보배로운 피
말씀//벧전1:18-19
나는 예수님을 어떻게 알고 있을까?
그렇다면 나는 예수님을 어떻게 예우하고 있는가?
고난 주간을 맞이하여 이 두가지 질문을 스스로에게 던지면서 예수님의 은혜를 바로 깨닫고 예수님을 서운케 하지 않는 성숙한 성도의 모습을 찾아갔으면 한다.
예수님이 나를 위해서 해 주신 일이 도대체 무엇이기에 나는 예수님을 ‘나의 하나님, 나의 구세주’로 고백하지 않으면 안 되는 것일까?
믿음의 사람은 이것을 바로 깨닫고 누리는 사람이다.
예수님은 우리에게 감동과 은혜를 주는 수많은 말씀들을 해 주셨다.
세상의 많은 성인들도 그랬다. 그러나 예수님은 그 사랑을 말 뿐만 아니라, 직접 행동으로 보여 주셨다. 이것은 남녀노소 누구나 보면 깨달을 수 있는 사랑이요, 은혜였다. 이 주님의 모습이 나타난 주간이 바로 고난 주간이다. 고난 주간은 교회에서 뿐만 아니라 세상에서도 가장 귀한 주간이다. 우리를 사랑하시는 주님의 그 행동이 실제로 이 땅에 보여진 날이기 때문이다. 생명의 십자가가 이 세상에 세워진 주간이기 때문이다.
주님의 십자가는 참으로 보배롭다.
주님의 십자가는 참으로 능력이 있다.
주님의 십자가는 참으로 영원하다.
십자가에서 이 천국의 보배들을 캐내 보도록 하자.
1. 십자가와 금
세상에서 가장 능력 있는 것은 무엇일까?
세상에서 가장 보배로운 것은 무엇일까?
세상에서 가장 영원한 것은 무엇일까?
많은 사람들은 자신 있게 ‘금’이라고 대답한다. 그러나 그것은 오답임을 성경은 깨우쳐 주고 있다.
‘너희가 구속된 것은 은이나 금같이 없어질 것으로 한 것이 아니요
오직 흠 없고 점 없는 어린 양 같은 그리스도의 보배로운 피로 한 것이니라’(벧전1:18-19)
‘십자가의 도가 멸망하는 자들에게는 미련한 것이요
구원을 얻는 우리에게는 하나님의 능력이라’(고전1:18)
금이 아무리 능력이 있다고 하더라도 피조물의 능력에 불가하고, 금이 아무리 힘이 있다고 하더라도 생명을 구원할 수는 없다.
십자가의 그리스도의 피는 피조물의 능력이 아니라 창조주 하나님의 능력이다.(고전1:18) 그래서 피조물 중에서 가치 있다고 하는 금은 엄두도 못 내는 일을 하나님의 능력인 십자가는 단번에 모든 생명을 사망에서 건져 내신다. 십자가와 금은 아예 비교 대상이 될 수가 없다. 어찌 피조물과 창조주가 비교가 된단 말인가! 그런데 세상의 많은 사람들은 십자가의 피보다 재물(금)을 더 신뢰하고 좋아한다. 십자가보다 재물(금)에 훨씬 더 많은 관심을 가지고 있다.
금은 세계적으로 누구나 다 좋아한다. 올림픽에서도 우승하는 사람에게는 반드시 금메달을 준다. 그리고 세상 금의 60%는 각국의 중앙은행에서 보관하고 있다고 한다. 민족적으로 보면 한국 사람이 금을 제일 좋아하는 것 같다.
한국에서 제일 많은 성씨가 ‘金’씨 임을 보면 잘 알 수 있다.
미국인들 중에 GOLD(금)이라는 성씨를 가진 사람은 아직 본 적이 없다.
얼마나 금을 많이 같고 싶었으면 이름을 다 금이라고 지었을까?
그렇다면 일본은 어떤가? 일본도 만만찮다. 일본 사람들은 돈을 ‘오카네’라고 부른다. 금이라는 ‘카네’라는 말에 존칭어인 ‘오’를 붙여서 그것을 돈이라고 한다. 금을 얼마나 사랑하고 경외하는 지 잘 알 수 있다.
사람들이 돈을 좋아하는 이유 중에 가장 중요한 것은 ‘금은 변색이나 부식되지 않기 때문’이란다. 그래서 우리도 믿음 중에서 귀한 믿음을 ‘정금 같은 믿음’이라고 한다. 무슨 일을 만나더라도 변하지 않기 때문이다. 이런 사람은 환란이나 핍박이 와도 요동치 않고 끝까지 그 자리를 잘 지키는 사람이다. 그런데 잘 변하는 사람이 있다. 조금만 어려워도 믿음의 모습이 금방 달라져 버린다. 그렇게 열심히 봉사하던 사람이 주일 예배도 제대로 잘 못나온다. 그런데 이보다 더 어려운 사람이 있다. 변하는 정도가 아니라 아예 없어져 버리는 사람이다. 여러 가지 시험으로 교회와 하나님을 떠나버리는 사람이다.
그런데 성경에 놀라운 사실이 기록되어 있다.
사람의 관점으로 보면 영원히 변하지 않을 것 같은 금을, 하나님은 ‘없어질 것’이라고 하셨다. 하나님의 관점에서 보면 금도 세상의 다른 모든 것과 같이 없어질 존재에 불과한 것이기 때문이다. 그리고 무엇보다도 십자가의 그리스도의 피와 비교했을 때 얼마나 보잘 것 없는 존재인가를 잘 보여주고 있다. ‘정금 같은 믿음’도 귀하게 보이지만, 진짜 귀한 믿음은 ‘보혈 같은 믿음’이다. 정금 믿음은 변하지 않는 특성만 가지고 있지만, 보혈 믿음은 생명의 보혈이 늘 공급되므로 그리스도의 장성한 분량으로 성장하는 믿음이기 때문이다.
십자가의 그리스도의 피는 세상의 금과는 비교도 안될 만큼 ‘보배’롭고, ‘영원’하고, ‘능력’ 있음을 성경은 정확하게 지적해 주고 있다.(18,19)
선택이 그 사람을 나타낸다.
무엇을 선택했는지만 보면 그 사람이 어떤 사람인지를 금방 알 수 있다.
롯은 사람의 눈으로 볼 때는 마치 여호와의 동산 같이 보이는 곳을 선택했다. 그러나 그는 결국 소돔과 고모라를 선택하는 어리석음을 범하게 되었다.
비록 그것이 지금 내 눈에는 여호와의 동산같이 좋게 보이더라도 하나님의 관점으로 볼 수 있는 눈을 가져야 한다. 그래야 멸망의 구렁텅이에 빠지지 않는다는 사실을 명심해야 할 것이다.
이 고난 주간에 주님은 우리에게 물으신다.
‘왼쪽에는 100억엔 분의 금이 있고 오른쪽에는 십자가의 보혈이 있다.
너는 어느 쪽을 택하겠느냐?’
없어질 금을 택하겠는가? 아니면 영원한 생명의 보배이신 십자가의 보혈을 택하겠는가?
