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중앙영광교회

무엇을 보는가?

이용규목사, 2006-10-30 22:15:0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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무엇을 보는가?

민14:6-9

어떤 사건이 한 민족의 운명을 송두리째 바꿔 놓았다면, 그 사건은 분명 우리 인생에도 많은 교훈을 줄 것이다. 민수기 13장과 14장에 바로 이런 사건이 있다. 이스라엘 민족이 계속 광야에 머물 것인가? 아니면 가나안 땅으로 들어갈 것인가를 결정짓게 한 중대한 사건이 기록되어 있다. 이 결정적인 순간에, 이스라엘 백성들은 가나안 복지를 눈 앞에 두고도 40년 동안이나 광야에서 헤매는 운명을 스스로 선택하게 된다.
운명은 주어지는 것이 아니라 자신의 선택의 결과물이다.
당신은 광야에 계속 머물기를 원하는가? 아니면 약속의 땅으로 들어가기를 원하는가?
약속의 땅으로 들어가기를 원한다면 이스라엘 백성들의 전철을 밟지 말고, 여호수아와 갈렙의 선택을 자신의 것으로 쟁취해야 한다. 이것이 당신의 앞으로의 40년의 인생을 바꿔 놓을 것이다. 그러면 여호수아와 갈렙은 어떤 선택을 했을까? 다른 10명은 환경의 힘에 붙들려 ‘애굽으로 돌아가자’를 선택했지만, 이 두 사람은 하나님께 붙잡혀서 ‘가나안으로 들어가자’를 선택했다. 돌아가자고 하는 사람은 돌아갈 수 밖에 없고, 들어가자고 하는 사람은 반드시 들어가게 된다. 당신은 어떤가? ‘과거로 돌아가자’ 파인가? 아니면 ‘약속의 땅으로 들어가자’ 파인가? 약속의 땅으로 들어가자고 선포할 수 있는 사람은 과연 어떤 사람일까?
이런 사람은 세상과 다른 무엇이 있다.

1.        당신은 무엇이 다른가?
믿음이 '있는' 사람과 믿음이 '없는' 사람은 분명히 다른 데가 있다. 그렇다면 과연 무엇이 다를까? 믿음의 유무에 따라 도대체 무엇이 달라지게 되는 것일까? 예수를 믿으면 별천지에서 살게 될까? 절대로 아니다. 우리는 예수를 믿어도 육신을 가지고 있는 한 지구를 떠날 수가 없다. 예수 믿는 사람도 인생을 살면서 못 볼 것 다 보면서 살게 되어 있다. 예수 믿는 사람도 자식 문제, 물질 문제, 건강 문제를 다 안고 산다. 믿는 사람도 다 감기도 걸린다. 믿는 자나 믿지 않는 자나 삶의 환경은 다를 바가 없다.
그렇다면 무엇이 다를까? 보는 것이 다르다. 같은 것을 보아도 다르게 본다. 믿음의 사람은 믿음의 눈으로 세상의 보지만, 세상 사람은 세상의 눈으로 세상을 본다.  믿음이 있는 사람은 천국의 관점에서 바라보지만, 믿음이 없는 사람은 썩어질 땅의 관점에서 바라본다. 여호수아와 갈렙의 관점과 10명의 정탐꾼들의 관점의 차이가 이것을 잘 증명해 주고 있다. 그들은 똑 같은 환경을 보고 왔지만, 보고하는 내용은 전혀 달랐다. 서로 다른 것을 것이 아니라, 보는 눈이 달랐기 때문이다. 이 관점이 그들의 인생을 180도로 갈라 버렸다. 가나안과 광야로, 생명과 죽음으로 나눠 버렸던 것이다. 환경보다 중요한 것은 관점이다. ‘그것을 어떻게 보느냐’가 그 사람의 미래를 결정지어 버린다.
믿음의 사람은 환경이 달라지는 것이 아니라, 환경을 보는 눈이 달라진다.
세상 사람은 현상만 보지만 믿음의 사람은 본질을 놓치지 않는다. 현상은 누구나 볼 수 있다. 그러나 그 속에 감추인 본질은 아무나 볼 수가 없다. 본질을 볼 수 있는 사람이 진짜 능력 있는 사람이다.
자연 현상을 비롯해서 이 세상에서 나타나는 것은 모두가 현상이다. 그러면 이 현상들의 본질은 무엇일까? 당연히 ‘천지의 주재’이신 하나님이시다.(창14:19) 참새 한 마리가 떨어지는 현상도 하나님의 뜻이 아니면 불가능하다고 했다.(마10:29) 지진이 일어나는 것도, 태풍이 부는 것도 이것들은 현상에 불과하고, 그 힘의 근원, 본질은 천지의 주재이신 하나님이시다. 그런데 사람들은 현상은 두려워하는데, 본질인 하나님은 잘 경외하지 않는다. 자연 현상에는 너무나 잘 순종하는데, 정작 그것의 주관자이신 하나님께는 순종은 커녕, 관심도 없다. 지진이 일어났을 때 하나님을 생각하는 사람(일본 사람)이 몇이나 될까?
어떤 현상이 주어졌을 때마다, 우리는 늘 이렇게 질문해 보아야 한다. ‘하나님께서 왜 내게 이 환경을 주셨을까?’ 환경에 반응하지 말고 하나님의 뜻에 순종하는 자가 되어야 한다.
현상만 보고 현상대로 반응하는 자는 미련한 자요, 본질을 생각하는 자는 지혜로운 자다.
요즘은 쥐들도 얼마나 지혜로운지 모른다. 맛있는 과일과 과자를 담아 놓아도 주위에 쥐덫이 있으면 절대로 덥석 먹지 않는다. 지난 번에 교회 2층에 쥐덫(끈적이)을 놓았는데, 잡으려고 하는 쥐는 한마리도 안 잡히고, 사람이 3명이나 잡혔다(?)고 한다.
쥐도 현상만 보지 않는데, 사람이 현상만으로 판단한다면 쥐들이 우리를 보고 뭐라고 할까? (쥐만도 못한 인간들이라고 하지나 않을까?)
믿음의 사람은 다른 환경을 가진 사람이 아니라, 같은 환경에 있지만 그것을 보는 눈이 다르다. 그래서 그들은 여호수아처럼 멋진 삶을 살게 된다.
        
2.        메뚜기와 밥
보는 관점에 따라서 결과가 얼마나 많이 달라지는지를, 정탐꾼들의 이야기를 통해서 자명하게 알 수 있다. 오늘 본분에서 정탐꾼들은 극과 극의 반응을 보인다.
먼저 10명의 정탐꾼들은 아주 비관적인 보고서를 제출했다.
그들은 자신과 환경에 대해서는 전문가들이었다. 분석도 잘했다. 설득력도 꽤 있었다. 그래서 온 백성들의 마음을 사로 잡아 버렸다. 그들은 이렇게 보고했다. ‘그들은 거인들이고, 성읍은 견고하고 심히 크다. 그래서 그들에 비하면 우리는 ‘메뚜기’에 불과하다. 그러니 빨리 도망가자’ 그들은 분명 현상은 아주 잘 보았다. 하지만 본질은 전혀 보지 못했다. 이것이 그들의 결정적인 실수였다. 하나님이 그 땅을 자기들에게 선물로 예비하셨다는 본질을 보지 못했다. 하나님은 미리 힘센 거인들을 가나안 땅에 보냈다. 그들을 통해서 그 땅을 젖과 꿀이 흐르는 땅으로 개척하게 하시고, 견고한 성곽도 만들게 하시고, 좋은 집들도 미리 지어 놓게 하셨던 것이다. 왜일까? 누구 때문일까? 이스라엘 백성들을 위해서 미리 준비해 놓기 위해서였다.  하나님의 이 귀한 뜻을 깨달았다면 가나안 땅은 그들에게 얼마나 감사의 땅인지 모른다.
하나님은 이 뜻을 신명기에서 이렇게 말씀하셨다.
‘하나님께서 네게 주리라 맹세하신 땅으로 너로 들어가게 하시고 네가 건축하지 아니한 크고 아름다운 성읍을 얻게 하시며, 네가 채우지 아니한 아름다운 물건이 가득한 집을 얻게 하시며 네가 파지 아니한 우물을 얻게 하시며 네가 심지 아니한 포도원과 감람나무를 얻게 하사 너로 배불리 먹게 하시리라’(신6:10-11)
분명히 가나안 땅은 하나님이 예비하신 축복의 땅이었다. 그러나 10명의 정탐꾼들은 저주의 땅으로 받아 들였다. 그들은 현상은 잘 보았지만 그 속에 담겨 있는 하나님의 뜻은 전혀 보지 못했기 때문이다.
자신에게 밝고, 세상에 밝은 것보다, 하나님의 뜻에 더 밝아야 하는 것이 얼마나 중요한지를 잘 보여 준다. 하나님께 밝지 못하면 주는 복도 스스로 차 버린다. 10명의 정탐꾼들처럼 말이다. 그들의 보고서에는 하나님에 관한 말은 일절 없다. 단지 환경의 관점에서만 자신들을 보았던 것이다. 그래서 얻은 결론은 ‘자기들은 메뚜기와 같은 초라한 존재’라는 것이다. 자신을 메뚜기로 보는 사람이 무슨 일을 할 수 있겠는가? 어떤 경우에도 우리는 자신을 스스로 메뚜기로 만들지 말아야 한다. 자신의 잘못된 관점이 그렇게 만든다. 그러지 않기 위해서는 어떻게 해야 할까? 자신과 거인을 직접 비교하지 말고, 나와 함께 하시는 하나님과 거인을 비교시키는 것이 믿음의 사람의 멋진 모습이다. 자신과 거인을 비교하면 자신이 메뚜기가 되지만, 하나님과 거인을 비교하면 거인이 우리의 밥이 되는 된다. 그렇게 되면, 내 앞에 아무리 강한 거인이 있어도 전혀 두렵지가 않게 된다. 그래서 여호수아와 갈렙은 몇 번이나 ‘그들을 두려워 말라’고 했던 것이다. 이것은 결코 위로나 격려의 말이 아니다. 현실을 그대로 이야기하는 것이다. 하나님의 관점에서 보면 내가 메뚜기로 보이는 것이 아니라, 오히려 그들이 ‘우리의 밥’으로 보이는 것은 너무나 당연한 것이기 때문이다.
당신의 인생 앞에는 당신이 점령해야 할 어떤 가나안 땅이 있는가?
그 가나안을 볼 때 당신은 자신이 ‘메뚜기’같은 초라한 존재로 보이는가? 아니면 그 땅이 당신의 ‘밥’으로 보이는가? 당신의 보는 관점에 하나님이 늘 함께 하시길 축원한다.

3.        당신의 인생 보고서는?
매일 매일 쓰는 당신의 인생 보고서는 어떤가? 10명의 정탐꾼을 닮았는가? 아니면 여호수아와 갈렙을 많이 닮았는가? 하나님 없이 쓰는 보고서는 늘 불안하고, 낙심되고, 두렵고, 원망의 말의 연속이다. 하나님 없이 사는 인생은 늘 불안하고, 불행하고, 불평적이다. 참 안됐을 뿐이다. 우리는 어떤 형편에서도 환경보다는 하나님을 더 잘 볼 수 있어야 한다. 늘 하나님께 초점을 맞추어서 환경을 보는 사람에게는 행복과, 하나님이 예비하신 결과가 그들을 기다리고 있다. 이것이 믿음의 사람의 능력이다. 하나님은, 환경 속에서 하나님을 보지 못하는 사람은 쓰지 않으신다. 그래서 하나님을 보지 못한 10명은 광야에서 재앙으로 다 죽었다. 하지만 가나안 땅에서 하나님을 보았던 여호수아와 갈렙은 친히 귀한 도구로 쓰셨다. 여호수아는 민족 최고 지도자로 세우셨고, 갈렙은 가나안 땅의 복을 누렸을 뿐 아니라, 그 자손이 땅을 차지하는 복도 누렸다.(민14:24) 당신의 인생 보고서를 다시 한번 점검해 보라. ‘그들은 우리보다 강하다’인가?(민13:31) 아니면 ‘우리가 능히 이기리라’인가?(민13:30) 이 보고서가 당신의 현재의 마음(평안, 두려움)과 미래의 인생을 결정지어 줄 것이다.
  
4.        오직 여호와를 인하여 기뻐하는 자
하박국 선지자는 이렇게 노래했다.
‘비록 무화과 나무가 무성치 못하며 포도나무에 열매가 없으며 감람나무에 소출이 없으며 밭에 식물이 없으며 우리에 양이 없으며 와양간에 소가 없을지라도 나는 여호와를 인하여 즐거워하며 나의 구원의 하나님을 인하여 기뻐하리로다’(합3:17-18)
하나님이 나와 함께 하신다는 것이 얼마나 큰 복인지 모른다. 이 복을 아는 사람은 아무리 무서운 환경이 와도 두려워하지 않고(민14:9), 아무리 가난하고 어려운 환경이 와도 기쁨을 잃지 않는다. 그에게 하나님은 능력의 샘이요, 기쁨의 샘이기 때문이다.
한국에 고승덕 변호사라는 분이 있다. 그는 서울대 법대를 수석으로 졸업한 사람이고, 사법고시, 행정고시, 외무고시를 모두 합격한 똑똑한 사람이다. 대학 2학년 때 이미 사법고시를 합격한 그는 자신의 종교였던 불교를 더 깊이 알고 싶어서 공부를 했다고 한다. 그런데 놀라운 사실은, 공부를 해 보니까 부처는 신이 아니더라는 것이다. 석가모니가 자신을 신적 존재라고 말한 곳은 한군데도 없더라는 것이다. 진짜 불교는 부처를 믿는 것이 아니라 자신을 믿으라는 것이란다. 그래서 그는 많이 힘들었다. 언제 변할지 모르는 자신을 믿고 세상을 헤쳐 나가는 것이 얼마나 힘든 일인지 자신이 잘 알고 있었기 때문이다. 그러던 어느 날 기독교 서클의 권유로 성경을 접하게 되었다. 정말 싫었지만, 기독교인들이 말하는 예수 안 믿으면 지옥 간다는 말이 정말 진짜라면 죽고 나서 위험부담이 너무 크게 느껴져서, 확인 차원에서 성경 공부를 시작했다고 한다. 그런데 그는 거기서 바로 참 신인 예수님을 만났다. 석가는 신이 아니라고 했는데, 예수님은 초인적인, 초자연적인 신으로 분명히 나와 있었던 것이다. 불교는 자신을 의지해야 하는데, 기독교는 어렵고 힘들 때, 늘 의지하며 살아갈 수 있는 주님이 우리와 함께 있다는 것이 얼마나 감사한지 몰랐다고 한다. 그래서 그는 그 다음부터는 공부를 할 때, 7시간은 자고, 17시간은 공부를 했는데 먼저 첫 한 시간은 반드시 성경을 읽었다고 한다. 하나님이 함께 하는 삶이 얼마나 든든하고, 또 집중력을 주는지 모르기 때문이란다. 그 결과 그는 행정고시에 수석으로 합격했다고 한다.
믿음의 사람에게는, 인생이 든든하고 즐거운 것이 환경 때문이 아니라, 나와 함께 하시는 하나님 때문이다. 아무리 좋은 가나안 땅도 하나님을 못 보면 저주의 땅이 되 버리지만, 아무리 열매가 없는 척박한 땅도 구원의 하나님을 보는 사람에게는 기뻐하며 즐거워하는 잔치 마당이 된다.
당신은 지금 무엇을 보는가?
현상을 보는가? 본질을 보는가?
환경을 보는가? 하나님을 보는가?
당신이 메뚜기로 보이는가? 그들이 밥으로 보이는가?
현재의 환경에서 '무엇을 보는가'가 당신의 미래를 결정짓는다.


48 コメント

김경환

2006-10-30 23:45:06

##믿음의 사람은 환경이 달라지는 것이 아니라, 환경을 보는 눈이 달라진다.##

여호수아와 갈렙의 이야기는 모태신앙인 저에게는 제일 많이 들었던 말씀 중에 한
말씀입니다. 눈으로 보이는 환경을 보지 않고 하나님이 예비하신 소망을 볼 수 있었던 믿음의 사람이라는 이 말씀에 오늘은 다른 어느때 보다도 제 마음을 두드립니다.
한국에서 일본으로 올 때 사실 저는 환경적으로 보면 절대 올 수 없었던 사람입니다. 가정적으로 장남인 제가 움직일수는 없었던 겁니다. 이 용규 목사님께서 일본에 교회 개척을 하시고 이사를 오실 때 함께 친구 전도사와 짐을 들고 저는 땅밟기라는 명목으로 왔었습니다. 15일간 있으면서 일본에 대한 별다른 감정은 없었습니다. 3개월 후에 다시 일본에 친구 전도사와 올 기회가 있어서 오사카에 들렀다가 일주일을 중앙영광교회에서 지내게 되었습니다. 지내는 동안 마지막 날 이 용규 목사님께서 오오쿠보역 앞에 있는 平録寿司 에서 식사를 사주시면서 마지막에 함께 사역 할 마음 없냐는 제의를 받았습니다. 저는 그 순간 그저 감사한 마음이였지만 한국으로 돌아가서는 엄두를 내지 못했습니다. 가족에게도 말을 꺼내지 못하고 6개월동안 기도만 했습니다. 도저히 어려운 가족들의 형편을 생각할 때 용기가 나지 않았습니다. 지금의 환경이 평안하다면 가족들에게 쉽게 말하고 일본사역을 위해 올 수 있지만 제게는 눈으로 보이는 현실을 보았습니다. 6개월 동안 목사님께 전화 한통 못 드리고 있던 중에 어머니께서 네가 가야할 길이 일본인 것 같으니 가족 생각 말고 열심히 기도하고 최선을 다하거라! 하시며 어머니께서 용기를 주시고 흔쾌히 허락 해 주셨습니다. 그리고 바로 이 용규 목사님께 6개월만에 전화 드렸더니 기뻐하시면서 빨리 오라는 말씀이셨습니다. 하지만 제 발걸음은 한편으로는 무거웠습니다. 어려운 환경중에 있는 가족들을 뒤로 하고 비행기 안에서 한없이 만감이 교차하는 눈물을 흘렸습니다. 그 당시에 친척들과 동생들은 가족을 버리고 자기만을 위해 가는 나뿐놈이라는 손가락질까지 했다는 것을 후에 어머니께 들을 수가 있었습니다. 하지만 지금은 상황이 달라졌습니다. 그렇게 손가락질을 하던 분들이 오히려 이제는 저를 인정해 주고 계십니다. 그 당시를 떠올리면 역시 하나님께서 저에게 환경을 바라보는 눈의 중요성을 말씀해 주셨습니다. 저는 환경이 달라지면 가족 곁을 떠나려 했습니다. 하지만 어머니께서는 저보다 한발 앞선 환경을 보는 눈이 다르셨던 겁니다. 어머니의 믿음의 눈이 부족하지만 이정도라도 저를 만드셨다고 믿습니다. 이제는 너무나 감사합니다. 환경이 그렇다고 해서 180도로 바뀌지는 않았습니다. 예전보다는 그래도 나아져가는 가족들의 환경을 보면서 믿음의 눈으로 제게 닥쳐 오는 일들 속에서 이제는 확신을 갖고 외칠 수 있습니다.
어려운 환경아! 네가 아무리 나를 무너뜨리려고 달려와도 난 이제 절대!!! 넘어지지 않고 믿음으로 소망을 바라볼 수 있으니 물러가라!!! 이정도로 외칠 수 있는 힘과 믿음을 주신 하나님께 감사드립니다.

