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중앙영광교회

순종 앞의 여리고

이용규목사, 2006-02-28 17:10:2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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순종 앞의 여리고

말씀//수6:1-5

1. 능력 받자!
믿음의 사람은 ‘능력’을 받아야 한다.
세상과 다른 능력을 받아야 한다. 세상이 감당할 수 없는 능력을 받아야 한다.
비록 그 앞에 여리고성 같은 난공불락의 큰 문제를 갖고 있더라도 능히 정복할 수 있는 능력을 받아야 한다. 가나안 땅의 가장 견고한 성읍들 중의 하나였던 여리고성이 어떻게 하루 아침에 쉽게 무너질 수 있었을까? 바로 이 능력이 나타났기 때문이다.
오늘도 이 능력만이 우리 속에 흐르고 있다면, 우리 인생의 여리고도 반드시 정복되고 말 것이다. 그러면 과연 이 능력은 무엇일까? 이스라엘 백성들이 그 시대에 이미 박격포 같은 무기를 가지고 있었던 것일까? 아니면 힘 있는 거인 장수들이 있었기 때문일까? 또는 제갈공명 같은 훌륭한 책사가 있었기 때문일까? 그 어느 것도 아니었다.
그들이 가지고 있었던 신비의 이 무기는 다름아닌 ‘순종’이었다.
전능하신 하나님께 순종하는 것이 여리고성 앞에 선 그들의 유일한 무기였다.
이 무기의 실험이 여리고성에서 약 3400년 전에 있었던 것이다. 그 위력은 정말 대단한 것이었다. 순종 앞의 여리고성은 마치 바람 앞에 있는 등불과 같은 미약한 존재에 불과했다. 한번 실험해 보라. 촛불을 켜 놓고 입김으로만 살짝 불어도 촛불은 순식간에 꺼지게 되어 있다. 그렇게 위력적으로 보이던 여리고 성도 ‘순종’ 앞에는 이처럼 무력했던 것이다.
하나님의 입에서 나온 말씀이 얼마나 권세가 있는지 깨달을 수 있다.
이 말씀의 권세는 순종의 무기를 통해서 발사된다.
말씀은 총알이요, 순종은 무기이다.
‘순종’의 무기를 가져야 한다.
순종이 있는 곳에는 그 어떤 것도 정복되지 않을 것이 없다.
인간에게 가장 위대한 능력은 하나님께 순종하는 것이다.
인간의 능력의 위대함은 얼마나 순종하는가에 달려 있다.
‘현명한 아내는 순종함으로써 남편을 지배한다’는 말이 있다.
현명한 사람은 한 분(하나님)에게 순종함으로 세상을 지배한다.
순종 앞에 무너지지 않을 것이 없다. 남편도, 여리고도, 큰 산도, 사탄도 순종 앞에는 모두 힘을 쓸 수가 없다. 그러기 위해서는 내 자신이 먼저 순종 앞에 무너져야 한다.
‘내 사전에는 불가능이란 없다’라는 말로 승승장구하던 나폴레옹이 워터루 전투에서 패하고 인생을 비참하게 마감하면서 의미 있게 남긴 말이 있다.
‘세상에서 패한 것 같은 예수는 승리하여 그 나라가 왕성해지고
세상에서 승리한 것 같은 나는 완전한 패배자임을 이제야 깨달았도다.’
이 세상의 온전한 승리자는 예수님 밖에 없다.
주님은 죄와 사망의 권세도 모두 이기시고 승리하신 분이시다.
주님과 함께 하는 인생은 때로는 패배한 것같이 보일지도 모르지만 반드시 승리하게 되어 있다. 승리의 주인은 오직 주님이시기 때문이다.
이 주님과 동행하는 길이 바로 ‘순종’이다.

