Skip to content

중앙영광교회

믿음의 영웅

이용규목사, 2006-11-06 21:34:32

閲覧数
1048
推奨数
17
믿음의 영웅

말씀//롬4:18-22

1.        세분의 아버지
믿음의 사람은 3분의 아버지를 모시고 산다. 첫째 아버지는 우리의 육을 낳아 주신 육의 아버지다. 우리는 이 아버지로부터 육의 유전인자를 물려 받았다. 그래서 자식은 육적으로 다 그 아버지를 닮았다. 두 번째 아버지는 하나님 아버지다. 그 분은 우리에게 생명을 주신 분일 뿐 이니라, 양자의 영을 허락하셔서 ‘아빠 아버지’라 부를 수 있게 하셨다. 그리스도의 영이 없는 사람은 아무도 그리스도인이 될 수가 없다. 하나님 아버지로부터 우리는 생명의 영의 유전자를 받았다. 그러면 세 번째 아버지는 누구실까? 아브라함이다. 하나님은 아브라함을 ‘모든 믿는 자의 아버지(조상, Father)’가 되게 하셨다.(롬4:11) 우리는 아브라함 아버지를 통해서 정신적인 유전자, 곧 믿음의 유전자를 물려 받았다. 이 유전자가 살아서 역사하는 사람에게는 모두 아브라함의 복이 임하게 되어 있다. ‘아브라함만을 위한 것이 아니요 의로 여기심을 받을 우리도 위함이니 곧 예수 우리 주를 죽은 자 가운데서 살리신 이를 믿는 자니라’(롬4:23,24)
아브라함은 복의 근원이었고, 믿음의 아버지였으며, 오늘날로 치면 ‘믿음의 영웅’이었다. 이 세상의 참 영웅은 아브라함의 후예들이었다. 아브라함의 믿음을 증거한 사람은 모두가 세상의 영웅이 되었다. 정치계의 최고 영웅은 링컨이다. 그는 백악관을 기도실로 바꾼 믿음의 인물이다. 남북 전쟁으로 어려움이 있을 때에는 전 국민에게 기도하도록 간청했던 믿음의 영웅이었다. 그리고 경제계의 최고의 인물은 역시 록펠러다. 그는 고백한다. ‘오늘의 나를 만든 것은 어머니가 물려 준 신앙 유산 때문이라’고. 어릴 때부터 40분 전에 와서 맨 앞자리에 앉아 예배 드리는 그의 신앙심은 이미 널리 알려져 있는 사실이다. 여기에 또, 한 믿음의 영웅이 있다. 에릭 리들이다. 그는 스포츠계의 영웅이었다. 스포츠를 통해서 그 만큼 온 세상에 감동과 도전을 준 인물은 없을 것이다. 그래서 그의 이야기는 ‘불의 전차’라는 제목으로 영화로까지 나와서 아카데미상을 수상하게 된다. 에릭은 영국 사람이지만, 그의 아버지가 중국 선교사이기 때문에 중국에서 태어나, 중국에서 자랐다. 아버지의 뒤를 이어 선교사가 될 꿈을 가지고 있었지만, 그에게는 하나님이 주신 특별한 재능이 있었다. 그는 남달리 달리기를 잘 하였던 것이다. ‘에릭이 타락했다.’, ‘장래가 심히 걱정된다.’ ‘육상에 미쳤다’는 등의 온갖 오해와 비방의 소리가 들렸지만, 그는 어려운 결단을 내린다. 오직 육상을 통해서 하나님께 영광을 드리기 위해서 그는 선교사로서 일을 잠시 뒤로 하고 1924년 파리 올림픽에 영국 대표로 출전하기 위해서 혼신의 노력을 기울인다. 드디어 그는 100m 경기의 가장 유력한 우승 후보로, 영국 대표 선수로 발탁이 된다. 그런데 이게 웬 일인가? 그토록 기다리고 기다렸던 올림픽 출전인데, 모든 것이 수포로 돌아가 버린다. 이유는 간단했다. 그가 그렇게 기다렸던 100m의 올림픽 예선이 바로 주일날 있었기 때문이다. 에릭은 ‘달리기 선수’이기 이전에 ‘믿음의 선수’였다. 그래서 그는 달리기라는 도구를 사용해서 믿음의 우승컵을 하나님께 돌려 드리고 싶었던 것이다.
여기서 그는 ‘달리기 선수’를 포기하고 ‘믿음의 선수’로만 뛰기를 결단한다. 그래서 그는 올림픽 경기장에 모습을 드러내지 않고 주일 성수를 위해서 교회에 출석할 것을 결심한다. 이 때 얼마나 큰 협박과 회유가 있었는지 모른다. 영국의 황태자까지 동원되어 그의 출전을 강권한다. 하지만 그는 당당하고 단호했다. ‘나는 주님의 뜻을 어기고 뛸 수 없다.’ ‘나는 올림픽에 출전할 것이 아니라, 주일 예배에 출석할 것이다.’ ‘주일 출전하지 않겠다는 내가 왕 앞에서 무례한 것이 아니라, 믿음을 버리라고 명령하는 당신들이 하나님 앞에서 진짜 무례하지 않소?’ ‘국가도 왕도 올림픽도 모두 하나님이 만드셨습니다.’ ‘주님의 법에 주일은 주님의 것이라고 했습니다. 나는 하나님 말씀대로 주일을 지키겠습니다.’ ‘조국도 사랑합니다만 그 때문에 하나님을 희생할 수는 없죠.’
그는 권력 앞에 두려워하지 않고 주옥 같은 믿음의 말을 당당하게 선포했다.
다음 날 신문에 이렇게 기사가 나왔다.
‘에릭 리들 주일날은 뛰지 않겠다.’ ‘조국보다 신앙이 먼저!’    
          
