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중앙영광교회

부활의 용사

이용규목사, 2006-04-17 21:38:0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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부활의 용사

말씀//요20:15-18


1. 부활하신 주님을 볼 수 있는 눈
기독교의 생명은 부활이다.
부활이 없으면 기독교도 없다.
그러면 당신은 주님의 부활을 보았는가? 주님의 부활을 진짜 자신의 삶 속에서 늘 인정하면서 살고 있는가? 형편이 잘 풀릴 때는 부활의 기쁨이 있는 것 같은데, 인생의 먹구름이 갑자가 몰려 올 때에는 십자가의 절망만으로 충만하지는 않는가?
하나님이 원하는 크리스천이란 인생의 오르막 길을 걷든지 내리막 길을 걷든지 언제나 부활의 은혜가 풍겨나는 사람이다.
부활을 소유한 사람은 천하를 소유한 사람보다 더 행복한 사람이다. 그는 천하보다 귀한 영생을 소유한 사람이기 때문이다. 죽음 앞에서 한없이 울던 마리아는 세상 그 어떤 것도 그녀를 위로해 줄 수 없었다.  그런 그녀가 갑자기 큰 환희의 사람으로 바뀌었다. 왜일까? 그녀는 ‘예수님의 부활’을 보았기 때문이다. 부활을 소유하면 이처럼 인생이 바뀐다. 슬픔에서 환희로!
부활은 눈으로 소유하는 것이 아니다. 부활은 마음으로 소유할 수 있다.
부활의 첫 증인인 마리아를 보면 잘 알 수 있다.
오늘 본문에서 마리아는 분명히 자기 눈으로 예수님을 보았다. 그것도 멀리 떨어진 것도 아니고 바로 자기 옆에 계신 예수님을! 그런데 상상을 초월하는 놀라운 일이 전개된다. 그렇게 찾고 찾던 예수님을 만났는데도 그녀는 예수님을 전혀 알아 보지 못했다. 예수님과 직접 대화를 했는데도 그 분이 바로 예수님이란 사실을 전혀 깨닫지 못했다. 오히려 예수님을 동산지기로 착깍했다고 했다.(요20:14,5)
마리아 뿐만 아니라 우리 인생에도 이런 일은 수없이 많이 일어난다.
사람은 마음에 없으면, 아니 마음이 딴 데 가 있으면, 눈으로 무엇을 보아도 전혀 느낌이 없다. 마음이 단절된 채로 육의 눈으로만 보는 것은 아무런 의미가 없다. 보아도 못 본 것이나 다름없다. 우리의 진짜 눈은 마음에 있다. 그래서 마음으로 열심히 찾는 자에게는 찾는 모든 것을 보게 된다. 그래서 주님도 ‘찾으라 그러면 찾을 것이라’고 하셨다.
찾는 자가 귀한 것을 얻는다.
우리는 마음으로 부활을 열심히 사모해야 한다. 사모하는 자에게 부활은 보이고, 찾는 자에게 부활은 발견되어 진다.
마리아는 주님의 부활에 대해서는 전혀 마음이 없었다. 그녀는 오직 주님의 죽음으로만 충만해 있었다. 그래서 그녀에게 부활한 주님은 보일 수가 없었다. 그녀의 마음에는 부활이 없었기 때문이다. 그녀가 찾고 있었던 것은 부활하신 주님이 아니라 오직 죽은 예수님의 시체 밖에 없었다. 그래서 그녀는 부활하신 예수님을 전혀 알아보지 못했던 것이다. 그녀의 마음 속에는 부활의 예수님은 하나도 없었기 때문이다.
마음에 없는 것은 보아도 보이지 않는 법이다.
지금도 마찬가지다. 자신 속에 부활하신 주님이 충만한 사람은 어디에서나, 아니 무덤 속에서도 부활하신 주님을 보게 되어 있다. 그러나 십자가(죽음)의 주님으로만 가득한 사람은 부활하신 주님이 내 눈 앞에 계셔도 그 분을 체험할 수가 없다.
부활하신 주님은 늘 우리와 함께 계신다.
‘볼지어다 내가 세상 끝날까지 너희와 항상 함께 있으리라’(마28:20)
그런데 내가 그 주님을 느낄 수 없는 것은 왜 일까?  
세상에 주님이 없어서가 아니라 내 마음에 그 분이 없기 때문이다.
무엇이든지 마음에 있으면 보이고 들리지만, 마음에 없으면 보아도 보이지 않고 들어도 들리지 않는다는 사실을 명심해야 할 것이다.
부활의 주님이 보이는가? 그 음성이 들리는가?
그 사람은 그 마음이 주님으로 가득 차 있는 사람이다. 믿음의 내면세계가 충실한 사람이다.
부활의 주님을 볼 수 있는 사람이 행복한 사람이다.
부활의 주님을 볼 수 있는 사람은 ‘육의 시력’이 아니라 ‘마음의 시력’이 탁월한 사람이다.
주님은 마음으로 볼 수 있기 때문이다.
예수님께서 도마에게 하신 말씀에 이 비밀이 담겨 있다. ‘너는 나를 본 고로 믿느냐 보지 못하고 믿는 자들은 복되도다.’(요20:29)
여기서 ‘보지 못하고 믿는다’는 말은 무슨 뜻일까?
마음의 눈으로 믿음을 통해서 본다는 것이다.
도마가 보지 못하고 믿을 수 있는 길은 두 번이나 있었다.
물론 다른 제자들의 본 것을 듣고도 예수님의 부활을 믿을 수 있었지만, 그것보다 먼저 예수님은 몇 번이고 부활에 대해서 말씀하신 적이 있다.
‘인자가 많은 고난을 받고…죽임을 당하고 제 삼일에 살아나야 하리라’(눅9:22, 마16:21)
예수님이 직접하신 이 말씀을 듣고 주님의 부활을 믿었어야 했다.
오늘날 부활을 온전히 믿을 수 있는 축복된 길은 ‘부활의 말씀’을 그대로 받아들이는 것이다. 이것이 하나님이 기뻐하시는 부활 신앙이다. 우리는 주님의 부활을 더 복되게 믿을 수가 있다. 주님의 부활하신 몸을 보고 믿는 것이 아니라 주님의 부활의 말씀을 보고 믿는 것이다. 주님은 이런 자를 훨씬 복되다고 하셨다. 그래서 우리의 부활신앙은 초대교회보다 훨씬 더 복될 수 있다.
진정한 믿음은 마음이 그것(사건)으로 확정된 것이다.
마음이 부활로 굳어진 사람은 늘 부활을 보게 되고 누리게 된다.
부활은 마음에 부활의 확고한 믿음이 있는 사람만이 누리는 하나님의 최고의 선물이다.

