 믿음이 훨씬 성숙한 믿음이다. ‘받고 나면 그만이다. 응답 받았으니 이제 다 됐다’고 생각하면 안 된다. 그 때부터가 중요하다. ‘받는 믿음’이 믿음의 초보라고 한다면, ‘드리는 믿음’은 믿음의 완성이기 때문이다. 위대한 믿음의 사람들은 모두가 하나님께 아낌없이 드리는 믿음의 소유자들이었다.
링컨은 대통령 취임 전 생일날에 이런 말을 했다고 한다.
‘저는 전능하신 하나님을 기쁘시게 하는 일이라면 언제라도 제 목숨까지 내 드릴 각오가 되어 있습니다.’
하나님께는 뭘 드려도 아깝지 않았던 것이다. 그 정도로 그는 하나님을 신뢰하며 사랑했던 것이다. 그래서 하나님은 그를 최고로 높이시고, 지금까지 존경 받게 하셨다.
바울은 이렇게 고백했다.
‘주 예수께 받은 사명 곧 하나님의 은혜의 복음을 증언하는 일을 마치려 함에는 나의 생명조차 조금도 귀한 것으로 여기지 아니하노라’(행20:24)
하나님이 아브라함을 시험하여 ‘네 아들 네 사랑하는 독자 이삭을 내게 번제로 드려라’고 했을 때 아브라함의 반응을 보고 하나님은 이렇게 큰 칭찬과 축복을 아끼지 않았다. ‘네가 이같이 행하여 네 아들 네 독자도 아끼지 아니하였은즉 내가 네게 큰 복을 주고…네 씨로 말미암아 천하만민이 복을 받으리니 이는 네가 나의 말을 준행하였음이니라’(창22:16-18)  
받는 믿음은 나 혼자만 충만케 되는 믿음이지만, 드리는 믿음은 온 세상을 충만케 하는 능력이다. 아브라함의 ‘드리는 믿음’을 통하여 천하만민이 복을 받고, 바울의 ‘드리는 믿음’을 통하여 온 세상이 복음을 받게 되고, 링컨의 ‘드리는 믿음’을 통하여 온 미국이 복을 받게 되었던 것이다.
나 한 사람이 ‘드리는 믿음’으로 하나님께 아낌없이 순종하면 내 가정이 복을 받고, 내 일터가 복을 받고, 내 교회가 복을 받고, 내 나라가 복을 받는 것은, 하나님이 정해 놓으신 이치이다. 하나님은 우리가 세상에 복을 나눠 주는 복의 샘터가 되기를 원하신다.
이 믿음의 물꼬는, 말씀에 순종하여 아낌없이 드림으로 열리게 된다. 드리는 자가 복된 자다.    


3.        아낌없이 바칠 수 있는 방법
사람들은 본능적으로 받는 것은 좋아하는데, 주는 것은 싫어한다.
그러면 어떻게 하면 아낌없이 독자까지도 줄 수 있을까?
아브라함은 어떻게 사랑하는 독자 이삭을 하나님께 번제로 드릴 수 있었을까?
성경은 그것에 대해 정확히 답을 주고 있다.
‘아브라함은 시험을 받을 때에 믿음으로 이삭을 드렸으니’(히11:17)
그러면 여기서 말하는 믿음으로 드린다는 것은 무슨 말일까? 구체적인 믿음의 내용이 그 다음에 잘 나와 있다. 아브라함은, 하나님이 이삭을 드리라고 하시기 이전에 하신 말씀을 믿었기 때문에 기꺼이 드릴 수 있었다. 그 말씀의 내용은 이렇다. ‘네 자손이라 칭할 자는 이삭으로 말미암으리라’(창21:12, 히17:18) 이 말은 곧 하나님께서, 다른 사람이 아닌 이삭을 통해서 아브라함의 자손을 번성케 하신다는 약속의 말씀이다. 그렇기 때문에 비록 이삭이 번제물로 죽는다고 해도 하나님은 그를 다시 살리실 줄로 믿었다.(히11:19) 만약 이삭이 다시 살아나지 못한다면 하나님의 이미 하신 이 말씀은 성취될 수 없기 때문이다. 그래서 아브라함이 믿은 하나님은 죽은 자를 살리시는 하나님이었던 것이다.(롬4:17) 그는 이미 부활의 능력까지 믿고 있었다.
이미 주신 말씀을 믿는 믿음이 이처럼 능력이 있다. 자신의 독자를 아낌없이 번제로 드릴 수 있는 능력이니 얼마나 힘이 있는가?
순종은 말씀을 믿는 것 만큼만 나온다.
그리고 또 한가지 그가 아낌없이 독자를 드릴 수 있었던 능력은 다윗이나 욥을 통해서 충분히 짐작할 수 있다. 큰 믿음을 가진 사람들은 모두가 만물의 소유권이 하나님께 있다고 고백했다.
욥은 모든 것을 이유 없이 다 잃었을 때,
‘내가 모태에서 알몸으로 나왔사온즉 또한 알몸이 그리로 돌아가올지라
주신 이도 여호와시요 거두신 이도 여호와시오니 여호와의 이름이 찬송을 받으실지니이다’(욥1:21)라고 했고,
다윗은 하나님께 어마어마한 재물을 즐거움으로 바칠 때,
‘여호와여 천지에 있는 것이 다 주의 것이로소이다…
나와 내 백성이 무엇이기에 이렇게 즐거운 마음으로 드릴 힘이 있었나이까
모든 것이 주께로 말미암았사오니 우리가 주의 손에서 받은 것으로 주께 드렸을 뿐입니다.’(대상29:11-14)라고 고백했다.
아브라함에게 이삭을 누가 주셨나? 주신 분은 당연히 하나님이시다. 이삭의 주인은 아브라함이 아닌, 하나님이시다. 아브라함은 다만 청지기로서 잠시 맡아 키울 뿐이다. 주인이 돌려달라고 하는데 관리인이 아까워한다는 것은, 무언가 큰 문제가 있는 것이다. 주님 것을 내 것이라고 고집하며 사는 어리석음을 범하지 말아야 한다. 세상의 관점에서는 법적으로 내 소유로 되어 있을지라도, 하나님 앞에서는 소유권을 내려 놓아야 한다. 엄연히 모든 것이 하나님의 것이기 때문이다. 생명까지도.(딤전6:13-만물에게 생명을 주시는 하나님; 새번역) 이것을 바로 아는 사람이 믿음이 깊은 사람이다. 그래서 그들은 생명까지도 당연히 아까워하지 않는다. 원래 주님의 것이기 때문이다.
소유권 문제는 순종의 문제와 직결된다. 먼저 소유권을 원 주인에게 돌려 주어야 한다. 그리고 자신은 선한 청지기의 모습으로 돌아와야 한다. 이것이 믿음의 회복이다. 아브라함이 그랬고, 욥과 다윗이 다 그랬다. 욕심이 문제다. 욕심이 우리를 하나님에게서 멀어지게 한다.
‘욕심이 잉태한 즉 죄를 낳고 죄가 장성한 즉 사망을 낳느니라(약1:15)  
이삭을 받는 믿음에 그치지 말고
이삭을 아끼지 않고 드릴 수 있는 믿음으로 성장하자.
이것이 믿음의 조상인 아브라함이 오늘 우리에게 물려 주려고 하는 믿음의 온전한 모습이다.
‘주여! 천하만민이 나(우리)로 말미암아 복을 받게 하소서!’  

41 コメント

최현숙

2008-03-10 17:12:44

아침 예배를 참석하기 위해 집을 나서는데 따뜻한 날씨와 바람이 봄이 와 있다는 느낌을 들게 했다. 순간 하나님께 얼마나 감사했는지.... 만물의 주인되신 하나님께서 또 일하시고 계시는구나...생각하면서 주님의 일하심을 느낄수 있는 마음을 갖는다. 이런 마음을 갖는 자는 얼마나 복된 자인가! 나는 참으로 복된 자다! 이 생각이 미치자 정말로 눈물이 핑 돌았다. 그 순간 로렌스 형제님이 가졌던 마음도 이런 마음이였을 거야....생각을 하니 너무 좋았다.

오늘도 나는 말씀의 씨앗이 뿌러진 현장에서 내내 눈물을 멈출수가 없었다.
목사님께서 대언해 주신 말씀 한마디 한마디가 내 영혼을 온통 회개의 마음으로 채웠다.
[물이 없는 광야가 무서운 것이 아니라 믿음이 없는 광야가 무섭다]
이스라엘 백성과 모세의 모습이 대조적으로 보였다. 불평과 원망은 그 단어라도 입에 올려서는 안되겠다는 생각에 생각을 거듭해본다.
아브라함의 받는 믿음에서 드리는 믿음으로 하나님을 기쁘시게 했던 모습은 또 얼마나 나를 감동케 했는지....
링컨의 고백처럼 하나님을 기쁘시게 하는 일이라면 목숨까지도 드릴 각오가 되 있다는 말은 그 비밀을 깨닫는 자만 할 수 있는 고백이라 생각이 든다. 드리는 믿음은 위대하다.
내가 하나님의 기쁨이 되길 원한다면 나는 무엇을 드려야 하는가?
주님앞에 아낌없이 드리는 순종의 믿음을 나는 어떻게 소유할 수 있을까?
그것은 말씀을 믿는 믿음이라 했다. 나에게 이미 주어진 말씀에 대한 믿음이 있다면 나는 강하고 담대하게 행동으로 순종 할 수 있는 것이다. 온전한 믿음은 담대한 행동을 낳는다고 했다. 모든 것이 하나님의 것이라면 내가 주님앞에 드리지 못할 것은 또 무엇인가? 소유권의 문제가 순종의 문제에 결정적인 역할을 한다. 청지기적인 정신이 나에겐 얼마나 있는가?
세상 가운데서는 법적인 소유권이 내게 있을 지라도 주님 앞에선 모든 것이 하나님 것이다. 다 주님이 주신 것인데.....
나의 건강, 시간, 물질, 가족, ...... 이 모든 것 하나님께서 내게 허락치 않았다면 나는 아무것도 가질 수 없다.
그런데, 이렇게 말을 하고 있지만, 나의 삶 속에선 그것을 얼마나 인정하면서 살고 있는가?
나는 아무런 말을 드릴수 없었다. 주님 앞에 눈물만 드릴 뿐이였다.

목사님께서 교회를 우리 것이라 하지 않고 주님의 교회라고 생각하고 계시기 때문에 우리 교회는 주일에도 그렇고 평일에도 우리 교회를 다른 단체에서 사용하고 있다. 처음엔 감사로 받아드렸는데 지금은 감사가 불평으로 바꿔 버렸다.
내가 주님 앞에 드리지 못할 것이 없다고 고백하지만, 내가 가지고 있는 지금 이 불평은 그럼 무엇인가?
얼마나 이중적인 믿음의 고백인가?
나는 이 말씀앞에서 드림의 믿음의 고백은 있었을지 모르겠지만, 삶의 고백은 없었던 것이다.
삶의 현장이 중요하다고 했다. 말씀이 무덤이 되게 할 수도 있고, 말씀이 부활이 되게 할 수도 있는 삶의 현장!
나의 삶의 현장을 하나님께선 회개하길 원하시고 계신 것이다. 말씀이 나의 삶을 통해 싹을 티우지 않으면 부활의 영광도 없다고 하신 하나님의 마음을 이제서야 깨닫는다. 믿음의 조상으로 높임을 받고 있는 아브라함의 드림의 믿음은 내 삶을 다시 한번 뒤돌아 보게 하셨다. 하나님께서 [내가 온전한 것 같이 너도 온전하라] 고 하신 것이다.
하나님! 온전한 순종으로 이런 삶을 주님께 드려 주님을 영광스럽게 하고 싶습니다.

