누가 크냐?
말씀//눅22:24-27
사람은 누구나 남과 비교했을 때, 못하다는 소리를 듣고 싶어 하지 않는다.
남과 경쟁에서 이기면 그것이 마냥 즐겁기만 하다. 운동경기에서도 지고 나면 어떤 게임이라도 기분이 좋은 경우는 없다.
남들보다 나은 자가 되고, 남들보다 높은 자가 되고, 남들보다 잘 난 자가 되고 싶은 것이 인간의 본심이다.
예수님의 제자들인 사도들 사이에서도 이것이 문제가 되었다.
자기들 중에 누가 더 큰 자, 위대한 자인지에 대한 다툼이 일어 났던 것이다.
예수님께서는 역시 지혜로우시다.
예수님은 제자들 중에 큰 자의 순서를 정해 주신 것이 아니라,
어떤 자가 하나님 안에서 진정 큰 자인지 그 원리와 기준을 가르쳐 주셨다.
그러자 제자들 중에 있던 ‘큰 자’의 논쟁은 쑥 들어가 버리고 서로 부끄러워 하게 된다.
예수님이 말씀하신 ‘큰 자의 원리’는 무엇일까?
이것은 다시 말하면 천국형 ‘지도자의 원리’를 말하고 있다.
세상의 많은 사람들은 지도자가 되기 위해서, 높은 사람이 되기 위해서 혈안이 되었다.
여기 주님께서 진정한 지도자의 길을 강론하고 계신다.
우리 모두가 다 천국형 지도자, 성경적 대 지도자가 되기를 바란다.
이 땅의 가장 위대한 지도자는 예수님이시다.
이 사실은 역사가 증명해 주고 세상 모든 사람이 인정하는 사실이다.
오늘날 예수님처럼 이렇게 큰 영향력을 미치고 계신 분이 어디에 계신단 말인가?
그러면 예수님이 친히 제자들에게 가르쳤고 몸소 행하셨던 지도자의 참 모습은 무엇일까?
주님의 말씀과 십자가를 통해서 마음 판에 새기고자 한다.
예수님은 말씀하신다.
본문 25절의 지도력을 과감히 정리하고 26절의 지도력을 발휘하는 자가 되라고 명령하신다.
망할 지도력을 가진 사람은 계속해서 25절을 사모하지만,
영원한 천국의 지도력을 사모하는 사람은 오늘도 26절을 놓고 씨름하는 사람이다.
그 당시 세상에서 제일 큰 자는 왕이었다. 그 당시에는 왕의 말이 곧 법이었다.
1. 세상적 지도자의 모습
그 사람들은 어떤 지도력을 갖고 있었을까?
‘임금(왕)들은 저희(백성)를 주관하며’(25)
여기서 ‘주관’이란 말은 주인이 종을 부린다는 뜻이다. 왕들은 백성들을 자신의 종으로 여겼다. 그들은 백성을 종같이 부리며 지배하였다. 그들은 백성들을 한없이 낮추었다. 그들은 그들에게 주인행세를 하였다.
그리고 ‘그들은 스스로 은인이라 칭함을 받았다’(25)
은인이란 말은 ‘은혜를 베푸는 사람’이란 뜻이므로, 자신을 백성들로 하여금 높이게 하였던 것이다. 그러면 백성들은 권력자들의 힘이 무서워서 마지 못해 지도자를 높이게 된다.
세상의 지도자는 한마디로 말해,
백성을 낮추고 자신을 높이려고 하는 사람이다.
세상 사람들의 본성에는 늘 이런 것이 도사리고 있다. 자신은 그런 사람이 아니라고 부정하지만, 남이 잘되는 것을 늘 시기하며 기회가 되면 남을 낮출려고 하고, 또 은근히 자신을 높이고 싶어하거나 자신의 잘 난 것을 드러낼려고 하는 마음이 있다.
이런 세속적이 지도력의 잡초를 제거해야 한다. 그래야만 영적 지도력의 나무들이 무럭 무럭 잘 자라게 될 것이기 때문이다.
2. 천국형 지도자의 모습
예수님이 우리에게 보여 주신 영원한 지도자상은 어떤 것일까?
먼저 예수님은 말씀으로 바른 지도자의 모습을 가르쳐 주셨다.
