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중앙영광교회

아버지의 마음

이용규목사, 2006-05-29 21:20:2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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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버지의 마음

말씀//눅15:11-32

하나님은 나에 대하여 어떤 마음을 갖고 계실까?
내가 나쁜 짓을 했다고 미워하고 계실까? 내게 실망하셔서 나를 포기해 버리지나 않았을까? 속 썩이던 놈 잘 사라졌다고 나를 잊어버리지나 않았을까? 아니면 내가 아무리 몹쓸 짓을 했더라도, 탕자를 기다리는 그 마음으로 지금도 나를 기다리고 계실까? 예수님은 탕자의 비유를 통해서 변함없는 하나님의 마음을 생생하게 전해 주고 계신다.

1.        탕자의 마음
어떤 가정에 큰 문제가 생겼다. 아들이 둘이 있는데, 둘째 아들이 그만 대형 사고를 쳐 버렸다. 평소에도 아버지 속을 썩이던 둘째 아들이, 자기 몫의 재산을 모두 달라고 해서 그 재산을 며칠 사이에 정리하여 아버지 품을 떠나 버렸다. 자식을 떠나 보낸 아버지의 마음은 얼마나 아팠을까? 탕자는 물질(세상)에 미쳐 아버지를 버리고 집을 떠나 버렸던 것이다. 그는 아버지보다 물질(세상)을 더 좋아했다. 그래서 물질을 가지고 세상으로 가 버렸다. 그 물질이 세상 것이 아니라 아버지 것인데도 말이다.
오늘날도 영적 탕자가 얼마나 많은지 모른다. 모든 물질은 하나님께서 주신 것인데, 그것으로 하나님을 섬기는 것이 아니라, 하나님을 멀리 떠나 세상의 즐거움, 쾌락, 탐욕, 정욕을 섬기고 있기 때문이다. 탕자는, 세상이 좋아서 하나님의 품을 잠시 떠난 어리석은 사람을 말하고 있다. 하나님을 떠나면 그 때부터 타락의 길, 고생의 길이 활짝 열린다. 재물만 있으면 세상이 천국이 될 줄로 생각했는데, 그는 바로 지옥으로 떨어지고 말았다. 하나님 없는 재물은 방탕과 타락의 불쏘시개에 불과함을 그의 인생이 스스로 증명하였다.
그는 재물만 있으면 다 될 줄 알았다.
그러나 허랑방탕한 그에게서 재물은 날개 달린 새처럼 다 날아가 버렸고, 설상가상으로 그가 살고 있던 나라에 큰 흉년까지 들어 버렸다. 결국 그는 돼지가 먹는 쥐엄 열매도 주는 사람이 없어서 굶어야만 했다. 돼지보다 더 비참한 신세가 되고 말았다.
하나님을 떠난 사람이, 아무리 큰 재물을 가지고 있더라도, 종국에는 어떻게 되는가를 잘 말해 주고 있다. 생명의 주인 되시는 하나님을 떠나면 생명도 그 사람을 떠나게 되는 법이다.
그런데 바로 이 시점에서 놀라운 반전이 시작된다.
자기 발로 스스로 나갔던 탕자가 다시 아버지께로 돌아올 것을 결심한다.
자신이 ‘하늘과 아버지께 죄’를 많이 지어서 아들로 가는 것은 스스로 포기하고 종으로 쓰임 받기 위해서 돌아간다.
무엇이 탕자를 아버지께로 인도하는 인도자가 되었을까? 지혜로운 친구의 조언이었을까? 아니면 스승의 가르침 때문이었을까? 그것도 아니라면 자신의 잘못을 사죄하고 이제부터는 효도하면서 살겠다고 하는 선한 양심의 소리를 들었기 때문일까? 물론 전혀 아니다.
그를 아버지께로 직행시켰던 ‘은인’은 다름 아닌 ‘가난’이었다. 그에게 만약 이 지독한 가난이 없었더라면 그는 아버지께 돌아올 수가 없었을 것이다.
‘가난’은 그에게 저주가 아니라 아버지께 인도해 준 ‘최고의 은인’이었다.
눈에 좋게 보이는 것이 꼭 좋은 것도 아니고, 눈에 나쁘게 보이는 것이 꼭 나쁜 것도 아니다. 탕자의 재물은 그를 타락과 방탕의 길로 인도했지만, 탕자의 가난은 그를 아버지께로 인도하지 않았던가!
이 탕자의 이야기는 ‘가난’이라는 문제가 없었다면 불행으로 끝날 수 밖에 없었을 것이다. 물질이 다 없어지고 살길이 막막해지자 비로소 아버지의 귀함을 깨닫게 된다.
참 살길인 아버지를 그 때서야 발견하게 된다.
귀한 깨달음은 흥할 때가 아니라 망할 때에 강하게 역사하는 법이다.
가난과 약함, 문제는 신비로운 진리의 능력을 품고 있다.
우리에게서 어리석음의 껍질을 벗겨주고 지혜의 보석을 캐내게 한다.
우리의 인생을 진리의 길로 인도한다.
아버지께로 인도한다. 하나님께로 인도한다. 탕자처럼 말이다.
자격 없는 풍성은 ‘타락의 길잡이’이지만, 이유 없는 약함은 ‘진리의 길잡이’이다.
당신의 인생에 이유 없는 가난이 오는가? 이유 없는 질병이 오는가? 이유 없는 문제가 일어나는가? 순종하며 따라가 보라. 기다리던 ‘평생의 은인’을 만나게 될 것이다.
탕자를 회복시킨 것은 능력 있는 사람도 아니었고, ‘가난’이었다는 사실을 명심하자.
가난, 실패, 질병, 문제를 이상하게 생각하지 말라. 저주하지 말라. 이것들 속에는 인생의 방향을 바로 잡아 주는 신비한 능력이 들어 있다.
껍데기만 보지 말고 속을 볼 줄 아는 지혜를 갖자.
‘고난 당한 것이 내게 유익이라
이로 인하여 내가 주의 율례를 배우게 되었나이다.’(시119:71)  
이것이 지혜로운 탕자의 성경적 고백일 것이다.        

2.        아버지의 마음
탕자가 집을 나갔을 때, 아버지의 심정은 어떠했을까? 속 썩이던 놈이 나가서 속이 시원했을까? 절대로 아니다. 아마도 그 때부터 집 나간 자식 걱정에 잠도 제대로 못 잤을 것이다. 그래서 아들이 돌아온다는 소식을 듣자 ‘아직도 상거가 먼데 달려가 목을 안고 입을 맞추었다’고 했다. 얼마나 자식이 보고 싶었으면 버선 발로 뛰어 나갔을까? 아버지는 더 이상 기다릴 수가 없었다. 자식이 아니라, 연세든 아버지가 자식에게로 달려 간다. 탕자와 아버지 중에 어느 쪽이 사랑이 많을까? 아버지이다.
탕자가 돌아왔을 때, 아버지가 그렇게 기뻐한 이유는 무엇일까?
그가 가지고 온 어떤 소유물 때문이 아니다. 오직 돌아온 아들 자체가 그에게는 온전한 기쁨이었다.
아버지에게는 한 아들이 천하보다 귀하고, 하나님에게는 한 영혼이 천하보다 귀한 법이다.
탕자는 아버지를 위해서 돌아오는 것이 아니다. 자기를 위해서이다. 아버지께 비리 붙어 살
기 위해서 돌아 왔다. 그러나 아버지는 그것에 전혀 게이치 않았다. 다른 것들은 어떻게 되
어도 상관없었다. 아들이 어떤 모습으로 돌아오는가는 전혀 문제가 되지 않았다. 그에게 소
중한 것은 자식의 형편이 아니라 ‘자식 그 자체’였다. 아버지는 ‘자식의 그 무엇’ 때문에 자
식을 사랑하는 것이 아니라, 단지 자식이기 때문에 자식을 사랑할 뿐이다.
조건보고 자식을 사랑하는 아버지는 없다.
이것이 바로 아버지의 마음이요, 하나님의 마음이 아니던가!
부모의 사랑과 하나님의 사랑은 무조건적인 사랑이다.
사단은 우리에게 계속 속삭인다. ‘너는 자격미달이야. 그러니 평생 나랑 놀자’
강하게 선포해야 한다. ‘사탄아 물러가라. 나는 너와 노는 물이 달라.’ 그리고 얼른 하나님께
로 돌아와야 한다.
그냥 ‘돌아 오는 것’ 이것만이 하나님이 받아 주시는 온전한 자격임을 잊지 말아야 한다.      
세상에서 쓸모 없는 인간, 버림 받은 인간, 소망이 없는 인간이라도 인간 쓰레기 같은 존재
라도 괜찮다.
세상 사람은  약함 때문에 나를 싫어하지만, 하나님은 오히려 나의 약함 때문에 나를 더 사랑하신다.
아버지가 큰 아들에게는 염소 새끼도 안잡아 주었지만  탕자에게는 살진 송아지를 잡아 준 것은, 탕자의 약함이 아버지의 사랑의 마음을 더 자극했기 때문이다. 하나님의 이 사랑은 누구도 말릴 수 없다. 지금도 나를 향한 이 사랑은 도도히 흐르고 있다.
세상은 나를 버려도 부모는 나를 안 버린다.
부모는 나를 버려도 하나님은 절대로 나를 버리지 않는다.(사49:15)
세상은 나를 포기해도 부모는 나를 포기하지 않는다.
부모는 나를 포기해도 하나님은 절대로 나를 포기하지 않는다.
하나님은 나를 천하보다 귀하게 여기시기 때문이다.

3.        큰 아들의 마음
성경에 보면 25절부터 32절에 걸쳐서 큰 아들에 대한 이야기가 기록되어 있다. 차라리 기록되지 않았다면 더 은혜롭지 않았을까 하는 생각을 갖게 하는 부분이다. 그러나 이 부분을 통해서 우리는 하나님의 사랑을 더 깊이 깨달을 수 있다.
큰 아들은, 아버지가 동생을 맞아들여 살진 송아지를 잡아 잔치하는 것을 심히 불쾌해 했다. 그래서 집에도 들어오지 않고 시위를 하고 있었던 것이다. 지금까지 성실히 일한 자기에게는 염소새끼 한 마리 안 잡아주더니, 아버지 살림을 창기와 함께 다 말아먹고 돌아온 탕자에게 살진 송아지를 잡아 준다는 것이 말이나 되느냐고 아버지께 따졌다.
겨우 둘째 아들이 집에 돌아 오니, 이제는 첫째 아들이 아버지를 힘들게 하고 있다. 왜 그랬을까? 만약에 둘째 아들이 엄청난 거부가 되어 돌아와서 형에게 재산의 반을 주었다면 어떻게 되었을까? 절대로 동생이 돌아 온 것에 대해서 불쾌하게 생각하지 않았을 것이다. 어쩌면 아버지보다 더 반기고 기뻐했을 것이다. 형은 동생에 대해서는 별 관심이 없었다. 그는 분명 동생보다는 재물에 관심이 많은 사람이었다. 그래서 계속 ‘살진 송아지’와 ‘염소 새끼’ 이야기를 하고 있다.
두 아들 중에 누가 아버지의 은혜를 더 많이 깨닫고 감사했을까? 당연히 탕자이다. 큰 아들은 과거의 은혜는 다 잊어버리고 불평만 하고 있지 않은가? 아버지가 둘째 아들을 불쌍히 여기며 사랑하는 것이 그렇게 못마땅했던 것이다. 아버지는 물질보다 자식을 훨씬 귀하게 여겼다. 그러나 큰 아들은 동생보다 물질을 더 귀하게 여겼던 것이다. 그래서 그는 결국, 세상적으로는 모범생같이 보였을 지 모르지만 아버지를 힘들게 하는 사람이 되었다.
아버지의 마음을 모르고, 동생을 사랑할 줄 모르는 사람이었기 때문이다.
세상에서 모범생이 되는 것보다도, 주님 안에서 ‘은혜를 아는 사람, 사람을 사랑하는 사람’이 되는 것이 주님을 기쁘게 하는 사람이다.