2.        두 가지 질문
1)        무엇을 더 귀하게 여기느냐?
믿음의 영웅들은 절대로 이중 잣대를 가지지 않는다.
남을 재는 잣대와 자신을 재는 잣대가 같고, 큰 것을 재는 잣대와 작은 것을 재는 잣대가 같다. 세상에 타협하지 않는다. 늘 변함없는 잣대를 가지고 산다. 세상의 형편에 의해서 늘어났다 줄어 들었다 하지 않는다. 에릭 리들이 바로 그런 인물이었다.
그는 평소에, 주일날은 동네 축구도 하지 말아야 한다고 아이들을 정중히 타이르곤 했다. 만약 그런 그가, 주일날 동네 축구는 하면 안되고, 올림픽은 해도 괞찬다고 했다면 이것은 말이 안된다. 어린이들이 이해를 못할 것이다. 그러나 어른들은 이런 이상한 논리들을 얼마나 잘 미화시키는 지 모른다. 그래서 세상은 점점 잣대를 잃어가고 있다. ‘제 멋대로의 세상’이 되어가고 있다. 세상적인 사람들은 다음과 같은 이상한 논리에 붙잡혀 있다.
‘동네 축구는 보잘 것 없으니까 당연히 말씀의 지배를 받아야 하지만, 올림픽은 크고 중요한 대회니까 말씀이 져 주어야 한다’
이런 논리는 바로 믿음 없는 사람의 논리이다. 타락한 논리이다.
그러나 에릭은 달랐다. 동네 축구이건 올림픽이건 하나님의 동일한 잣대로 판단하고 이행했다. 세상 사람들은 분명히 이렇게 손가락질했을 것이다.
‘참 유별난 믿음도 다 봤네. 고지식하기는… 요즘 세상이 어떤 세상인데… 저런 사고 방식으로 세상을 어떻게 살아갈지 참 걱정되는구먼.’
믿음의 영웅은, 세상에 초점을 맞추지 않고, 하나님께 맞추며 사는 사람이다.  
에릭은 하나님이 진짜 원하는 것, 기뻐하시는 것이 무엇인지를 잘 알고 있었다.
하나님은, 주일날 출전해서 올림픽 금메달을 따 드리는 것보다 ‘주일 성수’의 ‘믿음의 메달’ ‘순종의 메달’을 더 기뻐하신다. 성경에 분명히 말씀하셨다. ‘순종이 제사보다 낫다’고.(삼상15:22)
하나님은 사울에게 전쟁에서 모든 짐승을 다 죽여라고 말씀하셨다. 그러나 사울은 좋은 소와 양은 죽이지 않고 가지고 왔다. 하나님께 제물로 바치기 위해서라고 했다. 그는 하나님이 진짜 원하는 것이 무엇인지 몰랐다. 하나님은 불순종하면서 제사 드리는 것보다 제물은 없더라도 말씀에 순종하는 자를 더 기뻐하신다. 그래서 그는 하나님께 버림을 받게 된다.
참 믿음의 영웅은 ‘하나님 앞에서 진짜 귀한 것이 무엇인지를 잘 알고 그것을 선택하는 사람’이다. 예수님도 성경에 순종하기 위해서 십자가의 죽음을 선택하셨다.
에릭은 ‘주일 성수의 말씀’에 순종하기 위해서, 올림픽 금메달, 명예, 3년 동안이나 열심히 준비한 것, 그것도 하나님의 영광을 위해서 준비한 것을 과감히 포기했다. 왜? 그것이 바로 하나님께 최고의 영광을 돌리는 길인 줄을 알았기 때문이다.
믿음의 영웅이 되기 위해서는 다음의 질문에 답을 잘 해야 한다.
‘무엇을 더 귀하게 여기느냐?’
사람은 자신이 귀하게 여기는 것을 택하게 되어 있다. 그것이 바로, 그 사람의 믿음이다.
세상의 금메달인가? 아니면 주일 성수인가?
물질이나 명예를 얻는 것인가? 아니면 말씀에 순종하는 것인가?
자신을 기쁘게 하는 것이 먼저인가? 아니면 하나님을 기쁘게 하는 것이 먼저인가?
믿음의 영웅은 행동에서 차이를 보인다. 진짜 귀한 것을 선택할 줄 아는 사람이다. 말씀에 순종할 줄 아는 사람이다. 아브라함이 자기 아들 이삭보다 하나님의 말씀이 더 귀한 줄을 알았기에 아들을 택하지 않고 순종을 택했듯이.(창22:!2)

