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중앙영광교회

인생의 보물찾기

이용규목사, 2007-02-12 19:00:5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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인생의 보물찾기

말씀//베드로전서2:9-10

1.        인생의 보물찾기
당신은 자신을 어떻게 생각하는가? 어떻게 평가하는가? 자신이 보는 자신의 모습을 우리는 ‘자아상(self-image)’라고 부른다.
자아상은 자신의 인생에 결정적인 영향을 미친다. 자아상이 비뚫어지면 인생도 비뚫어지고, 자아상이 파괴되면 인생도 파괴되고, 자아상이 밝으면 인생도 밝아지고, 자아상이 건강하면 인생도 건강하게 되는 법이다. 겉으로는 만인의 부러움을 받을 것 같은 유명 연예인들이 자살을 하는 것도 결국은 자신의 자아상에 치명적인 문제가 있었기 때문이다. 자신을 행복하게 보고, 좋게 보는 사람이 스스로의 인생을 포기한다는 것은 상상할 수 없는 일이지 않는가?
인생에서 가장 귀한 보물찾기는, 하나님께서 우리에게 주신, ‘자신의 참모습’을 찾는 것이다. 세상에 묻혀 버리고, 마귀에게 빼앗겨 버렸던 ‘축복된 자아상’을 되찾는 것이다. 너무나 많은 사람들이 축복된 자신의 본 모습을 잃어 버리고, 이상한 모습을 자기의 모습으로 착각하며 억울하게 살아가고 있다.
성경은 바로 이 보물을 찾을 수 있는 ‘보물지도’이다. 예수님도 이 일을 위해서 이 땅에 오셨다. 잃었던 ‘하나님의 자녀’의 권세를 되찾아 주기 위해서 십자가를 지시고 부활하셨다. ‘예수는 우리 범죄함을 위하여 내어줌이 되고 또한 우리를 의롭다 하심을 위하여 살아나셨느니라’(롬4:25) 따라서 교회는 예수의 이름으로 ‘자아 찾아주기 운동’을 땅끝까지 전개해야 할 것이다. 이것이 바로 전도의 구체적인 모습이기 때문이다.
믿음의 사람은, 자기의 자아상 속에 예수님이 계셔야 하고, 천국이 있어야 하고, 감사가 넘쳐야 하고, 기쁨이 넘쳐야 한다. 이것이 바로 예수 믿는 사람의 진정한 모습이다.  

2.        말씀의 자아상
바른 자아상은 어떻게 만들어지는 것일까?
많은 사람들은 남의 말이나 판단에 의해서 자신의 모습을 규정지어 버리기도 하고, 자신의 성격이나 외모, 능력 등에 의해서 아무 생각 없이 자신의 자아상을 그려 버린다. 그러나 이 모든 것은 하나님이 주신 자아상과는 거리가 멀다. 바른 자아상, 건강한 자아상, 능력 있는 자아상은 어디서 올까? 하나님에게서만 온다.
지금 당신이 가지고 있는 자아상은 누가 준 자아상인가?
세상이 준 자아상인가? 하나님이 준 자아상인가?
자신의 생각이 만들어낸 ‘병든 자아상’인가? 말씀으로 다듬어진 ‘건강한 자아상’인가?
사람들은 말씀을 믿는다고 하면서도, 현실에서는 하나님의 말씀보다 세상의 말을 더 믿고 따르는 경향이 있다. 말씀이 말하는, 정말 잘난 자아상은 무시하고, 지지리도 못난, 세상이 말하는 자아상을 더 인정하려고 한다.
성경은 분명히 말하고 있다. 생명의 자아상은 오직 말씀으로만 만들어진다고.
‘너희가 거듭난 것이 썩어질 씨로 된 것이 아니요 썩지 아니할 씨로 된 것이니 하나님의 살아 있고 항상 있는 말씀으로 되었느니라’(벧전1:23)
능력 있는 사람이나 권세가, 나를 거듭나게 하는 것이 아니다. 오직 하나님의 말씀만이 나를 새 사람으로 만들어 준다. 그러면 내가 어떻게 말씀으로 거듭난다는 말인가? 여기서 새로 태어난다는 말은 육체를 말하는 것이 아니라, 속 사람을 말한다. 속사람 즉, 내면세계가 거듭난다는 말이다. 그러면 내면세계는 무엇일까? 바로 자신이 가지고 있는 자아상이다. 거듭난다는 것은 자신의 자아상을 새 것으로 바꾼다는 말이다. 따라서 진짜 믿음이 있는 사람은 내면세계가 바뀌게 되어 있다. 자아상이 바뀌게 되어 있다. 자기를 보는 눈이 바뀌게 되어 있다.
‘믿음은 자신의 자아상을 바꾸는 것이다’
‘믿음은 ‘말씀의 자아상’을 회복하는 것이다’
이것이 거듭난 자의 진정한 모습이다.
믿음의 사람은 다른 것이 바뀌는 것이 아니라, 내면세계 즉, 자신의 마음의 모습, 자아상이 거듭나기 때문에 새로운 피조물이 된다.
말씀은 우리의 자아상을 새롭게 한다.  