김 정숙

2008-03-10 18:40:45

드리는 믿음이 되어 지기를 소망합니다!
"삶에 현장이 말씀의 무덤에 현장이 되지말고
삶에 현장이 말씀의 부활에 현장이 되라"
가르쳐 주신 말씀에 감사 합니다.

말씀을 일고 가르침에 깨닫고
말씀에 확신과 소망이 있어
이제는 아브라함의 믿음을 보고알아서
독자 이삭을 드릴수 있읍니다.

때때로 생활의 염려와
삶에 지쳐서 그리고 욕심과 유혹에
넘어 지기도 하고 일어나기도 하지만
모두가 하나님(이)나에게 주신것임을 알게 하신
하나님 감사 합니다.

(이) 라는 조사 하나의 의미를 바로 알면
모든것이 하나님께 초점이 맞추어 지는 것을
나도 우리도 그리고 모든 사람들이
(을)라는 조사를 이용하여
하나님의 마음을 아프게 합니다.

순종이 (소유권)의 문제 라고
말씀하시는 목자의 말씀을 바로 알고
깨닫고 마음을, 뜻을 ,힘을 ,목숨을,
하나님의 뜻을 따라 열심히 좌로나 우로나
치우치지 않고 오직 주님 만 바라보고
따라 가려 합니다.

날마다 주일 마다 시간마다 가르쳐 깨닫게 하심에 감사합니다.

박유진

2008-03-10 22:10:55

"광야 길을 걷고 있는가? 물을 찾으려고 하지 말고, 믿음을 찾아라, 하나님을 간절히 찾아라. 그러면 광야가 기적의 현장으로 바뀔 것이다."

나는 인내가 참 부족하다. 기다리기 보다, 당장 눈 앞에 내가 원한 결과가 나타나지 않으면 조급해하고, 참지 못할 때가 많이 있었다. 기도도 그랬다. 얼마 기도해보지도 않고, 금방 내가 원한 응답이 오지 않는다고 쉽게 포기해버릴 때가 종종 있었다. 아브라함은 25년이나 기다렸는데! 난 고작 1-2년 기다린 걸 가지고 하나님, 왜 응답을 안 주시나요...하며 꾸준히 기도하지 않은 걸 회개한다. 광야길에서도, 반석에서 물을 주시는 하나님을 믿는 믿음이 내 믿음이 되기를, 그리고 절대로 포기하지 않고 끝까지 기도하는 내가 되기를.

"이미 주신 말씀을 믿는 믿음이 이처럼 능력이 있다. 자신의 독자를 아낌없이 번제로 드릴 수 있는 능력이니 얼마나 힘이 있는가?"

한국에서 4월 셋째주에 친정아버지의 장로취임식이 열리게 되었다. 너무나 기쁘고 감사한 일이기에 꼭 참석하고 싶었다. 그런데, 시부모님께서는 임신한 몸으로 아기까지 데리고 와야 하니, 오지 말라고 하셨다. 처음에는, 한국에 갈 생각에 기쁜 마음으로 들떠 있었는데, 막상 오지 말라는 말을 들으니 조금 속상했다. 물론, 몸을 걱정해서 해 주신 말씀이란 건 알지만, 그래도 가고 싶은 마음이 더 컸다. 그렇지만, 말씀을 붙들고 기도하기로 했다. 가장 좋은 것을 우리에게 주시는 주님, 모든 것을 합력해서 선으로 이루시는 주님, 걱정하지 말고, 염려하지 말고, 오직 기도와 간구로 구할 것을 감사함으로 하나님께 아뢰라고 하신 주님. 그래서, 지금은 걱정과 염려가 들지 않는다. 결과가 어떻게 되든, 하나님께 모든 것을 맡기고 기도하기로 했다. 이번 일로, 기도제목을 주신 주님께 감사했다.

"소유권 문제는 순종의 문제와 직결된다. 먼저 소유권을 원 주인에게 돌려 주어야 한다. 그리고 자신은 선한 청지기의 모습으로 돌아와야 한다. 이것이 믿음의 회복이다. 아브라함이 그랬고, 욥과 다윗이 다 그랬다. 욕심이 문제다. 욕심이 우리를 하나님에게서 멀어지게 한다."

작년부터 내 마음에 계속 걸리던 물질의 문제가 있었다. 추수감사헌금이었다. 일년 소득의 십분의 일을 온전히 지키고 싶은 마음은 늘 있었지만, 한번도 지키지를 못했다. 그래서 올해 결심했던 것이, 연초부터 미리 미리 추수감사헌금을 준비하자는 생각을 했었다. 그렇지만, 지금까지 막상 실천에 옮기지 못하고 있었다. 월급의 십일조 이외에, 십분의 일을 더 떼어 저금을 한다는 것이 쉽지 않았던 것이다. 나는 늘 주님만을 나의 주인으로 모시고 산다고 생각했는데, 지금 보니, 나는 청지기의 모습이 아니라, 내 것을 떼어 하나님께 드린다는 오만한 생각을 하고 있었던 것 같다. 나에게 주신 모든 것은 하나님께서 주신 것인데. 물질도, 집도, 자식도, 심지어 나의 생명도 내 것이 아닌 하나님의 것인데, 왜 청지기의 모습을 그렇게 자주 잊어버리는지 모르겠다. 오늘부터 당장 헌금을 위한 준비를 실천해야 겠다는 생각이 들었다. 나의 믿음이 매일 매일 조금씩 조금씩 성장하기를 원한다.

* 리플을 올릴 때마다, 개인적인 일상생활들 얘기를 쓰기 때문에, 올려야하나 말아야하나 많이 망설여질 때가 있다. 부끄럽기도 하고, 다른 사람들이 읽고 어떻게 생각할까 신경쓰이기도 하고. 그렇지만, 주님께서 주신 마음대로, 손 가는대로 올리기로 했다. 나중 결과는 주님께서 알아서 해 주시겠지...하는 마음으로.

이용규목사

2008-03-11 00:31:57

리플은 원래 자신의 개인적인 생활을 말씀에 비추어 솔직히 나누면서
변화와 성장을 함께 해 나가는 것이 목적입니다.
집사님의 귀한 나눔에 늘 많은 은혜 받고 있습니다.
감사합니다.

최승우

2008-03-11 02:21:14

위대한 믿음의 사람들은 모두가 하나님께 아낌없이 드리는 믿음의 소유자들이었다.
링컨은 대통령 취임 전 생일날에 이런 말을 했다고 한다.
‘저는 전능하신 하나님을 기쁘시게 하는 일이라면 언제라도 제 목숨까지 내 드릴 각오가 되어 있습니다.’
하나님께는 뭘 드려도 아깝지 않았던 것이다.

이 말씀을 읽으며 나는 정말 나를 돌아 보게 되었다.
나는 하나님께 아낌없이 나를 드릴 수 있는가??라고..
한때 나는 주님께 드리는 물질에 대해 너무나 드려도 드려도 또 드리고 싶은 마음이 나의 온 마음이라고 착각한 적이 있었다.하나님은 정말 부자이시고 천하 만물이 그 분의 것인데 내가 조금 드리는 물질에 대해 그렇게 생생을 내고 내 만족에 있었던 것은 아닌지,
너무나 부끄러운 마음을 이번 주 설교와 함께 회개 하고 나는 그럼 내 목숨을 주님께 아낌없이 드릴 수 있을까를 생각하면서 예전에 했던 어리석은 기도가 떠올랐다.
하나님,,다른 것은 다하겠는데 순교만은 못할꺼 같아요라고..
나는 겁이 많은 편이고 순교에 대해 여러가지 생각을 하면서 죽기 전에 그 두려움이 참 많이 무서웠었다.그래서 그때 그런 기도를 드린 것 같다.얼마나 입술로 나를 드린다고 고백하면서 나의 모든 것을 드리지 못하는 어리석음을 범하고 사는지.
이 링컨의 말이 내 가슴 깊이 찔림으로 남아 있는 지금 내가 어떤 상황에서도 주님을 위해 나의 모든 것을 내려 놓는 믿음의 결정이 필요한 때이다.
아브라함은 이삭을 아낌없이 바치려는 마음에는 굳은 하나님의 말씀을 신뢰함이 있었기에 그로 인해 우리가 지금까지 그 복을 누리고 사는 것을 생각함 감사가 넘친다.
정말 하나님을 마음으로 조금도 의심없이 믿고 말씀에 근거한 삶이 가장 행복한 삶이 아닐까 하는 생각이 든다.
나 또한 믿음의 온전한 모습을 내 후손에게 유산으로 물려 주는 자기 되기를 기도한다..
우리 엄마가 기도의 유산을 물려 주신 것 처럼 말이다.


박빛나

2008-03-11 07:40:06

오늘날 믿음의 사람들에게 큰 문제는 인내하지 못하는 것이다. 기다리지 못하는 것이다. 참고 기다릴 줄 아는 사람만이 열매의 주인이 될 수 있다. 참지 못하여 중간에 파 엎어 버리는 사람은 결코 그 씨앗의 열매를 거둘 수 없다.

열매를 거두려면, 먼저 인내해야 한다는 말씀은 많은 깨달음을 주었다.
마치, 지금 내 상황이 그렇듯이 인내가 주는 성장은 얼굴로도 나타난다는 것을
처음으로 알았다. 힘든 시간이 지나고나면, 그 시간은 버려진 것이 아니라,
내 안에서 보석으로 남아 반짝인다는 것을 깨닫는데는 그리 많은 시간이 걸리지 않았다. 거울 한 번 쳐다보고나니, 너 쫌 자란 것 같은데?? 라는 생각이 들었기 때문이다.

나 한 사람이 ‘드리는 믿음’으로 하나님께 아낌없이 순종하면 내 가정이 복을 받고, 내 일터가 복을 받고, 내 교회가 복을 받고, 내 나라가 복을 받는 것은, 하나님이 정해 놓으신 이치이다. 하나님은 우리가 세상에 복을 나눠 주는 복의 샘터가 되기를 원하신다.

아빠, 엄마 덕분에 지는 한게 하나도 없으면서 복 받는 사람...이 저예요..저..
얼굴 빨~갛게 올라오는 뜨거운 느낌이 있다는 건 아직 양심은 있다는 소리겠지.
싶다.

예전에 아빠와 함께 어떤 상점에서 물건을 산 적이 있었다.
아빠는 계산을 하시면서 그 상점 점원에게 이 가게를 축복합니다. 축복의 물꼬를 텃으니 좋은 일들이 많으실 겁니다. 제가 교회 권사거든요! 라고 말씀하면서 서로 기분 좋게 웃으셨던 일이 있었다.
아빠는 참, 그런말을 술술 잘도 하신다면서 같이 웃었던 기억이 있다.

복의 샘터가 되려면, 먼저 내가 변화되지 않으면 안된다.
하지만, 주님이 주신 내 달란트는 변화되지 않는다는 것도 잊지말자.
내 모습대로, 주님 사랑하게 해달라고 오늘도 기도하고 기도하자. 결심한다.

서조은

2008-03-11 08:15:17

‘여호와여 천지에 있는 것이 다 주의 것이로소이다…
나와 내 백성이 무엇이기에 이렇게 즐거운 마음으로 드릴 힘이 있었나이까
모든 것이 주께로 말미암았사오니 우리가 주의 손에서 받은 것으로 주께 드렸을 뿐입니다.’(대상29:11-14)라고 고백했다.


믿음 적고, 욕심 많은 제가 지키지 못한것이 십일조 였습니다.
그런데 한달전부터 하나님께서 저의 잘못을 깨우쳐 주시고 기쁨으로
십일조 생활하는 방법을 알려주십니다.