2. 순종의 3대 요소
여리고성 앞에서의 이스라엘 백성들의 순종을 통해서 순종의 중요한 3가지 요소를 살펴보고자 한다.
1)        말씀 순종
순종에서 제일 중요한 것을 말하라면 역시 ‘순종의 대상’일 것이다.
모든 잘못된 순종은 여기서 나온다. 누구에게 순종하는가는 그 사람의 인생을 결정하고도 남음이 있을 정도로 중요하다.
인생의 목적을 다른데 두지 말고 내가 순종할 수 있는 참 주인을 찾는데 두는 사람이 현명한 사람이고, 그 주인이신 예수님을 만나는 사람이 성공한 사람이다.
지난 번에, 상식적으로 도무지 이해가 가지 않는 뉴스가 나왔다.
50대의 무직자가 20십대의 여성 10명을 아내로 두고, 그것도 한 집에서 잘 살아가고 있는 모습을 보았다. 이 20대 여인들은 순종의 대상을 잘못 택한 것이다. 그래서 인생이 엉망이 되어 버린 것이다. 이런 순종이라면 차라리 택하지 않는 것이 더 좋을 것이다.
세상에는 이런 잘못된 순종 때문에 신음하는 사람들이 너무나 많다.
자신의 감정이나 못난 자아도 대단히 위험한 순종의 내부의 적이다.
자기 감정, 기분에 못이기는 사람이 있다. 감정에 붙잡혀 있는 모습이 참으로 불쌍하다. 감정의 감옥에 갇혀서 탈출하지 못하고 있다. 흥분한 사람을 보면 마치 다른 사람을 보는 듯한 느낌이 들 때가 있다. 자기 감정에 완전히 순종하고 있기 때문에 다른 사람으로 보이는 것이다. 만약 이런 사람이 주님께 완전히 순종할 수 있다면 천사 같은 다른 사람으로 보일텐데 말이다. 문제는 순종의 대상이다. 순종의 대상만 바로 잡으면 반드시 귀한 인물이 될 수 있다.
또 어떤 사람은 환경이나 형편을 하나님같이 여기는 사람이 있다.
철저하게 형편대로 살며, 형편을 거슬리는 법이 없다. 형편을 거역하는 것을 큰 일 나는 줄로 생각한다. 얼마나 형편에 순종을 잘 하는 지 모른다.
늘 형편에 끌려 다니는 사람은 절대로 그 형편 이상의 삶을 살 수가 없다.
형편을 넘어선 그 위 단계로 성장할 수가 없다. 형편대로 살다가 결국은 형편없는 삶으로 인생을 마감하게 될 것이다.
하나님은 우리에게 ‘좋은 형편’을 주셔서 순종하라는 분이 아니라, ‘승리의 말씀’을 주셔서 승리의 길로 인도하시는 분이시다.
여리고에서도 마찬가지셨다.  
하나님은 절대로 좋은 환경을 주시지 않았다.
6장 1절에 보면 형편은 더 안 좋았다. 이스라엘 백성이 쳐들어 온다는 소식을 들은 여리고인들은 성문을 굳게 닫고 삼엄한 경계태세에 돌입했다. 하나님이 역사하시면 성문이 더 활짝 열리고 여리고 왕은 항복문서를 가져 오는, 이런 일들이 있어야 할 것인데 오히려 성문은 더 굳게 닫혀 버렸으니, 형편으로 치면 순종할 수 없는 더 악한 조건이었다.
여기서 만약 이스라엘 백성이 ‘형편’보고 순종했더라면 그들의 순종은 불가능했을 것이다.
형편상으로는 더 어렵고 힘들었지만, 그들은 기쁨과 확신으로 순종할 수 밖에 없었다.
왜일까?
‘내가 여리고와 그 왕과 용사들을 네 손에 붙였으니.. 성 주위를 돌아라’(수6:2-3)
전능하신 하나님의 말씀이 그들 앞에 있었기 때문이다.
바른 순종은 내 앞에 놓인 ‘형편’을 택하는 것이 아니라, ‘말씀’을 택하는 것에서 시작된다.
형편을 과감히 뿌리치고 오직 ‘말씀’을 택하는 기적이 우리 모두에게 일어나기를 축원한다.
말씀의 순종을 택하는 사람에게는 반드시 ‘말씀의 기적’이 찾아 온다는 사실을 꼭 명심하자.
‘주여! 세상 환경을 택하지 말게 하시고 주님의 말씀을 택하게 하옵소서! 제발.’
2)        반복 순종
순종의 질이라고 할 수 있겠다. 순종의 질은 ‘반복’에 의해서 좌우된다.
한 두번 순종하는 것은 누구나 다 할 수 있다. 그러나 똑 같은 일을, 전혀 결과가 눈에 보이지도 않는데도 동일한 마음으로 10번 이상을 반복하는 사람은 흔치 않다. 이스라엘 백성들은 13번이나 동일한 순종을 했다. 반복적 순종은 참으로 힘들다. 그래서 반복 순종이 위대한 것이다.
이번 동계 올림픽에서 일본의 아라카와 선수가 피겨 스케이팅에서 감격의 금메달을 땄다. 메스콤의 반응을 보면, 민족적 영웅이 된 것 같은 느낌이 든다. 피겨 스케이팅의 가장 큰 매력은 역시 회전하는 것인 것 같다. 몸을 빙판에서 띄우면서 많이 돌 수 있는 사람이 점수가 높아진다. 그런데 2등과 3등을 한 선수는 점프하여 돌다가 모두 넘어져 버렸다. 그래서 감점을 당한 것이다. 반복해서 돌 수 있는 것이 스케이팅에서나 순종에서 다 중요하다.
많이 돌 수 있는 사람이 능력이 있는 사람이다.
돌 때 넘어지지 말아야 한다.
‘돈다’는 말은 수 없는 반복을 의미한다. 순종의 반복에서도 넘어지지 말아야 한다. 넘어진다는 말은, 순종을 하다가 아무런 응답이 보이지 않으므로 중간에 포기해 버리는 것이다.
중간에 포기하는 순종은 아예 처음부터 순종하지 않는 것보다 못하다.
성경에 재미있는 말씀이 있다.
10절에 보면 ‘너희 입에서 아무 말도 내지 말라’는 말씀이 3번이나 적혀 있다.
순종의 가장 큰 적이 ‘사람의 말’임을 잘 설명해 주고 있다.
‘하나님의 말씀’의 원수는 ‘사탄의 말’이 아니라 ‘사람의 말’임을 알아야 한다.
하나님께서 여리고 성을 돌 때 절대로 말을 해서는 안 된다고 하셨던 것은 여리고 사람들에게 발각될 것이 두려워서가 아니었다. 그들은 이미 위에서 다 보고 있었다. 13번이나 돌았는데 못 봤다는 것은 말이 안된다. 하나님께서 말을 못하게 하신 이유는 다른 데에 있었다.
한번 돌고, 두 번 돌고 계속 도는데도 성벽은 도대체가 무너질 징조가 보이지 않는다. 그런데도 13번이나 돌아야 하니 그들 속에는 얼마나 할 말이 많았을까? 그들은 말하고 싶은 엄청난 충동을 느꼈을 것이다. 특히 불평, 원망, 불신의 말들을 수없이 하고 싶었을 것이다. 그런데 만약 이런 말을 자유롭게 하게 내 버려 두었다면 어떻게 되었을까? 이 부정적인 말들이 눈덩이처럼 불어나서 여리고를 점령하기 전에, 그들을 먼저 점령해 버렸을 것이다. 순종할 때는 외부의 적보다 내부의 적을 막아야 한다. 내 속의 부정적인 말이 제일 무섭다. 내 앞의 순종의 길을 다 파괴시켜 버리기 때문이다.
끝까지 잘 순종할 수 있는 성경적 비밀은 이것이다
‘순종할 때는 언제나 말없이!!!’
위대한 순종가는 언제나 말이 없다. 말없는 순종이 기적을 만든다.
3. 총동원 순종
순종의 온전성을 말한다. 하나님은 부분 순종을 기뻐하지 않으신다.
순종의 역사에서 ‘나 하나 쯤이야’ 라든가 ‘이것 쯤이야’는 결국 하나님의 온전한 역사를 막는 장애물이다. 여리고의 순종은 제사장, 군사, 백성이 총동원된 순종이었다. 7장에서 총동원 순종이 얼마나 중요한지를 다시 한번 가르쳐 주고 있다. 백성 중에서 오직 한 사람 ‘아간’의 불순종으로 이스라엘 백성들은 ‘아이’성 정복 과정에서 엄청난 아픔을 맛보게 된다. 순종하지 않은 부분을 통해서 하나님의 은혜의 샘은 새 버린다.

