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중앙영광교회

다시 살리라

이용규목사, 2006-05-08 23:54:2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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다시 살리라
요11:23-27

요한 복음 11장은 죽은 나사로의 이야기이다.
나사로라 하는 사람이 죽었는데, 이미 죽은 지 4일이 지나 무덤 속에 있었지만, 예수님께서 그를 무덤에서 살아 나오게 하시는 부분이다.
비록 내 인생에 3중의 어려움 5중의 어려움, 아니 100중의 어려움이 있다 하더라도 예수님만 나와 함께 계시면 아무 것도 문제될 것이 없다. 그 분은 바로 전능하신 하나님이기 때문이다. 본문은 이것을 증명해 주고 있고, 우리 모두가 이 믿음을 갖기를 주님은 간절히 원하고 계신다. 그래서 주님은 말씀하셨다. ‘네가 믿으면 하나님의 영광을 보리라!’
‘내 인생도 하나님의 영광을 꼭 보리라! 나도 꼭 이 믿음의 반열에 들고야 말리라!’
이런 귀한 결단이 여러분을 사로잡는 시간이 되기를 바란다.

1.        두 가지 의문점
요한복음11장에는 상식적으로 도저히 이해가 안가는 부분이 두 군데가 있다.
첫 번째는 6절의 내용이다. 예수님은 나사로가 위독하다는 급한 전갈을 받았다. 그러나 예수님은 바로 달려가기는 고사하고 오히려 이틀이나 계시던 그곳에 더 머무르셨다고 기록하고 있다. 그렇게도 사랑하던 나사로가 죽어간다는데 특별히 다른 일도 없어 셨으면서도 왜 그랬을까? 두 번째는 30장에 있다. 언니 마르다가 예수님이 드디어 오신다는 소식을 듣고 달려 나가서 마을 입구에서 예수님을 만났다. 그 후 마르다는 얼른 집에 돌아와서 예수님이 오신 소식을 마리아에게 알렸다. 마리아도 급히 나가 예수님께로 달려 갔다. 그런데 이해가 안가는 부분은, 아직도 예수님은 마르다를 만났던 그 곳에 그저 계셨다고 적혀 있다. 마르다와 함께 정신없이 달려 오는 것이 정상적인 모습이 않은가? 너무 답답하지 않은가?
특별히 중요한 사람을 만나고 있었던 것도 아닌데 말이다.
예수님은 한번도 아니고 두 번씩이나 왜 그렇게 하셨을까?
보통 사람 같아서면 엄청나게 시험들 일이 아닐 수 없다.
바로 여기에 너무나 큰 은혜와 주님의 뜻이 담겨 있다. 이 보석을 캐 보도록 하자.
사람의 본심은 평상시는 잘 모른다. 모두가 좋은 사람같이 보인다.
그런데 갑자기 위기와 고난의 태풍이 불어오면 본색을 드러내는 법이다.
알곡과 쭉정이는 바람이 불어야 구분이 된다.
사람은 갑자기 고난의 태풍을 만나면 그 속을 알 수 있다.
그 사람이 어떤 사람인지는 급하고 힘든 일을 당해 보면 안다.
속에 든 것이 없는 쭉정이 같은 사람은 고난이 오면 어쩔 줄을 모른다. 마치 바람에 나는 쭉정이처럼 우왕좌왕하면서 당황한다. 파닉 상태까지 빠진다. 간혹 기절까지 하는 사람도 있다.
속이 비었기 때문이다. 그래서 가볍다. 그러니 바람이 조금만 불어도 바람 따라 왔다 갔다 할 수 밖에 없다.
그러나 알곡 같은 사람은 아무렇지도 않다. 절대로 바람 따라 날아 가지 않는다.
속이 찼기 때문이다. 그래서 무게가 있다. 그러니 요동치 않는 것이다.
어떤 부정적인 사람은 이렇게 말할지도 모른다. ‘태풍이라도 한번 불어봐요. 그러면 알곡이나 쭉정이나 다 날라가요. 집도 날라가는데 어찌 알곡이 안 날아간다는 말이요.’
맞는 말이지만 틀린 말이다. 알곡과 쭉정이를 구분하는데 주인이 어찌 알곡까지 날아가 버리게 하는 그런 얼빵한 주인이 세상 천지에 어디에 있단 말인가???
하나님은 우리의 참 주인이다. 그래서 ‘오직 하나님은 미쁘사 너희가 감당치 못할 시험 당함을 허락 지 아니하시니라’(고전10:13)라고 확실히 말씀하셨다.
믿음의 쭉정이가 되지 말고 오직 믿음의 알곡이 되어야 한다.
믿음의 알곡 중의 알곡은 누구일까? 바로 예수님이시다. 예수님은 그 속이 바람도 잠잠케 하고 죽은 자도 살리는 하나님으로 가득 차 있었다. 그래서 사랑하는 나사로의 죽음이라는 엄청난 인생의 태풍 앞에서도 아무렇지도 않았다. 너무나 여유로워 셨다. 주님의 마음 속에는 죽음이라는 태풍의 힘도 흔들 수 없는 놀라운 믿음의 능력, 부활과 생명의 능력이 있었기 때문이다. 주님은 우리에게 이 무게 있는 믿음의 능력을 친히 보여 주셨다. 그리고 우리도 갖기를 원하셨다. 그래서 15절에서 ‘너희로 믿게 하려 함이라’, 26절에서 ‘이것을 네가 믿느냐’, 42절에서 ‘저희로 믿게 하려 함이나이다’라고 그 목적을 확실히 말씀하신 것이다.
믿음의 사람은 속이 주님으로 꽉 찬 사람들이다.
그래서 세상의 어떤 위기, 고난이 오더라도 끄떡 없다. 예수님처럼 늘 ‘여유만만, 여유억억, 여유조조’한 사람들이다. 위기를 만났을 때 여유가 있는 사람은 믿음이 있는 사람이고, 여유가 전혀 없는 사람은 믿음이 없는 사람이다.
위기를 만났는가? 절대로 하늘이 무너지는 것 같은 호들갑 떨지 말고 예수님의 이 여유로운 모습을 꼭 본받아야 한다. ‘큰 일 나기는 뭐가 큰 일 나! 괜찮다! 내 영혼아! 네 속에는 만물의 주인 되시는 주님이 계신다!’ 이 믿음의 배짱이 예수님이 죽은 나사로 앞에서 우리에게 보여 주신 능력의 모습이다.
호들갑은 무서운 환경 앞에서 떠는 것이 아니라, 나약한 믿음 앞에서 떨어야 한다.

2.        성경과 신문
2002년 월드컵 때, 나는 한번도 축구시합을 생중계로 보지 않았다. 꼭 보고 싶은 것은 녹화해서 나중에 중요한 부분만 보았다. 내가 생중계를 보지 않은 것은 너무 흥분해서 밤잠을 설칠까 걱정이 되어서이다. 생중계는 사람을 엄청 흥분시키고 마음 졸이게 한다. 자기 팀이 위기에 몰릴 때에는 안절 부절 못하게 한다. 전혀 여유가 없다.
그러나 재방송은 전혀 다르다. 동일한 게임인대도 느낌이 전혀 다르다. 재방송 보면서 마음 졸이거나 안절 부절 못하는 사람은 한 사람도 없다. 너무나 편안하다. 아주 여유롭게 중계 방송을 즐긴다. 왜일까? 이미 결과를 알고 있기 때문이다.
믿음의 사람은 이미 결과를 알고 인생을 살아가는 사람이다. 그래서 늘 여유롭고 그 마음이 편안하다. 결과를 아는데 어찌 안 그럴 수 있겠는가???
인생의 결과는 어디에 있을까? 성경에 있다. 어떤 결과일까? ‘승리’의 결과이다.
그래서 하나님의 말씀을 우리는 ‘복음(GOOD NEWS)’라고 부르는 것이다.
우리에게 좋은 승리의 소식을 전해 주기 때문이다.
‘이것을 너희에게 이름은 너희로 내 안에서 평안을 누리게 하려 함이라
세상에서는 너희가 환란을 당하나 담대하라 내가 세상을 이기었노라’(요16:33)’
이 얼마나 기쁜 소식인가! 이 얼마나 감격적인 소식인가! 대한 민국이 월드컵에서 우승했다는 소식보다 못하다는 게 말이나 되는가! 대한민국이 4강에만 올라갔다는 소식만 들려도 온 국민이 감격하여 어쩔 줄을 모르는데, 예수님이 나를 위해서 시시하게 축구만이 아니라 세상을 다 이기셨다는 소식을 듣고도 아무렇지도 않다니 참으로 신기한 일이 아닐 수 없다.
내가 직접 경기장에 가서 내 눈으로 확인해 보지 않고도, 신문의 보도만으로도 우리는 그 결과를 믿을 뿐만 아니라, 승리의 기쁨을 함께 나누며 또 자랑스럽게 전한다.
예수님의 승리의 소식은 세상기자가 아닌 하나님이 쓰신 것이요, 신문이 아니라 성경에서 전해 주고 있다.
신문은 믿으면서 성경은 못 믿겠는가?
스포츠 기자의 말은 믿으면서 살아계신 하나님의 말씀은 못 믿겠다니 말이 되는가?
신문 기사는 못 믿더라도 신실하시고 전능하신 하나님의 말씀은 믿는 것이 정상인의 모습이 아닐까? 세상엔 비정상적인 사람이 참 많다. 특히 일본에.
‘승리는 주님의 것이다.’ ‘승리는 내 것이다’ 왜? 성경(하늘 신문)에 이미 그렇게 보도가 되었으니까?(요16:33) ‘승리는 내 것일세 승리는 내 것일세 구세주의 보혈로서 항상 이기리’
믿음의 사람은 이미 승리의 소식으로 마음이 가득 찬 사람이다.
그러니 어찌 마음 속에 불안, 염려, 근심, 걱정, 한숨이 발을 붙일 수가 있겠는가?
주님의 승리의 기쁜 소식이 여러분 마음 속에 충만하길 축복한다.
주님이 부활하셨을 때에 제일 먼저 주신 것이 무엇인지 아는가? 평강이다.
‘너희에게 평강이 있을지어다’(요20:19,21,26) 이 말씀을 3번이나 계속하셨다.
왜일까? 당연히 평강이 제일 중요하기 때문이다.
평강은 그냥 오는 것이 아니다. 삶이 고달픈데, 죽음이 눈 앞에 와 있는데 어찌 평강할 수가 있겠는가? 그러나 평강은 온다. 평강은 승리의 소식만 들으면 그냥 온다.(요16:33)
지금은 지고 있지만 승리했다는 소식을 듣고 재방송을 보는데 어찌 내 속에 평강이 없겠는가! 주님의 승리의 복음에 나의 믿음을 합하면 주님의 승리는 현실을 초월하여 바로 나의 승리가 된다. 승리자는 여유가 있다. 마음이 넉넉해진다. 삶에 남음이 있다. 그래서 늘 평강을 누리게 되는 법이다.
믿음의 사람은 환경이나 사람에 대해서는 늘 여유가 있고
자신의 마음 속에는 늘 승리의 복음으로 충만한 사람이다.
마음을 채우자! 만땅으로 채우자! 승리의 소식으로! 복음으로!
그리고 성경대로, 믿음으로 매일 이렇게 선포하자!
‘죽어도 살리라! 다시 살리라! 반드시 살리라!’ 누가? ‘내가!!!’
믿음대로 선포한 대로 될 것이다.