한달전까지만 해도 십일조 드리는 일이 어찌나 어려웠던지요..
드리기 전부터 아깝단 생각이 들고 드리고 나서도 아깝단 생각이 들고..
한달 전부터 받지도 않은 다음달 월급에서 십일조를 드릴생각에
꿈속에서까지 갈등하고 하까워 했습니다.
지금 생각해보니 정말 미련하고 어리석었던것 같습니다.

하나님께서 십일조만큼은 하나님을 시험해 보라고 하실 정도로
십일조 하는 그 손에 복을 내려 주신다고 약속하셨는데...
저는 그말씀을 믿지 못했나 봅니다.
그리고 모든것이 하나님께로부터 난다고 했는데 그것 역시 믿지
못했나 봅니다.
결국 하나님을 믿지 못했기에 십일조 생활을 하지 못했고,
십일조 생활을 하지 못했기 때문에 하나님이 주신 복을
누리지 못했습니다.

십일조 생활의 기쁨을 알게 하신 이후로 저와 남편은 벽에
하얀 종이를 붙여 그날그날의 수입을 기록하고 토요일 저녁에
십일조를 감사함으로 준비하게되었습니다.

믿음이 얼마나 중요하고 그 믿음 으로 인해서 삶이 얼마나 달라지는
지를 요즘 배워가고 있습니다.

십일조는 아까운 것이 절대 아닙니다.
왜냐하면 주의 손에서 받은 것은 단지 주의 손에 드린것 뿐이기
때문입니다.

믿음 약한 저를 깨닫게 해주신 주님 사랑합니다.

신정은

2008-03-11 09:07:12

이미 주신 말씀을 믿는 믿음이 이처럼 능력이 있다.

사실 요즘 여러가지로 내 자신에 대해 자신이 없는 하루하루다. 내 앞날에 대해 이렇게 고민을 많이 해 본 적은 지금까지 내 인생에서 없었던 것 같다.
나는 물질이나 환경에 이끌려서 가는 길이 아닌, 정말로 내가 원하는 길 하나님께서 기뻐하신 길로 가고 싶은데.. 그 길을 알기도 어려울 뿐만 아니라, 해내기에도 힘들고 무엇보다 지금 내 힘으로는 감당할 수 없는 길 인 것 같이 느껴진다.
그러다가 몇일전.. 머리 아프도록 고민을 하고있는데.. 어느순간 내가 참으로 어리석다고 주님은 말씀하셨다. 물론 기도를 하지 않았던 것은 아니지만, 기도보다는 세상적인 것만 생각하고 의지하면서 고민하고 있는 나에게 주님이 나의 뻔한 어리석음을 지적하신 것이다..
내 갈 길을 예비해주시는 분은 오직 내 주님뿐이신데.. 기도를 하고 있으면서도 나는 왜 이렇게 고민하고 걱정하고 염려하고 있는 것일까...!
- "아무것도 염려하지 말고 오직 모든일에 기도와 간구로 너희 구할 것을 감사함으로 하나님께 아뢰라, 그리하면 모든 지각이 뛰어난 하나님의 평강이 그리스도 예수안에서 너의 마음과 생각을 지키시리라(빌 5:6-7)" 아멘..!
- "앞으로 받을 것이라고 믿고"가 아니라 "이미 받은 줄 믿고" 기도하라
고 다시한번 확.실.히. 말씀해주신다..
마지막으로 오늘 정확히 내게 해주신 말씀을 붙들고,
아브라함처럼 이미 주신 말씀을 믿는 믿음으로 주님의 능력이 나를 통해 나올 것을 나는 믿어 의심치 않는다.

그리고 이렇게 받는 믿음에서 그치는 사람이 아닌, 내 모든것을 드리는 믿음, 내 목숨까지도 아낌없이 바치는 믿음의 사람이 되길 간절히 소망하면서, 지금보다 더 열심히 주님께 나아가기 위해 노력하는 하나님의 자녀가 되겠다고 다시한번 다짐해봅니다..

김헌규

2008-03-11 15:32:01

1.받는 믿음
물이 없는 광야를 두려워하지 말고, 믿음이 없는 광야를 두려워해야 한다.
광야 길을 걷고 있는가? 물을 찾으려고 하지 말고, 믿음을 찾아라, 하나님을 간절히 찾아라. 그러면 광야가 기적의 현장으로 바뀔 것이다.
2.드리는 믿음
받는 믿음이 ‘인내의 믿음’이라면, 드리는 믿음은 ‘순종의 믿음’이라 할 수 있다.(창22:18)
3.아낌없이 바칠 수 있는 방법
순종은 말씀을 믿는 것 만큼만 나온다.
소유권 문제는 순종의 문제와 직결된다. 먼저 소유권을 원 주인에게 돌려 주어야 한다. 그리고 자신은 선한 청지기의 모습으로 돌아와야 한다. 이것이 믿음의 회복이다. 아브라함이 그랬고, 욥과 다윗이 다 그랬다. 욕심이 문제다. 욕심이 우리를 하나님에게서 멀어지게 한다.

오늘 말씀을 들으며, 하나님께서 저에게 주신 대연이와 동연이를 생각해 보았습니다.
그리고, 제 자신의 믿음을 대연이와 동연이를 주시기 전의 믿음과 대연이 동연이를 받은 다음의 믿음으로 나누어서 생각해 보자, 새삼 아브라함이 저와는 다른 세계의 사람처럼 느껴졌습니다.
아브라함은 자신에게 자식을 주시기 전의 말씀을 믿고, 하나님께서 자식을 바치라는 말씀에 하나님께 항변하지 않고, 그 말씀에 전적으로 순종했기 때문입니다.
저는 아마도 하나님의 말씀을 믿었더라도 하나님께 이야기 했을 것 같습니다.
“하나님께서, 예전에 저에게 이삭으로 말미암아 큰 민족을 이루게 하신다고 했는데, 이제와서 이삭을 바치라고 하시면, 예전에 저에게 하셨던 말씀은 어떻게 되는 것입니까?”라고 물어 보았을 것 같습니다.
아마도 이것이 저와 아브라함의 차이겠지요?
아브라함이라고 저만큼 자식이 예쁘지 않았을리도 없고, 소중하지 않았을리도 없을텐데요…
오히려, 서른넘어 대연이와 동연이를 얻은 저보다 백세에 이삭을 얻은 아브라함에게 자식이 더 사랑스럽고 소중했을 것 같습니다.
그런데도, 하나님의 말씀에 순종을 할 수 있었던 것은 목사님의 말씀대로 소유권을 똑바로 인식하고 있었기 때문에 가능했으리라 생각합니다.
저처럼 단순히 월급의 십일조가 아닌 생활의 십일조, 소유의 십일조를 넘어선 모든 것이 주님의 것이라는 청지기의 모습을 가지고 있었기에 가능했으리라 생각합니다.
그와 대비되어 제 모습을 보니, 가지고 있는 것을 제 것인양 꼭 움켜쥐고, 좀처럼 놓지 않으려고 하는 모습이 한편으로는 안타깝고, 한편으로는 불쌍하게까지 느껴집니다.
순종은 말씀을 믿는 것 만큼만 가능하다는 말씀에 저의 순종의 분량을 알 것 같습니다.
하나님의 말씀을 절대적으로 믿고, 순종할 수 있는 믿음을 가질 수 있도록 더욱 말씀에 힘써야겠습니다.
아브라함처럼 제 믿음을 나눌때에, 자녀를 얻기전의 믿음과 받은 후의 믿음, 배우자를 얻기 전의 믿음과 배우자를 받은 후의 믿음처럼 하나님께 구한것을 얻기 전의 믿음과 받은 후의 믿음이 아니라, 제자훈련을 받기 전의 믿음과 제자훈련을 받은 후의 믿음으로 나눌 수 있기를 소원합니다.
제자훈련을 받아서, 더욱 제자다워지고, 더욱 예수님을 닮아 있는 모습을 갖출 수 있기를 소원합니다.
소유권을 똑바로 깨달아 알고, 제가 가진 모든 것, 제 목숨까지도 주님의 것이라는 선한 청지기로서의 삶을 감당할 수 있기를 소원합니다.

김영희

2008-03-11 16:46:32

"소유권 문제는 순종의 문제와 직결된다.
먼저 소유권을 원주인에게 돌려주어야 한다.그리고 자신은 선한 청지기의
모습으로 돌아와야 한다.이것이 믿음의 회복이다."

이미 모든것을 주님께서 주셨다.주님께서 주신 몸으로 살고 있고, 내가 가진
모든것들을 주님이 주신것이라는 사실을 부인해선 안되며 부인할수도 없다.
알면서도 때때로 그것을 잊고 내가 누리고 있는 모든것들이 내것인마냥
세상 좋은일 시키는 헛된곳에 얼마나 많이 낭비하고 쓰고 다니며 또 얼마나
과한 욕심으로 가득찬 죄를 많이 범했었던가!! 지난 옛 이야기지만...지금도
어리석게 세상의 유혹을 받으며 살때가 많음을 다시금 깨닫게 된다.
다만 그래선 안된다. 자신을 채찍질하며 절제하고 있을뿐...세상쪽에 마음을
빼앗기고 있을때가 많음을 고백한다.하나님이 주신 모든것을 잠시 관리하고
있는 청지기로써 어덯게 잘 관리해야 할것인가? 가 매우 중요한것 같다.
목사님 말씀에서 '주님것을 내것이라고 고집하며 사는 어리석음을 범하지
말아야 한다.' 이 말씀을 읽으며 태이블 앞에 붙여놓고 회개 기도를 할때면
늘 한번씩 크게 불러보던 '용서하소서' 찬양을 이시간도 몇번씩 하나님께
찬양을 올려본다.
'아버지여 불충한 종을 용서하여 주옵소서 맡긴 사명 맡긴 재물을 주를 위해
쓰렵니다. 세상유혹 다 멀리하고 주의 일만 하렵니다.
주님 명령 순종 하면서 주를 위해 살렵니다.'

아브라함이 하나님께 번제물로 이삭을 바친것처럼, 링컨이 말한 전능하신
하나님을 기쁘게 하는 일이라면 내목숨까지 내 드릴 각오가 되어있음을
이시간 다시 고백한다. 이미 주님이 주신 이 한몸 기필코 내어 드리리다.

주님! 광야에서 물을 찾는 길을 걷고 싶지 않습니다.
하나님을 간절히 찾는 믿음의 길을 한결같이 걷길 원합니다 .
감사합니다.

인선정

2008-03-11 21:18:07

지지난주 한국에서 엄마가 읽으시던 책(심리학책입니다.) 을 재밌어 보여서 슬그머니 가지고 왔습니다. ^^; 저는 출퇴근을 버스로 25분을 하는데, 버스로 출퇴근해 보신 분은 아시겠지만, 러시아워시간에도 정말로 차안에 사람이 없습니다. 서울버스와 달리 동경버스는 노인을 대상으로 하는듯해서 심각할 정도로 살살 운전합니다. 멀미도 안나고, 책 읽기 정말 좋은 시간입니다. 오늘은 엄마책을 읽었는데, 목사님 설교말씀과 관련된다는 생각되는 구절이 있어서 적습니다.

예수님은 인간들에 대한 당신의 관계를 얘기하면서 이렇게 말씀하셨다.
"내가 온 것은 양으로 생명을 얻게 하고 더 풍성히 얻게 하려는 것이라"(요한복음10장 10절) 더 풍성한 삶, 이 얼마나 놀라운 단어인가! 결혼잔치와 포도주를 즐기고 아름다운 향유와 멋진 우정을 누렸으면서도 스스로가 죽임을 당하도록 내버려두었던 이 이상한 남자는 인생의 길이에는 하등 관심이 없고, 오직 인생의 생명력에만 관심이 있었다.