돈은 문제(분란)를 일어 키기 쉽지만 사랑은 그 문제를 해결해 준다.
동생은 재물 때문에 아버지를 떠났고,
형은 재물 때문에 동생을 미워했지만
아버지는 어떤 경우에도 재물 사랑보다 자식 사랑이 앞섰다.
그래서 돌아온 탕자에게도 최고의 재물들로(제일 좋은 옷, 살진 송아지) 자식을 섬기게 하였다. 이것이 아버지의 마음이요, 하나님의 마음이다.
천하보다도 나를 더 사랑하는 하나님의 마음을 조금이라도 깨닫는 시간이 되기를 바란다.
‘하나님이 세상(나)을 이처럼 사랑하사 독생자를 주셨으니’(요3:16)      

30 コメント

최현경

2006-05-29 22:57:40

1. 아버지는 ‘자식의 그 무엇’ 때문에 자식을 사랑하는 것이 아니라, 단지 자식이기 때문에 자식을 사랑할 뿐이다. 조건보고 자식을 사랑하는 아버지는 없다.

하나님은 나에 대하여 어떤 마음을 갖고 계실까?
하나님 앞에서는 늘 부족하고 어리석은 모습이기에 이런 나의 모습에 실망한 하나님의 모습을 그려보곤 했다. 완전하신 그 분 앞에 불완전하고 실수 투성이인 나는 죄책감으로 하나님 앞에 나아가지 못할 때가 많았다.
하지만 하나님은 오늘 말씀을 통해 아버지의 한없고 조건없는 사랑을 보여주셨다.
하나님과 멀어지게 하려는 마귀의 속삭임으로부터 주님은 탕자의 비유를 통해 이 시간도 나를 간절히 기다리시고 계심을 말씀해 주셨다.

2. 가난과 약함, 문제는 신비로운 진리의 능력을 품고 있다. 우리에게서 어리석음의 껍질을 벗겨주고 지혜의 보석을 캐내게 한다. 우리의 인생을 진리의 길로 인도한다. 아버지께로 인도한다. 하나님께로 인도한다.

나의 약함과 문제가 하나님께로 인도하는 은인이라니... 나는 이것들로 인해 하나님께 가까이 나가지 못했는데, 나의 약함이 주님께로 인도한다는 말씀에 위안과 감사가 나온다.
하나님은 분명 내가 가난하고 병들고 실패하길 원하지 않으신다. 그렇지만 하나님은 내가 가난하거나 병들거나 실패하더라도 나를 버리지 않으시고 나를 일으켜 주시길 원하신다는 그 말씀에 너무나도 은혜가 된다.
‘고난 당한 것이 내게 유익이라
이로 인하여 내가 주의 율례를 배우게 되었나이다.’(시119:71)
내가 고난을 고난 자체로 볼 것이 아니라 주님의 나를 향한 뜻이 있음을 발견할 줄 아는 지혜를 얻길 원한다.

3. 천하보다도 나를 더 사랑하시는 하나님의 마음을 조금이라도 깨닫는 시간이 되기를 바란다.

하나님은 이 세상의 무엇과도 나를 바꿀 수 없다고, 나를 천하보다도 사랑한다고 말씀하신다. 나는 탕자처럼, 아니 탕자보다도 더 심하게 이 세상의 무엇과 하나님을 얼마나 많이 맞바꿔치기 하였던가... 이런 못된 나임에도 하나님은 늘 나를 한결같은 사랑으로 나를 지켜보시고 인도하셨다. 이제는 내가 주님께 받은 은혜를 깨닫고, 그 은혜에 감사하는 삶의 모습을 보여드릴 때이다. 아마도 아버지 품으로 다시 돌아온 탕자는 그 이후로 아버지 곁에서 효도하며 아버지의 기쁨이 되지 않았을까? 은혜를 깨달은 사람만이 그 은혜에 보답할 수 있을 것이다. 나를 천하보다 귀하게 여기시는 주님의 모습처럼 나도 하나님을 천하와 바꾸지 않는 믿음을 간직하길 기도한다.

유광옥

2006-05-30 03:23:55

1.아버지에게는 한 아들이 천하보다 귀하고, 하나님에게는 한 영혼이 천하보다 귀한 법이다.부모의 사랑과 하나님의 사랑은 무조건적인 사랑이다.

예전에는 하나님께서 나를 어떻게 생각하고 계실까? 라는 질문을 스스로에게
던져보곤 했던 적이 많았던 것 같다. 지금은 나를 많이 사랑한다고 하신 응답의
말씀에 감사할 따름이다. 부모님이나 하나님이나 나에게 아가페적인 사랑을 쏟으시는데 정작 나는 아무것도 해드리지 못하고 있는 것같아 죄송할 따름이다.
그리고 육적인 부모님에게는 무슨 날이면 선물로라도 보답을 하곤 하지만 하나님께는 정말 한없는 사랑만을 받는 것 같아 죄송할 따름이다.
그러면서도 나를 사랑해주시는 하나님이 계셔서 얼마나 감사하고 다행인지 모르겠다.

2.자격 없는 풍성은 ‘타락의 길잡이’이지만, 이유 없는 약함은 ‘진리의 길잡이’이다.
당신의 인생에 이유 없는 가난이 오는가? 이유 없는 질병이 오는가? 이유 없는 문제가 일어나는가? 순종하며 따라가 보라. 기다리던 ‘평생의 은인’을 만나게 될 것이다.

믿음을 장담 하면서도 나에게 어떤 물질의 어려움이나 아픔이 올 때면 왜 그렇게 믿음을 지키기가 힘이 들때가 많은지 회개한다. 이유 없이 문제가 일어나도 하나님 안에서는 이유가 있을텐데 그것을 깨닽지 못하고 방황하고 싶어질때가 있다는 것이 부끄럽게 느껴진다. 순종하며 달려가고 싶다.

3.천하보다도 나를 더 사랑하는 하나님의 마음을 조금이라도 깨닫는 시간이 되기를 바란다.

성령감림주일이 오늘 새벽부터 시작이 되었다. 나를 맨발로 뛰어나와 반겨주는 사람이 있더라도 내가 그 사랑을 깨닫지 못한다면 아무 소용도 반가움도 모를 것이다.진정 천하보다 나를 더 사랑하신다는 하나님의 마음을 깨달았으면 하는 바램이다. 일주일간 하나님 앞에서 그 사랑을 온전히 느껴보리라 기도한다.

노재훈

2006-05-30 04:16:04

세상 속에서는 진정한 사랑을 찾을 수 없다. 죽고 못사는 친구가 있다고 해도 친구의 사랑[우정]은 한계가 있다. 궁핍해지고, 무능해지고, 가난해져서 피해를 끼치는 친구를 끝까지 돌아볼 진정한 친구가 있을까? 사랑하는 아내나 남편도 끝까지 사랑하기란 힘든 것이다. 헤어지면 남이니까?

“이에 일어나서 아버지께로 돌아가니라 아직도 거리가 먼데 아버지가 그를 보고 측은히 여겨 달려가 목을 안고 입을 맞추니” 아버지가 먼저 아들을 발견하고 달려 간 것이다. 아버지의 반가움을 최대로 표현한 곳이라고 생각한다. 탕자가 깨닫고 기대했던 것 이상으로 아버지는 아들을 맞았다. 그런 추한 모습으로 돌아온 아들, 갈아입지도 씻지도 못해서 냄새가 코를 찌를 것 같은 아들에게 목을 안고 입을 맞추었다. 그 아버지의 사랑은 우리의 자녀사랑을 뛰어 넘는 차원이다.

내가 죄악 속에서 깊이 빠져 있을 적에, 탕자처럼 집을 나가 고통을 받고 있을 적에 하나님은 끝까지 기다리시며 돌아오는 길을 하염없이 바라보고 계실 것이다.
내가 나의 길을 돌이킬 때 달려와 목을 안고 입을 맞추는 아버지가 있음을 깨달았다. 이것이 아버지의 마음인것을 깨닳았다.

내 과거를 돌아 볼때 내가 탕자처럼 방황할때 하나님은 내가 돌아 오기만을 기다리고 계셨다. 자격미달인 아들이지만 아버지의 마음을 상하게 하지 않기 위해 속삭이는 마귀를 향해 선포하며 살겠다.

이용준

2006-05-30 04:56:45

나에게 탕자를 기다리는 아버지의 귀한 마음이 생기길 진심으로 기도한다
내가 지금 내 아내를 사랑하는 마음에
탕자를 기다리는 아버지의 귀한 사랑의 마음이
더해진다면 그것이 더 깊은 사랑이 아닐까
이것이 잠언에 말씀처럼 자신의 아내를 자기 몸같이 사랑하라고 한 것과
같은 사랑이 아닐까
참 안타깝다 늘 자신을 돌이켜 보면 부족하게만 보이는 내가....
그래도 이렇게 하나 배웠으니 감사한다 최소한 깨닫기는 했지않는가~

이렇게 기도한다
더 이상 뉘우치며 감사하는 탕자의 마음으로 살지 않게해달라고
어느 잘못이건 용서를 배풀며 기다리는 아버지의 마음으로 살게해달라고
그런 귀한 마음을 가진사람은 얼마나 행복한 사람일까~~~

木下 

2006-05-30 05:03:08

1  貧しさ、弱さ、問題は、神秘的な真理の能力を持っている。
 貧しさ、弱さ、問題は、人の心を悩ますことが多いと思いますが、もし、これらがなかったら神様の御力に頼らず、心がかたくなになってしまい神様の御心から遠く離れてしまうのではないかと感じました。私もこれから神様にお祈りをする時、弱さ、問題など正直に告白していきたいです。
2 父には、一人の息子が天下よりも貴く、神様には、一人の魂が天下より貴い。
 私を育ててくださった父を私は尊敬しています。天の御父は、目で見えませんが聖書によって御心を知ることができると思います。今週の御言葉では、とてもわかりやすくたとえがされていたと感じました。今後を心を神様に向けて生きていくように心掛けていきたいです。
3 世の中で模範生になることよりも、主の中で「恵みを知る人、人を愛する人」になることが
  主を喜ばす人である。世の中での模範生は、人によって良い評価を受けたり、嫌われたり様々な評価を受けることがあると思います。そのことによって、心に負担を感じながら一喜一憂して反応してしまうかも知れないでしょう。しかし、主はこのように不安定な判断基準ではなく、「恵みを知り、人を愛する人」という明確な基準で公平に判断されていると感じました。人からの評価も大事だと思いますが、主の判断基準に適うように今後を過ごすように努めていきたいと思います。

정승은

2006-05-30 05:04:57

1.가난과 약함, 문제는 신비로운 진리의 능력을 품고 있다.
우리에게서 어리석음의 껍질을 벗겨주고 지혜의 보석을 캐내게 한다.
우리의 인생을 진리의 길로 인도한다.
아버지께로 인도한다. 하나님께로 인도한다

20살 초에 카톨릭을 통해 주님을 처음 만났다.
하지만 하나님을 만난 기쁨이나,감사가 내 고난으로 인해 산산히 조각났고,
난 내 고난에 빠져서 주님을 잠시 떠나고야 말았다.
사람들로 인해 받은 상처였고,아픔 때문이였다.
몇년을 냉담자로 살면서, 내 고난으로 인해 주님을 떠났다는 죄책감과
영혼의 기쁨이 없는 채로 산다는 것이 얼마나 힘든지를 뼈져리게 느꼈었고,
두려움마저 생겼었다.
냉담자이면서도 난 믿음있는 사람을 만나고 싶어했는데,
어느 순간 기독교 가정에서 자란 남편을 만나 1년안에 결혼을 하고
바로 일본에 와서 임신을 했고,남편을 따라 다니기 시작한 우리 교회를
통해 제대로 주님을 만나게 되었다.사실 교회에 대한 편견과
내가 느꼈던 사람들의 안좋은 부분들이 그때까지 내게는 남아 있었던 탓에
한동안 교회에 대한 거부감이 있었다.남편을 따라 교회에 가는 발걸음은
무겁기까지 했다.
남편과의 시간을 행복했지만,반면에 특히나 적응안되는 일본 문화와
생각지 못한 경제적인 어려움은 나를 곤혹스럽게 만들었고,우울했고,
향수병에 걸릴 만큼 힘들게 했다.
하지만 내게 임신과 가난이라는 문제를 통해 하나님은 강하게 나를
붙드셨다.무서울 만큼 강력하게 말이다.
지금도 내 영혼을 붙들고 바른 길로 갈 수 있도록 인도하시는 과정임을
믿는다.