냉정하게 자신의 신앙을 점검하는 시간을 가져 보도록 하자.
사람의 선택의 기준은 ‘가치 기준’에 의해서 좌우된다.
당신의 마음이 금을 선택했는가? 금을 더 가치 있게 보기 때문이다.
당신의 마음이 십자가의 보혈을 택하였는가? 보혈을 더 가치 있게 보았기 때문이다.
여기서는 보혈을 택하고 싶은데 현실에서는 금을 택하고 있는가? 현실이 당신의 실제 모습이다. 당신은 보혈보다 금을 더 신뢰하고 있다. 믿음보다는 재물에 의해 움직이는 사람이다.
이것을 알아야 한다. ‘금’은 단지 온전한 보배의 모형일 뿐이다.
인생의 참 보배의 실체는 십자가의 보혈이다.
인생이 왜 힘들까? 돈이 없어서, 명예를 잃어서, 사랑을 잃어서… 아니다.
인생이 정말 힘든 이유는 하늘로부터 임한 보배로우신 그리스도의 피를 잃었기 때문이다.
참 생명의 보배요, 능력의 보배인 예수의 피를 잃었기 때문이다.
모형만 가지고 있는 사람은 허무하지만 실체를 가진 사람은 모형이 없어져도 아무렇지 않다. 모형(금)이 없어도 변함없는 행복과 즐거움을 누린다. 실체(십자가)를 소유하고 있기 때문이다. 이것이 바로 주의 보혈로 충만한 사람의 능력의 모습이다.
그러면 예수를 잃고도 아무렇지도 않는 사람은 왜 그럴까?
예수님의 보혈이 무능해서가 아니라 자신의 가치관이 무능하기 때문이다.
돼지에게 진주를 주지 말라고 했다.(마7:6) 돼지는 그 귀한 진주의 가치를 전혀 모르기 때문이다. 가치를 모르는 사람에게는 아무리 귀한 것도 귀찮은 것에 불과하다.
예수님에 대한 내 자신의 가치관은 어떤가? 진주보다는 먹이만을 달라고 하는 짐승 수준은 아닌가?
‘사람이 떡으로만 살 것이 아니요
하나님의 입으로 나오는 모든 말씀으로 살 것이라’(마4:4)
2. 십자가와 어린 양
‘오직 흠 없고 점 없는 어린 양 같은 그리스도’(벧전1:19)
성경은 예수님을 어린 양에 비유하고 있다. 이것은 물론, 구약 시대에 어린 양이 인간의 속죄 제물로 쓰였듯이, 이제는 예수님이 인간의 온전한 화목제물로 오셨음을 말해 주고 있다. 화목제물로 드려진 곳이 바로 십자가상이므로 십자가의 보혈이 구원의 능력인 것이다.
노르웨이에 가면 ‘양의 교회’라고 하는 크고 유명한 교회가 있다고 한다.
이 교회에 아름다운 이야기가 하나 전해 내려오고 있다.
그 교회를 짓는 과정에서 높은 종탑을 세우는데, 종탑 위에서 공사를 하던 사람이 그만 실수로 밑으로 추락을 해 버렸다. 바로 그때에 한 떼의 양무리가 그 밑을 지나고 있었다. 사람들은 심히 걱정을 하며 몰려 들었다. 그런데 놀라운 일이 벌어졌다. 높은 곳에서 떨어진 사람은 아무렇지도 않게 옷을 털며 일어나는 것이었다. 그런데 그가 떨어진 그 자리에는 그 사람 대신에 어린 양 한마리가 죽어 있었다. 그 사람이 양 위에 떨어져, 사람은 살고 양은 죽은 것이다. 사람들은 사람의 목숨을 대신하여 죽은 그 양을 기념하기 위하여 교회 이름을 ‘양의 교회’라고 하고 종탑 밑에는 양의 그림을 새겨 넣었다. 그래서 그 교회는 지금도 많은 사람들에게 감동을 주며 세계적으로 유명하다고 한다.
그렇다면 하나님의 어린 양이신 예수님은 어떤가?
그 분은 양이 아니라 하나님의 왕자였다. 오히려 우리가 양에 불과한 신분이다.
보잘 것 없는 양을 위해서 사람이 대신 죽었다고 생각해 보라. 그것도 실수가 아니라 일부러 말이다. 그리고 내가 바로 그 양이라면 어떻겠는가?
만약 그런 분이 있다면 자손 대대로 충성을 맹세할 것이다.
그런데 실제로 그런 분이 계신다. 그 분이 바로 예수님이시다.
우리는 이 귀한 예수님의 은혜와 사랑을 너무나 쉽게 잊어버리고 살아간다.
실수로 죽은 양 한 마리는 교회 이름까지도 ‘양의 교회’라고 지으며 그것을 기념하려고 하는데, 예수님에 대해서는 얼마나 기념하며 감사하고 있을까?
주님이 나를 대신해서 죽어 주신 이 고난 주간을 나는 어떻게 보내고 있는가?
주님의 십자가의 그 은혜에 어울리는 한 주간을 보냈으면 한다.
나를 살리기 위해서 온갖 고난과 수치를 다 당하시고, 생명의 보혈까지 내게 다 수혈해 주신 예수님께 어떻게 하는 것이 은혜에 조금이라도 보답할 수 있는 길일까?
주님은 내게 어떤 대접을 받고 계실까?
주님을 서운하게 하는 자는 배은망덕한 자이다.
은혜를 알고 고백하는 한 주간이 되자. 다음과 같이.
‘나 십자가 대할 때에 그 일이 고마워 내 얼굴 감히 못 들고 눈물 흘리도다
늘 울어도 눈물로써 못 갚을 줄 알아 몸 밖에 드릴 것 없어 이 몸 드립니다.’(찬송가141장)
말씀//벧전1:18-19
나는 예수님을 어떻게 알고 있을까?
그렇다면 나는 예수님을 어떻게 예우하고 있는가?
고난 주간을 맞이하여 이 두가지 질문을 스스로에게 던지면서 예수님의 은혜를 바로 깨닫고 예수님을 서운케 하지 않는 성숙한 성도의 모습을 찾아갔으면 한다.
예수님이 나를 위해서 해 주신 일이 도대체 무엇이기에 나는 예수님을 ‘나의 하나님, 나의 구세주’로 고백하지 않으면 안 되는 것일까?
믿음의 사람은 이것을 바로 깨닫고 누리는 사람이다.
예수님은 우리에게 감동과 은혜를 주는 수많은 말씀들을 해 주셨다.
세상의 많은 성인들도 그랬다. 그러나 예수님은 그 사랑을 말 뿐만 아니라, 직접 행동으로 보여 주셨다. 이것은 남녀노소 누구나 보면 깨달을 수 있는 사랑이요, 은혜였다. 이 주님의 모습이 나타난 주간이 바로 고난 주간이다. 고난 주간은 교회에서 뿐만 아니라 세상에서도 가장 귀한 주간이다. 우리를 사랑하시는 주님의 그 행동이 실제로 이 땅에 보여진 날이기 때문이다. 생명의 십자가가 이 세상에 세워진 주간이기 때문이다.