3.        부활해야 할 4가지 믿음
예수님은 죽은 나사로를 부활시키기 위해서가 아니라, 죽어가는‘내 믿음’을 부활시키고자 오늘 이 말씀을 주셨다.(요11:15,26,42) 다음의 4가지 믿음을 부활시키기를 원하신다.
1)        장소를 초월하는 믿음
마르다와 마리아는 예수님께 이렇게 말했다.
‘주께서 여기 계셨더라면 내 오라비가 죽지 아니하였겠나이다’(21,32)
이것은 그들의 잘못된 믿음의 모습을 적나라하게 잘 보여 주고 있다.
백부장의 믿음과 비교해 보면 잘 알 수 있다. 백부장은 자기 하인이 중풍병으로 누워 있을 때에 예수님을 찾아가 간구하기를 ‘다만 말씀으로만 하옵소서 그러면 내 하인이 낫겠삽나이다’(마8:8)라고 했다. 이 때 예수님은 ‘이렇게 귀한 믿음을 만나 본 적이 없다’고 극찬을 하시고, 가시지 않고 그 하인을 낫게 해 주셨다. 그러나 마리아와 마르다는 그렇지 않았다. 그들은 단지 현장에 계시는 예수님만 믿었다. 그래서 ‘여기에 계셨더라면 살았을 텐데’라고 했던 것이다. 예수님은 절대로 장소의 제약을 받는 분이 아니시다. 주님은 세상 어디에나 역사하시는 분이시다. 주님이 말씀만 하시면 주님의 역사는 나타나지 않을 곳이 없다는 믿음을 회복해야 한다. 주님을 장소의 가정법으로 묶지 말아야 한다. ‘계셨더라면’ 이런 가정법을 잘 쓰는 사람은 자신의 부실한 믿음을 스스로 증거하는 것이다.
자신을 풀어 놓아 다니게 하기 전에, 주님을 먼저 풀어 놓아 마음껏 역사하게 하셔야 한다.
2)        현재형 믿음
예수님이 ‘네 오라비가 다시 살리라’고 했을 때, 마르다는 ‘마지막 날 부활에는 다시 살 줄을 내가 아나이다’(24)라고 대답했다. 이 때 예수님은 분명히 화를 내셨을 것이다. 그래서 다음과 같이 지금 살 것을 직설적으로 다시 말씀해 주셨다.
‘무슨 소리하느냐 나는 부활이요 생명이니 나를 믿는 자는 죽어도 살리라 네가 이것을 믿느냐?’ 그러나 마르다는 끝까지 말기를 알아 듣지 못했다. 28절이 잘 말해 주고 있다. 말씀을 들을 때에 말기를 잘 알아듣는 사람이 믿음이 좋은 사람이다. 답답한 사람은 떠 먹여 주어도 잘 받아 먹지 못한다.
예수님은 먼 미래나 ‘마지막 날’에만 우리와 함께 하시기를 원하시는 분이 아니라 바로 지금, 여기에, 나와 함께 하기를 원하신다. 주님을 마지막 날의 주님으로만 생각하는 것은 혼 날 믿음이다. 비록 내가 지금 어떤 절망적인 상황 가운데 있더라도 예수님을 바로 그 곳에 모셔야 한다. 사탄은 자꾸 지금은 불가능하다고 한다. 그래서 나중에, 아니 마르다처럼 ‘마지막 날의 예수’만 믿게 한다. 이것은 결국 평생 주님의 사랑을 전혀 못 받게 하겠다는 사탄의 고도의 전략임을 알아야 한다. 어떤 절망적인 상황 가운데 있더라도 지금 내 환경 속에서 역사하실 주님을 믿어라. 이것이 바로 주님이 찾으시는 믿음이다.
‘나중 믿음’은 지금 당장 장사 지내고, ‘지금 믿음’을 당장 부활시켜보라! 그러면 당신의 인생이 놀랍게 부활될 것이다. 주님은 지금 내 속에서 역사하시길 원하신다.
3)        죽음을 초월하는 믿음
믿음의 사람은 죽음 앞에서도 무릎 꿇어서는 안 된다. 오직 우리는 주님 앞에서만 무릎 꿇어야 하는 존재이다. 주님 외에 다른 것에 무릎 꿇는 것이 바로 우상 숭배임을 알아야 한다.
그런데 마리아와 미르다는 죽음 앞에 무릎 꿇고 말았던 것이다. 그래서 우리 주님이 얼마나 분통이 터졌던지 ‘심령에 통분히 여기시고’(33,38)라는 말을 두 번이나 기록하고 있다.  
마르다가 죽음 앞에 무릎 꿇은 모습은28절에 잘 기록되어 있다.(39절에도 있음)
예수님이 그렇게 정확하게 ‘나사로가 다시 산다’고 했는데도 마르다는 마리아에게 가서 ‘가만히’ 귀속 말로 예수님이 너를 찾으신다는 말만 했다.
‘우리 오빠가 곧 살아난단다!’는 이 기쁜 소식을, 이 놀라운 소식을 왜 전하지 못했을까? 왜 이것에 대해서는 입도 벙긋 못했을까?
이유는 간단하다. 못 믿었기 때문이다. 비록 예수님은 몇 번이고 산다고 말씀하셨지만 그녀는 전혀 믿지 않았기 때문이다. 그래서 사실은 27절에서 그녀가 ‘주는 그리스도시요, 하나님의 아들이신 줄 내가 믿나이다.’라고 고백한 것도 믿음에 찬 고백이 아님을 알 수 있다.
사람은 들은 대로 전하는 것이 아니라 자신이 믿는 만큼만 전한다.
그래서 마리아에게 나사로의 부활에 대해서는 전혀 말하지 못했던 것이다.
사람은 들은 대로 행동하는 것이 아니라 믿는 만큼만 행동으로 옮긴다.
따라서 말씀을 받을 때는 반드시 믿음을 합하여 받아야 능력이 임한다.(히4:2)
다시 한번 믿음의 선포를 하자!
‘내 인생 이대로 끝나지 않는다. 다시 산다! 반드시 산다!’
4)        시간을 초월하는 믿음
세상 사람들에게는 죽기 전과 죽은 후는 엄청난 차이가 있다.
죽기 전에는 희망이 있지만, 죽은 후는 전혀 소망이 없다. 그러나 예수님에게는 그렇지가 않다. 죽기 전이나 죽은 후나 주님 앞에는 아무런 차이가 없다. 왜냐하면 주님은 바로 부활이요, 생명이시기 때문이다. 죽은 자도 주님이 살리면 살고, 산 자도 주님이 생명을 거두면 죽기 때문이다. 그런데 마르다는 어떠했는가?
예수님이 무덤의 돌을 옮기라고 하자 대뜸 하는 말이 ‘죽은 지가 나흘이나 되었으니 벌써 냄새까지 나는데요?’(39)라고 했다. 예수님은 다시 한번 마르다에게 혼을 내 주신다.
‘내가 분명히 말했지? 네가 믿으면 하나님의 영광을 보리라고. 그런데 왜 또 믿음 떨어지는 소리만 하고 자빠졌냐?’(40)
예수님께는 시간이 중요하지 않다. 단지 지금 우리의 믿음이 중요할 뿐이다.
주님은 치료자 일 뿐만 아니라 살리시는 생명자이시기 때문이다.
이미 지나갔다고, 이미 죽었다고, 이미 끝났다고 그것 때문에 주님의 능력을 묶어두지 말라! 이것이 불신이요, 무능의 소치이다.

‘나의 하나님’은 지금 이 시간 ‘나의 믿음’을 찾으신다.
‘네가 다시 살리라! 이것을 네가 믿느냐?’
나의 삶의 대답을 기다리고 계신다.
나의 대답이 나를 살릴 수도 있고 죽게 버려 둘 수도 있다.
  

33 コメント

유광옥

2006-05-09 02:27:30

믿음을 비유할 때 알곡과 쭉정이 비유를 많이 하는데 오늘 아침에도
쭉정이가 되어 가볍게 날아가는 믿음이 아니라 주님께서 알곡 같은
믿음으로 승리하셨듯이 나 에게도 동일한 믿을을 허락해 달라고 기도를 드렸다.
사람은 들은 대로 전하는 것이 아니라 자신이 믿는 만큼만 전한다는 말씀에서
많은 깨달음을 얻는다.
내가 예수님을 믿지 못하면 살아서 역사하시는 주님을 말할 수 없는 것이다.
부활의 사건이 내 사건이 되어야 하며, 에스게 골짜기의 뼈들의 살아남이 내가 살아 남이어야 하며, 나사로를 죽음에서 살리심을 내가 선포해야 할 사건임을 나는 잘 알고 있다.
입으로는 시인 하지만 행동하지 못하는 것들이 너무 많음이 부끄럽다.
주님은 늘 내곁에 계신다.
그리고 주님은 지금 이 순간 나와 함께 계신다.
하나님은 우리에게 내일을 사는 은혜가 아니라 오늘을 사는 은혜를
주셨다고 하셨다.
내가 다시 살아나서 현재를 누리기를 희망한다.
난,마리아가 나사로의 부활에 대해서 전혀 말하지 못함을 비웃었다.
혹여라도 내가 그러지 않도록 기도한다.


라문진

2006-05-09 07:42:20

골든위크내내 마음을 졸이며 지냈습니다. 모처럼만의 휴일이라 마음편하게 쉬고싶었지만 발표와 학회준비로 학교에 나가지않으면 안되는상황이었습니다. 가장 기본이되는 조건이 잘잡히지 않아 더더욱 초조했습니다. 초조해하는 절 보고 있는 남편이 격려의 말을 해주었는데 목사님의 설교와 비슷한 내용이었습니다.
"하나님은 문진이를 위해 적절한 타이밍을 가지고 계시기 때문에 지금 당장 힘들더라고 참고 기다려야해. 그대신 결과를 알기때문에 초조해가면서 기다리는것이 아니라 즐겁게 감사하면서 하지만 최선을 다하야돼" 그러면서 하루라도 마음편히 쉬라고 충고해주었습니다. 정말 그렇게 마음먹으니(주님은 날위해 더 큰 계획을 가지고 계시는데 이까짓 실험안되는것으로 이렇게 마음졸이는것이 한심스럽기도 했습니다), 언젠가는 해결될문제를 가지고 지금당장 머리를 싸매고 고민해봤자 나만 힘들거라는 생각이 들었습니다. 그렇게 잡히지 않던 실험이 토요일밤에 잡히기 시작하더군요. 그런데 주일말씀도 그런 마음에 더더욱 확신을 주는 말씀이었습니다.

재방송 보면서 마음 졸이거나 안절 부절 못하는 사람은 한 사람도 없다. 너무나 편안하다. 아주 여유롭게 중계 방송을 즐긴다. 왜일까? 이미 결과를 알고 있기 때문이다.
믿음의 사람은 이미 결과를 알고 인생을 살아가는 사람이다. 그래서 늘 여유롭고 그 마음이 편안하다. 결과를 아는데 어찌 안 그럴 수 있겠는가???
....
믿음의 사람은 이미 승리의 소식으로 마음이 가득 찬 사람이다.
그러니 어찌 마음 속에 불안, 염려, 근심, 걱정, 한숨이 발을 붙일 수가 있겠는가?
주님의 승리의 기쁜 소식이 여러분 마음 속에 충만하길 축복한다.

