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중앙영광교회

은혜의 사람 다윗

이용규목사, 2006-05-15 21:09:3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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은혜의 사람 다윗

말씀//사무엘하9:6-8

우리는 다윗을 여러 가지 면으로 평가할 수 있다.
그런데 ‘은혜’를 빼 놓고 다윗을 평가하는 것은, 본질은 빼 놓고 현상만으로 평가하는 격이 될 것이다. 다윗이 다윗이 된 것은 ‘은혜’ 때문이다.
그는 은혜의 사람이었다.
은혜를 받을 그릇이 준비된 사람이었고, 은혜를 나누어 줄 파이프가 준비된 사람이었다.
믿음의 사람은 무엇보다도, 은혜의 사람이 되어야 한다. 은혜의 통로가 되어야 한다.
위로부터 은혜를 받을 수 있는 사람이 되어야 하고, 아래로 그 은혜를 마음 것 나눠 줄 수 있는 사람이 되어야 한다.
하나님은 이런 사람을 찾고 계신다.
하나님의 뜻은, 온 세상을 그 분의 은혜로 살리는 것이기 때문이다.
예수님을 통해서 하나님의 은혜가 세상에 흘러 나왔듯이, 하나님의 은혜는 ‘사람들’을 통해서 세상에 흐른다.
‘은혜의 사람’ 다윗을 통해서 하나님이 어떤 사람을 ‘마음에 합한 자’로 여기는지 알아 보도록 하자.

1.        은혜의 그릇
하나님은 다윗을 이렇게 평가했다.
‘내가 다윗을 만나니 내 마음에 합한 사람이라 내 뜻을 다 이루게 하리라’(행13:22)
이 말씀은 무슨 뜻일까?
하나님의 마음에 합한 사람이란 하나님과 마음이 딱 맞는다는 말이다. 다윗은 누구보다도 하나님의 마음을 잘 이해하고 있다는 말이다. 잘 알고 있다는 말이다. 잘 헤아려 드리고 있다는 말이다. 누군가가 내 마음을 깊이 헤아려 준다면 정말 기분 좋은 일이다.
얼마 전에 제자훈련 생활 숙제로, 부모님께 편지를 보냈다.
전화는 가끔 드렸지만 편지는 참으로 오랜만에 드리는 것이었다.
편지를 받으신 어머니의 반응은 딱 한마디였다.
‘네가 부모의 공을 알아 주니까 고맙다.’
부모님은 무슨 보상을 받기를 원하지 않는다. 이자도 원금도 원하지 않는다.
부모가 바라는 것은 아무 것도 없다. 오직 부모의 은혜를 ‘알아주기’를 바랄 뿐이다.
철 없는 자식은 부모의 마음을 전혀 헤아리지 못한다. 그런 사람은 부모가 자기에게 잘 해 준 것은 잊어 버리고 못해 준 것만 기억하며 불평하고 원망한다.
‘부모님이 내게 해 준 것이 뭐가 있느냐?’
‘누가 낳아 달라고 했냐? 낳았으면 책임을 져야지.’
이런 말을 하는 사람은 부모님의 마음을 전혀 모르는 사람이다.
못해 준 부모님이 더 마음 아파하고 미안해 한다. 그런 부모님의 가슴에 대못을 박고 있으니 얼마나 미련한 자식인가!
그러나 부모님의 마음을 헤아리는 자식은 절대로 그런 말을 할 수가 없다.
‘부모님의 마음은 얼마나 더 아프실까?’
‘부모님의 마음은 얼마나 더 힘드실까?’
‘남들처럼 해 주지 못하는 부모님의 마음은 얼마나 괴로우실까?’
오히려 부모님을 위로해 주는 사람이다.
참 ‘효자’는 부모님께 무슨 요란한 선물을 해 드리는 사람이 아니라, 부모님의 마음을 진심으로 알아 주는 자식이다.
‘은혜’는 너무 크기 때문에 갚을 수가 없다. 단지 ‘알아 주는 것’으로 대신할 뿐이다.
위 사람을 위 사람답게 대접하는 최고의 방법은, 받은 ‘은혜’를 진심을 표현하는 것이다.
위 사람을 위 사람답게 섬기는 사람은 반드시 복을 받는다.
그 대표로 부모님을 잘 섬기는 자의 받을 복이 성경에 잘 나와 있다.
‘네 아버지와 어머니를 공경하라 이것이 약속 있는 첫 계명이니
이는 네가 잘 되고(행복) 땅에서 장수하리라’(엡6:2,3)
지혜(知恵)는 곧, 은혜(恵)를 아는 것(知)이다.
은혜를 아는 사람이야 말로 정말 지혜로운 사람임을 알 수 있다.
은혜를 아는 자가 되어야 한다.
하나님의 은혜를 알아야 하고, 부모님의 은혜를 알아야 하고, 스승의 은혜를 잊지 말아야 지혜로운 사람이요, 은혜를 받을 만한 가치가 있는 사람이다.

다윗은 은혜를 아는 사람이었다.
다윗은 하나님의 은혜를 최고로 잘 아는 사람이었다.
그래서 하나님의 마음에 쏙 드는 사람이 되었던 것이다.
첫째 다윗은 어려울 때일수록 하나님의 은혜를 잊지 않았다.
오히려 은혜를 선포하며 스스로 은혜를 만들어 갔다.
키가 약 3m 가까이 되는 거인 골리앗 앞에서도 그는 이렇게 은혜를 선포했다.
‘너는 칼과 창과 단창으로 내게 오거니와 나는 만군의 여호와의 이름으로 네게 가노라!’(삼상17:45)
은혜를 아는 사람은 골리앗과 같은 위기를 만났을 때에도 ‘패배’를 시인하는 것이 아니라 ‘은혜’를 당당하게 선포하는 사람이다. 이 얼마나 멋있는 모습인가! 그러니까 하나님도 반하셔서 ‘은혜를 선포하는 다윗’이 가는 곳마다 승리를 주셨던 것이다.
다윗은 죽음 앞에서도 늘 기죽지 않고, 두려워하지 않고 ‘은혜’를 선포했다.
‘내가 사망의 음침한 골짜기로 다닐지라도 해를 두려워하지 않을 것은
주께서 나와 함께 하심이니라’(시23:4)
하나님은 ‘은혜의 선포자’를 기뻐하신다. 은혜의 선포자를 책임지신다. 은혜의 선포자와 함께 일하신다. 특히 위기를 만났을 때 은혜를 믿음으로 선포하는 다윗과 같은 사람을 좋아하신다.
모든 믿음의 사람은 인생의 위기가 왔을 때에, 절대로 환경에 항복하지 않고 은혜의 주님을 선포하며 찬송했다. 욥도 그랬다. 재산 다 잃고, 자식 다 잃고, 건강까지 다 잃었지만, 은혜의 주님은 잃지 않았다. 그는 그런 절망 속에서도 ‘은혜’를 선포했다.
‘나의 가는 길을 오직 그가 아시나니 그가 나를 단련하신 후에는 내가 정금같이 나오리라’(욥23:10)
믿음의 사람은 절망의 어둠이 깊으면 깊을수록 ‘은혜의 선포’의 목소리가 높아졌다. 그들은 하나님을 확실히 알고 있었기 때문이다. 절망의 깊이만큼 은혜의 높이도 높아질 줄을 확신하고 있었기 때문이다. 그래서 다윗에게는 절망의 때가 늘 기회의 때로 사용되었던 것이다.
두 번째, 다윗은 좋을 때, 풍성할 때에 하나님을 잊지 않았다.
여기서 우리는 다윗의 정말 겸손한 모습을 볼 수 있다. 하나님은 겸손한 자에게 은혜를 주신다고 하셨다. 그래서 다윗은 자손 대대로 복을 받을 수 밖에 없는 사람이 되었다.
다윗은 어마어마한 재산과 군사, 나라를 가진 당대 최고의 왕이었지만, 자기의 모든 소유는 자기 것이 아니라, 하나님이 주인이심을 온 천하에 공포하며 하나님을 찬양했다.
‘모든 것이 주께로 말미암았사오니 우리가 주의 손에서 받은 것으로 주께 드렸을 뿐이니이다’(대상29:14)
내가 알고 있는 하나님과 다윗이 알고 있는 하나님은 얼마나 차이가 있는가?
나는 혹시 주님 것을 늘 내 것인 양, 주님께 생색이나 내고, 인색하지는 않는가?
아니면 다윗처럼 재산도, 시간도, 명예도, 권세도, 생명도, 자식도 모두 주님 것임을 늘 인정하며 감사 충만으로 살고 있는가?
다윗은 불행할 때나 행복할 때나, 있을 때나 없을 때나, 위험할 때나 평안할 때에 늘 하나님을 하나님으로 철저하게 인정했다.
상황에 상관없이 하나님을 하나님답게 ‘알아 주는 것’이 바로 하나님께 은혜를 받을 수 있는 잘 준비된 그릇임을 우리는 알아야 한다.
어려울 때는 ‘은혜’를 선포하고, 좋을 때는 ‘주권’을 드리는 것이 하나님을 잘 아는 사람을 진정한 모습이다. 은혜의 사람은, 어려울 때 절망하지 않고, 좋을 때 주권행사를 하지 않는다.

2.        은혜의 파이프
다윗은 은혜를 혼자 소유하는 사람이 아니고, 함께 나눌 수 있는 ‘은혜의 파이프’가 잘 설치되어 있는 사람이었다. 어떤 사람이 ‘은혜의 파이프’가 설치되어 있는 사람일까?
오늘 본문에 므비보셋이라는 사람이 등장한다. 그는 다윗에겐 묘한 위치에 있는 사람이었다. 그는 먼저 사울의 손자였다. 사울은 다윗을 몇 번이고 죽이려고 한 사람이다. 다윗을 제일 힘들게 한 사람을 뽑으라면 사울이 단연 1위일 것이다. 사울을 생각한다면 므비보셋은 당연히 죽어 마땅한 사람이었다. 그런데 므비보셋은 요나단의 아들이기도 했다. 요나단은 다윗의 친구로서, 다윗이 어려울 때 피할 길을 열어 준 사람이다. 물론 요나단의 은혜에 비하면 사울의 악행은 너무나 컸다. 1:100 정도라고 해도 무방할 것이다.
만약에 다윗이 사울의 악행을 기억했더라면 므비보셋에게 절대로 은혜를 줄 수 없었을 것이다. 그는 므비보셋에게 사울 왕의 모든 토지를 다 주고, 왕자의 신분으로 신분을 회복시키고, 36명의 종도 주었다. 정말 대단한 은혜이다. 죽은 개 같은 므비보셋이 갑자기 왕자가 된 것이다. 다윗이 어떻게 이렇게 엄청난 귀한 일을 할 수 있었을까?
그는 원수에 붙잡힌 사람이 아니라 은혜에 붙잡힌 사람이었기 때문이다.
그는 사울에 붙잡혀 복수심을 불태운 사람이 아니라, 오직 요나단에 붙잡혀 은혜 베풀 일만 생각한 사람이기 때문이다.
은혜를 선포하는 사람에게 은혜는 임하고,
은혜를 베푸는 사람에게 은혜는 계속 흐르는 법이다.
다윗은 우리 인생을 대표한다.
다윗에게 사울 같은 큰 원수가 있었듯이, 우리 인생에도 평생 잊을 수 없는 원수가 있을 수 있다. 하지만 감사한 것은 다윗에게 요나단 같은 작은 은혜자가 있었듯이, 우리 인생에도 반드시 은혜로운 사람이 있다는 것이다.
문제는 사울 같은 원수에게 있는 것이 아니라, 지금 내 손에 있다.
내가 무엇을 붙잡고 인생을 사는가가 내 인생을 결정한다.
사울(원수)이 아무리 크더라도 사울을 붙잡지 말고, 요나단(은혜)이 아무리 작더라도 요나단을 붙잡아야 한다.

‘원수를 갚으려고 하는 사람에게는 원수가 임하지만
은혜를 갚으려고 하는 사람에게는 은혜가 임하는 법이다.’    

