주라 그리하면
말씀//눅6:38, 사58:7-12
1. 예수님의 부자론
복 받는 것이나 부자 되는 것을 싫어하는 사람은 없다.
사람들은 누구나 한 푼이라도 더 많이 받고 싶어 하는 것 같다.
일본 TV뉴스에 한국 롯데 월드의 뉴스가 나왔다.
앞 전의 불미스러운 사건도 있고 해서, 고객 서비스 차원으로 롯데월드의 무료 입장 기간을 정했다고 한다. 의도는 좋았는데, 공짜라고 사람들이 너무 많이 몰려 들어서 40명이 부상을 당하는 또 다른 불미스러운 일이 발생해 버렸다.
어떤 사람은 부산에서 새벽 3시에 도착하여 5시간이나 기다렸는데 입장을 할 수가 없었다고 한탄을 했다. 롯데월드 입장권은 3000엔 정도라고 한다. 이 3000엔을 공짜로 얻기 위해서 부산에서 밤차로 왔다니 공짜의 힘, 물질의 힘이 얼마나 무서운지를 실감케 한다.
이처럼 사람들은 ‘받는 것’을 참으로 좋아한다.
그래서 우리 속담에도 ‘양잿물도 공짜라면 받아 먹는다’는 말도 있다.
그런데 만약 공짜로 ‘주라’고 하면 어떨까?
만약에 롯데월드 입장료를 보통의 2배인 6000엔의 날을 정하여 그 수익금을 불우 이웃을 돕는데 사용하겠다면 이렇게 많은 사람이 모일까? 이것은 그래도 생색낼 수 있는 명목이 있으니 소수의 사람들이 올 수도 있을 것이다.
그런데 아무 사회적 명목 없이, 회사의 어려움으로 매주 월요일을 입장료를 두 배로 받는다면 아무도 오지 않을 확률이 높다. 차라리 문을 닫는 것이 회사를 위한 일일지 모른다.
사람들은 주는 것보다 받는 것을 훨씬 더 좋아한다. 주는 것은 손해를 보는 것이고, 받는 것은 이익을 보는 것이라고 생각하기 때문이다. 그래서 많이 받아야만 그만큼 부자가 된다고 생각한다.
그런데 오늘 예수님은 우리에게, 세상과 정반대의 부자론을 말씀해 주시고 계신다.
예수님은 세상 뒤집기에 탁월하신 분이시다.
받는 자가 아니라 오히려 주는 자가 부자가 된다고 하신다.
받는 것보다, 먼저 주라고 하신다. 그러면 후히 되어 누르고 흔들어 넘치도록 하여 주신다고 말씀하셨다. 예수님은 거짓말 하실 분이 아니다. 그것도 그냥 주신다는 것이 아니라 4중의 강조를 통해서 약속하셨다. 얼마나 이 진리가 귀하고 진실인지를 잘 말해 주고 있다.
그런데도 예수님의 이 귀한 부자론을 믿지 않고 세상의 낡은 부자론을 따르는 크리스찬들이 얼마나 많은 지 모른다. 예배 때에는 말씀을 받지만, 삶 가운데서는 말씀을 버리고 세상 방식으로 세상 사람과 구분됨이 없이 살아가고 있는 것이다.
2. 기독교인의 모습
얼마 전에 한국에 갔을 때의 일이다.
택시를 타고 가면서 기사 아저씨에게 ‘혹시 예수 믿으세요?’ 하면서 복음을 전했다.
그랬더니, 갑자기 하는 말이, 자신은 종교가 없는데, 자기가 제일 미워하는 사람이 바로 기독교인이라고 하면서 기독교인들은 도대체가 베풀 줄을 모른다고 했다. 기독교인들은 택시를 타면 꼭 4명이 탄단다. 그리고 가는 목적지는 전혀 비슷하지도 않고 동서남북을 다 가자고 한단다. 그래서 기사 아저씨가 조금이라도 언짢은 표정을 지으면 ‘아저씨 승차 거부하는 거예요?’ 라며 금방 신고라도 할 기세를 보인단다.
그런데 불교신자들은 좀 다르단다. 비록 4명이 타도 ‘아저씨 미안합니다.’ 하면서 도중에 메타를 한번 꺾어 달라고 한단다. 그러면 갑자기 기분이 좋아진단다. 돈의 문제가 아니라 기분의 문제란다. 돈은 몇 푼 안되지만 그 말 한마디에 금방 기분이 좋아진단다.
값싼 물질로 값비싼 마음을 얻는다는 것이 베풂의 능력임을 알 수 있다.
조금만 선행을 베풀면 되는데도 기독교인들은 정말 인색하다고 한다.
그래서 그는 손님들의 말 속에 ‘집사님, 권사님’하는 말 만 들리면 그때부터는 얼른 입을 닫고 말을 안한다고 한다. 괜히 말했다가 본전은 고사하고 기분만 상하기 때문이란다.
기독교인들은 도통 남을 배려해 줄 줄을 모른다는 것이다.
이것이 한국의 한 시민의 눈에 비친 현대 기독교인들의 모습이다.
여러분은 어떻게 생각하는가?
그 분이 잘못 본 것일까? 아니면 우리가 잘못된 것일까?