주님의 십자가는 참으로 보배롭다.
주님의 십자가는 참으로 능력이 있다.
주님의 십자가는 참으로 영원하다.
십자가에서 이 천국의 보배들을 캐내 보도록 하자.
1. 십자가와 금
세상에서 가장 능력 있는 것은 무엇일까?
세상에서 가장 보배로운 것은 무엇일까?
세상에서 가장 영원한 것은 무엇일까?
많은 사람들은 자신 있게 ‘금’이라고 대답한다. 그러나 그것은 오답임을 성경은 깨우쳐 주고 있다.
‘너희가 구속된 것은 은이나 금같이 없어질 것으로 한 것이 아니요
오직 흠 없고 점 없는 어린 양 같은 그리스도의 보배로운 피로 한 것이니라’(벧전1:18-19)
‘십자가의 도가 멸망하는 자들에게는 미련한 것이요
구원을 얻는 우리에게는 하나님의 능력이라’(고전1:18)
금이 아무리 능력이 있다고 하더라도 피조물의 능력에 불가하고, 금이 아무리 힘이 있다고 하더라도 생명을 구원할 수는 없다.
십자가의 그리스도의 피는 피조물의 능력이 아니라 창조주 하나님의 능력이다.(고전1:18) 그래서 피조물 중에서 가치 있다고 하는 금은 엄두도 못 내는 일을 하나님의 능력인 십자가는 단번에 모든 생명을 사망에서 건져 내신다. 십자가와 금은 아예 비교 대상이 될 수가 없다. 어찌 피조물과 창조주가 비교가 된단 말인가! 그런데 세상의 많은 사람들은 십자가의 피보다 재물(금)을 더 신뢰하고 좋아한다. 십자가보다 재물(금)에 훨씬 더 많은 관심을 가지고 있다.
금은 세계적으로 누구나 다 좋아한다. 올림픽에서도 우승하는 사람에게는 반드시 금메달을 준다. 그리고 세상 금의 60%는 각국의 중앙은행에서 보관하고 있다고 한다. 민족적으로 보면 한국 사람이 금을 제일 좋아하는 것 같다.
한국에서 제일 많은 성씨가 ‘金’씨 임을 보면 잘 알 수 있다.
미국인들 중에 GOLD(금)이라는 성씨를 가진 사람은 아직 본 적이 없다.
얼마나 금을 많이 같고 싶었으면 이름을 다 금이라고 지었을까?
그렇다면 일본은 어떤가? 일본도 만만찮다. 일본 사람들은 돈을 ‘오카네’라고 부른다. 금이라는 ‘카네’라는 말에 존칭어인 ‘오’를 붙여서 그것을 돈이라고 한다. 금을 얼마나 사랑하고 경외하는 지 잘 알 수 있다.
사람들이 돈을 좋아하는 이유 중에 가장 중요한 것은 ‘금은 변색이나 부식되지 않기 때문’이란다. 그래서 우리도 믿음 중에서 귀한 믿음을 ‘정금 같은 믿음’이라고 한다. 무슨 일을 만나더라도 변하지 않기 때문이다. 이런 사람은 환란이나 핍박이 와도 요동치 않고 끝까지 그 자리를 잘 지키는 사람이다. 그런데 잘 변하는 사람이 있다. 조금만 어려워도 믿음의 모습이 금방 달라져 버린다. 그렇게 열심히 봉사하던 사람이 주일 예배도 제대로 잘 못나온다. 그런데 이보다 더 어려운 사람이 있다. 변하는 정도가 아니라 아예 없어져 버리는 사람이다. 여러 가지 시험으로 교회와 하나님을 떠나버리는 사람이다.
그런데 성경에 놀라운 사실이 기록되어 있다.
사람의 관점으로 보면 영원히 변하지 않을 것 같은 금을, 하나님은 ‘없어질 것’이라고 하셨다. 하나님의 관점에서 보면 금도 세상의 다른 모든 것과 같이 없어질 존재에 불과한 것이기 때문이다. 그리고 무엇보다도 십자가의 그리스도의 피와 비교했을 때 얼마나 보잘 것 없는 존재인가를 잘 보여주고 있다. ‘정금 같은 믿음’도 귀하게 보이지만, 진짜 귀한 믿음은 ‘보혈 같은 믿음’이다. 정금 믿음은 변하지 않는 특성만 가지고 있지만, 보혈 믿음은 생명의 보혈이 늘 공급되므로 그리스도의 장성한 분량으로 성장하는 믿음이기 때문이다.
십자가의 그리스도의 피는 세상의 금과는 비교도 안될 만큼 ‘보배’롭고, ‘영원’하고, ‘능력’ 있음을 성경은 정확하게 지적해 주고 있다.(18,19)
선택이 그 사람을 나타낸다.
무엇을 선택했는지만 보면 그 사람이 어떤 사람인지를 금방 알 수 있다.
롯은 사람의 눈으로 볼 때는 마치 여호와의 동산 같이 보이는 곳을 선택했다. 그러나 그는 결국 소돔과 고모라를 선택하는 어리석음을 범하게 되었다.
비록 그것이 지금 내 눈에는 여호와의 동산같이 좋게 보이더라도 하나님의 관점으로 볼 수 있는 눈을 가져야 한다. 그래야 멸망의 구렁텅이에 빠지지 않는다는 사실을 명심해야 할 것이다.
이 고난 주간에 주님은 우리에게 물으신다.
‘왼쪽에는 100억엔 분의 금이 있고 오른쪽에는 십자가의 보혈이 있다.
너는 어느 쪽을 택하겠느냐?’
없어질 금을 택하겠는가? 아니면 영원한 생명의 보배이신 십자가의 보혈을 택하겠는가?
냉정하게 자신의 신앙을 점검하는 시간을 가져 보도록 하자.
사람의 선택의 기준은 ‘가치 기준’에 의해서 좌우된다.
당신의 마음이 금을 선택했는가? 금을 더 가치 있게 보기 때문이다.
당신의 마음이 십자가의 보혈을 택하였는가? 보혈을 더 가치 있게 보았기 때문이다.
여기서는 보혈을 택하고 싶은데 현실에서는 금을 택하고 있는가? 현실이 당신의 실제 모습이다. 당신은 보혈보다 금을 더 신뢰하고 있다. 믿음보다는 재물에 의해 움직이는 사람이다.
이것을 알아야 한다. ‘금’은 단지 온전한 보배의 모형일 뿐이다.
인생의 참 보배의 실체는 십자가의 보혈이다.
인생이 왜 힘들까? 돈이 없어서, 명예를 잃어서, 사랑을 잃어서… 아니다.
인생이 정말 힘든 이유는 하늘로부터 임한 보배로우신 그리스도의 피를 잃었기 때문이다.
참 생명의 보배요, 능력의 보배인 예수의 피를 잃었기 때문이다.