그런데 만일 그때 결혼하고 바로 일본에 오지 않았다면,
혹은 계획대로 임신을 바로 하지 않고,일본어를 공부하고,학교에 진학하여
내 길을 가고 있었다면,육적으로는 편안하게, 나름대로 만족하며
완벽한 나의 설정에 따라 즐겁게 살아가고 있었겠지만,
주님의 사랑에는 절대 제대로 붙들리지는 못했을 거라는 생각을 하면,
고난을 통해 역사하신 하나님의 사랑에 감사할 뿐이다.
[가끔 주님을 제대로 만나게된 이유가 가난과 고난이였다는 사실을 잊고
괴로워하며,현실에 힘겨워 할때가 있는데,그때마다 지금의 시간을 성령께서
기억하게 해주시길 기도한다.]

2.세상에서 모범생이 된 것보다도, 주님 안에서 ‘은혜를 아는 사람, 사람을
사랑하는 사람’이 되는 것이 주님을 기쁘게 하는 사람이다.

사실 난 아직도 주님의 맘을 너무나 자주,많이 아프게 해드리는
탕자와 같은 모습을 많이 지닌 자이다.부끄럽게도 사실 그렇다.
수많은 잘못과 회개를 수시로 반복하면서,영적인 기쁨을 쫓아가기 보다는
수없이 육적인 만족을 위해 시간을 보내는 일이 많다.
물론,가난 때문에,혹은 약함 때문에 주님께 울며 메달린 적도 많다.
완강하게 고집을 부린적도,떼를 쓴적도 많다.화를 낸적도 있다.
그럴때마다 난 죄책감에 눌려 지냈다.내가 생각하는 선한 모습,멋진 모습,
주님께 기쁨드리는 일을 하지 않았을때,죄를 지었다고 느끼는 순간순간 마다,
죄책감에 사로잡힌 적이 한두번이 아니다.무서운 하나님을 떠올렸던것 같다.
그러나 주님께선 오늘 이 말씀을 통해 난 오직 사랑이다!라고 말씀하신다.
주님께선 내영혼은 물론이고,내 육적인 부분까지 컨트롤 하시면서
나를 먹이고 ,키워 주신다.
삶에 찌들어 아무리 울상을 지으며,괴로워 하며,사람들과 부딪히고,
아파해도 주님께 달려가면 탕자를 받아준 아버지처럼,두손을 활짝 벌려
나를 맞아주신다는 사실을 깨닫게 해주시니 감사하다.
이제 이런 주님의 사랑을,은혜를 아는 자가 되고 싶다.
신실하신 나의 아버지를 진정으로 기쁘게 해드리는 자가 되고 싶다.

세상에서 빛과 소금의 역할을 담당하며,멋진 크리스찬으로 살고 싶다는
소망에 앞서,주님 한분만 바라보면서 내가 주님 앞에 어떤 모습으로
서 있는가를 생각하며,주님의 사랑과 은혜를 날마다 마음에 새기는 것을
더큰 기쁨으로 살고 싶다.

3.돈은 문제(분란)를 일어 키기 쉽지만 사랑은 그 문제를 해결해 준다.
천하보다도 나를 더 사랑하는 하나님의 마음을 조금이라도 깨닫는 시간이
되기를 바란다.

내가 가난하여 겸손을 배우지 못한채로 부유하게 된다면,
난 분명 내 아이에게 선한 청지기의 삶을 가르칠 수 없을 것이다.
또한 힘겹게 사는 분들을 진심으로,전심으로 돕기위해 애쓰지 못할 것이다.
무엇보다 진정한 사랑 없이 돈만 쫓아 부유하게 된다면,
난 말씀에 나오는 큰형과 같은 모습 혹은 탕자와 같은 모습으로 평생을
돈만 쫓아 살아갈 것이다.
내가 사랑이라는 키를 항상 가지고 다닐때만 내 안에 가진 영육간의 금고를
잘 지킬 수 있을 것이며,주님께서 원하시는 곳에 아낌없이 물질과 시간을 쓸
수 있을 것이다.
그리고 내가 아주 잘 간직해야 할것이 돈이 아니라,주님의 은혜와 사랑임을
잊지 말아야 할것이다.
그런면에서 나에게 지금의 환경과 시간을 허락하신 주님께 불평하고,
근심하던 모습을 감사로 돌려드릴 수 있게 해주신 주님께 감사드린다.

-내가 문제를 놓고 이리저리 마음을 완전히 내려놓지 못하고,
기도하는 시간보다 근심하는 시간이 더 많았다는 사실을
이미 너무나 잘 아시는 주님께서 단 일주일 기간이긴 하지만
[특별새벽기도회]로 인도하여 주시니, 참으로 감사드린다.
오늘 참석하지 못해서 마음 한켠이 무거웠는데,내일부터라도 열심을
내야 겠다.
어떤 문제보다 크신 하나님을 만나기 위해 내일은 꼭 참석해야 겠다.
무엇보다 천하보다도 나를 사랑하신다는 하나님의 마음을
아주 조금이라도 깨닫는 시간이 되길 진정으로 소망한다.

박유진

2006-05-30 08:25:02

1. 아들의 마음
"가난, 실패, 질병, 문제를 이상하게 생각하지 말라. 저주하지 말라. 이것들 속에는 인생의 방향을 바로 잡아 주는 신비한 능력이 들어 있다."

문제나 아픔이 올 때, 고난이 올 때 그리스도인은 감사를 드릴 수 있는 사람이라고 합니다. 바로 그 속에 하나님의 신비한 뜻이 들어있기 때문입니다. 그러나, 당장에 닥친 그 상황이 힘들어서 감사는 모두 잊은 채 불평과 불만을 내뱉어버립니다. 고난을 감사하자는 이 말씀을 지금 이렇게 반복해서 제 마음에 새겨넣지 않으면, 정작 그것이 닥쳐올 때 또 불평과 원망을 늘어놓을 지도 모릅니다. 감사하자, 감사하자..무슨 일이 있어도, 어떠한 상황에서도 하나님을 믿고 감사하자...내 영혼아..

2. 아버지의 마음
"그냥 ‘돌아 오는 것’ 이것만이 하나님이 받아 주시는 온전한 자격임을 잊지 말아야 한다."
"조건보고 자식을 사랑하는 아버지는 없다.
이것이 바로 아버지의 마음이요, 하나님의 마음이 아니던가!"

주님...왜 저 같은 하찮은 존재를 그렇게 사랑해주셔서 아들이신 예수님까지 십자가의 고난을 받게 하시고 저를 구원해주셨어요...그렇게 무조건적인 사랑을 가지신 하나님의 마음을, 저는 때로는 '이런 나의 죄 많은 모습을 주님은 싫어하실 거야, 받아주시지 않을 지도 몰라..'라고 오해하기도 했습니다. 그냥 돌아가기만 해도 사랑해주시고 받아주시는 하나님, 주님이 만드신 천지보다도 저를 더 사랑해주시는 하나님...이런 주님의 사랑을 받고 있는 제가 그 사랑을 깊이 깨달으면 깨달을수록, 변화되는 건 당연한 것 같습니다. 목사님이 주일날 말씀해주신 어느 목사님의 어머니에 대한 결심 (평생 몸이 망가져도 자신을 위해 머리를 깎아서 돈을 마련해주신 어머니를 위해 살겠다는 것)처럼, 하나님의 사랑에 온전히 붙들리면, 그 사랑만으로도 살게 된다는 것을 알게되었습니다. 주님, 감사해요...그리고 그런 것을 다 알면서도 자꾸만 세상 유혹에 빠져서 주님 마음을 아프게 하는 죄를 반복하는 저를 용서해주세요...

3. 큰아들의 마음
"세상에서 모범생이 된 것보다도, 주님 안에서 ‘은혜를 아는 사람, 사람을 사랑하는 사람’이 되는 것이 주님을 기쁘게 하는 사람이다."

저는 큰아들과 같은 사람이었습니다. 탕자의 비유를 읽을 때 큰아들편에서 그래, 맞아, 부모님 재산을 모두 없이하고 돌아온 그런 동생을 환대하는 아버지가 이상해, 저 탕자는 너무 나빠..등등으로 생각하곤 했습니다. 그런 큰아들의 모습이, 재물에 관심이 있고 동생에 대한 사랑이 없는 모습이 원래의 본 속모습이었다는 사실을 알고 제 자신에게도 그런 모습이 들어있었다는 것을 깨달았습니다. 예전에...제 동생이 스무살 때, 사업을 한다고 집을 나갔던 적이 있었습니다. 저는, 아무 말 없이 동생이 집에 오기를 기다리시며, 물질적으로 도와주시는 부모님의 모습을 보면서, 큰아들과 같은 마음이었습니다. 그런데, 그런 제 모습 속에는 동생에 대한 진실한 사랑이 없었음을 알게 되었습니다. 사랑이 없었기 때문에, 세상에서 모범생으로 비쳤던 저는, 부모님의 동생에 대한 마음을 이해하지 못했습니다. 지금은...제 동생 빛나를 아주 많이 사랑합니다. 그리고 매일 빛나를 위해 기도합니다. 하나님께서 저의 강퍅했던 마음을 만져주셨던 것 같습니다.
빛나야...그동안 언니의 못된 마음들을 용서해주렴...

김정아

2006-05-30 09:02:57

1.아들이 어떤 모습으로 돌아오는가는 전혀 문제가 되지 않았다. 그에게 소
중한 것은 자식의 형편이 아니라 ‘자식 그 자체’였다. 아버지는 ‘자식의 그 무엇’ 때문에 자식을 사랑하는 것이 아니라, 단지 자식이기 때문에 자식을 사랑할 뿐이다.

자식은 아비의 마음을 몰라주고 제 생각만 하는데도, 부모는 그것에 아랑곳하지 않고 더 좋은거 입히고, 더 맛있는거 먹이고, 늘 아쉽고, 애타고, 사랑스럽고... 우리네 부모들의 모습인것 같다. 주위에서 이 모습을 보면서,, 참 자식이 뭐길래... 저렇게까지 애지중지 ...할까...라고 생각 하곤한다... 나 어릴때의 기억으론 그렇지 않았던것 같은데... 우리 부모님은 그냥 알아서 크라고 방치해 놓았다면 옳을 것이다. 단 얘들 많고 가난한 가운데 열심히 살아가시는 부모님의 모습을 보며 나 또한 스스로 모든 것을 감당해 나가게 되는 것을 배운것 같다.

그런데 우리 하나님을 생각해 봤다.... "아버지의 마음" ..... 그토록 죄악가운데 살고 있어도 행여나 돌아오지 않을까 하는 그 마음을 ... 내가 아무리 잘못해도 여전히 자식으로 나를 받아주시는 아버지의 마음을...조금은 그 사랑을 알 것 같다.
자식이 아비의 마음을 반도 못 헤아리는 것처럼... 부모 자식을 보면 쉽게 느낄 수 있다. 얼마전 설교말씀 중 하나님을 알아주는 것에 대해 다윗이 얼마나 하나님을 인정하고 알아주는 삶을 살았는가를 보았던 것처럼, 나 또한 하나님의 사랑을 묵상하면서 하나님의 큰 사랑을... 그야말로 인간이 가진 모든 말로는 형용할수 없을 정도로 사랑의 깊이와 넓이는 무한한데...오늘 그 사랑을 조금이나마 느낄수 있었다. 이스라엘 백성들의 수많은 죄악생활의 반복속에 참고 참으시며 회복시켜주시는 그 사랑을..... 우상숭배 하는 저들을 깨우쳐 주기위해 선지자를 보내시고 회개하며 돌아오기를 기다리시는 하나님... 징계를 통해서도 부르시고 선지자를 통해서도 부르시고 계신데... 이스라엘 백성들은 하나님의 그 사랑을 몰라준다... 삶속에서 조금씩 조금씩 아버지의 마음을 배운다... 그리고 그 사랑과 은혜를 찬양하지 아니할 수가없다.

