유대인의 자녀교육
유대인은 정말 대단한 민족입니다.
전 세계 인구의 0.2%에 불과한 민족이지만, 노벨상 수상자는 30%를 넘습니다.
사람들은 그 원인을 가정에서 이루어지는 탈무드 가정교육이라고 합니다.
유대교의 율법 스승인 랍비로 탈무드와 관련한 책을 20여 권이나 쓴 마빈 토케이어는 한국사람들에게 다음의 몇 가지 말을 남겼습니다.
‘한국에서는 아이가 집에 돌아오면 ‘오늘 뭐 배웠니?’라고 하지만 유대인은 ‘무슨 질문을 했니?’라고 묻는다. 가장 좋은 학생은 가장 좋은 질문을 하는 학생이다.’
‘유대인 가정에서 아버지는 아이들의 가장 좋은 친구이자 선생님이다. 아이에게 숙제하라고 하면서 자신은 TV를 보는 유대인 아버지는 없다.’
‘탈무드의 마지막 페이지는 언제나 비어 있다. 우리가 그 페이지를 계속해 우리 것으로 채워가야 하기 때문이다.’
탈무드가 이스라엘의 자녀 교육에 확실한 열매를 많이 맺고 있기 때문에 우리는 이 말들을 예사로 넘길 수가 없습니다.
먼저 ‘뭐 배웠니?’와 ‘무슨 질문했니?’에 대해서 생각해 봅시다.
한국에서의 교육은 피동적, 수동적 교육에 많이 의지하고 있음을 말해 줍니다. 자신이 스스로 의문을 품고 찾아가는 자발적 능동적인 교육이 너무나 약합니다. 한국은 선생이 질문하고 학생이 답하는 것은 일반화되어 있지만, 학생이 질문하고 선생이 답하는 것은 어쩌면 금기시되어 있는지도 모릅니다.
피동적 교육의 또 한가지 모습은 숙제를 부모가 대신해 주는 것입니다. 자식의 발전과 성장을 위해서 내 주는 숙제를, 성적에 눈이 멀어서 부모가 대신해 주는 경우들이 있습니다. 자식들이 스스로 질문을 하며 답을 찾아가면 지금 당장은 보잘것없이 보이더라도, 그것이 바로 노벨상의 큰 씨앗이 되는데 말입니다. 자식은 치맛바람으로 키우는 것이 아닙니다.
두 번째는 한국의 아버지는 자녀교육에 간섭은 하지만 관심은 없다는 것입니다.
그래서 아이에게는 숙제하라고 호통을 치면서 자신은 아무렇지도 않게 TV를 보고 있는 것입니다. 자녀 교육의 제일 좋은 환경은 부모의 삶의 모습입니다. 사랑을 가르치면서 부모가 서로 물고 뜯고 싸운다든지, 존중을 가르치면서 부모가 자식 앞에서 서로를 무시한다면 자식은 절대로 가르침 받은 대로 행동하지 않습니다. 본대로 닮아갈 뿐입니다. 자식은 가르침 받은 대로 살지 않습니다. 본대로 행동할 뿐입니다. 부모는 자식의 거울입니다. 비친 대로 비출 뿐입니다. 강아지를 비추어 주고 어찌 거울에서 사랑스런 애기를 볼 수가 있겠습니까?
세 번째는 삶의 실천에 관한 문제입니다.
한국 사람들은 모든 공부를 점수와 연관시킵니다. 그런데 유대인들은 삶과 연관시킵니다.
인생의 가장 값진 공부는 삶의 변화입니다. 우리도 항상 마지막 페이지를 비워 두어야 할 것입니다. 그 페이지는 내 자신의 삶이 쓰여져야 하기 때문입니다. 앞의 수많은 페이지는 이 마지막 페이지를 위해서 존재하는 것입니다. 내 삶이 아름답게 쓰여지지 않으면 앞 페이지가 아무리 많아도 의미가 없습니다.
유대인은 정말 대단한 민족입니다.