3.        성경 속의 내 모습은?
1) 대통령의 개와 하나님의 자녀
우리는 오직 말씀으로 우리의 자아상을 거듭나게 해야 하는데, 그러면 말씀이 주는 자아상의 모습은 어떤 모습일까? 말씀 속의 내 모습은 과연 어떤 모습일까? 이것이 당신의 진정한 모습이다.
하나님이 주신 당신의 진정한 자아상은 결코 부정적이지 않고, 절망적이지도 않고, 비관적이지도 않다. 하나님은 당신에게, 하나님의 자녀로서, 늘 넘치는 자신감, 자존감, 자긍심, 자부심을 불어 넣어 주셨다.
하나님은 당신의 자아상을 이렇게 그려 주셨다.
‘오직 너는 택하신 족속이요 왕 같은 제사장이요
거룩한 나라요 그의 소유된 백성이니…너를 어두운 데서 불러내어 하나님의 기이한 빛에 들어가게 하신지라’(벧전2:9)
이 말씀이 믿어지는가? 반드시 믿어야 한다. 그리고 이 말씀대로의 그림을 자기 마음 속에 그려야 한다. 이것이 믿음의 사람의 축복이요, 능력이요, 아름다움이기 때문이다. 과거에 어떤 자아상을 가지고 있었더라도 당장 찢어 버리라. 그리고 이 말씀의 자아상이 당신의 자아상이 되게 하라.
이 말씀의 자아상을 다시 한번 묵상해 보자.
‘당신은 만왕의 왕이신 하나님께 택함 받은 사람이요, 로이얄 페밀리요, 언제든지 하나님께 나아갈 수 있는 특권을 가진 사람(제사장)이요, 천국 시민이요, 하나님의 것(자녀, 소유)이다.’
이 얼마나 대단한 사람인가! 세상에 이런 권세를 가진 사람이 또 있단 말인가! 하나님의 은혜가 아니면 있을 수 없는 일이다.
미국 대통령의 사진에 간혹, 그가 키우는 개가 등장한다.
대통령의 개이기 때문에 전 세계 신문에 나온다.  그 개는 먹을 것, 입을 것, 휴가 갈 때 비행기 티켓까지도 걱정할 필요가 없다. ‘대통령의 개’이기 때문이다. 주인이 대통령이기 때문에 주인의 품위에 맞게 대접받게 되어 있다. 그는 단지 주인의 품에서 주인의 기쁨만 되면 된다.
그러면 우리는 누구인가? ‘대통령의 개’ 정도가 아니라 ‘하나님의 왕자(공주)’들이다. ‘대통령의 개’도 이렇게 사랑 받고 대접 받는데 ‘하나님의 왕자님이 어찌 행복을 누리지 못할까? 하나님의 품 안에만 있으면, 하나님의 품위에 맞게 우리는 사랑 받게 되어 있다.  이것이 자녀의 특권이다.
자신의 자아상이 흔들릴 때마다 이렇게 한번 고백해 보라.
'내가 어찌 대통령의 개만 못할 수 있겠는가!'
정신이 번쩍 들지 않는가? 하나님이 주신 자아상을 잃어 버리면, 하나님의 자녀의 권세 또한 상실해 버린다. 자아상이 그 사람의 능력이요, 미래의 모습이다.
2) 자아상은 인생의 설계도면이다
인생은 자기의 자아상대로 된다. 하나님은 그 사람의 자아상 이상은 축복하실 수가 없다. 말씀의 자아상을 가졌던 여호수아와 갈렙은 그들의 자아상대로 젖과 꿀이 흐르는 가나안 복지를 들어갔지만, 나머지 200만이나 되는 이스라엘 백성은 한 사람도 들어가지 못했다. 하나님이 못 들어가게 한 것이 아니라, 그들의 잘못된 자아상이 그들의 앞길을 막은 것이다.
‘일을 행하는 여호와, 그것을 지어 성취하는 여호와…’(렘33:2)
‘내 이름으로 무엇이든지 내게 구하면 내가 시행하리니’(요14:14)
‘이는 힘으로 되지 아니하며 능으로 되지 아니하고 오직 나의 신으로 되느니라’(슥4:6)
일을 행하시는 분은 성부, 성자, 성령 하나님이시다. 그러면 나는 무엇을 하면 될까? 성경대로 인생의 설계도면만 잘 그리면 된다. 자신의 자아상만 똑바로 그리면 된다.  
일은 하나님이 하신다. 그러나 설계도면은 내가 그려야 한다. 남이 절대로
그릴 수 없다. 그래서 ‘타아상’이 아니라 ‘자아상’이다.
3) I am
‘긍정의 힘’의 저자인 조엘 오스틴 목사님의 아버지는 예배 시간마다 성경책을 들고 이렇게 말씀했다고 한다.
‘This is my bible.
I am what it says I am.
I have what it says I have.’
‘이것은 내 성경입니다.
나는 이 성경이 말하는 바로 그 사람입니다.
나는 이 성경이 말하는 바로 그것을 소유하고 있습니다.’
정말 멋진 자아상이다. 그는 바로 성경대로의 자아상을 소유한 사람이었다. 그래서 성경대로의 역사를 후손까지 증거하는 인물이 된 것이다.
‘주여! 나는 ‘성경의 자아상’을 선물받은 사람입니다.
이 자아상의 증인되게 하옵소서!
주님이 주신 이 귀한 보물을 다시는 잃어버리지 않게 하옵소서!’
‘너희가 ‘전에는’ 백성이 아니더니 ‘이제는’ 하나님의 백성이요
‘전에는’ 긍휼을 얻지 못하더니 ‘이제는’ 긍휼을 얻은 자니라’(벧전2:10)
‘전에는’의 자아상에 미련을 두지 말라. 예수님으로 인해 당신의 자아상은 이미 ‘이제는’의 자아상으로 바뀌었음을 명심하라.
‘개가 그 토한 것을 도로 먹는 것 같이
미련한 자는 그 미련한 것을 거듭 행하느니라’(잠26:11)
당신의 자아상이 과거로 돌아가지 않고 성경으로 돌아오기를 축원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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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경환