박정선

2006-05-30 09:06:12

눈에 좋게 보이는 것이 꼭 좋은 것도 아니고, 눈에 나쁘게 보이는 것이 꼭 나쁜 것도 아니다. 탕자의 재물은 그를 타락과 방탕의 길로 인도했지만, 탕자의 가난은 그를 아버지께로 인도하지 않았던가! 사람의 보는 눈과 하나님의 보는 눈은 틀리다는 것을 다시금 깨닫습니다.
고난속에 힘들어하는 나보다 하나님은 더욱 마음 아파하시는 분이신 것을, 그리고 고난을 통해 나의 마음을 얻기를 원하고 계셨다는 것을 느낍니다.
사단은 우리에게 계속 속삭인다. ‘너는 자격미달이야. 그러니 평생 나랑 놀자’
이 부분을 정말 실감나게 느꼈습니다. 거룩하게 살 자신이 없다고 생각하는 것은 하나님을 바라보기 보다 사탄의 속삭임에 익숙해 져 있기 때문이 아닌가 하는 생각이 들었습니다.
하나님은 나를 천하보다 귀하게 여기신다는 것을 늘 생각한다면 사탄을 향해 어떤 순간에도 강하고 담대하게 선포할수 있다고 생각합니다.
하나님 아버지의 은혜를 더욱 많이 깨닫고 감사하는 자가 되기 원합니다.

라문진

2006-05-30 23:35:16

귀한 깨달음은 흥할 때가 아니라 망할 때에 강하게 역사하는 법이다.
가난과 약함, 문제는 신비로운 진리의 능력을 품고 있다.
우리에게서 어리석음의 껍질을 벗겨주고 지혜의 보석을 캐내게 한다.
우리의 인생을 진리의 길로 인도한다.
아버지께로 인도한다. 하나님께로 인도한다. 탕자처럼 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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가난이 없었더라면 탕자의 인생은 회복이 될 수 없었을것이다.
나에게도 인생의 전환점이라고도 할수 있었던 문제가 있었다. 만약에 그 문제가 없었다면 나는 하나님을 만나지 못했을거라는 생각에, 나를 그토록 힘들게 했던 문제가 정말로 나에게 "은인"이었다는 사실을 고백하지 않을수 없다.
하나님을 알기전에 정말로 세상적으로 잘 나갈때가 있었다 여기저기서 스카웃제의가 들어오고 하나님 무서운줄 모르고 잘 나가는 맛에 20대후반을 그리 보냈다. 하지만 주님은 내가 목숨걸고 하려했던 그리도 하고싶은 일을 하지 못하게 했고 일본어만 남게하셨다. 결혼하고 일본으로 오게하신 이유를 깨달을쯤에 너무나도 힘들었던 그 문제가 너무나도 감사해서 용준씨랑 손잡고 운적도 있었다. 그 세상일이 잘되어 한국에 그대로 있었다면 지금의 이 귀한 모든것을 모르고 여전히 헤매고 살고 있었을테니깐 말이다.
귀한 깨달음이 망할때 강하게역사하는 법이다 라는 말을 정말 강하게 느낄수가 있었다.

그러나 큰 아들은 동생보다 물질을 더 귀하게 여겼던 것이다. 그래서 그는 결국, 세상적으로는 모범생같이 보였을 지 모르지만 아버지를 힘들게 하는 사람이 되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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탕자가 되어 돌아왔을때 나를 천하보다 귀하게 여겨 받아준 아버지의 마음을 잊어버리고, 그때를 기억하지 못하고 다시 큰아들의 마음을 가지려는 내 모습이 보여 안타까울때가 있다.
세상적으로 모범생의 얼굴을 하고 있으면서 하나님을 힘들게 하고는 있지 않는지 돌아보게 되고 반성하게 된다.
내가 사람보다는 물질을 중하게 여겨 사람을 미워해서 사람을 잃어버리지 않도록 아버지의 그 사랑을 닮아가는 제자가 되고 싶다.

김기웅

2006-05-31 12:39:32

1.오늘날도 영적탕자가 얼마나 많은지 모른다.

항상 말씀을 접할때에는 영적으로 받아들여야한다는 생각이 든다.
우리중에 진짜로 탕자같은 사람이 얼마나 될까?
하지만, 영적탕자로 얘기가 접어들면, 나는 너무 부끄러워진다.
아버지께 받은 재산도 없지만, 흥청망청 쓴적도 없고 또 쥐꼬리만
한 양심으로 손에 셀 정도로 남을 몇번 도와준적도 있는것 같지만
난 하나님 앞에서 영원히 영적탕자일수 있다.
너무 부끄럽다...

2.가난은 그에게 저주가 아니라 아버지께 인도해준 최고의 은인이
었다. 귀한 깨달음은 흥할때가 아니라 망할때에 강하게 역사 하는법

참 맞는 말인것 같다. 나 잘난맛에 신앙생활하는 것은 아닌지 분간이
않되는 현실속에서, 나는 지금까지 흥하고 잘나가는 사람만이
멋있고 그만의 무언가가 있다고 생각했는지 모른다. 하지만, 내
주변에는 세상적으로는 조금 별볼일 없지만, 하나님앞에서 너무나
사랑받고 인정받는 사람이 있을것이다. 인생의 귀한 깨달음을
모르고 흥한사람보다는 하나님앞에서 귀한 깨달음을 가지고 사는
사람들을 존경하고 사랑해야 겠다..

3.사탄은 우리에게 계속 속삭인다.
'너는 자격마달이야. 그러니 평생 나랑 놀자.'

죄 짓기 좋아하는 사람이 어디 있겠냐만은 신발신고 밖에 나서면
생겨나는 죄.. 그 죄는 결국 100% 내 무능이고 내 허물이지만...
언젠가 목사님 설교에서 이미 죄로 넘어진 이에게 사탄이 뭐하러
시험을 하겠냐는 말이 기억이 난다. 시험에 빠지지 않는 다는것은
어쩌면, 사탄이랑 사이좋게 놀고 있다는 얘기도 되는것 같다.
평생 사탄이랑 놀아서야 되겠는가???
별로 시험에 않 드는 나라는 인간은 다 그렇고 그런거니까, 좋은게
좋은거니까 사탄이랑 타협하고 살고 있는건 아닌지
이번 기회에 단단히 따져봐야 겠다.

지영민

2006-06-01 15:35:18

--- 귀한 깨닫음은 흥할 때가 아니라 망할 때에 강하게 역사하는 법이다.
가난과 약함, 문제는 신비로운 진리의 능력을 품고 있다. ---

내 스스로가 자족할 때에는 솔직히 하나님을 더 많이 생각하거나 하나님을 찾거나 하지 못한다. 하지만 나에게 문제가 생기거나 내 스스로가 해결할 수 없을 때 결국 무릎을 꿇게 됨을 체험한다. 이런 모습을 보면서 그 넉넉함이 내게는 어찌보면 독이였다는 사실을 지나고 보면 느끼게 된다. 내가 만족한 삶을 살때 결코 하나님을 떠나지 않고 믿음생활도 잘 하며 지켜날 갈 것 같지만 뒤돌아보면 백이면 백 그러하지 못했다. 오히려 비천할 때 내가 더 하나님을 떠올리며 하나님의 은혜였음을 기억하게 된다.

이 탕자의 비유를 읽거나 설교 가운데 듣게 될 때 내안에 인간의 생각으로 들을 때가 많았다. 아버지 밑에서 착실히 일한 큰아들로서는 얼마나 속상한 일이었을까? 작은아들처럼 재물을 달라고 떼를 써서 아버지를 마음 아프게 하지도 않았고 재물을 다 탕자하여 돌아오지도 않았는데 집을 나가다 온 동생. 그것도 아버지가 모아놓은 재산도 다 탕진해서 거지꼴로 온 동생을 위해서 집안 잔치도 아닌 동네 잔치를 하다니... 동생처럼 아버지 속을 썩인 것도 없이 아버지 밑에서 열심히 아버지를 도와 집안 일을 했을 책임있는 장남에겐 친구들하고 함께 식사하라고 하시지 않은 아버지라면 얼마나 서운했을까?...라는 인간적인 생각을 해 본적이 있다. 그런데 아버지의 마음을 느끼게 된 일이 있었다. 아는 분에게 자녀가 있는데 그 중에 속을 썩이는 자녀가 있었다. 그런데도 그 자녀가 집에 온다고 하면 그 분은 그 자녀가 평상시 좋아하는 음식을 준비하기 위해 시장을 다 뒤지면서 음식재료들을 준비하시다면 부모의 마음을 이야기하시는 걸 들은 것이 있다. 그 후에 이 말씀을 접하게 될 때 아버지의 마음이 눈에 들어오게 되었다. 그러면서 이 마음이 아버지 보시게에 탕자 같았던 내 모습을 찾게 되었다. 지금까지 나는 큰아들일거라는 마음이 있었지만 정말은 나는 탕자같은 작은아들이었음을 알았다. 작은아들은 한번의 실수를 하였지만 나는 매일매일을 탕자처럼 살았는지 모른다. 그러면서도 내가 아버지 밑에서 어떻게 잘 했는데 라며 떳떳해 했는지도 모른다. 그런 나의 어리석은 모습도 아무말 없이 먼저 다가오셔서 앉아주시는 하나님의 크신 사랑은 나는 이해해지 못했다.

아버지의 사랑을 통해 하나님의 무제한적인 조건없는 사랑을 깨달았다. 나의 모습이 어떠했으면 어떻게 아버지의 마음을 아프게 했는지에 대해 하나님은 관심이 없으시다 오로지 내가 아버지께 온 것 만으로도 기뻐서 하늘 잔치를 하시는 하나님.
오늘도 나는 이런 하나님의 사랑을 듬뿍 받으며 살고 있다. 사랑을 아는 자가 사랑도 베푼다고 했다. 아버지의 넉넉한 사랑을 통해 내자신도 주위를 사랑으로 넉넉히 밝히는 하나님의 자녀의 메신저가 되길 기도한다.