과연 예수님을 욕먹이고 다니는 사람은 누구일까? 기독교인을 욕하는 그들일까, 아니면 예수님을 구세주로 믿는다고 하는 우리일까? 세상 사람들을 하나님으로부터 점점 멀어지게 하는 1등 공신은 과연 누구란 말인가?
예수님은 분명히 ‘먼저 주라’고 하셨다.
‘이같이 너희 빛을 사람 앞에 비취게 하여 저희로 너희 착한 행실을 보고 하늘에 계신 너희 아버지께 영광을 돌리게 하라’(마5:16)고 하셨다.
착한 행실은 분명히 사람들에 귀한 감동을 준다.
그 기사 아저씨의 마지막 말이 기독교인들에게 경종을 울린다.
‘굳이 예수 믿으라고 말할 필요 없습니다.
그들이 똑 바로 믿으면 안 믿으라고 해도 다 믿을 것입니다.’
예수를 믿되 말로만 믿지 말고 삶으로 믿어야 한다.
예수를 전하되 말로만 전하지 말고 삶으로 전해야 한다.
말만의 전도는 불신의 벽만 높이지만 삶의 전도는 스스로 나오고 싶은 마음을 준다.
3. 예수님을 닮은 사람은?
기독교는 이기주의자나 욕심쟁이, 자기만 생각하는 사람을 키우는 곳이 아니다.
기독교는 예수님을 닮게 하는 종교이다. 참 기독교인은 예수님의 모습을 재현하는 제자가 되어야 한다.
그러면 예수님의 가장 귀한 모습은 무엇일까?
과연 예수님이 자기만 생각하는 이기주의자였던가? 절대로 아니다.
예수님은 모든 것을 한없이 값없이 ‘주는’ 삶을 사셨다. 십자가가 그 증거물이다.
예수님은 죄인인 우리를 위해서 몸을 다 내어 주신 분이요, 생명을 내어 주신 분이다.
예수님을 가장 많이 닮은 사람은 어떤 사람일까? 예수님처럼 세상에 자신을 주는 사람이다.
예수님의 베풂의 모습이 삶에 베여 있는 사람이다.
예수님은 ‘주는 것이 받는 것보다 복이 있다’(행20:35)고 하셨다.
진짜 그럴까? 진짜로 주면 후히 되어 누르고 흔들어 넘치도록 받게 될까?
단지 영적인 복을 상징적으로 말한 것은 아닐까? 육적으로도 복을 받을 수 있단 말인가?
예수님이 말씀하시는 복은 분명히 상징적인 복이 아니라 현실적인 복이다.
이사야 58장에 그 구체적인 내용이 나와 있다.
이 장은 원래 금식기도의 장이다. 금식기도는 인간이 하나님께 은혜를 받을 수 있는 최고의 무기로 알려져 있다. 그래서 이스라엘 사람들은 큰 문제가 있을 때마다 그 문제를 해결 받기 위해서 하나님께 금식하면서 기도를 많이 하곤 했다.
그런데 오늘 본문에서는, 아무리 금식기도 해도 안 통하지만, 이것만 하면 치료를 급속하게 할 것이며, 영혼을 만족케 하며, 뼈를 견고케 하며, 물 댄 동산 같게 하리라고 했다.
여기서 말하는 ‘이것’은 다름 아닌 ‘주는 것’이다.
하나님께서는 금식으로도 해결할 수 없는 문제도, 이웃에게 선을 베푸는 자, 주는 자에게는 눈에 보이는 은혜로 분명히 보상해 주신다고 약속하셨다.
남을 열심히 도와 주면, 우리의 모든 삶은 하나님이 책임져 주신다는 말이다.
사람들은 흔히 이렇게 말한다.
‘내 자신의 일도 바빠 죽겠는데 어떻게 남의 일을 도와 줄 수 있겠어?’
‘내 한몸도 가누기 힘드는데 남을 어떻게 돌봐 줄 수가 있겠어?’
‘나도 입에 풀 칠하기 바쁜데, 남 신경 쓸 겨를이 어디 있어?’
루터는 이렇게 말했다.
‘평소에는 하루 1시간씩 기도하지만 요즘은 너무 바빠서 3시간 기도한다.’
바쁘니까 기도를 적게 하는 것이 아니라, 오히려 많이 한다. 왜냐하면 기도만이 그 바쁜 일을 해결할 수 있는 능력이기 때문이다.
기도는 장식품이 아니라 능력의 본질임을 아는 사람은 바쁠수록 기도를 많이 하는 것이 정상이다.
마찬가지로 우리는 인생이 힘들면 힘들수록 남을 열심히 도와야 한다. 그것이 바로 하나님이 나를 도와 주시는 원천이 되기 때문이다. 그것이 바로 자기의 인생을 돕는 최고의 길이기 때문이다.
내가 남을 1의 힘으로 도와 주면, 그 때 하나님은 나를 100의 힘으로 도와 주시기 때문이다. (후히 되어 누르고 흔들어 넘치도록 하여 너희에게 안겨 주리라-눅6:38)
주님 안에서 우리는 다음의 사실을 명심해야 할 것이다.
남을 위해서 남을 돕는 것이 아니라 자신을 위해서 남을 돕는다는 사실을.
그래서 인도의 거지는 동냥을 받을 때 절대로 감사하다는 말을 하지 않는다고 한다.
정작 큰 복을 받을 사람은 자신이 아니라 주는 사람이기 때문이란다.