2007-02-17 09:36:53

###하나님이 주신 당신의 진정한 자아상은 결코 부정적이지 않고, 절망적이지도 않고, 비관적이지도 않다. 하나님은 당신에게, 하나님의 자녀로서, 늘 넘치는 자신감, 자존감, 자긍심, 자부심을 불어 넣어 주셨다.###

군대에서 있었던 일입니다. 저는 군에서 제가 맡은 임무외에 챠트글씨를 쓸 줄 알아서 챠트글씨를 쓰는 임무를 겸했습니다. 각부대에서 쓰는 괘도를 만드는 일과 게시판과 간판을 만드는 일이 많았습니다. 자대배치를 받고 얼마 안되서 대대장님의 호출을 받고 사령관님께 브리핑 할 10장의 괘도를 만드는 일이였습니다. 10장의 괘도를 만드는데 저에게 준 시간은 일주일이였습니다.하루에도 충분히 끝낼수 있는 분량인데 왜 일주일을 주나 했습니다. 대대장님이 작업실에 오셔서 격려와 먹을 것 등 대우가 너무 좋았습니다. 완전 모든 일과에서 열외였습니다. 누구도 제 작업에 참견을 할수도 없었습니다. 오로지 부대의 대장인 그분만 할 수 있는 것이였습니다. 그전의 제 성격으로는 너무나 큰 일이기에 두렵고 떨려서 제대로 감당하지 못했을 겁니다. 그러나 저는 대장님의 빽을 믿고 담대하게 일주일에 걸쳐서 브리핑 괘도를 만들었습니다. 대대장님은 무사히 좋은 결과로 브리핑을 마칠 수 있었고 그 후로 저에게는 꼬리표가 따라다녔습니다. 사령관님이 인정한 챠트글씨병 이라는 별명이였습니다. 덕분에 일주일을 쉬면서 지냈는데 더불어 3박4일이라는 특별휴가까지 받게 되었습니다. 그후로 군대생활은 순탄하게 늘 자부심을 갖고 당당하게 지내게 되었습니다. 군대에서 대장님의 빽은 천하의 모든것과도 바꿀 수 없을 정도로 전부입니다. 저는 전부로 생각되었던 그 힘을 얻어 자신감과 자부심을 동시에 갖고 지냈습니다. 원래 제 자신 자랑을 잘 못하는 사람인데 오늘 말씀을 통해 자신감을 얻고 자랑 아닌 자랑을 해 보았습니다. 죄송합니다. 이렇듯 저는 사령관님이 인정 해 주신 그 말 때문에 군생활에서 열심히 최선을 다했습니다.