2. 인생은 토요일이다.
우리 인생을 요일에 비유한다면 무슨 요일이라 할 수 있을까?
인생은 토요일이다. 토요일은 금요일과 주일 사이에 있다.
금요일은 예수님이 십자가에 매달려 돌아가신 고통과 절망과 죽음의 날이다. 이 금요일은 우리가 살아온 과거와 비슷하다. 멀리는 아담을 통한 저주가 흐르고 있고 가까이는 내 인생의 아픔과 문제, 절망의 지뢰들이 묻혀 있는 곳이다. 하지만 일요일은 다르다. 예수님이 죽음에서 부활하신 날이다. 기쁨과 환희, 소망에 넘친 날이다. 우리에게 다가올 미래도 그렇다. 기쁨과 환희, 큰 행복이 있는 천국 같은 곳이 아니라 바로 그 천국이 반드시 기다리고 있기 때문이다. 그런데 토요일 이라는 이 인생을 사는 우리에게 한가지 고민이 있다. 그 힘들었던 과거는 이미 살아 보았지만, 천국은 한번도 경험을 해 본적이 없다는 것이다. 그래서 사람들은 비록 고통이더라도 어제의 금요일을 더 신뢰하고 주일은 거의 신뢰하지 않는다는 것이다. 안타까운 것은, 그것 때문에 수많은 사람들은 ‘지금까지 이렇게 살아왔으니 내일의  내 인생도 어제와 다를 바가 없을 것이다’라고 믿고 늘 금요일만 바라보며 살아간다.
사람의 행복과 불행은 현재에 있는 것이 아니다.
다 같이 토요일에 살고 있는데도 어떤 사람은 늘 슬픔과 원망 저주 속에 갇혀서 괴로워하며 살고 있지만, 또 어떤 사람은 동일한 환경 속에서도 늘 기쁨과 감사와 축복 속에서 행복해 한다.
행복과 불행은 그 자신이 어디를 바라보며 사는가에 의해서 좌우된다.
금요일(십자가, 고통)을 바라보며 사는 사람은 늘 불행의 그림자에 가리워서 살 수 밖에 없지만,
주일(부활, 환희)을 바라보며 사는 사람은 항상 행복의 햇빛을 받으며 살아가는 법이다.
하나님은 우리 모두에게 동일하게 금요일과 주일을 주셨다. 그러나 선택은 우리 자신이 해야 한다. 그래서 인생은 선택이다. 부활의 햇빛을 바라볼 것인가? 아니면 십자가의 고통을 바라보며 살 것인가? 그것이 우리의 인생을 결정짓는다.
그러나 우리가 고통의 때에 부활의 미래를 바라본다는 것은 생각보다 쉽지 않다.
예수님의 제자들이 이것을 잘 증명해 주고 있다.
세계최고의 스승이신 예수님 밑에서 3년간이나 훈련을 받았던 11명의 제자들 중에서 단 한명도 주님이 십자가의 고난을 당했을 때, 주님의 부활을 바라보지 않았다. 모두가 숨어 움츠려서 공포에 질려 있었다. 이 때에 만약 한 명이라도 일어나서 ‘여러분 두려워하지 마세요. 우리 예수님 반드시 부활하십니다. 이제 며칠 안 남았습니다. 예수님께서 그전에 분명히 죽었다가 3일만에 다시 살아나신다고 말씀하시지 않았습니까? 믿으세요.’(눅9:22)라고 했다면 분위기는 반전되었을 것이다. 그런데 그들은 무덤조차도 가 볼 생각도 하지 않았다. 만약 주님이 부활하실 것이라는 ‘주님의 말씀’을 믿었더라면 모두가 무덤을 떠나지 않았을 것인데 말이다.
말씀의 능력은, 내가 그 말씀과 똑 같은 위기에 처해 있을 때에 그대로 적용할 때 그 위력을 발휘한다.  힘들수록 말씀을 놓치지 말아야 한다. 정말 힘들수록 그 말씀을 실천해야 한다.
그것이 바로 십자가의 절망을 이길 수 있는 유일한 능력이다.
인생의 절망의 때가 왔는가? 절대로 십자가에 붙들리지 말라. 오직 부활만 바라보며 부활을 열심히 기대하며 찾아라 반드시 발견하게 될 것이다.
예수님이 십자가의 죽음에서 3일만에 부활하신 것은 우리에게 깊은 메시지를 준다.
하루 전에 십자가의 고통이 있었지만 하루 뒤에는 바로 부활 환희가 있음을 우리 인생에게 깨우쳐 주시기 위함이다.
십자가의 죽음으로 절대로 좌절하지 말라. 그것은 단지 곧, 부활의 영광이 온다는 사인에 불과함을 알라.

3. 부활과 연합하라
예수님께서는 마리아에게 부활을 이렇게 전하라고 했다.
‘너는 내 형제들에게 가서 이르되
내가 내 아버지 곧 너희 아버지, 내 하나님 곧 너희 하나님께로 올라간다 하라’(17)
여기서 ‘내 아버지 곧 너희 아버지, 내 하나님 곧 너희 하나님’이라고 강조하신 이유가 무엇일까? 그렇다 예수님의 하나님은 나의 하나님이시고, 예수님의 아버지는 나의 아버지이시다. 그러니까 당연히 예수님의 부활도 나의 부활이다. 우리가 자칫 잘못하면 예수님의 부활을 나와 상관없는 것으로 넘겨 버린다. 결코 그렇지 않다. 예수님의 부활은 바로 나의 부활이다. 예수님은 죽으실 필요도 없으셨고, 부활하실 필요도 없으신 분이다. 그 분이 부활하신 것은 오직 나 때문이다. 내 부활을 대신해 주신 것이다. 그래서 부활에서 정말 중요한 것은 그 분의 부활과 내가 연합하는 것이다. 절대로 떨어지지 말아야 한다. 믿음의 접착제로 온전히 하나가 되어야 한다. 이것이야말로 부활의 능력을 완벽히 체험하고 누리는 길이다.
‘그의 부활을 본받아 연합한 자가 되리라’(롬6:5)
예수님의 부활은 곧 나의 부활이다.
매주 주일은 우리에게 늘 이 소망을 기억하게 하는 날이다. 이 날은 바로 주님이 부활하신 날이기 때문이다. 아니 나의 부활을 증명해 주는 날이기 때문이다.
주님이 주일을 주신 것은 주일마다 ‘부활의 소망’을 바라보고 일어나라고 주셨다.
그 날(부활)을 믿고 바라보자!
‘내 인생에도 반드시 부활의 때가 오리라’
‘나는 절대로 이대로 끝날 사람이 아니다. 주님의 부활이 눈 앞에 있는데 무슨 소리냐?’
늘 이렇게 자신에게 외치자!
부활절은 주님의 부활을 통해서 ‘나의 부활이 반드시 있음’을 확신시켜 주는 날이다.
‘주일이 있는 한 나는 반드시 부활한다.’ 주님 부활하신 주일마다 자신을 부활로 깨우자!
‘주여! 내가 부활의 확실한 증인되게 하소서!’
‘인생의 부활의 증인되게 하시고, 영생의 부활의 증인되게 하소서!’
‘사망 권세를 이기신 주님의 그 부활의 능력이 내게도 늘 흐르게 하소서’
‘세상을 감당할 수 없는 자가 되지 말게 하시고
세상이 감당치 못하는 부활의 용사가 되게 하소서’

29 コメント

유광옥

2006-04-18 02:03:22

매년 찾아오는 고난주간이고, 부활절이지만 제자훈련을 받고 있는 나로서는
예전과는 다르게 느껴지는 부활절이었다. 나는 예수님의 부활을 어느정도나
믿고 있는 것일까? 스스로에게 질문을 던져보고 답을 찾아보는 시간이었다.
기쁘게도 예수님의 부활은 바로 나의 부활이라는 것을 마음깊이 깨달을 수 있어서 감사했다. 예수님의 부활이 내마음에 있기에 난 오늘도 살아있는 것 같다.
난 예수님의 부활과 연합하기를 원한다. 주님의 부활의 능력이 내게도 흐르기를 원하고 작은 예수로 부활을 증거하고 세상을 넉넉히 이기는 부활의 용사로 남아 있기를 기쁨으로 소망한다.