저는 너무나 행복한 고민을 하고 있었는지 모르겠습니다.
그래서 많이 부끄럽기도 합니다.
너무나도 감사할 수밖에 없는 상황에서 불안해하고 초조해하고 있었는지 모르겠습다.
이 보다 더 힘든 위기가 닥쳤을때 정말로 믿음위에 바로선 제자의 모습으로 여유만만, 여유억억, 여유조조한 삶을 살기를 원합니다.

박정선

2006-05-09 08:14:49

사람은 들은 대로 행동하는 것이 아니라 믿는 만큼만 행동으로 옮긴다. 저도 많은 말을 듣지만 내 입장에서 내 생각에서 걸러버리곤 합니다. 그래서 때론 상대편이 말하고자 하는 것과 내가 받아 들인 것이 어긋날 때도 있습니다.

자신을 풀어 놓아 다니게 하기 전에, 주님을 먼저 풀어 놓아 마음껏 역사하게 해야한다. 한정없는 하나님의 것들을 나의 머릿속의 좁은 소견과 고정관념, 믿음에 맞추고자 노력하고 있는 나의 모습을 발견할 때마다 가끔은 '내가 뭐하는 짓이지'하는 생각이 듭니다.

말씀을 받을 때는 반드시 믿음을 합하여 받아야 능력이 임한다. 다시 한번 믿음의 선포를 하자! 이 말씀대로 말씀을 믿음으로 고백하기 원합니다.그리고 하나님께 나의 믿음없음 의심많은 마음을 솔직히 고백합니다. 나 이렇게 고백했으니 내 고백들으신 주님께서 이 고백들을 믿음의 고백으로 바꾸어 돌려보내 주세요.

나! 괜찮다! 내 영혼아! 네 속에는 만물의 주인 되시는 주님이 계신다! 라고 늘 선포하겠습니다. 내 주님은 나를 가장 사랑하는 왕이시다!!

정승은

2006-05-09 08:33:28

이번 주 말씀을 통해 다시한번 나의 믿음 상태에 대해서 점검하며,
나약한 믿음을 붙들 수 있는 시간이 될 수 있어서 감사하다.
나사로의 죽음 사건을 통해 무서운 환경 앞에 호들갑 떨며,
바람에 날라가 버리는 쭉정이에 더 가까웠던 나약한 내 믿음을 회개하지 않을
수 없다.어떤 고난 가운데에서도 이기지 못할 시험은 주시지 않는다는 주님 말씀에 의지해서 믿음을 굳건히 붙들어야 했는데 지금까지도 난 환경앞에 너무 쉽게
무너지고는 했던것 같다.기도하면서도 걱정하고,믿습니다,아멘 하고 뒤돌아서서 반신반의 했던 모습들이 생각난다.

오늘 본문의 마리아와 마르다의 약한 믿음의 고백속엔 지금까지의 내 모습도 섞여 있는듯 하여 참으로 부끄럽다.
마르다와 마리아가 [주께서 여기 계셨더라면 내 오라비가 죽지 아니하였겠나이다 (21,32)라는 고백으로 제한된 공간안에 주님을 가둬두고,과거형 믿음을 나타내는 모습을 보면서 내 고난의 순간에 주님이 나와 함께 계셨다면,나를 이런 상황에 놓이게 하셨을리가 없는데..내 기도에는 응답이 없나보다,내 고난보다 더 큰 고난의 사람에게만 마음을 쓰시나 보다,여기까지가 내게 주신 축복의 절정인가보다,
그렇지 않다면 이런 고난 가운데 나를 내버려 두실리가 없는데,나를 가난하게,나를 약하게 내버려 두실리가 없는데..아님,고난과 병이 오히려 축복일까?
그보다 2000여년 전에나 기적은 있나보다 등등 참으로 어리석은 과거형의,제한된 장소의 믿음으로 주님을 붙들어 두었다는 사실을 깨닫게 되었다.
그리고 예수님이 ‘네 오라비가 다시 살리라’고 했을 때, 마르다는 ‘마지막 날 부활에는 다시 살 줄을 내가 아나이다’(24)라고 대답했던 모습을 통해서
마지막때에만 마치 주님의 능력과 영광을 볼 수 있을 것처럼,지금 고난은 내가 책임져야 하고,기적은 마지막 때에나 볼 수 있나보다..하는 생각도 했었다.
이런 미래형 믿음의 고백은 절대로 내 안에서 주님을 일하시게 할 수 없단 사실을 다시한번 깨닫게 해주시니 감사하다.
만일 시험과 고난이 나를 붙들어도 내가 감당치 못할 시험과 고난은 주지 않으시는 분이 주님이심을 이젠 믿을 것이다.
그리고 이제는 시간 장소와 죽음까지 뛰어넘는 믿음을 내가 소유하길 원한다.
내가 주님께 말씀에 엎드려 두손 모으고 무릎 꿇는 순간 주님은 일하신다는 사실을 마르다와 마리아에게가 아닌 바로 나에게 말씀하고 계씬다.

죽은 나사로를 살리시는 기적을 행하시는 것은 주님이시지만,
그것을 믿고 순종하여 돌을 옮기는 것은 내 몫임을 깨달았으니,
주님님께서 내게 승은아!나사로가 살리라!아니,승은이가 다시 살리라!
지금 살리라!이제 네 앞의 돌을 열어라!풀어 놓아 다니게 하라!
라고 말씀하신다면,
과거속에도,제한된 장소 안에도,혹은 미래에도 주님을 가두어 두지 않고!
두렵고 떨리는 맘으로 [네,주님!죽었던 저였지만 주께서 말씀만 하시면 살리라 믿습니다..]고 고백하며,돌을 옮기길 소망합니다.

주님!제가 이제는 올바른 믿음을 고백하길 원합니다.
말씀위에 서길 원합니다.주님께서 말씀으로 지금 제 안에서 역사하고 계심을 믿고 일하길 원합니다.고난 가운데에서도 평강을 주실 수 있는 분이 주님이심을 고백합니다.약할때 강함되어주시는 주님!제게 백부장과 같은 믿음을 허락하여 주시옵소서!힘들때 바로 날라가버리는 쭉정이는 되고 싶지 않습니다.
성령께서 도와주시옵소서!주님! 불쌍히 여겨주시옵소서!아멘~

박유진

2006-05-09 11:11:02

‘네가 다시 살리라! 이것을 네가 믿느냐?’

당장 눈앞에 있는 여러가지 문제들에 대해서 걱정을 먼저 앞세우는 내게
오늘도 주님께서 물으시는 질문이다.
부활의 주님께서 함께 계시는데 왜 불안하고 걱정해하는 모습들을
반복하는 건지...담대하지 못한 나의 모습이 부끄럽다.

일주일동안 한국에 다녀오느라 아기가 좀 많이 피곤해하는 것 같았다.
그리고 오늘은 비도 내려서 날씨가 좋지 않은데다, 일기예보를 보니
내일도 흐릴 것 같았다. 제자훈련이 끝난 뒤에는 다른 약속까지 잡혀있었다.
내 머릿속으로는 아기를 데리고 내일의 일정들을 잘 보낼 자신이 없어서
걱정을 하고 있을 때, 왜 기도하지 못하고 걱정부터 했는지 부끄러웠다.
그래서, 좋은 날씨를 주시도록, 그리고 내일의 일정 가운데 함께 하여 주시길
기도드렸다. 주님은 나의 믿음을 보시길 원하는데, 환경으로 인해 주저않지
말아야 할 것이다.

‘네가 다시 살리라! 이것을 네가 믿느냐?’

네, 주님, 믿습니다. 다시 살 줄 믿습니다.
부활의 주님이 저와 함께 하심을 믿습니다.

김기웅

2006-05-09 13:31:11

>은혜로운 부분 두가지 이상
한가지. 신문은 믿으면서 성경은 못 믿는가?
스포츠신문 기자의 말은 믿으면서 살아계신 하나님의
말씀은 못 믿겠다니 말이되는가?
두가지. 말씀을 들을때에 말기를 잘 알아듣는 사람이 믿음이 좋은 사람이다.
답답한 사람은 떠먹여 주어도 잘 받아먹지 못한다.
>깨달은것, 감동받은것, 회개되는것, 고칠것, 감사한것이 있으면 구체적이고
정직하게 나누기. 진실되게(형식엄금)
>설교는 평가나 비판의 대상이 아니다.
>은혜되는 부분이 없으면 땅을 치며 회개하라...

저는여. 믿음이 별로 없습니다. 말씀을 들어도 말기를 잘 알아듣지 못하는경우
도 많구여,떠먹여 주어도 잘 받아먹지 못하는 경우가 비일비재합니다.
하나님. 많이 많이 회개합니다.
저는 스포츠를 참 좋아합니다. 그래서 어릴적엔 스포츠신문 참 많이 봤습니다.
나이를 점점 먹으면서 안보게 되지만, 솔직히 하나님 말씀보다 스포츠결과가
더 궁금하고, 그 결과에 열광하고 원통해하는 경우 너무 많습니다.
특히 한일전 축구결과에는 모든걸 겁니다. 우리 조상님들을 짐승다루듯 때리고
발길질한 사람들한테 진다는건 암흑과도 같은,골짜기와도 같은 절망입니다.
얼마안남은 독일월드컵에서 한국이 다시 한번 4강신화를 이루게 해달라고 기도하고 싶습니다. 지난 제자훈련시간에 목사님이 설교에 은혜되는 부분이 없으면 땅을 치며 회개하라 하신말이 기억납니다.
또 많이 부족한 나와같이 제자훈련의 시간을 공유하는 우리반 기도의
후원자들이 생각납니다.
막걸리 한사발에 깍뚜기만 있으면, 밤이 새도록 내 얘기를 들어줄것같은
사람좋은 이 용준형제님.. 말이 별로 없지만, 그 신실됨이 바위처럼 의젓
하고 제자훈련생의 표준전과같은 기노시타상.. 눈웃음이 장난이 아닌
그리고, 아픔을 나눌때 가끔 훔쳐내는 눈물에 비수같은 감동을 주는 민정이..
아나운서 뺨치는 목소리에 교재를 읽어내려갈때의 분위기가 가을 낙엽같은
라문진 자매님..만화를 좋아하고 축구공 하나 쥐어주면, 점심밥 먹고 해질때
까지 진욱이랑 놀것같은 인기형제..갸날픈 몸매에 약해보이지만, 그 속에
강함과 정돈됨이 있는 정아.. 나에게 자유가 뭔지 느끼게 해주는 그리고
부끄럽지 않은 젊음이 멋있는 소진이.. 얼떨결에 아빠되서 많이 힘들어하는
모습에 업고 집에까지 바래다주고 싶은 철중형제..
남은기간동안 목사님 화 안내시도록 잘 하겠습니다.