예수님께서 저에게 바라시는 생명의 삶은 하나님의 자녀에게 공통적으로 바라는 것과 같은 내용이라고 생각합니다. 그것은 목사님께서 설교로 말씀하신 아브라함에게 바라시던 하나님의 마음과 크게 다르지 않다고 생각합니다.
나이가 서른이 훌쩍 넘었것만, 부끄럽게도 여전히 흔들릴때가 참으로 많습니다. 무슨 일이 있어도 끝까지 하나님의 선하심을 믿는 마음, 그리고 제 삶의 모든 것을 주님께 맡기는 마음을 소원합니다.

이정미

2008-03-12 04:09:48

스스로 인내를 정하지마라, 여기까지만 참아보고 안되면 그만둔다는
사람은 반드시 실패하게 되어있다.

이말씀은 정말 나를두고 한 말씀인것 같아 정말 찔림을 받았다.
사실 인내심 부족함때문에 늘 내자신이 부끄러울 때가 많다
여기까지 선을 그으놓고 하나님의 뜻 보다 내생각이 앞설때가 많다
인내에는 한계가 없다 말씀의 열매가 이루어질때까지 끝까지 인내
하는 것이라고 하였다

받는 믿음은 나 혼자만 충만케 되는 믿음이지만 드리는 믿음은 온세상
을 충만케 하는 능력이다.

이번주에는 두가지 받는 믿음과, 드리는 믿음에 은혜를 정말 많이
받는 한 주간이였다.

저번주 제가 일본어 공부하는곳에 선생님들을 우리집에 초대하였다.
일본분들을 보면서 정말~~ 대단하다는 생각을 많이 하였다.
그들은 우리 학생들 보다 항상 먼저나와 얼마나 예습을 철저하게 해서
가르쳐 주는지, 그것도 무보수로... 어쩌다가 식사 할일이 있어도 자기것은
늘 본인이 낸다. 너무 고마워 한번이라도 대접하면 결코 사양하는 모습을
보면서 얼마나 배울점이 많은지~~ 우리는 조금만 도와주면 뭘 바라거나
섭섭해 하지 않은가~~ 마침 이번에 수업이 완전히 끝나기에 한국의 이미지
를 살려 8명의 선생님들을 집으로 초대해서 한국요리를 정성껏 대접했다
그들의 이름을 한사람씩 손수건에 수를놓아 테이블 위에 올려놓는 정성을 보였고 또 부족하지만
그들에게 한국을 전하고 싶었고 또 내가 예수를 믿는 그리스도인 이라는
사실도 이미 알고 있고 또 늘 관심을 보였다.
한국요리를 코스별로 8가지를 해서 주었드니 너무나 감동을 하고 어떤 일본분은
다음날 메일을 보내 주면서 당신과 친구를 하고 싶고 공부는 끝났지만
계속 좋은관계를 유지하면서 만나고 싶다고 전해왔다.
드리는 기쁨이 얼마나 소중한지 어디 받는 기쁨에 비교할수 있을까?
다른 사람을 위해 베푸는 기쁨이 이렇게도 감사한줄 정말 몰랐다.
그들은 내가 한 작은 나눔을 너무나도 소중하게 여기며 한국에 대한
느낌이 달라졌다고 하였다, 그리고 얼마나 행복해 하는지 그들의 모습을
보면서 다시한번 깨달은 것은 정말 받는것 보다 주는 기쁨에 대하여
내 마음이 너무나도 감사가 넘쳤다



양미옥

2008-03-12 07:02:31

아브라함은, 하나님이 이삭을 드리라고 하시기 이전에 하신 말씀을 믿었기 때문에 기꺼이 드릴 수 있었다.

말씀 가운데' 아브라함이 이삭을 드리라고 하시기 전에 하신 말씀으 믿었다' 라고 들었을때 도전과 말씀의 깊이?에 놀랬습니다.
당연한걸 가지고 놀랜다라고 생각할수 있지만 저로써는 가슴에 많이 와 닿았습니다. 믿음의 조상으로 대표적으로 알려졌지만 그렇게 불려질수밖에 없었던 것은 하나님께서 어떤 상황을 만드셔서 그를 시험했을지라도 그에게 말씀하신 것을 기억하고 믿고 있었다는 것입니다.
저는 아브라함이 하나님의 말씀을 늘 되새기면서 기억하고 있었다는 것에 저의 모습을 비추어 생각해 보았습니다.
하나님은 말씀을 통해서 약속의 말씀을 수없이 해주시지만 그것에 무지해서 잊어버리고 하나님께 불평의 기도를 한다던지 한탄 만 할 때가 있습니다.
하나님의 말씀을 기억하지 못하고 당장의 눈앞에 닥친것들만 늘여놓습니다.
하나님께서 얼마나 기가 막히셨고 답답해 하셨을까요.. 이미 너에게 주었는데 너는 무엇을 더이상 달라고 하느냐..
부끄러운 모습뿐입니다. 말씀을 굳건히 붙잡고 나아가는 자가 되고싶습니다.
아브라함이 약속의 말씀을 믿고 이삭을 바치라고 했을때 순종의 믿음을 보여드림으로 열방의 아비로서 이름을 남겼듯이 저 역시 말씀 가운데 삶을 살아감으로 순종의 믿음을 드리는 자가 되고 싶습니다.

정향연

2008-03-12 08:40:17

**J***물을 찾으려고 하지 말고, 믿음을 찾아라, 하나님을 간절히 찾아라. 그러면 광야가 기적의 현장으로 바뀔 것이다.*****s*
기도의 응답은 "물"이 아닙니다.
기도의 응답은"광야"입니다.
물은 받은즉시 내속에들어와 보이지않는것이 되어버리지만,광야를 얻어야만이 그곳에서 일어나는 하나님의 움직임(손길)을 봄으로써 눈과 맘에 영원히 남을 하나님의 은혜를 내속에 넣을수있습니다.
믿음생활에서도 근시안적인 나의 모습을 버리고 세상을 향한,하늘을향해나아가야합니다.속원들을 보면서 많이 느낍니다.기도제목이 이루어졌다고 기도를 멈추는 것을 볼때 안타까움을 느낍니다..예전의 제모습이었고,아직도 남아있는 내모습이기때문입니다..하나님은 현재 내가 드리고 있는것이 기도의 끝이 아니라,기도의 시작이라는것을 ,기도를 계속하여 하나님의 멋진 작품이 되라고 ,기대하시고계시는것이 보입니다...

***J**아브라함은, 하나님이 이삭을 드리라고 하시기 이전에 하신 말씀을 믿었기 때문에 기꺼이 드릴 수 있었다. 그 말씀의 내용은 이렇다. ‘네 자손이라 칭할 자는 이삭으로 말미암으리라’*****n*
인생의 골인점은 영생입니다.그런데 영생보다는 인생에 치중하여 의심생활을 합니다.이번주에 하나님께서 저에게 청지기의식을 알려주려고 목사님을통해 대언해주셨습니다. 남편에게 별 잔소리를 하지않았던 제가,또 특히나 토요일과 주일엔 남편과 싸움거리가 있어도 아예 싸움을 피하려하던제가,일요일아침에는 남편의 심기를 상하게 하였습니다..
은행과 관련된문제가 있었는데,몇주전부터 확인해봐야지 하던 문제를 갑자기 제가 일요일 아침에 남편에게(이상하단말이야,왜 은행에서 아무런 연락이 없는거지?)하고 갑자기 물었습니다.그랬더니 , 은행에서온 자료를 네 책상에 올려놓았는데 못보았냐고 하는거였습니다..부랴부랴 보니 그 내용이 제가 고대했던 내용이 아니였습니다..
화가나서,남편에게 화풀이를 했습니다..
청지기의식,모든것은 하나님것입니다...내몸속의 모세혈관까지 세심하게 만들어주신분은 하나님이십니다..내가 어디로 가야하는지 세심하게 알려주시고인도하여주시고 내게 필요한 모든것을 주시는 분이십니다..
현재 저를 보면 너무나 많은 것을 하나님께 받았는데,
제가 (하나님이 이삭을 주신것은 알겠는데,이삭을 바치면 전 어떡합니까?저혼자 얼마나 외로운지 아세요?절 사랑하신다면서요..)하고 대답하는 니세아브라함이 되어있었습니다...
정신을 차리면 혼모노 아브라함으로 돌아옵니다..(네,하나님,주신분도 하나님이세요...또 하나님은 이삭을 통해 나의 후손을 남기신다고 하셨죠?)
왔다갔다하는 제자신이 밉기도 하지만, 오뚜기인 모습이 귀엽기도 합니다.
바보같기에 하나님께 엎드릴수밖에 없는,지혜를 달라고,그리고 ***주신말씀을잊어버리지않고 마음에 새길수있도록...아브라함처럼****
엘리야가 하나님께 자신의 머리를 무릎사이에 파묻으며 기도하듯,,하나님 "저 이렇게 어리석습니다.아시쟎아요.도와주세요..."하고 제머리를 무릎사이에 온전히 숙일때 하나님은 비로소 제가 아브라함의 후손이 되게 하시겠지요...ㅎㅎㅎ

김정아

2008-03-12 23:50:59

스스로 인내의 한계를 정하지 말라. 여기까지 참아 보고 아니면 그만둔다고 하는 사람은 반드시 실패하게 되어 있다. 이것은 사탄의 단수 높은 계략이기 때문이다.

말씀의 열매가 맺어질 때까지 끝까지 인내하는 것이다.


열매를 맺기까지는 시간이 걸리는 법인데 성격 급한 저에게는 그 열매를 기다리기 보다는 오히려 파 엎어버리는 쪽이라는 생각이 들었습니다.
특히 기도할 때에도 기도제목을 나름 정하여 열심히 기도를 하지만, 돌아보면 하나님보다 제가 먼저 잊어버리는 경우가 있습니다. 하나님이 들어주실 때까지 기도하겠다는 의지보다는 도중에 제가 먼저 포기할 때가 많습니다.
끈기와 인내가 부족합니다. 열매를 기다릴 줄 아는 인내가 있어야 열매를 거둘 수 있을 텐데...
어떤 일을 정하여 놓고 준비하고 계획하고 노력하지만 되어가는 형편에 따라 마음이 달라지기도 하고 때로는 도중에 편의에 따라 계획을 바꾸기도하고...
지난 주일 설교중 "우리는 그저 가만히 있기만 하면 된다."라고 하신 말씀이 생각납니다.
어떠한 상황가운데서도 참을 수 있는 믿음... 그것은 말씀에 의지하여 참는 믿음이라고 생각합니다. 말씀을 끝까지 붙드는 믿음인 것이지요. 그 말씀이 이루어질 때까지...
때로는 사단이 공격할 때가 있음을 느낍니다. 끝까지 말씀을 붙들고 나감에 있어서말씀을 믿지 못하게 하고, 환경을 보여주어 마음이 흔들리게 합니다.
사람들은 흔히 힘든 환경속에서 인내하지 못하고 방향을 바꾸려고 합니다. 편하고 풍요로운 환경 속에서 '참는다', '인내한다' 라는 표현은 맞지 않는 것 같습니다. 하지만 어떠한 어려운 환경에도 처할 줄 아는 믿음을 가진 사람이라면 열매맺는 삶을 살아갈 것입니다. 바울과 같이....
바울의 고백이 은혜가 됩니다.
"나는 어떤 처지에서도 스스로 만족하는 법을 배웠습니다. 나는 비천하게 살 줄도 알고, 풍족하게 살 줄도 압니다. 배부르거나, 굶주리거나 풍족하거나 궁핍하거나, 그 어떤 경우에도 적응할 수 있는 비결을 배웠습니다. "
제가 가져야 할 마음인 것 같습니다. 어떠한 환경에도 처할 줄 아는 믿음...
그 믿음이라면 열매맺는 삶의 주인공이 될줄로 믿습니다.