모형만 가지고 있는 사람은 허무하지만 실체를 가진 사람은 모형이 없어져도 아무렇지 않다. 모형(금)이 없어도 변함없는 행복과 즐거움을 누린다. 실체(십자가)를 소유하고 있기 때문이다. 이것이 바로 주의 보혈로 충만한 사람의 능력의 모습이다.
그러면 예수를 잃고도 아무렇지도 않는 사람은 왜 그럴까?
예수님의 보혈이 무능해서가 아니라 자신의 가치관이 무능하기 때문이다.
돼지에게 진주를 주지 말라고 했다.(마7:6) 돼지는 그 귀한 진주의 가치를 전혀 모르기 때문이다. 가치를 모르는 사람에게는 아무리 귀한 것도 귀찮은 것에 불과하다.
예수님에 대한 내 자신의 가치관은 어떤가? 진주보다는 먹이만을 달라고 하는 짐승 수준은 아닌가?
‘사람이 떡으로만 살 것이 아니요
하나님의 입으로 나오는 모든 말씀으로 살 것이라’(마4:4)
2. 십자가와 어린 양
‘오직 흠 없고 점 없는 어린 양 같은 그리스도’(벧전1:19)
성경은 예수님을 어린 양에 비유하고 있다. 이것은 물론, 구약 시대에 어린 양이 인간의 속죄 제물로 쓰였듯이, 이제는 예수님이 인간의 온전한 화목제물로 오셨음을 말해 주고 있다. 화목제물로 드려진 곳이 바로 십자가상이므로 십자가의 보혈이 구원의 능력인 것이다.
노르웨이에 가면 ‘양의 교회’라고 하는 크고 유명한 교회가 있다고 한다.
이 교회에 아름다운 이야기가 하나 전해 내려오고 있다.
그 교회를 짓는 과정에서 높은 종탑을 세우는데, 종탑 위에서 공사를 하던 사람이 그만 실수로 밑으로 추락을 해 버렸다. 바로 그때에 한 떼의 양무리가 그 밑을 지나고 있었다. 사람들은 심히 걱정을 하며 몰려 들었다. 그런데 놀라운 일이 벌어졌다. 높은 곳에서 떨어진 사람은 아무렇지도 않게 옷을 털며 일어나는 것이었다. 그런데 그가 떨어진 그 자리에는 그 사람 대신에 어린 양 한마리가 죽어 있었다. 그 사람이 양 위에 떨어져, 사람은 살고 양은 죽은 것이다. 사람들은 사람의 목숨을 대신하여 죽은 그 양을 기념하기 위하여 교회 이름을 ‘양의 교회’라고 하고 종탑 밑에는 양의 그림을 새겨 넣었다. 그래서 그 교회는 지금도 많은 사람들에게 감동을 주며 세계적으로 유명하다고 한다.
그렇다면 하나님의 어린 양이신 예수님은 어떤가?
그 분은 양이 아니라 하나님의 왕자였다. 오히려 우리가 양에 불과한 신분이다.
보잘 것 없는 양을 위해서 사람이 대신 죽었다고 생각해 보라. 그것도 실수가 아니라 일부러 말이다. 그리고 내가 바로 그 양이라면 어떻겠는가?
만약 그런 분이 있다면 자손 대대로 충성을 맹세할 것이다.
그런데 실제로 그런 분이 계신다. 그 분이 바로 예수님이시다.
우리는 이 귀한 예수님의 은혜와 사랑을 너무나 쉽게 잊어버리고 살아간다.
실수로 죽은 양 한 마리는 교회 이름까지도 ‘양의 교회’라고 지으며 그것을 기념하려고 하는데, 예수님에 대해서는 얼마나 기념하며 감사하고 있을까?
주님이 나를 대신해서 죽어 주신 이 고난 주간을 나는 어떻게 보내고 있는가?
주님의 십자가의 그 은혜에 어울리는 한 주간을 보냈으면 한다.
나를 살리기 위해서 온갖 고난과 수치를 다 당하시고, 생명의 보혈까지 내게 다 수혈해 주신 예수님께 어떻게 하는 것이 은혜에 조금이라도 보답할 수 있는 길일까?
주님은 내게 어떤 대접을 받고 계실까?
주님을 서운하게 하는 자는 배은망덕한 자이다.
은혜를 알고 고백하는 한 주간이 되자. 다음과 같이.
‘나 십자가 대할 때에 그 일이 고마워 내 얼굴 감히 못 들고 눈물 흘리도다
늘 울어도 눈물로써 못 갚을 줄 알아 몸 밖에 드릴 것 없어 이 몸 드립니다.’(찬송가141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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은혜의 사람 다윗33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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30 コメント
장경옥
2006-04-10 21:39:15
오늘 목사님의 귀하신 설교를 읽으므로
은헤를 알고 고백하는 한 주간이 되도록 최선을 다 할렵니다
요사이 목적이 이끄는 40일 새벽기도 를 다니면서
주님의 사랑을 더 알아 나가고 있는 가운데
제 믿음을 과 신앙을 더 굳건 하게 키워 나갈려고 한답니다
목사님!잘 지내시죠!
전 목사님을 잊을수 없답니다^^
제가 가장 힘들때 좋으신 말씀으로
저를 도와 주셨기 때문이지요
여기 한국은 오늘 새벽녁 부터 단비가 내리네요
꽃잎을 떨구고 연두빛 잎을
재촉 하려는 비 인것 같습니다
빗소리에 그리움 담아
중앙영광 교회 홈피에 살며시 다녀 갑니다^^
시작 하는 월요일 이번 한주도 승리 하시길 바랍니다^^
정승은
2006-04-10 22:34:43
기간 중에도 끊임없이 부와 성공에 대한 가치와 기준들이 종종 내 마음을
흔들고는 했다.그런 나의 생각들을 이번주 말씀을 통해 좀더 명확하게 정리해
주시니,참으로 감사한다.
금과 돈 그리고 예수님의 보혈.어느 것을 선택할 것인가?!
예전엔 물론 돈이였다.
사실 몇년간 생활이 어려워지면서 돈에 대해 참으로 절실해 졌고,
지금도 필요하다!
하지만 돈과 예수님의 보혈과 바꿀 수는 없음을 마음속 기도를 통해
주님께 고백할수 있다.
사실,더 가난해 지는 모습을 생각해 보지는 않았지만,
반대로 내가 너무 부유해 졌을때는 종종 생각해 보았는데,
그때 지금과 같은 돈에 대해 겸손한 마음과 믿음을 지닐 수 있는가에 대해서
종종 생각해 보면서 주님께 기도했다.
절대 돈이 우상이 되어서 예수님을 잊는 끔찍하고,망칙한 일은 생기지 않게
마음을 붙들어 달라고 말이다!
만일 예수님을 만나지 못했다면,그 보혈의 은혜로 내가 씻기지 못했다면
난 오늘도 돈과 성공에만 집착하여 끌려다니는 채로,성공의 목적도,돈을 버는
목적도 오로지 나 자신과 가족만을 위하는 것이였을 것이다.
청지기의 삶에 대해서는 전혀 생각지도 못했을 것이다!