라문진

2006-04-18 05:33:34

광옥언니 말처럼 제자훈련이 아니었다면 고난주간은 그리 특별히 다가오지 않은채 그냥 지나가버리고 말았을겁니다. 하지만 예수님과 십자가에 대해서 정말 알기를 원했던 이번 고난주간은 십자가의 사건이 나의 사건이 되는 놀라운 체험을 하게 하셨습니다. 주님도 "찾으라 그러면 찾을 것이다"고 하신것처럼 정말 간절히 구하니 제마음을 열어주셨습니다. 부활절 성찬식을 하는데 빵과 포도주가 목에 걸려 넘어가지 않은 체험을 한것도 이번이 처음이었습니다. 이렇게 어리석은 나를 위하여 죽으신 예수님의 몸과 피를 도저히 넘길수가 없었습니다. 어제 저녁 용준씨에게 이런 내 심정을 얘기했는데 또 눈물이 나려고 하더라구요. "나같은 죄인 살리신 그 주님 은혜가 놀라워.."라는 찬송가를 부르며 눈물 흘리시던 권사님 얼굴도 떠올랐습니다. 바라옵건대 날마다 이 은혜를 잊지않고 인생을 헛되이 살지말며 부활의 증인이 되는 삶을 살기를 원합니다.

박정선

2006-04-18 05:39:19

마리아 뿐만 아니라 우리 인생에도 이런 일은 수없이 많이 일어난다.
주님을 찾는 마음의 눈이 열려 늘 주님을 보기 원합니다.
이 세상을 기쁘고 행복하게 누리며 사는 것이 부활하신 우리 주님의 뜻이라 생각합니다. 이 부활과 연합하여 내 삶이 부활의 증인되길 원합니다.

정승은

2006-04-18 07:53:36

부활절 새벽예배때 촛불을 켜고 주님의 부활을 감사드리면서,나도 이제 부활했고,앞으로 부활의 인생을 살게 해달라고 기도했다.
우리의 인생이 토요일과 같다는 말씀에 고개가 끄덕여 졌다.
사실 금요일로 돌아가려는 내 마음을 붙들어야 했던적이 한두번이 아니다.
과거에 묶여 있는 쇠사슬이 십자가를 통해,그리고 이제 부활을 통해 모두 끊어져 나가길 간절히 소망한다.나에겐 주일이 있다.이 소망을 가슴에 품고 살고 싶다.
주님의 부활과 연합하여,절대로 이대로 육체의 소욕대로 무너지지 아니하고,
난 반드시 부활과 함께 일어난다!는 사실을 잊지 않아야 겠다.
내 삶의 여정이 주님과 함께 한다면,부활과 연합한 삶을 산다면,환경에 치우치지 아니하고 늘 기쁘고,감사의 마음이 넘칠 것이다.
부활의 내 능력이 되고,말씀과 기도가 힘이 되어 나를 움직인다면,분명 나도 세상이 감당치 못하는 자가 될거라 믿는다.
꿈이 없는 백성은 망한다고 하셨다.나의 꿈은 무엇인가?나의 소망은 무엇인가?
나의 힘 되신 예수그리스도의 부활을 힘입어 주님의 나라가 나를 통해 확장되는 것,내 삶의 변화를 통해,내 가정,내 직업을 통해 다른 사람들이 주님을 만나고,주님의 부활을 알게 되고,느끼고,그들도 나와 같이 주일을 소망하는 인생을 살 수 있도록 돕는것,인도하는 것..바로 그것이 아닐까 싶다.
이 마음이 내 육체의 소욕으로 인해,세상으로 인해 쉽게 무너지지 않고,간직되길 기도합니다.

최현경

2006-04-18 09:53:35

내 인생이 혹시 십자가의 죽음만, 금요일만 바라보며 살았던 건 아닌지 생각할 수 있는 귀한 말씀이었다.
부활이 없다면 기독교는 아무런 의미가 없는 것이라는 것을 알면서도 나의 실생활에선 그런 부활에 대한 생각은 없고 오직 죽음에만 촛점을 맞추었던 마리아와 같은 모습이 나타날 때가 많다.
예수님의 부활을 직접 눈으로 보지는 못했을지라도, 그 말씀만 믿고 부활을 소망하는 귀한 믿음의 소유자가 되길 기도한다.
'마음으로 부활을 열심히 사모해야 한다. 사모하는 자에게 부활은 보이고, 찾는 자에게 부활은 발견되어 진다.'라는 말씀처럼, 내 삶속에서 주님의 부활을 사모하고 그 능력에 힘입어 다시 살아나길 기도한다.

박유진

2006-04-19 11:32:47

예수님은 부활하실 필요가 없으신데도, 나를 위해, 나에게도 부활이 있음을 증명해주시기 위해 부활하여 주셨다는 사실을 새로 깨달았다. 얼마나 감격적이며 감사한 일인지. 그렇게 귀한 일을 주님께서 해 주셨는데, 나는 그 기쁨의 부활을 온전히 누리고 사는지 되돌아보았다. 힘들수록 더욱 말씀을 붙들고 그대로 실천해야 한다고 하는데, 나는 끝까지 말씀을 붙들고 나아가는 것이 부족한 때가 많았다. 그렇지만, 정말 힘들고 어려울 때 말씀이 살아서 내 안에서 힘을 주실 때도 있었다.
항상 나와 함께 하시는 부활의 주님을 내 마음의 눈이 언제나 보기를 원한다. 세상 근심과 염려에 가려서 주님을 멀리하는 것이 아니라, 나도 항상 부활의 주님께서 주시는 힘으로 세상이 감당치 못하는 부활의 용사가 되고 싶다.
주일예배가 부활의 능력을 회복하고 소망으로 다시 일어나는 날이 되도록 기도해야 겠다.
주님, 제게 영적인 눈을 열어주셔서 제 마음이 살아계신 주님을 보게 하시고, 부활의 능력으로 매일 살아나게 하여 주세요.

김기웅

2006-04-19 21:35:12

허물많은 베드로를 용서하시고, 의심많은 도마에게 확신주신 예수님.

허물많고 의심많기는 저 또한 빠지지 않습니다.

부활과 연합하는 생활. 증인되기 합당한 생활. 부활의 능력이

내 에너지가 되는 생활.

제가 요즘 힘이 듭니다. 그래서 더 말씀붙잡고 가야겠습니다.

부활의 마인드를 가지고 인생을 살겠습니다.