‘너희 중에 큰 자는 젊은 자와 같고’(26)
이 말씀을 풀어 쓰면 ‘너희 중에 높은 자는 그 중에서 나이가 가장 어린 자와 같아야 한다’는 말이다. 모인 사람들 중에서 가장 나이가 어리다면 어떤 생각이 드는가? 사람이 어쩔 수 없이 겸손해진다. 자기를 제일 낮출 수 밖에 없다. 바로 이 말씀은 높은 자리에 있을수록 자신을 낮추라는 말이다. 주님은 친히 ‘오직 겸손한 마음으로’ ‘나보다 남을 낫게 여기신 분이시다.’ 그래서 예수님은 우리 자신보다도 우리를 더 잘 이해해 주셨고, 그런 우리를 십자가에서 다시 회복시키셨다. 그것이 은혜가 되어 예수님은 오늘도 우리의 주님으로 높임을 받고 계신다. 자신이 낮아진다고 결코 낮아지는 것이 아니다. 내가 낮아지는 것만큼 상대편은 나를 높여준다. 이것이 널뛰기의 원리가 아니던가! 내가 한없이 낮아져서 상대편을 힘껏 높여줄 때, 높이 올라간 상대는 자연히 있는 힘을 다하여 나를 높여 주는 것이 자연의 이치다. 하나님이 세상에 오셔서 인생의 최고 밑바닥인 십자가에까지, 우리를 천국으로 높이기 위해서, 낮아 지셨기 때문에 우리 또한 예수님을 최고의 주님, 하나님으로 섬기고 있는 것이다.
두번째 말씀은 ‘두목은 섬기는 자와 같을 지니라.’(26)이다.
가장 높은 자는 종과 같아야 한다는 말이다.
이 말은 25절의 말과 대조를 잘 이루는 말이다. 세상 지도자는 백성을 종처럼 부리지만 영적 지도자는 자신이 백성을 위해서 종처럼 되는 것이다. 즉, 영적 바른 지도자는 남을 할 수 있는 대로 최대한 높여 주는 사람임을 말하고 있다.
종은 주인을 위해서 일을 하는 사명을 가지고 있다. 따라서 천국형 지도자는 남을 위해서 무언가 선한 일을 해 주는 사람이란 말이다.
예수님처럼 말이다. 예수님은 이 세상에 스스로 종의 모습으로 왔다고 하셨다.
빌2:7과 막10:45절이 이를 잘 말해 주고 있지만, 그 분의 십자가가 이것을 확연히 증명해 주시고 계신다. 예수님은 하나님이시면서 죄인인 우리를 섬기기 위해서 친히 죽음의 십자가를 지신 것이다. 이것이야말로 우리의 대장되신 예수님의 진정한 지도자의 모습이다.
27절의 말씀처럼, 예수님은 앉아서 식탁에 앉아서 대접받는 분이 아니라, 직접 십자가에서 자신의 몸과 피로 생명의 떡과 생명의 음료수를 만드셔서 우리에게 갖다 주어 먹게 하신 분이다. 이것이 바로 예수님의 지도자의 진면목이다.
참된 지도자는 늘 ‘종의 마음’을 품고 있는 사람이다.
세상의 지도자는 자신을 최고로 높이고, 남을 최저로 낮추는 사람이지만,
천국형 지도자는 자신을 최저로 낮추고, 남을 최고로 높여주는 사람이다.
3. 결론
세상 지도자는 자기 십자가를 남에게 지우지만
천국형 지도자는 남의 십자가를 자신이 대신 지고 가는 사람이다.
세상 지도자는 대접받는 것을 좋아하지만
천국형 지도자는 섬기기를 좋아한다.
세상 지도자는 자기를 높이기 위하여 남을 낮추려고 애쓰지만
천국형 지도자는 남을 높여주기 위해 자신을 낮추는 일에 혼신의 힘을 쏟는다.
남을 위해 십자가를 질 수 있는 사람만이 진정한 지도자가 될 수 있다.
예수님의 명성은 십자가의 명성이다.
자신 때문에 지는 십자가는 부끄러움과 멸망과 저주가 될 수 있지만
남을 위해 지는 십자가는 자랑과 영생과 축복의 씨앗이다.
섬김의 씨앗에는 반드시 ‘섬김받음’의 풍성한 열매가 있다.
‘주님의 십자가를 나도 지고 제자의 길을 걷게 하옵소서!’
말씀//눅22:24-27
사람은 누구나 남과 비교했을 때, 못하다는 소리를 듣고 싶어 하지 않는다.
남과 경쟁에서 이기면 그것이 마냥 즐겁기만 하다. 운동경기에서도 지고 나면 어떤 게임이라도 기분이 좋은 경우는 없다.
남들보다 나은 자가 되고, 남들보다 높은 자가 되고, 남들보다 잘 난 자가 되고 싶은 것이 인간의 본심이다.
예수님의 제자들인 사도들 사이에서도 이것이 문제가 되었다.
자기들 중에 누가 더 큰 자, 위대한 자인지에 대한 다툼이 일어 났던 것이다.
예수님께서는 역시 지혜로우시다.
예수님은 제자들 중에 큰 자의 순서를 정해 주신 것이 아니라,
어떤 자가 하나님 안에서 진정 큰 자인지 그 원리와 기준을 가르쳐 주셨다.