남의 일을 도와 주는 것이 바로 자기 일을 최고로 잘 하는 지름길임을 명심해야 한다.
사업의 실패로 회사와 가족 모두를 잃은 어떤 사람이, 하나님과 자신에게 극도로 실망하여 삶을 포기하기 직전에 목사님을 찾아갔다. 상담을 통해서, 과거의 실수와 잃어버린 모든 것을 잊어 버리고 자기보다 더 큰 문제로 힘들어 하는 사람을 도와 주라는 말씀을 들었다.
그로부터 2주 후에 그는 완전히 다른 사람이 되어 교회에 왔다.
그는 고백했다. ‘제 평생 그토록 기쁜 적은 없었습니다. 너무나도 행복한 시간이었습니다.’
마약 중독자들을 도와 주면서 그가 하나님께 받은 선물이었다. 하나님의 선물은 여기서 끝나지 않았다. 놀라운 일들이 연이어 일어났다. 그는 일자리를 얻게 되었고, 살 집도 생겼다.
남을 돕기 시작함으로 자신의 인생이 바뀌기 시작한 것이다.
자신의 인생이 힘들다고 생각하면 할수록 더욱 남을 돕는 일에 힘써야 한다.
인생은 반드시 뿌린 대로 거둔다. 외로운 사람은 더 외로운 사람에게 기쁨을 뿌리고, 가난한 사람은 더 가난한 사람에게 물질을 뿌리고, 병든 사람은 더 아픈 사람에게 도움을 뿌려보라.
분명히 30배, 60배, 100배의 기쁨의 열매, 풍성의 열매, 건강의 열매를 거두게 될 것이다.
하나님은 창세부터 뿌리는 자에게 복을 약속하셨다.
씨앗을 뿌리면 열매는 당연히 맺히게 되어 있다. 이것이 하나님의 법칙이다.
그래서 뿌리는 것은 낭비나 손실이 아니라, 가장 가치 있는 일이요, 인류 최고의 투자법이다. 하나님이 ‘열매’라는 복으로 반드시 갚아 주시기 때문이다.
인생의 씨앗은 선행이요, 인생의 뿌리는 것은 ‘주는 것’이다. 그리고 인생의 밭은 ‘이웃’이다.
하나님께서 씨앗이 밭에 뿌려질 때 그 열매를 보장하듯이,
선행을 베푸는 자에게 반드시 30배 60배 100배로, 후히 되어 누르고 흔들어 넘치도록 주시는 것은 엄연한 자연의 법칙임을 기억하자.
주는 것은 하나님께 심는 것이다.
하나님께서 그 열매를 주신다.
그러므로 하나님을 믿는 믿음의 사람은 ‘주는 것’에 선수가 되어야 한다.
믿음의 모습은 ‘주는 모습’에서 평가되고
그 사람의 미래의 모습은 지금의 ‘주는 모습’에 의해서 결정된다.
‘주는 자가 받는 자보다 복된 자다.’
세상에 인색한 사람은, 하나님도 그에게 인색하고
세상에 후한 사람은, 하나님도 그에게 후하시다.
비록 값싼 섬김이더라도 바로 그것이 하나님의 마음을 사게 된다.
‘주라 그리하면 너희에게 줄 것이니
곧 후히 되어 누르고 흔들어 넘치도록 하여
너희에게 안겨 주리라’(눅6:38)
말씀//눅6:38, 사58:7-12
1. 예수님의 부자론
복 받는 것이나 부자 되는 것을 싫어하는 사람은 없다.
사람들은 누구나 한 푼이라도 더 많이 받고 싶어 하는 것 같다.
일본 TV뉴스에 한국 롯데 월드의 뉴스가 나왔다.
앞 전의 불미스러운 사건도 있고 해서, 고객 서비스 차원으로 롯데월드의 무료 입장 기간을 정했다고 한다. 의도는 좋았는데, 공짜라고 사람들이 너무 많이 몰려 들어서 40명이 부상을 당하는 또 다른 불미스러운 일이 발생해 버렸다.
어떤 사람은 부산에서 새벽 3시에 도착하여 5시간이나 기다렸는데 입장을 할 수가 없었다고 한탄을 했다. 롯데월드 입장권은 3000엔 정도라고 한다. 이 3000엔을 공짜로 얻기 위해서 부산에서 밤차로 왔다니 공짜의 힘, 물질의 힘이 얼마나 무서운지를 실감케 한다.
이처럼 사람들은 ‘받는 것’을 참으로 좋아한다.
그래서 우리 속담에도 ‘양잿물도 공짜라면 받아 먹는다’는 말도 있다.
그런데 만약 공짜로 ‘주라’고 하면 어떨까?
만약에 롯데월드 입장료를 보통의 2배인 6000엔의 날을 정하여 그 수익금을 불우 이웃을 돕는데 사용하겠다면 이렇게 많은 사람이 모일까? 이것은 그래도 생색낼 수 있는 명목이 있으니 소수의 사람들이 올 수도 있을 것이다.
그런데 아무 사회적 명목 없이, 회사의 어려움으로 매주 월요일을 입장료를 두 배로 받는다면 아무도 오지 않을 확률이 높다. 차라리 문을 닫는 것이 회사를 위한 일일지 모른다.