그리고 주님께서 때로 어려움과 고생스런 삶을 허락하시는 이유도
아주 조금은.. 알것 같다.내가 주님의 충성스런 청지기가 될 수 있도록
연단하고 계시다는 것이 아닐까 싶다.
그래서 철저하게 나를 비롯해 내가 소유한 모든 것을 누릴 수 있는 것은
십자가의 은혜임을,주님의 사랑임을 깨달으며,감사함으로,기쁨으로
,주님에 대한 소망으로 살아가길 바라신다는 사실을 깨닫게 해주심에
감사드린다.[그렇기 때문에 더욱 열심히 살아야 한다.돈도 가치있게
써야한단 생각이다.]
내가 고난주간과 부활주간에 대해 깊이있게 받아들이고 생각하게 된것은
바로 일년전 이맘때이다.많은 영적인 은혜와 주님의 사랑을 뜨겁게
체험했었다.그럼에도 일년도 지나지 않은 지금까지 주님의 십자가와 보혈과
사랑과 은혜를 얼마나 자주,매순간 경험하고,깨닫고,감사하며 살아왔던가?
눈물이 났다.너무 죄송해서..
내가 받은 은혜에만 기뻐하면서,그 순간들에만 집착하고 기뻐하며 할렐루야!
했었다.고난의 순간엔 감사도 잊었었다.
원망도,불평도 마음과 머릿속에 가득차서 하루종일 기도를 잊은적도 많았다.
정말 주님의 은혜로 초신자라면 초신자라고 할 수 있는 부족한 내가
만일 제자훈련을 받지 않았다면 나는 지금보다 더욱 부끄러운 모습으로
고난주간,부활 주간을 맞았을 것이다.
이제 내가 가야 할 길은 오직 하나.주님이 원하시는 길임을 잊지 말아야
할것이다.
평생 내가 붙들어야 할 것은 오직 십자가.
다른 것들에 붙들려 주님을 잊는 실수는 하지 말아야 할 것이다.
내가 보혈에 의지하며 기도해야 할 것은 날마다 회개와 감사하면서
작은 예수되기 위해 최선을 다하는 것임을 늘 마음판에 새겨야 할 것이다.
어느 누가 내 죄를 대신해서 십자가를 져줄 수 있단 말인가?
대답은 오직 예수님!
이런 주님과 함께 하는 내가 세상의 금에 붙들려 주님을 잊어버린다면,
언젠가 주님앞에 갔을때 어찌..어찌..주님을 뵐 수 있겠는가..
주님!제가 없어질 것들에 목숨걸지 말게 하옵시고,주님만 바라볼 수 있도록
연약한 저를 꽉! 붙들어 주옵소서!
일상에서 작은일 하나하나 하는 것도 주님의 영광과 기쁨을 위해 감사함으로
할 수 있도록,그래서 주님의 보혈이 결코 헛되지 않도록 최선을 다할 수
있도록 성령께서 인도하여 주시옵소서!아멘~
최현경
2006-04-10 22:41:17
인생을 살아가면서 이 사랑과 은혜를 잊고 살아갈 때가 얼마나 많았는지...
어제 설교시간에 목사님께서 "왼쪽에는 100억엔 분의 금이 있고 오른쪽에는 십자가의 보혈이 있습니다. 어느 쪽을 택하시겠습니까?"라는 질문에 내가 아직도 없어질 금과 보배롭고 능력있고 영원한 보혈을 저울질하며 살았던 것은 아닌가하는 생각에 가슴이 철렁 내려앉았다.
양같은, 아니 어쩜 양보다도 못한 나같은 못난 사람 살리시려고 그 귀한 목숨을 내놓기까지 순종하신 예수님께 나는 무엇으로 순종하며 살았던가... 내 삶이 주님의 귀한 피값으로 주고 산 삶이기에, 너무나도 가치있고 감사할 수 밖에 없는데, 나는 얼마나 가치있게 감사하며 살았던가...
주님! 주님 흘리신 보혈로 보배롭고, 능력있고, 영원한 생명을 얻게하심 감사하며 늘 그 감격에 잠겨 살아가는 인생이 되게 하소서...
木下
2006-04-11 03:44:52
김기웅
2006-04-11 12:21:12
내 생활에 일상성을 부여하신 하나님은 나를 가끔은 물질밖에 모르는
속물로 만들기도 하십니다. 하.나.님.. 저는요...
그 일이 고마와 눈물밖에 흘릴것이 없는 그런 사람이 되고 싶습니다.
근데 잘 않 됩니다. 하.나.님..죄송합니다.
최현숙
2006-04-11 17:57:18
*설교말씀 읽고 은혜 많이 받았으면 좋겠습니다.
컴앞에 꼬박 4시간을 움직이지 않고 애쓰는 모습보면 그냥 무심히 읽을수 없는 저의 심정입니다. 목이 안좋으셔서 더욱 그렇습니다. 어제도 속회 나눔까지 종일 6시간 30분정도 소요된것 같습니다. 그리고 병원가서 물리치료 받고 오셨습니다.
그래도 너무 감사한것은 나눔이 풍성해서 좋은것 같아요. ~^^
유광옥
2006-04-11 20:55:22
그리고 십자가의 능력을 내가 더 깨닫을 수 있게 해달라고 기도하고 있다.
주님이 나를 선택하셨듯이 나도 주님을 선택하는 인생이 되고싶다.
긍정의 힘에서 한 남자가 대서양을 횡단하려고 승선권을 구입하고
승선권에 식사값이 포함되어 있는 것도 모르고 다른 사람이 호화로운 식사를
하는 동안 그 남자는 자기가 사온 비스킷과 치즈로만 여행을 하고 나서야
승선권에 식사값이 포함되어 있는 것을 알고 안타까워했다.
우리를 대신해서 모든 것을 치러 주셨는데 우리가 십자가의 능력과 은혜를
모르고 그것을 누리지 못한다면 승선권을 손에 쥐고도 알지 못하여 맛나는 식사를
하지 못했던 어리석었던 한 남자와 같을 것 같다.
주님의 십자가는 참으로 보배롭다.
주님의 십자가는 참으로 능력이 있다.
주님의 십자가는 참으로 영원하다.
십자가에서 이 천국의 보배들을 캐내고 십자가의 은혜를
맘컷 누리고 싶다. 고난주간 승리하는 한주간이기를 기도하면서...
라문진
2006-04-11 23:58:44
십자가를 보면서도 감동이 없으면 그건 자신의 사건으로 다가오지 않기 때문이라고..
그 당시 많이 기도했습니다. 예수님을 더 알고 싶다고, 십자가의 사건이 내사건으로 다가오기를...
이번 고난주간을 통해서 다시 한번 예수님을 더 간절히 알기를 기도합니다. 십자가의 사건이 나의 사건으로 다가오기를 간절히 기도합니다.
오늘 새벽에 찬양드렸던 "135장 갈보리산위에" 찬송이 입속에서 계속 머무는 하루입니다.