최홍근`

2008-03-13 00:11:54

‘받고 나면 그만이다. 응답 받았으니 이제 다 됐다’고 생각하면 안 된다. 그 때부터가 중요하다. ‘받는 믿음’이 믿음의 초보라고 한다면, ‘드리는 믿음’은 믿음의 완성이기 때문이다. 위대한 믿음의 사람들은 모두가 하나님께 아낌없이 드리는 믿음의 소유자들이었다.

나 자신이라는 사람은 정말 간사한 것 같다. 언제나 내가 뭔가 필요한 것이 있을 때만 하나님께 열심히 기도하고 또 어머니께 기도해달라고 부탁을 한다. 그리고나서 그 기도가 이루어지든 않이루어지든 어쨌든 상황이 종료나면 그때부터 다시 나의 기도는 쉬염쉬염해진다. 사실 이번주는 몸살때문에 예배시간때 많이 졸아서 설교 말씀을 잘 못들었다. 그리고나서 오늘 설교말씀을 확인해보니 위의 말씀이 나의 마음에 와닿았다. 정말 앞으로는 무슨일이 있거나 내가 원하는게 있어야지만 열심히 기도드리는 것이 아니라 아버지를 찬양하고 감사하는 기도를 많이 드릴 수 있는 내가 되도록 노력하겠다.



황미

2008-03-13 01:21:37

여기 한국의 봄 날씨는 너무도 따뜻 합니다.
너무나 포근 합니다. 지난 겨울 유난히도 춥게만 느껴져었는데.......
벌써 새 운이 돋아나려는 봄이 왔군요.
사랑 하는 우리 영광의 가족 여러분!
안녕 하세요. 어느 곳 에 있던지 제가 영광 교회 가족임을 늘 자랑 합니다.
오늘도 주옥 같은, 생명이 넘치는, 귀한 말씀을 보고, 읽고, 깨닫고, 역시
우리 목사님의 탁월한 영적 감각이 저를 또 한번 감동 하게 하셨습니다.
감사 드립니다.
부족하고 나약한 저의 믿음에 한 번 씩 말씀의 지팡이로 깨우쳐 주시니....
알면서도 삶의 현장에서는 전능 하신 하나님을 믿지 못하는 나의 어리석음들!
어제 어떤 "부흥 집회"에 참석 했었는데 마지막 회개의 시간이 있었습니다.
하나님을 의심 했던 죄, 불평하고 원망 했던 죄, 모든 것이 하나님의 것 임을
부인 했던 죄........ 정말 진실하게 "회개" 하며 통곡 했었습니다.
모든 일 들을 내가 할려고 했었던 결과는!!! 패배,좌절,고통,눈물 뿐 이었음을
고백하며 용서를 빌었습니다.
받는 믿음, 드리는 믿음, 모두가 소중합니다.
"하늘의 시민권"을 가진 우리들은 인내하며 순종하며 우리의 주인은 "하나님"
오직 예수 라는 사실을 인정하며 맡은 바 사명에 충성 하는 자세이면 사랑 받는
자녀가 되지 않을까.....
성경의 아브라함, 다윗 그 밖의 많은 선진들의 믿음, 순종, 축복이 나의 삶의
현장이되어 승리하는, 부할의 예수님을 증거 하는 평생의 증인이고 싶습니다.

신왕수

2008-03-13 02:15:08

"물이 없는 광야를 두려워하지 말고, 믿음이 없는 광야를 두려워해야 한다.
물이 없는 광야는, 믿음의 사람들에게는 바위에서 생수가 터지는 기적의 현장으로 바뀌지만, 믿음이 없는 광야는 결국 죽음의 현장으로 버림받기 때문이다.
광야 길을 걷고 있는가? 물을 찾으려고 하지 말고, 믿음을 찾아라, 하나님을 간절히 찾아라. 그러면 광야가 기적의 현장으로 바뀔 것이다."
→ 광야를 걷는다... 비록 광야를 걷고 있을지라도 믿음만 있다면 그것은 기적의 상황을 만들어 줄 뿐이다. 이 사실을 나는 어느 정도 믿고 있으며, 어느 정도의 광야까지 기적의 상황으로 변모시킬수 있는 믿음이 있을까? 정말 반석에서 물이 나올 정도로의 믿음이 존재할 것인지 잘 모르겠다.

"아브라함은 어떻게 사랑하는 독자 이삭을 하나님께 번제로 드릴 수 있었을까?
성경은 그것에 대해 정확히 답을 주고 있다. ‘아브라함은 시험을 받을 때에 믿음으로 이삭을 드렸으니’(히11:17) "
→ 믿음!! Faith!! 아브라함은 정말로 대단한 믿음의 소유자이었던 것 같다. 하나님께서 하신 말에는 절대로 거짓이 없으므로 하나님을 절대적으로 신뢰하고 있는 것같다. 이삭으로 말미암아 후손을 삼는다고 하셨는데, 그당시 이삭의 후손은 없었기에 당연히 하나님께서 약속을 지키실 것이라는 확신이 있었기에 가능했던 것 같다. 그와 비해 나는 어떠한가? 난 성경은 약속의 책입니다. 구약과 신약... 둘다 나에게 주신 하나님의 약속입니다. 라고 입으로는 고백하지만, 진정 어느정도 그것이 나를 통해 성취될 지를 생각해본다. 어느 정도가 아니라, 하나님께서 말씀하신 그 모든 것이 나를 통해 성취될 것이라는 믿음을 소유햐고 싶다.

전한나

2008-03-13 05:51:17

소유권 문제는 순종의 문제와 직결된다. 먼저 소유권을 원 주인에게 돌려 주어야 한다. 그리고 자신은 선한 청지기의 모습으로 돌아와야 한다. 이것이 믿음의 회복이다. 아브라함이 그랬고, 욥과 다윗이 다 그랬다. 욕심이 문제다. 욕심이 우리를 하나님에게서 멀어지게 한다.
나는 그때그때 나의 소유권이 달라진다.
나에게 유리한 쪽으로 내가 정하고 합리화를 시키기 때문이다.
성경에 나오는 아브라함 욥 다윗은 세상과 타협하지 않고 자신의 소신것 자신의 믿음의 분량으로 주님께 순종하며 자신의 소유권을 감사함으로 드렸으나 난 솔직히 말하면 내가 더 많은 복을 받을려고 주님께 드리지 않으면 나한테 안좋은 일이 생기면 어떻하지 하는 마음으로 감사가 결여된 것들을 드리기 일쑤였다.
소유권을 주님께 맡기면 드리는 것이 얼마나 즐거움이고 감사함인지 알면서도 백프로 드리지 못했던 과거의 나의 잘못을 고백한다.
최근 몇 개월동안 내가 주님께 불량하게 나의 소유를 인색하게 드린적이 있다.
주님은 나에게 인색하게 주시지 않았는데 난 풍성하게 받은것을 인색하게 드렸다.
이번주 설교를 듣고 다시한번 과거의 일들을 반성하며 차고 넘치도록 받은것을 더 차고 넘치도록 드리는 제자가 되어야 겠다.

김민정

2008-03-13 07:58:22

말씀의 약속이 있어도 그 열매를 맺기 위해서는 기다리는 기간이 필요하다. 왜냐하면 말씀은 열매가 아니라 씨앗이기 때문이다. 씨앗이 심어지면 그것이 싹이 나고 자라서 열매를 맺는 데는 반드시 일정 양의 기간이 필요하기 때문이다.
오늘날 믿음의 사람들에게 큰 문제는 인내하지 못하는 것이다. 기다리지 못하는 것이다. 참고 기다릴 줄 아는 사람만이 열매의 주인이 될 수 있다.

얼마전 수요예배때부터 아브라함의 설교를 듣고 우리 가정에 심어진 말씀을 생각하게 되었다.
남편의 다리를 통해서 믿음의 말씀을 주신 하나님을 생각하게 되었다.
남편의 오른쪽 고관절이 괜찮아지는듯 하다가 지난 가을부터 다시 아파지기 시작했다. 이제는 허리까지 아파한다. 몸의 중심이 안맞으니 허리까지 아파오는 것같다.
아브라함도 약속의 말씀을 받고나서 몸의 상태가 쇠약해지는 것을 보고 마음상태가 어떠했을까...
나도 가끔 그런 생각이 든다. 분명 하나님께서 치료해주실것이라고 말씀하셨고 믿음을 주셨지만 그냥 아무것도 안하고 있는것이 뭔가 불안하게 만들때도 있다.
병원에 가서 검사라도 받아야 하는것 아닌가... 뭔가 무책임하게 있는 것은 아닌가...
인내라는 것이 가끔은 시간만 보내는 것같은 갑갑함으로 다가올때도 있다.
당장 뭔가가 보이지 않으니...
믿음으로 바라보아야 할 시간인것같다.
받는 믿음이 드리는 믿음이 되기까지 인내라는 과정이 있다는 것을 느끼고 있다.
내 몸이 아니라 남편의 고통을 다 느낄수는 없지만 아침에 좋지 못한 컨디션으로 출근하는 모습을 보면 오전 내내는 걱정반, 기도반 시간을 보낼 때도 있다.
그렇지만 분명한것은 하나님의 정하신 때가 되면 반드시 치료의 환경이 열릴것이라고 굳게 믿는다.
지금은 드리는 믿음을 온전히 드리기에는 부족한 모습이지만 한단계씩 과정을 지나가면 하나님께서 기뻐하시는 드림의 믿음까지 이를것을 믿는다.

이동훈

2008-03-13 08:06:59

받는 믿음이 ‘인내의 믿음’이라면, 드리는 믿음은 ‘순종의 믿음’이라 할 수 있다.(창22:18) 받는 믿음보다 드리는 믿음이 훨씬 성숙한 믿음이다. ‘받고 나면 그만이다. 응답 받았으니 이제 다 됐다’고 생각하면 안 된다. 그 때부터가 중요하다. ‘

난 여태까지 받는 믿음만을 생각했다. 받았으니 믿고... 받았으니 헌신하고
이런식의 세상속에 기브엔 테이크식에 믿음 생활이였던것 같다.
드리는 믿음... 항상 여러 사람에게 받는것만 익숙했던 나에게 조금은 생소한
말일수 있지만 이젠 어른이 되었고 제자가 되었으니 다름사람에게 먼저
주고 하나님께 먼저 드리는 믿음을 갖어야겠다.
그것이 어른식 믿음이고 제자훈련생식의 믿음인것 같다.

박재훈

2008-03-13 09:25:51

하나님의 말씀을 무슨 도깨비 방망이로 생각해 왔다.
나에게 주시는 말씀들은 금방이라도 내 삶에서 이루어지고 가득가득 흘러넘칠 것을 은연 중에 기대했었는지도 모르겠다. 이제 씨앗을 선물로 받았을 뿐인데 김칫국 너무 마셔댄다.
열매 맺기 위해 물도 주고 햇볕도 쬐게 하고 영양분도 줘야 하는데, 일단 씨앗 상태에서 너무 허황된 마음만 가졌었다. 내가 정해놓은 때에 상황이 바뀌지 않으면 마음 상해하고 위축되곤 했었다.
내가 좋은 것을 받았을 때만 헤헤 웃는 속없는 인간의 모습은 싫다. 좀 더 성숙한 모습으로 씨앗을 뿌린 순간부터 인고의 노력을 거쳐 열매맺는 그 때까지 하나님께 드리고 또 드리는 믿음의 사람이 되어야 한다.
이제는 나의 광야의 때에 하나님을 향한 그 믿음을 더욱 굳건히 바로 잡아야겠다.
욕심쟁이처럼 받기만 하고 나몰라라 하지 말고, 주심에 감사하여 드릴 수 있는 아낌없이 드리는 믿음이 되고 싶다. 그리하여 나로 인한 복이 내 주변에서 조금씩 일어났으면 좋겠다.
어려운 상황에서 나만 보는 어리석은 내가 아니라 이 시간까지 나를 있게 하신 에벤에셀의 하나님을 보면서, 그 분의 사랑와 은혜에 감사를 보답할 수 있는 지혜로운 하나님의 자녀가 되자.