사람들은 주는 것보다 받는 것을 훨씬 더 좋아한다. 주는 것은 손해를 보는 것이고, 받는 것은 이익을 보는 것이라고 생각하기 때문이다. 그래서 많이 받아야만 그만큼 부자가 된다고 생각한다.
그런데 오늘 예수님은 우리에게, 세상과 정반대의 부자론을 말씀해 주시고 계신다.
예수님은 세상 뒤집기에 탁월하신 분이시다.
받는 자가 아니라 오히려 주는 자가 부자가 된다고 하신다.
받는 것보다, 먼저 주라고 하신다. 그러면 후히 되어 누르고 흔들어 넘치도록 하여 주신다고 말씀하셨다. 예수님은 거짓말 하실 분이 아니다. 그것도 그냥 주신다는 것이 아니라 4중의 강조를 통해서 약속하셨다. 얼마나 이 진리가 귀하고 진실인지를 잘 말해 주고 있다.
그런데도 예수님의 이 귀한 부자론을 믿지 않고 세상의 낡은 부자론을 따르는 크리스찬들이 얼마나 많은 지 모른다. 예배 때에는 말씀을 받지만, 삶 가운데서는 말씀을 버리고 세상 방식으로 세상 사람과 구분됨이 없이 살아가고 있는 것이다.
2. 기독교인의 모습
얼마 전에 한국에 갔을 때의 일이다.
택시를 타고 가면서 기사 아저씨에게 ‘혹시 예수 믿으세요?’ 하면서 복음을 전했다.
그랬더니, 갑자기 하는 말이, 자신은 종교가 없는데, 자기가 제일 미워하는 사람이 바로 기독교인이라고 하면서 기독교인들은 도대체가 베풀 줄을 모른다고 했다. 기독교인들은 택시를 타면 꼭 4명이 탄단다. 그리고 가는 목적지는 전혀 비슷하지도 않고 동서남북을 다 가자고 한단다. 그래서 기사 아저씨가 조금이라도 언짢은 표정을 지으면 ‘아저씨 승차 거부하는 거예요?’ 라며 금방 신고라도 할 기세를 보인단다.
그런데 불교신자들은 좀 다르단다. 비록 4명이 타도 ‘아저씨 미안합니다.’ 하면서 도중에 메타를 한번 꺾어 달라고 한단다. 그러면 갑자기 기분이 좋아진단다. 돈의 문제가 아니라 기분의 문제란다. 돈은 몇 푼 안되지만 그 말 한마디에 금방 기분이 좋아진단다.
값싼 물질로 값비싼 마음을 얻는다는 것이 베풂의 능력임을 알 수 있다.
조금만 선행을 베풀면 되는데도 기독교인들은 정말 인색하다고 한다.
그래서 그는 손님들의 말 속에 ‘집사님, 권사님’하는 말 만 들리면 그때부터는 얼른 입을 닫고 말을 안한다고 한다. 괜히 말했다가 본전은 고사하고 기분만 상하기 때문이란다.
기독교인들은 도통 남을 배려해 줄 줄을 모른다는 것이다.
이것이 한국의 한 시민의 눈에 비친 현대 기독교인들의 모습이다.
여러분은 어떻게 생각하는가?
그 분이 잘못 본 것일까? 아니면 우리가 잘못된 것일까?
과연 예수님을 욕먹이고 다니는 사람은 누구일까? 기독교인을 욕하는 그들일까, 아니면 예수님을 구세주로 믿는다고 하는 우리일까? 세상 사람들을 하나님으로부터 점점 멀어지게 하는 1등 공신은 과연 누구란 말인가?
예수님은 분명히 ‘먼저 주라’고 하셨다.
‘이같이 너희 빛을 사람 앞에 비취게 하여 저희로 너희 착한 행실을 보고 하늘에 계신 너희 아버지께 영광을 돌리게 하라’(마5:16)고 하셨다.
착한 행실은 분명히 사람들에 귀한 감동을 준다.
그 기사 아저씨의 마지막 말이 기독교인들에게 경종을 울린다.
‘굳이 예수 믿으라고 말할 필요 없습니다.
그들이 똑 바로 믿으면 안 믿으라고 해도 다 믿을 것입니다.’
예수를 믿되 말로만 믿지 말고 삶으로 믿어야 한다.
예수를 전하되 말로만 전하지 말고 삶으로 전해야 한다.
말만의 전도는 불신의 벽만 높이지만 삶의 전도는 스스로 나오고 싶은 마음을 준다.
3. 예수님을 닮은 사람은?
기독교는 이기주의자나 욕심쟁이, 자기만 생각하는 사람을 키우는 곳이 아니다.
기독교는 예수님을 닮게 하는 종교이다. 참 기독교인은 예수님의 모습을 재현하는 제자가 되어야 한다.
그러면 예수님의 가장 귀한 모습은 무엇일까?
과연 예수님이 자기만 생각하는 이기주의자였던가? 절대로 아니다.
예수님은 모든 것을 한없이 값없이 ‘주는’ 삶을 사셨다. 십자가가 그 증거물이다.
예수님은 죄인인 우리를 위해서 몸을 다 내어 주신 분이요, 생명을 내어 주신 분이다.
예수님을 가장 많이 닮은 사람은 어떤 사람일까? 예수님처럼 세상에 자신을 주는 사람이다.