알렉산더 대왕이 어느 날 적은 군대를 이끌고 어떤 성을 치러 갔다.
그런데 그 성은 생각보다 견고한 성이었다. 항복하라는 알렉산더의 말에 그들은 큰 소리로 비웃으면서 까불지 말라고 했다. 그 때 알렉산더는 자기 군사들을 일렬로 세우고 낭떠러지를 향하여 전진 명령을 내렸다. 군사들은 아무런 두려움 없이 낭떠러지를 향하여 행진을 했다. 물론, 앞에서부터 순서대로 한 명씩 한 명씩 낭떠러지에 떨어져 죽어갔다.
이 광경을 본 그 성의 왕은 ‘저렇게 죽음도 두려워하지 않고 오직 지도자의 명령에 순종하는 군사들, 이렇게 강한 군사를 누가 당하겠는가!’라고 하며, 무조건 항복하였다고 한다.
우리의 대장은 예수 그리스도다.
예수님이 위대한가? 알렉산더가 위대한가?
예수님의 말씀이 능력이 있는가? 알렉산더의 말이 능력이 있는가?
세상 모든 사람이 그 정답을 다 알고 있다.
그런데 정작 주님의 말씀에 알렉산더의 군사처럼 순종하는 사람은 몇이나 된단 말인가?
주님은 잘못되지 않았다. 우리의 순종이 고장 났을 뿐이다.
‘돌격 앞으로!’
주님의 이 명령에 목숨까지도 바치며 전진할 예수 그리스도의 군사는 몇 명이나 될까?
주님은 지금도 이 군사들을 모집하고 계신다.
사탄이 제일 무서워하는 것은 우리가 말씀에 순종하는 것이다.
성도는 순종할 때가 제일 강하고 아름답다.
순종의 회복이 믿음의 회복이요, 능력의 회복임을 잊지 말자!
‘주여! 죽도록 순종하게 하소서!’        