전 세계 인구의 0.2%에 불과한 민족이지만, 노벨상 수상자는 30%를 넘습니다.
사람들은 그 원인을 가정에서 이루어지는 탈무드 가정교육이라고 합니다.
유대교의 율법 스승인 랍비로 탈무드와 관련한 책을 20여 권이나 쓴 마빈 토케이어는 한국사람들에게 다음의 몇 가지 말을 남겼습니다.
‘한국에서는 아이가 집에 돌아오면 ‘오늘 뭐 배웠니?’라고 하지만 유대인은 ‘무슨 질문을 했니?’라고 묻는다. 가장 좋은 학생은 가장 좋은 질문을 하는 학생이다.’
‘유대인 가정에서 아버지는 아이들의 가장 좋은 친구이자 선생님이다. 아이에게 숙제하라고 하면서 자신은 TV를 보는 유대인 아버지는 없다.’
‘탈무드의 마지막 페이지는 언제나 비어 있다. 우리가 그 페이지를 계속해 우리 것으로 채워가야 하기 때문이다.’
탈무드가 이스라엘의 자녀 교육에 확실한 열매를 많이 맺고 있기 때문에 우리는 이 말들을 예사로 넘길 수가 없습니다.
먼저 ‘뭐 배웠니?’와 ‘무슨 질문했니?’에 대해서 생각해 봅시다.
한국에서의 교육은 피동적, 수동적 교육에 많이 의지하고 있음을 말해 줍니다. 자신이 스스로 의문을 품고 찾아가는 자발적 능동적인 교육이 너무나 약합니다. 한국은 선생이 질문하고 학생이 답하는 것은 일반화되어 있지만, 학생이 질문하고 선생이 답하는 것은 어쩌면 금기시되어 있는지도 모릅니다.
피동적 교육의 또 한가지 모습은 숙제를 부모가 대신해 주는 것입니다. 자식의 발전과 성장을 위해서 내 주는 숙제를, 성적에 눈이 멀어서 부모가 대신해 주는 경우들이 있습니다. 자식들이 스스로 질문을 하며 답을 찾아가면 지금 당장은 보잘것없이 보이더라도, 그것이 바로 노벨상의 큰 씨앗이 되는데 말입니다. 자식은 치맛바람으로 키우는 것이 아닙니다.
두 번째는 한국의 아버지는 자녀교육에 간섭은 하지만 관심은 없다는 것입니다.
그래서 아이에게는 숙제하라고 호통을 치면서 자신은 아무렇지도 않게 TV를 보고 있는 것입니다. 자녀 교육의 제일 좋은 환경은 부모의 삶의 모습입니다. 사랑을 가르치면서 부모가 서로 물고 뜯고 싸운다든지, 존중을 가르치면서 부모가 자식 앞에서 서로를 무시한다면 자식은 절대로 가르침 받은 대로 행동하지 않습니다. 본대로 닮아갈 뿐입니다. 자식은 가르침 받은 대로 살지 않습니다. 본대로 행동할 뿐입니다. 부모는 자식의 거울입니다. 비친 대로 비출 뿐입니다. 강아지를 비추어 주고 어찌 거울에서 사랑스런 애기를 볼 수가 있겠습니까?
세 번째는 삶의 실천에 관한 문제입니다.
한국 사람들은 모든 공부를 점수와 연관시킵니다. 그런데 유대인들은 삶과 연관시킵니다.
인생의 가장 값진 공부는 삶의 변화입니다. 우리도 항상 마지막 페이지를 비워 두어야 할 것입니다. 그 페이지는 내 자신의 삶이 쓰여져야 하기 때문입니다. 앞의 수많은 페이지는 이 마지막 페이지를 위해서 존재하는 것입니다. 내 삶이 아름답게 쓰여지지 않으면 앞 페이지가 아무리 많아도 의미가 없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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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 コメント
문인우
2010-09-28 01:22:07
좋은 영향을 끼치는 부모가 되어야겠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