군생활의 추억을 나누면서 저는 지금의 제 모습을 보게 되었습니다. 오늘은 위에 말씀에 너무나도 큰 힘을 얻었습니다. 하나님이 제게 주신 진정한 자아상을 붙들어야 되겠습니다. 늘 작아보이는 제 모습이 때로는 실망적일때도 있었습니다. 특히 영적인 싸움과 육적인 싸움에서 사탄에게 밀려 나는 순간 저는 한없이 작아집니다.그러나 다시 일어나면서 갖는 자신감이 저는 이제까지 저의 교만으로 알고 있었습니다. 하지만 분명 하나님이 주신 자신감임을 믿겠습니다. 어떠한 순간에도 부정적인 생각과 모습을 버리겠습니다. 하나님이 제게 주신 자아상을 바로 보는 것이 보물을 찾는 것이기에 세상 보물은 못 찾아도 제게 주신 하나님의 보물은 바로바로 찾을 수 있는 사람이 되겠습니다. 하나님이 불어 넣어 주신 자신감 , 자존감, 자긍심, 자부심은 이제 김 경환의 것이기에 세상을 향해 떳떳하게 더욱 복음을 외치는 자가 되겠습니다.

이성훈

2007-02-17 11:19:19

내 자아상.. 내가 생각하는 나의 모습을 생각해보았습니다.
내 머리는 어떨까, 내 성격에서 내가 좋아하는 부분, 내가 싫어하는 부분, 난 노래는 잘하나? 운동은 어떻지? 일은 잘하나? 등등.. 내 안의 여러가지 모습들을 대체적으로 긍정적으로 평가하고 있으면서, 또 부족한 부분들은 실망하기도 하고 싫어하기도 하고 포기하기도 하고 그런 것 같습니다. 그러나 설교를 들으며 반성한 것이 나의 모습을 바라볼 때 주님의 시야로 바라보지 못했다는 것이었습니다. 그렇기에 내가 잘한 다 싶은 것은 겉으로 겸손하게 굴어도 속으로는 난 잘한다는 자만과 교만이 들어있었고, 내가 못한 다 싶은것은 왜 못할 까 자학하기도 하고, 나의 못난 부분과 부족한 부분은 아예 없는 부분인마냥 무시하기도 하고, 가끔 우울해지기도 하고 그랬습니다.
the image of God.
내가 진정 하나님의 형상으로 지음받았다는 믿음이 있을 때, 나의 자아상을 하나님의 형상으로 잡을 때, 내가 그 모습으로 나아갈 것을 믿습니다. 내 속엔 많은 내가 있습니다. 하나님을 추구하는 내가 있고, 성령의 열매를 맺고자 노력하는 내가 있습니다. 그리고 자꾸 죄를 짓는 내가 있고, 남들에게 보여주지 못하는 내가, 성령의 열매가 나타나지 않는 내가 있습니다.
하지만 내가 하나님의 형상대로 지어졌음을 믿습니다. 주님이 원하시는 나의 모습을 가꾸어 나가기 원합니다.

