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중앙영광교회

거울

이용규목사, 2006-06-13 00:06:5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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거울

말씀//고전10:1-13

1. 거울
‘그런 일은 우리의 거울이 되어 우리로 하여금 저희가 악을 즐겨한 것같이 즐겨하는 자가 되지 않게 하려 함이니’(고전10:6)
하나님은 오늘 우리 인생에 귀중한 거울을 주시기를 원하신다.
거울은 인간에게 없어서는 안될 필수품이다. 거울의 역사는 인류의 역사와 거의 비슷하다고 한다. B.C. 3000년경부터 사용되었다고 한다. B.C.1500년경의 모세 시대에도 거울은 보편화되어 있었다. 하나님께서 성막의 물두멍을 만드실 때 여인들의 거울로 만들었다고 했다.
‘그가 놋으로 물두멍을 만들고 그 받침도 놋으로 하였으니
곧 회막문에서 수종드는 여인들의 거울로 만들었더라’(출38:8)
거울은 스스로를 잘 볼 수 있게 하는 도구이다.
그래서 화장실마다 거울이 설치되어 있고 여인들은 휴대용 손거울을 늘 가지고 다니며 수시로 자신의 얼굴을 보면서 화장을 예쁘게 고치곤 한다. 거울에는 얼굴을 보기 위한 ‘얼굴 거울’도 있지만, 사실은 이 거울보다 훨씬 귀중한 거울이 있다. 그것은 바로 우리의 인생을 돌아볼 수 있는 ‘인생 거울’이다. 하나님은 오늘 이 인생 거울을 우리에게 하나씩 주기를 원하신다. 그것은 바로 하나님의 ‘말씀의 거울’이다. 말씀의 거울 속에는 수많은 사람들의 경험들과 사람을 만드신 하나님의 매뉴얼이 통 체로 기록되어 있다.
아름다운 사람들의 특징은 수시로 거울을 본다. 그리고 아름답지 못한 부분을 계속 고쳐간다. 그래서 거울을 자주 보면 늘 깔끔하고 아름답다.
‘아름다운 사람은 오직 ‘거울’을 즐거워하여 그 ‘거울’을 주야로 보는 자로다.’    
복 있는 사람들의 특징은 수시로 말씀을 본다. 그리고 은혜롭지 못한 부분을 계속 고쳐간다. 그래서 말씀을 자주 보면 늘 은혜롭고 복이 넘친다.
‘복 있는 사람은 오직 ‘여호와의 율법’을 즐거워하여 그 ‘율법’을 주야로 묵상하는 자로다.’(시1:1-2)    
믿음의 사람이라면 적어도, 육의 거울을 보는 것만큼은 영의 거울을 보아야 할 것이다.
얼굴을 신경 쓰는 것만큼은 마음도 신경을 써야 할 것이다.  
화장을 고치는 만큼 마음을 고쳐 나가야 할 것이다.
얼굴화장은 사람을 기쁘게 하지만 마음 화장은 하나님을 기쁘게 한다.
물두멍은 하나님께 나아갈 때 손을 씻는 대야이다. 이것을 하필이면 여인의 거울로 만든 것은 거울로 얼굴을 단장하듯이 거기에 담긴 물로 마음을 깨끗게 하라는 깊은 뜻을 담고 있다.
믿음의 사람은 마음을 깨끗이 하는데 늘 신경을 써야 하고, 시간과 정성을 투자해야 한다.
믿음이란 하나님께 잘 보이는 것이지 사람에게 잘 보이는 것이 아니기 때문이다.

2. 멸망 받은 사람들의 신분
광야에서 수많은 사람들이 멸망을 받았다.
그들은 과연 어떤 사람들이었을까? 이스라엘 백성들을 괴롭혔던 애굽 사람들이었을까? 아니면 아주 큰 죄를 지은 이방인들이었을까? 아니다. 광야에서 몰사한 사람들은 바로 이스라엘 백성들이었다. 그들은 하나님의 특별한 사랑과 은혜를 입은 선민이었다.
하나님은 그들을 400년 동안 종살이 하던 애굽에서 친히 구해 주셨다. 애굽의 바로왕의 군사들이 추격해 올 때, 홍해 바다에서 이스라엘 백성들은 건너게 하고 바로의 군사들은 몰사하게 함으로 종의 신분에서 온전한 자유를 얻게 하셨다. 그래서 성경은 ‘바다에서 세례를 받고’로 기록하고 있다. 우리가 세례를 받으므로 신분상 죄에서 온전히 자유를 얻기 때문이다. 홍해의 물을 건널 때 육이 자유자가 되었듯이 세례의 물을 받을 때 영이 자유자가 된 것이다.
그리고 광야에서 이스라엘 백성들은 하나님이 직접 주신 신령한 식물(만나)을 먹었으며, 하나님이 직접 주신 신령한 음료(반석의 물)을 마셨다. 이것을 성경은 신약시대의 성만찬으로 비유하고 있다. 예수님의 몸과 보혈을 받아 먹기 때문이다.
출애굽한 이스라엘 백성은 세례와 성만찬의 엄청난 은혜에 둘러 쌓인 특별히 선택 받은 백성이었음을 1-4절에서는 강조하고 있다.
그런데 그들이 광야에서 멸망을 받았다고 했다. 이것은 세례와 성만찬의 은혜를 받은 우리에게 귀한 경고를 주고 있다. 방심하지 말아야 한다. 타락하지 말아야 한다. 은혜의 백성이 더 망하기 쉽다. 우리도 이처럼 충분히 멸망 받을 수 있다. 경계를 늦추지 말아야 한다.

3. 멸망 받은 이유
왜 은혜의 백성이 이렇게 허무하게 멸망할 수 밖에 없었을까?
그렇게 그리던 젖과 꿀이 흐르던 가나안 땅을 밟아보지도 못하고 광야에서 허무하게 죽을 수 밖에 없었을까? 그들은 악을 즐거워했기 때문이다.(6)
그러면 어떤 악을 즐거워했을까? 4가지 악을 하나 하나 점검해 보도록 하자.
1) 우상숭배
‘저희 중에 어떤 이들과 같이 너희는 우상 숭배하는 자가 되지 말라’(7)
우상 숭배의 구체적인 모습은 출애굽기 32장에 잘 나와 있다.
‘백성이 모세가 산에서 내려옴이 더딤을 보고’(출32:1) 백성들은 우상 숭배의 악을 즐기게 된다. 원하던 것이 안보이면 인간은 금방 죄의 유혹에 빠지기 쉽다. 성질 급한 사람이 죄를 짓기 쉽다. 살다 보면 좀 더디게 이루어지는 일도 있다. 이 때 우리는 조급하여 일을 그르치지 않도록 주의해야 할 것이다. 특히 하나님의 선한 역사를.
모세는 말씀 받으러 시내 산에 올라가 있는데, 백성들은 그것을 기다리지 못하여 스스로 금으로 송아지를 만들어서 그것을 여호와 하나님이라고 하며 제사를 드렸다. 이것이 성경이 말하는 첫 번째 악이요, 우상 숭배의 모습이다. 백성들은 말씀을 기다리지 못하고 금송아지를 만들어 예배를 드렸다. 오직 말씀 중심의 예배가 회복되어야 한다. 세상에 아무리 좋은 것이 있더라도, 비록 그것이 금송아지 같이 값진 것이더라도 말씀 중심에서 벗어난 예배는 우상 숭배임을 알아야 한다. 그들도 분명히 하나님께 예배를 드렸다. 새벽 일찍 일어나 번제와 화목제를 열심히 드렸다. 그러나 말씀 중심이 아니라 금송아지 중심이었기 때문에 그것은 우상 숭배에 불과했던 것이다. 오늘날도 하나님께 예배를 드린다고 하면서 우상숭배성 예배를 드리고 있지 않나 자신을 점검해야 할 것이다.
그리고 또 한가지는 ‘앉아서 먹고 마시며 일어나서 뛰놀더라’(출32:6)고 한 것에 예배의 심각한 문제가 있다. 이 예배는, 예배는 예배인데 하나님을 화나게 하는 예배이다. 하나님을 기쁘게 하는 예배가 아니라 자기의 즐거움을 위한 예배이기 때문이다. 특히 여기서 뛰논다는 말은 자기의 감정에 붙들려 미칠 정도로 춤을 춘다는 말이다. 하나님께 붙잡힌 것이 아니라 온전히 자기 감정에 붙들려 있는 예배이다. 감정중심 예배는 하나님 중심 예배에 위배된다. 감정 중심은 철저하게 자기 중심의 예배를 드리는 모습이기 때문이다. 자기가 슬프면 슬픔의 예배를 드리고, 자기가 괴로우면 괴로움의 예배를 드리는 것은 감정을 섬기는 것이지 하나님을 섬기는 모습이 아니다. 진정한 예배는 나의 모든 것을 드려(감정까지도) 하나님을 섬기는 행위이다. 그래서 지나친 음악이나 감정에 호소하는 표현도 예배를 방해하는 큰 요소라고 했다.
하나님은 이 모습을 보고 ‘네 백성이 부패하였다’(출32:7)라고 했다. 예배를 드리되 썩은 예배를 드리지 말아야 한다. 살아있는 싱싱한 예배를 드려야 한다. 썩은 냄새가 아니라 향기가 하나님께 올라가는 예배를 드려야 한다.
2) 간음
‘우리는 저희와 같이 간음하지 말자’(8)
간음 사건은 민수기25:1-9에 나와 있다.
‘이스라엘이 싯딤에 머물러 있더니 그 백성이 모압 여자들과 음행하기를 시작하니라’(민25:1) 음행의 발단이 머물러 있는 것에 있었다. 믿음의 사람은, 늘 마음의 여유는 가지고 있어야 하지만 머물러 있지는 말아야 한다. 약속의 땅 가나안을 향하여 계속 전진해야 한다. 바쁘게 살아야 한다. 다윗도 전쟁에 나가지 않고 머물러 있다가 음행의 죄를 짓게 되었다. 평안하고 시간이 있으면 죄짓기 쉽다. 타락하기 쉬운 게 인간이다. 방심은 금물이다. 시간이 있을 때일수록 더 깨어 있어야 한다. 앞에서 금송아지 사건 때에는 하루에 3천명이 죽었는데, 음행의 사건에서는 하루에 2만3천이나 죽었다고 성경은 기록하고 있다. 왜일까? 음행의 사건이 더 무서운 죄이기 때문이다. 금송아지는 그래도 하나님께 계속해서 예배를 드리게 했지만, 모압 여자들은 예배의 대상을 아예 그들의 신인 바알브올로 바꿔 버렸기 때문이다.(민25:3) 음행은, 타락한 예배가 아니라, 아예 하나님을 떠나게 만들어 버렸다. 그래서 음행에 더 무서운 저주를 내리셨다. 물질의 유혹보다 성적 유혹이 더 무섭다. 금보다 여자가 더 세다. 금은 3천을 죽였지만 여자는 2만3천을 죽였기 때문이다. ‘금보다 여자가 더 무섭다’ 여자(남자)를 보기를 돌같이 하라.
3) 시험
‘우리는 저희와 같이 시험하지 말자’(9)
이 내용은 민수기21:4-9에 나와 있다. ‘에돔 땅을 둘러 행하려 하였다가 길로 인하여 백성의 마음이 상하니라’(민21:4) 우리는 갑자기 힘든 인생 길을 만나면 시험의 유혹을 강하게 받는다. 이스라엘 백성들은 돌아가는 길을 만나게 될 때, 하나님의 인도를 의심하게 된다. 그래서 지금까지 쌓였던 불만과 의심을 입으로 다 토해냈다. 이때 하나님은 불뱀에 물려 그들을 죽게 한다. 입으로 악을 쏟으니 물려 죽게 한 것이다. 이것의 처방으로 하나님은 놋뱀을 만들어 장대에 달아서 그것을 백성으로 보게 한다. 본 사람들은 다 살아났다. 놋뱀은 곧 그리스도이시다. 힘들 때 의심하지 말고, 오직 십자가의 주님만 믿고 따라오면 산다는 것이다. 이처럼 시험은 순종의 길을 막는다.
사람은 힘들고 어려울 때 하나님을 의심하는 시험을 만난다. 그래서 불순종의 큰 유혹을 받는다. 아무리 힘들고 이해가 안가는 인생길을 만나더라도 하나님을 의심하지 말자. 시험하지 말자. 불뱀을 만나는 수가 있다. 불뱀은 꽃뱀보다 더 무섭다. 오직 믿음의 주요 온전케 하시는 이인 예수를 바라보자! 그럴 때 우리의 순종의 길은 비뚤어지지 않을 것이다.
4) 원망
‘너희는 저희와 같이 원망하지 말라’(10)
민수기 16장에 보면 고라와 250명의 족장이 모세와 아론을 원망하며 대항한다. 그들은 모두가 좋은 직책을 맡은 사람들이었다. 우리는 높은 자리에 있을 때 조심해야 한다. 교만으로 넘어지기 쉽기 때문이다. ‘그런즉 선 줄로 생각하는 자는 넘어질까 조심하라’(고전10:12)
교만한 사람은 절대로 순종하지 않는다. 고라처럼 사사건건 반항할 뿐이다.
교만한 사람의 약한 반응은 원망이요, 강한 반응은 대항이다. 우리는 이 약한 반응도 보이지 말아야 한다. 오직 예수님의 십자가의 겸손으로 무장해야 한다. 그래야 십자가의 순종이 우리의 앞길을 인도해 준다.
결국 3)번의 시험과 4)번의 원망은 모두가 순종의 길을 가로막는 큰 방해물이다.
힘들 때나 약할 때는 늘 의심을 조심해야 한다. 의심은 시험을 낳고 시험은 불순종을 낳기 때문이다.
좋을 때나 강할 때는 늘 교만을 조심해야 한다. 교만은 원망을 낳고 원망은 불순종을 낳기 때문이다.