다윗은 원수에 붙잡힌 사람이 아니라 오직 은혜에 붙잡힌 사람이었다.
그래서 그는 엄청난 은혜로운 일을 할 수 있게 되었고, 자손 대대로 은혜를 입은 가문이 되었다. ‘원수는 원수를 부르고 은혜는 은혜를 부른다’는 평범한 진리가 우리 인생을 바꾼다.
신앙생활이나 인간 관계에서 나는 무엇을 기억하고 있는가?
사울(원수)을 기억하고 있는가? 아니면 요나단(은혜)을 기억하고 있는가?
원수는 아무리 커도 기억하는 것만큼 해롭지만, 은혜는 아무리 작아도 기억하는 것만큼 이롭고 아름답다.
원수는 잊을수록 이롭고, 은혜는 기억할수록 은혜로운 법이다.
이것이 바로 은혜의 파이프를 잘 만드는 비법이다.
여러분의 은혜의 탱크가 넘치기를 바란다.
여러분의 은혜의 파이프가 활짝 열리기를 축원한다.
이것이 은혜의 사람의 진정한 모습이다.

33 コメント

박유진

2006-05-16 02:59:42

1. "철 없는 자식은 부모의 마음을 전혀 헤아리지 못한다. 그런 사람은 부모가 자기에게 잘 해 준 것은 잊어 버리고 못해 준 것만 기억하며 불평하고 원망한다."

고등학교 때, 부모님은 제게 그런 티를 전혀 안내셨지만, 아빠의 사업이 많이 힘드셨던 적이 있었습니다. 어느날, 철없던 저는 그런 것도 모르고 엄마에게 옷을 사달라고 졸랐고, 사주지 않는다고 불평했던 적이 있었습니다. 그런 저를 보고 엄마는 얼마나 마음이 아프셨을까. 참 불효했던 자식이었습니다.
하나님은 제가 바라는 것을 언제나 풍성하게 채워주십니다. 제가 주님께 불효할 때도 참아주십니다. 그런데도, 저는 조금만 힘든 상황에 처하면 주님께 왜 이런 상황을 주실까 원망할 때가 있었습니다. 지금은 그런 상황으로 인하여 기도하게 해주셔서 감사하다는 기도를 드릴 수가 있게 되었습니다. 그렇지만 아직도 저는 주님께 불효한 자식인지라 많이 회개가 됩니다.

2. "은혜의 사람은, 어려울 때 절망하지 않고, 좋을 때 주권행사를 하지 않는다."
"은혜의 사람"과 전혀 반대의 모습으로 저는 어려울 때 절망하고 좋을 때 주권행사를 해왔습니다. 하나님이 계신데, 왜 걱정하고 절망하고, 좋을 때는 감사하지 않고 내가 잘 해서 된 것인 양 교만하여지는지...
다윗처럼, 어려울 때 절망의 때를 은혜의 기회로 삼기를 원합니다.
그리고, 나의 모든 것은 주님께서 주신 것으로, 청지기로서의 삶을 살기를 원합니다...

3. "원수는 잊을수록 이롭고, 은혜는 기억할수록 은혜로운 법이다."
저는 예전에, 제게 마음아픈 말을 했던 사람의 말을 두고 두고 기억하면서, 그 사람을 원망했던 적이 있었습니다. 그 사람이 했던 말들을 생각하면서 그 사람을 용서하지 못했습니다. 그러면서, 그 사람이 제게 잘해준 것은 잊어버리고, 아프게 한 것만 기억했습니다.
주님, 제 못된 마음을 용서해주세요. 그리고, 제가 상처받은 말들을 기억하는 것이 아니라, 그것은 모두 잊어버리고, 은혜만 기억하는 사람이 되게 해주세요...

오늘은 스승의 날입니다...
저의 영적 스승이자 아버지이신 이용규목사님, 늘 감사드려요..
그리고, 제자훈련과제를 요즘 충실히하지 못한 것 너무 죄송해요...
하나님께, 그리고 목사님께 부끄럽지 않은 제자가 되도록 노력하겠습니다..

유광옥

2006-05-16 08:45:31

‘은혜’는 너무 크기 때문에 갚을 수가 없다. 단지 ‘알아 주는 것’으로 대신할 뿐이다.
하나님께서 나에게 주신 은혜와 부모님께서 나에게 주신 은혜는 정말로 너무 커서
나는 갚을 길이 없다 하지만 내가 은혜를 알고 있다고 말해도 얼마나 하나님의 은혜를 알아드리고 부모님의 은혜를 알 수 있을까??
부모가 되어보지 않으면 부모의 마음을 알 수 없다고들 하시는데 정말 그런것 같다. 은혜를 아는 지혜로운 사람이고 싶다.

은혜의 파이프라는 단어 속에서 큰 은혜를 받는다.
다윗과 같은 사람이고자 소망하지만 다윗을 제일 힘들게 한 사람의 손자인
므비보셋에게 사울의 토지도 다 주고, 왕자의 신분으로 신분을 회복시키고, 36명의 종도 줄 수 있었을까? 나라면 아주 힘든 결단이었을 것이다.
하지만 다윗은 하나님의 은혜를 바로 깨닫고 있던 인물이었기에 가능하엿다고 생각된다.은혜를 베푸는 사람에게 은혜는 계속 흐르는 법이다. 그러기에 다윗은
하나님께 합한 사람이 되었다고 생각된다.
나에게도 은혜의 파이프를 활짝 열 수 있는 믿음과 은혜의 강이 넘쳐나기를 기도하며 또한 다윗처럼 하나님께 합한자가 되었으면 한다.
그래서 내가 알고 있는 하나님과 다윗이 알고 있는 하나님이 동일한 하나님이기를 소망하는 바이다.

최현경

2006-05-16 09:41:12

<‘네 아버지와 어머니를 공경하라 이것이 약속 있는 첫 계명이니
이는 네가 잘 되고(행복) 땅에서 장수하리라’(엡6:2,3)>

<지혜(知恵)는 곧, 은혜(恵)를 아는 것(知)이다.>

지난 주 어버이날을 맞이하면서, 부모님의 은혜를 내가 얼마나 알고 있었나 생각해 보았다. 너무나 부끄럽게도 받은 은혜에 감사하기보다는, 내가 받지 못한 부분들에 메여있었을 때가 너무나도 많았음을 알 수 있었다.
지난 주에 한국에 갔을 때, 오랫만에 자식을 만나 그동안 해주고 싶었던 것들을 조금이라도 더 해주고 싶어하셨던 부모님의 모습을 보면서 그 사랑에 감동하지 않을 수 없었다. 그 사랑과 은혜에 감사하다는 내용의 편지를 보시고, 부모의 마음을 알아주니 고맙다는 말씀 한마디에 얼마나 목에 메이고, 죄송스럽던지...
나도 이제는 자식을 키우는 입장이다보니 '부모는 자식에게 해주는 것을 헤아리기 보다는, 못해주는 것에 더 마음 아프고 힘들다'는 말씀에 공감이 갔다.
철없던 시절(지금도 그럴 때가 많지만) 자식에게 해주고 싶은대로 다 못해주실 때의 부모님의 마음이 어떠실까 헤아리지 못하고, 부모님 맘에 못을 박았던 내 자신이 너무나도 부끄럽고 회개가 되었다.

<하나님의 은혜를 알아야 하고, 부모님의 은혜를 알아야 하고, 스승의 은혜를 잊지 말아야 지혜로운 사람이요, 은혜를 받을 만한 가치가 있는 사람이다.>

내가 받은 은혜를 깨닫지 못하고, 제대로 누리지 못했던 나는 얼마나 무지하고 미련한 자였던가... 은혜를 받을 그릇이 준비가 되지도 않았는데, 아니, 이미 받은 은혜의 가치도 제대로 모르는 내가 하나님께 은혜를 구한다는 것이 얼마나 어불성설인가...
요즘 매일 감사한 일들을 다섯 가지씩 생각해서 적는 과제를 하는데, 그것을 하면서 아주 사소한 일에도 감사할 거리가 너무도 많음에 놀랐다. 내 주위에 감사할 일들이 너무나 많음에도 그것 보다는 불평과 원망거리를 찾았던 내 모습을 보게 되었다. 감사를 찾을수록 감사할 일들이 많이 생기듯이, 내가 받은 은혜를 자꾸 찾고 그것에 감사하는 삶이 진정한 은혜를 누리는 삶이라는 생각이 들었다.

<은혜의 사람은, 어려울 때 절망하지 않고, 좋을 때 주권행사를 하지 않는다.>

나도 다윗처럼 은혜의 사람의 모습이 나타나길 소망한다.
하나님을 바로 알고 매 순간 그분을 인정하며, 절망의 때에는 은혜를 선포할 줄 알고, 풍성할 때에는 모든것이 주로 말미암았음을 고백하며, 내가 받은 은혜를 흘려보낼 줄 아는 멋진 믿음의 사람이 되길 간절히 기도해 본다.

<원수를 갚으려고 하는 사람에게는 원수가 임하지만
은혜를 갚으려고 하는 사람에게는 은혜가 임하는 법이다.>

내가 원망하고 불평할 일들에 눈을 돌리고 그것에 내 인생을 소비하기보다는, 감사와 은혜를 더욱 찾으려고 노력하며, 은혜를 바로 알고 누리는 삶이 되길 기도한다.

박정선

2006-05-16 09:47:58

은혜’는 너무 크기 때문에 갚을 수가 없다. 단지 ‘알아 주는 것’으로 대신할 뿐이다.
하나님을 아는 것이 내 마음에 넘치도록 일어나길 기도합니다. 하나님을 하나님으로 제대로 알고 고백하기 원합니다.
"지혜(知恵)는 곧, 은혜(恵)를 아는 것(知)이다"라는 말씀이 마음에 와 닿습니다.
다윗은 불행할 때나 행복할 때나, 있을 때나 없을 때나, 위험할 때나 평안할 때에 늘 하나님을 하나님으로 철저하게 인정했다.
전 하나님이 가까이 느껴지지 않을 때는 하나님이 내게 떨어져 멀리서 바라보고 계신 것인양 생각했던 것 같습니다.
하나님은 어떤 상황에서도 나를 불꽃같은 눈으로 바람처럼 감싸주고 계신 분인데, 왜 그렇게 하나님을 왜곡되게 이해하고 있었을까요.
은혜를 선포하는 사람에게 은혜는 임하고,
은혜를 베푸는 사람에게 은혜는 계속 흐르는 법이다.
늘 하나님의 은혜를, 내게 허락하신 축복을 늘 선포하길 스스로 다짐합니다.

정승은

2006-05-16 10:20:38

]참 ‘효자’는 부모님께 무슨 요란한 선물을 해 드리는 사람이 아니라,
부모님의 마음을 진심으로 알아 주는 자식이다.]
부모님의 은혜를 생각했던 지난 한주간 동안 내게 한없는 사랑을 베풀어 주신 부모님을 내게 보내주신 하나님께 감사하지 않을 수 없었다.
내게 당신의 큰 사랑을 조금더 내가 가까이 느낄 수 있도록 육의 부모님을 보내주신 것이 아닐까 싶다.
이런 한없는,끈임없는 사랑을 보내주시는 하나님과 입히고,가르치고 키워주신 부모님의 사랑은 어떤 멋진 선물로도 갚아드릴 수는 없다는 것을 이제는 조금 알것 같다.그저 주님께도,부모님께도 감사의 마음을 늘 잊지 않고 살아가는 것,그 은혜를 평생 간직하며,감사하다 표현하며 사는 것이 조금이나마 은혜에 보답하는 길이 아닐까 싶다.