다시 에릭의 이야기로 돌아오자.
하나님은 ‘조국보다 신앙이 먼저’이고, ‘왕보다 하나님의 말씀에 순종하는 사람을 절대로 부끄러움을 당하게 버려두지 않는다. 하나님은 그를, 그의 주종목이 아닌 400m에 뛰게 하신다. 믿음의 사람에게는 주종목이 따로 없다. 하나님이 함께 뛰면 그것이 바로 주종목이 된다. 경기 직전에 하나님은 미국 선수를 통해서, 하나님이 그 경기를 에릭에게 붙여 주셨음을 확신하게 하신다. 미국 선수가 준 쪽지엔 이렇게 적혀 있다. ‘성경 말씀에 [네가 사람 앞에서 나를 안다고 증언하면 나도 주님 앞에서 너를 증언하리라]’ (마10:32)
에릭은 이 말씀을 오른 손에 꼭 쥐고 주님이 주신 힘으로 전력 질주한다. 그는 마음으로 고백한다. ‘하나님은 내게 달리는 재주를 주셨다. 나는 달리면서 하나님의 영광을 생각한다’
그는 자신의 우승의 영광이 아니라 하나님의 영광을 생각하면서 달렸다. 그래서 그는 멋있게 금메달을 땄다. 하나님은 순종하는 그에게 두 개의 메달을 다 주셨다. 하나는 올림픽 금메달이고, 또 하나는 주일 성수의 믿음의 메달이었다. (그가 출전하지 못한 100m에서는 영국의 다른 선수가 우승하게 해서, 하나님은 에릭이 원성들을 만한 일을 모두 없애 주셨다.)