"최후승리를 얻기까지 주의 십자가 사랑하리
빛난 면류관 받기까지 험한 십자가 붙들겠네"
박정선
2006-04-12 06:35:01
예수님은 가장 보배롭고 귀한 것을 보잘것 없는 날 위해 주저없이 주셨는데, 난 왜 이렇게 불만과 불평 인색한 마음을 넓히는데 시간이 오래 걸릴까요.
우리 하나님의 은혜를 알고 고백하는 한주가 되기를 기도합니다.
김민정
2006-04-12 11:39:26
우리 아이들에게 예수님께서 지신 십자가의 고난을 잠시 체험하면서 그 사랑을 깨닫게 하고 싶었습니다.
그런데 참 어리석은 저였습니다. 그 십자가를 만들면서 예수님의 은혜를 생각하기 보다는 하나의 일로 생각했습니다. 그래서인지 평소에 잘 나오던 아이들이 많이 나오지 않았는지도 모르겠습니다.
예수님, 그때 마음이 얼마나 아프셨나요... 제가 예수님의 은혜 앞에 바로 서야하는데 오히려 예수님의 사랑을 모르는 자가 되어버렸어요...
예수님, 같은 실수는 그만하고 바로바로 배우고 싶은데, 저는 항상 뒤 늦게 배우는 나머지 공부반 학생입니다.
그래도 예수님, 저는 예수님이 제일 좋아요. 제가 예수님을 얼마나 사랑하고 있는지 아시죠?
제게 아무것 없어도 예수님 계시므로 젤 큰 힘이 됩니다.
김경희
2006-04-13 05:23:27
많이 있었습니다.
이정도라면 괜찮겠지,하며 나를 합리화 시키며 두리뭉실 넘어갈때도 많이 있었습니다.
이제부터는 주님이라면 어떻게 하셨을까?
다시한번 생각하며 믿음안에서 진실한 선택을 해야겠습니다.
배미화
2006-04-13 07:24:26
첨엔 여러모로 부담스러워 포기하고 싶은 맘이 굴뚝 같았지만, 시간이 흐를수록 은혜롭고, 유익한 시간이였으며 나름대로 많은 열매도 거두었습니다.
주님의 은혜에 감사할 따름입니다.
정말로 잘난거 하나없는 나를 자녀삼아 주시고, 내 안에 있는 나쁜 것들을 하나씩 하나씩 변화시켜 주시고 참인간 될수있게 훈련시켜 주셔서 너무 감사합니다.
예수님의 희생이 헛되지 않는 삶을 살겠습니다.
인선정
2006-04-13 10:00:05
은주언니는 술을 참 좋아합니다. 언젠가 언니에게 이렇게 얘기할 기회가 있었으면 좋겠습니다. 술을 마셔보지 못하는 사람에게 술맛과 술취함의 기분을 설명하기 어려운 것처럼 예수님과 만나지 못한 사람에게 예수님과 함께 하는 기쁨과 예배의 기쁨을 설명하기 어렵다고요. 은주 언니 부활절에 교회 꼭 오시라고 전화해야 될거 같습니다. ^^;
박순애
2006-04-13 17:55:36
십자가는 아무도 흉내 낼 수 없는 것이다. 그 흘리신 보혈을 대신 할 수 있는 것도 세상에는 없다. 예수의 이름은 부르기만 해도 치유와 평안을 가져다 주는 힘을 가지고 있다. 이것이 본질이다. 십자가의 고통이 없었다면 분명 부활도 없을 것이기에 우리 그리스도인에게 있어 십자가의 본질은 가장 붙들어야 할 주체이다. 그러나 내 삶을 돌아 볼 때 십자가 보다는 부활의 영광만을 누리려하는 어리석음을 가지고 있다. 본질보다는 겁데기를 가지고 살아 볼려고 하는 것 같다. 고난이 있음으로 인하여 진정한 영광이 있음을 다시 한번 느끼고 감격하는 고난 주간을 보내고 싶다.
"금"은 삶에 있어서 꼭 필요한 것이다. 그러나 피조물에 불과하다. 창조주를 따르지 못하고 피조물에 연연하다보면 결과는 불 보듯 뻔히다. 피조물은 창조주가 결코 될 수 없다. 물질로 힘이 들면 신앙도 약해지는 사람들을 많이 만나게 된다. 아니 나에게도 그러한 면이 있다. 더 기도하고 주님을 붙들고 이겨내야지 마음은 그런데 자꾸 현실을 따라 가려한다. 그것이 마귀의 유혹인 줄도 모르고 ... 주님은 머리둘 곳도 없이 이 땅에 사셨는데 나는 먹고 사는 것에 내 마음을 너무 두고 나의 것을 소유하고 싶어서 믿음따로 욕심따로인 삶을 살았던 것은 아닐까 회개하게 된다. 어떤 유혹이 오고 시험이 와도 흔들리지 않도록 십자가의 본질을 꼭 붙들고 살아 부활의 영광에 부끄럽지 않아야 겠다.
* 처음으로 리플을 달면서 새삼스럽지만 "정말 좋은 세상이구나" 하는 생각을 해 봅니다. 앞으로 함께 은혜나누고 함께 성장해 갈 수 있기를 기도합니다.
행복한 사모^^*
김성섭
2006-04-13 19:56:41
우연히 사람을 대신해서 죽은 양을 기념하기 위해서 교회 이름을 양의 교회로 부르며 양의 희생을 기념한다면, 창세전부터 구원계획을 세우시고, 주님 스스로의 의지로 십자가를 선택하시고, 그곳에서 당신의 모든 것을 다 쏟아부어주신 예수님, 나는 그 예수님을 얼마만큼 기념하고 감사하며 살고 있는지 돌아보니 가슴이 꽉 메어집니다.
찬송가 141장에서 믿음의 사람은 예수님의 십자가가 너무나 고마워 '얼굴 감히 못 들고 눈물' 흘렸지만 저는 예수님의 십자가사랑을 너무 자주 잊고 사는 부끄러움 때문에 주님 앞에 고개를 들지 못하고 있습니다.
"주님은 내게 어떤 대접을 받고 계실까?" 라는 목사님의 말씀이 자꾸 메아리가 되어 내 마음을 울리고 있습니다. 가슴이 꽉 막힙니다. 정말 지금처럼 대충 살아서는 안되겠습니다. 생명을 다해 예수님을 섬기겠다는 고백이 더 이상 입술의 고백에서 멈추어서는 안되겠습니다. 그래도 나 나름대로는 열심히 했어 라는 자기만족에 빠져 있어서도 안되겠습니다. 아니, 그럴 수 없습니다. 십자가에서 생명을 주신 예수님의 사랑을 생각한다면, 내가 주님께 드린 희생과 섬김과 그 모든 봉사가 도대체 얼마나 될 수 있겠습니까? 일평생 주님을 위해 산다고 해도 그 사랑에 만분의 일이라도 갚을 수 있겠습니까?
주님을 더 사랑해야겠습니다. 주님을 더 귀히 여겨야겠습니다. 사역때문에, 목적이 있어서, 목회 잘하려고, 주님을 만나는 것이 아니라 주님을 사랑하는 마음에서 그분과 더 깊은 교제의 시간을 가져야겠습니다. 지금보다 더 많이 주님을 찬양해야겠습니다. 주님의 보혈의 공로를 선포해야 겠습니다.