김부영

2006-05-09 14:33:43

믿음의 사람은 이미 결과를 알고 인생을 살아가는 사람이다.
결과는 승리의 결과이다. 예전에도 말씀하셨듯이 정답을 미리 가르쳐주고
시험을 치르는 것과도 같다고 말씀하신적이 있습니다.
"네 오라비가 다시 살리라"
"나는 부활이요 생명이니 나를 믿는 자는 죽어도 살겠고 무릇 살아서 나를
믿는 자는 영원히 죽지 아니하리니 "

너희가 살리라, 너희가 다시 살리라
나의 결과이자 우리의 결과이다.
세상을 정복하신 나의 아버지 하나님이 나에게 또한 승리의 결과를 주셧다
때로는 마르다, 마리아처럼 주님을 원망할 때도 있고 또 통분하시게끔 할때도
있음을 회계한다.
그리고 주님이 마르다에게 '돌을 옮겨 놓으라"할때 즉시 "예"하며
순종하지 못하고 나의 믿음을 들어내며 이것저것 변명과 절망과 포기를
할때가 있음을 고백합니다.
주님은 "내 말이 네가 믿으면 하나님의 영광을 보리라"말씀하십니다.
정말 참 믿음을 소유하는 나이길 기도합니다.

김정아

2006-05-10 08:06:21

"믿음의 사람은 이미 결과를 알고 인생을 살아가는 사람이다. 그래서 늘 여유롭고 그 마음이 편안하다. 결과를 아는데 어찌 안 그럴 수 있겠는가???"

저는 이 말씀을 묵상하면서 긍정의 힘에서 읽었던 내용이 생각납니다. 그 책으로 인해 도전받고나서 날마다 하루하루의 삶 가운데 앞으로 일어날 미래의 소망과 목적을 두고 입으로 선포합니다. 믿음의 사람은 이미 결과를 알고 인생을 살아가는 사람이라고 ....그래서 저는 애써 하나님께 이미 받은 마냥 감사를 드리고 주신것에 기쁨을 누리지만 ...... 시간이 흐르면 흐를수록... 그 기쁨과 여유로움, 편안함을 유지하는 것은 역시 어려운 것 같습니다.. 늘 하나님의 은혜와 성령의 충만함으로 채워지지 않으면 안될 것 같은..................
하지만 상당히 흥미롭습니다.... 꼭 그렇게 될것만 같은....
결과를 알고 살아간다는 것은 그래서 여유롭다는 것은 정말 믿음의 사람이 아닐수 없습니다. 그런 믿음의 배짱이 있는 사람이 되기위해 오늘도 이 하루하루의 삶의 훈련속에 하나님이 다듬어가시는 줄 믿습니다.

인선정

2006-05-10 15:32:45

성경의 내용을 잘 알지도 못하지만, 그나마 알던 것도 잘 잊어버리는 것 같습니다.
목사님 설교를 접하고, 요한복음 11장을 다시 한번 읽게 되었습니다.
죽은 나사로를 살리신 일은 예수님께서 공생애 기간중에 일으키신 이적중에 가장 경이적인 일로, 이 일로 인하여 당시 대제사장었던 가야바는 예수님을 살해할 것을 결정합니다.(47-53절)
4절에서 예수님께서는 나사로가 병들었다는 소식을 접하고 의미 심장한 말씀을 남기십니다.
"이 병은 죽을 병이 아니라 하나님의 영광을 위함이요 하나님의 아들로 이를 인하여 영광을 얻게 하려 함이라"
병든 나사로는 결국엔 죽고, 예수님께서는 그를 살리시고, 이 일로 많은 사람들이 예수님을 믿게 됩니다.(45절)
하지만, 이 일을 계기로 유대교 종교지도자들은 예수님을 살해할 모의를 하게되고, 예수님께서는 유다에게 배신을 당하고, 돌아가시게 되고, 부활하십니다.
결과를 놓고 본다면 나사로의 죽음이 한 개인의 죽음으로 끝난 것이 아니라,
4절의 예수님의 말씀과 완전히 일치하는 하나님의 일이라는 것을 알 수 있습니다.
성경에는 나사로의 죽음과 다시 사는 사건을 통해 나사로 가족의 반응과 제자들의 반응, 이웃의 반응, 종교지도자들의 반응이 자세히 적혀 있는데, 이를 통해 여러가지를 묵상하게 합니다.
그 중 가족의 반응을 통해서는 이 시대를 사는 크리스찬이 마땅히 가져야할 믿음에 대해 가르쳐주신 것이라고 생각합니다.
목사님 말씀처럼 우리들에게는 장소와 시간와 죽음을 초월하는 믿음이 필요하며, 지금 현재, 즉 지금 하나님께서 나와 함께 하기를 원하신다는 믿음이 필요하다고 생각합니다.
나사로의 죽음을 떠올리며, 지금 현재 어떤 힘든 일이 닥쳐도 결과적으로 장차 하나님의 선하신 일을 위해 계획하신 일이라고 생각을 가다듬고, 믿는다면, 삶을 좀 더 넉넉한 마음으로 담대하게 살수 있을 것이라고 생각합니다.

최현숙

2006-05-10 19:48:44

지난주 에스겔 골짜기의 마른뼈를 살리신 말씀과 오늘 나사로를 살리신 말씀을 통해 하나님의 전지전능하심을 다시 한번 묵상하게 되었다. 하나님의 성품중에 한 부분이 바로 이 전지전능하심이다. 주님껜 능치 못한 일이 없는 것이다. 예수님께서 죽은 자를 살리신 부분이 내가 아는 성경지식으론, 야이로의 외딸과 나인성 과부의 외아들을 살리신 모습과 바로 오늘 본문에서 나오는 나사로의 모습이다. 이 세경우를 살펴보았다. 회당장 야이로의 외딸은 죽은 얼마 안되서 살리셨고, 나인성 과부의 외 아들은 상여에 매어 무덤에 장사하러 가던중에 살리셨고, 나사로의 경우는 죽은지 4일이나 지났고, 이미 무덤에 장사가 된 경우였다. 이 세경우 가장 힘든 부분이 나사로의 경우라고 생각하지만, 전지전능하신 주님앞에서 쉽고 어렵다는 표현은 어울리지 않는 것임을 깨닫게 되었다. 하지만 내가 나사로의 누이가 되어 그 상황을 봤다. 믿음이 있노라 하면서도 주님의 능력을 제한한 마르다가 내 모습이다는 생각이 들었다. 마르다의 생각은 곧 나의 생각이였고 내가 주님을 믿고 부활을 믿노라 하면서 정작 문제앞에서 주님의 능력을 제한하고 있는 나를 본 것이다. 나는 이 말씀앞에서 참으로 부끄러운 회개를 주님께 드렸다. 마르다는 주님을 믿고 있었다. 부활도 믿고 있었다. 그런대도 자신의 엄청난 문제 즉 오빠의 죽음앞에서 예수님을 믿는 믿음의 모습이 없었다. 주님의 말씀이 그 인생을 지배하지 못했던 것이다. 마리아에게도 마찬가지 인것 같다. 그래서 두 자매가 주님을 보자 똑 같은 원망의 말을 한다 "주님이 여기 계셨더라면 우리 오빠가 죽지 않았을 것이다" 하나님의 전지 전능하심을 믿는 믿음이 있었다면 때, 장소, 시기, 공간 같은 제한 된 시간은 아무런 문제가 없다. 그러나 두 자매가 보여준 모습이 지금 내게도 있다고 하나님은 말씀하고 계신것이다. 내게 믿음이 없는 것도 아니요. 부활을 의심하는 것도 아님에도 불구하고 지금 이곳, 내가 서 있는 이 현실, 문제 앞에서 주님을 신뢰하지 않고 내 의지대로 행하고자 하는 모습이 참 많이 있슴을 보게 된것이다. 입술로는 마르다처럼 주님의 부활을 믿노라 고백하면서 내 중심엔 여전히 내가 살아서 나를 다스리고 있는 모습을 말씀을 통해 보게 된것이다. "마르다처럼 되지 말자. 전지 전능하신 주님의 성품을 내가 바로 알고 있다면 내 작은 마음속에 주님의 능력을 제한하는 일을 더 이상 만들지 말자." 이 말을 새기면서 오늘 아침에 3종류의 사람중(비그리스도인, 육에 속한 그리스도인, 신령한 사람)에 성령에 속한 사람이 되어 현재에 충실한 내가 되어 말씀을 적용 실천하면서 하루 하루 충성된 모습으로 살아가길 기도한다.

이지영

2006-05-10 22:57:27

1.비록 내 인생에 3중의 어려움 5중의 어려움, 아니 100중의 어려움이 있다 하더라도 예수님만 나와 함께 계시면 아무 것도 문제될 것이 없다. 그 분은 바로 전능하신 하나님이기 때문이다. 본문은 이것을 증명해 주고 있고, 우리 모두가 이 믿음을 갖기를 주님은 간절히 원하고 계신다. 그래서 주님은 말씀하셨다. ‘네가 믿으면 하나님의 영광을 보리라!’

고등학교 시절부터 갑자기 어려워진 집안형편으로, 학업을 마음껏 하지 못했을때, 저는 환경의 탓을 많이 했습니다. 부유했던, 친구들의 모습을 부러워하면서, 자유로이 공부하지 못함을 많이 슬퍼했어요..하지만, 목사님이 늘 말씀하시는 것처럼, 환경으로 인한 문제가 아니라, 제 믿음의 문제라는 것을 조금씩 알게 되었고, 환경의 문제보다 믿음의 문제가 훨씬 더 심각하다는 것을 알았습니다. 아직도 내 주변에는 작고 큰 어려움들이 생기고 없어지고, 반복되어 계속있지만, 믿음의 문제만이 해결된다면, 아무것도 문제될 것이 없고, 또한 더 나아가 하나님의 영광을 볼 수 있다는 엄청난 사실을 알게 되어 매우 기쁩니다.
' 비록 지금은 많이 부족하고 고칠 것 많은 나지만, 나도 꼭 믿음의 반열에 들어, 하나님의 영광을 꼭 보리라!'

2.위기를 만났는가? 절대로 하늘이 무너지는 것 같은 호들갑 떨지 말고 예수님의 이 여유로운 모습을 꼭 본받아야 한다. ‘큰 일 나기는 뭐가 큰 일 나! 괜찮다! 내 영혼아! 네 속에는 만물의 주인 되시는 주님이 계신다!’ 이 믿음의 배짱이 예수님이 죽은 나사로 앞에서 우리에게 보여 주신 능력의 모습이다.
호들갑은 무서운 환경 앞에서 떠는 것이 아니라, 나약한 믿음 앞에서 떨어야 한다.

어떤문제들은 기도하면서, 휙휙 믿음으로 잘 넘기다가도 , 때때로, 겉으로는 믿음의 기도를 하면서,불안하여 몇번이고 같은 내용을 반복하여 기도하는 나의 모습을 발견할 때가 있습니다. 믿음이 부족하여 호들갑떠는 나의 모습,,불안해하지 않으면, 오히려 이상한것 같은, ,,,불안에 적응되어있는 나의 모습...그런 나의 모습을 보면서, 마음한켠에는 안타까우며, 아직도 믿음이 이 정도밖에 되지 않나..라는 비참함이 있었습니다. 두려운 환경보다, 그 환경을 이길 수 있는 믿음의 기도를 할 수 없는게 더 무섭습니다. 오늘의 말씀처럼, 예수님의 여유로운 모습을 본받도록 더욱더 노력해나가야되겠습니다.