지영민

2007-02-17 21:33:57

*** 지금 당신이 가지고 있는 자아상은 누가 준 자아상인가?
세상이 준 자아상인가? 하나님이 준 자아상인가?
말씀은 우리의 자아상을 새롭게 한다. ***

어렸을때부터 우리 집 남매들은 남들칭찬을 많이 받으며 자랐습니다.
'어쩜 아이들이 인사성이 좋아요. 어쩜 아이들이 하나같이 착해요...' 등등...
그런 이야기를 들으면 들을수록 욕심내어 그 칭찬대로 되려고 많이 노력했던 기억이 납니다. 그래서 때론 '바보같다' 라는 말도 들었습니다. 그런 습관이 오래되다보니 웃지못할 일도 많이 있었습니다. 처음엔 그런 칭찬을 기뻐하시던 엄마도 점점 착하기만하고 자기주장을 똑바로 세워 나가지못하는 저를 보며 참 답답해하셨습니다. 그때 어린 제 마음속에는 혼동이 왔습니다. '어! 전에는 기뻐하시더니 이젠 화를 내시네. 그럼 어쩌지? 어떻게 해야하지???' 이미 어느정도 형성이 된 모습이기 때문에 생각하는 것이나 행동이 쉽게 고쳐지지않았습니다. 이때의 모습이 어른이 된 지금에도 남아 때로는 제가 생각해도 답답할 때가 있습니다. 그때 어른들의 그런 칭찬이 꼭 허물어서는 안되는 목숨과도 같은, 내가 지켜야할 것이라고 생각했습니다. 어린 나에게 심어준 어른들의 칭찬은 그 후에는 흉으로 바껴 나에게 돌아왔습니다. 그때의 혼돈은 참 이해하기 어려운 일들이였습니다.

믿음을 주신 하나님께선 어른들처럼 일관성이 없는 모습이 아닌 언제나 한결같은 모습으로 저를 세워 주셨습니다. 그럴때면 이 말씀이 어린시절 나를 만들어가는 자아상 가운데 있었다면 그때 나는 덜 고생했을텐데 하는 후회하니 후회가 들었습니다. 하지만 이제라도 말씀이 나는 거듭나게 하시는 힘이 되어주셔서 감사할 따름입니다.

‘This is my bible. 이것은 내 성경입니다.
I am what it says I am. 나는 이 성경이 말하는 바로 그 사람입니다.
I have what it says I have.’
나는 이 성경이 말하는 바로 그것을 소유하고 있습니다.

어렸을때 보았던 영화가 생각이 납니다. 어린아이들이 보물지도를 가지고 보물선을 찾으러 가는 내용의 영화였는데 그것을 보면서 나에게도 그런 일이 있었으면 하는 상상을 했던 일이 생각이 납니다.
그런데 하나님께선 이미 내가 깨닫지 못한 사이 제 손에 귀한 말씀의 보물지도를 주셨습니다. 내 삶을 더 풍성하게 만들어 갈 귀한 것을 소유한 것을 깨닫지 못하고 헤매고 다니는 나의 어리석었던 모습을 벗어버리고 싶습니다.
‘전에는’ 에서 하나님께서 주신 ‘이제는’의 자아상으로 바뀐 귀한 나의 자아상을 회복하고 싶습니다.

오성훈

2007-02-19 09:05:46

#사람들은 말씀을 믿는다고 하면서도, 현실에서는 하나님의 말씀보다 세상의 말을 더 믿고 따르는 경향이 있다. 말씀이 말하는, 정말 잘난 자아상은 무시하고, 지지리도 못난, 세상이 말하는 자아상을 더 인정하려고 한다.
성경은 분명히 말하고 있다. 생명의 자아상은 오직 말씀으로만 만들어진다고.
‘너희가 거듭난 것이 썩어질 씨로 된 것이 아니요 썩지 아니할 씨로 된 것이니 하나님의 살아 있고 항상 있는 말씀으로 되었느니라’(벧전1:23)
능력 있는 사람이나 권세가, 나를 거듭나게 하는 것이 아니다. 오직 하나님의 말씀만이 나를 새 사람으로 만들어 준다.#

그 동안의 교인들을 바라보면서 참으로 무력한 교인이었음을 느끼게 한다. 이런 무력한 교인들을 어떻게 하면 능력 있는 성도들로 세워나갈 수 있을까? 그것은 한마디로 강도 높은 훈련으로 가능한 것임을 요즘 들어 깨닫게 한다. 그 동안은 교인들의 형편을 먼저 생각해주다보니 무기력한 교인을 만들었다는 생각이다. 그리고 이러한 원인의 근본적인 문제는 내가 먼저 말씀으로 올바로 서지 못했고, 내 자아상이 말씀으로 바로 서지 못했기 때문이었다.
이제 이 자아상을 말씀으로 세우지 않고는 교회의 체질 개선은 불가능하다는 것이다. 내자신의 자아상, 성도들의 자아상의 바른 정립은 오직 강도 높은 훈련만이 가능하다는 것이다. 이제 얼마 남지 않은 훈련의 시간들을 통하여 마지막 최선의 노력으로 기울여야 하겠다.