##믿음의 사람에게는, 인생이 든든하고 즐거운 것이 환경 때문이 아니라, 나와 함께 하시는 하나님 때문이다. ##

그렇습니다! 저에게는 하나님이 계셔서 든든하고 즐겁습니다. 여기까지 오게 하신 하나님께 감사드립니다. 저도 믿음의 사람이기를 소원했습니다. 그러나 그놈의 환경이 뭔지 환경만 보면 낙심이 되고 힘들었던 시간들도 있었습니다. 이제는 나 김 경환과 함께 하시는 하나님으로 인해 제 인생이 든든해져감을 믿습니다. 결코 나를 부수고 넘어뜨리는 환경에 붙들리지 않을겁니다.
주님! 하나님으로 말미암아 본교회로 중앙영광교회를 섬기게 하시고 형제교회들을 주신 은혜에 진심으로 감사를 드립니다.

이정미

2006-10-31 00:46:06

운명은 주어지는 것이 아니라 자신을 선택의 결과물이다.
믿음의 사람은 환경이 달라지는 것이 아니라 환경을 보는 눈이달라진다.

어떤눈으로 바라보는가 하는 관점에서 똑같은 상황에서 하나님에 대한
확신을 갖느냐, 그렇지 못하느냐는 하늘과 땅만큼이나 큰 차이가 있다.

제자반 친구들과 가을소풍 바베큐를 공원으로 갔다 난그곳에서 고기를 구우며
즐거운 한때를 보냈다. 그런데 그곳에서 백마님이 해물을 잘못먹었는지 면역력
이 부족해 얼굴에 순식간에 두드러기가 났다, 순간 깜작놀라 목사님을 부르고
제자반 친구들은 주변을 둘러싸고 사모님은 얼른 백마님의 팔을잡고 모두 하나가 되어 주여, 주여, 고쳐주옵소서 하며 목사님의 우렁찬 목소리가 점점 커지며 주님께 간절히 기도하셨다.
그런데 난 그사이에 어, 어 어쩌지 여긴 일본분들도 많고 혹 저들이 우릴 이상하게
보면 어쩌지 순간 염려가 되었다.
기도하는 도중 정미 넌 참으로 믿음이 적구나, 저들봐 너아직 멀었어 잠시이지만
난 내가 너무 싫었다. 그순간 입속에서 아멘 아멘 주님 집사님을 고쳐주옵소서
믿는자에게는 능치못할일이 없다고 하셨잖아요 . 조금후 서서히 깨끗해짐을
보면서 주님 이렇게 신뢰하지 못하고 어리석은 믿음을 용서해 주옵소서.
필요할때만 꺼내는 그런 믿음이 아니라 어느순간 어느때 항상 당신이 우리와
함께하심을 확신 합니다.
믿음은 하나님을 기쁘시게 하지만, 감정은 자신을 기쁘게 한다

이미령

2006-10-31 02:55:10

신명기 6장 10~11절말씀...

하나님이 우리에게 약속한 말씀을 믿기에....
나는 예수믿는것이...신납니다....
그리고...내게는 예수안믿는 일본분이...밥입니다...
일본사람은...나때문에 복 받을겁니다....
나는 일본사람 때문에 하나님께 칭찬 받을겁니다....

지금 내가 하나님께 간구 할것은....
미련하여 나도 모르는 사이에 ..
하나님을 대적 하지않는 겸손을.....
하나님의 역사하심을 체험하면서도....
나의 욕심을 구하여 하나님을 시험하지 않기를.....

주는 나의 하나님이시라..내가 주께 감사하나이다...
주는 나의 하나님이시라...내가 주를 높이리이다...<시편118편28

마준철목사

2006-10-31 08:02:02

"믿음의 사람에게는, 인생이 든든하고 즐거운 것이 환경 때문이 아니라, 나와 함께 하시는 하나님 때문이다. 아무리 좋은 가나안 땅도 하나님을 못 보면 저주의 땅이 되 버리지만, 아무리 열매가 없는 척박한 땅도 구원의 하나님을 보는 사람에게는 기뻐하며 즐거워하는 잔치 마당이 된다. 당신은 지금 무엇을 보는가? 현상을 보는가? 본질을 보는가? 환경을 보는가? 하나님을 보는가? 당신이 메뚜기로 보이는가? 그들이 밥으로 보이는가? 현재의 환경에서 '무엇을 보는가'가 당신의 미래를 결정짓는다.

오늘 말씀을 읽고 묵상을 하는데, 문득 저희가 가와사키영광교회를 처음 개척할 당시가 생각이 났습니다. 다음달이면 벌써 개척한지 만 2년이 됩니다. 지금은 하나님의 은혜가운데 하루하루 행복한 목회를 하고 있습니다만, 처음 교회를 개척하는 과정은 그렇게 쉽지는 않았습니다.(모든 선배 목사님들은 말할 나위도 없겠지만요)

아무런 정보도 없이 집사람과 무작정 가와사키 역에 내렸을 때가 지금도 생생히 기억이 납니다. 정말 어디로 가야할지 한 발자국도 움직일 수 없는 막막함 가운데 있었습니다. 하나님은 정말 이 곳에 하나님의 교회가 세워지기를 원하시는걸까? 온갖 불신과 좌절이 밀려오는데 정말 감당하기 어려웠습니다. 그 때는 왜 그렇게 하나님의 눈으로 보는 것이 어려웠을까 모르겠습니다.

어떻게 되든지 가와사키에서 순교 할 각오를 하고 천신만고 끝에 교회를 얻을 수 있었지만, 주변 환경이 마치 소돔과 고모라를 연상시킬만한 환경이어서 연신 한숨만 나오는 것이었습니다. 이런 곳에 교회라고 찾아올만한 사람이 과연 있을까? 게다가 가뜩이나 작은 방에 정가운데 떡하니 기둥이 있어서 뒤에서 보면 앞에 도저히 보이지 않으니..... 정말 뭐 하나라도 내 눈을 만족시키는 것은 하나도 없었습니다.

그러나, 그 때는 정말 해석이 안 되던 일들이 시간이 지나고 믿음의 눈이 열리면서 하나 하나 밝혀지는데, 너무나 기가막힌 것이었습니다. 주일학교 아이들이 많아지면서 기둥이 왜 있는지 그때서야 알게 되었습니다. 기둥이 예배실과 유아부실을 나눠주는 분기점 역할을 했던 것입니다. 그리고 어떤 목사님의 예언처럼 하나님께서 기둥같은 역할을 감당하는 성도님들을 한 분 한분씩 보내주시는 것이었습니다.

죄가 많은 곳에 은혜의 역사도 더 강하게 일어난다고 했던가요? 도저히 교회 위치로는 적합하지 않은 곳이었지만, 하나님께서 그 안에 은혜를 갈망하는 사람들을 숨겨 놓으셨던 것입니다. 지금은 저희 교회가 가와사키 코리아타운 한 복판에 위치하여 이제는 저희 교회 주변에 저희 교회를 모르는 사람이 없을 정도로 아직은 미약하지만 작은 영향력을 끼치고 있습니다. 할렐루야!

정말 우리가 보는 눈과 하나님이 보시는 눈은 얼마나 차이가 나는지, 짧은 목회 경력이지만 시간이 흐르면 흐를수록 뼈저리게 느끼게 되는 것 같습니다. 여전히 본질을 파악하는 눈은 얼마나 부족한 지 모르겠습니다. 금방 환경에서 보여지는 현상에만 붙들리는 때도 얼마나 많은지 모르겠습니다. 그 때마다 오늘의 말씀을 떠올리며 본질과 하나님을 바라보는 열린 영안을 가질 것을 소원해 봅니다.

조정현

2006-10-31 17:08:59

....어떤 현상이 주어졌을 때마다, 우리는 늘 이렇게 질문해 보아야 한다. ‘하나님께서 왜 내게 이 환경을 주셨을까?’ 환경에 반응하지 말고 하나님의 뜻에 순종하는 자가 되어야 한다.현상만 보고 현상대로 반응하는 자는 미련한 자요, 본질을 생각하는 자는 지혜로운 자다.....

예수님을 몰랐을때는 그 환경이 전부인마냥 그 현상에만 열심히 반응을 하며 힘든일이 있으면 그 힘든일로 사람에게 위로받기위해서 위새를 부리고 예수님을 믿고도 예비해두신 계획을 그냥 믿고 순종하면 되는데 꼭 내가 하나님의 뜻을 마냥 다 알아야 겠다고 들썩거렸던 내 자신이 있었던것 같습니다.예수님을 믿고 난 후로도 가끔은 "하나님 저 한테 왜 이런 일을 주시나요? 이런 고난을 당하게 하시나요?" 라고 물으면서도 하나님의 대답에 귀 기울이지 않았던 때가 있었던 것 같습니다.

며칠전에도 한국에계신 엄마랑 통화를 하면서 일하시는 곳에서 자꾸만 예상치 못했던 문제들이 일어난다고 "하나님이 왜 그런일이 자꾸 생기게 하실까?" 하는 대화를 나누게 하셨습니다. 이런저런 이야기를 듣고 엄마가 그 직장이 세상적으로 보면 편한데 자꾸 기도시간에 걸려서 기도시간이 없어진다는 말씀을 하셨습니다. 기도하고 지혜롭게 결정할수 있도록 기도해달라고 하셨는데 그 말을 들은 후부터 제게는 기도제목이 아니라 걱정이 생겨버리고 말았습니다. 제 마음을 아신 엄마는"걱정하라고 이야기한게 아니라 기도해달라고 이야기한거다.."라고 말씀하시며 전화를 끊었습니다....저도 그 이야기를 듣고 걱정을 붙들고 있는것(환경에 반응하는것)이 아니라 도리어 감사하게 되었습니다. 저희의 영적 생활이 주님앞에 집중하지 못할때 저희를 버려두지 않으시고 환경을 통해서 깨닫게 하시고 결단하게 하시는 하나님께 도리어 감사하고 나니 마음이 그렇게 편할수가 없었습니다.
환경에 반응했을때와 하나님께 믿음의 반응을 했을때의 나의 마음은 정말 천지차이였습니다.

현상만 보고 현상대로만 반응할때는 하나님께서 절대로 역사하실수 없음을 짧은 삶이지만 체험하고 겪을 때가 많습니다. 환경이 어떻든 주님의 뜻에 순종할때에
하나님께서 우리들을 반드시 가나안땅으로 인도하실줄을 그것만 믿는다면 선하신 하나님께 반응하는 삶을 살수 있지 않을까...생각해봅니다. 환경이 좋을때나 나쁠때나 주의 뜻을 알지 못할때라도 주님의 계획안에 있음을 늘 잊지않게 하소서...

김부영

2006-10-31 17:59:50

환경보다 중요한 것은 관점이다. ‘그것을 어떻게 보느냐’가 그 사람의 미래를 결정지어 버린다.
세상 사람은 현상만 보지만 믿음의 사람은 본질을 놓치지 않는다. 현상은 누구나 볼 수 있다. 그러나 그 속에 감추인 본질은 아무나 볼 수가 없다. 본질을 볼 수 있는 사람이 진짜 능력 있는 사람이다.

요즘 나에게 기도제목이 있다. 태연이의 소학교 진로문제이다.
한국에서 살면 선택할 여지도 없었겠지만 요즘 난 나 나름대로 생각이 많다
물론 하나님께서 인도해주시는 대로 감사하며 지내겠지만 하나님께서는
내가 어떻게 선택하냐에 따라 또 나의 기도를 들으시고 예비하고
인도해 주신다.
한국에 있는 아는 언니와 전화통화를 했었다 정말 한국은 과외가 대단했다
내가 알기론 그 언니도 치맛바람이니 뭐니 남이 하니깐 하는 그런 사람과는
거리가 먼 자기의 중심이 꽤 강한 사람인데 어마어마한 돈을 과외비로 쓰고
있었다
여기서도 한국엄마들은 참 대단하다 한국과 똑같이 가르치려한다
그래서 태권도, 한글, 글짓기학원, 피아노, 수영, 미술, 영어, 구몬... 어딜가도 한국 아이들이 벅적벅적하다
난 그 아이들이 커서 뭔 큰 대단한 차이가 없지 않나 생각한다.
엄마들은 주로 하면 다르다고 얘기들을 한다 물론 지금 당장은 확실한 차이가
있다 하지만 그 아이가 소학교, 중학교, 고등학교, 대학교...지금 눈에보이는
현상이 우리를 요동치게 하는것 같다는 생각을 한다
그 아이를 이 세상에서 들어서 쓰시는 분은 하나님이신 사실을 우리는 나는
잊고 지낼때가 많은거 같다.
낮은 자를 높이시는 하나님이시다 그 애가 똑똑하고 재능이 있다고 꼭
세상에서 성공하고 행복한 것은 아니다
난 태연이에게 적합한 학교를 선택해 주고 싶다
부모의 가장 중요한 역할은 자식이 가장 좋아하는 것을 선택해 그 것을
일을 하며 평생살게 해 주는 역할이라고 티브이에서 본것 같다
일본학교, 한국학교 나름대로 좋은점과 나쁜점이 있다
내가 현상에 눈이 멀지말고 본질을 볼 수 있는 사람이길 기도해본다
요즘 들어 부쩍 인기가 좋아진 한국학교를 세상사람들의 생각으로
보내는 것이 아니길 내가 나에게 부탁아닌 부탁을 한다.


자신과 거인을 직접 비교하지 말고, 나와 함께 하시는 하나님과 거인을 비교시키는 것이 믿음의 사람의 멋진 모습이다. 자신과 거인을 비교하면 자신이 메뚜기가 되지만, 하나님과 거인을 비교하면 거인이 우리의 밥이 되는 된다.

생각이 기적을 만든다라는 말이 생각난다 똑같은 환경을 10명의 정탐꾼과
여호수아, 갈렙은 전혀 달랐다
신명기의 말씀을 두 사람은 확실히 온전히 믿었다 환경속에서 하나님을
믿었던 그 믿음을 나는 정말 본받고 싶다.
나와 함께 하신는 하나님보다 더 큰 존재, 더 큰 문제, 더 큰일은 아무것도
없다는 사실을 잊지않고 평생살고 싶다


김기웅

2006-10-31 22:17:37

1. 우리는 예수를 믿어도 육신을 가지고 있는 한 지구를 떠날 수가 없다. 예수 믿는 사람도 인생을 살면서 못 볼 것 다 보면서 살게 되어 있다. 예수 믿는 사람도 자식 문제, 물질 문제, 건강 문제를 다 안고 산다. 믿는 사람도 다 감기도 걸린다. 믿는 자나 믿지 않는 자나 삶의 환경은 다를 바가 없다.
그렇다면 무엇이 다를까? 보는 것이 다르다. 같은 것을 보아도 다르게 본다.

이 부분에서 참 많은 은혜가 됩니다. 육신을 받은 이상 지구에서 내가 할일이
있고, 예수 믿기때문에 못 볼것 다 봐야 되고, 예수 믿기 때문에 자식땜에
속도 썩어봐야하고, 물질 문제에 가슴앓이도 해봐야되고, 예수 믿기 때문에
하나님이 주신건강 잘 지켜서 살라는 말씀..
세상사람들과 별반 다른것이 없이 일주일을 살고 교회에 가면,
가슴이 답답합을 느낍니다.
숙제도 마찬가지입니다. 본질을 보기보다는 내 환경만 가지고 고민하다가
갑자기 숙제를 대하면 잘 되지 않고 부끄럽기만 합니다.
주일 말씀시간에 고 승덕변호사님 얘기에 많은 은혜 받았습니다.
특히 그 분은 어떤 책을 보더라도 자신을 내려놓고
마음을 활짝열고, 그 책의 저자가 무슨의도로 이런말을 하는지를
귀담다 들으려한다는 얘기는 저를 많이 뒤돌아 보게 했습니다.
그분이 그분 된것은 절대 겸손이라는 생각을 해봤습니다.
자기가 어떤 사람이던지 다 남을 스승으로 생각하는 그런부분이 있는 분..
자기의 환경은 남과 똑같지만 그래도 뭔가 다른 환경을 자신의 힘으로
만들어 내는 힘. 하루를 시작하기 전 1시간은 말씀을 묵상하는 습관..

가끔씩 목사님께서 기도제목을 써내라고 하십니다.
왠지모를 머뭇거림이 제게 있습니다.
목사님 바쁘신데 나까지 꼭 기도부탁을 해야하나..
어디까지 써 내야하나..
구체적으로 써내야하니까요..
저는 믿음에도 무협지같은데서 나오는 내공이 있다고 생각합니다.
목사님같은 절대내공자에게 내 기도제목을 써낼때는 내 믿음의
질량도 느끼시리라 생각해서인가봅니다.
이런것까지 써내야하나..
벌써 응답받은것인지도 모르고 또 기도부탁을 드리는건 아닌지..
이런제가 하나님앞을 생각할때는 주눅이랄까 내 환경을 놓고
나를 내려놓지못하고 막연한 기도만 했던것은 아닐까 생각해봅니다.
가나안땅과 이집트땅을 놓고 벌어진 이번주 말씀에서
본질을 보는 눈의 힘이 제게도 생겨지기를 소망합니다.




강정임

2006-10-31 23:57:16

환경보다 중요한 것은 관점이다. ‘그것을 어떻게 보느냐’가 그 사람의 미래를 결정지어 버린다.
믿음의 사람은 환경이 달라지는 것이 아니라, 환경을 보는 눈이 달라진다.