20 コメント

박유진

2006-02-28 23:04:22

형편에 끌려다니는 삶을 살지 말고 말씀에 순종하라는 설교를 듣자마자, 저는 이 말씀을 순종하지 못했습니다. 당장 수요일날 제자훈련 때 선호를 데리고 교회에 가기가 힘들 것 같아서 토요제자반때 남편과 함께 가겠다고 목사님께 말씀드렸던 것입니다. 그렇게 말하고 나서 말씀을 들은 직후에 말씀을 어겼다는 생각에 내내 마음이 불편했습니다. 순종하고 하나님께 맡기면 모든 것이 해결될텐데, 아직도 인간적인 마음에 주님께 온전히 맡기지 못하고 있었습니다. 그렇게 고민하다 수요일날 선호를 데리고 가기로 정하자 마음이 편해졌습니다. 주님께 순종하면, 그 나머지의 환경적인 것들은 주님께서 모두 해결해주신다는 믿음을 다시 한번 일깨워주셨습니다.
저 때문에 수요반 시작이 한주 연기되서 너무 죄송해요...
앞으로 선호가 제게 있어서 가장 약함이 되는 것이 아니라, 가장 강함이 될 수 있도록 기도하고 있습니다. 그리고, 제자훈련을 제 삶의 제일 우선순위로 하겠다는 마음도 변치않도록 기도합니다.

木下 

2006-03-01 02:02:48

私の従順する対象が神様でありますように。難攻不落と言われたエリコの城塞を簡単に崩された神様が今日も私達の祈りに答えて働いてくださることを信じます。今日も助けと導きを求めます。

정승은

2006-03-01 02:43:26

형편이 아닌 말씀,곧 하나님께 순종하는 모습이 가장 강력한 능력이요,힘이 된다는 사실을 한동안 잊고 있었음을 회개해야 했다.
내 생각,마음이 동하는 곳으로,내 형편에 맞춰서,내 환경따라 움직이고 있었던
나를 순간 멈칫하게 하는 말씀이였다.
오직 말씀에 순종하려면 내 모든 것들을 내려놔야 하는데,참으로 어리석고,연약한 나는 작심 하루만에 쉽게 내 상황과 마음대로 움직이고 있었다.
물론 그런탓에 상황도,마음도,환경,형편도 어느것 하나 제대로 된것 없이..
제멋대로 조종되고 있는 것 같다.
바로 이럴때 말씀으로 얼른 돌아가야 함을 깨닫게 해주시니 참으로 감사하다.
어차피 말씀에 대한 순종과 기도 없는 신앙은 교만과 자기욕심만 가득차게 될것이다.물론,승리없는 패배도 따를테고 말이다.
참으로 마음을 가다듬고 말씀에 따라 순종하며 살라는 주님의 메세지인것 같다.
다른 우상들이 나를 혼란스럽고 마음을 아프게 했던 한주간이였다.
힘들었던만큼 주님앞에 다시 엎드릴 수 있게 되어 그래도 참 다행이다.
이런 상황없이 먼저 주님의 말씀에 순종하며 지냈다면 마음의 평강은 잃지 않았으련만..다시 영육간의 회복을 위해 기도하며 말씀에 순종하도록 힘써야 겠다.