박순애

2006-06-01 19:14:34

이 말씀을 대하게 될 때마다 나는 꼭 큰 아들과 같다는 생각을 하게 된다. 아버지 안에 살면서 집을 나갈 용기도 없고 돌아온 동생을 기쁨으로 맞을 사랑도 없는 사람의 모습, 그 속에서 나를 보기 때문이다.
"세상에서 모범생이 되는 것보다도 주님 안에서 은혜를 아는 사람, 사람을 사랑하는 삶이 되는 것이 주님을 기쁘시게 하는 사람이다"
그렇게 생각하지 않는 사람이 있을 수도 있겠으나 나는 모범생이라는 소리를 많이 듣고 살았다. 그러나 이 소리를 들을 때마다 나의 마음은 텅 비어 버리는 것 같았다. 내 속에 있어야할 사랑이 겉으로 보이는 모범생이라는 이름으로 더 초라해지고 위축되는 것을 느끼게 되기 때문이다. 중심을 보시는 하나님께서 이런 나를 어떻게 보실까라는 생각에 내 안의 부족함을 더 느끼게 되기 때문이다. 내가 회칠한 무덤같이 겉 모습만 화려하고 속에는 사랑이 없어 갈라지고 아무런 열매를 기대할 수 없는 사람인 것 같아 두려움이 생기기도 하는 것이 솔직한 나의 마음이다.
큰 아들이 아버지의 마음을 조금이라도 헤아렸다면 얼마나 좋았을까? 지금 동생이 돌아와 온 집안에 잔치가 열렸는데 큰 아들에게 잔치는 쓸데없는 일이었다. 자기 스스로를 의롭게 여겼기 때문에 불의 한 동생을 위해 잔치를 여는 아버지의 마음에는 관심이 없었던 것이다. 아버지의 마음을 알고 있었다면 집을 나간 동생을 찾아 데리고 돌아 왔어야 하는데 이 큰 아들에게는 그것보다 지신이 더 중요했던 것은 아닐까.
주님 안에서 은혜를 아는 사람이 되고 싶다. 하나님의 은혜, 사람의 은혜를 아는 삶을 살고 싶다. 하찮은 동물도 은혜를 갚을 줄 안다고 하는데 하나님의 형상을 닮은 내가 은혜를 모르고 산다면 말이 되지 않는다. 하나님은 탕자 같은 나를 위해 하나 밖에 없는 아들을 버리셨다. 그 아버지의 마음을 내가 부모가 되어 조금은 알 것 같은데 때로는 나는 그 마음을 외면하고 집을 나간 탕자처럼 물질도 내 마음대로 쓰고 싶어할 때가 있고 시간도 사람도 환경도 내 마음대로 사용하려 한다. 덤으로 사는 인생이 그리고 나그네와 같은 삶을 사는 인생이 주님의 것이 되게 하고 싶다.
아버지는 아무것도 바라지 않았다. 그저 내 아들이 돌아 왔다는 사실 하나에 돈도 무례함도 탓하지 않았다. 아버지의 사랑이 이런 것이라는 것을 다시 생각하게 된다. 하나님의 사랑이 이런 것이리라. 내가 어떤 모습이던간에 기뻐하시고 안아주시고 기다리시고 회복시켜주시는 사랑이다. 내 마음 속에 아무 말없이 교회에 나오지 않는 사람을 판단하고 정죄하는 마음이 있었는데 그들에게 아버지의 마음을 가져야 겠다. 그리고 그들이 돌아 왔을때 두 팔로 안아주고 사랑으로 기뻐하는 마음을 가져야 겠다. 나보다 더 큰 사랑으로 기다리시는 아버지를 기억하면서 .....

김성섭

2006-06-01 19:56:17

------ 탕자를 회복시킨 것은 능력 있는 사람도 아니었고, ‘가난’이었다는 사실을 명심하자. 가난, 실패, 질병, 문제를 이상하게 생각하지 말라. 저주하지 말라. 이것들 속에는 인생의 방향을 바로 잡아 주는 신비한 능력이 들어 있다.
껍데기만 보지 말고 속을 볼 줄 아는 지혜를 갖자. ------

여러번 들었고 읽었던 말씀입니다. 또 이 본문을 가지고도 설교한 적도 있었습니다. 그런데 오늘 목사님의 설교를 읽으면서 탕자를 회복시킨 능력이 바로 가난이었다는 말씀에 새로운 깨달음을 얻었습니다. 곰곰히 생각해보니 정말 그렇습니다. 탕자가 타국에서 성공했다면, 그래서 더 큰 부자가 되었다면 결코 아버지께 돌아오지 않았을 것입니다. 가난은 탕자를 회복시킨 능력이었던 것입니다.

내 삶을, 내 목회를 회복시킨 능력은 무엇일까 뒤돌아봅니다. 조금의 망설임이 없이 떠오르는 것이 있습니다. 바로 사람들의 오해와 비판이었습니다. 누구에게나 오해와 비판으로 인해 잊을 수 없는 가슴아픈 경험이 있을 것입니다. 저에게도 결코 잊을 수 없는 몇번의 일들이 있었습니다. 그중의 하나가 저녁 늦게 어느 성도님으로 부터 걸려온 전화였습니다. 전화내용인 즉, 누구는 목사님에 대해 이렇게 말하고 누구는 목사님에 대해 저렇게 말하더라 하면서 '목사님, 그 사람들이 그런 말을 한다면 목사님께 문제가 있는 것 아닙니까?'

그 성도님은 정말 나를 위해서 그런 전화를 했다고 믿습니다. 그때도 그렇게 믿었고 지금도 그렇게 생각하고 있습니다. 그런데 그 성도님이 어느 누구는 목사님에 대해 이렇게 말했습니다 라고 말한 그 내용에 도무지 잠을 잘 수 없었습니다. 내가 정말 그렇게 형편없는 목사인가 심한 자책감이 들었습니다. 부족한 것이 많고 실수도 많은 목사임에는 분명하지만 그래도 주님과 교회를 위해 정말 열심히 달려왔는데 결국 몇몇 성도들에게 비추어진 모습은 그것밖에 안되었나? 하는 생각에 잠을 이룰 수 없었습니다. 내가 정말 어느 성도가 말한 그런 목사일까 곰곰히 생각하며 곤히 잠자고 있는 아이들을 바라보는데, 내가 그런 목사인가 아닌가 하는 것과는 상관없이 그런 말을 들었다는 것 자체가 너무나 부끄러워서 아이들을 볼 수가 없었습니다.

아이들에게 유명한 목사 아빠는 될 수 없다해도 어디에 가서도 떳떳하게 '우리 아빠는 목사님이야' 하며 자랑스럽게 말할 수 있는 그런 목사가 되고 싶었는데, 그런 말을 들을 만큼 내가 형편없는 목사인가 하는 생각이 가슴이 매어지고 너무 억울해서 잠을 이룰 수 없었습니다.

그것이 저에게는 탕자가 만난 가난이었습니다. 그것도 아주 지독한 가난이었습니다. 교회를 개척해서 물질적으로 힘들고, 500엔 짜리 동전 하나에 손이 떨릴 때에도 목사가 되고, 교회를 개척해서 고생하는 것에 대해 후회해본 적이 한번도 없었습니다. 오히려 나를 불러주신 하나님께 그저 감사할 뿐이었습니다. 주님때문에 가난할 수 있었던 그 시간들이 오히려 저에게는 특권이었습니다. 그런데 그날 저녁에는 내가 목사가 된 것이 후회스러웠습니다.

그런데 목사님의 말씀처럼 '이것들 속에는 인생의 방향을 바로 잡아 주는 신비한 능력이 들어 있'었습니다. 사실 몇몇 사람들이 술김에 말한 그런 말들은 지금 생각해보아도 무책임하다고 생각합니다. 술안주로 할 수 있는 말은 아니라고 생각합니다. 그러나 그런 일들을 통하여 다시한번 내 자신을 진지하게 돌아보게 되었습니다. 교회를 처음 시작했을 때의 열정들이 변함없이 타오르고 있는지, 한 사람 한사람을 천하보다 귀하게 여기는 목자의 심장을 가지고 있는지, 정말 주님께 부끄러운 것이 없는지, 내 자신을 종합진단해 보는 시간을 갖게 되었습니다. 그러면서 내 안에 너무나 부끄러운 죄와 악한 모습들이 자리잡고 있는 것을 깨닫게 되었습니다. 그들의 오해와 비판은 나도 모르게 조금씩 어긋나가던 내 삶과 목회를 바로 잡아주는 신비한 능력이 되었던 것입니다.

감사하게도 그 후로는 그때와 같이 어이없는 오해를 하고 심하게 비판하는 일들은 없습니다. 그러나 생각지도 못한 때에, 생각지도 못한 내용의 오해와 비판을 들을 때가 있습니다. 그때마다 그것을 하나님이 저에게 주시는 경고로 생각합니다. 교만하지 말라는, 게으르지 말라는, 사람을 편애하지 말라는, 내 고집대로 하지 말라는, 대충하지 말라는, 더욱 기도하라는, 더욱 말씀에 전념하라는, 그런 사인으로 받아들입니다. 탕자에게 가난이 은인이었던 것처럼, 내가 조금이라도 목사다운 목사로서 살아갈 수 있도록 나를 세워준 은인은 오해와 비판이었습니다.

그래서 지금은 누구 무슨 말을 해도 그 사람을 미워하지 않으려고 노력합니다. 예전에 비하면 거의 미워하지 않는 것 같습니다. 오히려 그 사람을 위해 축복하며 기도할 수 있는 여유까지 가지게 되었습니다. 그리고 사람들의 평가에 좌우되는 어리석음을 어느 정도는 벗어가고 있습니다. 주님의 평가가 진짜이기 때문입니다.

달려갈 길을 다가고 주님 앞에 섰을 때 '성섭아, 수고했다. 너는 나의 착하고 충성된 종이었다' 이 한마디 듣는 것이 제 인생의 목적입니다. 그 목적을 이루기 위해서 주님은 지금도 가끔씩 오해와 비판의 은인을 보내주십니다. 그래서 이제는 은인을 만날 때마다 그것이 나를 향하신 아버지의 마음깊은 사랑이라는 것을 알기에 감사하며, 탕자가 아버지께 달려가듯 그렇게 하나님께 쏜살같이 달려갑니다.

최현숙

2006-06-01 20:59:06

탕자가 돌아와서 제일 억울한 것은 살진 송아지였다는 유머가 생각납니다. 탕자의 이야기는 많은 설교를 통해서 들었기 때문에 가끔 선입견을 가지고 말씀을 대할때가 있습니다. 그러나 오늘은 이전에 들었던 그 말씀의 선입견을 버리고 오직 마음으로 묵상하길 원합니다.

세 사람이 등장하여 이야기의 줄거리가 되어진 탕자의 말씀을 묵상하다가 세사람의 각각의 마음을 보았다. 탕자, 아버지, 큰아들의 마음…..세 사람이기에 세가지 마음이 있겠지, 탕자의 마음은 말그대로 탕자의 마음이였다. 자신의 재산도 아니면서 아버지에게 유산을 미리 받아 허랑방탕하게 써버리고 돈이 없이 굶어 죽게 되자 아버지의 집에 돌아가면 그곳에 있을 양식을 먼저 생각한다. 잠시의 양심의 가책을 느껴 죄를 고백했지만 아버지의 풍성함을 누리고 싶은 마음이 있었다. 큰 아들! 그는 열심히 일한 사람이였다. 그가 열심히 일할수 있었던 분명한 이유는 아버지를 기쁘게 함도 아닌 자신의 유익을 위해서였다. 물질을 모으기 위함이라고나 할까? 아버지! 아버지는 두 아들사이에서 어쩔줄 모르는 사랑많은 아버지다. 집 나가 돌아온 아들이 고맙고 감사해서 잔치를 베풀지만, 이 일로 삐진 큰 아들을 또한 호령으로 다스리지 못하고 살 살 달랠수 밖에 없는 사랑만은 아버지의 마음…….

아버지는 두 아들을 다 사랑하고 있었다. 부모된 마음이라면 그 비중은 비슷할 것이라 생각된다. 이전에 나는 탕자였다. 탕자처럼 세상이 좋아서 세상에서 열심히 살았다. 하지만 탕자처럼 내 영혼이 채울수 없는 배고픔으로 고통하고 있을 때 아버지의 집을 생각하며 바라보게 된것이다. 그래서 아버지에게로 돌아갔다. 아버지는 너무도 나를 사랑하여 주셔서 탕자에게 베푼 사랑보다 훨씬 더 나를 사랑해 주고 또 사랑해 주었다. 시간이 흘러 나는 이제 돌아온 탕자란 별명보다는 성실히 일하고 있는 아버지의 듬직한 큰 아들처럼 아버지에게 순종하면서 열심히 살고 있었던 것이다. 내 영혼의 만족함을 준 아버지 집에서 늘 기쁨으로 살고 있다면 문제가 없었을 것이다. 그러나 어느새 나는 큰 아들의 모습으로 변해 있는 나를 보게 되었다. 헐벗고 굶주림에 죽어갔던 동생이 돌아온 기쁨을 나는 함께 누리지 못한 모습으로 아버지 마음을 아프게 한 큰 아들이 되어서 아버지의 기쁜 마음을 함께 공유하지 못하고 불평하며 속상해 하고 있는 것이다.