우리를 유혹하는 악은 4가지인데 이것을 2가지로 요약할 수 있다.
우상숭배와 간음은 결국 예배를 파괴시키는 영적 지뢰이고,
시험과 원망은 결국 순종의 길을 폭파시키는 영적 지뢰이다.
광야에서 죽지 말아야 한다.
반드시 가나안 땅의 주인이 되어야 늘 지켜야 한다.
하나님이 우리를 택하신 것은 광야를 주시기 위함이 아니다. 광야는 단지 가나안을 가기 위한 통로에 불과하다. 하나님이 우리를 부르신 목적은 젖과 꿀이 흐르는 가나안을 주시기 위함이다.

예배와 순종이 살아 있는 사람은 절대로 그 인생이 광야로 끝나지 않는다.

비록 우리가 광야의 길을 걸어가고 있더라도, 그 길이 아무리 힘들더라도 주님 안에 있으면 넉넉히 가나안 땅에 입성할 수 있다.
‘오직 하나님은 미쁘사 너희가 감당치 못할 시험 당함을 허락지 아니하시고 너희로 능히 감당하게 하시느니라’(고전10:13)
이스라엘 백성들이 광야에서 멸망당한 것은 먹을 음식이 없어서도 아니요, 마실 물이 없어서도 아니었다. 그들이 멸망당한 것은 예배가 썩었고 순종이 죽었기 때문이었다.
‘주여! 내 인생에서 우상숭배와 간음이 멸종되게 하시고 참 예배가 회복되게 하소서!
주여! 내 인생에서 시험과 원망이 멸종되게 하시고 참 순종이 왕성하게 살아나게 하소서!’          
            

29 コメント

정승은

2006-06-13 03:00:42

1.믿음의 사람이라면 적어도, 육의 거울을 보는 것만큼은
영의 거울을 보아야 할 것이다.
<얼굴화장은 사람을 기쁘게 하지만 마음 화장은 하나님을 기쁘게 한다.>
내가 여성인 관계로 이 비유는 참으로 나를 부끄럽게 만들었다.
육의 거울은 하루에 몇번씩 보지 않으면,왠지 찜찜한것이 혹시 무엇이라도
묻었는지,트러블이 생긴것은 아닌지 늘 점검하고,몇번씩 세안을 하면서
영의 거울은 광야에 도착해서야 문제가 생겼음을 깨닫고,영의 거울을 들여다
보려했던 나의 게으름과 완악함과,믿음없음을 말씀을 통해 다시한번
깨닫게 해주시니 참으로 감사하다.이제부터 육의 거울보단,하나님을 기쁘게
해드릴 수 있는 마음의 화장에 마음을 쏟아야 겠다.

그리고 어느 순간부터 은혜받고,세례받았다고 이미 주님의 자녀인 내가
조금 잘못을 한다고 해도,게을러져서 방탕한 시간을 보낸다 해도..
주님께 무조건적이기만한 이해를 받을거란 착각을 깨우쳐 주시면서,
반성의 거울을 내게 비춰주셨다.얼마나 감사한지..!
그리고 지금 현재의 남편과 자녀를 통해,개인적이지만 현실적인 문제들을
오늘 말씀에 비추어 주시면서 아직 내가 가나안 땅에 들어선 것이 아닌,
여전히 광야에 있다는 사실을 잊지 말고,절대 방심하면 안된다고
4가지 사실들을 견주어 말씀해 주셨다.

1.>우상숭배
세상에 아무리 좋은 것이 있더라도, 비록 그것이 금송아지 같이 값진
것이더라도 말씀 중심에서 벗어난 예배는 우상 숭배임을 알아야 한다.

먼저 감정중심 예배에 대한 깨달은 은혜를 적기에 앞서..
솔직히 나의 우상숭배 형태는 사실 삶에서 자주 드러나곤 했다.
먼저 하나님의 자리에 가족이나,나 자신,물질이나 환경이 우상이 되어
나를 흔들고,어렵게,혹은 기쁘고,방탕하게 만들게 방치한 적이 종종
있었던것을 먼저 회개해야 했다.
그래서 감정에 빠진 예배가 드려지는 경우가 생겼던것 같다.
무엇보다 내 삶에 말씀,곧 하나님이 가장 우선순위가 아닌,
단지 주일에만 내 삶의 주인되시고,우선순위 되시는 분,말씀으로 내 삶을
주일에만 깨우쳐 주시고,은혜주시는 분으로 대한적이 어쩌면 여전히
남아 있었던것은 아닌가 하는 반성을 해본다.

그런면에서 <감정중심 예배는 하나님 중심 예배에 위배된다!>는
말씀에 더욱 찔린다.
힘겨울땐 힘겨워서,즐거울 땐 즐거운 대로,내 감정,상황에 따라 드렸던
올바르지 못한 예배,하나님을 오히려 화나시게 해드렸던 예배가 있었던것
같아 죄송한 마음이다.
특히나 힘겨울때...!
모든 감정을 다 내려놓고,오직 주님만을 찬양하며,
주님께만 영광돌리는 예배가 될 수 있도록,주님께만 집중된 예배를 드려야
했는데,내 감정에 빠져 스스로 연민에 빠진 눈물로 얼룩진 예배로 주님의
마음을 상하시게 한적이 있었던 사실을 회개한다.

2.>음행

믿음의 사람은, 늘 마음의 여유는 가지고 있어야 하지만 머물러 있지는
말아야 한다. 약속의 땅 가나안을 향하여 계속 전진해야 한다
방심은 금물이다. 시간이 있을 때일수록 더 깨어 있어야 한다.

아직도 깨어 있지 못한 내 모습이 참으로 한심한 하루였다.
내가 가나안에 들어가지 못했다는 사실을 깨달은 이상,
난 더욱 가나안을 향해 질주해야 한다.
단,마음은 온유하고,겸손하게,무엇보다 여유있게..!승리가 이미 주님의
것,내것임을 잊지말고..

3.>시험과원망

힘들 때나 약할 때는 늘 의심을 조심해야 한다.
의심은 시험을 낳고 시험은 불순종을 낳기 때문이다.
좋을 때나 강할 때는 늘 교만을 조심해야 한다.
교만은 원망을 낳고 원망은 불순종을 낳기 때문이다.

무엇보다 결정적으로 와닿는 부분이다.
인내하지 못해서 시험에 든 경우가 많다.
그리 급하지도 않은 성격인것 같은데,참을성 없이 애태우고,
걱정하며 지내는 경우가 참으로 많았다.
종종 그런 가운데 의심보다는..시험에 빠진 경우,빠지려던 경우가
있었다.
너무나 부끄러운것은 하나님은 언제나 내가 바른 자리에 서는
그 순간까지 인내하고,또 참으시는데,
난 언제나 하나님의 응답이,음성이 빨리 들려지지 않는다며,
힘들어 했던적이 여러번 있었다..얼마나 부끄러운 행동이였던가?!
내가 원하는 기도 제목이,내가 원하는 시간내에 응답되지 않는다고
애태우던 것인 바로 이기적인 내 마음탓이다.
이제 하나님의 때와 하나님의 뜻을 기다리지 못했던 내 스스로를
이번 기회에 마음을 온전히 주님께 내려놓고,
오직 순종하는 마음으로,흥하던,망하던,좋던,싫던 주님께
맡기도록 하겠다.
결국,주님께선 내게 최선의 것으로 주실것을 믿는다.

<우상숭배와 간음은 결국 예배를 파괴시키는 영적 지뢰이고,
시험과 원망은 결국 순종의 길을 폭파시키는 영적 지뢰이다.>

내 삶에서 올바른 예배가 회복되길 간절히 원한다.
온전히 주님을 향한 사랑과 순종의 고백이 주님께 드려지길 소망한다.
광야에서 내 삶이 끝나길 원하지 않는다.
머무르는 자는 되고 싶지 않다.
가나안을 정복했던 여호수아의 모습을 그려보았다.
결국 주님께 내 우선순위를 내어드리는 것,그리고 평안할때가 가장 위기라는
사실을 잊지 않고,늘 마음의 여유를 갖되,영적 긴장을 늦추지 않고,
시험이 바로 축복의 통로임을 명심하여,결코 감당하지 못할 시험은 주지
않으시는 분이심을 믿고 주님께 의지하고,믿음으로 이겨내어 가나안 땅의
주인이 되는 그 날까지 최선을 다해 달려가겠다.
주님께서 주시는 젖과 꿀이 흐르는 가나안땅의 참 평안과 행복,풍요와 나눔,
기쁨이 내 안에서 흘러나길 다시한번 소망한다.





김부영

2006-06-13 06:09:51

요번 주 설교는 정말 푹 빠져서 들었다. 그런 귀한 뜻이 있었구나
아 그렇구나 정말 시간가는줄 모르고 조금만 더 해 주시지 하고 아쉬워 했다.

우리가 지금 애굽땅을 떠나 가나안으로 들어가지 전 광야시대를 살고 있다는
것을 알았고 내가 타락하면 이스라엘 백성처럼 죽임을 당하겠구나 하는
생각도 들었다.

(그런데 그들이 광야에서 멸망을 받았다고 했다. 이것은 세례와 성만찬의 은혜를 받은 우리에게 귀한 경고를 주고 있다. 방심하지 말아야 한다. 타락하지 말아야 한다. 은혜의 백성이 더 망하기 쉽다. 우리도 이처럼 충분히 멸망 받을 수 있다. 경계를 늦추지 말아야 한다)

우상숭배, 간음, 시험, 원망
하나님은 이유를 막론하고 우상숭배는 정말 가차없이 죽음의 지름길이고
그 큰 죄인 우상숭배를 또 이상하게도 많은 훌룡한 왕들이 백성들이 하는걸
보면 나는 절대 아닐거라고 또 앞으로도 그런 일은 없을거라고 맹세하지만
설교를 듣고 내감정, 내기분으로 예배를 드린것도 우상숭배예배라는 것을
하나님중심예배에 어긋난다는 것을 알았다.

(교만한 사람의 약한 반응은 원망이요, 강한 반응은 대항이다. 우리는 이 약한 반응도 보이지 말아야 한다. 오직 예수님의 십자가의 겸손으로 무장해야 한다. 그래야 십자가의 순종이 우리의 앞길을 인도해 준다.)

제자훈련을 받으면서 나도 이스라엘 백성이
모세와 아론 지도자에게 원망했던 것처럼 목사님을 원망할때가 종종있었음을
고백한다.
아이둘인 또 임산부의 생활을 얼마만큼 아실까 이렇게 아이들을 키우는것이
체력이 소모되고 시간이 없다는 것을 아시는지 원망할때가 많았다.