[은혜를 아는 사람은 골리앗과 같은 위기를 만났을 때에도 ‘패배’를 시인하는 것이 아니라 ‘은혜’를 당당하게 선포하는 사람이다
어려울 때는 ‘은혜’를 선포하고, 좋을 때는 ‘주권’을 드리는 것이 하나님을 잘 아는 사람을 진정한 모습이다. 은혜의 사람은, 어려울 때 절망하지 않고, 좋을 때 주권행사를 하지 않는다.]
나는 어려울때 쉽게 절망하며,주여!주여! 불렀지만,걱정 섞인 주님을 향한 부르짖음이였을 뿐이였지,당당한 은혜의 선포는 아니였음을 고백한다.
위기에서도,어떠한 어려움 앞에서도 은혜를 선포하며 살고 싶다.
또한 반대로 기쁨의 상황,내게 좋은 상황이 되었을땐 할렐루야!기뻐하긴 했지만
내가 잘해서 칭찬받거나,좋은 상황에 놓인것임을 알면서도 칭찬받는것을 즐거워 하며 겸손해 하지 못할때가 많았고,내 노력으로 인해 생긴 결과처럼 생각할때도 많았다.

[은혜를 선포하는 사람에게 은혜는 임하고,
은혜를 베푸는 사람에게 은혜는 계속 흐르는 법이다.]
다윗은 은혜를 선포하는 것에 만족하지 않고,은혜를 베푸는 사람이였다.
내가 상처받은 사람에게,그 자식에게,친척에게라도 난 은혜를 베풀기는 쉽지 않았을 터인데,정말 은혜를 아는 사람이였던 것이다.
그래서 다윗같은 믿음을 달라고 종종 주님께 구한다.
부끄럽게도 내 노력은 턱없이 부족한 채로 주님이 그 믿음을 부어주시기만 기다렸던것 같다.
나도 은혜를 받을 만한 준비된 사람이고 싶고,은혜를 나누어줄 파이프를 준비한 사람이고 싶다.
은혜의 통로가 되고 싶다.받은 은혜만큼 그 이상으로 나눠줄 수 있는 사람이고 싶다.내 이름은 鄭 承恩이다.
은혜를 선포하며,이어나가서 작게는 내 가정에서,크게는 나라에까지 은혜를 이어갈 수 있는 사람이 되길 기도한다.


김부영

2006-05-16 14:28:23

어제는 태연이가 민호랑 하도 싸워서 정말 속상한 저녁시간이였다.
태연이를 방안에 앉혀놓고 조용히 혼내면서(처음에는 매로 기압을 잡았지만)
태연이가 민호랑 사이좋게 놀지않고 돌봐주지 않으면 엄마 마음이 얼마나
아픈지에 대해 설명을 하면서 나도 주님의 맘을 알아주지 않으면 얼마나
주님이 아파할지 그런 생각이 맘속에 생각이 나면서 은근히 얼굴이 달아
오르고 눈물이 나왔다
나도 참 제대로 하지 못하면서 아이를 이렇게 혼낼수 있나하는 부끄러움도
있었다
하나님의 은혜가 너무 나는 너무 고마워 길을 가다가도 문득 눈물이 날때가
있다 그 은혜가 너무 크게 느껴져 내 육의 부모의 은혜를 잊어버리고 살지
않았나 생각한다.
매일 새벽기도로 우리 가정을 위해 기도해 주시는 시부모님.
요번주 부터 태연이의 전도로 교회에 나가기로 하신 우리 부모님.

"은혜"는 너무 크기 때문에 갚을 수가 없다. 단지 ‘알아 주는 것’으로 대신할 뿐이다.
나는 평소에 하나님의 은혜를 얼마나 알아주고 선포했는지
또 우리 육에 부모님들의 은혜를 얼마나 알아줬는지 생각하면 참 부끄럽다
이제부터라도 은혜를 알고 베푸는 사람이길 바란다.
내 자식들이 내 맘을 헤아려주길 바라는 그 마음만 바랄것이 아니라...

김정아

2006-05-17 08:43:57

1. 다윗이 다윗이 된 것은 ‘은혜’ 때문이다.
그는 은혜의 사람이었다.
은혜를 받을 그릇이 준비된 사람이었고, 은혜를 나누어 줄 파이프가 준비된 사람이었다.

파이프가 통로로서의 역할을 다하지 못하고 위로부터 받기만 한다면 막혀서 터지게 됩니다.... 은혜받을 것만 그저 바라보았지... 받은 은혜 나눌줄 모르는 사람이었습니다. 은혜를 흘러보내지 못한다면,,, 위에서의 공급도 당연 없을 것이라는 생각이 듭니다... 그렇지 않으면 파이프가 제 구실을 못하니까요...정말 하나님의 생각은 묘한 원리로 우리에게 교훈을 주는 것 같아요... 많이 흘러보내면 보낼수록 많이 받는 것 처럼 ,, 은혜만을 .. 받을복만 계수하는 것이 아니라 흘러보내는 통로가 되어야 겠습니다. 다윗이 은혜에 붙들려 살았던것처럼.............
"하나님이 우리에게 복을 주셨네. 그 복으로 우리에게 축복하라고, 어린나도 하늘나라 복의 파이프 온세상이 복 받도록 나를 쓰소서." 라고 하는 파이디온 어린이 찬양이 생각납니다.

2. 하나님의 마음에 합한 사람이란 하나님과 마음이 딱 맞는다는 말이다. 다윗은 누구보다도 하나님의 마음을 잘 이해하고 있다는 말이다. 잘 알고 있다는 말이다. 잘 헤아려 드리고 있다는 말이다.

나도 간절하게 하나님의 마음에 합한 사람이 되고 싶다고 생각했다. 물론 지금도.......
다윗의 어떤 부분이 그렇게 하나님을 기쁘시게 하셨을까... 생각했다..성경에 다른 믿음의 사람들도 참 많은데 그 중에 다윗이라고 하면... 다윗에게 뭔가 특별함이 있지 않을까... ... 그런데 오늘에야 알았다... 그것은 하나님의 마음을 헤아려 드리는 것이다.. 다윗은 누구보다도 .,... 성경의 다른 어떤 인물보다도 더 하나님의 마음을 헤아려 드렸던 것이다. 곧 하나님을 잘 알고 있었다. 나 또한 하나님을 알아가는 과정이라고 생각한다. 훈련과 삶을 통해.... 다윗도 수없는 고난과 고통을 통해 하나님을 알아간 것 처럼 ...............
주님의 은혜를 , 주님의 사랑을 , 온 땅에 공포하고 주님을 찬양한 다윗을 보면 정말 하나님을 제대로 알아주고 있다는 생각이 든다... 위대하고 전능하신 하나님. 때로는 두려운 하나님이지만 우리에게 베풀어 주시는 은혜는 한도 끝도 없는 그 은혜 ...옛날 바벨론 포로로 잡혀간 하나님의 백성들을 향해 하나님이 끝도 용서하시고 품어주신 은혜... 예수님을 보내시기 까지 우리를 사랑하시고 구원해주시고 한영혼이라도 주께 돌아오기를 간절히 원하시는 그 주님을 안다면 정말 다윗과 같이 행동할 것이다... 어쩌면 내 안에 그런 부분이 부족한 것 같다. 하나님을 안다는 것은 끝이 없는 것 같다... 내가 10점짜리 라면 하나님은 100점짜리이기 때문에... 내가 볼수 없는 나머지 90점을 채우기 위해 하루하루의 삶가운데 주님을 알아가며 또 그 주님께 감사하며 , 마치 그 자식이 부모의 형편과 사정과 수고와 사랑을 알아주는 것처럼.. 나도 그런 사람이 되기를 소망한다...

최현숙

2006-05-17 19:04:52

성경속에 위대한 인물중에 한 분을 꼽는다면 다윗도 그중에 포함될 것이다. 오늘 말씀을 통해서 왜 다윗이 위대한 인물중에 한 사람인지를 정확하게 볼수 있어서 감사했다. 다윗의 위대함은 그가 하나님의 성전을 준비케 한 사람이여서,,,,시편에 수많은 찬양시를 적어서,,,,물론 그 부분도 한 모습일수 있겠지만, 이 보다 더 귀한 것은 바로 은혜를 아는 사람이였기에 가능했다고 확신이 들었다. 은혜! 너무도 흔히 쓰는 말이다. 은혜가 없으면 하루도 살아갈수 없는 세상임에도 불구하고 은혜가 너무도 메말려 버린 세상이란 생각도 들었다. 하나님의 은혜로 시작해서 수없이 많은 은혜가 내게 존재했기에 내가 살아 갈수 있다는 사실을 많이 잊고 살았구나 ..하는 탄식이 소리가 오늘 유난히 크게 들림은 아마도 그 은혜를 새롭게 깨닫게 됨이 아닐까 하는 안도의 한숨을 내 쉬어 본다.

얼마전에 tv에서 현대판 효자를 소개한 프로가 있었다. 그분은 어머님이 돌아가셨지만 어머님의 은혜를 늘 기억하면서 아침 저녁으로 사진앞에 인사를 드리는데 혼자만 하는 것이 아니라 자식들 모두에게도 반드시 이 일을 행하도록 하고 있었고, 연로하신 어르신들에게 자신의 가계에 족탕시설를 설치해서 그곳에서 담소도 즐기고 편히 휴식을 취할수 있도록 배려를 하는 모습을 본 적이 있었다. 이 일에 대해서 자신은 기쁨으로 하고 있었고, 자식들도 그런 아버지 모습을 보고 자라서 인지 그 아버지에게도 아주 잘하고 있었다.

이 일을 보면서 진리는 어느 곳에서나 그 빛을 발함을 깨달을수 있었다. 성경에 보면 부모님을 공경하라고 하신 말씀처럼 그 분은 비록 신앙은 없지만 부모님에 대한 공경심을 진리로 알고 열심히 행한 귀한 분이였다.
하물며 믿는 나는 어떤 모습일까? 많이 부끄러웠다. 말씀을 통해서 은혜를 아는 자만이 진정한 은혜를 나눌수 있다는 귀한 메시지는 두고 두고 내 속에 새겨야 할 진리로 다가왔다. 내가 하나님께 받은 은혜가 얼마나 크고 많은가!!! 그럼에도 불구하고 나는 그 은혜가운데서 은혜를 누리며 또한 나누면서 살고 있는가를 보니 너무도 부족한 부분이 많음을 깨닫게 된것이다.

다윗의 모습을 보면서 너무도 귀함을 보았다. 다윗은 진정 은혜를 아는 사람이였다. 자신을 원수처럼 여기고 자신의 목숨을 수없이 노렸던 사울왕! 어쩌면 사울왕과 관계된 것들을 생각하기도 싫었을 것이다. 그런데 그는 그렇게 하지 않았다. 자신에게 은혜를 베풀었던 요나단을 생각했다. 즉 은혜를 선택한 것이다. 그래서 요나단의 아들인 므비보셋에게 은혜를 베풀수 있었던 것이다. 난 이일을 내 경우라면,,,,하고 가정으로 내가 다윗이 되어 보니 나는 감히 흉내도 내지 못한 모습인것 이다. 아! 얼마나 크고 위대한 사람의 모습인가? 이런 다윗에게 므비모셋은 이렇게 말을 한다. "내가 무엇이기에 왕께서 죽은 개 같은 나를 돌아보시나이까" 사람의 은혜를 입어도 이렇게 감격을 하는데.....므비보셋의 화답이 내속에 메아리쳐 온다. "주님! 현숙이가 무엇이기에 주께서 죽은 개 같은 나를 돌아보시나이까?"

은혜를 알자. 하나님의 은혜를 알고, 부모님의 은혜를 알고, 스승의 은혜를 잊지 말자 그래야 지혜로운 사람이요 은혜를 받을 만한 가치가 있는 사람이라고 했다. 내게 베풀어 준 주님의 은혜가 오늘도 온 천지에 충만하건만 내가 불평할 일이 무엇이며 내가 감사하지 못할 일이 무엇이란 말인가! 말씀을 통해 나를 돌아보게 하신 하나님께 감사를 드릴수 있어서 행복하다. 조금씩 깨닫고, 알고, 실천할수 있는 믿음의 진보를 허락하신 주님을 찬양합니다.