사람을 대함에 있어서는 겉모습을 보고 판단하지 말자를 중요시 생각하면서 살아왔는데 왜 하나님에 대해서는 유달리 눈에 보이는 현상에 집착을 했었을까라는 생각이든다.
본질을 보려는 마음은 없고 지금 보이는 현상만을 보고 판단하고 그리고 부정적인 생각을 하고 ,
그래서 하나님을 신뢰하지 못했고 믿음도 제자리에 머무른체 성숙하지 못했었다.
제자훈련을 받고 조금씩 하나님의 본질에 의지하려는 마음의 생기기는 했지만 나의 신앙 생활에 있어서 정말 중요한 갖추어야할 필수 요소임을 깨달았다.
현상을 보고 불평,불만을 하는 자가 아니라 하나님의 뜻, 본질을 깨닫고 미래를 볼 수 있는 눈을 가진 자가 되도록 내 마음과 생각을 다듬어 나아가야겠다

늘 의지하며 살아갈 수 있는 주님이 우리와 함께 있다는 것이 얼마나 감사한지 몰랐다고 한다. (me too)

박정선

2006-11-01 00:48:27

"돌아가자고 하는 사람은 돌아갈 수 밖에 없고, 들어가자고 하는 사람은 반드시 들어가게 된다. 당신은 어떤가?"
"환경보다 중요한 것은 관점이다. ‘그것을 어떻게 보느냐’가 그 사람의 미래를 결정지어 버린다. ‘하나님께서 왜 내게 이 환경을 주셨을까?’ 환경에 반응하지 말고 하나님의 뜻에 순종하는 자가 되어야 한다."
"하나님께 밝지 못하면 주는 복도 스스로 차 버린다.그들의 보고서에는 하나님에 관한 말은 일절 없다. 단지 환경의 관점에서만 자신들을 보았던 것이다."

'환경이 사람을 만든다'고 합니다. 믿음의 사람들도 많이 인정하고 있는 말입니다.
저도 환경을 많이 탓했던 적이 많습니다. 하나님께 불평도 했었습니다.
또 '그 사람은 환경이 그래서 어쩔수 없어. 이해해야지'라는 말도 했습니다.
내 말과 기도에는 하나님이란 주어가 많이 빠져 있었습니다. 환경을 허락하신 것도, 환경을 움직이는 것도 하나님이란 것을 늘 망각하고 있었습니다.
본질을 바라볼 수 있는 믿음이 없었습니다.
본질을 바라보는 사람은 늘 감사와 희망의 말이 그 입에서 나옵니다.
저도 여호수아와 갈렙처럼 희망에 반짝이는 눈을 가지고 "하나님이 허락하신 땅입니다. 하나님의 축복이 눈 앞에 다가왔습니다" 라는 말을 늘 선포하기 원합니다.
우리 하나님을 보는 믿음의 눈을 저와 주변의 사랑하는 사람들에게 온전히 열어 주세요!

김명화

2006-11-01 01:02:49

운명은 주어지는 것이 아니라 자신의 선택의 결과물이다.
처음에는 얼마 전까지만 하여도 운명은 주어진 것이라고 알고 있었던 저입니다.
불가 몇 달 후만 하여도 제자훈련까지 받게 될 줄이야
꿈에도 상상해 본적이 없습니다.

[당신은 광야에 계속 머물기를 원합니까?
아니면 약속의 땅으로 들어가기를 원하는가?]
내 스스로에게 물어 보 았을 때 나는 죄책감이 앞섰습니다.
저는 약속의 땅으로 들어가기를 원합니다.또한 그 땅을 상속 받기를 원하고
하나님의 뜻을 이루기 위해 기름 부어 주실 줄 믿습니다.

[당신은 무엇이 다른가?]
[과연 무엇이 다를가?]
첫번째: 믿음의 사람은 잘못을 하면 그 잘못에 대하여 생각하고 회게의 기도를 합니다.
두번째: 믿음의 사람은 계명에 어긋나는 행동을 했을 때 일단은 마음의 죄책감을
느끼면 괴로워하고 우부 짓어며 회게 합니다.
믿음의 사람들은 말을 한마디 잘못을 하고도 후회하며 기도하고 용서를 구하지만
그러나 믿지 않는 사람들은 잘못을 하고도 시인조차 어려워하는 사람들이 많다.
예수 믿는 사람도 자식 문제, 물질 문제, 건강 문제를 걱정하고 살아갑니다.
하지만 우리는 그 모든 걱정거리를 하나님께 내려놓고 기도하고
해결해 주실 것을 믿으며 설경을 읽는다.

[그렇다면 무엇이 다를까?]
보는 관점이 다르다는 것이다.
믿음의 사람들은 믿음의 눈으로 세상을 본다…..
믿음이 없는 사람들은 잠시 잠깐 인 이 땅에 목표를 두고 사는 것이다.
초점을 하나님에게 맞추기를 원합니다.

[현상들의 본질은 무엇일까?]
“천지의 주재”이신 하나님 이시다.(창14:19)
참새 한 마리가 떨어지는 현상도 하나님의 뜻이 아니면 불가능 하다고 했다.
(마10:29)
“이 땅에 보내신 목적을 발견하게 하옵소서.”
“내가 이 땅에 왜 존재하는가?”를 40일 특새를 통해서 깨닿게 하여 주시 오소서.
“하나님께서 왜 내게 이 환경을 주셨을까?”을 다시 한번 생각할 시간을 가졌다.
이 시련과 고난을 통해서 더 큰 축복을 예비 하신다는 것을 깨달았습니다.
그리고 이 특새를 통해서 용기를 얻게 하여주심 감사하옵고
오빠와 새 언니에게 전도 할수 있어서 감사합니다.

하나님께서 네게 주리라 맹세하신 땅으로 너로 들어가게 하시고 네가 건축하지 아니한 크고 아름다운 성읍을 얻게 하시며, 네가 채우지 아니한 아름다운 물건이 가득한 집을 얻게 하시며 네가 파지 아니한 우물을 얻게 하시며 네가 심지 아니한 포도원과 감람나무를 얻게 하사 너로 배불리 먹게 하시리라’(신6:10-11)
어쩌면 한마디 한마디 말씀이 그리도 정확하시고
진리이시며 인간의 마음을 녹여주시는지요?
당신의 인생 앞에는 당신이 점령해야 할 어떤 가나안 땅이 있는가?
제자훈련을 통해서 성질을 고칠수 있도록 이끌어 주시 옵기를 간절히 간구합니다.
말씀에 순종하며 봉사할때에 불평불만 하지 말고 할수 있도록 인도하여 주시오소서.

‘비록 무화과 나무가 무성치 못하며 포도나무에 열매가 없으며 감람나무에 소출이 없으며 밭에 식물이 없으며 우리에 양이 없으며 외양간에 소가 없을지라도 나는 여호와를 인하여 즐거워하며 나의 구원의 하나님을 인하여 기뻐하리로다’(합3:17-18)
하나님이 나와 함께 하신다는 것이 얼마나 큰 복인지 모른다. 이 복을 아는 사람은 아무리 무서운 환경이 와도 두려워하지 않고(민14:9), 아무리 가난하고 어려운 환경이 와도 기쁨을 잃지 않는다. 그에게 하나님은 능력의 샘이요, 기쁨의 샘이기 때문이다.

너무나 좋아하는 성경구절이며 은혜 받은 구절입니다.
나는 이 땅에 하나님의 환경만을 바라보면 나아갑니다.

나는 메뚜기로 보입니다.
나에게 능치 못할 일이 없다.하나님은 나의 든든한 후원자이기 때문입니다.
언젠가는 나도 하나님의 도구로 쓰임 받기를 원합니다.

김은하

2006-11-01 03:50:59

오직 여호와를 인하여 기뻐하는 자… 가 되고 싶습니다.

하나님을 믿는 이스라엘 백성들은 지금 광야에 있습니다.
예수님을 믿어도 지구를 떠날수는 없습니다.
예수님을 믿는다고 태양을 두개 주지는 않습니다.

그렇습니다.
지금 우리는 광야에 있지만 가나안을 들어갈 수 있는 선택은 할 수 있습니다.
예수님을 믿어도 지구를 떠날 수는 없지만 우주라도 내안에 품을 수는 있습니다.
예수님을 믿어도 두개의 태양은 갖을 수 없지만 그보다도 귀한 은혜의 보좌
앞에 나아갈 수 있는 특권이 우리에게는 주어집니다.
이제는 메뚜기 콤플렉스에서 벗어 나고 싶습니다.
메뚜기 콤플렉스와 겸손의 분별을 이제는 온전히 깨닫기를 원합니다.
10:2 의 수치가 나를 긴장 시킵니다.
10의 분석력과 설득력앞에서 하나님의 선물을 자주 잊고 환경에 주저
앉는 나의 나약함을 봅니다.
‘ 내가 주를 의뢰하고 적군에 달리며 내 하나님을 의지하고 담을 뛰어넘나이다.’
(시18:29) 이런 보고서를 쓰는자가 되고 싶습니다…
그래서 그 땅의 과일을 갖고 오라는 주님의 뜻을 깨달아 주님을 기쁘게
해드리고 싶습니다.










정향연

2006-11-01 03:52:01

저는 * 거인* 을 보는 하나님의 시각을 배웠습니다.
이스라엘 백성을 위해 *거인으로 밭을 갈게해,비옥한땅을 준비하신*

가나안땅에 있는 거인이 지금까지 내눈에는 적군,두려움,넘을수없는 높은벽,장애물 로만 보였는데,
하나님의 자녀인 나는 다른 눈을 가져야한다는 것을 깨달았습니다.
하나님의 소위 *거인 시각*을 적용하여 내 삶을 보니 많은것이 해석이되어집니다.

나와 함께 했던 사람들,,특히나 영향을 미친 상사님
그 당시엔 참 힘들었었는데
상사님이 거인같이 다 일을 해주시고 퇴임을 하셨기에 지금 내가
그 자리의 일까지도 가능하게해 주셨구나 하는 ....
------>거인을 통해 날 축복해주시는 하나님

또 나도 언젠가는 그 거인의 자리의 서겠지만 다음 사람을 위해
밭을 열심히 가꾸는 소명으로 현재의 일을 해야겠다는 생각을....
------>거인도 하나님껜 밭을 가는 목적으로 사용되었다는 것을

동시에 작업을 하시는 하나님,내가 가지는 그 마음가짐을 보고
상황상황에 맞게 들어 사용하시는 하나님을 보고,
원하시는때에 잘 사용되는 자녀가 될수있도록 매일매일을 준비해나가
야겠다는 생각을 해 봅니다.

유광옥

2006-11-01 04:24:44

1.어떤 현상이 주어졌을 때마다, 우리는 늘 이렇게 질문해 보아야 한다. ‘하나님께서 왜 내게 이 환경을 주셨을까?’ 환경에 반응하지 말고 하나님의 뜻에 순종하는 자가 되어야 한다.

하나님을 믿는다고 하면서도 어떤 힘든 상황이 내게 닥치면 믿음으로
견더내기가 어려울 때가 더 많은 것 같다.
"왜 내게 이런 환경을 주셨을까?" 를 먼저 생각하는 것이 아니라
"왜 내게 이런 환경을 주셨어요?" 하고 하나님께 우선 불평을 해보게 된다.
지나고 나면 "왜" 라는 것의 해답을 찾을 수 있지만 당장은 환경에
즉각 반응하여 기도하는 것도 말씀을 보며 이겨내는 방법도 잊어
버리게 된다. 하지만...

얼마전에 木下의 취직이 결정 되었을 때에는 하나님의 뜻에
전적으로 순종하고 나니 마음도 편안하고 감사도 할 수 있었다.

5월에 직장을 그만두고 나서 꽤나 오랜 시간이 걸려도 취직이
안되어 은근히 불만도 생기고 한글 아르바이트에 가이드에 통역에
쉼도 없이 매일 매일 나가서 일해야 하는 자신이 안쓰럽게 느껴지기도
했었다. 그런데 뒤돌아 보면 취직이 나 때문에 더 늦어진 이유가 더
컸는데 신랑한테 기도 좀 더 열심히 해보라는 둥, 작정기도가 필요하다는 둥
신랑은 나를 위해서 되도록이면 월급을 많이 받는 곳만 열심히 찾았지만
그런 곳은 신랑이 기도하고 있는 직장과는 거리가 멀었다.

술도 마시지 않고, 주일날은 무조건 쉬고, 남을 위해 봉사할 수 있는 곳이
그리 쉽게 찾아지지 만은 않았었다.
그리고 木下가 10월1일 부터 우선 20일 작정기도에 들어갔다.
아침에 일어나서 말씀을 읽고 기도를 꾸준히 한 결과 지금의 직장을
구하게 된 것이다. 놀라운 것은 작정기도를 마치는 20일 날 정확히
같이 일해 보고 싶다는 연락이 왔던 것이다.

앞으로는 사회복지를 통해 하나님의 영광을 드러내기를 기도하며
내가 지금껏 월급 문제로 그리고 휴일 문제로 욕심을 부렸던 것을
하나님 뜻에 순종하기로 마음먹고 모든 것을 내려 놓게 되었다.

남들 다 쉬는 お盆도, 골든위크도, 祭日도 쉬지 않고 일해야
한다는 곳에서 작은 월급으로 생활해야 한다는 것은

"왜 내게 이런 환경을 주셨어요?" 하고 하나님께 불평해야
하겠지만 지금은 하나님께서
"왜 내게 이런 환경을 주셨을까?" 하고 여유롭게 생각할 수
있을 것 같다. 남편이 아무 조건 없이 기뻐하는 모습을 보며
함께 기뻐할 수 있어서 얼마나 다행인지 모른다.

3.‘비록 무화과 나무가 무성치 못하며 포도나무에 열매가 없으며 감람나무에 소출이 없으며 밭에 식물이 없으며 우리에 양이 없으며 와양간에 소가 없을지라도 나는 여호와를 인하여 즐거워하며 나의 구원의 하나님을 인하여 기뻐하리로다’(합3:17-18)

이 말씀은 내가 참 좋아하는 한 구절이다.
내가 가진것이 아무것도 없어도 내가 여호와를 인하여 즐거워하며
나의 구원의 하나님을 인하여 기뻐하기를 기도드린다.

이번주 말씀은 처음부터 끝까지 너무 은혜가 되어 늘 현상만을
바라보며 해결하려고 했던 나 자신을 회개하고 이제 부터라도
그 속의 본질을 깨닫고 보기 위해서 내가 무엇을 해야하고 보아야
하는지를 깊이 묵상해 보았다.

木下 

2006-11-01 06:25:25

「ある現象が与えられる時ごとに、私たちはいつもこのように質問してみなければならない。「神様がなぜ私にこの環境をお与えになったのか?」環境に反応せずに神様の御心に従順する者にならなければならない。環境だけを見て反応する者は、未熟な者、本質を考える者は知恵者である。・・・・・
私はこれから自分の思い通りに人生がいかない時に「神様がなぜ私にこの環境をお与えになったのか?」という質問を自分自身にしてみたいと思います。今までの自分の人生を振り返ってみると自分の思い通りに人生がいかない時が多かったように思います。しかし、その時、単純に運が悪かったとか、自分の考え方が狭かったなどと世俗的な考えをしていたと思います。うまくいかないのは、神様の御心ではなく未熟な自分自身の心に従順していたからだと思います。以前、「人生は反応の結果である。」と説教で聞いた言葉が今でも心に残っていましたが、まさにこの結果、私の人生は野原にいる「いなご」のようにピョンピョンと小さく飛び回るような右往左往の人生であったと思います。現在も、私の生活はこの結果のために、妻と結婚はしたものの妻にはたいへん苦労をかけていると思います。他の人の説教の感想を見ると、自分の感想に大きな影響がでるとの思いから、今まで見ずに書いていましたが今回は妻の感想を見ましたら、正直な心の内を表現して書いていて、やはり妻は私のためにたいへん苦労していることがわかり心が痛みました。私の人生は、いなごのような不安定な生活環境、考え、反応から脱していかないといけません。神様中心の観点で、これからの人生を歩んで生きたいと思います。

김영희

2006-11-01 06:42:55

어떤 사건이 한민족의 운명을 송두리째 비꿔놓았다면
그사건은 분명 우리 인생에도 많은 교훈을 줄것이다.
운명은 주어지는것이 아니라 자신의 선택의 결과물이다
여호수아 와 갈렙 이두사람이 하나님께 붙잡혀서
'가나안으로 들어가자!'를 선택했듯이
하나님께서 나를 꼭 붙잡아 주시길 매일 매일 갈망하며
약속의 땅 하나님의 나라로 들어가길 원한다.
이땅에서 내가 해야 할일을 하나님께선 분명 주실것이라 믿는다

우리는 예수를 믿어도 육신을 가지고 있는한 지구에서 살아야된다.
예수 믿는자나 믿지 않는자의 환경은 다를바가 없다.
그러나 같은 환경속에서도 받아 들이는 모습이 달라야 한다.
환경이 속이는 덫에 걸리지 않기 위해 시야를 넓히고
하나님의 뜻에 순종하고 자연의 힘은 곧 하나님의 능력임을
늘 마음에 새기며
앞으로의 일을 볼수있는 관점의 눈을 가진 자신의 마음의 환경을만들어
지혜로운 사람이 되어야 겠다.

우리와 함께 하는 하나님이 훨신더 강하다
자신이 작다고 생각하지 말고 마음의 거인이 되어야겠다.
교활한 거인보다 지혜로운 메뚜기가 되는것이
하나님께서 바라시는 세상을 밝히는 능력의 근원이
아닌가 하는 생각을 해본다.
10명의 정탐꾼 거인들 쯤이야
우리의 든든한 빽.. 하나님과 함께 라면
'새발의 피다' '나의 밥이다'^_^...!

어떠한 어렵고 무서운 환경이 올지라도 기쁨을 잃지 않고
하나님이 주시는 작은 복이든 큰복이든 감사히 받아 드리는
마음 자세와 하나님의 '능력의 샘''기쁨의 샘'을 즐길수 있는
반듯한 제자로 성숙해 져야 겠다.

※고승덕 변호사의 과한 목사님 말씀에
큰 위안이 됩니다. 감사합니다....
감히 이 변호사와 같은 사람이 되기 위한
욕심은 바랄순 없지만
흉내라도 내보는 그런 시간을 가져보고 싶어집니다.
늘 하나님만 바라보며 마음의 문을 활짝 열고
성경의 말씀에 열심하겠습니다...!
인류 평화를 꿈꾸어 보며... !