나의 교만에서 온 약한 반응 :원망: 회계한다. 오직 예수님의 십자가를
생각하고 그러지 않기를...

이 말씀을 꼭 마음에 새겨서 반드시 가나안 땅의 주인이 될 수 있기를
늘 지킬수 있기를 소원한다.
광야에서 죽지 않기를...


유광옥

2006-06-13 06:19:38

이번주 설교 말씀을 통해 많은 은혜를 받고 지금의 나를 다시 보게 되어 너무 기뻤다. 늘 아름다워지기 위하여 육의 거울은 가까이 하면서도 영의 거울을 보기위해 얼마나 주야로 말씀을 묵상하고 순종하고 있는지 부끄럽다.

자기가 슬프면 슬픔의 예배를 드리고, 자기가 괴로우면 괴로움의 예배를 드리는 것은 감정을 섬기는 것이지 하나님을 섬기는 모습이 아니다. 진정한 예배는 나의 모든 것을 드려(감정까지도) 하나님을 섬기는 행위이다. 예배를 드리되 썩은 예배를 드리지 말아야 한다. 살아있는 싱싱한 예배를 드려야 한다. 썩은 냄새가 아니라 향기가 하나님께 올라가는 예배를 드려야 한다.
감정에 이끌리어 드리는 예배에 진정 나는 없었을까? 생각해 보면 신령과 진정으로 예배를 드리지 못한 경우가 더 많은 것 같다. 특히 남편과 싸우고 예배에 참석 할 때는 사탄과 싸우느라 예배를 소홀히 드릴 때가 많다. 정말 주님만을 향한 예배가 되기위해서 우선 남편에게 순종하여 나의 예배에 사탄이 틈타지 않도록 지켜 나가고 싶다.

믿음의 사람은, 늘 마음의 여유는 가지고 있어야 하지만 머물러 있지는 말아야 한다. 약속의 땅 가나안을 향하여 계속 전진해야 한다. 바쁘게 살아야 한다. 다윗도 전쟁에 나가지 않고 머물러 있다가 음행의 죄를 짓게 되었다. 평안하고 시간이 있으면 죄짓기 쉽다. 타락하기 쉬운 게 인간이다. 방심은 금물이다. 시간이 있을 때일수록 더 깨어 있어야 한다.
요즘은 일을 잠깐 쉬고 있지만 한창 바쁘고 피곤했을 때 주님께 불평아닌 불평을 하면서 기도했던 때가 있다. 바쁘고 피곤했기 때문에 주님 앞에 엎드려 기도하는 시간을 가졌다. 시간이 있을 때일 수록 더 깨어 있어야 하는데 요즘 자꾸 잡생각이 나를 붙들고 있다고 생각 될 때가 있다. 그래서 성경통독을 목표로 지금 열심히 가나안을 향하여 달려가고 있는 중이다. 그리고 물질의 풍성함은 없어도 마음의 여유로 나를 채워주시는 주님께 감사를 드린다.

힘들 때 의심하지 말고, 오직 십자가의 주님만 믿고 따라오면 산다는 것이다. 이처럼 시험은 순종의 길을 막는다.
시험을 이겨내는 넉넉한 믿음을 주시기를 간절히 기도한다.

광야에서 죽지 말아야 한다.
반드시 가나안 땅의 주인이 되어야 늘 지켜야 한다.
하나님이 우리를 택하신 것은 광야를 주시기 위함이 아니다. 광야는 단지 가나안을 가기 위한 통로에 불과하다. 하나님이 우리를 부르신 목적은 젖과 꿀이 흐르는 가나안을 주시기 위함이다.
예배와 순종이 살아 있는 사람은 절대로 그 인생이 광야로 끝나지 않는다.
비록 우리가 광야의 길을 걸어가고 있더라도, 그 길이 아무리 힘들더라도 주님 안에 있으면 넉넉히 가나안 땅에 입성할 수 있다.

요즘 개인적인 일을 결정하는데 있어서 난 광야가 싫다고 하나님께 물으면서 기도한 적이 있다. 내가 지금 있는 곳이 충분히 젖과 꿀이 흐르는 안주하고 싶은 곳이라고.....하지만 내가 발을 띠어 길을 걷기만 하면 우리의 길을 인도하시는 분은 하나님이라고 말씀으로 나를 위로하시면서 기도하면서 순종하고 승리하라고 말씀하셨다. 그래도 내가 꼭 광야를 향하여 가야 하는가?? 하는 나의 생각이 나를 붙들고 있었는데 이번주 말씀을 통해 기쁘고 감사함의 확신을 얻을 수 있었다.
그리고 광야에서 죽지 않고 살아가기 위해서는 예배와 순종으로 살아 있어야 하겠구나 하는 정확한 답도 얻을 수 있었다.
아무리 힘들더라도 주님 안에서 가나안 땅을 향하여 전진하고 싶다. 감사!!감사!!
하면서.....

최현경

2006-06-13 08:14:58

1.복 있는 사람들의 특징은 수시로 말씀을 본다. 그리고 은혜롭지 못한 부분을 계속 고쳐간다. 그래서 말씀을 자주 보면 늘 은혜롭고 복이 넘친다.

말씀을 늘 가까이하고, 주야로 묵상하는 것만큼 내 마음을 가꾸는 지름길은 없는 것 같다. 말씀을 통해 나의 못남과 약함을 비추어 볼 수 있다. 거울을 보면서 나의 모습에 더러운 것이나 추한 것이 있으면 곧바로 고치려고 한다. 말씀의 거울을 보면서도 나의 잘못된 부분을 볼 때가 많다. 그런데도 그것을 바로 고치려고 노력하는 것은 내 외모를 가꾸는 것만큼 즉각적이고 예민하지 못한 것같다. 늘 내 마음을 깨끗이 하는데 게으르지 말아야 함을 깨닫는다. 이것은 사람에게 잘 보이기 위한 것이 아니라, 오직 하나님 앞에 보이는 모습이기 때문에 더욱 신경써야 하는 것임을 명심해야겠다.

2.원하던 것이 안보이면 인간은 금방 죄의 유혹에 빠지기 쉽다. 성질 급한 사람이 죄를 짓기 쉽다. 살다 보면 좀 더디게 이루어지는 일도 있다. 이 때 우리는 조급하여 일을 그르치지 않도록 주의해야 할 것이다. 특히 하나님의 선한 역사를.

하나님께 기도하고 바로 응답이 없으면 무엇이 문제일까 내 머리를 굴려 생각할 때가 많다. 하나님께 맡긴다고 했으면서도 급한 마음에 내 마음대로 일을 저지를 때가 많았음을, 결국 하나님께서 기뻐하시지 않는 일을 했던 것들을 회개한다. 하나님께서 나에게 응답을 주실 때까지 기다릴 줄 아는 믿음의 여유가 필요한 것 같다.

3. 오직 말씀 중심의 예배가 회복되어야 한다. 감정중심 예배는 하나님 중심 예배에 위배된다. 감정 중심은 철저하게 자기 중심의 예배를 드리는 모습이기 때문이다.

예배를 드린다면서 내 감정 중심으로, 말씀에 바로 서지 못한 예배를 드리지 못할 때가 있었던 것을 회개한다. 철저히 하나님과 말씀 중심의 예배로 바로 서서 하나님께서 기뻐 받으시는 예배가 회복되길 기도한다.

4. 사람은 힘들고 어려울 때 하나님을 의심하는 시험을 만난다. 그래서 불순종의 큰 유혹을 받는다. 아무리 힘들고 이해가 안가는 인생길을 만나더라도 하나님을 의심하지 말자.

내가 힘들고 어려울 때 조용히 주님의 음성에 귀를 기울이고 기다리는 믿음이 필요함을 절실히 깨닫는다. 절대로 의심을 하거나 딴 눈을 팔지 않길 간절히 기도한다. 하나님은 고난 속에서 나에게 주님의 뜻을 가르쳐 주시길 원한다. 하나님의 그 뜻을 찾을 수 있는 믿음의 눈을 갖길 기도한다.

5. 하나님이 우리를 택하신 것은 광야를 주시기 위함이 아니다. 광야는 단지 가나안을 가기 위한 통로에 불과하다. 하나님이 우리를 부르신 목적은 젖과 꿀이 흐르는 가나안을 주시기 위함이다.

예배와 순종이 살아 있는 사람은 절대로 그 인생이 광야로 끝나지 않는다.

하나님은 나를 택하셨지만 내가 그것에만 만족하고 교만하고 나태해서는 안됨을 말씀을 통해 깨닫게 하시니 감사하다. 나의 지금의 모습이 광야와 같은 인생길이라도 광야를 보고 불평하고 원망하는 모습이 아닌, 하나님께만 집중하며 그분의 기쁨을 따라 순종하는 삶이 되길 기도한다. 광야 속에서 하나님은 나를 단련시키시길 원하시고, 내가 더욱 아름답게 가꿔져서 가나안땅에 들어갈 자격이 있는 자로 만드시길 원하신다. 절대로 광야가 나에게 저주가 아님을, 광야가 가나안 땅을 들어가기 위한 통로에 불과함을 알고 광야에 내 마음과 눈을 두지 말아야 할 것이다.
내 삶의 예배의 모습과 순종의 모습이 온전히 회복되어 가나안 땅을 정복하길 기도한다.
내 인생은 절대로 광야에만 머물러 있지도, 광야로 끝나지도 않을 것이다!!!

박유진

2006-06-13 17:46:25

구약의 이스라엘 백성들의 모습이 오늘날 바로 나의 모습이 되어서는 안된다는 귀한 교훈을 설교를 통해서 알 수 있어서 감사합니다. 광야와 가나안이 바로 지금 나에게도 존재하고, 이스라엘 백성들이 한 행동들이 나도 저지르고 있는 죄란 것을 깨닫지 못하고 있었는데, 성경은 전부 흐름이 있고 통해있다는 말씀을 다시 한번 알 수 있었습니다.

1. "믿음의 사람은 마음을 깨끗이 하는데 늘 신경을 써야 하고, 시간과 정성을 투자해야 한다."

얼굴 보는 거울은 하루에 몇번씩 보면서, 영적인 거울인 말씀은 하루에 몇 번이나 보는지...영이 더러워지고 있는 것도 모른 채, 닦을 생각도 안하고 있던 것을 회개합니다. 세상의 좋아보이는 일에는 시간과 정성을 투자하면서, 하나님의 일, 영적인 일에는 인색한 저의 모습을 주님, 용서해주세요...그리고, 하늘의 귀한 일을 위해 시간과 정성을 쏟도록 인도해주세요.

2. "방심하지 말아야 한다. 타락하지 말아야 한다. 은혜의 백성이 더 망하기 쉽다."
"자기가 슬프면 슬픔의 예배를 드리고, 자기가 괴로우면 괴로움의 예배를 드리는 것은 감정을 섬기는 것이지 하나님을 섬기는 모습이 아니다. 진정한 예배는 나의 모든 것을 드려(감정까지도) 하나님을 섬기는 행위이다."

제가 지금까지 매주 드리고 있는 예배 중에서, 하나님께서 기쁘게 받으셨던 예배는 몇번이나 있었을까...생각해보았습니다. 저는, 제가 힘들고 지쳐있을 땐 예배에 온전히 집중하지 못하고, 나의 힘든 것만 말하기 일쑤였습니다. 감정에 붙들린 예배가 얼마나 무서운 것인지, 우상숭배성 예배에 해당한다는 것을 알았습니다.

3. "평안하고 시간이 있으면 죄짓기 쉽다. 타락하기 쉬운 게 인간이다. 방심은 금물이다. 시간이 있을 때일수록 더 깨어 있어야 한다."

제 자신이 편안한 것에 익숙해져서 나태해있지는 않은지, 게으름이 몸에 배어버린 것은 아닌지, 항상 영적인 눈이 깨어있도록 기도합니다. 다윗왕도 전쟁에 나가지 않고 평안할 때 간음의 죄를 지었다는 사실은 새로운 깨달음입니다. 방심은 금물! 항상 제 마음에 새겨놓아야 할 것 같습니다.

4. "3)번의 시험과 4)번의 원망은 모두가 순종의 길을 가로막는 큰 방해물이다."