라문진

2006-05-17 20:04:53

1.하나님은 ‘은혜의 선포자’를 기뻐하신다. 은혜의 선포자를 책임지신다. 은혜의 선포자와 함께 일하신다. 특히 위기를 만났을 때 은혜를 믿음으로 선포하는 다윗과 같은 사람을 좋아하신다.

매일 아침에 집을 나설때, 또 잠들기전에 은혜를 선포하기로 했다.
오늘 하루도 하나님의 은혜로 충만한 하루가 될것이다! 아무문제가 없다. 작고 하찮은 일에서부터 위기의 문제에까지 모두 하나님의 은혜로 해결될거라는걸 믿음으로 은혜를 선포하기로 마음 먹었다. 하나님은 은혜의 선포자를 책임져주시니깐!!!

2.내가 무엇을 붙잡고 인생을 사는가가 내 인생을 결정한다.
사울(원수)이 아무리 크더라도 사울을 붙잡지 말고, 요나단(은혜)이 아무리 작더라도 요나단을 붙잡아야 한다.

어제 이말씀을 몇번이나 읽었음에도 불구하고, 바로 어제 나는 원수에 붙들리는 일을 하고 말았다. 얼마나 말씀의 적용이 어려운가...그래도 그날 해가 지기전에 회개하게 하시는 주님께 감사드린다.
나는 우리를 힘들게 하는 사울만 생각했지.. 요나단의 은혜는 털끝만큼도 생각치 않은것이다. 나에게 있어 요나단의 은혜가 사울에 비해 1:100이 아니라,그 반대로 100:1의 은혜임에도 불구하고 말이다. 왜 이렇게 어리석은지 모르겠다.

‘원수를 갚으려고 하는 사람에게는 원수가 임하지만
은혜를 갚으려고 하는 사람에게는 은혜가 임하는 법이다.’

마음을 고쳐먹게 하신 말씀과, 그 말씀안에서 내 스스로가 잘못되었다는걸 알수 있도록 옆에서 묵묵히 지켜봐준 남편에게도 고맙다.

이용준

2006-05-18 01:13:24

원수는 잊을수록 이롭고, 은혜는 기억할수록 은혜로운 법이다.
이말이 주는 의미를 나는 뼈저리게 느낀다
은혜가 자신에게 가득찾을때 그것이 가져다 주는 것은
상상하는 것이상이라는 사실도 안다 심지어는 원수가 어느날
나에게 은혜의 선물을 줬구나 하고 느끼는 순간이면
나는 행복했던것같다

원수를 갚으려고 하는 사람에게는 원수가 임하지만
은혜를 갚으려고 하는 사람에게는 은혜가 임하는 법이다
결혼하고 나서 항상 느끼고 있고 또 느낄려고 애쓰는 것이 있다면
나와 결혼해준 내 아내에 대한 은혜다
그냥 걷다가도 흐믓해 지는 느낌을 주는 건 내 아내가 나와 결혼해준 은혜다
또하나는 외국인인 나에게 상당히 큰 중요한 프로젝트를 맡긴
선생님이다 내가 봐도 그렇게 중요한 프로젝트를 주는 것이 쉽지만은
않았을텐데 내부에서도 반발이 꽤 있었던 것같은데
정말 은혜를 갚을 곳이 너무 많다 너무 감사할 뿐이다


박순애

2006-05-18 04:49:46

지금 내가 손에 쥐고 있는 것은 원수인가, 은혜인가.
"문제는 원수에게 있는 것이 아니라 내게 있다. 내가 무엇을 잡고 인생을 사느냐에 내 인생이 달려있다".... 참 잘 되지 않는 말씀이지만 너무나 타당한 말씀이다. 다윗은 인생의 최고조에서 원수를 은혜로 갚은 사람이다. 세상의 모든 권력과 물질과 명예를 다 가진 후 그가 한 일은 은혜를 갚는 것이었다. 그 손에 원수보다는 은혜를 잡은 것이다. 좋은 것을 택한 것이다. 다시 생각하기도 싫고 보면 또 생각나서 스스로 괴로울 텐데 다윗은 어떻게 므비보셋을 찾아 사울의 땅을 다 돌려 주고 자신과 함께 먹으며 종들까지 줄 수 있었을까? 하나님은 다윗을 하나님의 마음에 합한자라 부르신다. 은혜가 너무 큰 것을 알고 원수쯤이야 아무것도 아니고 오히려 받은 은혜를 나눌 수 있는 기회로 삼는 그를 하나님은 얼마나 흡족히 여기셨을까.

그렇다면 나는 무엇을 잡고 사는 사람인가. 은혜를 잡고 살려고 한다. 그러나 악한 마귀는 자꾸 뒤를 돌아 보게하고 좋은 것을 잊어 버리게 만든다. 원수들만 생각나게하는 것이다. 사람이 망각의 동물이므로 잊는 것은 당연하다 하지만 기억해야 할 것은 의지적으로 기억하고 항상 그 은혜를 가지고 나를 세워가고 다스려가야 할 것이다. 원수가 있다면 내가 은혜를 베풀 기회로 삼자. 만나고 싶지 않은 사람을 우연히 만나게 되었을 때 그를 피하고 좋지 않은 얼굴로 형식적으로 대하기보다는 오히려 은혜를 베풀 기회로 삼고 또 다른 은혜가 흐르게 하는 지혜가 필요한 것이다. 원수를 원수로 두지 말고 은혜의 강물이 흐르게 하는 기회로 삼는 아름다운 믿음을 간구한다. 그리고 은혜를 기억하여 더 큰 은혜를 나누는 삶을 살고 싶다. 지금 나는 많은 은혜를 입고 살고 있다. 받은 은혜를 기억하리라. 더 많은 사랑으로 갚으리라.
어려움이 닥치면 나는 무엇을 하였던가. 어려울 때 은혜를 선포하고 정말 잘 나갈때 하나님께 주권을 드리므로 하나님을 인정하는 다윗의 믿음은 정말 하나님의 마음을 흡족히 하고도 남았을 것이다. 내가 잘 나가면 내 탓이고 잘 못되면 조상탓을 한다는 속담이 있지 않은가. 먼저는 육신의 부모님께 은혜를 기억하는 딸로 남아야 겠다. 숙제이기는 했지만 철들고 처음으로 진하게(?) 써 부친 편지를 읽고 그 무뚝뚝하신 어른이 우셨다고 한다. 기뻐하고 감사하는 마음은 감동을 주는 것 같다. 나의 하나님 아버지께도 이런 감동이 있는 삶을 살아 보이고 싶다. 내가 조금 어려우면 하나님 아버지를 외면하기 쉽고 내가 조금 잘 되면 내가 한 것인양 교만해 지기 쉬운 연약한 믿음 가운데 살지만 이제 부터는 어려울때는 하나님의 은혜를 선포하고 좋을때는 하나님께 내 주권을 드리므로 아버지와 함께 행복한 삶을 살아야 겠다. 은혜를 선포하는 곳에 은혜가 임한다는 말씀을 아멘으로 받으며 내 삶의 구석구석에 은혜를 선포하고 은혜의 열매들을 맺으며 살기를 기도한다.

인선정

2006-05-18 09:07:47

성경에 나오는 등장 인물 중 비극적인 인물 중 한 사람이 요나단이라고 생각합니다. 21세기 동양의 일본이라는 나라에서는 패밀리 레스토랑 이름이 될 정도로 그의 이름은 유명하지만, 그에 대해 생각하면 할수록 성경에 나오는 사람들 중에 그 보다 가엽은 사람은 드문 것 같습니다. 그는 그의 아버지가 어리석고 악한 것을 알면서도, 그 인연의 끈을 끊을 수 없었고, 결국 아버지 사울와 사랑하는 친구 다윗 사이의 내전에서 희생됩니다. 요나단은 자신의 목숨을 걸고 아버지로 부터 몇차레 다윗을 죽음으로 부터 피하게 해주지만, 다윗은 전쟁터에서 적이된 그의 목숨을 구하지 못합니다.
다윗이 절뚝발이가 된 요나단의 아들 므비보셋을 보고 어떤 기분이었을까... 상상해 보았습니다. 사울의 원수를 기억하여 절뚝발이가 된 사울의 손자에게 보복을 하고 싶은 마음이 들었다면, 다윗은 다윗이 아니었겠지요. 다윗은 므비보셋과 만나고 그에게 은혜를 베푼 후, 친구 요나단의 비극적인 죽음과 그의 아들의 처참한 운명 앞에, 그 날 밤 혼자서 목 놓아 울었을지도 모릅니다.
므비보셋에게 한 다윗의 행동은 하나님의 마음을 품은 사람이 은혜를 어떻게 기억하고 또 그 은혜를 갚아야 하는지 보여주는 실례하고 생각합니다.

오성훈

2006-05-18 09:35:44

"하나님은 ‘은혜의 선포자’를 기뻐하신다. 은혜의 선포자를 책임지신다. 은혜의 선포자와 함께 일하신다. 특히 위기를 만났을 때 은혜를 믿음으로 선포하는 다윗과 같은 사람을 좋아하신다. 모든 믿음의 사람은 인생의 위기가 왔을 때에, 절대로 환경에 항복하지 않고 은혜의 주님을 선포하며 찬송했다. 욥도 그랬다. 재산 다 잃고, 자식 다 잃고, 건강까지 다 잃었지만, 은혜의 주님은 잃지 않았다. 그는 그런 절망 속에서도 ‘은혜’를 선포했다."

하나님은 은혜의 선포자를 기뻐하신다. 인생의 위기속에서도 환경에 항복하지 아니하고 은혜의 주님을 선포하는 자를 기뻐하신다. 내 자신도 날마다 주님의 은혜를 선포하며 주님이 기뻐하시는 자로 살아가야 할 자이다. 므비보셋과 같이 감당할 수 없는 큰 은혜를 입은 자가 바로 내 자신일 것이다. 오늘 이 순간에도 이 자리에 서 있는 자체가 은혜이다. 내가 이 곳에서 살아가는 날동안 베풀어 주신 은혜에 감사하며 받은 은혜를 다시금 풍성하게 나눌 수 있는 자로, 그리하여 그리스도를 이 땅에 은혜롭게 풍성하게 증거하는 자로 살아가야 하겠다.

김기웅

2006-05-18 10:34:41

1.하나님의 마음에 합한 사람이란 하나님과 마음이 딱 맞는다는 말이다.
다윗은 누구보다도 하나님의 마음을 잘 이해하고 있다는 말이다.
잘 알고 있다는 말이다. 잘 헤아려 드리고 있다는 말이다.
누군가가 내 마음을 깊이 헤아려 준다며느 정말 기분좋은 일이다.

다윗이 위대한 왕인건 다 아는 사실이지만, 왜 그가 그토록 하나님에게
복을 받았는가는 잘 몰랐었는데, 이번 설교를 통해 조금 알게 됬다.
직장에서건 학교에서건, 윗사람의 마음을 조금이라도 미리 헤아려 행동
하는 사람은 사랑과 총애를 않 받을래야 않 받을수 없다는 평범한 진리
는 다윗에게서도 하나님의 마음에서도 형통함을 이끌어 냈다.
내가 하나님의 마음에 합한 사람이 되기 위해서는 어떤 사람으로 다시
태어나야 할까? 나에게는 고약한 고집이 있다. 예를 들면, 달면 삼키고
쓰면 뱉어내는 습성이랄까...다윗은 하나님 앞에서 자기의 부끄러운
나쁜 습성이 없었을까? 다윗은 그러나 철저하게 회개하는 사람이었
을 것이다. 용서를 구하고, 그 은혜를 다 갚지는 못해도 만사에 그를 높이는
삶을 살았다. 다 갚지는 못해도 깨달은 삶만 살아도... 하나님은 많은걸
바라시는것이 아니실텐데...떨어지는 한장의 낙엽도 다 하나님의 섭리라
고 조금은 가슴으로 느끼지만, 나는 아직 너무나 부족하다.
써도 삼켜버려야하는 믿음의 야성을 사모하고 싶다.