예수님의 베풂의 모습이 삶에 베여 있는 사람이다.
예수님은 ‘주는 것이 받는 것보다 복이 있다’(행20:35)고 하셨다.
진짜 그럴까? 진짜로 주면 후히 되어 누르고 흔들어 넘치도록 받게 될까?
단지 영적인 복을 상징적으로 말한 것은 아닐까? 육적으로도 복을 받을 수 있단 말인가?
예수님이 말씀하시는 복은 분명히 상징적인 복이 아니라 현실적인 복이다.
이사야 58장에 그 구체적인 내용이 나와 있다.
이 장은 원래 금식기도의 장이다. 금식기도는 인간이 하나님께 은혜를 받을 수 있는 최고의 무기로 알려져 있다. 그래서 이스라엘 사람들은 큰 문제가 있을 때마다 그 문제를 해결 받기 위해서 하나님께 금식하면서 기도를 많이 하곤 했다.
그런데 오늘 본문에서는, 아무리 금식기도 해도 안 통하지만, 이것만 하면 치료를 급속하게 할 것이며, 영혼을 만족케 하며, 뼈를 견고케 하며, 물 댄 동산 같게 하리라고 했다.
여기서 말하는 ‘이것’은 다름 아닌 ‘주는 것’이다.
하나님께서는 금식으로도 해결할 수 없는 문제도, 이웃에게 선을 베푸는 자, 주는 자에게는 눈에 보이는 은혜로 분명히 보상해 주신다고 약속하셨다.
남을 열심히 도와 주면, 우리의 모든 삶은 하나님이 책임져 주신다는 말이다.
사람들은 흔히 이렇게 말한다.
‘내 자신의 일도 바빠 죽겠는데 어떻게 남의 일을 도와 줄 수 있겠어?’
‘내 한몸도 가누기 힘드는데 남을 어떻게 돌봐 줄 수가 있겠어?’
‘나도 입에 풀 칠하기 바쁜데, 남 신경 쓸 겨를이 어디 있어?’
루터는 이렇게 말했다.
‘평소에는 하루 1시간씩 기도하지만 요즘은 너무 바빠서 3시간 기도한다.’
바쁘니까 기도를 적게 하는 것이 아니라, 오히려 많이 한다. 왜냐하면 기도만이 그 바쁜 일을 해결할 수 있는 능력이기 때문이다.
기도는 장식품이 아니라 능력의 본질임을 아는 사람은 바쁠수록 기도를 많이 하는 것이 정상이다.
마찬가지로 우리는 인생이 힘들면 힘들수록 남을 열심히 도와야 한다. 그것이 바로 하나님이 나를 도와 주시는 원천이 되기 때문이다. 그것이 바로 자기의 인생을 돕는 최고의 길이기 때문이다.
내가 남을 1의 힘으로 도와 주면, 그 때 하나님은 나를 100의 힘으로 도와 주시기 때문이다. (후히 되어 누르고 흔들어 넘치도록 하여 너희에게 안겨 주리라-눅6:38)
주님 안에서 우리는 다음의 사실을 명심해야 할 것이다.
남을 위해서 남을 돕는 것이 아니라 자신을 위해서 남을 돕는다는 사실을.
그래서 인도의 거지는 동냥을 받을 때 절대로 감사하다는 말을 하지 않는다고 한다.
정작 큰 복을 받을 사람은 자신이 아니라 주는 사람이기 때문이란다.
남의 일을 도와 주는 것이 바로 자기 일을 최고로 잘 하는 지름길임을 명심해야 한다.
사업의 실패로 회사와 가족 모두를 잃은 어떤 사람이, 하나님과 자신에게 극도로 실망하여 삶을 포기하기 직전에 목사님을 찾아갔다. 상담을 통해서, 과거의 실수와 잃어버린 모든 것을 잊어 버리고 자기보다 더 큰 문제로 힘들어 하는 사람을 도와 주라는 말씀을 들었다.
그로부터 2주 후에 그는 완전히 다른 사람이 되어 교회에 왔다.
그는 고백했다. ‘제 평생 그토록 기쁜 적은 없었습니다. 너무나도 행복한 시간이었습니다.’
마약 중독자들을 도와 주면서 그가 하나님께 받은 선물이었다. 하나님의 선물은 여기서 끝나지 않았다. 놀라운 일들이 연이어 일어났다. 그는 일자리를 얻게 되었고, 살 집도 생겼다.
남을 돕기 시작함으로 자신의 인생이 바뀌기 시작한 것이다.
자신의 인생이 힘들다고 생각하면 할수록 더욱 남을 돕는 일에 힘써야 한다.
인생은 반드시 뿌린 대로 거둔다. 외로운 사람은 더 외로운 사람에게 기쁨을 뿌리고, 가난한 사람은 더 가난한 사람에게 물질을 뿌리고, 병든 사람은 더 아픈 사람에게 도움을 뿌려보라.
분명히 30배, 60배, 100배의 기쁨의 열매, 풍성의 열매, 건강의 열매를 거두게 될 것이다.
하나님은 창세부터 뿌리는 자에게 복을 약속하셨다.
씨앗을 뿌리면 열매는 당연히 맺히게 되어 있다. 이것이 하나님의 법칙이다.