아버지의 마음이 얼마나 아플까? 날 구원하여 주시고 나에 대한 큰 사랑을 지금도 아낌없이 부어 주시고 계시는데 그 사랑 받은 나는 어떤 모습으로 다른 이들을 사랑으로 섬기고 있을까? 내가 아버지의 마음을 조금이라도 이해하고 있다면 이렇게 큰 아들처럼 아버지의 마음 아프게 하지 않았을 텐데………눈물이 왈칵 쏟구친다.
첫마음은 탕자였던 나. ……… 지금은 큰 아들의 마음이 된 나……………..
과거의 은혜를 다 잊어버리고 불평만 하고 있는 나를 오늘도 참고 인내하고 계신 아버지!
사랑은 오래참고,,,,,,모든 것을 견딘다고 하신 말씀처럼
나를 오늘도 인내하고 계시고 계신 아버지!!! 감사합니다.
내게 부족한 것을 이제 말씀을 통해 회개하며 소망을 갖습니다.
탕자가 받았던 그 은혜 잃지 않고 주님앞에 늘 순종하며 충성스러운 제자로 살겠습니다.

이지영

2006-06-01 21:39:47

1.눈에 좋게 보이는 것이 꼭 좋은 것도 아니고, 눈에 나쁘게 보이는 것이 꼭 나쁜 것도 아니다. 탕자의 재물은 그를 타락과 방탕의 길로 인도했지만, 탕자의 가난은 그를 아버지께로 인도하지 않았던가
껍데기만 보지 말고 속을 볼 줄 아는 지혜를 갖자.

나의 삶에서 일어나는 모든일이 하나도 빠짐없이 중요하다는 것을 알았습니다.
이제까지 살아오면서, 일어났던 크고 작은 일중에는 안 일어났으면 좋았을텐데라고 생각했던 것도 있었지만, 지금 생각해보면, 그런 일들 덕분에, 제가 하나님께 더욱 무릎을 꿇고 나갈 수 있었습니다.
좋은 일이 일어나도, 하나님과 멀어지게 되면, 그것은 좋은 일이 아니고, 저주스러운 일이고, 겉으로는 재앙으로 보일지라도, 그 덕분에 더욱 하나님앞으로 나아갈 수 있게 된다면, 복의 일이 된다는 것을 항상 명심하며, 좋은 일이 일어나든, 나쁜 일이 일어나든, 변함없이 하나님께 감사드리는 자가 되어, 제 주위에 일어나는 일들이 모두 좋은 일이 될 수 있도록 노력하겠습니다.

2.세상에서 모범생이 되는 것보다도, 주님 안에서 ‘은혜를 아는 사람, 사람을 사랑하는 사람’이 되는 것이 주님을 기쁘게 하는 사람이다.

탕자같았던 나의 모습을 보며, 이런 나를 하나님은 사랑해주실까..라는 의문을 가진적이 있었습니다. 하지만, 그 의문은 사탄이 심어주는 생각에 불과했고, 좋으신 하나님은 여전히 나를 사랑해주셨습니다 .
학생시절때는 하나님의 영광을 위해 세상의 모범생이 되기위해 노력했던 나..지금은 어떤 모습으로 살아가고 있는지 생각해 봅니다
부모님과 이 세상에서 지낼 시간이 얼마 없기에 , 부모님 살아계실때, 가능하면 많은 효도를 하고 싶어하는 마음같이, 이 세상에서 내가 지낼 시간이 얼마 없기에 , 세상 살동안 하나님의 사랑으로 이웃을 사랑하고, 하나님께 더많은 효도를 하는 사람이 되어야겠습니다.

홍인기

2006-06-02 02:53:18

"모든 물질은 하나님께서 주신 것인데, 그것으로 하나님을 섬기는 것이 아니라, 하나님을 멀리 떠나 세상의 즐거움, 쾌락, 탐욕, 정욕을 섬기고 있기 때문이다"

나역시 영적 탕자로 지내온것이 아닌가 하는 생각을 해본다. 물질 우선주의, 믿는사람이 못살면 안된다 라는 전제하에 나의 마음에 자리잡은 물질 우상주의! 나의 믿음의 부족함, 사탄이 주는 합리화 개념에 빠져 살던 모습을 먼저 회개한다.
만일 탕자와 같이 엄청난 재산이 나에게 들어온다면 어떻게 되었을까. 아마도 탕자와 별 다를바 없는 생활을 하고 더 심하게 망해서 회개하고 있을지도 모른다. 분에 넘치는 재물을 절대 주시지 않는 하나님께 감사드린다.

"하나님을 떠나면 그 때부터 타락의 길, 고생의 길이 활짝 열린다"

인생의 표어로 하고 싶을 만큼 마음에 와닿는 말인것 같다. 하나님을 떠나게 하는데 가장 큰 힘을 발휘하는것이 역시 물질이 아닐까 생각한다.
나의 달란트만큼 하나님의 일을 하고 평안한 가정을 이루는데 부족함이 없을만큼만 물질을 주십사 기도하고 싶다.

"큰 아들은 과거의 은혜는 다 잊어버리고 불평만 하고 있지 않은가?"

솔직히 교회에서나 세상속에서나 나보다 잘되는 사람들을 보면 배가 아픈건 사실이다. 왜 나에게는 저렇게 안해주시나...하는 맘이 바로 탕자의 형이 가졌던 마음이 아닐까 하는 생각이 든다. 스스로의 믿음은 되돌아보지 않고 말이다.
하나님이 우리들 각자에게 계획하시는것들이 다 다를줄 안다. 적절할 때 하나님의 시험이 있을것이고 그 시험을 주님안에서 극복하는 자에게, 그리고 그 은혜들을 주님안에서 감당할 능력이 생겼을때 비로소 우리에게 물질의 축복과 세상적인 것들도 허락해 주시지 않을까 하는 생각을 해본다.

결코 물질로 인해 하나님께 실망을 안겨드리는 일이 없게 되기를 기도한다.

백인화

2006-06-02 06:39:27


“아버지는 ‘자식의 그 무엇’ 때문에 자식을 사랑하는 것이 아니라, 단지 자식이기 때문에 자식을 사랑할 뿐이다. 조건보고 자식을 사랑하는 아버지는 없다.”
어렸을 때 아빠가 공장일 때문에 트럭을 운전하신 적이 있었다. 그 때 아빠가 트럭을 타고 학교에 데려다 주시거나 데리러 오시면 그게 그렇게 챙피해서 고개를 숙이던 기억이 난다. 자가용을 마련하신 다음에는 왜 다른 집 차처럼 멋지고 좋은 차가 아닐까라고 혼자 투덜거리던 철없었던 모습이 떠오른다. 그런 나에 비해 아빠는 나를 너무 사랑해 주셨다. 다른 집 아이들처럼 공부를 잘 하는 것도 아니었고 성격이 명랑한 것도 아니었고 심부름을 제대로 하는 것도 아니었고 뭐 하나 잘난 것도 없는데 그저 자식이라는 이유 하나만으로 그런 나를 데려다 주고 데리러 오시느라 많은 시간을 투자하시고 때마다 일마다 항상 좋은 것을 주시기 위해 물질과 시간을 들여서 노력하셨다. 나는 그런 아빠의 사랑이 다른 집 아버지들도 다하는 당연한 것인 줄로만 알았었다. 이렇듯 하나님께도 받는 것이 당연한 것인 줄로만 알고 살아왔다.
그런데 내가 자식을 키워보니 아빠의 말없는 사랑과 헌신이 그저 이루어지는 당연한 일이 아니라는 것을 알게 되었다. 솔직히 6살 난 우리 주은이는 엄마보다 생각하는 것이나 마음 씀씀이가 훨씬 낫다. 그런데도 조금만 눈에 거슬리면 소리를 지르고 못마땅하게 여기는 내 모습을 보면서 부모님의 사랑을 떠올린다. 부모님이 내 조건이나 행위를 보고 나를 사랑하셨다면 나는 아마 지금 여기에 이 모습으로 있지 못했을 것이란 걸 안다.

“자신이 ‘하늘과 아버지께 죄’를 많이 지어서 아들로 가는 것은 스스로 포기하고 종으로 쓰임 받기 위해서 돌아간다. 귀한 깨달음은 흥할 때가 아니라 망할 때에 강하게 역사하는 법이다. 가난과 약함, 문제는 신비로운 진리의 능력을 품고 있다. 우리에게서 어리석음의 껍질을 벗겨주고 지혜의 보석을 캐내게 한다. 우리의 인생을 진리의 길로 인도한다. 아버지께로 인도한다. 하나님께로 인도한다.”
나에게도 돌아온 탕자와 같은 시간이 있었다. 내 의지대로 욕심대로 판단하고 결정했다가 그 길이 아닌 것을 깨닫고 다시 부모님과 하나님 품으로 돌아왔던 시간. 그 이후로 이제는 자녀로써가 아니라 종으로 섬기겠다고 결심하고 살았지만 어느 틈엔가 난 ‘큰 아들’이 되어있었다. 개구리 올챙이 적 시절 생각 못한다고 믿음이 연약하고 곁길로 빠지려는 사람들을 보며 판단하고 그러다 다시 돌아온 사람들을 보며 아버지의 마음으로 사랑하고 격려하기보다는 언잖고 불편한 심기를 느끼고 피하기 일쑤였다.
지금처럼 흥할 때 겸손한 마음으로 부지런히 지혜의 보석을 캐내고 진리의 길로 인도하시는 하나님을 따라가는 것이 마땅함에도 불구하고 교만한 마음은 세상을 이처럼 사랑하사 독생자를 주신 하나님의 사랑을 나에게만 국한시키려고 한다.
하루 속히 하나님의 은혜를 깊이 깨달아서 ‘은혜를 나누는 사람, 사람을 사랑하는 사람’이 되어서 주님의 기쁨이 되길 간절히 소망한다.

마준철목사

2006-06-02 07:55:25

"자격 없는 풍성은 ‘타락의 길잡이’이지만, 이유 없는 약함은 ‘진리의 길잡이’이다"

교회 안에는 참 여러모양의 사람들이 존재하는 것 같습니다. 참으로 다양한 사람들이 모여도 구원받은 하나님의 자녀라는 입장에서는 아무런 차이가 없는데, 여전히 세상적인 기준으로 사람들을 나누는 경향이 있는 것 같습니다. 아마도 가장 눈에 띄는 기준이 가진 자와 못 가진 자의 구별이 아닌 가 싶습니다.

오늘 말씀에서 탕자에게 아버지에게로 돌아가고자 하는 깨달음을 주었던 것은 가난이라고 하는 고난이었습니다. 정말 탕자에게는 가난이 오히려 전화위복이 되었던 것이지요.

얼마전에 한동안 교회를 나오지 못하는 성도님에게 이런 이야기를 들었습니다. 왜 요즘 교회에 못 나오시냐고 물었더니, "목사님, 제가 헌금할 돈이 없어서 교회에 갈 면목이 없네요~" 이러시는 것이었습니다. 절대로 그렇게 생각하시지 말라고 아무리 말씀드려도 그 성도님은 설득당하시지 않았습니다. 오히려 그 분에게는 돈이 없는 것, 가난이라는 것이 교회 오는 것에 더 장애가 된다는 것이었습니다. 제가 그 때 오늘 말씀에서의 아버지의 마음을 그 성도님에게 더 잘 설명드렸다면 하는 아쉬움이 많이 남습니다.

왜 이토록 가진 자는 가진 자대로, 없는 자는 없는 자대로 아버지의 마음을 이해하지 못하는지 모르겠습니다. 하나님이 우리에게 물질을 주실 때는 그 물질을 귀하게 쓰라고 주셨음일텐데, 그 물질을 교만의 도구로 쓰는 사람들이 얼마나 마음을 아프게 하는지 모르겠습니다. 또 가난을 하나님이 나를 버리셨다는 이유로 치부해서 아버지되시는 하나님 앞에 더욱 나오지 못하는 사람들을 보면 얼마나 안타까운지 모르겠습니다.

하나님은 절대로 우리의 외모를 보시는 분이 아니라 마음의 중심을 보시는 하나님이실텐데 말입니다.