조정현

2007-02-19 18:20:39

잘못된 자아상이 사람을 어디까지 죽일수 있는지...참으로 절실히 느낀 한해이었던것 같습니다..
전 어렸을때 부터 별로 잘난것은 없지만 그래도 어디가서 혼이 나는 아이는 아니었습니다..학교를 가도 어디를 보내도 늘 자신의 몫을 그래도 남들만큼은 하는 아이라고 어디를 가도 부모님들에게 "참 자녀교육을 잘 시키셨네요.."라는 말을 듣게끔 행동했던것 같다.다른 어른들이 우리 부모님에게 그런 말씀을 하실때마다 '그래 난 지금 잘하고 있는거구나....'하고생각했던것 같습니다. 철저하게 사람의 말에 나의 중심이 있었던 것이지요. 자라면서 부모님에게도 그리고 사람들에게도 별로 혼나지 않고 자란 탓인지 내 속엔 자신감 이전에 교만함이 싹트고 있었는지도 모르겠습니다.늘 모든것을 완벽하게 감당할려고 했고 그렇지 못한 사람이 답답하기만 했습니다. 그래서 정말 내 자신이 잘난줄만 알고 살아왔었던것 같다.그게 나의 자화상인 마냥,,,
그런데 사모가 되어서 나의 하는 모든일들이 당연한 것으로 여김을 받고 특히나 (위의 목사님과 사모님들의 리플들을 보면서 성도들의 말한마디에 자신의 존귀함을 잃어버리는 일이 너무 많구나 하는것을 다시 느낍니다.) 목회자의 가정이기 때문에 받는 사랑도 특별하지만 또한 목회자의 가정이기 때문에 억울하게 감수해야하는것들 또한 많음을 다시 한번 느낍니다..그런 정당하지도 않는 비난에 (누구나 그렇겠지만) 익숙하지 않는 저 또한 생각없이 내뱉고 행동하는 성도들의 말한마디 행동한가지에 하나님으로 부터 받은 귀한 자아상을 잃어버리고 너무 많이 헤매고 다녔던 시간인것만 같습니다. 예배시간에 대놓고 사모님때문에 교회가 잘못된 것이라는둥...그런 이야기를 들을때는 내가 왜 이자리에 있는건가? 한번 무너진 자존감은 다른곳에서도 어김없이 머리를 들고 나왔습니다. 내가 여기 있어야 하는게 맞는것인지? 열심히 공부해서 잘 나가는 사람들을 보면서 (별로 잘한 공부도 아니면서) 그래 나도 저렇게 공부도 하고 세상적으로도 잘 나가는 사람이면서 신앙생활도 하면 좋을텐데..많이 배우지 못한것에 대한것이 또 나에게 병든 자아상을 만들어내고...마치 나의 인생이 끝이라도 난마냥...누군가를 원망하는 마음만 가득해져서 주님의 음성은 전혀 들리지 않게 되었습니다....그러는 동안 마음과 몸도 함께 병들어 가고 주님이 주신 자아상을 악한것들에게 고스란히 빼앗기고 무력해진 모습으로 그냥 힘없이 주저앉아 있는 내 모습이 있었습니다.
사실 지금도 이 모든것이 치료되었다고 말할수는 없습니다..
하지만 오늘의 말씀으로 정말 이제는 이겨내고자 합니다..
사람이 아니라 주님께서 주신 자화상을 가지고 다시 한번 나를 세우고자 합니다.
주님 이길수 있는 힘을 주시고 뻗고 계시는 당신의 손을 다시 강하게 붙잡게 하시옵소서..