3.믿음의 사람은 이미 결과를 알고 인생을 살아가는 사람이다. 그래서 늘 여유롭고 그 마음이 편안하다. 결과를 아는데 어찌 안 그럴 수 있겠는가???
예수님의 승리의 소식은 세상기자가 아닌 하나님이 쓰신 것이요, 신문이 아니라 성경에서 전해 주고 있다.
신문은 믿으면서 성경은 못 믿겠는가?

..신문의 소식,,인터넷의 기자들이 쓴 글등은 의심없이 그냥 받아들이면서, 문제가 생길 때, 기도하면, 믿음으로 펀안해져야하는데, 그렇지 못했다는 것을 평소에는 생각지 못했는데, 주일말씀을 들으며, 생각하게 되었고, 엄청난 심각한 문제라는 것을 알았습니다.성경은 믿지만, 신문을 믿지 못하는 모습이 오히려 정상인 모습인데...회개합니다.

4.자신을 풀어 놓아 다니게 하기 전에, 주님을 먼저 풀어 놓아 마음껏 역사하게 하셔야 한다.
‘나중 믿음’은 지금 당장 장사 지내고, ‘지금 믿음’을 당장 부활시켜보라! 그러면 당신의 인생이 놀랍게 부활될 것이다. 주님은 지금 내 속에서 역사하시길 원하신다.
사람은 들은 대로 행동하는 것이 아니라 믿는 만큼만 행동으로 옮긴다.
따라서 말씀을 받을 때는 반드시 믿음을 합하여 받아야 능력이 임한다.(히4:2)

주님이 역사하시면 그 달라질 내 인생을 상상만해도 얼굴에 미소가 생깁니다.^^
내 속에서 역사하시길 원하시는 주님을 이제껏 많이 붙잡아놓았던 것 같습니다. 그리고, 내 속에서 주님께서 역사하시길 원하신다는 사실이 너무나도 기쁘고 감사드립니다. 앞으로, 행동과 말, 그리고 마음가짐을 주님께서 기뻐하시는 방향으로 할 수 있도록 주의하며 살아가, 주님마음을 섭섭하게 해드리지 않는 자가 되도록 노력하겠습니다. 주님,,저를 떠나지 마세요..
그리고, 주일 말씀을 받을때, 지금보다 더욱 더 집중하고, 믿음을 실어 말씀을 받어, 그 능력받아, 주님의 일을 많이 실천하여, 삶자체가 간증거리로 풍성한 사람이 되어야겠습니다.

이소진

2006-05-11 03:03:01

믿음의 사람은 이미 결과를 알고 인생을 살아가는 사람이다. 그래서 늘 여유롭고 그 마음이 편안하다. 결과를 아는데 어찌 안 그럴 수 있겠는가??
이 말씀은 믿음의 사람이 늘 여유롭고 걱정없이 평강의 모습을 보이며 살 수 있는 이유를 정확하게 표현한 구절임에 은혜를 받았습니다.
믿음이 있는 사람은 늘 예수님과 동행하기 때문에 평강이 있다 라는 말은 많이 들어봤지만, 이미 결과를 알고 인생을 살아가기 때문이라는 말씀은 저에게 너무 통쾌하게 들려왔습니다. 이와 함께 목사님께서 해주신 월드컵 시청이야기는 정말 결과를 아는 믿음이 얼마나 편안한지를 느낄 수 있었습니다.

이것을 너희에게 이름은 너희로 내 안에서 평안을 누리게 하려 함이라. 세상에서는 너희가 환란을 당하나 담대하라 내가 세상을 이기었노라.
이번 설교 말씀을 통해 이 성경구절이 너무나도 큰 은혜로 다가왔습니다. 예수님께서 부활하셨을 때 이 소중한 평강을 우리에게 허락하셨고 이 세상에서 어떠한 시련이 와도 이미 세상을 이긴 결과를 알기 때문에 담대하게 웃으며 나갈 수 있습니다. 한 때 제가 늘 하던 기도중 하나는 담대함이었습니다. 하나님을 믿는 자녀로서 담대함으로 하나님께 영광돌리길 원했습니다. 이제는 예수님께서 주신 말씀과 그 믿음으로 어떠한 일이든지 담대함으로 평강으로 임하길 기도합니다.

최현경

2006-05-11 08:52:02

나의 믿음의 모습이 알곡이 아닌 쭉정이의 모습은 아니었는지 돌아보게 되었다.
내 앞에 문제가 닥치면, 그 속에 있는 주님의 뜻을 발견하려 하기 전에 자꾸 현상만 바라보고 불안해 하고, 문제의 회오리 바람에 나 자신을 맡길 때가 너무나도 많았다.
‘이것을 너희에게 이름은 너희로 내 안에서 평안을 누리게 하려 함이라
세상에서는 너희가 환란을 당하나 담대하라 내가 세상을 이기었노라’(요16:33)’
이 말씀을 통해 내 마음에 평안을 허락하시고, 승리의 기쁜 소식과 결과를 바라보게 하시니 감사하다.

‘죽어도 살리라! 다시 살리라! 반드시 살리라!’ 누가? ‘내가!!!’
믿음대로 선포한 대로 될 것이다. 아멘...

‘나의 하나님’은 지금 이 시간 ‘나의 믿음’을 찾으신다.
‘네가 다시 살리라! 이것을 네가 믿느냐?’
나의 삶의 대답을 기다리고 계신다.
나의 대답이 나를 살릴 수도 있고 죽게 버려 둘 수도 있다.

육신의 안일함과 나태함으로 영적인 곳에 눈이 어두웠던 나에게 주님은 죽은 나사로가 다시 살아났던 것처럼 나도 다시 살아나라고 말씀하신다. 이 말씀에 내 삶으로서 대답해야 함을 깨닫게 되었다.
내가 죽어있다고 포기하고 낙담하는 믿음이 아닌 다시 일어설 수 있다는 믿음으로 주님께 의지하며 다시 힘을 내어 살아나야겠다.

김민정

2006-05-11 11:47:40

‘나의 하나님’은 지금 이 시간 ‘나의 믿음’을 찾으신다.
‘네가 다시 살리라! 이것을 네가 믿느냐?’
-> 하나님 이 질문은 바로 지금 저!!! 민정이에게 하고 계신거죠? 그렇죠? 제 대답은
네!!!!! 하나님!!!!! 저는 하나님을!!! 하나님만을 믿습니다!!!! 저는 분명히 대답했습니다. 하나님!!!! 저는 꼭!!!! 살것입니다. 오직 하나님 안에서만요!!!!

나의 삶의 대답을 기다리고 계신다.
나의 대답이 나를 살릴 수도 있고 죽게 버려 둘 수도 있다.
-> 저는 절대로 어리석은 자, 바보 같은자가 절대로 되지 않을 것입니다. 제 대답은 항상 하나님께서 저를 살리시는 대답만 할 것입니다.

오늘 오랜만에 한국의 부모님께서 전화를 하셨습니다. 늘 느끼는 것이지만, 한국에서의 전화는 사실 그렇게 반갑지 않을때가 많습니다. 부모님의 걱정이시겠지만... "니가 거기서 고생하면서 뭐하고 있는거냐... 그냥 한국으로 들어와라... 공부는 한국에서 해도 충분하다..."

그런데 예전같으면 걱정 여러 개에 한숨도 여러번 늘었을것입니다. '정말 내가 여기있는 것이 하나님 뜻일까? 내 욕심에서 있는 것은 아닐까? 정말 여기서 공부한다고 잘 되기는 할까? 전화 한통이 이렇게 제 마음을 흔들어 놓았을 것입니다. 그리고 하나님을 의심하게 했을 것입니다.
하지만 이제 저를 바꾸기로 했습니다. 하나님이 나를!!! 살리시는 일에 전적으로 의지하고 온 맘을 다해 믿고 나갈 것입니다.
모든 일(내 생활의 모든 것 - 일본어 공부, 아르바이트, 대학원 준비에서 순간 순간 하는 모든 내 생각들을)에 하나님을 믿으면 하나님의 평강이 내 마음에 임하는 것은 당연한것입니다. 제 발걸음을 하나님 일하시는 대로만 움직이면 되니까요.

오늘 부모님의 걱정 가득한 전화 한 통이 저를 더욱 하나님 앞으로 껑충 뛰어오르게 했습니다. 저는 믿음을 바로 적용해서 승리했다고 확신합니다.
승리했다는 증거는 제가 이렇게 마음이 평안하고 기쁨이 넘지고 하나님이 나에게 어떤 계획을 가지고 계실지 기대만땅 이거든요.

하나님!!! 저 오늘 분명히 부모님께 하나님의 뜻을 선포했습니다!!!
하나님!!! 저를 통해 더 많이 일하실 수 있도록 정말 열심히 뛸꺼예요. 하나님!!! 저를 지켜보세요!!! 하나님, 제 모토를 기억하시죠? 저는 하나님을 감동시키는 사람이 될꺼예요!!!


박순애

2006-05-11 18:02:37

자신이 쭉정이가 되기를 원하는 사람은 없을 것이다. 그리고 자신이 쭉정이라고 생각하는 사람도 별로 없을 것이다. 그러나 어려움이 닥쳤을때 우리는 날리고 싶지 않은 의지와 상관 없이 쭉정이와 알곡으로 나뉘어 쭉정이는 날라가고 알곡만 남아 주인의 필요에 따라 쓰임받게 될 것이다.
이 말씀을 읽으며 나는 어려움 앞에서 어떻게 했나를 생각해 보게 되었다. 내가 감당할 수 없는 시련 앞에서 주님을 원망하고 포기하고, 스스로 결론을 지어 놓고 주님을 제한 해 놓고는 하나님은 이런 때 잠잠하시다고 나를 향해 고개를 돌리지 않으신다고 투정부리고 낙심하는 습관이 자리하고 있었다. 오늘 마리아나 마르다처럼 말씀을 들으면서도 참뜻을 모르고 믿는다 하면서도 나의 생각 안에서 여기까지가 내 지식이니 그렇게만 될 것이라고 생각하는 부족한 믿음 가운데 살고 있었음을 회개한다.
크고 작은 문제들은 언제나 일어난다. 그러나 그곳에 주님이 계시게 하느냐 계시지 못하도록 하느냐는 나의 의지에 달려있다. 주님은 시간과 공간과 상식을 초월하시는 분이라는 것을 지금 내가 믿음으로 일하시게 할 수 있는 분이다. 어려운 문제가 문제가 아니라 내 약한 믿음이 문제인 것이다. 사람은 어려움이 닥치면 그 원인을 자신에게서 찾기보다 다른 데서 찾으려 한다. 그러나 이 말씀처럼 문제는 바로 내 안에서 시작되고 있는 것이다.
지금 우리는 재 방송을 보고 있다. 결론이 너무 뻔해서 문제에 끌려다닐 일도 없고 지금 내 뜻대로 되지 않는다고 안절부절 할 필요도 없다. 주님은 말씀으로 확실히 기록해 놓으셨다. 승리는 우리의 것이다. 아무도 이것을 빼앗지 못할 것이다. 주님은 보장해 놓으셨고 우리는 믿음으로 감사함으로 주님만 믿고 따라가면 된다.
요즘 마음이 지치고 모든 것이 낙심으로 다가왔었다. 큰 바람이 아니어서 조용히 다가온 이 문제 앞에서 나는 승리를 선포하지 못하고 있었는데, 이것이 제자 훈련을 끝내가는 우리에게 악한 마귀가 주는 시험인 것을 알게 되었다. 우리의 승리를 두려워 하여 마귀는 조용히 소리 없이 다가와 내 속에 이런 마음을 심어 놓고 간 것이다. 내 속에 믿음이 가득했다면 이런 것들 앞에서 콧방귀를 뀌어 주어야 하는데 그렇게 못한 것이 분하다는 생각이 든다. 오늘 하루도 이 말씀을 기억하면서 "흥, 문제야 올테면 와라. 난 이미 이겼거든?"하고 큰소리를 치리라.