최현경

2006-03-01 03:28:03

항상 하나님의 뜻대로 사는 삶이 되겠다고 다짐하면서도 막상 나의 형편을 주님의 뜻보다 우선시 했던 것을 회개합니다. 불순종하면서도 '이정도면 되겠지.','하나님이 내 형편 아시니깐 이해하실거야.'라는 마귀가 주는 생각에 나를 합리화 시키려 할 때가 많았음을 고백합니다. 내가 보기에는 순종하기 어렵고 힘든 환경일지라도 그것이 주님의 뜻이라면 기쁨으로 순종할 줄 아는 믿음의 여인이 되길 기도합니다. 하나님은 나의 환경을 보시는 것이 아닌, 나의 마음과 순종도를 보신다는 사실을 잊지 말아야겠습니다.
주님! 주님의 뜻을 분별할 줄 아는 영을 허락하시고, 주님께서 저에게 주신 말씀이라면 언제든 불평이나 원망없이 기쁨으로 "예스"하며 행동하는 제가 되도록 도와주세요.

유광옥

2006-03-01 04:15:06

순종이 제사보다 낫다는 성경의 말씀을 알면서도 제대로 순종하지
못하고 내 형편에 맞추는 경우가 더 많은 것 같다.
늘 형편에 끌려 다니는 사람은 절대로 그 형편 이상의 삶을 살 수가 없다는
말씀을 되새기고 싶다.
형편을 앞세우지 말고 하나님을 기쁘게 하는 것에 우선순위를 두고 싶다.
작은 것에 순종할 줄 아는 사람이 큰 것도 순종할 수 있다고 믿는다.
불평도 불만도 없는 믿음의 회복이 있기를 기도한다.

인선정

2006-03-01 16:14:34

목사님 설교를 통해 저의 오랜 궁금증인 크리스찬의 능력이라는 것에 다시 한번 생각하게 되었습니다. 모든 크리스찬이 세상에서 유능하지는 않습니다. 불행하게도 제가 살아오면서 교회에서 모델로 삼고 싶었던 신앙의 선배들이 모두 세상에서 한 자리(?) 한다기 보다 세상 사람들이 보기에 약자의 모습, 무능력자의 모습이 더 많았습니다. 그렇다면 하나님의 말씀에 순종하면 능치 못할 일이 없다는 말씀은 때에 따라 사람에 따라 맞는 말씀일 수도 있고, 아닐 수도 있다는 말씀일까요? 성경에는 하나님의 말씀에 순종하여 성공한 케이스가 여러차례 소개되어 있습니다. 교회 열심히 섬기고, 기도 열심히 하고, 어려운 이웃을 돌보면 모두가 다윗의 삶처럼 성공적인 인생을 살 수 있을 것 같습니다. 하지만, 현실을 보면 세상서의 크리스찬의 능력은 교회를 잘 섬기는 것과 기도 열심히 하는 것과 관련있는 것이 아니라 하나님이 베풀어 주신 타고난 능력과 환경, 그리고 세상적인 개인의 노력과 관련이 있다고 보여집입니다. 그렇다면 하나님의 말씀에 순종하면 능치 못 할 일이 없다는 말씀은 거짓말일까요? 주일마다 부르는 찬양에도 가끔 나오는 가사이지만... 우리는 거짓말을 노래하는 걸까요? 하나님의 말씀에 순종한다는 것이 무엇일까요? 우리가 속한 교회 잘 섬기는 것도 한 가지고, 새벽기도 나와 기도 드리는 것도 한가지이지만, 그것이 전부는 아닐 것이라는 생각이 들었습니다. 나아가 제가 생각한 가정자체가 맞지 않는 것이 아닐까 하는 생각이 들었습니다. 하나님의 말씀에 순종한다는 것의 구체적인 모습이 무엇인지 잘 모르겠습니다. 유대인들이 여리고성을 함락시킬때처럼 누구나에게 직접 하나님께서 명령을 내리시는 않습니다. 그리고 인간의 능력이란 것이 세상에서의 꼭 성공만을 의미하지는 않는다면 구체적으로 무엇인지도 잘 모르겠습니다. 하지만, 저의 아주 가까운 곳에 근사치에 가까운 답이 있다는 생각이 들었습니다. 제게는 믿음이 좋은 친구가 하나 있습니다. 그 친구는 몸도 매우 약하고 생활 또한 넉넉하지도 않습니다. 그 친구가 하는 말이 자신의 삶은 겉에서 보면 예수님을 영접한 후나 전이나 별 달라진 것이 없다고 했습니다. 하지만, 그 친구는 예수님께서 그 이전에 맛보지 못한 그 누구도 그 무엇도 세상이 줄 수 없는 평화를 주셨다고 말했습니다. 그래서 그 친구는 예전과 달라진바 없는 고통 가운데 있을때 하나님께 기도한다고 합니다. 하나님 말씀에 순종하여 세상에서 승리한다는 것은 어쩌면 자기내면의 하나님의 목소리에 귀기울이고, 그래서 사탄이 설정한 고난 가운데서 절망하지 않고 최선을 다하는 삶이 아닐까 생각합니다.