한영진

2006-11-01 09:24:33

[환경보다 중요한 것은 관점이다. 그것을 어떻게 보느냐가
자신의 마음의 환경(평안,두려움)을 만들어 주고 미래를 결정지어 준다.]
9년전 해가 바뀌기 직전의 추운 겨울.
몸도 마음도 멍투성이가 되어 어머니가 계신 이곳에서
단지 한두달 쉬었다 다시 한국으로 돌아갈 예정으로
조그만 수츠케이스하나 달랑 들고 빈털털이로 일본에 왔다.
흑백TV에서 명절 특집으로 일본 선수와 김일 선수의 레슬링을 보여주고,
비겁한 반칙을 일삼는 일본 선수들에게 일방적으로 당하던 김일선수가
막판에 이마에 피를 흘려가며 박치기로 그들을 때려눕히면
어린 나는 거의 기절할 지경으로 쾌감을 느꼈었다.
과거에 우리나라에 그렇게 나쁜짓을 하고도
우리보다 훨씬 잘 사는 얄미운 일본.
무엇보다 4남매와 자식처럼 어린 시동생까지
다섯의 어린아이를 끌어안은 우리 할머니를
27의 나이에 청상과부가 되게 한 원수같은 일본.
한국에서 상당한 생활수준을 누리며 살고 있던 내가
이 일본 땅에서 살 이유가 없었다.
그러던 것이 단지 자신이 이혼한 사실을
주변사람들에게 알리기 싫다는 삐뚤어진 자존심하나로
이 땅에 머무를 것을 할수없이 결정하고,
처음 나는 언젠가 반드시 금의환향할 그 날을 그리며 악착같이 일을했다.
어디까지나 아웃사이더로 일본에서 생활하던 내게
전에 다니던 직장의 원장선생님부부의 대가 없는 신뢰와 사랑은
나의 일본인에 대한 인식자체를 바뀌게 했다. 아주 서서히…..
내가 알게되는 일본인, 일대일로 마주한 그들은 거의 다
예의바르고 사려 깊었으며 친절했다.
그들도 나와 다를 것 없는 사람이었던 것이다.
어느 사이엔지 모르게 내 안의 편견과 선입견은 모두 사라져 버렸다.
지금 내게는 한국인 친구보다 일본인 친구가 더 많다.
같은 약점을 지닌 사람으로서 국적을 초월한 우정을 나누고 있는 것이다.
그 친구들도 북한이 미사일을 발사하고 핵실험을 한다고 해서
나보고 같은 민족이니까 너희 나라로 돌아가라는 말 같은 건 하지 않는다.
도리어 나를 배려해서 화제조차 삼지않는 그들이다.
크리스천이 아닌 그들도 이렇게 사랑을 베풀건만,
그런 그들에게 내가 구원받은 사람으로서
이 좋은 복음을 전하고 싶다는 간절한 마음이 드는 것은
너무나 당연한 일이 아닐까.
나는 정말 애절한 마음으로 눈물을 흘리며 기도드리게 된다.
하나님께서 보시기에 한국인, 일본인 구별이 없을 것은 자명한터.
나는 기왕에 일본에 있으니까, 하는 마음이 아니라
나 자신의 자발적 의지로 한사람이라도 일본인에게 복음을 전하고 싶어
이곳 일본에서 뼈를 묻을 것이라고 선택했다.
[우리는 어떤 환경에서도 환경보다는 하나님을 더 잘 볼 수 있어야 한다.
늘 하나님께 초점을 맞추어서 환경을 보는 사람은 행복해지고,
하나님의 결과가 그들에게 온다. 이것이 믿음의 사람의 능력이다.
하나님은, 하나님을 보지 못하는 사람은 쓰지 않으신다.]
운명은 주어지는 것이 아니라 자신의 선택의 결과물이란 말씀에
나는 이곳 일본에 계속 있을 것을 선택했다고 표현했지만,
하나님께서 돌아가라시면 물론 기꺼이 돌아갈 생각이다.
단지 내가 진정으로 사랑하는 내 친구들, 일본인들에게
복음을 전하고 싶다는 나의 간절한 소망이
하나님의 뜻에 어긋나는 것이 아닌 이상,
내가 하나님의 말씀에 순종하며 사랑으로 섬김을 다 하고
매일 간절히 기도드리는 이상,
나의 소망대로 하나님께서 들어 써 주시지 않겠냐는 믿음을 갖고 있을 뿐이다.
우선 지금의 나에게 확고한 결심하나는
어떠한 일이 있어도 제자훈련을 중도에 포기하지 않겠다는 것 하나다.
제자훈련과 사역훈련을 통해 강건한 믿음으로 바로 서 있는 내게
한국이 아니라 아프리카라도 무서울 곳은 없을듯하다.
내 몸이 어디에 있든지 하나님께선 나와 함께 계실테니까….
다음주엔 일본어 성경을 사야겠다. 하루에 한장씩 읽어 나가야지….

인선정

2006-11-01 16:50:57

목사님께서 인용하신 하박국 3장 17절-18절 말씀이 복음성가 가사인 줄로만 알았습니다. 그 말씀을 통해 제 스스로 진정 얼마나 여호와를 인하여 즐거워하며 나의 구원의 하나님으로 인하여 기뻐하는지 생각해 보게 되었습니다. 눈에 보이는 주어진 환경에 대해 감사하는 것 이상의 신앙, 보이는 현상 넘어의 보이지 않는 본질에 대한 통찰력에 대해 과연 몇점이나 될까... 스스로를 돌아보게 되었습니다. 지난 봄에 한국에서 고든 맥도날드가 쓴 이해할 수 없는 하나님이란 책을 사서 읽은 적이 있습니다. 그 책에서 나온 영적인 아이큐라는 말이 기억이 납니다. 그 책에서 설명한 것과 좀 다르지만, 목사님 설교문을 읽으면서 영적인 지능이란 눈에 보이지 않는 본질을 파악하는 능력이라는 생각이 들었고, 본문에 나온 여호수아와 갈렙은 분명 영적인 지능이 높은 사람들이었다고 생각합니다. 그래서 그들은 하나님의 진노를 피하고 가나안 땅에 들어갈 수 있었습니다. 눈에 보이는 환경에 속아 넘어가는 것이 아니라 하박국 선지자의 말처럼 진정 여호와를 인하여 즐거워하며 살 수 있기를... 하나님 앞에서 영리한 사람이 되기를 소망합니다.

이주일

2006-11-01 23:17:40

요즘 제가 교만하다는 것을 많이 느끼고 있습니다
하나님을 보지 못하고 저 자신을 보고 있다는 것 같습니다

정말 하나님을 모실 때에 나에게 두려움과 잘못된 생각들은 사라지고
하나님의 뜻이 내 안에 가득하고 이 땅의 두려움이 없어질텐데..
하나님의 일을 감당함에 있어서 가장 중요한 것은
내 마음 가장 중요한 곳에 하나님을 모시는 것인데...
요즘 제 삶을 보면 하나님 안에서 살아가고 있는 듯하나
중심에 모시고 살아가는 것 같지는 않습니다..
새벽기도가 회복되어서 하나님 앞에서 기도하는 시간이 너무 큰 기쁨이지만
말씀으로서 하나님 앞에서 깊은 묵상을 하지 않고 있습니다..

저는 여호수아와 갈렙이 되고 싶습니다..
물론 지혜로 세상을 잘 분별해야 하겠지만
그 무엇보다 오직 하나님 아버지를 제 마음 가장 중요한 곳에 모시고
아버지의 말씀과 약속을 기억하기 원합니다..
어두운 세상속에서 하나님을 대적하여 일어나는 세상속에서
잘못 분별하여 세상을 택하거나 두려워하는 것이 아니라
오직 믿음으로 이 세상 가운데 서기를 소망합니다
제 힘으로 늘 고민하고 아파하며 사는 것이 아니라
오직 하나님을 제 마음에 모시고 말씀과 약속을 기억하며...

제 안에는 아무 선한것도 아무 신령한 것도 아무 지혜로운 것도
없다는 것을 잘 알고 있습니다..
이런 제가 하나님의 뜻 가운데 살아가기 위해서는
그 모든 가능성이 하나님께만 있다는 것을 알고 있습니다..
제가 마음에 중심에 늘 하나님을 모시고 말씀과 약속을 믿음으로
이 세상 가운데서 살아가기를 소망합니다..

김성섭

2006-11-02 02:18:46

------ 그들은 자신과 환경에 대해서는 전문가들이었다. 분석도 잘했다. ...... 하지만 본질은 전혀 보지 못했다. 이것이 그들의 결정적인 실수였다. 하나님이 그 땅을 자기들에게 선물로 예비하셨다는 본질을 보지 못했다. 하나님은 미리 힘센 거인들을 가나안 땅에 보냈다. 그들을 통해서 그 땅을 젖과 꿀이 흐르는 땅으로 개척하게 하시고, 견고한 성곽도 만들게 하시고, 좋은 집들도 미리 지어 놓게 하셨던 것이다. 왜일까? 누구 때문일까? 이스라엘 백성들을 위해서 미리 준비해 놓기 위해서였다.  하나님의 이 귀한 뜻을 깨달았다면 가나안 땅은 그들에게 얼마나 감사의 땅인지 모른다. ------

여러 번 이 말씀을 읽기도 하고 듣기도 하고, 또 이 말씀을 본문으로 설교를 하기도 했지만 하나님께서 미리 힘센 거인들을 가나안 땅에 보내시어 그들을 통해 이스라엘 백성들을 위해서 땅을 개척하게 하시고, 견고한 성곽도 만들게 하시고, 좋은 집들도 미리 지어 놓게 하셨다는 것에 대해서는 생각해 보지 못했었습니다. 오늘 설교말씀을 대하면서 새삼 하나님의 깊고도 꼼꼼하신 사랑, 너무나 정확하시고 멋진 섭리를 깨닫게 됩니다. 10명의 정탐꾼에게 하나님이 오랜 세월에 걸쳐 준비하신 멋진 선물을 볼 수 있는 눈이 없었다니 참으로 안타까운 일입니다. 본질을 보지 못하면 이렇게 멋진 선물을 보고도 불평하고 원망하게 된다니 한편으로 두렵기까지 합니다. 그들이 이토록 귀한 하나님의 뜻을 깨달았다면 가나안 땅을 보고 얼마나 감격하며 감사했을까요?

10명의 정탐꾼을 향해 안타까운 마음이 드는 것은 그것이 바로 저의 과거의 모습이었기 때문입니다. 부끄러운 고백이지만 일본에 오기 전까지, 일본 선교에 대해서는 생각해본 적이 없었습니다. 일본에 와서 사역하면서도 하나님께서 왜 나를 이곳 일본에 보내셨는지에 대해서 답답함이 있었습니다. 분명 하나님께서 나를 이곳에 보내신 것은 확실한데, 그래서 내 모든 계획을 포기하고 순종 하나 가지고 일본에 왔는데, 도대체 이곳에서 무엇을 하라고 하시는 것인지, 그것을 알 수 없었습니다. 일본에 와 있는 숫자적으로 한정된 한국인들, 일본에 올 수 밖에 없었던 문제가 해결되고 어느 정도 돈을 벌면 다시 한국으로 돌아갈 마음을 가지고 있는 사람들을 대상으로 목회를 한다면 어떤 목회, 어떤 교회가 될 것인지가 눈에 보이는데, 도무지 마음에 차지 않았습니다. 그전까지는 한 번도 생각해 본 적이 없었던 일본인들을 대상으로 선교는 그 담이 너무 높아보였습니다. 일본어도 잘 훈련된 분들, 일본인 선교에만 전념할 수 있는 든든한 후원이 있는 분들, 무엇보다 일본선교에 대한 뜨거운 열정을 가지고 있는 분들도 힘들어서 두 손 드는 형편인데 나 같은 사람이 어떻게 일본선교를 할 수 있을까, 불가능하게만 보였습니다. 일본선교라는 문제 앞에 저는 메뚜기였습니다.

이것은 아닌 것 같고 저것은 못할 것 같고, 정말 답답했습니다. 10명의 정탐꾼처럼 현상만 보았지 본질은 보지 못했던 것입니다. 10명의 정탐꾼처럼 환경만 보았지 하나님은 보지 못했던 것입니다. 10명의 정탐꾼들과 그들의 보고를 따랐던 이스라엘 백성이 광야 40년의 훈련을 받았던 것처럼, 이로 인해서 저도 몇 년 동안 영적인 광야의 시기를 거쳐야만 했습니다. 그러나 이런 과정을 통해 하나님께서는 비늘이 덮여 있는 저의 눈을 열어 주셨습니다. 이국땅에서 고생하며 살아가고 있는 형제자매들을 목양하면서, 열등감과 실패의식에 붙잡혀 있는 상처받은 영혼들을 섬기면서, 한 영혼의 소중함을 배우게 하셨습니다. 하나님께서 그들을 얼마나 사랑하시며, 하나님께서 그들을 위해 새로운 제 2의 인생을 준비하셨음을 확신하게 되었습니다. 분명 하나님께서 이전의 모든 실패와 상처를 회복하고 남음이 있는 멋진 인생을 계획해 놓으셨다는 사실을 그들로 하여금 믿게 하고, 그 믿음의 반석 위에서 새로운 인생을 소망하며, 기쁨과 감사로 살아가자고 외치면서, 그분들을 향한 하나님의 마음을 조금이나마 알게 되었습니다. 만약 이런 만남이 없었다면 저는 99마리 양을 들에 놔두고 한 마리 양을 찾아 헤매 이는 주님의 마음도 모르는, 그저 성공만을 향해 달려가는 삯군 목자가 되었을지도 모르는 일입니다. 큰 교회를 담임하고, 많은 사람들에게 인정을 받는 유명한 목사가 되는 것이 목사로서 성공하는 것이라고 착각하며 살았겠지요. 생각할수록 주님의 계획하심과 인도하심에 감사하게 됩니다.
이곳은 저에게 축복의 땅입니다. 한 영혼 한 영혼을 향한 주님의 마음을 조금이나마 깨닫게 해주었습니다. 무엇보다 한 영혼을 주님의 제자로 세우는 일에 헌신할 수 있게 해 주었습니다. 오히려 이곳은 주님의 제자, 믿음의 인물을 내기에 더 없이 좋은 장소라고 생각하게 되었습니다. 예수님께서 활동하셨던 갈릴리 지역은 사람들의 이목을 끌만한 지역이 결코 아니었습니다. 예수님의 제자들 또한 너무나 평범한 사람들 이었습니다. 힘든 과거를 가지고 있던 사람들도 있었습니다. 그런 사람들을 통해 세상을 변화시킨 예수님, 바로 그 예수님께서 무명하고 평범한, 상처받고 가난한 이들을 통해 일본 땅을 변화시킬 것을 소망하게 되었습니다.

------ 어떤 경우에도 우리는 자신을 스스로 메뚜기로 만들지 말아야 한다. 자신의 잘못된 관점이 그렇게 만든다. 그러지 않기 위해서는 어떻게 해야 할까? 자신과 거인을 직접 비교하지 말고, 나와 함께 하시는 하나님과 거인을 비교시키는 것이 믿음의 사람의 멋진 모습이다. 자신과 거인을 비교하면 자신이 메뚜기가 되지만, 하나님과 거인을 비교하면 거인이 우리의 밥이 되는 된다. 그렇게 되면, 내 앞에 아무리 강한 거인이 있어도 전혀 두렵지가 않게 된다. ------

앞에서 고백했던 것처럼 일본선교라는 거인과 제 자신을 비교할 때, 저는 메뚜기였습니다. 자랑할 것 많고, 내세울 것 많았던 분들도 제대로 못했던 일을 어떻게 나 같은 사람이 할 수 있을까, 그렇게 생각했었습니다. 맞습니다. 내 자신과 내 능력과 내가 가진 것과 일본 선교를 비교하면 분명 맞는 분석입니다. 그래서 저는 내 자신을 메뚜기라고 생각했습니다. 그러나 이제는 하나님과 일본 선교를 비교합니다. 온 세상, 모든 열방과 민족이 하나님 앞에 무릎을 꿇는데 일본 선교가 어떻게 하나님 앞에서 고개를 들 수 있겠습니까? 나와 함께 계신 하나님, 독생자 예수 그리스도를 주시기까지 나를 사랑하시는 하나님, 세상 어떤 피조물도 끊을 수 없는 하나님의 사랑을 받고 있는데, 그런 나에게 일본 선교는 밥입니다.

일본에는 15,000명에서 30,000명 미만의 인구를 가진 2,597개의 소도시 가운데 약 70%에 해당하는 1,823개의 도시에 교회가 없습니다. 교회에 가고 싶어도 교회가 없어서 못가고, 교회가 없기에 교회가 무엇인지도 모르는 도시가 무려 1.823개나 된다는 말입니다. 1,823개의 도시 가운데 1/100을 우리 교회가 감당하게 해달라고 기도하고 있습니다. 20개의 소도시와 그 영혼을 우리 교회에 맡겨주시기를 기도하고 있습니다. 10명의 정탐꾼이 생각하기에는 전혀 불가능한 일이겠지만, 하나님이 함께 하시기에 20개 소도시는 우리의 밥입니다. 나아가 우리 형제교회들이 모두 이 일에 쓰임 받기를 소원하고 있습니다. 우리 형제교회들이 무교회 도시 200개를 책임지길 원합니다. 그래서 일본의 선교 역사의 새로운 한 페이지를 써나가기를 소망합니다. 우리를 자랑하고, 우리들의 교회를 내세우기 위한 꿈이 아닙니다. 오직 예수 그리스도와 하나님의 영광을 일본 땅에 증거 하길 원하는 소망입니다. 가능하냐구요? 물론 가능합니다. 아니 100% 가능합니다. 왜냐하면 그들은 우리의 밥이기 때문입니다.

노재훈

2006-11-02 03:06:43

매일 매일 쓰는 당신의 인생 보고서는 어떤가? 10명의 정탐꾼을 닮았는가? 아니면 여호수아와 갈렙을 많이 닮았는가? 하나님 없이 쓰는 보고서는 늘 불안하고, 낙심되고, 두렵고, 원망의 말의 연속이다. 하나님 없이 사는 인생은 늘 불안하고, 불행하고, 불평적이다. 참 안됐을 뿐이다. 우리는 어떤 형편에서도 환경보다는 하나님을 더 잘 볼 수 있어야 한다. 늘 하나님께 초점을 맞추어서 환경을 보는 사람에게는 행복과, 하나님이 예비하신 결과가 그들을 기다리고 있다. 이것이 믿음의 사람의 능력이다. 하나님은, 환경 속에서 하나님을 보지 못하는 사람은 쓰지 않으신다. 그래서 하나님을 보지 못한 10명은 광야에서 재앙으로 다 죽었다. 하지만 가나안 땅에서 하나님을 보았던 여호수아와 갈렙은 친히 귀한 도구로 쓰셨다. 여호수아는 민족 최고 지도자로 세우셨고, 갈렙은 가나안 땅의 복을 누렸을 뿐 아니라, 그 자손이 땅을 차지하는 복도 누렸다.(민14:24) 당신의 인생 보고서를 다시 한번 점검해 보라.