2.참 효자는 부모님께 무슨 요란한 선물을 해 드리는 사람이 아니라, 부모님
의 마음을 알아주는 자식이다. 은혜는 너무 크기 때문에 갚을 수가 없다.
단지 알아주는것 으로 대신할 뿐이다.

누군가에게 들은 얘긴데, 내가 받은 은혜는 그 사람에게는 절대 못 갚고
다른 제3자에게 갚게 된다는 얘기가 생각이 난다. 이 말은 참 성경적이라
는 생각을 많이 했다. 그리고 받은 은혜는 쉽게 잊어버린다는 말도 된다.
이천육년 들어서 내가 받은 은혜가 뭐가 있을까?
참 큰일인게 벌써 생각이 안난다. 갚지는 못해도 기억하고 있어야 하는데..
그 사람에게는 못 갚아도 누군가에게는 베풀어야하는데..
그런데 이번 설교를 읽고 부모님에게 받은 사랑은 꼭 부모님에게 조금이라도
갚아야 한다는 생각이 들었다.
어쩌며느 우리 부모님세대는 우리 조선역사상 제일 많이 고생하시고
제일 찬밥신세가된 유일한 세대라는 생각을 해본다.
예수믿는 가정을 물려주신 우리들의 부모님이 마음이 따뜻해지는 노년을
보내시도록 제자훈련 잘 받고 더 깨우쳐서 하나님 앞에 한걸음 한걸음
다가가시는데 동역자가 되야겠다는 결심을 한다.

김성섭

2006-05-18 14:31:27

--- 하나님은 ‘은혜의 선포자’를 기뻐하신다. 은혜의 선포자를 책임지신다. 은혜의 선포자와 함께 일하신다. 특히 위기를 만났을 때 은혜를 믿음으로 선포하는 다윗과 같은 사람을 좋아하신다. 모든 믿음의 사람은 인생의 위기가 왔을 때에, 절대로 환경에 항복하지 않고 은혜의 주님을 선포하며 찬송했다. ---

하나님께서 은혜의 선포자를 기뻐하시고 은혜의 선포자를 책임지시고 은혜의 선포자와 함께 일하신다는 말씀을 읽으면서 주은이와의 일이 생각났습니다. 언젠가 첫째 딸 주은이가 나에게 무엇을 사달라고 계속해서 조른 적이 있었습니다. 무척이나 갖고 싶었던 모양입니다. 그런데 당장 사주기는 그래서 나중에 사주겠다고 약속했습니다. 그런데 그 다음날 수요예배 시간에 주은이가 교인들에게 자랑하고 다니는 것입니다. '권사님 아빠가 나 그거 사 준다고 약속했어요, 집사님, 아빠가 나한테 그거 사준다고 그랬어요.' 주은이는 비록 지금은 그것이 손에 들어오지 않았지만 아빠가 약속했으니 그것을 믿고 선포했던 것입니다. 아빠의 약속을 100% 믿고 선포하고 다니는 주은이와의 약속을 어찌 가볍게 취급할 수 있었겠습니까?

다윗이 ‘너는 칼과 창과 단창으로 내게 오거니와 나는 만군의 여호와의 이름으로 네게 가노라!’ 선포하며 키가 약 3m 가까이 되는 거인 골리앗을 향해 선포할 때 하나님의 마음은 얼마나 기쁘셨겠습니까? 제가 주은이를 보면서 느꼈던 기쁨과 감히 비교나 할 수 있겠습니까? 다윗이 하나님은 은혜를 선포하며 골리앗을 향해 달려나갈 때 하나님께서 어떻게 그런 다윗을 책임져 주시지 않겠습니까? 유한하고 부족한 육신의 부모도 그런 자식을 책임지는데 하물며 전능하신 하나님이시겠습니까? 그런 다윗을 통해 하나님께서 이루지 못하실 일이 무엇이겠습니까?

하나님 앞에 나는 어떤 자녀인가 돌아보게 됩니다. 다윗과 같은 믿음이 내게 있나, 아니 어린 주은이와 같은 믿음이라도 있나 살펴 봅니다. 부끄러워집니다. 힘들고 어려울 때마다, 위기 앞에 있을 때마다, 골리앗 같은 문제 앞에 설 때마다 나는 하나님의 은혜를 선포하기 보다는 낙심하고 불평했습니다. 만군의 여호와의 이름을 내세우지 못하고 '내가 어떻게 골리앗을 무너뜨릴 수 있겠어, 우리 교회가 어떻게 그런 일을 감당할 수 있겠어' 체념 하기도 했습니다.

그러나 지금은 아닙니다. 이제는 다윗처럼 ‘내가 사망의 음침한 골짜기로 다닐지라도 해를 두려워하지 않을 것은 주께서 나와 함께 하심이니라’고 고백할 수 있습니다. 왜냐하면 하나님의 크고 놀라운 은혜를 붙잡고 있기 때문입니다. 아니, 하나님의 놀라운 은혜가 나를 감싸고 있음을 알고 있기 때문입니다.
제자훈련이 잊고 있었던 하나님의 은혜를 회복시켜 주었습니다. 제자훈련이 다윗이 의지했던 만군의 여호와의 이름의 능력을 다시 한번 깨닫게 해주었습니다. 제자훈련이 골리앗을 향해 달려 나갔던 다윗의 하나님을 향한 열정과 용기를 가져다 주었습니다. 이제는 나도 다윗처럼 골리앗을 향해 선포하며 나갑니다. ‘너는 칼과 창과 단창으로 내게 오거니와 나는 만군의 여호와의 이름으로 네게 가노라!’

김경환

2006-05-18 17:25:19

---은혜를 아는 사람이야 말로 정말 지혜로운 사람임을 알 수 있다. 은혜를 아는 자가 되어야 한다. 하나님의 은혜를 알아야 하고, 부모님의 은혜를 알아야 하고, 스승의 은혜를 잊지 말아야 지혜로운 사람이요, 은혜를 받을 만한 가치가 있는 사람이다.---

은혜 받기 위해 오늘도 부르짖음의 시간으로 시작했다.
받아도 받아도 모자른 것 같은 은혜. 목사가 되어 가끔은 씁쓸한 마음이 들 때가 있다. 은혜를 모르는 자를 만났을때는 억지할 수 없는 감정에 복받친다. 돕고 나누는 것으로 끝나야 되는데 조금은 알아주었으면 하는 마음에 실망을 할 때가 많다.
기본이 되어 있지 않아! 이러면서 화가 날때가 있으니 나도 어찌할 수 없는 같은 사람이다. 얼마전에 메일을 한통 받았다. 일본에 있을 때 신세지은 것 갚지 못해 죄송하다는 내용이다. 그동안 그분으로 인해 손해 본 것이 있기 때문에 그분에 대해서 좋은 마음은 아니였다. 뭐! 그런 사람이있어! 하면서 생각하고 싶지 않은 사람 중에 한분이였다. 그런데 메일 한통으로 모든 마음이 녹아졌다. 그래 바로! 이거잖아! 은혜를 알아야지! 이후로는 그분에 대해 진실된 중보기도를 할 수 있게 되었다. 그당시에는 내가 베푼 은혜를 알아주지 못한 것만 마음에 불편함으로 갖고 있었다. 하지만 이번 설교를 통해 내 자신 또한 알아야 할 은혜를 잊고 살았음을 회개한다. 어머니에 대한 은혜다. 일본에 처음 올 때 우리 가정은 물질적인 어려움으로 도저히 가족을 떠나 올 수 없는 상황이였다. 가족들 옆에서 조금이라도 물질의 도움이 되지 않으면 않되었기 때문이다. 그런 상황이였기에 동생들은 장남인 나를 많이 원망했다. 형이 왜? 오빠가 왜? 가족을 버리고 일본으로 가야되!!? 그럼 우리집은 어떡하고? 너무 힘들었다. 하지만 어머니는 아무 말씀도 하시지 않고 하나님이 주시는 기회니까 가거라! 가족 걱정은 하지 말고. 하시면서 보내 주셨다. 만약 그 상황에서 어머니가 경환아! 우리 상황을 좀 봐라! 너도 여기서 가족의 어려움을 함께 지고 가야지 않니! 하셨다면 일본에 오지 못했을 것이다. 지금 생각하면 너무도 감사한 일이다. 잊지 못하고 감사해야 할 일이다. 그런데 그 감사의 고백을 한번도 못했다. 참 못된 아들이다. 제자훈련 숙제를 통해서 그 감사의 고백을 처음 하게 되었다. 어머니! 감사합니다. 어머니 은혜 잊지 않는 아들이 되겠습니다.너무 쉽게 할 수 있는 고백인데 10년이 걸렸다. 고백을 하고 나니 마음이 이렇게 기쁠 수 있는지 제자훈련을 통해 어머니의 은혜를 알게 되어서 너무너무 감사를 드린다. 주님! 은혜를 받을 만한 가치가 있는 사람이 되겠습니다. 오늘 하루도 열심히 살겠습니다.

지영민

2006-05-18 19:37:31

---믿음의 사람은 무엇보다도, 은혜의 사람이 되어야 한다. 은혜의 통로가 되어야 한다. ‘원수를 갚으려고 하는 사람에게는 원수가 임하지만 은혜를 갚으려고 하는 사람에게는 은혜가 임하는 법이다.’---

하나님을 믿으며 그 사랑을 맛본 나에게 제일 어려운 부분이 있었다면 바로 위의 말씀이 아닌가 싶습니다. 짧은 인생을 살아오면서 뒤를 돌아다 보면 받은 은혜에 감사하기 보다는 나를 괴롭히고 어려웠던 시절이 너무도 강하게 떠올랐기 때문입니다. 그때 부모님은 왜 그런 결정을 하셨을까... 그때 그 사람은 왜 그랬을까...하며 일들을 은혜로 보지 못하고 너무나도 인간적인 모습으로 보고 상처 받고 했습니다. 지금 생각하면 그 시간들이 너무 아깝고 안타깝습니다. 나에겐 더 큰것을 느낄 수 있는 믿음이 있었는데, 은혜가 있었는데 그것을 그때는 왜 깨닫지 못했는지 모르겠습니다. 지금은 그런 마음들을 내려놓고 나니 마음이 그렇게 편할 수가 없습니다.

5월 가정의 날을 맞이하여 부모님의 은혜를 생각하는 시간들을 갖게 되었습니다.
제자훈련을 통하여 부모님께 편지 쓰는 시간을 갖게 되었습니다.
지금까지 말로는 사랑을 고백하거나 감사를 전해봤지만 글로 표현하자니 참 많은 생각이 들었습니다. 무엇보다 시어머니를 생각할 때 더 많은 생각들이 들었습니다.

---참 ‘효자’는 부모님께 무슨 요란한 선물을 해 드리는 사람이 아니라, 부모님의 마음을 진심으로 알아 주는 자식이다. ‘은혜’는 너무 크기 때문에 갚을 수가 없다. 단지 ‘알아 주는 것’으로 대신할 뿐이다. 위 사람을 위 사람답게 대접하는 최고의 방법은, 받은 ‘은혜’를 진심을 표현하는 것이다. 위 사람을 위 사람답게 섬기는 사람은 반드시 복을 받는다.---

이 마음을 잘 헤아려드리지 못했음을 고백합니다. 항상 무엇인가 바라신다고 오해를 했었습니다. 아기를 가진 저에게 어머니는 '이 세상 누구보다도 행복하고 바랄 것이 없다. 너로 인해 기쁘다' 고 하셨습니다. 어머니의 이 고백을 들으면서 저는 어머니의 무엇을 보며 지금까지 며느리로서 살아왔는지 제 스스로를 책망해 보았습니다. 사랑을 사랑으로 받지 못했고 은혜를 은혜로 받지 못했습니다. 그래서 저는 항상 괴로웠습니다. 위로부터 오는 은혜를 꽉 막고 산 사람이 어떻게 감사를 하면 살 수 있었겠습니까... 지금에서라도 그 은혜를 맛보게 되어 감사합니다. 은혜를 은혜로 알고 사는 것 또한 귀한 모습이라 생각됩니다.
막혀 있던 제 마음에 은혜의 파이프를 뚫어 놓겠습니다. 그래서 위로부터 받은 은혜를 아래로 열심히 힘있게 보내는 은혜의 참 사람이 되겠습니다.