***‘내가 모태에서 알몸으로 나왔사온즉 또한 알몸이 그리로 돌아가올지라
주신 이도 여호와시요 거두신 이도 여호와시오니 여호와의 이름이 찬송
을 받으실지니이다’(욥1:21)

김선아

2008-03-13 10:49:36

‘여호와여 천지에 있는 것이 다 주의 것이로소이다…
나와 내 백성이 무엇이기에 이렇게 즐거운 마음으로 드릴 힘이 있었나이까
모든 것이 주께로 말미암았사오니 우리가 주의 손에서 받은 것으로 주께 드렸을 뿐입니다.’(대상29:11-14)

아브라함이 75세에 하나님께 약속을 받아 25년간의 긴 기다림 끝에 얻은 자식 이삭은 제일 소중하고 귀한 것이었을 것이다.
내가 아브라함과 같은 상황이었다면 어땠을까... 나는 하나님께 불평불만이 가득했을 것이다. 그리고 하나님과 적당한 타협을 했을 거 같다...;; 제일 귀한 것은 안되고요... 그 다음으로 귀한 것을 드릴께요.... 하는..
하지만 아브라함은 말 한마디 없이 하나님의 말씀에 순종했다.
아브라함의 모습을 보며 지금까지 내가 주님 것을 내 것이라고 고집하며 살아왔음을 느낀다.
나에게 모든 것을 주신 하나님께 나의 가장 소중한 것을 드리며 섬기길 소망한다.

이지영

2008-03-13 19:45:10

‘저는 전능하신 하나님을 기쁘시게 하는 일이라면 언제라도 제 목숨까지 내 드릴 각오가 되어 있습니다.’

나는 언제 이 고백을 당당하게 할 수 있을까.
바로 지금 이때..그리고 앞으로 변함없이 늘 할 수 있어야햔다고 생각한다.
링컨도 나와 변함없는 사람인데, 나또한 링컨과 같은 믿음의 자세를
가질 수 있다.
하지만, 욕심이 믿음의 눈을 가리울 때는 목숨까지 드린다는 고백을
망설이는 나자신을 발견할때가 있다.
늘 깨어있어, 위의 링컨의 고백이 늘 기쁨으로 나오기를 소망한다.


말씀과 기도의 두 양날개를 펼치며,
추락하지 않고 늘 생동감있는 삶을 주님과 함께 만들어가고 싶다.

홍인철

2008-03-13 23:58:30

받는 믿음이 ‘인내의 믿음’이라면, 드리는 믿음은 ‘순종의 믿음’이라 할 수 있다.(창22:18)

하나님에 대한 믿음은 인내와 순종으로써 얻어지는 것 같습니다. 하나님께 받을 때에는 인내의 마음을 갖고 또 하나님을 믿고 온전히 순종하며 드리는 마음을 갖는 것이 중요할 것 같습니다.

하나님께서는 받을 때가 되면 다 주시는 분이 십니다. 예전엔 이 것에 대한 믿음이 없어 고민하고 걱정하고 하나님께 구하기도 했지만 이제는 다 하나님이 주실 것이라는 믿음을 갖고 생활하고 있습니다. 하지만 믿음의 사도들이나 예수님과 같이 정말 어렵고 고난 중에도 온전히 인내하는 마음을 갖고 있지는 않습니다. 기도하고 내 안에 말씀으로 굳건히 하여 어느 상황에서나 인내하는 믿음을 가질 수 있도록 하겠습니다.

드리는 믿음에 대해서는 참 부족한 것 같습니다. 하나님께 받은 은혜를 생각한다면 전 하나님께 드린 것이 너무나 부족한 자입니다. 어제 새벽기도 때 이희돈 장로님의 말씀을 듣고 하나님께 미리 드리는 삶에 대해 생각해보았습니다. 하나님께서 주실 것을 믿고 미리 드리는 마음, 정말 하나님께서 이런 사람에게 더욱 풍족하게 채워주시지 않으실까 생각해 봅니다. 구하는 것에 대해 하나님께 미리 드리는 믿음을 실천해 보겠습니다.

소대섭 전도사

2008-03-14 00:43:46

>> 오늘날 믿음의 사람들에게 큰 문제는 인내하지 못하는 것이다. 기다리지 못하는 것이다. 참고 기다릴 줄 아는 사람만이 열매의 주인이 될 수 있다. 참지 못하여 중간에 파 엎어 버리는 사람은 결코 그 씨앗의 열매를 거둘 수 없다.

공부는 엉덩이로 한다는 말을 많이 들었습니다. 진득하게 앉아서 이 책도 보고, 저 책도 보면서 안 풀리는 문제는 풀릴 때까지... 기억나지 않는 것은 기억이 날 때까지... 그렇게 앉아서 공부하는 것이 진정한 공부하는 자세라는 말입니다. 객관적으로 볼 때 스스로 공부의 길로 가지 않기를 잘 했다는 생각도 듭니다. 왜냐하면 천성이 산만한 편이라서 오랫동안 뭔가에 집중하지 못하는 것을 잘 알기 때문입니다. 초등학교 때 성적표에 빠지지 않았던 구절이 '주의가 산만하여...'라는 말이었습니다. 그 말 때문인지, 아니면 정말로 천성이 산만하여 그랬는지 모르지만, 아직도 그 여파가 있는 것 같습니다. 그런데 참 믿음의 사람은 잘 참고 기다릴 줄 아는 사람이라고 했습니다. 그래야 열매는 얻는다고 합니다. 제 스스로를 점검해 보면 진득하게 견디는 것을 잘 못하는 것 같습니다. 조금만 힘들어도 있는 인상 없는 인상을 다 쓰게 됩니다. 조금만 좋으면 헬렐레해서는 오바하기 일쑤입니다. 공부의 길로는 가지 않았지만, 진득하고 무게있는 신앙으로 인내하여 참 열매를 맺는 사람이 되도록 기도합니다.

>> 하나님 앞에서는 소유권을 내려 놓아야 한다. 엄연히 모든 것이 하나님의 것이기 때문이다.

한국에 있을 때 교회 사무실에 전용 컴퓨터가 없어서 개인용 노트북을 사용했던 적이 있습니다. 교회에서 구입해 준 것은 아니고, 그 전부터 구입하여 사용하던 것으로 애지중지하던 물건 중에 하나였습니다. 토요일이면 교회 사무실로 청년들과 학생들이 와서 여러가지 작업도 하고, 준비도 하는데 여름 행사때 있었던 일입니다. 저도 바쁘고 다른 사람들도 많이 바쁜 가운데에 교회학교 교사(청년이었던...)가 잠시 제가 자리를 비운 틈을 타서 제 자리에 앉아서 뭔가를 검색하면서 프린트를 하고 있었습니다. 그 모습을 보는 순간 저도 모르게 짜증을 내면서 "왜 내 자리에 앉아서, 내 컴퓨터로 뭐하고 있느냐"고 약간 언성을 높이면서 핀잔을 주었습니다. 청년은 미안하다고 자리를 비켰지만... 그 후 그 청년과 얼마간 서먹하게 지내야 했습니다. 물론 그 청년도 교회일을 한다고 하다가.. 마침 자리에 제가 없어서 잠시 컴퓨터를 썼던 것인데... 제가 막무가내 핀잔을 주니 무안했던 것 같습니다. 오늘 말씀을 다시 읽으면서 그 때의 일이 생각이 났습니다. 모든 것을 하나님께서 주셨다고 입버릇처럼 이야기하면서 속으로는 내 자리, 내 것, 내 사람을 챙기고 있었다는 것을 다시 깨닫게 되었기 때문입니다. 혹시 지금도 그런 마음으로 지내고 있지는 않는가... 곰곰이 생각해 봅니다. 참.. 할 말이 없습니다. 모든 것의 소유권을 주님께 되돌려 드린다는 것.. 정말 언행이 일치되는 목회자이고 싶습니다.

마준철

2008-03-14 03:13:37

"‘받는 믿음’이 믿음의 초보라고 한다면, ‘드리는 믿음’은 믿음의 완성이기 때문이다. 위대한 믿음의 사람들은 모두가 하나님께 아낌없이 드리는 믿음의 소유자들이었다..... 나 한 사람이 ‘드리는 믿음’으로 하나님께 아낌없이 순종하면 내 가정이 복을 받고, 내 일터가 복을 받고, 내 교회가 복을 받고, 내 나라가 복을 받는 것은, 하나님이 정해 놓으신 이치이다. 하나님은 우리가 세상에 복을 나눠 주는 복의 샘터가 되기를 원하신다. 이 믿음의 물꼬는, 말씀에 순종하여 아낌없이 드림으로 열리게 된다. 드리는 자가 복된 자다."

오늘 말씀을 통해 믿음의 귀한 원칙을 깨닫게 되어서 참 감사합니다. 저희 가와사키 영광교회는 개척을 해서 2년간은 받는 믿음의 은혜를 참 많이 받았던 것 같습니다. 많은 분들의 기도와 후원으로 개척 후 1년만에 성전도 옮기게 되었고, 2006년에는 외부의 후원없이 자립할 수 있는 은혜도 누리게 되었습니다.

그러던 중 정확히는 기억이 나지 않지만 아마도 2006년을 마무리하고 2007년을 시작하려고 준비하던 때였던 것 같습니다. 그 때 하나님께서 마음 속에 일년 수입 재정의 십일조를 선교하는 일에 쓰도록 하라는 강력한 도전을 주셨습니다. 인간적인 생각으로는 못 들은 것으로 하고 싶었습니다. 이제 겨우 걸음마를 떼는 작은 교회에서 빨리 한 푼, 두 푼 모아야 차량도 구입하고, 더 큰 일을 하지... 하는 생각 때문에 부끄럽게도 선뜻 아멘하지 못했었습니다.

그러나 하나님의 생각은 언제나 변함없이 우리 인간의 생각을 뛰어 넘어서 일하시는 것을 알 수 있었습니다. 주님께서 주신 도전에 순종하겠다고 결단을 드린 후, 정확히 1년이 지난 2007년 말에 재정결산을 해 보니, 1년 교회 수입 재정의 십일조가 넘는 재정을 선교하는 일에 쓰임받을 수 있게 되었습니다. 만약, 이 결단이 없었다면 선교비로 쓰여졌던 재정이 그대로 저희 교회 재정에 더하여졌을까요? 결코 그렇지 않았을 거라고 생각합니다. 아마도 선교하는 일에 재정을 쓸 결단을 하지 않았으면 그 재정은 채워지지도 않았을 것입니다. 말씀을 읽으면 읽을수록, 시간이 지나면 지날수록 깨달아지는 것은 하나님께서는 우리의 어려움이나 환경이 아니라 최종적으로 우리의 믿음과 순종에 반응하시는 하나님이신 것을 깨닫게 됩니다.

한가지 더 간증을 나누자면, 작년부터는 저희 교회에서 청년들을 위한 장학헌금을 드리기 시작했습니다. 사람을 키우고자 하는 좋은 의도를 가지고 시작했지만 적지 않은 분들에게 부담이 되었던 것은 사실이었습니다. 그런데 그렇게 한 푼, 두 푼 모아온 장학헌금을 이번 새학기에 두 명의 청년에게 공급할 수 있는 은혜를 주셨습니다. 그렇게 큰 돈은 아니었지만 하나님을 위해서 열심히 살고 있는 청년들을 섬길 수 있는 기쁨은 말로 표현할 수 없습니다. 물질의 섬김과 함께 청년들을 위해 간절히 축복기도를 해 주었습니다. 그리고 이 청년들이 하나님이 세우시는 귀한 인물이 될 줄 믿습니다.