나는 누구를 닮았을까? 생각을 해보는 시간을 가졌다.
좋을때는 여호수아와 갈렙이 되고 나쁠때에는 정탐꾼이 아닌가?
반대로 좋을때는 정탐꾼이고 나쁠때에 여호수아와 갈렙이 아닌가?
늘 여호수아와 갈렙인지..?
사람이 살면서 언제나 여호수아와 갈렙과 같은 한결같은 마음을 가지고 있다면 믿음이 흔들린다든지 시험은 들지 않을것이다.
그런데 과거에는 환경에 따라 변하는 믿음을 가졌던것 같다.
늘 언제나 한결같은 신앙생활을 하고싶다. 모태신앙의 축복으로 별다른 어려움을 격어보지 못한 나는 내환경이 변할때 어떻게 반응할지는 잘모르겠다.
그러나 늘 기도하며 환경을 바라보지 않고 하나님만 바라보게 해 달라고 기도하면 하나님께서 나에게 여호수아와 갈렙같은 믿음을 주시리라 믿는다.
사람은 환경에 너무 잘적응하는것 같다. 그래서 환경에 민감하고 환경에 영향을 많이 입는것 같다.
앞의 설교말씀의 리플에도 달았지만 일본어에 水は方円の器に従う.라는 일본어가 있다. 물은 담는그릇이 네모이면 네모가 되고 동그라미 이면 동그라미가 된다는 말로 환경적응에 관한 말이다.
나의 신앙생활에서 내가 물이되어 하나님께서 만들어 주신 그릇되로 내가 맞추어가면 순종하면 하나님께서 여호수아와 갈렙과 같이 나를 사용해 주실것이다.

김준근

2006-11-02 04:00:15

나는 세상을 어떻게 바라보고 있는가.. 에 대한 생각을 교회에 다니면서 자주 생각해본다. 하나님을 믿는 자로써, 세상속에서 해야 할 행동들, 바라보는 관점, 그리고
한마디한마디의 말들.. 주님안에서의 생활보다 세상속에서의 생활이 아직은 친숙한 내게 있어.. 쉽게 그의미를 잊곤한다.. 제자훈련을 받으면서 많은 은혜가 된다.
기도를 드릴 때 만큼은 마음이 편하고, 안정적이 되고, 무엇을 하더라도, 의지하며
마음을 나눌 분이 늘 있다는 것이 늘 내겐 힘이 된다.
제자훈련이 끝날 무렵엔 둘중하나일것이다. 성숙해 있거나, 지금에 머물러 있거나..
제자훈련을 하면서 항상 생각하는 것이 작은 예수가 되고 싶다는 것이다.
주님이 주시는 은혜를 있는 그대로 의심치 않고 받아들이며, 주님을 쫓아
어디든 따를 수 있는 순종하며 온전함가진 나이고 싶다.
시험에 들때도 주님께서 나를 늘 잊지 않고 계신다고 생각하면
힘듬속에서도 어느새 기쁨을 느끼곤한다.
이렇듯이 세상을 살아가면서 하나님의 영광과 은혜가 항상 나와 함께 해주시길
바란다.

박순애

2006-11-02 05:16:27

제자훈련을 하면서 가장 큰 은혜를 입은 것이 "구원의 기쁨"에 관한 부분이었다. 신앙 생활을 하면서 너무 안일해져서 미지근하기만 한 내 신앙을 잠에서 깨어나도록 한 것이다. 내게 뜨거움도 간절함도 없는 원인이 내 안에 구원의 감격이 사라졌음이고 구원의 감격을 회복하지 않으면 나는 결국 문 밖에서 슬피 울며 이를 가는 주인공이 되어 있을 것이라는 충격을 가질 수 있었다. 그리고 이것을 회복하기위해 간절함으로 은혜를 구했었다.
지난 겨울은 나에게 혹독했다. 모든 것이 막막했고 도저히 앞을 기대할 수 없다고 스스로 포기하고 싶어졌었다. 욥의 고백처럼 앞으로 가도 보이지 않고 뒤로 보아도 보이지 않는 하나님을 찾느라 지쳐있었다. 즉 환경에 지쳐서 더 이상 안 되겠다고 스스로 포기하고 싶은 마음만 가득했었다. 그 때 구원의 기쁨, 단지 그것만으로 나는 감사할 수 있는 존재이고 기뻐할 수 있는 존재라는 사실은 내게 엄청난 힘이 되었다. 구원의 기쁨은 한 줄기 빛이 되어 나를 긴 터널에서 끌어내 주었다. 때로는 내가 원하는 환경이 아니고 내가 기대하던 보응은 없어도 하나님은 나의 구원자가 되시어 나로 기뻐하고 즐거워하라고 하셨으니 그렇게 살아야겠다고 다짐하고 다짐했었다. 그리고 나는 영생을 향해 달려갈 힘을 얻은 것 같다. 문제가 해결된 것도 아니고 환경이 달라진 것도 아니었지만 분명 내 마음은 달라져 있었다. 그 때를 생각하면 물심양면으로 기도해주시고 도와주신 분들의 은혜가 아닐까 생각하며 감사할 뿐이다.
"믿음의 사람에게는 인생이 든든하고 즐거운 것이 환경 때문이 아니라, 나와 함께 하시는 하나님 때문이다....아무리 척박한 땅이라도 하나님을 보는 사람에게는 기뻐하며 즐거워하는 잔치 마당이 된다."

지금도 나는 많은 문제를 안고 있다. 내가 할 수 있는 것 아무것도 없는데 내가 원하든 그렇지 않든 문제는 끊이지 않고 꼬리를 물고 내 속에서 가정에서 교회에서 일어나고 또 일어난다. 말씀에서처럼 여호수아와 갈렙은 같은 문제를 보고서도 다른 관점에서 문제를 해석할 줄 알았다. 내가 그 곳에 있었다면 10명의 정탐꾼처럼 메뚜기가 되어 버리지 않았을까?.... 확실한 것은 나는 가나안 땅을 말로만 듣고 상상만 하거나 두려워하는 자가 아니라 차지하고 누리고 싶다는 것이다.

"환경에 반응하지 말고 하나님의 뜻에 순종하는 자가 되어야 한다."

그렇다면 지금 내가 해야할 것은 여호수아와 갈렙처럼 하나님을 바라보는 것일 것이다. "관점"을 하나님으로 바꾸는 것이다. 지금 내가 여기서 환경을 바라보고 주저한다면 내 앞에 있는 거인을 통해 준비하신 것들을 나는 누릴 수 없다."무엇을 보느냐"가 중요하다는 오늘의 말씀을 기억하면서 환경을 보고 메뚜기가 되지 말고 하나님을 바라보므로 하나님께서 준비해 놓으신 것들을 차지하는 은혜를 누리는 존재가 되기를 기도한다.

하 경채

2006-11-02 05:59:57

방사선 치료에 들어가는날이다.
무서웠다.
두렵고 무서워서 목사님을 찾는 내가 있었고
치료에 들어가기전에 전화 기도를 받았다.

자신이 기도 해야하는데... 나는 아직도 의지하는 믿음이고
성숙되지 못한 믿음인것 같다.
목사님의 기도를 받고서야 마음이가라앉고
치료에 들어갈수 있었다.

치료는 간단했다.
6주 길긴하지만 중보기도 해주시는 사랑으로 잘넘길것 같았다.
나머지는 나의 믿음으로 나아가리라.고 마음으로 다짐했다.

전신치료를 하기 위해서 과학치료로 약를 복용해야 하는데
정맥으로 치료하는 항암치료가 아니라,복용하는 항암치료를 하는데도
부작용이 거의 비숫하게 나타난다는것이다.

화가났고, 짜증이나며,너무너무 불화통이나서
견딜수가 없었다.
난 방사선 치료로 있는 암만 제거 하고
나머지는 나의 믿음과 중보기도로 이겨낼려고 했는데...

나의 연약한 믿음을 시험하는듯 결단을 요구했다.
약을 복용하지 않고 이기려고했는데 하면서
내 손에는 약봉지를 들고 있었고
이런나의 행동에 화가나고
하나님의 뜻을 알수 없기에눈물만 나왔다.
좌절감이 새벽예배가 끝나기까지 가시지 않았다.

한라산 강집사님께서 또 음식을 만드셔서 보내주셨다.
영양가 있는 야채로 이쁘게 싼 음식과 소화가 잘 안될때 먹으라고
보기만 해도 군침이 도는 물김치를 보내주신것이다.

강집사님도 바쁘시고 힘드실텐데...
새벽에 ,손목에 파스가 붙여있어 마음이 아팠는데
언제 이렇게 만들셨는지...
나눠주신 사랑이 나무커서 고맙고 감사했다.

하나님께서 자꾸 나를 생각나게 해 주신다고 하신다.
빠른 치유를 위해 강집사님께서 할수 있는 것을 하신다면서,
잘먹고 힘든 치료를 잘 이겨나가라고 하시며
부담같지 말고 받으라고 하신다.

조금전까지만 해도 나를 힘들게 했던 좌절과 불평이
이사랑에 녹아져버렸다.
이렇게 생각해주시고 기도해주시는 가족이 있는데...
교회안에서 남에일같이 않게 나눠주시는
하나님의 사랑을 넘치게 받으면서 행복했다.

모든것에 합력하여 선을 이루시는
하나님의 뜻과능력을 생각하며 내게 주어진 환경에 실망하지 않고
하나님의 숨은 손길을 기대하려 한다.

하나님이 시키셔서 하신다는 숨은 봉사의 손길과
아직은 보이지 않지만 하나님의 계획하시는 우리에게 주실 각자의
은혜에 백배 천배 .. 함께 하여 주실것을 굳게 믿고
지금 주어진 환경에 억매이지 않고 그속에서 일하시려는
주님의 일을 몸으로 체험하는 나의 인생보고서가 작성되겠지...

전한나

2006-11-02 06:06:00

믿음의 사람에게는, 인생이 든든하고 즐거운 것이 환경 때문이 아니라, 나와 함께 하시는 하나님 때문이다. 아무리 좋은 가나안 땅도 하나님을 못 보면 저주의 땅이 되 버리지만, 아무리 열매가 없는 척박한 땅도 구원의 하나님을 보는 사람에게는 기뻐하며 즐거워하는 잔치 마당이 된다.

우리교회에서는 지금 특별새벽집회를 한다.
어느때보다도 기다려졌던 기도할시점인 지금으로썬 너무나 좋은기회이자 하나님께서 내게 기도하라고 주신때인것 같아서 그날이 기다려 졌다.
한국에서는 집과 교회가 걸어서 5분정도밖에 되지않았고 새벽기도회도 1부부터 4부까지 있어서 적어도 아침 6시에 일어나도 충분히 새벽기도회를 갈수가 있던 환경이었다.그러나 현제는 새벽 6시 한타임밖에 없고 지금 살고있는집에서 교회랑 거리가 전차로 40여분을 가고 걸어서 도보로 20~25분 걸리는지라 적어도 새벽 4시 30분에는 일어나야지 새벽기도회에 갈수가 있다.
첫날 흥분된맘으로 예전보다 일찍 잠을 자서 갈수가 있었지만 둘째날은 시계소리를 듣지못해서 갈수가 없었다.그리고는 이번주에는 일요일 월요일 화요일 갈수가 없었다.난 한국이였으면 집이랑 가까워서 갈수가 있었을텐데 지금의 집은 교회랑 거리도 멀고 왜이리 힘든걸까 짜증을 냈다.생각해보면 내가 게을러서 시간관리를 좀더 잘하지 못해서 못했는데도 내지금의 처해진 환경을 탓하며 하나님도 이해하실꺼야 하며 자기합리화에만 지금 빠져있다.왜이리 바보 같은지 모르겠다.복을받을사람은 나인데 하나님앞에 가기만 하면 내가 상상할수없을 복을 받을텐데도 지금의 나의 처지로 나의 환경으로 고민하며 나가가길 망설이고 두려워 하는나.
새벽기도를 갔다오면 아르바이트때 피곤하지는 않을까 말도안되는 걱정이나하고
그러다보니 요즘 매사가 짜증이나고 이러니 결혼준비가 제대로 될리가 없고 성경을 읽어도 은혜가 안되고 기도를 해도 잡생각만 나고 지난주보다 영적으로 힘든때였다.그런데 오늘 제자훈련과제인 리플달기를 통해서 아 하나님께서 이렇게 나의 속사정을 이리로 잘아시구나 이말씀이 매주마다 주시는 말씀이 나를위한 말씀이시구나 생각하니 내가 전심으로 하나님을 사랑하도 남은 새벽기도를 나의 처지가 아닌 환경이아닌 하나님을 사랑하는 맘으로 나와야 겠다는 생각이든다.
오늘 아침 음악을 들으면서 왔는데 가사가 갑자기 마음에 와서 눈물이 났다.
주님과 함께하는 이 고요한 시간 주님의 보좌앞에 내마음 쏱네 모든것 아시는 주님께 감출것없네 내맘과 정성다해 주바라나이다.온맘다해 사랑합니다.온맘다해 주알기 원하네 내모든삶 당신것이니 주님만 섬기리 온맘다해 .



양미옥

2006-11-02 08:21:25

믿음의 사람에게는, 인생이 든든하고 즐거운 것이 환경 때문이 아니라, 나와 함께 하시는 하나님 때문이다. 아무리 좋은 가나안 땅도 하나님을 못 보면 저주의 땅이 되 버리지만, 아무리 열매가 없는 척박한 땅도 구원의 하나님을 보는 사람에게는 기뻐하며 즐거워하는 잔치 마당이 된다.당신은 지금 무엇을 보는가?
현상을 보는가? 본질을 보는가?
환경을 보는가? 하나님을 보는가?
당신이 메뚜기로 보이는가? 그들이 밥으로 보이는가?
현재의 환경에서 '무엇을 보는가'가 당신의 미래를 결정짓는다

이번주 3.4일에 회사 연수회로 동경을 벗어나게 됩니다. 이번이 두번째 인데 회사의 중역들이 사정상으로 불참석하시는 분들이 많아서 입사한지 삼년차부터 한달 된 직원들을 중심으로 가게 되었습니다. ==;
참석자들은 각자의 자신의 담당업무 발표와 10년후의 모습을 발표하는 시간을 갖기로 했습니다. 몇 안되는 사람들 앞이지만 잘 안되는 일본어로 발표를 해야한다는것이 조금은 부담이 되었습니다. 그리고 10년후의 자신의 모습을 발표를 해야한다는 말에 잠시 동안 머리속이 멈추었습니다. 10년후? 어떤 환경과 모습으로 내가 서있을까? 머리속에 그려지지 않았습니다. 10년후일까?5년후도 당장 안그려지는데.. 그러면서 현실에만 안주하려했던 저의 모습을 보게 되었습니다. 마치 여호수아와 갈렙을 제외한 10명의 정탐꾼들처럼 지금 이대로가 좋사오니... 라는 생각입니다. 다시 머리를 흔들고 생각을 정리하였습니다. 그리고 하나님은 저로 하여금 한가지 분명하게 알게 하셨습니다. 저처럼 한국 산골에서 일본 수도인 동경땅까지 보내주셨으니 앞으로도 인도해주실 것은 당연한 것이라는 겁니다. 제가 환경, 현실만 보고 하나 하나 따졌다면 저는 절대로 여기까지 올수 있는 조건이 되지 않았다는 것입니다. 이런 제게 전능하신 하나님은 내가 너와 함께 할것이니 두려워말고 담대하게 나아가라고 저의 환경과 현실을 깨뜨려 주셨습니다 . 그리고 말씀을 보면서 무엇을 보는가에 따라서 미래가 결정되어진다는 생각이 드니 하나님의 은혜로 내가 이곳까지 보냄을 받았구나라는 생각하니 감사했습니다.
이번에 연수회때 10년후의 저의 모습을 자신있게 발표할수 있을것 같은 자신감이 생겨납니다. 하나님이 함께하신다면 어떤 환경이든 기쁨으로 가득할것라 생각하니 가슴이 벅차오릅니다. 10년후에 하나님의 사역을 감당하고 있을 저의 모습을 당당하게 말하려합니다. 여호수아와 갈렙처럼 예비해두신 하나님의 큰 뜻을 바로 보고 선포하였던 것처럼 저 역시 본질을 보고 담대하게 선포하길 원합니다.

백인화

2006-11-02 08:42:37

“예수를 믿으면 별천지에서 살게 될까? 절대로 아니다. 우리는 예수를 믿어도 육신을 가지고 있는 한 지구를 떠날 수가 없다. 예수 믿는 사람도 인생을 살면서 못 볼 것 다 보면서 살게 되어 있다. 예수 믿는 사람도 자식 문제, 물질 문제, 건강 문제를 다 안고 산다. 믿는 사람도 다 감기도 걸린다. 믿는 자나 믿지 않는 자나 삶의 환경은 다를 바가 없다.”

남편과 결혼하고 일본으로 오면서 저는 나름대로 기대에 부풀어 있었습니다. 항상 꿈만 꾸던 선교지인 일본에 그것도 신혼의 단꿈에 젖어서, 애굽을 떠나 홍해를 건너서 하나님이 약속하신 가나안 땅을 향해 한 발을 내디딘 것이었습니다. 솔직히 전 그제서야 제 인생에도 별천지가 펼쳐질 것이라고 생각했습니다. ‘목사님도 부부싸움 하시나요?’ 라고 물어보시는 성도님들처럼 그래도 평신도 때와는 뭔가 달라도 다를 것이라는 제자도에 어긋난 기대를 잔뜩 품고 있었습니다.

참 많은 갈등이 있었습니다. 교회도 가정도 선교도 다 제가 꿈꿔오던 이상향을 향해 달려가야 한다고 여겼었는데 그리고 단 한 순간도 끊임없이, 늘 성령 충만해서 살아야하고 또 그러기에 걱정도 근심도 다툼도 갈등마저도 없어져야한다고 생각했었는데, 오히려 범위가 더 넓어져가고 늘어만 가는 문제들 속에서 전 제 자신의 정체감마저도 잃은 채 메뚜기가 되어서, 아니 오히려 제가 밥이 되어 있었습니다.