그래서 뿌리는 것은 낭비나 손실이 아니라, 가장 가치 있는 일이요, 인류 최고의 투자법이다. 하나님이 ‘열매’라는 복으로 반드시 갚아 주시기 때문이다.
인생의 씨앗은 선행이요, 인생의 뿌리는 것은 ‘주는 것’이다. 그리고 인생의 밭은 ‘이웃’이다.
하나님께서 씨앗이 밭에 뿌려질 때 그 열매를 보장하듯이,
선행을 베푸는 자에게 반드시 30배 60배 100배로, 후히 되어 누르고 흔들어 넘치도록 주시는 것은 엄연한 자연의 법칙임을 기억하자.
주는 것은 하나님께 심는 것이다.
하나님께서 그 열매를 주신다.
그러므로 하나님을 믿는 믿음의 사람은 ‘주는 것’에 선수가 되어야 한다.
믿음의 모습은 ‘주는 모습’에서 평가되고
그 사람의 미래의 모습은 지금의 ‘주는 모습’에 의해서 결정된다.
‘주는 자가 받는 자보다 복된 자다.’
세상에 인색한 사람은, 하나님도 그에게 인색하고
세상에 후한 사람은, 하나님도 그에게 후하시다.
비록 값싼 섬김이더라도 바로 그것이 하나님의 마음을 사게 된다.
‘주라 그리하면 너희에게 줄 것이니
곧 후히 되어 누르고 흔들어 넘치도록 하여
너희에게 안겨 주리라’(눅6:3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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너희가 살리라27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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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나의 자녀교육28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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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2 コメント
김부영
2006-03-28 22:31:24
내가 주면 하나님께서 책임져주신다는것은 나는 참 그때그때 많이 경험했다
신기하게도 꼭 내가 사람들에게 단 100원이라도 베풀면 하늘나라에서가
아닌 내 실제 생활에 그것도 빨리 나에게 그사람을 통해서가 아니라
그 어떤사람을 통해서건 그 어떤무엇으로 돌아오곤 했던경험이 많은거같다
이런 소중한 경험, 또 하나님의 말씀을 깨닫으면서도 이만큼밖에 사람들에게
베풀며 살지 못하는 무능한 내 자신이다
내 삶에 직접 오셔서 나에게 보여주시고 나타내주시는 주님을 나는 너무나
당연하게 인식하며 사는것이 아닐까 생각할때가 많다
나에게 요번주 말씀을 통해 분명히 복받는 방법을 주님은 가르쳐주셨다
(물론 복받기 위해 꼭 주는 것ㅡ계획적인건 아니지만)
말씀 중에도 외로운 사람은 더 외로운 사람에게 기쁨을 뿌리고, 가난한 사람은
더 가난한 사람에게 물질을 뿌리고, 병든 사람은 더 아픈 사람에게 도움을
뿌려보라 라는 말씀은 지금 나에게 큰 도전으로 받아들였다
내가 지금 힘들어서, 없어서 남을 도와주지 못한다면 나는 아마 평생
남을 도와주면서 살 지 못할것이라는것을 깨닫게 되었다
-예수를 믿되 말로만 믿지 말고 삶으로 믿어야 한다-
참 귀한 말씀이다
최현숙
2006-03-28 22:35:16
정승은
2006-03-29 04:10:26
그것이 없거나,부족하면 줄것이 별로 없다고 생각하며 안타까워 했다.
그런데 오늘 말씀은 또다른 도전으로 다가왔다.
흔히 말하는 인간관계에서의 give &take와는 양과 질적으로 비교도 안되게
내가 힘들어도,아파도,어려워도,작아도 마음을 다해 사랑으로 기도하며 베푼다면,돕는다면 하나님은 내가 베푼 몇갑절로 갚아주신다고 약속 하셨다.
이 약속을 붙들고 지금까지 뭔가 내가 가져야만 베풀 수 있다는 생각을 버리고,
내게 능력이 없을땐 주님께서 채워주실거라 믿고 베푸는 자가 되자고,
마음만이라도 넉넉하여 기도로,마음으로라도 베풀며 살자고 다짐해 본다.
박정선
2006-03-29 05:27:13
이 말씀이 마음에 많이 와 닿았습니다.
시간이 있고 물질이 있어도 하나님 마음에 기쁘시게 쓰는 사람은 얼마나 될까?
나또한 시간이 있다고 물질이 있다고 하나님 뜻에 합당하게 쓴 적이 얼마나 되는지 생각해 보았습니다.
없는 중에 쓸 수 있는것, 그럼으로 얻는 마음의 기쁨은 하나님이 주신 선물이라고 생각합니다. 자꾸만 좁아지고 옹졸해 지는 이기적인 마음을 하나님께 믿음으로 가져가 사용할 수 있는 자가 되기 원합니다.
최현경
2006-03-29 07:48:54
크리스찬임에도 얼마나 내 생각만 하며, 내 것만 챙기려고 하였는지 택시기사 아저씨 이야기를 통해 나를 돌아보게 되었습니다. 예수님을 말로만이 아닌 내 삶으로 믿고 전하는 진정한 그리스도인의 모습으로 나를 가꿔나가길 기도합니다.
김민정
2006-03-30 03:19:53
지난 9개월의 생활은 좋게 말하면 참 검소한 삶이 었지만 말씀에 비추어보면 나눔이 없었던 생활이었던 것 같습니다.