그러자 제자들 중에 있던 ‘큰 자’의 논쟁은 쑥 들어가 버리고 서로 부끄러워 하게 된다.
예수님이 말씀하신 ‘큰 자의 원리’는 무엇일까?
이것은 다시 말하면 천국형 ‘지도자의 원리’를 말하고 있다.
세상의 많은 사람들은 지도자가 되기 위해서, 높은 사람이 되기 위해서 혈안이 되었다.
여기 주님께서 진정한 지도자의 길을 강론하고 계신다.
우리 모두가 다 천국형 지도자, 성경적 대 지도자가 되기를 바란다.
이 땅의 가장 위대한 지도자는 예수님이시다.
이 사실은 역사가 증명해 주고 세상 모든 사람이 인정하는 사실이다.
오늘날 예수님처럼 이렇게 큰 영향력을 미치고 계신 분이 어디에 계신단 말인가?
그러면 예수님이 친히 제자들에게 가르쳤고 몸소 행하셨던 지도자의 참 모습은 무엇일까?
주님의 말씀과 십자가를 통해서 마음 판에 새기고자 한다.
예수님은 말씀하신다.
본문 25절의 지도력을 과감히 정리하고 26절의 지도력을 발휘하는 자가 되라고 명령하신다.
망할 지도력을 가진 사람은 계속해서 25절을 사모하지만,
영원한 천국의 지도력을 사모하는 사람은 오늘도 26절을 놓고 씨름하는 사람이다.
그 당시 세상에서 제일 큰 자는 왕이었다. 그 당시에는 왕의 말이 곧 법이었다.
1. 세상적 지도자의 모습
그 사람들은 어떤 지도력을 갖고 있었을까?
‘임금(왕)들은 저희(백성)를 주관하며’(25)
여기서 ‘주관’이란 말은 주인이 종을 부린다는 뜻이다. 왕들은 백성들을 자신의 종으로 여겼다. 그들은 백성을 종같이 부리며 지배하였다. 그들은 백성들을 한없이 낮추었다. 그들은 그들에게 주인행세를 하였다.
그리고 ‘그들은 스스로 은인이라 칭함을 받았다’(25)
은인이란 말은 ‘은혜를 베푸는 사람’이란 뜻이므로, 자신을 백성들로 하여금 높이게 하였던 것이다. 그러면 백성들은 권력자들의 힘이 무서워서 마지 못해 지도자를 높이게 된다.
세상의 지도자는 한마디로 말해,
백성을 낮추고 자신을 높이려고 하는 사람이다.
세상 사람들의 본성에는 늘 이런 것이 도사리고 있다. 자신은 그런 사람이 아니라고 부정하지만, 남이 잘되는 것을 늘 시기하며 기회가 되면 남을 낮출려고 하고, 또 은근히 자신을 높이고 싶어하거나 자신의 잘 난 것을 드러낼려고 하는 마음이 있다.
이런 세속적이 지도력의 잡초를 제거해야 한다. 그래야만 영적 지도력의 나무들이 무럭 무럭 잘 자라게 될 것이기 때문이다.
2. 천국형 지도자의 모습
예수님이 우리에게 보여 주신 영원한 지도자상은 어떤 것일까?
먼저 예수님은 말씀으로 바른 지도자의 모습을 가르쳐 주셨다.
‘너희 중에 큰 자는 젊은 자와 같고’(26)
이 말씀을 풀어 쓰면 ‘너희 중에 높은 자는 그 중에서 나이가 가장 어린 자와 같아야 한다’는 말이다. 모인 사람들 중에서 가장 나이가 어리다면 어떤 생각이 드는가? 사람이 어쩔 수 없이 겸손해진다. 자기를 제일 낮출 수 밖에 없다. 바로 이 말씀은 높은 자리에 있을수록 자신을 낮추라는 말이다. 주님은 친히 ‘오직 겸손한 마음으로’ ‘나보다 남을 낫게 여기신 분이시다.’ 그래서 예수님은 우리 자신보다도 우리를 더 잘 이해해 주셨고, 그런 우리를 십자가에서 다시 회복시키셨다. 그것이 은혜가 되어 예수님은 오늘도 우리의 주님으로 높임을 받고 계신다. 자신이 낮아진다고 결코 낮아지는 것이 아니다. 내가 낮아지는 것만큼 상대편은 나를 높여준다. 이것이 널뛰기의 원리가 아니던가! 내가 한없이 낮아져서 상대편을 힘껏 높여줄 때, 높이 올라간 상대는 자연히 있는 힘을 다하여 나를 높여 주는 것이 자연의 이치다. 하나님이 세상에 오셔서 인생의 최고 밑바닥인 십자가에까지, 우리를 천국으로 높이기 위해서, 낮아 지셨기 때문에 우리 또한 예수님을 최고의 주님, 하나님으로 섬기고 있는 것이다.