박인수목사

2006-05-18 21:20:35

하나님의 마음에 합한 사람이란 하나님과 마음이 딱 맞는다는 말이다
근간에 아내에게 마음이 영 불편했습니다. 부끄럽게 아이들 앞에서 언성을 높이기도 했습니다. 그러던 중 말씀묵상과 함께 기도하던 중 장문석님의 콩나물 사랑법이란 시가 생각났습니다.
‘콩나물 대가리는 하나지만 껍질을 벗기면 둘입니다. 그러나 둘이 아니고 결국 뿌리로 하나가 됩니다. 하나인 듯 둘이고 둘인 듯 하나인 것.아내는 그것이 부부라고 말을 합니다’
뿌리는 하나지만 머리는 둘인 삶은 생각이 각각 따로 노는 삶이란 뜻이 아니라 상대방의 고유한 정신 세계는 정신세계대로 인정하면서도 서로 한곳을 지향해 나간다는 뜻일 것입니다. 즉 서로가 한 몸이 되어 살아가면서도 두 사람의 존재가 각각 살아 있는 삶이 진정한 부부의 삶이란 뜻이 되겠지요. 그러기 위해서는 내가 먼저 내 마음을 비우는 자세가 필요한 것 같습니다 내 것은 양보할 줄 모르고 웅크린 채 상대방의 양보와 이해만을 바라지 말고 내가 먼저 상대방의 처지에 서서 생각해보아야 할 것같습니다.
내가 내 마음을 비우고 있어야 아내를 받아들일 수 있는 공간이 생기더군요 마치 낙엽을 버릴 줄 알아야 새로운 잎을 움트게 할 자리가 생기는 것과 같은 이치인 것 같습니다
상대방을 내 것으로 소유하고 있다는 생각을 버리고 상대방을 내가 원하는 분재처럼 만들려는 욕심도 버리고 상대방에만 모든 것을 의지하려는 지나친 집착도 버리고 그가 살아 움직이는 본래의 그 모습 그대로 나와 함께 살아가는 사람일 수 있게 해주어야겠습니다
이런 생각의 와중에 다윗이 정말 부러웠습니다. 한 이불 덮는 사람끼리도 마음이 하나되기 어려운데 하나님과 마음이 딱하나 가 될 수 있었을까? 저는 오늘 그 비움과 순종의 영성이 참 부럽습니다.

이지영

2006-05-18 22:56:55

1.못해 준 부모님이 더 마음 아파하고 미안해 한다. 그런 부모님의 가슴에 대못을 박고 있으니 얼마나 미련한 자식인가!

이제까지 살면서, 부모님 마음에 크고 작은 못을 알게 모르게 많이 밖아온 것 같습니다. 나에게는 가볍고 작은 불평일지 모르지만, 그것으로 인해 부모님 마음을 많이 아프게 해드린 것 같아,,너무 죄송스럽고, 제 마음도 많이 아프네요..몇년 전부터, 부모님의 은혜가 너무나도 절실히 느껴지며. 학생시절 때는 쉽게 나오지 못했던, 사랑합니다 라는 말이, 이제는 전화기를 통해, 아버지와 어머니께 꼭 사랑한다라는 말을 하면서, 변화된 제자신에 대하여 하나님께 감사드릴 때가 많습니다. 예전에는 사랑한다는 말은 하고 싶었지만, 용기가 없었던 것일까, 입으로의 시인이 너무나도 어려웠었거든요...사랑한다는 목소리를 들으셨을때, 부모님의 기뻐하시는 목소리가 또한 제 기쁨과 행복이 됩니다. 앞으로 더욱 더 열심히 노력하여, 부모님의 은혜를 갚아드릴 수는 없더라도, 많은 기쁨을 안겨다 드리는 딸이 될 수 있도록 노력해야겠어요.

2.다윗은 불행할 때나 행복할 때나, 있을 때나 없을 때나, 위험할 때나 평안할 때에 늘 하나님을 하나님으로 철저하게 인정했다.
상황에 상관없이 하나님을 하나님답게 ‘알아 주는 것’이 바로 하나님께 은혜를 받을 수 있는 잘 준비된 그릇임을 우리는 알아야 한다.

저는 .지치고 피곤할때, 하나님을 많이 인정하지 못했던 것 같애요.. 그럴수록 더욱 기도하며, 하나님의 은혜를 찬양했어야하는데, 피곤하다는 이유로, 그냥, 침대에 누워 자버렸던적이 많았던 것 같아요..하나님을 섭섭하게 해드린 것 같아 마음이 많이 아프네요. 그래서, 요즈음은 하나님의 생각을 많이 하려고 노력하고 있어요. 다른 생각을 하기 전에 하나님을 찾고, ,,하나님은 무슨 생각을 하실까...또는 하나님께,,,말을 걸어보기도 하고...조금씩 조금씩 중학교때의 첫사랑을 회복해나가는 것 같아 기뻐요. 그리고,,사실, 요즘은 제가 가르치는 학생들의 시험기간이여서, 보충이 많아져, 더욱 바쁘고 피곤한 나날인데도, 평소때보다, 더 기쁘고, 행복하다고 자신있게 말할 수 있어요..그게 다 하나님을 찾는 시간과 비례해서 받는 하나님의 은혜로부터 오는 결과가 아닐까,,생각해요..삶이 즐겁습니다..오늘은 어제보다 더욱 하나님을 많이 찾고 인정하여, 언젠가는 다윗처럼, 늘 하나님과 동행하고, 하나님을 인정하는 믿음의 사람이 되도록, 더욱 노력할래요.^^

3.사울(원수)이 아무리 크더라도 사울을 붙잡지 말고, 요나단(은혜)이 아무리 작더라도 요나단을 붙잡아야 한다.
원수는 아무리 커도 기억하는 것만큼 해롭지만, 은혜는 아무리 작아도 기억하는 것만큼 이롭고 아름답다.

원수가 혹시나 작더라도, 크게 기억되었고, 은혜는 크더라도 작게 기억되어질때도 있던 것 같아요..그래서,마음의 올무가 있었나봐요. 즐겁게 살 수 없는탓을 사람에게 돌렸는데, 그게 아니였어요..오히려, 그 원수를 마음에 잡고 있고, 은혜를 기억지 못하는 제 마음의 탓이였네요..ㅠ.ㅠ..오늘 말씀을 제 성공의 방법중 한가지로 마음에 새기며, 실천해나갈래요. 꼭 인생의 성공자가되어, 이 말씀을 삶으로 증거하는 사람이 되도록 노력하겠습니다.

백인화

2006-05-19 02:09:25

“철 없는 자식은 부모의 마음을 전혀 헤아리지 못한다. 그런 사람은 부모가 자기에게 잘 해 준 것은 잊어 버리고 못해 준 것만 기억하며 불평하고 원망한다.
‘부모님이 내게 해 준 것이 뭐가 있느냐?’
‘누가 낳아 달라고 했냐? 낳았으면 책임을 져야지.’
이런 말을 하는 사람은 부모님의 마음을 전혀 모르는 사람이다.”
요즘 감사의 제목을 쓰는 생활숙제를 하면서 내가 얼마나 감사에 인색한 사람이었나 참으로 놀라움을 감출 수가 없다. 하나님께도, 부모님이나 친척들께도, 스승님께도, 남편에게도, 아이들에게도, 성도님들께도, 친구들에게도 , 주위사람들에게도 나는 그들이 잘 해준 것은 기억하지 않고 항상 나쁜 것들만을 기억하며 불평하고 원망하며 지내왔었던 것을 발견하게 되었다.

“은혜를 아는 사람이야 말로 정말 지혜로운 사람임을 알 수 있다.”
은혜를 모르는 사람을 일컬어 배은망덕하다고 한다. 나는 내가 절대로 그런 부류의 사람은 아닐 것이라고 찰떡같이 믿고 살아왔었다. 그런데 그건 단지 내가 ‘은혜의 파이프’ 역할을 감당하며 살지 않았기에 그런건 아예 생각조차 해보지 않았던 것이었다. 그러고 보니 나는 은혜를 나누는데 참으로 인색한 사람이다. 막내로 항상 받고만 자라서 나누는 것을 잘 못한다고 익숙하지 않다고 항상 입버릇처럼 말해온 기억이 난다. 그건 바로 ‘제 은혜의 파이프는 막혀있어요!’라며 그것이 마치 자랑인 것처럼 떠벌린 것이나 다름이 없었다.

“상황에 상관없이 하나님을 하나님답게 ‘알아 주는 것’이 바로 하나님께 은혜를 받을 수 있는 잘 준비된 그릇임을 우리는 알아야 한다.
어려울 때는 ‘은혜’를 선포하고, 좋을 때는 ‘주권’을 드리는 것이 하나님을 잘 아는 사람의 진정한 모습이다. 은혜의 사람은, 어려울 때 절망하지 않고, 좋을 때 주권행사를 하지 않는다.”
너무도 은혜의 사람과는 반대로 살아왔다. 어려울 땐 한없이 절망하느라 은혜를 선포하지 못했고 좋을 때는 한없이 높아져서 하나님의 주권을 인정하지 못했다. 내 주위에 있는 모든 사람들이 요나단의 아들로서 므비보셋이 아니었고 사울의 손자인 므비보셋으로만 여겨졌었다.

조금씩이지만 하나님의 주권을 인정하려는 마음이 내안에 자리잡아 가고 있다는 사실에만 만족했었는데 그것으로 끝이 아니다. 우선은 요나단의 아들인 므비보셋을 대접하고 챙기고 싶어 하는 마음이 내 안에 생겨야만 한다. 그래서 결국엔 원수와 같은 사울의 손자인 므비보셋을 극진히 대접한 다윗의 마음을 이어받아 원수를 사랑하라신 예수님의 명령을 기쁨으로 순종하게 되는 축복을 누려야 하는 것이다.
받은 은혜를 나누어야 한다는 거룩한 부담감이 이렇게 무거운 십자가이리라고는 상상해보지 못했다. 할 수만 있다면 내려놓고 싶다는 유혹이 너무나 강하다. 누구나 다 할 수 있는 것이라 생각했었는데...... 눈에 보이지 않는 영생의 면류관을 바라보고 성령의 인도하심만을 붙잡고 달려간 믿음의 사람들이 참으로 대단했음을 더 이상 부인할 수가 없다

홍인기

2006-05-19 04:04:03

"하나님의 은혜를 알아야 하고, 부모님의 은혜를 알아야 하고, 스승의 은혜를 잊지 말아야 지혜로운 사람이요, 은혜를 받을 만한 가치가 있는 사람이다"

말씀의 요지에서 조금 벗어나긴 하지만 위의 말씀을 보고 회개하는 마음이 앞섰습니다. 말씀처럼 그 은혜로 따지면 하나님>부모님>스승님 이겠지만 지금까지의 제모습은 부모님>하나님>스승님 순이 아닌가 싶습니다.
부모님의 은혜를 너무나도 잘 알고 그 수고를 눈물로 깨달은 적이 많았던지라 어쩌면 하나님보다 부모님의 은혜를 귀히 여겼지 않나 하는 생각이 듭니다.
부모님께서 늘 말씀하시는...."우기가 너희에게 줄수 있는것은 하나님께 기도하는것 뿐이다"라는 말씀....기도해주시는 부모님께 감사를 드렸지 진정 나 자신은 하나님께 받은 은혜에 대해 얼만큼이나 감사하고 살았는지 ....회개하게 되었습니다.
모든일의 주체는 하나님이시지 나나 주변사람이나 나의 수고가 아님을 더 절실히 깨닫게 해주시옵기를 기도합니다.

"하나님도 반하셔서 ‘은혜를 선포하는 다윗’이 가는 곳마다 승리를 주셨던 것이다."