사람이 힘들고 어려울 때, 곤란한 일을 당했을 때 하나님을 의심하고 시험에 든다는 말은 정말인 것 같습니다. 저도 온전하신 하나님을 전적으로 의지하지 못하고, 힘들 때 계속 의심이 생기는 제 마음과 싸워야 했습니다. 하나님만을 의지하는 온전한 믿음이 생기기를 기도하고 회개합니다. 또, 제 입술은 얼마나 많이 원망의 말을 하는지, 제가 만약 이스라엘 백성이었다면, 벌써 불뱀에 물려 죽었을지도 모르겠습니다. 주님, 제가 절대로 원망과 불평의 말을 하지 않도록, 제 입을 잘 제어할 수 있는 힘을 내려주세요...

노재훈

2006-06-13 22:18:47

하나님일에서 정말 성격이 급한 사람들은 주의를 해야함을 깨닳았다.
성격은 바꾸지 않는다고 생각하지만 성격급한 사람들은 정말 많은 훈련을 통해서 스스로 깨닿고 그리고 하나님의 도우심을 받아야 한다. 내가 고친다고 생각하면 큰 잘못이다. - 경험담 -
기도하고 기도하고 기도하지 않으면 안된다. 부부가 같이 함심으로 하면 더욱좋다.
백성이 모세가 산에서 내려옴이 더딤을 보고’(출32:1) 백성들은 우상 숭배의 죄를 짓게된다.
성격이 급하면 이렇게 하나님의 큰 역사를 힘들게 하는경우가 많다.
하나님의 선한 역사에 저의 못난성격으로 그르치지 않도록 하여 주시옵소서.

그리고 예배를 드릴때 감정적인 자신을 위한 예배나 형식적인 예배를 드리지 않도록 하여주시고 늘 언제나 신령과 진정으로 드리게 저의 영과 육을 지켜 주시옵소서.

김성섭

2006-06-14 00:26:21

------ 음행의 발단이 머물러 있는 것에 있었다. 믿음의 사람은, 늘 마음의 여유는 가지고 있어야 하지만 머물러 있지는 말아야 한다. 약속의 땅 가나안을 향하여 계속 전진해야 한다. 바쁘게 살아야 한다. 다윗도 전쟁에 나가지 않고 머물러 있다가 음행의 죄를 짓게 되었다. 평안하고 시간이 있으면 죄짓기 쉽다. 타락하기 쉬운 게 인간이다. 방심은 금물이다. 시간이 있을 때일수록 더 깨어 있어야 한다. ------

오늘 말씀은 제자훈련이 끝난 저에게 두 가지 경고를 주십니다. 하나는 지금의 자리에 머물리있지 말라는 경고입니다. 정말 옆도 돌아볼 시간없이 열심히 달려온 1년이었습니다. 제자훈련을 시작하면서 하루 24시간을 그렇게 정신없이 살았던 적이 없었던 것 같습니다. 중간의 방학기간을 제외하고는 그렇게 영화를 좋아하는 사람이 비디오 한편 보지 못했으니까요. 수도원에 들어와 고행하며 사는 듯한 기분이었습니다. 제자훈련을 무사히 마친 지금, 제가 가장 조심해야 할 것은 방심입니다. 지금이야 그렇지 않지만 시간이 지나면서 나도 모르게 조금씩 조금씩 나사가 풀어질지도 모르는 일입니다. 그래서 하나님께서 오늘 이 말씀을 주셨다고 믿습니다.
제자훈련을 받은 이유는 제자로서 살기 위함이었습니다. 훈련자체가 목적이 아니라 훈련받은 후의 변화된 삶이 목적이었습니다. 분명 제자훈련을 받기 전과 받은 지금, 제 모습은 변화되었습니다. 그러나 그것은 변화의 완성이 아니라 시작일 뿐입니다. 정말 이제부터가 진짜라고 생각합니다. 마음이 흩트러져서는 안될 것입니다. 이제는 됐다, 여기에 머물러 있어도 괜찮다는 유혹에 빠져 이스라엘 백성들이 무너졌던 것처럼 무너져서는 안될 것입니다.

이 말씀이 주신 두번째 경고는 평안하고 시간이 있을 때 죄짓기 쉽다는 말씀입니다. 확실히 지금은 제자훈련을 받을 때보다 몸도 편하고(일주일에 한번씩 아이들 데리고 요코하마나 신쥬쿠로 왔다갔달 할 일이 없어졌고) 시간적으로도 조금의 여유가 생겼습니다. 그 여유의 시간으로 평소에 시간이 없어서 읽지 못했던 책도 읽을 수 있었고, 미루었던 심방을 하기도 하고, 교회의 행정업무도 볼 수 있었습니다. 그러나 좋은 쪽, 필요한 쪽으로만 시간이 흘러간 것은 아닙니다. 제자훈련받을 때와 비교해보면 확실히 T.V. 앞에 앉아있는 시간이 늘어났습니다. 인터넷에서 뉴스를 보는 시간도 늘어났습니다. 제자훈련을 받을 때, 없는 시간을 쪼개고 또 쪼개서 집중력있게 사용했던 것과 비교해며보면, 똑같은 시간에 똑같은 일을 해도 시간의 질, 시간의 활용도가 떨어진 것을 느낍니다. 하나님께서 주신 금같이 귀한 시간을 보다 의미있는 일에 효율적으로 사용하지 못하는 것도 죄가 아니겠습니까? '세월을 아끼라 때가 악하니라."(엡5:16)

오늘 말씀을 통해 다시 마음을 추스려봅니다. 작은 방심에도 자리를 내주어서는 안될 것입니다. '내가 이미 얻었다 함도 아니요 온전히 이루었다함도 아니라 오직 내가 그리스도 예수께 잡힌바 된 그것을 잡으려고 좇아가노라.(빌3:12) 사도 바울의 고백을 나의 고백으로 삼고 더욱 열심히 달려가야 겠습니다.
평안하고 시간이 있을 때 죄짓기 쉽다는 말씀을 바로 나를 향하신 경고의 말씀으로 생각하고 시간활용에 더욱 엄격해져야겠습니다.

인선정

2006-06-14 16:02:40

어제부터 새집에 인터넷이 개통되었습니다. ^-^
오랜만에 설교 리플을 달아 기쁘답니다.
목사님께서 설교문 중에 4가지 악에 대해 스스로를 돌아보고 그 악에 대해 스스로 얼마나 자유로운가에 대해 생각해 보았습니다.
하나님께서는 직접 홍해까지 갈라가면서 구출한 유대인들이 광야에서 벌인 죄악을 보면서 얼마나 어처구니가 없었을까 생각해 보았습니다. 그들은 주님이 주신 만나를 먹으며, 주님이 주신 불기둥의 인도를 받으며 우상숭배를 하며, 간음을 하며, 시험하며, 원망을 했습니다. 그런데, 하나님께서 인간의 속성에 대해 모르시고, 그들의 죄를 보고 대량처형을 집행하셨을까요? 비단 수천년전 사막 한가운데서 하나님의 심판을 받은 수만명의 유대인들만 그런 어리석음을 저지른다고 생각하지 않습니다. 고대의 유대인들이나 21세기를 살아가는 현대인들, 지금 자판을 두두리고 있는 나에게 있어서도 매일처럼 일어나는 선택의 문제라고 생각합니다. 그리고 올바른 선택을 하여, 하나님의 진노를 피하고 사랑 받으며 사는 길은 [거울]처럼 매일 말씀을 접하고, 깨어 기도하는 것 이외에는 없지 않을까 싶습니다.

백인화

2006-06-14 17:03:04

“교만한 사람의 약한 반응은 원망이요, 강한 반응은 대항이다.”
“거울은 스스로를 잘 볼 수 있게 하는 도구이다.”
“말씀의 거울 속에는 수많은 사람들의 경험들과 사람을 만드신 하나님의 매뉴얼이 통 체로 기록되어 있다.”
“예배와 순종이 살아 있는 사람은 절대로 그 인생이 광야로 끝나지 않는다.”
“이스라엘 백성들이 광야에서 멸망당한 것은 먹을 음식이 없어서도 아니요, 마실 물이 없어서도 아니었다. 그들이 멸망당한 것은 예배가 썩었고 순종이 죽었기 때문이었다.”

광야와 같은 내 삶에서 절대로 회복되어야 할 것이 예배와 순종의 삶임을 이스라엘 백성들을 보며 다시 깨닫게 됩니다. 하나님중심이 아닌 형식적인 예배, 자의적으로 드리는 예배는 아무리 열심을 다해 드려도 하나님께서 받으실 수가 없습니다. IQ 보다 EQ 를 중요시여기는 세상의 흐름과는 다르게 예배는 여전히 여호와를 아는 지식이 감성보다 앞서야 한다는 사실이 하나님의 방식과 세상방식의 차이를 여실히 드러내줍니다.

불평, 불만은 교만한 마음에서 나오는 것입니다. 지난주에 제자훈련과정을 마친 후에 감사의 제목을 쓰는 숙제를 하지 않고 일주일을 보냈습니다. 그런데 신기하게도 내 마음에 다시 불평과 불만이 싸여가기 시작하는 것을 너무도 확실히 보게 됩니다. 아직 감사의 생활이 몸에 배이기 전에 그만두었기 때문입니다. 감사의 제목을 찾기 위해 겸손의 허리띠를 두르고 있을 때에라야 감사의 제목이 눈에 보이는 것 같습니다.

말씀의 거울은 나 스스로를 보게 해 주는 도구인데 난 자주 내 모습보다는 내 주위에 있는 사람들을 보려고 했었습니다. 나는 이 정도면 바로 선 것 같고 그 사람이 이 말씀이 필요한데... 저 사람은 어떤 말씀이 필요한가? 그런데 언제나 내게 필요한 말씀이 내가 만나는 그 사람에게도 필요한 말씀이었다는 것을 알게 됩니다. 전혀 달라 보이는 사람이지만 나와 관계를 맺게 해주시는 건 우리를 통해 이루실 하나님의 뜻이 있기에 그것을 깨닫게 하시려는 것을 사람들과의 관계 속에서 새롭게 발견하게 됩니다.

나이를 먹으면 먹을수록 점점 힘들어지는 것이 바로 순종하는 삶입니다. 말씀이 거울이 되어 그들의 경험과 삶이 내 것이 되어야 하는데 어느덧 내가 경험하는 것들이 쌓여가면서 말씀의 자리를 대신하는 경우가 많아집니다. 머리로는 말씀이 우선임을 알지만 그래도 나는 좀 다르지 않을까, 그 상황과 이 상황은 그래도 좀 다르지 않나라는 의심과 헛된 망상에 빠지는 교만함을 보게 됩니다. 정말 ‘하나님의 특별한 사랑과 은혜를 입은 선택받은 백성’이라는 사실에 방심하여 조금만 경계를 늦추면 더 쉽게 타락하게 되는 것 같습니다.

광야에서 멸망당하지 않도록 썩은 예배를 회복하고 죽은 순종을 회복시켜주시길 겸손히 무릎 꿇고 간절히 간구하며 나아갑니다.

