혹시 요셉의 형제들이 요셉을 누구에게 팔았는지 기억나십니까?
"그 때에 미디안 사람 상인들이 지나가고 있는지라
형들이 요셉을 구덩이에서 끌어올리고 은 이십에 그를 이스마엘 사람들에게 팔매
그 상인들이 요셉을 데리고 애굽으로 갔더라"(창37:28)
"그 미디안 사람들은 그(요셉)를....보디발에게 팔았더라"(창37:36)
"....보디발이 그를 그리로 데려간 이스마엘 사람의 손에서 요셉을 사니라"(창39:1)
미디안 상인들은 누구고, 이스마엘 사람들은 또 누구일까요?
이들은 같은 사람들일까요?
여기서 또 다른 의문이 생겼습니다.
이스마엘은 그의 딸 바스맛을 야곱의 형제인 에서에게 주었습니다(창 28:9; 36:3).
에서와 사돈관계가 된 것은 분명 정략적 선택이었지만
어쨌건 이스마엘과 야곱은 아브라함의 피를 나눈 친족이며
형제의 장인이라는 혼맥으로 다시 이어져 있던 관계였습니다.
그런데 이스마엘 부족의 상인들이 감히 주인의 가까운 친척을 노예로 팔아넘긴다?
가능한 일일까요?
이집트로 가는 긴 여정동안 요셉이 '내가 야곱의 아들이라'고 한마디도 못했을까요?
족장의 친족과 관련된 중대사안이 이스마엘 족장에게 정말 보고 하나 없이 방치되었을까요?
더군다나 이스마엘 상인들은 그 뒤로도 정기적으로 이집트와 무역관계를 가졌는데 말이죠.
여기서 이스마엘이 누구인지 돌아보았습니다.
생각해보면 그는 서러운 아들이었습니다.
"...사래가 하갈을 학대하였더니 하갈이 사래 앞에서 도망하였더라"(창16:6)
태어나기 전 어머니의 배 속에 있을 때부터 학대받고 쫓겨나 광야로 도망해야 했죠.
"아브라함이 ...그 아이를 데리고 가게 하니 하갈이 나가서 브엘세바 광야에서 방황하더니"(창21:14)
한번은 다시 돌아올 수 있었지만 결국 또 다시 광야로 쫓겨나게 됩니다.
이삭을 희롱했다는 사라의 분노 때문이었습니다.
그는 광야의 척박함을 이기지 못할 아직 어린 아이였습니다. (창21:16,17)
학대받고 쫓겨난 어머니의 서러움을 가슴 속에 새기고 자랐을 그는
그래서인지 '장성하여 광야에서 거주하며 활 쏘는 자'(창21:20)가 되었습니다.
가슴 속의 분노는 폭력을 통해서 분출되었을 것이고 그것이 그를 전사로 키워냈습니다.
그런 이스마엘에게 이삭은 그의 모든 것을 앗아간 저주덩어리였겠지요.
한 세대가 지나갑니다.
이번에는 동생 야곱에게 장자권과 축복권을 빼앗긴 에서가 나타납니다.
장자이면서도 더 이상 장자일 수 없는 그에게 야곱은 그대로 저주덩어리였을 겁니다.
그는 이성을 잃고 이삭이 죽기만 하면 저 놈을 쳐죽이겠다고 마음먹기까지 했습니다.
그것이 이스마엘과의 공감대를 형성했을 것이고
이스마엘은 딸 마할랏을 에서에게 주어 강력한 동맹관계로까지 이어지게 됩니다.
이제 또 한 세대가 지나갑니다.
이번에도 먼저 태어난 형들은 요셉의 탄생으로 야곱의 모든 관심과 애정으로부터 소외됩니다.
그런 그들에게 요셉은 그대로 저주 덩어리일 수 밖에 없었습니다.
죽이고 싶을 정도로...
이스마엘 족속의 뿌리깊은 증오와 복수심은
세대를 건너뛰어 현재진행형인 요셉의 형제들과 묘한 공감대를 형성했을 겁니다.
우리는 당신들의 아픔을 이해합니다...충분히...
하지만
왜 하필이면 그 날 형들은 평소에 양치던 세겜을 벗어났을까요?
왜 하필이면 요셉이 헤메던 순간 때마침 누군가가 나타나서 네가 무엇을 찾느냐고 물었을까요?
왜 하필이면 그 사람이 형들의 대화를 엿들을 수 있었을까요?
왜 하필이면 형들이 양치러 간 곳이 이집트와의 무역경로였던 도단이었을까요?
왜 하필이면 그 순간 이스마엘 상인들이 그 곁을 지나갔을까요?
이 모든 겹쳐지는 우연은 정말 단순히 우연일까요?
우연이 아니라면....
"하나님이 그 아이와 함께 계시매
그가 장성하여 광야에서 거주하며 활 쏘는 자가 되었더니"(창21:20)
하나님은 이삭 뿐 아니라 이스마엘과도 함께 하셨다고 말씀하십니다.
그 이유는 이스마엘을 통해서도 하나님의 계획을 이루시고자 하는 뜻이 있었기 때문입니다.
광야에서 죽어가던 그 아이와 함께 하신 하나님이
이후 그 아이를 통해서 상상을 초월하는 구원의 역사를 이루어 가십니다.