그래서 이번 말씀이 제게 큰 가름침이 되어 마음에 새기게 되었습니다.
특히나, 일본 생활 9개월동안 함께한 우리 룸메이트들에게 너무 미안한 마음이 듭니다. 저 성격이 너무 공평한 것을 좋아한 나머지(--;;) 제가 조금이라도 손해 안보려고 했던 적이 너무 많았습니다.
사실 지금 생각해보면 지혜롭게 할 수 있었을뗀데... 하는 생각이 많이 듭니다.
그동안 마음이 참 가난한 저였던 것 같습니다. 정작 지금 물질이나 시간이 있고 없고의 문제가 아니라, 가난한 마음이 문제였습니다.
제가 요즘 고민하는 문제가 있습니다. 목사님 설교 내용처럼 '내가 정작 세상에서 참된 그리스도인의 모습을 가지고 있는걸까...?'
교회안에서나 교회의 형제,자매들에게는 마음을 다해 섬기지만, 세상에서도 내가 그렇게 섬기고 있는 것일까? 오히려 예수님을 모르는 세상에서 섬김의 모습을 더 가져야 하는 건 아닐까...?
아직은 잘 모르겠습니다. 어떻게 마음을 가지고 행동을 해야할지...
주님, 오늘도 저에게 삶의 올바른 길을 가르쳐주심을 감사합니다.
주님, 제가 지금 무엇을 가지고 있습니까... 망설이지 말고 나누게 하여 주옵소서.
저의 나눔을 통해 주님께서 영광받으시길 간절히 기도합니다.
그리고 주님, 제게 부족한 것은 주님께서 꼭! 채워주세요~~~ *^^* 주님만을 믿고 나갑니다. 아멘.
라문진
2006-03-30 04:56:26
인선정
2006-03-30 08:26:29
이미령
2006-03-30 19:05:28
자기가 유리한편으로 핑계잘하는 예수쟁이...
예수님 욕보이는짓 얼마나 많이하는데....
그럼에도 불구하고 포기하시지 않고 깨닺게 하시는...
주님의 은혜가 눈물나도록 감사합니다....
나누어 주는 기쁨을 알게하신 은혜가 감사합니다..
주어도 주어도 채워주시는 은혜가 감사합니다....
주님이 주신것으로 나누어줄때...
교만하지않고 ...욕심부부리지않고...
낮은자리에 내려 갈줄 아는 착한 종이 되길 기도합니다..
주님이 주신 은혜로 풍성하게 살길 소원합니다..
이소진
2006-03-30 19:21:32
주는 것이 기쁜 일이고 주는 것이 복이라는 것을 다시 한번 깨닫게 되었습니다.
더불어 하나님을 진정 믿는 사람들은 굳이 받으려하지 않아도 된다는 생각을 해 봅니다. 하나님께서 10배 100배 더 크게 갚아주시기 때문입니다.
항상 나누어 주는 삶을 살길 기도합니다.
박유진
2006-03-31 08:24:00
이런 저런 사정으로 집에 있는 가전제품들을 모두 새로 장만해야 했는데, 하나님께서 여러 '주는' 손길들을 통해 받게 하셨고, 그 과정 가운데 주는 손길들이 얼마나 복된 지, 그리고 주는 것을 통해서 베푸는 것의 귀한 힘을 느꼈습니다.
그래서, 작은 것부터 주는 것을 실천해보려고 가까운 이웃에 사는 한국인 친구에게만든 음식을 내일 가져다주려고 합니다. 그 친구도 출산한 지 얼마 안 되어 여러가지로 힘들 것 같거든요...
제 모습을 깨닫게 해주신 주님, 감사드립니다...
김경환
2006-03-31 09:21:49
내가정, 내교회 먼저 채우고 그 뒤에서야 조금 나누려는 내 모습을 목사님의 설교말씀을 통해 힘들고 어려울때 주는손이 되어야 한다는 대목에서 크게 회개가 됩니다. 받을것을 기대하면서 주는 손이 아닌 거저 주는 손이 되기를 소원합니다. 남에게 줄 때는 받을것을 기대하지 않겠습니다. 예수님을 닮으려고 제자훈련을 받고 있는데 내 자신이 인색한자로서의 모습이 아닌 기쁨으로 나누는 진정한 주님의 삶을 따르도록 노력하겠습니다.
김정아
2006-03-31 21:44:18
복을 심는 첫번째 길은 바로 주는 것인데... 현실 속에서는 그게 참 힘든것 같습니다. 나도 모르게 내것과 상대의 것을 재고 있는 제 자신을 바라봅니다.
예수님이 우리에게 주신 것은 헤아릴 수 없을 정도인데... 그 분의 가진 모든 것 생명까지도 우리에게 주셨는데...
복을 받기는 원하지만 그것은 그저 받기만을 원하는 이기적인 복이었습니다. 어쩌면 성경속의 이야기는 제 얘기가 아니었나 봅니다.
성경은 현실인데 .... 심고 거두는 원리 ... 곧 주고 받는 원리인 거죠....
성경을 현실로 말씀을 현실로.... 내 안에 내가 조금 더 바뀌기를 원합니다.
말씀의 깊이가 ... 믿음의 깊이가... 더욱더 굳건해 지기를 원합니다....