박순애

2006-06-14 18:45:36

요즘 월드컵이라고 시끌시끌하다. 나는 축구에 대해 잘 모르기 때문에 우리 나라가 이기고 지는 것에만 관심이 있다. 이겼다하면 좋고 졌다고 하면 그런가 하고 만다. 어제도 한국과 토고간의 경기가 있었다. 이겼다는 결과를 알고 뉴스를 통해 보게되는 경기는 불안도 없고 긴박한 상황도 느긋하게 볼 수 있었다. 왜? 이미 승리한 결과를 알기 때문이다. 제자훈련을 받으며 우리는 이미 승리한 사람들이고 지금 우리는 재방송을 보는 것과 같은 인생을 살고 있다고 하신 말씀이 생각나 더 흐믓한 마음으로 지켜 볼 수 있었다. 천국도 이미 우리에게 주어진 것이다. 그러므로 이 광야같은 세상이 우리를 절망으로 때로는 시험으로 끌어내리려 해도 당당하게 승리를 선포할 수 있어야 한다.
이스라엘 백성들에게도 가나안은 약속된 땅이었기에 그들의 것이었다. 그러나 그들은 광야에서 원망과 불평으로 죽고 말았다. 결과는 이미 주어져 있었지만 그 과정을 어떻게 믿음으로 이겨나가느냐가 얼마나 중요한지를 말씀 해 주는 것 같다.
나는 스스로 악을 즐거워 하는 사람과는 거리가 멀다는 교만한 생각을 했었다. 그러나 오늘 말씀을 보며 나도 그들과 다를 것이 없는 사람이라는 것을 다시 한번 느끼게 된다.
특히 예배를 드림에 있어서 자기 만족을 위한 예배 감정으로 드린 예배가 많았음을 고백한다. 내 감정의 정도에 따른 예배를 드리는 경우가 많았다.
"자기가 슬프면 슬픔의 예배를 드리고 자기가 괴로우면 괴로움의 예배를 드리는 것은 감정을 섬기는 것이지 하나님을 섬기는 모습이 아니다"는 말씀을 통해 내 감정따라 감정의 우상을 섬겼던 나의 모습을 회개하고 예배라는 이름으로 나를 섬기는 어리석음을 범하지 말아야 겠다고 생각한다. 썩은 예배가 아닌 향기가 나는 예배를 드리기 원한다.
"은혜받은 백성이 더 망하기 쉽다."는 말씀이 섬칫하게 다가온다. 거울에 자신을 비춰보고 나를 가꾸는 일보다 말씀을 통해 나를 가꾸는 일에 더 열심내지 않다가 내가 광야에서의 이스라엘 백성처럼 하나님을 원망하고 불평하다 죽어가는 안타가운 인생이 되어버리지 않을까 하는 생각이 들기 때문이다. 오늘도 감사함으로 하루를 살기 원한다. 은혜를 인하여 기다리고 먼 곳을 바라볼 줄 아는 삶을 살고 싶다.
거울을 보면 하나님을 생각하게 될 것 같다. 거울을 보면서 말씀을 기억하고 내 속을 비춰보려 노력할 것이다. 외면보다 내면에서 더 아름다운 향기를 발하는 사람이 되도록 말씀의 거울에 나를 바춰보고 더러운 부분들, 그리고 비뚤어진 부분들을 바로 잡는 일에 더 열심을 내야겠다.

소대섭

2006-06-14 19:38:09

"하나님은 오늘 이 인생 거울을 우리에게 하나씩
주기를 원하신다. 그것은 바로 말씀의 거울이다.
말씀의 거울 속에는 수많은 사람들의 경험들과
사람을 만드신 하나님의 매뉴얼이 통체로 기록되어 있다."

매일 아침 거울을 보면서 시작하는 하루...
매일 말씀으로 시작하는 하루는 왠지 기분이 상쾌하지만,
그렇지 못한 날은 하루종일 불안하기도 하고 염려가 늘어나기도 하고
짜증이 늘어나기도 했습니다.
분명한 말씀의 거울을 수시로 보면서 내 영혼과 신앙을, 마음을
닦는 신앙인이 되어야겠다고 결단합니다.


"믿음의 사람은 마음을 깨끗이 하는데 늘 신경써야 하고,
시간과 정성을 투자해야 한다.
믿음이란 하나님께 잘 보이는 것이지 사람에게 잘 보이는 것이
아니기 때문이다."

정말 참된 믿음이 없이는 사람들의 눈치를 보면서 살게 되는 것
같습니다. 사역을 할 때에도 종종 사람들의 이목으로 인해서
행동할 때가 많았습니다. 앞으로는 그런 일을 경계하며 마음과
믿음을 닦는 사람이 되어야겠습니다.


"우리를 유혹하는 악은 4가지인데 이것을 2가지로 요약할 수 있다.
우상숭배와 간음은 결국 예배를 파괴시키는 영적 지뢰이고,
시험과 원망은 결국 순종의 길을 폭파시키는 영적 지뢰이다.
광야에서 죽지 말아야 한다."

네 가지의 악행에서 벗어나기 위하여 늘 기도하지만,
뜻대로 되지 않을 때가 너무도 많습니다.
특히 시험과 원망에서는 더욱 그렇습니다.
신앙생활에서도 그렇지만, 평소에 가족과의 관계에서도
친구와의 관계에서도 그런 모습을 발견할 때가 종종 있습니다.
고쳐야 한다는 생각은 하지만 온전히 고치지 못하는 저의 모습을
위해서 더욱 간절히 기도해야겠다는 결단을 합니다.

"‘주여! 내 인생에서 우상숭배와 간음이 멸종되게 하시고
참 예배가 회복되게 하소서!
주여! 내 인생에서 시험과 원망이 멸종되게 하시고
참 순종이 왕성하게 살아나게 하소서!’"

지금 제게 가장 절실한 기도임을 고백합니다.

- 사람이 감당할 시험 밖에는 너희가 당한 것이 없나니
오직 하나님은 미쁘사 너희가 감당하지 못할 시험
당함을 허락하지 아니하시고 시험 당할 즈음에
또한 피할 길을 내사 너희로 능히 감당하게 하시느니라 - 고전 10:13

이 모든 시험과 유혹과 어려움과 죄악에서 위태위태한
줄타기를 하듯이 세상살이를 하면서도 하나님을 예배하고,
하나님께 기도하고, 찬양하며 살아갈 수 있는 것은
바로 하나님께서 허락하신 말씀의 거울이 있기 때문이라는 것을 생각하니
가슴이 벅차오르고 오히려 희망과 소망이 솟아오름을 또한 고백합니다.

오성훈

2006-06-14 22:35:10

'왜 은혜의 백성이 허무하게 멸망할 수 밖에 없었을까?
그렇게 그리던 젖과 꿀이 흐르던 가나안 땅을 밟아보지도 못하고 광야에서 허무하게 죽을 수 밖에 없었을까? 그들은 악을 즐거워했기 때문이다.'

왜 은혜의 백성이 허무하게 멸망할 수 밖에 없었을까? 그것은 은혜받은 백성, 하나님의 백성들이 생활 가운데서 하지 말아야 할 것을 했기 때문에 멸망할 수 밖에 없었다. 하나님을 믿고 사랑하는 자라면, 참 그리스도인이라면 마땅히 하나님이 기뻐하시는 일을 해야 할 것이다. 사랑하면 항상 보고 싶고, 모든 것을 주고 싶고, 상대방이 좋아하는 일을 하고 싶은 것처럼, 하나님을 참으로 사랑하는 자라면 하나님이 기뻐하시는 일을 하여야 할 것이다. 지금 이스라엘 백성들은 하나님이 좋아하는 일을 하고 있는 것이 아니라, 하나님께서 싫어하시는 일을 함으로 멸망받을 수 밖에 없었던 것이다. 그들은 악을 즐거워했기 때문이다.
과연 나는 이스라엘 백성들과 같이 멸망당할 수 밖에 없는 악을 즐거워하는 자가 아닌가, 오늘의 말씀을 통하여 다시 한번 내 자신을 살펴서 이 어지러운 세상에서 내 자신을 죄와 경계함으로써 하나님의 나라를 기업으로 얻는 데 실패하지 말아야 하겠다.

박성옥 선교사

2006-06-14 23:58:17

출애굽한 이스라엘 백성은 세례와 성만찬의 엄청난 은혜에 둘러 쌓인 특별히 선택 받은 백성이었음을 강조하고 있다.그런데 그들이 광야에서 멸망을 받았다고 했다. 이것은 세례와 성만찬의 은혜를 받은 우리에게 귀한 경고를 주고 있다. 방심하지 말아야 한다. 타락하지 말아야 한다. 은혜의 백성이 더 망하기 쉽다. 우리도 이처럼 충분히 멸망 받을 수 있다. 경계를 늦추지 말아야 한다.

요즘 한국에 간 어떤 집사님을 통하여 은혜를 받으며 감사했다.
힘든일을 다 해주었는데 어처구니 없는 소리에 화가 났고 억울했었다.
그러나 돌이켜 하나님을 바라보며 그 모습이 내 모습임을 깨닫게 하셨다.

값없이 다 내어 주신 하나님의 사랑을 깨닫지 못하고, 하나님의 주신 말씀의
거울에 비춰보지 못하고, 내마음 내뜻대로 살았던 것을 하나님이 보시고
얼마나 한심스러웠을까 회개하고 또 회개하며
갚을길이 없는 하나님의 은혜와 사랑을 체험케했다.
때로는 불기둥과 구름기둥으로 인도하시는 하나님
만나와 메추라기와 반석에 물을 주셨건만
불평과 원망과 좌절된 마음이 또 무너지는 나의 모습이 부끄러웠다.

광야에서 가나안땅으로 인도하시는 길은 말씀의 거울을 잘 닦아 영적으로
깨어 있어야 될것이다..

멸망받은 네가지 이유는 우상숭배와 간음과 시험과 원망이라고 했는데
말씀의 거울로 잘 비추어 예배가 회복되게 하시고,
순종하는 자가 되어서 내영혼이 기뻐뛰며 주를 찬양하며 가나안땅으로
들어가는 모습이 되게 하옵소서..

마준철목사

2006-06-15 00:52:51

"믿음의 사람은, 늘 마음의 여유는 가지고 있어야 하지만 머물러 있지는 말아야 한다. 약속의 땅 가나안을 향하여 계속 전진해야 한다. 바쁘게 살아야 한다. 평안하고 시간이 있으면 죄짓기 쉽다. 타락하기 쉬운 게 인간이다. 방심은 금물이다. 시간이 있을 때일수록 더 깨어 있어야 한다."

인간이 왜 죄인인가? 그 이유를 다른 데서 찾을 것도 사실 없습니다. 나를 보면 잘 알 수 있으니까요.... 조금만 틈만 있어도 타락한 본성이 내 안에서 살아나서 죄를 짓게 하는 모습을 보면 말입니다. 한 순간이라도 깨어 있지 않는다면....

얼마전에 일본 프로야구에서 활약하고 있는 이승엽 선수의 어처구니 없는 해프닝에 대한 소식을 들었습니다. 일본 야구 역사상 유래가 없는 일이어서 일본에서도 큰 관심을 끌었던 내용이었습니다.

내용인즉은, 이승엽 선수가 홈런을 쳤는데, 선행주자인 오제키 선수가 3루 베이스를 밟지 않고 지나가는 바람에 아웃된 것은 물론이고, 이승엽 선수의 홈런도 무효가 되버린 전대미문의 사건이라고 크게 보도가 되었습니다. 쉽게 말하면, 밥을 코로 먹는 사건이 벌어졌다는 이야기이지요. 뒤늦게서야 베이스를 밟았네 하면서 재시합을 요청하고 있지만, 이미 그 날 게임은 되돌릴 수 없는 게임이 되고 말았습니다.

초등학생이 들어도 웃길만한 이런 일이 어떻게 일어날 수 있을까? 한번 생각해보았습니다. 여러가지 이유가 있었겠지만, 오제키 선수의 방심이 가장 큰 이유가 되었겠지요. 야구에서 홈런은 다른 안타와는 달리 홈까지 빨리 뛰지 않고 천천히 와도 괜찮다는 것은 누구나 다 아는 사실 일 겁니다. 그렇기 때문에 주자가 베이스를 밟지 않았다는 것은 더더구나 용납이 안되는 일이지요. 그래서 경기장에 있는 운동 선수들은 보통 사람들이 느낄 수 없는 극도의 긴장감을 가지고 있다고 합니다. 한번의 실수는 돌이킬 수 없는 패배를 연결되니까 말입니다.

오늘 말씀을 묵상하면서 이 이야기가 생각이 난 것은 매일 우리 뒤에서 홈런을 날려주시는 예수님이 계신데도, 홈런이라고 안심하면서 주님이 꼭 밟고 지나가라고 하신 베이스(제자훈련, 말씀과 기도의 생활, 주님주신 사명 등) 밟지 않고 지나가서 결국 홈런을 치신 예수님께 미안해 하고, 그 분의 명예를 실추시키는 내 자신을 보았기 때문입니다.

경기장에 있는 선수들에게도 극도의 긴장감(깨어 있음)이 요구된다면 예수 그리스도의 제자인 우리들이에게야 말할 나위가 있겠습니까? 더구나 우리의 싸움의 대상은 사람이 아니라 마귀이지 않습니까? 조그만 틈만 있어도 파고 들어서 결국 우리를 넘어뜨리려고 하는 마귀와의 싸움이기 때문에 허리띠를 더 조여매게 됩니다.