이번주 내내 진욱이 엄마가 입버릇처럼 내뱉는 말이 있습니다. 은혜를 선포하리라~~ 아내의 믿음의 순수함에 가끔 놀라면서 찌들은 제모습또한 보게 됩니다.
하나님께서 아내의 순수한 믿음을 기뻐하시고 주실 은혜들이 저에게도 덤으로 미칠것을 믿습니다.^^

"모든 것이 주께로 말미암았사오니 우리가 주의 손에서 받은 것으로 주께 드렸을 뿐이니이다’(대상29:14)"

한국 교회에서 헌금찬송이 "모든것이 주께로부터 왔으니~~이예물을 주님께 바~치이~나~이~다..."라는 찬송가가 생각납니다.
어릴때부터 수도없이 불러왔던 이찬송가를 마음에 새기고 불러본적이 몇번이나 있을까 생각해보니....아마도 제로인듯 합니다.
습관적인 믿음과 늘 그랬던것처럼의 신앙생활......
요즘에 와서야 이런것들을 하나씩 깨닫기 시작합니다. 제자훈련을 통해 변화되지 않는 제모습을 회개하지만 유일하게 변화되는것이 바로 저의 이러한 잘못된 신앙관과 습관들을 스스로 깨닫게 되는게 아닌가 싶습니다.

"여러분의 은혜의 탱크가 넘치기를 바란다.
여러분의 은혜의 파이프가 활짝 열리기를 축원한다."

이 축원에 아멘입니다!!

박성옥 선교사

2006-05-19 06:02:22

'위로부터 은혜를 받을 수 있는 사람이 되어야 하고, 아래로 그 은혜를 마음껏 나누어 줄 수 있는 사람이 되어야 한다.'
다윗처럼 나는 은혜를 얼마나 받을 자격이 있었고, 아래로 그 은혜를 얼만큼 나누어주었는지 생각하면 부끄러울 뿐이다.
'부모님이 내게 해준 것이 뭐가 있느냐, 누가 낳아달라고 했냐, 낳았으면 책임을 져야지.'
이 말씀에 양심이 찔렸다. 내가 어렸을 때 부모님께 그렇게 이야기 하지 아니하였던가...
이제 부모님이 이땅에 계시지 않지만, 철없는 그때의 모습이 지금 후회한들 누가 알아주겠는가. 내가 자식을 키워보니 부모의 심정을 알게 되었다. 돌아가신 부모님께 불효했던 것을 회개한다.
어버이날 딸들이 "엄마, 잘 키워주셔서 고마워요."라는 말에 또 한번 부끄러웠다. 딸들이 어렸을 때 교회일 하느라고 아이들을 잘 돌보지 못했고, 전적으로 하나님과 시어머님이 키워주셨는데, 딸들이 고마워하는 마음이 하나님의 은혜 중에 은혜라고 생각하며 감사하게 되었다.
'은혜는 너무 크기 때문에 갚을 수 없다. 단지 알아주는 것으로 대신할 뿐이다.'
알아준다는 것이 얼마나 고마운지, 서로가 세워주고 알아주며 살아가는 것이 우리에게 큰 힘과 용기를 주는 것이 아닐까...

마준철목사

2006-05-19 06:59:32

"믿음의 사람은 무엇보다도, 은혜의 사람이 되어야 한다. 은혜의 통로가 되어야 한다. 위로부터 은혜를 받을 수 있는 사람이 되어야 하고, 아래로 그 은혜를 마음 것 나눠 줄 수 있는 사람이 되어야 한다"

목사라면, 누구나 듣기 원하는 말이 하나 있습니다. 그것은 다름 아니라, " 목사님, 오늘 은혜 많이 받았어요~"라는 말을 듣는 것입니다. 적어도 저에게는 그런 것 같습니다. 특히 설교를 죽을 쑤고 나서 이런 말을 들으면 위로가 되고 괜히 용기가 나곤 했던 것 같습니다.

성도님들이 은혜를 받았다면(그것이 인사성 맨트일지로 모르지만 ^^) 나는 은혜의 통로가 된 것인가 하는 생각을 해봅니다. 다윗을 보니까 결코 그렇지 않은 것 같습니다. 다윗은 그가 먼저 은혜의 사람으로 준비되어져 있었습니다. 문제는 내가 은혜의 사람이 되지 못하면 은혜는 절대로 흘러가지 못한다는 사실입니다.

저는 목사가 은혜롭지 못하다는 말을 늘 두려워하고 살았던 것 같습니다. 은혜의 사람이 된다는 것은 무엇일까? 늘 고민했었는데, 오늘 말씀을 통해 너무나 간단한 진리를 깨달았습니다. 그것은 하나님을 하나님으로 알아주는 것이었습니다. 상황에 초월해서 하나님을 의식하고 살아가는 것이었습니다.

저는 성격이 너무 단순해서 힘들고 어려울 때는 금방 얼굴에 표시가 납니다. 얼굴로 나 힘들다고 선전하고 다녔습니다. 그리고 일이 잘 풀릴 때는 동네방네 웃으면서 티를 있는대로 다 내곤 했습니다. 누가 막내 아니랄까봐 그러고 다니냐고 핀잔도 많이 들었던 것 같습니다.

하나님을 하나님으로 알아주는 것은 다윗처럼 힘들고 어려울 때, ‘은혜’를 선포하고, 좋을 때는 ‘주권’을 드리는 것이라는 것을 깨달았습니다. 상황이 나를 지배하는 것이 아니라 하나님 그 분이 나를 온전히 지배해야함을..... 힘들 때 더 기쁘게 웃겠습니다! 일이 잘 될 때 감사하는 사람이 될 것을 다짐해 봅니다!


이소진

2006-05-19 08:17:12

다윗은 은혜를 받을 그릇이 준비된 사람이었고, 은혜를 나누어 줄 파이프가 준비된 사람이었다. 믿음의 사람은 은혜의 통로가 되어야 한다. 위로부터 은혜를 받을 수 있는 사람이 되어야 하고, 아래로 그 은혜를 마음껏 나눠 줄 수 있는 사람이 되어야 한다.

은혜의 통로라는 말이 내겐 참 어려웠습니다. 이 말은 내가 예수님 안에서 성장하면서 배워나가는 말인 것 같습니다. 제자훈련을 받으며 은혜를 받을 수 있는 그릇이 준비된 것도 중요하지만, 받은 은혜를 맘껏 나누어주며 은혜의 통로가 되는 축복과 기쁨을 깨달아 가고 있습니다. 막상 바쁜 생활 속에 있다보면 은혜의 통로에 대해 생각하는 시간이 줄어듬을 느낄 때도 있지만, 속회 모임을 통혜 서로 은혜를 나눌 수 있는 것이 너무 기쁩니다.

다윗은 죽음 앞에서도 늘 기죽지 않고, 두려워하지 않고, 은혜를 선포했다. 욥은 재산을 다 잃고, 자식 다 잃고, 건강까지 다 잃었지만, 은혜의 주님은 잃지 않았고, 그런 절망 속에서 은혜를 선포했다.

어떠한 일이 닥쳐도 절망하고 좌절하기보다는 은혜를 선포하는 담대함이 너무 좋습니다. 한때 예수님을 믿는 믿음안의 담대함은 저의 기도제목이었습니다. 저는 어떠한 일에도 예수님께서 주시는 담대함으로 하나님께 영광 돌리길 원했습니다. 세상에 휩쓰리지 않는 자녀가 되길 원했습니다. 학교공부가 힘들때, 육체적 피곤함을 느낄 때 은혜의 주님을 선포하고 담대함을 구할 수 있기에 계속해서 일어날 수 있다는 것을 믿습니다.

조정현

2006-05-19 08:19:54

믿음의 사람은 위로부터 은혜를 받을 수 있는 사람이 되어야 하고, 아래로 그 은혜를 마음 것 나눠 줄 수 있는 사람이 되어야 한다...
--신앙생활을 하며 늘 하나님의 은혜를 구하는 생활을 하며 그렇게 기도하지만 막상 내가 받은 은혜를 얼마나 세상가운데로 흘려가면서 살았었는지 돌아보니 부끄럽기만 합니다..은혜의 강물을 흘리며 사는게 아니라 내 속에서 그것을 가두며 살아가고 있지는 않았는지 하나님의 마음을 너무나 모르며 살아가고 있었던것 같습니다..은혜를 베푸는 사람은 단지 그것을 알아주기만을 바란다는 말씀 가운데 정말 우리 하나님도 그러시구나..하는 생각을 했습니다..
저만해도 성도님들에게 마음을 쓰고,기도를 하며, 도와줄때 단지 그것을 알아주는 성도가 있으면 그것으로 기쁘고 감사하다는것을 보아도 정말 그런것 같습니다..
하나님의 정말 기뻐하시는 마음과 믿음이 은혜를 아는 지혜가 제 속에 넘치기를 원합니다...
힘든 가운데서 하나님의 은혜를 정말 선포하며 좋을때는 주권을 돌려드리는 하나님을 하나님답게 알아드릴수 있는 삶을 살리라..다짐합니다..
오늘은 내 삶속에 므비보셋 같은 사람이 있는지 돌아보며 그 사람을 위해서 기도할수 있어야 하겠습니다...

노재훈

2006-05-19 09:50:46

므비보셋에게 사울 왕의 모든 토지를 다 주고, 왕자의 신분으로 신분을 회복시키고, 36명의 종도 주었다.
그리고 사울이 아무죄도 없는 기브온사람들을 학살로 인한 기브온 사람들의 억울함을 풀어주기 위해 사울의 일곱 아들들을 넘겨줘야 했다. 일곱을 내주어야 한다면 첫째로 내주어야할 사람이 므비보셋이었다. 그러나 다윗은 그를 아끼고 사울의 다른 후손 일곱 사람을 내주었다.
그리고 므비보셋은 죽을 때까지 살해당하지 않고 보호를 받았다.
다윗은 은혜에 붙잡힌 사람이었다.
은혜를 아는 사람 다윗의 모습에서 정말 다위과 같이 은혜를 잊지 않는게 얼마나 중요한지를 깨닳았다.
다윗은 엄청난 은혜로운 일을 할 수 있게 되었고, 자손 대대로 은혜를 입은 가문이 되었다는것에 축복의 통로가 무었인지 깨닳았다.
''원수는 잊을수록 이롭고, 은혜는 기억할수록 은혜로운 법이다.이것이 바로 은혜의 파이프를 잘 만드는 비법이다.''
은혜는 기억할수 있지만 원수를 잊는일은 쉽지 않는 일이라 생각한다.
지금까지 원수라고 생각되는 사람은 단 한명도 없지만 주위를 볼때 원수때문에 괴로워하고 아파하는것을 많이 보아왔지만 상당한 시간이 걸려 잊어버린사람도 있지만 절대 잊지 못하는 사람도 보아왔다.
하나님 절 은혜의 사람으로 만들어 주시옵소서.

김경희

2006-05-19 18:26:06

‘너는 칼과 창과 단창으로 내게 오거니와 나는 만군의 여호와의 이름으로 네게 가노라!’(삼상17:45)
은혜를 아는 사람은 골리앗과 같은 위기를 만났을 때에도 ‘패배’를 시인하는 것이 아니라 ‘은혜’를 당당하게 선포하는 사람이다.
이 말씀에 큰 은혜와 도전을 받았다.
요즘들어서 힘이들때면 나도모르게 한숨이 절로나오고 부정적인 말이 나올때가 많았었다.
다윗은 골리앗과 싸워서 도저히 이길수 없는 상황에 놓였음에도 불구하고 하나님이 함께 하시면 반드시 이기리라는 믿음만 가지고 당당히 은혜를 선포하며 나아갔다.
그럴때에 승리의 기쁨을 맛보게 되었다.
나또한 다윗처럼 어렵고 힘들때일수록 은혜의 말을 선포할때에 주님은 나의 편이 되어주셔서 반드시 일어나게 해주시리라는 확신을 가지게 되었다.
절망의 때가 기회의 때라는 말씀처럼 이 일본땅에서 주님의 빛을 발하며 당당히 일어서는 딸이 되리라 다짐해본다.