주중에 이 목사님께 이희돈 장로님의 간증을 간접적으로 들을 수 있는 기회가 있었습니다. 그 분이 오늘날 그렇게 귀한 간증의 주인공이 될 수 있었던 것은 드림의 믿음을 그 분은 확신했기 때문이라는 생각이 들었습니다. 오늘 말씀과 함께 이 드림의 믿음이 얼마나 중요하고 귀한 믿음인지 다시금 깨닫게 되었습니다. 드림의 믿음은 반드시 하나님의 축복의 통로가 되게 하셔서 하나님의 영광을 반드시 이루게 하실 줄 확신합니다~

홍은미

2008-03-15 01:17:14

세상의 관점에서는 법적으로 내 소유로 되어 있을지라도, 하나님 앞에서는 소유권을 내려 놓아야 한다. 엄연히 모든 것이 하나님의 것이기 때문이다. 생명까지도.(딤전6:13-만물에게 생명을 주시는 하나님; 새번역) 이것을 바로 아는 사람이 믿음이 깊은 사람이다. 그래서 그들은 생명까지도 당연히 아까워하지 않는다. 원래 주님의 것이기 때문이다.
소유권 문제는 순종의 문제와 직결된다. 먼저 소유권을 원 주인에게 돌려 주어야 한다. 그리고 자신은 선한 청지기의 모습으로 돌아와야 한다. 이것이 믿음의 회복이다.

한국에 돌아가야 하는 시간이 몇 달 앞으로 가까워져서 그런지 요즘따라 자주 고민을 하게 된다. 다 하나님께 맡기고 기도만 해야지 하면서도 좀처럼 그 반대로 더 기도도 되지 않고 일본에 더 있을까 빨리 돌아가야 할까 ... 가면 무엇을 해야 하나... 자꾸 혼자 걱정을 하게 된다. 물론 하나님께 영광된 일을 하고 싶은데... 내가 어떤 길로 가야 하나님을 기쁘게 하실 수 있는 것인지.... 무엇을 해야 할지 정말 모르겠다. 그러다 이 말씀을 보니 내 머릿속에 확 스치는 것이 내가 아직도 세상의 관점으로 내 소유권을 주님께 주장하고 있는 것이 아닌가 하는 생각이 들었다.
내가 무엇을 하든 기쁜 마음으로 하며 하나님께 영광돌리면 그만인데 아마도 좀 더 세상적으로 대우가 좋은 것, 돈을 더 많이 받을 수 있는 것등을 생각하며 넘을 수 없는 장벽들이 많이 있자 혼자 끙끙거린 것이다.
내가 다 버리면.. 온전히 순종만 하면 하나님께서 다 알아서 주실텐데.. 그 길을 다 이끄실 텐데... 왜 자꾸 믿음으로 견디지 못하고 안절부절하는지... 생각과 마음이 따로 노는 나 자신을 요즘은 나도 이해할 수가 없다.
모든 것, 나 자신도 하나님의 것이다. 나는 하나님의 도구이다. 나를 그냥 만드셨을리는 없으실거다. '하나님, 제가 앞으로 무슨일을 하게 되든지 순종하며 기쁨으로 감사함으로 하게 하옵소서..'

박은주

2008-03-15 02:45:30

스스로 인내의 한계를 정하지 말라. …………………인내에는 한계가 없다.
순종은 말씀을 믿는 것 만큼만 나온다.

내 생활 가운데 무엇을 인내해야하고 무엇을 순종해야하는가를 곰곰히 생각해 보았습니다.
먼저는 가족구원에 대한 인내였습니다. 친정부모도 형제도 시댁부모도 형제도 그누구도 하나 예수 믿지 않는 저의 가정은 가족구원 그자체가 큰 인내가 필요하지만 그것 때문에 발생되는 많은 불신앙의 문제들은 때때로 자주 저를 힘들게 하고 지치게 합니다. 가족만 보게되면 전혀 바뀔 것 같지 않지만 ‘주 예수를 믿어라, 그리하면 너와 네가정이 구원을 받으리라’라는 말씀을 믿고 끝까지 인내해야겠다고 생각했습니다.
또 순종을 생각해보았습니다. 배운 말씀대로 사는 것이겠지요. 저는 참 뺀질뺀질한데다 의지도 많이 약하고 제자훈련에 힘하는 저의 모습을 제 자신 스스로가 보면 참 한심할 뿐입니다. 주일날 말씀을 듣고 은혜를 받아도, 성경말씀을 읽어도, 제자훈련을 하여도 그 말씀대로 살지 못합니다. 온전한 말씀의 순종이 앞으로의 생활속에서 더 많이 나타날 수 있도록 노력해야겠습니다.

배준형

2008-03-15 08:58:09

위대한 믿음의 사람들은 모두가 하나님께 아낌없이 드리는 믿음의 소유자들이었다.

받는 믿음과 드리는 믿음...물론 둘 다 중요하지만 드리는 믿음이 더 내 마음에 와 닫는다. 사람이 무엇을 받는 것 보다 드리는 것에 더 인색해서일까? 하나님을 믿는 나는 마치 어린 아이와 같다. 그냥 세상 물정 모르는 그래서 아버지에게 이거 주세요 저거 주세요.... 그래서 그것에 기뻐하고 또 무엇인가를 달라고 구하는 모습
하지만 언젠가는 그 아버지도 무엇인가를 요구할 때가 있다. 하나님이 나에게 원하는 것 처럼..
믿음의 소유자들..그리고 성경에 나오는 사람들의 드리는 것들을 잠시 묵상해보았다. 뭘 드린 것일까? 그것은 나에게 있는가? 그런데 생각해보니 하나님 앞에 드린 것들은 자신의 욕심이 0%라는 단순하지만 마음을 흔드는 생각이 맴돌았다. 그럼 내가 하나님 앞에 드린것이 무엇인가? 나는 드리고 싶었지만 받지 않으셨던 것들이 너무도 많다는 것을 느낀다. 그리고 그 가운데 외식했던 내 모습이 하나님 앞에 죄송하다.
진정으로 드리기 위해서는 역시 이것도 훈련이 필요하다는 것을 깨닫게된다. 그냥 나 혼자만 드려서는 안된다고 생각하다. 하나님이 받으시는 것을 드려야 한다. 삶에서도 예배로 드려지는 매 순간을 하나님이 기뻐하시는 모습으로 드려야 함을 깊이 생각해본다. 일을 할 때에도 어디에 있더라도 나는 모든 순간을 하나님께 드리고 있다는 것을 생각해야겠다.
부족하다는 탄식만큼 더 훈련에 힘써야겠다는 결론밖에 나오질 않는다. 하나님을 정말 순수하게 믿고 따르는 나를 매일 드리는 삶의 예배로 기대하자.

김수영

2008-03-15 16:57:46

사람들은 본능적으로 받는 것을 좋아 하는데, 주는 것은 싫어 한다.라는
말씀이 제 마음에 와 닿았습니다. 돈이 있으면 이세상에서 원하는 것을
다 얻을 수 있다는 것이 거듭 태어나기 전의 생각 이었고 제자 훈련을
통해서 물질로 부터 자유로워지고 있다

아브라함이 이삭을 하나님께 드릴 수 있는 믿음
주신 이도 여호와시요 거두신 이도 여호와 시오니 여호와의 이름을 찬송
드리는 다윗의 믿음
여호와여 천지에 있는 것이 다 주의 것이로소이다.라고한 욥의 믿음이
부럽고 이런 믿음의 소유자가 되어야겠다.
이런 마음 속에도 주여! 십일조를 10만엥씩 낼 수 있게 해달고 얄팍한
마음이 생긴다

김명화

2008-03-15 19:22:04

"받는 믿음" 은 곧 "인내의 믿음" 이다.

나는 내가 하나님께로부터 얼마나 받고
얼마나 받은 믿음으로 인내를 했느냐고
물어 보았을 때 참은 것은 내가 정한 한도에서
이기적인 믿음으로 신앙 생활을 한 것 같습니다.
내가 하나님께로부터 받기 위해 인내한 것이 별로 없다는 것이 깨 닿게 되었다.
인내가 부족하고 하나님께로부터 물려받은 것은 생각하지 않은 채
사역훈련을 받고 있는 것은 아닌지?

"드리는 믿음" 은 곧 "순종의 믿음" 이다.
나는 주님께 믿음 하나 똑바로 드리지 못하고
늘 받기만 원했으니 참으로 못 난자식이였다.
나는 하나님께 십일조를 잘 드리기 원하고
나는 주님께 온전한 마음으로 예배 드리기 원합니다.
나는 온전한 믿음을 고백하므로 말씀에 순종하기 원하고
또한 순종은 내가 하나님의 은혜를 알고 있다면
할 수밖에 없다는 것을 나는 알아야 한다는 것이다.

나는 하나님의 말씀에 순종하기 원하고 몸으로 실천하여야 한다고 다짐합니다.

김진희

2008-03-15 23:12:53

당신이 혹시 인생의 광야 시대를 맞이하였는가?
물이 없는 광야를 두려워하지 말고, 믿음이 없는 광야를 두려워해야 한다.
물이 없는 광야는, 믿음의 사람들에게는 바위에서 생수가 터지는 기적의 현장으로 바뀌지만, 믿음이 없는 광야는 결국 죽음의 현장으로 버림받기 때문이다.
광야 길을 걷고 있는가? 물을 찾으려고 하지 말고, 믿음을 찾아라, 하나님을 간절히 찾아라. 그러면 광야가 기적의 현장으로 바뀔 것이다.
‘주여! 믿음의 오아시스가 보이게 하소서! 믿음의 샘이 터지게 하소서!’

예전에 다니던 교회에서 청년을 담당하시던 목사님께서 예배시간에 조는 건 몸의 건강에 문제가 있던지 영의 건강에 문제가 있는 거라고 하셨다. 요즘 자주 예배 시간에 졸린다. 알바 때문에 잠이 부족해서라고 할 수 도 있지만 예전에 더 못 잤을 때보다 더 졸린다는 것이다. 이번주에도 좀 졸린다 싶은데 성가대는 아무도 안 자네라고 말씀하셔서 깜짝 놀라서 눈 뜨고 있다가 그 뒤로 부터 목사님이 볼륨을 아주 낮춰놓은 텔레비전 속에서 내가 아닌 상관없는 사람에게 설교하고 있는 것처럼 보이더니 고개를 몇 번이나 떨구고 말았다. 이런 내 모습을 보면서 물이 없을 때는 안절부절 못하고 두려워 하면서 믿음이 없는 것에 대해서는 귀찮아 하기도 하면서 좀 답답하지만 간절히 믿음을 구하거나 하지 않았었다는 것을 깨닫게 되었다. 영적으로는 못먹어서 살이 쪽쪽 빠져가고 있는데 육적으로 너무 많이 먹을면서 이러면 안 되는데 살빼야 되는데 하면서 걱정하고 있다. 학교 방학에 들어가면서 이제 정말 믿음 회복의 시간을 가져야 겠다고 다짐한다.

남철

2008-03-16 02:03:53

‘저는 전능하신 하나님을 기쁘시게 하는 일이라면 언제라도 제 목숨까지 내 드릴 각오가 되어 있습니다.’

하나님께서 원하신다면 무엇이던 드릴수 있는 자가 되고 싶습니다.
하나님께서 나의 시간을 원하신다면 하나님께 드리는 자가 되고 싶습니다.
하나님께서 물질을 원하신 다면 물질을 드릴 수 있는 자가 되고 싶습니다.
지금 까지는 너무나 나의 욕심에 잡혀서 살아 왔던것 같습니다.
하나님께 드리는것에 되한 좋지 못한 생각이 있었던것 같습니다.
드리면서도 기쁨으로 드리지 못한적이 많았던것 같습니다.
하나님께 어떤것을 드리던지 기쁨으로 드릴 수 있는 나자신이 되길 원합니다.