그렇지 않아도 제자훈련을 마치고 좀 느슨해지고 게을러지려는 내 자신을 보게 되었는데, 오늘 말씀이 다시금 긴장을 요구하는 성령님의 채찍질인 줄 믿습니다. 오늘도 내가 꼭 밟아야 할 베이스인 말씀의 거울을 밟고 홈에 들어가 홈런을 치고 들어오시는 예수님을 당당하고 기쁘게 맞이할 것을 다짐해 봅니다~

지영민

2006-06-15 04:25:12

--- 아름다운 사람들의 특징은 수시로 거울을 본다. 그리고 아름답지 못한 부분을 계속 고쳐간다. 그래서 거울을 자주 보면 늘 깔끔하고 아름답다.
‘아름다운 사람은 오직 ‘거울’을 즐거워하여 그 ‘거울’을 주야로 보는 자로다.’
복 있는 사람들의 특징은 수시로 말씀을 본다. 그리고 은혜롭지 못한 부분을 계속 고쳐간다. 그래서 말씀을 자주 보면 늘 은혜롭고 복이 넘친다. ---

20년을 넘게 변하지 않는 몸매와 자세를 유지해 온 여배우에게 그이유를 물어보니 그녀는 눈에 띄는 곳곳에 전신거울을 만들어 두고 자신의 자세, 몸매에 흐뜨러짐이 없나 항상 긴장감을 가지고 그 앞에서 자신을 확인한다는 말을 했습니다. 그런 그녀의 정신이 오늘날의 그녀를 있게 만들었다고 생각했습니다.
배우로서 20년을 넘게 자기관리를 해 온 그 사람을 보면서 나는 하나님의 사람으로서 어떤 정성과 노력을 했는지 내자신을 돌아보게 되었습니다. 30대의 제가 원하는 모습은 다른 또래의 사람들이 원하는 미를 추구하는 모습은 아닙니다. 하나님의 자녀로서 더욱 더 내 삶을 하나님께 드리고 싶습니다. 있다가 없어질 젊음의 한때를 원하는 것이 아니라 영원히 변하지 않을 은혜와 감사를 사모합니다. 아름다움을 추구하는 사람이 거울을 자주 보듯이 하나님의 복된 자가 되기 위해서 말씀의 거울을 자주 비춰보는 지혜로운 자가 되고 싶습니다.

--- 하나님이 우리를 택하신 것은 광야를 주시기 위함이 아니다. 광야는 단지 가나안을 가기 위한 통로에 불과하다. 하나님이 우리를 부르신 목적은 젖과 꿀이 흐르는 가나안을 주시기 위함이다.
예배와 순종이 살아 있는 사람은 절대로 그 인생이 광야로 끝나지 않는다. ---

믿지않는 사람보다는 하나님의 뜻을 잘 안다고 확신하는 내자신도 때로는 이 길을 하나님께서 왜 주셨는지 의문을 가질때가 있습니다. 내가 서있는 그 길이 힘든 고난이나 고통이 따른다면 때로는 그 뒤에 있는 숨겨진 축복을 보지못하고 원망하게 됩니다. 하지만 말씀을 통해서 보면 하나님께선 힘든 과정 뒤에 꼭 축복을 더해주시는 것을 느낄 수 있습니다. 그러나 이스라엘 민족처럼 참지못하고 우상을 만들어 버린다면 인내하고 참고 온 길이 헛된 것이 되고 맙니다. 또 다시 처음부터 시작해야 합니다. 정해진 길을 가다는 것은 대론 바보처럼 보일 수 있을지 모릅니다. 하지만 그 길을 묵묵히 따라갔던 이들은 가나안에 들어갈 수 있었습니다. 하나님께서 힘든 길을 가기 원하신다면 우리는 묵묵히 가야 할 것입니다. 그런 순종의 모습이 가장 하나님께서 원하시는 모습이기 때문입니다. 때로는 옆으로 또는 쉬고 싶다는 나중으로 미루고 싶다는 충동이 생기지만 그럴 때마다 말씀을 거울 삼아 간다면 꼭 은혜의 가운데 내가 서 있을거라 확신합니다.

조정현

2006-06-15 05:58:58

...그런데 그들이 광야에서 멸망을 받았다고 했다. 이것은 세례와 성만찬의 은혜를 받은 우리에게 귀한 경고를 주고 있다. 방심하지 말아야 한다. 타락하지 말아야 한다. 은혜의 백성이 더 망하기 쉽다. 우리도 이처럼 충분히 멸망 받을 수 있다. 경계를 늦추지 말아야 한다....

하나님께 엄청난 사랑을 받으며 기적을 늘 바라보며 살았던 이스라엘 백성들이 모두 멸망당했다...심지어 모세 마저도 가나안땅을 밝아보지 못한채 하나님의 곁으로 갔다...말씀을 읽으며 내가 지금 얼마나 정신을 놓고 살고 있는지 깨달았다..얼마나 방심하며 넋이 빠진채 살아가고 있는지...은혜의 백성이 더 망하기 쉽다는 말씀이 가슴을 친다...
구체적으로 말씀을 읽으면서 멸망당했던 이스라엘 백성의 네가지 모습중에 한가지도 내가 자유롭다고 자신할수 있는 부분이 없었다..
멸망당한 이스라엘 백성의 모습이 지금 나의 정확한 진단서 인것만 같아..말씀을 읽으면서 가슴이 섬찟해진다..
나의 감정대로 드리는 예배,간음,하나님의 인도를 의심함, 누군가를 원망하며 온전히 순종하지 못하고 있는 내 모습이 너무나 적나라하게 드러나고 있었다..
나의 길을 돌이키지 아니하고 이대로 걸어간다면 나의 미래는 이스라엘 백성과 다를것이 없다는, 하나님께서 원래 나를 통하여 이루길 원하신 주의 나라가 아니라 멸망의 길로 나뿐만이 아니라 다른 사람의 발목까지 잡게 된다는것을 깨닫는다..
정말 오늘의 말씀이 나의 거울이 되어 나를 너무나 정확히 비추고 있다..내가 이 거울을 외면하지 않도록...이 거울로 나의 영혼의 더러운 모습을 정확히 보고 주님보시기에 아름답게 다듬어 가야겠다...하루도 이일을 미뤄선 않된다는것을 깨닫게 하신 하나님 감사합니다...

김경환

2006-06-15 08:10:29

---복 있는 사람들의 특징은 수시로 말씀을 본다. 그리고 은혜롭지 못한 부분을 계속 고쳐간다. 그래서 말씀을 자주 보면 늘 은혜롭고 복이 넘친다.---

제자훈련 졸업여행을 하루 앞두고 말씀으로 다시 한번 내 모습을 돌아본다.
숙제 하기 위해서 수시로 보았던 말씀들이 그래도 내안에 남아있음을 느낀다. 완벽하게는 못했지만 말씀속에서 많이 깨졌다. 은혜롭지 못한 부분이 없는 자가 복된자가 아니라 은혜롭지 못한 부분을 고쳐 나가는 자가 복된자임을 깨닫는다. 바쁘다는 핑계가 말씀과 거리를 갖게 했던적이 너무 많았다. 이렇게 바쁜데 말씀은 내일 보지 뭐! 이런 식의 시간을 얼마나 많이 보냈는지... 진심으로 하나님께 회개의 기도를 드린다. 말씀처럼 복있는 사람의 모습을 찾자. 수시로 말씀을 보는 자. 내 안에 고쳐야 할 바르지 못한 영,육의 모습을 고쳐 나가자. 말씀으로 강한 의지력을 갖지 못한 나의 못난모습을 고쳐나가겠다고 다짐한다.

---믿음의 사람이라면 적어도, 육의 거울을 보는 것만큼은 영의 거울을 보아야 할 것이다. 얼굴을 신경 쓰는 것만큼은 마음도 신경을 써야 할 것이다.---

남자인 나도 하루에 거울을 최소한 3번 이상은 보는 것 같다. 수시로 얼굴을 보면서 확인한다. 최소한 3번을 보니 어떤 날은 5번 6번도 보게 된다. 그런데 말씀을 보는 횟수는 육의 거울만큼 안된다. 가슴칠 일이다. 아이구!!!! 이러니 내안에 말씀이 살이 있을리 없다. 힘들면 아무 것도 않하면서 시간 가기만을 기다리는 바보 같은 모습에 실망하는 적이 한 두번이 아니다. 적어도 말씀하신 것처럼 육의 거울을 보는 것만큼은 볼 수 있도록 노력하겠다. 육의 거울에 다가 서는 횟수보다 영의 거울인 말씀 앞에 서는 횟수를 늘려야겠다. 신경 쓰는 만큼 변화가 오리라 믿는다. 영의 거울로 내 영을 깨끗케 해야겠다.

졸업여행을 앞둔 이밤에 설레이기전에 다시금 내 마음과 영을 다스리는 일에 정진해야겠다. 졸업여행으로 끝나는 것이 아니라 다시 시작하는 심정으로 사역훈련을 준비한다. 순종이 내 안에서 멀어지지 않도록 이번 졸업여행을 통해 내 자신과의 싸움에서 승리하겠습니다. 육의 거울 앞에 서기전에 영의 거울을 들고 영을 돌아보
는 진리의 사람이 되겠습니다.

김정아

2006-06-15 08:46:20

1. 복 있는 사람들의 특징은 수시로 말씀을 본다. 그리고 은혜롭지 못한 부분을 계속 고쳐간다. 그래서 말씀을 자주 보면 늘 은혜롭고 복이 넘친다.
‘복 있는 사람은 오직 ‘여호와의 율법’을 즐거워하여 그 ‘율법’을 주야로 묵상하는 자로다.'

삶 가운데 말씀을 적용하기란... 정말 노력하지 않으면 안 될 것이란 생각이 듭니다. 수시로 말씀을 보고 또 그 말씀을 거울삼아 내 자신을 보면서 수시로 고쳐나가는 것이 중요하지만....
늘 저녁마다 하루일과를 놓고 돌아볼 때, 과연 의식적으로 노력한 부분이 얼마나 되는가를 생각합니다..그냥 그저 열심히 최선을 다하자... 라며 생각했지만, 그것은 구체성이 없어서인지.. 돌아보면 늘 똑 같은 하루였습니다.. 하루 가운데 주어진 상황들이 모두 다 하나님께서 만들어 주신 상황이고 환경들인데.. 그 환경 가운데 하나님이 내게 원하시는 것은 뭘까...가 아니라 내가 뭘 하고 싶은가.. 가 주(主)가 되었던 적이 더 많은 것 같습니다.
제자훈련을 통해.. 기본적으로 말씀을 읽는 것은 많이 훈련이 되어졌지만 중요한 것은 주어진 환경가운데 얼마만큼 말씀을 적용하고 있는겠이겠지요. 성경의 이야기를 보며 그 여러가지 사례를 거울삼아 또 주신 말씀을 거울삼아 더욱더 내 자신을 잘 볼 수 있기를 다짐합니다. 하나님은 어제나 그제나.. 앞으로도 영원히 언제나 동일한 하나님이시니까..

2. 놋뱀은 곧 그리스도이시다. 힘들 때 의심하지 말고, 오직 십자가의 주님만 믿고 따라오면 산다는 것이다. 이처럼 시험은 순종의 길을 막는다.
사람은 힘들고 어려울 때 하나님을 의심하는 시험을 만난다. 그래서 불순종의 큰 유혹을 받는다. 아무리 힘들고 이해가 안가는 인생길을 만나더라도 하나님을 의심하지 말자. 시험하지 말자.