지금 돌아보니 10명의 정탐꾼들처럼 환경만을 보느라 저를 인도해 주신 하나님을 바라보지 못하는 불신앙의 죄에서 헤어 나오지 못하고 지금까지도 광야에서의 생활을 보내고 있지 않나하는 생각이 듭니다. 나름대로의 길도 궁리해 보았다가 울부짖으며 회개도 하였다가 구름기둥과 불기둥을 경험하기도 하고 만나를 먹으며 만족해 하다가 또 다시 애굽을 그리워하기도 하다가 물이 쓰다고 불평하면서 참 많이도 돌아서 가고 있다는 생각이 듭니다.

“여호수아와 갈렙은 어떤 선택을 했을까? 다른 10명은 환경의 힘에 붙들려 ‘애굽으로 돌아가자’를 선택했지만, 이 두 사람은 하나님께 붙잡혀서 ‘가나안으로 들어가자’를 선택했다. 돌아가자고 하는 사람은 돌아갈 수 밖에 없고, 들어가자고 하는 사람은 반드시 들어가게 된다. 당신은 어떤가? ‘과거로 돌아가자’ 파인가? 아니면 ‘약속의 땅으로 들어가자’ 파인가?”

지금 이 순간부터 전 ‘돌아가자’가 아닌 ‘들어가자’ 파가 될 것입니다. 혹시 저는 흔들릴지 모르지만 제 안에 계신 성령님이 저를 인도하실 것을 더 이상은 믿어 의심치 않습니다. 이제 더 이상은 제 앞에 어떤 어려움이 닥치더라도 환경만을 보느라 저를 메뚜기로 여기지 않고, 저와 함께 하시는 하나님과 제 앞에 우뚝 서 있는 거인들을 제 밥으로 여기며 달려 나갈 것입니다.

“믿음의 사람에게는, 인생이 든든하고 즐거운 것이 환경 때문이 아니라, 나와 함께 하시는 하나님 때문이다. 아무리 좋은 가나안 땅도 하나님을 못 보면 저주의 땅이 되 버리지만, 아무리 열매가 없는 척박한 땅도 구원의 하나님을 보는 사람에게는 기뻐하며 즐거워하는 잔치 마당이 된다.”

14개월 된 막내와 3살, 5살인 아이들을 데리고 제자훈련을 시작하면서 어느덧 30개월, 4살, 6살로 자라난 아이들과 여기까지 오면서 제 자신은 그저 넋두리라고 여기며 생각하고 말했지만 사실은 원망과 불평을 하나님과 리더이신 이 용규 목사님께 많이도 했었습니다. 전 아직 가나안에 들어갈 형편과 시기가 아닌 것 같다고, 남편을 힘들게 하고 아이들을 고생시키고 제 자신을 지치게 하면서 꼭 이렇게까지 가나안 땅에 들어가는 길뿐이 없느냐고, 좀 쉽게 가면 안 되겠느냐고 수도 없이 속으로 따지며 말없는 반항과 고집도 피워 보았습니다. 하지만 이제는 누가 뭐라 해도 이 잔치 마당에서 한 발짝도 물러서거나 떠나고 싶은 마음이 없습니다. 그것은 바로 이제야 다시 제 인생이 하나님 때문에 든든하고 즐겁다고 고백할 수 있기 때문입니다.

최승우

2006-11-02 09:10:55

--우리는 어떠한 형편에서도 환경보다는 하나님을 더 잘 볼 수 있어야 한다.--

'사방이 우겨쌈을 당할지라도 해를 두려워하지 않는 것은 주께서 나와 함께 함이라.'
내가 좋아하는 성경 말씀이다. 요즘 나는 사람들과의 관계가 많이 어렵고, 그것이 지금 나의 가장 큰 고민이며 숙제이다. 어떨때는 하나님을 보기 보다는 사람에게 인정받으려고 애를 쓰다가 그것이 잘 안될때는 너무 불안해 하고 낙심하게 된다. 내 마음이 마치 10명의 정탐꾼과 같다. 내 촛점은 늘 주님께 맞춰져야 하는데, 그렇지 못하니 사탄은 이때다 싶어 나를 쓰러뜨리려고 한다. 지금 막혀 있는 현실에 낙담하여 주님께 울부짖었다. '주님, 왜 나를 이렇게 궁지로 모십니까? 내 맘이 너무 아프고 괴로와서 숨을 쉬는 것 조차 힘듭니다.' 하나님은 이런 나의 못난 기도에도 응답하셨다. '사람을 보지 말고, 위를 보아라. 네가 멸시를 당할 때에는 하늘의 상급이 큼이라.'라는 음성을 들려 주시며 내 맘을 위로해 주신다. 이렇게 작은 일에도 넘어지는 나에게 주님은 크신 두팔로 나를 안아주시고 위로해 주신다. 하나님의 능력으로 나는 다시 한 번 자유함을 얻었다. 세상이 나를 손가락질해도 주님은 지금 나의 환경과 처지를 아시며 그 환경에 내가 넘어지지 않고 뛰어넘을 수 있는 힘을 주신다. 그들의 비난에도 감사와 그들을 불쌍히 여기는 마음까지 주셨다. 이것이 하나님의 기쁨의 샘이다. 사람과의 관계, 때가되면 주님께서 회복시켜 주시고 오해를 풀어 주실 것을 믿고 감사한다. 오늘도 그들을 위해 더욱 간절히 기도해야겠다.

박유진

2006-11-02 09:35:51

"자신과 거인을 직접 비교하지 말고, 나와 함께 하시는 하나님과 거인을 비교시키는 것이 믿음의 사람의 멋진 모습이다. 자신과 거인을 비교하면 자신이 메뚜기가 되지만, 하나님과 거인을 비교하면 거인이 우리의 밥이 되는 된다. 그렇게 되면, 내 앞에 아무리 강한 거인이 있어도 전혀 두렵지가 않게 된다."

와세다대학 일본어센타에서 일본어를 가르친지 한달이 지났습니다. 지금까지 수업은 휴일을 빼고 3번을 했습니다. (일주일에 한번, 90분만 가르치거든요.) 저는 초급후반의 학생들을 가르치는데, 중국인10명, 한국인1명, 미국인1명으로, 거의 한자문화권의 학생들입니다 (즉, 저보다 한자를 더 잘쓰죠...) 초급후반 클래스를 총괄하는 사람은 와세다 박사과정을 졸업한 선배인데, 한국인입니다. 한국인이 그런 총괄의 지위까지 올라간 건 처음이라, 상당히 실력을 인정받고 있는 사람입니다. 같은 한국인이라서 그런지, 저에게 여러가지 조언도 많이 해줍니다. (그러나, 한국말은 한마디도 안씁니다...;; 전부 일본어로만 얘기합니다...)
그 총괄선생님으로부터, 오늘 메일을 한통 받았습니다. 학생들이, 제게 불신을 가지고 있다는 것입니다. '이런 질문은 네이티브 선생님한테 물어보는 게 나아'라는 등의 말을 한다는 것입니다. 그러면서, 모국어화자가 아닌, 외국인이 일본어를 가르치려면 배 이상의 노력을 기울이라면서, 특히 발음과 어휘에 공부를 더 하라는 내용이였습니다. (그 선배는 거의 네이티브 급으로 얘기를 하거든요...)
솔직히, 그 메일을 보고 상당히 충격을 받았습니다. 수업을 할 때는 나름대로 분위기가 좋다고 생각했었는데, 학생들이 그런 불만을 가지고 있을 줄은 상상도 못했습니다. 그리고, 수업하기가 두려워졌습니다. 앞으로 어떻게 수업을 진행해야 하나, 순간 막막해졌습니다.
그런데, 이 말씀을 읽으면서, 큰 위안을 받았습니다.
10명의 정탐꾼은 자신들이 메뚜기라고 했습니다. 거인들만 보면 당연합니다. 그렇지만, 여호수아와 갈렙은 하나님과 거인을 비교했기 때문에, 그들을 자신있게 자신들의 밥이라고 외쳤습니다.
저도, 제 자신만 보고 와세다라는 장소를 보면, 저 자신은 메뚜기 같습니다. 그 안에서 네이티브 선생님들과 경쟁을 하면 이길 자신이 없습니다. 그렇지만, 하나님과 그들을 비교하면...그들은 제 밥이 될 것입니다.
이 말씀을 받고 나서, 제게 두려움이 없어졌습니다. 와세다에서 일본어를 가르치게 된 것은...그 곳은, 하나님께서 제게 주신 가나안 땅입니다. 여기서 멈추지 않고, 박사과정에 들어갈 꿈도...거의 포기할 맘도 있었지만, 눈앞의 가나안땅을 두고 10명의 정탐꾼처럼 되돌아가면 안된다는 생각이 들었습니다. 일본에 하나님이 보내주신 이유가, 그냥 포기하고 다시 한국으로 돌아가라는 것은 절대 아닐테니까요. 솔직히, 아기를 데리고 뭘 하기가 쉽지 않습니다. 수업준비 할 시간도 내기 힘들고, 박사 과정 준비는 엄두도 못 내고 있습니다. 하지만...환경을 보면 할 수 없지만, 주님은 제가 이 환경을 보고 하지 못한다고 주저앉기를 절대 원하시지 않는다는 사실을 깨달았습니다. 앞으로, 매일 선포하겠습니다. "와세다야, 너는 내 밥이다!!"

" 당신의 인생 보고서를 다시 한번 점검해 보라. ‘그들은 우리보다 강하다’인가?(민13:31) 아니면 ‘우리가 능히 이기리라’인가?(민13:30) 이 보고서가 당신의 현재의 마음(평안, 두려움)과 미래의 인생을 결정지어 줄 것이다."

제 마음에 평안을 주신 주님, 감사합니다. 주님의 말씀을 붙들고, '능히 이기겠습니다.' 저에게 능력을 허락해주세요. 제게 지혜를 허락해주세요.

황은영

2006-11-02 12:14:54

지금의 환경은 생각만해도 끔찍하다
생각하고 싶은생각도 없다
아무생각을 하지않는것이 나은것 같다
무엇가 하고싶고 일어나 나가고 싶은데 지금은
방법을 몰라 망설이고 있다

옛날 룸메이트에게 교회가자고 하니 자기는
자기주먹을 믿고 싶다했다
그런난 하나님을 믿으면서도
똑바로 행동하지 않은것하고 무엇이
다른가 순종하지 못하는것 무엇이다른다
그래 조금은 다른게 있지만
난 지금까지 하나님이 많이
무섭지 않았다
지금은 많이 무섭고 두렵다
그렇다고 기도을 열심히 하는것도
아니고 무엇가 막힌느낌이 많이
든다 내인생은 내손에 달려있나
하나님 손에 달려있겠죠 기도는
만사를 형통하게 하신다 했다
모든것을 지금이라도 깨닫게
해주셔서 감사합니다

김태우

2006-11-02 23:12:12

무엇을보는가?

당신은 지금 무엇을 보는가?
현상을 보는가? 본질을 보는가?
환경을 보는가? 하나님을 보는가?
당신이 메뚜기로 보이는가? 그들이 밥으로 보이는가?

주일말씀을 들으면서 생각했습니다.
오늘 말씀도 나의말씀이다 라고....
정탐꾼들의 이야기를 통해서 많이 깨닫고 많이 반성하게 된거같습니다.

작년에 일본에 와서 바이트(신문배달)을 할때 이런 생각을 한적이있습니다.

어느날 신문을 돌리던날 갑자기 많은비가 내리기시작했습니다.

그때부터 약 3시간가량을 비옷도 입지않고 비를맞으면서 일을한적이 있었는데

내가 왜 이걸하고있지?? 왜 이먼곳까지와서 이런걸해야하지??

내자신을 한심하게 생각했던 기억이납니다.

그때는 정말 내환경만을 탓하고 나를 힘없는 메뚜기로만 생각한 바보중에 바보였습니다.
신문배달이 아니었으면 일본에 없을지도 모르는 환경이었는데도 말입니다
그환경도 주님께서 특별히 주신 선물이었던거 같습니다.

그환경은 지금의 제게 큰힘이 됩니다. 어떤일도 이겨낼수 있을거같은
마음을 주셨습니다.

주님께서 저를 어떤곳에 어떻게 쓰실지 모르지만 그때를 기다리는 과정이라
느낍니다.

제가 일본와서부터 계속하는기도가있어요 ..
"주님 크게 쓰임받는 사람이 되게 하여주세요" 우연히 이기도를 하게되었는데
벌써 일년을 기도하고 있습니다.
이기도가 빨리 응답받길 원합니다..

나는 메뚜기에 불과하다?? 에서 이세상은 모두 메뚜기의 밥이다 라고...
주님께 감사합니다.. 밥걱정 안해도 될거같네요 .ㅎㅎ

항상 주님만 바라보면서 살아가길 간절히 원하고 기도합니다.

서조은

2006-11-02 23:34:20

아이를 낳고 보니...
지금 내가 키우진 못해도... 교육에 대해서 관심이 많이 생겼다..
어제 내가 바이트 하는 곳에서 어떤 청소년 사역을 하시는 목사님께서
쓰신 자녀들 교육방법에 관한 책이 눈에 띄어 읽었다..

세상 지식인들이나 자녀를 명문대에 보낸 사람들이 쓴 자녀 교육책과는
확연하게 다름을 알 수 있었다.
세상의 교육책은 일찍이 공부하는 습관을 길러주라고 하든지 독서의 중요성을
강조한 내용들이 대부분이다.
그런데 목사님이 쓰신 책에서는 아이들의 바라보는 시선을 세상의 시선이 아닌
하나님 말씀의 관점으로 바라보는 시선을 갖게 해 주는 것이
가장 중요한 교육이라고 하셨다.

어제 읽은 책은 하나님께서 이번주 아파서 주일설교를 듣지 못한 나에게 주신
설교 말씀 같았다.
어제 책을 읽으며, 오늘 설교 본문을 읽으며 난 같은 감동을 받았다.

내가 문제를 바라보는 시선은 어떠한지...
내 앞에 닥쳐있는 문제를 어떻게 해결하려 하는지...
환경탓만 하고 있지는 않은지....

많은 회개를 시키셨다..
그리고 자신감을 심어 주셨다..

이지영

2006-11-03 07:33:29

1.자신에게 밝고, 세상에 밝은 것보다, 하나님의 뜻에 더 밝아야 하는 것이 얼마나 중요한지를 잘 보여 준다.

하나님을 알기 위해 오늘도 살아간다.
요즘에도 기도하면서, 또한 제자훈련을 통해, 하나님의 뜻을 구하는것이 가장 최고의 기도요, 그 하나님의 뜻이 이루어지는 것이 최고의 기도응답이라는것을 믿게 되었다.
그렇지만, 아직도, 하나님의 뜻에 앞서,내 욕심대로 기도가 나올때가 있다.
하지만, 하나님을 따르는 진정한 성도가 되고 싶기에, 그 욕심을 과감히 버리겠다.

하루 속히 내 자아를 버려, 하나님의 뜻이 내 뜻이 될 수 있는 날이 오기를 갈망한다.

2.하나님이 나와 함께 하신다는 것이 얼마나 큰 복인지 모른다. 이 복을 아는 사람은 아무리 무서운 환경이 와도 두려워하지 않고(민14:9), 아무리 가난하고 어려운 환경이 와도 기쁨을 잃지 않는다. 그에게 하나님은 능력의 샘이요, 기쁨의 샘이기 때문이다.

하나님이 나와 함께 하신다는 사실은 나에게 가장 큰 위로요, 힘이 된다.

이제는 환경으로 인한 슬퍼하는 모습을 보이지 않을 것이다, 그래서, 하나님의 기쁨이 되고, 더 나아가, 하나님의 능력을 증거하는 삶을 살 것이다.

이번주 독서 과제물인 '하나님은 이런 분이십니다' 라는 책을 한페이지 한페이지 읽으면서, 하나님을 조금씩 더 알 수 있었는데, 그 하루하루가 너무나도 기쁜 나날들이었고, 하나님을 중심에 두니, 하나도 두려움이 생기지 않았다.

왜 이제까지 이 복을 온전히 누리지 못했을까.. 지금부터는 시간 허비하지 않고, 하나님이 나와 함께 하시는 이 복으로 세상을 밝히리라.

김정아

2006-11-03 07:45:04

1. 자신과 거인을 비교하면 자신이 메뚜기가 되지만, 하나님과 거인을 비교하면 거인이 우리의 밥이 되는 된다. 그렇게 되면, 내 앞에 아무리 강한 거인이 있어도 전혀 두렵지가 않게 된다.


환경이 주는 어려움으로 인해..
스스로가 메뚜기라고 생각했던 적이 너무나 많습니다.
힘들때일수록 마음을 강하게 먹는 것은 정말 힘든일입니다.
사람은 누구나 환경에 반응하며 살아가기 때문입니다.
하지만 믿는 사람이기에 환경대로 반응하는 것이 아니라 , 환경을 거스를 수 있습니다. 내 뒤에 예수님이 계시기에...
아기곰 뒤에 아빠 곰이 버티고 있었기에 호랑이가 도망갔던 것처럼...

어쩌면 내 뒤에 계신 아빠 하나님보다, 내앞에 있었던 호랑이를 더 의식했나봅니다. 아니 그랬던 것 같습니다.
환경의 이러이러한 부분이 그렇기 때문에....그래서.................
라고 이유와 근거를 들어서 내 행동을 정당화 시킵니다. 하지만 하나님이 원하셨던 것은 아버지를 보기 원하셨습니다. 앞에 있는 힘든 상황과 두려움이 아니라 뒤에서 보고 계신 그런 아버지의 존재였습니다.. 얼마나 감사한지요....
주신 말씀을 통해 마음을 바꿔봅니다. 그리고 환경에 순응하지 않고 역행할수 있도록... 마음을 다잡아 봅니다...


2. ‘비록 무화과 나무가 무성치 못하며 포도나무에 열매가 없으며 감람나무에 소출이 없으며 밭에 식물이 없으며 우리에 양이 없으며 와양간에 소가 없을지라도 나는 여호와를 인하여 즐거워하며 나의 구원의 하나님을 인하여 기뻐하리로다’(합3:17-18)

그런 믿음의 소유자가 되기를 원합니다. 무화가 나무잎이 마르고, 포도열매가 없고 , 감람나무 소출도 없고, 양과 소도없고...
그야말로 암것도 없는 상황인데.. 그럼에도 불구하고 오직 여호와 한분만으로 기뻐할 수 있는 그런 사람이고 싶습니다...
하지만 난 지금 주신 이 축복 가운데서도...
주시지 않은 것만, 아니 힘든 환경만 탓하며 살아가고 있음을 고백합니다.
오히려 받은 복을 세는 것이 아니라 , 받지 못한 복을 더 세고 있는 것입니다.
그러나 무엇보다도 여호와로 인해 기뻐하기를 원합니다.
"여호와를 기뻐하라 저로 소원을 이루시고..."
여호와를 기뻐하면 기뻐하는 그 기쁨으로 인해 환경이 보이지 않을 것입니다..
하지만 전 왜자꾸 환경만 보이는 것인지... 아직도 내 안에 주님의 은혜가 충만하지 못함을 고백합니다.
다른 그 무엇도 주님으로 인한 기쁨을 얻지 않기를 원합니다..
다른 그 무엇도 주님으로 인한 기쁨을 대신하지 않기를 원합니다..
다른 그 무엇도 ..............
내 안에 은혜가 없고 사랑도 없음을,..
마음과 뜻을 다해 정성을 다해 생명을 다해 그렇게 주님을 사랑한다면 ....