문득 주님을 위해 살 수 있는 시간이 그리 길지 않다는 생각이 듭니다. 매일 매일 어떻게 하면 예수님의 은혜에 조금이라도 보답할 수 있을까 물어보며 살아야겠습니다. 더 이상 헛된 것에 마음을 빼앗길 수 없습니다. 주님을 사랑하고 섬기고, 주님께서 맡겨주신 사명에 충성하기에도 시간이 짧습니다. 주님의 사랑, 너무 높고 너무 깊어 다 갚을 수 없지만, 조금이라도, 조금이라도 더 그 사랑에 보답하며 살고 싶습니다.
마준철목사
2006-04-14 03:48:04
저를 포함한 많은 사람들이 예수님의 십자가를 낭만적으로 생각하는 경향이 있는 것 같습니다. 그래서 예수님의 고난을 있는 그대로 느껴보기 위해 지난주일에는 교인들과 함께 영화 The Passion of Jesus Christ 를 다시한번 볼 수 있는 기회를 가졌습니다. 처음보신 분들은 무척이나 놀라시고 예수님의 고난을 조금이라도 느껴보는 좋은 시간이 되었던 것 같습니다.
오늘 말씀 중에 양의 교회의 아름다운 이야기를 들었는데요.... 아름다운 이야기라고 생각되면서도 그 죽은 양은 무슨 죄가 있나? 한번 생각해 봤습니다. 그러니까 그 양은 자기의 의도와는 전혀 상관없는 죽음이었다는 것입니다. 세상 사람들의 표현을 빌리자면 정말 재수없이 죽은 셈이죠.
그러나 우리 예수님의 죽음은 자신이 직접 선택한 죽임이었음을 다시금 깨닫게 됩니다. 구약의 속죄 제물들은 끌려가서 죽었지만, 우리 예수님은 당신의 발로 당당하게 십자가의 길을 걸어가셨던 것입니다. 왜 그러셔야만 하셨을까? 내가 구원받을 길이 그 길 밖에 없었기에....
온통 나에게만 모든 관심을 쏟아 주신 주님의 사랑을 받고 있으면서도 여전히 세상의 금이 주는 유혹에 기웃거리는 못난 자아를 발견하게 됩니다. 우리 예수님이 흘려주신 보혈이 정말 값있는 보혈이 될 수 있도록, 예수님이 주신 십자가가 정말 보람있는 십자가가 되기 위해 올해 고난주간은 예수님의 보혈만을 찬양하며 보낼 것을 결심합니다~
박인수목사
2006-04-14 04:15:23
십자가를 보고도 맹숭 맹숭하던 때가 있었습니다
십자가를 묵상해도 가슴이 차가웠던 때가 있습니다. 오늘도 여전히
그러다 가끔 언어로 표현할 수 없는 느낌에 눈물날때가 있습니다
이렇게 살면 안되는데...
스쳐지나가는 봄바람에도 인생을 느끼면서 나는 십자가의 생명이 느껴지지 않을때가 있습니다. 그러고도 십자가 앞에서 주님을 이야기하고 주님의 사랑을 선포하기도 합니다.
아! 그러고도 나는 목사로 서 있습니다.
아! 저는 정말이지 부끄러운 인간입니다.
하나님을 향한 수직의 영성과
내 사랑하는 여러분을 향한 수평의 영성의 교차점속에서 나는 길을 잃고 헤메일 때가 많습니다. 이렇게 살면 안되는데 말입니다.
목사님의 말씀대로 ‘선택이 그 사람을 나타냅니다’
생각해보면 인생이란 선택이란 점들이 연결되어 선을 이루어, 때론 직선의 길을, 때로는 곡선의 길을 이루어 결국은 지금의 내 인생을 만들어 낸 것 같습니다.
선택이란 가치의 표현일 것입니다.
저는 목사이기때문이 아니라 정념이 들끌던 시절, 방황과 목숨을 건 사투의 과정을 거쳐 실패를 통해 승리의 길을 이루신, 죽음을 통해 생명의 길을 이루신 주님의 십자가의 길을 선택했습니다. 아니 하나님에 의해 강요되어졌다는 것이 더 맞는 표현일 것입니다.
그러면서 한번도 이 길을 후회해본적이 없지만 도중에 포기를 모색했던 적도 있었습니다. 부끄럽습니다. 그러나 이게 저입니다.
십자가는 지고 가는 것이 아니라 안고 가는 것이라 믿으면서도 늘 지고 가는 느낌을 갖고 살아갈 때가 많았습니다.
영성이란 십자가를 향한 거룩한 몸부림이라 믿고 살고 그렇게 저를 다스려 가고 내 안에 계시는 성령님에게 지배당하기를 기도하고 있습니다.
이제 막 생명의 길을 걸어가기 시작한 교회 예배당에 매일 새벽 먼 길을 달려오시는 한분 성도님과 오늘 새벽 십자가를 묵상하며 이런 말씀을 나누었습니다
주님께서 십자가에서 우리 모두를 위해 죽음을 선택하시며 못 박히신 그 손에는 이미 목수로서 최선을 다해 하루하루를 살아오신 삶의 흔적인 굳은살이 박혀 계셨을 것이라고, 우리는 오늘 십자가를 향해 기도하며 일상에서 십자가를 향해, 십자가의 길을 열어주시는 주님께서 살아내신 그 한 시간 그 하루를 살고 있는가하고 기도하다 함께 울어버렸습니다
나는 십자가를 묵상하기엔 여전히 부끄러운 인간입니다
그러나 나는 눈물을 손등으로 훔쳐내며 다시 한번 뻔뻔 스럽게 기도합니다.
주님 저는 염치없는 인간이지만 주님의 사랑에 의지해 다시 한번 주님을 향해 일어서고 싶습니다. 제 앞에 십자가가 세워졌을때 준비되어진 하나님의 사람으로 그 십자가를 안고 싶습니다. 저를 인도하여 주시고 동행하여 주십시오.
박성옥 선교사
2006-04-14 04:33:36
흠없고 점없는 어린양이신 예수님께서 보잘것없는 나의 더러운 죄 때문에 그 고난과 고통을 겪으신 것을 생각해봅니다.
나는 얼마나 주님과 같이 희생하며 섬기며 사랑했는가 다시 한번 돌아보니 회개가 절로 나옵니다.
오늘도 주님의 모습을 조금이나마 닮아갈 수 있도록, 나 자신을 복종시키길 원합니다.
주여! 주님이 보여주신 그 사랑과 섬김이 나의 모습속에서도 나타나도록 인도하여 주시옵소서.
조정현
2006-04-14 05:17:10
고난주일을 시작하며 겨우 하루한끼의 금식으로 인간의 한없이 연약함을 깨달으며 주님의 나를 향한 놀랍고도 한없는 그 사랑을 절실히 느낍니다.