오성훈

2006-06-02 07:55:55

'큰 아들은, 아버지가 동생을 맞아들여 살진 송아지를 잡아 잔치하는 것을 심히 불쾌해 했다. 그래서 집에도 들어오지 않고 시위를 하고 있었던 것이다. 지금까지 성실히 일한 자기에게는 염소새끼 한 마리 안 잡아주더니, 아버지 살림을 창기와 함께 다 말아먹고 돌아온 탕자에게 살진 송아지를 잡아 준다는 것이 말이나 되느냐고 아버지께 따졌다.'
예수님께서 탕자 아버지의 모습을 강조하여 부각시키신다. 그것은 바로 뒤에 나오는 형이 아버지와는 달리 동생에 대해 너그러운 마음을 갖지 못하고 아버지 재산을 창기와 함께 다 말아먹고 돌아온 동생에게 살진 송아지를 잡아 준다고 아버지께 따지는 모습을 보면서, 다시한번 하나님의 마음을 배우게 된다. 아무리 추한 죄를 지은 형제라도, 한 그리스도인으로서 탕자의 아버지가 탕자를 맞이하는 모습과 같이 따뜻하게 맞이하여 주며, 하나님 앞에서 나와 같은 자격과 권리를 같은 형제로 대우할 수 있어야 하겠다. 그렇지 않고 아버지의 동생에 대한 환대를 불쾌하게 생각하고 따지고, 받아들이지 아니하면 오히려 아버지께 책망받은 탕자의 형이 바로 내가 될 수 밖에 없을 것이다.
죄인을 아무런 조건 없이 용서해 주시는 하나님의 모습을 바로보면서 믿음에서 벗어난 형제를 쉽게 정죄하지 아니하고 좀더 하나님과 같은 넓을 아량으로 포용해 줄 수 있는 내 자신이 되어야 하겠다.

김부영

2006-06-02 11:02:47

돈은 문제(분란)를 일어 키기 쉽지만 사랑은 그 문제를 해결해 준다.
동생은 재물 때문에 아버지를 떠났고,
형은 재물 때문에 동생을 미워했지만
아버지는 어떤 경우에도 재물 사랑보다 자식 사랑이 앞섰다.

물질은 전혀, 아무상관없는 아버지 자식만 돌아온다면 하는 심정으로
기다린 아버지 우리의 아버지, 나의 아버지 이런 생각만 하면 참 가슴이
벅참을 느낀다.
주일날 설교를 들으며 이 탕자와 똑같은 경우의 사람이 생각이 났다
물질은 많아서 유익하게 쓰는사람보다 않좋은 쪽으로 많이 사용하는것
같다.
내가 아는 그 분은 옛날 당신의 아버지가 너무 재물이 많다 보니깐
바람을 많이 피웠고 그래서 친모가 집을 나갔고 그 뒤로 새엄마라고 들어온
사람이 7명 그래서 커서 탕자처럼 그 많던 아버지 재산 다 날리고
그 분의 큰 형은 탕자의 큰형처럼 재산을 다 써버린 동생을 원망하며 지금도 살고
있다. 그 가정에는 세상의 물질, 세상아버지만 있었지 주님이 없었다.
결국은 파괴된 가족만이 남았다. 만약 지금이라고 그분이 주님의 사랑을
안다면 얼마나 좋을까 하는 생각을 해봤다.
어느 신문에 자식에게 유산을 물려주는 것은 독약이라는 얘기를
읽은 적이 있다.
돈은 정말 분란을 일이 키기 쉬운것 같다

자격 없는 풍성은 ‘타락의 길잡이’이지만, 이유 없는 약함은 ‘진리의 길잡이’이다
고난이 네게 유익이라는 것도 그 고난이 나를 진리로 인도하는 주님의
방법임을 깨닫는 것이 중요할것 같다.
주님에게 나에게 고난을 달라고 기도하지는 않지만 내게 고난이 닥치면
그 고난을 이길수 있는 힘을 능력을 달라고 기도한다.

이소진

2006-06-02 17:35:59

가난, 실패, 질병, 문제를 이상하게 생각하지 말라. 저주하지 말라. 이것들 속에는 인생의 방향을 바로 잡아 주는 신비한 능력이 들어 있다...나에게 있어 가난, 실패, 질병, 문제들이 일어난다면 고난이 느껴지겠지만, 이러한 고난이 일깨워주는 진리는 돈을 주고도 살 수 없는 하나님께서 주신 은혜라는 사실을 감사하게 생각합니다. 지금 생각해보면 나에게도 교회 밖을 돌며 방황의 시기가 있었다는 것이 너무 감사합니다. 교회를 떠나서는 절대 살 수 없다는 것을 배웠기 때문입니다. 어떠한 일이 일어나도 늘 기뻐하고 감사하며 하나님의 또다른 뜻을 깨닫는 은혜를 체헙하길 기도합니다.

아버지가 큰 아들에게는 염소 새끼도 안잡아 주었지만 탕자에게는 살진 송아지를 잡아 준 것은, 탕자의 약함이 아버지의 사랑의 마음을 더 자극했기 때문이다. 하나님의 이 사랑은 누구도 말릴 수 없다. 지금도 나를 향한 이 사랑은 도도히 흐르고 있다.
세상은 나를 버려도 부모는 나를 안 버린다.
부모는 나를 버려도 하나님은 절대로 나를 버리지 않는다.(사49:15)
세상은 나를 포기해도 부모는 나를 포기하지 않는다.
부모는 나를 포기해도 하나님은 절대로 나를 포기하지 않는다.
하나님은 나를 천하보다 귀하게 여기시기 때문이다...저는 저의 약함을 하나님께 고백하며 하나님께 모든 것을 맡기고 나아가길 기도합니다. 예전에는 이런 것에 대해 별다른 느낌이 없었는데 요즘은 이것이 너무 행복하고 기쁩니다. 하나님 없이는 아무런 의미도 없고 할 수 없는 존재라는 것이 말입니다. 약한 자를 사랑하시는 하나님이기 때문에 저는 저의 있는 그대로의 약함을 하나님께 내어놓는 것이 너무나 큰 축복이라고 생각되었습니다. 나를 천하보다 귀하게 여기시는 하나님이 있기에 세상이 두렵지 않습니다.

조정현

2006-06-02 18:41:19

돌아온 동생에게 시샘을 하는 형도 조금은 이해를 할수 있을것도 같지만 평생을 탕자로 살다가 돌아온 나에게는 아버지의 사랑이 더 목을 메이게 한다..
정말 부모님의 사랑만큼 하나님의 사랑을 잘 나타낸게 있을까? 싶다...

탕자의 마음과 아버지의 마음 그리고 큰아들의 마음중 어떤것이 하나님의 마음이신지 분명히 깨닫는다..

탕자는 고난을 통해서만 깨달을수 있었다..나도 너무나 똑같았던것 같다..내가 배부르고 아무런 아쉬움이 없었다면 우리 가족 또한 주님꼐 돌아오는 일은 아마 없었을것이다...
.... 가난과 약함, 문제는 신비로운 진리의 능력을 품고 있다.
우리에게서 어리석음의 껍질을 벗겨주고 지혜의 보석을 캐내게 한다.
우리의 인생을 진리의 길로 인도한다.....는 말씀과 같이
탕자를 아버지께로 인도하신 것처럼 우리를 자비로우신 아버지께로 온전히 인도함을 몸소 정말 뼈져리게 깨달았다...
그래서 이 탕자를 불러주신 은혜에, 너무나 풍성히 부어주시는 사랑에 몸둘바를 모르며 살았었는데 이제는 가끔씩 내 모습 속에서 큰아들의 모습을 발견하며 깜짝놀랄때가 있다....얼마전에도 목사님께 '나 사모하기 싫다고 내가 왜 이길을 선택했을까?그냥 평신도 이고 싶다고'한적이 있었다..나도 쉽게 한말은 아니었지만 목사님께는 그게 큰 충격이었나보다..충격받는 목사님을 보며 하나님께선 더 충격이며 더 마음아파하실것만 같았다..비교할수없는 아버지의 엄청난 사랑앞에 난 알량한 계산기를 두드리고 있지는 않았나....돌아보며 죄송하기 짝이없다...

...자격 없는 풍성은 ‘타락의 길잡이’이지만, 이유 없는 약함은 ‘진리의 길잡이’이다
정말 내가 지금 자격없는 풍성을 누리고 있다면 거두어 가시고 약함가운데서 온전하게 주님의 뜻을 알아 정말 자격이 있는 풍성을 누리는 자가 되게 해달라고 주님께 기도드린다....

박인수목사

2006-06-02 20:15:25

지난 삼 년 동안 저는 기도를 배우고 기도 때문에 살았습니다.
내 안과 밖에는 벗겨져 태워져야 할 허물들이 너무 많았습니다

나는 외로 왔고 지쳐있었습니다. 내 인생에서 또 한번 견디기 힘든 시절이었습니다 그러나 쓰러지지 않으려 날을 세워 나를 몰아붙이기도 했습니다 절망과 미움 때문에 무너지지 않으려 무진 애를 썼습니다. 가난하고 초라했으며 고통스러운 일들이 끊임없이 이어지고 계속되었지만 마음 구석에서 샘물이 솟아 청아했던 시절이었습니다 왜냐하면 나는 그때 기도를 배우고 있었기 때문입니다

살면서 기도하지 않으면 죽을 것 같은 때가 있습니다
교만하고 유약하고 부조리하며 동시에 가식적인 나를 인정하면서 나는 기도 속으로 빠져들었습니다. 그렇게 많이 울고 많이 뉘우치고 했던 적이 없었습니다.

많이 아파하는 동안 저에게 하나님이 찾아 오셨습니다 하나님은 모진 바람을 통해 내 모든 것을 거두어 가신 뒤에 깊고 긴 어둠으로 오랜 시간 덮어두었다가 아침 햇살처럼 조심스럽게 걸어오셨습니다

하나님은 한 그릇 밥 앞에서도 눈물 나게 하셨고 길 가에 흩어지는 낙엽에도 부끄럽게 하셨습니다

“자격 없는 풍성은 ‘타락의 길잡이’이지만, 이유 없는 약함은 ‘진리의 길잡이’이다”
무릎 꿇게 한 것은 내게 주어진 재능과 꿈이 아니라 저의 한 없는 부족함이었습니다. 제가 하나님께 돌아온 것은 그 약함에 대한 동의 때문이었습니다.
하나님이 제게 성경의 한 장만을 가질 수 있다고 한다면 저는 주저 없이 이 돌아온 탕자의 이야기를 제 언약의 말씀으로 받을 것입니다. 제 모습이기 때문입니다. 그리고 아들의 귀향은 궁극적으로 아버지가 되겠다는 도전인 것처럼 제가 하나님께 돌아옴은 주님의 생명을 이 땅에서 살아내기 위한 저의 몸부림이기 때문입니다

김민정

2006-06-03 01:12:42

너무 감사합니다.
저에게 이 말씀을 주신 하나님을 찬양하며 우리의 영적 아버지 목사님께 감사합니다.
지난 '한나의 기도'의 말씀을 통해 한국에 계신 엄마의 마음을 생각하게 되었고, 오늘 '아버지의 마음'의 말씀을 통해 동생 민한이를 생각하게 되었습니다.
그리고 기도하는 마음으로 동생에게 설교 말씀을 이메일로 보냈습니다.
이 말씀을 읽은 동생의 마음이 성령님의 능력으로 치유케 되며, 동생이 회개하며 하나님께 돌아올것을 저는 믿습니다. 하나님 지금 이 시간에 저희 가족의 문제를 치유하실 것을 저는 굳게 믿습니다. 그래서 하나님 영광 받으실 것을 진정으로 믿습니다.