백인화

2006-05-11 20:20:59

“장소를 초월하는 믿음, 현재형 믿음, 죽음을 초월하는 믿음, 시간을 초월하는 믿음” 분명 지금 이 순간 회복되어야할 나의 믿음의 모습이다.
마르다가 뛰쳐 달려와서 큰 소리로 외쳐야 '정상적인 믿음'인데, 마르다는 그저 마리아에게만 귓속말로 예수님이 오셨다고 알려주었다. 예수님을 만나서 고백했던 것이 진정한 믿음의 고백이 아니었고 그저 입술의 고백이었음을 부인할 수가 없다. 이것은 나에게도 마찬가지이다. 크게 외치지 못한다면 나도 그저 마르다와 같은 입술의 고백만을 하고 있다는 말이다. 뛰어 달려 나가서 큰 소리로 외쳐야 할 것이다. 그것이 바로 예수님이 원하시는 '정상적인 믿음'이다. 입술로만 머리로만 아는 것이 아니라 삶으로 행동으로 드러내는 그런 믿음을 만들어 가야한다.

“사람은 들은 대로 행동하는 것이 아니라 믿는 만큼만 행동으로 옮긴다.”
정말 내가 그동안 들은 만큼만 행동으로 옮겼어도 지금 치바 땅이 뒤흔들리고 남음이 있어야하는데 오직 내가 믿는 만큼만 행동으로 옮기니 나의 모습이, 내 가정이, 내 교회가, 내가 밟는 땅이 이지경일 수밖에 없다는 것은 당연한 일이다.
이제 더 이상은 ‘죽은지가 나흘이나 되었으니 벌써 냄새까지 나는데요’라고 마르다처럼 믿음이 없는 말은 입 밖에도 꺼내지 말고 아니 생각조차도 하지 말아야 할 것이다.
‘주는 그리스도시요 살아계신 하나님의 아들이시니이다’라는 고백이 무엇을 뜻하는지 다시 점검하고 고백해야만 한다. 그것은 바로 지금 이 순간 내 마음이 승리의 복음으로 가득 차있다는 것이다. 그렇다면 더 이상의 말은 필요 없다. 그저 돌을 옮기기만 하면 되는 것이다. 그러면 그다음은 주님께서 알아서 하신다. 오늘도 부지런히 열심히 돌을 옮기러 나가자, 할렐루야!!!

김성섭

2006-05-11 21:22:34

--- 예수님은 죽은 나사로를 부활시키기 위해서가 아니라, 죽어가는‘내 믿음’을 부활시키고자 오늘 이 말씀을 주셨다. ---

이 말씀을 수도 없이 읽었고, 또 설교를 통해 은혜를 나누었던 적도 있었습니다. 그런데 정작 이 말씀을 통해 주님께서 죽어가는 내 믿음을 부활시키고자 하신다는 사실에 대해서는 무관심했었습니다. 등잔밑이 어두웠던 것입니다. 오늘 말씀을 통해 내 믿음의 현주소가 어디인지를 살펴볼 수 있었습니다.

--- (예수님은) 다음의 4가지 믿음을 부활시키기를 원하신다. 그것은 1) 장소를 초월하는 믿음, 2) 현재형 믿음, 3) 죽음을 초월하는 믿음, 4) 시간을 초월하는 믿음이다. ---

이 네가지를 하나씩 묵상해보면서 나에게 부족한 믿음은 무엇일까, 오늘 말씀을 통해 다시 부활해야 할 믿음은 무엇일까, 생각해보았습니다. 특별히 시간을 초월하는 믿음에서 내 믿음이 다시 부활해야 함을 절실히 깨달았습니다.

--- 예수님께는 시간이 중요하지 않다. 단지 지금 우리의 믿음이 중요할 뿐이다.
주님은 치료자 일 뿐만 아니라 살리시는 생명자이시기 때문이다. 이미 지나갔다고, 이미 죽었다고, 이미 끝났다고 그것 때문에 주님의 능력을 묶어두지 말라! 이것이 불신이요, 무능의 소치이다. ---

이미 지나갔다고, 이미 죽었다고, 이미 끝났다고 포기했던 적이 많았습니다. 교회에서 열심히 봉사하던 어떤 성도님이 있었습니다. 전도도 열심히 하고 나름대로 최선을 다해 섬겼던 분이었습니다. 그런데 갑자기 교회에 안나오는 것입니다. 전화를 해도 연결되지 않았습니다. 다른때 같으면 전화기에 찍힌 번호를 보고 전화를 걸었을 텐데 말입니다. 나중에 친한 분에게 들었습니다. 어느 교회의 예배에 참석하고 있다는 것입니다. 아무래도 계속 그 교회에 다닐 것 같다는 말과 함께.
후에 통화가 되었습니다. 이런 저런 이유로 해서 그 교회에서 예배를 드리고 있다는 것입니다. (그럴 듯한 이유였습니다.) 그러면서 어찌 되었건 주일성수는 하고 있으니 걱정하지 말하고 말했습니다. 더 이상 할 말이 없었습니다. 마음의 문이 닫혀져있는 것을 느꼈기 때문입니다. 목사에게 한 영혼이 얼마나 중요한지 정작 본인들을 잘 모르고 있는 것 같습니다. 특별히 그렇게 열심히 교회를 섬기다가 아무 말 없이 다른 교회로 옮기는 것을 볼 때면 '무엇때문에 그럴까, 내가 뭐 잘못한게 있나' 목사의 마음은 참 답답합니다.

한동안 마음이 편치 못했습니다. 기도를 하면서도 자꾸 이런 생각이 들었습니다. 이런 일이 일어나기 전에 내가 무엇인가를 할 수 있었을텐데, 이런 일이 일어나기전에, 이런 일이 일어나기 전에... 이미 물이 엎질러졌으니 이제 무슨 소용이 있단 말인가? 오빠가 죽기 전이라면 가망이 있었는데 이제 오빠가 죽어버렸으니, 그리고 그것으로 모든 것이 끝났으니, 예수님도 어떻게 하실 수 없을 거야, 했던 마르다가 바로 나였던 것입니다.

나는 그 사건을 이제는 돌이킬 수 없는 문제로만 생각하고 있었습니다. 이 사건을 통해 그 성도님에게, 그리고 내 자신이나 우리 교회에, 하나님께서 행하실 일을 바라보지도 못했던 것입니다. 아니, 그런 일이 일어날 것이라고 생각지도 못했습니다. 왜냐하면 그것으로 모든 것이 끝났고 생각했으니까요. 내가 할 수 있는 일이라고는 속상해하고 안타까워 하는 것이 전부였습니다. 마르다처럼요.

나사로는 죽었습니다. 그래서 마르다는 모든 것이 끝났다고 생각했습니다. 그러나 시간을 초월하시는 주님은 바로 거기에서 새로운 역사를 시작하셨습니다. 지금 내게 필요한 믿음이 바로 이 믿음입니다.
주여, 내게 시간을 초월하는 믿음을 주옵소서!
주님이 끝이라고 말씀하시기 전까지 결코 끝이 아니라는 믿음을 주옵소서!

이 일이 어떻게 진행될 지 나는 모릅니다. 그러나 분명한 것이 있습니다. 주님은 이 일을 통해 내가 생각하지도 못했던 크고 놀라운 역사를 이루실 것입니다. 그 성도님이 그 교회를 열심히 섬기는 것도 감사요, 다시 우리 교회로 돌아오는 것도 감사입니다. 중요한 것인 이런 일이 더 이상 내게 낙심거리도, 걱정거리도 아니라는 것입니다. 왜냐하면 시간을 초월하시는 주님은 모든 것을 합력해서 선을 이루시는 전능하신 주님이시기 때문입니다. 모든 것이 주님의 뜻대로 될 것이며, 주님의 뜻은 항성 최선이고 최고이기 때문입니다. 이제는 마음이 기쁘고 평안합니다. 연약한 내 믿음을 부활시켜주신 주님의 은혜를 찬양합니다. 할렐루야

조정현

2006-05-12 02:33:28

이 말씀을 받으면서 폭풍치는 바다 가운데서도 주무시고 계셨던 예수님이 생각나며 우리 예수님은 언제나 너무 느긋하시다..라는 생각을 했습니다..사람속은 모르시고 예수님은 왤케 느긋하시기만 하신걸까?....라고...
그런데 사실은 예수님이 사람속을 모르시는게 아니라 제가 예수님의 속을 정말 하나도 모르고 살았던 것만 같습니다....
승리했다고...승리한 주님과 더불어 함께 사는 나도 승리자라고 입으로는 수백번을 고백하면서도 당장 문제 앞에선 무너지고 마는...말하자면 재방송을 보면서도 애태우며 보고 있는 어리석은 제 자신을 지금 부끄럽게 깨닫습니다..

주일날 아이들과 함께 비디오를 보는데 그 내용이 그때는 너무나 유치했습니다..어린 아이가 병들어 있고 병원을 갈 돈은 없고..타임머신을 타고 예수님께서 사시던 때로 거슬러 가나 예수님을 만나지 못하고 낙심하며 돌아왔습니다..예수님을 찾으러 갔던 그 누나는 예수님이 어디있냐며..동생이 죽게 생겼다고 원망을 합니다..그러다 동생에게 돌아오니 동생이 하는말이 '예수님께서 꿈속에 나타나셔서 자신을 다 치료해주셨다'고 깨끗이 나은 몸을 하고 있습니다..우리 예수님은 언제나 어디에나 계시다는것을 설명하기 위한것 같았습니다..보면서 참 유치하다...라는 생각을 했습니다..그런데 오늘 말씀을 받으며 장소.시간.죽음을 모두 초월한 내용이 바로 여기에 있었단 생각이 듭니다..
그런데 저도 이렇게만 살고 있었던것 같습니다..
내 눈앞에 보이지 않는다고 예수님 어디에 계시냐고...다시 살리란 말씀은 마음에서 사라진지 오래된것같은 삶을 살고 있었던것만 같습니다..
이젠 끝났어..이걸 어떡해...할때마다 새롭게 일으키시는 하나님의 은혜를 잊어버립니다...지금 현재 나를 일으키시고 나를 세우시는 하나님...
이미 끝난 게임때문에 가슴 졸이고 살지 않도록...내 자신을 말씀으로 다시 붙듭니다.