저도 이때까지는 정금같은 믿음을 달라고 기도했었습니다..그런데 오늘 말씀을 받으면서 나의 이 믿음이 변하지 않고 이대로만 가지고 하나님앞에 서게되면 ...생각만해도 자신이 없습니다..오늘 말씀을 통해서 더욱 귀한 기도 '보혈 같은 믿음'을 깨달으며 늘 공급되어지는 생명의 보혈을 통하여 그리스도의 장성한 분량까지 성장하는 내 자신이 되기를 기도해야겠습니다..
나의 인생이 힘들어 질때마다 '왜일까?'생각했지만 답은 찾을수 없었습니다..오늘 말씀으로 제게 정답을 알려주시는 하나님께 감사를 드립니다..내인생에 다시금 보배로운 그리스도의 보혈을 잃을 일은 없겠지만 한순간도 흔들리는 일이 없도록 기도합니다..
항상 십자가가 무겁고 크게만 느껴졌는데 요번 고난주일에는 예수님께서 십자가를 사랑하라고 달게지고 가라고 십자가만 붙들라고 말씀하시네요..그럴수 있는 힘을 주시는 예수님을 그 길을 먼저 걸어가신 예수님을 너무나 사랑합니다..
김경환
2006-04-14 06:10:53
목회자가 되어서 매년 맞는 고난주간이 특별새벽기도하고 금식기도 하자고 외치는 자리가 되었다. 외치는 가운데 문득 내 자신을 보게된다. 금식기도 하면 무엇이 변하고 있는가? 그저 지나가 버리는 형식적인 시간이 되지 말아야 할텐데... 하면서 오늘도 새벽과 금식으로 몸과 시간을 드리면서 살았다. 9년만에 주신 태의열매를 지켜나가면서 나의 마음이 주님보다는 아기에게 향하고 있는 나를 발견하고 회개한다. 내게 있어 가장 소중한 것은 예수님이여야 하는데 온 관심과 생각이 아기에게 집중되어 있기에 영적으로 피곤함을 많이 느낀다. 십자가의 보혈과 아기를 놓고 선택하라면 대답은 십자가의 보혈이지만 지금의 나는 솔직히 고민이 많이 될 것 같다. 어떻게 얻은 태의 열매인데.... 어떡하지? 하면서 대단히 고민을 많이 할 것 같다. 참으로 선택의 중요성을 알면서 그때그때 고민하게 되는 육신임을 부인할 수 없다. 이번 고난주간이 나에게 새로운 다짐의 시간이 된다. 한번 사는 인생을 예수님의 십자가로 인해 더욱 은혜를 사모하고 신실한 훈련생이 되어야겠다.
내게 관심의 제일 중심은 주님이여야겠다. 기다리고 기다리던 기도의 응답이 있어도 우선 보혈의 십자가를 바라보면서 주님과 함께 하나가되어 내게 주신 사명을 붙들고 달려가리라. 십자가의 은혜에 어울리는 남은시간이 되도록하겠습니다.
백인화
2006-04-14 06:32:50
보혈의 능력을 찬양하고 외치지만 정작 그 능력을 붙들고 의지하고 살아가는지 시간마다 점검하고 되새기지 않으면 너무 쉽게 잊어버리고 간과해 버린다.
나 자신만을 위해서 복 받기 원했던 안일한 믿음에서 보혈의 능력을 의지하여 예수님을 영화롭게 하는 믿음으로 한단계 자라나기를 간절히 소망한다.
예수님은 결코 실수로, 억지로 십자가를 지고 돌아가시지 않았다. 이 보좔것 없는 나를 위해 미리 계획하시고 그 계획대로 날 대신하여 십자가에서 돌아가셨다.죽을 때까지 아니 죽고 나서도 예수님의 십자가 사랑을 기억하자.
* 아내가 몸이 많이 아픕니다. 그래도 목사님 설교에 리플 달아야 한다고 머리싸미고 앉아 있다가 도저히 안되겠는지 자기가 쓸테니 대신 쳐달라고 부탁했습니다. 제자훈련 바로 받는 것이 쉽지 않다는 것을 새삼 느낍니다. 그래도 열심히 해야죠. 아프고 힘이 들어도 말입니다. 값싼 훈련을 통해서 진짜 제자는 만들어지지 않으니까요.
오성훈
2006-04-14 06:42:11
홍인기
2006-04-14 10:50:46
고난주간을 맞이하여 주님의 십자가의 은혜와 그 크신 사랑을 되새겨 봅니다.
박유진
2006-04-14 11:58:38
하지만, 그러한 감사와 감격은 오래 가지 않았고, 저는 다시 예전의 모습으로 돌아와 무덤덤한 마음으로 일상을 지내고 있었습니다. 저는 매일 예수님을 배반하는 사람이었습니다. 이번 고난주간도, 세상의 즐거움을 끊고 주님만을 묵상하리라고 다짐했던 것들을 지키지 못했습니다.
예수님, 이 강퍅한 마음을 가진 저를 용서해주세요. 제 마음에 주님의 보혈이 흘러넘치기 원합니다. 매일 매일 십자가로 인해서 감사하고 감격하길 원합니다. 바울의 고백처럼 나를 위해 죽으신 주님을 위해 살기를 원합니다.
주님, 감사해요...죽어야 마땅한 저를 구원해주셔서 감사해요...
주님의 귀한 보혈의 구원을 헛되이 쓰지 않도록 인도해주세요...
이소진
2006-04-14 16:48:38
고난주일을 통해 어떤 일 속에서도 이 고난 주일을 마음에 되새기려 노력했지만 한없이 부족함을 느꼈습니다.
나에게 새생명을 주신 그리스도의 보혈을 내 마음에 깊이 새기고 영원히 함께 하길 기도합니다.
십자가를 보면 내 마음에 감사와 감격이 끊이지 않길 기도합니다.
김정아
2006-04-15 05:00:04
오늘 저녁 그러니까 예수님이 십자가에 달리신 날이죠 목사님이 새벽기도때 두손들고 조금이나마 예수님의 고난을 느끼며 기도하자고 하실 때... 난 그런 나 자신을 하나님께 고백했습니다. 이젠 십자가를 보면서도 내 안에 무디어진 나의 강퍅한 마음이 열려지도록 기도했습니다. 그리고 그 고난을 묵상했습니다. 그의 찔림과 상함은 나의 죄때문임을 마음으로 고백했습니다.
새벽 말씀처럼 내 마음을 비디오로 찍으면 아마 이 교회에 계속 다니지 못할 것입니다.
그럴때 얼마나 감사했는지요... 그저 감사하다는 말밖엔 내가 할수있는 것은 아무것도 없었습니다. 내 허물을 십자가 뒤에 감춰 주시고 허물을 덮어주시는 예수님의 사랑을 느낄 수 있었습니다.
예수님의 그 고난을 100% 느끼고 깨닫지는 못하지만 조금이나마 예수님의 고난을 기억하며 묵상하며 살기를 원합니다.
김철중
2006-04-15 19:06:27
노재훈
2006-04-16 09:30:42
지영민
2006-04-18 15:49:39
정한나
2006-04-27 16:31:52