주님 말씀하신 첫째 계명에 충실한 나였으면 아무리 힘든 상황이라도 힘들지 않을 것임을.... 말씀에 비추어서 너무나 부족한 나의 모습을 돌아봅니다..
하지만 부족함을 넉넉히 봐주시는 그런 주님이시기에 ... 한량없는 주님의 은혜를 알기에 그 사랑을 알기에 ...부족한 이 모습으로 또다시 주님앞에 섭니다..
더 나은 모습으로 더 성숙된 신앙인의 모습으로 거듭나기를 소망합니다.

최정민

2006-11-03 08:34:34

‘어떤 현상이 주어졌을 때마다, 우리는 늘 이렇게 질문해 보아야 한다. ‘하나님께서 왜 내게 이 환경을 주셨을까?’ 환경에 반응하지 말고 하나님의 뜻에 순종하는 자가 되어야 한다. 현상만 보고 현상대로 반응하는 자는 미련한 자요, 본질을 생각하는 자는 지혜로운 자다’


저는 이 말씀을 듣고 생활에 적용하며 살아 보았습니다.… 생활에 환경이 바뀐 것 만큼 참 많은 은혜를 받았습니다… 아르바이트를 하면서 만나겐 된 사람들, 아르바이트 장소에서 일어나는 여러 가지 현상들… 사람에게 상처받는 말을 들었을 때…하나님께서 왜 저 사람들을 나에게 보내주셨을까? 무엇을 배우게 하고 느끼게 하고 무엇을 보기를 원하시는 것일까? 이런 상황에서 무엇을 깨닫기를 원하시는 것일까? 이렇게 하나님의 뜻으로 내가 놓여진 환경이라고 생각하니 예전에는 절대 불가능이야 라고 생각했던 일들이 가능해 졌습니다. 특히 저는 관계가 어색한 사람들과 대화를 잘 하지 못하고 ‘나 당신과 관계가 불편해요’ 라고 금방 얼굴에 나타나 버립니다. 그랬건 것이 나와 맞지 않는 사람들, 나에게 차갑게 대하는 사람이 더라고 그것에 관계하지 않고 사람들 대할 수 있었고 더욱더 웃으면서 대할 수 있었습니다. 이렇게 하나님의 본질을 보고 생각하면 이 세상에서 자유롭게 살 수 있는 것을 내가 너무 세상을 힘들게 살아왔었구나..라고 깨달았습니다. 앞으로도 세상에 얽매이는 삶이 아닌.. 천국을 보는 하나님의 본질을 보며 살아가는 삶이 되기를 원하고 또 그렇게 할 것입니다!!!!!!!

홍인기

2006-11-03 11:26:55

"여호수아와 갈렙의 선택을 자신의 것으로 쟁취해야 한다. 이것이 당신의 앞으로의 40년의 인생을 바꿔 놓을 것이다."

관점.... 위의 말씀을 읽으면서 가장 간단하지만 중요한 사실을 깨달았습니다. 이스라엘 민족의 40년.... 힘들고 고생스럽던 그 40년이 나의 40년이 될 수도 있겠다는 생각을 이제껏 해보지 못했던것 같습니다.
짧은 시간에 도달 할 수 있는 하나님이 예비하신 길을... 어리석음으로 인해 40년이나 돌아갔던 이스라엘 백성들.... 나또한 하나님이 예비하신 길을 돌아가고 있는것은 아닌지... 스스로를 되돌아 보게 됩니다.

"이 관점이 그들의 인생을 180도로 갈라 버렸다. 가나안과 광야로, 생명과 죽음으로 나눠 버렸던 것이다. 환경보다 중요한 것은 관점이다. ‘"

관점... 나의 관점은 환경인지, 하나님인지.... 물론 중심에는 하나님이 계시지만 환경또한 의식하지 않는다면 거짓말일듯 하다. 가나안땅을 저주의 땅으로 받아들였던 10명의 정탐꾼들처럼 나 자신 또한 현상만 잘 보고 진작 중요한 하나님의 뜻은 전혀 보지 못하는 어리석음을 범해서는 안되겠다. 내가 정탐꾼 중 한사람이였다면...... 나는 어떤 보고서를 제출 했을까....

"늘 하나님께 초점을 맞추어서 환경을 보는 사람에게는 행복과, 하나님이 예비하신 결과가 그들을 기다리고 있다. "

일본에 온 후로 하나님의 예비하심을 많이 느낀다. 하나님의 사랑과 나의길을 준비해 놓으신것에 늘 감사하며 살아야 하겠다. 그리고 하나님이 예비 해놓으신 나에대한 결과는 과연 무엇일까..... 기대하는 마음으로 살고 싶다.

최현숙

2006-11-03 18:12:08

10명의 정탐꾼들의 보고, 그 보고를 듣는 이스라엘 백성의 후회와 무너져 내린 절망감!
부정적인 보고보다 긍정적인 보고를 먼저 듣는것이 낫다는 생각을 잠시 해 보았다.
나는 이 말씀을 몇 번이고 읽고 또 읽어 보고 이 말씀에서 하나님께서 내게 주시고자 하시는 뜻이 무엇일까? 를 곰곰이 생각해 보았다.
무엇을 보는가? 나는 이 말씀을 통해 무엇을 보길 원할까?
내면의 소리에 귀 기울려보니 역시 나는 10명의 정탐꾼 중의 한사람이였고, 부정적인 보고반응했던 이스라엘 백성이였던 것이다.
나는 갈렙과 여호수야 그 중에 한 사람이야! 라고 생각했지만, 이 믿음이 나의 바램뿐이란 사실을 다시 한번 확인 했던 것이다.
하나님의 약속의 말씀을 들었지만 환경에 묻혀서 약속이 생각나지 않았던 그들의 모습을 누가 탓할수 있을까? 그 모습이 바로 내 모습인걸,,,,,,
믿음이 연약할땐 10중에 한 사람이였던 나를 보았던 것이다.
“세상 사람은 현상만 보지만 믿음의 사람은 본질을 놓치지 않는다” 라는 말씀처럼
내가 믿음이 연약할땐 환경을 보지만, 하나님의 신뢰의 강도가 높을땐 그 속에 있는 하나님의 음성을 듣는 것이다.
기도시간에 이 말씀을 놓고 기도를 했다. 그리고 예수님을 생각했다.
주님도 져야 될 십자가만 바라보았다면 그 짐을 질수 없었을 것이다. 그러나 우리 예수님도 이 십자가의 고통만 바라보는 것이 아니라 순종을 통해서 하나님이 받으실 영광, 그리고 우리를 향한 주님의 계획하심을 생각하면서 순종의 길을 가셨을 거란 생각이 들었다.
하나님의 계획은 지금 당장은 그것이 무엇을 뜻하는 지 잘 모른다.
그러나 지나놓고 보면 선하신 뜻이 작용했슴을 고백하는 것처럼 불평하지 않고 감사의 마음이 큰 축복임을 보게 되었다.
가나안 땅에 거주하는 큰 거인들이 성가신 존재이고 짐으로만 여기면서 말씀을 읽어었는데 말씀을 듣고 보니 그들은 우리를 대신해서 땅을 개척케 하신 도구였슴을 보게 되었다.
하나님의 크신 뜻을 헤아려 살아가기엔 아직도 많이 부족하지만, 하나 하나 깨닫고 순종하면서 주님과 더불어 동행하는 삶이 큰 행복임을 고백한다.
하박국 선지자의 고백과 또한 고승덕 변호사의 고백은 내게도 큰 감사로 다가 왔다.
“비록 통장에 잔고가 없어도 오직 여호와로 인하여 기뻐하리로다”

박성옥 선교사

2006-11-03 18:39:54


믿음의 사람에게는, 인생이 든든하고 즐거운 것이 환경 때문이 아니라, 나와 함께 하시는 하나님 때문이다. 아무리 좋은 가나안 땅도 하나님을 못 보면 저주의 땅이 되 버리지만, 아무리 열매가 없는 척박한 땅도 구원의 하나님을 보는 사람에게는 기뻐하며 즐거워하는 잔치 마당이 된다.
당신은 지금 무엇을 보는가?
현상을 보는가? 본질을 보는가?
환경을 보는가? 하나님을 보는가?
당신이 메뚜기로 보이는가? 그들이 밥으로 보이는가?
현재의 환경에서 '무엇을 보는가'가 당신의 미래를 결정짓는다.

이부분에서 하나님이 나에게 물으신다.
"성옥아!!지금 무엇을 보느냐."
'하나님이 기뻐하시는 일을 보고 있습니다.현실도 본질도 환경을 보는것이 아니라
하나님의 기뻐하는길로 가기를 원합니다.온재산을 다 드려도 내몸을 사를찌라도
하나님이 기뻐하시는 길로만 가고싶습니다.'

아골골짝 빈들에도 복음들고 가오리다.소돔같은 거리에도 사랑안고 찾아가서 종에몸에 지닌것도 아낌없이 드리리다.종에 몸에 지닌것도 아낌없이 드리리라..
이찬송은 하나님이 나에게 주신 사명으로 의미깊은 찬송이다.
하나님 감사합니다.
내가 무엇이간데 이렇게 쓰시려 하나이까.주님의 뜻에 순종하겠나이다.

오성훈

2006-11-04 01:07:45

#‘비록 무화과 나무가 무성치 못하며 포도나무에 열매가 없으며 감람나무에 소출이 없으며 밭에 식물이 없으며 우리에 양이 없으며 와양간에 소가 없을지라도 나는 여호와를 인하여 즐거워하며 나의 구원의 하나님을 인하여 기뻐하리로다’(합3:17-18)
하나님이 나와 함께 하신다는 것이 얼마나 큰 복인지 모른다. 이 복을 아는 사람은 아무리 무서운 환경이 와도 두려워하지 않고(민14:9), 아무리 가난하고 어려운 환경이 와도 기쁨을 잃지 않는다. 그에게 하나님은 능력의 샘이요, 기쁨의 샘이기 때문이다. ... ... 믿음의 사람에게는, 인생이 든든하고 즐거운 것이 환경 때문이 아니라, 나와 함께 하시는 하나님 때문이다. 아무리 좋은 가나안 땅도 하나님을 못 보면 저주의 땅이 되 버리지만, 아무리 열매가 없는 척박한 땅도 구원의 하나님을 보는 사람에게는 기뻐하며 즐거워하는 잔치 마당이 된다. #

'아무리 열매가 없고 척박한 환경속에서도 구원의 하나님을 보는 사람에게는 기뻐하며 즐거워할 수 있다.' 그렇습니다. 이 기쁨은 하나님을 만나는 데서 시작합니다. 그런데 그 하나님이 좋아야 기뻐하며 즐거워할 수 있을 것입니다. 마치 사랑하는 두 남녀가 그저 만나면 좋고, 보기만 해도 좋고, 함께 있으면 좋아서 결혼하는 것처럼 하나님을 만나는 것이 좋고, 하나님과 대화하는 것이 기쁘고, 그 하나님과 동행하는 것이 좋을 때 세상의 어떤 유혹과 환경속에서도 넘어가지 않고, 어떤 시험과 어려움이 닥쳐와도 한눈을 팔지 않을 것입니다. 지금 내 삶이 비록 무화과나무가 무성치 못하며 포도나무에 열매가 없고 감람나무에 소출이 없으며 밭에 식물이 없으며 우리에 양이 없으며 외양간에 소가 없을지라도 나는 여호와를 인하여 즐거워하며 나의 구원의 하나님을 인하여 기뻐할 것입니다. 그것이 바로 여호와로 항상 기뻐하는 것이 나의 힘이 되는 것이기 때문입니다.

정승은

2006-11-04 01:41:35

1.어떤 현상이 주어졌을 때마다, 우리는 늘 이렇게 질문해 보아야 한다. ‘하나님께서 왜 내게 이 환경을 주셨을까?’ 환경에 반응하지 말고 하나님의 뜻에 순종하는 자가 되어야 한다.현상만 보고 현상대로 반응하는 자는 미련한 자요, 본질을 생각하는 자는 지혜로운 자다.

한국에 온지 9일이 되었습니다.오랫만에 가족들과 행복하고,즐거운 시간을 보낼 수 있게 해주신 주님께 감사하며 지내고 있습니다.저만큼이나 진욱이도 하루하루 즐거워 하고 있습니다.마음의 반이 감사로 가득찬 반면,한편에서는 제 앞에 놓여진 환경들이 진을 치고 있어 걱정과 두려움이 마음이 반을 송두리째 차지하고 있었습니다.그런 가운데 월요일부터 오늘까지 메뚜기와 밥,나의 관점,하나님의 관점을 놓고 틈틈히 묵상하는 가운데 나의 관점을 모두 내려놓고 하나님의 관점으로 마음을 돌려야 함을 깨닫게 되었습니다.영의 양식을 제대로 섭취하지 못해서 조금이라도 실족할까 긴장하고 있었는데,역시 하나님은 동일하게 이곳에서도 부족한 저를 살펴주시니 얼마나 감사한지 모르겠습니다.아직도 해결되지 못한 여러가지 문제들을 놓고 [언제까지니이까..!!도대체 왜!저를 이런 시련속에 가두어 두십니까..
저도 이제 좀 자유롭고 싶습니다!!!]를 가슴 속에서부터 외치고 있었는데,
이 말씀을 통해 환경이 아닌,하나님의 뜻을 여쭙고,그 뜻에 순종하는 자가 되기 위해 힘쓰겠습니다.분명 제게 이런 환경을 주신데에는 이유가 있겠지요..
그렇게 믿고 싶습니다..

2.자신과 거인을 직접 비교하지 말고, 나와 함께 하시는 하나님과 거인을 비교시키는 것이 믿음의 사람의 멋진 모습이다. 자신과 거인을 비교하면 자신이 메뚜기가 되지만, 하나님과 거인을 비교하면 거인이 우리의 밥이 되는 된다. 그렇게 되면, 내 앞에 아무리 강한 거인이 있어도 전혀 두렵지가 않게 된다. 그래서 여호수아와 갈렙은 몇 번이나 ‘그들을 두려워 말라’고 했던 것이다. 이것은 결코 위로나 격려의 말이 아니다. 현실을 그대로 이야기하는 것이다. 하나님의 관점에서 보면 내가 메뚜기로 보이는 것이 아니라, 오히려 그들이 ‘우리의 밥’으로 보이는 것은 너무나 당연한 것이기 때문이다.

이번주 말씀은 마치 제가 물을 마시고,그 물이 바로 흡수되듯이 와닿는 말씀입니다.어느 부분 하나 잘라 선택하기 힘이 듭니다..
한국에 와서도 많은 밥!!을 발견했습니다.그리고 이미 가지고 있는 밥들 만으로도
숨이 콱콱 막힐 지경입니다.하지만 제 뒤에 계신 하나님을 생각합니다.
전에 여호수아 1장8절의 말씀을 주셨던 때가 생각납니다.
또 여호수아를 읽다가 이 부분이 와닿아 ,하루종일 밥!밥!밥!을 외치고
다녔던 때도 있었습니다.그때는 이렇게 까지 와닿지 못해서 환경에
계속 눌려 있었던 모양입니다...제 스스로 메뚜기의 역할을 하고 있었던것 같습니다.이제 그 말씀을 왜 주셨는지 조금씩 이해가 되기 시작합니다.
이제 온힘을 다해 선포할 때가 된것 같습니다.
그들은,내가 가진 문제들은,환경은 내 밥이다!
넘어야 할 산들이 너무 높고,어떻게 해야 할지 몰라서 고민하는 부분들이
너무나도 많게 느껴집니다.그럼에도 이제 선포하고 시작하려고 합니다.
제게는 아무런 능력이 없지만,분명 주님의 말씀이 제 입술을 통해 선포될때,
저는 물론이고 크게 느껴지는 모든 문제들이 사라질 것을 믿고,
일본에 돌아갈때 까지 계속 밥!밥!을 외치겠습니다.

3믿음의 사람에게는, 인생이 든든하고 즐거운 것이 환경 때문이 아니라, 나와 함께 하시는 하나님 때문이다.

한국에 들어오면서 한가지 개인적으로 해결해야할 문제가 갑자기 생겼었습니다.
세상적으로 보면 별 문제될 것이 없었지만,마음속에 이것은 하나님이 기뻐하시지 않을것 같다는 생각이 들었고,그 부분들을 하나님 뜻에 맡기고 해결하자고 마음 먹었습니다.하나님이 기뻐하시는 일을 하리라..하고 그저 마음만 먹었을 뿐인데,
일은 하나님이 해결해 주셔서 찜찜했던 마음을 깨끗게 해주셨습니다.
환경적으로 보면 제게 그리 좋은 선택이 아님였음에도 하나님을 아주 작게나마 기쁘게 해드릴 수 있었단 사실 때문에 정말 기뻤습니다.환경이 아닌,하나님 때문에 기뻐하는 제가 되고 싶습니다.


소대섭 전도사

2006-11-04 06:22:29

>> "보는 것이 다르다. 같은 것을 보아도 다르게 본다.
믿음의 사람은 믿음의 눈으로 세상의 보지만,
세상 사람은 세상의 눈으로 세상을 본다. "


현상은 같지만, 그 현상을 어떻게 보느냐에 따라서
그 생활의 태도가 달라진다는 말씀을 듣고.. 많은 도전을 받습니다.
전도사이고 사역자이기는 하지만... 자주 내게 주어진
과제나 과업이 잘 풀리지 않을 때,
혹은 사람과의 관계를 제대로 풀어나가지 못할 때,
종종 '내 실력이 너무 모자르다..', '내 인품이 너무 모자르다..'
'내 가진 것이 너무 없다...' 하는 생각을 합니다.
그 안에 하나님께서 심어두신 뜻을 찾고자 하지 않고..
저도 세속의 관점과 같이.. 내가 뭔가 부족하고.. 나는 뭔가
할 수 없구나.. 하는 생각을 먼저 합니다.
물론 내가 부족한 것을 알면 노력해서 채우면 되겠지만...
신앙인의 태도로서는 많이 부족한 것이 사실입니다.
믿음의 사람은 믿음의 눈으로 보아야 하는데...
전 아직 세속의 눈으로 보고 있으니... 정말 어처구니 없습니다.
그래서 더 많이 기도해야겠다는 생각이 들었습니다.
말씀도 더 많이 읽어야겠다는 생각이 들었습니다.
일이 잘 풀리지 않을 때, 낙심할 시간에
하나님께서 내가 무엇을 말씀하시고 계신지.. 영의 귀를 기울어야
하겠습니다.