김민정

2006-04-20 11:50:37

제가 힘이 들때, 예수님의 십자가를 보면서 힘이 나는 이유는 예수님께서 부활하셨기 때문입니다.
사실 오늘도 제가 혼자서는 감당하기 어려운 여러가지 상황에서도 낙심하지 않고 이겨낼 수 있었던 것은 부활하신 예수님이 저와 함께 하셨기 때문입니다.
예수님께서 십자가 고난, 말로 표현할 수 없고 눈물만 나는 그 고통을 이기시고 또 부활하셔서 제 옆에 계시기 때문에 저는 어떤 어려움이 와도 감당할 수 있습니다.
예수님, 오늘도 저, 잘 이겨냈죠? 예수님이 함께 하셨기 때문이예요.
정말 감사해요. 예수님.
예수님, 예수님께서 주신 힘으로 내일도 열심히, 그리고 항상 기쁘게 살께요~

박순애

2006-04-20 17:28:43

부활주일을 보내고 불과 며칠 밖에 지나지 않았는데 어느 덧 내 마음 속에는 십자가의 고난이 자리하고 있었음을 보며 내 자신에 무척 놀랄 수 밖에 없었습니다. 부활의 기쁨과 은혜가 항상 내 삶에 충만 하기를 소원하면서도 내 생각은 어제의 십자가에 붙잡혀 있는 것 같습니다.
정말 하나님께서는 나의 이런 모습을 얼마나 안타까이 바라보고 계실까 하는 생각에 가슴이 저며 옵니다. 나 때문에 십자가의 고난이 있었고 나 때문에 부활의 영광이 있었는데 이미 온전한 것을 내게 주셨건만 반쪽만 가지고 나머지 반쪽을 의미없게 하고 있는 내 삶을 정말 안타까와 하시겠지요.
"제자들이 예수님의 죽음으로 절망하고 있을때 정말 누구 한 사람이라도 예수님은 말씀대로 살아나실 것이라고 얘기 했다면..."하는 말씀을 읽으며 내가 그 주인공이 되고 싶다는 거룩한 욕심을 가지게 됩니다. 부활의 주님이 내 마음에 확실히 살아 계시다면 말씀대로 이루어질 것을 믿고, 의심하고 절망하는 자들에게 부활의 은혜와 소망을 심어줄 수 있을 것입니다. 그런 도구가 되고 싶습니다. 내 속에 강한 소망을 주신 주님, 그 부활의 주님께 감사를 드리게 됩니다.
부활과 연합하는 삶이 얼마나 소중한 것인가를 다시 한 번 기억하면서 분명히 있을 내일을 맞이하기에 부끄러움이 없도록 오늘에 최선을 다해 살기 원합니다. 실천 없는 믿음은 죽은 것이지요. 오늘 나에게 주어진 하루가 어제의 십자가를 대신하여 내일 있을 부활을 준비할 수 있는 귀하고 소중한 날이 되기를 기대하며 삶의 구석 구석에서 부활의 주님을 발견해 나가는 하루가 되기를 기대합니다

김성섭

2006-04-20 19:17:39

인생은 토요일이라는 말씀에 정말 그렇구나 하며 무릎을 쳤습니다. 항상 금요일을 바라보며 사는 사람도 있고, 반대로 주일을 바라보며 사는 사람도 있습니다. 오늘 말씀처럼 하나님은 모두에게 동일하게 금요일과 주일을 주셨습니다. 그러나 선택은 자신의 몫입니다. 무엇을 선택하느냐에 따라서 행복과 불행이 좌우된다는 말씀, 아멘입니다.

이 말씀 앞에서 나는 금요일을 바라보며 사는 사람인지 주일을 바라보며 사는 사람
인지를 곰곰히 생각해봅니다. 제자훈련이 시작되기 전에는 금요일을 바라보는 적이 참 많았습니다. 부끄러운 고백이지만 어느 교인이 교회에 문제를 일으키고 그로 인해서 교회에 어려운 일이 생기게 되면 나도 모르게 '그 사람이 차라리 우리 교회에 나오지 말았다면 이런 일이 일어나지 않았을텐데' 하는 생각을 했던 적이 있었습니다. 그 사람을 통해 저를 다듬고 계시고, 그 사건을 통해 더욱 겸손하게 기도하게 하시고, 그런 문제들을 통해 우리 교회가 주님의 뜻대로 세워져가고 있나 돌아보게 하시는 하나님의 은혜를 깨닫지 못했습니다. 그런 문제를 통해 승리를 주실 부활의 주님은 바라보지 못했던 것입니다.
그런 부족함에도 불구하고 여기까지 올 수 있었던 것은 전적인 주님의 은혜임을 고백합니다. 부활을 믿지 못하고 두려워하는 제자들을 친히 찾아오신 예수님처럼 그렇게 주님은 저를 찾아주셨습니다.

지금도 저도 모르게 금요일을 바라보곤 합니다. 그러나 확실한 것은 제자훈련을 통해 주일을 바라보는 믿음으로 성장하고 있다는 것입니다. 2006년이 시작되면서 교회안에 생각지도 못했던 문제가 일어났습니다. 아직도 그 문제는 다 해결되지 않았습니다. 이로 인해서 얼마나 속이 탔는지 모릅니다.
그런데 감사한 것은 힘들고 어찌 할바를 모르는 상황속에서도 부활의 주님을 선포하고 있는 제 모습이었습니다. 육신의 눈으로 보면 앞에 캄캄해서, 예전의 습관처럼 금요일을 바라보고 있는 제 모습을 발견할 때마다 '아니야, 주님께서 이 문제를 통해 부활의 영광을 주실거야, 이 문제는 축복의 통로가 될 거야, 연초부터 이렇게 큰 문제가 터진 걸 보면 분명 올해는 크고 놀라운 역사가 일어날 거야' 하며 주일을 향해 고개를 돌리는 제 모습이었습니다.

제자훈련을 통해 작은 예수가 되고자 하는 소망이 생겼기 때문입니다. 그리고 저와 함께 교회를 섬기고 있는 교인들과 함께 작은 예수가 되는 꿈을 나누고자 하는 거룩한 소원이 생겼기 때문입니다.
오늘도 나는 주일을 바라보며, 부활의 영광을 바라보며 달려갑니다.