지영민

2006-05-12 04:17:53

오늘 말씀중에 나오는 마르다를 보면서 나의 믿음을 보는 듯했습니다.
예수님을 믿으면서도, 부활의 능력을 알고 있으면서도, 전지전능 하신 예수님을 믿고 있으면서도 정작 문제에 부딪치면 그 능력의 하나님, 예수님을 기억 못하고 저는 그저 문제 앞에서 발만 동동거리고 있었을 뿐이였습니다. 예수님 어디 계십니까? 내 문제 안 보시고 어디 계십니까...하면서 예수님을 부르짖고 헤매다가 그냥 주저 앉아 떨고 있었을 뿐이었습니다. 지금 예수님께서 어떻게 인도하시고 주장해주실 지는 모르지만 마지막 날에 나는 예수님과 함께 기뻐하고 있을거다 라는 미래적 믿음만을 바라보며 만족하고 살고 있었음을 깨달았습니다. 능력의 주님을 가까이에서 보면서도 답답한 소리만 했던 마르다나 저나 어쩌면 이리도 닮았는지요...

나에게도 절실히 필요한 부활해야 할 4가지 믿음...
'장소를 초월하는 믿음,현재형 믿음,죽음을 초월하는 믿음,시간을 초월하는 믿음'
이런 믿음이라면 어떤 문제가 올지라도 두려워하거나 낙심하거나, 억울해하거나, 염려하거나 하는 마음의 파도를 탈 일이 없을 것이라 확신합니다.
나를 다시 믿음으로 살리신 예수님이 언제나 항상 함께 하시기에 흔적도 없이 사라질 쭉정이가 아닌 믿음의 복음이 충만한 알곡으로 영원히 살아 움직이기를 소망합니다.

마준철목사

2006-05-12 05:31:48

"어떤 절망적인 상황 가운데 있더라도 지금 내 환경 속에서 역사하실 주님을 믿어라. 이것이 바로 주님이 찾으시는 믿음이다"

부활해야 할 4가지 믿음이 다 중요하지만, 저는 현재형 믿음에 대해서 묵상해 보았습니다. 제 생각엔 현재형 믿음에 가장 중요한 변수로 등장하는 것이 결국은 돈(물질)이 아닌가 생각합니다.

작년이 끝나갈 즈음에 저와 저희 교회는 아주 중대한 결정을 하나 내려야만 했습니다. 그것은 다름 아니라 저희 교회가 받고 있는 후원 문제였습니다. 적지 않은 금액이었기 때문에 후원을 끊는다는 것은 결코 쉬운 문제는 아니었습니다. 성도님들도 마찬가지였겠지만, 제 스스로도 후원을 계속 받고 싶은 생각이 굴뚝같았습니다. 결국 돈 보다도 하나님만을 의지하기로 결정했고, 곧 성도님들에게도 하나님께 받은 응답을 선포했습니다. 그리고 후원을 해주셨던 교회에는 두 배의 기도만을 부탁드렸습니다.

너무 감사했던 것은 그 이후로 성도님들이 교회를 사랑하는 마음과 헌신의 도가 많이 높아졌다는 것입니다. 참 감사하지요.... 그러나 여전히 물질과의 싸움에서 늘 승리하는 것은 아닙니다. 돈에는 그렇게도 맡겨지는 염려가 왜 이렇게 주님에게는 맡겨지지 않는지요.... 정말 부끄럽습니다.

저를 포함한 많은 사람들이 소위 안전빵(?)이라는 수준을 기대하곤 합니다. "이 정도는 물질이 있어야 마음이 놓이지요?" 하는 생각입니다. 그러나 얼마나 많은 물질이 있어야 온전한 안전을 누릴 수 있겠습니까? 생각해보니 결국 안전빵의 한계는 어디에도 없음을 알게 됩니다. 그렇죠?

이번 주 제자훈련 때, 그리스도의 주재권에 대해 공부를 하고, 물질, 시간, 재능, 가정, 교회에서 주님은 정말 나의 주인이신가?를 날마다 묻고 있습니다. 예수님이 나의 주인이시면 나는 종이 되어야 합니다. 그리고 주인이 부자이시면 종인 나도 부자가 되겠죠?

3월, 4월을 지나면서 재정에 대한 염려로 한동안 잠을 제대로 못 잔 적이 있었습니다. 그 때 제 믿음은 어디에서도 찾아볼 수 없었습니다. 하지만 이제야 조금씩 깨달아 갑니다. 지금 이 시간, 이 자리에서의 내 믿음이 주님이 찾으시는 믿음이 되어야 한다는 것을..... 앞으로는 절대로 물질로 인한 두려움에 빠지지 않기를 소원합니다. 어떤 절망적인 상황 가운데 있더라도 지금 내 환경 속에서 역사하실 주님을 믿고 나아가겠습니다~

木下 

2006-05-12 06:25:52

「信仰の人は、すでに結果を知って、人生を生きていく人である。だから、いつも余裕があり、心が安らかである。この結果は、聖書に書いてある勝利の結果である。」私は、この言葉を読んで感動しました。生中継と再放送の例でわかりやすく書いていただきとても理解しやすかったですが、結果を知っていると、人の心が安らぐことがわかりました。目先の勝利ではなく、イエス様への信仰を持って、人生を豊かに過ごしていきたいです。「信仰の人は環境や人に対していつも余裕があり、自分の心にいつも勝利の福音で満たしている人である。」とも書かれていました。
いつかは、このようになりたいと思いました。復活しなければならない4つの信仰についても恵みを受けました。「イエス様は、時間が重要ではない。ただ、今の私たちの信仰が重要なだけである。主イエスは治療者であるだけでなく、生かしてくださる生命のお方である。」信仰の大切さを学びました。

김경환

2006-05-12 07:47:33

--믿음의 사람은 이미 결과를 알고 인생을 살아가는 사람이다. 그래서 늘 여유롭고 그 마음이 편안하다. 결과를 아는데 어찌 안 그럴 수 있겠는가???-

목회자 제자훈련을 받은지 이제 29주째가 되었다. 3주가 남았는데 지나온 시간을 돌아보면 어딘가 모르게 마음의 평안함을 느끼게 된다. 훈련이란 그렇게 쉬운것이 아닌데 최선을 다하지는 못했지만 마음의 변화를 느낀다. 제자훈련을 통해 우리가 먼저 말씀으로 변하자는 선서와 결단이 여기까지 오게했다.
이제 요코하마 영광교회도 평신도 제자훈련을 위해 기도로 준비하면서 훈련생 신청을 받았다. 믿음 없는 목사의 생각보다 많은 훈련생들을 준비 해 주셨다. 한편으로는 기쁘면서도 두려워진다. 기쁨으로 자원하여 훈련받기를 원하는 성도님들에게 바른 리더로 세움받을 수 있을까라는 두려움이다. 이주후면 본격적인 제자훈련이 시작되는데 중앙영광교회의 훈련생들에 대한 이야기를 목사님을 통해서 들었다. 훈련을 통해 열매가 맺어지고 훈련생들의 삶의 모습이 확실하게 변하고 있다는 소식에 나 또한 용기를 갖게 된다. 제자훈련에 대한 두려움을 버리고 분명히 말씀과 삶의 나눔을 통해서 바른 주님의 제자들로 세워질 것을 확신하고 담대히 나아가리라. 제자훈련을 통한 결과가 분명 중앙영광교회처럼 나타날 것이기에 편안한 마음으로 기도하면서 훈련에 임하겠다.

홍인기

2006-05-12 08:34:32

오직 하나님은 미쁘사 너희가 감당치 못할 시험 당함을 허락 지 아니하시니라’(고전10:13)
마르다와 마리아의 믿음을 시험하시고자 하신 예수님의 나사로 사건이 때때로 하나님의 능력에 대한 확신이 약해져 가는 저에게 왜 깨닫지 못하느냐며 안타까워 하시는 하나님의 소리로 들립니다.
몇십번은 들었을 말씀.... 너희가 감당치 못할 시험 당함을 허락치 아니하신다는 말씀을 왜 나는 신문 기사처럼 그냥 믿고 확신하지 못했을까 하는 회개를 해봅니다.
스스로의 노력과 더해서 하나님이 약간 축복해 주셔서 얻은 성공이야 말로 내가 누릴수 있는 인생의 성공이라 생각했던 제모습에 회개를 하게 되었습니다. 오직 그분의 능력과 축복이 아니면 나는 아무것도 아닌것을 깨닫고 고백합니다. 
복음(GOOD NEWS)’를 믿으면 물론 우리에게는 승리의 소식이며 주님안에서 평안을 누릴 수 있음은 믿습니다.
하지만 한가지 스스로 주의해야 할것은 구원의 확신으로 인한 세상 삶속에서의 나태해짐이 아닐까 합니다. 
성급한 일반화의 오류에 빠져서 구원받았다는 사실만으로 그리고 믿는자의 죄는 용서를 받는다는 자만으로 세상에 빛이 되지 못하는 자가 되어서는 안될것 같다는 생각을 해봅니다. 주님이 주신 말씀 전체를 읽고 또 공부해서 하나님이 진정 우리에게 전해주시고 싶어하시는뜻, 나에게 주님이 바라는 뜻이 무엇인지를 깨닫고 주님 원하시는데로 나의 삶을 살아나가는것이 무엇보다도 중요한 일 같습니다. 
예수님과 함께 있어서 믿는 믿음, 눈으로 확인해서 믿는 믿음이 아닌 백부장과 같이 예수님과 함께 있지 않아도, 오직 말씀만이 있어도 믿고 따를 수 있는 큰 믿음을 갖게 해달라고 기도하고 싶습니다. 
제자 훈련이 거듭되어 끝을 향해 달리고 있는데 스스로의 모습을 돌아보면 시작할때 생각했던만큼 많이 변하지 못한 제 자신의 모습을 회개 합니다.
하지만 하나님께서 조금씩 조금씩 고쳐 주고 계심을 믿습니다. 

박인수목사

2006-05-12 16:04:39

“이미 지나갔다고, 이미 죽었다고, 이미 끝났다고 그것 때문에 주님의 능력을 묶어두지 말라! 이것이 불신이요, 무능의 소치이다”

조국을 떠나 이곳 일본이란 나의 영적 사마리아 땅끝으로 부름을 받은지도 일년하고도 구 개월이 되어갑니다 때로는 지치고 외로왔으며, 때로는 무기력증에 흔들릴 대도 있었습니다. 그러나 흔들리지 않고 피는 꽃이 어디 있겠습니까?
‘흔들리지 않고 피는 꽃이 어디 있으랴
이 세상 그 어떤 빛나는 꽃들도 다 흔들리면서 피었나니
흔들리면서 줄기를 곧게 세웠나니…’ 도종환님의 ‘흔들리면서 피는 꽃’중에서

흔들려도 꽃을 피울 수 있는 것은 뿌리가 내 생명의 주인이신 하나님께 있기 때문입니다. 바람이 불어 흔들려도 염려하지 않습니다. 주님이 절 잡아 세워주시기 때문입니다.