아무리 힘들고 이해가 안가는 인생길을 만나더라도 하나님을 의심하지 않고 신뢰하며 오직 믿음으로 나아간다는 것은 참으로 어렵습니다.. 정말 뭐든 잘 할 수 있을 것 같고 , 주님 말씀이라면 돌이라도 씹어 먹을 수 있을 것 같지만, 암담한 환경을 만나면 이내.... 좌절해 지고 맙니다.
베드로가 물위를 걸으시는 예수님을 봤을 때, 자신도 걸어보고자 했지만 잘 가다가 물밑으로 빠지게 된것은 바로 의심하는 그 때, 그 순간이었습니다. 그 의심이 지속된다면 아마 베드로는 물 속에서 헤어나오지 못했을 지도 모릅니다. 그것은 주님을 의지한다고 하면서 발걸음을 내딛지만 그 맘 한 켠에 주님을 향한 의심이 생겼기 때문에 멈칫했습니다. 인생에서도 마찬가지로 주님을 의지하지만 잠시잠깐 방심한 사이에 의심이란 것이 내 맘속 한 구석에 자리잡기 시작할 때.. 바로 그 때에 좌절이 생기고 그 좌절로 인해.. 인생은 내리막길로 물속으로 빠져들어가는 것이란 생각이 듭니다.
여기서 깨닫게 된 것은 늘 긍정적인것입니다. 세상 사람들도 긍정적으로 살면 건강하다는 것 아는데 믿음의 사람이 주님안에서 주님의 말씀으로 긍정적으로 생각하고 긍정적으로 마음을 다듬으면 영과 육이 다 건강할 줄로 믿습니다.
오늘도 그리고 내일도 늘 주님안에서 불신과 의심이 아닌 신뢰와 믿음으로 상황과 환경과 이해여부에 관계없이 늘 그대로 주님을 신뢰하며 하루하루 살아가기를 다집합니다.

김기웅

2006-06-15 12:53:52

성격이 급한 내가 저지르는 실수나 허물은 너무 많으나, 그중에 하나를
말하라면 남의 얘기를 끝까지 못듣는 경향이 있는 것일게다. 그런 내가
이 활자로 되어져 있는 말씀을 죽 읽어내려갈수 있는 기회가 있다는건
하나님의 도우심이 아닐수 없다. 늘 감사하는 맘으로 살아야겠다.

1.자기가 슬프면 슬픔의 예배를 드리고, 자기가 괴로우면 괴로움의 예배
를 드리는것은 감정을 섬기는 것이지 하나님을 섬기는 모습이 아니다.

예배를 드릴때 간혹 옆에 계신성도님이 눈물을 흘리시는걸 봅니다.찬양에
서 은혜를 받으신건지,아니면 말씀에서 은혜를 받으신건지는 잘 모르겠
으나 나도 2주에 한번꼴로 눈물이 납니다. 혼자생각에 눈물이 흐른날은
내심 오늘예배 경건했다고 생각하는 경향이 생깁니다.그런데 참 어렵습
니다. 한가지 확실한건 앞자리에 앉았을때만 눈물이 난다는 겁니다. 이
1번 항목은 지금까지 나를 늘 고민하게한 안건이기도 합니다. 왜 고민을
했냐면, 내 가슴에 맺힌 '한'이 예배를 통해서 눈물이라는 매체를 통해서
나온것은 아닌가 하는 생각에 과연 이 '한'은 하나님 보시기에 어떠한 녀
석인지 좀 궁금했던 참이었습니다. 온전히 하나님 앞에서 죄인이기게
그 원통함과 궁색함이 몸둘바를 몰라서 나오는 눈물을 2주에 한번씩 흘
렸다면 나는 고민하지 않았을지도 모르겠으나 또, 별로 마음이 열리지도
않았으면서 염치없이 예배시간에 앞자리에 덜썩 앉는 내 모습에도 많은
검증이 필요하다는 생각이 이번 설교를 통해서 다시 한번 내 마음을
무섭게 칩니다. 앞자리에 앉기 두려운 마음(하나님을 두려워하는 마음)
이 너무 없는 내 모습을 보면서 이번 설교를 통해 깨우침이 많은 만큼
윤동주시인의 '서시'같은 갈급함이 내마음에도 생겨나도록 기도합니다.

2.이스라엘 백성들은 돌아가는 길을 만난때, 하나님의 인도를 의심하게
된다.

제발 추락할때에도 하나님의 섭리에 감사하고, 궁휼을 구하는 사람이
되고싶다. 늘 인생이 평탄할수만은 없는것을 가르치시는 하나님..
내 삶에도 하나님의 섭리가 함께 임하고 그 섭리내에서 늘 감사하는
진솔한 생활인이자 신앙인이 되도록 제자훈련 잘 받자...

최현숙

2006-06-15 14:03:27

하나님은 내 가까이 계신듯 하지만 멀리 계신듯 할때가 참 많다. 이런 사실은 순전히 내 감정때문이란 것을 깨닫는 다. 주님은 내가 세상 끝날까지 나와 함께 하신 다고 했기 때문에 내가 온전히 이 말씀을 신뢰한다면 가까이든 멀리든 하나님의 존재 여부에 마음이 쓰이질 않을 것이다. 왜 이 말을 하냐면 이번주 예배에 나는 참으로 살아계신 하나님이 나와 가장 가까이 계셨다고 고백을 하고 싶기 때문이다. 하나님께서 주일 새벽기도시간에 예배에 대해서 아주 강력하게 기도하게 하셨다. 이스라엘을 애굽에서 불러 내신 것처럼 나를 이 세상에서 불러 주님을 경배케 하신 하나님께서 예배할 때 어떤 모습으로 예배를 드려야 하는지를 정확하게 기도케 하시고 회개케 하신 하나님의 마음을 내 안에서 깊이 경험하는 기도시간이였다.
목사님 입술로 전해지는 말씀을 듣고서 하나님의 심령을 내 안에서 강력하게 느껴져 소름이 돋았다. 이스라엘 백성를 통해서 그 예(example)를 들어 말씀을 통해 보여 주신 하나님의 마음을 내가 잊지 않고 주님앞에 경배한다면 광야 같은 지금의 내 삶이 광야로 끝나지 않음을 본다.
예배를 방해하는 4가지 지뢰는 BC1,500전이나 지금이나 여전히 존재하고 있다는 사실이 놀랍다. 우상숭배,간음,하나님을 시험하고 하나님을 원망하는 마음이 똑 같음에…..
많은 사람들은 예배로 통해서 뭔가를 얻기 원하지만 예배의 진정한 뜻은 주님을 경배하고 찬양한다는 뜻이다. 주님의 주되심을 내 영혼이 찬양하며 온전히 그분을 높이고 경배하는 것인데도 불구하고 예배속에서 하나님이 나를 위해서 무엇인가를 해 줘야 한다는 마음으로 예배를 드리는 사람이 참 많다는 것을 깨닫았다. 자기에 감정에 붙들려 미칠 정도로 춤을 추며서 하나님을 찬양한다고 말을 하지만 이것은 철저히 자기 감정에 붙들려 있는 예배이지 하나님 중심의 예배가 아님을 알게 하신 하나님의 모습을 보게 된것이다.
혹 내가 이런 모습으로 예배하고 있지는 않는지….말씀으로 내속을 정확하게 보게 하신 하나님게 감사를 드린다. 이스라엘 백성이 오늘도 내게 거울이 되어 내가 어떤 모습으로 주님앞에 예배해야 할지를 가르쳐 주신 하나님을 찬양합니다. 진심으로 감사드립니다.

김경희

2006-06-15 18:30:02

‘저희 중에 어떤 이들과 같이 너희는 우상 숭배하는 자가 되지 말라’(7)
우상 숭배의 구체적인 모습은 출애굽기 32장에 잘 나와 있다.
‘백성이 모세가 산에서 내려옴이 더딤을 보고’(출32:1) 백성들은 우상 숭배의 악을 즐기게 된다. 원하던 것이 안보이면 인간은 금방 죄의 유혹에 빠지기 쉽다. 성질 급한 사람이 죄를 짓기 쉽다. 살다 보면 좀 더디게 이루어지는 일도 있다. 이 때 우리는 조급하여 일을 그르치지 않도록 주의해야 할 것이다. 특히 하나님의 선한 역사를.

이번주 말씀을 통해서 나의 나약함을 인정하고,또 한번 주님께 감사하며 맡기는 믿음을 간직하게되었다.
속회인도를 하게되면서 여러가지 맘에 염려가 밀려왔다.
매주 모임이 뜻데로 잘이루어지지 않고 마음에 부담이 많이 되었다.
주님께 기도하며 끝까지 인내하고 피와땀과 눈물로 기도하면 반드시 응답해주실거라는 사실을 알고 있으면서도...
인간인지라 눈앞에 보이는 현상만을 쫓아가는 내 자신이 너무나 답답했다.
원하는 것이 안보이면 금방죄의 유혹에 빠지기쉽다는 것이 나의 삶속에서도 드러나게 되었다.
하나님의 선한역사는 서두르지 말고 기도와 인내로 나야가야 한다는 말씀을 가슴깊이 되새기게 되었다.


라문진

2006-06-16 03:20:12

1. 자기가 슬프면 슬픔의 예배를 드리고, 자기가 괴로우면 괴로움의 예배를 드리는 것은 감정을 섬기는 것이지 하나님을 섬기는 모습이 아니다. 진정한 예배는 나의 모든 것을 드려(감정까지도) 하나님을 섬기는 행위이다. 그래서 지나친 음악이나 감정에 호소하는 표현도 예배를 방해하는 큰 요소라고 했다.

위의 모습이 예수님을 믿기전에 내가 이해안가고 또한 싫어하는 크리스찬의 모습이었다. 자신의 감정에 따라 예배에 대한 태도가 달라지는것이 내가 꺼려하던 모습이었다. 그런데 어느새 내가 그런 모습을 보일때가 있다. 물론, 말씀에 은혜받도 회개하는 모습과는 다른것일 것이다. 자신의 문제가 있을때 그것으로 주님깨 더 가까이 나아갈 수 있을것이다. 탕자의 가난이 진리의 길잡이 였듯이.. 하지만 내 감정을 스스로 절제하지 못해 감정을 토해내는 예배를 드릴때가 있다. 내감정까지도 주님께 드리는 진정한 예배를 드리기를 원한다. 내 감정을 온전히 주님께 맡기고 절제하는 주님을 위한 예배를 드리기를 원한다.

2. 교만한 사람은 절대로 순종하지 않는다. 고라처럼 사사건건 반항할 뿐이다.
교만한 사람의 약한 반응은 원망이요, 강한 반응은 대항이다. 우리는 이 약한 반응도 보이지 말아야 한다. 오직 예수님의 십자가의 겸손으로 무장해야 한다. 그래야 십자가의 순종이 우리의 앞길을 인도해 준다.

교만한 사람은 절대로 순종하지 않는다는 말씀이 무섭게 다가온다. 제자훈련에서도 배웠지만, 교만은 자신의 영적인 가난을 모른다고 했다. 영적으로 병들었음에도 불구하고 그것도 모른채 주님과 멀어지는 삶은 산다는것은 얼마나 무서운 일인가? 결과는 불보듯 뻔한 일이니깐...

내가 교만하지 않기를 주님께 기도합니다.
주님께 모든걸 맡기고 순종하는 삶을 살기를 원합니다.

홍인기

2006-06-16 07:58:06

"말씀의 거울 속에는 수많은 사람들의 경험들과 사람을 만드신 하나님의 매뉴얼이 통 체로 기록되어 있다"

물건을 사면 먼저 보게되는것이 메뉴얼입니다. 대충 훑어봤을때.. 대략적인 사용은 가능하지만 사용하면서 얻는 경험 이외의 것들은 사용할수가 없습니다. 하지만 이 물건의 어려운 사용법은 메뉴얼을 꼼꼼히 살펴본 유저만이 사용할 수 있는것 같습니다.
성경을 접하고 인생을 살면서 저또한 대충 훑어본 사용자와 같이 성경을 대하지 않았나 싶습니다. 진정한 성경의 묘미, 인생에 힘이 되는 것들은 성경을 꼼꼼히 읽어 보지 않는 이상 얻을 수 없는 이치를 깨달으면서 왜 행하지는 못하나 하는 회개를 하게 됩니다.

"그런데 그들이 광야에서 멸망을 받았다고 했다. 이것은 세례와 성만찬의 은혜를 받은 우리에게 귀한 경고를 주고 있다. 방심하지 말아야 한다. 타락하지 말아야 한다. 은혜의 백성이 더 망하기 쉽다. 우리도 이처럼 충분히 멸망 받을 수 있다. 경계를 늦추지 말아야 한다."