최현숙

2006-04-20 21:29:20

절망과 안타까움으로 토요일의 밤을 새우고 주일 아침 일찍 새벽에 예수님의 시체있는 무덤에 갔던 마리아의 심정이 되어 나도 그곳에 함께 있어 본다. 예수님 살아 있을때 주님께서 자신의 연약한 질병(7곱귀신들림)을 고쳐주셔서 다시금 새생명을 소유한 마리아. 자신에게 있어 주님은 생명과 같았는데 그런 그분이 죽으셨다는 사실에 마음이 얼마나 절망스러웠을까? 안식일이 끝나자 한걸음에 달려 무덤에 도착했던 마리아.그런데 찾고 있던 시체가 없었다. 그리고 한사람이 계셨다. 마리아의 눈엔 아직도 그분이 예수님으로 보이질 않았다. 시체만 생각하고 있던 그 마음에 주님이 살아서 눈에 보여도 그것을 볼수 있는 마음이 없었다는 사실을 알게 되면서 나도 마리아처럼 예수님의 모습을 보지 못할때가 너무도 많이 있슴을 보게 된다. 부활과 연합하라는 주님의 말씀의 의미를 이번 부활주일로 통해서 확신을 갖게 됨이 얼마나 감사한가? 예수님께서 죽으셨다가 왜 삼일만에 부활하셨을까?의 의문도 깨닫게 되었으니 이 또한 얼마나 감사한 일인가? 나의 인생은 토요일이라고 하신 말씀에 많은 의미가 있슴을 알게 되었다. 지난날의 나는 금요일 즉 주님이 죽으신 십자가만 바라보는 인생이였는데 마리아의 마음의 눈을 열어 부활을 보게 하신 것처럼 이젠 주일을 바라보면서 소망을 갖게 됨이 너무 감사하다. 보이는 것은 잠간이요 보이지 않는 것은 영원함이라...라는 말씀처럼 이 땅에 살고 있지만 보이지 않는 영원한 세계를 소망하는 것이 바로 부활신앙임을 다시 마음속에 새겨본다. 매주 주일을 주심의 의미또한 내게 새롭다. 주일이닌까 하는 생각이 이젠 떠나게 될것 같다. 잊고 있는 부활을 매주일 기억하라고 주님을 주일을 주신것이라고 한다. 마음에 와 닿는 말씀이다. 이젠 주일도 새롭게 맞이 할것 같다. 이번 부활절엔 내 영혼이 부활되어진 느낌이다. 예수님의 부활은 곧 나의 부활이라는 사실이 너무도 감사하게 내 영혼에 각인되어 짐은 주님의 은혜인듯 하다. 이젠 부활의 용사가 되어 이 기쁨 소식을 이 새명 다할때까지 기쁨으로 전해야겠다는 각오가 다져진다. 할렐루아~ 주님 부활하셨습니다. 저도 부활했습니다. 감사합니다.

지영민

2006-04-20 23:02:19

나는 금요일과 주일을 체험한 사람이라는 생각이 든다. 그러면서도 자꾸 금요일로 눈이 가는 것은 무엇때문인지... 사람은 기쁜 일과 슬픈 일을 겪으면 기쁜 일보다는 슬픈 일을 더 오래 기억하기 때문일까? 부활의 사건은 하나의 기쁜 일로 여기기엔 너무나도 값진 인생 일대의 최고의 사건인데도 십자가의 고통만 기억하며 주님도 부활로 넘어가지 마시고 함께 고통에 동행해 될라고 붙잡고 고집하는 나를 보게 된다. 내 안에 진정 부활의 기쁨이 십자가의 고통보다 더 크게 넘치고 있는지 생각해보게 된다. 오늘도 이런 나에게 변함없이 부활의 능력으로 승리하기를 원하시는 예수님이 계시는데... 예수님의 부활이 나의 부활임을 믿음으로 시인한다. 부활을 마음으로 믿고 입으로 시인하며 오늘도 부활의 기쁨으로 승리하며 하나님과 예수님을 찬양하고 싶다...

마준철목사

2006-04-21 00:35:20

"부활의 주님을 느낄 수 없는 것은 왜 일까? 세상에 주님이 없어서가 아니라 내 마음에 그 분이 없기 때문이다....."

설교 말씀을 읽다가 위 문장 앞에서 주님이 주시는 마음이 있어서 함께 나누기를 원합니다. 저는 예수님을 구주로 영접한 뒤로 한번도 예수님의 부활을 의심해 본 적이 없습니다. 무에서 유를 창조하신 하나님께서 죽은 사람 살리시는 것은 아무것도 아니라고 생각했기 때문입니다. (실제로 예수님께서도 죽은 사람을 살리신 권능의 주님이시니까요....)

그러나 오늘 말씀을 읽으면서, 내게 부활의 믿음은 있지만, 부활의 능력이 없다는 것을 깨달았습니다. 왜냐하면, 부활의 주일이 나를 기다리고 있지만, 여전히 이런 저런 어려움이 생기면 걱정도 많이 하고, 어떤 때는 낙심도 많이 하고, 좌절할 때가 상당히 많았기 때문입니다.

예수님께서 부활하셨다! 그래서 어쨌다는 말인가? 이것이 솔직한 제 모습이었습니다. 부활하신 예수님을 의심하지는 않았지만, 부활하신 예수님이 내게 무슨 의미가 있는 것일까? 그 연결 고리가 끊어져 있었던 것입니다.

오늘 말씀 묵상중에 그 결정적인 원인이 내 마음에 그 분이 없기 때문이라는 강한 충격과 도전을 받았습니다. 부활신앙의 핵심은 예수님의 부활을 온전히 믿는 것 뿐만 아니라 부활하신 예수님을 만나 내 마음에 늘 살아계신 예수님으로 존재하는 것임을 알고 증거하는 것임을 믿습니다.

오늘 본문에 등장하는 막달라 마리아를 포함해 예수님을 따르던 모든 제자들도 부활하신 예수님을 온전히 만나고 난 다음에 그들의 인생이 달라졌음을 알 수 있습니다. 심지어 그들은 자신들의 목숨까지도 순교의 현장에 당당히 내어놓을 수 있는 증인들로 바뀌어 갔습니다.

세상 사람들 중에는 죽음(금요일)에 사로잡혀 사는 사람이 정말 많은 것 같습니다. 예전에 저희 친척 중에 나중에 죽고 나면 누가 더 좋은 선산에 묻힐 것인가를 놓고 치고 박고 싸운 경우를 본 적이 있습니다. 벌써부터 묘자리 사 놓고, 수의도 만들어 놓고, 죽는 생각만 하고 사는 사람들이 참 많습니다.

그러나, 나에게는 부활의 예수님을 만나는 주일이 있음을 믿기에 내 남은 인생을 바라보는 시각도 달라졌음을 고백합니다. 먼저는 예수님의 부활의 증인이 된 예수님의 제자들처럼 내가 주님의 온전한 제자가 되는 것이고, 단 한 사람이라도 정말 주님의 제자들을 키울 수 있는 사람이 되는 목표가 생겼구요, 이제는 나만을 위해 주님을 믿는 자가 아니라 막달라 마리아처럼 내가 만난 부활의 주님을 전해야 할 사명이 있음을 고백합니다.

부활의 능력 때문에 하나님이 말씀대로 살게 되는 줄 믿습니다. 그리고 하나님의 말씀대로 살면 십자가의 길도 갈 수 있을 줄 믿습니다. 무엇보다도 내 안에 주님을 놓치지 않기 위하여 애 쓰겠습니다. 사모하는 자에게 부활은 보이고, 찾는 자에게 부활은 발견되어 감을 믿습니다. 부활의 주님을 볼 수 있는 마음의 시력을 되찾기 위하여 기도하겠습니다. 그래서 늘 부활의 주일을 바라보며 살겠습니다~

김경환

2006-04-21 01:26:50

--부활을 소유한 사람은 천하를 소유한 사람보다 더 행복한 사람이다. --
라는 말씀을 보면서 내 인생에서 행복한 사람이라고 생각했던 시간은 얼마나 될까? 를 생각 해 보았다. 어렸을때는 세상능력이 좀 더 있는 부모님이였으면 했던 잘못된 생각으로 행복하다고 생각을 해 본적이 없던 것 같다. 매학기마다 등록금 걱정에 장남으로 집안을 도와야 한다는 물질적인 모자름에 하루하루가 힘들었던 시간이였다. 나는모태신앙이다. 그렇다면 부활은 태어나면서부터 알고 태어났다. 말씀대로라면 곧 천하를 소유한 사람보다 행복을 갖고 태어난 사람임에 틀림없다. 근데... 진정한 행복이라고 믿고 살아왔던 시간들이 그리 오래 된 것 같지 않다. 내 인생에 행복이란 눈으로 소유하는 부활이 아닌 마음으로 소유하는 부활의 소망을 붙들고 어떠한 고난도 이길 수 있도록 부활을 소유한 것만으로도 감사하면서 살겠습니다.