이스마엘은 그의 탄생 이전에도, 그리고 그의 죽음 이후에도
역사의 전면에 드러나지 않지만 충실하게 하나님의 시나리오의 빈 조각을 채워냅니다.
"그 때에 미디안 사람 상인들이 지나가고 있는지라
형들이 요셉을 구덩이에서 끌어올리고 은 이십에 그를 이스마엘 사람들에게 팔매
그 상인들이 요셉을 데리고 애굽으로 갔더라"(창37:28)
"그 미디안 사람들은 그(요셉)를....보디발에게 팔았더라"(창37:36)
"....보디발이 그를 그리로 데려간 이스마엘 사람의 손에서 요셉을 사니라"(창39:1)
미디안 상인들은 누구고, 이스마엘 사람들은 또 누구일까요?
이들은 같은 사람들일까요?
여기서 또 다른 의문이 생겼습니다.
이스마엘은 그의 딸 바스맛을 야곱의 형제인 에서에게 주었습니다(창 28:9; 36:3).
에서와 사돈관계가 된 것은 분명 정략적 선택이었지만
어쨌건 이스마엘과 야곱은 아브라함의 피를 나눈 친족이며
형제의 장인이라는 혼맥으로 다시 이어져 있던 관계였습니다.
그런데 이스마엘 부족의 상인들이 감히 주인의 가까운 친척을 노예로 팔아넘긴다?
가능한 일일까요?
이집트로 가는 긴 여정동안 요셉이 '내가 야곱의 아들이라'고 한마디도 못했을까요?
족장의 친족과 관련된 중대사안이 이스마엘 족장에게 정말 보고 하나 없이 방치되었을까요?
더군다나 이스마엘 상인들은 그 뒤로도 정기적으로 이집트와 무역관계를 가졌는데 말이죠.
여기서 이스마엘이 누구인지 돌아보았습니다.
생각해보면 그는 서러운 아들이었습니다.
"...사래가 하갈을 학대하였더니 하갈이 사래 앞에서 도망하였더라"(창16:6)
태어나기 전 어머니의 배 속에 있을 때부터 학대받고 쫓겨나 광야로 도망해야 했죠.
"아브라함이 ...그 아이를 데리고 가게 하니 하갈이 나가서 브엘세바 광야에서 방황하더니"(창21:14)
한번은 다시 돌아올 수 있었지만 결국 또 다시 광야로 쫓겨나게 됩니다.
이삭을 희롱했다는 사라의 분노 때문이었습니다.
그는 광야의 척박함을 이기지 못할 아직 어린 아이였습니다. (창21:16,17)
학대받고 쫓겨난 어머니의 서러움을 가슴 속에 새기고 자랐을 그는
그래서인지 '장성하여 광야에서 거주하며 활 쏘는 자'(창21:20)가 되었습니다.
가슴 속의 분노는 폭력을 통해서 분출되었을 것이고 그것이 그를 전사로 키워냈습니다.
그런 이스마엘에게 이삭은 그의 모든 것을 앗아간 저주덩어리였겠지요.
한 세대가 지나갑니다.
이번에는 동생 야곱에게 장자권과 축복권을 빼앗긴 에서가 나타납니다.
장자이면서도 더 이상 장자일 수 없는 그에게 야곱은 그대로 저주덩어리였을 겁니다.
그는 이성을 잃고 이삭이 죽기만 하면 저 놈을 쳐죽이겠다고 마음먹기까지 했습니다.
그것이 이스마엘과의 공감대를 형성했을 것이고
이스마엘은 딸 마할랏을 에서에게 주어 강력한 동맹관계로까지 이어지게 됩니다.
이제 또 한 세대가 지나갑니다.
이번에도 먼저 태어난 형들은 요셉의 탄생으로 야곱의 모든 관심과 애정으로부터 소외됩니다.
그런 그들에게 요셉은 그대로 저주 덩어리일 수 밖에 없었습니다.
죽이고 싶을 정도로...
이스마엘 족속의 뿌리깊은 증오와 복수심은
세대를 건너뛰어 현재진행형인 요셉의 형제들과 묘한 공감대를 형성했을 겁니다.
우리는 당신들의 아픔을 이해합니다...충분히...
하지만
왜 하필이면 그 날 형들은 평소에 양치던 세겜을 벗어났을까요?
왜 하필이면 요셉이 헤메던 순간 때마침 누군가가 나타나서 네가 무엇을 찾느냐고 물었을까요?
왜 하필이면 그 사람이 형들의 대화를 엿들을 수 있었을까요?
왜 하필이면 형들이 양치러 간 곳이 이집트와의 무역경로였던 도단이었을까요?
왜 하필이면 그 순간 이스마엘 상인들이 그 곁을 지나갔을까요?
이 모든 겹쳐지는 우연은 정말 단순히 우연일까요?
우연이 아니라면....
"하나님이 그 아이와 함께 계시매
그가 장성하여 광야에서 거주하며 활 쏘는 자가 되었더니"(창21:20)
하나님은 이삭 뿐 아니라 이스마엘과도 함께 하셨다고 말씀하십니다.
그 이유는 이스마엘을 통해서도 하나님의 계획을 이루시고자 하는 뜻이 있었기 때문입니다.
광야에서 죽어가던 그 아이와 함께 하신 하나님이
이후 그 아이를 통해서 상상을 초월하는 구원의 역사를 이루어 가십니다.
이스마엘은 그의 탄생 이전에도, 그리고 그의 죽음 이후에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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