2) 무엇을 더 능력 있게 보느냐?
믿음의 아버지인 아브라함은 먼저, 행동에 있어서 믿음의 진면목을 우리에게 보여 주었다.아들을 택하지 않고 말씀에 순종한 모습이다. 그는 무엇이 진정 귀한가를 잘 알았기 때문이다.
믿음의 영웅이 되기 위해서는 다음의 두 번째 질문에도 잘 답할 수 있어야 한다.
‘무엇을 더 능력 있게 보느냐?’
이것은 마음에서 나타나는 믿음의 모습이다.
아브라함의 마음의 모습을 한번 보자.
아브라함은 ‘백세나 되어 자기 몸도 죽은 것 같고, 아내의 태도 죽은 것 같음을 알았다고 했다.(롬4:19) 이것은 바로 환경적으로는 전혀 불가능하다는 말이다. 미련 없이 포기하는 것이 당연한 상황이다. 그런데 아브라함은 어떠했는가? 그의 마음은 절망 가운데 쓰러져 있었는가? 아니다. 오히려 그 반대이다. 그의 겉 사람은 후패했지만 속 사람은 날로 새로왔다.(고후4:16) 그는 ‘약속을 의심치 않고 믿음에 견고하여져서 하나님께 영광을 돌리며 약속하신 그것을 또한 능히 이루실 줄을 확신하였으니’(롬4:20,21)라고 했다.
그의 마음 속에는 분명히 믿음의 불이 활활 타오르고 있었다. 왜 일까? 아브라함은 자신의 죽은 것 같은 몸(환경)의 능력보다는 하나님의 약속의 말씀을 더 신뢰했기 때문이다. 그래서 그는 죽어가는 환경 때문에 낙심하지 않았다.
환경(몸)이 더 힘있게 보이는가? 아니면 약속의 말씀이 더 힘있게 보이는가?
조건이 더 믿음이 가는가? 아니면 하나님이 더 믿음직스러운가?
이것이 당신의 마음의 모습을 결정해 줄 것이다.
믿음의 영웅은 행동이 다르다. 늘 순종의 선택을 한다.
믿음의 영웅은 마음도 다르다. 늘 ‘말씀확신’과 ‘주님영광’에 충만한 사람이다.  

52 コメント

Comment Page Navigation

김부영

2006-11-13 18:57:56

믿음의 영웅은 행동에서 차이를 보인다. 진짜 귀한 것을 선택할 줄 아는 사람이다. 말씀에 순종할 줄 아는 사람이다.
환경(몸)이 더 힘있게 보이는가? 아니면 약속의 말씀이 더 힘있게 보이는가?

한국에서는 교회를 다녔지만 1997년 7월 일본에 와서부터 언젠가 부터
저는 주일성수를 하지 않았었습니다. 몇 주 다니다가 않가고...교회가고 싶다는
마음뿐 그 때는 왜 그랬는지? 모르겠습니다
그러던때 남편을 알게 되고 매주 교회에 나갔습니다 결혼을 하고 가끔은
싸움을 해 주일성수를 지키지 못한적도 있습니다 또 아프다는 핑계로 물론
아프지만 교회에 가서 앉아 있지 못할정도로 아픈지도 않았으면서 몇번
주일성수를 지키지 못했던 날이 있었습니다.
하지만 언젠가부터 저희 가족은 1시예배는 물론이고 3시예배까지 끝까지
승리하는 가족이 되었습니다.
그리고 제자훈련을 부부둘이 같이 받게 되었고 지금은 차량봉사에
속회모임, 사역훈련까지...
제가 믿음이 자랐다고 감히 얘기는 못하지만 주일성수만큼은 저의 부족했던
그 믿음이 이제는 주일성수는 부부싸움, 육신의 아픔, 세상의 유혹정도는
이길수 있게 되었지만 올림픽 금메달을 포기한 에릭에 비하면 어림도 없는
비교도 않되는 저입니다.
하지만 점점 변해가는 저의 모습, 저의 가정이 변한걸 생각하면
앞으로 희망이 있고 소망이 생깁니다.