장경옥
2006-03-31 23:15:21
木下
2006-04-01 02:58:48
考え方の習慣を変える必要があると感じました。
홍인기
2006-04-01 05:44:40
하나님을 보지 못하고 사람을 보는 그들의 잘못도 있겠지만, 사랑이 중요한 기독교에서 사람에 실망해 나간다는 것 자체가 있어서는 안되는 일인데......하는 생각이 듭니다. 사람에게 실망하는 이유 중 목사님 말씀과 같은 경우도 많으리라 생각됩니다. 기독교인에 대한 이미지와 실상이 다르기 때문에......
말씀처럼 값싼 물질로 값비싼 마음을 얻는다는 것이 베풂의 능력임을 깨닫는다면 더욱더 그리스도인으로서의 빛을 낼 수 있지 않을까 생각됩니다.
주는 것은 하나님께 심는 것이다. 하나님께 조금씩이라도 심어 나가야 겠습니다.
김철중
2006-04-01 09:38:04
김성섭
2006-04-02 00:33:34
지난번 제자훈련시간에 이 목사님께서 한국에 방문해서 전도하셨던 간증을 하시면서, 택시를 타면 절대로 거스름돈 다 받지 말고 천원이라도 더 주라고 말씀하시며 작을 일에서부터 베푸는 삶을 살것을 말씀하셨습니다.
이번에 한국에 방문했을 때 택시를 탈 일이 있었습니다. 내리려고 하는데 이 목사님 말씀이 생각나는 겁니다. 그래서 수고하신다는 말과 함께 800원 남은 잔돈을 받지 않았습니다. 부끄럽지만 저는 100원까지도 다 받는 사람입니다. (네사람 가득 타고 갈때나 골목골목까지 들어가는 경우는 양심이 있어서 잔돈을 받지는 않습니다.) 택시기사님은 기분이 좋으신지 내려서 짐까지 내려주고요, 저는 그분의 기뻐하시는 모습을 보는 저까지 기분이 좋았습니다.
받는 것보다 주는 것이 복되다는 것을 잘 아는 목사이면서도 저는 받는 것에 익숙해져 있었습니다. 성도님들이 이것 저것 챙겨주실때마다 감사함으로 받으면서도, 내 자신이 그렇게 베푸는 삶에 열심을 내지는 못했습니다. 열을 받았으면 그보다 더 주지는 못해도 그만큼은 나누어야 하는데 반도 나누지 못하면 살았습니다.
"하나님께서는 금식으로도 해결할 수 없는 문제도, 이웃에게 선을 베푸는 자, 주는 자에게는 눈에 보이는 은혜로 분명히 보상해 주신다고 약속하셨다." 는 말씀이,
"남을 열심히 도와 주면, 우리의 모든 삶은 하나님이 책임져 주신다는 말이다."는
말씀이 깊이 깊이 남습니다.
하나님께 받지 못한 것이 문제가 아니라, 하나님께 받은 것을 나누지 못했던 것이 문제였습니다. 하나님께 더 달라고 기도하는 자가 아니라 하나님이 기뻐하시는 일에 더 베푸는 자가 되기를 기도해야 겠습니다.
김경희
2006-04-02 01:28:22
그것은 주는것입니다.
하나님께 받은 이넘치는 사랑을 이웃에게 나누어 주는것.
주님 감사합니다.
이사랑을 전할수있는 이웃과 환경,허락해주심을....
오성훈
2006-04-02 05:03:41
그러므로 주님의 명령대로 주고 베푸는 삶을 살아가기 위해서는 내 자신의 그릇을 크게 비워 놓을 수 있어야 하겠다. 그리하면 하나님께서, 하늘의 신령한 것으로 내게 필요한 것들을 후히 되어 누르고 흔들어 넘치도록 안겨주심으로 내가 주님의 능력으로 많은 사람들에게 봉사하며 베푸는 자가 될 것이다. 이러한 내 모습이 되기 위해 오늘도 기도합니다.
배미화
2006-04-02 19:31:44
항상웃으면서 즐거운 맘으로 봉사하는 모습등을 보고서는...........
맘이 뜨끔했었지요. 학교에서는 이기적이고 퉁명스러운 나니깐....
지금 일하고 있는 회사에서는 어떨까요?
내가 교회에 다닌다고 하지않았으면 아마 몰랐을거예요.
내가 하나님의 자녀인지를....
왜 세상의 이웃에게는 주는걸 아까워하고 이기적으로 행동하게 될까요?
크리스챤은 하나님의 사랑을 베풀고 전해야 할 임무를 띄고 있는데
말이죠.
위의 택시기사 아저씨의 이야기가 남 얘기가 아니라 내 얘기같아
마음이 무겁습니다.
‘주는 자가 받는 자보다 복된 자다.’
세상에 인색한 사람은, 하나님도 그에게 인색하고
세상에 후한 사람은, 하나님도 그에게 후하시다.
비록 값싼 섬김이더라도 바로 그것이 하나님의 마음을 사게 된다.
‘주라 그리하면 너희에게 줄 것이니
곧 후히 되어 누르고 흔들어 넘치도록 하여
너희에게 안겨 주리라’(눅6:38)
예수님처럼 조건없이 사랑으로 세상의 이웃을 섬길수 있기를
간절히 기도합니다.
정한나
2006-04-04 21:51:08