>>"매일 매일 쓰는 당신의 인생 보고서는 어떤가? "

이 질문이 제 가슴을 도려내는 듯 합니다.
매년 정월 초... 영적일기를 쓰겠다고.. 결심해서 새 노트를 사고
며칠이 지나지 않아서.. 금방 관두고.. 또 다시 새해가 되면
다시.. 그러다가 그냥 전 해에 샀던 노트에 일기를 썼더니...
지금 갖고 있는 일기장을 3년째 쓰고 있습니다.
물론 좋은 점도 있습니다. 2년 전에 내가 어떤 글을 썼는지..
알 수도 있으니까요... 하지만, 문제는
3년 전이나.. 2년 전이나.. 1년 전이나...
내가 쓰고 있는 인생의 보고서는 늘... 같은 내용입니다.
'이러지 말자.. 저러지 말자... 앞으로는 이렇게 하자...'
거의 토씨하나 틀리지 않고..
'말자..말자... 하자...'
장소와 사건은 달라도.. 늘 똑같은 실패의 말을 하고 있었고...
똑같은 다짐을 되풀이하고 있었다는 말입니다...
이제 그 고리를 끊을 때가 되었는데...
내 인생의 보고서를 새롭게 갱신해야 하겠습니다.

>> "당신은 지금 무엇을 보는가?
현상을 보는가? 본질을 보는가?
환경을 보는가? 하나님을 보는가?
당신이 메뚜기로 보이는가? 그들이 밥으로 보이는가?
현재의 환경에서 '무엇을 보는가'가 당신의 미래를 결정짓는다."

저는 지금... 솔직히... 현상을 보고 있지만....
마음으로는 간절히 본질을 보고싶습니다.
그래서 견디고 있습니다.
아직 믿음이 부족하여.. 현상과 환경을 보고 있지만...
본질을 보도록 노력해야 하겠습니다.
메뚜기가 되지 말고... 밥을 먹는 사람이 되고 싶습니다.
어서 내 눈의 비늘이 벗겨지기만을 기대하며 기도하고 있습니다.

이소진

2006-11-05 02:56:40

참새 한 마리가 떨어지는 현상도 하나님의 뜻이 아니면 불가능하다고 했다.(마10:29)
저는 이 말씀을 어렸을 적부터 참 좋아했습니다. 자연현상의 세세한 것까지도 하나님의 뜻대로 일어나는 이 말씀에 많은 위로를 받아왔습니다.
나에게 일어나는 세세한 모든 일들도 하나님께서 허락하시고 원하셨기 때문입니다. 그것이 나에게 안좋은 일이든 좋은 일이든 하나님께서 허락하신 일이라면 기쁘게 받아들이고 평안을 얻을 수 있기 때문입니다.

예수 믿는 사람도 인생을 살면서 못 볼 것 다 보면서 살게 되어 있다. 예수 믿는 사람도 자식 문제, 물질 문제, 건강 문제를 다 안고 산다. 믿는 사람도 다 감기도 걸린다. 믿는 자나 믿지 않는 자나 삶의 환경은 다를 바가 없다.
이 말씀을 들으면서 예전 친구가 했던 말이 생각났습니다. 나는 교회도 잘 다니고 봉사도 많이 하고 하나님도 잘 믿는데 직장에 들어가니 너무 험한 꼴을 많이 봐서 회사를 그만 둘까 생각중이야..그 친구는 학생시절 교회에 거의 살다시피 하고 만나는 친구들은 모두가 교회친구들이었습니다. 교회에서는 너무 행복하지만, 밖에서는 이상한 사람들도 많고, 타락한 인간관계가 너무 많다는 것입니다. 어쩌면 그친구는 교회에서 새힘을 받아 타락한 세상에 나와 능력을 발휘해야 한다는 사실을 아직은 깨닫지 못한 듯한 생각도 듭니다.
그렇습니다. 저는 그 친구와의 대화속에서도 많은 은혜를 받았습니다. 세상은 타락해있고 세상의 어느곳이나 깨끗하고 아름답기만 한곳은 없습니다. 친구들사이에는 질투와 시기가 있고 학교에서는 왕따가 존재하고 회사에서는 온갖비리와 타락이 존재합니다. 하지만 이것은 당연합니다. 그렇기 때문에 우리 믿는 자들이 필요한 것이라는 생각이 듭니다. 교회에서 강한자가 되는 것이 아니라, 세상에 나와 강한 자가 되고싶습니다. 교회에서는 아픔을 나누고 연약함을 고백하며, 능력을 받아 세상에서 힘을 발휘하고 그리스도의 향기를 내뿜는 자가 되길 간절히 원합니다. 세상의 현실과 문제는 당연합니다. 나에게 주어진 환경도 하나님께서 뜻이 있어 허락한 것이 너무 감사하고, 그것이 좋지만은 않은 것도 감사합니다. 좋기만 한다면 나의 필요성도 없기 때문입니다. 세상의 어려움이 아니라 하나님께서 허락한 환경이고 하나님을 생각한다면 해낼 수 있을 것 같습니다.

남철

2006-11-05 03:48:33

하나님께서 주신 길을 지금 무엇을 바라보며 가고 있는지....

라문진

2006-11-05 07:06:56

매일 매일 쓰는 당신의 인생 보고서는 어떤가? 10명의 정탐꾼을 닮았는가? 아니면 여호수아와 갈렙을 많이 닮았는가? 하나님 없이 쓰는 보고서는 늘 불안하고, 낙심되고, 두렵고, 원망의 말의 연속이다. 하나님 없이 사는 인생은 늘 불안하고, 불행하고, 불평적이다. 참 안됐을 뿐이다. 우리는 어떤 형편에서도 환경보다는 하나님을 더 잘 볼 수 있어야 한다. 늘 하나님께 초점을 맞추어서 환경을 보는 사람에게는 행복과, 하나님이 예비하신 결과가 그들을 기다리고 있다. 이것이 믿음의 사람의 능력이다.

지난주에는 9시30분 일본어 예배를 드렸다.
말씀을 들으면서 순간, 주목자들은 이 말씀을 어떻게 받아드릴까? 하는 생각에 잠깐 빠졌었다. 주목자들은 그들의 환경을 어떤 입장에서 바라볼까?
그러면서 지금 내가 처한 환경을 생각했다.
너무나 감사한 환경이다.
그런데 난 그 환경을 어떻게 바라보았는가?
내 매일의 인생보고서는 어떠했는가?
....
주님이 주신 감사한 환경에 불안해 하고 불평하지는 않았는가?
잠시 잠깐의 고통에 모든것을 포기하려고 하지는 않았는지..

앞으로의 내 인생의 보고서는, 우리 부부의 인생의 보고서는 주님께 초점을 맞추고, 주님이 예비하신 행복과 결과를 기다리며 지금의 이 환경을 기쁨으로 넉넉히 이겨 내는 보고서가 될것이다.

홍인철

2006-11-05 09:37:09

저희 실험실엔 연구고문으로 계신 시이상이란 분이 계십니다. 지금 저의 교수님의 선배이기도 하시고 회사에서 정년퇴직까지 계시다가 지금은 학교에서 저희들 연구나 논문심사 같은 일을 해 주시고 계십니다. 일본에 와서 일본어도 안되고 학교에 적응도 안될 때 이분과 조교님의 도움을 많이 받았지요. 어떻게 보면 아버지 같은 생각도 듭니다. 평소에 저를 많이 이뻐해(?)주셔서 점심도 같이 먹고 차도 함께 나누며 이야기도 하곤 합니다.
이번 주 이분과 점심을 먹고 벤치에 앉아 차 한잔을 나누던 중 이분이 갑자기 저에게 물으시더군요. “홍상은 인생의 목적이 뭐야?”
좀 난감하더군요. 갑자기 뜬금없이 인생의 목적이라니... 무슨 제자훈련 시간도 아니고..
하지만 지금의 제 생각대로 “하나님의 목적대로 감사하며 사는 것”이라고 대답했습니다. 제자훈련을 받고 이렇게 대답하는 저를 보면서 “조금이나마 하나님안에서 변화된 것인가? 라는 생각을 했습니다. ^^
시이상은 어머니께서 인생을 감사하며 살아라라고 했던 말이 생각난다고 하시며 “몸도 예전같지 않고 앞으로 얼마간 더 살면 천국에 가겠지.. 아니 지옥인가?”하시며 웃으시더군요.
저는 그런 뜻으로 한말이 아니고 제가 좋아하는 분이니 교회에 전도하고 싶은 생각으로 살짝 이야기 해 본건데 그냥 그렇게 받아들이시더군요.

믿음이 있는 크리스천이면 세상을 보는 눈이 달라진다는 말씀이 확실히 이해가 갑니다. 저처럼 믿음이 약한 크리스천도 세상의 사람과 세상을 보는 것에 차이가 있는 것 같은데 여호수와와 갈렙과 같은 믿음을 지닌 사람들은 얼마나 대단할까요? 새삼 믿음의 위대함을 다시금 생각해 봅니다.
지금 제가 하나님을 알고 살아갈 수 있게 해주신 것에 너무 감사드립니다. 또한 제가 사랑하는 사람들이 하나님을 믿지 않아 현상너머의 진리를 보지 못하는 것을 보면 너무 마음이 아프군요. 조금 더 기도하고 노력해서 그 분들이 하나님을 영접할 수 있게 해야겠습니다.

신왕수

2006-11-05 09:54:39

"운명은 주어지는 것이 아니라 자신의 선택의 결과물이다.
믿음의 사람은 환경이 달라지는 것이 아니라 환경을 보는 눈이 달라진다."
⇒ 운명은 선택의 결과물이다...주님이 나를 위해 계획해 놓으신 일들이 있다.
지금 애굽 땅에서 나온 이스라엘 백성들도 역시 그렇다. 하지만, 자신이 선택한 결과들, 즉, 갈렙과 여호수와와 같은 선택을 한 사람들은 그 땅을 보게 되었지만, 나머지 10명은 다른 길을 가게 되었다.
아무리 주님이 계획해 놓으신 일들이라도 나의 선택에 의해서 그것이 틀어질수도 있다라는 생각을 해본다.
그런 선택을 잘하기 위해서는...제대로 봐야한다!.
갈렙과 여호수와도 역시 나머지 10명과 같은 환경을 보았다. 같은 환경 속에서 있었다. 하지만 그 두명은 멋진 선택을 하였다. 환경을 바라보는 눈이 달랐기 때문이다. 나도 갈렙과 여호수와처럼 환경에 굴하거나 환경에 동요하지 않고, 제대로 바라 볼수 있기를 바란다.

김철중

2006-11-05 10:55:46

믿음의 사람은 환경이 달라지는 것이 아니라, 환경을 보는 눈이 달라진다.
세상 사람은 현상만 보지만 믿음의 사람은 본질을 놓치지 않는다. 현상은 누구나 볼 수 있다. 그러나 그 속에 감추인 본질은 아무나 볼 수가 없다. 본질을 볼 수 있는 사람이 진짜 능력 있는 사람이다.

필독 자유게시판의 어떤 암에 걸린 부인의 가정의 이야기와 목사님의 설교말씀을 읽으면서 많은 생각을 하게 되었습니다. 만약 그 부인이 이 설교말씀을 들었다면 그리고 현상(암)에 포기하지 않고 여호수와와 갈렙과 같이 본질(가족간의 신앙과 사랑의 회복)을 보았다면 지금쯤 아마 부부가 전국의 교회를 간증하며 다니고 있을지도 모릅니다.
사실 저의 동생은 2번이나 자궁외 임신을 하였습니다. (이런말을 써도 되는지 모르겠지만 저의 동생에게는 비밀로 해주세요.) 그 쯤 되면 아기를 갖는것은 꿈도 꾸지 못하지만 저의 동생은 그 현상을 보지 않고 시부모님 전도기회로 곧 본질을 보게 되었습니다. 결국 3년간의 노력끝에 시부모님은 동생을 따라 교회를 다니시게 되었고 놀랍게도 2개월전 이쁜 아가를 낳게 되었답니다. 지금은 속회며 교구 체육대회까지 참석하신다니 정말 신기할 따름이지요.
이렇게 주님의 본질을 알면서도 때때로 현상에 속고 현상에 묻어가며 현상에 주저하는 저의 모습을 돌아보며 반성합니다.

김헌규

2006-11-05 12:16:51

‘그들은 우리보다 강하다’인가?(민13:31) 아니면 ‘우리가 능히 이기리라’인가?(민13:30)

지난 몇주간 나의 생활을 돌아보면 이스라엘의 10명의 정탐꾼의 보고서처럼 그들은 우리보다 강하다였다.
목사님설교말씀을 통해 여호수아와 갈렙의 믿음에 새로이 눈이 뜨이기 전까지는…
얼마전 새로운 프로젝트에 참가해서부터 3주간동안 새로운 환경에 불안해하고, 나의 능력의 한계만 느끼면서, 점점 자신감도 없어졌고, 그러다보니 어느사이엔가 나는 이스라엘의10명의 정탐꾼이 보고했던 내용에서처럼 스스로를 메뚜기같이 느끼고 있었다.
스스로를 작게 느끼는 동안에는 집사람이 대연이, 동연이와 함께 하나님앞에 나아가 나를 위해 기도하고 있다는 것도, 회사에서 사장님이나 이사님이 김헌규라면 잘 할 수 있을거라고 믿고 보냈던 믿음도, 나 스스로 잘 할 수 있다는 자신감도 기억에서는 없어져버렸다.
심지어 가장 중요한 하나님께서 나와 함께 하신다는 중요한 사실조차도…
10명의 정탐꿈의 보고는 두려움에 그 근거를 둔 것이었다.
하나님의 약속보다도 하나님께서 늘 함께 하신다는 믿음보다도 두려움에 압도되었던 것이다.
나 역시도 두려움에 압도되었었다.
사소한 서류를 하나 작성하더라도 리더가 어떻게 볼 것인가를 두려워하다보니 사소한 부분에서부터 오타가 나타나고, 알고 있던 내용도 리더가 물어보게 되면 머릿속의 기억들은 어디로 갔는지 하나도 기억이 나지 않고, 대답도 횡설수설하게 되는 것이었다.
그러한 과정이 반복되다 보니, 리더도 저 사람을 믿고 일을 맡겨야 되는 것이지에 대한 의심이 가득한 것 같고, 심지어는 내년에 더 많은 일을 해야 하는데, 할 수 있겠느냐고 노골적으로 물어보기까지 하는 것이었다.
무시당하는 것 같아도 속으로만 삭일 뿐 드러내 놓고 반론도 제시하지 못하는 그러한 날들중에, 이번주 설교말씀에 위로를 받고, 갈렙과 같이 담대해 지기로 하였다.
사람들에게도 좀더 적극적으로 대하고, 작성한 서류에 대해서도 먼저 제출해서 틀린부분이 있으면 말해달라고, 고치겠다고 이야기를 했다.
그러면서, 늦게까지 남아서 서류도 고치고, 조금 더 적극적으로 사람들을 대하다보니 조금은 나를 보는 시선이 달라지는 것을 느낄수가 있었다.
며칠전에 일을 끝내고 같이 나오는데, 리더가 늦게까지 남아서 같이 일을해줘서 고맙다고 하면서, 자기는 늦게까지 남아서 일하는 사람을 좋아한다는 것이었다.
그 이야기를 듣고 보니, 그 사람의 일에 대한 스타일이나, 사람을 대하는 스타일에 대해서도 조금은 알것 같고, 스스로도 조금은 더 담대하게 그 사람을 대할 수 있을 것 같았다.
여호수아와 갈렙의 보고 내용을 한번 더 보았다.
그들의 보고내용속에서 조건을 발견했는데, ‘하나님께서 우리를 기뻐하시면’ 우리를 인도하시고 ‘하나님을 거역하지 않으면’ 하나님께서 우리와 함께 하신다는 것이었다.
그 조건에 나를 대입하여 보았다.
나는 하나님께서 기뻐하실만한 삶을 살고 있는가?, 나는 하나님께 순종하는 삶을 살고 있는가? 라고 스스로에게 질문을 던져보니 막막한 느낌만이 가슴 가득 차 올랐다.
사실 이같은 조건들은 잘 알고 있는 것들인데, 내 삷이 그렇게 살기에는 스스로 포기해야 하는 것들 앞에서 돌아설 때가 많다.
조금만 내 것을 포기하면 되는데...
하나님앞에서 내 욕심이 작아졌으면 좋겠다.
그렇다면, 하나님께서 기뻐하실수도, 하나님께 순종할 수도 있을 것 같은데…
이번주의 나의 목표는 하나님께서 기뻐하시는 사람, 하나님께 순종하는 사람이 될 수 있도록 기도해야겠다.
아울러, 우리 가정이 그런 가정이 될 수 있도록…

박빛나

2006-11-06 10:36:27

하나님께 밝지 못하면 주는 복도 스스로 차 버린다.

내 눈으로 바라보는 세상과, 하나님이 예비해 주시는 세상은 정말 하늘과 땅 차이입니다. 하나님은 실수가 없으신 분이니까요.
나는 하나님께 밝지 못해서,
얼마나 많은 좌절과 힘든 고통을 감당했는지 모릅니다.
그저 내 의지로 다 된다고 생각하면서, 스스로를 얼마나 아프게 했는지 모릅니다.
마음이 피투성이 멍투성이가 되어있던 나를 되돌아 봅니다.

여호수와와 갈렙과 같이 바라보는 눈이 띄였으면 좋겠습니다.
내 눈이 바라보는 것들과, 내 마음이 동하는 것들이,
주님의 뜻이었으면 좋겠습니다.

잠들지 못하는 밤, 생각이 많은 밤...

이 설교 말씀안에서, 나는 오늘도 도전을 받습니다.

당신은 지금 무엇을 보는가?
현상을 보는가? 본질을 보는가?
환경을 보는가? 하나님을 보는가?
당신이 메뚜기로 보이는가? 그들이 밥으로 보이는가?

나를 주관하시는 하나님,
주님의 지혜로 저를 다스리사,
제 눈이 멀지 말게 하옵시고, 제 마음이 주님께만 동하게 하옵소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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