--마음이 부활로 굳어진 사람은 늘 부활을 보게 되고 누리게 된다.--
이 말씀에서 마음의 중요성을 깨닫는다. 이번 생활숙제는 TV와 인터넷을 하지 않기다. 생활숙제라서 해야되는 것도 있었는데 3일째 된 오늘 내 마음은 그동안 버리지 않아도 될 시간을 너무 허비했다는 생각이 든다. 집에 가면 테레비를 켜기 보다는 아내와 대화를 하고 식사시간까지 대화는 이어진다. 남은시간은 성경과 독서로 알차게 채워지고 취침시간도 초기에 작정했던 시간에 잘 수 있게 되었다. 마음에서 TV를 봐야겠다는 생각이 떠나가고 있다. 그동안 내 마음은 집에 돌아가면 TV에게 많은 시간을 도둑질 당했다. 억울하다는 생각까지 들었다. 역시 마음이 무엇으로 굳어졌나에 따라서 삶의 모습이 달라지는 것 같다. 내 마음을 세상속에서 순결하지 못한 것들로 채우기 보다는 영원한 생명인 부활로 내 마음이 굳어가게 노력하겠습니다. 절기때만 부활을 생각하는 내가 아닌 늘 부활을 생각하고 부활의 기쁨을 누리는 자가 되기 위해 하나님이 주신 최고의 선물을 잃는 자가 되지 않겠습니다.

--예수님 밑에서 3년간이나 훈련을 받았던 11명의 제자들 중에서 단 한명도 주님이 십자가의 고난을 당했을 때, 주님의 부활을 바라보지 않았다. --
이 용규 목사님 밑에서 제자훈련을 26주간 받았다. 예수님도 그러셨듯이 목사님도 사랑과 온 정성으로 리더의 자리를 지키셨다. 하지만 목사님께서 제자훈련 반 중에서 가장 변하지 않는 그룹이 목회자 사모반이라는 말씀에 충격이였다. 그렇다면 나도 그때의 제자들과 별 다를 것이 없다고 생각이 드는 순간 너무너무 부끄러웠다. 주님이 고난받으시는 그 순간에 고난 뒤에 나타날 부활을 누구도 못 보았는데 나 또한 두려워진다. 말씀에 붙들려 순종하라는 말씀을 그렇게 매 시간마다 외치시는데 말씀 넘어에 있을 열매를 보지 못하는 목사라고 생각하니 회개하게 된다.
다시 시작하는 자세로 가다듬어야겠다. 훈련에 충실하지 못했던 모습을 하나님께회개하고 목사님께 죄송합니다 라고 고백드립니다. 열심히 말씀 뒤에 있을 아름다운 열매를 바라보면서 달려가겠습니다.






박인수목사

2006-04-21 04:13:21

"금요일(십자가, 고통)을 바라보며 사는 사람은 늘 불행의 그림자에 가리워서 살 수 밖에 없지만,
주일(부활, 환희)을 바라보며 사는 사람은 항상 행복의 햇빛을 받으며 살아가는 법이다."

한때 쓰러져 거동하지 못하던 때가 있었습니다.
산 중 기도원에 누워있으면서 창으로 보이는 하늘이 너무 고와 정말이지 딱 한번만이라도 내 힘으로 일어나
하늘을 이고 걸어보았으면 소원이 없을 것 같은 때가 있었습니다.
그리고 소라빛 하늘을 작은 창틀을 통해 보면서 얼마나 혼자 울며 기도했는지 모릅니다
하나님은 기도에 응답하셔서 걷게 해주셨습니다. 처음에는 열걸음을 제대로 걷지 못했지만 점차 원래 대로는 아니지만
걷게도 하시고 뛰게도 해주셨습니다
처음 걸을 때 그것만으로 감사가 넘쳤으나 시간이 지나면서 저는 또 다른 문제에 넘어지고 쓰러지면서 작은 것에 감사하는
마음을 잃어버렸습니다.

생명을 주신 것만으로도 감사한데
소명을 주셨으니 그 소명대로 살게해달라고 기도하고
그 소명에 걸맞는 또 다른 것들을 욕심내며 살았습니다
복음을 전하고 구원의 감격만을 전하는 것만으로도 충분히 황홀했던 그 시절 그마음을 나는 너무 쉽게 잊어버렸습니다

나는 늘 현실에 매여 금요일의 인생을 살았고 지금도 그 시간을 살고 있음을 고백합니다

요즘 제자 훈련의 생활과제 중 하루 다섯가지 감사를 찾으며 내 인생에 얼마나 많은 감사가 있는지
내 인생이 얼마나 행복한지 새삼 깨닫고 있습니다

문제는 늘 내 마음의 문제입니다.
새우잠을 자도 고래꿈을 꾸는 비결은 내 영혼이 살아계신 주님과 함께 동행하는 것입니다
말씀이 나를 읽게 하고 그 말씀에 내 영이 순종하는 것입니다
목사로 설교자로 말씀에 다가서는 것이 아니라 주님 앞에 부끄럼 많은 인간으로 설때 주님은 나의 주인이 되어주셨습니다

말씀과 기도로 내 영혼의 정원을 돌보기 시작하며 정원에 꽃이 피고 새들이 찾아왔습니다
매일 매일 부활의 그 아침을 맞으며 행복합니다

세 아이들과 아침마다 미소국을 끓여 주는 아내가 있는 것만으로도 나는 행복합니다
아이들을 학교와 유치원에 데려다 주고 열다섯평이 안되는 작은 공간이지만 저에게 허락하신 그 생명의 문을 열며 나는 황홀합니다

박성옥 선교사

2006-04-21 04:59:11

이번 주일은 마음이 벅차오르는 기쁨과 감사가 있는 기대되는 부활주일이었습니다. 사망의 권세를 깨뜨리고 부활하신 주님! 내게도 찾아와 주셔서 절망적이고 어두웠던 것들을 깨어버리고 부활의 영광으로 바꿔주신 주님을 찬양합니다.
저와 같이 기도하던 자매님도 절망적인 일들을 주님의 부활하심으로 인하여 다시 살아나게 하시니 감사합니다.
모든 성도들이 죽음의 무덤에서 부활의 영광을 보리라 확신합니다.
이번 주일의 말씀으로 내 영혼을 부활시켜 주심을 감사드립니다.