라문진

2006-03-01 21:35:31

한두번 순종하는것은 누구나 다 할수 있다. 똑 같은 일을, 전혀 눈에 보이지 않는데도 동일한 마음으로 반복하는 사람은 흔치 않다.
정말로 그렇다.
한두번 순종해 놓고 할 일 다한것처럼,
한두번 순종해 놓고 변하지 않는 상황에 불평하고,
얼마나 많이 나 스스로 해왔던 일인가..
순종할때는 말없이 중간에 포기하지 말고 하자. 제발~

최현숙

2006-03-01 22:57:26

우선 주일 말씀을 듣고서 마음이 아팠다. 내가 가장 아팠던 부분은 세상속에 있는 규율이나 법칙이나 인간관계속에서 윗분들의 말씀엔 약간의 긴장감과 두려움을 가지고서 억지든 즐거움이든 그 말대로 행할려고 하면서도 하나님말씀앞에서 나는 어떤 모습으로 내가 생각했었나,,하고 돌아보니 마음이 아팠던 것이다. 물론 인간관계속에서나 세상속의 규율을 내가 따르지 않을때 당장 내게 닥치는 물질적 손실과 정신적 손실이 있기에 우선 순위를 둘수 있었겠지만, 눈앞에 보이는 것보다 내가 보이지 않는 하나님앞에 어떤 모습인지를 비교해보니 내가 주님을 믿노라 하면서도 그말에 부끄럽지 않게 살고 있는 모습이 너무 작았다는것에 내가 아팠던 것 같다. 말씀에 나는 하나님의 양이라고 했다. 양은 목자께 순종한다. 진짜 양인 양도 그 목자에게 순종하는데 나는 그 양보다도 순종하지 못했던것을 보게 하신 하나님! 주님을 사랑한다고 말하면서 말씀에 대한 순종의 도는 언제나 밑에서 머물고 있었던 것을 보게 되었다. 예수님께서는 이렇게 말씀하셨다. 나의 양식은 나를 보내신 뜻을 행하며 그분의 일을 온전히 이루는 것이라고 했다. 의무가 아닌 기쁨으로 하나님이 하라고 하신 일에 즐거이 순종했다. 물론 나는 예수님이 아니기에 조금은 부족하다고 말할수 있을 것이다. 하지만 하나님은 오늘도 내게 이렇게 말씀하고 계신다. 나의 온전함같이 너도 온전하라고.....
여리고성이 무너짐을 통해 하나님앞에 순종이 얼마나 귀한 것인가를 알게 하신 하나님! 반복적인 순종이 가장 힘들고, 변화가 없는 환경의 순종이 우리를 얼마나 숨막히게 했던가! 그럼에도 불구하고 하나님은 순종의 인내를 통해 열매를 보게 하신 때가 얼마나 많았나. 환경, 감정, 형편...이 모든 것들은 순종하기로 결단한 마음엔 아무런 영향력을 끼치지 못한다고 한다. 결단하기전이 문제일 뿐이다. 형편을 뛰어 넘어 주님 찬양함이 오늘 진정 내게 필요한듯 하다.
예수님처럼 아바 아버지라고 부를수 있는 친밀함, 사랑 으로부터 흘러넘치는 순종이 내게 진정 필요한듯 하다. 주일 말씀을 통해 나를 진정으로 보게 하신 하나님을 찬양합니다!