소대섭

2006-05-19 20:06:32

"참 효자는 부모님께 무슨 요란한 선물을 해 드리는 사람이 아니라,
부모님의 마음을 진심으로 알아 주는 자식이다." 라는 말이
제일 먼저 가슴을 쳤습니다.
저희 어머니는 참 걱정거리가 많으십니다.
그 중 으뜸은 돈 걱정입니다. 돈이 없어서 여러가지 문제가 많다고...
그럴 때마다 저와 어머니의 입씨름이 시작됩니다.
그러고 나서 항상 후회를 합니다. 그냥 들어 드릴껄...
그러고 보면 참 못된 자식입니다. 육신의 부모님을 제대로 섬기지 못하면
참 부모이신 하나님을 제대로 섬기지 못할 것임을
분명히 예수님께서도 말씀하셨는데...
전 아직 많이 부족한 신앙인임을 깨닫게 됩니다.
설교 말씀 중에 보면 은혜를 아는 사람이 되어야 한다고 합니다.
일본에서의 사역을 위해 기다리고 준비하는 지금...
내가 얼마나 어머님의 마음을 헤아리지 못하고 살았는지..
다른 때보다 더욱 절실히 알게 되었고...
우리 어머니의 은혜가 얼마나 큰지 알게 되었습니다.
앞으로는 어머니의 은혜를 좀 더 깊이 알고 이해하는 사람이 되어야겠다고
결단하였습니다. 지난 못된 행실을 회개하면서....

"... 불행할 때나, 행복할 때나, 있을 때나, 없을 때나, 위험할 때나, 평안할 때나,
늘 하나님을 하나님으로 철저하게 인정했다."
이 구절을 통해서... 상황과 조건 때문에 나의 마음이 흔들렸던 적이
많았다는 것을 돌아보게 됩니다. 어쩔 수 없는 인간이기에 그렇다고 위로하지만
그렇다하더라도 온전하게 하나님을 섬기지 못하고 마음이 불안해 지거나
왠지 우쭐해질 때도 있었고, 조급해 질 때도 있었습니다.
나의 상황과 조건 때문에 나의 마음이 흔들려 온전히 하나님을 볼 수
없던 나의 믿음 없는 모습입니다. 아직도 많은 것이 부족하다고 생각하면서
동시에 이런 걸 깨닫게 하시는 것이 바로 은혜구나 하고 깨닫습니다.

- 은혜의 사람은
어려울 때 절망하지 않고, 좋을 때 주권행사를 하지 않는다. -

"내가 무엇을 붙잡고 인생을 사는가가
내 인생을 결정한다."
우리 속담에 '뭐 눈에는 뭐 밖에 뵈지 않는다.'는 말이 있던데...
그런 것 같습니다.
내가 은혜와 감사의 생활을 제대로 하고 있다면
남을 감동시키려 해서 남이 감동하는 것이 아니라...
자연히 은혜와 감사의 향기가 품어져 나온다는 것을 알게 됩니다.
엊그제 어머니와 통화하면서 또 좋지 않는 상황에 신세한탄을 하시는
어머니의 말씀을 들었습니다.. 그 때...
'제발 좋은 것만 생각 좀 하세요... 예?!' 하고 뱉어 버렸던 것이 생각났습니다.
말로는 좋은 걸 생각하시라고 하면서도
실은 그러한 어머니의 모습이 좋지 않는 모습이라고만 생각하고 있다는
것을 깨닫는 순간.. 눈물이 날 뻔 했습니다.
'... 아직도 멀었구나... '

아직도 멀었지만... 은혜를 알고, 은혜를 갚고, 은혜의 파이프를 만들어 가는
사람으로 살 수 있도록 노력할 수 있는 기회를 주신 하나님께
감사의 기도를 빼먹지 말아야 겠습니다.


김민정

2006-05-20 01:12:01

다윗은 죽음 앞에서도 늘 기죽지 않고, 두려워하지 않고 ‘은혜’를 선포했다.
‘내가 사망의 음침한 골짜기로 다닐지라도 해를 두려워하지 않을 것은
주께서 나와 함께 하심이니라’(시23:4)
하나님은 ‘은혜의 선포자’를 기뻐하신다. 은혜의 선포자를 책임지신다. 은혜의 선포자와 함께 일하신다. 특히 위기를 만났을 때 은혜를 믿음으로 선포하는 다윗과 같은 사람을 좋아하신다.
모든 믿음의 사람은 인생의 위기가 왔을 때에, 절대로 환경에 항복하지 않고 은혜의 주님을 선포하며 찬송했다. 욥도 그랬다. 재산 다 잃고, 자식 다 잃고, 건강까지 다 잃었지만, 은혜의 주님은 잃지 않았다. 그는 그런 절망 속에서도 ‘은혜’를 선포했다.
‘나의 가는 길을 오직 그가 아시나니 그가 나를 단련하신 후에는 내가 정금같이 나오리라’(욥23:10)
믿음의 사람은 절망의 어둠이 깊으면 깊을수록 ‘은혜의 선포’의 목소리가 높아졌다. 그들은 하나님을 확실히 알고 있었기 때문이다. 절망의 깊이만큼 은혜의 높이도 높아질 줄을 확신하고 있었기 때문이다. 그래서 다윗에게는 절망의 때가 늘 기회의 때로 사용되었던 것이다.

설교말씀중에 위기 속에서의 다윗의 모습과 욥의 모습이 저의 마음에 가장 와 닿습니다.
이번 한 주는 정말 힘듭니다. 하나님은 왜 저에게 고난의 시간을 허락하신 걸까요...
이제 제자 훈련의 막바지에 가까워옵니다. 실제로 마라톤을 해 본적은 없지만... 마라톤에 비유하자면 이제 35km의 지점을 통과하고 40km지점에 다다른것 같습니다.
목은 끊임없이 타고 온몸은 땀에 젖어 있습니다. 주변에서는 환호성으로 저를 응원하고 있지만 사실 귀에 들어오지 않습니다. 오직 머리속엔 골인지점에 언제 다다를까... 이 생각밖엔 없습니다. 몇 위를 할까... 몇 등으로 들어갈 수 있을까가 목표가 아닙니다. 정말... 골인 지점까지만 가자... 이 생각뿐입니다.
하나님, 지금은 하나님 아직 어디 계신지 모르지만, 42.195km 를 통과하는 순간 그때는 하나님 저를 안아주시겠죠... 꼭 그럴 것이라고 오늘도 믿고 달립니다.

木下 

2006-05-20 04:44:54

「恵みはあまりにも大きいので返すことができない。ただ、「知ること」が必要である。
恵みを知ることによって初めて、本当に知恵のある人を知ることができる。」
私は、神様が与えてくださっている恵みをすべて理解できませんし、ごくわずかなことしか理解できていないだろうと思います。
これからの人生でいろいろな恵みを経験して感謝していきたいと思います。
良いことも辛いこともいろいろとあると思いますが、すべて神様のご計画の中で万事がうまくいって
いると考えられるようにしていきたいです。
ダビデのように、恵みを知って、自分だけのものにしないで、隣人と共有する人生を歩みたいです。

배미화

2006-05-20 06:50:46

1. 은혜는 너는 크기 때문에 갚을 수가 없다. 단지 알아주는 것 으로 대신할 뿐이다.
육을 부모의 은혜도 100분의 1도 못갚는데, 어찌 만물의 주인되신 하나님의 은혜를 다 갚을 길이 있겠는가. 이번 설교를 통해 많은 걸 깨닫고 회개했습니다.
어린시절 아버지의 사업실패로 어려웠을때도 어머니는 내가 원하는 건 다 해 주셨다. 오죽하면 난 엄마를 요술장이라 불렀을까. 하지만 그뒤에 숨겨진 어머니의 고난은 뼈를 깍는 아픔보다 더 힘들었을 것이다. 자식을 위해서라면 자신은 어떻게 되든 상관없을 것이였다.
그땐 왜 그렇게 바보같이 철이 없었을까?
조금 철이 든 지금은 알아주는 것 뿐만 아니라 은혜에 보답해야한다고 생각한다.
물질이든 마음이든간에 어떠한 형태로든...

또한 하나님의 은혜도 마찬가지다. 내가 믿음이 없었을 때, 아니 하나님을 비난, 비판, 부정했을 때 하나님은 얼마나 맘이 아팠을까? 아마 혀를 깨물고 죽고 싶을정도로 내가 안타까웠을것이다.
주님의 그 사랑과 은혜는 정말 어떠한 형태든 갚을 길이 없지만, 갚을려고 노력하고 있고 계속 노력할 것입니다. 주님! 지켜봐주세요.

2. 은혜를 선포하는 사람에게 은혜는 임하고, 은혜를 베푸는 사람에게 은혜는 계속 흐르는 법이다.

2년전 전문학교 2학년에 재학중일 때, 일본에서의 취직과 물질로 새벽기도를 나올때, 아는 언니가 선뜻 5만엔을 주었다.
2학년에 편입한 그 언니도 물론 크리스챤이었다. 남에게 항상 베풀고 도와주는 모습을 보면서 나도 저런 크리스챤이 되어야지 하고 무척이나 많이 따랐던 언니였다. 천사라는 말이 너무 잘 어울리는 언니였다.
하지만 돈을 주리라고는 생각을 못했기에 순간 넘 놀라 거절을 했지만, 계속 거절을 하면 언니도 무안할 것 같고 해서 결국엔 받았다. 언니가 주면서 이렇게 말했다.
'새벽기도 나가면서 열심히 생활하는 모습이 기특해서 번역비로 10만엔 벌었는데 5만엔 줄테니 필요한거 사. 나도 부모한테 받은 용돈이면 이렇게 못주지, 내가 번돈이고 너무 쉽게 번 것 같아서 주는 거니깐 부담 갖지마'
순간 하나님께서 그 언니를 통해 내게 임하시는 짜릿한 느낌이 났다.
언니에게도 고마웠지만 하나님께 너무 감사했다.
그리고 그 돈을 나 혼자 쓸수 없어서 나도 나처럼 부유하지 않은 유학생에서 2만엔 주었다.
직장인이 된 지금 어려운 유학생을 보면 참 아타깝다. 많이는 도와주지는 못하지만 내 나름대로 조금씩 도와줄려고 노력하다. 더 많이 도와줄수 있게 해달라고 기도한다.
배물고 나눠준 만큼 우리 주님은 몇배로 채워주신다는 걸 내게 확실하게 못박아주신 주님!
참 감사합니다.

김철중

2006-05-20 10:06:59

'원수를 갚으려고 하는 사람에게는 원수가 임하지만
은혜를 갚으려고 하는 사람에게는 은혜가 임하는 법이다.'

요즘 매일 5가지 감사를 통해 작은것에도 감사하게 되었습니다. 어떤 아는 일본분은 항상 운전하기 전과 후에 신에게 감사기도를 드린다고 하더군요. 기독교인도 아닌분이 감사가 몸에 밴것을 보고 많은 도전을 받았습니다. 감사가 축복의 열쇠라는것을 깨닫게 되었습니다.

정한나

2006-05-24 03:34:20

준비된 그릇으로 하나님의 은혜를 누구보다도 많이 받았고, 그 은혜를 끊임없이 누군가에게 흘려보내는 은혜의 파이프가 된 다윗, 그리고 그 은혜때문에 누구보다도 복된 삶을 살았던 다윗을 한없이 본받고 싶습니다. 하나님의 은혜를 누구보다 많이 받았다고 생각한 저는 지금 과연 그 은혜들을 흘려보내고 있는지 생각해봅니다. 저도 다윗처럼 준비된 그릇으로 하나님의 은혜들을 놓치지 않았으면 좋겠고 또한 은혜의 파이프가 되었으면 좋겠습니다. 제게 부어주신 은혜의 샘물들이 고여있지 않고 흐르고 흘러서 많은 사람들에게 전해졌으면 좋겠습니다. 오늘 이 말씀에서 받은 은혜도 이번주에 만나는 사람에게 꼭 나누도록 하겠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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