믿는자들에게 더 많은 시험이 오고, 믿는다고 다 잘되는것이 아니다. 라는 말의 원인을 알 수 있었습니다. 우리의 방심과 타락이 믿는 자임에도 불구하고 하나님께 축복은 커녕 믿지 않는자보다도 더 망하기 쉽고 멸망받을 수 있는 원인이 됨을 깨달았습니다. 방심이란말이.....참 크게 다가 옵니다.

"하나님이 우리를 택하신 것은 광야를 주시기 위함이 아니다. 광야는 단지 가나안을 가기 위한 통로에 불과하다. 하나님이 우리를 부르신 목적은 젖과 꿀이 흐르는 가나안을 주시기 위함이다."

광야에 있다는 것에 너무 힘들어 하고 있진 않은가 하는 생각을 해봅니다. 가나안에 들어가기 위한 통로임을 잊고, 어리석었던 이스라엘 민족들처럼 광야에 있다는 이유만으로 힘들어 하고 하나님을 원망하고 그러진 않나... 스스로를 돌아보게 됩니다. 광야를 주시기 위해 택하신것이 아니라는 말씀이 너무 감사하게 느껴집니다. 가나안에 들어가는 과정인 지금의 때를..... 기도와 말씀으로 승리해 주님이 주시는 축복을 누릴 수 있도록 기도합니다.

이지영

2006-06-16 09:30:53

1.복 있는 사람들의 특징은 수시로 말씀을 본다. 그리고 은혜롭지 못한 부분을 계속 고쳐간다. 그래서 말씀을 자주 보면 늘 은혜롭고 복이 넘친다.
‘복 있는 사람은 오직 ‘여호와의 율법’을 즐거워하여 그 ‘율법’을 주야로 묵상하는 자로다.’(시1:1-2)

요며칠 하나님의 은혜로 새벽예배를 나가게 되었습니다. 문제가 있어 나가는 것이 아니라, 단지, 하나님전에 가서, 예배드리는 기쁨으로 나갈 수 있어, 더욱 기쁩니다. 예전에는 몇시간밖에 잠을 못자면, 새벽예배에는 못나가겠다고, 스스로를 위로했습니다만, 지금은 하나님께 시간의 십일조를 드림과, 하나님의 말씀을 듣는 것이 좋아서, 나가는 발걸음이 가볍습니다.
그리고, 한가지 더 변화를 말씀드리면, 예전에는 즐겨보았던, 텔레비젼 프로그램이 재미없어졌습니다. 인터넷검색하며, 보는것도 그다지 즐겁지가 않습니다. 단지, 하나님의 말씀을 읽는 것과 듣는것이 더욱 재미있어졌고, 즐겁습니다.
시편의 여호와의 율법을 즐거워하고 주야로 묵상하는것이 예전에는 무슨뜻인지 정확히 잘 몰랐고, 어떤 마음으로 말씀을 접하는것이 즐거워하는 것인지,..단지 읽으면서, 감동을 받고 깨달음을 얻는것인지...마음에 확 안닿았습니다. 하지만, 최근들어서, 이제서야 조금씩 말씀을 즐거워하며 주야로 묵상하는 것이 어떤 것인지 알게 되었습니다..이 모습 그대로, 달려가고 싶습니다.

2.출애굽한 이스라엘 백성은 세례와 성만찬의 엄청난 은혜에 둘러 쌓인 특별히 선택 받은 백성이었음을 1-4절에서는 강조하고 있다.
그런데 그들이 광야에서 멸망을 받았다고 했다. 이것은 세례와 성만찬의 은혜를 받은 우리에게 귀한 경고를 주고 있다. 방심하지 말아야 한다. 타락하지 말아야 한다. 은혜의 백성이 더 망하기 쉽다. 우리도 이처럼 충분히 멸망 받을 수 있다. 경계를 늦추지 말아야 한다.
광야에서 죽지 말아야 한다.
반드시 가나안 땅의 주인이 되어야 늘 지켜야 한다.

광야에서 죽을 수 있다는 말씀은 참으로 무서운 말씀인것 같습니다. 우리 주위에는 더러운 영들이 우글우글거리며, 어떻게든지 믿음의 사람을 쓰러뜨리려고 주시하는 것 같습니다.
마음이 평안할 때, 더욱더 근신하며, 매일매일을 하나님께 여쭈어보며, 하나님을 의지하며 깨어 살아야겠고, 모든것이 감사한 요즘, 그것에 만족하지 않고, 신앙의 느슨함을 갖지 않도록, 더욱 깨어 기도하며, 말씀에 귀기울이는데 힘써야겠습니다.
광야에서 죽기 싫습니다. 하나님의 마음을 아프게 하는 의심과 교만을 갖고 싶지 않습니다. 우리 교회 성도들 모두는 주님의 말씀으로 무장한 더욱 강한 군사가 되어, 광야를 지나 가나안 땅의 주인이 반드시 되는 것을 선포합니다.
오늘의 말씀을 통해, 영적 삶의 경계를 늦추지 않고 더욱 영적으로 깨어있어야한다는 다짐을 할 수 있게 하신 하나님께 감사드립니다.


이소진

2006-06-16 22:16:47

믿음의 사람이라면 적어도, 육의 거울을 보는 것만큼은 영의 거울을 보아야 할 것이다.
얼굴을 신경 쓰는 것만큼은 마음도 신경을 써야 할 것이다.
화장을 고치는 만큼 마음을 고쳐 나가야 할 것이다.
얼굴화장은 사람을 기쁘게 하지만 마음 화장은 하나님을 기쁘게 한다.
...저는 늘 하나님을 기쁘게 하는 삶을 살 길 원했습니다. 하지만 거울설교는
저의 마음을 되돌아 보는 계기가 되었습니다. 내가 영의 거울을 보는 횟수는 화장을 고치거나 머리를 만지기 위해 거울을 보는 횟수에 비해 터무니 없이 부족한 듯합니다. 수업과 수업의 짜투리 시간에도 거울을 볼 때가 있지만, 성경을 보며 마음을 바로잡는 데 바뻣던 적이 별로 없었음을 생각하고 내 자신도 놀랬습니다. 내가 과연 하나님께서 기뻐하시는 삶을 살고 있을까,,라는 생각과 합께 말입니다. 저는 더욱더 영의 갈급함을 느끼는 민감한 자가 되길 기도합니다.

시험과 원망은 결국 순종의 길을 폭파시키는 영적 지뢰이다
...순종의 길을 폭파시키는 영적 지뢰는 부족한 믿음이라고만 생각했었습니다.
시헙과 원망 또한 순종의 길을 막는 악한 것이라는 것을 다시 한 번 묵상합니다.
믿지 못하는 것에서 나오는 시험과 누군가의 탓으로 돌리려는 데서 비롯되는 원망이란 누구든지 한번쯤은 경헙해 보았을 것이라고 생각합니다.
시험과 원망이 없는 하나님 앞에 온순한 사람이 되기를 기도합니다.

木下 

2006-06-17 00:24:22

1 ”神様は、今日 人生の鏡を私たちに一つずつ与えたいと願っている。それ は、すなわち、神様の”御言葉の鏡”である。”
 私は、毎日鏡を見ていますが、心の状態がそのまま、自分の顔の表情として出ていることが多々あります。顔の表情は、人に大きな影響を与えると思いますので最近、よく確認するようにしています。しかし、顔に心の状態が出やすい私としては、満足できるような、よい表情が、なかなかうまくできません。時に、無理やりによい表情をしようとして、不自然な表情になってしまうことが少なくないです。数多くの顔の表情筋を鍛えるだけでは不十分であることがわかりました。それは、日々、御言葉によって、心の中からきれいにすることが必要であるということです。
2”信仰の人は、心をきれいにすることに、いつも 気を使わなくてはならず、時間と精神を投資しなければならない。信仰とは、神様によく見せることであり、人によく見せるものではないからである。”
 私は、心をきれいにするためにどれだけ、時間と精神を投資してきたのでしょうか。外見も、それほど十分ではないかもひれませんが、心においてはさらに、不十分であったのではないでしょうか?御言葉を読み、お祈りによって、時間と精神を投資して、心の汚れを落としていただくように努めて生きたいです。
3 ”真の礼拝は、自分のすべてのものをささげ(感情までも)神様に仕える行為である。”
私は、まだ礼拝のとき、心の感情まで十分にささげきれていないことがあります。改善の必要があります。
4 ”礼拝と従順が生きている人は、絶対に、その人生が荒野で終わることはない。”
とても希望のある言葉であると思います。しかし、”礼拝と従順が生きている人”という条件つきです。私はまだ十分に実践できていないと思います。人生が、荒野で終わることがないように、礼拝と従順が生きている人生を歩んでいきたいです。

이용준

2006-06-17 03:36:30

눈이 뿌셔져라 하고 아프다
다음주가 연구발표인데 내가 해놓을 것이 산더미 같다
이번주 읽은 논문이 책상에 잔뜩인데 다시 볼 엄두도 안나고
내가 이걸 어떻게 봤는지 정말 정신이 하나도 없다
문득 목사님께서 설교 중에 하신 말씀이 생각났다
"남자가 돈있고 시간있으면 딴생각한다" 고
이 교훈을 40년 광야생활하는 그들이 알았더라면 좋았다는 생각이 든다
그들에게 먹을 것 걱정말라며 매일 먹을 양식을 주었고-양식걱정해결
또한 모세와 하나님과의 대화로 인해 생긴 시간이 그들에게 있었던 것이다
아쉽다 지금처럼 제자훈련과정을 도입했더라면
매일 생활숙제에 성경구절 암송하게 했다면 이런 비극을 조금이나마
줄일수 있었을 텐데
토요일이 내일이다 할건 많은데 제자훈련 숙제까지 해야한다
나는 돈없고 시간도 없어 딴생각할 겨를이 없다
그러나 이것이 내가 광야를 벗어나는 힘이라고 생각하니
힘들어도 주님께 감사드린다

박정선

2006-06-27 08:32:46

여행가는 날 아침에 열심히 리플을 적고 클릭을 했는데 날려버렸습니다.
하나님은 숙제로 생각하고 적었던 내 모습이 기쁘시지 않았으리라 생각했습니다.
힘들 때나 약할 때는 늘 의심을 조심해야 한다. 의심은 시험을 낳고 시험은 불순종을 낳기 때문이다.
끊임없이 올라오는 의심 정말 지긋지긋할 정도로 끊어내고 끊어내도 끊어지지 않고 올라와 있습니다. 지치지 않고 허용하지 않고 깨어서 말씀으로 의심이 올라올 자리를 차단하고 기도로 끊어내야 겠다고 생각했습니다.
잠시 방심하는 순간 불순종이라는 돌이키기 힘든 큰 죄 가운데 서 버리는 것을 막을수 있도록 늘 하나님 은혜 가운데 있기 원합니다.
좋을 때나 강할 때는 늘 교만을 조심해야 한다. 교만은 원망을 낳고 원망은 불순종을 낳기 때문이다.
정말 교만도 지긋지긋합니다. 내가 교만한지 모르도록 여러가지의 모습으로 가장하고 나타나는 모습들을 생각하면 늘 욥처럼 하나님께 자신의 모습을 되돌아봐야 겠다는 생각을 합니다. 내 삶가운데 예배와 순종이 온전히 살아나길 기도합니다.

정한나

2006-06-28 06:52:32

나루호도!! 우상숭배와 간음은 예배를 파괴하는 영적지뢰이고, 시험과 원망은 순종의 길을 폭파시키는 영적지뢰라는 말씀이 참으로 두렵고 떨림으로 다가옵니다. 또한 앉아서 먹고 마시며 일어나서 뛰논다는 예배의 심각성에 대한 말씀은 얼마전 읽었던 책의 내용을 생각나게 하였습니다. 어린 유아를 데리고 예배를 드리는 한국의 많은 부모들의 예배태도를 지적하는 내용이었는데 정말 공감이 가는 부분이었습니다. 또한 오늘 말씀중 아름다운 사람은 오직 거울을 즐거워하며 그 거울을 주야로 보는 자로다라는 말씀을 보면서 혼자서 한참을 웃었습니다. 목사님의 말씀을 통해 늘 제 영혼을 소생시키시고 마음까지 즐겁게 해주시는 좋으신 하나님께 감사와 찬양을 올려드립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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