김경희

2006-03-02 16:15:44

나의 삶의 큰 변화을 일으킬수있는 사건은 하나님 앞에 절대적으로 순종하는 것밖에 없다는 사실을 말씀을 통해서 깨달았다.
주님 이한주간도 주님앞에 무릎으로 나아가며,종의 모습으로 순종하기를 원합니다.
할렐루야!!!

정한나

2006-03-02 21:21:33

말씀순종! 반복순종! 총동원순종! 어제부터 마음속 무거운 짐앞에 주저하고 있는 제게 하나님께서는 분명하게 말씀하십니다. 그것도 세번에 걸쳐 또박또박 말씀하십니다. 순종하라구요... 제 마음속에 사랑의 깊은 우물을 파놓으신 하나님께서 그 우물을 아무개한테(?)퍼주라고 말씀하시는데 저는 계속 너무 지쳐서 그 말씀을 그냥 못 들은체 버티고 있었거든요. 하지만 저는 지금 제가 순종해야함을 알고 있습니다. 순종하고 나면 하나님께서 알아서 하시겠지요...샬롬 ^.*~

박정선

2006-03-03 07:45:37

주여! 세상 환경을 택하지 말게 하시고 주님의 말씀을 택하게 하옵소서! 제발.’
목사님의 성도를 향한 간절함이 느껴졌습니다.
하나님은 얼마나 안타까우실까요.
나의 불순종으로 인해 스스로 인생의 함정을 파왔던 것 고백합니다.
하나님의 말씀을 깨달을 수 있는 귀와 순종할 수 있는 믿음을 간절히 간구합니다.

김부영

2006-03-03 20:50:35

이 말씀을 받고 참 나자신이 참 악하다는 생각을 했다
계속 머릿속에 도대체 어떻게 순종하라는 얘긴지 계속 따지고 물었었다
하지만 내가 아무리 이래저래 생각을 해도 역시 주님의 말씀이 정답이라
는 사실이다 하지만 제일 무서운것이 있다
내가 내 욕심에 세상에 이끌려 주님의 말씀을 잘못이해하는, 착각하는 경우가
있다 성경도 어느 한부분만 부각시켜 지나치게 그 부분만 강조하면
이단이 되고 문제가 되듯이 주님의 말씀을 정말 잘 경청하는 것도 순종의
큰 중요한 문제인거 같다 맹목적인 순종을 끌어들이기에는 요번 주 설교랑
맞지 않지만...
한 부분 순종하는 것은 참 쉽지만 인생의 살면서 삶으로 내가 주님께 모든걸
바쳐 순종한다는건 앞으로 앞으로 내가 겪고 이겨야할 숙제이제 숙명인것
같다는 생각을 했다.

홍인기

2006-03-04 03:58:36

순종이 중요함을 머리로는 잘 알지만 내 자신이 먼저 순종 앞에 무너져야 하는데. 그게 잘 되지 않는것 같습니다. 하지만 목사님 말씀대로 돌다가 넘어지는 일은 없도록 기도하고 싶습니다.

제가 이스라엘 백성이였다면...... 5번까지는 참았을것 같습니다. 그뒤로는 욕하고 반항했겠지요.... 그당시 여리고성을 무너뜨린 이스라엘 백성의 순종은 정말 대단한것 같습니다.
일단 순종을 해야 복도 받고 주님의 능력도 받을수 있을텐데..... 이렇게 되려면 정말 세상적으로 어리석은 이가 되어야 겠구나..하는 생각이 듭니다. 하지만 결국 웃는것은 그 어리석을 정도의 순종에 대한 보상을 받는이겠지요.

주님안에서 바보가 되고 싶습니다.