에릭의 그 믿음을 닮고 싶고 예수님을 닮고 싶습니다.
"그리스도를 닮는 것은 모방이 아니라 그 안에 삶으로써 나타나는 것이다"
라는말이 생각납니다.

박성옥 선교사

2006-11-14 04:55:12

‘무엇을 더 귀하게 여기느냐?’
사람은 자신이 귀하게 여기는 것을 택하게 되어 있다. 그것이 바로, 그 사람의 믿음이다.
세상의 금메달인가? 아니면 주일 성수인가?
물질이나 명예를 얻는 것인가? 아니면 말씀에 순종하는 것인가?
자신을 기쁘게 하는 것이 먼저인가? 아니면 하나님을 기쁘게 하는 것이 먼저인가?
믿음의 영웅은 행동에서 차이를 보인다. 진짜 귀한 것을 선택할 줄 아는 사람이다. 말씀에 순종할 줄 아는 사람이다. 아브라함이 자기 아들 이삭보다 하나님의 말씀이 더 귀한 줄을 알았기에 아들을 택하지 않고 순종을 택했듯이.(창22:!2)

어떤 큰 회사의 사장실에 신실한 믿음의 비서가 있었다고 한다. 매일 전화가 올 때마다 사장님이 없다고 거짓말하는 것이 싫어서 하루는 사표를 써서 사장에게로 가서 사표를 내밀었다. "나는 하나님을 믿는 사람인데, 거짓말을 하는 것은 하나님께서 기뻐하시지 않습니다. 저는 이곳에 있을 수 없겠습니다"라고 했단다. 그랬더니 사장은 그 비서를 제일 신임하게 되었고 가장 중요한 부서에서 일하게 했다는 이야기를 들었다. 하나님을 인정하는 삶을 살면 하나님께서 그 사람을 높여주신다는 것을 믿음의 영웅들을 통해, 이 이야기를 통해 알 수 있다. 나도 이런 믿음의 영웅들처럼 세상의 어떤 권력이나 힘 앞에서도 그것들보다 높으신 하나님을 귀하게 모시고 증거하는 삶을 살고 싶다.

Board Menu

リスト

Page 49 / 55
Status 番号 タイトル 投稿者 日付 閲覧数
  137

계승형 지도자

57
이용규목사 2006-12-18 2573
  136

기드온 300용사의 조건

47
이용규목사 2006-12-12 2637
  135

지도자 훈련

47
이용규목사 2006-12-04 949
  134

감사는 축복의 통로

53
이용규목사 2006-11-27 1555
  133

건강 기도

54
이용규목사 2006-11-21 1265
  132

모든 일을 주께 하듯

50
이용규목사 2006-11-14 1461
  131

믿음의 영웅

52
이용규목사 2006-11-06 1048
  130

무엇을 보는가?

48
이용규목사 2006-10-30 1476
  129

하나님의 문제 해결법

53
이용규목사 2006-10-23 1326
  128

하나님과의 교제

55
이용규목사 2006-10-16 1230
  127

2W-리더십

57
이용규목사 2006-10-09 1022
  126

56
이용규목사 2006-10-02 1092
  125

자화상의 힘

59
이용규목사 2006-09-25 1700
  124

하나님과 바른 관계

56
이용규목사 2006-09-18 1948
  123

염려의 천적

54
이용규목사 2006-09-11 1047
  122

최고의 장사꾼

29
이용규목사 2006-09-04 1019
  121

낙타 무릎

28
이용규목사 2006-07-03 2821
  120

지팡이와 칼

29
이용규목사 2006-06-26 1160
  119

운동선수

28
이용규목사 2006-06-19 903
  118

거울

29
이용규목사 2006-06-13 692

   

sketchbook5, 스케치북5

sketchbook5, 스케치북5

나눔글꼴 설치 안내


이 PC에는 나눔글꼴이 설치되어 있지 않습니다.

이 사이트를 나눔글꼴로 보기 위해서는
나눔글꼴을 설치해야 합니다.

설치 취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