마준철목사

2007-02-19 23:11:08

"자아상은 자신의 인생에 결정적인 영향을 미친다. 자아상이 비뚫어지면 인생도 비뚫어지고, 자아상이 파괴되면 인생도 파괴되고, 자아상이 밝으면 인생도 밝아지고, 자아상이 건강하면 인생도 건강하게 되는 법이다. 겉으로는 만인의 부러움을 받을 것 같은 유명 연예인들이 자살을 하는 것도 결국은 자신의 자아상에 치명적인 문제가 있었기 때문이다. 자신을 행복하게 보고, 좋게 보는 사람이 스스로의 인생을 포기한다는 것은 상상할 수 없는 일이지 않는가?"

자아상이 이토록 중요한 것임을 새삼 느껴봅니다. 최근에 잇따르고 있는 인기 연예인들의 자살 소식을 접하면서 참 남 이야기가 아님을 보게 됩니다. 물론 연예인들의 자살 소식은 어제 오늘의 이야기는 아니지만, 더욱 우리들의 가슴을 아프게 하는 것은 그들도 하나님을 알고 교회를 다녔다고 하는 그리스도인이었다는 사실입니다. 그 분들이 이 설교를 들을 수 있었다면 적어도 자살까지는 가는 일은 막을 수 있지 않았을까 싶습니다.

자살을 시도하는 사람들의 대부분의 공통점은 이 자아상이 왜곡되어 있거나 건전하지 못한 자아상을 붙들고 있었기 때문일 것입니다. 저 역시도 한 때는 외적인 소유와 평가기준 때문에 스스로 깊은 열등감에 빠져 어려움을 겪은 적이 있습니다. 내면의 세계를 볼 수 있는 눈이 없었기 때문에 육적인 눈으로 보았을 때 나에게 없는 것을 가진 사람이 처음에는 부럽기도 했다가 나중에는 원망의 대상으로 바뀌는 내 자신을 보니 얼마나 무서웠는지 모릅니다. 이 비교의 영이 얼마나 스스로를 초라하고 비참하게 만들었는지.....

하나님의 말씀이 내 삶 속에 들어오지 않으면 우리는 결코 진정한 자신의 모습을 보지 못할 것입니다. 지난 주 성도님들과 요한복음 4장의 말씀을 함께 나누었습니다. 성경에 나오는 인물중에 가장 자아상이 비뚤어져 있던 사람이 아마도 사마리아 여인이었을 것입니다. 하루 하루 세상을 저주하면서 살았던 그 여인이 마음의 문을 열고 예수님을 받아들이는 순간, 그녀의 자아상은 180도 달라졌음을 보게 됩니다. 그리고 자아상이 바뀌니까 변화된 삶이 가능해졌던 것입니다. 참 자유가 그녀에게 임했습니다. 더이상 체면도 부끄러움도 그녀에게는 존재하지 않았습니다. 진리가 너희를 자유케 하리라는 예수님의 말씀 그대로였습니다.

오늘 목사님의 말씀을 통해 내가 이 세상에서 얼마나 존귀한 하나님의 자녀인가에 대해서 묵상하며 깊이 감사를 드립니다. 이제 지나간 나의 과거와 실수, 옛날의 경험과 상처 때문에 더이상 연연해 하지 않는 하나님의 자녀가 되기를 소원합니다. 하나님도 과거를 묻지 않으시는데 어찌하여 내가 과거의 종이 되겠습니까? 주여! 저에게도 말씀의 자아상, 하나님이 기뻐하시는 자아상으로 날마다 옷 입혀 주옵소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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人生の宝探し

7
이용규목사 2007-02-14 623
  145

인생의 보물찾기

56
이용규목사 2007-02-12 1216
  144

예수님의 증인

58
이용규목사 2007-02-05 1157
  143

내가 너를 택한 이유

53
이용규목사 2007-01-29 2733
  142

인생의 목적

48
이용규목사 2007-01-22 1659
  141

두 이름

46
이용규목사 2007-01-15 1111
  140

천국의 통로

51
이용규목사 2007-01-08 1251
  139

예수 이름의 능력

53
이용규목사 2007-01-01 1358
  138

크리스마스에 복된 자

57
이용규목사 2006-12-25 1787
  137

계승형 지도자

57
이용규목사 2006-12-18 2572
  136

기드온 300용사의 조건

47
이용규목사 2006-12-12 2623
  135

지도자 훈련

47
이용규목사 2006-12-04 94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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