이 탕자의 이야기는 ‘가난’이라는 문제가 없었다면 불행으로 끝날 수 밖에 없었을 것이다. 물질이 다 없어지고 살길이 막막해지자 비로소 아버지의 귀함을 깨닫게 된다.
참 살길인 아버지를 그 때서야 발견하게 된다.
귀한 깨달음은 흥할 때가 아니라 망할 때에 강하게 역사하는 법이다.
가난과 약함, 문제는 신비로운 진리의 능력을 품고 있다.
우리에게서 어리석음의 껍질을 벗겨주고 지혜의 보석을 캐내게 한다.
우리의 인생을 진리의 길로 인도한다.
아버지께로 인도한다. 하나님께로 인도한다. 탕자처럼 말이다.
자격 없는 풍성은 ‘타락의 길잡이’이지만, 이유 없는 약함은 ‘진리의 길잡이’이다

제가 일본에 오기전, 정말 바로 오기 전만해도 저는 꿈을 없는 자였습니다.
얼마나 괴롭고 힘들었던지 밤에 자기전에 '내일이 오지 않았으면 좋겠다'라고 생각할때도 있었습니다.
하지만 모든 고통속에는 하나님의 뜻이 있었음을 이 시간 다시 고백합니다.
제가 약하면 약해질수록 하나님, 오직 그 분만을 의지해야 한다는 것이 얼마나 감사한지...
지금 저에겐 가족에 대한 문제와 진로에 대한 문제가 있습니다. 말하자면 시험중이지요. 하지만 이것이 얼마나 감사한지 모릅니다. 이를 통해 정말 간절하게 하나님을 찾았고 하나님 말씀을 의지 할 수 있었습니다.
이 문제들이 아니었다면 아마 지금도 '하나님이 정말 계실까? 나를 사랑하다는 성경 말씀이 진짜일까?' 이런 바보 같은 생각만 했을것입니다.
하나님아버지, 제가 아버지를 말씀을 얼마나 사랑하는지 아시지요....
하나님아버지, 저의 모든 기도에 응답하심을 진정으로 감사합니다. 아버지를 찬양합니다. 아멘

김경환

2006-06-03 01:51:58

---탕자가 돌아왔을 때, 아버지가 그렇게 기뻐한 이유는 무엇일까?
그가 가지고 온 어떤 소유물 때문이 아니다. 오직 돌아온 아들 자체가 그에게는 온전한 기쁨이었다. 아버지에게는 한 아들이 천하보다 귀하고, 하나님에게는 한 영혼이 천하보다 귀한 법이다.---

나는 아직 부모가 되어 보지 못해 아버지의 마음을 100% 알지 못한다.
어제 개척2년째 되던 해에 2개월간 섬기시다 미국으로 가신 형제님이 집사직분을 받고 5년만에 동경에 출장을 왔다. 너무 반가워서 다른 스케쥴을 미루고 만났다. 같이 식사를 나누면서 그분의 고백이 아이를 키우면서 하나님과의 관계를 많이 생각하게 된다면서 출장와서도 5살된 아들을 보고 싶어 지갑에 있는 사진을 보게 된다는...
그 모습을 보면서 그렇구나! 아비의 마음이 저것이구나! 조금은 느끼게 되었다.
아무것도 받은 것이 없어도, 자식을 통해 어떤 소유물이 없어도 오직 자식에게 향한 사랑은 무조건적이구나! 라는 진리를 다시 한번 알게 되는 시간이였다.

그저 돌아오기만 한 것으로 기뻐하시는 탕자의 아버지. 내게도 탕자의 아버지처럼 생전에 계신 아버지를 생각하면 너무 감사하다. 지금은 교통사고로 인해 아직 완치되시지 못해 정신적인 면에 문제가 있다. 전화를 드려도 예전처럼 밥 잘 먹지? 아기(아내) 잘 있지? 교회 평안하지? 기도 많이 할께! 내가 김목사님에게 줄 것은 기도밖에 없어요! 목회하는데 도움도 못되서 미안해요! 이런 말씀을 듣지 못한다. 이런 모습의 아버지를 생각하면 가슴이 많이 아프다. 사고 나시기전에 좀 더 전화 자주드릴걸...후회 아닌 후회를 하면서 더 많이 기도로 교통하려고 노력한다. 아버지에게 나도 천하보다 귀한 아들이다. 귀하게 나를 대해주셨다. 형제들간에도 특별한 사랑을 받았다. 가끔 한국에 가면 그렇게 좋으신지 내 옆에서 떠나지 않으시면서 40이 넘은 자식에게 어렸을때와 같이 대해주신다. 늘 염려가 되셨던거 같다. 밥 잘 먹고 잘 사는데도 걱정을 해주시는 사랑의 표현을 하신다. 얼마나 감사한지... 탕자처럼 아버지의 마음을 헤아리지 못하는 자식이 되지 말아야겠다.

---아버지는 물질보다 자식을 훨씬 귀하게 여겼다. 그러나 큰 아들은 동생보다 물질을 더 귀하게 여겼던 것이다. 그래서 그는 결국, 세상적으로는 모범생같이 보였을 지 모르지만 아버지를 힘들게 하는 사람이 되었다.---
한 영혼보다 물질의 소중함을 더 생각했던 시간이 있었다. 손해보지 않아도 되는 상황에 내 동생은 손해를 택했다. 그로 인해 우리 가족은 마음이 너무 아프고 다시는 동생을 보지 않으려는 그런 마음까지 들었다. 마음에 용서를 해야겠다고 하지만 참 힘들었다. 가족이면서도 물질이 우선되는 현실에 가슴이 아플뿐이였다. 먼저 내 자신이 물질을 초월하지 못한 결과였다. 천하보다 귀하게 여겨야 할 생명을 먼저 보지 못한 나의 잘못을 회개한다. 하나님 앞에서 과연 나는 하나님을 힘들게 하는 모법생인척 하며 사는 목사가 아닌지 깊이 묵상한다.

주님! 한 영혼을 세상의 그 어떤 것보다도 귀하게 여기는 목사가 되기를 기도드립니다.

소대섭

2006-06-03 19:11:03

"그에게 소중한 것은 자식의 형편이 아니라
‘자식 그 자체’였다.
아버지는 ‘자식의 그 무엇’ 때문에 자식을 사랑하는 것이 아니라,
단지 자식이기 때문에 자식을 사랑할 뿐이다."

어머니와 전화 통화를 하다가 조금 다투었습니다.
아니 다투었다기 보다는 제가 어머니께 짜증을 부린 거죠...
동생과 함께 사시는 어머니께서 동생에 대해서 못마땅하신
것을 제게 푸념하시는 것이었습니다.
그것을 듣고 있던 제가
'그래서 어떻게 해야 하느냐고...'
짜증을 내었던 것입니다.
지금 생각해 보면 참.. 후회가 됩니다..
이렇게 대화했더 적이 한 두번이 아니기 때문입니다.
어쩌면 이런 아들의 모습에서 어떻게
교회 다닐 마음을 가질 수가 있겠습니까...

그렇지만,
우리 어머니는 역시 제 부모님이십니다.
그렇게 통화가 끝난 후
잠자리에 들기전 전화를 하셔서
먼저 제게 사과를 하시는 겁니다.
참... 저는 회개할 것이 많은 사람입니다.

우리가 아무리 잘못을 해도
부모님은 우리를 판단하거나 평가하지 않으신다는 것...
뼈저리게 다시 한 번 느낄 수 있는 경험이었습니다.
또한 오늘 말씀을 통해서도 다시 한 번
상고하게 되었습니다.

"세상에서 모범생이 되는 것 보다도,
주님 안에서 은혜를 아는 사람,
사람을 사랑하는 사람이
되는 것이 주님을 기쁘게 하는 사람이다."

착한 사람 콤플렉스라는 것이 있다는 말을 들었습니다.
어떤 상황에서든 누구에게나 착한 사람으로 인정 받아야 한다는
강박관념이라고 합니다.
진짜로 착한 사람은 강박관념이 없이 선을 베푸는데...
콤플렉스에 걸린 사람은 다른 사람에게 착한 사람으로 인식되기 위하여
노력하기 때문에 강박관념에 시달린다고 합니다.

세상 사람들이 나를 착한 사람으로 알아주기를 바라기 보다
내가 참으로 진실한 신앙인이 되는 것을 우리의 영적 부모이신
하나님께서는 진심으로 바라고 계신다는 것을 깨달았습니다.
그것이 바로 아버지의 마음임을 알았습니다.

진심으로 어머니와 동생을 아끼는 마음으로
기도하고 신앙생활을 할 수 있도록 하나님께
간구해야 하겠습니다.

김철중

2006-06-03 19:25:28

탕자를 회복시킨 것은 능력 있는 사람도 아니었고,
‘가난’이었다는 사실을 명심하자.
‘고난 당한 것이 내게 유익이라
이로 인하여 내가 주의 율례를 배우게 되었나이다.’(시119:71)

다음주 3개월간의 출장을 앞두고 회사에서도 이것 저것 준비할 것도 많았지만 무엇보다도 와이프와 선호가 잘 지낼 수 있도록 준비하는 것으로 정신이 없었다.
사실 이번 출장은 우리가족이 유럽여행을 할 수 있는 좋은 기회가 되었었다. 하지만 7월초까지는 와이프 제자훈련으로 7월중순부터는 학교에서의 인턴강사로 일하게 되는 바람에 나의 꿈은 무산이 되고 말았다. 하지만 유럽여행이 어쩌면 탕자가 선택했던 길일지도 모른다는 생각이 들게 되어 위안이 되었다. 이번 출장은 우리 가정에는 힘이 들 수 있지만 서로에게 유익한 시간이 되리라 믿는다.

배미화

2006-06-03 20:51:23

세상은 나를 버려도 부모는 나를 안 버린다.
부모는 나를 버려도 하나님은 절대로 나를 버리지 않는다.(사49:15)
세상은 나를 포기해도 부모는 나를 포기하지 않는다.
부모는 나를 포기해도 하나님은 절대로 나를 포기하지 않는다.
하나님은 나를 천하보다 귀하게 여기시기 때문이다.

이번 설교를 통해 탕자같은 나를 아무런 조건없이 받아주시고 사랑해 주신 하나님께 감사하는 시간을 갖게 되었다.
내가 무엇이길래 끝까지 놓지 않고 붙잡아 주시는지 ................

가난과 고난이 좋다고는 생각하지 않지만 과거에 하나님을 몰랐을 때처럼 그것들을 저주하지는 않는다. 하나님이 내게 주신 특별한 은혜와 축복이라 생각하면 힘이 난다.
하나님은 나를 절대로 포기 하지 않으시니깐...............

박성옥 선교사

2006-06-15 00:01:05

나는 아버지의 마음일까? 탕자의 마음일까? 형의 마음일까?
때로는 아버지의 마음이 되기도 하고, 탕자의 마음이 되기도 하고, 형의 마음이 될 때도 있다. 그러나 나는 아버지의 마음을 갖기를 원한다.
눈물로 기도하는 것이 아버지의 마음. 아버지의 사랑을 갖게 해 달라고 기도한다. 내가 나쁜 짓을 할 지라도 나를 미워하지 않으셨고, 내게 실망하셨어도 나를 포기하지 않으셨고, 속을 썩여도 나를 버리지 않으셨고, 내가 아무리 못된 짓을 했더라도 나를 기다리며, 나를 사랑하신 그 아버지의 사랑... 깊고 넓은 그 아버지의 사랑을 내 마음 속에 담고 싶다.

'부모는 나를 버려도, 하나님은 나를 떠나지 않았고, 부모는 나를 포기하였어도, 우리 하나님은 나를 절대로 포기하지 않으신다'는 말씀에 큰 은혜를 받았다.
하나님은 나를 천하보다도 귀하게 여기심에 자부심을 갖고 하나님의 마음, 하나님의 사랑을 품고 일해야 할 것이다.
약한 자를 더 불쌍히 여기시고 사랑하시는 하나님이시기에 너무 감사하다.

약한 자를 들어 강한 자를 부끄럽게 하시고, 없는 자를 들어 있는 자를 부끄럽게 하시고, 미련한 자를 들어 지혜로운 자를 부끄럽게 하신 하나님이시기에 내가 지금 약하고, 부족하고, 미련할지라도 이것을 통해 하나님이 하시는 역사를 드러낼 줄 믿는다. 그리하여 아버지의 마음을 품고, 하나님이 기뻐하시는 일에 감사하며, 달려나가려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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