소대섭

2006-05-12 21:10:32

알곡과 같은 사람은 무게가 있는 사람이다...
라는 내용이 가장 마음에 와서 박힌다.

몸무게가 아닌 진정한 영적인 무게...
이러한 영적 무게를 위해서 열심히 기도하고
신앙생활도 잘 했다고 나름대로 생각할 때가 많았다.

그런데 가만히 생각해 보면...
나처럼 이렇게 가벼운 사람이 없다.
조금만 어려운 일이 있어도...
"휴우~~ 이 길이 아닌가봐 ..." 이러면서 은근슬쩍
내게 주어진 과제를 회피하고 다른 대안을 급하게 찾느라
허둥지둥했던 적이 많았던 것 같다.

또 쉽게 흥분하고 쉽게 가라앉아서 조급한 모습으로
매사에 신중하지 못했던 모습도 보인다.

그것 뿐인가...
심지어는 지금 해야 할 일도 시간을 계산해 가면서
이건 내일해도 상관없는 일이라고 판단하면서
좀 더 자고 좀 더 누워있는 나의 모습 또한 보인다.

이런 구제불능의 사람...

그런데 오늘 말씀을 보면서
또 설교를 통해서..
묵상을 통해서 주님의 음성이 들린다.

'그것을 알면서도 내가 너를 세웠단다. '
'그걸 잘 알지만 내가 네게 기회를 줄테니까.. 잘 해봐...^^*'

주님께서 마른뼈들에 생기를 불어 넣이시고...
나사로를 살리시고...
나를 세우신다.

물론 나라는 존재는 훈련에 훈련을 거듭해야 겨우
한 가지나 두 가지를 아는 존재이지만...
그것을 아시는 주님께서... 그런 나를 살리고 세워주신다는...
그 말씀이...

요즘 일본에서의 사역을 위해서 절차를 기다리고 있는
내 삶의 중심에 콱! 하고 박히는 이유는
바로 살아계시는 하나님이 역사하고 계시기 때문이라고 믿는다.

늘 깨어서 장소와 시간과 상황을 초월하는 지금 믿는 믿음을
위해서 기도해야 하겠다. 앞으로도 계속.. 쭉~~

오성훈

2006-05-13 01:40:58

예수님은 왜 이틀을 지체하셨을까, 부활과 생명의 능력을 보여 주시기 위함이었다. 이제 내 삶 속에서 이것이 중요함을 깨닫게 된다.
내 삶 가운데 여러 어려움이 왜 있는가, 이유는 간단하다.
그로 인해 하나님께서 내 삶 속에 더 큰 승리를 주시려 하시기 때문이다.
하나님께 크게 쓰임 받은 사람들을 보면 엄청난 시험이 있었던 것을 볼 수 있다.
소년 다윗이 대적 골리앗을 물리치니까 뉴스거리가 되었던 것이다.
왜 나에게 만만한 대적을 안 주고 '골리앗'같은 자를 붙여주느냐 그것은 이겨서 영웅이 되라는 하나님의 뜻이다.
이제 내 삶 가운데 어려움이 찾아올 때마다 회심의 미소를 지어야겠다. '아, 하나님께서 나에게 얼마나 큰 영광을 주시려고 이런 일들을 허락하실까?' 그러면서 더욱더 감사하는 삶을 살아가리라

이용준

2006-05-13 04:39:22

>예수님은 나사로가 위독하다는 급한 전갈을 받았다. 그러나 예수님은 바로 달려가기는 고사하고 오히려 이틀이나 계시던 그곳에 더 머무르셨다고 기록하고 있다. 그렇게도 사랑하던 나사로가 죽어간다는데 특별히 다른 일도 없어 셨으면서도 왜 그랬을까?

예수님은 이미 99:0의 지고 있는 상황에서 승리의 결과를 가지고 계셨기 때문이다.

>‘나의 하나님’은 지금 이 시간 ‘나의 믿음’을 찾으신다.
‘네가 다시 살리라! 이것을 네가 믿느냐?’
나의 삶의 대답을 기다리고 계신다.
나의 대답이 나를 살릴 수도 있고 죽게 버려 둘 수도 있다.

주님은 나에게 1000억원대의 연구Project를 준비해 두셨고, 전체인구의 1%에 해당하는 부류에 집어 넣어줄 준비를 해두셨다.
나는 이제 그곳에 꼭 맞는 믿음의 사람이 되도록 자신을 만드는 일만 남았다.

배미화

2006-05-13 09:25:06

[사람의 본심은 평상시는 잘 모른다. 모두가 좋은 사람같이 보인다.
그런데 갑자기 위기와 고난의 태풍이 불어오면 본색을 드러내는 법이다.
알곡과 쭉정이는 바람이 불어야 구분이 된다.
사람은 갑자기 고난의 태풍을 만나면 그 속을 알 수 있다.
그 사람이 어떤 사람인지는 급하고 힘든 일을 당해 보면 안다.]

바로 내 자신의 얘기라 가슴이 뜨끔하다.
이번주는 성령충만 은혜충만한 주로 감사할것도 많도, 행복한 한주였다
너무 은혜로워서 무섭기까지했다. 은혜가 달아나버릴까봐(이것도 믿음 약하고 중심이 하나님을 향해 있지 않은 나만의 발상이다 ㅠ.ㅠ )
근데, 조금전에 지옥을 갔다오고 말았다.
세상사람들의 얘기(최근 화제가 되고 있는 영화 다빈치 코드) 에 화가 치밀어 오르면서 순간 내 믿음을 의심했다.
내가 세상 사람들 얘기에 분해하는 건 내 믿음이 약하다는 걸 내 스스로 증명해 버린 결과인 것을 깨닫고 내 자신에서 더 화가났다.
그냥 한번 비웃어 줬으면 하나님도 대견해 했을텐데....

이번주 평일에는 제자훈련 숙제땜에 일부러 텔레비젼도 안봤는데,
그만 주말저녁이라 방심해가지고서는.....
바쁘신 우리 하나님!
주말에 내가 나태해 질까봐 이렇게 훈련시켜주시는 나의 하나님!
감사합니다. 다시 회복하기를 믿습니다.

[나의 하나님은 지금 이 시간 나의 믿음을 찾으신다.
네가 다시 살리라! 이것을 네가 믿느냐?]
아멘!

김철중

2006-05-13 09:40:23

이 설교말씀을 읽고 내가 나사로의 가족이었으면 어떻게 했을까 생각해 보았다.
내가 만약에 나사로의 가족이었다면 나사로가 죽은 뒤 지체하시는 예수님을 강제로라도 데려와서 살려내라고 땡깡을 부렸을것이다.
그러는 순간 나는 쭉정이 임이 알려지고 바람과 함께 날라갈 것이다.

사람은 들은 대로 전하는 것이 아니라 자신이 믿는 만큼만 전한다.
사람은 들은 대로 행동하는 것이 아니라 믿는 만큼만 행동으로 옮긴다.

나는 자주 내가 들은대로 사실대로 전하지 않는 경향이 있으며 가끔 그것이 잘못되었다는것을 느끼게 되며 아주 가끔은 그것이 다른사람들에게 발각되어 결국 거짓말까지 하게 되는 경우가 생긴다.

광대하신 예수님을 감히 내가 이해가 되는 범위에 가두어 두는 어리석은 죄를 범하지 않도록 믿음으로 행하고 믿음으로 전하는 자가 되길 기도한다.

노재훈

2006-05-14 08:44:04

난 알곡인가 쭉정이 인가?
알곡과 쭉정이는 바람이 불어야 구분이 된다는 목사님 말씀에 제자신이 바람이 불면 뭐가될지 생각해본다.
고난의 태풍이 분다하더라도 그 정도의 차이는 엄청날것이다.
일제의 탄압에서 천왕에게 절하지 않는 고신대학교 설립자 한상동이라는 분의 이야기를 집회에서 들었다.
천왕에게 절하지 않는걸로 사형 집행선고를 받았던 분....
踏み絵의 이야기처럼 한치의 굽힘없는 믿음의 알곡으로 성장하기를 기도한다.
바람에 나는 쭉정이 처럼 날려가지 않도록 진정한 예수님의 제자로 성장하도록 주여 저의 믿음을 지켜주시옵소서.

김경희

2006-05-14 16:22:45

하나님은 우리의 참 주인이다. 그래서 ‘오직 하나님은 미쁘사 너희가 감당치 못할 시험 당함을 허락 지 아니하시니라’(고전10:13)라는 말씀에 은혜를 받았습니다.
그동안에 신앙생활을 되돌아보면 너무나 평탄했고,걱정이 없었습니다.
그런데 제가 기도하며 믿음으로 주님께 나아갈때에 시험이 닥쳐왔습니다.
정말 주님은 정확하십니다.
제가 그시험을 이겨내지 못하고 쭉정이처럼 날아가 버릴까봐 미리 믿음을 불어넣어주시고 시험을 이길 힘을 주신것 같습니다.
믿음과 시험은 반비례한것 같습니다.
큰일을 하는 사람들에게는 큰시험이 있었고,그시험을 무사히 통과할때 한단계 성장한 모습을 종종 보게 됩니다.
저또한 큰 그릇이 되기위해서 어떠한 시험이와도 넉넉히 이겨낼힘을 달라고 주님께 기도하며 믿음으로 나아가겠습니다.
아직은 많이 부족하지만 마른뼈도 일으키시는 주님이 제옆에 계시니 아무런 두려움 없습니다.할렐루야!!!

박성옥 선교사

2006-05-16 08:31:29

목사님의 말씀에 정말 은혜받았습니다..
에스겔 골짜기에 마른뼈들이 생기의 영으로 군대를 이루었던것처럼 나에게 정말 마른뼈가 다시 살아나는 영혼의생기를 느낄수 있었습니다..
목사님의 설교에 내가 다시 살아남을 감사합니다.
어떠한 상황에도 주님만 믿고 의심하거나 조급해하지 않으면서 알곡으로 변해갈것을 믿습니다.
나사로를 살리신 주님! 내삶에도 주님의 기적의 역사를 일으키게 하옵시고.
예수님의 말씀으로 풀어놓아라하면 묶였던 모든것들이 풀어지며 목숨걸고 주님을향해 일할 수 있는 환상도 보여주심을 너무 감사합니다.
나의 부족한 모든것 주님께 맡길렵니다.
내가 하는 것이 아니라 주님의 손에 모든것이 달려있으므로.그저 순종하는 맘으로 달려나가겠습니다.
나갈때마다 군대를 이룰 수 있는 길도 다 예비하신줄 믿고 그저 주님께 감사의 찬양을 드리고싶습니다.
나를 살리신 주님..사랑합니다.

정한나

2006-05-24 02:41:44

두가지 의문점의 비밀은 바로 주님은 모든 것을 알고 계셨고 모든 것을 가능케하실 분이라는 것을 깨달을 때 풀리는군요. 또한 믿음의 사람은 속이 주님으로 꽉 찬 사람이며, 그렇기 때문에 어떠한 시험이나 어려움이 와도 의연하게 여유만만으로 대처할 수 있다는 사실에 저도 과연 믿음의 사람인가? 자문해보게 되었습니다. 주님오시는 날까지 이런 주님을 제대로 알고, 그리고 이런 주님을 신뢰하기를 간절히 소원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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