배미화

2006-04-21 06:33:32


선생님이 기말고사에 나올 부분을 꼭꼭 찝어서 힌트를 주시는데, 나랑 상관없는 듯(내 방식대로 시험공부 한답시고), 창문너머 먼 산을 바라보는.........
그런 마음으로 지금까지 부활절을 맞이한것이 아닌가 생각하니, 너무 죄송합니다. 깊이 회개합니다.

「 예수님의 부활은 바로 나의 부활이다. 예수님은 죽으실 필요도 없으셨고, 부활하실 필요도 없으신 분이다. 그 분이 부활하신 것은 오직 나 때문이다. 내 부활을 대신해 주신 것이다. 그래서 부활에서 정말 중요한 것은 그 분의 부활과 내가 연합하는 것이다. 절대로 떨어지지 말아야 한다. 믿음의 접착제로 온전히 하나가 되어야 한다. 이것이야말로 부활의 능력을 완벽히 체험하고 누리는 길이다.
‘그의 부활을 본받아 연합한 자가 되리라’(롬6:5)
예수님의 부활은 곧 나의 부활이다. 」

주님의 부활의 능력이 나에게도 임하기를 간절히 기도합니다.

조정현

2006-04-21 06:41:20

리플을 읽으면서 마음이 괜히 좋아집니다..
나의 주변에 이렇게 많은 예수님의 제자가 함께 있다는 사실에 괜히 행복해졌나봅니다..

월요일날 목사님의 설교를 읽고 계속 우리는 토요일의 삶을 사는자와 같다는 말씀이 머리속에서 떠나지를 않았습니다...나의 삶에 선택권을 철저하게 나에게 맡기신 예수님..나의 어떤 선택(주일을 바라보는 삶)이 예수님을 기쁘게 해드렸고 또 어떤 선택(금요일을 바라보는 삶)이 예수님을 눈물짓게 만들었었는지 뒤돌아 봐집니다..

오늘 다시 말씀을 받으며 "말씀의 능력은, 내가 그 말씀과 똑 같은 위기에 처해 있을 때에 그대로 적용할 때 그 위력을 발휘한다. 힘들수록 말씀을 놓치지 말아야 한다. 정말 힘들수록 그 말씀을 실천해야 한다....."라는 말씀에 정말 그렇구나..라는 깨달음을 얻습니다..나의 머리속으로 말씀의 능력을 제한할때가 얼마나 많았는지..말씀과 똑같은 위기에 처있는 그순간 우리의순종으로 말씀이 온전히 역사하시고 그힘을 발휘할수 있게 된다는 것을 새삼 깨닫습니다..

저번주에 저희 교회 성도님의 아버님께서 돌아가셨습니다..지병이 있으셨지만 죽음에있어 마음의 준비는 역시 힘든것 같습니다.오늘 일본으로 돌아오셔서 목사님께서 지금 성도님의 집으로 가셨는데...그 아버님께서는 예수님을 영접지 못하고 돌아가셨습니다..무슨말로 위로를 해줘야할지 막막하기만 했습니다..가까이에서 죽음을 맞이하는 사람을 바라보며 예수님의 시체만 찾는 마리아가 아니라 정말 예수님께 연합한자된 내가되게하여주심을 ..부활의 능력을 내게도 허락하신 하나님께 오늘은 더없이 감사하기만 합니다..

오성훈

2006-04-21 07:28:24

예수님께서 도마에게 하신 말씀 중에 "보지 못하고 믿는 자들은 복 되도다"하신다. 많은 사람들이 예수 그리스도의 부활을 이야기하려고 하면 어떻게 그런 일이 있을 수 있느냐고 부정한다. 이는 한 아기의 탄생의 신비가 이해되지 않는다고 아기의 생명자체를 부정하는 것과 같을 것이다. 그러므로 예수님의 부활을 보지는 못하였지만 믿음으로 부활의 주님을 인정할 때 목사님의 말씀에서와 같이 믿음으로 부활의 주님을 볼 수 있는 행복한 사람이 될 수 있을 것이다. 그러나 부활의 주님을 이 부활주간을 통하여 잠깐 묵상하는 자가 아니라, 부활의 주님을 날마다 내 생활속에서 만나기 위하여, 부활하신 주님에 대한 사랑을 내 마음속에 채워 나갈 때 부활의 주님이 내 삶속에 더욱 풍성하게 역사하실 것이다. 부활의 주님을 사랑하는 마음이 마음속에 날마다 가득 채워 질 수 있기를 오늘도 기도드린다.

木下 

2006-04-21 07:56:30

「たいへんな時ほど、御言葉を放してはならない。本当に辛いときほど御言葉を実践しなければならない。」 改めてイエス様が私たちのために最後まで御言葉のとおりに神様の御心に従順されたことに感謝しました。

백인화

2006-04-21 08:56:43

남편을 따라 삿뽀로로 떠나는 자매님과 마지막 속회예배를 드리며 411장 예수 사랑하심은을 찬양한 후에 자매님이 하는 말이 천국에서 이렇게 다시 만날 것을 생각하니 그렇게 슬프지만은 않다고 한다. 그 말을 들으며 우리가 세상 떠나가는 날 천국에 갈 수 있도록 십자가의 고통과 죽음을 이기시고 부활하신 주님의 은혜가 얼마나 크고 귀한 것인지 다시 한번 깨닫게 되었다. 지난 한달동안 참으로 많은 일들이 있었고 은혜가 있었고 깨달음이 있었음에도 불구하고 그대로 실천하지 못하며 내 의지대로 살았었는데, 그것이 다 내 마음에 부활에 대한 믿음이 없었기 때문이었음을 이제야 알게 되었다. 때로는 죽음이 두렵기까지 했던 나의 모습을 보며 주님이 얼마나 안타까워하시고 마음이 아프셨을지 생각해 보니 목이 콱 막혀온다.
예수님께서 친히 말씀하셨다. '내가 곧 부활이요 생명이니', '너희는 이 모든 일의 증인이라'. 나는 부활과 영생의 증인이다. 세상이 감당할 수 없은 부활의 용사가 되기 위해선 내 안에 부활의 능력을 믿고 소망하는 마음이, 영생에 대한 확고한 믿음이 흘러넘쳐야만 한다. 다른 사람을 변화시키려고 노력하기 전에 먼저 나 자신부터 변화되어야 한다.