이진애

2008-03-16 06:54:34

스스로 인내의 한계를 정하지 말라. 여기까지 참아 보고 아니면 그만둔다고 하는 사람은 반드시 실패하게 되어 있다.
참는데도 한계가 있다? 아니다. 인내에는 한계가 없다. 말씀의 열매가 맺어질 때까지 끝까지 인내하는 것이다. ‘받는 믿음’은 ‘인내의 믿음’을 말한다. 참는 자에게는 복이 오게 되어 있다.

이번 주에.. 나의 인내의 한계를 느끼게 할 만한 일들이 몇 차례 있었다. 돌아보면 별일 아닌 일들이었는데 그 순간에는 왜 그리도 참기가 힘든지.. 거기다 내가 크리스찬이라 참는다는 생각까지 할라 치면 인내의 한계 플러스 억울함까지 곁들여져 내 맘은 완죤 쑥대밭이 된다.^^

이쯤 되면 맘속으로 한 마디 외친다.
하나님! 제가 언제까지, 어디까지 인내해야 합니까..
그러다.. 또 혼자.. 다시 생각한다..
내가 또 뭘 얼마나 참았다고... 히히..

한 순간뿐 아니라.. 지난 시간들을 쭈욱 돌아봐도 그렇다. 내게 인내가 부족했기에 끝까지 열매 맺는 모습을 보지 못하고 포기한 일들이 얼마나 많았던가.
그래, 인내에는 한계가 없다.
기다림에 서툰 나지만.. 그래도.. 그 분을, 그 때를, 그 날을 기다리자. 기다려 보자!!
이 기다림이 쌓이고 쌓이면 이제 내 믿음도 성숙해져 ‘받는 믿음’에서 한 발 나아가 ‘드리는 믿음’, ‘아낌없이 바치는 믿음’을 소유할 수 있게 되겠지.

하지만..
아직 성숙하지 못한 내게.. 오늘은 그 기다림이..
버겁다..

하제란

2008-03-16 08:16:18

말씀의 약속이 있어도 그 열매를 맺기 위해서는 기다리는 기간이 필요하다. 왜냐하면 말씀은 열매가 아니라 씨앗이기 때문이다.

하나님께서 아브라함에게 큰 민족을 이루게 하시겠다는 약속을 하시고 25년을 기다려 이삭을 보게 하셨다는 말씀을 들으면서 문득, 기다림에 대한 것을 생각해 보았다. 일년이라는 시간이 스물다섯번 반복하였다는 것인데.. 말씀에서 처럼 하나님께서 약속하시고 순식간에 약속을 이행하시는 것은 드물다. '말씀은 열매가 아니라 씨앗이다. ' 씨앗이 심어지고 자라기까지 수많은 비바람의 환경에 버텨야 온전한 열매가 맺어지듯, 정말로 말씀의 순종을 따라 하나님을 알아 간다는 것은 온갖 의심과 회의 속에서 조금씩 조금씩 우리를 버티게 해주시는 하나님의 은혜를 깨닫는 일인 것 같습니다. 스스로 지금까지와 앞으로의 모든 사건들에 버티며 성장하는 과정의 기다림이라는 진정한 맛을 되새겨 봐야 하겠습니다.

홍인기

2008-03-16 10:15:57

"물이 없는 광야를 두려워하지 말고, 믿음이 없는 광야를 두려워해야 한다."

참 많은걸 생각하게 하는 말씀입니다. 광야나 사막이나 인생의 힘든길 가운데에는 물이 없기에, 희망이 없기에 두려움이 생기는건데... 이것이 잘못된 생각임을 깨우쳐 주시는 말씀이었습니다.
믿음... 그런 광야에서는 믿음이야 말로 하나님을 바로 깨닫고 하나님의 기적을 체험할수 있는 좋은 기회가 됨을 깨우치지 못했던것 같습니다.
인생이 힘들때... 나락으로 빠져드는 느낌이 들때... 이말씀을 꼭 기억하고 싶습니다. 믿음이 있는 자라면 그 길이 축복의 길로 변화될 수 있음을 알고 있겠지요.

"네 아들 네 사랑하는 독자 이삭을 내게 번제로 드려라"

예전과 다르게 이 말씀을 들을때마다 나라면 어땠을까 하며 반문해 보게 됩니다.
어디까지 할 수 있을까... 아마도 아들을 데리고 제단까지 올라가면서 많은 생각을 할것 같습니다. 제단위에 아들을 올리고.... 불을 붙일때까지 하나님께서 스톱~~ 하지 않으시면 결국엔 불은 붙이지는 못하는 어리석고 믿음없는 아비의 모습으로 남게될것 같단 생각이 듭니다.
한톨의 불순종없이.... 이삭을 제단으로 데리고간 아브라함.... 죽을껄 알면서도 아무말 없이 아버지의 뜻을 따른 이삭... 믿음의 두 조상이 괜히 믿음의 조상이 아닌것을.. 새삼 느끼게 됩니다.

아브라함과 이삭의 하나님에 대한 신뢰, 믿음.... 제 믿음과의 차이는 헤아릴수 없겠지만... 그래도 조금씩이라도 닮아가는 모습으로 살게끔 기도하고 싶습니다.

전수희

2008-03-16 10:29:08

- 참고 기다릴 줄 아는 사람만이 열매의 주인이 될 수 있다. 참지 못하여 중간에 파 엎어 버리는 사람은 결코 그 씨앗의 열매를 거둘 수 없다.
성격도 급하고 결과를 빨리 보고 싶어 하는 성격 덕에 언제나 조마조마 나름대로 1년 2년을 기다려보면서 그것이 뭐 엄청 많은 시간을 기다린냥… 이 정도면 저도 많이 참고 기다린거 아닌가요? 하면서 자만 하지만 믿음의 조상 아브라함에 비하면 그러한 기다림은 기다림에 속하지도 않는다는 것을… 하나님이 허락하신 귀한 복을 내 세대에서 모든 것을 다보고 싶은 지극히 인간적인 욕심에 혼자 기대하고 혼자 실망하고… 그래서 믿음이 나의 신앙이 그렇게도 수십 번씩 오르락 내리락 하는 것이 아닐런지… 하나님은 분명 때에 맞게 합당한 것을 허락하시는데 나는 인간의 그것도 성격이 급한 인간의 기준으로 기다림에 대해 정의를 하려 든다. 태초부터 계신 하나님은 눈깜짝할 사이 조차도 안되는 시간인데 말이다.
일본에 와서 벌써 4년째 일을 하고 있다. 아직도 조바심에 정신을 못 차릴 때가 많다. 바로 몇 주 만에 결과를 내려고 아둥거리면 스트레스에 위태위태하고 분명 합당한 길로 인도하시면서 지혜와 상황 여건들을 허락하셔서 일을 진행 시켜주시는데도 언제나 시작은 두려움으로 시작을 하고 조바심을 낸다. 내 삶을 온전히 맡기고 인내하고 드린다면 내 인생을 통째로 주관해 주실 텐데 아직도 인간의 욕심에 인간의 말도 안되게 작은 틀에 하나님을 끼워 맞추려 하는 내 믿음이 자꾸 하나님을 실망시켜드리고 있는 것은 아닌지 하는 생각이 들었다.

- 이삭을 받는 믿음에 그치지 말고 이삭을 아끼지 않고 드릴 수 있는 믿음으로 성장하자.
이것이 믿음의 조상인 아브라함이 오늘 우리에게 물려 주려고 하는 믿음의 온전한 모습이다.

온전히 내어 맡기고 드릴 수 있는 믿음으로 성장하자 !!

김철중

2008-03-16 11:47:43

아브라함에게 이삭을 누가 주셨나? 주신 분은 당연히 하나님이시다. 이삭의 주인은 아브라함이 아닌, 하나님이시다. 아브라함은 다만 청지기로서 잠시 맡아 키울 뿐이다. 주인이 돌려달라고 하는데 관리인이 아까워한다는 것은, 무언가 큰 문제가 있는 것이다.
요즘 선호를 보면 너무너무 귀엽다. 이 청지기의 본분을 알면서도 주님이 주시라고 하시면 못할것 같다. 좀 전에 전도사님이 올려주신 간증을 들었다. 정말 많은 도전이 되면서 아직 주님을 먼저 생각하지 못하는 나의 모습을 돌아 보며 반성한다.

김준근

2008-03-16 13:17:31

무엇이든 빨리 빨리..

내가 무엇인가를 기도하고 응답을 받는데까지 25년 아니 5년이 걸린다고 생각해보았다. 과연 나는 그 기도를 붙들고, 한결같이 오직 믿음만으로 기다릴수있을까하는것이다. 마음은 항상 가능하다, 그렇지만 실제로 매일? 아니 매주 잊고, 좀더 작은것을 기도하고 의심하기만했었다.
다음주에 시험입니다, 돈이 급해요, 결혼빨리하게 해주세요.. 등등..
해주실것을 믿고 기다리는것이 아니라, 당연하다는듯이 요구를 하고 있다.
사실 예비하고, 믿음으로 기다리고, 강하게 기도를 드려가면 응답을 해주신다는것은 알고 있지만, 그것이 너무나 힘들다.
이번설교시간에도 그렇고 훈련시간에도 항상 느껴왔지만, 믿음의 역사는
인내와 내 행동에 달렸다는 것이다.
믿음의 아버지 아브라함이 그랬듯이 믿고 기다리고, 오직 주님을 의지하고 살아가는 그런 마음의 힘을 길러가야 하겠다.
또, 이제부터는 빨리 빨리라는 잘못된 기도방식과 생각은 아예버리고
주님께 맡기고, 순전히 믿음으로 기도를 드리는 내가되어야겠다.

최정민

2008-03-16 19:06:18

[스스로 인내의 한계를 정하지 말라. 여기까지 참아 보고 아니면 그만둔다고 하는 사람은 반드시 실패하게 되어 있다. 이것은 사탄의 단수 높은 계략이기 때문이다. 예수님을 보라. 예수님은 어디까지 인내했던가? 마지막 한 방울의 피가 다 흘러 나올 때까지, 목숨이 끊어질 때까지 인내하지 않았는가? 그래서 예수님께는 부활의 영광의 열매가 맺어졌던 것이다. 참는데도 한계가 있다? 아니다. 인내에는 한계가 없다. 말씀의 열매가 맺어질 때까지 끝까지 인내하는 것이다. ‘받는 믿음’은 ‘인내의 믿음’을 말한다. 참는 자에게는 복이 오게 되어 있다.]


예수님이 나에게 보여주신 것처럼 인내의 믿음을 배워야겠다 라고 깨달았습니다.
예수님 그리고 아브라함이 보여준 믿음은 단지 하나님을 굳게 믿었던 것뿐 아니라 인내라는
자신과의 싸움이 있었던 것, 그리고 그것을 능히 이긴 것에 많은 도전이 되었습니다.
저는 조금만 응답이 늦어지면 조급해 지고 포기를 하곤 합니다. 그래서 하나님은 제 소망을 들어 주고 싶었어도 제가 포기해 버리고 마니 들어 줄 수 가 없었던 것이 분명 많았을 것이라는 것이 라는 생각이 들었습니다. 저 또한 인내의 믿음을 키워 예수님이 부활의 영과의 열매를 맺었던 것처럼 아브라함이 믿음의 열매를 맺었던 것처럼 저 또한 조금 더 인내하고 하나님의 뜻을 깨달아 기다리는 자가 되기를 소망합니다. 그래서 저 또한 열매를 맺고 싶습니다. 조금만 더 조금만 더!!! 인내하자!!!!!! 스스로 내 한계를 정하지 말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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