이용준

2006-03-04 05:28:38

믿음으로 믿고 따른다는 것이 얼마나 힘든 것인지 압니다
여리고성은 줄곧 믿음의 대표적 예로 많이 접했는데
순종으로 배우니 와닿는 느낌이 틀림니다
계속되는 반복순종은 정말 어려운 일입니다

김철중

2006-03-04 20:51:27

순종은 왠지 내게는 무기력해보이는 단어였다.
특히 세상의 눈으로 보면 오죽 못낫으면 생각없이 시키는데로만 할까
하는 생각이 들었을 것이다.
순종이 능력이라는 사실은 세상에 살고 있는 나에게는 참 실천하기
어려울 때가 많다.
심지어 순종의 능력을 체험하고도....
감정과 형편에 좌우되지 않는 반복적인 순종......
아직은 많은 기도와 노력이 필요한것 같습니다.

김정아

2006-03-04 21:38:03

순종에 대해 참 많이 들으면서 --- 순종이 제사보다 낫고 , 또한 이스라엘 백성들을 볼 때 하나님이 얼마나 순종을 기뻐하시는지 보면서... 참된 순종이란 뭘까... 또 중요한 것은 그 순종을 어떻게 현실 가운데 적용할까 인것 같습니다.
아브라함처럼 감정과 현실에 타협하지 않은 순종.. 또한 여리고성을 도는것처럼 반복적인 순종... 이러한 믿음의 사람들의 모습이 순종의 참모습이겠죠.. 그러나 현실 가운데 어떻게 적용하는가가 문제인것같습니다. 늘 지혜가 부족함을 느낍니다. 때론 그 상황가운데.... 주님께서 원하시는 것은 무엇일까 ... 이 상황에서 내가 참 순종의 모습은 어떤 모습일까.... 그러나 나의 무지와 지혜의 부족으로 늘 사람들에게 물어보곤 했던 적도 있었던것같습니다... 어쩌면 사람의 말에 더 귀를 귀울였는지도 모릅니다... 예수님이라면 어떻게 하실까.... 예수님이야말로 죽기까지 순종하신 순종의 모델이신데.... 하지만 누가 뭐래도 목사님이 말씀하신 것처럼 순종은 현실과 상황과 다른사람의 이야기와 내 감정에 무관하게 내가 걸어가야 할 길임을 고백합니다... 누가 뭐래도 오직 하나님의 뜻을 좇아........

김민정

2006-03-04 22:15:57

하나님 저에게 순종의 환경을 주심을 감사합니다. 때로는 이 환경으로부터 도망치고 싶을때도 있지만, 그 순간이 바로 은혜의 바로 앞에 서 있는 저를 보게 될때면 저도 모르게 감사의 찬송이 나옵니다.
하나님 제자훈련을 해 나감에 있어서 순종의 횟수를 늘려가는 민정이가 되게 하여 주옵소서.
무슨일을 하든 아버지의 말씀을 기준삼아 행동하게 하옵소서.
아버지 말씀에는 어떤 경우에도 '네' 라는 대답만 하게 하옵소서.

이소진

2006-03-05 01:54:48

말없이 순종하는 모습,,이런 아름다운 모습을 닮기를 원합니다. 요즘 학교에서 이런 저런 일들속에 선택할 일들의 연속속에서 하나님의 뜻을 알기를 간구했고 그 뜻에 순종하길 원하며 기도했었습니다. 하나님께서 알려주시는 길이 베스트임을 알기에 기뻐하며 당장은 의아해도 순종하며 살길 원합니다.
순종은 한번하는 것이 아니라 인생을 살면서 끝없이 해야하는것이라는 말에 많은 것을 생각해봅니다.
늘 하나님과 함께 하며 하나님의 뜻을 알고 그 뜻에 순종해 나가는 자녀가 되길 기도합니다.

노재훈

2006-03-05 09:50:12

여리고는 말씀의 순종으로 무너졌습니다.
말씀에 비추어 부끄러움이 없는 순종으로 나아가도록 기도합니다.

배미화

2006-03-05 20:13:06

반복적인 훈련이 힘들고 때론 지루하고 나태해질수 있지만, 그것을 참고 끝까지 참아 여리고 성이 무너지듯이 나 또한 말없일 묵묵하게 기쁨으로 순종하기를 기도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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