두번째 말씀은 ‘두목은 섬기는 자와 같을 지니라.’(26)이다.
가장 높은 자는 종과 같아야 한다는 말이다.
이 말은 25절의 말과 대조를 잘 이루는 말이다. 세상 지도자는 백성을 종처럼 부리지만 영적 지도자는 자신이 백성을 위해서 종처럼 되는 것이다. 즉, 영적 바른 지도자는 남을 할 수 있는 대로 최대한 높여 주는 사람임을 말하고 있다.
종은 주인을 위해서 일을 하는 사명을 가지고 있다. 따라서 천국형 지도자는 남을 위해서 무언가 선한 일을 해 주는 사람이란 말이다.
예수님처럼 말이다. 예수님은 이 세상에 스스로 종의 모습으로 왔다고 하셨다.
빌2:7과 막10:45절이 이를 잘 말해 주고 있지만, 그 분의 십자가가 이것을 확연히 증명해 주시고 계신다. 예수님은 하나님이시면서 죄인인 우리를 섬기기 위해서 친히 죽음의 십자가를 지신 것이다. 이것이야말로 우리의 대장되신 예수님의 진정한 지도자의 모습이다.
27절의 말씀처럼, 예수님은 앉아서 식탁에 앉아서 대접받는 분이 아니라, 직접 십자가에서 자신의 몸과 피로 생명의 떡과 생명의 음료수를 만드셔서 우리에게 갖다 주어 먹게 하신 분이다. 이것이 바로 예수님의 지도자의 진면목이다.
참된 지도자는 늘 ‘종의 마음’을 품고 있는 사람이다.
세상의 지도자는 자신을 최고로 높이고, 남을 최저로 낮추는 사람이지만,
천국형 지도자는 자신을 최저로 낮추고, 남을 최고로 높여주는 사람이다.
3. 결론
세상 지도자는 자기 십자가를 남에게 지우지만
천국형 지도자는 남의 십자가를 자신이 대신 지고 가는 사람이다.
세상 지도자는 대접받는 것을 좋아하지만
천국형 지도자는 섬기기를 좋아한다.
세상 지도자는 자기를 높이기 위하여 남을 낮추려고 애쓰지만
천국형 지도자는 남을 높여주기 위해 자신을 낮추는 일에 혼신의 힘을 쏟는다.
남을 위해 십자가를 질 수 있는 사람만이 진정한 지도자가 될 수 있다.
예수님의 명성은 십자가의 명성이다.
자신 때문에 지는 십자가는 부끄러움과 멸망과 저주가 될 수 있지만
남을 위해 지는 십자가는 자랑과 영생과 축복의 씨앗이다.
섬김의 씨앗에는 반드시 ‘섬김받음’의 풍성한 열매가 있다.
‘주님의 십자가를 나도 지고 제자의 길을 걷게 하옵소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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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나니아가 죽은 이유25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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5 コメント
이용규목사
2005-08-08 19:40:42
하나님의 풍성하신 보화를 캐내는 주인이 될 것입니다.
안치현
2005-08-09 21:24:07
예수님께서는 이 십자가를 지고 가라 하십니다.
그러나 나의 삶 가운데 십자가를 지고 가는것이
힘들게 느껴질때가 종종 찾아옵니다.
아니, 내가 힘들게 만든다는 표현이 맞겠죠...
나 자신을 내 고집을 온전히 치지 못하여, 내 마음을 다스리지 못하여
내가 나 자신을 힘들게 만들고
또 그로 인하여 내 주변까지 힘들게 할때가 있습니다.
1. 내 십자가는 물론 남과 내 주변 환경의 십자가를 오직 감사함으로
지고 갈수 있도록 끊임없이 내 자신을 치기 원합니다.
2. 내 지식이 아닌 예수님의 섬김을 본받아 섬김에 대하여 다시 한번 되돌아보고 내 섬김의 방식에 대한 문제점을 찾아 고치겠습니다.
3. 자신을 낮춤에 끝은 없다고 생각합니다.
낮춤의 끝을 생각하며 그리고 그 끝에 도달하면 오히려 받으려하는 욕심이 생길지 모르니까요. 단, 주님보다 더욱 낮추었다 생각할때엔 다시 생각해 보겠습니다. 천국에서...^^
이미령
2005-08-09 23:13:38
어떤 상황에도 자족하며 감사하며....
종의 신분으로 살아도...
기죽지않는 힘 자존심을 살리는힘...
넘어져도 일어나는 힘을 내게 주시는....
한없는 사랑 때문에...
낮은 자리에 있어도 나는 행복할겁니다..
최현숙
2005-08-12 22:29:04
김태순
2005-08-13 21:46:17