인선정

2006-04-21 09:38:23

목사님 설교 중에 제 눈에 확 닿는 글은 인생은 토요일이다라는 소제목이었습니다. 제목만 보고도 행복해지더군요. ^^; 아주 잠깐이지만, 인생이 늘 토요일만 있다면 얼마나 행복할까 하는 생각이 들었습니다. 하지만, 예수님의 부활을 의미하는 일요일은 교회 친구들과 만날 수 있고, 놀러갈 수 있고, 늦잠 자고 쉬는 토요일의 차원을 넘어 세상이 줄 수 없는 예수님만이 우리에게 주실 수 있는 영원한 선물인 부활의 세계로 들어가는 것이겠지요.
지난주 주일학교에서 주일학교 고학년 친구들이 부활에 대해 설명하는 선생님에게 부활이 어떻게 있냐고 하는 솔직하고, 싸가지 없고, 슬픈 질문을 하더군요... -_-;; 더구나 어떤 친구는 예수님이 부활한 후 언제 돌아가셨느냐는 황당한 질문을 하더군요. (물론 저도 그 나이 때는 참으로 의심 많고 무식하고, 버릇없이 주일학교 선생님을 대했습니다. 감추고 싶은 과거가 주마등처럼 스치더군요... ㅠ.ㅠ) 그 질문에 대해 선생님은 도마의 예를 들면서 부활하신 예수님께서 도마에게 하신 말을 인용해 보지 않고도 믿는 자가 복이 있다고 설명해주었습니다. 고학년 친구들을 보면서 예수님의 부활은 믿음의 첫관문이기도 하고, 어쩌면 마지막 관문이기도 하다는 생각이 들었습니다.
예수님의 부활의 기쁨과 희망을 늘 상 온몸으로 느끼며 생활하는 사람은 드물다고 생각합니다. 하지만, 아픔과 고난 가운데 처할때 부활의 기쁨과 소망을 잊지 않고, 가슴에 품고 산다면, 세상이 주는 토요일의 안식과 즐거움과 휴식을 넘어, 영혼은 변함없이 하나님께서 주시는 축제와 같지 않을까 하는 생각이 들었습니다.

이소진

2006-04-22 02:23:22

학기가 시작하고 바쁜 가운데 제자훈련과 속회를 함께 병행하는 것이 너무 힘들어 무리라고 생각하며 한주를 보냈는데 예수님의 고난과 부활을 통하여 지금의 상황이 힘들어도 포기하지 않고 해야겠다고 다짐했습니다.
지금도 내가 할 수있을까라는 불안과 초조함이 없는것은 아니지만, 예수님의 부활을 믿듯이 나에게도 이겨내는 믿음과 부활의 힘이 있을것이라고 생각합니다.
힘들고 바쁠수록 기도와 믿음으로 이겨내고 싶습니다.

홍인기

2006-04-22 08:04:57

고난과 부활, 상반된 상황에서 나는 어디를 보고 있는지 되돌아 보게 되는 한주였습니다. 십자가의 고난을 신앙생활 하면서 너무 강조하진 않았나 하는 생각이 듭니다. 예수님의 진정한 파워는 물론 나를 위해 십자가를 지신 그 사건또한 너무도 중요하지만 주님의 부활이야 말로 나에게 희망이고 진정한 기쁨이라는 사실을 이번 한주를 통해 깨달은것 같습니다.
금요일에 집착하지 않고 일요일을 기대하는 제가 되고 싶습니다.
진정으로 주님의 나를 사랑하사 십자가 사건으로 나의 죄를 씻어주심을 감사드리고 또한 부활하신 주님을 마음속 깊히 찬양합니다.

김철중

2006-04-22 08:30:23

지난 부활주일을 경험하면서 나에게는 왜 부활의 감격이 없을까 생각해 보았다. 단지 고난주간 새벽기도가 끝나서 좀 기쁘다는 생각이 들 뿐이었다. 원인은 십자가의 사건이 나의 사건이 되지 못하기 때문일 거라는 생각이 들었다. 아니 어쩌면 나는 십자가의 사건이 나의 사건이 되는것을 두려워하고 있는지도 모른다는 생각이 들었다. 제자 훈련생답게 담대하게 신앙생활을 해야하는데... 너무 부족하다...

김정아

2006-04-22 19:18:14

예수님을 믿는 우리에겐 .... 부활의 소망이 있어서 얼마나 감사한지요... 금욜이 아닌 주일을 바라보며 살수 있다는 것이 참 감사합니다.
그러나 막상 현실 속의 어려움과 고난 속에 있는 우리들은 금요일을 바라봅니다. 왜냐하면 정말 목사님 말씀처럼 경험하지 못한 주일보다 경험했던 금요일을 신뢰하기 때문입니다...
그런데 예수님은 보지 못하고 믿는 자들이 복 되도다... 라고 말씀하셨습니다... 전 이말씀이 최근 들어서 너무 좋습니다... 보지 못하고 믿는 자는 복되도다...
볼수 없는 중에.. 아직 이루어지지 않은 중에 주님을 믿음으로 신뢰함으로 내마음은 이미 이루어져 있음을 알 수 있습니다... 다가오지 않은 미래에 ... 앞으로 다가올 문제속에서 그 문제를 통해 역사하시는 하나님을 믿고 그 문제 너머에 있는 소망을 본다면 ,..... 그것만으로도 이미 내 마음은 기쁨으로 가득찹니다... 부활절을 통해 부활의 예수님을 기억하며 또한 그 부활이 내 부활이 되게 하신 하나님께 감사드립니다.

노재훈

2006-04-23 02:18:43

부활절만되면 늘 이렇게 감사하고 사는지.... 늘 언제나 부활신앙을 가지고 사망에서 이기신 예수님을 언제나 나의 삶에서도 적용하여 세상과 싸워 이길수 있도록 기도 합니다.
일에서도 주님의 부활을 생각하고 성공적으로 살수 있도록 부활이 나의 힘의 원천이 될수 있도록 ...365일 늘 부활의 삶을 살수 있도록 기도합니다.

김경희

2006-04-23 16:18:00

말씀을 통해서도 큰은혜를 받았지만,리플을 통해 귀한 은혜를 받았습니다.
주님의 고난에 비할수도 없지만 모두들 작은 고난을 받고 있구나...
그렇지만 고난을 말씀으로 이겨내고 새힘을 얻고 있는모습들을 보며,
저 또한 말씀을 삶속에 적용해가며,부활하신 승리의 주일을 바라보는
활기찬 신앙인이 되겠습니다.

정한나

2006-04-27 16:43:29

부활이 없다면?....ㅠ.ㅠ 정말 저는 고전15장 말씀처럼 세상에서 제일 불쌍한 자이겠지요. 예수 그리스도로 인해 부활을 믿고 또한 부활을 바라볼 수 있는 눈을 갖게 되고 부활과 연합할 수 있는 저는 오늘도 행복한 토요일을 사는 자입니다. 할렐루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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생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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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버지의 마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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영적 싸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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은혜의 사람 다윗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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다시 살리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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너희가 살리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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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나의 자녀교육

28
이용규목사 2006-04-24 1128
  110

부활의 용사

29
이용규목사 2006-04-17 635
  109

보배로운 피

30
이용규목사 2006-04-10 864
  108

하나님을 이긴 사람

22
이용규목사 2006-04-04 782
  107

주라 그리하면

22
이용규목사 2006-03-28 1255
  106

말이 인생을 바꾼다

20
이용규목사 2006-03-21 611
  105

요셉의 비밀병기

21
이용규목사 2006-03-14 719
  104

오병이어

20
이용규목사 2006-03-07 717
  103

순종 앞의 여리고

20
이용규목사 2006-02-28 682
  102

예수님의 심판기준

19
이용규목사 2006-02-20 837
  101

사랑의 오아시스

18
이용규목사 2006-02-15 597
  100

タビデの心

5
이용규목사 2006-02-14 490
  99

다윗의 중심

19
이용규목사 2006-02-07 889
  98

구원 받은 자의 모습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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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용규목사 2006-01-31 63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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